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자연법과 두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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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두 나라

NATURAL LAW AND THE TWO KINGDOMS

나는 학부에서 법학을, 이후 박사 과정에서는 윤리학을 전공했던

학생으로서, 가끔은 내가 속해 있는 개혁파 신학 전통에서 자연법

의 운명을 설명해 주는 책 한 권을 읽었으면 했다. 내가 아는 한 그

런 책은 존재하지 않았고, 최근에 많은 개혁파 신학자들의 수사법

은 내가 우연히 접한 종교개혁 및 종교개혁 이후 저술가들에 견줄

수 없었다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나는 어디서도 도움을 얻지 못했

다. 나는 연구를 마치고 가르치는 안정된 자리를 얻고 나서 예전에 읽고 싶었던 책을 직접 써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연구가 꽤 진척되었을 무렵, 스티븐 그래빌( Stephen Grabill ) 이 쓴 『개혁신학적 윤리학에서 자연법의 재발견』( Rediscovering the Natural Law in Reformed Theological Ethics ) 이 출간되어 이 분야의 연구에 훌륭하 게 기여를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여전히 해야 할 이야기가 더 많이 남아 있었다. 한편 그래빌이 16, 17세기 개혁파 저술가들에 집

중했던 반면에, 나는 어쩌면 너무 야심찬 일일지는 몰라도 그 이야 기를 현재의 상황 속에서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또한 두 나라

주제가 개혁파의 자연법 사상에 매우 유익한 통찰을 줄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자연법과 두 나라의 운명은 개혁파 전통 안

에서 서로 연결되었고, 이 두 사상을 동시에 살피는 일은 개혁파의

기독교와 문화 그리고 사회윤리의 관점을 발전시키는 것에 대한 더

광범위한 질문들로 들어가는 유용한 창을 제공한다.

존 위티( John Witte ) 가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있던 나의 기획에 관

심을 표명하고 에모리 대학교의 법과 종교 연구 시리즈에 이 책을

제출하게끔 격려해 준 것에 대해 나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훌륭한 시리즈에 참여한 것은 특권이다. 원고를 검토하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친절하게 도와준 에이미 휠러( Amy Wheeler ) 에게 감사한다.

아울러 에모리 시리즈를 후원하고 내 책이 출간되도록 안내해 준

어드만 출판사의 직원들에게도 감사한다.

나는 이 기획을 수행하기에 아주 지원이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준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산하의 모든 공동체( 교수진, 학생들,

직원들, 이사진 ) 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시간을 내서 여러 장을 읽고 조

언해 준 동료 교수들, 곧 로버트 갓프리 ( Robert Godfrey ), 마이클 호

튼( Michael Horton ), 스콧 클락( Scott Clark ), 그리고 엘리자베스 박( Elizabeth Park ) 에게 특별히 감사를 드린다. 특히 원고 전체를 읽어 준 것은 물

론 작업 내내 우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브라이언 에스텔레( Bryan

Estelle ) 와 존 페스코( John Fesko ) 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 기획의 후반

기에 소중한 도움을 준 조교 캐시 카마이클( Casey Carmichael ) 과 맷 투

이닝가( Matt Tuininga ) 에게 감사한다. 나는 존 볼트( John Bolt ), 아론 덴

링거 ( Aaron Denlinger ) , 리처드 개핀 ( Richard Gaffin ) , 라이언 글롬스루

드( Ryan Glomsrud ), 대럴 하트( Darryl Hart ), 폴 헬름( Paul Helm ), 조디 모리

스( Jody Morris ), 그리고 스콧 올리핀트( Scott Oliphint ) 를 비롯하여 원고

의 여러 부분을 읽고 피드백을 해 준 다른 지역, 다른 기관에 있는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항상 그런 것처럼, 사랑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캐서린과 잭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내가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어느 장기 숙박

호텔에서 이 책으로 이끌어 준 독서를 시작했을 때 우리 가족의 상

황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감사해야 하는지 상기하게

된다.

이 책에서 몇몇 부분은 이전에 출간된 논문들을 수정하고 고쳐

쓴 것이다. 나는 해당 학술지의 편집장들에게 논문에 있는 자료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싶다. 이 논

문들은 다음과 같다. “Medieval Natural Law and the Reformation: A Comparison of Aquinas and Calvin,” American Catholic Philosophical Quarterly 80, no. 1 ( 2006 ) : 77~98; “The Two Kingdoms: A Reassessment of the Transformationist Calvin,” Calvin Theological Journal 40 ( 2005 ) : 248~266; “Abraham Kuyper and the Reformed Natural Law and Two Kingdoms Traditions,” Calvin Theological Journal 42 ( 2007 ) : 283~307; “The Context of Natural Law: John Calvin’s Doctrine of the Two Kingdoms,” Journal of Church and State 46 ( Summer 2004 ) : 503~525; “The Two Kingdoms Doctrine and the Relationship of Church and State in the Early Reformed Tradition,” Journal of Church and State 49 (Autumn 2007): 743~763; “Natural Law in Early Calvinist Resistance Theory,” JournalofLawandReligion 21, no. 1 ( 2005~2006 ) : 143~167; “The Importance of the Penultimate: Reformed Social Thought and the Contemporary Critiques of the Liberal Society,” JournalofMarketsandMorality 9 (Fall 2006): 219~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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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두 나라

자연법과 두 나라, 그리고 개혁파 사회사상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개혁파 기독교는 활기 넘치는 사회사상 전통을 소유하고 있는 것

에 대해 널리 존중을 받고 있다. 그 실례를 존 칼빈의 제네바에서

가져온 것이든,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에게서 가져온 것이든, 아니면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에게서 가져온 것이든 간에, 지지 세력

은 물론 반대 세력도 개혁파 기독교가 그 지지자들에게 교회의 경

건에 대해서 뿐 아니라 폭넓은 스펙트럼의 정치적・문화적 사안에

대해서까지 생각하도록 고무시킨 점을 칭찬한다. 그 결과 많은 사

람이 다양한 각도에서 개혁파 사회사상의 전통에 대한 글을 써 왔

다. 하지만 많은 연구에서 이 전통에 대해 크게 알려지지 않고 자주 간과되는 중요한 측면들이 있었다. 이 측면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혁파 사회사상의 발전 과정에서 차지하는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 의 위상이다.

종교개혁 이후 4세기 동안 대부분 개혁파 사상가들은 자연법과 두 나라 이론을 널리 인정했고, 그것을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사상

의 기초 개념으로 취급했다. 그들은 자연법을 인정함에 있어서, 모

든 사람이 양심의 증거를 통해 그들의 기본적인 도덕적 책무에 대

해 알고 있고 특히 시민법의 발전을 위한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

는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하

나님의 도덕법을 새겨 놓으셨다는 믿음을 고백했다. 그들은 두 나

라 교리를 인정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제도와 활동을

다스리시되 근본적으로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다스리신다고 설명

했다. 이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구속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교

회( 영적 나라 ) 를 다스리시고, 창조주와 보존자로서 국가와 다른 모든

사회 제도( 시민적 나라 ) 를 다스리신다. 따라서 이 두 나라는 크게 다른

목표와 기능과 작용 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고전

적인 개혁파 신학은 특히 자연법을 시민적 나라에서의 삶을 위한

최고의 도덕규범으로 간주하려 한다는 점에서 자연법과 두 나라 이

론을 서로 연결시켰다. 그러므로 이 두 교리를 통해 더 오래된 개혁

파 저술가들은 정치적・문화적 삶의 기초를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종말론적 회복이 아닌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사역에 두었다.

하지만 오늘날 적어도 북미에서 대부분의 개혁파 기독교 지지자 들은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거나 분명히

거부한다. 그리고 외부에서 개혁파 사회사상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관찰자들은 이 두 사상이 개혁파 전통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개혁파 성도들에게, 자연법은 인간의 도

덕적 능력과 인식 능력에 대한 과도하게 낙관적인 견해와 성경의

중요성에 대한 지나치게 낮은 견해와 결합된, 신학적으로 불충분한

로마 가톨릭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그것은 종교에 대한 언

급이 없거나 하나님과 완전히 동떨어진 사회적 대화를 육성하려고

자연법과 두 나라

고안된 하나의 계몽주의 사상이다.1 ) 현대 개혁파 성도들 역시 일반

적으로 두 나라 교리를 교회와 세상 사이에 근거 없는 이원론을 설

정한 루터파의 작품으로 재빨리 결론짓는다. 그런데 그것은 반대로

종교를 사적인 삶으로 제한하고, 공적인 삶에서 무비판적 보수주의

와 수동성을 고무하려는 경향이 있다.2 ) 바꿔 말해서, 최근의 개혁

파 저술가들은 예전의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의 공통 범주를 제쳐

놓을 뿐 아니라, 개혁파 신학에 본질적으로 낯선 것이라며 거부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몇 가지 예외 사항을 가지고, 이전의 개혁파

전통이 실제로 어떻게 이 범주를 옹호했고 사용했는지에 대해 중대 한 지식을 입증하지 않은

1 ) 지난 세기에 자연법에 대한 개혁파의 부정적 태도를 폭넓게 개관한 내용을 보려면 다음을 참고하라. Stephen J. Grabill, Rediscovering the Natural Law in Reformed Theological Ethics (Grand Rapids: Eerdmans, 2006), pp. 3~11, 21~53. 좀 더 간략하게 정리한 것으 로는 다음을 보라. Thomas K. Johnson, Natural Law Ethics: An Evangelical Proposal (Bonn: Verlag für Kultur und Wissenschaft, 2005), pp. 15~31; Daniel Westburg, “The Reformed Tradition and Natural Law,” in A Preserving Grace: Protestants, Catholics, and Natural Law, ed. Michael Cromartie (Grand Rapids: Eerdmans, 1997), pp. 103~104. 비록 내 손에 너무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이 책에서 내가 그 책들과 서로 대화하 는 것이 허락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나온 다음 두 권의 책 역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담 고 있다. J. Daryl Charles, Retrieving the Natural Law: A Return to Moral First Things (Grand Rapids: Eerdmans, 2008); Craig A. Boyd, A Shared Morality: A Narrative Defense of Natural Law Ethics (Grand Rapids: Brazos, 2007). 2 ) 최근에 개혁파 전통과 루터파의 두 나라 전통을 뚜렷하게 대비시키는 한 쌍의 예를 보려면 다음을 참고하라. Mark A. Noll, America’s God: From Jonathan Edwards to Abraham Lincol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pp. 33~36; David M. Smolin, “A House Divided? Anabaptist and Lutheran Perspectives on the Sword,” in Christian Perspectives on Legal Thought, ed. Michael W. McConnell, Robert F. Cochran, Jr., and Angela C. Carmella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1), pp. 374~381. 너 무 늦게 출판되어 내가 이 책에서 사용하려고 허락받을 수 없었던 두 권의 관련 서적은 D. A. Carson, Christ & Culture Revisited (Grand Rapids: Eerdmans, 2008)과 John M. Frame, The Christian Life (Phillipsburg, NJ: P&R, 2008)이다. 카슨은 두 나라 교리를 오 직 루터파 사상으로 다루고, 프레임은 그것을 주로 루터파 사상으로 다룬다.

