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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ristiantimes Oct.2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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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서부 유일의 기독교 주간지

크리스천신문 The Christian Times

Since 2001

2020년 10월 23일(금) 특별판 제4호

오래 전 부터 ‘주일학교를 없애자!’는 구호를 외 쳤습니다. 이 구호를 제목 삼아 미주 중앙일보 에 칼럼을 한번 썼다가 내용은 제대로 숙지하지 도 않고 제목만 보고 발끈한 분의 전화를 받아 진땀을 뺀 적이 있습니다. 칼럼에서 전하고자 했던 주장은 그동안 교회에서 해오던 학교식 교 육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신앙 교육의 중심이 가정 이어야 함 이었습니다. 학교식 교육이란 표현은, 지식전달 위주로, 주 로 교실에서 한 30-40분 동안 행해지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생에게 하는 주입식 교육을 의미 합니다. 교회에서의 신앙 교육이 그동안 철저히 학교화 되어 있었던 것은 사용하는 용어에서도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그동안 교회 주일“학교”에 맡겨 져 각 “반 (classroom)”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교사”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일 주일에 하루 예배를 포함해 길어야 2시간 남짓 한 시간 안에 교육을 마쳐야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이런 학교식 교육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으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장점 만큼이나 단점도 컸던 것이 사실이고 이제 는 그 역할을 다 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가정 을 신앙 교육의 기본 장으로, 부모를 신앙교육의 제일 책임자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 해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세 기 남짓한 교회가, 또 교사가 자녀들의 신앙교 육의 책임을 떠맡은 양 지내왔으니 그것에 많은 분들이 우려를 표했고 저 역시 약간은 자극적인 구호를 외쳤던 겁니다. 실지로 제가 나성 영락교회의 교육부 담당 목사 로 사역할 당시에는 교육부에서 “학교”용어를 없애고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를 교육할 수 있 는 자료를 배포하며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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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간편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자녀를 신앙 교육할 수 있는 묘책이 있느냐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에게 제가 해드리는 조언과 권면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밥상머리 교육을 하시라는 겁니다. 안 그래도 밥상머리 교육에 관해서는 일반 교 육영역에서도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터 넷에 검색해보면 많은 자료가 뜹니다. 밥상머리 교육은 뭐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과 식 사하며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이런 저런 대화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밥 상머리 교육이 무엇보다 성경적이라 생각합니 다. 신명기에서도 분명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 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 을 강론할 것이며” 하였습니다. 이건 꼭 “교실” 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무시로 자녀에게 신 앙교육 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자 녀와 함께하는 식사시간은 빼놓을 수 없는 기회 입니다. 제안 드리고 싶은 것은 자녀들과 식사 시간에 밥상에 둘러 앉아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하 시라는 겁니다. 소위 “라떼는…”의 형식으로 시작하십시오. 아 빠가 자랄 때, 엄마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으 로 시작하는 이야기들. 더 옛날로 가셔도 좋습 니다. 우리 노씨 조상은 오래전 중국에서 한국 으로 오셨어. 할아버지, 할머니는 대대로 한국 대전이란 곳에서 살았 단다. 대전 근처에 노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하나 있 거든. 그 마을에 산 하나는 묘지인데 우리 조상 들이 다 그곳에 묻혀 계셔. 거기 아빠 할아버지 묘비 뒷면에는 아빠 이름 그리고 Jeremy (제 큰 아이 이름) 이름도 적혀 있단다. 나중에 한국 같이 가서 보여줄게. 할아버지는 은행을 다니셨 고 아빠가 14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그리 고 작은 아버지 이렇게 네 식구가 미국으로 이 민을 온거야… “라떼는 말이야..”가 꼰대들이 하는 말투라고 부 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자녀들은 부모님의 어릴 적 이야기, 가족의 배경과 특히 북미주에서 2세, 2.5세로 자라면서 직계의 이민 과정의 이야 기를 매우 흥미롭게 듣습니다. 무엇보다 자녀의 Korean-Canadian 으로의 정체성 형성에 이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의 흐름 가운데 우리 가족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에 관해 언급하 는 겁니다. 어려운 이민생활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셨는지, 교회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 었는지,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기쁨과 책임에 대하여 자녀들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즉 옛날 이야기 형식을 빌은 간증을 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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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옛날 이야기하며 대화하는 거라 부모가 쑥 스럽지 않아도 되고 부담도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나님 이야기가 밥상대화 의 중심이 되다 보면 약간의 격식을 차린 가정 예배를 시작하는 것도 조금은 손쉬울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다음세대를 향한 교회역할은 무 엇인가 라는 무거운 주제에 관한 칼럼을 부탁 받 았습니다. 간단히 답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자 녀 신앙교육에 관한 한 교회가 조금 뒤로 빠지 는 것이 좋겠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그럴 수밖 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는데 따지고 보면 전화 위복입니다. 사실 말씀드린 대로 오래전부터 주 장해오던 바입니다. 우선되는 책임을 부모에게 다시 돌리는 것이 옳습니다. 교회는 어떻게 부 모에게 동기부여와 자료 제공을 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밥상머리 신앙교육을 위한 지침서 마련, 자녀와 의 대화의 주제와 흐름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 제공, 밥상머리 교육에서 가정예 배로 전환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반복되 는 의식(ritual, 예배, 성찬식 등) 이 왜 중요한 지에 대한 부모교육 등을 교회 교육부와 목회자 들이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밥상머리 교육은 지식전달만이 아닌 지혜전달, 부모와 자녀의 소통, 관계 중심적 교육, 인성/성 품 계발 우선이란 좋은 장점들과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녀들의 한국어 어휘, 표현력 향상이 라는 부수적 이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성경적 교육이기에 자녀들에게 예수께서 나의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시라는 흔들리지 않는 신 앙의 뿌리를 심어주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약간 뒤로 빠지고 주일학교는 없애고 대 신에 밥상에서부터 부모가 자녀들을 신앙 교육 할 수 있도록 격려, 후원, 동기부여, 자료 제공하는 것이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부모의 신앙을 자녀들이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생생하게 듣고 전해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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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3일(금) 특별판 제4호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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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유학생들의 아버지 조영택 원로목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다 조영택 원로목사는 황해도에서 목회하시다 인민군에 의해 순교하신 고 조석훈 목사(1905~1950)의 셋째 아들로 태어 났다. 고 조석훈 목사의 아내 고 전영경 사모는 슬하의 7남 매와 함께 월남, 서울로 피난하였으며 7남매중 아들 넷(고 조의택 목사, 조인택 목사, 조영택 목사, 조유택 목사)은 다 목사가 되었고 세딸은 모두 목회자의 사모와 전도사로 양 육했다. 믿음의 뿌리는 3대로 이어져서 네 명의 목사(조성 모 목사, 조윤모 목사, 조충모 목사, 조진모 목사)가 나오는 귀한 믿음의 가문을 이루었다. 조 원로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졸업 후 미국 샌프란시 스코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산정현교회 전도사를 거쳐, 경동중앙교회, 서소문교회, 서울의 장석교 회를 담임했다, 밴쿠버영광장로교회로 부임하면서 캐나다 로 오게 된 조 원로목사는 토론토 동부장로교회에 섬기셨 고, 환갑을 앞두고 보다 순수한 목양을 위하여 1994년 캐나 다 밴쿠버 갈릴리교회를 개척 담임목사로 사역 후 2009년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조영택 목사(밴쿠버 갈릴리교회 원로목사)가 지난 19일 향 년 84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조 목사는 암 수술 이후에 덤으로 주신 시간들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더욱 애 를 쓰며 시간을 보내다, 얼마 전 암이 재발 되었지만 본인 의 의사에 따라 항암치료를 받지않고 남은 시간을 보내던 중 지난 19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현재 SNS를 통해 고 조영택 원로목사를 기억하는 성도와 후배 목회자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어제 모든 자녀들이 모여 마지막 예배 드릴 때 깨어 나셔 서 찬송도 부르시고 마지막 축도도 하시고 오늘 아침에 천 국 가셨습니다. 가족 예배 드리기 전 부터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다가 막상 예배 시작하고 찬양하니 정신이 반짝하여 손까지 들고 감사하며 '주님 저는 행복 합니다' 하시고 끝 난 다음 '이제 더 할 것 없지?' 하시고는 금방 혼수상태가 되더니 아침에 모든 식구들 앞에서 편히 가셨어요. 팬데믹 기간이고 그동안 사랑 많이 받았으니 폐 끼치지 말 고 조용히 발인 예배는 우리 가족 예배로 대신하고, 하관 식도 우리 가족끼리 하라고 말씀 하셨어요." 라고 전했다. 팬데믹으로 인해서 장례식 조차 모이기 어려운 상황이지 만, 계속해서 장례와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링크는 조영택 목사께서 소천하시기 전날 가족 예배를 드 린 영상입니다. 조 목사님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영상을 통 해 확인하세요. < https://youtu.be/z1i8Js4VSUo >

