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8 - 서병희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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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계속 괴롭히는 트라우마가 있어요. 운동할 때 느꼈던 불안감, 열등감. 생각해보면 그게 제 열정의 원천인 것 같아요.

작아지고 싶지 않고 불안하고 싶지 않아서 항상 떳떳하게 살고 싶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삶,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삶을 꿈꾸고 있어요.




1 나는 골키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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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황, 그리고 선생님과의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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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군대에서만든 포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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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창업, 고난, 멘토,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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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어요. 단짝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랑 매일 축구를 했던 것 같아요. 하루는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는데, 축구부 감독님이 "너 축구 해볼 래?" 하시더라고요. 당연히 하겠다고 했죠. 아버지도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 주셨어요. 여느 부모님처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하는 분이 아니셨거든요. 그렇게 4학년 때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줄곧 축구선수가 꿈이었어요. 열심히 했죠. 뛰라면 뛰고 구르라면 구르고. 산에 훈련을 나가면 돌바닥에 다이빙을 시켰는데, 워낙 강압적인 분위기니까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었어요. 공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고 저를 눕혀놓고 선 코앞에서 얼굴에다 공을 뻥뻥 차기도 했어요. 코피 때문에 얼굴이 피범벅이 돼도 참 았어요.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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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시즌 시작하기 며칠 전에 시 대표 선발전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제가 키도 크고, 큰 경기에 나가면 배우는 게 많으니까 골키퍼로 도전해보라고 하셨어요. 학 교당 한 명만 나갈 수 있었는데 제가 나간 거죠. 정말 별생각 없이 나갔어요. 근데 그런 날 있잖아요. 뭔가 신들린 듯한 날. 그날 저 혼자서 유효슈팅 13개를 막았어요.

난리가 났죠. 그 경기 때문에 구에서 저 혼자 시 대표가 됐거든요. 구청이랑 학교에 플 랜카드 붙고, 잡지에도 나오고. 처음에는 진짜 내가 잘하나 싶었어요. 서울시에서 난다 긴다 하는 애들이 다 모이는 팀에 들어갔으니까.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나이 어리고 잘하는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하잖아요. 같은 팀 애들이 너는 잘하지도 못하면서 왜 왔 냐고 깔봤어요. 저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들고. 부담감이 엄청났죠. 그때 축구 를 좋아하는 나는 사라진 것 같아요. 그냥 축구는 나에게 해야 하는 것, 부담스러운 것 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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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더 힘들었어요. 완전히 새로운 감독님, 완전히 새로운 선배님들 이랑 단체 생활을 해야 했어요. 욕도 많이 먹고 맞기도 많이 맞고. 핸드폰이랑 돈도 막 뺏겼어요. 더 서러웠던 건 차별이었어요. 저희 팀에 저 말고 다른 골키퍼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실력도 좋고 집안도 좋았어요. 반면에 저희 집은 그렇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까 저를 아예 훈련에서 빼는 거예요. 차라리 못한다고 혼났으면 좋겠는데, 제가 잘하든 못 하든 코칭을 안 해주고 줄넘기만 시켰어요. 참 밉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많이 위축됐 어요. 항상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고. 뭘 해도 못할 것 같고.

