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일한 10년 세월을 놓고 보니, 벌써 그 사이에 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바쁜 아빠지만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제가 하는 이 일에 감사하며, 타 비즈니스에 비해 현저히 낮은 비용으로 시작한 JAN-PRO는 빠른 시일 내에 일을 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또, 청소 특성상 하루를 마치고 저녁시간에 아무 때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보니,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고 낮 시간을 이용해 가족의 미래를 더 다양하게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JAN-PRO는 가장 큰 청소 회사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Mark, Shinal, Angus, Tom
그리고 Chrissie 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많이 성장했고 업무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경험을 공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기꺼이 수락했습니다
청소 경험이 없어도, 저녁시간 잠깐 이용해 운동 삼아 하는 세컨잡으로도 너무 좋기에
주위에 추천해 왔고,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일을 늘리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만약 프랜차이즈 청소회사에 관심 있으시다면
JAN-PRO Mark(0413 600 899)와의 상담을 적극 추천합니다.
- David 권 Kwon -
QUEENSLAND
KOREAN
ORCHESTRA 15th Annual Concert for mum
(480 Gregory Terrace, Bowen Hills QLD 4006 )
VIP석 $50
Under Grade 6, Pensioner : $15
일반석 $35
티켓은 전화로 예약하시거나 아래 계좌에 입금하시면 입금자 이름으로 콘서트 당일 티켓을 공연장 앞에서 찾아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티켓/후원계좌
어린 시절, 지하철은 내게 여행이었다
태어나서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십여 년을 넘게 수원
의 한 동네에서 자랐다. 부모
님께서 맞벌이를 하느라, 우
리를 돌봐주는 건 항상 할머
니셨고, 당신의 손으로 똥 기
저귀를 갈아주며, 우리 형제
는 그렇게 조부모의 손에 길
러졌다.
당시 우리 집 근처 20여분 거
리 내에 이모와 이모부 도 함
께 살았다. 이모집에는 당시
나보다 2살 그리고 3살 많은
누나와 형이 있었는데, 이모
그리고 이모부 또한 맞벌이
를 하셨던 탓에 졸지에 할머
니는 우리 형제를 포함해 4명
지하철 타는 공무원 - 1화 by 자향자 / 브런치
이나 되는 아이들을 혼자 돌
보곤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
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 당시에는 가능했다.
이와 함께, 수원의 반대편 동
네에 살고 있던 외삼촌의 자
녀인 형, 누나들도 이따금씩
놀러 오며, 6명이나 되는 그
룹은 형, 누나들의 주도 아래
정말 많은 추억을 쌓았다. 리
더십이 있었던 이모네 사촌
형은 젓가락을 콘센트에 집
어넣기도 하고, 막내였던 내
동생에게 생일 선물을 해준
다며,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
료시카처럼 박스에 박스를
넣어 골탕을 먹이는 등 참으
로 기발한 장난을 서슴지 않
게 펼치고 다녔다.
그렇게 형, 누나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아가던 초등학교 4
학년 즈음, 돌연 이모네 가족
은 군포의 산본 신도시로 이
사를 가게 된다. 동네 대장으
로 있던 사촌형이 이사 간다
는 소식에 나 또한 어린 마음
에 적잖이 서운한 마음이었
다. 철부지의 생각으로 이모
네 식구는 평생 우리 가족 근
처에서 함께 산다는 웃긴 생
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그들이 떠날 때 의 아쉬움과 아련함은 여전 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아쉬움
이 조금은 사그라들 무렵, 이 모네 사촌형과 누나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어떻게 여기
까지 왔냐는 할머니의 말에
형은 "지하철 탔다가 내려서
버스 타고 왔어요." 라고 답 했다. 버스는 할머니와 수십
차례 타본 적 있었지만, 지하
철은 어린 내게 신선했다. (당
시 수원에는 지하철 1호선만
이 존재했고, 지하철을 타려
면 무조건 수원역까지 가야
만 했다.)
지하철의 복잡한 노선을 가
한다.
지하철 발권을 위해 동전을 기계에 집어넣고, 행선지 버 튼을 누르면 마그네틱 선이
인쇄된 빳빳하고 조그만 승
차권 한 장이 나온다. 출입차
단기 앞에서 승차권을 넣으
면 차단기를 통과할 수 있고, 지하철에 탑승할 수 있다. 한 낮의 지하철 풍경은 조용하 고 차분했다. 속도를 내며 이 동하는 지하철에 몸이 쏠리
려내고 환승을 해야 하며, 하
차 후 수많은 버스 중 행선지
는 기분도 즐거웠고, 키가 작 아 닿지 않는 나 대신 여유롭 게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 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는 것 도 신기했다.
버스를 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길을 어른 없이 둘이서
왔다고 하니 대단해 보일 수
몇 차례 산본을 오고 간 형, 누 나들도 지하철 탈 때 긴장하
밖에 없었다. 그런 형과 누나
의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정
말 멋져 보였다. 항상 우러러
보던 그들이 한층 더 빛났던
순간이랄까? (참고로 나는 그
들을 여전히 우러러본다.)
어느 날, 수원에 살고 있는 외
삼촌네 형, 누나가 나와 동생
에게 산본 신도시에 살고 있
는 이모댁에 방문하자는 이
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바로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말
이다. 어린 마음에 굉장히 설
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형,
누나들과 같이 지하철이란 걸
탈 수 있다는 설렘도 있었고, 오랜만에 친척들을 볼 수 있
다는 마음 또한 함께였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난생
처음 내 또래 형 누나들과 함
께 수원 밖으로 나갈 일이 생
겼다. 국외여행을 가는 일도
아니고 그저 군포에 있는 친
척집에 가는 일에 불과했다
지만, 내 기억 속의 그날은 첫 해외여행만큼이나 설레고 신 나는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
는 순간이 딱 한번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환승하는 순간이 었다. 지하철 1호선에서 4호 선을 갈아타려면 금정역에서 내려 산본행 열차를 타야 했
다. 차분하게 내리는 것도 중
요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4 호선 지하철을 타야 하는 미
션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잘못하면 서울행 열차에 탑
승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분명 안내판이 떡하니 걸려
있고 찾아서 읽고 이동해 탑
승하기만 하면 되는데, 어린
내 눈에는 까만 건 글씨요 하
얀 건 도화지일 뿐이었다. 그
일을 무리 없이 해내는 형, 누
나들이 어른스러워 보였던
건 당연했다. 그날을 계기로
이후 몇 차례 형, 누나들과 산
본 친척네 집을 드나들었다.
버스 번호와 발권하는 법을 익히고 환승하는 위치까지
알아내니 나중에는 남동생과
단 둘이서도 속된 말로 눈 감
고도 산본역을 갈 수 있을 정 도가 되었다. 그간 우리 형제
넓히게 된다. 내게는 지하철이 그러했다. 친척들을 본다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 다는 자신감을 얻는 공간이 었고, 차 창밖으로 보이는 새 로운 풍경을 보는 것에 대한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으니 여행과 다를 바가 뭐가 있단 말인가. 몇 달 전, 딸아이와 함께 지하 철을 탔다. 2살 된 어린아이 가 난생처음 지하철을 탔다 고 상상해 보라. "기차다. 우 와!" 하며 연신 탄성을 내뱉 고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닫 히는 지하철을 보고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행선지에 다 다랐을 때는 안 내리겠다며
지하철이 여행이라고만 생각
하던 철부지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드디어 중학교에 입학
하게 됐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은 경기도 수원시였는데, 당
시 중학교 배정은 정확히 기
억은 안 나지만 무작위 방식
으로 배정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집 앞에 있는
중학교를 코앞에 두고 저 멀
리에나 있는 남자 중학교로
배정받게 된 내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소위 일진
들이 모여있는 학교라 불렸
으며, 대부분 내 또래 아이들
이 가기 싫어했던 그 중학교
지하철 타는 공무원 - 2화
by 자향자 / 브런치
에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배정받게 됐다. (심지어 울기
도 하는 친구도 있었으니, 어 떤 학교였는지 가늠이 가지 않는가?)
초등학생 티를 갓 벗은 내가 중학교를 다닐 수 있는 방법
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 그
리고 두 번째는 '스쿨버스'라
불리는 노란색 봉고차를 타
고 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들
과 함께 등하교하는 것이었 다.
버스로 한 시간이나 넘는 거
리에 그것도 환승까지 해야
갈 수 있는 중학교에 배정받
은 덕에 나는 스쿨버스를 타
고 통학을 하게 된다.
원거리 학교에 배정을 받으
면 이른 아침부터 부산해진
다. 여러 아이들이 탑승하는
스쿨버스의 특성상, 오전 7
시 반 전후로 차량에 탑승해
야 했기에 아마 그때부터 나
는 원거리를 다니는 일에 강
제로 적응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스쿨버스의 또 다른 특징은 버스를 이용하는 학생이라면
하교 시간이 동일하다는 특
징이 있겠다. 모두 멀리 살고
있기 때문에 스쿨버스를 놓
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개인
적으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거나, 부모의 도움을 받
아 집으로 귀가하거나 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매일 하교 시간이 동일하면
좋겠다만, 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를 하거나 친구들과 놀
러 간다거나 혹은 다른 이벤
트가 발생하는 날에는 정해
진 시간에 출발하는 스쿨버
스를 놓치기 십상이었다. 그
럼 다른 친구들은 이런 상황
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 어떻
게 귀가했을까? 백에 아홉
은 본인의 부모를 불러 귀가
했다.
그럼 나는 어땠을까? 맞벌이 를 하고 있는 부모님을 과연 부를 수나 있었으리라 생각 하나? 결코 아니다. 대부분 아
버지께서 알려주신 버스 번
호와 환승지에 대한 이야기
를 듣고 중학교 1학년 시절부
"뭐? 왜."
"학교가 늦게 끝나서요."
"버스 타고 오면 되잖아."
"아, 깜빡하고 돈을 집에 두고 왔어요."
"... 알겠어."
그렇게 머쓱한 대화를 하고, 죄없는 신발주머니나 툭툭 차며 한시간 즈음 지났을 무 렵, 아버지의 차가 학교 정문 에 닿았다.
"아빠!"
"비상금 가지고 다니라고 했 잖아."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안 그 럴게요."
아버지께 한 소리를 듣고 차 에 몸을 실었다. 그 당시 아버
했다.
아 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이 그 어 린 시절부터 생겼을까?
그날의 나는 아버지에게
도대체
동을 했을까?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과 같이 전화만 하면 부리나케 달려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도 아 니고 그저 오랜만에 아버지가 정말 보고싶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에게 전화 를 하는 날은 없었다. 아버지 의 바쁜 일상에 누가 되고 싶 지도 않았고, 한소리 들으면 몇 날 며칠을 속앓이하는 내 성적인 나의 삶에 비수가 꽂 히는
터 버스에 몸을 싣고 다녔다.
여기서 우스갯소리 하나 하
자면, 가끔 버스를 탈 때, 버
스표가 아까워 표를 반으로
죽 찢어 탑승할 때 반표만 내
고 탑승했던 기억도 있다. (당
시 버스표 가격이 27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
지는 회사에 정말 진심이셨 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셨기
에 주중에 아버지를 보기란 정말 쉽지 않았고, 자주 대화
게 세이브(?)된 버스표 값으
로 군것질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뭐 어찌 됐던, 하교를 위해 부
모님을 부르기는 쉽지 않았
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
규 수업에 다른 일로 학교에
늦게까지 남게 되어 홀로 하
교를 하는 날, 문득 아버지에 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저 좀 데리러 와주시면 안 돼요?"
