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성경신학
Who Shall Ascend the Mountain of the Lord?
A Biblical Theology of the Book of Leviticus

저자 서문
오경의 한가운데 책인 레위기는 오경 신학의 핵심을 포함하고 있
으며 하나님의 본성 및 인간이 처한 어려운 상황과 관련된 많은 것
을 보여 준다. 레위기에 대한 교회의 이해는 성경 이야기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파악하기 위한 토대가 될 뿐 아니라 모세 언약의 본질과
성격, 하나님 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및 사역과 같은 중대한 주
제 전반에 관한 통찰의 기초가 된다. 이 책에 담긴 나의 소망과 기도
는 교회가 오경의 맥락 및 신약의 맥락 둘 다에 있어서 레위기라는
책에 신학적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교회
는 약한 손이 강하게 되고, 연약한 무릎이 든든하게 될 것이며, 새롭
고 살아 있는 방식을 통해서 하늘 아버지께 기쁨으로 새롭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목표를 추구했다는 것은 레위기의 다른 많은
측면을 불가피하게 회피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측면에는 속죄
의 정의와 제사 이론에서의 상충되는 방법론 등이 포함되며, 이것들
은 많은 미묘한 토론과 논거를 요구하는 학술 논쟁의 주제다.
본서의 상당 부분은 리포메이션 바이블 칼리지에서 가르칠 때 쓰
였다. 나는 그곳에서의 복된 날들을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R. C. 스
프로울 박사, 크리스 라슨 박사와 스티브 니콜스 박사의 리더십, 전
동료인 데이브 브리온스, 애런 덴링거, 벤 던슨, 키스 매티슨 및 R. C.
스프로울 주니어의 우정, 하이디 프레이저와 친절했던 다른 직원들, 그리고 리포메이션 바이블 칼리지에서의 가르침을 그처럼 통찰력
있는 기쁨으로 만들어 주었던 학생들에게 감사한다. 키스는 친절하
게도 원고의 초안을 읽고 유용한 피드백을 제공해 주었다. 화이트보
드에 그린 나의 그림을 유용하고 아름다운 디지털 삽화로 전환해 준
라이언 프레이저 씨에게도 감사드린다. 고맙네, 친구여.
이 책의 마지막 장은 그린빌 장로신학교의 성경연구 교수직으로
전근하는 과도기 동안에 쓰였다. 조셉 파이파 주니어 박사와 더불어
이사회, 교수진, 교직원 및 학생들이 보여 준 친절한 환대에 대해 따
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피터 밴두드워드 목사와 그의 가족은 이 과도기의 3주 동안 나를
자신의 집으로 받아들여 주었으며 그동안 나는 다니엘 가족으로 머
무르고 있다( 나는 이 서문을 그들의 집 지하실에서 쓰고 있다 ). 주께서 그의 풍성한
영광 가운데서 당신의 친절을 갚아 주시길 기원한다. 이 자료 중 일
부는 내가 올랜도에 있는 리폼드 신학교에서 외래교수로 섬겼던 학 기 동안 가르쳤던 것이다. 그런 기회를 허락한 리건 덩컨 박사와 스
콧 스웨인 박사에게 감사드린다. 가장 유능한 사서인 마이클 퍼렐에 게도 감사한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비롯한 다른 여러 프로젝트를 위 하여 내가 필요로 한 많은 책과 논문들을 찾아 주었다.
이 프로젝트 편집자들의 인내심 있고 세심한 수고와 관련하여 돈 카슨과 필립 듀스에게 감사드린다. 그들의 도움과 안내를 받은 것이 하나의 특권이었다. 본서의 교열 담당자로서의 근면성에 대해 엘도 바르쿠젠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주께 감사드리고, 미국 플로
리다주 스튜어트에 있는 그레이스 장로교회의 장로회( 나의 아버지를 포함
하여 ) 와 집사들 및 교인들, 그리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
에 있는 우드럽 로드 장로교회에도 감사할 것이 많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 엘리스, 아들 아만도, 디에고, 알레잔드로
및 안드레스에 감사한다. 이 책을 큰 사랑으로 엘리스에게 헌정한다.
이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이 있을지어다.
이스라엘, 구속받은 그의 성도들에게 영원한 복이 있을지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성삼위가 송축을 받고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이 거룩한 무리에 참여한 복된 인생들이여!
L. 마이클 모랄레스 2015. 4. 11.
머리말
하나님의 집의 영광: 임재의 등잔대와 진설병 상
안식일이란 무엇인가?……안식일은 산꼭대기로 오르는 것이다. -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성막의 성소 안에 있는 등잔대를 만드는 제작 지침에 따르면 그것
은 순금을 망치로 두드려서 일정한 양식에 따라 만든 편도나무 모양
으로 나무줄기 양쪽에는 세 개의 가지가 붙어 있었고, 모든 것은 하
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 주신 양식대로 만들어졌
다( 출 25:31~40 ).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등잔대를
돌보아야 할 특별한 임무를 다음과 같이 부여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등불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게 할
지니라 하시매 아론이 그리하여 등불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도록
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이 등잔대의
제작법은 이러하니 곧 금을 쳐서 만든 것인데 밑판에서 그 꽃까지
쳐서 만든 것이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보이신 양식을 따
라 이 등잔대를 만들었더라(민 8:1~4).1)
고든 웬함( Gordon J. Wenham ) 은 이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이 본문은 특히 한 가지 점, 즉 일곱 등잔이 앞을 향하게 해서 등잔대의 앞을 비
추게 해야 하는 아론의 의무를 강조하는 점이 눈에 띈다고 지적한다.
등잔들이 등잔대 앞을 확실히 비추게 하라는 이 특이한 의무를 이처
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웬함은 성소의 디자인을 고려할 때
이 행동의 의미가 분명해진다고 설명한다.
등잔 불빛이 앞을 비추면 그 빛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
하는 열두 개의 떡이 놓여 있는 진설병 상 위에 떨어졌을 것이 다(레 24:5~9). 빛과 불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복을
나타낸다(예, 출 13:21~22). 따라서 아론은 등잔 불빛이 항상 진
설병을 밝게 비추도록 준비해야 했다. 이런 조치는 하나님의 백성
은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고 제사장이 중재하는 복을
누려야 한다는 하나님의 의도를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었다.2)
웬함은 또한 제사장의 이 의무는 제사장의 축도( 민 6:23~27 ) 가 구두 로 확언하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말한다.3)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1)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모든 성경 번역은 나의 것이다(본 역서의 성경 본문은 한글개역개정 을 사용함-편집자).
2) Wenham 2008: 106~107; 강조는 나의 것.
3) 앞의 책, 107.
머리말: 하나님의 집의 영광: 임재의 등잔대와 진설병 상 17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
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성호를 세 번에 걸쳐서 사용하고 나머지 다
른 단어 열둘을 사용하는 이 축도는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없
지는 않다. 여기서 이에 대한 간단한 논평 둘을 순서대로 제시한다.
