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꿈꾸며
기독교 교리는 그리스도인 개인과 교회의 신앙에 뼈대를 형성하고
주는 필수불가결의 체계적 가르침이다. 그렇기에 기독교 교리 를 배우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그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신앙 활동의 하나라고 하겠다.
이 책의 내력
이번에 출간하는 『기독교 교리 탐구 1』은 그 내용 구성 작업을 꽤 오
래전부터 시작했다. 최초의 모판은 2000년도 한동대에서 교양 과목으
로 개설한 “기독교의 이해”였다. 2002년에는 같은 내용으로 두란노
바이블칼리지를 통해 “성경과 교리”라는 강좌를 선보였다. 합신에서
도 2002년부터 이따금 “조직신학 개요”라는 코스명으로 선택 과목을 제공했다. 이 모두가 한 학기 동안 기독교 교리를 전반적으로 소개하 는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기독교 교리를 좀 더 상세하고 장시간에 가르치는 일은 합신의 18년( 1996-2014 ) 동안 이루어졌다. 이때는 한 학기에 서론, 신론, 인간 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의 조직신학 일곱 영역( loci ) 중 어느 한 영역을 교수하게 되어 있어서, 결국 합신에 재직하는 동안 모든 분 야를 최소 3회에서 최대 10회까지 반복하여 강의할 기회를 가졌다.
가장 최근에는 이른바 COVID-19를 겪으며 4년간( 2021-2024 ) 줌 신
학 강좌를 개설했는데, 이 강좌를 통해 서론, 성경론, 신론, 천사론, 인
간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 10분야의 교리 주제
를 다룰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 결실한 첫 열매가 『기독
교 교리 탐구 1』이다.
이 책의 특징
『기독교 교리 탐구 1』은 어떤 책인가? 나는 이 책의 특징을 세 가지
로 밝히고자 한다.
첫째, 이 책은 신학적 성격상 복음주의와 개혁파의 입장에 뿌리를 내
리고 있다. 모든 조직신학 서적은 저자 개인의 신학적 입장과 신앙 형
성 배경을 반영한다. 이 책이 교리서이므로 책의 서두에 저자의 신학
적·신앙적 배경을 밝히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와 전혀 상관없는 집에서 태어나 1971년 대학교 3학년
끝자락에, 복음주의 선교 단체인 한국기독학생회( IVF ) 의 모임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했고, 1974년부터 1983년까지 거기서 간사와 총무로 사역을 담당했다. 간사로 근무하는 동안 총신대학교 신
학대학원을 다니며 목회학 석사( M. Div. ) 과정을 수료했다( 1975, 19781979 ). 미국에 건너가서는 칼빈 신학교에서 변증학으로 신학 석사( Th. M. ) 과정을 밟았다( 1984-1986 ).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부터 미국에 머
무는 내내 나 자신을 복음주의자로 자처하고 있었다( 1983-1996 ). 그러다가 1996년 귀국 후 합신에 재직하면서 개혁파 신앙에 대한
일종의 ‘회심’을 겪게 되었다. 그전까지도 나는 줄곧 장로교회를 다녔 고, 총신과 칼빈 신학교에서 수학했으므로 개혁파 신앙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합신에서 조직신학 강의를 위해 벌코프( Louis Berkhof, 1873-1957 ) 의 『조직신학』을 자세히 살피다 보니, 개혁파 신앙에
대한 나의 이해와 헌신이 상당히 피상적임을 절감했다. 벌코프의 책에
대한 분석적 읽기를 시도하면서, ( 비록 어느 한순간에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
나는 나의 구원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주권적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심령 깊숙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깨우침의 전후가 너무 다르므로 나는 감히 ‘회심’이라는 말을 쓰는 것 이다.
이렇게 복음주의적 신앙과 개혁파 전통이 나의 신앙적·신학적 배경 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 책은 교리에 있어 성경의 근거를 제시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자 했다. 기독교 교리서는 대체로 논의 중인 교리에 어떤 성경적 근거 나 증거가 있는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가끔 조직
신학 책을 읽다 보면 해당 성구가 잘 맞지 않든지( 단순히 인쇄상의 오기가
아니고 ), 전혀 상관이 없는 구절이 불쑥 인용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런 현상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하게는 그 책의 저자가 성경
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드러내는 셈이다. 성경이 우
리의 모든 신앙과 생활의 절대적인 표준이라면, 교리에서도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행 17:11 )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부터 이런 폐습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떤 교리에 대해서든
늘 몇 가지 사항을 되새기곤 했다. 우선, 특정 교리의 성경적 근거가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또, 과연 그렇게 제시된 성경
적 근거가 논리적·주석적으로 합당한지 점검하는 작업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끝으로, 성경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 때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여타 신학적·철학적 근거가 있는지, 있다면
셋째, 이 책은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에서 겪는 교리의
문제를 언급하고자 힘썼다. 꽤 많은 교리서는 서구 작품의 번역이거나
판박이이기에 우리의 문제가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우
리는 우리만 느끼는 독특한 교리상 의문이나 질문이 있는데, 아무도
이런 문제를 드러내거나 해명하거나 답변을 제시하거나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씨름해 왔고, 아직도 속 시원히
해결을 본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부터 교회 안팎에서 사람들이 반복
적으로 제기하는 교리상 의문점을 수집하고 이것이 어떤 교리 주제에
속하는지 분류해 왔으므로, 이런 내용을 현재의 교리서에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었다.