학창 시절, 운이 지지리도 없
었던 건지 중학교에 이어 고
등학교 역시 거주지에서 대
중교통으로 최소 한 시간이
나 걸리는 북수원 소재의 한
고등학교로 배정받게 된다.
0교시라는 게 존재하던 학창
시절을 보냈던 탓에 중학교
시절보다 더 이른 시간 기상
을 해야 했고, 말도 안 되는 거
리를 매일 버스 타고 다닐 수
는 없는 노릇이라 그렇게 나
는 다시금 노란색 스쿨버스
를 강제로 이용하게 되었다.
한 달이 채 안된 시점에 나는
고등학교를 재배정받게 되는
지하철 타는 공무원 - 3화
by 자향자 / 브런치
데, 그 연유라 함은 당시 말도
안 되는 교육청 측의 고등학
교 무작위 배정에 대해 학부
모들이 집단 항의를 전개하
며, 나의 말도 안 되던 원거리
통학은 단 한 달 만에 막을 내
리게 된 것이었다. 사실 이 운
이 끝까지 닿지는 못했는데, 이유인 즉, 집 앞에 있는 고등
학교로 대신 30분 거리에 위
치한 고등학교로 재배정받게
된 탓이었다.
새로 배정받은 곳은 남자 고
등학교였고, 교복도 촌스럽 기 그지없는 인민복 형태의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던 지
라 지금 생각해도 학창 시절
만큼은 참 지지리도 복도 없
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참고
로 나는 남자 중학교를 졸업
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서 대중교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다시 시작됐다.
아침 7시 반에 시작하는 0교
시 수업을 듣기 위해 이른 새
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스포츠머리여서 세안을 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게 그나마 위안이었지만, 매
일 아침 이어지는 0교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나면 몸
이 참으로 고단했다. 그 짓을 야자가 끝나면,
3년이나 해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누군가는 학창 시
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
는데 나는 곧 죽어도 그 당시
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특출 나게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말 수도 적은 편이
어서 활동적인 아이는 아니 었다. 그저 8교시까지 이어
지는 선생님의 말씀에 열심
히 귀 기울이는 척하는 고등
학생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빼먹은 적이 딱 한 번이었던
사실이 이를 방증하지 않을 까 싶다.
그나마 단기간 뭔가 집중하
는 능력은 꽤 괜찮았던 것으 로 기억한다. 평소에 공부를 안 한하다가 벼락치기 공부
로 내신 중위권 정도는 꾸준
히 유지했던 나였으니까. (수
능은 당연히 망했지만)
당시 맞벌이하는 부모님은
내 입시를 위해 크게 신경을
써주실 수는 없는 상황이었
다. 그저 열심히 하라고만 말
씀하셨지 무엇을 어떻게 준
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
침을 받을 순 없었다. 그저 쓸
데없는 수학, 영어 과외에 매
달 수십만 원씩 쏟으신 부모
님께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학창 시
절이 참 답답했다. 특히 8교
시 이후 귀가하지 못하고, 야
간자율학습을 해야 하는 상 황이 낯설었다. 지금 생각하
면 정말 무식한 교육법인데,
왜 공부를 진심으로 해야 하
는지 모르는 아이들을 닭장 과 같은 자율학습장에 가두 어 놓고 감시하는 환경에 적 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공부를 그렇게까지 진심
으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몰 랐다. 딱히 내 관심사가 있는 것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학
창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의 누구나 그렇듯 드러나지 않 는 내면의 반항심이 나 또한
있었던 게다. 저녁을 먹고 난
오후 7시 즈음부터 밤 10시
까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 습 시간은 참 시간이 안 갔다.
열람실 사이를 이따금 왔다 갔다 하는 선생님 덕분에 눈
치를 채는 능력이 탁월해졌 다는 게 내가 얻어낸 소기 의 성과랄까? 최신 아이리버
MP3를 갖고 있는 친구 옆에 앉아 이어폰 하나씩을 귀에 꽂고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10시가 되기만을 매일 손꼽 아 기다렸다.
땡 소리가 되자마자 준비해 둔 가방을 챙겨 누구보다 빠
르게 학교밖을 나섰다. 비탈 길을 성큼성큼 걸으며 충전 해 놓은 버스카드를 손에 쥐 고 같은 방향인 친구와 때로 는 혼자 귀갓길에 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밤 10시 이후 에 우르르 귀가하는 학생들 덕에 언제나 만원이 되어버 리는 버스 덕분에 나는 그렇 게나 열심히 뛰었던 것 같다.
공부를 그 정도의 집중력으 로 했으면, 아마 괜찮은 수 능 성적을 거두었을지도 모 르겠다.
대학 진학을 위한 내 전략은 아주 단순했다. 어차피 수능 은 장시간 공부를 필요로 하
니 접어두고, 수시로 가고 싶
은 대학교를 진학하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한 것. 그것도 특별한 대외활동 하나 없이 말이다. 과연 어떻게 됐을까?
여러분이 생각한 바 그대로
있는 한 대학교에 입학하며 나의 고 등학교 시절은 아주 평이하 게 마무리된다. (졸업식 날 먹 었던 생갈비의 맛은 역대 최 고였다.)
3년 내내 반복했다. 하루 24 시간 중 17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생활. 집보다 훨씬 긴 시간을 보냈던 학창 시절의 고등학교. 큰 애정도 케케묵 은 오랜 기억을 끄집어낼 추 억도 그리 많지는 않다. 꿈과 목표 하나 없던 지난 나의 학 창 시절을 뒤로하고 훗날 고 등학교에 입학할 딸아이에게 동일한 추억을 선사하고
진료
시간
월-금 8:00am-6:00pm
토 8:00am-1:00pm
EC Shopping Village, Building D, Shop 2/334 Foxwell Road, Coomera QLD 4209
07 5580 4811
요사이 새로 만나게 되는 사
람마다 마치 안부처럼 의례
묻게 되는 공통된 질문이 하
나가 있다. "MBTI가 뭐예요?"
그러한 것들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이어서, 한 동
안 내 MBTI 결과를 사진으로
찍어 두고 누군가 내게 물어
오면 스마트폰 앨범을 뒤져
말해주곤 했다.
ISFJ. 내향적 성격으로 안정
성을 추구하고, 가정적이며, 배려심이 넘치지만 재미가
없는 사람이기도 한 이가 바
로 나다. 어렸을 적부터 그래
왔다. 친구 무리에서 가장 작
은 목소리를 내며, 그들이 하
지하철 타는 공무원 - 4화
by 자향자 / 브런치
는 대로 웬만하면 따라가는 그런 친구 있지 않은가? 그게
바로 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진들에 게 괴롭힘 당하지 않았던 게
이상할 정도고 지금 동창회
에 나간다면 '나를 알아볼 친
구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
을 정도로 정말 조용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부
터 시작해 중학교를 거쳐 고
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내 학
창 시절은 늘 한결같았다.
'사람은 쉽게 고쳐 쓰는 게 아
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생일
축하 파티를 해달라고 부모
님께 그렇게 졸랐다가 초대
한 수십 명의 반 친구들 가운
데 몇 명도 오지 않은 초라한
생일파티를 한 차례 한 이후
부터 였을까? 그렇게 한번 위
축된 내 마음은 성인이 된 지
금까지 그대로다.
어쨌건, 그날의 추억은 버스
에서 시작됐다. 고등학교 1
학년 시절, 이따금 수업이 정
규시간보다 일찍 끝나는 날
이 있었다. 매일 야간자율학
습을 하다 가끔 주어지는 이
런 자유로운 시간에 친구들
과 게임방이나 노래방을 가
서 놀기도 했지만 집으로 곧
장 귀가하는 일도 있었다. 사 실 사람들과 대화하면 에너
지를 빼앗기는 느낌이 들어 서 집에서 재충전하는 시간 이 더 좋았다.
그렇게 버스 정류장에 도착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으 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게 됐 다. 한낮의 시간, 집으로 가는
버스는 그리 붐비는 편도 아
니어서, 자리도 보통 여유 있 는 편이었고 웬만하면 편하 게 집까지 앉아서 갈 수 있었 다. 그런 그날, 유독 사람이 많 았다.
버스 후문 앞 딱 한자리를 제
외하고, 자리는 만석이었으
며, 심지어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성
큼 빈자리를 찾아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나는 사람들이
왜 그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
는지 단번에 알게 됐다.
대낮에 술이 거나하게 취한
사람 하나가 소주병 하나를
들고 그 자리에 앉아있었던
것. 누구도 앉기 싫었을 그 자
리에 소심한 내가 무슨 오기
가 있었는지 취객 옆자리에
앉게 됐다. 술 냄새가 풀풀 났
지만, 다행히 예상외로 그 취
객이 주변에 피해를 주거나
딴지를 거는 일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취객이 나
보다 먼저 그의 목적지에 도
달해 하차하며, 보통의 하루
가 그렇게 종료되는 듯했다.
그러다 자리를 창가 안쪽으
로 옮기는 과정에서 내 이목
을 이끄는 한 가지 물체를 접
하게 됐다. 무엇이었을까?
맞다. 바로 소주병이었다. 심
지어 소주가 반 병이나 남아
있는 소주병 하나. 술 취한 아
저씨는 소주병을 버스에 그
대로 두고 내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발
로 소주병을 한 곳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버스가 달리고
정류장에 멈추고를 반복하니
소주가 반쯤 차 있는 소주병
이 출렁대며 위태로웠다. '소
주병이 쓰러지면 버스 바닥
이 다 젖을 텐데, 괜찮을까?'
라는 생각에 한 발로 고정하
고 있던 소주병을 손으로 집 어 들었다.
내 계획은 이러했다. 집 앞 버
스 정류장에 내려 담겨있던
소주는 바닥에 콸콸 쏟아버
리고 남은 병은 쓰레기통에
버리려는 아주 순진한 생각. 여하튼 그러한 생각을 마칠 때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다. 좀 이상해 보이지 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 는 교복을 입은 채로 초록색
소주병 하나를 집어 들고 집 앞 정류장에 하차했다.
학창 시절, 음주를 해본 경험 이 있는가? 그럼 언제가 처음 이었는가?
나는 이 날 처음으로 소주라 는 것을 맛봤다. 원래는 계획 대로 바닥에 버리려고 했다.
그 순간, '소주는 과연 무슨 맛 일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무슨 맛이길래, 남자들이 캬 아. 거리는 거야. 진짜 궁금한 데?'라는 내면의 속삭임이 들 렸다.
아파트 후문으로 들어와 앞
에 있는 정자에 앉아 잠시 고 민했다. '마셔볼까?' 사실 내성
적인 사람도 호기심만큼은 왕
성하다. 아니 오히려 더 왕성 할 것이다.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손에 꼽은 게 내성적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니까 그럴 법도 했다.
크 게 입으로 물었다가 길가에 바로 뿜어냈다. 내
적이 없었다. 지금에야 소주만 마셔대는 나라지만, 당시에 고1 짜리 아 이가 그 맛을 내가 전혀 알리 가 만무했다. 그 나이에 경험 한 나름의 쓰디쓴 인생을 다 른 방법으로 풀어냈을 것이 라 추측할 뿐이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음주는 시내버스에 서 어느 취객 아저씨가 버리 고 간 소주병에 담긴 소주 한 모금이었다.