3 ) 최근에 역사적인 개혁파 두 나라 교리를 비판해 왔지만 그것이 가르치는 바를 잘 알고 있는

이 진정 말하고 싶고 해석하려고 하는 바는 개혁파 전통에서 자주

잊혀 왔던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의 위상에 대한 이야기다.

앞으로 나가기 전에, 내가 이 책에서 “사회적” 그리고 “문화”와

같은 어쩌면 파악하기 어려운 용어들을 사용한 것에 대해 조금은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사회적”이나 “사회”라 함은 일반적

으로 사람들이 다양한 경제적, 정치적, 법적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

가는 공동생활을 가리킨다. “문화”라 함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상업

적, 과학적, 예술적, 학술적, 가정적, 여가적 노력에 제한되지 않는

것을 비롯하여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광범위한 영역의 활동들을 말 한다. 이 용어들이 똑같은 의미를 갖지 않지만, ( 비록 일부 문화 활동들은

엄밀하게 사회적이지 않을지라도 ) 주로 의미가 겹치는데, 나는 실제로 이 용 어들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두 경우 모두

교회와 다른 종교단체의 외부 활동과 기관을 언급할 때 이 용어들을

사용한다. 물론 이것은 종교단체들이 사회적이지 않고, 세상에 영향

을 주며 자유롭게 세상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체의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분명해지겠지

만, 이 책은 교회의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세상의 사회와 문화에 좀

더 폭넓게 연관되는가에 관한 문제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사람인 한 저술가는 그 규칙을 설명해 주는 예외적 인물이다. 열방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

의 중보적 왕권 교리를 가르치는 개혁파 전통의 작은 흐름을 대표하는 아일랜드 개혁파 장

로교 소속의 목사인 데이비드 맥케이(David McKay)는 자신의 교회가 대부분 이 교리가 가 장 존경하는 개혁파 신학자들 몇 명에 의한 17세기의 그리스도의 왕권과 두 나라에 대한 가

르침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해 왔다. David McKay, “From Popery to Principle: Covenanters and the Kingship of Christ,” in The Faith Once Delivered: Essays in Honor of Dr. Wayne Spear, ed. Anthony T. Selvaggio (Phillipsburg, NJ: P&R, 2007), pp. 135~169와 W. D. J. McKay, An Ecclesiastical Republic: Church Government in the Writings of George Gillespie (Carlisle: Paternoster, 1997), 2장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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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두 나라

이 때문에 나는 “사회적”과 “문화적”과 같은 용어들을 비( 非 ) 교회적

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1. 현대 개혁파의 사회사상

보수적 개혁파 진영의 주류와 비주류 출신의 수많은 작가들이 오

래된 자연법과 두 나라 범주를 대체할 만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해

왔다. 이번 장의 서론적인 목적을 위해, 나는 오늘날 북미에서 현대

개혁파의 접근, 즉 종종 신칼빈주의로 언급되는 사조로 대표되는

데 자의식이 강한 수많은 개혁파 저술가들에게 잘 알려진 하나의 관점을 채택할 것이다. 이 관점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역사적 개혁파의 신학이 분명히 반영되어 있는 다른 많은

주제들을 계속해서 격찬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문화 활동을 위한

토대는 그것이 보존되고 있는 대로의 창조 질서라기보다는, 하나님

이 창조 질서를 회복하시는 것과 그것을 새 하늘과 새 땅의 종말론

적 목표를 향해 움직이시는 것이다. 개혁파 신칼빈주의 사상의 공

통된 주제는 창조-타락-구속이다. 곧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타락했고, 이제 하나님이 만물을 회복하고 계신다는 것이 다. 이 저술가들은 두 나라보다 하나님의 한 나라를 인정한다. 인간

의 모든 활동과 제도를 포괄하는 이 나라는 원래 완전한 의로움 속

에서 ( 역사 안에서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죄로 인한 타락에 의해 부패되었으며, 이제는 부패에서 회복되고

있고 종말론적 목표를 향해 진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어떤 영역이라도 하나님의 구속적 관심 밖에 있는 것으로 무시해서

는 안 되며, 따라서 하나님 나라와 그 최종적 운명을 반영하는 방식

으로 모든 활동과 제도를 변화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이런 비전을

주창하는 자들은 종종 구속되고 변형된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될지에

대한 성경적 모델을 개발하고, 개혁주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통해

모든 실재에 대한 ( 하나의 ) 기독교적 설명을 세우며, 비기독교적 사

상과 행위가 철저하게 비판을 받게 하려 한다.4 ) 비록 네덜란드의

대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나 헤르만 도예베르트를 그들의 이상에

좀 더 직접적인 영감을 준 것으로 인용할지라도, 그들은 또한 그것

을 “종교개혁적”이라고 부르며, 특히 칼빈의 사상에서 빌려온 것이

라고 한다. 하지만 칼빈과 오늘날 신칼빈주의 추종자들 사이의 차

이점은 때로는 인상적이어도 대부분 무시된다. 예를 들어, 칼빈은

오직 교회만을 그리스도의 구속된 나라와 동일시했고, 시민 정부가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했다는 주장을 비난했다. 그러나 오늘날 개혁

파 지식인들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모든 규범적인 사회 기관을 관통

해 있다고 자주 주장하며, 평범한 개혁파 사람들은 “개혁주의의 기

초” 위에 염소 사육 협회를 세우고 개혁주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따

라서 대학 미식축구 프로그램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를 놓고 싸운

다.5 ) 초기의 전통과 연속되는 주장들이 무엇이든 간에, 확실히 중

요한 몇 가지 사항은 개혁파 사회사상 내에서 변화해 왔다.

4 ) 9장에서 이런 사조와 관련하여 논의된 작가들은 헨리 스톱(Henry Stob), 코넬리우스 플 랜팅가(Cornelius Plantinga), 알버트 월터스(Albert Wolters), 크레이그 바르톨로뮤(Craig Bartholomew), 그리고 마이클 고힌(Michael Goheen)이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헤르만 도예베르트의 저서들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도예베르트 역시 종종 신칼빈주의자로 간주되 며, 9장에서 그의 사상을 아주 자세히 검토할 것이다. 5 ) 네덜란드에 소재한 그리스도인 염소 사육자 협회에 관해서는 M. Eugene Oosterhaven, The Spirit of the Reformed Tradition (Grand Rapids: Eerdmans, 1971), p. 164, 각 주 9번을 보라. 아이오와 주 시욱스 센터에 위치한 도르트 대학의 “개혁파 기독교 세계관” 에 일치하는 미식축구 프로그램을 세우려는 시도에 관하여는 Sally Jongsma, “Football Is Coming,” The Voice 52, no. 4 (Summer, 2007): 10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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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학적 변화를 일어나게 했던 더 광범위한 배경은 이런 전

환을 어떤 면에서는 어지럽게 한다. 개혁파 기독교가 시작된 이래

첫 두 세기는 기독교 세계의 범위 내에 존재했는데, 이 세계는 콘스

탄티누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긴밀하게 제휴한 교회와 국가와 더

불어 통일된 기독교 국가의 이상으로 점철된 서구의 오랜 기획이었

다. 비록 초기 개혁파 신학자들이 두 나라 교리를 가르치고 자연법

을 시민법의 규범으로 발전시켰을지라도, 그들은 이런 기독교 세계

의 이상을 꼭 붙들었고 정통적이지 않은 종교 의식에 대한 국가의

진압을 일정하게 옹호했다. 하지만 지난 세기의 개혁파 사회사상은

단지 기독교 세계의 생존자들만이 오랜 퇴보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살아남은 배경 속에서 생겨났다. 그 대신에 서구 세계는 거의 보편

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포용했고, 종교 다원적인 시민 사회의 사상

을 받아들였고, 교회의 조직들을 파멸시키거나 현저하게 약화시켜

버렸다. 이것은 신칼빈주의 진영의 사람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개

혁파 성도들이 동의해 온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관용적이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며 종교 다원적인 사회에 동감할 때조차도, 그

들은 특별히 기독교 세계관을 세우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삶의 모든

영역에 드러나게 하고 비기독교적 사상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퍼부

으려 노력했다. 짧게 말해서, 초기의 개혁파 저술가들은 하나의 자

연법과 두 나라 관점을 인정했는데, 그것은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지 모든 사람 사이에 공통된 사회생활을 설정하는 데 대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되, 기독교 세계의 뜻을 고수하는 사회에서 종교 진

압을 지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의 개혁파 저술가들은 다른 관점을 인정했는데, 그것은 자유로운 종교 의식을 지지하면서

도 기독교 사상과 비기독교 사상의 날카로운 대립과 모든 것의 기

독교화에 대한 인식을 권장하는 관점이다. 확실히 개혁파 사회사상

의 발전은 약간 곤란한 역사적 질문들을 제기한다.