한국기독교순교자유족회 회장, 밴쿠버 한인기독교회협의 회 회장, 캐나다 장로회 한카노회 노회장 및 캐나다 서부 지역 코스타 대표를 역임하였으며,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유학생선교센터를 운영하며 유학생을 비롯 청년 사역 헌신 했으며 많은 후배 목회자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며 존경을 받는 목회자 중에 한 분으로 기억된다. 유족으로는 강환 사모와 1남 3녀가 있다. '그의 생각'을 작 곡한 조준모 한동대 국제 어문학부 교수가 아들이고, '하나 님의 은혜'를 작사한 조은아 풀러신학교 교수가 막내 딸이 다. 장례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뤄질 예정이 다. 강환 사모는 주변에 아래의 글과 함께 고 조영택 원로 목사의 부고를 알렸다.

그 이름들을 불러가며 축복해 주신 분이셨다. 그러다가 그 가정에 어떤 경사라도 있음을 알게 되면 그 자 지난 월요일인 2020년 10월 19일,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의 리에서 바로 지갑을 여시는 것을 나는 여러 차례목격했다. 84세 생일을 한 주일 앞에 둔 조영택 목사님을 다시 ‘그의 혹은 식당에서 자주 뵙는 그 분을 “대접만 받는 분”으로 생 나라’로 부르셨다. 그 분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드린 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가까이서 그를 본 나는 그의 지갑이 예배의 영상이 Youtube 에 오른지 단 하루만에 5천명 이 어려운 지역 교회를 향해 크게 열리는 것을 몇 번 보며 그 상이 들어와서 본 기록이 말해 주듯이 그는 수 많은 사람들 가 얼마나 한 교회를 뛰어넘어 “주의 교회들”을 사랑하는 에게 영향력을 끼쳤고,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또 사 지를 볼 수 있었다. 랑을 받으셨던 분이시다. 조영택 목사님은 교계의 큰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 자리에 나 역시 그를 사랑했고 그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 중 한 꼭 계셨던 분이시다. 물론 후배 목회자들의 좋은부탁도 있 사람이다. 조영택 목사님은 부산 피난 시절 나의 부친과 인 었겠지만 힘든 부탁도 마지 않으셨던 분이시다. 가장 힘든 연을 맺은 이후, 70년 간 우리 가정과의 순연이 계속 되었 내용의 광고라도 그가 나가면 일단 청중은 웃을 준비가 되 다. 밴쿠버에서 26년, 그리고 마지막 4년은 Langley의 이 었고 그는 힘들고 무거운 내용을 탁월한 유모로 거뜬히 전 웃으로 동네의 산책 길이나 커피 숍에서 종종 만나곤 했다. 달하고 다시 한번 핵심 내용을 확인 전달한 후 유유히 강 그 때마다 반갑게 두 손을 높이 들고 흔들어 주시던 나의 대에서 내려오시곤 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개인적으로 신학교와 목회의 대선배이자, 개인적으로는 삼촌 같이 친 만날 때 본인 조 목사님도 그 말 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씀하시곤 했다. 힘든 짐이라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근한 분이셨다. 그 짐을 무겁지 않은 듯이 흔쾌히 지셨다는 말이다. “나는 목회 아니면 할 줄 아는 것이 없어”라고 말씀하셨던 그는 평생 목회자이셨고, 주의 교회를 사랑하신 분이시다. 그는 밴쿠버 교계의 어른이셨고, 목회자들의 대 선배이셨 밴쿠버 갈릴리 교회에서의 마지막 지역 교회 목회를 은퇴 지만 눈물도 많으셨고, 어린 아이와 같은 솔직함과 순수함 하신 후에는, 그는 전국구의 목회자가 되셔서 그를 만나기 을 갖고 계셨던 분이셨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말씀을 사랑 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절대 거절하지 않고, 일정을 조 하셨던 분이셨다. 지역 교회 목회를 은퇴한 늦은 연세에 제 정해서라도 다 만나 주셨던 분이시다. 그 분이 계신 곳에 주도 열방 대학 성경 학교(SBS)에 다시 입학해서 젊은이 는 늘 넉넉함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고, 문제의 해결함이 들도 힘들어 하는 성경 전권을 6개월 동안 집중적 연구하 는 과정을 마치셨다. 우리 부부와 만날 때 “제가 오늘 아침 있었다. 에 묵상할 때… , 이 말씀을 읽는데… “받은 은혜를 나누면 조목사님은 기억력이 탁월 하셨다. 그는 한국 교회의 살아 가장 즐거워 하신 분이셨다. 한 달전 산책 길에서 만난 조 있는 역사 책이셨고, 캐나다 교계의 살아 있는 역사책이시 목사님과의 마지막 대화 역시 최근 ‘메시지’(유진 피터슨) 기도 하셨다. 그는 탁월한 기억력으로 만나는 사람의 부모, 를 읽으시면서 받은 은혜의 내용이었다. 그가 얼마나 주의 형제, 자녀들의 이름까지 다 기억하시고 기도할 때 일일이 말씀을 사랑했는지 말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조 목사님은 조 목사님다운 생을 살고 가셨다. 지난 주일 저녁, 악화된 병으로 잠깐씩 정신 을 잃어 버리는 것을 반복하셨던 목사님은 가족이 예배를 시작하자 언제 그러셨냐는 듯이 깨어나 번쩍 손을 들고 함 께 찬양하고, 하나님이 왕 되심을 거듭 거듭 선포하고, 축 도까지 다 하셨다고 한다. 그 후 감사하며 “주님 저는 행복합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식구들을 돌아보며 “이제 더 할 것 없지?”라고 물으신 후 바로 완전 혼수상태로 들어가셨다는 사모님의 말씀은 슬픔 중에도 우리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한다 목사님 마지막 순간까지 멋 있으셨습니다 마지막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대장이십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목사님, 존경합니다. 목사님, 곧 뵙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그리워하며 사모하던 그 나라에서 ...

