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기억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Small memories, maybe your story

발간등록번호 52-3370000-000043-01

사소한 기억, 어쩌면 모두의 이야기 거제4동 마을기록화 프로젝트

사소한 기억, 어쩌면 모두의 이야기 거제4동 마을기록화 프로젝트

부산광역시 연제구

2

들어가며

<거제4동 마을기록화 프로젝트>는 도시재생 뉴딜 공 모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거제4동은 다른 행정 구역과는 달리 화지산을 배경으로 동해선 안쪽에 자리 잡아 독립적인 마을의 지형을 볼 수 있다. 왕복10차선 거제대로 안쪽, 기찻길 너머의 마을이 궁금했다. 작은 마을이라 기록할 이야기가 있을까 고민했지만, 주민들 을 만나며 거제4동이 생겨난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었 고, 부산의 경제개발과 산업화 역사를 함께 했던 주민 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철도 관사의 흔적과 피란민이 정착했고, 이후에는 연제구의 산업현장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머물렀던 산동네의 흔 적, 그리고 새롭게 건축되는 대규모 주거단지 공사 현 장의 모습에서 거제4동이 변화했고, 변화될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또한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는 주 민들의 이야기 속에서 마을공동체의 미래를 볼 수 있 었다. 주민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소한 기억이 모여 모두의 역사가 되고, 특별한 이야기가 되는 법이다. 거 제4동의 이야기는 그래서 특별했다.

사소한 기억, 어쩌면 모두의 이야기 거제4동 마을기록화 프로젝트

들어가며 하늘에서 본 마을의 변화 08 거제4동 마을 사전 14 마을의 기원과 변화 20 마을의 시간은 사람과 함께 흐른다 28 “거제동에서 70년 살았습니다 이 집은 7등갑이에요” _ 권길철 32 “집 자체는 힘들 것 같지만, 이 터는 지키려고 해요” _ 김의향 김혜경 50 “거제리에 66년째 살고 있습니다” _ 이종화 문영주 68 거제동의 철도관사 이야기 85 거제동 인근의 산업 풍경과 ‘여공’ 96 “1〮4후퇴 때 평양에서 피난 왔어요” _ 김춘자 104 “쫄쫄이 샘물이 계속 흘러 이 동네가 유지된 겁니다” _ 임상호 120 “슬레이트집은 우리 집이 제일 먼저 났어요” _ 주순필 138 “부산이 물가도 싸고, 따시제, 이웃 사람도 좋지” _ 김순남 150

‘사람’, ‘삶’, ‘정’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곳, 산동네 164 정겨움을 주고받던 골목시장, 거제4동을 숨 쉬게 하던 가게들 172 “1968년 10월 초, 보급행 열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왔습니다” _ 송인호 178 “만디에 있는 집 불빛이 별인 줄 알았어요” _ 이상화 194 “옛날에는 토요일에 비가 오면 정구지를 많이 팔았어요” _ 박갑진 함향순 208 거제동 최초의 초등학교, 거제초등학교의 역사 222 “옛날엔 앞에 포플라 나무가 쭉 있었어요” _ 김점례 228 화지공원의 5월 242 거제4동, 마을의 미래를 준비하다 248 “저는 사람이 좋은 거 처음 겪어봤어요” _ 박순철 남주옥 256 “이웃이 준 반찬을 맛있게 먹으면 그게 좋은 거잖아요” _ 김인순 268 “지금과 크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 머물 수 있는 마을이면 좋겠어요” _ 박지영 박왕국 278 참고자료

거제동 거제동은 1914년 일제 강압통치기에 거평리와 대제리의 “거”와 “제”를 합성하여 거제리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원래 “거제”라는 이름은 이전에 이 지역 일대에 펼쳐 있는 넓은 들을 말하는 거벌리 (居伐里)에서 유래하였으며, 거벌을 가로지르는 거제천의 홍수예방을 위해 큰 제방을 축조하여 제방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거제리로 불리다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제동이 되었다. [ 연제구청 홈페이지 ]

* 인터뷰 내용은 구술자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되, 읽기 쉽게 단어와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 한 국전쟁 관련 부분에서 질문 또는 객관적 서술 내용에서는 ‘피란’으로, 구술자가 언급할 때는 ‘피난’으로 표기했습니다.

8

하늘에서 본 마을의 변화

9

1950 9

1975

1988

2009 12

2020

14

거제4동 마을 사전 # 이름의 기원

# 위치와 지리

거제(巨堤)라는 지명은 이곳에 축조된 큰 제

거제동은 연제구의 서부에 위치하여 동쪽으

방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 이곳의 지명은

로 연산동, 서쪽으로 초읍동, 남쪽으로 양정

거벌리(居伐里)였다. 거벌(巨伐)로도 표기되

동, 북쪽으로 사직동과 접한다. 서쪽에 금정

었는데, ‘큰 벌’을 뜻하는 평야로, 지금의 거

봉과 금용산, 화지산을 잇는 산지가 거제동

제동(巨堤洞)과 연산동 일대에 펼쳐진 넓은

을 에워싸고 있다. 산록에서 발원한 소하천들

들을 말한다. 일제강점기 때 상습 침수지역이

이 동쪽으로 흘러 온천천으로 유입하며 유역

었던 이곳에 제방을 쌓으면서 붙여진 이름으

에 넓은 평지를 이룬다. 거제4동은 화지산 동

로 전한다.

쪽 아래에 위치하여 독립적인 지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거제2동의 안동네와 인접해 있었 으나 안동네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로 사 라졌다.

15

# 행정구역 변화

# 거제대로

거제동은 조선 후기 동래부 서상면에 속했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동과 연제구 거제

다. 1914년 서상면의 대평동, 대제동, 거평동

동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이 길은 예전에는

이 합쳐 동래군 서면에 속한 거제리가 되었

서면과 동래를 잇는 주요 도로로 이 노선에

다. 1936년 부산부에 편입되었고, 1957년

부산전차 거제리역, 동해남부선 거제역이 있

동래구에 편입되었다. 1970년 거제동이 거

었다. 부산전차 거제리역은 1968년까지 운

제1동·거제2동·거제3동으로, 1979년에는 거

행되었다. 부산의 산업화로 교통체증이 심각

제3동에서 거제4동이 분동 되었다. 1995년

해져 동해남부선 거제역 인근에 있던 마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고, 동래

을 철거하고 도로를 확장했다. 1980년대 중

구에서 연산동과 거제동이 분구하여 신설 구

반에 현재의 10차선 도로가 되었다. 연산동

인 연제구에 편입되었다.

으로 우회하는 길이 생기고, 도시철도 1호선 이 1985년 개통하면서 교통의 흐름이 분산 되었다.

16

# 거제4동의 자연마을

# 화지산과 정묘, 화지사

거제4동에 해당하는 자연마을로 ‘홰바지 마

거제4동의 뒷산 화지산 자락에는 고려 호족

을’이 있다. 거제3동의 부산은행 거제동지점

정문도의 무덤 즉 정묘(鄭墓)가 있다. 정묘는

주변과 거제4동에 걸쳐있던 마을이다. 범일

명당 터가 되어 후손이 번창하였는데, 이 지

동 일대에서 조선시대부터 열린 오일장인 부

역의 토호세력을 이루면서 고려를 이은 조선

산장은 음력 4, 9일에 성시를 이루었다. 당시

조 명문대가의 반열에 들었다고 한다. 화지산

동래읍민이 부산장에 가서 물품 매매를 하고

은 대부분 이들 동래정씨 집안의 땅인데, 거

돌아올 때면 해가 지는데, 그 가족들이 횃불

제4동 주민 중 이 집안의 땅에 집을 짓고 살

을 들고 이곳까지 마중 나온 곳이라 하여 이

았다는 이도 있었다. 화지사는 고려시대의 유

렇게 불렀다고 한다. 또 동래부사가 부산진에

서 깊은 사찰로 동래정씨 시조를 봉안한 사

갔다가 밤늦게 돌아올 때, 이 마을 앞에서 횃

당이다. 18세기 지도에는 ‘화지암’, 19세기

불을 들고 마중을 나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

지도에는 ‘화지사’로 표기된 것이 자주 눈에

이라는 등의 설이 있다. 1956년 미군이 만든

띈다. 거제4동 뒤쪽 산 입구나 정묘 입구 쪽

지도에 ‘Hweebach’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에서 올라가면 주민들이 산책과 운동을 즐기

러한 구전을 보면 현재의 거제로가 동래읍과

는 화지 공원이 있다.

부산진 사이의 주요 통행로였음을 알 수 있 다.