첫째, 민수기 6장과 8장의 신성한 복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빛
을 비추는 것으로 묘사되며, 이는 “나의 이름”을 그들에게 두는 것이
라는 문구로 부연 설명되는데( 6:27 ) “나의 이름”은 우리가 이 책의 뒷
부분에서 다시 살펴보게 될 중요한 어구다. 둘째, 등잔대의 의미는
진설병의 의미와 결부시켜 이해해야 하며 이 둘은 민수기 6장에 나
오는 제사장의 축도에서 하나님의 얼굴 빛이 그의 백성에게 비추는
것이 그러하듯이 하나의 상징적인 그림을 형성한다. 등잔대에 대한
지시가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30절 ) 는
명령에 바로 이어서 나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 등잔들이
앞쪽을 향하도록 배열하는 것은 등잔대를 만들기 위한 지시 사항의
필수 요소( 출 25:37 ) 로서 그것의 의미와 불가분리적으로 결합되어 있
다. 그래서 독자들은 아론에게 주어진 지시를 읽으면서 성소 안에서
진설병이 등잔대 앞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출애굽
기 26장 35절( 40:24 참조 ) 에 따르면 열두 덩어리의 떡이 놓인 순금 진
설병 상은 성소 북쪽에 놓였고, 순금 가지 일곱이 달린 등잔대는 진
설병 상 바로 맞은편 남쪽에 놓였다( 성막 자체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 요약하면, 등잔대 불빛은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복
된 영광을 표상하는 반면에, 열두 덩어리 떡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 등잔을 정기적으로 관리해서 불빛이 떡을 비추도록 해야 하는 아론의 역할은 하나님의 복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중재해야 하
는 제사장직의 역할과 기능을 요약한다. 요컨대 우리는 민수기의 이
런 언급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제의가 갖는 역할을 요약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제의는 언약의 목적과 관련이 있기 때
문이다.4) 민수기 6장 23~27절과 8장 1~4절은 하나님의 제사장의
중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백성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막 안에서 성소의 배치는 자신의 집에서 영광의 불 가
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빛 가운데서 드러나는 이스라엘의
이상을 보여 준 것이었다. 다음 장들을 읽으면 이해하게 되겠지만,
이 제의적 상징체계는 특히 안식일에 중점을 두고 묘사되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위해 열어 놓은 레위기 율법에 정
해진 길을 통해서 새롭게 하는 여호와의 임재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
이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의 완성 시점에서 누리게 될 삶을 미리 맛
보는 것이었다. 사실 성소의 벽들이 금으로 입혀졌고 일곱 등잔의 불
빛은 순금 등잔대 및 순금 진설병 상과 더불어 성소 벽들의 이 특징
으로 인해 경이롭게 반사되었을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집의 영
광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호
와의 복된 안식일 임재 안에 거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이런 상징적인
그림은 이스라엘이 안식일 예배에서 맛보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하
나님의 집에서의 삶을 묘사하는 그림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우주( 우리가 뒤에서 살펴보게 되
겠지만 우주는 하나의 집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 창조의 원래 목적이었는데, 그 후
4) Kapelrud(1965: 56)는 이에 대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야곱의 꿈의] 사다리는 옛 이스 라엘에서 종교 의식의 역할을 상징한다”라고 말한다.
머리말: 하나님의 집의 영광: 임재의 등잔대와 진설병 상 19
자기 백성을 최종적으로 구속할 때, 곧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정화해
서 완전히 거룩하게 만든 후 자신의 거룩한 산에서 그들과 함께 거
할 때에 대해 묘사하면서 이러한 실재를 언뜻 엿보게 한다.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사 4:5).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슥 2:5).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몇 페이지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거
룩한 성 예루살렘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에 따르면 하나님
의 백성은 그의 영광의 빛 속에 거할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여
호와 하나님에게서 광채가 나와 밤도 없고 햇빛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계 21:10~11, 23; 22:5 ).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메시아 나라의 이 완
성을 언약 공식( covenant formula ) 에 표현된 바와 같은 하나님의 계획이
역사적으로 성취된 것으로 우리에게 제시한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
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
서(계 21:3).
언약의 최고 목표인 풍성한 기쁨과 친교 속에서의 충만한 삶을 위해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앞에 펼
쳐진 위대한 약속이자 이스라엘의 예전에 표출된 강렬한 소망이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여호와가 자신의 집으로 인도해 들이는 자들은 그의 환대를 받는 다. 고대 근동의 너그러운 주인처럼 하나님은 손님을 위해 상을 차리 고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잔이 넘치게 포도주를 붓는다( 시 23:5 ). 실제
로 여호와의 집은 모든 생명과 풍요의 원천으로 묘사된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에덴’)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 36:8~9).
여기서 “복락”( pleasures ) 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단지 ‘에덴’
의 복수형으로서 에덴의 생명의 강이 암시되고 있음에 주목하라. 하
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은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여호와 자신을 뵙 고자 하는 갈망으로 불타오르는 소망인데, 여호와는 생명의 근원이 기 때문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머리말: 하나님의 집의 영광: 임재의 등잔대와 진설병 상 21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시 26:8).
지복직관, 곧 여호와의 얼굴을 뵈옵는 지극히 복된 상태에서 여호
와와 함께 살고자 하는 동일한 갈망이 시편 27편 4절에서는 이 시편
기자가 구하고 있는 “한 가지 일”이라고 표현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그러나 바로 여기서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어떻게 하나님 자신의 거처가 그의 백성의 여정의 종착지가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권속의 일원이 되는 것이 흙으로 빚
어진 피조물에게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있는가? 성막 및 후대에 건축
된 성전 안에 있는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는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그리고 “내 평
생 동안” 거하는 것에 대해 노래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여러 가
지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제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며, 실제로 인
간의 삶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시 15:1).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시 24:3).
하나님의 산에 올라 그의 집에 들어갈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 질
문은 아마도 연례적인 절기 순례 기간 중 시온산에 있는 성전으로
나아가는 순례자들에 의해 낭송되었을 것이며, 이를 성전 입장 예
전( gate liturgy 또는 entrance liturgy ) 이라 부른다. 뒤에 나오는 장들에서 보게 되겠지만, 이 성전 입장 예전은 오경의 내러티브 전체의 저변에 도도
히 흐르고 있으며, 오경의 한가운데 책인 레위기의 중심부에서도 발
견된다. 오경 자체가 철저하게 레위인의 작품인 제사장적 토라이며
그 전통적 저자인 모세가 완전한 레위인( 출 2:1~2; 6:14~27 ) 이었음을 고
려할 때 이러한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마
찬가지로 오경의 중추적 관심사 역시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의 집에
거하게 될 수 있는가이다. 모세 언약 아래서 여호와가 열어 놓은 그
길은 성막과 후대의 성전, 그 제사장단( priesthood ) 과 의식들을 통하는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레위기적인 제의를 통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기 위한 새롭
고 살아 있는 길이 열리게 될 터인데, 실로 그리스도가 우리 인류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고 부활하고 하늘에 올라간( 승천 )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이 레위기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 한다는 주제에 대한 책이며, 그런 실재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가능하
게 되는지를 다루는 책이다. 거룩한 산에 있는 여호와의 집에 거하고 자 하는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소망은 단지 예전에 관한 질문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탐색이었다. 그것은 확실히 당혹스러운 탐색
이다. 왜냐하면 누가 과연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할 수”( 사 33:14 )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현존의 영광으로 “불이 불었으 나 사라지지 아니하는” 불타는 떨기나무 덤불과 비슷한 그런 경이로
움이 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운명이었다( 출 3:2~3 )
머리말: 하나님의 집의 영광: 임재의 등잔대와 진설병 상 23
바다를 통한 여호와의 구원을 막 목격한 모세는 출애굽기 15장에
서 성경에서 아마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생각되는 노래로 이스라엘
을 인도한다. 이 노래의 신학적 핵심이자 구조상의 중심인 11절은
하나님 찬미와 경배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우리는 “구약의 하나님의 가장 깊고 내적인 본성”,5) 즉 그의 절대
적인 거룩함에 다시 한 번 직면한다.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거룩하
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사 6:3 ) 라고 선언한다. 여호
와는 “다른 어떤 신”과도 같지 않다는 말이다. 땅의 의문문에 대해서
하늘의 이 직설법이 호응한다. 땅에서는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이
“여호와여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라고 외친다. 이 질문은 그 자
체로 최고의 찬사다. 그러나 이런 깊은 경외감 속에서도 이 노래는
흔들림 없는 소망을 붙들고 거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약속으로 나아 간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은 정확한 목적은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그분의 집에 거하기 위한 것이라는 약속이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
5) Sellin 1936: 19.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출 15:13, 17).
이 구절에서 세 번 강조되어 반복된 “주께서”( you will ) 라는 말 속에
는 하나님의 집에 거하리라는 이스라엘의 삶과 소망의 근원이 있다.
영원한 사랑으로 인해 여호와는 한 길을 만들기로 작정하셨다. 그리
고 하나님께 그리 어려운 일이 있겠는가? 이어지는 구절들은 그 길
의 놀라움을 드러내고자 노력한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닻 을
것이다.
