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이 세상을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망한 세상에서 출판-노조하기
세태는 입니다.
책은 노동환경을 인플루고, 가지 쓰이는 노동을 빌어, 노동자들의
진심으로
출판노동유니온
史
2012. 09. 07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 창립
2014 쌤앤파커스 성폭력 사건 대응

2015 출판노동 실태조사 발표

자음과모음 부당전보, 부당노동행위 대응
2016 소란출판사 임금체불 대응
출판계 성폭력 실태조사 발표
2017 디자인소호 성추행 사건 대응
더난출판 보복성 손배소 대응
2018 소식지 1호 발행
2019 여성노동 실태조사 발표 (출판노동조합협의회 여성위원회)

2020 이상문학상 관련 사용자단체 비판 성명
출판문화발전 정부 포상 검증 대상자 문제 제기, 비판 성명
소설 사적 대화 무단 인용 사태 출판사 대응 방식 비판 성명
2021 출판 외주노동자 고용보험 도입 활동
대한출판문화협회
지켜나가는
우리 노조의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합니다. 10년의 절반이 안 되는 시간
부당함과 싸우는 일도 어렵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부럽고 존경스러운 순간들이
동안 조합원이었고, 그 절반은 노조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노조가 있다는 것을 비롯해서)
작은 성취감들이 정말 소중하다”고요. 주년10 진심으로 축하다.
저는 항상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하곤 하는데 몇 년간의 기억을
싸워야 할 때 함께 싸우고, 그렇게 성장하는 동료와 자신을 보
떠올려보니 그래도 한자리를 지켰네요. 소중한 임원분들과 여러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지켜야 할 가치를
계신 분께서 해주신 말씀이 잊히지 않 종종 읽으면서 힘을 얻곤 합니다. “극적인 것은 없고 판 자체를 바 없더라도, 회사와 업무가 서로 다른 좋은 동료들과 수평적으로
조합원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리 있지만 함께 가는 길이 행복해야만 한다는 믿음으로 노조 살림을 꾸려온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에 적힌 역사는 짧아 보이지만, 수많은 이들의 수만 수천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출판노동유니온을 만들었습니다. 밖으로 드러난 사건은 적지만 우리는 오늘도 우리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회사와 싸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동료 조합원들을 기다립니다. 노조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조금씩 달라짐을
느낍니다. 우리 함께 노조합시다!
김원중 | 출판노동유니온 사무국장
노동조합 가입 신청서
출판노동유니온은 언론노조 규약과 지부 규정에 따라
개별 조합원이 자발적으로 월 임금(세전, 수당 포함)의
1.1% 를 납부하게 됩니다.
조합비는 조합 운영 및 각종 사업에 소중하게 쓰이며 정기적인
회계 보고를 통해 그 내역이 조합원에게 공개됩니다.
작은 성취감들이 정말 소중하다”고요. 주년10 진심으로
출판노조 10주년을 축하합니다
출판노동자 동지 여러분, 팬데믹을 비롯한 사회의 변화 속에 악화된 노동조건은 출판
노동자들의 삶 역시 뿌리째 뒤흔들고, 노동조합의 울타리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일수록 그 충격을 고스란히 개인이 감내하는 고립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언론노조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조합원들의 삶을 지켜내고 더 많은
출판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당당한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여러분과 호흡하고 있습니다. 회사 밖 출판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상호부조가 가능하도록 할 (가칭) 미디어 공제회 출범을 통해 울타리를 넓히고, 작고 열악한 조직의 목소리가 소외되지 않도록 할 조직 강화 방안들을 실천에 옮기고자 합니다.
싸움은 강건하게, 동지들의 일상은 탄탄하게 지키는 생활 속의 산별, 언론노조가 만들어갈 것입니다. 전국의 만오천 언론노조 조합원을
대표해 출판노동유니온 10주년을 온 마음을 다해 축하드립니다.