밴쿠버 지구촌 교회 원로 목사 김명준


•2020년 10월 23일(금) 특별판 제4호

유기성 목사의

Faith Talk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은 이미 믿는 것 이고 십자가 복음은 다 아는 것인데 신학교까 지 와서 굳이 그것을 다시 공부할 필요가 무엇 이냐?’는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신학교에 왔으 니 신학 공부에 전념하라는 취지로 한 말이지 만 그 때를 돌아보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날 정 도입니다. 신학생 당시, 제가 정말 예수님을 믿 고는 있는지,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인지 알고 는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았더라면 하는 아 쉬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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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정말 믿어는 보았는가? 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예수님만 믿어도 될까?’ 의심이 듭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특별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만 믿어서는 뭔가 부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일보에서 기독청년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 청년이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예수님 만으로는 못 살겠다”는 묘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 교회 청년들 의 신앙 현실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교리적 으로만 믿지 실제 삶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 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청년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예수 믿는 청년이 없는 것처럼 보 이는 것입니다.

습니다.이 얼마나 엄청난 것입니까?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을 이처럼 믿어는 보았 습니까? 저는 저의 옛사람이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한동안 몰랐습니다. 누구도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십자 가는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이지 제가 죽은 십자가인 줄 모르고 지냈으며 부활하신 예수 님의 생명으로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때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 보다 더 큰 일 을 할 것이라고 말씀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제 입니까? 이제 정말 예수님을 믿어야 할 때 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보지 못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언제나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 님을 다 알 수 없지만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 을 다 아십니다. 우리는 한치 앞을 알지 못하지 만 주님은 앞으로 되어질 모든 것을 아십니다. 게다가 ‘나’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주님만 믿고 사는 것이 정말 지혜롭고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어도 바로 믿어야 합니다.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 교리 지식에 그치지 말고 예수님과 24시간 동 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행하는 친밀함을 계속 키워 가야 합니다!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이렇게 하루 하루를 살 십자가 속죄의 복음을 믿습니까? “아멘” 한다 때, 우리 삶이 바뀌고 주 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도 용서하게 되어 이 말씀을 도대체 어떻게 믿으라는 것입니까? 님의 역사가 드러나게 되 야 진정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임하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 는 것입니다. 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은밀한 죄가 다 사라 었으며 부활의 주님으로 다시 살게 되었다 (롬 져야 맞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까? 그 6:3-4)는 놀라운 복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이 갈 우리는 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렇다면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져야 맞습니다. 등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예수님을 믿어는 보았는지 스스 하나님의 나라를 믿습니까? 그렇다면 순교도 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충분 두렵지 않고 오히려 특권이라고 믿어져야 맞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때는 언 솔직히 돌아보면 신학생 시절 저는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목사인 아버지를 더 의지하 였습니다. 그것을 군 훈련 중 중상을 입고 응 급수술을 받아야 할 절박한 처지에서야 깨달 았습니다. 아무 힘이 되지 못하는 아버지를 믿 었지 정작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저를 발견하 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회심의 시 작이었습니다.

지난 10월 16일(금) 버나비 놀스로드에 위치한 House of Omeed(이후, 희망의집)에 마스크 도네이션 행사가 열렸다.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희망의 집에 와서 직접 주민들을 만나 보며 여러가지 어려운 부분을 들었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여러 da는 미국 FDA를 취득한 한국 KF94 마스 분들을 섬기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모두 희망 크 등을 정식으로 수입하는 회사로 한인 최초 을 가지고 함께 이겨냅시다.”라고 메시지를 전 하원의원으로 당선 된 넬리 신 의원과 함께 소 했다. 또한 Phoenix Meditec 류지훈 대표는 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어려운 시기 이외에도 지난 21일(수) 써리에 소재한 아메니 를 안전하게 함께 이겨 나가기 위해 마스크 기 다 시니어홈에 거주하시는 어르신들과 스텝들 부행사를 가지게 되었다. 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 250장을 도네이션 했 다. 아메니다 시니어홈은 현재 코비드19에 가 이날 Ahmad Zeividavid(House of Omeed 장 위험한 어르신들의 안전을 위해 외부인의 director)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에서 제조된 출입을 제한하고 방역과 안전에 최선을 다하 KF94 마스크 1000장을 희망의 집에 기부했 고 있다. 다. House of Omeed에서 Omeed는 페르시 아어로 HOPE를 뜻한다. 희망의 집은 이란에 로사 박(아메니다 총괄매니저)매니저는 “BC 서 캐나다 온 난민 100가정 500여명을 위하여 주에서도 코비드로 인해 사망자가 양로원에서 행정적인 도움 뿐만 아니라 무료로 음식을 나 가장 많이 발생했습니다. 코비드19은 어르신 누어 주는 크리스천 단체이다. 이날 넬리신 하 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방역을 위 원의원과 류지훈 대표, 하만진 이사는 이곳에 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모든 스텝이 근무 방문한 분들에게 마스크를 나누어 주며 현장 중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데 이번에 도네이 의 소리를 직접 듣는 시간이 되었다. 션해 주신 마스크를 착용해 보니 이전에 착용 한 마스크에 비해서 숨쉬기도 편하고 입에 붙 넬리신 의원은 인터뷰를 통해 “마스크를 기 지 않아 좋은 거 같습니다. 도네이션 해주신 부해준 Phoenix Meditec사에 감사함을 전하 Phoenix Meditec 류지훈 대표와 하만진 이 이날 도네이션은 넬리신 하원의원과 류지훈 며, 함께 희망의 집에와서 마스크를 주민들께 사님께 아메니다를 대표해 감사함을 전합니 대표(Phoenix Meditec Canada), 하만진 이 나누어 줄 수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 코비드19으로 인해 우리는 정말 힘든 시간을 사 등이 참석했다. Phoenix Meditec Cana 재단 오유순 이사장은 뉴비스타 소사이어티에 5만 달러를 전달했으며, 올해부터 10년간 매 년 5만 달러씩 총 50만 달러를 도네이션 할 계 획이다. 뉴비스타 양로원 신축 건물은 오는 10 월31일(토) 개원을 앞두고 있으며 한인 시니어 13명이 현재 입주 예정이다.

