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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Herald 21st Aug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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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광장
신부(新婦)의 표정 변천기 권영규/수필가,시드니한인작가회 회장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산더미처럼 쌓인 사진과 비 디오를 정리하던 중에 조카의 결혼식 비디 오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아하고 세련된 흰 웨딩드레스의 신부는 입장하며 연신 미 소를 머금고 여유 있게 하객들과 눈 인사 까지 한다. 퇴장할 때는 환하게 웃으며 답 례를 하고 있다. 때마침 그림에서 본 꽃가 마 타고 시집가는 조선시대 혼례 행렬과 새색시의 무뚝뚝하고 굳은 표정, 그리고 70년대 나 자신의 결혼식 모습을 돌이키면 격세지감을 아니 느낄 수가 없다. 1920년부터 20년간 조선을 방문하며 판화와 수채화를 그린 파란 눈의 미혼여 성이 있다. 영국의 화가이자 작가이기도 한 그녀 이름은 엘리자베스 키스(Keith). 그녀의 책 <코리아 - 1920-1940> 를 번 역함으로서 우리들에게 알려지지 않던 작 품들이 책을 번역한 재미동포에 의해서 2006년이 되어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들은 그 당시 조선의 풍습이며 경관을 보여준다. 영국과 조선의 문화적 차이가 하늘과 땅같이 다를 진대 그 푸른 눈에 비친 조선이 얼마나 신기하고 흥미 로웠을까. 엘리자베스는 '이 가난한 나라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사진 찍듯이 그림을 그렸 다. 혼례 행렬,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주막 등 자신의 나라와는 전혀 다른 풍습 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 당시 고요한 아침
▶A19면에서 이어받음 귀국하고 싶어도 항공편 없거나 너무 비싸 시드니기술대학 (UTS)과 뉴사우스웨일 스 대학(UNSW)이 공동으로 주재하는 이 민노동자정의계획(Migrant Worker Justice Initiative, MWJI)은 7월 임시비자 소지자 6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로리 버그 UTS 부교수와 바시 나 파븐블럼 UNSW 부교수는 더컨버세이 션 기고글에서 설문조사 예비 분석 결과를
의 나라로 알려진 조그만 동방의 나라에 와서 그녀가 느꼈을 신비함. 그녀는 나라 잃은 조선인들을 연민의 눈으로만 보았을 뿐아니라 이화학당의 아펜젤러 교장과 함 께 3.1운동 때 감옥에 갇힌 여학생을 면회 갔던 일도 전한다. 또한 어느 초라한 주막을 묘사하며 그 집 문 위에 '달을 쳐다 보는데 최 고로 좋은 집' 이라 써있었다고 전한 그녀 덕분에 비록 가 난해도 이런 운치 있는 말 로 객을 끌어 들이고자 한 주인장의 유머에 정 감을 느낀다. 막걸리 한잔 들이키고 안주 삼아 달을 쳐다보던 가난한 나그네에게 주인은 부침개 한 점 얹어 주었을 지도 모른다. 특히 원삼에 족두리 쓰고 앉 아 있는 '한국의 신부' 라는 그림과 설 명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연 지 곤지 찍고 고개를 약간 수그린 채 눈을 감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새색시의 표정 이 굳어 있다. 지쳐 보이는 얼굴이다. 그림 에 대한 화가의 설명은 이러하다. '한국에 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반 이상 (57%)이 앞으로 6개월 이내에 자신의 재정상태가 다소 혹은 훨씬 악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설문조사가 7월에 실시됐기 때문에 8월 2 일부터 4단계 봉쇄가 실시된 빅토리아주 상황은 반영되지 않았다. 많은 응답자들은 모리슨 총리가 권한대 로 귀국하지 못한 것이 항공편이 없거나 (20%), 부담할 수 없었기(27%)때문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 이전 이민자들이나 젊은 여행자들이 즐겨 이용하던 저가 항공사 왕 복 항공권은 1000달러 내외였기 때문에
혼식 날 종일 앉아서 먹지도 눈을 뜨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랑은 온종일 친구들과 즐 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남존여비 사상이 뼛속 깊이 녹아 있던 시대의 풍습에 따라 신부는 그러려니 하고 석고 처럼 굳은 얼굴로 앉아 있 었겠지만 새색시의 신 세가 오죽 불쌍해 보였 으면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날의 신부를 제일 비극적인 존재 라고 빗대어 표현 했을까. 영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 었을 터이니. 돌이켜보건대 나의 결혼식은 엄숙한 분 위기에 주눅이 들어 미소도 짓지 못했고 그렇다고 얼굴이 굳 지도 않은 중간 지점이 었다고나 할까. 흰 실 크를 끊어다가 양장점 에서 맞춘 웨딩드레스는 그 당시 나의 기호대로 지극히 단순한 디자 인이었다. 원피스의 길이를 길게 했을 뿐 목선은 전혀 파지지 않은 매우 수수한 드 레스였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라 결 혼식장에서 예물 교환이 금지 되었고 하 객들에게 답례품이 허락되지 않았다. 영