있기 때문에, 그의 백성의 갈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6번 질문과 답변은, 인간은 진정으로 하
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영원한 행복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살기 위해
창조되었으며 모든 것이 그의 찬양과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가
르친다. 비슷하게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의 1번 질문과 답변은,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역사적 신앙고백들은 구약과 신약 성
경의 성경신학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위
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영원히 그를 뵙고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
하는 것이 성경의 “이야기”이며, 그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행위와
사람과 장소가 의미가 통하게 하는 “플롯”이며, 성경의 교리를 위한
가장 심오한 “맥락”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은 피를 흘리고 성령을 부어 주었으며, 그것은 아
들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하 기 위한 것이었다.
머리말: 하나님의 집의 영광: 임재의 등잔대와 진설병 상 25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84:1~4).
오경 안에서의 레위기
신학적 구조

서론
레위기( 그리고 오경 전체 ) 의 기본 주제와 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있는 길을 여호와가 열어 준다는 것이다. 이 주제는 오 경에서 성막 제의가 담당하고 있는 중요한 역할뿐 아니라 내러티브
부분도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임재 안
에 거한다는 주제는, 오경의 핵심이라는 토양에서 돋아난 알곡처럼, 성경의 역사를 뚫고 진행되며 문학적으로는 뿌리에서 결코 끊어지
지 않는 여러 덩굴로 뻗어나서 열매를 맺는다. 학자들은 어떤 작품의 의미를 결정할 때 문학적 구조가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 즉 형식이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을 점차로 인식하게 되 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장에서 최종 형태로서의 오경의 구조를 생 각해 보고, 그 구조가 레위기의 신학적 주제에 어떻게 이바지하는지 검토할 것이다.
오경의 구조
이제 우리는 오경의 뼈대가 되는 구조를 탐구할 것이다. 나는 오경
의 최상위 거시적 구조 수준을 검토함으로써 그 의미의 가장 깊은
수준( 기반암 ) 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
리는 오경의 최종 형태가 문자 그대로 언덕 위의 등불처럼 제사장
중심의 제의 제도를 수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경의 중심: 레위기
오경의 가장 분명한 구조적 특징은 그것이 “오경”, 곧 “다섯 권”
혹은 “다섯 두루마리”의 책이라는 점일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
들은 레위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이 다섯 권 구조가 우연이 아니
었으리라는 점을 지적했다.1) 오경이 다섯 개의 두루마리로 되어 있
는 것은 단지 전체 토라의 분량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 올드
[Auld]는 이것을 근거가 빈약한 생각이라 불렀다 ) 2)은 각 책이 나뉘는 지점을 제대
로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다섯 권으로 된 모음집의 대칭성을 제
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거의 같은 길이 ( 각각
16,713단어와 16,413단어 ) 임에 반해서, 가운데 책인 레위기는 가장 짧
다( 11,950단어이며 이는 창세기의 절반 정도다 ). 3) 더 나아가, 연대기적 지표는 오
경에 속하는 다섯 권의 책 모두를 독립적인 단위로 보게 만든다.4)
마찬가지로, 시편이 의도적으로 다섯 권의 책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1) 예를 들어, Klingbeil 2007: 155~157; Radday 1972; Shea 1986; Christensen 1996: 539 를 보라. Sailhamer(1992: 1~2)는 오경이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 하지 않는데, 이것은 그가 제의를 과소평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2) Auld 1996: 40.
3) Blenkinsopp 1992: 42~47; Ska 2006: 16~19.
4) M. Smith 1999: 201; Knierim 1995: 353; Auld 1996; 2003; Bibb 2008: 18~26.
사실은 오경의 다섯 권 구조가 신학적으로 중요하다는 관련 인식을
드러낸다.5)
오경이 갖는 다섯 권으로서의 성격을 일단 고려하게 되면, 레위기
의 중심성이 쉽게 드러난다. 주제 면에서 볼 때, 오경은 동심원적으 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창세기와 신명기
는 한 족장( 야곱, 모세 ) 이 그 땅 밖에서 죽기 전에 열두 지파에게 축복
하는 것으로 끝난다.6) 출애굽기와 민수기에는 유사한 사건이 많이
나타나며, 두 책은 중심 책으로서의 레위기를 틀처럼 감싸고 있다.
레더( A. C. Leder ) 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오경의 동심원 구조에서 출애굽기와 민수기 사이에 존재하는 평행들은 이 두 책이 레위기의 틀을 이루고 있음을 시사한다. 창
세기와 신명기 사이에 존재하는 평행들은 주제 면에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의 틀을 형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경 내러티브
전체의 시작과 결론을 제공한다. 따라서 창세기에서 신명기에 이
르는 오경은 ABCB′A′라는 구조적 형태를 보여 주고 있으며, 이 안
에서 신명기는 창세기의 주제로 돌아가서 그것을 보완하고, 민수
기는 출애굽기의 주제로 돌아가서 그것을 보완한다. 이로 인해서
레위기는 아래 표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오경의 내러티브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7)
5) 흥미롭게도 시편 제3권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레위인인 아삽, 고라, 에단의 노래들” (Auld 1996: 41)이며, 5권의 책 중 한가운데 있으면서 가장 짧다는 유사성도 갖는다.
6) 창세기의 시작(1:2)과 신명기의 끝(32:10~11)에 나타나는 공통 어휘에도 주목하라.
7) Leder 2010: 34~35.
구조 29
A 창세기
민족들과의 분리/
축복/땅을 보다/
자손과 땅
B 출애굽기
C 레위기
B′ 민수기
A′ 신명기
민족들과의 분리/
축복/땅을 보다/
자손과 땅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배교와 역병/
바로와 마술사들/
장자/레위인
제사/정결/ 거룩함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배교와 역병/
발락과 발람/
장자/레위인
모쉐 클라인( Moshe Kline, 2006 ) 은 이와 유사한 도식적인 오경의 구조
를 제안한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프롤로그
애굽을 떠나다
성막을 세우다
성막 예배
성막을 봉헌하다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다
신명기 에필로그
레위기 성경신학
그러나 대칭성은 주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웬함은 창
세기가 서론적 프롤로그 역할을 하고 신명기가 회고적 에필로그 역
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에,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는 세
확장된 여행-중지 기사들로 밀접하게 묶여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8)
애굽
출 1장
13장 19장
시내산 가데스 모압 평지
레위기
민 10장
13장 20장 22장 36장
좀 더 좁게 보면, 샤트( A. Schart ) 가 제안한 출애굽기 15장 22절~민
수기 21장 18절의 고리 구조는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유사점과 오경
안에서 시내산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9)
A 출 15:22~25 쓴 물이 단 물이 되다
B 17:1~7 바위에서 나온 물
C 17:8~16 아말렉-이스라엘 전쟁
D 18장 모세의 지도자 임무 경감
E 18:27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호밥
F 19:1~2 시내산 도착
시내산
F′′민 10:11~23 시내산 출발
E′10:29~32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호밥
D′11장 모세의 지도자 임무 경감 C′14:39~45 아말렉-이스라엘 전쟁
8) Wenham 2008: 18. 웬함은 19~20쪽에서 여행-중지 기사의 유사점을 도표로 제시한다.
9) Schart 1990: 52. J. Milgrom(1990: xvii~xviii) 역시 전반적 교차대구 구조 견해를 지지한
다. D. A. Dorsey(1999: 80~81)가 제안한 출 19:3~민 10:10의 교차대구 구조도 참조하라.
31
B′20:1~13 바위에서 나온 물
A′21:16~18 샘
여호와 출현의 원형적 장소인 시내산의 중심성은 오경 안에서 신
현과 신의 임재가 갖는 신학적 강조점 보여 준다.10) 중심에 위치한
이 시내산 단락( 출 19장~민 10장 ) 으로 범위를 좁혀서 살펴보면( 이 단락은 그
자체로 여행 통고로 시작된다 ), 그 안에는 레위기의 문학적 통일성에 대한 의
미심장한 신호들이 나타난다.11) 성막과 관련하여 레위기의 틀을 형
성하는 것은 날짜 고지다.