모든 교리서는 저자의 주력점과 특징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제약점
또한 지니게 마련이다. 내 생각에 이 책에는 두 가지 약점이 있다. 첫
째, 『기독교 교리 탐구 1』은 현대 신학자의 사상을 천착하지 않는다.
물론 교리를 설명하는 어간에 여러 신학자를 거론하고 등장시키지만,
교리적 주제와 관련한 현대 신학자의 신학 사상을 파고드는 것은 아
니라는 말이다. 둘째, 이 책에서는 해당 교리 주제의 교회사적 발전 과
정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다. 이런 역사적 고찰은 이 교리서의 취급 범
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이 책의 탄생
『기독교 교리 탐구 1』은 집필이 매우 늦어졌다. 실은 벌써 15년쯤
전에 백금산 목사님과 더불어 책의 출간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 그런
데 나의 개인 사정 때문에 차일피일하다 보니, 그동안 세월만 쏜살같
이 지나갔다. 몇 번씩이나 반복된 언질에도 내 편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2024년 초에는 비장하게 각오하고, 반드시 올해
안에 기독교 교리의 첫 부분을 완성하겠노라고 거듭 다짐했다. 몇 가
지 예상 밖의 사태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지속적인 도우심으로
2025년 1월에 『기독교 교리 탐구 1』을 탈고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출간에 앞서 백금산 목사님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가 나를 믿고 긴 세월 동안 기다려 주었기에 이 책이 완성될
수 있었다. 또, 최근 수년에 걸쳐 사랑 줌 아카데미의 조직신학 강좌에
참여하면서, 열성과 기도를 아끼지 않은 회원( 특히 김종군 목사님 ) 께도 기
쁨의 마음을 표한다. 끝으로, 쉬지 않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나
와 동역한 하나뿐인 아내 김영아에게 충심의 사랑을 바친다.
1장 교리와 그 발전 과정
1. 교리에 대한 안내
‘교리’( 敎理 ) 란 기독 신앙의 중심 가르침에 대한 이론적·개략적 틀
을 일컫는 용어인데,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교리와 가까운 성경
의 단어로서는 ‘가르침’과 ‘교훈’이 있다.
‘가르침’은 여러 경우 예수 그리스도( 마 7:28; 22:33; 눅 4:32; 행 13:12 ) 와
연결되고, 사도들에 의한 것( 행 2:42; 5:28; 17:19 ) 도 언급이 된다. 그러나
연관 대상 없이 단어만 등장하는 수도 있고( 딤전 4:16; 5:17; 딤후 4:2 ), 심지
어 가르침의 기원이 바람직하지 못한 주체인 경우( 골 2:22; 딤전 4:1 ) 도
있다. ‘교훈’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활동에 많이 등장하는데( 막
1:22, 27; 11:18; 요 7:16, 17; 18:19 ), 적대 무리의 교훈( 마 15:9; 막 7:7 ) 에도 적용
되었다. 물론 어떤 때는 ‘교훈’이라는 단어만 등장하는 수도 있다( 롬 6:17; 딤전 6:1; 딤후 3:16; 딛 2:7 ). 후대에는 교훈의 주체를 하나님( 딛 2:10 ) 이 나 그리스도( 요이 9절 ) 로 말하고 있고, 교훈의 내용( 행 22:3; 딤전 6:3하; 히 6:2 ) 을 표현하기도 했다. 교회 안팎에 불건전한 가르침이 모습을 드러
내자 바른 교훈( 딤전 1:10; 딤후 4:3; 딛 1:9; 2:1 ) /좋은 교훈( 딤전 4:6 ) 과 그릇
된 교훈( 엡 4:14; 딤전 1:3; 히 13:9; 계 2:14, 15 ) 을 구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 신약 내 발전 단계
가르침/교훈에 대한 신약의 내용을 종합해 보건대, 예수는 공생애를
통해 여러 가지로 가르침/교훈을 베푸셨고( 마 7:28; 22:33; 막 1:22, 27; 11:18; 눅 4:32; 요 7:16, 17; 18:19; 1단계: 30년대 중엽 ), 이것이 오순절 이후부터 구약
과 예수의 교훈으로 구성되었을 “사도의 가르침”( 행 2:42 ) 으로 점점 형
태를 갖추기 시작했는데( 2단계: 30년대 말엽 ),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는
이러한 가르침이 하나의 표준
3단계: 50년대 중엽 ).