17

# 인구현황 총인구 1904년 편찬된 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에 따르면 현재의 거제동에 해당하는 동래군 서상면의 거평동 에는 30호, 대제리에는 14호의 가구가 있었다고 나온다. 거제4동의 경우 철도관사의 건립으로 주택 지가 형성된 이후 1960년대 경제개발 붐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1980년대까지 증가하 던 인구수는 인근 공장들이 매각, 부도, 이전 등의 변동이 생기면서 줄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1년 거 제유림아시아드, 2003년 거제청구하이츠, 2004년 거제유림아시아드타워가 준공되면서 인구수가 급증했다. 거제2동과 걸친 지역의 주택지가 철거되고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면서 최근 인구수 가 많이 줄었다. 새 아파트가 준공된 후 인구수가 다시 늘 것으로 예상된다. 연도

1961

1965

1970

1975

1980

1985

1990

1995

2000

2005

2010

2015

2020

세대수 3,230 4,292 4,044 5,445 2,664 2,875 2,944 2,704 2,337 3,868 4,088 4,590 4,216 (가구) 인구수 18,247 23,292 20,210 26,957 11,697 11,478 10,640 9,358 7,603 12,045 11,631 12,529 10,774 (명)

거제동

거제3동

거제4동 분동

2000년대 초반 아파트단지 건립

아동·청년·노인 세대원별 가구수 최근 10년간 아동, 청년, 노인의 세대원별 가구수를 보았을 때, 아동과 청년은 점점 감소하고, 노인 인구는 늘어, 부산 전반에 걸친 고령화 현상을 거제4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760

2,010

2,680

1,967 1,268

2011

2,605

1,861 1,313

2012

1,967

1,802 1,362

2013

2,616

2,507

1,464

2014

2,371

1,896 1,697

1,810

1,793

1,699

2015

2016

아동

2,235

1,664

2017

청년

2,091 1,886

2018

노인 2,121 1,866

1,992 1,997 1,524

1,591

2019

2020

18

# 주거형태

# 교통

2001년 유림아시아드아파트 준공으로 아파

거제리 전차역

트 호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그 리고 1980년대 중반부터 철도관사를 철거 하고 빌라를 짓기 시작한 것이 점차 증가해 연립 및 다세대 주택 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 인다. 거제4동 내의 30년 이상 노후주택은 2019년 기준으로 397호로 확인된다.

1,967 1,993

2,097 2,070 2,063 2,048 2,053

139 2000 2005 2010

2015

2016

2017

2018

2019

아파트 수(호)

1,025

1,166

1968년까지 거제리 전차역이 있었다. 1915 년 개통한 부산전차는 ‘범일선’, ‘영도선’ ‘장

1,280 1,290 1,320 1,311 1,304

수선’, ‘대청선’, ‘동래선’ 등의 지선으로 운 행했다. ‘동래선’은 교외전차로 노면 전차 정 류장과 달리 매표소와 대합실을 갖춘 정류

551

장 건물과 승강장이 설치된 전차역이 있었는

2000 2005 2010

2015

2016

2017

2018

연립 및 다세대 주택 수(호)

2019

데, 거제리, 동래, 온천장 3개소가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거제대로 154-1 위치에 전차역 건물이 남아 있었으나, 보존되지 못하고 지금 은 창고형 건물이 들어섰다.

19

거제역과 거제해맞이역

버스

1942년 7월 1일 임시승강장으로 영업을 개

거제4동에 걸친 정류소명으로 ‘동해선거제

시해 1943년 배치 간이역으로, 1951년에는

해맞이역’과 ‘유림아시아드아파트(거제초교)’

보통역으로 승격했다. 2006년 10월 31일까

가 있다. 버스번호 10, 31, 43, 44, 52, 77,

지 완행열차인 비둘기호로 통근 열차를 운행

80, 111, 129-1, 131, 506, 1002(심야)가

했으나 무궁화호로 대체되었다. 2009년 9

있다. 연제구 이외 해운대구, 동래구, 북구, 중

월 3일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고, 같은 해

구, 남구, 부산진구, 금정구, 사상구까지 잇는

10월 15일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 공사로

다양한 노선이 있다. 2001년 유림아시아드아

역사 대부분이 철거되었다. 2016년 4월 29

파트가 들어서고 산복도로가 생기면서 유림

일 동해남부선이 ‘동해선’으로 명칭 변경되었

아시아드아파트와 부산시청을 오가는 마을

고, 거제역의 신축 역사의 이름은 ‘거제해맞

버스 연제3번이 신설되었다.

이역’으로 개칭되었다. 노면에서 지상으로 형 태가 바뀐 동해선 아래쪽에는 주민들이 여가 를 즐길 수 있는 산책길이 조성되었다. 거제 역사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간이역 형태 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 이러한 형태가 한국 과 일본에서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중요한 사 료가 되었으나,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 다. 특히 많은 주민들이 거제역의 이름을 그 대로 이어가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20

마을의 기원과 변화

21

22

홰바지 마을이 조선시대에 유래한 거제4동 마을의 역사라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거제4동의 기원은 일제강점기로 볼 수 있다.

일본은 한반도 통치를 쉽게 하고 대륙침탈과 자원 수탈이라는 정치·군사·경 제적 목적 달성을 위해 철도를 부설하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경부선에 이어 동 해남부선 철도를 건설했다. 부산의 부산진구와 경북 포항 사이를 잇는 철도선 인 동해남부선 구간 중 부산진에서 동래, 해운대를 거쳐 경주에 이르는 구간은 1930년 7월에 착수하여 1935년 12월 완공했다. 1934년에 거제4동의 거제역 일대에 집단관사가 건립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부산일보] 축 동해남부선 기공. 1930. 07. 13. 기사에 실린 동해남부선 노선도

23

철도 종사자를 위한 주거시설 건립은 1899년 철도부설 초기부터 1943년까 지 지속되었다. 철도관사는 철도직원의 주거 대책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철도 경영상 직원들의 개별 거주를 허용하지 않고, 역 주변의 일정 장소에 거주 시켜야 하는 필요성으로 만들게 되었다. 또한 철도직원 대부분이 일본에서 건 너온 일본인이기에 연고지가 없는 조선에 신속히 정착할 수 있도록 일본식 주거 를 건립할 필요가 있었다. 열차의 운전, 영업, 철도의 보존과 개량 등에 많은 직 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타 관청에 비해 다수의 관사가 건립된 편이다. 3~8등급의 등급별 표준설계평면에 의해 관사를 건립해 철도 종사자 직위별로 공급했다.

01

거제4동에는 126호의 철도관사와 각종 부속건물이 지어졌다. 5~8등급 관 사가 있었는데, 주민들이 특관사로 불렀던 5등 관사가 5호, 독관사로 불렀던 관 사가 12호 가량 존재했다. 대부분의 철도관사는 7등급 관사로 7등갑, 7등을로 구분되며, 한 호는 연립 2가구로 구성되어 있어 많은 철도 종사자와 그 가족이 거제4동에 거주했다고 볼 수 있다. 독신자관사로 불렀던 2층 연립관사와 창고 등으로 쓰인 여러 부속 건물이 있었다. 당시 거제동과 연산동 일대는 논밭이 펼 쳐져 있었고, 거제동을 통틀어 이 정도 규모의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거제리’와 ‘거제리 철도관사촌’은 하나의 지명이었다고 한다.

“거제리는 철도관사가 전부였어요. 해방 직후에는 거제동이라고 하면 몰라 요. 거제 철도관사에 가자고 해야 알았어요. 철도관사에 등급이 있는데, 거 제리 철도관사 중 5등이 제일 높아요. … 이 근처에는 7등갑이 많아요. 7등 이 관사의 중추를 이루죠.”

- 권길철

01 김수영(2000)은 주민들이 131호라고 구술했다고 했다. ‘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136호라고 나와 있다. 1950 년 항공사진으로 확인했을 때, 관사 1호였던 거제동 교회와 주민인 김의향, 김혜경의 집 116호를 기준으로 보면 철도관사의 숫자는 126호로 확인된다. 주민 문영주는 130호 이상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24

해방 후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철도관사에는 조선인 철도 종사자들이 입주하 게 되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 후 박정희 군사정권은 과거 행정 기구를 대 폭 개편하기 위해 같은 해 10월 2일 정부조직법을 시행했다. 정부·행정기관 개 편에 교통부도 그 대상이 되었다. 1963년 9월 1일 철도 사업의 경영 합리화와 독립채산제를 위해 철도청이 교통부로부터 분리 독립되면서 그 수입으로 지출 을 충당하며 특별회계로 운영되는 정부기업의 형태를 취했다. 이때 재원 조달을 02

위해 모든 집단관사와 일부 역관사를 철도직원에게 우선 불하했다. 경제적 여 력이 되는 철도직원은 집을 불하받고, 아닌 이들은 떠나면서 새로운 주민들이 유입되는데,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의 사람들이었다. 방이 여러 개 에 창고 건물이 있었기 때문에 구조를 변경해 여러 세대에게 세를 놓는 곳도 있 었다.

“혁명 나고 군인 청장들이 철도 소장이 되었고, 부산철도청이 되고 난 뒤에 불하됐어요. 이 집이 한 30만 원 미만이었는데, 일시불로 납부하면 30% 할 인해 줬어요. 그래서 십몇만 원에 아마 불하받았을 거예요.”

- 권길철

“63년도에 불하를 했어요. 철도청에서 개인에게 집을 파는 거예요. 그 당시 에 어려운 사람들은 많이 나간 것 같아요. 불하 못 받을 정도로 힘든 사람 들이 있었겠죠? 한 20만 원이라고 들었는데 당시에는 큰 돈이었겠죠.”

02 국가 또는 공공 단체의 재산을 개인에게 팔아넘기는 일. (표준국어대사전)

- 김의향

25

한편, 한국전쟁 시기 거제4동에도 피란민들이 몰려왔다. 타지역 철도 종사자 중 거제리 철도 종사자와 연고가 있는 이들은 철도관사 한 켠에 머물렀다. 그렇 지 않은 이들은 철도관사 인근에 집을 지었는데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생각에 임시거처로 쓸만한 구조물만 만들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 나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은 마을에 정착했다. 당시 현재의 거제경남아파트, 거제동현대아파트 자리에 대규모 견직회사인 조선견직이 있었고, 전쟁 이후 산업화 시기 거제동과 연산동 일대에 섬유공장 을 비롯해 큰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철도관사에서 화지산 방향, 피란민들이 정 착한 지역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공장에 다니는 여공들에게 세를 주기 위해 하 꼬방을 여러 칸 만든 구조의 집들이 생겨났는데, 이렇게 형성된 마을을 ‘산동네’ 라고 불렀다고 한다. 같은 거제4동이지만 철도관사촌과 산동네의 환경은 너무 달랐고, 주민의 정서 또한 달랐다고 한다.