2. 개혁파 사회사상과 현대의 기독교적 논의들

이 곤혹스러운 역사와 현재의 사태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는 있는 그대로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

만 다른 두 가지가 이것을 더욱더 흥미롭게 만든다. 첫 번째 것은

아주 최근에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에 대한 관심의 새로운 부활이

일부 개혁파 진영 내에 출현했다는 점이다. 20세기 내내 작가들은

여기저기서 개혁파의 우세한 사회사상 패러다임에 관해 이의를 표

명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 역사적 연구를 통해 더 오래된 개혁파

사상에 대한 인식을 유지했고, 다른 경우에는 그들 나름의 건설적

인 기획을 통해 ( 때로는 무심코 ) 더 오래된 교리들을 정교하게 만들려

고 노력했다.6 ) 그러나 지난 수년에 걸쳐 개혁파 원천에서 나온 수

많은 책들과 논문들은 개혁파 사회사상의 더 오래된 구조들을 복 구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목을 끌려는 욕망을 드러

냈다. 2006년에만 세 명의 개혁파 저술가들이 자연법과 ( 또는 ) 두 나

라 교리의 다양한 견해를 응용시키는 책을 출간했다.7 ) 심지어 개

혁파 진영 밖에서조차, 최근에 일부 유능한 학자들이 적어도 아우

6 ) 마지막 결론에 언급된 저술가들, 즉 그레샴 메이첸(J. Gresham Machen), 존 맥닐(John T. McNeill), 수잔 슈라이너(Susan Schreiner), 존 볼트(John Bolt), 폴 헬름(Paul Helm), 메 러디스 클라인(Meredith G. Kline)이 여기에 속한다.

7 ) Grabill, Rediscovering the Natural Law; Darryl Hart, A Secular Faith: Why ChristianityFavorstheSeparationofChurchandState (Chicago: Ivan R. Dee, 2006); David VanDrunen, A Biblical Case for Natural Law (Grand Rapids: Acton Institute, 2006).

구스티누스를 매개로 해서 비슷한 사상을 되찾으려 시도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연구는 초기 개혁파 사회사상의 중요한 전

조가 된다.8 )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의 관점으로 바라본 개혁파 사회사상의 이 야기에 흥미를 더해 주는 두 번째 사항은 기독교의 문화적・정치적

삶으로의 참여에 대해 더 폭넓은 현대적 논의가 가능하게 하는 것 이다. 개혁파 사회사상을 단순히 편협한 주제로 폄하해서는 안 된

다. 다른 기독교 전통들, 특히 개신교 전통은 종종 개혁파 기독교를 기독교 사회사상을 주창해 나가는 선도자로 기대했었다. 현대 개혁 파 사회사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상들은 많은 개신교 진영에서,

단순히 개신교를 뛰어넘는 기독교의 수많은 범교회적 논의들 안에 서 그리고 심지어 서양의 주류 지성계에서 널리 사랑받는 중심 개

념들 안에서도 널리 용인되었다는 점을 많은 증거들이 보여 주는

것처럼, 오늘날 리더십에 대해 좋은 평판을 받을 자격이 아주 충분

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본거지에서 가까운 개신교 진영에

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개혁파가 아닌 많은 복음주의 대학들의 수

사법 안에 문화변혁과 기독교 세계관/인생관의 발전을 위한 요청

들에 미친 20세기 개혁파 사회사상의 중요한 영향을 볼 수 있다. 더 8 ) 예를 들어 다음의 책을 보라. Robert A. Markus, Christianity and the Secular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2006). 마커스는 기독교에 종교적으로 중립적이 지만 비도덕적이지 않은 세속의 영역, 즉 그리스도인과 타종교인 사이에 공통의 관심을 갖 는 영역을 긍정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Robert P. Kraynak, Christian Faith and Modern Democracy: God and Politics in the Fallen World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2001)도 보라. 크레이낙은 기독교와 동일시되어야 하는 특별한 사 회 질서나 정치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H. Jefferson Powell, “The Earthly Peace of the Liberal Republic,” in Christian Perspectives on Legal Thought, pp. 73~92를 보라. 포웰은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인 현대 미국 사회에 대한 기독교적 비판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그 사회에 진정한 참여자가 되기 위한 모델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사용한다.

광범위하고 범교회적인 논의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여러 종교적

주장이 광장에서 중대하면서도 꼭 필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사례를

발전시켰다.9 ) 아마도 본거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법한 서양

의 주류 지성계에서, 포스트모던 철학의 유행 자체는 이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고 세계관이 주도하는 전제들이 없지 않다는 주장과

함께, 도예베르트와 코넬리우스 반틸과 같은 20세기의 개혁파 인물

들을 포스트모던적 경향이 전혀 없음에도 선지자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현재 당면한 목적에 가장 유익한 것은 지난 세기의 개혁

파 사회사상에 뚜렷하게 우호적으로, 어떤 경우에서는 아마도 빚진

것처럼 보이는, 더 폭넓고 범교회적인 기독교 사상 안에 있는 몇몇

영향력 있는 최근의 추세와 운동에 대해 좀 더 길게 고찰하는 일일

지도 모른다. 현대 성경 연구에서 중요한 주제인 소위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이 적절한 실례를 제공한다. 톰 라이트 ( N. T. Wright ) 와 같이

이 학파와 관계된 학자들은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수 세기 동안 신

약의 전문 지식을 왜곡해 온, 바울의 칭의론에 대한 역사적 “루터

파”( 또한 개혁파 ) 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그

들은 또한 종교와 정치를 이분화하여 바울 사상의 중요한 측면들을

애매하게 만든 역사적 “루터파”( 또한 개혁파 ) 의 두 나라 교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해 왔다.10 ) 수십 년 동안 최근 개혁파 사회사상의 반향

9 )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Richard John Neuhaus, The Naked Public Square: Religion and Democracy in America, 2d ed. (Grand Rapids: Eerdmans, 1986)를 보라. 그리고 예 를 들어 좀 더 최근의 것으로는 Brendan Sweetman, Why Politics Needs Religion: The Place of Religious Arguments in the Public Square (Downers Grove: InterVarsity, 2006)가 있다.

10 ) 예를 들어 N. T. Wright, Paul: In Fresh Perspective (Minneapolis: Fortress, 2005), pp. 49, 60~61을 보라. 라이트 주교가 최근에 정치에 개입한 것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Gilbert Meilaender, “Wrong from Wright,” First Things, no. 170 (February 2007): 9~11을 보라.

22

자연법과 두 나라

은 종교와 정치의 근거 없는 구분에 대한 이 후자의 관심 속에 분명

히 드러나고, 아마도 일부 현대 개혁파 신칼빈주의자들이 라이트에

대한 나름의 인식과 라이트에게 진 빚을 표현했다는 점은 그리 놀

랍지 않을 것이다.11 )

또 다른 예는 최근에 역사적으로 재세례파 및 메노파와 관련이

있는 급진적 개혁의 사회적 요소들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현상에

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변자는 스스로를 감

리교도라 부르는 스탠리 하우어워스( Stanley Hauerwas ) 임에 틀림없다.

급진적 개혁에 기초한 관점은 일반적으로 영감을 위해 칼빈과 권위

있는 종교개혁에 의지하는 관점과 연결되지 않았겠지만, 양자는 실

제로 뚜렷한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다. 하우어워스는 메노파 신학자

인 존 하워드 요더( John Howard Yoder ) 뿐 아니라 뛰어난 철학자인 알

래스데어 매킨타이어 ( Alasdair MacIyntire ) 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매킨타이어의 역작인 『덕의 상실』( After Virtue ) 은 근대적이며 탈계몽

주의적이며 진보적이며 세속적이며 가치중립적인 서구 사회로 하

여금 엄청난 비판을 받게 했다. 매킨타이어는 그 안에 있는 자율적

인 개인들이 어떤 공통의 이야기나 목적을 공유하지 않아서 어떤

것에 대한 진정한 도덕적 논의를 얻기 위해 끌어낼 만한 자료들이

전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12 ) 하우어워스는 자본주의와 물질주의

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덕적으로 분열된 세상에서 자유와 자율의 추구를 비난할 때 그런 분석에 유의했을 뿐 아니라, 자연법에 근거

11 ) 예를 들어 Craig G. Bartholomew and Michael W. Goheen, The Drama of Scripture: Finding Our Place in the Biblical Story (Grand Rapids: Baker, 2004), pp. 12~13을 보라.

12 ) Alasdair MacIntyre, After Virtue, 2d ed. (1981;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4). 존 하워드 요더의 중요한 작품들 가운데 The Politics of Jesus: Vicit Agnus Noster (Grand Rapids: Eerdmans, 1972)가 있다.

한 보편적 윤리나 공통된 도덕사상을 기독교 신앙에 반하는 것으로

거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우어워스는 세상에서 기독교 행

동주의를 요구해 왔는데, 기독교에 독특한 방식으로 요청했다. 하

우어워스는 말하기를,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로 그 존재를 끝까지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평화로운 그리스도의 나라가 폭력과

거짓 위에 세워진 정치에 대안을 제공하는지를 세상에 드러내야 한

다.13 ) 그래서 하우어워스는 자연법 사회윤리를 거부하고, 현대 사상

과 관습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사회적 행동주의를 조장하며, 그리

스도 나라의 방법들이 교회와 세상에서 그들의 모든 행위를 형성하

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하면서, 잘 알려져 있는 현대 개혁파의

주제들을 표명한다. 하우어워스는 바울에 관한 새 관점에14 ) 관련된

인물들과 메노파 신학과 역사적 연관성이 없는 미국 복음주의 진영

내의 학자들을 비롯하여, 그런 주제들을 선별하여 발전시킨 많은

숭배자들을 지니고 있다.15 ) 소위 이머징 교회 운동의 수석 대변인

이라 할 수 있는 브라이언 맥클라렌( Brian McLaren ) 의 작품 또한 여러

13 ) 예를 들어, 그의 영향력 있는 작품들에 관해서는 다음의 책들을 보라. Stanley Hauerwas, The Peaceable Kingdom: A Primer in Christian Ethics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3); Stanley Hauerwas and William H. Willimon, Resident Aliens: Life in the Christian Colony (Nashville: Abingdon, 1989). 또 급진적 개혁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나라의 규범에 따르는 문화변혁을 정의하고 재평가하는 몇 가지 논 문에 대해서는 Glen H. Stassen, D. M. Yeager, and John Howard Yoder, Authentic Transformation: A New Vision of Christ and Culture (Nashville: Abingdon, 1996)를 보라.