G 출 40:17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룻날 - “성막이 세워졌다”
시내산 레위기
G′민 1:1 둘째 해 둘째 달 초하룻날 - “만남의 장막”(회막)
성막 구조가 레위기와 일치한다는 것은 성막 문학 여행의 일환으로
레위기를 이해하는 메리 더글러스( Mary Douglas ) 의 입장을 뒷받침한다.12)
스미스( C. R. Smith ) 는 또한 출애굽기 후반부가 주로 성막을 세우는 법
을 다루고 민수기의 전반부가 성막 해체에 관심을 갖고 있는 데 반해 서, 레위기 자체는 성막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
는 점을 지적한다.13) 스미스는 크니림( Knierim ) 과 마찬가지로14) 레위기
10) Polak 1996; Lawlor 2011: 30~31 참조.
11) Ruwe 2003: 58~59와 비교.
12) Douglas 1999a. 이를 뒷받침하는 G. Rendsburg (2008)의 증거도 참조하라. 나는 문학적 으로 레위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성막이라고 단언하지만, 더글러스의 구조적 개요는 수용하지 않는다(아래의 간단한 비평 참조).
13) C. R. Smith 1996: 18~19. Lawlor(2011: 39~42)는 출 33:7~11은 시내산 단락(그는 출 18 장부터 민 10장까지를 시내산 단락으로 규정한다)의 전환점일 뿐 아니라 레위기 및 민수 기 1~6장의 내용(성막이 중심이 되는 계시)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정한다.
14) Knierim 1985: 405.
1장 1절( “여호와께서 ‘만남의 장막으로부터’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은 시내산 단락이라는 거대 구조에서 최고 수준의 신호를 보내고 있으
며 민수기 1장 1절(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만남의 장막 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
되” ) 로 끝난다고 말한다. 그는 레위기를 별개의 부분으로 떼어 놓으려 고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렌토르프( Rendtorff ) 도 레
위기의 구성이 갖는 의도적인 성격을 지적한다.15) 즉 레위기는 “시
내산에서 일어난 일, 그리고 동시에 만남의 장막 부근 및 만남의 장
막 안에서 일어난 일만을 오롯이 다루고 있는 오경의 유일한 책”이
라는 것이다.16) 그렇다면 우리는 레위기가 오경 내러티브의 핵심이
라는 담로슈( Damrosch ) 의 진술을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지지할 수 있
을 것이다.17)
레위기의 중심: 대속죄일
레위기의 경계 안에 초점을 맞추면, 속죄는 이 중심 책의 주요 주
제 중 하나이며, 몇몇 학자는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을 이 책의 문
학적 중심에 놓는다. 이 결론은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근거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스미스는 율법과 내러티
브라는 장르가 교대로 나타나는 점에 착안하여 레위기의 개요를 파
악한 후,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일곱 부분으로 나뉜다고 제안한다. 율
법, 내러티브, 율법, 내러티브, 율법, 내러티브, 율법. 그리고 여기서
중심 부분은 대속죄일에 대한 레위기 16장의 내러티브 서술이다.18)
15) Rendtorff 2003: 253.
16) 이것은 내가 “Damit wird zugleich bewusst gemacht, dass Leviticus als einziges der fünf Bücher des Pentateuch ganz und ausschliesslich am Sinai spielt – und das heisst zugleich: am und im Zelt der Begegnung, dem Heiligtum”를 번역한 것이다.
17) Damrosch 1987: 76. “시내산 단락은 레위기를 목표로 한다. 레위기는 오경의 중심이다” 라는 Knierim의 결론(1985: 405)은 거의 동일하다.
18) C. R. Smith 1996: 22. 그는 또한 대속죄일의 두 염소는 레위기 16장 앞뒤 양쪽에 있는 율
젱거( Zenger ) 는 16~17장을 중심으로 하고 다음과 같이 동심원적으로
배열된 7중 구조를 제안한다.19) 1~7장: 제사 규례, 8~10장: 제사장
의 직무, 11~15장: 일상적 정결, 16~17장: 속죄 및 화해, 18~20장:
일상적 거룩함, 21~22장: 제사장의 직무, 23~26장: 제사 및 축제 규
례. 그리고 여기서 루웨( Ruwe ) 는 젱거가 16장을 분리시키지 않은 것
을 잘 비평하고 있다.20) 루웨 자신은 레위기 1~8장과 9~26장을 최
상위에 있는 구조적 단락으로 제시하지만, 그의 하위 단락 구분( 예를
들어, 11~15장을 동심원 구조로, 17~27장을 일관된 독립적 복합체로 보는 것, 그리고 16장을 1절의
연대기적 고지와 2절의 아론에게만 주어진 말씀이라는 언급을 이유로 독립적 단락으로 기술하는
것 ) 은 대속죄일의 중심적 성격을 나타낸다.21) 그리고 워닝( Warning ) 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레위기의 구조를 37개의 하나님의 말씀
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레위기 16장에서 문학적 중
심에 도착하며 양쪽에 18개의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
다.22) 마지막으로 루치아니( Luciani ) 역시 반복 및 상호 연결과 같은
형태적 장치에 근거하여, 그리고 레위기 1장 1절, 16장 1~2aα절 및
25장 1절을 거시적 구조에서의 하나님 말씀의 서문으로 구분하면서
레위기 16장을 중심으로 하는 동심원 구조를 제안한다.23) 따라서 형
식과 주제 모두에서 16장이 레위기의 중심적 위치에 있다고 말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렌토르프의 결론은 적절한 것으로 생각
법의 관심사, 즉 정결과 성결을 강조한다고 제안한다(24).
19) Zenger 1999.
20) Ruwe 2003: 69, n. 35. 또한 그의 소논문의 후반부는 17~26장을 하나의 단위로 유지해야 한다(이는 16장의 독특성과 완전성을 보장한다)는 입장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Otto 1994: 242~243도 보라.
21) Ruwe 2003: 특히 68~69.
22) Warning 1999.
23) Luciani 2005. 그는 16장을 중심으로 1~7장과 25~27장(A–A′), 8~10장과 23~24장(B–B′), 11~12장과 22:17~33(C–C′), 13~15장과 17:1~22:16(D–D′)이 평행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된다.24) 이렇게 이해하면, 대속죄일은 문학 및 주제 양면에 있어서
오경의 중심이 된다. 비브( Bibb ) 도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레위기 16장은 그 자체로 레위기 제의 세계의 소우주 혹은 축
소판이며, 내러티브적 과거와 시대를 초월하고 현실과는 무관한
제의의 미묘한 통합이다. 어쨌든 16장은 분명히 레위기의 중심축
이며, 모름지기 문학적 분석은 이 책의 구조와 메시지에 있어서
16장이 갖는 중요성을 설명해야 한다.25)
시어( Shea, 1986 ) 의 논문에 토대를 둔 데이빗슨( R. M. Davidson ) 의 도해( 내
가 약간 변경했다 ) 는 레위기 16장의 구조적인 위치와 역할을 강조한다.26)
16장
대속죄일
개인 율법
제사장 율법
21~22장 D′ 17~20장 E′
성소 율법
레위기
출애굽기 민수기 A B 1~7장 C
창세기
8~10장 D 11~15장 E F A′ 신명기 B′ 23~27장 C′
레위기 도해 피 거룩함
24) Rendtorff 2003.
25) Bibb 2008: 33.
26) Davidson 1988: 20.
1장 오경 안에서의 레위기: 신학적 구조 35
따라서 레위기가 7부로 구성되어 있다고 제안하는 학자들 사이에 서 그것이 정확히 어떻게 나누어지는지, 또한 그 제목을 어떻게 붙이
는지에 대해서 ( 어느 정도 ) 차이가 나게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 만, 다음 개요는 레위기에 대한 적절한 개관을 제공한다.