하루는 저희 학년이 공 관리를 잘 못해서 단체 기합을 받았어요. 쇠로 된 매로 한 사 람당 백 대를 넘게 맞았던 것 같아요. 기합을 다 받고 나서 주장 형이 그러더라고요. 너 네 고생하는 거 다 안다고. 그니까 조금만 더 힘내보자고. 다들 엄청 울었죠. 그날이 또 제 동기 생일이었거든요. 다시 잘 해보자는 의미로 치킨을 시켜서 먹고 있었어요. 근데 감독님이 들어와서는 축구도 못하는 게 밥은 잘 넘어가냐고 인신공격을 쏟아붓는 거예 요. 아 진짜 그만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날로 축구부 전체가 다 같이 짐 싸 들고 나와 버 렸어요. 합숙소 창문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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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그만두고는 엄청 놀았어요 진짜. 저희는 합숙을 하니까 하교라는 게 없잖아 요. 친구들이 하교하면 그 하굣길이 너무 부러웠었거든요. 학교 끝나자마자 뛰쳐나가서 친구들이랑 놀았죠. 근데 그렇게 놀아도 뭔가 계속 헛헛했어요. 몸도 마음도 다 탕진해 버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고등학생이 됐는데 수업시간에 앉아있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수업시간도 늘 고 교시도 많아지고. 맨날 운동만 하다가 교실에 앉아있으려니까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매일 등교해서는 1교시만 듣고 나갔다가 7교시에 들어왔어요. 벤치 같은 곳에서 자다가 들어가고. 적응을 못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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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여느 날처럼 밖에서 방황하다가 잡혀서 교무실에 불려간 적이 있었어요. 교무 실 문을 여니까 담임선생님이 다른 학생을 혼내고 계시더라고요. 한참 이야기를 하시다 가 저희를 보고서는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막 울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울면서 그러시더 라고요. 한 번만 자퇴해주면 안 되겠냐고. 요즘은 고등학교 졸업 못 해도 살 방법 많다 고. 아니면 제발 근무하는 동안만 학교에 안 오면 안 되냐고.

저는 제가 쓰레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공부하는 걸 싫어하고 적응을 잘 못 했을 뿐이지 막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니까. 근데 그런 말을 들으니까 정신 이 번쩍 들더라고요. 충격적이었어요. 내가 얼마나 잘못했으면 어른이 아이한테 이 정 도로 말할까. 그래서 정말 죄송하다고 안 그러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이후론 한 번도 안 빠지고 수업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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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학교에 제일 무서운 선생님이 한 분 계셨어요. 학교에 그런 애들 있잖아요. 장난 이라 그러면서 친구 괴롭히는 애들. 그런 애들 잡아다가 엄청 때리고는 나도 장난이라 고 하면서 훈육하는 그런. 무섭지만 정의로운 선생님이셨어요. 근데 2학년 때 교실 문을 열어보니까 그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인 거예요. 큰일 났다 싶었죠. 자리도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옆자리라 제가 말썽부린 거 다 알고 계셨거든요.

교무실로 저를 부르시고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학교는 무조 건 나오겠습니다. 근데 담배는 못 끊을 것 같습니다. 대신 학교에선 절대 입에 안 대겠 습니다. 당연히 혼날 줄 알았죠. 근데 알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약속은 꼭 지키라고. 2 학년 내내 저를 엄청 잘 챙겨주셨어요. 이 사람이랑 한 약속은 지켜야겠다 싶더라고요. 멋있어서 엄청 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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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제 내신이 8등급 9등급 왔다 갔다 했거든요. 공부 잘 하는 친구한테 무작정 공부 좀 알려달라고 했어요. 당시에 저희 학교는 야간 자율학습 이 금지되어있었어요. 실업계 고등학교라 사고가 좀 많았나 봐요. 근데 공부를 마땅히 배울 곳이 없잖아요. 그래서 선생님께 특별히 부탁드렸죠. 공부를 좀 해보려고 하는데 밤에 문 좀 열어주실 수 있냐. 그래서 그 친구랑 야자를 하게 됐죠.