14 ) 예를 들어 Richard B. Hays, The Moral Vision of the New Testament: Community, Cross,NewCreation;AContemporaryIntroductiontoNewTestamentEthics (New York: Harper SanFrancisco, 1996)의 특히 pp. 317~346을 보라.

15 ) 예를 들어 Craig A. Carter, Rethinking Christ and Culture: A Post-Christendom Perspective (Grand Rapids: Brazos, 2006); Gregory A. Boyd, The Myth of a Christian Nation (Grand Rapids: Zondervan, 2005)을 보라.

24

자연법과 두 나라

중요한 측면에서 유사하다.16 )

최근 개혁파 사회사상을 상당히 닮은, 더 폭넓은 범교회적 기독

교 논의들 가운데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대 운동의 세 번째 예는 급

진 정통주의( Radical Orthodoxy ) 다. 이 학파에서 가장 잘 알려진 지지자

는 존 밀뱅크( John Milbank ) 인데, 그의 훌륭한 저서 『신학과 사회 이

론』( Theology and Social Theory ) 은 급진 정통주의에 최초의 자극을 주었

다. 밀뱅크는 매킨타이어의 현대 진보적 세속 사회에 대한 비판과

협력했지만, 자신의 비판을 매킨타이어가 호감을 가졌던 덕에 대한

고대 서양의 전통에까지 확장시키려 했다. 밀뱅크는 자신의 대표작

에서 현대의 세속 사회와 사회 이론을 폭로하려 노력했는데, 그것

은 정통 신학에서 벗어나 기생하는 기독교 이단의 한 형태로서, 자 율적 이성과 개별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회관에 기반을 두고 있었

다. 밀뱅크는 기독교 정통주의가 세속적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

는 유일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기독교 플라톤주의가 문화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존재론적 기반이라고 치켜세웠다.17 ) 또 급진 정통

주의에 속한 밀뱅크 및 동료들과 신칼빈주의의 중심 주제들 사이에

있는 유사점은 주시할 만하다. 최근의 많은 개혁파 저술가들과 같

이, 급진 정통주의 지지자들은 모든 종류의 다양한 분야에 존재하

는 비기독교 사상에 대해 철저한 비판을 발전시켜 왔고, 모든 실재

에 대한 풍부하고 기독교적인 설명을 제시하려 노력해 왔다. 그리 고 그들도 역시 전제적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어서, 모두를 판단 할 수 있는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인간 이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기

16 ) 예를 들어, 하나님 나라와 기독교 사회 행동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을 알아보려면 Brian D. McLaren, Everything Must Change: Jesus, Global Crises, and a Revolution of Hope (Nashville: Thomas Nelson, 2007)을 보라.

17 )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Oxford: Blackwell, 1990).

독교 정통주의든 현대 세속주의든 나머지 다른 것보다 더 합리적으

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한다.18 ) 신칼빈주의 진영 내의 일

부 저술가들이 급진 정통주의에 큰 감사를 표명했다는 것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19 )

따라서 기독교의 더 넓은 지적 담론 속에서 아주 중요한 학파들

가운데 일부 학파는 개혁파 사회사상의 현대 기획과 매우 유사함을

보여 주는 관점을 선전한다. 그런 문제들에 관하여 기독교 세계에

서의 지도력에 대한 개혁파 기독교의 요구는 어느 정도 그럴듯해

보이고, 개혁파 기독교는 적어도 유쾌할 정도로 이런 중요한 문제

들에 대해 신랄하게 논의하는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폭넓은 논의들과 현대 개혁파 사회사상이 분명 연관된다는 점

은 약간 비판적인 조사를 받아 마땅하다. 나는 이런 폭넓은 논의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상당한 위로가 실상은 표면 아래에서만 경험

하는 심한 내적 긴장감을 드러낼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이것이 초

기 개혁파 전통의 주장을 고려해서 현재의 주장을 다루도록 촉구한

18 ) 급진 정통주의의 많은 지지자들이 그런 분석을 적용한 한 분야는 경제학이다. 예를 들어

Daniel M. Bell, Jr., Liberation Theology After the End of History: The Refusal to Cease Suffering (New York: Routledge, 2001); D. Stephen Long, Divine Economy: Theology and the Market (New York: Routledge, 2000); Graham Ward, “Radical Orthodoxy and/as Cultural Politics,” in Radical Orthodoxy? —A Catholic Enquiry, ed. Laurence Paul Hemming (Burlington, VT: Ashgate, 2000), pp. 103~104; John Milbank, “Socialism of the Gift, Socialism by Grace,” New Blackfriars 77 (1996): 532~548을 보라. 정치학에 적용한 급진 정통주의의 비판의 한 예는 William T. Cavanaugh, Theopolitical Imagination: Discovering the Liturgy as a Political Act in an Age of Global Consumerism (New York: T&T Clark, 2002)이다. 문화변혁의 목표와 함께 신학 교리(기독론)에 대한 급진 정통주의의 연구에 대한 한 예에 대해서는 Graham Ward, Christ and Culture (Oxford: Blackwell, 2005)를 보라.

19 ) 예를 들어 James K. A. Smith, Introducing Radical Orthodoxy: Mapping a PostSecular Theology (Grand Rapids: Baker, 2004)를 보라. 또한 존 밀뱅크가 급진 정통주 의와 개혁파 전통의 관계에 대해 성찰한 것에 관해서는 위 책에 기고한 그의 서문을 보라.

자연법과 두 나라

다. 결국 이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더 오래된 개혁파 자연법과 두

나라 범주의 복구가 사실상 역사적 개혁파의 사고방식에 대해 더

완전한 관점은 물론 더 도전적이고 도움이 되는 관점을 더 큰 기독

교 공동체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 의문을 드러낸다.

아마도 이 점을 수행하는 최고의 방책은 급진적 개혁을 복구한

사람들이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국가에 대해 비판 작업을 착수하는

것일 수 있다.20 )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급진적 개혁을 복구한

자들은 현대 세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그리스도 나라의 증거가 사

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미치기를 바라는 점에서 현대 개혁파 변혁주

의자들과 이해하는 내용이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저술가

들은 일반적으로 최근의 많은 개혁파 저술가들보다 더 일관되게 이 런 사항들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칼을 휘두르지 않는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나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모든 활

동에서 이 나라를 증거하고 그 생활 방식을 표현함에 있어서 세상

에서 비폭력적인 행동 수단을 추구해야 한다. 폭력으로 가득한 사

회와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해 강제력을 행사하는 시민 정부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비폭력적 생활 방식은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런

작가들 가운데 몇몇에게, 폭력적이고 칼을 지니고 있는 국가는 죄

많은 세상에서 필요한 목적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군

대에서 전투하는 것과 같은 국가의 강제 행위에 어떤 기독교적 참 여도 거부한다. 따라서 비록 어떤 사람은 몸에 칼을 지녀야 할지라

20 ) 급진

폭력에 기초한 기관이라고 철학적 으로 정교하게 비판해 왔다. 하지만 그들은 급진적 개혁의 복구자들과 다른 이런 현실에 대한 실제적 반응을 제공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이 서론의 장에서 나는 단순히 비 교할 목적으로 후자를 사용한다.

도 이런 것은 그리스도 나라의 방식이 아니며, 그리스도인들은 결

코 그렇게 행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로 존재하며, 세상에 대해서는 국가를 보완하는 공동체가 아닌 국

가의 대안으로 존재한다.21 )

이런 주장을 하는 작가들은 성경적 관점에서 제기할 만한 강력한

주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자신의 나라가 이 세

상에 속해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고, 그의 제자들에게는 다른 뺨도

돌려 대라고 가르치셨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이 세상의 무기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이런 사실이 보여 주는 바는

그것이 무엇이든 강제하는 국가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강제 활동에 참여하길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모든 일을 그리스도 나라의 일로 삼도록 애써야 한다는 확

신을 일관되게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아주 많은 현대 개혁파 저술

가들은 국가를 하나님의 창조의 선한 일부분으로, 구속받기 쉬운

삶의 또 다른 영역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 영 역으로 흔쾌히 동일시했는가? 만일 칼의 강제력이 정말로 그렇게

행하는 모든 국가 활동의 배후에 위치한다면, 그리스도 나라의 이

름으로 그런 행위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나라와 칼을 연결하

여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급진적 개혁의 평화 전통을 되살리는

자들은 현대 개혁파 사회사상이 좀 더 일관되게 그 자체의 가장 기 본적인 전제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모든 행위에서 그리스도 나라의 방식을 표명할

21 ) 하우어워스의 많은 작품들에 더하여, 다음의 책들이 이런 관점을 분명하게 표명하고 있다. Hays, The Moral Vision, pp. 317~346; Carter, Rethinking Christ and Culture; Boyd, The Myth of a Christian Nation; Glen H. Stassen and David P. Gushee, Kingdom Ethics: Following Jesus in Contemporary Context (Downers Grove: InterVarsity, 2003).