26

“이 동네에 왔을 때 피난 온 사람들이 몇 가구 없었어요. 딴 데는 서울서 피 난 왔기 때문에 얼마 안 살 것이라는 생각에 집을 텐트같이 만들었는데, 대 문이 없으니 가마니를 쳤어요. 그래도 몇 년 살았지.”

- 김춘자

“여기 와 보니까 이 마을 자체가 피난민촌인데, 집을 지어도 엉성하게 지었 어요. 보로꼬[블럭] 아니고 전부 흙벽돌이었어요. 그리고 지붕이 슬레이트 가 아니고 루핑. 장모님이 여기 와서 살려면 이쪽 산동네 집을 사라는 거예 요. 그때는 이쪽을 ‘산동네’라고 그랬어요. … 판잣집에 올라오면 방마다 세 를 줄 수 있고, 수도 요금 안 나가서 세 주기 편하다고 그랬어요. … 여기에 쌍미섬유나 성냥공장, 조선견직 이런 데 공원들이 많았어요. 외지에서 온 처녀들. 방이 작고 보잘것없어도 우선 싸니까. 그 사람들이 오면서 이 동네 가 커지기 시작하더라고요.”

- 임상호

1980년대는 부동산 규제 완화로 도시개발과 건축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특 히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 그 요인이 되었는데, 이 시기 300㎡(90평) 가량 되는 철도관사의 터는 다세대 주택을 짓기에 넉넉한 평수였 다. 이에 거제4동에는 부동산 업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철도관사를 허물고 빌라를 짓는 집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났다. 현재 거제4동의 빌라 자리는 대부분 옛 철도관사 자리라고 볼 수 있다. 근대건축물로 보존할 정책이 없었고, 부동산 규제가 없었다. 그래서 현재 옛 모습을 간직한 철도관사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27

“관사가 90평이거든요. 그 정도 선이 사업성이 있는 거예요. 관사를 하나 사면, 집 여덟 채가 지어지는 거예요. 관사를 사면 업자들이 집 한두 채가 남아요. 그게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어요. 그렇게 빌라촌이 되었어요.”

- 이종화

“한 20~30년 전만 해도 건축업자들이 내 얼굴만 보면 집 팔아라 소리를 했어요. 요새는 좀 뜸해요. 지금은 남은 집이 거의 없어요.”

- 권길철

산동네 또한 거제동 지역의 공장들이 사상이나 김해, 양산 등 경남지역으로 이 전하면서 빈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1년에 준공된 유림아시아드 건설 로 상당수의 주택이 철거되었고, 과거에 비해 그 면적은 매우 줄어들었다. 지금 은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주거환경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28

마을의 시간은 사람과 함께 흐른다

1934

거제리 철도관사 건립

1935

동해남부선 부산~경주 개통

1937

아시히견직 설립

1942

거제역 개통 (7월 1일) 거제 역사 조성 (9월)

1944

쌍미섬유 설립

1946

• 부산제10공립학교 개교 (6월 1일) • 부산제10공립학교에서 거제국민학교로 개칭(7월 31일) • 권길철 철도 부산사무소 발령

1947

거성교회 설립 (9월 18일)

1949

조일견직이 조선견직으로 개칭

29

1950

1963

1951

1964

1953

1968

한국전쟁 발발

김춘자 1·4 후퇴 시기 피란하여 거제리에 정착

문영주 만수사에서 출생

1956

• 이종화 철도관사 12호 1에서 출생

• 김의향 철도관사 16호 2에서 출생

1958

김혜경 철도관사 16호 2에서 출생

철도관사 불하

• 주순필 거제4동으로 이주

거제중학교 개교 (3월 9일)

30

1970

• 거제시장 개장 (5월 4일) • 거제동이 거제 1,2,3동으로 분동 (7월) •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가 대신동에서 거제4동으로 이전 (11월 13일)

1974

임상호 거제4동으로 이주

1978

박왕국 거제2동에서 출생

1979

거제 3동이 거제 3,4동으로 분동

1981

김순남 거제4동으로 이주

1975

• 거제중학교가 거성중학교로 개칭 (3월 1일) • 김점례 거제4동으로 이주

1983

이상화 골목시장에 참기름집 개업 (2월)

1976

송인호 금옥당 개업

1984

박갑진, 함향순 울산에서 거제4동으로 이 주, 채소 가게 개업

1977

쌍미섬유가 쌍미실업으로 개칭

31

1985

조선견직 공장 매각

2008

박지영, 박왕국 거제3동에 정착

1988

거제 역사 증축 (12월)

1990

김점례 포플라 문구점 인수

2009

거제 역사 철거 (10월 15일)

2015

김인순 거제4동으로 이주

1992

• 쌍미실업 부도 • 골목시장 번영회 창립

2001

2016

거제유림아시아드 준공 (9월)

거제해맞이역 역명 확정 및 동해선 개통 (2월 12일)

2003

2018

거제청구하이츠 준공 (5월)

2004

거제유림아시아드타워 준공 (8월)

2007

박순철 거제4동으로 이주

거제4동 도시재생 뉴딜공모사업 선정

거제동에서 70년 살았습니다 이 집은 7등갑이에요 권길철 1927년생 거제4동에서 이따금 철도관사 흔적을 가진 집을 만날 때면 굳게 닫힌 문과 담벼락 안이 궁금했다. 우연히 문이 열린 틈으로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 허락 을 받게 되었다. 철도청에서 일했던 분들은 다 떠났다고 들었는데, 철도에서 전기기술을 담당했던 권길철 님은 거제동에서 무려 70년을 사셨다고 했다.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못했던, 해방 직후의 혼란과 철도관사의 유형, 한국전 쟁 시기 거쳐 간 피란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34

35

거제동에서 70년 살았습니다 거제동에 사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70년 살았습니다.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이사를 몇 번 했는지 모르 죠. 그래서 이 집에서 얼마나 살았다는 건 기억도 안 나고, 철도관사에 처 음 들어 온 게 거의 70년이니까 그렇게 이야기하죠.

이 집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거제리는 철도관사가 전부였어요. 해방 직후에는 거제동이라고 하면 몰 라요. 거제 철도관사에 가자고 해야 알았어요. 철도관사에 등급이 있는데, 거제리 철도관사 중 5등이 제일 높아요. 주민센터 새로 짓는 그 자리도 5등 이었어요. 이 집은 7등갑이에요. 7등갑, 을 차이가 어디에 있냐면 7등갑은 방이 네나[넷]예요. 이 방이 8조, 다다미 8장, 여기 4조 반, 그 뒤에 6조예 요. 일본사람들이 쓸 때, 여기서 심부름하는 애가 쓰는 방으로 중간에 다 다미 2장짜리가 있어요. 그 2장이 없는 것이 7등을이에요. 이 근처에는 7 등갑이 많아요. 7등이 관사의 중추를 이루죠. 거제동 교회 자리에 1호의 1, 2 그리고 2호의 1, 2. 네 집이 들어가 있어요. 그리고 이 집이 3호 1이거 든요. (뒷집을 가리키며) 요 옆이 4혼가, 5혼가 모르겠어요. 6, 7, 8 이렇게 올라갔던 집이에요.

마루 끝에 있는 문은 뭔가요? 일본 집은 집안에 창고가 많네요. 저것도 창고고. 저쪽 방에 들어가면 방 에 쓰는 물건, 이불, 담요 다 들어있고. 방마다 창고가 하나씩 다 있어요. 화

36

장실은 부엌하고 붙어 있죠. 화장실은 일본식으로 밑에 구멍이 하나 있는 변소였는데, 수세식으로 고쳤어요.

부엌과 화장실로 연결된 방은 거실처럼 쓰셨겠네요.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 모르지만 우리는 여기가 안방이에요. 예전 에는 내가 저쪽 다다미 6장 방을 쓰고, 이 8장 방은 손님이 오면 잔다든지, 집안 행사 있을 때 썼어요.

여기 처음 오시고 나서 집을 많이 고쳤나요? 아니면 거의 그대로인가요? 구조는 거의 변동이 없어요. 천장은 손을 댔을 거예요. 내가 전근을 많이 다니니까 여기 있지를 못했거든요. 우리 할마이[아내를 지칭]가 여기 살면 서 애들 키우니까 할마이가 주로 고쳤지. 이 집이 91평이에요. (옆집 빌라를 가리키며) 요 집은 93평이었어요. 이 집이 3호 1이고 저 집이 3호 2거든요. 얼마 전에 팔고 12세댄가 건물이 들어왔어요.

다다미방에 난방은 어떻게 하셨어요? 해방되고 한국 사람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다다미 들어내고, 요 밑 에 온돌로 고쳤죠. 연탄 때고. 부엌도 전에는 푹 꺼져서 아궁이에서 밥을 하고 그랬죠. 우리가 이 집에 왔을 때는 다다미였어요. 근데 우리 할마이가 다 들어내고, 온돌로 고쳤죠.

지붕도 새로 하신 거예요? 원래 있던 기와 위에 염료 비슷한 걸로 뿌린 거예요. 기와가 오래되니까

37

깨지고, 갈라져서 비가 새요. 그걸 막으려고 일종의 염료하고 시멘트 비슷 한 걸 섞어서 뿌려가지고 구멍을 다 막은 거지. 일제강점기 때 기와는 도자 기가 아니고 시멘트 가지고 만들었어요. 여기도 몇 장 있지. (방문 사이 기 둥을 보여주며) 여기 기둥을 보면 복판이 갈라졌죠. 갈라진 게 아니고 원래 별도로 되어있는 나무를 붙인 거예요. 옳은 기둥이 하나도 없어요. 이게 전 쟁 말기에 지은 집이거든요. 나무도 없고, 귀할 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웃 나라에서 가져오는데, 옳은 나무를 가져올 수 있나요? 전쟁 시에 목재가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나무 잘라낸 거 두 개를 붙여서 기둥으로 만든 거예 요. 기둥이 전부 그래요.

