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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광장] 신부(新婦)의 표정 변천기-권영규/수필가,시드니한인작가회 회장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산더미처럼 쌓인 사진과 비디오를 정리하던 중에 조카의 결혼식 비디오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아하고 세련된 흰 웨딩드레스의 신부는 입장하며 연신 미소를 머금고 여유 있게 하객들과 눈 인사까지 한다.
퇴장할 때는 환하게 웃으며 답례를 하고 있다. 때마침 그림에서 본 꽃가마 타고 시집가는 조선시대 혼례 행렬과 새색시의 무뚝뚝하고 굳은 표정, 그리고 70년대 나 자신의 결혼식 모습을 돌이키면 격세지감을 아니 느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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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부터 20년간 조선을 방문하며 판화와 수채화를 그린 파란 눈의 미혼여성이 있다. 영국의 화가이자 작가이기도 한 그녀 이름은 엘리자베스 키스(Keith). 그녀의 책 <코리아 – 1920-1940> 를 번역함으로서 우리들에게 알려지지 않던 작품들이 책을 번역한 재미동포에 의해서 2006년이 되어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들은 그 당시 조선의 풍습이며 경관을 보여준다. 영국과 조선의 문화적 차이가 하늘과 땅같이 다를 진대 그 푸른 눈에 비친 조선이 얼마나 신기하고 흥미로웠을까.
엘리자베스는 ‘이 가난한 나라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사진 찍듯이 그림을 그렸다.
혼례 행렬,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주막 등 자신의 나라와는 전혀 다른 풍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 당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알려진 조그만 동방의 나라에 와서 그녀가 느꼈을 신비함. 그녀는 나라 잃은 조선인들을 연민의 눈으로만 보았을 뿐아니라 이화학당의 아펜젤러 교장과 함께 3.1운동 때 감옥에 갇힌 여학생을 면회 갔던 일도 전한다.
또한 어느 초라한 주막을 묘사하며 그 집 문 위에 ‘달을 쳐다 보는데 최고로 좋은 집’이라 써있었다고 전한 그녀 덕분에 비록 가난해도 이런 운치 있는 말로 객을 끌어 들이고자 한 주인장의 유머에 정감을 느낀다. 막걸리 한잔 들이키고 안주 삼아 달을 쳐다보던 가난한 나그네에게 주인은 부침개 한점 얹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원삼에 족두리 쓰고 앉아 있는 ‘한국의 신부’라는 그림과 설명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연지 곤지 찍고 고개를 약간 수그린 채 눈을 감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새색시의 표정이 굳어 있다. 지쳐 보이는 얼굴이다.
그림에 대한 화가의 설명은 이러하다.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종일 앉아서 먹지도 눈을 뜨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랑은 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남존여비 사상이 뼛속 깊이 녹아 있던 시대의 풍습에 따라 신부는 그러려니 하고 석고처럼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겠지만 새색시의 신세가 오죽 불쌍해 보였으면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날의 신부를 제일 비극적인 존재라고 빗대어 표현 했을까. 영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었을 터이니.
돌이켜보건대 나의 결혼식은 엄숙한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미소도 짓지 못했고 그렇다고 얼굴이 굳지도 않은 중간 지점이었다고나 할까. 흰 실크를 끊어다가 양장점에서 맞춘 웨딩드레스는 그 당시 나의 기호대로 지극히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원피스의 길이를 길게 했을 뿐 목선은 전혀 파지지 않은 매우 수수한 드레스였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라 결혼식장에서 예물 교환이 금지 되었고 하객들에게 답례품이 허락되지 않았다. 영국 화가의‘시골 결혼 잔치’라는 그림엔 잔치 준비로 꽤 많은 여인들이 부산하게 일하는 그림이 있는데 나의 결혼 때는 잔치마저 생략되었다.
철통같이 이어온 유교문화의 단단한 벽이 부숴져서 오늘 날에 이른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결혼식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웨딩플래너라는 결혼 관련된 모든 일을 대행하는 컨설팅업체까지 생긴데다 여행이 자유화 되었으니 신혼여행은 보통 해외로 떠난다.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로 하늘 길이 닫혀 있지만 시드니에서도 한국에서 온 커플룩의 신혼여행객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지금의 여성들은 많이 편해졌고 자유를 만끽하게 되었다. 가정에서도 남편이 도와주고 육아는 의례히 같이 한다. 여권 신장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만 지금은 자유가 위험할 정도로 풀어져서 오히려 절제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여자의 일생에서 중대사인 결혼식날 신부들의 얼굴 표정이 지난 한세기 동안 참 많이도 변했다. 당면한 시대적 요소들이 그 표정에 한 몫을 했다. 나는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며 그렇다고 커플룩으로 신랑과 다닌다는 것도 내게는 얼굴 붉어지는 일일게다. 갑자기 앞으로 내 후손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가 될지 그것이 자못 궁금해 지는 것이다.
권영규/수필가,시드니한인작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