지녔던 것 같다( 참고. 롬 6: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
니(마 7:28)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
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롬 6:17)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에 대한 교훈( 딛 2:10 ) 이고 또 그리스도에 대 한 교훈( 요이 9절 ) 이었다. 바울이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의 목회서신을 보낼 즈음( 4단계: 60년대 초엽 ) 에는 거짓 교훈이 많았으므로( 딤전 1:3; 4:1; 6:3 ), 바울은 특히 바른 교훈을 많이 강조했다( 딤전 1:10; 딤후 4:3; 딛 1:9; 2:1 )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
니(딤전 1:10)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딤후 4:3)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
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딛 1:9)
이리하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교회는 체계화된 신앙적 교훈 내
용을 갖추게 되었으니, 이것을 통상 교리라고 부른다.
이상의 설명을 좀 더 알기 쉽게 시기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단계 ( 30년대 중엽 ) :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여러 가지 내용의 교
훈을 베푸심
2 단계 ( 30년대 말엽 ) : 사도들이 오순절 이후부터 예루살렘 교회에
서 구약과 예수의 교훈을 가르치게 됨→이러한 사도의 가르침 은 교회가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면서 더욱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 게 되었을 것임
3 단계 ( 50년대 중엽 ) :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는 이미 사도들의 가르침이 하나의 표준적 형태를 지니게 되었음
4 단계 ( 60년대 초엽 ) : 바울은 거짓 가르침에 맞서 바른 교훈의 중
요성을 수시로 강조함
교훈, 교리, 교의
교리가 무엇인지 밝히려면 다른 연관어나 용어들과 함께 살피는 것 이 유용하다. 그래서 ‘교리’ 전후에 ‘교훈’과 ‘교의’를 끌어들였다.
1. 교훈과 교리
먼저 교훈과 교리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복음서의 한 부분을 읽어
보자.
24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
니하리니 이것은 네가 믿느냐 27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 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32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 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
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24-27, 32-35)
우리는 상기 구절을 읽으며 여러 가지 사실과 정보에 접한다. 그 내
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예수는 마르다에게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밝히셨다 ( 25절 ).
- 예수는 자신을 믿는 자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리라고 선언하 셨다( 25-26절 ).
- 마르다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 는다고 고백했다( 27절 ).
- 예수는 마리아와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
통함과 측은함을 느끼셨다( 33절 ).
- 예수는 나사로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물으셨다( 34절 ).
- 예수는 눈물을 흘리셨다( 35절 ).
이상의 여섯 가지 진술은 모두 성경 내용을 읽으며 찾아낸 것이다. 이
여섯 가지 사항을 나는 ‘교훈’( 敎訓 ) 이라 칭하고자 한다. 즉, 교훈은 “성 경의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는 여러 가지 가르침”을 뜻한다. 교훈에
대한 이런 정의는 편의상 나 자신이 임의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상의 교훈에서 다음과 같은 추론적 진술 또한 도출할 수
있다.
(D1) 예수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다( 25절 ).
(D2) 예수는 자신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신다 ( 25-26절 ).
(D3) 예수는 나사로가 어디에 묻혔는지를 몰라서 사람들에게 물으셨다( 34절 ).
(D4) 예수는 슬픔과 비통함으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셨다( 35절 ).
(D5) 예수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다( D1과 D2의 종합 ).
(D6) 예수는 여느 사람과 똑같은 인간이다( D3과 D4의 종합 ).
(D7)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다( D5과 D6의 종합 ).
상기한 (D1)-(D7)의 진술은 그냥 교훈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존재인지를 밝히는 중요한 교훈이다. 이 교훈들은 기독 신앙의
존립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진리다. 바로 이런 교훈 내용을 가리
켜 ‘교리’( 敎理, doctrine ) 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교리는 “기독 신앙의 핵
심 내용에 대한 체계적 교훈”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교리가 교훈과 차별화되는 것은 두 가지 점 때문이다. 첫째, 교리는
평범한 내용이 아니고 기독 신앙의 핵심 내용에 대한 것이다. 둘째, 교 리는 교훈과 달리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지 않고 일목요연한 체계를 갖 춘다. 그리하여 교리는 성경, 하나님, 인간, 예수 그리스도, 구원, 교회, 종말 등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내용의 체계화를 지향한다.
2. 교의
내친김에 ‘교의’( 敎義, dogma ) 의 의미까지 밝혀 보자. 교의란 “어떤 교
회나 교파가 공식적으로 작성하고 인준하여 선포하는 교리 체계”1)를 뜻
한다. 예를 들면, 장로교 교의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수록되어
있고, 루터파 교의는 일치 신조에 나타나 있으며, 성공회 교의는 39개
조항에 표명되어 있다.
3. 종합적 정리
이제 이 세 용어를 정리해 보자.
교훈: 성경의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는 여러 가지 가르침
교리: 기독 신앙의 핵심 내용에 대한 체계적 교훈
교의: 어떤 교회나 교파가 공식적으로 작성하고 인준하여 선포 하는 교리 체계
우리는 이 가운데 두 번째 항목인 ‘교리’를 이야기하는 중이다.
1) 비슷한 설명이 Louis Berkhof,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79), 19에 나타난다.
교리에 대한 반대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은 교리와 교리 연구에 대해 반대하는 수가
있다. 그들의 이유를 들어 보고 동시에 답변 또한 시도해 보자.
