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노조 소식지 제3호]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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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함께 만든 사람들 편집 강준선 양선화 윤정기 이지은 디자인 강준선 나영선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가입 문의 카카오플러스친구 맺기: '출판노조' 검색 네이버 카페 cafe.naver.com/booknodong 트위터 @happybooknodong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소식지 2019년 3월 제3호

허리디스크 환자〮 (구)근로자

허리디스크 환자의 출근

밤새 허리 밑에 대어놓은 전기찜질기는 아직도 뜨끈해서 떨어지기 아 쉽다.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누운 채로 몸을 옆으로 둥글게 말고 조 심조심 침대 아래로 내려선다. 유산균 한 알, 달맞이꽃종자유 캡슐 한 알씩을 삼키고 씻으러 들어간다. 생애 처음 등까지 길러본 머리는 일종

의 ‘안심’을 주었지만, 감고 말리는 데만 30분 이상이 소모된다. 허리와

목 근육의 고통은 덤이다. 편한 옷과 예쁜 옷, 아마 나에게만 의미 있을 기준 때문에 방황하다 겨우 옷을 선택하고, 허리를 굽히지 않은 채 발 을 꿰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구두를 바라보며 30초 정도 고민하지만 거

의 매일 신는 검은 운동화를 택하고 문을 연다. 이 과정에 왜 꼬박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지, 해명할 길은 영영 없다.

처음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은 것은 거의 10년 전. 새벽까지 월간 어린 이잡지를 마감하던 시절. 내 인생에 디스크는 출판과 함께 왔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이런 식으로 출근할 수 있을까? 부디 디스크와 출판의 가호 가 있기를.

부지부장 양선화 (구)근로자의 출근

20년도 더 전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뭐든지 참 느려, 대신 꼼꼼해. 그러니까 그냥 성실하게 하면 돼.” 느리다는 말에는 동감하지 만 꼼꼼하다는 말에는 갸웃한다. 성실하다는 말에는 글쎄 그것도 잘 모 르겠다. 아무튼 재주 없고 느린 사람은 성실하기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지각을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일찍 일어나 종종 뛰었다. 근 태 관련한 상사의 쓴소리를 듣지 않으며 근면함을 뽐내고 심지어는 어 떤 자부심 같은 걸 느끼기도 했다.

10여 년 전에 퇴근 시간으로부터 10분 정도만 지나면 왜 퇴근을 시켜주 지 않느냐고 툴툴대던 직장 동료가 있었다. 당시 서비스직이었던 우리 의 퇴근 시간은 대체로 잘 지켜지는 편이었고, 퇴근 시간에는 ‘당연히’ 퇴근을 했다. 그 동료가 툴툴댈 때마다 나는 속으로 ‘숱하게 지각을 하 면서 왜 퇴근은 그렇게 칼같이 하려고 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 다. 우리의 연장 근무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지각은 있어선 곤란한 우리의 결격 사유라는 것을. 일을 하다보면 좀 늦을 수도 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만 일하는 ‘노동 자’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문화의 첨단에 있는 책을 만드는 출판인 이다. 고작 출퇴근 시간이 그렇게 중요한가?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선 당신의 일상도 자연스럽게 책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어야 한다. 당 신이 지각을 세 번 한다면 결근으로 처리하겠다. 하지만 연장 근무를 세 번… 하라고 한 적이 있었나? 모쪼록 열심히 일하고 제때 퇴근하라. 시 간 내에 소화하기엔 일이 너무 많다고? 다들 아무 말 없는데 당신만 왜 그리 유난한가? 아무튼 일찍 일어나고 지각할 것 같으면 열심히 뛰어 라. 뭐가 어찌되었든 지각은 곤란하다. 조합원 강준선

프리랜서의 출근 사전에 따르면 출근은 “일터로 근무하러 나가거나 나옴”이니, 나 같은

외주노동자에게 출근은 영 이상한 말이다. ‘집으로’ 일하러 ‘나간다’니.

집은 (특히 남자들에게는) 휴식을 위한 공간인데 일하러 집에 가야 한다니. 여하간 외주노동자의 출근은 대체로 쉽다. 자다 깨서 어찌어찌 책상에 앉기까지만 하면 된다. 지옥철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화장은커녕 세 수조차 안 해도 상관없다. 늦잠을 자든 종일 누워 뒹굴든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 마감만 맞춘다면야. (마음껏 부러워하시길! 외주자도 좋은 점은 있어 야죠.)

외주노동자는 ‘분리’가 안 된다는 점에서 원룸 생활자와 비슷하다. 원룸 살이는 부엌과 방이 분리되지 않아서 냄새가 빠지지 않는 게 괴롭다고 들 한다. 일과 쉼이 분리되지 않는 외주+기혼여성의 삶은 돈 버는 일과 살림과 육아가 한데 뒤범벅된 아수라장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낮에 일 에 집중하지 못하니까 밤에 일하느라 길게 자본 적이 없다. 일하다 말고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일하다 말고 빨래 널고 개키고. 20년이 그렇게 흘 렀다.