9월 완공한 버나비 소재 뉴비스타 양로원이 완공을 기념해 한인관계자를 초대해 투어하 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투어에는 뉴비스타 내 한인 양로원 건립을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 한 무궁화 재단 오유순 이사장을 비롯해 연아 마틴 상원의원, 무궁화 재단 이사 김경자, 진영 란, 무궁화여성회 회장 김인순, 이사 김경애, 우애경 등이 참석한 가운데 뉴비스타 소사이 어티 디렉터 Darin Froese(Chief Executive

officr) 가 안내 했다. 뉴비스타 양로원은 “L”자 모양으로 건축되었 으며 총 7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주 공간은 층별 40개 호실 6층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총 240명이 거주 할 수 있다. 2층 한 개 층을 한 인들이 거주 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으며, 인테 리어와 식당 등 시설이 한국 정서에 맞게 조 성되었다. 2층 엘레베이터 옆 벽에는 지금까지 뉴비스타

한인양로원을 위해 후원한 명단이 적힌 후원 의 벽을 만들어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올해 초 밴쿠버시온선교합창단(지휘자 정성자 권 사)은 2만 달러를 후원한 바 있다. 또한 한인 시니어들을 배려해 모든 표지판에 한글과 영어가 함께 표시되어 있으며, 여닫이 창호문이 설치되어 있어 한국적인 느낌을 주 는 세심한 배려를 엿 볼수 있다. 이날 무궁화

▴ 뉴비스타 양로원


•2020년 10월 23일(금) 특별판 제4호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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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섬에서 칼럼 본 세상이야기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에 영향을 받 은 자녀들이나 젊은이들은 질문들 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대답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부 모로서, 교회 공동체의 어른으로 서 그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 도 대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 지만 주의할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 아니라 자녀들이나 젊은이 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포 스트모더니즘 영향을 받은 자녀들 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내 생각이 아닌 성경적인 대답을 줘야 합니 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 은 사람들의 꿈과 열광을 성경적으 로 어떻게 성취하는지 말해줘야 한 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사도바울이 유 대인들과 헬라인들의 질문에 성경 적인 대답을 해줍니다. 고린도전서 1:22~24에 보면, 바울은 유대인들 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 를 찾는다고 말합니 다. 바울은 여기에서 유대문화와 헬라문 화의 차이를 인정합 니다. 유대인들은 능 력을 추구하는 실제 적인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헬라인들은 철학, 지혜, 지적인 우위를 추구하는 철 학적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정 합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어른 세대인 전통적인 문화에서는 어떻 게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의 도리를 다할까?에 인생의 목적이 있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 문화에서는 어떻게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내 꿈을 이룰 수 있 을까?에 인생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어떻게 성경적인 대 답을 해줘야 하는지 우리는 그 예

사도바울은 먼저 유대문화의 능력 과 헬라문화의 지혜 둘 다 중요하 다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 두 문 화를 비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 가에 못박히신 것은 유대인이나 헬 라인들이 다 말이 안된다 생각합니 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건은 유대인들에게 능 력이 없는 것이고, 헬라인들에게는 죽음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말이 안

동시에 세상을 사랑하시는 지혜는 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문화에 따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지혜 라서 다르게 적용합니다. 각각의 유대문화와 헬라문화의 배경을 가 라는 것입니다. 문화를 긍정하고 비판하고 수정하 진 사람들에게 바울은 십자가를 제 는 것입니다. 대로 이해한다면, 십자가가 하나님 사도바울이 하는 패턴을 주의 깊게 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라고 반 보십시요. 사도바울은 유대문화와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서도 이렇게 박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능력이 헬라문화가 추구하는 능력과 지혜 적용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포스 없다고 말하는 유대문화에 영향을 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능력 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우리 받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우리에 과 지혜를 잘못된 곳에서 찾고 있 아이들이나 젊은이들과 전통적인 게 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희생 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그들 문 어른 세대는 서로 생각이 다릅니 화가 추구 다. 서로 다른 것을 원합니다. 하는 것을 그 상황에 대해 바울의 방식을 따 예수 그리 른다면, 우리는 포스트 모던니즘 스도안에서 문화와 전통문화를 인정하는 동시 만 찾을 수 에 둘 다 틀렸다고 비판하고, 포스 있다고 가 트 모더니즘 문화의 세대가 원하는 르 칩 니 다 . 것과 전통적인 문화의 세대가 원하 그들이 찾 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 고 있는 능 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력과 지혜 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전통주 를 예수님 의 문화와 포스트 모더니즘 문화가 적인 사랑보다 더 큰 능력은 없다고 이 어떻게 보여주셨는지 방향전환 서로 충동하는 관계가 아니라 예수 반박합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을 시키는 것입니다. 긍정하고 비판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는 것을 보 희생적인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 하고 수정하는 것이 사도바울의 패 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보다 는 진짜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턴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 습니다. 또한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 바울은 그렇게 유대문화와 헬라문 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헬라 화에 영향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문화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전합니다. 유대문화와 헬라문화에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지 영향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십자가 혜가 가장 큰 지혜라고 반박합니 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 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고 문화적인 사람이 아니라 복음적 세상의 죄, 즉 불의를 심판하시는 인 사람들이 되게 했습니다. 바울