1. “교리 공부는 지적인 것인데 너무 지적으로 나가면 영적인 면
이 약해지지 않을까요?”
이렇게 질문하는 이들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이 그리 스도인의 영성을 항시 지적 활동과 길항적( 拮抗的 ) 이거나 상극적인 것
으로 보는 데 있다. ‘영성’은 그리스도인이 견지하는 신령한 상태로서
좀 더 정확히 정의를 내린다면 “영이신 하나님( 특히 성령 ) 이 영적 존재 인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고 지속적으로 역사를 이루심으로 인간의 심 령 가운데 형성하시는 신령한 상태”1)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 지성적 방면에서 “생각나게 하시고”( 요 14:26 ), 1) 송인규,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 (서울: 홍성사, 2009), 150-151.
“알게 하심”( 고전 2:12 ) 의 유익이 있으므로, 영성은 결코 지성과 상극을
이룬다고 볼 수 없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
리라(요 14:26)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
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물론 어떤 그리스도인의 경우 지적 활동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영적
인 면이 약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신뢰하는 신앙의 근본 바탕 없이 ( 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나 신뢰를 목표로 두
지 않은 채 ) 지적 활동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사태가 발생한 것이지,
지적 활동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그리스도
인이 교리 공부를 한 결과 영적인 면이 약화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기본 신앙 방향이 그릇되어서지, 교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
니라고 하겠다. 오히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화롭게 하려는 근
본적 열망이 자리 잡혀 있다면, 교리 공부는 많으면 많을수록 영성을
향상한다고 하겠다.
2. “교리는 많이 아는데 생활이 엉망인 걸 보면 무언가 교리 공부 에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이 견해는 어떤 그리스도인의 미성숙한 ( 또는 일관성 없는 ) 신앙생활을
교리 공부와 연관 짓고 있다. 즉, 교리 공부가 원인이기 때문이든지, 아
니면 교리 공부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기 때
문이든지 하여튼 그 문제점을 교리 공부에서 찾는다.
교리를 배우는 것( 지적 활동 ) 과 삶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 실천적 삶 ) 사
이에 연관이 쉽지 않은 데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를 거론할 수 있을 것
이다. 첫째, 꽤 많은 교리에 실천적 함의가 매우 적다. 삼위일체 하나님
에 대해 배웠다고 해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에 자극받지는 않
는다. 또 하나님의 창조가 기존 물질을 활용한 것이 아니고 소위 “무에
서의 창조”( creatio ex nihilo ) 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일에 진보를 이루지는 않는다.
둘째, 실천적 함의가 있는 교리라고 해도 그것이 삶으로 전환되려면
인격적 기능 사이에 공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리를 배우는 것은 주 로 지적인 과제지만 삶과 실천은 전인격의 활동이므로 정감의 개입과
의지의 발동이 있어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지성의 활동이 삶의 실천
이라는 결과를 낳으려면 인격적 기능의 훈련과 이를 위한 시간의 경과
가 고려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교리를 배우는 것과 삶
의 변화를 기하는 것 사이에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연관을 지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교리를 배우는 이에게서 너무 조급히 삶의 열매 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상기한 이유 중 어떤 것도 교리 공부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3. “교리 가지고 논쟁하다가 싸우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사실 성경의 어떤 교리를 가지고 교회 모임이나 비공식 석상에서 논 쟁이 붙어, 의가 갈리고 심지어 공동체 교제조차 손상을 입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를 목격하든지 아니면 어쩌다 이러한 논쟁에 휘
말리고 난 후 생기는 씁쓸한 느낌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쟁론의
불씨가 된 ‘교리’라는 것 자체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품게 된다.