자연법과 두 나라

필요성 ) 가운데 하나를 완수하고, 철저하게 비폭력적인 생활 방식으

로 그들과 함께하도록 도전한다. 하지만 개혁파 그리스도인들이 그

런 일을 하는 것은 실제로 작은 불일치를 해소하는 데 어떤 작은 조

치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유산과 큰 결별을

초래할 것이고, 칼빈과 권위 있는 종교개혁이 재세례파와 여러 급

진적 개혁을 대변하는 자들을 반대하는 논증법의 근본 주장이 잘못

되었다는 사실상의 승인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시

민 정부에 대한 칼빈의 ( 재세례파 주장들의 배경에 반대하여 아주 명료하게 쓰인 )

가장 체계적인 논술이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소통하는 것을 뜻했다

면, 그것은 칼을 지닌 국가의 온전한 적법성과 하나님이 임명한 시

민 권세의 특징, 기독교가 국가 기관에 참여하는 일의 도덕적 선함,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그 권위에 감사하게 복종하라는 요청 등을

옹호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22 ) 급진적 개혁을 걱정하면서 칼

빈과 그의 개혁파 동료들은 ( 루터파와 로마 가톨릭은 말할 것도 없고 ) 무정부

상태의 위협과 하나님이 이미 세우신 것을 경멸하는 오만함을 알아

차렸다.

지난 세기의 개혁파 신칼빈주의자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전통 가

운데 이 부분을 인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국가( 그리고 다른 많은 사회 기관들 ) 의 특징, 기독교의 정책 참여의

선함, 그리고 국가와 교회 간의 경쟁 관계보다는 근본적으로 보완 관계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와 다른 모든 기관의 사 안이 그 나라의 일이라는 확신과 함께 그들 전통의 이런 측면을 유

지할 때, 급진적 개혁의 현대적 유산과의 앞선 비교가 암시했듯이, 현대의 많은 개혁파 사회사상은 성경적 관점에서 심각한 어려움,

22 )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4권 20장을 보라.

즉 그리스도의 평화로운 나라와 칼을 휘두르는 국가를 연결하여 생

각하는 문제에 봉착해 왔다. 그러나 여기서 칼빈과 초기 개혁파 전

통은 적어도 이론적이고 신학적인 차원에서 이런 동일한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가치가 있다. 초기 개혁파 전통이

하나님의 두 나라, 즉 시민적 나라와 영적 나라를 인정했기 때문에,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적 나라의 평화로운 성격에 대한 성경의 가르

침과 충돌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압적인 국가의 온전한 적법성을 하

나님이 임명한 기관으로 단정할 수 있었다. 초기 개혁파 전통이 확

실히 드러냈던 실제적인 불일치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칼을 지

닌 국가에 대해 하나님이 임명한 적법성 ( 롬 13:1~7 ) 과 그 무기들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교회의 비강제적인 성격을 지님 ( 고후 10:3~6 ) 을 모두 주장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일부 개혁파 저술가들 사이

에서 생각하는, 자연법과 두 나라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기독교와

문화에 대한 폭넓은 논의에 신선하고 일관되게 기여할 수 있는 방

법을 발견한다. 역사적 개혁파의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는 급진적

개혁을 복원하는 자들에게 속한 비전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일부

측면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 신학적 범주를 제공한다. 즉, 이런 역사

적 개혁파 교리들은 비폭력적인 그리스도의 나라인 교회와 칼을 지

닌 강제적인 국가 사이의 뚜렷한 구별을 인정한다. 따라서 국가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아니며, 그 나라가 될 수도 없다. 그리고 하우어

워스와 다른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기독교 세계의 종언이 애도

를 받기보다는 축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급진적 개혁에 의존하

는 사람들에 반해, 이 역사적 개혁파의 범주는 하나님이 임명한 국

가의 정당성과 국가의 일에 의로운 기독교적 참여 가능성을 인정하

도록 허락한다. 시민적 나라의 기관인 국가는 교회에서 표현된 그

30 자연법과 두 나라

리스도의 구속받은 영적 나라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 있으며 본질적으로 선하고 적법하다. 그리고

비록 교회와 똑같은 통치 규범에 따라 작용하지 않을지라도, 하나

님이 부여한 자연법의 보편적 증거로 인해 국가는 전혀 도덕과 무

관한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고전적 개혁파의 신학 패러다임은 그리스도인이 구별된

두 나라의 시민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하나님

에게서 임명받았고 하나님의 법 아래에 있지만, 다른 목적을 위해

존재하고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규칙에 따라 작용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적 나라 시민의 자격으로 비폭력과 평

화의 방법을 주장하여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한 무기 소유를 거부한

다. 하지만 그들은 시민적 나라 시민의 자격으로 국가의 강제적인

사역에 필히 참여하여, 기회가 보장될 때 나라를 위해 무기를 소지 한다. 그들은 영적 나라의 시민으로서 어떤 지상 국가에도 애국적

충성심을 갖지 않지만, 시민적 나라의 시민으로서는 건강한 애국심

을 확실히 가질 수 있다.23 ) 그들은 영적 나라의 시민으로서 그리스

도의 구속적인 주권에 복종하지 않는 모든 이론과 관습과 제도를

철저하게 비판할 수 있지만, 시민적 나라의 시민으로서는 국가가

지상의 삶을 위해 가져오는 중요한 혜택에 감사할 수 있고 인간 문 화의 놀라운 산물을 향유할 수 있으며, 다양한 사회 기획안에 대해

23 ) 이것은 스티븐 웹(Stephen H. Webb)이 그의 책 American Providence: A Nation with a Mission (New York: Continuum, 2004)에서 내놓은 제안과 다른 점으로 보인다. 그런 데 웹은 하우어워스의 것들에 대한 자기 자신의 대안을 제안한다. 내가 자연법과 두 나라 의 관점으로부터 여기서 제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웹은 건강하지만 자격이 없지 않은 애국심과 국가의 적법성을 옹호한다. 하지만 웹의 제안은 어떻게 하나님이 국가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특별 섭리를 통해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일으키는지에 대한 그의 해석 을 통해, 그가 분명히 사람들을 시민으로 동일시하는 것과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동일시 하는 것에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나의 제안과 다르다.

비그리스도인과 공동 전선을 펼칠 수 있다. 그들은 영적 나라의 시

민으로서 성경의 구속 윤리에 복종하지만, 시민적 나라의 시민으로

서는 성경에 충실한 것을 문화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시험으로 삼

지 않고 일반적으로 접근 가능한 자연법을 통해 타 종교인들과 진

정한 도덕적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그들은 영적 나라의 시민으로

서 국가와 다른 사회 기관들을 일시적이고 사라져 버릴 운명의 것

으로 볼 수 있지만, 시민적 나라의 시민으로서는 지금 여기서 인간

사회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강렬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이 패러다임은 확실히 모든 점에서 초기 개혁파 사회윤리의 구체

적 실천과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그 기본적인 신학 범주의 그럴듯

하고 일관된 적용을 나타낸다고 나는 믿는다. 비록 그것이 확실히

그 나름의 어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해도, 한편으로는 교회의 급진적

성격과 현대 세계에 대해 철저히 비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능

력을,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다른 사회 기관들을 그리스도의 나

라 안으로 붕괴시키지 않고 그것들의 온전한 적법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궁극적 소망이 될 수 없겠지만, 위대한 현세적

선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런 자격을 갖춘 상태에

서, 그것은 그리스도인과 문화의 관계에 대해 더 폭넓은 대화 속에

서 충분히 고찰할 가치가 있는 관점이다. 적어도 개혁파의 자연법

과 두 나라 교리는 현대적 변증의 가치가 있는 관점을 대변한다.

3. 본 연구의 과제

나는 비교적 가까운 장래에 어떤 점에서 수정되고 구체적인 주요

사회 문제에 적용된 개혁파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에 대해 세부적

자연법과 두 나라

인 성경적・신학적・윤리적 변증을 하기 원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

이나 내가 그런 변증을 제시하기 전에, 개혁파 전통의 후계자들이

오랫동안 무시해 온 이 교리들이 역사적 검토를 받는 것은 의미 있

는 일이다. 이 검토는 이 교리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이전 전통을 고

수하고 있는지,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지, 더 넓은 신학과 특히 사회

사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일관되게 적용되었는

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검토는 또한 이 교리들이 어떻게

인기를 잃었고, 정확히 무엇이 그 자리를 차지했는지 확인할 수 있

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연구가 바로 본서가 착수하고 있는 부분이 기도 하다. 이 작업이 성공하려면, 약간의 지침을 설정하고 개혁파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를 건설적으로 옹호하려는 그들의 바람에 대

해 도움이 되는 제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본서 자체가 이

런 옹호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나는 이 연구에서 드러난 자료

들이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판명되길 바란다. 그들의

건설적인 목적은 나의 목적과 상당히 다를 수 있고, 심지어 내가 전

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나의 주장은 교부신학과 중세신학의 중요한 요소들에

서 가져와 그 위에 기초한 개혁파 초기 전통이 개혁파 사회사상의 토대 역할을 했던, 분명하고 상호 연계된 자연법과 두 나라 범주를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이 초기 전통에서 개혁파 사상가들이 종종 그들의 신학 범주를 완전히 일관성 있게 적용하지 않았다 해도, 그 들은 사회생활의 기반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아닌 창조와 섭리 사역에 두었다. 종교의 자유에 대한 생각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에 걸쳐 서구 사회에 확립되었을 때, 일부 개혁파 주요 신학자들은 계속해서 역사적 범주를 사용했고, 그들의 선배들보다 더 높은 수 준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자유롭고 관용적인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 범주를 적용하려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20세기에 다양하면서도

중요한 일부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은 개혁파 신학은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를 주로 무시하고 이따금 반대했으며, 문화와 그리스도인

의 문화 참여에 대해 구속적이고 종말론적인 근거를 제시하려 노력 했다.