BRUNCH COLUMN

브런치 칼럼

재미 신학자 이정용 교수의 ‘마지널 리티’의 한 부분인 민들레이야기로 오늘 브런치 칼럼의 서문을 열고자 합니다. 이정용 교수는 그의 책 첫 장에서 민들레를 메타포로 자신과 아시아계 미국인 이민자의 삶을 투 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서 주변인으로서의 삶을 통해, 새로운 관점의 자서전적 신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제가 관심을 갖는 관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요구되어지는 선교적 리더십이야기 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선 교적 리더십은 삶의 이야기가 되어 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이 유는 리더십과 삶의 이야기, 특별히 삶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밀 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렇 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몇 가지 키워 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자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단 순한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자와 함께 하시는 모든 독자분들, 한인 디아스포라 성도들의 이야기 특별히 필자는 ‘디아스포라’하면 떠 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오르는 상징적인 꽃 ‘민들레’를 통 해 이 시대, 특별히 다문화 시대에 첫째는 “한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선교적 리더십”입니다. UN 국제이주기구 발표에 의하면 세계인구 7명중 1명이 이주자일정 도로 현 시대의 이주는 여러가지 이 유로 시대적 흐름이 되었습니다. 그 리고, 한국의 경우 2017년 외교부 자 료를 보면, 재외 동포수는 총 194개 국 7,430,688명입니다. 그렇다면, 선 교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때 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과거에 한국 에서 선교사들을 파송 하는 것에 주 력했다면, 이제는 이미 전 세계적으 로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 중에서 선교 헌신자들이 일어나도록 힘써 야 할 때라는 것이죠. 한인 디아스 포라의 선교 동원은 매우 큰 선교의 동력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 면 타문화권 선교의 잠재적 자원이 이미 현지에 존재하고 있다는 뜻입 니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하나님 의 선교에 동원할 것인가?’가 중요 한 이슈가 되는 부분입니다. 둘째는 “미셔널 처치”입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미셔널 처치”의 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초기 교 회 공동체의 태동 자체가 안과 밖으 로, 자민족과 타민족을 위해, 전도 와 선교를 위한 역동적이고, 전략적 인 방향성을 가지고 숨쉬고 있었습

니다. ‘선교적 교회’, ‘Missionary Church’는 지상대위임령을 기초로 성경적 교회의 핵심가치입니다. 선 교는 더 이상 교회 사역의 구색을 맞 추는 일부분이 아님을 분명히 기억 해야 합니다. 또한, 세계인구의 이주흐름에 따라 세계 주요도시를 중심으로 이미 다 문화 사회가 이루어진 곳도 있고, 빠 르게 진행 중인 도시도 있습니다. 달 리 말하면 집 앞, 동네에서 타문화 권 선교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한국내에도 체 류하는 외국인의 수가 200만이 넘 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빠르게 다문 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최근 들어 많이 거론되는 말이기도 한, “미셔널 처치”의 올바른 인식과 진정성 있는 변화를 통해서 한국과 한인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예수 그 리스도의 복음이 역동하는 진정한 교회공동체의 모습을 되찾아 가길 소원한다.

순화된 구원논리의 부작용으로 단 순히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에 안 주’하는 그릇된 인식의 변화가 필요 한 때입니다.

진정성 있는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 를 구주로 시인 한 성도에게서 일어 나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예수님처 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 좌 버리시고, 죄로 인해 어그러진 삶 을 살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사셨던 선교적 삶, 그 삶을 따라 사는 삶으로 삶의 전복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 서 두루 다니시면서 제자들에게 보 이시고, 친히 삶으로 가르치신 그것 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미셔널 라이 프일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민들레 이야기처 럼, 이민자의 삶의 현실은 녹록치 않 은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바라기는 저 또한, 낯선 땅에서 하나 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어떻게 이 땅 에 이루어지도록 살 셋째는 “미셔널 라이프”입니다. 미 것인지 고민하며 우 셔널 처치가 교회 ‘공동체적 핵심가 리들의 이야기를 써 치’라면, 미셔널 라이프는 흩어지는 나가길 소원합니다. 교회의 삶, 즉, 예수그리스도를 구주 로 고백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 자 된 ‘성도의 핵심가치’입니다.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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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 받는 그릇 바울은 그렇게 주님께서 택하신 그릇이었 다. 바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큰 그릇이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 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 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 마나 받아야 할 것을 그에게 보이리라” (행9:15) 주님께서 바울을 택한 이유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고 심지 어는 죽이기까지 하던 폭도 바울, 이런 자가 주님을 위한 위대한 그릇이 되리라고 어느 누가 짐작이라도 하였겠는가? 그러니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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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하고 난 다음에도 주님의 제자들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그를 의심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의 말씀처럼 큰 그릇으로 쓰임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갈 릴리의 무식한 어부들을 제자 삼으셨던 것 처럼, 주님께서는 바울에게서도 또한 그의 중심을 보셨던 것이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처럼 일평생 복음을 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말할 수 없는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사 명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10여년 동 안 무려 17,000여 km를 여행하면서 70여개 도시에서 복음을 전했다. 가난한 복음전도 자로서 거의 대부분 도보나 선박을 이용하 는 것이 고작이었던 2천년 전 당시의 교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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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을 감안하면 그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거 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바울은 가는 곳 마다 돌팔매질을 당하고 곤장을 맞고 감옥 에 같히는가 하면, 때로는 강도를 당하기도 하고, 또 배가 파손되어 여러 번 죽을 고비 를 넘기는 등, 그야말로 바울의 가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주님 께서 맡기신 귀한 사명을 완수했던 것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변명하려 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단 한 번도 주어진 고난을 회피하려 한 적도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로 맘미암아 당하는 고난을 오히려 기쁨으로 감당했던 것이다. 그에게

는 언제나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복을 받고 싶어한다. 오직 한 번뿐인 짧은 인생인데, 모두 복을 많이 받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 우 리는 해마다 새해가 되면 서로 이렇게 인사 하는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러면 사람들이 받고 싶어하는 복의 정체는 무엇인가? 누구에게는 돈일 수 있다. 누구에게는 건강일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구 에게는 권세나 명예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바라는 복은 다양하다. 그러나 한 가 지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복 은 거의 대부분 외형적인 것이다. 눈에 보이 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 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복의 개념은 달라 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이렇게 말한 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만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 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 면 귀히 쓰는 그릇이 도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2:20-21)

<이종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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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사] 코로나 19 으로 인하여 바야흐로 우리는 지 금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게 다가 전통적인 권위에 대해서는 부패하다 고 여기고, 종교적 도덕과 세속적 권위에 반 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이 시대는 분명히 ‘ 혼돈의 시대’ 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이러 한 상황에 대비하여 2017년부터 캐나다 밴 쿠버에서 이 시대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다 가온 “가치관의 상실, 세계관의 혼란 그리 고 비전과 목표의 부재” 라는 커다란 도전 에 당당히 맞서서 싸워 온 ‘리더십 단체’인 GCLA ‘글로벌 코칭리더십 협회’에 대해 좀 더 탐구하고자 한다. - GCLA 글로벌 코칭리더십 협회가 벌써 3년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2017년 12월에 첫 발걸음을 시작했는데 벌 써 3년이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본래의 목 적은 건강한 가정과 교회 그리고 선교지를 세우고자 21세기의 새로운 리더십인 ‘코칭 리더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 나님께서 주신 은사들 중에서 당당하게 ‘ 코치’ 로서 부름 받은 이들을 불러 세우고, 그들을 통해서 많은 크리스천 리더들이 성 경적 세계관 및 탁월한 역량을 장착하도록 돕고,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목표를 성취 해 나가도록 섬기고자 해서 시작하게 되었 습니다. - 언제부터 ‘코칭리더십’을 접하게 되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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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LA ‘글로벌 코칭리더십 협회’

지요? 전문적으로 ‘코칭리더십’을 전공하게 된 것 은 2006 년도부터입니다. 미국에 위치한 한 세미너리의 석사 및 박사과정에서 코칭을 중심으로 논문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리고 현재 ‘캐나다 크리스천 칼리지’에서 코칭상담학 교수를 하기까지 오래동안 코 칭과 리더십을 중심으로 사역하고 있습니 다.