그 당시의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갈 것이
라는 핑계로 수능 공부를 일
절 하지 않았던 나는, 고등학
교 3학년 2학기, 수시 지원한
몇몇 대학교에서 여봐란듯이
일괄 탈락을 쓴 잔을 맛보게
된다. 사실 지원을 하면서도
내가 그 대학에 갈 확률이 그
리 높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알
고 있었다.
수시 준비를 위해 별도의 대
외활동이나 수상 경력 하나
없이 그저 주야장천 그저 그
런 내신 성적에만 집중했으
니, 지원서에 뭐 하나 제대로
써넣을 거리조차 없었던 게
당연했다. 이건 예견된 일이
었다.
애초에 수능 공부를 하지 않
았기에 '망했다'라는 개념을
쓰기도 민망하지만, 어쨌든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수능 시험은 쫄딱 망해버렸
다. 재수할 생각은 눈곱만치
도 없었던 터라, 수도권의 한
사립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넣
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
과는 합격이었다.
그럼 나는 무슨 과를 지원했
을까? 다른 과목에는 큰 관
심은 없었지만, 외국어에 대
한 관심이 그나마 있었다. 영
어영문학과에 넣으면 혹시라
도 대학교에 떨어질까 봐 아
침인사로 "구텐 모르겐"을 외
치는 독어독문학과로 진학하
며 본격적인 대학 생활을 시
작한다.
그런데 나는 왜 하필 그 학교
를 선택했을까?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첫째로 집에서 가
까워 다니기가 용이했고, 두
번째 이유를 대보자면, 해당
학교 진학을 탐탁지 않아 하
던 아버지가 내걸었던 조건
때문이었다. 통학거리를 짧게
잡고, 남은 시간을 활용해 편
입 준비를 하라고 하셨던 것.
그 두 가지 이유 뿐이었다.
무려 3년 동안 야간자율학습
이라는 닭장 안에만 갇혀있
다가 내 마음대로 시간표를
짜고, 수업을 선택해들을 수
있는 대학 생활이 정말 반가
웠고 신기했다. 심지어 수업
을 빼먹을 수도 있었으니 이
런 게 진정한 자유 아닌가 싶 었다.
술도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아
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도 벌 수 있으니 당시 그보다 더 좋
은 시절은 내게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24시간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었던 대 학생활은 내 인생 최고의 시 간이었다.
집에서 대학교까지는 마을버 스를 타는 것이면 충분했다.
대학 동기들은 서울의 어느
곳에서 버스를 탔다가 지하철 을 갈아타고 1시간 넘게 걸리
는 이동거리를 나는 마을버스 를 타고 20분 남짓만 오면 됐 으니 축복(?)이었다.
'카운티'라 불리는 마을버스
를 혹시 아는가? 25인승 준중
형 버스로 기존의 버스보다
작고 기동력이 좋아 골목 이
곳저곳을 누빌 수 있는 카운
티 마을버스. 나는 항상 이 버
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심지
어 내가 마을버스를 탈 때면
자리가 텅텅 비어있어 원하는
자리에 골라 앉을 수 있었다.
지지리도 복도 없지. 중고등
학교 6년을 그렇게 멀리 떨어
진 곳에 다니다, 대학교에 와
서야 근거리 통학을 하게 된
사실이 진짜 웃프지 않은가?
그것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간 대학교에서 말이지.
버스 탈 때는 항상 뒷자리를
선호했다. 어릴 적, 학교에서
꽤나 논다는 친구들은 야외활
동 갈 때, 항상 버스 맨 뒷자리
에 앉곤 했다. 그런 게 부러웠
던 거였을까? 아니면 안정감
있어 보이는 구석 자리를 선
호했던 걸까?
여하튼, 버스 타고 학교 가는
길이 사실 좀 재밌기도 했다.
이유인 즉, 마치 놀이기구 디
스코 팡팡을 탄 것처럼 카운티
마을버스만이 갖고 있는 특유
의 통통 거림을 느낄 수 있었 기 때문이었다. 쇼바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를 정도로,
과속 방지턱만 만나면 엉덩이
가 들썩들썩 거리는 그 느낌.
아스콘 상태가 좋지 않은 노
면을 달리는 구간은 정말 쉴
새 없이 튀어대는 몸뚱이 덕
분에 안전 손잡이를 꼭 붙잡
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덜덜
거림에 목소리마저 함께 떨리
는 정도라 한다면 어느 정도
상상이 되지 않는가?
학구열이 아니라 목적 없이 그저 친구들이 너나 할 것 없
이 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학교까지 입성하게 됐다. 편입 준비를 하겠다는 조건
으로 대학등록금을 내준 아버
지와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매일 술 마시기 바쁘고, 돈 벌
어보겠다며 치킨집에서 아르
바이트를 하며 내 인생 대학
교 1학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우리 딸이 훗날 대학교에 진 학을 하게 될지 아니면 큰 꿈
을 꾸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 다. 대학교에 진학을 한다면
본인이 꿈꾸는 학문에 대한 조금 더 깊은 통찰을 해냈으
면 하는 바람이고, 자영업이 나 내가 상상하지 못한 다른
도전에 나서보겠다 말하면 그 의 결정에 진심 가득 담은 응 원을
젊은 날의 단상
시간을 거슬러 2005년으로 가보려 한다. 당시 수원 사람
들에게 만남의 장소는 과연
어느 곳이었을까? 2025년 오
늘, 서울 사람들에게 강남역 11번 출구가 있다면, 2005년 당시, 수원에는 수원역이 있
었다. AK백화점 옆 CGV로 올
라가는 로비에서 때로는 역
로터리 건너편 먹자골목이
모여있는 지하철 출구 앞에
서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이
모였었다.
당시 수원역은 모든 만남의
중간 또는 최종 집결지 역할 을 했다.(지금도 그럴 것이라 본다.) 7770번 버스에 올라 사
당역 근처로 이동해 서울에서
놀기도 하고,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저 멀리 명동, 동대문 밀 리오레까지 보세 옷을 구입하 러 가는 날도 있었다. (그들의 호객행위가 아직도 눈에 아른 거린다.)
그러고 보니 대학교 입학 후, 선후배 간 환영회도 수원역에 서 진행됐다. 학교를 일 년 일 찍 들어갔던 탓에 만 19세가 되지 않아, 술집을 편하게 들 락거릴 수 없던 대학교 1학년 시절,
꾸준히 하던 시절도 있었다.
헌혈을 30번 하면 기념 증서
를 준다는 말에 그렇게나 열
심히 헌혈을 하던 혈기왕성
한 당시의 내가 수원역에 있
었다.
그럼 수원역에서 나는 주야장
천 놀기만 했을까? 그건 아니
었다. 유흥문화의 메카 수원
역에서 편입 준비를 위해 공
부하던 시절도 있었다. 대학
교 입학 후 1년을 쉴 새 없이
놀아대고 술에 취해 늦은 밤
에나 귀가하던 내 모습을 한
심하게 지켜본 아버지의 불
호령 덕분이었다. 입학 후 편
입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 큰
아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
고 쳐 놀고 돈 벌 궁리만 했
으니 탐탁지 않았을 수밖에
없었다.
불호령이 내린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고깃집이라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3일
째 되는 날이었다. 주방 한구
석에 앉아 새까맣게 타버린
불판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지잉- 거리는 핸드폰 벨소리
를 애써 무시했지만, 잇달아
오는 전화에 고무장갑을 벗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버지로부터의 전화. 지금이 나 그때나 호랑이 같은 아버
지지만, 그 시절의 젊은 아빠
는 훨씬 무서웠다. 확인하자
마자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빠 왜요?"
"너 어디야. 당장 집으로 와"
10초 만에 끝난 아버지와의 통화. 사장님께 사정을 말씀
드리고 두려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복귀했다. 집안에는
호랑이 아니 아버지가 있었
다. 그렇게 혼나본 적은 태어
나서 처음이었다. 다 큰 놈이
정신 못 차리고 놀 궁리만 한
다며, 당장 편입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려왔다. 그렇게 나
의 대학 편입 준비는 시작 됐 다. 어디서? 수원역에서.
지하철 1호선과 7-1번 시내버
스를 타고 다니며 수두룩하
게 수원역을 드나들었다. 사
실 이때도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깨닫진 못했
다. 편입 공부에 진심이었다
면 서울 어딘가에 있는 편입
의 메카로 진출해야 하지 않
았을까? 아버지의 불호령이
있었으니, 그저 눈칫밥 먹듯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6개월 남짓 어설픈 편입 공부
기간을 거쳐, 두세 곳의 대학 교에서 편입 시험을 치렀다.
수시전형에서 일괄 탈락했던 대학입시 악몽이 떠올라, 가 장 현실적으로 편입 가능한 몇 개의 대학에 지원하게 된 다. 결과는 합격.
그럼 이번에는 무슨 학문을 공부하게 됐을까? 다름 아닌 부동산학이라는 학문에 도전 하게 된다. 이번에도 아버지 의 조언이 있었고, 나는 생각
이 없었다.
편입 이후, 나는 더욱 아웃사 이더로 살아갔다. 중간에 동
갑내기 친구 하나를 만나기
도 했지만 혼자 듣는 수업이
더 많았다. 단지 졸업장을 따
내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으
니 대학교에 자체에 큰 관심
은 없었다. 그나마 군대 다녀 온 이후 조금 정신을 차린 덕 에,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취업에 대한 걱정을 슬슬 하 기 시작한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 이 많아졌고, 토익에 토익스 피킹에 한국사검정능력시험 까지 당시 필요했던 스펙이란
걸 갖추기 위해 부단히 애썼 다. 결과는 애매한 800점대 토 익 점수 그리고 개나 소나 따 는 자자격증 몇 개로 50여 개 넘는 사기업에 지원서를 제출 하기 시작했다.
많은 회사 중 나를 원하는 곳은 정말 단 한
드디어, 노량진을 갑니다
암초에 부딪혀 서서히 침몰해 가는 타이타닉호처럼 나의 삶
도 조금씩 기울어가기 시작했
다. 사실 처음에는 취업을 너
무 쉽게 생각했다. 미디어에
"예?"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이미 내
게 꽤나 익숙한 직업이었다.
서 그렇게 취업이 어렵다고
들 하지만, 막상 내가 준비를
할 때는 나를 찾는 회사가 있
을 것이라는 패기가 넘쳤다고
나 할까. 실력은 없지만 운이
좋은 사나이로 남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망상에 사로잡
어머니가 공무원 생활을 30 년 넘게 해 오면서, 어릴 적부
터 엄마 회사에 종종 들락날
락하기도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종종 민원인을 상대하 기 힘들다는 토로를 수십 차 례 하시던 어머니를 보며 자 라왔던 내게, 공무원이라는
혀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공기업을 목표
로 두고 있었다. 대기업은 서
울 소재의 대학을 나온 친구
들이나 가는 곳으로 넘사벽인
곳이라 생각했고, 그들이 준
비한 대외활동 등의 커리어에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없음을
애초에 인정해 버린 나는 그
나마 공정할 것 같고 누가 봐
도 좀 멋져 보일 것 같던 공기
업 입사 준비를 위해 염치 불
고하고 다시 부모님께 손을
벌리게 된다.
"아버지, 저 공기업 준비해보
려고 합니다. 혹시 학원 좀 보
내줄 수 있으세요?"
"공무원 준비해."
