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13 - 오현지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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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현 지

세상의 끝을 모르는 순수함의 상태는 지나가버린 후에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피지기백전백승이라고, 저 건너 세상도 가보아야 내 발 밑과 주변을 지킬 수 있다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이 책을 펼쳤을 때 스스로 부끄럼 없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사람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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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 말에 너무 많이 흔들렸어요. 스치듯이 지나간 말에도 혼자 힘들어하고.

너무 백지장 같아서 닿기만 하면 물드는 거예요. 저 자신이 없는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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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결정할 때도 주변 사람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보니까 제가 결정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이 잘못돼도 내 책임이 아닌 것 같고.

그러면 사실 다른 사람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거잖아요? 그 모습이 참 못됐다고 스스로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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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을 스스로 개척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변화의 추구,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게 제게 큰 의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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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2010

p.10

2013

p.26

2018

p.44


2018년 겨울의 기록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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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 낙원중학교로 전학을 왔어요. 전학 오기 전 학교는 공부에 있어서 되게 엄한 거로 유명한 학교였어요.

경쟁도 되게 심하고 사람이 많다 보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취감을 못 느꼈어요. 남들은 뜀틀을 넘듯이 한 단계씩 넘는데 제 앞에는 벽이 있는 기분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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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저는 좀 느린 사람이거든요?

좀 기다려줘야 빛을 발할 수 있는 사람인데, 너무 이른 시간 안에 뭔가를 해내길 바라고 못 하면 버리는 환경이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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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선 저를 ‘자유로운 학생’,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으로 보고 있는 거예요. 생활기록부에 공부에 관심이 없다고 적혀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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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부모님의 권유로 이 학교로 전학 오게 된 거예요. 신설 학교다 보니까 인원이 별로 없어서 한 학년에 반이 하나였어요.

경쟁이 심했던 전 학교랑 분위기가 다르다 보니까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제 모습을 깨려고 했던 것 같아요.

단순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이런 게 아니라, 내 인생의 길은 내가 개척할 수 있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어요. 인생의 터닝포인트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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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땐 약간 인싸 기질이 있었어요. 같이 다니는 친구가 저한테 너 진짜 인사하는 사람 많다고 말할 정도로.

누구랑도 두루두루 다 친한 스타일이었어요. 점심시간에 밥 먹을 때도 보통 친한 사람들끼리 나뉘어서 먹잖아요. 저는 어느 자리에 가도 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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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착한 아이 컴플렉스. 누가 저를 밀어내거나 함부로 대하면 속으로는 너무 힘든데도 그냥 웃었어요.

이게 또 제가 느리다 보니까 대처도 잘 못 했어요. 아닌 거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항상 받아치는 게 한 박자 느리다 해야 하나? 기분 나빠야 하는 말을 들어도 당시에는 웃으며 넘어갔다가 혼자 있을 때 불쾌한 감정이 밀려오는 거예요.

자신을 방어할 방법을 모르니까 날카로운 말들을 벌거벗은 상태로 맞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감정이 해소가 안 되고 계속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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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을 안해서 친구들은 잘 몰랐겠죠. 제가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감정을 표현하는 게 다름 사람에게 제 감정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민폐라고 생각했어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웃어넘기니까 사람들이 제 앞에선 오히려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 그래야 하나? 그 사람이 약자에게 착한 사람인지 아니면 함부로 하는 사람인지 다 느껴졌어요.

그런 게 느껴지는데도 정 때문에 그 사람들을 끊어내지 못했어요. 상처받으면서 안고 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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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람한테 받는 상처가 잘 아물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20대 되고나서는 친구도 마음 맞는 소수만 사귀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고등학교 때처럼 동기들이랑 두루두루 친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인사도 잘 안 하고 같이 다니는 다섯명하고만 친하게 지냈어요.

그 친구들한테도 정을 안 주려고 차갑게 대했어요. 정을 함부로 줬다가 받은 상처가 많으니까. 제게 상처줄 것 같은 말에는 날카롭게 받아치고.

그때가 제 성격이 극과 극으로 변하는 시기였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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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제 곁을 지켜준 친구들이 고맙죠. 상처받지 않겠다는 내 결심 때문에 그 친구들도 상처받았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 시기를 견디게 믿고 기다려준 친구들한테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제 단점이자 장점이 잔정이 많은 거예요. 정을 많이 줘서 힘들었던 만큼, 제 마음을 알아주고 옆에 있어 준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힘들었을 수도 있는 삶을 그 사람들로 인해서 살아낼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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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 있잖아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고.

제가 동생이 두 명 있어요. 두 명이 각각 한 살, 두 살 터울이에요. 고 3때 하루는 엄마가 “동생 두 명은 다 서울대를 갈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할 거냐” 라고 말을 한 거예요.

제가 그때 아무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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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어른이니까 모든 걸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잖아요. 언제나 어른스럽게 위로해주고 안아주고. 사실 그건 신 말고는 안 되는 건데... 부모님한테 그런 걸 항상 바라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힘겹게 공부하고 있는 상황을 알고 있는 부모님이 가장 가까운 동생들이랑 비교한다는 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아요. 엄마 아빠도 그냥 나랑 똑같은 인간이구나. 근데 그게 극단적으로 간 거죠. 마음을 확 닫아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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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동생들이 둘 다 진짜로 서울대에 들어간 거예요.