칭 훈련을 통해서 배출된 탁월한 리더들과 함께 시애틀과 마닐라 그리고 중국의 심천 과 광저우까지 그 영역을 넓히게 되었습니 다. 또한 앞으로 3년 이내에 세계 주요 20여 개의 도시에 새로운 챕터(Chapter)를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기독교 고등학교와 교회의 청년들 그리고 대학생 과 크리스천 기업을 위한 프로그램이 만들 어져 있기에 2021년도 초부터 본격적으로 리더십 훈련이 진행될 계획입니다.

도 계속해서 GCLA 글로벌 코칭리더십 협 회가 그 지경을 넓혀가는 단체가 되기를 바 란다. 특히 아직까지는 후원을 받은 적이 없 어서 모든 임원들이 각자의 자비로 힘들게 운영해 왔지만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비전과 방향을 후원자가 될 분들과 함께 나누면서 달려가겠다고 다짐하는 GCLA 를 위해서 더욱 많은 기도와 후원이 함께 하길 바란다.

- 앞으로 ‘코칭리더십’과 관련된 도서 출판 및 한국 등지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실 계 획은? 그동안 저희 GCLA ‘글로벌 코칭리더십 협 회’는 밴쿠버를 중심으로 라이프코칭, 목회코칭 및 크리스천 코칭 훈련은 물론이 고 다양한 리더십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이 러한 가운데 한국에 이미 서울과 대전 그 리고 부산에 새로운 챕터(Chapter)를 개설 하였고 그 첫 번째 발걸음으로써 지난 4 월 에 ‘이지코칭 워크북’이라는 책을 출판하였 습니다. 이를 토대로 2021년도부터는 본격 적으로 한국에서 다양하게 활동을 할 계획 입니다.

- ‘글로벌 프로젝트’를 실행 하신다고 했는 데 어떤 것입니까? 저희 단체의 모든 분들의 가슴에는 ‘선교’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의 모든 한인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로컬 선교사 및 목회자들이 리더로서의 성장뿐 만 아니라 개인의 삶이 변화하는 경험이 절 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특히 성령의 음성 에 따라 그들의 사역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 행되고 있는지 또한 검증이 요구되고 있기 에, GCLA코칭팀은 이들을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Global Project)’라고 불리는 ‘ 리더십 훈련 사역’을 준비해 왔으며 곧 동 남아시아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사역하 - GCLA 국제대표로서 어떠한 비전을 가 고 있는 선교사들과 함께 협력 사역을 진행 할 예정입니다. 지고 계신지요? 2021 년부터 새롭게 시작되GCLA의 제 2 시즌부터는 단지 캐나다와 한국에 국한돼 비전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뜨겁게 타오 서 활동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올해 많은 코 른다는 피터정 국제대표의 말처럼 앞으로

망감에 빠진젊은이들 가운데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관계의 가장 기초적인 못자리라고 할 수 있는부모와의 관계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런 젊은이들은 대부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부모가 자녀를 믿어 준다. 청년들은 부모의 사랑과 지원을 확신하며 산다. 부모는 돈 의 가치, 경쟁의 논리로 자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받아준다. 이런 기초적인 관계가 든든하면 아무리 상 이런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늘 비교당하고, 부모 뜻대로 하지 황이 어려워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 반면, '야, 넌 않으면 분노와 폭언을 쏟아붓는 부모 아래 자라왔다. 코로나로 밥값 언제할래? 밥값도 못하는 것이 밥은 왜 먹냐?' 그러면 자 집안에 가족들이 있으면서 자꾸 얼굴을 보니 답답하고 스트레 신은 밥값만도 못한 인생이 된다. 결국 이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 스가 찬 부모들이 관계에 상처를 입히는 폭언을 서슴없이 내뱉 으면 밥값도 못하는 무가치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는 것이다. 이런 가정의 부모들은 대부분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세상적으로 명망 있는 이들이다.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서슴없 이 죄악된 세상에서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세상 풍조 아래 휩 이 이런 말을 한다. 쓸려 살다보면, 우리는 정말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려워진 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힘들고 우울하고 숨 막힐 것 같은 세상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투자 한 게 얼마인지 알아? 8억이야 8억. 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한다. 왜? 위에는 우리 같이 연약 돈값 좀 하고 살아라!” 이 말에 자녀의 자존감은 완전히 무너진 한 인생을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라하시며 사랑하고 붙들어 주 다. ‘난 8억은 커녕 800만원짜리 알바인생밖에 안되’ 자학하며 시는 하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이 위에 계신 하늘 아버 코로나가 지속되며 '코로나 블루'라고도 하는 우울증이 2030 젊 자신의 가치를 돈의 가치로 환산하며 바라보니, 자신에게 아무 지와 연결될 때 우리는 이 세상의 우울과 극한 외로움과 고통을 은이 세대를 급격하게 덮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취업절벽에 가 런 희망이나 가능성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완전 절망이다. 살아 벗어날 수 있다. 로막혀 자존감이 떨어지는데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 야 할 이유를 모른다. 800만원짜리 인생이라 생각하니 목표도 버리는경우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언택트( 보이지 않는다. 결국 절망 중에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것이다. 비대면)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자신을 붙들고 지지해줄 주변의 관계망이 급속도로 무너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극단적인 절 반면, 이 어려운 중에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청년들도 있다. 이