직업은 당연히 나의 눈에 들 어올 리가 없었다.
그보다 내가 공무원이란 직
업을 기피한 목적은 사실 따
로 있었다. 바로 어마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할 자신
이 없었던 것. 공무원 열풍까
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본격적
으로 준비를 시작한 2013년
의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꽤나
인기 있었다. 100:1의 경쟁률, 시작은 언제든 가능하나 언
제 끝날지 모르는 공무원 수 험생활을 도저히 해낼 자신
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30여 년 가까이 나를 가까이
지켜보면서 내가 어떤 성격이 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무 나 잘 알고 있던 아버지였으 니까. 겉만 번지르르하고 남 과 비교하는 삶을 살던 당시 의 나와 다르게 아버지는 현 실 감각이 있었고 실리를 챙 기는 사람이었다. 28살의 나이, 그렇게 아버지 의 권유에 공무원 수험 세계에 입성하게 된다. 당시 내가 부 모님 앞에서 무엇을 하겠노라 고, 어떤 꿈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강단도 추진력도 없었으 니 순리를 따르는 게 당연하 기도
기업을 취업을 하며,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고, 무려 나
의 친동생은 졸업과 동시에
공기업으로 취업하는 기염
을 토하기도 한다. 당시 회고
해 보자면, 내 삶이 정말 초라
해 보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
도 없었다.
마지막 배수진을 치며 밀도
있게 준비한 3번째 공무원 시
험의 결과는 어땠을까? 아쉬
움 그 자체였다. 자신감 있게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지 않았
다. 가 채점을 해보니 다음 해
를 기약하거나, 공무원을 포
기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탈
락'이라는 결과가 받아들여지
지 않아 일부러 조회를 해보
지도 않았다.
첫해는 그렇다 쳐도 둘째, 셋
째 해는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부
모님께 정말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부탁
드렸다. 새 수험서를 모조리
사고 다음 해를 준비하며 도
서관에 들른 어느 날이었다.
당시 함께 도서관을 다니던
형 하나가 아쉬워도 결과는
확인해봐야 한다는 말을 듣
고, 시험 결과를 확인한다. 결
과는 '1차 합격' 온 우주의 기
운이 나에게 집중한 날이었
다. 만약, 그날 내가 결과를 확
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전혀 다른 삶을 살
고 있지 않을까 싶다.
당일 그렇게 자기소개서를 등
록하고 서울의 어느 학교에서
인적성 검사를 마치는 절차를
거쳐 대망의 면접 일정만이 남게 됐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나는 노량진 면접
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노 량진이었다. 일부러 안 갔던
이유는 혹시나 열심히 하고
있는 이들을 보며 기가 눌릴
까 봐, 괜스레 움츠러들까 봐
라는 어이없는 이유 때문이 었다. 1호선 지하철 역에 몸 을 싣고 노량진으로 향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무
려 3년 만에 밟게 된 노량진.
마지막 면접에서의 합격이라
는 부푼 꿈을 안고 노량진 역 에 하차했다.
상상 속에만 있던 노량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노량진
역에 하차해 육교 하나를 건
너면 즐비한 공무원 학원들
이 여기로 오라며 손짓을 하
는 것만 같다. 활기차 보이나
동시에 알 수 없는 적막한 느
낌이 공존하는 노량진역. 이
곳보다 사람들의 강렬한 염
원이 담긴 동네가 어디 있을 까 싶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지 하철 1호선을 타고 노량진역 을 다니며, 간절하게 기도했 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내게 주어진 운이 끝까지 이어지 길, 그리고 노량진역에서 웃
으며 떠날 수 있길 바라는 기 도 말이다.
그렇게 면접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면접은 내 인생의 사 활을 건 한판 승부였다. 시험 점수도 커트라인에 근접해 간
당간당한 상태였기에 이를 만 회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패기 뿐이었다. 콩닥거리는 마음을 들킬까
2012년에 대학을 졸업을 한
나는 그로부터 무려 다섯 해
가 지난 2016년이 되어서야 정식 직장인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아무
리 힘들었던 순간도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어느 정도 미
화가 된다고들 하지 않는가?
나 또한 그러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있
는 것이냐고 신에게 물었던
날도 있었고, 조급한 마음에
밤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
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는 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사라지
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 지
니고 있었다. 하루 10시간 넘
게 처절하게 공부했던 기억
이 내 젊은 날의 열정을 불태
웠던 시간으로 미화 됐으니
말이다.
드디어 첫 출근날이 다가왔 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지난
밤을 뒤로하고, 부모님께 인
사를 드리며 설레는 마음으
로 내 인생 첫 출근길에 올랐 다. 어느 드라마에서 봤을 법 한 장면 하나가 있다. 말끔하 게 정장을 차려 입은 직장인
른 아침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길에 오르는 상상. 그런
지하철을 타는 게 내 꿈의 조 각 중 하나였다. 이제 그 대열 에 들어서게 됐다.
서울에 있는 직장까지는 지
하철을 타고도 한 시간 이상 을 가야 하는 곳. 통풍도 안 되 는 구두를 신고 한참을 서서 이동하는 시간도. 환승을 위 해 이동하는 발걸음도 무척
이나 가벼웠다. 설렘 반 두려 움 반이라는 마음을 안고 드 디어 근무지가 있는 한 역에 하차했다.
나의 첫 근무지는 번화한 상 점 한가운데 위치한 동사무소 였다. 원룸이 즐비하고, 상점 이 빽빽이 들어선 그 동네. 부 서장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
고 직원들과 간단한 인사 후 바로 업무에 투입됐다.
뭐지? 싶었다. 여러분이 일 반적을 알고 있는 등본과 초
본,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는 일이 내 공무원 생활의 첫 업 무였다. 회사에서도 누구나 가기 싫 어하는 유배지와 같은 부서
가 있지 않은가? 내가 배치받 은 부서가 그러한 곳이었다.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 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회 사에 소속되어 일을 할 수 있 다는 기회를 갖게 된 것 그 자 체가 중요했다. 쉴 새 없는 민 원에 바람 잘 날 없는 하루였 지만, 이 모든 게 그저 감사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민원창구에서 6개월을 보낸 나는 하반기 정기인사에 맞 추어 동사무소에서 '뒷다이' 라고
대표회계사
Email: sinjung.kwon@mazars.com.au
Phone (Korean): +61 7 3218 3924
Phone (English): +61 7 3218 3900
Level 11, 307 Queen Street
Brisbane Qld 4000
forvismazars.com/au
혀 아니고.)
청소는 당연히 환경미화원분
들이 하는 업무인 줄로만 알
았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동
사무소의 직원도 함께 있다
는 사실을 기억해 주길 바란
다. 지자체마다 조금씩 형태
가 다르겠지만 내가 속한 자
치구에서는 대로변의 쓰레기
는 환경미화원이 도맡고, 골
목길 이면도로와 같은 곳은
동사무소 청소담당 직원이
공공근로자들과 함께 환경정
비를 하는 형태로 돌아갔다.
유흥가 주변에 위치한 곳이
다 보니 내가 봐도 정말 더러
웠다. 특히나 주말을 끼고 맞
이하는 월요일 아침 풍경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매일
관용차를 타고 다니며 동네
를 순찰하고, 더러운 곳이 있
으면 환경정비를 해주고 관
용차 뒤에 산더미처럼 쌓인
온갖 쓰레기를 적환장에 갖
다 버리고 그런 날의 연속이
었다. 도대체 내가 공무원인
지 환경미화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달까?
하루 내 청소를 하고 사무실
로 복귀하면, 시큼한 쓰레기 냄새가 내 온몸을 뒤덮었다.
나중에는 청소작업용 워커도
하나 가져다 놓고, 책상 위에 페브리즈 하나를 고이 모셔
두며 뿌려댔을 정도니까. 그
럼 문서 작업은 주로 언제 했
을까? 그냥 틈나는 대로.
언제 현장 민원 나갈지 모르
는 상황이니, 웬만하면 업무
는 미루지 않으려 했다. 처리
를 안 하면, 업무의 무게는 항
상 배가 돼서 돌아왔으니까.
지금은 그렇게 못하겠는데
그 당시엔 초과근무를 참 많
이 했다. 과태료 부과자가 유
독 많은 동네였기도 하고, 구
청에서 내라는 공문도 정말
많았다. (지금도 많다.)
녹초가 된 채로 지하철을 타
고 다시 한 시간 넘는 시간을
이동하며 집에 돌아오곤 했
다. 업무 처리에 미숙하고 민
원 응대에 서투르기만 한 나
였지만, 그 시절 호된 경험과
현장에서 직접 냄새나는 쓰
레기를 치우던 추억이 생각
날 때가 있다. 그랬다. 그때는
지금보다 혈기왕성했었지.
그 시절 쓰레기 냄새 풀풀 풍
기던 공무원 하나가 지하철
어느 칸에 있었다.
광역버스
9급 공무원
지하철 타는 공무원 - 9화
제 작 서 비 스
잦은 야근을 했다. 사회초년
생인 내게 공문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방법은 미숙하기 그
지없었다. 윗 선배들이 한두
번 알려준 것으로 모든 것을
알리가 만무했다. 꼼꼼한 성
격 덕분에 업무 처리하는 속
도는 더디기만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일머리가 없어 하나
를 배우면 하나만 아는 그런
유형의 사람인지라 다른 직원
들보다 퇴근시간이 언제나 늦
은 편이었다.
쫄보인 성격도 한몫 했었다.
보고를 하면 팀장이나 과장
이 뭐라고 하진 않을까. 왜 이
렇게 업무를 처리했냐고 되묻
진 않을까? 그럼 어떻게 답변
해야 할까? 셀 수도 없이 바보
처럼 홀로 되묻기만 하던 나 였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어
느 정도 기본 틀을 만들면 일
단 윗선에 보고부터 간다. 왜
냐고? 어차피 수정하게 되어 있다. 한 번에 통과하는 방침
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공무원 1년 차, 나의 퇴근 시간
은 보통 어느 정도였을까? 보
통 오후 9시 조금 늦는다 싶으
면 오후 10시. 이런 야근을 주 중 3~4일은 해댔다. 사회초년
생, 회사 생활에 대한 만족감
과 충성심 또한 극에 달했으
니 그럴 만도 했다. 저녁도 먹
지 않고 일하는 날도 부지기 수였다. 뭐가 그렇게 중요했
는지, 그땐 내 일상의 모든 것
이 회사 중심이었다.
참고로 나의 공무원 생활의 시작은 동사무소였다고 말한
바 있다. 구청만큼 업무의 깊
이가 깊지 않고, 그냥 최대한
단순하고 빠르게 처리하면 끝
이었건만, 그때는 잘 몰랐다. 어쨌거나 그런 시절이 있었기 에 지금의 내가 있다.
지하철역이 집에서 가까운 편
이어서, 출퇴근길 주로 지하 철을 애용했다. 나의 발이 되 어주었던 수인분당선. 망포역 에서 탑승해 정자역에서 내려 신분당선으로 한번 환승하고, 다시 강남역에서 내려 2호선 으로로 두 번째 환승하는 루 트가 나의 주된 출퇴근 방식 이었다.
광역버스보다는 지하철이 편 했다. 시간에 예민한 내게 항 상 정확한 시간에 오는 지하 철이 마음에 쏙 들었고, 유독 아침 시간에 장트러블이 심했
던지라 어디서든 내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심리적인 안 정감을 더해주는 지하철이 참 마음에 들었다.