그러므로 이 연구의 목적은 두 교리와 그 사회사상의 관계를 특

별히 언급하면서, 주로 특정한 신학 전통의 역사를 통해 발전한 이

두 교리를 추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 연구에 해당되지

않는 부분이 아주 많으며, 이 연구가 개혁파 사회사상에 대한 종합

적 검토가 아님을 의미한다. 대신에 이 연구는 다른 관점을 통해서

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두 개의 특정 교리를

통해 개혁파 사회사상을 검토한다. 또한 이 책은 자연 신학에 대한

연구서가 아니다. 자연 신학( 자연을 통해 획득된 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지식과

관계됨 ) 과 자연법( 자연을 통해 획득된 신의 도덕적 요청에 대한 지식과 관계됨 ) 이 연

관된 주제임은 확실하다. 스티븐 그래빌의 최신작인 『개혁신학적

윤리를 위한 자연법의 재발견』은 어느 정도 철저하게 초기 개혁파

전통 안에서 두 개념의 관계를 탐구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특

히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삶에 연관된 자연법이지, 자연 신학이 아

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또한 서양의 법적・정치적 전통의 발전에

칼빈주의가 미친 영향을 연구한 것도 아니다. 비록 이 책이 이런 연

구에 착수한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쟁점들을 다루고 있지만 말이 다.24 ) 게다가 이 책은 개혁파 사상가들이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를

24 ) 그래서 이 책은 예를 들어 막스 베버(Max Weber)가 저술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 주의 정신』(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에 표현된 대로, 칼빈주 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유명한 이론들을 설명하지 않는다. 개혁파 기독교와 더 광범위 한 서양의 법적, 정치적 전통들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연구서들 가운데, 예를 들어 다음의 책들을 살펴보라. Philip S. Gorski, The Disciplinary Revolution: Calvinism and the

34

자연법과 두 나라

명확하게 표현할 때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철학적 배경에 대해 깊

이 연구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교리들이 발전하

게 된 지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 주의하려 노력했지만, 나의 주안

점은 교리 자체와 교리의 실제적 작용에 있다.

흥미롭게 관련된 이런 문제들에 대한 광범위한 탐구가 없이도,

이 연구는 거대한 주제를 다룬다. 약 500년의 시간과 수백 명의 저

술가와 수천 권의 책이 잠재적으로 이 주제의 영역에 포함된다. 나

와 독자 모두에게 이 기획을 다루기 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

료에 대한 약간의 의미 있는 선별이 필요하다. 첫째, 이미 앞서 분

명히 밝혔듯이, 나는 개혁파 전통에 대해 나의 노력을 집중해 왔다.

그러나 이런 지정 자체가 다소 막연하고, 어떤 저술가와 운동들이

개혁파로 적절히 여겨지는지를 모든 독자가 당장 이해하기는 어려

울 것이다. 다양한 기독교 전통 중에서 특정 전통을 살피고 싶어 하

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상반된 주장을 조정 할 힘을 가진 권위 있는 공동 단체가 전혀 없는 많은 교파로 구성된

개신교 전통의 경우에는 그 문제가 악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다

른 개신교 전통과 달리, 개혁파 기독교는 신앙고백적인 기독교다.

아니, 적어도 이는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하이델베르 크 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같은 주요 문서들은 대 륙 개혁파의 기원을 가지고 있든, 영국 장로교의 기원을 가지고 있

Rise of the State in Early Modern Europ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3); Harold J. Berman, Law and Revolution, II: The Impact of the Protestant Reformations on the Western Legal Tradition (Cambridge: Belknap/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Part II; Philip Benedict, Christ’sChurchesPurelyReformed: A Social History of Calvinism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2); Ralph C. Hancock, Calvin and the Foundation of Modern Politic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89); Quentin Skinner, TheFoundationsofModernPoliticalThought, vol. 2, The Age of Reforma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8).

든 상관없이 전 세계에 걸친 개혁파 교회들에게 2차 규범서의 역할

을 해왔다. 따라서 “개혁파”라는 용어를 매우 더 분명하게 해 둘 목

적으로, 나는 이 연구에서 주로 자의식이 강한 역사적 개혁파 신조

의 규범들에, 그리고 그것의 본래 의미와 유사한 것 안에서 신학적

으로 교회적으로 헌신한 인물들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떤 독자들

은 아래의 여러 장들에서 검토한 어떤 저술가들의 개혁파 정체성에

대해 망설이며 주저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범위를 좁히려는 이런

시도는 틀림없이 완전한 엄밀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왜 내가 스스로 개혁파 전통에서 연구한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

들에 의해 그렇게 여겨지는 수많은 주요 신학자들을 고찰하지 않았

는지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나는

엄청나게 중요한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Friedrich Schleiermacher ) 나

더 최근 인물인 윤리신학자 제임스 구스타프슨( James Gustafson ) 에 대

해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인물들은 정말로 개혁파 신학 전통에 대한

영향력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들은 확실히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

을 역사적 개혁파의 신앙고백을 고수하는 데 두지 않았다.25 )

여전히 큰 무리를 이루는 신앙고백적 개혁파 저술가들 가운데서,

특정 인물들에 집중하려는 나의 선택은 그 의도가 훤히 드러나 보

25 ) James M. Gustafson, Ethics from a Theocentric Perspective, vol. 1, Theology and Ethic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1), pp. 163~164. 여기서 구스타프

슨이 자신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개혁파 전통으로부터 나의 연구를 발전시킨 부분은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확신의 문제다. 나의 연구가 번갈아가 며 매우 수정주의적인 방법을 취하여 그 전통의 많은 신봉자들이 그 작품을 보고 그 전통 에 대한 부적절한 표현이나 심지어 속임수를 발견하게 하는 것은 역시 여러 확신에서 기인 한다.……그동안 인정받지 못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확신이 가져온 분열의 위험에도 불구 하고 내가 ‘자유교회’ 소속 신학자라는 점이다. 나는 한 신학자가 역사적 신조의 공식들에 대한 헌신에 의해 제한받아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이어서 나는 내가 어떤 경우에 과감 하게 그 [개혁파] 전통에서 벗어나는 많은 지점을 지목할 것이다.”

자연법과 두 나라

일 것이며, 다른 인물들에 대한 것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내가 특정 인물들을 선택한 이유를 몇 가지로 제시하겠지

만, 일반적으로 이 연구가 ( 종합적이지는 않을지라도 ) 광범위하다는 느낌

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다양하게, 수많은 개혁파 단체에 속한 작

가들을 다루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 연구를 다루기 쉬운 범위 내

에서 유지해 가며 연구 대상자들을 가능한 공정하게 다루기 위해

서, 나는 여기에 관련된 흥미로운 개혁파 저술가들을 많이 다루지

는 않았다. 이 책의 저자로서 나는 고찰하게 될 인물들에 대한 나의

선택이 부당한 비판을 가져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실력 있는 학자

들이 당면한 문제에 스스로 착수하여 내가 지나쳐 버린 관련 저술

가에게까지 그 검토를 확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26 ) 이 문

제에 관하여,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논의하는 특정 인물들에 대

한 분석을 더 추진해 주기를 부탁한다. 이들 중 많은 이들에게는 내

가 제시하는 어떤 장이나 한 장의 일부보다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할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재빨리 알아차리겠지만, 나는

이 연구가 전적으로 유럽과 북미의 개혁파 저술가들 사이에서 발전 한 내용에 집중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대부분의 개혁파 신학은 유

럽과 북미의 배경 속에서 저술되어 왔다. 물론 남아프리카의 오랜 개혁파 경험과,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좀 더 새롭게 조직된 개혁파

26 ) 단 하나의 예를 제시하기 위해 이 연구는 인권에 대한 신학적, 법적 연구를 제시해 온, 다 양한 개혁파의 배경으로부터 글을 쓰고 있는 현대의 많은 학자들까지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신학자들에 관해서는 다음을 보라. J. M. Vorster, EthicalPerspectives on Human Rights (Potchefstroom: Potchefstroom Theological Publications, 2004); Max L. Stackhouse, Creeds, Society, and Human Rights (Grand Rapids: Eerdmans, 1984). 법학자들에 관해서는 다음을 보라. Johan D. van der Vyver, Seven Lectures on Human Rights (Cape Town: Juta, 1976); John Witte, Jr., The Reformation of Rights: Law, Religion, and Human Rights in Early Modern Calvinis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단체들이 예컨대 자연법과 두 나라에 관련된 개혁파 사회사상의 발

전을 관찰할 수 있게 다른 흥미로운 상황을 제공해 줄지라도 말이

다. 나는 거듭해서 다른 학자들이 그런 기획에 착수해 주기를 부탁 한다.

이어지는 장들을 짧게 요약하기 전에, 이 책이 의도하고 있는 청

중에 대해 한마디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책은 주로 신학적

내용이지만 그 주제가 상호 학문적인 관계로, 나는 이 책이 둘 이상

의 학문에 관심이 있는 청중의 손에 들려지기를 바란다. 내 자신의

수련 분야가 신학과 법률과 윤리학이기 때문에, 나는 이런 분야에

대한 이 연구의 적절성이 명확한지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역사

가, 정치이론가, 그리고 많이 논의된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에 관심

이 있는 매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은 역시 여기서 많은 관련 자료

를 발견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쓸 때 내 마음속에 계속해서 둘 이

상의 분야에 관심이 있는 청중을 세워 놓았다. 그래서 나는 원래 외

국어로 된 본문의 영어 번역을 발췌하여 인용했고, 책임 있는 전문

지식을 양보하거나 필요한 기술적 논의를 피하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접근하기 쉽게 기술하려 했다.