또 바뀐게 있나요? 아래채는 원래 창고였어요. 이것보다 더 작았죠. 창고를 헐어버리고, 새 로 지어서 여기다가 세를 준 거예요. 우리 집 할마이가 노력이 대단한 사람 이지. 그 할마이가 나한테 시집오기 전에 군대에도 있었고, 사회 경험이 있 어서 상당히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나는 객지에 나가 있으니까 자기가 다 했어요. 집수리도 하고. 해방 직후에 다른 공 무원들은 뇌물을 주거니 받거니 많이 했는데, 우리 철도는 뇌물 주는 데가 없어요. 철도에 서 뇌물이라면 추석 명절에 암차표 그것만 있 는데, 우리야 전기쟁이니까 할 데가 없거든요. 내 월급만으로 아이 다섯 대학 보내는 게, 보 통 재주가 아니에요. 우리 할마이가 진짜 대 단한 여자라고요.

38

이 앞 도로를 경계로 저쪽에는 부속건물이 많은 데고, 이쪽은 관사였어요 철도관사에는 어떤 분들이 살았나요? 철도관사에 있다가 돈이 있어서 좋은 집으로 가는 사람, 돈이 없어서 집 을 팔고 더 낮은 데로 가는 사람, 그리고 개인 집에 있다가 좋은 집을 사서 가는 사람. 여러 종류가 있었죠. 우리같이 갈 데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은 그대로 있는 거예요. 여기서 더 곤란하면 이 집을 팔고 다른 집에 가지요.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대로 있었어요.

그래도 선생님은 집을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셨네요.

01

형편이 괜찮은 건 아니지만. (웃음) 혁명나고 군인 청장들이 철도 소장이 되었고, 철도청이 되고 난 뒤에 불하했어요. 이 집이 30만 원 미만이었는 데, 일시불로 납부하면 30% 할인해 줬어요. 그래서 십몇만 원에 아마 불하 받았을 거예요.

주변에 철도관사 이외에 어떤 건물이 있었나요? 거제초등학교도 철도 부속건물이었어요. 나도 거기서 살았거든요. 철도 부속건물에 개교한 거예요. 뜯어서 없앤 그 자리에 학교가 새로 지어진 거 예요. (거성맨션을 가리키며) 요 집도 철도 건물이에요.

01 1961년 5·16군사정변을 일컬음.

39

거성맨션 자리에 있던 부속건물은 몇 층짜리였나요?

2층, 3층 정도였어요. 그렇게 높은 건물은 없었어요. 그리고 열차에 쓰던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창고가 많아요. 이 집 앞도 전부 창고예요. 그리고 제 1 승무원 숙사, 제2 승무원 숙사. 기차 타고 부산에 내려오면 밤에 도착하 는 사람들이 잘 데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 승무원 숙소가 별도로 몇 집 있었어요.

독신자 주택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큰 건물이 있었는데, 방을 나누어서 독신자 합숙이라고 했어요. 방을 하 나 얻어서 살면서 밥도 해 먹고 이러는 집도 있었어요. 독신자 합숙 건물이 몇 개 있었어요. 학교 있는 자리에 있었지. 이 앞 도로를 경계로 저쪽에는 부속건물이 많은 데고, 이쪽은 관사였어요.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구멍가게라든지, 이런 건 있었어요? 별로 없었지만 조그만한 집이 있기는 있었죠. 근처에 구멍가게가 몇 집이 있기는 했죠. 이 동네 들어오면 조용하다 그럴까. 하여튼 살풍경하는 그런 골목이었어요.

40

41

42

선생님은 이 동네 안에서도 여러 집을 경험하셨겠네요. 나도 한때는 5등 관사에 들어가 있었어요. 근데 직급이 안 맞잖아요. 처 02

음에 여기 있다가, 영전해가면 여기보다 더 좋은 관사를 얻어야 하는데, 관 사가 비어 있어야 하거든요. 옛날에는 부산철도사무소라고 그랬어요. 서울 에 있고, 수원, 대전, 그리고 부산, 순천, 영주 이렇게 사무소가 있어요. 이 름을 철도국으로 고쳤어요. 그러다 6.25사변이 나서 군인들이 철도 감투를 많이 차지했어요. 부산철도국장이 그때 중령 정도였을 거예요 아마. 그런데 내가 5등 관사에 있으니까 쫄병이 건방지게 5등이나 돼. (웃음) 그렇게 쫓 겨 나와서 다른 관사에 들어가 있었어요.

계단이 남아 있는 옛 대문의 흔적. 서쪽 편 대문을 막고 동쪽으로 대문을 새로 만들었다.

02 전보다 더 좋은 자리나 직위로 옮김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43

질서가 잡혀가면서 철도에 정식으로 발령받았어요 언제 철도에 처음 들어가셨어요? 한국에서 4살에 일본 오사카로 가서 거기서 컸어요. 우리 아버지가 7남 매인데 고향이 밀양입니다. 땅 한 평 없는 거예요. 뭘 먹고 살려니까 일본으 로 가는 거죠. 일본도 일자리 얻을 때, 한국 사람 안 좋아해요. 그래서 일본 인들이 하기 싫은 일을 한국 사람이 하는 거지. 나는 일본에서 소학교, 그 다음에 공업학교를 나왔어요. 소학교 성적으로는 그래도 몇 등 내외로 들 어갔어요. 그런데 공업학교로 들어가려니까 학과시험이 없어졌어요. 구두 시험뿐이에요. 일본인들이 좋아할리 없지. 그래서 떨어지고 3류 공업학교 를 들어가서 졸업했어요. 아버지는 산에서 사고가 나서 돌아가셨어요. 해 방되고 내가 어머니하고 밀양에 왔는데, 누가 먹여주나요? 일본에서 같이 온 사람이 있어서 경주로 갔어요. 그 사람 가족이 철도에 있었어요. 내가 공업학교 전기과 나왔으니까, 간부에게 이야기해서 거기에 취직하게 됐어 요. 철도에 있는 사람 중에 ‘조역’이라고 있어요. 일을 돕는 사람. 경주에서 도 조역으로 있는 사람이 날 채용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채용 권한이 없 는 거예요. 그러다가 질서가 잡혀가면서 철도에 정식으로 발령받았어요.

그게 몇 살 때였나요? 그때가 19살이나 20살 됐죠. 철도에도 계통이 많거든요. 기차 운전하는 사람. 그걸 운전계통이라고 그러고, 그다음에 집 짓고, 집수리하는 사람 거 기는 건축 계통. 우리처럼 전화, 전기 고치고, 신호 고치는 사람은 신호계 통. 전기쟁이. 처음 전기 조역 시험을 서울서 쳤단 말이오. 전국에서 나 혼

44

자만 걸렸어요. 시험만 치면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출세가 좀 빠르죠. (웃음) 조역이 공무원 9급이오. 8급? 7급쯤 되나? 공장장이 5 급인가? 소장을 하고, 전기 공장장을 했어요. 여기 공작창 전기 공장이 지 금은 없어졌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정식으로 발령받자마자 거제동으로 오신 거예요? 전기 계통에서 큰 집이 부산 전기 사무소고, 분소가 여러 군데 있단 말이 오. 대구에 분소가 있어서 교육을 받느라고 대구 동인동 관사에 있었어요. 그러다가 동래로 전근을 받았어요. 동래 산 위에 관사가 몇 집 있었는데, 요새는 없어졌더라고요. 거기에 있다가 거제초등학교 운동장 복판쯤 될 거 03

예요. 관사 비슷하게 대용관사라고 할까? 거기에 살았어요. 옆으로 기다란 건물이에요. 관사 대용으로 만든 건물이죠. (거성맨션을 가리키며) 저런 건 물이었어요. 그렇게 크지는 않고, 요런 관사에 붙어 있는데, 조그마한 방 두 개 옆에 부엌이 있고, 살림만 하는. 사람이 억지로 살 수 있게 그렇게 만들 어 놓은 집이었어요. 화장실은 집안 구석에 조그마하게 있었어요. 우리 장 남이 71살이에요. 걔가 태어난 곳이에요. 방 하나는 애들이 작으니까 우리 가족이 쓰고, 하나에 처가 가족들 들어와 있었어요. 장모, 처남 다 거기 들 어가 있었지. 복잡한 건 말할 것도 없죠.

03 한 블로그에 보면 가관사(대용관사)라고 표기되어 있다. https://blog.naver.com/kgh19941061/221527495386

45

그래도 직장이 있어서 다행이었네요. 철도 사람이 옛날에 불쌍했어요. 범일동에 조선방직이라고 베 짜는 공장 이 있었어요. 그 회사 직원들이 아침에 출근하면서 철도 사람 보면 재수 없 다면서 침을 폐폐폐, 세 번 뱉았어요. 더럽다 이거지. 두 번째 보는 사람은 공장에 안 가고 집으로 돌아간대요. 그만치 철도 사람을 하위급으로 보고 대우 안 해줬어요.