간혹 큰 행사를 준비하거나, 업무가 많이 쌓이는 날에는 늦 은 시간까지 야근을 했다. 그 런 날, 나의 발이 되 주었던 건 지하철이 아닌 광역버스였다.
지하철보다 훨씬 늦은 시간까 지 운행하는 빨간색 광역버스, 자정이 넘는 시간에도 운행하 는 광역버스 덕분에 늦은 시간 까지 야근이 가능했다.
버스를 타면, 늘 자 리에 여유가 있었다. 나는 주 로 버스 맨 뒷자리에 앉거나 바로 그 앞자리에 앉곤 했다. 그 자리가 내게 유독 편안함을 주었다. 저마다 사연이 있었 을 것이다. 책상에 가득 쌓인 업무를 처리하느라,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회포를 풀었거나, 지하철이 끊겨 심야 광역버스 에 탑승한 그들에게 말이다. 당시 나는 버스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유독 업무에 대한 생각을 퇴근하고서까지 많이 끌고 오곤 했다. 마치 회 사가 '너 이것도 못하냐?'라는 식의 가스라이팅을
오늘의 시간이 훗날 너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 줄 거야. 일이
잘 풀릴 때도 있고, 그저 그럴
때도 있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
꽤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으면
해. 너의 삶을 응원해."
30대 초반, 지금보다 더욱더
젊은 날 빨간색 광역버스에서
보냈던 시간, 상상만 해도 벅
차오르는 그 당시의 꿈을 키
워가며 원래 다 그런 거라고
늦은 야근이 헛되지 않을 것
이라 입으로 되뇌곤 했다.
파마하느라
그 짧은 주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광역버스를 타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또는
하루를 마감하는 우리네 직장
인들 그 안에서 당신의 꿈이 무럭무럭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지각한 9급 공무원
지방 공무원이라면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국가 사무가 하나
있다. 바로 선거 업무. 5년마
다 행해지는 대통령 선거 그
리고 4년마다 돌아오는 국회
의원 마지막으로 국회의원과
동일하게 4년마다 지방자치
단체 의원 및 교육감을 뽑는
지방선거까지 총 3개의 선거
사무가 각기 다른 해에 진행 된다.
이 시즌이 되면, 각 지방자치
단체는 구청, 동사무소 가릴 것 없이 굉장히 분주해진다. 한 나라의 대통령, 국회의원 그리고 지역을 대표하는 의
원을 선출하는 업무이니 만큼
예민하고 세심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선거 업무를 주관하는 선관위
의 안내에 따라 구청 또는 시
청의 한 부서에서 선거 업무
를 준비한다. 동사무소는 시
청 또는 구청에서 전달받은
사항을 토대로 현장의 일선에
서 선거 업무를 수행하게 된
다. 공무원 입사 첫해에 제20
대 국회의원 선거에 사무원으
로 참여했다.
소중한 국민의 한 표를 투명
하고 깨끗한 결과로 인도하
기 위해 지방 공무원은 최선
의 노력과 집중을 기울인다.
선거인명부를 작성하고, 후보 자 선거 포스터를 곳곳에 부
착하고, 후보자의 이력과 공
약이 담긴 공보물을 주민에 게 배부하기 위한 작업 그리 고 마지막 선거 당일까지 긴
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선거 전 받는 공보물, 혹시 어
떻게 작업되는지 알고 있는 가? 가내수공업처럼 사람의
손으로 한 부 한 부 만들어진
다. 책상을 길게 늘어뜨려놓
고 순번 대로 공보물을 하나
씩 올려두면, 구간 별로 사람
이 붙어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고 밀어내고를 반복하며 한
부의 공보물을 만들어낸다.
정말 단순노동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아주
가끔 후보자의 공보물이 빠
김영수(교감 최윤정) 0493 861 646
장승호(교감 정진아) 로뎀나무교회한글학교 10/3360 Pacific Highway, Springwood QLD 4213 0424 137 764 (0494 122 429) / brisrothemtree@gmail.com 수업: 토요일 오전 9:00-12:00 - 491 Waterworks Rd Ashgrove Qld 4060 - 수업: 토요일 오후 1:00 – 오후 4:00 - 0433 475 658 - 수업: 일요일 오전 10:30 - 오후 1:30 (코디네이터 김영지) - 1/24 Expo Court, Ashmore Qld 4214 - 0435 806 828 - dudwl87@nate.com - 수업 : 토요일 오전 9:30 - 오후 12:00
회장: 이문환 0402 112 593
총무: 장현숙 0422 630 262
재정: 조성현 0433 447 483
감사: 장원순 0433 308 436
곽석근 0409 995 456 ⓒ 본 광고
으로 공보물을 발송하기 위한 전날밤이 찾아왔다.
"내일 아침 일찍부터 공보물 작업이 있으니까 일찍 일찍 들 어가세요. 작업은 아침 9시부 터 시작합니다."
"네"
동 서무주임의 말에 하나 둘
직원이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 다. 나도 곧 그 대열에 합류했 다. 퇴근하며 미리 예약해 두 었던 미용실에 들러 파마를 하기 위해서가 궁극적인 목적 이었지만. 지금에야 한결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아저씨지만
당시에는 머리에도 옷에도 관
심 많은 청년이었다.
2시간 넘게 미용실에서 머무 른 지루함에 보답이라도 하 듯 파마는 생각 이상으로 잘 나왔다. 만족스러웠다. 파마가 어설프게 됐다고 직원들이 놀 릴 거 같지도 않았다. 하루 정
지는 경우도 있는데, 뭐 절대
그 후보자에 대한 악감정은
일절 없다는 것을 알아주었으
면 한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
해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하 기도 하고, 이틀로 나누어 작
업을 하게 되는 만만치 않은
일이란 것만 알아준다면 감 사하겠다.
2017년은 공무원 2년 차에 접
어든 해로 제19대 대통령 선
거가 있던 해였기도 했다. 입
사 후 두 번째 맞이하는 선거 사무. 2016년 국회의원 선거
업무를 수행했던 터라, 전체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단
한 번의 경험이었지만 대략적
으로는 알 수 있었다.
기존에 했던 바와 같이 선거
인명부 작성을 위한 야근을
하고, 선거 후보자 포스터를
곳곳에 게시하며 공보물을 수
령하는 등의 업무는 동일하게 진행됐다. 그렇게 주민 대상
도 머리를 감지 말라는 디자이 너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가볍 게 샤워를 한 후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눈
부신 햇살이 창문을 투영해
내 몸 전체에 비치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보니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부재 중 전화만 수십 개가 찍혀 있
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 주임님. 죄송합니다. 늦
잠을 자서요. 지금 바로 가겠 습니다."
"아이고. 그래요. 얼른 와요."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 그렇 게 세안과 환복을 빠르게 마
쳐본 적은 없었다. 입사한 지
2년도 안된 녀석이 일과도 아
닌 중요한 선거 사무에 그것
도 바빠 죽겠는 공보물 작업 날에 늦잠이라니. 내가 봐도 한심했다.
"김주임. 파마하느라 늦은 거 야?"
주변 직원들이 웃음소리가 연 신 이어졌다.
"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 다."
연이어 호탕하게 웃으며 서무 주임이 말했다.
"그래도 파마는 잘 나왔네? 남 은 시간, 두 배로 열심히 작업 해 줘!"
"넵. 알겠습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파마하느라 늦었냐는 한 선배 주임의 말에 그리고 팀장이나 직원이나 모두의 손이 필요한 중요한 날에 왜 그런
3 Bros Korean Bistro & kimbab | B Happy Sushi Bar, Moolooraba | Bay Sushi | Bellingen IGA | BOMNAL | Brown Rice, Noosa Civic | Brown Rice, Peregian | Chinese Soul Food, Cairns | Coo.King BBQ & Hot pot, Townsville | Daikichi Sushi | Danoshi Kitchen, Parkwood | FISHI, Cannonvale | Flaming Sushi House | Fresh Sushi Nara | G'day Sushi | Go N Sushi, Marsden | Go N Sushi, Plainland | Go N Sushi, Victoria Point | Go Sushi, West End | GODA Donburi | Hanami | Hana's Rolls | Haruakii, Fortitude Valley | Hero Sushi Chermside | Hero Sushi, Coomera | Hero Sushi, Helensvale | Hero Sushi, Indooroophilly | Hero Sushi, North Lakes | Hero Sushi, Pacific Fair | Hero Sushi, Robina | Hero Sushi, Surfers Paradise | Hikaru Sushi, Cleveland | Hikaru Sushi, Mooloolaba | Honten Sushi, City | Iki Sushi, Sunnybank Plaza | It's Sushi, Southport | J1 Sushi | JINMEE FOOD | JJN Sushi, Hervey Bay | Kajin Japanese | Kenko Sushi, UQ | Kimono Sushi | KOALA CARTE | Koji Sushi, Warwick | Kung Food Asian Fusion | Lulu Coffee and Japanese Kitchen | Magical Rice, Murrarie | Mai Bli Sushi | Maki Sushi | Mayo Sushi | Mayomayo Sushi | MIGAMI Sushi, Brisbane City | Miso Hungry | Misoya | Mista Boo, Bulimba | Moga Izakaya & Sushi | Momo Sushi | Mori Mori Sushi, Springwood | Mori, Burleigh Heads | Moshi Moshi Sushi | Mountain River Patisserie | Moyza Asian Kitchen | Ninja Sushi & Burrito | Noodle & Donburi, Bundaberg | Oh My Sushi | OK Sushi, Redlynch | OKAZU | On a Roll Sushi | Ooh Sushi, Garden City | Q Sushi, Spring Hill | QT Hotel, Gold Coast | RL Sushi, Rockhampton | Roku Sushi & Espresso | Roro Sushi | Say Sushi, Beaudesert | Shikii Sushi, Redbank | Silo Sushi & Asian Foods | Simmon's Bakery | Singsing Sushi | Sinjeon K-Street Food | Smile Sushi, Cairns | Sooo Sushi, Chermside | Sora Sushi | Super Sushi, Smithfield | Sushi Aji, Jimboomba | Sushi Arai, Sippy Downs | Sushi Ari, Gympie | Sushi Bar Tokyo Roll | Sushi Bee | Sushi Break, Helensvale | Sushi Creators | Sushi Deli, Chermside | Sushi Dona | Sushi Doori, Southport | Sushi Edo, Garden City | Sushi Edo, Brisbane City | Sushi Edo, Newmarket | Sushi Edo, Sunnybank | Sushi Everyday | Sushi Express, Toowoomba | Sushi First | Sushi Haru, Ashmore | Sushi Honba | Sushi Honke, Brookside | Sushi Honke, Calamvale | Sushi Honke, City | Sushi House, Emerald | Sushi Hub, Chermside | Sushi Hub, Garden City | Sushi Hub, Pacific Fair | Sushi Hwa | Sushi Ichi Mogill | Sushi in the City | Sushi in the City, Adelaide | Sushi Izu Ashgrove | Sushi Izu Chancellor Park | Sushi Izu Darwin | Sushi Izu Elanora | Sushi Izu Hamilton Harbour | Sushi Izu Helensvale | Sushi Izu Macathur Central | Sushi Izu Maroochydore | Sushi Izu Nundah | Sushi Izu Oasis | Sushi Izu Ormeau | Sushi Izu Palm Waters | Sushi Izu Parkwood | Sushi Izu Robina North | Sushi Izu Sippy Downs | Sushi Izu South Brisbane | Sushi Izu Southpoint | Sushi Izu Spring Hill | Sushi Izu Springfield | Sushi Izu Stafford Heights | Sushi Izu Surfers Paradise | Sushi Izu Tweed Heads | Sushi Izu West End | Sushi Izu Belmont | Sushi Izu Coffs Harbour | Sushi Izu Fortitude Valley | Sushi Izu Manly West | Sushi Izu Mermaid Plaza | Sushi Izu Mermaid Waters | Sushi Izu Pacific Fair | Sushi Izu Teneriffe | Sushi Izu Toowong | Sushi Joo Japanese | Sushi K, Coomera | Sushi Kado | Sushi Kozy | Sushi Kuni, Bribie | Sushi Kyono, Toowoomba | Sushi Lite, Yeronga | Sushi Metro Express | Sushi Metro, Caboolture | Sushi Moriya | Sushi Moru, Mount Warren Park | Sushi Mura, Regent Park | SUSHI N | Sushi n Fried Chicken | Sushi On Augusta | Sushi on Mary | Sushi Paradise, Bellmere | Sushi Paradise, Burpengary | Sushi Paradise, Caboolture | Sushi Paradise, Greenbank | Sushi Paradise, Mango Hill | Sushi Paradise, South Bank TAFE | Sushi Paradise, Townsville | Sushi Point, Palm Beach | Sushi Queen | Sushi Rocks, Ayr | Sushi Sen, Chermside | Sushi Shou | Sushi Star, Chermside | Sushi Tatsu, Banyo | Sushi Yogi | Sushi@chef, Mudgeeraba | Sushi1 Elanora | SUSHIRO, Noosa CIVIC | Sussie Sushi (Chia & Chung) | The Sushi House, Calamvale | The Sushi Lab, Melbourne | Tokyo Sushi on Capri | Top Sushi | Totomaki, Jindalee | Triple Sushi | Uno Sushi | Wild Wasabi Sushi | Yami Sushi ...