이어지는 장들은 매우 엄밀하게 연대기 순으로 진행되고, 독자들

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신학자에 먼저 주목하기보다는 신학자들

을 연이어 생각함으로써 가장 큰 유익을 얻을 수 있다. 2장은 개혁

파의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교부 시대와 중

세의 일부 선구자들에 대해 고찰한다. 초기 개혁파 신학자들이 이

런 사상을 도입하지 않았고, 다른 여러 사람 가운데 아우구스티누

스, 아퀴나스, 스코투스, 오컴, 그리고 루터와 같은 인물들 안에 있

는 그 기원에 대해 성찰한다. 그런 다음, 3장에서는 개혁파 전통 자

체의 기원에 주목한다. 칼빈이 개혁파 전통의 유일한 기원이라는

자연법과 두 나라

사실 아닌 개념을 제안하려 하지 않고, 주로 이 장은 배타적이지는

않지만 칼빈과 그의 상호 연관된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에 초점을

맞춘다. 다음으로 4장은 초기의 몇몇 주요 사회 사상가들, 소위 저

항권 이론가들이 어떻게 시민 권위와 저항권을 다루는 그들의 지적

싸움에서 자연법을 활용했는지 검토하면서 일종의 사례 연구를 만

들어 낸다. 5장은 16세기 말과 17세기에 개혁파 정통주의에서 발전 한 자연법과 두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탐구한다. 신학자인 새뮤얼

러더퍼드와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그리고 법률 및 정치 이론가

인 요한네스 알투시우스는 다른 몇몇 사람들과 함께 이 장에서 특

별한 탐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앞선 장들은 초기

개혁파 신학이 개혁파 사회사상에 근본적이었던 자연법과 두 나라

의 명백한 교리를 제시했지만 이 교리들이 특히 종교 문제에 있어 서 세상 지도자의 책임에 관해서는 항상 일관되게 적용된 것이 아

니었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6장은 이 책에서의 중대한 변화를 보여 준다. 북미 개혁파의 경험

에 주목하면서, 앞 장이 끝난 시기에 러더퍼드와 투레티누스보다

나이가 더 많은 동시대 인물인 존 코튼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뉴잉

글랜드에서 시행한 청교도 실험의 대표자인 코튼의 자연법과 두 나

라 교리를 탐구한 후에, 이 장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근대 사상과

개혁파 기독교의 첫 번째 확장된 만남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 장은

18세기 말에 종교의 자유에 대한 미국의 관점에 관한 미국 장로교 의 결정적인 포용을 검토한 후에, 교회의 영적 특성과 교회와 두 나

라 교리의 관계에 대한 19세기 미국 장로교의 논쟁에 대해 탐구한 다. 정치와 사회적 삶에 대한 근대의 사상과 개혁파 신학의 만남은 7장에서 지속적인 관심사가 된다. 여기서 관심은 대서양을 가로질 러, 정치 및 문화적 삶에 대한 기독교적 설명을 세우려는 거대한 시

도 가운데 아브라함 카이퍼가 전유한 것으로 돌아간다. 6장과 7장

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미국의 스튜어트 로빈슨과 제임스 헨리

손웰, 그리고 네덜란드의 카이퍼와 같은 중요한 개혁파 신학자들이

계속해서 고전적 개혁파의 자연법과 두 나라의 범주를 활용했고, 이런 범주들을 이전의 선구자들보다 일반적으로 좀 더 일관성이 있

으면서 약간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발전시켰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 다. 비록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그들 나름의 몇 가지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말이다.

8장에서 10장까지는 20세기의 개혁파 사상에 대해 탐구하는데, 이 사상은 주로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의 포기 및 거부를 의미했다.

8장은 칼 바르트의 혁신적인 신학 기획을 탐구하는데, 바르트는 개

혁파 전통 속에서 연구하려 시도했지만 자연법과 두 나라에 대한

개혁파 전통의 옛 사상을 거부했고, 그 대신에 자신의 사회 및 문화

사상을 ( 그 밖의 모든 것과 함께 ) 다시 고쳐 쓴 기독론의 기초 위에 세우

려 했다. 그다음에 9장은 헤르만 도예베르트와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현대 북미 신칼빈주의자들을 주목하는데, 그들은 모두

현대 개혁파 사회사상의 형세를 규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9장의

결론은 그들이 비록 카이퍼의 기획에 빚지고 있지만 스스로를 초기

의 자연법과 두 나라 전통에 고정시켰던 카이퍼 사상의 주요 측면

들을 지워 버렸다는 점이다. 대신에 그들은 ( 비록 그들 중 많은 이들에게 바

르트와 대비되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 사회적・문화적

삶의 변화를 위해 구속적인 기독론의 기초를 모색한다는 면에서 바

르트를 닮았다. 10장은 코넬리우스 반틸의 사상에 대해 논의하고, 개혁파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에 관해서는 반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후속 기획이 초기의 전통에 비해 상당히 다른 방향

으로 가 버린 것과 같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모호한 점을 발견한다.

40 자연법과 두 나라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은 아주 많은 개혁파 인물들이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개혁파 자연법과 두 나라 전통의 여러 측면들을

왕성하게 지켜 온 20세기와 현대의 몇몇 인물에 대해 언급한다. 그

런 다음에 이 연구는 개혁파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의 장래의 연관

성에 대한 전망을 성찰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

의 삶을 위해 변증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 직면해야 할 다른

문제들을 확인하면서 끝을 맺는다.

개혁파 전통의

선구자들

개혁파 전통에 있는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는 종교개혁 시기에

그 어디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 교리는 모든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법에 대한 자연적 지식과, 개별 그리스도인들 및 법

인 단체인 교회와 시민 사회의 관계, 특히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거

의 1,500년 동안의 다양한 기독교적 성찰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

번 장의 목적은 이어지는 장들에 있는 자연법과 두 나라에 대한 개 혁파의 가르침을 자세히 고찰할 준비를 하는 일이다. 물론 종교개

혁 이전의 가르침에 대한 종합적인 개관을 조금이라도 닮은 모습을 여기서는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유익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자연법과 두 나라 교리에 관해 주요 신학자들 ( 또는 이 교리의 선구자

들 ) 에게서 나온 중요한 주제들, 즉 종교개혁 시기에 서구 신학의 지 위를 형성했고 초기 개혁파 사상의 분명한 주장에 영향을 미쳤던

주제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선 나는 서로 보완할 때도 있지

만 경쟁할 때도 있는 두 도성, 두 권세, 두 칼 사상을 비롯하여 종교

개혁 이전 그리스도인의 현세적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이중적 시각

에 대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검토할 것이다. 두 번째 주요 부분은

중세 시대에 자연법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가르침과 종교개혁 시기

에 이르기까지 이 교리가 차지한 위상에 대해 고찰할 것이다. 마지

막으로, 나는 마르틴 루터의 두 나라 사상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제안

과 이 두 나라의 도식 안에서 자연법의 역할을 고찰할 것이다. 1. 종교개혁 이전 선구자들의

첫 번째 주된 절에서, 나는 교부신학과 중세신학에서 발전된 것

으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일련의 이중적 시각에

대해 논의한다. 이 중요한 시각(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 두 권세 또는 두 칼,

그리고 자기 시대에 널리 유행한 두 칼 이론에 대한 윌리엄 오컴의 대안 ) 은 종교개혁자

들이 활동했던 신학적 환경을 밀접하게 조성했다. 이런 시각과 교

회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이

반복되는 질문에 대한 종교개혁의 공헌을 확인하고 간파할 준비가

더 잘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 확실히 종교개혁 이전의 이런 이중적 시각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주장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 교리다. 이 교리의 복잡함과 위

엄과 범위와 영향에 있어서 여전히 그것과 견줄 만한 것이 없다. 아

래에서 검토하게 될 이후의 모든 시각은 아무리 희미하다 해도 그

영감을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 구조에서 얻는다. 아우구스티누

스는 두 도성을 하나님의 도성과 인간의 도성으로 구별했다. 아우

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하나님의 도성은 결국 종말론적 도성, 즉 역

사상 모든 참된 예배자들로 구성된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여기 지상에서 순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성을

이루어, 그들의 영원한 집을 향해 가는 도상에서 외국인처럼 이 세

상을 여행한다. 반면에 인간의 도성은 참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 즉

모든 악인들로 이루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옥에서 영원한 형

벌을 받을 운명의 이 도성을 또한 결국 종말론적인 것으로 묘사하

지만, 이 도성 역시 악인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이 땅에 현존한

다. 각 개인은 한 도성의 일원이되 그 도성만의 일원이 된다. 그리

스도인은 하나님의 도성에, 비신자는 인간의 도성에 소속되어 있으

며, 이 두 도성은 완전히 대비되고 두 가지 다른 사랑의 특징을 갖

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를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과, 시

민 정부를 지상에 현시된 인간의 도성과 느슨하게 동일시한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도적인 일치는 확고하지 않다. 실제로 두

도성은 현세에 서로 섞여 있어서, 비신자들이 종종 더 넓은 사회적

삶 속에서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 참여한다. 이런 역동적인 구조 속

에서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도성의 일원이지만 국가와 더 넓

은 사회에 참여하여, 그 안에서 상대적인 지상의 평화를 추구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재화를 사용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 교리에 대한 간략한 요약은 아래에서 설명될 것이다. 이에 앞서 그가 지은 『하나님의 도성』( De Civitate Dei )

전체에 걸쳐 몇 가지 중요한 관련 주제들이 이미 초기 기독교 신학 에 등장했다는 점은

2장 개혁파 전통의 선구자들 45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성 교리에서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

는 기독교와 그 상대편이 완전히 대립되는 내용인데, 이미 1세기 후

반이나 2세기 초에 아마도 새로운 회심자를 위한 지침서로 사용되

었을 짧지만 영향력 있는 문서인 『디다케』( Didache ) 에 의해 예시되

었다.1 ) 『디다케』는 생명과 사망의 “두 길”을 설명하는데, 그 사이에

는 좁혀질 것 같지 않은 분열이 있다. “두 개의 길, 즉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있다. 그리고 두 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2 ) 이 두 길은 반대되는 특성과 대조되는 생활 방식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

며, 서로 구별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생명의 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되는 반면, 사망의 길은 “악하고 철저히

신성모독적이다. 즉 살인, 간음, 음욕, 음란, 도적질, 우상숭배, 마술, 마법, 강도, 거짓 증언, 위선, 이중성, 기만, 오만, 악의, 고집, 탐욕, 추잡한 말, 시기, 뻔뻔함, 거만, 자랑 등이 여기에 속한다.”3 ) 이런

관점에서부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그들의 이웃과 근본적

으로 다른 삶을 살고, 기독교를 거부한 자들과 근본적으로 대립하

며 존재하기 위해 부름 받은 것으로 여겼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을 활성화시킨 또 다른 주제

1 ) 『디다케』의 배경과 내용에 관한 최근의 논의들 가운데 다음 책들을 보라. William Varner, The Way of the Didache: The First Christian Handbook (Lanham: University Press of America, 2007); The Didache: Its Jewish Sources and Its Place in Early Judaism and Christianity, ed. Huub van de Sandt and David Flusser (Minneapolis: Fortress, 2002); Kurt Niederwimmer, The Didache (Minneapolis: Fortress, 1998); The Didache in Modern Research, ed. Jonathan A. Draper (Leiden: Brill, 1996); The Didache in Context: Essays on Its Text, History, and Transmission, ed. Clayton Jefford (Leiden: Brill, 1995).