인생을 바꾸는 방법은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 운 사람을 사귀는 것”뿐이라던데, 나는 늘 집구석에 묶여 있어서 인생

이 이토록 안 바뀌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책상 앞으로 ‘출근’하면서 아무래도 작업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합원 이현숙 신입사원의 출근

첫 출근길, 내 가슴은 콩콩 뛰고 있었다. 긴장감보다 설렘으로 가득했 다.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출판계 재목으로 성장한 먼 미래를 머릿속 에 그렸다. 마음만은 이미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척척 만드는 베 테랑 편집자였다. ‘이것 좀 번역해주세요.’ 그날 오후 드디어 첫 업무가 주어졌다. 멋지게 마무리해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지. 호기롭게 파일을 열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와장창 소리와 함께 박살났다. 파일 내용인즉슨 해외 무슨 콘퍼런스에 참가하는 사장의 한글 자기소개서 였다.

입사 후 일 년, 훌륭한 재목이 되리라 다짐했던 출판계 새싹은 연둣빛을 잃었다. 지하철에서라도 좋은 글을 읽고 눈을 정화해야지. 아침마다 책 을 챙기지만 펴보는 일은 좀처럼 드물다. 그저 빈자리를 찾아 앉기 바쁘 다. 눈이라도 잠깐 붙일까,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새 내릴 역이다. 문득 어제 다 보지 못하고 책상 위에 쌓아둔 원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 게 미루고 읽지 않은 메일들이 떠오른다. 아찔한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아 보지만 그뿐이다. ‘이것들을 다 어찌하누.’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한 숨을 푹 내쉬며 컴퓨터를 켠다.

김영훈

프리랜서〮신입사원
조합원

상반기, 달리고 있습니다

1월

1월 5일 달력&소식지 포장 발송

1월 9일 출판노조협의회 대표자 회의 참석

1월 17일 출판노동 Q&A PDF파일 배포

2월

2월 5일 (송년회 애장품 경매로 마련한) 연대 기금 전달 - 5년째 복직 투쟁 중인 구미공단 최초의 비정규직

노동조합 아사히비정규직지회 - 전시 여성폭력 피해 여성 지원기금 ‘나비 기금’

2월 1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제29차 정기대의원대회 출석

출판노조협의회 대표자 회의 참석

2월 18일 신입조합원의 날

- 최근 1년 가입 조합원 중 7명 참석, 식사와 담소

2월 22일 문화예술노동연대 간담회

-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3월

3월 5일 상반기 강좌 1차 [회사가 노답일 땐? 노조가 답이다!_김민아 노무사]

3월 11일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연명

3월 12일 출판노조협의회 대표자 회의 참석(예정)

3월 22일 출근길 선전전 (합정역 오전 8시~8시 45분)

4월 이후

4월 9일 상반기 강좌 2차 [디자인-편집 커뮤니케이션_정은경 디자이너]

4월 16일 상반기 강좌 3차 [출판유통과 새로운 독서문화_박태근 MD]

5월 4일 메이데이 집회 참가

5월 11일 상반기 강좌 4차 [여초업계 여성 노동자들과의 간담회]

집행부 소식

파주로 출근합니다

아침 8시가 되기 전 메세나폴리스에서 서교동 사거리로 향하는 길목에는 전세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채 식기 전부터 계획 되었던 파주출판도시는 2000년대 들어 현실이 되었고 동시에 파주 출판 인들의 출퇴근 전쟁이 시작되었다.

큰 회사들은 자체 셔틀버스를 운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출판도시입주 기업협의회(이하 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탄다. 만약 셔틀버스도 없었다면? 2200번 버스, 택시, 자가용이라는 선택지뿐이다. 출판사 다니 며 받는 월급으로 자차 소유는 먼 일이고, 시계(市界)를 넘나드는 택시비 역시 마찬가지로 부담스럽다. 결국은 셔틀버스다. 이마저도 없던 시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상상하기 힘들다.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협의회는 고용노동부의 ‘지역산업맞춤형 일자리창 출 지원사업’에서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 지원도 1년 내내 되는 것이 아니고 해마다 1~2월은 자부담 운영으로, 거의 20만원에 가까운 돈을 받 아간다. 심지어 올해는 3~4월에 해당하는 비용까지 추가로 걷어갔다. (조 사를 해보니, 협의회에서 제출했던 예산보다 깎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과 칼럼

©아이엔티스튜디오 김준연

단지 내에 있는 회사라고 무조건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비회원이거나 신청 내용을 정확히 전달받지 못하면 기간을 놓쳐 셔틀버스를 못 타게 되 는 상황도 꽤 있다.