곡돌사신 | 曲突徙薪
아빠가 들려주는 사자성어 이야기 by
옛날, 어떤 고을에 큰 부잣집이 하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굴 뚝이 너무 곧아 종종 불똥이 튀어나 오곤 했습니다.
굴뚝 옆에는 땔나무까지 쌓여 있어 자칫하면 큰 불이 날 모양새입니다.
보다 못한 한 노인이 굴뚝(突)을 살 짝 꺾고(曲), 땔나무(薪)도 멀리 치 우라(徙)고 얘기했지만, 집주인은 설마 별일이야 있겠냐며 충고를 흘 려 들었습니다.
어느 날, 땔나무로 튄 불똥이 큰 불 로 번졌습니다. 당황한 집주인이 발 만 구르는 동안, 서둘러 달려온 마 을 사람들이 가까스로 불길을 잡
았죠.
죽을 뻔했던 주인은 술과 고기를 내 어 사람들을 대접했는데, 굴뚝의 위 험을 경고했던 노인은 깜빡 잊고 말 았습니다.
실수를 깨달은 주인은 늦게나마 노 인을 청해 잔칫상의 상석에 모셨다 고 합니다.
에헴, 잘난 척을 위한 한 걸음 더..
죽음을 목전에 둔 한무제는 대장군 곽 광을 불러 어린 태자를 부탁했습니다.
곽광은 여러 부침에도 진심을 다해 국정을 살폈습니다.
하지만 곽광의 아들과 일가친척들 은 곽광의 눈을 피해 재물과 권력을 탐하기 시작했고, 곽광이 죽은 뒤로 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었습 니다.
이에 서복이 나서 '지금의 곽씨 일 가는 사치하고 불손해 모두 내치는 것이 마땅하나, 곽광의 공을 생각해 멸문에는 이르지 않게 하라.'는 상소 를 세 번이나 올립니다.
선제는 서복의 말이 모두 옳다고 여 겼으나, 아직은 마음을 정하지 못해 지켜 보고만 있었습니다.
위협을 느낀 곽씨 일족은 선제를 폐 위하고 새 황제를 세우려는 음모를 꾸미다 발각됩니다.
선제는 마침내 곽씨 일족을 멸문하 고, 진압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벼 슬을 내렸는데 모반을 예견한 서복 에게는 아무런 상도 내리지
원
프로와 나누는 골프이야기
기억을 지우려고 하지 말자
by 티칭 프로 원성욱 (0402 598 961)
안녕하세요? 대학 1년차에 읽었던 책이 생각
이 납니다. 그 책에는 여러가지 코스 매니지
먼트에 관한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이런 내용이 가장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항상 필드에서 생각이 나서 적용하려
고 했었죠. 저자는 이렇게 충고 했습니다. “지
난 홀에서 있었던 실수를 잊고 현재 플레이에
충실하라!”
항상70대 타수를 바라보며 플레이를 하던 중
이라 한 번의 실수가 80을 적게 되는 안타까
웠던 때라서 이 말이 더 크게 느껴졌었죠. 하
지만 잊으려 해도 내 몸의 근육들은 이미 흥
분해 있었습니다. 심지어 버디를 잡고 난 다
음 홀에서는 50%의 확률로 보기를 하고 말
았죠. 그리고 나면 그 여파가 다음 홀에서 연
결되고는 했습니다. 많은 연습 라운딩을 하다
보니 결국 70대 타수를 만들어냈고 어느덧
72타를 노리는 수준에 다다랐을 때 그 책이
생각 났습니다. 한참 동안은 생각하지 못하고
플레이를 했었던 중이라 그 책이 다시 생각
난 것이 그저 신기했었죠. 그래서 곰곰이 생
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븐 파까지 오게 되 었는지를요.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던 중 드디 어 언더파를 기록한 날 이었습니다. 동료들의 응원 속에서 앞으로 있을 밝은 미래의 골프를 이야기 하던 중 그 책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 습니다. 그리고 그 책의 충고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실수를 잊으라는 얘기를 저는 잘못 적용 했던거죠. ‘파 퍼팅을 놓친 것은 잊자!’ 또는 ‘티 샷이 해저드에 빠졌지만 잊자!’ ‘탑핑이 나서 그린을 넘긴 것을 잊자! 그럴 수 있어!’ 라는 생 각이 나쁜 기억을 지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 기하게 되었다는
다들 활짝 폈습니다
50 넘어 고작 그림일기 씁니다
By 고작 gojak / 브런치
하얀 목련이 폈습니다 귀여운 벚꽃도 폈습니다
노란 개나리도 폈습니다 나도 오랜만에 허리를 폈습니다
Grand Lisboa Palace Macau
by 트래비 매거진 / 브런치
‘마카오의 럭셔리’를 품은 호텔을 다녀왔다.
스파부터 미식까지, 호화로운 하루하루에 귀국 날짜를 미루고만 싶어졌다.
마카오에서 호텔을 정한다는 것
마카오 코타이 지구는 럭셔
리 호텔의 격전지다. 흠잡을
데 없는 5성급 호텔들이 빼곡
히 들어서 있으니 여행자의
머리 위론 거대한 물음표가
찍힌다. 어디서 머물 것인가.
실컷 고민해 본 필자, 이것만
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여
행의 콘셉트를 럭셔리로 잡
았다면, 그랜드 리스보아 팰
리스 마카오는 분명 좋은 선
택지다.
이름부터 짚고 넘어가자. 마
카오에는 ‘리스보아 호텔’
이 2개가 있다. 하나는 마카
오 반도에 있는 그랜드 리스
보아 마카오(Grand Lisboa Macau)고 다른 하나는 코
타이 지구의 그랜드 리스
보아 팰리스 마카오(Grand Lisboa Palace Macau)다. 전
자는 마카오 여행시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활짝 핀 금색
꽃 모양의 그 건물, 후자는 오
늘 기사의 주인공. 둘은 자매
호텔이다. 이 기사에서는 편
의상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
스를 ‘리스보아’로 칭하겠다. 헛갈림 주의.
리스보아는 SJM 리조트 계 열의 호텔 중 하나다. 아시 아 최초의 팔라조 베르사
체 마카오(Palazzo Versace Macau), 세계 유일의 더 칼
라거펠트 마카오(THE KARL LAGERFELD MACAU)과 어
깨를 나란히 한다. 세 호텔은
모두 붙어 있어 자유롭게 왕
래가 가능하다. 참고로, 하나
의 지붕 아래 2개의 패션 브
랜드 호텔을 보유한 통합 리
조트는 리스보아가 세계 최
초라고.
리스보아의 전체적인 디자
인은 신고전주의와 벨 에포
크 시대의 유럽풍 건물, 전
통적인 중국 스타일이 합쳐
졌다. 백문이 불여일견. 로비
에 들어서는 순간 기둥과 조
각품, 벽에 걸린 작품들에서
부터 그 매끄러운 결합이 느
껴진다.
전 객실 역시 시누아즈리
(Chinoiserie, 17~18세기 유럽
에서 유행한 중국풍)에서 영
감을 받아 꾸며졌다. 동서양
의 조화로운 결합, 그건 마카 오 자체의 역사이기도 하다.
정원이 보이는 방 안에서
객실 얘기를 해 보자면, 일단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무려 1,350개. 로비가 동쪽과 서쪽, 2개씩 위치해 있는 이유가 다 있다. 객실은 마카오의 독특 한 문화적 정체성과 해양 역 사를 기념하는 동서양의 미
학으로 꾸며져 있다. 가구는 마카오의 유산에서 영감을 받은 패턴과 모티프를 목재, 도자기, 청동 금속 악센트로
재해석했고, 옛 마카오와 새
마카오를 묘사한 예술 작품 도 틈틈이 찾아볼 수 있다.
룸 타입은 총 7가지. 이 중
특히 추천하고 싶은 타입
은 정원 전망의 ‘주니어 스 위트(Junior Suite)’다. 마카 오의 문화적 역사는 바닥부 터 조명까지 이어지는 정교 한 선과 패턴, 전통 직물 등 에서 물씬 느껴진다. 80㎡의 거실과 킹사이즈 침대가 놓 인 침실은 널찍널찍해 개방 감이 상당하다. 통창 너머로
리스보아의 상징적인 장소 인 ‘자르딤 세크레토(Jardim Secreto)’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장점이 다. 조식으로 인 룸 다이닝을
신청하면 아침 햇빛에 반짝
이는 정원 뷰를 보며 객실에
서 식사를 즐길 수도 있다. 강 력 추천.
정원을 방에서만 내려다보기
아쉽다면 건물 3층으로 향하
자. 포르투갈어로 ‘비밀의 정
원’이란 뜻의 자르딤 세크레
토는 투숙객이 아닌 외부인
들도 일부러 찾아와서 구경
할 정도로 인기 명소다. 유럽
스타일의 정원으로 완벽하게
손질된 녹지, 조경된 파티오
와 전망대를 갖췄다. 우아한 파빌리온과 잔디 미로, 중앙
의 돔 등은 방문객들의 인증 샷에 가장 많이 담기는 배경 이다.
선 쇼핑, 후 스파
간문제다. 한바탕 쇼핑 후 지친 몸을 녹이기
리스보아는 의외로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쇼핑 명소 중 하나다.
건물 1층과 2층에 걸쳐 방대 한 규모를 자랑하는 쇼핑몰,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 쇼 핑몰(Grand Lisboa Palace Shopping Mall)은 쇼퍼홀릭
들의 천국이다. 다양한 국제 패션 및 라이프 스타일 브랜
드를 포함한 100개 이상의 브
랜드가 입점해 있다.