윤창현 | 전국언론노동조합 11대 위원장 라떼. 논둑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학교가 있었다. 토요일이면 커다란
짐 자전거에 다 해진 책을 들고 와 20원 30원에 팔던 할아버지. 나는 책을 고르는 척 하며 논을 보고 쪼그려 앉아 무당, 부초,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같은 책들을 읽었다. 논에서 개구리 소리가 시끄러워지고 아이들이 다 돌아간 길에서 할아버지가 책을 주워 담으실 때 슬그머니 책을 놓고 돌아서도 잔소리도 안 하셨다. 신문지에 풀 붙인 봉투를 쓰던 시절 풀로 붙인 신문지를 침 묻혀 떼고 글자를 읽을 만큼 글이 고프고 책은 귀하던 시절, 난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고 살던 원영이가 그렇게 부러웠다. 원영이의 가방모찌를 자처하고 걔네 집에서 읽던 《죄와 벌》은 11페이지 다음에 86페이지가 나오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68페이지만 계속 나와서
베르테르와 로테가 어떻게 됐는지 지금도 모른다.
책이 참 많아졌다. 출판노동자들의 귀한 노동 덕분이다.
책이 참 좋아졌다. 출판노동자들의 근무조건도 그만큼 좋아졌을까.
임금은 안 밀리고 야간노동엔 정해진 수당을 받으며 최소한 법에 보장된
권리는 인정받고 있을까.
작가만이 아니라 책을 만들어내는 모든 이들의 노동이 빛나고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뭉쳐야 하고, 노조의 힘이 커져야 한다.
김진숙 |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언젠가 출판노동유니온에 계신 분께서 해주신 말씀이 잊히지 않아 메모해놓고 종종 읽으면서 힘을 얻곤 합니다.
“극적인 것은 없고 판 자체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회사와 업무가 서로 다른 좋은 동료들과 수평적으로 만나 함께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고 싸워야 할 때 함께 싸우고, 그렇게 성장하는 동료와 자신을 보면서 얻는 작은 성취감들이 정말 소중하다”고요. 10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노조가 있다는 것을 비롯해서) 부럽고 존경스러운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부당함과 싸우는 일도 어렵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나가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압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이형 | 전직 소설가
여전히 하고 있다 양선화
여섯 번의 퇴사를 거칠 때마다 나는 몰래 울었다. 나가라고 해서
나온 적도 있고, 꼭 나가라는 건 아니지만 너 같은 건 처음 본다는 듯 말해서 나온 적도 있다. 여하간 매번 실려서 나간 건 아니고 내 발로 걸어 나왔는데도 왜 그렇게 울었을까. 좋은 얘기도 아닌데 자주 읊게 되는 내 출판 역사다. 나에겐 지겨울지 몰라도 출판계에는 여전히 부족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난 안 되나 보다, 의 하루를 수백 번 거쳤지만 여전히 나는 출판을 하고 있다. 이유가 뭐겠는가. 노조다.
싫은 걸 견뎌내는 끈기도 약하고, 베스트셀러 기획에도 소질이 없고, 그렇다고 회사나 저자를 구워삶을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이런 나도 계속 책을 만들어도 괜찮다고, 노조가 끊임없이 나에게 주입했기 때문이다. 꼭 우리 노조뿐 아니라, 모든 노조가 그렇다고 믿는다. 너는 너로서 일하고 먹고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세상 유일한 공적 기관.
함께 싸운 우리, 지금 어디에
수영장에서 윤정기
7년 전 이맘때는 수영장을 걷는 기분이었다. 실제로도 수영에는 젬병이라 물에 뜨는 것보다는 물속을 걷는 쪽이 더 익숙하다.
부끄럽지만 함께 투쟁하는 이들의 도움과 응원에도 뭍으로 기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사측과의 마지막 교섭을 마무리하고 나니
숨 막힐 듯 넘실대던 수영장의 물이 썰물처럼 사라졌다.