1~7장: 제사들
8~10장: 제사장 제도/제의의 시작
11~15장: 일상생활에서의 정결/부정
하나님에게 나아감
속죄
16장: 대속죄일 심판/정화
17~20장: 일상생활에서의 거룩함/속됨
21~22장: 제사장 관련 규례
23~27장: 절기/거룩한 날
하나님과의 친교
성결
계단식 배열에서 분명히 나타나듯이, 그리고 특히 젱거( 1999 ) 와 루
치아니( 2005 ) 와 부합하게, 나는 레위기가 동심원 구조를 취하고 있다
고 가정한다. 그것은 “희생제사 의식의 절정”으로서 대속죄일을 향
해 가고 있으며, 아울러 대속죄일 의식에서 “거룩한 삶이라는 주제”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27) 가장 기본적인 관점에서 레위기는 16장이
지렛목 역할을 하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이다. 16장은 희생제사 의식을 요약하는 동시에 성결( 거룩함 ) 에로의
부름에 대한 ‘세구에’( segue, 중단 없이 계속하라는 뜻의 음악 용어-편집자 ) 역할을 한다. 전반부는 기본적으로 피를 통해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을
다루는 반면에, 후반부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통해 점점 성결해 지는 것을 다룬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목표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27) Shea 1986: 131~132.
연합이다.28) 여기서 레위기 율법의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살펴
보아야 한다. 희생제사와 관련된 것이든,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의
구별에 관한 것이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행동과 관련된 것이든, 모
든 율법의 목적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교제와 연합이다. 그렇기 때
문에 레위기가 흔히 거룩함을 주제로 하는 책이라고 불리고 있음에
도 불구하고,29) 거룩함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거룩함은 진정한
주제, 곧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누리는 풍성한 기쁨의 삶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점은 레
위기 전반부와 후반부를 각각 특징짓는 피와 거룩함이라는 주제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 레위기 17장 11절은 제의적 피 혹은 희생의 피
의 의미로서 생명을 설명하면서 1~16장의 제사 율법 전체를 이 틀
안에 위치시킨다.
육체의 생명(‘네페쉬’)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
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나프쇼테켐’)을 위하여 속죄 하게 하였나니 생명(‘반네페쉬’)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
28) 레위기에 대한 이런 광범위한 접근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화해가 갖는 두 가지 특성을 이해 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 정한 방법, 즉 속죄를 통해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레위기 전반부)이며, 다른 하나는 거룩함에 점점 이르면서 하나님과의 교제와 친교를 깊게 하는 것이다(레위기 후반부). 희생제사는 성화와도 꽤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소 지나치게 단순
화시킨 것이기는 하지만 레위기의 두 절반은 달리 말하면 칭의와 성화라는 신학적 범주 아 래 고찰될 수도 있다(예를 들어, 앞의 책, 149~151을 보라). 신약 성경의 사도들이 예수 그 리스도가 이룬 사역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정확히 이런 신학적 범주를 위한 제의적 토대였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화목하게 된 후 우리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롬 5:8~10. 참조, 3:21~26).
29) Turnbull(1926: 17; 강조는 원래의 것; 참조, 13~14)은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하고 있다. “레 위기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지시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었다. 이스라엘은 거룩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고[1~6장], 이스라엘은 거룩함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 수 있다[17~27장].”
1장 오경 안에서의 레위기: 신학적 구조 37
하느니라.
동물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제의에 죽음의 개념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레위기 전반부에 널리 퍼져 있는 피에 대한 강조는 오히
려 생명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은 그 생명이 레위
기 16장에서 지성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인도될 때 특
히 그렇다. 더욱이 피와 지성소는 거룩함( 비록 거룩함을 뜻하는 히브리어 어근
‘카다쉬’가 사용되지는 않지만 17장에서 피의 거룩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 을 강조하
는 레위기 후반부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나타나는 대속죄일에 행해
진 가장 거룩한 의식에서 정확히 겹쳐지고 있다. 거룩한 사용을 위해
피를 따로 구별하는 것은 피가 갖는 생명으로서의 중요성 때문에 거
룩한 삶이라는 주제( 17~27장 ) 로 이어진다. 레위기 전반부에서 피가 생
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후반부에서는 거룩함이 생명을 상징한다. 거
룩함은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생명의 충만함과 관련이 있으며, 다음
장에서 지성소와 에덴동산 사이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이 점이 더욱
분명히 이해될 것이다. 여기서는 지성소의 지위가 지상에서 하나님
의 임재의 현장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것,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 생명, 생명의 근원, 곧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으로서 하나님
의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식으로 이해
하면 성막의 거룩함의 등급은 생명의 등급으로 나타나며, 여기서 지
성소는 생명의 완전함을 나타낸다. 이 점은 대제사장에 대한 다양한
요구 사항을 설명하고 제의적 부정의 양상 배후에 놓여 있는 논리를
펼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우리의 현재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 과의 삶으로의 초대로서 성결 관련 율법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2; 참조, 레 11:44~45; 20:7; 벧전 1:16 ). 에덴의 문 밖 영역은 죽음으로 오염되
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나아가서 친교를 나누려면 필연
적으로 죄와 부정( 죽음의 영역 ) 에서 분리되어 완전히 거룩하신 하나님
자신( 생명의 영역 ) 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거할 수 있는 길을 여호와가 열어 준
다는 주제와 대속죄일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는 우리가 속죄의 의
미, 즉 속죄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사
실을 이해하면 쉽사리 인식된다.30) 속죄( atonement ) 는 화해, 곧 하나
됨( at-one-ment ) 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 여호와 자신에 의해 ) 하나님의 임
재를 위한 필요조건에 점진적으로 입문하는 것, 즉 친밀함을 증진시
키는 세 연속적 단계에 입문하는 것”이라는 니한( Nihan ) 의 레위기 기
본 주제와 부합한다.31) 하나님의 임재를 가까이 가져오는 데 있어서
레위기 자체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의 핵심적인 신학적 딜레마( 그리
고 드라마 ) 라 불릴 수 있는 것, 즉 “사르는 불”에 친밀해지는 데 따르는
위험( 이것은 제의적 율법에 의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는 위험이다 )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32) 그래서 우리는 오경의 중심부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 이것은 여호와에 의해 제공된 제의적 수단에 의한
것이다 ) 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뒤에서 살펴보게 되겠지만, 레위
기는 대속죄일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친교뿐 아니라 그 이상에
대한 가능성도 드러낸다. 즉 대속죄일이 하나님의 임재에 제의적으 로 가장 깊숙이 다가가는 것을 나타내는 반면에, 레위기 17~27장은
이스라엘이 성막을 매개로 점차 거룩해져 감에 따라 성막 제의를 통
30) 참조, Crüsemann 1996: 313.
31) Nihan 2007: 108~110. 이와 비슷하게 오경을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하여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 Blum 1990; Ruwe 2003을 보라.
32) 예를 들어, Bibb 2008: 46, 68, 75, 86을 참고하라. Bibb은 자신의 논문 전체에 걸쳐 제의 율법의 근간을 이루는 긴장과 모호성에 주목한다. 그 제의는 “마법”에 미치지 못한다. 그것 은 신을 통제하거나 견제할 수 없다.
해 가능하게 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능성을 보여 줄 것 이다.
레위기 개관에 대한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 책의 구조에 관
한 학문적 논쟁은 계속되겠지만, 많은 학자들이 레위기 16장을 문학
적이며 신학적인 중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가장 광범위한 합의
가 이루어진 사항일 것이다 ) 는 사실이 중요하다.33) 레위기 19장을 레위기의
중심으로 삼는 소수의 학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 면에서는
속죄가 그 책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메리 더글러스
는 모쉐 클라인처럼 속죄가 레위기의 중심 주제라고 생각한다.34) 모
쉐 클라인은 레위기의 독자들이 대속죄일의 대제사장과 비슷한 위
치에 있으며 뜰과 성소와 지성소를 통해서 책의 중심에 이르는 거룩 한 길을 따라간다고 믿는다.35)
더글러스가 제안한 구조에 대해서는 니한이 만족스러운 비판을 가
했으며,36) 나는 단지 레위기의 독자들을 대속죄일의 대제사장과 비슷
하게 위치시키는 것은 대속죄일 자체가 레위기의 문학적, 주제적 초
점으로 밝혀질 때 더 합당한 전제가 된다는 점만을 덧붙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레위기 16장 자체의 형태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많은
학자들이 이 장이 교차대구 구조로 배열되어 있다고 제안했다.37) 우
리는 전체로서의 16장( 그리고 대속죄일 ) 의 주제상의 중요성을 고려하고
33) 예를 들어 다음을 보라. Averbeck 1997a: 910; Davidson 2000a; Hartley 1992: 217; Luciani 2005; Radday 1972; Rendtorff 2003; Rooke 2007: 342; Shea 1986; C. R. Smith 1996; Zenger 1999: 71; Jürgens 2001: 126~186 (Zenger와 Jürgens 두 사람은 16~17장을 중심으로 본다).