면세점인 ‘cdf 마카오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 숍’과 각종 아웃도어 스포츠, 아동용품 등을 판매하는 ‘NY8 뉴 야오 한(New Yaohan)’에서는 모
두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원
스톱 쇼핑이 가능하다. 특히
캐릭터 굿즈를 사랑하는 키
덜트들이라면 뉴 야오한 백
화점을 절대 놓치지 말 것. 디
즈니부터 산리오까지 다양
한 캐릭터들의 깜찍한 상품 을 발견할 수 있다. 대형 슈 퍼마켓과 각종 기념품 숍도 있으니, 한번 방문하고 나면 짐 가방이 묵직해지는 건 시
트 리트먼트를 즐길 수 있다. 실력 있는 전문 테라피스트 가
피부
트 리트먼트를 제공하고, 프 랑스의 고급 스킨 케어 브 랜드인 비올로직 호쉐쉬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는 SJM 리
조트만의 광범위한 미식 세계를 생
생히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카
오, 포르투갈, 중국 및 서양 요리에
이르기까지 맛있는 옵션들이 연달
아 펼쳐지니 선택은 고통스러운 동
시에 한없이 즐겁다.
현대적인 포르투갈 요리
Mesa by José Avillez
메사 바이 호세 아빌레즈
포르투갈 요리를 이보다 더 세련되
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칼 라거펠
트 호텔에 위치한 메사는 전통 포
르투갈 요리를 현대적 방법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선보인다. 마카
오 및 중국 요리에서 영감을 받은
캐주얼 파인 다이닝 철학이 담긴, 진정성 있는 요리들이다. 한입 먹
을 때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의 맛
에 놀라게 된다. 새끼 돼지고기와
족발을 고수 및 오렌지 크림과 곁
들인 요리, 캐비어가 들어간 해산 물 밥(진득한 바다향이 일품이다) 과 같은 시그니처 요리들이 대표 적인 예.
메사는 상당히 모던하게 꾸며진 칵
테일 바도 겸하고 있다. 칼 라거펠
트가 생전에 직접 디자인한 바로,
그의 시그니처 색상인 검정, 흰색,
금색과 기하학적인 패턴이 융합
돼 동서양이 대담하게 혼합된 느
낌을 준다. 페티스코(작은 접시에
담긴 전통 포르투갈 요리)나 포르
투갈산 와인들도 고급지지만, 마스
터 믹소로지스트가 제조한 칵테일
들이 특히 환상적이다. 제아무리 ‘
술알못’일지라도 이곳의 칵테일에
는 뭔가 강렬한 매력이 있다는 점
을 알아차리게 될 것. 시간 여유만
있다면 마카오의 긴긴밤을 온통 이
곳에서 보내고 싶을 정도다.
위의 이탈리아
Don Alfonso 1890
돈 알폰소 1890
정통 이탈리아 음식을 논할 때 이 레스토랑을 빼놓으면 섭하다. 소
렌토 반도와 아말피 해안, 그러니 까 남부 이탈리아의 맛을 강조하
는 고전적인 레시피를 선보이는 파
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모든 요 리는 이탈리아의 푼타 캄파넬라에
있는 레스토랑 자체 농장에서 생산 된 신선한 농산물로 세심하게 만들
어진다.
산 마르차노 토마토, 노첼라라 델
벨리체 올리브, 나몬테 레몬 등 이
름만 들어도 이국적인 재료들이 식
탁에 오르는데, 접시마다 감탄사가
연달아 터진다. 그냥 하는 말이 아 니라 진짜로. 그중에서도 특히 야
생 사슴 고기를 밤과 석류 소스와
곁들인 요리는 돈 알폰소의 하이라
이트다. 야들야들한 부드러운 고기
에 상큼함이 더해져 식감과 풍미를
모두 잡았다.
팔라조 베르사체 호텔에 위치한
만큼 레스토랑의 전체 인테리어
역시 베르사체를 기반으로 디자
인됐다. 이탈리아 대리석으로 만
들어진 장미꽃부터 이탈리아 장인
이 직접 제작한 바닥, 베르사체 식 기, 와인잔 등에 이르기까지, 시종
일관 베르사체만의 고풍스러움이
계속된다.
The Eight 디 에잇
마카오에서 단 한 곳의 딤섬 레스
토랑만을 갈 수 있다면, 고민 없이
여기로 직행할 것 같다.
디 에잇은 수년 동안 미쉐린 가이
드 홍콩 및 마카오에서 인정받은
광둥 요리 전문 레스토랑이다. 최
근 수상 경력 리스트만 봐도 화려
한데, 그 이유는 딤섬에서 쉽게 찾 을 수 있다.
우선 넘겨받은 메뉴판부터 심상찮 다.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는 딤섬 리스트에 행복한 고민이 시작된다. 점심시간에는 무려 40가지 이상의 딤섬 중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걸 골라도 맛이며 모
양이며 수준급이라, 그 고민이 별
의미 없긴 하다.
그렇다 해도 금붕어 모양의 크리
스털 블루 쉬림프 딤섬과 리버 쉬
림프가 들어간 핸드백 모양의 퍼
프 페이스트리(Puff Pastry)는 꼭
먹어 볼 것. 맛도 맛인데 창의적
인 터치가 들어가 보는 즐거움까
지 더한다. 몰캉한 딤섬 안에 풍부
하게 들어 있는 해산물, 바삭한 식
감 안에 살아 숨쉬는 원재료의 맛.
하나같이 뒤돌아서면 생각나는 맛 들이다.
참,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디 에 잇은 코타이 지역의 그랜드 리스보 아 팰리스가 아닌, 마카오 반도의
그랜드 리스보아에 위치해 있다. 헛갈리지 말 것.사치스러운 한낮의 디저트
La Scala del Palazzo 라 스칼라 델 팔라조
과연 여심을 울리는 모든
차 이 나
월-금 10am-5pm | 토 11am-5pm | 일 Closed
월-금 10am-5pm | 토 11am-5pm | 일 Closed
다가오는 연방 총선에서 자유당 연립이 승리하면, 주택 대출을 받을 때 최대 4만 달러를 추가로 빌릴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합니다.
자유당연립의 마이클 수카르(Michael Sukkar) 야당 주택 담당 대변인은 대출 규제를 완화해 첫 주택 구매자들의 대출 한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 혔습니다.
현재 호주 건전성 규제 당국(APRA)은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평가할 때 금리 변동 을 고려해 3%의 '완충 장치'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당이 집권하면 이 비율을 낮춰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연봉 약 10만 달러인 사람이 6% 이율로 30년 만기 대출을 받을 경우, 현행 3% 완충 장치를 2%로 낮추면 4만 달러를 더 빌릴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자유당이 당선되더라도 구체적으로 얼마나 완화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 다. 물론 걱정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마디 치아(Mardy Chiah) 뉴캐슬 대학교 부 교수는 대출 한도가 올라가면 주택 수요도 증가해 오히려 집값이 더 오를 수 있 다고 경고했습니다.
치아 부교수는 "대출 여력 증가는 주택 수요를 촉진하여 잠재적으로 주택 가격을 더 상승시켜 대출 여력 증가의 이점을 상쇄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유당은 또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도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대출자 모기지 보험(LMI) 제도도 손보겠다는 계획입니다. 현재는 대출자가 보증금을 20% 미만 으로 낼 경우 대출자 모기지 보험을 내야 하지만, 이를 완화해 첫 주택
qldkoreanlife.com.au qldkoreanlife
않도록 해 대출 한도를 높이는 방안을 이미 시행 중이라며, 대학 학자금 대출 부 채를 20% 추가 할인하는 정책도 내놓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알바니지 총리는 "고등 교육 대출 부채를 20 % 더 할인받을 수 있고, 정부가 HECS 부채를 줄인 30 억 달러 외에 추가로 20 % 할인을 제공 할 것"이라며 "모 든 젊은이들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줄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출처 : SBS뉴스
AFL 경기장 총기 반입…
남성 2명 체포
오스트레일리아 풋볼 리그(AFL) 경기에 장전된 총기를 소지한 두 명의 남성이 경 기장에 들어와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목요일 밤, 8만 2058명의 팬이 운집한 가운데, 전통의 라이벌 콜링우드와 칼튼 의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이 경기에서 빅토리아 경찰은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 (MCG) 보안요원의 신고로 두 남성을 체포했습니다.
빅토리아 경찰은 "두 명의 남성이 경기장 퇴장을 거부해 MCG 보안팀이 경찰을 불러 도움을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이 출동해 수색한 결과 두 남성에게서 각각 두 정씩, 총 네 정의 총기가 발견 됐습니다.
체포된 남성들은 각각 21세 록스버스 팍(Roxburgh Park)와 37세 브로드메도우스 (Broadmeadows)로 현재 구금된 채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강화된 MCG경기장 보안절차를 어떻게 통과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출처 : SBS뉴스 멜버른 크리켓 경기장 크레딧: MCG
Abracadabra! 4월 18일 금요일 오후 12시 30분부터 2시까지 Matt Hollywood의 독점 라이브
무료 부활절 마술쇼와 매직 스쿨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재미있고 가족 친화적인 쇼는
놀라울 정도로 흥미진진해요! 좌석이 한정되어 있으니 미리 날짜를 정하세요. Illusions Magic Theatre 1층 오후 12시에 문을 열어요. 이 이벤트는 6세 이상 어린이에게 적합합니다. 16세
미만의 모든 어린이는 반드시 성인과 동반해야 합니다. 본 이벤트의 특성상 좌석을 예약할 수
없으며 선착순으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Folk, Roots & Rock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The Drunken Midnight 합창단의 멜로디를 선보이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 저녁은 음료, 식사, 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순회 공연단의 불(火) 공연도 기대해 주세요
펑키한 라이브 음악에 맞춰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을 준비하세요.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Easter Bunny 방문, 오후 2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로빙 버니, 록과 컨트리 분위기가 융합된
Flip the Script Band의 라이브 음악을 즐겨보세요.
Easter Bunny 방문,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무료 페이스페인팅, 오후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Jodie-Joy가 출연하는 duo Sass & Sax 의 공연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멋진 Tonic Jazz Quartet의 라이브 음악으로 서퍼스 Laneway에서 부활절을 축하해 보세요.
백주년기념교회 마당에 계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일장기도 걸려있습니다 양화진에 안치된 명가운데 일본인으로는 유일하게 소다 가이치 曾田嘉伊智
2025
-26
호주 정부 예산 요약
2025-26 정부 예산안은 세금 인하, 의료 및 에
너지 지원 강화, 주택 및 교육 분야의 투자를 통
해 국민의 생계비 부담을 줄이고, 동시에 장기
적인 경제 성장과 지속 가능한 사회 구조 구축
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예산안은
세금 개혁과 함께 소득세 인하, 메디케어 지원
확대, 주택 공급 확대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실
질적인 변화를 약속하며, 국민들에게 직간접적
인 혜택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1. 개인 소득세 변화
• 세금 인하: 2026년 7월 1일부터 2027년 소득
세 연도에 $18,201에서 $45,000 사이의 소득
을 올리는 납세자는 16% 세율이 15%로, 2028년 소득세 연도에 14%로 인하됩니다.