나는 이후 몇 차례 직장을 옮기며 보통의 출판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물 빠진 수영장의 현실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출판노동자가
경험하는 열악한 노동문화와 노동강도, 저임금, 5인 미만 사업장의
법적 배제와 같은 문제는 7년 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출판노동은
여전히 과소결정되어 있다. 나는 이 수영장이 스스로 구축한 하나의
사례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이 만든 구조물 속에 갇힐 수 있다. 다만 그 속에 얼마만큼의 부채감과 자의식이 들어차 있든, 현실의 변화가 너무 더뎌 공허한 마음이든, 우리가 각자의 수영장에서 따로 또 같이 걸어왔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러면 다음 스텝은? 지금의 나와, 출판노동유니온 10주년이라는 꼬리표에 함께 붙이고 싶은 질문이다.
책의 입지가 좁아져만 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 세태는 우려해도 출판노동자의 입지는 우려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읽을 책은
나오지도 않을 텐데 말이에요. 좋은 책을 만들면서 좋은 노동환경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 책은 태생적인 슬픔을 꼬리에 달고 다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슬픔의 책이 아닌 보람의 책을 읽고 싶습니다.
굴욕의 책이 아닌 직립의 책을 쓰고 싶습니다. 당당한 책들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애쓰는
김겨울 | 유튜브 겨울서점
출판노동유니온에 축하와 감사를 표합니다.
활동하는 편집자님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신기하다’ 싶다가 이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합니다.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대단한 미문가도 아니며, 팔릴 듯 안 팔리는(?) 이야기만 골라서 하는 필자의 진심을 발굴해서, 두서없이 내던지는 말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돋보이도록 배치하고, 어깨를 바쳐가며 오탈자와 비문을 잡은 뒤, 결국에는 아름다운 물성을 지닌 책 한 권으로 만들어내는, 그 기 쓰이는 노동을 출판노조원이 아니라면 누가 해낼 수 있을까요? 공적인 지면을 빌려 사적인 감사를 전합니다. 세상에 다양한 빛을 더하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의 책을 출판노조에서
숨 쉴 곳이 되어준 출판노조, 고맙습니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기업별 노조를 벗어나 영세출판사, 외주노동자, 프리랜서까지 함께
뭉친 출판노동자들의 희망, 출판노동유니온의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김태현 | 마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 10년 동안 출판노동자들의 쉼터이자 배움터이자 투쟁터로서 너무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개인 또는 5인 미만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이 현실에 ‘출판노동유니온’이 사회에 던진 화두는 정말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출판노동자가 많아야 좋은 책도 많아집니다. 출판노동자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와 앞으로의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함께 연대하겠습니다.
임미선 |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금천수요양병원지부 지부장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이지은 | 편집자, 미디어창비
세 번째 회사에는 노조가 있었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월급이 밀려 생존을 위해 비자발적 퇴사를 했고, 선배들이 알려준 대로 공식 신고를 하고 월급과 퇴직금을 받아냈다. 이 마음고생을 다신 겪고 싶지 않았다. 노조가 있다는 사실은 지원하고 싶은 회사가 되기에 충분했다. 선배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가도 일자리를 보장받기 위해 노조를 결성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노조 소속으로 출판노동유니온을 만났고, 연대해야 할 세계는 내 회사뿐만 아니라 회사 밖으로 더 넓어졌다.
노조에 몸담고 있는 동안 부당발령과 부당업무지시, 부당해고, 조직 내 성폭력 등으로 조직에서 내몰린 동료들을 만났다. 허울 좋은 문화사업이라고 폼 잡을 땐 언제고 노동자들의 품위와 생존에는 관심 없는 대표들의 말에 지쳐가도, 글을 읽고 다듬는 게 직업인 우리들은 자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읽고 토론하고 정리하는 데 능숙했다. 우리의 힘을 기르기 위해, 세상에 관심을 호소하기 위해, 누구보다 명랑하게 투쟁 전략을 짰다. 함께 웃고 눈물을 나누고 어깨를 두드릴 줄 아는 우리가 마냥 좋았다. 회사에서 묻지 않는 것을 노조는 늘 물었다. 업무 환경은 괜찮은가요. 업무 강도는 어떤가요. 적절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나요. 그래서 내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고 내 일을 사랑할 수 있었다. 노조의 승리 소식이 들릴 때마다 회사 안에서 움츠리고 있던 어깨를 조금이나마 펼 수 있었다.