34) Douglas 1999a: 231~234.
35) Moshe Kline 2006: 11.
36) Nihan(2007: 84)은 중대한 부조화를 지적한다. 예컨대 Douglas의 도식에서는 레위기 16 장에서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레위기 2장과의 구조적 평행을 보여 주는 바깥뜰에 할당되게 된다.
37) Luciani 2005: 386; Hartley 1992: 232; Rodriguez 1996.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의 목표는 레위기 16장의 형태에 대해 독단적
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조가 타당하다면,
그것은 레위기 16장을 하나의 본문 단위로서 분리시키는 역할을 하
고, 16장이 갖는 중심적 기능에 들어맞는 것이며, 제의의 목
적( 16~17절 ) 에 더욱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것은 내가 제안한 주제를 고려하면 하나
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 로드리게즈( Rodriguez ) 는 다음과 같은 동심원적 개요 를 주장하는데,38) 나는 그것을 다소 수정하고 여기에 동심원적으로
배열된 오경을 덧붙였다.
틀: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했다……”(16:1)
A. 아론은 아무 때나 지성소에 들어가면 안 된다(16:2)
B. 아론의 제물, 특별한 예복(16:3~4)
C. 백성이 바치는 제물(16:5)
D. 아론의 속죄제 황소와 염소, 아사셀 염소(16:6~10)
A. 창세기 E. 아론이 황소를 드리다(16:11~14)
B. 출애굽기 F. 속죄 제물로 바쳐진 염소(16:15)
X. 레위기-16장 → X. 속죄 예식(16:16~20a)
B′. 민수기 F′. 광야로 보내진 염소(16:20b~22)
A′. 신명기 E′. 아론의 마무리 행동(16:23~25)
D′. 아사셀 염소, 아론의 속죄제 황소와 염 소(16:26~28)
C′. 백성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다(16:29~31)
38) Rodriguez 1996: 283.
1장 오경 안에서의 레위기: 신학적 구조 41
B′.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이 특별한 예복을 입고 속죄 예식을 거행하다(16:32~33)
A′.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속죄하다(16:34)
틀: “여호와가 모세에게 명한 대로……”(16:34)
특히 16장에 대해 루치아니가 제안한 교차대구 개요에는 중첩이
포함되어 있으며,39) 성막과 이스라엘의 진영이 정화된 것에 전반적 구조의 초점이 놓여 있음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그는 속
죄할 것이다……”( 16절 )
16:1~2a 담화 틀
I. 16:2aβ~10
A.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하다(2aβ~b)
B. 제의를 시작하고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한 짐승, 옷, 목욕(3~5)
C. 제물용 짐승과 제비뽑기 설명(6~10)
II. 16:11~20
X. 속죄 제물 황소의 피, 유향 및 속죄 제물 염소의 피를 갖고 2단계로 지성소에 입장하다(11~15)
Y. 제의의 목적: 지성소와 성소를 이스라엘 회중의 부정에서 정결하게 하다(16~17)
X′. 제단으로 나가 성소 정화를 완료하다(18~20)
39) Luciani 2005: 386.
III. 16:21~34a
C′. 이스라엘의 죄악을 속죄 염소에게 지워 광야로
내보내다(21~22)
B′. 제의 종료를 위한 절차: 옷을 벗음, 대제사장과 보조자
들이 몸을 씻음, 번제, 제의 잔여물 처리 규정(23~28)
A′. 여호와가 공동체에 말하다(29~34)
16:34b 담화 틀
쟁점은 역시 이 대속죄일 장 전체의 주제적, 신학적 중요성이다. 예
컨대 레위기가 3부 구조( 1~10장, 11~16장, 17~26[+27]장 ) 로 되어 있으며, 각
부분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언급( 9~10장, 16장, 26장 ) 으로 마무리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니한은 16장이 레위기의 중심이며, 다음과 같은 이
유로 인해서 대속죄일은 레위기 전체에서 의심할 바 없이 가장 중요한
제의라고 말한다. (1) 대속죄일은 성소와 공동체 모두가 모든 부정으
로부터 정결하게 되는 연례 의식이다. (2) 아론이 지성소에서 하나님
의 임재 앞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의식이다. (3) 레위기에서 지금까지 사용된 적이 없는 완전히 독특한 형식적 장치들로 16장이 시작된다.40)
나는 니한의 제안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레위기의 중심 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삼중적 측면에서 레위기라는 드라마에 접근 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검토된 오경의 구조에 대한 모든 부분이 똑같이 설 득력 있는 것은 아니지만,41) 시내산 단락이 오경 구조의 중심이라는
점( 샤트의 개요 ), 레위기가 ( 출애굽기와 민수기가 서로를 반영하면서 ) 틀 구조를 이루 고 레위기 안에서 대속죄일이 신학적 중심이라는 것은 널리 받아들
40) Nihan 2007: 96~97. “만남의 신학”에 대해 말하는 Ruwe(2003: 63~64)도 보라.
41) 주요 제안들에 대한 C. Nihan(2007: 76~95)의 서평과 비평을 보라.
1장 오경 안에서의 레위기: 신학적 구조 43
여지는 확고한 입장이다. 그러나 대속죄일의 역할을 레위기의 구조적 핵심이자 신학적 중심으로 받아들일지라도,42) ( 특히 속죄를 통해서 )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있는 길을 여호와가 열어 준다는 것이 레
위기 16장의 대속죄일을 정점으로 하는 오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라고 단언하기 위해서는 본 연구의 나머지 부분이 필요할 것이다.
여호와의 거소를 향한 거룩한 여행
마지막으로 나는 나의 결론을 보완하기 위해 여기서 한 가지 대안
적인 접근법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데, 그것은 오경 안에서 레위기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스미스는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나타나는 지리 표지와 시간 표지를 연구함으
로써 이 두 책이 대칭적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주석가들은 오랫동안 이것을 제
사장 계층이 오경의 자료를 구성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근거의 하나로 간주했다 ) 는 것을 설
득력 있게 보여 준다.43)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여정 안내문은 애굽에
서 르비딤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을 보여 주는 여섯 번의
고지( 출 12:37a; 13:20; 14:1~2; 15:22a; 16:1; 17:1 ) 와 시내산에서 민수기의 모압 평
지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행을 따라 주어지는 여섯 번의 고
지( 출 19:2; 민 10:12; 20:1, 22; 21:10~11; 22:1 ) 가 상호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시
내산을 향한 여행과 시내산을 떠난 후의 여행 사이에 상응 관계가
존재함을 보여 준다.44)
42) Hartley 1992: xxxv.
43) M. Smith 1999. Ruwe 2003: 58~67도 보라.
44) M. Smith 1999: 186~187. “전반적으로 보아서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제사장적 배열은 민 수기에 나오는 지리적 진행의 일부를 출애굽기의 진행을 뒤집은 것으로서 제시하고 있다 (앞의 책, 187).