국 화가의 '시골 결혼 잔치' 라는 그림엔 잔치 준비로 꽤 많은 여인들이 부산하게 일하는 그림이 있는데 나의 결혼 때는 잔 치마저 생략되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임시 체류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일 수 있다. 또한 호주에서 학업이나 취업 계획이 있 던 이민자들은 국경이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약 없이 귀국 길에 오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고국의 국 경이 닫혀서 귀국하지 못했다고 답한 사람 도 20%였으나 자국민의 입국을 막은 국가 는 없기 때문에 이는 정보 부족이나 국경 봉쇄로 인한 항공편 결여를 말한 것일 가 능성이 있다. 대부분은 이러한 이유 말고도 이미 공부 에 (57%) 아니면 일과 미래에 (20%)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은 선택지 에 없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반은 호주 로 당분간 돌아오지 못하거나 전혀 돌아올 수 없는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위험을 감 수할 수 없기 때문에 남기로 결정했다.
높아졌다고 답했다. 설문조사 참여 유학생 중 한 명은 자신 의 경험을 “5년간 세금을 내고 지역사회 의 일원으로 생활했는데 (이제) 희망이 없 고, 외롭고, 어떠한 도움이 없다”고 묘사 했다. 다른 워홀러는 “호주 정부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 체류자를 소비재로 취급했 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호주에 오 지 않을 것”이라고 서운함을 표시했다. 4월 초 호주 전역에서 저명한 학자 43명 이 정부 지원 결여가 호주에 체류하는 비 자 소지자에게 미칠 심각한 인도적 영향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임시비자 소지자의 경제적 곤란의 정도 가 분명해지자 자선단체들은 긴급 식량구 제를 위해 노력했고, 주정부에서 유학생, 난민, 기타 비자 소지자들에 대한 제한적 인 지원책을 도입했다. 유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지원금을 지불한 대학도 많다. 한인 사회에서도 한인회와 종교기관, 사업체, 공관에서 유학생과 워홀러를 대상으로 비 상 물품 꾸러미를 제공하거나 식사를 제공 했다. 이러한 여러 단체와 주정부의 개입 에도 불구하고 노조, 난민지원 단체와 이 민자사회를 포함한 기관 수백 곳에서 5월 과 7월 인도주의적 위기 악화에 대해 경고 했다. 박은진 기자
호주 정부, 워홀러 “소비재 취급” 유학-워홀 목적지로 호주 추천 안 할것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봉쇄로 위기가 닥 친 가운데 임시비자 소지자에 대한 호주 연방정부의 태도로 이들은 호주에 대해 실 망한 것으로 보인다. MWJI 조사에 따르면 유학생과 워홀러의 59%는 호주를 유학이 나 워홀 목적지로 추천하지 않을 가능성이
철통같이 이어온 유교문화의 단단한 벽 이 부숴져서 오늘 날에 이른다. 경제성장 과 더불어 결혼식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웨딩플래너라는 결혼 관 련된 모든 일을 대행하는 컨설팅업체까지 생긴데다 여행이 자유화 되었으니 신혼여 행은 보통 해외로 떠난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하늘 길이 닫혀 있지만 시드 니에서도 한국에서 온 커플룩의 신혼여행 객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지금의 여성들 은 많이 편해졌고 자유를 만끽하게 되었 다. 가정에서도 남편이 도와주고 육아는 의례히 같이 한다. 여권 신장은 쌍수를 들 어 환영하지만 지금은 자유가 위험할 정 도로 풀어져서 오히려 절제가 있어야 하 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여자의 일생에서 중대사인 결혼식날 신 부들의 얼굴 표정이 지난 한세기 동안 참 많이도 변했다. 당면한 시대적 요소들이 그 표정에 한 몫을 했다. 나는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며 그렇다고 커플룩으로 신랑과 다닌다 는 것도 내게는 얼굴 붉어지는 일일게다. 갑자기 앞으로 내 후손들은 또 어떤 모습 으로 변화가 될지 그것이 자못 궁금해 지 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