2 ) “The Teaching of the Twelve Apostles, Commonly Called the Didache,” in Early Christian Fathers, trans. and ed. Cyril C. Richardson (New York: Collier, 1970), p. 171.

3 ) “Didache,” pp. 171~173.

자연법과 두 나라

는 대립이라는 주제와 상반되지 않지만 확실히 아주 다른 음색으로

소리를 내고, 거기에 엄청나게 중요한 음영을 더해 주는 것이다. 이

주제는 공통성 ( commonality ) 으로 표현될 수 있고, 아마도 또 다른 2세

기 문헌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 Epistle to Diognetus ) 에 아

주 생생하게 예시된 것이다. 이 익명의 편지는 틀림없이 『디다케』

와 모순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신자의 삶과 비신자의 삶 사이에

있는 엄청난 차이를 전제한다. 세상에 의한 괴롭힘과 고통의 확대

된 소리를 내고 있는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리스도

인들이 핍박을 받고, 정죄를 받고, 처형을 당하고, 가난해지고, 궁핍

해지고, 치욕을 당하고, 불명예스러워지고, 욕을 먹고, 모욕을 당하

고, 선을 행할 때조차 악인처럼 처벌받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스

도인들은 유아 살해와 배우자에 대한 부정행위를 피한다는 점에서

세상과 다르다.4 ) 확실히 세상과의 대립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세상과 그리스도인의 대립 관계는 세상과의 폭넓은 공통성으

로 인해 완화된다. 이 편지 앞부분의 눈에 띄는 단락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 이웃과 많은 것을 올바르게 함께 나

누고 있다고 기술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나 언어나

관습으로 인해 나머지 인류와 구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

기만의 도성에서 살고 있지 않다. 그들은 특별한 형태의 말을 사용

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정상적인 생활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

저자는 곧바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의복과 음식과 다른 일상생활의 문제에 있어서 그 나라의 관습을 따른다.……그들은 시민으로서 모든 것을 공유한 다.……그들은 다른 모든 이들과 같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4 ) “So-called Letter to Diognetus,” in Early Christian Fathers, p. 217.

2장 개혁파 전통의 선구자들 47

이것은 그들이 이 세상에 속해 있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나그네”와 “외국인”

으로서만 이런 공통성을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가

거주하는 도성의 기존 법률을 따르지만, 만일 그것이 죄에 빠지는 것을 의도한다면 절대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특히 “그 법

률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능가”함으로써 스스로를 구별한다.5 )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은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이

런 것들에 대해서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보다 훨씬 더 많

은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전

혀 말하지 않음에 틀림없다. 이 초기의 편지를 쓴 익명의 저자는 그

리스도인들이 근본적인 대립 관계에 있는 일반적으로 적대적인 문 화의 맥락 안에서 저술한다. 그런데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의

공통성으로 두드러지고 그 자체로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것들( 예를 들

어 언어, 의복, 음식, 결혼 등 ) 의 특징을 갖고 있는 폭넓은 삶의 영역을 인

식한다는 점을 진술한다. 기독교 사회에 대한 평판은 확실히 성취

되어야 할 목표로 추정되거나 묘사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그는 두 집단의 다른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과 그 나머지 사람

들 간의 근본적인 적대감 가운데 있는 폭넓은 공통의 영역을 언급 한다.6 )

5 ) “Letter to Diognetus,” pp. 216~217. 6 ) 이 작품이 만들어진 지 1,80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현대 사상가들은 여전히 가끔씩 그리 스도인의 사회적 활동을 위한 모델로 이 편지에 호소한다. 예를 들면, 조지 바이겔(George Weigel)과 같은 뛰어난 로마 가톨릭 인물은 얼마 전에 이 서신을 현대 그리스도인의 정 치적 삶에의 참여를 위한 건설적인 제안을 위한 출발점으로 사용했다(“The Church’s Political Hopes for the World; or, Diognetus Revisited,” in The Two Cities of God: The Church’s Responsibility for the Earthly City, ed. Carl E. Braaten and Robert W. Jenson [Grand Rapids: Eerdmans, 1997], pp. 59~77.) 다른 한 가지 관점으로, 신칼빈 주의 철학자인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도 정치에 대한 현대 기독교

48 자연법과 두 나라

보통 기존의 연구는 개혁파 전통의 신학과 사회윤리학이 자연법 및 두 나라 개념과 사이 가 좋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데이비드 반드루넨은 종교개혁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개혁파 사회사상의 발전 과정에 대한 사려 깊고 철저한 탐구를 통해 그런 현

상에 이의를 제기한다. 자연법과 두 나라의 운명은 개혁파 전통 안에서 서로 연결되었고, 이 두 사상을 동시에 살피는 일은 개혁파의 기독교와 문화 그리고 사회윤리의 관점을 발

전시키는 것에 대한 더 광범위한 질문으로 들어가는 유용한 창을 제공한다.

이 책은 모든 이에게 훌륭한 작품이다.……나는 결코 자연법에 대한 개혁파, 특히

20세기에 다양한 신칼빈주의와의 논쟁사 전체를 살펴볼 만한 단권책 중에서 이보

다 더 유용한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 반드루넨은 두 나라 교리의 맥락에서 자연

법을 다룬다. 이 책 전체는 이런 방법론적 방침을 따르는데, 이 방침이 화려하게 빛 을 발하고 있다! 러셀 히팅거(툴사 대학교)

이 책의 장점은 명민하게 분석되고 평가된 압도적인 양의 역사적 증거인데, 개혁파

전통을 자연법과 두 나라 영역에 명확하게 배치시킨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이 값진 공헌은 북미 기독교 공동체의 삶을 위한 투쟁

에 있어 절대 필요하며, 없어서는 안 될 동맹국과 같다. 존 볼트(칼빈 신학교)

매우 인상적이며 가치가 있다. 나는 이 주제를 다룬 개론서 중에서 이 책에 필적할

만한 것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범위가 엄청나고, 대표되는 인물들을 선별하고

다루는 것이 아주 세심하며, 잠재해 있는 함의들이 의미심장하다.……한 편의 중점적

인 역사연구와 이론의 비교 분석으로서, 이 책은 가히 최상의 작품이라 할 만하다!

맥스 스택하우스 (프린스턴 신학교)

지은이

데이비드 반드루넨 (David

VanDrunen)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시카고 로 욜라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

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및 기

독교 윤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정통장로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이자 정식 허가를 받은 변호사다.

지은 책으로는 『하나님의 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 기』, 『오직 하나님의 영광』 (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 가 있다.

옮긴이

김남국

충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고, 합동신학대 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백석 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에서 기독교 철학을 전공하 여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림대학

교, 대전대학교, 한국성서대학교에 출강하며 교양 과 목을 가르치고 있다. 평소 개혁주의 신학과 기독교 철학 그리고 인문학 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연구와

번역을 병행하고 있으며, 서울 방학동에 위치한 한샘

교회를 섬기고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하나님의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기

데이비드 반드루넨 지음 | 윤석인 옮김 | 288쪽 | 13,000원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한시적인 일반 나라에 모두 소속된 이중 시민으로 살아가라는 성경

의 도전에 대해 데이비드 반드루넨이 지혜롭게 풀어낸 이 작

품은 오늘날 교회를 얽어매는 혼란스러운 사고를 정리하는 데 꼭 필요한 안내서다. 반드루넨이 이처럼 간명하면서도 시기적

절하게 논증하는 내용은 두 나라라는 개념에 기초한 신학이 교 육, 노동, 정치 등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된 광범하고 긴요한 논의를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

데이비드 반드루넨 지음 | 박문재 옮김 | 298쪽 | 15,000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5 Solas Series”의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 데이비드 반드루넨은 하나님의 영광의 교리가 어떻게 개혁파

신학과 신앙고백서에서 전개되었는지를 검토하고, 그런 후에 성경의 이야기로 방향을 돌려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산만함과 자기애 같은 오늘날의 문

화적 도전을 다루면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헌신이 어 떻게 우리를 이 악한 현시대에서 경건한 삶을 살게 하는지 숙 고한다.

언약신학으로의 초대 마이클 브라운, 자크 킬 지음 | 조호영 옮김 | 224쪽 | 11,000원 언약신학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주제 인데도, 쉽게 언약신학을 소개하는 입문서는 지금까지 없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우 면서도 개혁주의적인 언약신학 입문서를 만난다. 이 책은 성경 의 흐름과 신학적 논의를 잘 엮어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맺은 언약들의 내용을 분명하게 제시할 뿐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알려 준다. 신학생과 목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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