이러한 모습 역시 교리 공부가 갖는 본유적 문제점이기보다는 그리
스도인이 교리에 대한 논의를 올바르지 않은 동기로 또 지혜롭지 않은
방식으로 행한 데에 기인한다. 때로 우리는 성경 교훈이나 교리 지식
이 많은 것을 은근히 과시하기 위해, 또 자기 의견이 상대방을 누르고
관철되는 재미 때문에 교리 논쟁을 벌일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당사자
가 그렇게 잘못된 동기가 아니라 진리가 더 명확히 드러나기를 염원하
는 마음 상태 가운데 있다면, 또 논쟁을 통해서도 상대방에게서 무엇
을 배우겠다는 자세를 마련했다면, 논쟁이란 특수한 방법은 우리가 함
께 진리를 찾아가고 진리에 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점을 무엇보다도 예루살렘 공의회가 합의에 도달한 과정
으로 배울 수 있다. 당시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에 대해 예수를 믿음
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 데 2) 반해, 유대로부터 내려온 그리스
도인, 곧 소위 유대주의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향해 “너희가 모세
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행
15:1 ) 라며 공격했다. 이것으로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주의자에 맞서 큰
2) 이에 대한 성경의 증거는 최소한 두 가지다. 첫째, 누가는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유 대인)가 주 예수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이방인)에게도 주셨으 니”(행 11:17)라는 베드로의 고넬료 집 경험을 소개한 직후 안디옥의 이방인 회 심(행 11:20)을 기술함으로써,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도 회심에 있어 같은 과정을 겪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둘째, 이방인에 대한 안디옥의 복음 전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행 11:20, 23), 또 그렇게 믿은 이가 후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행 11:26)는 것은, 이들에 대한 복음 전파의 내 용이 종래 유대교 입교 과정인 이방인이 먼저 할례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는 것과 차별화가 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 두 가지 증거로 보건대 안디옥의 이방인 은 처음부터 이신칭의의 복음에 의해 회심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다툼과 변론”( 15:2 ) 을 벌였고, 동시에 예루살렘 공의회를 열리게 하는
발단이 되었다( 15:2 ).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도 이 문제는 많은 변론을 초래했다( 15:6 ). 그때
베드로가 일어나 자신의 고넬료 집 경험을 기반으로 “우리( 유대인 ) 는
그들( 이방인 ) 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
는다”( 15:11 ) 라며 거의 혁명적인 내용으로 공언했다. 그리하여 바나바
와 바울은 이러한 내용의 복음 전파가 하나님의 인증을 받았다는 증거
로 표적과 기사가 행해진 것을 보고했다( 15:12 ). 동시에 야고보는 베드
로-바나바-바울의 입장이 타당하다고 판정하면서도( 15:13-18 ), 율법의
내용이 각 회당에서 읽히는 현실을 고려하여( 15:21 ) 우상의 더러운 것 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 15:20 ) 이 어
떻겠느냐고 자신의 의견( 15:19 ) 을 내놓는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의 편
지를 보내면서 사도와 장로들은 “성령과 우리는……옳은 줄 알
았다”( 15:28 ) 라고 천명한다.
우리는 여기서 논쟁이나 의견의 차이가 반드시 형제 사랑을 가로막
는다든지 파괴하는 요인이라고 간주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사실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은 다툼, 변론, 주장, 증거 제시, 의견 개진 등
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공의회의 결정을 공포하면서 지도자들은 자 기들만이 이런 결정을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더 근본적으 로 성령께서도 합당히 여기신다고 말하는데, 이는 변론과 논쟁조차도 성령께서 공동체를 인도하시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논쟁을 통해 합의에 도달한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또 이 렇게 되려면 공동체 안에서 형제 사랑의 훈련도 많이 되어
이다.
4. “교리라는 것이 결국은 자기가 속한 특정 교파를 두둔하기 위
한 수단 아닙니까?”
이런 질문은 어떤 교파의 열렬한 지지자가 교리를 운운하며 자기 교
파만을 최고로 내세우든지, 아니면 타 교파를 낮게 비난하는 장면에
접하면서 갖게 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현상 역시 교리 자체의 무용성이나 해독성을 실증하는 것
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전반적 교리에 충실하고 익숙해 있을 때만
우리가 어느 한 교파의 가르침에 무조건 순복하지 않고 ( 비록 그 교파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 그 교파가 취한 교리적 입장의 강약을 파악할 수 있
을 것이다.3) 따라서 분파주의 정신에 입각한 교리 사용은 실제로 성경
의 포괄적 교리를 잘 모르고 있든지, 아니면 파당적 심리에 이끌려 성
경의 교리를 스스로 왜곡하든지 하는 것이므로, 어느 쪽이든 교리 자
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고 하겠다.
5. “교리를 자꾸 체계화하다 보면 성경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요 소가 침투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 마지막 반대는 가장 신학적인 성격을 띤 것으로, 체계화 작업의
3) 성경은 무오한 기록 계시지만 신학 체계는 늘 오류와 수정의 가능성을 가졌다. 또
성경은 단일하지만 그로부터 산출되는 신학 체계는 다양하다. 따라서 우리가 어느 하나의 신학 체계에 헌신하면서도 그러한 신학 체계의 제약점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칼빈주의 신학 체계는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함으로써 중요한 성경 주제 를 가장 바르게 반영하지만, 악의 문제나 인간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다른 신학 체계
에 비해 논리적 설명의 어려움이 더 크다.