회사 밖 동료들이 서로를 지켜봐주고 있으니까.
어느덧 10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이후 복귀하는 후배를 진심으로 반가이 맞이했다. 저자를 접대한다는 명분으로 퇴근 후 끌려가야 했던 술자리는 적극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일 외의 스트레스 요소를 하나씩 없애왔고, 그럴 수 있도록 노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내 편이 되어준 고마움을 잊지 않고 후배들에게 갚아갈 테다. 일하다 외롭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면 노조를 찾아주면 좋겠다. 당장 해결이 어려워 보여도 자주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이렇게나 앞으로 전진해 있다.
다시, 노동자의 자리에서 탁수정 4월 29일.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무려 출장의 날이었다.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부산에 가야 했다. 요즘 내 유일한 밥벌이다.
4대보험에도 가입되어 있다.
출판노동유니온과 그 외 수많은 분들이 심폐를 소생해 살려놓은 나는 숨만 붙어 있던 때를 지나, 이런저런 사고를 치고 다니던 때를 지나 다시, 노동을 한다.
4월의 출근은 딱 하루였지만 엄청 피곤했다. 노동자들은 주 5일을 하는 일을, 나는 하루 하고서 노동절까지 뻗어버려 집회에도 나가질 못했다.
일은 행복했다. 중간에 잠시 감격해 울기까지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동료들은 피곤에 곯아떨어졌는데 나는 뭔가 욱하고 올라오는 걸 느꼈다. 노조 10주년 기념 축전을 쓸 타이밍은 바로 이때라는 걸 느꼈다. 아니, 이런 노동환경이 가능한데 그 회사는 왜 그렇게까지!
그때 쓴 글은 “나는 오늘도 실패했다”로 시작해 “내일도 실패하려면 일단 살아야 한다”로 끝났다. 다시 읽어보니 가관이다. 10년을 비장해왔는데 축전은 상큼한 방향 어때, 나여?
그래서 내가 다시 노동을 하고 돈도 번다는 소식을 전해본다.
아. 또 나는 노조 친구들이 까맣게 잊고 있을 즈음, 스크린에 나타날 예정에 있습니다. 많관부!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책이 되다
노동 권리지수 5등급(최하위 등급)의 나라, 산재 공화국. 우리나라는
국제노총이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노동권지수(Global Rights Index)에서
지금까지 최하등급인 5등급(노동권이 지켜질 보장이 없는 국가)을 벗어난
적이 없으며 매년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나라이다.
이 나라의 처참한 노동권, 심각한 노동 혐오를 알리려는 노력을 내 나름대로 오랫동안 해왔었다. 그러나 조금도 변하지 않는 사회, 모든 이슈가 진영 논리에 갇혀버리는 진절머리 나는 현실에 지쳤고 ‘이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라고 자포자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있는 ‘오늘의 열사’ 게시물을
보다가 문득 오늘 죽은 노동자의 소식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루에 6~7명이 일하다 죽는 나라에서 언론 보도는
턱없이 부족했고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사고 속보는 검색에서도
뉴스에서도 나오지 않고 숨어 있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본부터 시작하자. 적어도 사람이
일하다 죽으면 안 된다는 주장에 진영논리가 작동하진 않겠지’라는 마음도 있었다. 처음에는 블로그 게시물을 발행하였다. 그러나 죽어도
너무 많이 죽었기에 수시로 소식을 올려야 했는데, 블로그 게시물이라는
형식은 짧더라도 빠르게 소식을 전하기에는 적절치 않아 보였다. 그래서
신속하게 소식을 올릴 수 있고 발화성이 강한 트위터로 옮기고
2020년 12월 30일 첫 트윗을 올렸다.
2020.12.30노동자1명사망
팔로워 0, 팔로잉 0인 계정을 누가 볼까 싶었지만 계속 소식을 찾고 올렸다. 수치로는 알고 있었지만 찾고 올리다 보니 몸서리가 쳐졌다. 끔찍했다. 매일 사람이 죽는다. 떨어져 죽고, 기계에 몸이 찢어져 죽고, 쇳덩이에 맞아 죽고, 전기에 감전돼 죽고, 쇳물에 빠져 죽고, 유독가스에 질식해 죽는다. 죽었던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계속 죽는다.