그렇게 공부를 하니까 성적이 순식간에 4등급이나 올랐어요. 해볼 만하더라고요. 그 러다 보니까 3학년이 돼서는 반에서 2등, 과에서 3등까지 성적이 오른 거예요. 내신 1 점대. 이거면 대학에 갈 만하다 싶더라고요. 그때 내신은 한 학기만 보고 나머지는 수능 점수만 보는 전형이 있었어요. 실업계는 수능에서 사회탐구 과학탐구 말고 직업탐구란 과목을 보거든요? 컴퓨터 회계원리 이런 과목들. 근데 이 과목들은 3학년 때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점수가 잘 나왔죠. 국어는 어릴 때부터 워낙 좋아했었고. 그렇게 딱 한 학기 내신이랑 수능으로 대학에 합격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가 예비 147 번이었는데 148번까지 합격했다고 하더라고요. 문 닫고 들어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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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바로 갔어요. 군대에 있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보잖아 요. 막내일 땐 위로 100명, 말년 병장일 땐 아래로 100명. 그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느끼는 게 참 많아요. 특히 저렇게 살면 안 되겠다 하는 거. 저렇게 매사에 짜증 내면 안 되겠다. 불평하면 자기만 힘들구나. 나도 저랬었는데. 이런 반면교사가 참 많았던 것 같 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뭔가 생산적인 걸 하고 싶어졌어요. 처음에는 일단 잠을 줄 였어요. 일단 덜 자면 더 많은 걸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에. 근데 사회랑 다르게 딱히 할 게 없잖아요. 그래서 음료수 뒤에 전성분표시표 따라 쓰면서 글씨 연습을 했어요. 오만 잡다한 지식을 노트에 적으면서 공부하고. 그러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제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어떤 결핍이 있을까? 내가 원하는 건 뭘까? 과거 현재 미래, 과거 현재 미래. 계속 제 삶을 복기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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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술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이등병 때 술이 너무 마시고 싶은 거예요. 하루는 배식 으로 포도가 나왔어요. 근데 마침 좀 전에 술에 관련된 책을 읽었었어요. 포도랑 설탕을 섞어서 발효시키면 포도의 효모랑 설탕의 당이랑 결합돼서 포도주가 된다는 내용이었 어요. 이거다. 해보자 싶었죠. 이등병이니까 제가 부식을 다 옮겼었어요. 그래서 포도 두 박스 중에 한 박스를 훔쳤죠. 그리곤 빈 보충제 통에다 포도를 으깨고 설탕을 넣었어요. 이제 이걸 묻어서 발효시켜야 하잖아요. 저희 부대가 최전방이라 산이 많았어요. 선임 들이 가끔 산에 몰래 나가서 밤도 줍고 벌레도 잡고 그랬거든요. 그게 생각이 나더라고 요. 밤에 다들 잘 때 몰래 담을 넘어서 산에 묻어뒀죠.

2~3개월을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묻어뒀던 술이 생각나는 거예요. 들 뜬 마음에 땅을 파봤는데 진짜 그 통에 보라색 물이 찰랑찰랑하더라고요. 얼른 총기 수 입포에 싸서 식당 물병에 넣었더니 딱 한 병 나와요. 한 모금 마셨는데 와... 진짜 말도 안 되게 맛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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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식을 훔친 것도, 술을 몰래 만든 것도 엄청 큰 잘못이잖아요. 걸리면 큰일 나는. 근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선임 생일날 이 술을 나눠마셔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슈퍼스타 K라는 TV 프로그램이 유행해서 금요일에는 그 프로 보라고 좀 쉬게 해줬었 어요. 이발실에다 냉동식품이랑 라면 같은 음식들을 세팅해놓고 부대원들을 불렀어요. 생일이라 이렇게 준비해봤다고. 술이 너무 마시고 싶어서 포도를 훔쳐서 포도주를 만들 었다고. 혼날 줄 알았죠. 근데 한입씩 마셔보더니 다 엄청 칭찬하는 거예요. 너무 고맙 다고. 앞으로 포도 나오면 계속 이렇게 포도주 만들어 마시자고. 너무 기분 좋더라고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내가 뭔가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을 대접할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 구나. 나가서 바텐더를 해야겠다. 바로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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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하고 복학하고서도 밤에는 계속 바에서 매니저로 근무했어요. 그때 엄청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바가 연신내에 있었는데 새벽에 일이 끝나면 항상 집까지 뛰어왔어요. 그리고 학교 가고. 저녁 일곱 시 되면 다시 출근하고. 열정이 넘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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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가 10년이 넘은 유서가 깊은 가게였어요. 하고 싶던 일이었고 열정도 넘쳤으니까 재미있게 했죠. 문제는 사장님이었어요. 개차반이었거든요. 비싼 외제차 끌고 도박하러 다니면서 가게 운영비를 제대로 안 줬어요. 거래처 물건 대금부터 알바생들 월급까지 다 제가 관리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독촉 전화가 다 저한테 와요. 당장 알바들 월급 도 줘야 하고. 어떻게 하겠어요. 제 월급으로 구멍을 다 메웠죠. 나중에 보니까 못 받은 돈이 천만 원 가까이 되더라고요.