근본 목적에 대한 도전이다. 사실 하나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성경
구절을 여기저기서 끌어모을 때, 그 구절을 기록하게 된 성경 기자의
역사적 상황이나 하나님의 점진적 계시 활동에 있어 그 구절의 내용이
차지하는 구속사적 위치 등을 망각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곡해할 수
있다. 또 주제, 틀, 체계라는 것은 항시 그러한 것을 구성하는 이의 철
학적 전제나 세계관과 시대정신에 영향받게 마련인데 ( 특히 이러한 영향
의 근원이 계시 수납자나 성경 기록 당시의 사정과 판이할 경우 ) 이러한 상충성을
망각하거나 무시한 채 시도하는 체계화 작업은 성경 메시지를 왜곡할
만하다. 신학계에서 성경신학 운동( Biblical Theology Movement ) 4)이 일어 난 것이나, 조직신학에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며 성경신학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추세는, 바로 이상과 같은 경향에 대한 우려의 표명인 동시
에 체계화의 횡포에 대한 반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역사적 전례나 그릇된 체계화의 위험을 인정하면서
도 올바른 교리 체계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과거
의 잘못을 교훈 삼아 신학적 방법론상 야기될 수 있는 오류를 극소화
하려는 노력은 계속 강조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4) 1930년대부터 약 30년에 걸쳐 자유주의 및 신정통주의 신학계에서 유행하던 신학 운동인데, 종래의 신학자들이 성경의 세계관과 판이한 자신들의 철학적 전제나 시 대정신 이해의 틀에 입각해 성경과 그 메시지에 접근하려던 태도를 비판하고, 오히
려 성경 메시지와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애쓰는 가운데 단어 연구나 주
석 작업에 역점을 기울였다. 물론 보수주의자는 이 운동이 계시관, 성경관 등에 있 어서 보수주의적 표준에 미흡하다고 평가하지만, 신학의 연구 방법론이나 방향에 의미심장한 단서를 던졌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참고. Gerhard F. Hasel, “Biblical Theological Movement,”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 2nd ed., ed. Walter A. Elwell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2001), 163-166. 좀 더 자세하고 포괄적인 설명으로 Charles H. H. Scobie, “History of Biblical Theology,” New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 eds. T. Desmond Alexander et al (Leicester, England: Inter-Varsity Press, 2000), 11-20을 보라.
이 서로 우위 다툼을 벌일 것이 아니라, 각 신학 분야가 각각 중요한
위치가 있는 만큼, 먼저 주석 작업을 철저히 하고, 그다음 성경신학적
방법에 입각해 기록된 계시의 내용을 살핀 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필요한 체계화 작업을 시도하는 식으로 올바른 순서를 밟아 신학 활동
을 펼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리의 필요성
지금까지는 교리나 교리의 체계화에 대한 반대 의견을 다루느라, 교
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적극적 변호 활동을 벌이지 못했다. 이 분단에서는 바로 그 작업을 추진할 참이다. 네 가지 항목에 걸쳐 교리 의 필요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1. 체계화는 인간 본성에 뿌리박은 지적 활동이다
인간의 심성은 그저 사실을 누적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 하며,1) 추론과 종합을 통해 얻어 낸 바를 항시 체계화하게 되어 있다.2)
1) “그것(인간 이성)은 세부 사항에 대한 파편적 지식에 만족하지 않고 사물 전반에 걸 친 통일성을 파악하고자 애쓴다. 다원적이고 잡다한 현상의 세계에서 인간 이성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며, 영원한 것, 곧 기초를 이루는 근본 원리를 추구한다”(Louis Berkhof, IntroductiontoSystematicTheology, 95).
2) Henry C. Thiessen,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 rev. Vernon D. Doerksen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9), 4.
그런데 우리가 성경의 메시지를 교리 체계의 형태로 받은 것이 아닌
만큼, 체계화는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진 작업으로 간주해야 마땅하다.
사실 신학이 “학”( science ) 의 이름에 합당하려면 이러한 체계화, 곧
분석 및 종합의 방법론이 수반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어떤 학문이
든 학문의 본질적 특성은 전문 지식의 체계화이기 때문이다.3)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성도 그렇고, 학문의 기본 특
성도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교리 체계화의 작업에 힘써야 한다. 물
론 개인의 은사에 따라 독창성의 면에서는 서로 차이가 있겠지만, 모
든 그리스도인은 어느 정도로든 체계화 작업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 신앙 성숙에 있어서 교리 지식은 필수다
올바른 태도에 입각한 교리 지식의 함양은 우리 신앙의 성숙을 가능
하게 도와준다. 무엇보다도 먼저 교리를 통해서 쓸데없는 신앙적 오류
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원받고 난 후에도 선행은 여전
히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보고 가벼이 여긴다든지, 성령이 비둘기와
바람, 불 등으로 상징되므로 영적 영향력으로만 생각한다든지, 영생은
죽지 않고 그저 영원히 사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몇 가지 본
보기다. 교리 지식은 이러한 오해나 오류를 곧장 시정해 준다.
교리는 우리를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하는 소극적 역할뿐 아니라 적극
적으로 우리 신앙의 깊이와 폭을 더한다. 하나님을 영으로 알고( 요 4:24 )
예배할 때 하나님과 관계도 달라지고, 죄·십자가·부활 등의 교리를
옳게 이해할 때 우리의 전도나 설교도 그 모양새부터 바뀐다. 사실 신
3) Hendrikus Berkhof,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Dogmatics, trans. John Vriend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5), 10.
약에서 “알다”, “이해하다” 등의 동사나 관련 명사를 찾아보기 시작
한다면, 영적 지식 가운데 교리 이해가 차지하는 비중의 막대함을 다시 금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전에도 지적했듯, 교리 지식이 신앙 성숙을
저절로 보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자가 후자의 필요조건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3. 기독 신앙을 교육시키려면 체계적 지식의 형태를 빌리지 않을 수 없다 4)
누구든지 남을 가르치거나 교육시켜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설명, 전달, 예증 등에 있어서 일목요연한 지식 체계의 필요성을 절감할 것
이다. 체계적 지식을 갖추지
수 없다.