출애굽기 1:1~15:21 애굽에서
15:22~18:26 광야에서
19~40장 시내산에서
민수기 1:1~10:10 시내산에서
10:11~21:35 광야에서
22~36장 요단 건너편에서
연대 표시들 역시 의미심장하며, 이스라엘의
한 사건들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의 연대 표시들( 12:2, 41; 19:1, 16; 40:17 ) 은 중요한 세 순례 절기 중
첫 두 절기에 따른 일 년
을 암시한다. 첫 번째 절기인 유월절은 애굽으로부터의 탈출과 연관
되며, 이스라엘 백성은 칠칠절에 시내산에 도착하고, 성막( ‘미쉬칸’ ) 은
신년 무렵 완성된다.45) 민수기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
래서 유월절은 시내산을 향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지켜질 뿐 아니
라 ( 출 12~13장 ) 시내산으로부터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지켜진다 ( 민 9~10장 ). 스미스는 레위기를 중심으로 거룩한 시간이 교차대구적으로 배열되어 있음을 간파한다. 즉 창세기 1장에서 출애굽기 12장까지, 그리고 민수기 10장에서 신명기 34장까지는 연 단위로 계수됨에 반 하여, 출애굽기 12장에서 민수기 10장까지는 월 단위로 계수되며 이
것은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로 이루어진 절기력을 상기시킨다.46)
이처럼 스미스는 거룩한 공간과 시간에 대해 의도적인 관심을 보여 줌으로써, 레위기 자체는 여정 안내나 연대 표시를 전혀 포함하고 있
지 않다는 점, 곧 레위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며 그렇기 때문에 독립적 책으로서의 특징을 갖는다는 점도 지적하고
45) 앞의 책, 193. 46) 앞의 책, 206~207.
1장 오경 안에서의 레위기: 신학적 구조 45
있다. 사실 스미스는 레위기가 오경 안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성막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제의적 삶의 중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47)
그러나 레위기에는 연대 표시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스미스의 검
토에서 레위기는 제외된다.48)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미스의 공간과 시
간 구조화 범주는 비록 성격은 다르지만 레위기 안에서도 똑같이 작
동한다. 레위기는 거룩한 공간과 시간이 16장에서( 가장 거룩한 시간, 가장 거
룩한 공간에서 ) 융합되는 성막 설계도로 인해 이 둘 모두에 중점이 두어지
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애굽에서 민수기에 이르는 자료는 거
룩한 공간과 예전상의 시간이라는 범주에 따라 구성되었고, 이것은
레위기의 중심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스미스의 주장은 필연적
으로 베일의 문턱( 즉, 이스라엘의 종교력에서 가장 거룩한 날이자 인간이 여호와의 임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날인 대속죄일 ) 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시내산 내러티브를 넘어서 오경의 문학 구조를 다시 한 번 살펴보
면, 특히 오경의 중심에 있는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 자료를 염
두에 두고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지리적” 패턴이 성막을 둘러싸고
이중의 틀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광야 여행 - 시내산 - 성막 - 시내산 - 광야 여행
그렇다면 이 순서는 단순한 일자형이 아니며, 성막에서 정점에 이
르는 구조를 이룬다. 고대 문학에서 문학적 중심은 종종 주제적 중심
47) 앞의 책, 204. 그는 또한 J. W. Watts(1995)의 글을 호의적으로 인용한다(202). “P의 내러 티브와 목록 사이의 긴밀한 관계는 제사장계 저자와 편집자들이 더 큰 맥락을 염두에 두 고 작업했으며 레위기 율법을 오경의 중심 목록으로 강조하기 위해 전체를 의도적으로 구 성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48) 비록 그가(1999: 206~207) 흥미롭게도 아론의 아들들의 죽음(레 10장)에 대해 다시 언급 하고 있는 레 16:1은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한 것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말 이다.
이며 다음에 나오는 기능을 형성하는데, 특히 교차대구 구조 안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예후다 라다이( Yehudah Radday ) 는 교차대구 구조의
중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차대구 구조의 중심은 의미를 밝혀 주는 열쇠다. 그 중심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진정한 주제를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성경 저자나 편집자들은 각 문학 단위의 주요 개념, 논
지, 또는 전환점을 그 중심에 두었다……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핵심 특징의 의미와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49)
따라서 고대의 작품을 읽는 것은 산을 통과하여 여행하는 것에 비
유될 수 있다. 그 여정은 등정과 하산이라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
며, 두 부분은 서로를 반영하고, 정상은 문학적 절정을 이룬다. 이런
통찰을 오경의 형태와 내용에 적용하면 자신의 거룩한 산 정상에 있
는 여호와의 거처로의 여행을 따라 오경을 읽을 수 있다.50)
시편 기자가 시편 23편에서 하나님의 처소로 여행하는 것처럼( 우리
는 본서의 뒷부분에서 이와 관련된 유비로 돌아올 것이다 ), 오경은 여호와가 시내산에
서 그 자신에게로, 그리고 특히 그의 처소인 성막으로 인도하는 여행 으로 형성된다. 블렌킨소프( Blenkinsopp ) 가 지적했듯이, 오경의 내러티
브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이 드리는 적절한 제의를 통해서 그들에게 반드시 임재하기로 작정했던 순간을 향하고 있다.”51) 어떤 작품을
49) Radday 1981: 51. 또한 Dorsey 1999: 31; Waltke and Yu 2007: 120도 참고하라. V. M. Wilson(1997: 49; 강조는 원래의 것)은 교차대구 구조의 중심을 그것의 “신학적 핵심”으로 여긴다.
50) 48, 67, 142쪽에 있는 스케치는 나 자신의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다 소 유사한 접근법에 대해서는, 비록 육경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Newing 1981; 1985; Milgrom 1990: xviii를 보라.
51) Blenkinsopp 1976: 282. 비록 Blenkinsopp 자신은 이 진술을 언약과 관련된 제사장 자
1장 오경 안에서의 레위기: 신학적 구조 47
[레위기]
[출애굽기 19:1 – 시내산 – 민수기 10:10]
출애굽기 18:27 광야 여행

시내산 내러티브
민수기 10:11 광야 여행
“직선적으로” 읽을 때 그것의 두 절반 모두가 중심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중심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 늘 유의해야 한다는 것을 명
심하고, 중심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 중심으로부터 의미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오경을 말하자면 “제의적 안경”을 끼고 읽는 것
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장은 과녁의 고리를 따라 안쪽으로 움직이듯이 오경의 구조를
동심원적으로 탐구했다. 그 움직임은 다섯 권 구성에서 시작해서 안
쪽에 있는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로, 그리고 시내산 내러티브( 출
료(창 9:16; 17:7, 13)로 한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오경의 최종 형태 읽기 안
에서 여전히 사실이다.
19장~민 10장 ) 로, 그런 다음 중심에 있는 레위기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안쪽에 있는 고리 그 자체인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오경을 구성
한 가장 좁은 의미에 있어서의 목적 ) 로 이어진다. 나는 오경의 형태가 오경을
통합시키는 주제를 따를 뿐 아니라 그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사실로 상정한다. 그 주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있
는 길을 여호와가 열어 준다는 것이다. 그 길의 정수와 오경 신학의
핵심은 대속죄일이다.

Who Shall Ascend the Mountain of the Lord?