아까 객지를 다녔다고 하셨어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 기간이 길었겠네요. 철도에 있으면서 몇 군데 돌아다녔어요. 조금 지위가 높아지니까 멀리 가 게 된단 말이에요. 양평에 5년 있었어요. 청량리에서 제천까지 ‘산업성’이라 고 그랬어요. 청량리에서 양평까지 1공구, 양평서 원주까지가 2공구, 원주 에서 제천까지가 3공구가 한 150~200km 가까이 돼요. 1공구, 2공구가 내 담당 구간이었어요. 거기에 내가 소장으로 가서 준비하고, 건설하고, 건설 뒤에 고장이 나면 수리를 하고 해서 양평에 5년 있었어요. 주말 되면 마누 라가 애들 데리고 양평에 오는 거예요. 얼마 있으니까 순천 소장이 비었어 요. 순천사무소는 전라남북도 전부 관할 하는 거예요. 순천에서는 토요일 에 부산에 왔다가, 일요일 오후에 갔어요. 순천에 간지 1년 못 되어서 부산 자리가 비었어요. 그래서 부산에 왔어요. 그리고 한 2~3년 있다가 대전에 갔어요. 그러다가 또 부산에 왔는데, 얼마 있다가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46

국가, 철도에서 피란민에게 빈방 비워주라고 했어요 한국전쟁 시절에 피란민들이 거제동에 일부 왔다고 들었어요.

6.25 사변 났을 때 전부 여기 피난 왔단 말이에요. 사람들이 피난 왔는 데, 갈 데가 있나요? 관사에는 방이 세 개나 있거든요. 보통 부부가 사는 데 가 많거든요. 그래서 국가에서도, 철도에서도 빈방 좀 비워주라고 했어요. 그때 들어온 사람들을 누가 먹여주나요? 철도 사람들은 철도에서 배급이 나오니까 그걸로 밥 해 먹을 수 있지만 피난 온 사람들은 먹을 게 없단 말이 에요. 그러니 교회 나간단 말이오. 교회에서 먹을 걸 주거든요. 이 동네에 04

교회가 많아요. 이 옆이 거제동교회 아니오? 저기서 건널목 건너면 거제교 회예요. 양정에 거양교회 있고.

그러면 철도관사 집들은 거의 피란민에게 세를 줬겠네요. 거의 다 들어가 있다고 봐야지. 철도국원들 가족이 별로 안 많았어요. 있 다 해도 애들 몇 정도니까 어른들 자는 방 하나 아니면 두 개만 쓰면 되죠 5등 관사에 방이 4~5개 거든요. 이 집도 저기 다다미 6장 정도면 몇이 누 워 잤겠어요.

그렇게 철도관사에 들어온 피란민들은 월세를 내고 살았나요? 그 사람들한테 돈 안 받았어요. 대부분 철도 가족이 많았거든요. 대전에 있는 사람, 서울서 온 사람들. 그 지역 관사에 있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 사람들이 부산 내려오면 갈 데가 있나요? 그러니까 아는 사람, 같은 소속 04 거성교회가 1947년 거제리 철도관사 유치원을 빌려 기도소를 설치 했다가 그해 현재 거제3동 위치에 가건물 을 짓고 정식 출범했다. 거제교회는 1948년 거제2동에 기도소를 설립한 이후 1954년 정식 교회로 등록했으 며 1989년 현재의 위치에 입당했다. 거양교회는 1952년 거제4동에 국립상이군인 정양원에서 벧엘교회로 태동하여 1964년 양정으로 이전했다. (참고 : 부산역사문화대전)

47

에 있는 사람, 전기쟁이는 전기쟁이, 기관차 운전하는 사람은 운전계통, 그 계통 사람들이 서로 아는데, 안다고 그냥 쑥 내려오는 건 아니지. 너희 집 에 좀 가자, 그래 우리 집 온나, 이렇게 했죠. 전쟁 끝나고 다 올라갔지. 여기 에 남은 사람이 별로 없죠. 장사하는 사람은 좀 남았을까. 여기서 무상으로 사는 사람들은 다 올라갔어요.

한국전쟁 당시 철도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유공자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철도 사람은 군인 대접을 해줘요. 처음에는 한국전쟁 때 철도 사람인지 모르고 군대에 막 잡아갔거든요. 나중에 전쟁이 한창일 때 수송을 하려니 까 기관차가 있어야지. 그러면서 철도 사람도 군인 대우를 해주라고 해서, 전쟁이 끝나고 나니까 군인연금 받고 있어요. 부산지방 철우회라고 있거든 요. 회장이 바뀌었다고 그저께 고맙다고 연락이 왔는데, 이제는 철도에 아 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옛 창고를 철거하고 세를 주기 위해 만든 건물

48

49

일어나기만 하면 걸을 수 있어요. 건강 비결은 걷는 거예요 마당에 있는 나무들은 오래된 나무예요? 중간 간부 될 때, 우리 부하가 진영에서 감나무를 10개 가져와서 심었는 데 두 그루만 남았어요. 나머지는 죽었어요. 다른 나무는 할마이가 남의 집 식물 구경하다가 하나씩 얻어온 거예요. 내가 많이 없앴어요. (웃음) 꽃 나무도 심고 이러다가 회사 그만두고 국화를 처음 키웠어요. 오래되니까 그 만두었더니, 도우미 아줌마가 왜 밭을 놀리고 있냐고, 같이 뭘 심자고 해서 금년에 상추도 심고 했어요.

텃밭도 하시고, 건강해 보이세요. 절에 많이 가요. 매일 아침마다 TV 보다가 통도사가 나오면 통도사에 가 고, 삼광사가 나오면 삼광사에 가고 즉흥적으로 어디에 나가요. 일어나기만 하면 걸을 수 있어요. 건강 비결은 걷는 거예요.

집 자체는 힘들 것 같지만, 이 터는 지키려고 해요 김의향 1956년생 김혜경 1958년생 철도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둔 김의향과 김혜경 자매를 비롯한 형제들은 거제동 철도관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살았던 철도관사의 외형을 여 지껏 보존하고 있다. 어릴 땐 집을 못 고치게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어렴풋이 그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님 삶의 기억이 고스란히 집안 곳곳에 베인 이 집은 지난 마을의 역사도 품고 있었다.

52

1956년에 철도관사 16호 2에서 태어났어요. 여기는 116호 1이에요 ※ 김의향은 ‘향’, 김혜경은 ‘경’으로 표기했다.

선생님들은 이 집에서 태어나셨나요? 향저 는 1956년에 철도관사 16호 2에서 태어났어요. 60년 자유당 정권 말

기에 모종의 이유로 갑자기 마산으로 발령이 났어요. 정권이 바뀌고 1 년만인 61년에 다시 부산으로 발령이 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왔 어요. 여기는 116호 1이에요. 두 개의 지붕이 붙어 있잖아요. 동쪽에 있 는 집을 1호, 서쪽에 있는 집을 2호,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대학은 서울 에서 다녔고, 직장생활은 여기에서 했는데, 초읍에 잠시 독립했었어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늘 왔어요. 그렇게 치면 거의 평생을 산 셈이 죠. 경저 도 대학은 서울에서 했고 방학엔 부산에 왔어요. 언니랑 같이 독립해

서 한 1년쯤 같이 있었나, 부모님 모신다고 다시 들어왔어요. 우리가 넷 째, 다섯째예요.

한집에서 오래 살고 계시네요. 향너 무 옛날 집이라 웃풍도 세고, 춥잖아요. 그래서 아파트를 하나 분양을

받아서 부모님 모시고 살까 하는 생각으로 아파트를 샀는데, 부모님이 절 대 안 가신답니다. 작은오빠가 유학 가기 전에도 아버지한테 반듯한 새집 에 가서 사시면 안 되겠냐고 했는데, 절대 안 가신다고 하셨어요. 집 고치 는 것도 너무 싫어하셨어요. 엄마가 조금씩 고치면 그렇게 화를 내시고.

53

아버지에게는 이 집이 진짜 특별했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돼요. 경 아버지의 힘으로 이 집을 마련했고, 여섯 형제를 다 키웠잖아요. 그래서

그 집에 그대로 있고 싶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아버지가 경제적인 이 유로 대학을 못가신 것에 대한 한이 많으셨어요. 공무원 박봉에 경제적 으로 힘든 중에도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다른 건 못해줘도 학교 공부를 계속하기를 원하면 끝까지 뒷바라지 해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향 아버지가 10형제였는데 두 분은 일찍 돌아가시고 8형제가 남았어요. 아

버지가 넷째인데 제일 큰 형님을 대학에 보낸다고 본인은 상고에 가셨어 요. 옛날에는 대구상고 나와서 은행 가면 괜찮았대요. 그랬는데 일제강 점기니까 징용에 끌려갈까 봐 할아버지가 철도청으로 가라고 했대요. 철도청에 취직하면 징용·징병을 안 받았대요. 그래서 41년도에 아버지 가 철도청에 들어가셨어요.

54

아버지가 피난민들한테 방 하나, 창고 하나를 내주었다고 했어요 대구에 계시다가 부산으로 오신 건가요? 향처 음에는 아버지가 대구에서 근무하셨는데, 전쟁이 나니까 안전한 곳으

로 가족을 피난시킨다고 부산으로 오셨겠죠. 16호 2에는 51년인가 52년 에 왔다는 거 같아요. 엄마가 먼저 애들 데리고 왔어요. 거기서 작은오 빠와 우리 둘, 3형제가 태어났어요. 막냇동생은 마산에서 태어났어요.

6·25때 부산에 피난민이 많잖아요. 아버지가 피난민들한테 방을 내주 라고 해서 방 하나, 창고 하나 내주었다고 했어요. 경아 버지가 대구에서 근무했지만, 부산 철도청 소속이었대요. 범일동에 있

는 교통부 쪽 본청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셨어요. 보림극장 앞에 옛날 철도청이 철도병원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그다음에 부 산역사를 크게 지으면서 철도청이 부산역으로 간 거죠. 전쟁 중에 일했 던 철도청 직원들은 6·25 참전 유공자가 되더라고요.