결코 효과적 교육을 기대할
이것은 기독 신앙의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교리적 체계를 제대로 파악한 교사만이 기독 신앙과 관련한 개념 전달, 의미 설명, 이해력 촉
구 등을 자유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 요즘 들어 기독교 교육과 관련해
스토리텔링 방식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이런 교육 방식 역시 기독교
신앙의 교리 체계가 이루어졌을 때만 제대로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결국 교리 지식에 기반하지 않은 기독 신앙 교육이란 불가능 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참고.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2nd ed. (Grand Rapids, Michigan: Zondevan Academic, 2020), 9.
4. 기독 신앙에 대한 질문이나 공격은 교리적
피하게 해 준다 5)
우리가 겪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는, 끊임없이 기독 신앙에 대한 도
전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인공 지능 전문가는 “인간의 뇌가 컴퓨터
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가 하면, 종교다원주의자 대부분
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경건한 유대 랍비로만 기술함으로써 예수
의 신성을 부인하려 든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성령 충만이 종교적 편
집증과 무엇이 다른지를 힐문하는가 하면, 여호와의 증인은 몇 가지
증거 본문에 기초하여 예수를 성부에 비해 열등한 하나님이라고 주장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모든 질문, 공격, 도전에 대해 올바른 반응과
답변을 시도하려면, 우리 편에서 기독 신앙에 대한 일관성 있는 교리
체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가 대다수가 노예였던 초대
교인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 벧전 3:15 ) 라고 권면한 사실은, 이런 점에서 의미 심장하다. 노예에게도 일관성 있는 답변을 권면하고 있다면, 하물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하랴! 우리가 교리 체계에 익숙해 있을 때만 “사람
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엡 4:14 ) 될 수 있을 것이다.
5) 참고. James Leo Garrett, Jr., Systematic Theology: Biblical, Historical, & Evangelical, Vol. 1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0), 14-15.
“신학”의 의미
신학( 神學, theology ) 을 어원으로 살펴보면 데오스 ( θεός, ‘하나님’ ) 와 로
고스 ( λόγος, ‘연구’ ) 의 합성어로, “하나님에 대한 연구”라는 뜻을 지닌다.
그런데 ‘신학’이 실제로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세 가
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 협의적 용례
이것은 ‘신학’이 가장 좁게 사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 신학은 하
나님 자신에 대한 연구를 뜻하는 말로서, 조직신학의 첫째 분야인 ‘신
론’( 神論 ) 을 가리킨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협의적 용례의 ‘신학’을 지칭
하는 표현으로 ‘신론’이 있으므로, 용어상 아무런 혼란이나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에는 ‘신학’도 theology이고 ‘신
론’도 theology라서 theology라는 말만 가지고는 어느 쪽을 가리키
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후자, 곧 협의적 용례로서의 ‘신학’을 명확
히 지칭하고자 할 때는 theology 대신 theology proper 1) ( 하나님 자신
에 대한 연구라는 뜻 ) 로 표기한다.
2. 통상적 용례
우리가 ‘신학’이라고 할 때 가장 많이 의도하는 바는 이 용례다. 이
것은 기독 신앙의 중요한 교리에 대한 합리적이고 포괄적인 설명을 목 표로 하고, 성경학/성경신학, 교회사/역사신학, 조직신학, 신학윤리/도
덕신학, 실천/목회/응용신학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한다.2) 이러한 사
용법에 따르면 ‘신학’은 범위가 매우 넓을 수도 있고( 신학 분야 전체를
망라하는 경우 ), 상당히 좁을 수도 있다( 신학의 어떤 특정 분야를 염두에 둔 경
우 ). 어쨌든 이것이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의미의 신학이다.
3. 한정적 용례
이 용례의 ‘신학’은 어떤 특정 이슈나 주제에 대해 기독교적 성찰을 시도할 때 대두된다. 이런 의미의 신학은 보통 ‘~ 신학’이라는 형식을
취하여, ‘생태 신학’, ‘여성 신학’, ‘언약 신학’, ‘해방 신학’, ‘성육신 신 학’, ‘정치 신학’, ‘십자가 신학’, ‘민중 신학’, ‘일터 신학’ 등이 구체적
1) Paul Enns, TheMoodyHandbookofTheology, rev. and expanded (Chicago: Moody Publishers, 2014), 189.
2) 이 설명은 Albert L. Truesdale, Jr., “Theology,” Beacon Dictionary of Theology, ed. Richard S. Taylor (Kansas City, Missouri: Beacon Hill Press of Kansas City, 1983), 520의 내용과 Stephen W. Sykes, “Theology,” The Westminster Dictionary of Christian Theology, eds., Alan Richardson and John Bowden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3), 566의 내용을 적절히 종합한 것이다.
인 예다.3)
3) David F. Wells, “Theology,” New Dictionary of Theology, eds. Sinclair B. Ferguson, David F. Wright, J. I. Packer (Leicester, England: Inter-Varsity Press, 1988), 680-681.