사장님이 워낙 가게에 관심이 없다 보니까 돈은 제때 못 받았지만, 사실상 그 가게를 제가 운영할 수 있었던 게 너무 좋았어요. 어떤 술을 사고, 어떤 안주를 개발하든 다 제 마음이었어요. 급여 목록 차트도 다 제가 만들고. 애착이 컸죠. 내 가게 같고. 정산해보 니까 바가 생긴 이래로 제가 매니저로 있을 때 매출이 가장 높았대요. 그 바를 그만두고 나니까 다른 바에서 러브콜이 엄청 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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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회비용이 큰 사람이 아니에요. 부모님이 저한테 투자를 많이 하신 것도 아니고 좋은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니까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게 좀 재밌는 거예요. 바를 운영하면서 자신감도 생겼고. 뭘 해도 하겠다. 내가 쓸모 있는 존재구나. 그때부터 여 러 바를 돌아다니면서 운영했어요. 부산부터 서울까지. 새로운 안주나 메뉴를 개발하 고 이걸 인터넷으로 홍보했어요. 지금으로 따지자면 마케팅이죠. 매출이 쭉쭉 오르니까 사장님들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입소문이 나서 한 번에 여러 가게를 담당하게 됐어 요. 그렇게 관리하는 가게가 5개가 됐을 때 픽스테이션이란 광고회사를 창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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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어요. 계속해오던 분야니까 창업이 뭐 별건가 싶었죠. 세금 계 산서만 잘 써 주면 되겠다 싶었어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업자 등 록이 되어있으면 사업장이 있어야 하고, 사업장이 있으면 일정량의 돈이 매달 나가잖아 요. 그러다 보니까 일이 조금 밀리면 몇백이 마이너스가 되는 거예요. 극복을 못 하면 죽 겠더라고요.

영업을 엄청 치열하게 해야 했어요. 근데 영업을 하러 가면 일단 사람들이 엄청 경계 해요. 이 사람이 혹시 나한테 사기 치는 게 아닌가. 나를 좋게 보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이어간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더군다나 뭔가를 팔아야 하니까. 예전에 운동 할 때 느꼈던 부담감 비슷한 게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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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게 봤던 거죠. 바를 광고할 때 잘 될 수 있었던 건 제가 잘 아는 분야여서였어 요. 경험도 있고. 근데 문제는 그 경험을 다른 분야에 대입하니까 매출이 전혀 오르질 않는 거예요. 헉, 세탁기 청소 업체를 어떻게 광고해야 하지? 의류 수거업체는 어떻게 광고해야 하지? 모르겠더라고요. 문제는 모르는 상태에서 클라이언트랑 상담을 해야 하니까 미치겠는 거예요. 막상 미팅에 갔는데 저보다 고객이 광고에 대해 더 잘 알고 있 던 적도 있었어요. 얼굴 빨개져서 나왔죠.

이렇게 돈을 버는 건 정말 부끄러운 짓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내가 만든 술 을 마시고 좋아하는 게 좋아서 술을 만들기 시작했고, 매출이 올랐을 때 사장님들이 고 마워하는 게 좋아서 이 일을 시작한 건데. 내 광고가 아무런 효과가 없는데 돈만 받는 다면 무슨 의미가 있지? 어떻게 하면 떳떳하게 돈을 벌 수 있을까? 회사의 정체성에 대 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닥치는 대로 배우러 다녔죠. 관련 세미나는 웬만하 면 다 참석하고. 광고 잘한다는 사람 찾아가서 술 사드리면서 한마디 듣고. 영어도 잘 못 하는데 외국 칼럼 번역기 돌려서 읽고. 제가 맡은 일 중에서 잘 된 케이스, 안 된 케이 스 나눠서 분석하고. 그러다 보니까 자신감이 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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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돕는 것, 그리고 돈을 버는 것. 두 개를 어떻게 하면 동시에 이룰 수 있을까가 항 상 주된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사회적 욕구와 경제적 욕구를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 에 대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봤어요. 그러던 와중에 바에서 일할 때 만났던 사장 님이 '마이크 임팩트'란 회사를 소개시켜 주시더라고요. 여러 명사들을 초청해 강연을 기획하는 회사였어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사회에 전달하면서 돈 도 벌고 있더라고요. 너무 멋있었어요.