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언더커버 Undercover ”, 권위 군인이자 역사 저술가였던 크세노폰 (Xenophon)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 국으로 돌아 왔을 때 자신을 환영하 는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 다. “크세노폰, 이제 당신이 남자라는 것을 증명할 기회입니다. 당신은 한 도 시, 군함, 재력, 그리고 다스릴 수 있는 수 많은 사람들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이 원하시기만 하면 우리는 당신을 섬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 신을 위대하게 높일 것입니다.” 크세 노폰은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 동할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대 히랍인들은 방해받지 않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내재적인 힘을 품고 있다”는 말로 “엑세스티”를 썼습니다. 히랍어 “엑세스티”는 “권세가 있다,” “ 권위를 갖고 있다,” 혹은 “허가 받았 다”고 번역됩니다. 국가나 특별 기관으로부터 허락을 받 았기 때문에 제한이 없이 행동을 이행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엑세스티”의 명사형은 “엑수시아”입니다. “권위,” “ 권세,” “허가”로 번역되는 이 낱말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국가의 권위자들은 사회의 안정과 국 민의 행복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의 행동을 제한시켰습니다. 이 권위는 또한 주인들이 노예를 다스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노예들은 주인들 의 권위에 따라 제한된 행동만 할 수 있었습니다. 권위의 사용은 가족 안 에서도 발견됩니다. 오늘날 가정에서

임하셨습니다 (요17:2).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진리를 세상에 전하도록 교 회에 사명을 주셨습니다 (마 28:18) 그 리스도의 권위는 제한 없이 세상의 모 든 영역에 나타납니다.

둘째. 자연의 세계에도 권위가 있습니 다. 많은 경우에 창조의 질서는 완전하 게 통제 받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사실을 잘 증명합니다. 메뚜기는 파괴하는 권위를 가졌고, 전갈은 쏘는 권위를 소유했습니다 (계 9:3). 하나님 다섯째, 기독교 공동체에 권위가 있습

부모들이 갖는 권위에 비교하면, 고대 히랍 가정에서 부모들의 권위는 절대 적이었습니다. 가정에는 부모 위에 그 어떤 상위 권위도 존재하지 않았습니 다. 고대 히랍 사회는 권위로 운영되 었습니다. 클라스 루니아 (Claas Runia)는 우 주에 존재하는 권위를 다음과 같이 요 약했습니다. “모든 권위는 궁극적으 로 하나님께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오 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그렇다면, 인간은 권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 가? 권위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질문 에 기독교인들을 위한 답은 오직 하나 이다. 성경이 권위를 위한 최상위 표준 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통제하는 권 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생의 근본 한을 갖고 계시며 (계 16:9), 그 권위를 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증거하기 위해서 천사들을 이용하십 니다 (계 18:1). “권위”는 신약성경에서 최소한 여섯 영역에서 사용됩니다. 첫째, 절대적 권위자는 오직 하나님입니다.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는 한계점 이 없습니다. 이 권위는 하나님의 전능 하심과 관계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권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여호와 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 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 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 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

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 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 다 (요 1:12). 이 권위는 교회에 위임되 었으며,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지속적 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고후 셋째, 사탄도 권위를 소유합니다. 이 13:10). 사도들은 믿음의 일꾼들을 세 권위는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허락 우기 위해서 그들의 권위를 행사했습 하신 제한된 영역에 나타납니다 (눅 니다 (고후 10:8). 4:6). 사탄이 지배하는 권위는 쉽게 깨 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 여섯째, 권위의 영향력은 초월적으로 서 사단의 권세 아래 놓여 있는 죄인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초 들을 빼앗아 오셔서 구원하시기 때문 월하는 권위가 이 땅에 존재하게 하셨 입니다 (행 26:18). 사탄의 권위는 하 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 있는 통 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 범위를 벗어 치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 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지배권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넷째, 권위는 그리스도 안에 집약되 는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모든 통치자 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 와 권세자를 통치하십니다 (골 2:10). 를 통치하시는 권세를 그리스도께 위 세상에 존재하는 권위와 힘은 언젠가

는 하나님에 의해서 소멸됩니다 (고전 15:24). 권위가 있는 곳은 그 권위가 무엇이 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 권세가 땅 위에 있든, 땅에 있든, 땅 아래에 있든지, 그리고 그것이 사탄 의 영역이든지, 혹은 자연의 세계이든 지,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손에서 나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위 의 한계를 정하셨고, 그 권세의 용도 는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기 위한 것 입니다. 창조물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은 자신들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 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는 창조하신 만물을 선대하시며 지 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십니다 ( 시 145:9). 국가의 위임과 보호를 받고 첩보활동 하는 비밀경찰을 “언더커버 Undercover”라 부릅니다. “언더커버”는 다 양한 상황에서 사용됩니다. 아이들이 감기 걸리지 않도록 이불을 덮고 잠을 잘 때, 위험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엄 마 뒤로 몸을 숨길 때 이 단어를 사용 합니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 칠 때 동 물들이 숲 속이나 동굴 속으로 몸을 숨길 때도 이 표현을 씁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을 때 (Under God’s authority), 하나님의 보호하 심과 공급하심을 받습니다. “주는 주 의 깃털로 여러분을 감싸 주시고, 주 의 날개 아래 여러분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주의 신실하심이 여러분의 갑옷과 방패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보내심을받은 생명의소리교회 담임 훼이스대학교 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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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3일(금) 특별판 제4호

캐나다를 넘어 열방으로 "크리스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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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속에서도 네 직무를 다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전 쟁을 치루듯이 치열하게 살아오신 분 들도 계실 것이고 매일이 똑 같은 삶을 반복하는 듯하게 살아오신 분들도 있 을 것입니다. 마음은 간절했지만 육신 이 약하여서 하지 못한 일들도 있고 내 가 계획하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 오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은 똑같지 않습 니다. 모두가 다 다르고 다른 환경과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 세상 속 에서 우리들이 살아가야 하는 믿음의 삶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군대의 명령처럼 들 립니다. 제가 군에 입대할 때 논산 훈 련소 입구에 적힌 글자를 아직도 기억 합니다. 군의 명령은 산과 같아서 옮길 수 없다 고 적혀 있었습니다. 군의 존재 이유는 나라를 지키기 위 함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안전하고 평 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군인은 외부 의 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자 모든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그래 서 군의 명령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 을 완수하기 위해서 군인들은 훈련을 하고 땀을 흘립니다. 그래서 ‘임전무 퇴’ ‘전쟁에 나가면 후퇴는 없다’는 각 오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게 됩니다. 군의 명령이 무겁지 않으면 누가 전쟁 에서 후퇴하지 않고서 싸우겠습니까? 그러나 군의 명령은 자신의 안전보다 는 국민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하기에 두려움을 이기고서 전쟁에 나가는 것 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평소에 그 에 상응하는 훈련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야만 실전에 투입되어도 훈련처럼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엄한 명령 오늘 우리들이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 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엄하게 말 한 명령과 같은 말입니다. 1절을 읽어 봅시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 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

그러나 제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 았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해보였지만 그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마케도니아로 로마로 나아가기 시작했 습니다. 그렇게 복음은 전파되어 갔고 다음 세대에게 전달이 되어 갔습니다. 그 시간이 2천년이 지났습니다. 그리 고 우리들도 지금 그 직무 사명을 받 았습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때를 얻었기 때 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엄한 명령이고 주님의 제자들이 인내 하고 순종해 왔기 때문에 우리들도 하 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 앞에 설 때 에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 씀하십니다.