2장 신학의 분류
신학은 상기했듯 성경의 가르침이 신자와 교회는 물론 인간의 존재
와 삶의 환경에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성찰하고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학문이다. 학문 체계인 신학은 그 취급 분야가 광범위하고
다양하므로 으레 하부 영역으로 나뉘어 소개되곤 했다.
1. 기본적 분류 방식
신학은 보통 네 가지 하부 영역으로 분류된다.
- 주경신학 ( Exegetical Theology ) : 성경 본문을 탐구하는 가장 기 본적인 신학 분야로서, 사본 연구, 성경 각 권의 서론 및 역사
적 배경 고찰, 성경 본문 주해 등을 다룬다.
- 조직신학 ( Systematic Theology ) : 성경 교리를 성경 전체 내용에
비추어, 또 일반 지식의 내용과 연관하여 조직적으로 기술하
는 신학 분야다.
- 역사신학 ( Historical Theology ) : 그리스도 이후 교회 역사에 대해
서 그 조직, 발전, 확장 등을 연구하는 분야로서 특히 시대의 흐름에 따른 성경 교리의 변천과 발전에 관심을 둔다.
- 실천신학 ( Practical Theology ) : 기독교의 가르침을 목회, 예배, 설
교, 상담, 전도, 선교 등 실천 영역에 적용하도록 돕는 응용 신 학 연구 분야다.
2. 여타 분류 방식 그러나 신학 분류 방식에 한 가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신
학적 배경의 신학자 세 명이 선보이는 분류 방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나사렛 교단 배경의 종교 철학 교수 트루스데일 ( Albert L. Truesdale, Jr., 1939- ) 의 제안.1)
① 성경신학, ② 역사신학, ③ 조직신학, ④ 도덕신학 ( 크리스천 윤리 ), ⑤ 실천/응용신학
(2) 개혁파 신학자이자 고든콘웰 신학교 교수 데이비드 웰스 ( David F. Wells, 1939- ) 의 힌트.2)
① 성경신학, ② 역사신학, ③ 조직신학, ④ 철학신학, ⑤ 목 회/실천신학
(3) 침례교 계통 목회자이자 성경학자 엔스 ( Paul Enns, 1937- ) 의
1) Albert L. Truesdale, Jr., “Theology,” 520.
2) David F. Wells, “Theology,” 681.
분류.3)
① 성경신학: 성경에 나타난 주제나 교훈을 계시의 진전
과정에 따라 또는 개인 저자의 계시 기록 내
용에 따라 연구하는 신학 분야
② 조직신학: 성경의 교리를 성경 전체의 내용에 비추어, 또 일반 지식의 내용과 연관하여 조직적으로
기술하는 신학 분야
③ 역사신학: 그리스도 이후 교회 역사, 특히 시대의 흐름
에 따른 성경 교리의 변천과 발전을 탐구하
는 신학 분야
④ 교의신학: 로마 가톨릭교회, 루터교회, 개혁교회, 성공
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등 기독교 내 다양한 집단이 견지하는 교의를 연구하는 신학 분야
⑤ 현대신학: 르네상스 이후 다양한 철학 사상과 지성사의
영향에 따라 발전된 각종 신학 체계 및 신학
자의 사상을 고찰하는 신학 분야
3. 성경, 교리, 신학 분야 사이의 거리
성경과 교리와 신학 분야 사이의 거리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3) Paul Enns, The Moody Handbook of Theology, 23-24, 151, 439, 505-506, 589-591.
역사신학
주경신학
성경신학
교의신학
조직신학
현대신학
철학신학 4)
모든 신학적 성찰은 ‘성경’에서 출발한다. 주경신학과 성경신학의
연구 결과를 참작하는 가운데 성경의 교훈을 체계화하는 것이 ‘교
리’다. 교리 체계가 올바로 수립되지 않으면 조직신학의 과제 또한 제
대로 수행될 수가 없다. 동시에 조직신학은 교리 역사를 다루는 역사
신학과 각종 기독교 그룹의 교의를 연구하는 교의신학의 지원을 받을
때 더욱 견고하고 풍성해진다. 현대신학은 많은 경우 조직신학에서 다 루는 주제의 연장선에서 개진된다. 특히 철학적 개념이나 용어가 빈번
4) ‘철학신학’은 기독교 교리를 철학 개념과 용어로 풀이해 내는 신학 분야다.
히 등장하므로 종국적으로 철학신학 분야 또한 등한시할 수 없다.
이상의 내용을 고려할 때, 우리는 여러 신학 분야를 성경과의 관련
성에 근거하여 “거리 매김”을 시도할 수 있다. 성경으로부터 가장 가
까운 신학 분야에서 시작하여 가장 먼 분야에 이르기까지 순서를 매겨
본다면, 성경→주경신학→성경신학→역사신학→교의신학→ 조직신학→현대신학→철학신학의 배열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교
리로부터 시작한다면 교리→역사신학→교의신학→조직신학→ 현대신학→철학신학의 순서표가 산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