이 집으로 다시 오신 건 5살쯤이었겠네요. 향6 1년에 왔으니까 만으로 5살이었어요. 여기로 이사한 날이 기억나요. 기

차 화물칸에다 이삿짐을 싣고 왔거든요. 한밤중에 옮겼지. 마산에서 달 이 떠 있던 기억이 나요. 같이 근무하는 분들이 짐을 화물칸에 옮겼어 요. 그리고 아침에 어떤 집에서 우리를 불러서 아침 대접을 했었어요. 아 침 먹고 기차를 탔는데, 짐은 나중에 왔어요. 거제역에 화물칸을 세워놓 고 거기서 짐을 내려서 여기까지 갖고 왔어요.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니까 재밌어서 거제역까지 쫓아갔다가 짐 들고 집에 쫓아왔던 기억이 나요.

55

옛날에는 다다미방 고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겠죠 여기 오셨을 때 집 구조는 어땠나요? 경방 두 개 사이에 미닫이문이 있었어요. 다 미닫이문이었어요. 3평 크기

방 2개와 조금 작은 방 하나가 있었습니다. 마루가 되게 높아서 어릴 때 는 올라오기 힘들 정도였는데, 지금은 편하게 계단을 하나 더 만들었지 만 구조는 그대로예요. 엄마가 이 집에 올 때 이미 옛날식이 아니라고 그 러더라고요. 약간 손을 본 집이었어요. 향입 구도 유리창 있는 미닫이문이었어요. 밑에 도르래가 달렸는데 도르래

가 닿으면 삐끄덕 삐끄덕하고 잘 안 열리잖아. 그럼 아버지가 문짝을 고 치고 했어요. 그런 걸 잘하셨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집을 정리하 는데 연장이 얼마나 많은지. (웃음) 방, 부엌이 전부 마루였는데 밑이 비어 있었어요. 공기 구멍 같은 건데 고양이들이 들락날락해서 밥도 주고 했어요. 그리고 지붕과 방 천장 사 이가 비어 있었어요. 옛날에 쥐가 많았잖아요. 목조 건물이다 보니까 한 번씩 우당탕하면 “어, 쟤들 체육 시간이다” 이랬어요. (웃음) 일본식 집은 화장실이 집 안에 있거든요. 문 열고 들어오면 왼쪽이 화 장실 자리예요. 바깥 쪽에 나무 뚜껑을 덮었어요. 옛날에는 농사지으면 인분이 제일 필요했잖아요. 화장실이 어느 정도 차면 사직동에서 농사 짓는 사람들을 불러서 똥을 푸고 돈을 줬대요. 구루마에 똥장군을 가 지고 왔어요. 가끔씩 농사짓는 사람들이 먼저 와서 좀 퍼가면 안 되겠 느냐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푸고 나면 집안에 냄새가 엄청나거든요. 그

56

래도 퍼가라고 했어요. 지게에 보통 하나씩 멨어요. 물지게 나무통 두 개에 담아서, 차에 있는 큰 통에다 부어서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어떤 때는 살짝 퍼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경그 러니까 현대식이 아니었지. 그런데 그 당시로서는 이 화장실도 깨끗한

축에 들었어요. 완전 재래식 화장실이 아니니까. 향수 도, 전기 이런 시설이 돼 있었어요. 그리고 철도 전화라고 해서 철도청

이나 역하고 통화할 수 있는 전화가 있었어요. 일반 전화기는 따로 있었 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날도 아버지 철도 전화로 비상근무라 고, 빨리 출근하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때 부산에 일본 방송이 잡혀서 아버지가 방송을 들었는데, “뭔가 이상하다,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났나 보다” 하면서 출근하셨거든요.

57

지붕 이쪽 편에 조그마한 창문이 있잖아요. 그건 무슨 역할이었을까요? 경공 기구멍인데 방마다 있었어요. 구멍이 완전히 뚫린 게 아니고 나무가

안으로 매립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겉에서도 보이는데, 안쪽으로 더 들 어가 있었어요. 향나 뭇집은 그렇게 안 하면 습기가 찬대요. 지붕 기와에 누수가 생겼는데

요즘에는 기와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2012년에 집 리모델링 하면 서 우레탄으로 덮었어요. 비가 오는 날은 화장실에서도 우산을 써야 할 정도였어요. 옛날에는 다다미방 고치는 사람이 있었어요. 다다미 안쪽 에는 지푸라기 같은 게 있고 바깥에는 곱게 짠 왕골이 있거든요. 그게 낡 으면 벌레가 생겨요. 그러면 그걸 싹 뜯어서 바깥으로 새 것을 입혀서 커 다란 바늘로 기워서 비닐로 마무리해야 해요. 이렇게 고쳐주는 사람이 있었어요. 오래돼서 뜯어지면 와서 수선해줬는데, 그런 사람들도 점점 사라졌겠죠.

정원에 있는 나무들은 어릴 때부터 있던 나무인가요? 경엄 마가 꽃을 좋아하셔서 마당에 꽃이 많았어요. 어릴 때 아버지가 외국

에서 수입한 흑장미, 노란장미, 흰장미, 분홍 꽃장미를 구해오셨어요. 지금은 흑장미, 분홍 꽃장미만 남아 있어요. 어렸을 때는 울타리에 측백 나무가 있었어요. 벌레가 안 생긴다고 심었다 그러더라고요. 오래되니까 둥치가 너무 굵어지고, 태풍에 쓰러져서 기우뚱하게 된 거예요. 그것 때 문에 축대가 무너질까 봐 다 베어버렸어요. 향옛 날에는 좀 사는 집에 소나무, 그다음에 종려나무 심는 게 유행이었어

요.

58

59

라면 봉지가 귀했는데, 도시락을 봉지에 넣으면 책이 김칫국물에 안 젖었어요 어릴 때 부터 계속 사셨으면 거제초등학교를 나오셨게네요. 몇 회 졸업생 이세요? 향내 가 22회, 혜경이는 24회. 여섯 형제 다 거제초등학교 나왔어요. 어릴

때 친구들과 지금은 연락을 거의 안 하는데, 가끔씩 초등학교 친구를 지나가다가 만나면 연락처를 주고받기도 해요. 경가 끔씩 관사에 살았던 사람들이 구경을 와요. 향한 번 초등학교 친구들끼리 모여서 어릴 때 애기를 했는데, 동네 한 바퀴

돌다가 우리 집을 보고는 눈물이 난다 더라고요. 블로그에 사람들이 사 진을 올려놓기도 해요. 내가 거제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비행기 격납고 01

모양의 둥근 군인 막사 퀸셋 같은 게 있었어요. 초등학교 앞쪽에 시멘트 건물이 있었고, 그 뒷부분이 그렇게 돼 있었어요. 거기에다가 칸을 막고 교실을 만들었는데 1학년 때 그 교실에서 공부했어요.

학창시절의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요? 향우 리 때는 라면 하나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라면 먹는 집은 부잣집이었

어요. 라면 봉지도 엄청 귀했으니까, 도시락 싸다닐 때 그때는 주로 김치 밖에 없잖아요. 옛날에는 밀폐용기가 없으니까 도시락을 세우면 국물 이 흐르잖아요. 김치병을 비닐봉지에 넣으면 책은 안 젖는 거예요. 그러 니까 삼양라면 봉지 하나가 얼마나 귀했던지. 사 먹어야 생기는데, 사 먹 기가 힘드니까. 그리고 베로 만든 가방이니까 비만 오면 다 젖잖아요. 비 01 길쭉한 반원형의 간이 건물

60

오는 날 집에 오면 먼저 하는 일이 책을 다 펼쳐놓고 말리는 거였어요. 천에서 색이 빠져나오면 교과서에 물이 들어버리고. (웃음)

물자가 지금과 많이 다를 때죠. 향그 래도 혜택은 참 많이 받은 셈이죠. 어쨌든 아버지가 철도 공무원이었

기 때문에 세끼 밥은 안 굶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비슷한 연배인데도 미 싱 공장에 가서 엄청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주변에 다 공부하 는 애들이니까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인근에 봉제공장이 그렇게 많은 것도 몰랐어요. 관사를 헐고 건물을 새로 올린 집들을 자세히 보면 지 하에 봉제공장이 많거든요. 경한 창섬유 같은 경우에는 옛날에 산업체 학교라고 낮에 일하고, 밤에는

학교 가서 공부했어요. 80년대에 그렇게 공부하는 10대들이 있었어요.

어릴 때 친구들끼리 어디에서 놀았나요? 경저 학년 때는 여기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멀어서 가는 게 힘들었어요. 그

래서 다른 길로 안 샜던 것 같아요. 거기다가 요즘처럼 길이 좋은 게 아니 고, 지금 해맞이역 앞 언덕이 굉장히 높았거든요. 그러니까 저학년 때는 학교 끝나고 애들이랑 놀았던 기억이 없어요. 집에 오는 게 일이었어요. 고학년 때는 이 친구, 저 친구 집을 돌아다니면서 놀았어요. 향학 교 친구들보다는 동네 친구들이랑 놀았지. 여기가 지금도 골목이 넓

잖아요. 울타리가 따로 없고 집 가장자리에 전부 측백나무가 있었기 때 문에 온 집이 동네 애들 놀이터였어요. 여름밤에는 뒷마당에 모기장 쳐 놓고, 모기약 뿌려놓고 길에 누워서 은하수 보다가 들어오고 이럴 정도

61

였죠. 아이들이 다망구[다방구] 놀이하면서 뛰어다니고, 막대치기도 하 고 그러니까 딱히 어디서 논다는 게 없었어요. 관사 네 집이 한 블록으로 되어있거든요. 한 블록 사면을 빙 돌아 도 랑이 있었는데, 산물이 계속 졸졸졸졸 흘렀어요. 비 오는 날 학교 갔다 오다가 발에 진흙이 묻으면 도랑에 들어가서 발을 씻었어요.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서 앉은뱅이 썰매를 만들어서 탔어요. 물이 늘 흐르고 마른 적이 없었어요.