히 명하노니 바울은 엄히 명령한다고 했습니다. 하 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한 명령을 디모데에게 주고 있습니다. 명 령이 엄하지 않으면 명령으로서의 의 미가 없어집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된 다면 안하는 경우들이 훨씬 더 많습니 다. 그러나 엄한 명령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엄한 명령을 전달하는 것입 니까? 그것은 심판의 주님이 다시 오시 고 그의 나라가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 다. 우리가 행한 모든 것들에 대한 심 판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 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엄한 명 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요즘 데살로니가전서를 우리가 아침 마다 묵상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 람의 말로 듣거나 받지 아니하고 하나 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 문에 고난을 견딜 수 있었고 믿음의 역 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 질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그것은 옛날에 했던 말씀이 아 니라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데살로 니가 성도들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있어야 할 자세이 며 태도입니다. 2.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엄한 명령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 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 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 하며 권하라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 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 전파에 힘쓰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들에 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8장19-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 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 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 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도니라 바울도 그 길을 달려왔고 이제 디모데 도 그 길을 달리게 됩니다. 또한 우리 들도 그 길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직무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기의 개인적 욕심 을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들은 신중하고 고난을 받을 지라도 전 도자의 직무를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 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엄한 명령이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우리들이 서야 하 기 때문이며, 우리의 달려갈 길을 마친 후에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기 때 문입니다.

4. 믿음을 지키고 명령을 지키고 직무 를 다한 후에 얻게 되는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환경과 상황을 탓한다면 우리 는 아직도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훈 디모데후서4장7-8절 련을 받는 군인은 환경과 상황을 탓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 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 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 지 너희와 항상 함 께 있으리라 하시 니라 주님의 명령은 가 서 모든 민족을 제 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주님이 말씀 하신 모든 것을 가 르치고 지키게 하 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명령을 순종했고 그것을 이제 디모데에게도 전달하고 있습니 다. 그것은 엄한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면 물은 멈추거나 중단하는 것이 아니 라 돌아가거나 혹은 기다리고 계속해 서 차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 어 버립니다. 물은 멈추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진행합니다. 돌아가도 계속 해서 나아가고 막히면 계속해서 차오 삶을 살아가다보면 일이 잘 풀리고 잘 르다가 결국에는 넘치게 됩니다. 이것 될 때도 있지만 하는 일마다 잘 안되고 이 물이 흐르는 원리입니다. 막힐 때도 있습니다. 잘 안되고 막힌다 고 해서 포기한다면 우리들은 많은 순 때를 못 얻었다는 것은 방해나 장애물 간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잘 안되 혹은 어려움이 발생했다는 뜻입니다. 고 막힐 때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일은 그렇지만 복음의 전파는 멈출 수 없고 왜 잘 안될까 혹은 왜 막힐까를 질문 멈추지 않습니다. 또 다른 길을 찾거나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잘못 판단한 혹은 계속해서 차오르는 시간을 가져 것은 없는지 내가 잘못 행동한 것은 없 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넘어서고 는지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은 없는지를 넘쳐서 나아가야 합니다.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길, 다른 길, 더 좋은 길, 더 바른 길이 있 사도행전에 보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는 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포기하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변명하고 원망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계속해서 사도행전1장8절 어떻게 하면 이것을 통과할 수 있을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 를 생각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3.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전파하라 이 되리라 하시니라 때를 못 얻었다고 해서 중단하지 말라 는 바울의 권면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님을 증거하는 복음의 증거는 예루 중요한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살렘을 넘어서 유대로, 유대를 넘어서 물이 흐르다가 막힌 곳에 이르게 되 사마리아로, 사마리아를 넘어서 땅 끝 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유대를 넘어서 사마리아로 가는 것은 엄청난 장벽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 사람 은 상종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었습 니다. 그런데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로 전파되는 것은 정말 넘지 못할 산을 넘는 것과 같았습니다. 또 복음이 마케도니아 지 역을 넘어서 로마로 전파되는 것은 유 대인을 넘어서 이방인에게로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유대인들에게는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증거는 그 장벽을 넘어 간다고 했습니다. 때를 못 얻었다는 것은 가로막혔다는 뜻입니다. 장벽이 있다는 뜻입니다. 2020년 우리들 앞에 있는 장벽은 무엇 입니까? 바울은 그것을 넘어서 계속해 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고 있습 니다. 장벽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 다.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 아와 땅 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 이 제자들이 받은 사명입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이것을 이렇게 비유 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명령은 마치 컵 을 가지고 바닷물을 퍼내는 것과 같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명령처 럼 보입니다. 누가 보아도 그렇습니다.

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직무를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축 진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훈련하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만을 위 복합니다. 아멘. 는 것일 뿐입니다. 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어떤 목사님의 자녀가 아버지에게 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1. 우리의 삶의 환경은 항상 변화합니 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마치 부름을 받았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 다. 그러나 그 변화하는 환경이 우리들 베이비시터 하듯이 교회를 목회하고 도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서 신 의 사명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주 있다고… 교회는 하나님의 군사를 양 중하게 고난을 견디면서, 어떤 상황 속 님의 명령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명 성하는 훈련소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 에서도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입니다. 그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 은 베이비시터하듯 하고 있다는 뜻이 감당해야 합니다. 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었습니다. 5.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2. 어려움 속에서 낙심하고 포기하고 바울은 여러 차례 신앙의 삶을 군인에 마태복음28장20절 볼지어다 내가 세 변명하고 회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 비유를 했습니다. 특별히 에베소서6장 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 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성령의 능력을 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이야기하면 라 하시니라 힘입어 그 장벽을 넘어가는 믿음의 역 서 믿음의 삶을 비유했습니다. 사 사랑의 수고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또 군사로 모집된 자는 자기를 기쁘게 주님이 힘을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삶의 포커스 로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항상 함께 3.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돌아 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가 있지 않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움과 보면서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기 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은 해야 할 일 낙심은 우리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도합시다. 가난과 질병 가운데서 어려 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받은 사명이 있 않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 움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습니다. 완수해야 할 직무가 있습니다. 도 신중하고 인내함으로 그리고 순종 추수의 감사가 섬김의 열매로 나타나 이것이 군사로 부름받은 자의 모습입 함으로 우리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입 도록 기도합시다. 니다. 이것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들 직무를 완수해야 할 자의 자세입니다. 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2020년 10월 23일(금) 특별판 제4호

전 면 광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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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ristiantimes Oct.23.2020 by TheChristianTimes - Iss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