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11 - 김복임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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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임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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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며칠을

긁어 가지고

겨우겨우 한 지게를 만들어 팔아서 쌀 한 되박을 사오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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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로

을 끓이는데 거의 맹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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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났는데 탈 차도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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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올라 타고 왔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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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에

에서 일을 하려고

동생들을 두고 집을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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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서 밥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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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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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어,


내 생일날이 시월 스물 엿새날이거든. 그날 시집을 간 거야. 그리고 서울로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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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근데 우리 큰 아들이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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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았어.


같은 것도 잘 못 사 먹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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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몇 년 있다가 애들이 학교 가면서 돈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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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시작했어.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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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는 게 되게 힘들어 그래도 자식들이 많이 도와줬으니까 그나마 할 만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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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돌공장 다니다 나와서 버스 운전을 했어. 그러다 치매가 오셔서 병원에 모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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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 병원이 딱 예전 다니던 돌공장 자리에 세워져 있더라고.

평생을 그 자리에 살다 가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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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지금은 다 독립했지. 뭐 다들 살기 바쁘지만 그래도 알아서들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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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들이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서. 지들이 좋으면 난 그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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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예수님 믿어서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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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못 읽어도 시간 시간 기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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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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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그때 산골 사는 사람들은 다 나무 해서 먹고 살았어. 아버지가 갈퀴나무 긁어 가지고 그걸 며칠을 내내 긁어야 한 지게가 되는데 그렇게 겨우겨우 한 지게를 만들어 팔아서 쌀 한 되박을 사오시는 거야. 그거로 죽을 끓이는데 맨물이지. 나물만 가득가득 많이 뜯어서 물이랑 같이 가마솥에 넣고 끓이는 거야. 근데 그렇게 맹탕으로 만든 죽 먹어봤자 배부른 게 얼마나 가겠어요. 다 같이 그걸 며칠을 먹어야 하니까 지금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히지. 그땐 참 많이 다들 배가 고팠어. 그러다 전쟁이 난 거야. 우리도 피난을 갔지. 그때는 차도 없어서 기차 석탄 쌓아둔 칸에 올라 타고 왔었어. 석탄 위에 앉아서 온 몸이 까맣게 되는지도 모르고 타고 왔었지. 나는 그 때 너무 어려서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어. 와서도 별다른 게 없었어. 나무 해서 팔아다 쌀 한줌 사서 죽 끓여먹고. 동네에 논 있는 집 있으면 일 해주고 얻어 먹고 살고. 된장도 얻어먹어야 하고 다 얻어 먹어야 하니까 누가 쌀뜬 물만 줘도 감사해. 밀가루만 있어도 감사하고. 그때 생각하면 아우 기가 막혀요. 그러다가 우리 집 큰 동생이 남의 집에 새경(품삯)을 받기로 하고 머슴살이를 하게 된 거야. 먹고 살아야 하니까. 집에 먹을 건 없고 사람만 많잖아. 집도 없지 남의 땅 일해 주구서 그 품삯 받아가지고 먹고 사는데 얼마나 힘들어요. 동생이 나가고 얼마 안 있다가 나도 나갔어. 대전에 잘 사는 집을 소개시켜주더라고. 배고파서 밥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나간 거지. 그렇게 남은 동생들을 두고 14살에 나 혼자서 식모살이를 시작한 거야. 마당이 넓은 한옥집이었는데 아주 잘 살았어. 그 집이 무슨 장사를 했었던 것 같아. 나는 주인집 장사 나가기 전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 해주고 빨래하고 아이들 봐주면서 하루 종일 일했지. 그때는 월급 뭐 이런 개념이 없었어. 그냥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하면서 밥 끼니마다 얻어 먹으면 그걸로 끝이야. 그래도 거기서 일하는 동안 밥은 배불리 먹었지. 배는 부른데 마음은 불편했어. 내가 여기서 맛있는 거 배부르게 먹고 있는 동안에도 고향집에선 다들 배 곪고 있을 거 아냐. 동생들이 많이 걱정됐었어.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지 뭐. 매일 일하느라 명절 때나 되어야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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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결혼은 내 생일날이었어. 내 생일날이 시월 스물 엿새거든. 그날 시집을 간 거야. 참 좋은 사람이었지. 주인집 아줌마 소개로 만났어. 남편이 그때 회사를 서울서 댕겨서 나도 같이 서울로 온 거야. 사글세 방을 얻어가지고. 월급이 사천원이었어 그때. 그마저도 술 마시고 그러면 반토막만 들고 오는 거야. 그 와중에 서울은 서울이라고 물도 다 돈 내고 쓰라네. 공동 수도에 가서 일원인가 십원인가 내고 물지게에다 찌걱찌걱 지고 와야 해. 그러면 그 한 통 가지고 부어서 먹기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그러는 거지. 거리도 멀어서 한참 가야 돼. 여름되서 날씨라도 더워 봐. 얘기도 말어. 얼마나 더운지. 그래도 혼자 살 때보단 훨씬 나았어. 아들 둘에 딸 둘 낳았어. 그땐 힘들었지. 우리 큰 아들이 너무 아팠어. 많이 아팠어. 연년생으로 낳으니까 더 못 얻어 먹어서 그랬나 봐. 딸하고 한 살 터울로 나니까. 우유도 못 사 먹이고. 가난하니까. 뭐든 잘 먹여야 잘 크잖아. 미안하지. 그래도 유별나게 말썽부리는 애들은 없었어. 그냥 그냥 그렇게 살았어. 애들이 착해서 말썽 부리고 속 시끄럽게 하고 별로 그러지는 않았어. 그러면 큰일나지. 더 못살지. 그래도 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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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장사