단순히 출판단지가 ‘파주’에 있는 것이 불만은 아니다. 오히려 서울의 지 옥철보다 셔틀버스가 편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출판단지를 파주 로 옮겨놓기만 한, 출판인(이라고 하는)들의 무책임에 화가 난다. 그들은 교 통문제 하나 해결하지 않고, 지원금을 받는 것 외에는 정부에 제대로 요 구하지도 않았다.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노동자들이다. 협의회가 어떻게 셔틀버스를 운영하는지, 통근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고 노동 자들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부지부장 김원중

신기한 선물

[회사가 노답일 땐? 노조가 답이다!] 강연 참석 후기

6년 전쯤 신기한 선물을 받았었다. 아는 사람이 시작한 게스트하우스에 서 며칠 일을 도울 때였다. S는 세계 일주 중인 프랑스인이었는데 우리

가 여행기를 흥미롭게 듣자, 헤어질 때 선물을 몇 개 건넸다. 터키에서

산 엽서, 일본에서 산 캐러멜, 카자흐스탄 하늘이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것이었다. ‘와 진짜구나. 이 사람 여행하는 거.’ 실감이 났다. 같이 듣던 내 친구가 물었다. “이제 돌아가면 취업해야 하는 거야?” S는 말 했다. “나 회사 다녀. 여행 때문에 1년간 휴직한 거야.” 직장인도 아니 었고 심지어 취업준비생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게 엄청난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덤덤한 말투는 더 대단한 거라는 것도.

강연을 듣다 S가 생각났다. 프랑스에서는 1인 파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는 말씀을 들을 때였다. ‘1인 파업! 세상에 그거 오늘도 내가 하고 싶었 던 거잖아!!!’란 생각과 함께 떠올라버린 S의 얼굴, 그을린 목, 선물 꾸 러미. S는 잘 있을까. S의 표정을 다시 기억해보고 싶었지만 잘 떠오르 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쩐지 자꾸 노력하게 됐다. 회사 이야기를 들려 줄 때의 S의 표정이 어땠더라. 기억이 너무 희미했고 아마 다시 S를 만 나 들어볼 수도 없을 테지만, S를 기억해내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이상 하게 안심이 되었다. 1인 파업이 가능한 나라, 조직에 노조원이 한 명이 어도 전체 조직원이 노조와 회사가 맺은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 나라, 1년 휴직을 하고 걱정 없이 복귀하는 S. ‘노동자’라는 좌표축 안에 우리 를 같이 둘 수 있을까? 우리 사이를 하나의 관계식으로 정리하자면 슈 퍼 고차 방정식이 필요할 것 같지만 어쨌든 내 좌표축 안에 노동자 S를 두었다. 든든했다.

S 생각, 사장님 생각, 몇 번의 ‘헐랭...’ 뒤 세 시간 같은 두 시간 십오 분 이 지나 있었다. 밖으로 나서며 강연을 같이 들은 전 직장 동료에게 “이 제 노동자로 사는 시간만큼은 준 프랑스인이 되어보겠다”고 말했다. 동 료가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주말 엠티를 자연스럽게 안 갈 수 있는지, 너무나도 한국적인 고민을 약 30분 동안 하고 헤어졌다. “준 프랑스인의 하루는 어땠나요?”

다음 날 동료가 물었다. 그날의 나는 하필 K-회사원의 전형이었다. 웃음

만 나왔다. 하지만 강연장에서 만난 또 다른 노동자, 너무 많이 구부려 나중에 손이 갈고리처럼 휘었다는 산업혁명 시기 탄광촌의 한 소녀 생 각이 났다. 그 소녀를 보며 누군가 ‘이래도 되는 걸까?’ 의문을 품게 된 것이 노동운동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신다는 노무사님의 말씀을 곱씹었 다. 인식의 변화가 시작의 시작이라면 오, 이제 프랑스인으로서 일주일 이 지났다.

조합원 ji the french man

리뷰

그림: 조합원 amber

조합원 광고

- 안녕하세요, 아이엔티스튜디오의 김준연입니다.

- 창비·제철소·마음의숲·수오서재·온다프레스 외 다수의 출판사와 작업했습니다.

백낙청·김려령·문태준·조해진·최정화·故노회찬·변영주·정혜신·김대식 등의 사진을 찍었고요. 계간 『창작과비평』의 대담 사진도 꾸준히 찍고 있습니다.

- 출판 편집자로 10여 년 동안 일한 뒤,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원고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여 그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 아래의 사이트에서 작업 목록을 확인해주세요.

http://www.intstudio.co.kr/studio-a

작업 의뢰는 이메일 계정 intstudio.seoul@gmail.com을 통해 하실 수 있습니다.

출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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