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노조 소식지 제5호] 외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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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지부 소식지 12월 제5호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소식지 2019년 12월 제5호

외주노동(자)

외주노동(자)

외주의+외주의+외주

회사를 그만두고 외주 업무를 하게 됐을 때 가장 곤란했던 것은 내가 모

든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가

늠하는 것부터 일의 난이도와 작업비는 적절한지, 내 능력치로 언제까지

가능한 일인지, 혹은 이 일을 수락한 과거의 내 손목을 아작내고 싶어지

진 않을지 미래까지 점쳐보면서 매 순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는 건 정말 곤란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월급이 정액제였을 때는 감히 고

민할 필요가 없는 과정이었다. (일을 골라서 한다니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냐고 묻고 싶다면, 고정 수입이 사라지고 작업 의뢰가 언제 끊길지

모르는 프리랜서의 삶을 3초만 생각해주시길.)

머릿속으로 온갖 계산을 해가며 겨우 어떤 일을 선택 혹은 수락하고 나

면 그때부터 나는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사소하게는

각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교정교열 원칙부터 그 밖의 모든 작업 방향과

기준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바에 가장 근접하게 진행되어야 하므로, 또 한 외주자는 최종 결과물을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므로 감히 무엇을 결정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것이다. 가끔은 편집자로서의 DNA를(그런 게 있

다면) 견디지 못해 오지랖적 의견을 내보곤 하지만 그 의견이 덜컥 받아

들여져도 문제다. 아, 너는 지금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남 탓’의 그 ‘남’

을 담당하게 된 것이야!

원고 구성부터 보도자료까지 전체 업무를 ‘통’으로 외뢰 받는 일의 경우, 외주자의 의견이 과하게 중요시될 때도 있다. 자꾸만 을의 의견을 묻는

갑님 앞에서 나는 또 몹시 곤란해진다. “이렇게 저렇게 고치면 좋을 것

같은데 외주자님 생각은 어때요?” “네, 그게 좋겠네요.” “아니 꼭 이렇게

고치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제 의견이니까 참고만 하시고 알아서 판단

하고 진행해주세요.” 네? 제발 그냥 중요한 건 결정해주세요. 가끔 인쇄

감리까지 맡겨질 때도 있는데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이건 정말 최최종_

마지막_진짜최종 컨펌의 영역이지 않습니까. 저한테 왜 그러세요.

소속이 있을 때는 내 뜻이 확고하면 ‘책임편집자’로서 강력하게 주장을

하면 되고,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사 탓을 하면 되고, 내가 상사인데

뜻대로 하지 못하면 회사 탓을 하면 된다. 그런데 외주 용역 인력이 되고

보니,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과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상

황, 그리고 결정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한

꺼번에 들이닥쳐서 몹시 곤란하다. 조직의 정치에 휩쓸리지 않고, 상사

의 헛발질에 영혼까지 얻어맞지 않고, 그저 의뢰받은 일만 잘 해내면 세

상 평화롭게 책을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노 단위의 곤란함들을 촘 촘하게 쳐내야 하는 게 외주자의 일이라는 걸 과거의 나는 왜 몰랐을까.

아, 나도 곤란할 때는 그냥 외주의 외주의 외주를 주고 싶다. 정유민

가 의뢰가 원칙부터 내
싶다.
조직의

계약서, 쓰고 일하시나요?

1 업무 분야는 무엇입니까?

번역

5명 (13 2%)

디자인

6명 (15 8%)

마케팅, 포스팅관리 1명 (2 6%)

편집 26명 (68 4%)

(전체 응답자: 38명)

3 최근 3년간 외주 계약서를 쓴 적이 있습 니까? 있다 22명 (57 9%) 없다 16명 (42 1%)

(전체 응답자: 38명)

2 출판 외주자로 얼마나 일했습니까?

1년 이하 13명 (34 2%)

6 10년

4명 (10 5%)

10년 이상 7명 (18 4%)

1~5년 14명 (36 8%)

(전체 응답자: 38명)

4-1 계약서 작성은 주로 어떻게 이루어지나 요?

발주자(출판사)와 직접 계약 22명 (100%)

(전체 응답자: 22명)

4-2 계약서 작성 전 내용을 검토하거나 필요 시 수정을 요구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나요? 그렇다 19명 (86 4%)

아니다 3명 (13 6%)

(전체 응답자: 22명)

4-3 계약서 절차를 거친 작업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진행 시 순조로운 점이 있었나요?