결혼하고 몇년동안 남편이랑 나랑 애들이랑 답십리 하꼬방 집에서 복작복작 살았지. 애들이 크기 시작하니까 돈 들어갈 데가 많아지잖아. 나는 못배웠으니까 자식들은 다 학교에 보내고 싶었어. 내가 힘들어도. 지금은 초등학교 다닐 때 돈을 안 내지만 그때는 다 돈을 냈어. 하나 등록금 내면 또 하나 등록금 내고… 계속 돈이 쪼들렸어. 그래서 도라지 장사를 시작한 거야. 그때 답십리 동네에선 누구나 도라지 장사를 했어. 답십리가 경동시장이랑 가까웠거든. 경동시장에서 손질 안된 도라지를 사다가 손질해서 다시 경동시장에 파는 거야. 근데 이걸 손질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10키로 정도 되는 도라지를 일일히 다 쪼개고 불려서 손으로 다듬었어. 어쩔 땐 밤도 샜어. 일이 워낙 많다보니까 자식들이 많이 도와줬지. 큰 아들이 도라지 쪼개는 걸 도와주면 딸들이랑 나랑 붙어서 다 껍질을 깠어. 12시가 넘도록 온 가족이 모여서 도라지를 까서 물에 뽀얗게 불려놓으면 다음날 아침에 시장에다 내다 파는 거야. 내다 판 돈으로 다시 새 도라지 사 오고. 그렇게 도라지 장사를 30년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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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말년

남편은 계속 돌 공장에 다녔어. 그때 남편들이 다 비슷하지. 일 열심히 하고 술 좋아하시고. 그러다 나이를 먹으면서 공장 일을 그만뒀어. 일이 고되잖아 돌 쪼개는 게. 그래도 쉴 순 없으니까 버스 운전을 했지. 세월이란 게 어떤 면으로는 참 무서워.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잖아. 우리 남편도 나이가 드니까 아프시더라고. 당뇨도 생기고 혈압도 높고. 그러다가 치매에 걸렸어. 치매를 좀 오래 앓은 것 같아. 치매 걸린 사람 간병하는 게 되게 힘들어. 길도 잘 못 찾아서 깜빡깜빡 하고.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하나씩 잊어간다는 게 참 마음이 아프잖아. 그러다 나중엔 병원에 모셨지. 거기서 돌아가셨어. 근데 그 모신 병원이 예전 다니시던 돌 공장 자리에 지어진 병원이었어. 평생을 거기서 살다가 가신 거야.

교회

우리 딸이 장위동에 있는 염광 고등학교로 가면서 우리도 장위동으로 이사했어. 그러면서 막내딸이 꿈의 숲 교회를 다니다가 나를 데리고 갔지. 처음 교회 갔을 때부터 믿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살면서 그 믿음이 점점 커졌고. 나는 글을 못 읽으니까 시간시간 기도해. 내가 키는 조그매도 믿음으로는 어디 안 뒤져. 도라지 장사 하면서 엄청 힘들게 번 돈으로 헌금도 꼬박꼬박 했어. 그만큼 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작은 것에도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아. 지금 내가 이만큼 행복한 건 예수님 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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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추억그리고현재

자식들 다 잘 컸지 그래도. 아들 결혼한다 했을 때 엄청 좋았어. 우리 며느리는 중국 며느리야. 한국 아저씨가 중매해줘 가지고 중국에서 며느리를 얻었어. 지금은 한국말도 잘해. 한국말 배우려고 열심히 학교 다니는 게 기특하더라고. 우리 둘째 아들은 어릴 때 좀 개망나니었는데 지금은 잘 살아. 원래 형제중에 하나가 극성이잖아. 걱정이 좀 됐지 키우면서. 사고 날까 봐. 그래도 그런 애들이 나이 먹으면 제일 잘해. 딸들도 나 닮아서 말도 야들야들 잘 하고 잘 챙겨주고. 뭐 다들 살기 바쁘지만 그래도 보면 흐뭇해.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서. 요즘 부모들 보면 자식들 삶에 너무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각자 가정 이루고 행복하게 살면 그게 제일 좋은 거지. 가끔 손주들 오면 용돈 좀 주고. 멀리서 흐뭇하게 보는 게 그게 내 행복이지. 엄마들은 원래 자식새끼들 입에 맛있는 거 들어가는 거 보는 게 낙인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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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는 자서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달팽이는 지나간 자리에 흔적을 남깁니다.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그 자취를 찾아 이야기로 만들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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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임 자서전

만든이

x 누리보듬

발행일

2019년 1월 17일

글편집

이홍근, 유영진, 최준열

사진

김정재, 황병철

영상

최규민

일러스트

류송이

디자인

위은혜

Copyr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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