62

63

학교 간다고 통학 열차 타면 장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앉아 있던 기억이 나요 기차역이 바로 앞인데 시끄럽지는 않으셨나요? 향늘 기차 소리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시끄럽다는 생각은 없어요. 기차가

자주 다니지도 않았죠. 증기 기관차에서 디젤 기관차로 바뀌었던 기억은 있어요. 아버지가 철도청에 다니니까 자녀들에게 무료로 통학 열차를 탈 수 있는 패스를 줬어요. 그런 혜택이 있으니까 어렵지 않게 다닌 것 같습 니다. 공무원들 월급이 진짜 박했거든요. 통학 패스는 구간이 정해져 있 었어요. 여름만 되면 아버지가 두세 번씩 송정해수욕장을 꼭 데리고 갔 어요. 아버지하고 같이 가면 신분증이 있으니까 우리는 공짜로 타고 가 는 거예요. 아마 철도 직원 가족은 다 그랬을 거예요. 통근열차라고, 공무원들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기차를 운행했어요. 여름, 겨울에 근무 시간이 바뀌면 통근열차 시간도 바뀌었어요. 아버 지가 퇴근해서 오는 시간이 되면 형제들끼리 아버지 마중을 나갔어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통근열차 타고 오시니까 엄마도 그 시간 에 맞춰서 상을 거의 다 차려놓았어요. 가족들이 다 모여서 밥을 먹었 어요. 경그 리고 건널목이 있었어요. 기차 지나간다고 차단기 내리면 기다려야 되

고, 그런 문제도 있었어요. 철길이 있으면 항상 긴장해야 해요. 사고들이 몇 번 있었어요. 향옛 날에는 간수,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기차 지나갈 때 되면 차단기 내리

고 사람들 통행도 관리했는데 나중에는 ‘띵띵띵’ 소리만 나고 간수가 없

64

어졌어요. ‘띵띵띵’ 소리가 나고도 몇십 초 후에 기차가 지나가거든요. 기 차가 안 보이니까 사람이나 차가 지나가면서 사고가 생기는 거죠. 경그 것 때문에 이쪽에 육교를 만들었어요. 나이 많은 어른들은 육교 건너

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지금은 육교가 없어졌어요. 향지 금은 좀 안전해진 거죠. 그리고 거제역이 있을 때는 철길 옆에 벽이 있

으니까 꽉 막혀 있었잖아요. 거제해맞이역 공사한다고 담을 헐고 나니 까 속이 너무 시원한 거예요. 근데 동해선 옆에 있는 집들은 겨울에 역 때문에 해가 가리는 거예요. 그분들은 그것 때문에 불편해졌죠.

거제역 주변에 있던 시장에 대한 기억이 있으세요? 향어 릴 때는 철로 바로 옆에, 지금 동해선하고 큰 도로[현재 거제대로] 사

이에 거제리 시장이 있었어요. 그 시장이 제법 컸어요. 지금 거제시장 건 물 지으면서 시장이 그리로 갔어요. 경큰 도로는 80년 중반쯤 넓어졌거든요. 그전에는 편도 1차 도로만 있었

어요. 그러니까 철길하고 도로 사이에 공간이 제법 있었어요. 그리고 역 하고 철도관사 사이에도 번개장터라고 하나, 그런 식의 장이 한동안 섰 어요. 향통 근열차보다 앞에 우리 학생들이 타는 통학 열차가 다녔거든요. 그 차

를 타면 멀리서 보따리, 다라이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 거제역에서도 내 리고 부전시장까지 가시는 분들이 있고 그랬어요. 내려서 길에 그냥 펼 쳐놓는 거예요. 그러고 기차 시간 맞춰서 또 가고 그랬어요. 그래서 학교 간다고 열차 타면 장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앉아 있던 기억이 나요. 한동 안은 여기 골목시장도 굉장히 번성했어요. 섬유 공장 이런 게 많으니까

65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이 여기 위에 자취를 많이 했어요. 그 사람들이 주로 다니면서 여기에서 장을 보는 거야. 근데 지금은 재개발 때문에 윗 동네가 다 이사 가고 나니까 어려워졌죠. 마을버스가 생기고 나서부터 죽은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어릴 때도 철도관사 위쪽에 집이 많았나요? 경아 니요.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창문 밖을 보

면 산이 다 보였어요. 향저 위에 곰돌이 스포츠 있잖아요. 그 앞길이 산길이었어요. 그 위에는

지금도 무덤들이 좀 남아 있는데 공동묘지였어요. 상여가 한동안 우리 집 앞으로 지나갔어요. 옛날에 상여 메고 곡을 하면서 가잖아요. 우리 집을 돌아서 살짝 오른쪽으로 가면 거기 공터가 조금 있었어요. 거기서 한번 쉬는 거라. 상주들이 거기다 돈을 달아줘야 상여꾼들이 다시 가는 거라. 거기서 상여가 산길을 올라가는 게 우리 집에서 다 보일 정도로 아 무것도 없었는데 언제 그렇게 집들이 생겼는지 기억이 없어요.

60년대에 우리 집에서 보면 황령산이 다 보였고, 옛날 브니엘고등학교 도 훤히 보였어요. 그 주변이 허허벌판인데 여기서 보면 논밭 한가운데 에 학교 건물만 하나 떡하니 보였어요. 희미하게 사람이 지나가는 것도 보이고. 또 어느 날엔 무슨 공장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굴뚝 세 우는 거였는지 사람이 매달린 것도 본 기억이 있어요. 연산동에도 철도 관사가 있었는데, 주변에는 뭐가 없었어요. 거제리 지나는 도로가 큰 도 로였거든요.

66

이 집 자체를 지키기는 힘들 것 같지만, 이 터는 지키려고 해요 철도관사에 살던 주민들끼리 계모임 등의 교류가 있었나요? 향그 런 건 없었고, 아버지가 퇴직하고 나서 같이 일했던 분들하고 계모임

하는 건 있었어요. 당시 주민들끼리는 없었어요. 불하받고 나서부터 떠 난 사람도 많아지고 이름만 철도관사지 철도청 직원이 아닌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부터는 이웃과의 관계도 약간 소홀해졌죠. 경내 기억에 철도관사였던 집을 불하하고 나서는 많이 나갔던 거 같아요.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들 어오면서 담장을 치기 시작했어요. 울타리 없이 측백나무만 있었는데, 블록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점점 담장을 치기 시작하는 거예요. 결국 사 람 관계도 그렇게 됐어요. 향 63년도에 불하를 했어요. 철도청에서 개인에게 집을 파는 거예요. 그 당시

에 어려운 사람들은 많이 나간 것 같아요. 불하 못 받을 정도로 힘든 사람 들이 있었겠죠? 한 20만 원이라고 들었는데 당시에는 큰 돈이었겠죠. 경우 리도 겨우 했잖아요. 그렇게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경제

활동을 못 하니까 땅을 팔고 나가는 것 같았어요. 이 동네는 빌라가 80 년대 후반부터 들어섰나? 철도청에 다녔던 분은 지금 이 동네에는 없는 것 같아요. 거제초등학교 쪽은 모르겠는데, 이쪽은 없는 거 같아요.

67

토박이시다 보니 철도관사와 마을의 변화에 대해서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 으시네요. 이 집도 오랫동안 남았으면 좋겠어요. 향작 년 코로나가 오고 나서 외부활동이 없으니까 답답할 수도 있는데, 마

당이 있으니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집을 지켜야 되겠다 는 생각을 확실하게 했어요. 아파트 단지 공사로 집이 흔들리고 보도도 부서지고, 마룻바닥도 약간 기울었어요. 이 집 자체를 지키기는 좀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이 터는 지키려고 해요.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형제들한테, “이 집을 없애면 추억이 다 사라지는 게 아닐까”라고 하니 까 오빠도 “그건 그렇지”라고 했어요. 경시 간이 흐를수록 이 집을 지켜주신 아버지한테 너무 고마워요. 외형을

그대로 둘 수 있으면 진짜 그러고 싶은데 그게 마음 같지 않으니까. 그 래도 이 집이 없어지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어남겨서 너무 다행스러워 요.

거제리에 66년째 살고 있습니다 이종화 1956년생 / 문영주 1953년생 거제4동이 고향인 선후배 사이 이종화 님과 문영주 님은 전화 한 통이면 10 분 만에 서로 달려가는 사이이다. 어머니가 동래정씨 집안에 아버지가 철도 공 무원이라 거제동이 고향이 된 이종화 님은 철도관사의 변화를 기억하고 있었 다. 만수사와 같은 나이를 가진 문영주 님은 젊을 때부터 사진에 관심이 있어 1960년대 거제4동의 모습을 담은 귀중한 사진들을 간직하고 계셨다. 그들은 마을 토박이들만 이야기할 수 있는 기억을 꺼내 놓았다.

70

동래정씨(東萊鄭氏) 문중의 시조묘역인 화지공원 내 추원사

71

거제리에 66년째 살고 있습니다 거제4동에 사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거제리는 결혼하고 잠시 떨어져 있었는데, 어른들 계시고 하니까 66년째 살 고 있습니다. 거제초등학교 나오고, 중학교도 69년도 현 거성중학교인 거제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부산진고등학교 다녔는데, 차비 아끼려고 산을 넘어 다녔어요. 하마정 가서 타고 다니면 돈이 들잖아요. 우리는 가방 메고 산 으로 걸어갔다가, 밤공부하고 9시 반만 되면 공동묘지를 통과해서 관사로 내 려왔어요. 빠른 걸음으로 20분이면 가요. 그런 시절이었어. 우리 집이 지금 유림아시아드 바로 밑에 있었어요. 철도관사였는데 지금은 빌라촌이 됐어요.