둘이 짐을 싸서 자취한다고 집을 나갔어요. 진짜 나가고 싶던 건 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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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부모님이랑 덩그러니 남겨지니까 진짜 왜 사는건지 싶더라고요. 눈앞이 깜깜했어요.

방 문을 닫고 똑같은 침대에 누워 똑같은 천장을 보고 있는데 제 방이 제 방이 아닌 것 같은 거예요. 불편한 친구 집에 누워있는 기분. 엄마 아빠를 대하는 것도 하나의 사회생활로 느껴졌어요. 똑같이 밥 먹을 때 먹고, 잘 때 자는데 마음은 이미 집에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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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대 초반엔 마음이 닫혀 있었어요. 누군가 제 깊은 안쪽까지 진심을 밀어 넣은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오히려 들어오려하면 제가 밀어냈어요. 고마운 마음이든, 미안한 마음이든,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제 안에서 오래 머무르면 관계가 깊어질까 봐 그때그때 표현해서 날려버렸어요.

감정을 숨겨서 피해버리거나, 바로바로 해소해서 관계를 더 쉽게 끊을 수 있도록 노력했던 거죠. 실타래가 엉키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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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때 만난 친구는 정반대였어요. 감정이 느껴지면 그대로 표현하고 기다리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감정을 피하려고 하면 진심이 느껴질 때까지 저를 붙들고 얘기했어요. 튕겨져 나오면 붙잡고, 튕겨져 나오면 붙잡고.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진심을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감정을 느끼게 기다려줬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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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억지로 그 사람의 진심과 내 진심을 눈 맞추고 보게 된 거죠. 그때 처음 깜깜한 방에서 작은 빛을 본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나를 지키려고 벽을 쌓고 문을 닫아도, 진심은 그 틈을 어떻게든 밀고 들어와서 벽을 허무는구나. 대화로 관계가 변할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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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엄마도 힘들었는지 저한테 도대체 왜 그러냐고 하시더라고요. 왜 내가 너 때문에 불행해야 하냐고.

저는 마음이 닫힌 걸 티 안 내려고 했지만 당연히 티가 났을 거 아니에요. 길던 머리도 숏컷으로 잘라버리고 표정도 매일 죽상이니까. 분위기가 바뀐 건 느껴지는데 제가 마음을 닫은 이유를 모르실 테니까 부모님도 답답하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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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으면 그냥 회피했을 거예요. 엄마는 소파에서, 나는 식탁에서 서로 의미 없는 말로 상처만 주고 끝날 테니까요. 울고 싸우고 결국 서로의 진심은 듣지 못한 채 벽만 높일 거라 생각했어요. 여느 날처럼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방문만 닫고 들어가면 다시 내일이 시작될 텐데.

근데 그날은 그때 봤던 작은 빛 때문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화해의 물꼬를 트려는 아빠의 노력이 고마워서였는지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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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소파에 앉은 엄마를 식탁에 앉혀 마주 보고 있으니까 정말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4년 동안이나 속에 담겨 곰팡이 핀 감정을 꺼내놓을 수 있을까. 엄마는 뭐라고 반응할까. 4년 전에 마음의 문을 닫은 그 날처럼 나는 또 상처받을까. 그래도 진심은 통하겠지. 말이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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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디 묵은 말들이 오고가고, 적막에 공기가 무거워질 때쯤 엄마가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미안하다고. 자기는 너무 걱정돼서 한 말인데 그렇게 생각할 줄 몰랐다고.

그리고 엄마랑 저랑 둘 다 엄청 울었어요. 펑펑 울고 있으니까 아빠가 조용히 화장실에서 수건을 가져다 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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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졸업하고 인턴을 하고 있어요. 광고 마케팅 회사에서.

원래도 약간 예술적인 성향이 강했어요. 만드는 거 진짜 좋아하고, 옷 같은 거 입는데도 색 배치하는 거 진짜 좋아했어요. 그리고 항상 인정을 받았거든요. 잘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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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학과를 처음부터 디자인 쪽으로 간 건 아니었어요. 처음엔 여느 학생들이 그렇듯이 흘러가듯 학과를 정했어요.

부모님이 너 아이들 좋아하고 하니까 유아교육과 어떻냐고 하시길래 싫지 않아서 유아교육과에 갔어요.

근데 제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내 학과를 내가 직접 고르지 않았다는 게 항상 너무 아쉽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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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나 고민하게 된 거예요. 생각해보니까 제가 문구를 사는 걸 진짜 좋아하더라고요. 예쁜 스티커나 색연필. 색 배합하고 맞추는 걸 좋아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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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예술적인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닫고 나니까 지나쳐왔던 예술적이었던 제 모습이 파도처럼 몰아쳐 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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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각디자인 부전공을 시작했어요.

쉽진 않았죠. 4학년까지 유아교육과를 다니다 전과한 거니까. 교수님도 제 이름을 안부르고 ‘야 유아교육과”라고 불렀어요. 오기가 생겨서 열심히 해서 결국 그 수업 A+ 받았어요.

이제는 진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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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겨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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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지 자서전 만든이 발행일

2019년 8월 24일

글편집

이홍근

사진

김정재, 황병철

영상

최규민

일러스트

류송이

디자인

배완

표지그림

오현지

Copyright Ⓒ

, 2019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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