A Biblical Theology of the Book of Leviticus
에덴을
갈망함
레위기의 내러티브 맥락으로서 창세기

레위기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출
애굽기 40장까지의 내러티브 부분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특히 그 부
분이 하나님과 함께 거한다는 주제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 장은 인간이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즉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 점점 멀어지
는 과정을 창세기를 통해서 추적하고, 다음 장은 여호와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의 집을 세우면서 인간이 그와 함께 거하는 길을 열어
가는 드라마를 출애굽기를 통해서 추적할 것이다. 우리는 첫 번째 큰
제목(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 위해 창조되다” ) 아래 일곱째 날의 역할과 더불어
세계와 성막 사이의 다양한 유사점을 검토하고, 창조의 목적은( 따라서
성경의 플롯 역시 )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하려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자 노력할 것이다. 두 번째 큰 제목( “하나님의 임재에서 점점
멀어지다” ) 에서 우리는 에덴과 성막 제의 사이에 놓여 있는
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있는 길을 여호와가 열어 준다는 오경의
중심 주제가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를 추적하는 것인데, 특히 레위기
안에서 이 주제가 드러난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 위해 창조되다: 오경의 프롤로그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의 효용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창세기
1장 1절~2장 3절의 창조 기사가 오경이라는 내러티브 드라마 전체
의 서문으로 기능하는지를 충분히 따져 보는 해석자는 거의 없다.1)
사실 오경( 및 구속사 ) 의 큰 줄거리를 종종 놓치는 정확한 이유는 인류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계속해서 논증하겠지만, 창조 기사
에서 비롯된 다른 모든 “명령”나 “지시” 등은 인류에 대한 이 주요
목적에 포괄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창조는 하나님의 목적
을 드러내 보이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의 핵심
에서 발견되는 것과 동일한 목적과 약속이다( 즉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
들은 그의 백성이 될 것이며 그는 그들 가운데 거할 것이다 ). 창조의 성격과 더불어 창
조에 담긴 인류에 대한 원대한 목적을 파악하지 못하는 한 성막 제의
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창조 기사가 세계를 하나
님의 집으로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또한 안식일의 하나님과의 친
교를 인류를 위한 목적으로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검토할 것이다.2)
1) 흔히 “이것들이……의 세대들이다”(개역개정은 “이것이……의 족보/계보니라” 등으로 번역한 다-옮긴이)로 번역되는 ‘톨레도트’(“낳다”를 뜻하는 ‘얄라드’에서 온 명사임) 표제 공식을 활용하고 있는 창세기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표제 체 계를 벗어나 창세기 전체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서두 프롤로그(창 1:1~2:3), 원역사(창 2:4~11:26, 다섯 개의 톨레도트를 포함한다), 족장사(창 11:27~50:26, 역시 다섯 개의 톨레 도트를 포함하며, 36:9에 있는 것은 중복되어 있다) (Wenham 2003: 18~19).
2)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전의 한 저서에서 더 광범위하게 다루어진 바 있다
하나님의 집: 우주와 성막의 유사점
우주와 성전 사이의 유비는 고대 근동에서 흔히 발견된다.3) 우주
는 큰 성전으로, 성전은 작은 우주로 이해되었다. 창조에 대한 성경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주와 성전( 또는 성막 ) 사이의 그러한 평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여러 가지 징표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하나님의 영 혹은 “하나님의 바람”( ‘루아흐 엘로힘’ ) 이라
는 문구가 세상 창조와 관련하여 나타나고, 출애굽기 31장 3절과
35장 31절에서는 성막 건축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더욱이 성막 건축
을 담당한 장인이었던 브살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이 지혜와
총명과 지식의 견지에서 묘사되고 있는데( 출 31:3 ), 하나님은 이와 동
일한 속성들로 우주를 지었다고 말해진다.4)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의지식으로깊은바다를갈라지게하셨으며……(잠 3:19~20).
창조 기사에 나오는 것으로 성막과 관련해서도 사용된 다른 단어로
는 창세기 1장 14~15절의 ‘마오르’( 빛, 등불 ) 를 꼽을 수 있는데, 오경에 (Morales 2012b).
3) Levenson 1984; Lundquist 1984. 이 점에 관한 문헌은 광범위하다. 나는 최근 이 주제에 대한 몇몇 중요한 논문을 재수록한 Cult and Cosmos라는 책을 편집한 바 있다(Morales 2014). 우리의 목적을 위해 John H. Walton(2001a: 151)이 데이터의 일부에 대한 유용한 요약을 제공한다. “우주와 성전의 연결은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와 같은 메소포타미 아의 우주론적 본문들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신전 건축 본문들에서(특히 수메르인의 구데아 [Gudea] 사원 프로젝트 기사), 바알이 자신을 위한 집을 찾는 것에 대한 우가릿 신화에서, 그리고 이집트의 신전 본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들은 흔히 신전을 혼돈의 물에서 솟 아 나오는 우주적 산 또는 최초의 원시 언덕과 관련된 것으로 묘사한다. 성전은 세계의 중심 에 있고 그 가운데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으로 묘사된다.”
4) Berman 1995: 15~16; Middleton 2005: 87.
서 이 단어는 항상 성막의 등불을 가리킨다.5) 보겔스도 동일한 견해
를 피력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해와 달은 우주 성소의 거룩한 등
불과 같다. 더 나은 번역은 ‘등불들이 있게 하라’ 또는 ‘빛나는 것들이
있게 하라’일 것이다. 이 단어는 내러티브의 예전적 성격을 확인시켜
준다.”6)
히브리 성경의 다른 곳에서 세상은 하나님이 세운 장막( 시 104편; 욥
9:8; 사 40:22 ) 으로 비유되거나, 기둥과 창문과 문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
이 세운 집( 욥 26:11; 창 7:11; 시 78:23 ) 에 비유되는데, 우주는 하늘과 땅과
바다로 이루어진 3층 집으로 생각되고 있다.7) 창세기 1장의 주인공
인 하나님은 실제로 자신의 집을 짓고 검사하며 자신의 일을 선언하
고 안식일에 휴식을 취하는 일꾼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으
며,8) 그 집 자체는 하나님의 집인 한에 있어서 성전이다.
범위를 좀 더 넓혀서 살펴보면, 창조 기사의 7일 구조는 출애굽기
25~31장에 나오는 성막 건축 지시에 반영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
지시는 하나님의 일곱 담화로 이루어져 있다. 커니는 한 걸음 더 나
아가서 그 일곱 담화 각각이 창조의 해당 날을 암시한다고 가정한
다.9) 커니가 제시한 상응 관계 중 어떤 것은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두 기사가 전반적으로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도 뒷받침되며, 일곱째 날과 일곱째 담화 사이의 상응 관
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둘 다 안식일과 관련이 있다.
5) Wenham 1987: 22.
6) Vogels 1997: 175. Rudolph 2003도 보라. Fletcher-Louis(2004: 90)는 ‘메노라’가 “저녁” 과 “아침”으로 돌봄을 받은 것은 창조의 첫째 날을 반영하는 제의적 행동이었고, 그래서 소 우주 제의에서 대제사장의 역할은 대우주 제의에서 창조주의 역할을 모방하는 것이라는 견 해를 피력한다.
7) Stadelmann 1970; Jacobs 1975; Gage 2001: 54.
8) Gordon 2007; M. Smith 2010: 13.
9) Kearney 1977.
이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제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며, 실제로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흙으로 빚어진 피조물이 어떻게 “영원히” 하나님
의 권속의 일원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 그의 집에 들어갈 자가 누구인가에 대 한 이 질문은 아마도 연례적인 절기 순례 기간 중 시온산에 있는 성전으로 나아가는 순례자
들에 의해 낭송되었을 것이다. 이 성전 입장 예전은 오경의 내러티브 전체의 저변에 도도히 흐르고 있으며, 오경의 한가운데 책인 레위기의 중심부에서도 발견된다. 성경의 나머지 부
분과 마찬가지로 오경의 중추적 관심사 역시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는가 에 있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소망은 단지 예전에 관한 질문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탐색이었다.
모세 언약 아래서 여호와가 열어 놓은 그 길은 성막과 후대의 성전, 제사장단과 의식이라는 레위기적인 제의를 통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기 위한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인데, 실로 그리스도가 우리 인류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고 부활하고 하늘에 올라간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흥미진진한 연구에서 마이클 모랄레스는 레위기의 내러티브 문맥과 문학적 구조, 신학 등을 탐구한다. 그는 레위기의 드라마적인 이동을 따라가면서 성막 제의와 대속죄일을 검 토하고, 시내산의 성막에서부터 시온산의 성전까지, 나아가 지상의 시온산에서부터 신약 성경에 나오는 천상의 시온산까지 그 발전을 추적한다. 그는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함
께하는 삶이 어떻게 우주 창조의 원래 목표였는지, 또한 구속과 새 창조의 목표가 되었는지 보여 준다. “이 책은 레위기의 신학뿐 아니라 오경의 신학 그리고 결국 성경 전체에 대한 더 풍부한
D. A. 카슨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