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토요일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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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선일보

2022년 5월 7일 토요일

밴쿠버 문학 (사)한국문인협회밴쿠버지부 토요 기고 <436>

무지개 실은 배

霓舟 민 완 기

사)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

‘아호’를 하나 갖기로 하였다. 오래 전부터 큰 숙제처럼 여겨지던 일이었 는데, 유독 금년 들어 그 욕망이 간절 해져서 시간이 날 때마다 옥편을 들여 다보거나, 좋은 호를 가지신 분들, 특 별히 문인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 는 자신을 만나곤 하였다. 사실, 십대 홍안 시절 고교 문예반 의 단짝 친구 셋이서 장난 삼아 호를 지어 나누어 가진 일이 있다. 글’翰’자

앞에 아침 ’朝’, 지혜 ’智’, 사랑할 ’慈’ 를 붙여서 각자가 아침 같은 글과, 지 혜로운 글과 사랑이 가득한 글을 써보 자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사실 속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집합을 걸어서 빳 다를 쳐대는 못난 1년 선배들을 글로 ‘ 조지자’는 치기 어린 울분의 발로이기 도 하였다. 나를 진심으로 알아주는 이가 가족 이외에는 더 있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모처럼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 아호’ 공모의 의사를 한번 타진해보았 다. 아빠는 볼수록 매력이 있으니까 ‘ 볼매’는 어떠한지 라는 작은 아들의 상당히 달달한 외교적인 제안에 급 마 음이 흐믓하였지만, 아빠는 한번 했던 이야기를 언제나 마치 처음 하는 이야 기처럼 하고, 또 하고, 매번 새롭게 시 작하시니까 ‘사골’선생은 어떠한가 라 는 큰 아들의 멘트에는 급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장 하이라이트는 아내의

제안이었다. 당신은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도 알게하기를 좋아하니까 아 호로 ‘생색’은 어때요하는 통에 가족 모두가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이대 로 질 수는 없기에 아내에게는 ‘정색’ 여사 라는 아호를 반사해서 돌려주었 지만… 결국은 자연 현상 중에서 평소 개인 적으로 가장 애착을 느끼고 좋아하는 무지개를 가지고 호를 한번 만들어보 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살아온 날들 가 운데 내게 가장 무지개와 같은 순간 들은 언제였는지를 한번 돌아보았다. 캐나다 이민을 선택한 후, 제일 먼 저 써서 제출했던 레쥬메가 당시 막 개교한 한 한글학교 교사 응모원서를 위함이었다. 그 학교와의 인연은 사사건건 학사 운영을 간섭하는 학교 이사진과의 갈 등으로 학교장이 조기 퇴진하는 통에 함께 접게 되었지만, 그 후 프레이저밸 리 지역의 한글학교 교사로, 이어서 학

단추를 달며 교장으로 인생의 황금기인 40대와 50 대 초반을 보내면서 생업과 주말 학교 봉사로 그야말로 동분서주했던 시기 가 떠올랐다. 당시 학교홈페이지를 제작하면서 대문을 클릭하면 첫 페이지에 어떤 문 구를 넣어야 할까 고민했던 순간이 있 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디서나 당당 한 리더로 서기를 원했고, 그러기 위해 자기 색깔이 분명한 가운데, 주변과도 잘 어울리며 화합하는 마치 하늘의 일 곱 빛깔 무지개 같은 사람들이 되었으 면 하는 마음으로 ‘함께 무지개를 만 들어 나가요’라는 캣치프레이즈를 만 든 기억이 새롭다. 사전을 검색해보니, 밝고도 선명한 안쪽의 무지개는 숫무지개 ‘虹’(홍)으 로 쓰고, 바깥쪽을 싸고있는 눈에 잘 안 띄는 은은한 무지개를 암무지개 ‘ 霓’(예)로 사용함을 알게 되었다. 이미 耳順을 훌쩍 넘긴 나이에 ‘虹’을 꿈꾸 기는 과욕이다. 그리하여 암무지개 ‘ 霓’를 골랐다. 그리고 남은 과제는 짝 을 맞추어 배필이 되어 줄 글자를 고 르는 일이었다. 압축을 하고, 엄선을 해서 어린 아이 ‘兒’, 강 ‘江’, 연못 ‘潭’, 글월 ‘文’ 등을 놓고 몇 달을 고심하던 끝에 마침내 배 ‘舟’자를 선택하게 되 었다. 문득,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는 ‘무지개와 기왓장’이라는 동화가 떠오른다. 일생을 무지개를 손에 쥐고 오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던 한 사나이 가 노년에 늙고 병들어, 깨진 기왓장 두 장을 들고 고향으로 쓸쓸히 돌아 온다는 스토리이다. ‘예주’라는 아호를 가지면서 남은 나의 삶의 여정과 항해 에는 ‘무지개 언약’이 끝까지 그 배 안 에 담겼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 아본다.

사위의 양복 단추를 달며 돋보기를 꺼내 쓰니 바늘귀에 실을 꿰어달라면 찌푸리던 미간이 울먹거린다

임현숙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가신 지 오래 숨결 묻어나는 것 전혀 없어도 불쑥불쑥 빙의하는 시어머니

불혹에 홀로 백일 된 아들 고이며 부엉부엉 지새우는 밤 한숨 타래로 바느질하던 심경 더듬더듬 알아가는 시간

어머니 저는 늘 푸른 소나무일 줄 알았습니다

침침한 안경알 너머로 뭉개진 젊은 날이 스치고 핏대 푸른 손가락 붉은 눈물방울로 추억을 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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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토요일 2022 by Vanchosun - Iss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