결과적으로 2027년에는 최대 $268, 2028년 에는 최대 $536의 세금 혜택을 받게 됩니다.
• 메디케어 세금 면제 기준 인상: 2024년 7월 1
일부터 개인 및 가족의 메디케어 세금 면제
기준이 인상되어 생계비 부담을 덜어 줄 것으 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 세무사 관리 및 규제
• 세무사 관리 위원회(TPB) 의 제재 강화, 등록
체계 현대화 및 고위험군 세무사들을 타겟하
여 관리하는 부분에 추가 자금이 지원됩니다.
3. 기타 세금 관련 예산 조치
• 세금 준수 강화: 세금 준수 프로그램을 강화 하기 위해 4년 동안 $9억 9900만 달러가 투입 됩니다. 여기에는 경제 준수 프로그램, 개인 소득세 준수 프로그램, 세금 회피 태스크포스 의 확대가 포함됩니다.
• Foreign Resident 세법상 외국 거주자 자 본이득세: 2025년 10월 1일부터 세법상 외국 거주자 (Foreign Resident) 대한 자본이득세 규제가 강화됩니다. 주요 변경 사항은 자산 유형의 확장과 함께, $20 million 이상의 주식 거래 시, 거래 전에 미리 ATO에 통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4. 주요 예산 항목
• 생계비 구제: 에너지 요금 환급 연장, 세금 인 하, 학생 대출 구제 등을 포함한 $18억 달러의
생계비 구제 조치가 포함됩니다.
• 메디케어 강화: 2030년까지 9할 이상의 GP 진
료가 벌크 빌링 되도록 $79억 달러를 투입하
며, 매년 공공 병원에 1,800만 건의 추가 벌크
빌링 GP 방문이 지원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주택: 더 빠른 주택 건설을 위한 새로운 사업, 도움말 구매 프로그램 확장, 외국인 투자 제 한 등 다양한 주택 관련 조치가 포함됩니다.
• 교육: $50억 달러를 투입하여 보편적인 유아
교육을 제공하고, 주 3일 이상의 보조금이 제
공될 수 있도록 합니다. $4억 2,660만 달러를
투자하여 '3일 보장(3 Day Guarantee)' 제도
를 도입하여 가족들이 최소한 주 3일의 보조
금을 지원받는 유아 교육 및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예정입니다.
• 강력한 경제 구축: $80억 달러를 청정에너지
와 저 탄소 배출 기술(low emission technology)에 지원하고, $20억 달러를 청정에너지 금융 공사 (Clean Energy Finance Corporation)의 확장에 투입합니다.
• 기회 확장: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원주민 공
동체를 위한 $40억 달러 이상의 예산과, 장애 인을 위한 $4억 2,380만 달러의 지원이 포함 됩니다.
5 비 세금 관련 예산 조치
• 학생 대출 구제: 모든 고등교육 대출(Higher Education Loan Program, HELP) 잔액을 20% 인하하고, 상환 시작 소득 기준을 2026 년 회계연도부터 $67,000로 인상합니다.
• 에너지 요금 구제: 2025년 12월 31일까지 자 격이 있는 가구와 소상공인에게 두 번의 $75 에너지 요금 환급 (총합 $150)이 주어지게 됩 니다.
• 주택 지원: - 첫 집 정부 도움 프로그램: 주택 구입을 위 한 자격 기준이 강화되고, 최대 40%의 지 분 기여를 통해 지원이 확대됩니다.
- 외국인 소유 제한: 2025년 4월 1일부터 2년 간 외국인에 의한 기존 주택 구매가 금지됩 니다.
소상공인 및 프랜차이즈 보호: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4년간 $1,200
달러가 지원됩니다. 또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도 포함됩니다. - 주류 산업 지원: 2025년 8월부터
류 제조업체에 대한 지원이 확대됩니다.
2025년 예산안에 포함된 세금 인하와 세제 변 화는 납세자들에게 실질적인 세금 부담을 경감
시키는 동시에, 세무 처리와 관련된 새로운 기 준과 규제를 필요로 합니다.
특히, 메디케어 지원의 확대와 주택 관련 정책 변화, 기업 세무 감사를 강화하는 조치 등은 세 무 계획과 규정 준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의 강력한 세무 리스크 관리 및 세금 불공 정 행위 대응은 회계사와 세무사들의 역할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 것이며 단순히 세금 신고 를 돕는 역할을 넘어, 납세자들이 법적 요구 사 항을 충족하면서도 최적화된 세무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핵심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강 화해야 할 시점입니다.
Reference:
• Australian Government Budget 2025-26
• NTAA 2025/26 Federal Budget
• SMSF Association Federal Budget 2025-26
Disclaimer: 이 칼럼은 작성일 당시의 정보 들을 토대로 일반적인 정보 공유 목적으로만 제공되며, 전문적인 세법 또는 세무 조언을 대 체할 수 없습니다. 필자와 필자가
Written by: 김재미 공인회계사 (Sedley Koschel Financial Group)
당신의 눈은 건강한가요?
스마트폰을 오랜 시간 보거나 컴
퓨터 업무를 많이 하는 경우 안구
건조증, 각막염·결막염 같은 안질
환이 흔히 발생한다. 눈은 조금만
불편해도 삶의 질을 크게 떨어트
리기 쉽다. 영유아기부터 노년기
까지 평생 관리해야 하는 안질환
을 키워드로 알아보자.
보호자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영유아기
소아의 시력발달은 만 8~9세경 완
성되므로 영유아기는 눈 관리가
가장 중요한 시기다. 출생 3개월
까지는 시력발달이 빠르게 일어
나는 ‘시력발달의 민감기(critical period)’다. 백일 무렵 아기가 눈 맞
춤을 잘하지 못한다면, 두 눈의 시
선이 한 곳을 향하지 못하는 사시
구별검사를 포함한 안과 검사가 필요하다. 만 3세 이후에는 매년
안과를 찾아 정기적인 시력검사와 굴절검사를 진행한다.
눈의 피로감이 높은 청소년기
청소년기는 학습으로 인해 책과
컴퓨터를 보는 시간이 많으므로
눈의 피로감이 높아지는 시기다.
이때는 눈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
한 노력이 필요하다. 틈틈이 눈 휴
식하기, 컴퓨터와 스마트폰 이용
시간 줄이기, 바른 자세로 책 읽기
등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한다. 1시
간 정도 책이나 컴퓨터 모니터 화
면을 보았다면 약 10분 정도 먼 곳
을 응시하는 습관을 들이자.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한 중장년기
40대 이후부터는 노안이 진행되
는 시기로 가까이에 있는 사물이
잘 보이지 않는 증상이 나타난다.
노안은 신문이나 책 등을 볼 때 가
까운 사물이 잘 보이지 않는 증상
이다. 눈이 침침하고 시야가 흐릿
해짐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일상
에서 불편을 초래하지만 돋보기를
사용하며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녹내장이나 백내장 등 시력이 나
빠지는 안질환은 대수롭지 않은
증상을 동반하거나, 통증이나 급
격한 시력 저하가 없어 우리가 인
지하지 못하는 사이 진행할 수 있
다. 특히 중장년기는 3대 실명 질환
으로 부르는 녹내장, 황반변성, 당
뇨망막병증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
는 시기다.
녹내장은 눈에서 받아들인 시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신경에 병증이 생
겨 특징적인 형태학적 변화와 그
에 따른 시야결손의 기능 변화를
보이는 질환이다. 회복하기 어려
운 가장 중요한 실명의 원인 중
하나다. 또 당뇨병을 앓으면 전신
적인 미세혈관 순환 장애가 나타
나기 쉬운데, 망막 혈관에도 순환
장애나 혈관병증이 나타나는 것
을 당뇨망막병증이라고 한다. 세
계적으로 비가역적인 실명의 가장
많은 원인이 당뇨망막병증이지만,
적절한 시기에 안과 치료를 받으
면 실명을 예방할 수 있다.
황반변성은 망막 중심부의 얇고
투명한 신경조직인 황반에 이상
이 생기는 질환이다. 시력이 나빠
지며 특히 중심부가 흐리게 보이
고, 물체가 휘어져 보이거나 부분
적으로 가려져 보이는 증상이 나
타날 수 있다. 치료는 병변의 진
행 상황에 따라 약물 치료, 눈 속 주사, 레이저 치료 등을 시행한다. 안검하수라고 부르는 눈꺼풀 처 짐도 중장년기에 조심해야 한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근육(안검
거근)의 힘이 약해져 위눈꺼풀이
아래로 처지는 현상이다.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안검거근의 힘
이 약해지는데, 노화에 따라 후천
적 눈꺼풀 처짐이 생길 수 있다. 처 짐 정도에 따라 수술 치료를 고려 할 수 있다.
노인성 안질환에 주의가 필요한 노년기
노년기는 백내장 환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시기다. 백내장은 70대
이상 노인의 70%가 겪을 정도로
흔하다. 백내장은 안구내 수정체
가 투명도를 잃고 혼탁이 생겨 하 얗게 변하는 질환이다. 카메라에
비유하면 렌즈에 해당하는 부위가
하얗게 변하는 것이다. 이렇듯 수 정체가 하얗게 변하면서 안구 내 로 들어가는 빛의 양이 크게 줄어
시력이 떨어진다.
백내장은 보통 수술 치료를 하게 된 다. 혼탁한 수정체를 빼내고, 그 자 리에 인공수정체를 넣어주는 백내 장 수술은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 이 받는 수술로 꼽힐 정도로 빈번하 게 이뤄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분석해 발간한 ‘2021년 주요수술통계연보’에서
QUEENSLAND 교민게시판
모집
브리즈번에 위치한 퀸즈랜드 한국 전통무용팀 아리랑(QKTDA) 에서 한국무용 기초반을 새
롭게 모집합니다! 이번 기초반 강습은 총 4주 동안 진행되며, 한국무용의 기본자세, 호흡법, 디딤새 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무용을 처음 접하시거나, 기본기를
The Korean Senior Association of Qld Australia I N C
0408 667 911 juliet43220@naver.com
정리 해주는 이치를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그리고
통해서만 찾아온다.> 그 분들에게 많은 사랑이 손길들이 깃들기를 빌어봅니다.
여러분의 건강을 빌며 사랑의 열매를 맺어보는 경로회 날 많은 참석을 기다립니다.
2025년 4월차모임은 아래와 같습니다.
- 일시:2025년4월 17일(셋째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 장소: Old Inala Hall (UBD M-218 F-5참조)
- 주소: Corner of Rosemary St and Abellia St Inala (KEV Hooper Memorial Park인접) (100번 버스 이용) (KFC음식점에서 City가는 버스 방향으로 도보로 5분거리)
2025년4월 5일 퀸스랜드주 한인 경로회 회장 박미자
호주기독교대학에 좋은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상담학과 Diploma of Counselling 이 VET Student Loan(정부 학비 융자 프로그램)과 Austudy (정부생활비 보조 프로그램) 모두 가능해졌습니다. 저희 상담학과 Diploma of Counselling 은 졸업후 호주에서 제일 큰 ACA (Australian Counselling Association) 상담협 회에서 인정하는 코스로 등록되어 호주에서 정식 상담사로 활동이 가능하고, 한국에서도 한 국기독교 가족상담협회 1급 자격증으로 활동이 가능합니다. 좋은 기회를 활용해서 유능한 상담자, 행복한 상담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0402 140 905, info@accu.edu.au, www.accu.edu.au 평신도를 위한 신학교육 (학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