■ 작업비 지급 시기가 지켜짐 7명

■ 크게 다르지 않음 6명

■ 작업 일정이 안정됨 2명

■ 마음의 안정을 얻음 2명

■ 계약서 작성이 순조롭지 않음 1명 4-4 계약서에서 수정 및 개선이 필요한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 업무 범위가 안정됨 2명

A 작업비 지급 시기 및 방식 7명 (31 8%)

B 작업비 체불 시 대책 5명 (22 7%)

C 하자 발생 시 배상 책임 4명 (18 1%)

D 업무 범위 및 방법 2명 (9 1%)

E 저작권 2명 (9 1%)

F 작업비 산정 1명 (4 5%)

G 없다 1명 (4 5%)

(전체 응답자 15명, 중복 응답 포함)

(전체 응답자: 22명)

A B C D F E G

5-1 계약서 작성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A 발주자가 제시하지 않음 29명 (80 6%)

B 요청했으나 발주자가 거부함 5명 (13 9%)

C 간략한 업무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 1명 (2 8%)

D 계약서 자체를 알지 못함 1명 (2 8%)

5-2 계약서 작성의 필요성을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5-3

(전체 응답자: 36명)

A 업무 범위가 변동될 때(추가 업무, 지나친 수정 요청 등) 15명 (41 6%)

B 작업비가 제때 지급되지 않을 때 9명(25%)

C 작업비(지불 방식) 조정이 필요할 때 6명 (16 6%)

D 없음 2명 (5 6%)

E 제작 사고가 일어났을 때 1명 (2 8%)

F 작업비(지불 방식), 저작권 등 계약 내용과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 기 위해 1명 (2 8%)

G 보기에 제시된 모든 상황 1명 (2 8%)

H 필요와 상관없이 반드시 써야 함 1명 (2 8%) (전체 응답자: 36명)

작성을 통해 가장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A 작업비 지급 시기 및 방식 13명 (36 1%)

B 업무 범위 및 방법 12명 (33 3%)

C 작업비 산정 4명 (11 1%)

D 작업비 체불 시 대책 3명 (8 3%)

E 작업 인도물 검수 방식 2명 (5 6%)

F 보기로 제시된 모든 내용 1명 (2 8%)

G 상황과 조건에 따른 다양한 계약 형태에 대한 상호 이해, 저작 물에 대한 이해 등 1명 (2 8%)

(전체 응답자: 36명)

‘외주출판노동.’ 이를 빼놓고는 산업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의존도가 높지만, 여전히 ‘출판’에서도 ‘노동’에서도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하다. 외주자의 노동

이 정당한 가치를 보장받지 못하고 이를 위한 출판계의 논의나 장치 마련이 제 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소식지 5호에서는 외주 작업 시 도급계약서 작성에 관 한 간략한 설문으로 지금의 실태를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2 1%(16명)가 작업 전 에 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출판사 측에서 먼저 계약서 작성을 제안하지 않는 이상, 출판사와 불평등한 관계에 있는 외주노동자가 계약서를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한편, 응답자의 57.9%(22명)가 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단순히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해서 외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됐다고 말하 기는 어렵다. 계약서를 쓴 일감의 진행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순조로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는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계약서가 안정감

을 주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 외주노동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설문 응답자의 60.5%(23명)가 임금 체불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체불

계약서
A B C D A B C D F E G H A B C D F E G

6 작업비를 받기까지 걸리는 평균적인 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A 출간 직후 한 달 이내 12명 (31 6%)

B 작업 완성 직후 한 달 이내 10명 (26 3%)

C 작업 완성 직후 60일 이내 8명 (21 1%)

D 출간 직후 60일 이내 5명 (13 2%)

E 작업 시작 시(계약금 등) 또는 중반, 작업 완성 후 등으로 분할 지급 2명 (5 3%)

F 작업 완성 직후 3달 뒤 1명 (2 6%)

7-1 작업비 체불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없다 15명 (39 5%)

있다 23명 (60 5%)

(전체 응답자: 38명)

7-2 작업비 체불 시 대응 가능한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A 발주자(출판사)에게 직접 이야기함 28명 (82 4%)

B 대응하지 않음 4명 (11 8%)

C 노조나 노무사 또는 시민단체에 문의함 2명 (5 8%)

(전체 응답자: 38명)

(전체 응답자: 34명)

을 겪고도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었다는 응답자는 4명(17 4%)이었다. 임금 체불 뿐 아니라, 외주노동자들은 업무의 범위나 내용이 지나치게 변동되는 문제도

겪고 있었다. 특히 계약서에 업무 범위를 명시하지 않아 출판사에서 미리 합 의되지 않은 추가 업무나 수정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경우가 잦다고 답했다. 기존에 작성했던 계약서의 수정 및 개선 사항에 관한 질문에는 6명(27 3%)

이 ‘임금 지급 시기 및 방식’을, 5명(22.7%)이 ‘임금 체불 시 대책’을 지적했 다. 이는 계약서 작성이 생략되는 문제뿐 아니라, 계약서의 실효성이 떨어지 는 현실을 보여준다. 기존 계약서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불안정한 작업

비 결제 문제가 지적되는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인 단가, 그리고 촉박하 고 변칙적인 일정, 비정기적인 일감, 경력 고려 부재 등 외주노동 과정과 조건

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계약서를 작성할 것. 작업비 지급 시기의 기준을 ‘출간 후’가 아닌 ‘작업물 인

도 후’로 할 것. 작업비 선정과 지급 방식, 업무 범위를 계약서에 명시할 것.

계약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임에도, 여전히 이 ‘최소

한’의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기본이 바꾸어

낼 외주노동의 모습을 기대해보면서.

A A B B C C D F E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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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소식지 2019년 12월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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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김은우 김지하 조은 디자인 강준선 나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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