이런 회사를 세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어요. 한동헌이란 분인데, 이분이 '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란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한 게 있더라고요. 찾아봤죠.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건 기대에 묶여 살지 말고 진짜 네가 원하는 삶을 찾아서 살아라.' 이 런 내용이었어요. 처음엔 질투가 나더라고요. 나도 똑같은 메시지를 청춘들한테 전해주 고 싶었는데. 저런 얘기를 내가 먼저 했어야 하는데. 근데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해 보니 까, 나랑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성공했다면 나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 더라고요. 그 이후로 그분이 제 삶의 멘토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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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하면 정말 힘들거든요. 내일 모레월세 내야 하는데 어떡하지. 이번 달은 잘 버틸 수 있을까. 이런 불안감 때문에. 이렇게 불안할 때마다 그 대표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요. 일면식도 없는데. 원래 이렇게 힘들 거죠? 대표님도 이런 과정을 겪으셨나요? 뭐 이런. 당연히 읽지도 않죠. 그래도 계속 보냈어요. 반 발자국 앞에서 나랑 같은 길을 먼저 걸었 던 사람이잖아요 그분이. 그냥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더라고요. 약간 기도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답장이 올 거라곤 생각도 안 했어요. 근데 8개월째 되는 날 회사로 한번 찾아오라고 답장이 온 거예요. 벙쪘죠. 회사에 찾아가서 얼굴을 처음 마주하는데 무슨 접신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선 엄청 많은 얘기를 했죠. 책부터 인생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얘기까 지. 코드가 엄청 잘 맞는 거예요. 그렇게 가까워졌어요. 그러다 어느 날 저보고 같이 일 해볼 생각 없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제가 청춘 페스티벌 광고를 맡아서 하게 됐어 요. 마이크임팩트에서도 저희 회사가 가진 광고 능력이 필요했으니까. 그 이후론 다 잘 풀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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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광고회사로 돈을 계속 벌면서 청소년 교육 사업을 하고 싶어요. 성교육, 학 교 폭력 예방 교육, 학업 중단 방지 교육. 많은 강연 프로그램이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 는데 제대로 기능을 못 하고 있거든요. 그냥 잠자는 시간으로만 생각하고. 학생들 반응 이 미미하니까 교육 시간은 자꾸 축소되고. 근데 사실 이런 교육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이런 교육들이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이 강연에서 감명을 받고 행동이 변화된다면 학교폭력 같은 안 좋은 문화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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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원하는 건 더 오래 더 멀리 존재하는 거예요. 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남을수록 더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긍 정적인 영향력을 준다면 제 존재의 크기도 커질 거예요. 이순신 장군님이 450년이 지난 우리 세계에도 존재하는 것처럼.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더 많 이 미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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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속담 중에 이런 속담이 있어요. '신이 있는 것처럼 믿으면서 살라.'

신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운명이 절대자에 의해 해피엔딩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걸 믿는 거죠. 마치 이미 완성된 책을 읽는 것처럼요.

그러면 오늘 마주한 하루가 전혀 불안하지 않아요. 나는 잘 해낼 거고, 성장할 거니까.

그렇게 조금씩 더 크고 싶어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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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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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를 스캔하면 영상 자서전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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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희 자서전 만든이 발행일

2018년 10월 1일

글편집

이홍근

사진

황병철, 김정재

영상

최규민

디자인

배완

Copyright Ⓒ

, 2018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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