현실이 맞나 싶었다.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어디서 보고 알았는지 많은 분이 계정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수백, 수천 명씩 팔로워가 늘어갔다.
그 많은 사람들의 첫 반응은 모두 똑같았다. “정말 이렇게 많이 죽어요?”
인천 청보산업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목이 끼어 죽은 20대 노동자가 뇌사 판정 후 장기를 기증하여 6명의 생명을 살렸다는 기사를 올리며 밤새 울었다. 맨정신으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술을 마셨는데도 잠은 안 오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에 계속 눈물을 흘렸다.
의견을 개진하거나 논쟁하지 않기 위해 팔로잉을 하지 않았지만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국가는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왜 이렇게 무능한가. 노동부가 안전감독을 하고 있는 현장에서도 일하다 죽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정부를,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날아온 메시지 한 줄. “시체팔이 하지 마라.”
논쟁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모두가 이해하리라는 기대도 접었다. 이 비참한 현실을, 죽음의 구조를 깨뜨릴 작은 실마리 하나라도 찾아야겠다는 마음만 간절해졌다. 감정을 다스리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지만, 꾸역꾸역 올렸다. 더 많은 사람이 이 비참한 현실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놀라움이 분노로 변하고 마침내 죽음의 사슬을 끊을 실체로 드러나길 기대하며. 2021년 12월, 죽음의 소식을 올리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되었을 때였다. 같이 놀라고 슬퍼하며 분노하는 많은 사람과 무엇이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출판사 온다프레스의 박대우 님에게 연락이 왔다. 오랫동안 출판노동자로 일하다 이제는 자기고용 노동자로 일하는 분이셨다.
“트위터에 올린 소식들을 모아 책을 냅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일인 2022년 1월 27일에 발간합시다.”
그 연락을 받은 것이 12월 22일이었다.
“한 달 만에 책을 만들자고? 동아리 회지도 한 달은 더 걸릴 텐데….”
걱정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만약 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그동안 썼던 트윗들을 백업해서 보냈고 박대우 님은 교정, 외부 원고 섭외, 표지 디자인, 알라딘 북펀딩 등을 동시에 진행했다.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박대우 님,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님과 메일로만 소통하며 알라딘 북펀딩을 올리게 되었다. 2021년 12월 30일. 첫 트윗을 올린 지 정확히 일 년이 되던 날이었다.
이걸 누가 해줄까 싶은 마음이었는데 기우였다. 하루 만에 목표금액(2백만 원)을 달성했고 최종 펀딩 금액은 7,563,600원. 764명이 참여해주었다. 노동건강연대, 박대우 님,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을 팔로우하는 많은 분의 적극적인 홍보와 연대 덕분이었다.
1월 27일 책이 나왔다. 트위터 변방에서 혼자 화내며 가끔은 울며 해왔던 일들이 아주 헛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어, 지붕에 올라가
소리라도 질러야겠다고 시작한 일이 한 출판노동자와의 만남을 통해 작은 울림이 되었다.
언론에 보도가 되기 시작했고 여러 차례 인터뷰도 하였다.
부담됐지만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한 번이라도 더 말하기 위해 애썼다.
이 나라의 비참한 노동 현실을, 매일 같이 죽어 나가는 노동자들을, 그로 인해 무너지는 수많은 가정을. 라디오 생방송 출연, 전화 인터뷰, 전태일 기념관에서의 북토크 등 무엇을 하자고 해도 거절하지 않았다. 시간이 안 맞으면 연차를 내서라도 다 참여했다.
한 출판노동자와의 만남은 ‘이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라며 자포자기하던 내게 세상을 바꾸는 주문, ‘이대로는 안 되겠다’의 힘을 알게 해주었다. 고마운 사람이다. 그리고, ‘왜 이런 일을 하세요?’라고 묻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어서 더 고맙다.
이현 | 트위터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계정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