공동묘지가 있었나요? 공동묘지가 바로 여기 있지. 공동묘지가 커요. 지금도 화지산 바로 위에 있잖아요. 화지산이 동래정씨 땅이에요. 우리 외할아버지, 작은 이모할아 버지 산소도 있고. 친구 부친들, 친구 할아버지 산소 여기 다 있어요. 내가 거주하는 이 땅도 동래정씨 문중 땅이에요.

동래정씨 집안 분인가요? 나는 전주 이씨지만, 우리 어머니가 동래정씨예요. 무남독녀 외딸이었어 요. 할아버지가 일본 히로시마에 있을 때 광산 책임자였어요. 우리 할아버 지가 워낙 부자니까 8월 15일 해방되고, 8월 22일에 배를 사서 집안사람 전 부 데리고 왔어요, 자갈치 시장에 내렸는데 어머니의 언니, 사촌오빠가 여 기 사셨어요. 그래서 이쪽으로 왔어요. 아버지는 여기 오자마자 철도청에

72

73

시험을 쳐서 들어갔어요. 아버지는 국가 유공자가 됐어요. 6·25 때 수송 맡 았다고 해서 영천 호국원에 계세요. 어머니도 거기에 계세요.

우리 7형제가 다 관사에서 태어나고 관사에서 살았어요 아버지가 철도 공무원 하셨으면 철도관사에서 사셨겠네요. 우리 7형제가 다 관사에서 태어나고 관사에서 살았어요. 우리 큰형님은 일본에서 낳았어요. 해방둥이죠. 관사가 90평 정도 됐어요. 일제강점기 때 지었는데, 한 1940년도 가까이 지었대요. 아버지가 철도청에 계실 때 관사 를 배당해주는 부서에 있었어요. 지금 동사무소 옆에 있는 거제동 교회가 1호 1, 1호 2였어요. 거기서 쭉 올라오면 우리 집, 12호 1이었어요.

어디까지 있었나요? 계성여고 밑에, 길 끝까지 있었어요. 아직 몇 집 있어요. 거제초등학교 후 배가 사는데, 작년에 혹시나 해서 갔더니, 우리 집 생각이 나서 사진을 찍었 어요. 눈물 나더라고요. 철도관사에서 대학 갈 때까지 근 20년 정도 살았 어요. 70년대 초까지 있었어요. 내가 80년대 말에 결혼하고 철도관사에 잠 시 있었거든요. 어른들은 집을 팔고 관사에 새로 들어가 계셨어요. 85년도 까지 계셨어요.

74

철도청에서 퇴직하고 나오신 건가요? 아니죠, 이후에 철도 직원들에게 개인소유로 넘겨줬어요. 철도관사는 거 의 고위직 임원들이라고 보면 돼요. 연산동은 50평밖에 안 됐는데, 노무자 들이 살았어요. 지금은 상업지대라 더 비싸죠. 여기는 부르주아였어요. 그 러다 보니까 학력 수준도 좋고. 서울대 정도 가야 플래카드 붙였어요. 우리 어른이 철도관사가 남향에, 남한에서는 최고 명당이라고 했어요. 아 버지가 평양은 안 갔지만, 평양에 또 있대요. 애들 교육도 잘 시켰고, 학력 수준도 높을 수밖에 없는 입지적 조건이었어요. 부자들이 많이 왔어요. 국 제시장, 진시장에서 직물점하는 부자들이 많이 왔어요. 집이 좋고, 애들 학 력 수준도 좋고, 여기 관사 부모들이 고학력자가 많았어요. 큰 다다미방도 있고, 방이 세 개 더 있는데, 늘릴 수도 있었어요. 우리가 7형제니까 엄마, 아버지하고 9명이잖아요. 외할머니 한 번씩 오지. 관사 옆 에는 부속건물이 있었어요. 방이 2개 들어가요. 옛날에는 창고로 썼는데, 방 2개로 개조해서 세를 주고 살았어요. 큰 집은 독채관사라고 독관사라고 있어요. 한두 집이 남아있어요. 보통은 12호 같으면 12호 1, 12호 2 두 개 가 붙어 있는 집인데, 독관사는 독채로 180평 정도 돼요.

산동네와 철도관사촌의 문화가 나누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어땠나요? 여기는 도심지에 있는 시골이라고 보면 돼요. 다 선후배였어요. 그런데 몇 십 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너거는 어릴 때 잘 살았잖아” 하는 친구들이 있 어요. 우리는 그런 구분이 없는데. 관사 빼고는 거의 산동네였어요. 우리 때 는 거제초등학교에 철도관사 애들은 한 20% 됐어요.

75

철도관사 지역이 빌라촌으로 바뀌게 되었던 시기랑 계기가 있었을까요? 관사가 90평이거든요. 그 정도 선이 사업성이 있는 거예요. 관사를 하나 사면, 집 여덟 채가 지어지는 거예요. 관사를 사면 업자들에게 집 한두 채 가 남아요. 그게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어요. 그렇게 빌라촌이 되었어요.

거제초등학교 2층 건물은 미국 원조로 만들었어요 거제초등학교 건물이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많이 바뀌었지요. 2층이었어요. 교실이 12개였어요. 미국 원조로 만들었 다고 태극기하고 성조기를 엑스자로 해서 표시를 해놨어요. 내가 23회예 요. 22회가 고등학교 재수를 하면 같이 학교 다녔어요. 그러면 친구가 되잖 아요. 그래서 22회, 23회를 같이 안 붙여놔요. (웃음) 예민한 문제잖아요.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는 전교생이 몇 명 정도였나요? 한 학년에 재수생까지 한 700명 정도 되지. 초등학교도 재수해야 해요. 명문 중학교에 가야 하니까, 1년 더 다니지. 그 시절에는 학원이 없었잖아 요. 우리는 부산중학교나 경남중학교에 시험 쳐야 되잖아요. 우리는 시험 세대야. 두 문제 떨어지면 부산중학교 떨어져요. 나는 부산중학교 가려고 했는데, 우리 과외 선생님이 실력이 없었어요. 우리는 야간 밤공부를 했거 든요. 부산중학교 대기반이라고 초등학교에서 1등부터 10명 정도로 만들 어요. 실력 있는 애들만 가는 거예요. 돈 없으면 성적이 돼도 못 들고, 돈이

76

있으면 20등 돼도 들어가요. 그때 천오백 원 줬어요. 나는 공짜로 다녔어 요. 당시 형님이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갔거든. 공부는 좀 하고 학교에서 리 더니까 선생님이 오라고 한 거야. 근데 “아버지, 안 할라요. 집에서 할랍니 다.” 그랬거든요. 근데 선생님이 집에 와서 데리고 가버리는 거야. 내가 가야 친구들이 다 어우러지거든. 학교 다닐 때는 교복 입었어요. 우리는 어머니 가 바느질을 잘하니까 만들어줘서 입고 다녔지. 교복이 있다없다 했어요.

미국의 원조 포스터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1950년대 거제초등학교 (출처 : 거제초등학교 홈페이지)

77

거제초등학교가 거제리에서 제일 먼저 생겼나요? 거제초등학교에 학생이 많아서 분산 시켰는데, 1차가 양정초등학교였어 요. 그리고 우리 동기들이 연제국민학교 1회예요. 연제국민학교에는 4학년 때 전학 갔어요. 창신초등학교도 1회예요. 우리 반 아이들 다 잘라서 갔어 요. 그때는 운송 수단이 없으니까 창신초등학교에 3학년 초 애들이 자기 책 상을 들고 갔어요. 그때는 나무 책상이 작았어요. 의자도 요것보다 더 작았 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창신초등학교를 작은 집이라고 그러지.

선생님 때는 아니지만 거제초등학교가 한국전쟁 때 다른 용도로도 쓰였다는데 그 이야기는 아시나요?

53년도 휴전되기 전까지 거제초등학교 뒤에 보면 강당이 있었어요. 거기 가 해양대학이 임시로 있었어요. 해양대학 옆에 죽 배급소가 있었거든요. 그때는 줄을 서서 불쌍한 사람들 죽 배급을 해줬어요. 그때 우리 아버지가 철도에 계시니까 쌀을 가마떼기로 주면 거기서 죽을 끓여서 동네 사람들에 게 배급하고 그랬어요. 거성중학교 자리는 항공대학이 잠시 와 있었어요. 항공대학교는 몇 개월밖에 없었어요. 그걸 철거하고 거제중학교를 지었어 요.

어릴 때부터 같이 어울리는 분들이 지금도 마을에 계시나요? 본동에는 많이 없어요. 철도관사 다 허물어 버리고 연립주택 짓는 바람 에 다 나가 버렸어요.

78

공장에서 물을 못 먹게 하니까 데모한다고 사람들이 모였어요 ※인 터뷰 도중 이종화 님의 학교 선배인 문영주 님이 방문했다. 이종화는 ‘이’, 문영주는 ‘문’으 로 표기했고, 사진 설명은 문영주 님의 구술 내용이다.

이이 형님이 만수사 스님 아들이에요. 예전부터 카메라가 있어서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우리 아버지들끼리 이구친목회로 친하게 지냈어요.

만수사는 언제 생긴 건가요? 문1 952년 말부터 짓기해서 53년에 마쳤어요. 만수사하고 나하고 나이가

같아요. 아버지가 통도사에 있다가, 화지사에 갔다가, 연화사 갔다가, 다 시 화지사로 왔어요. 화지사는 원래 범어사 말사 암자였어요. 만수사는 혼자 지은 거죠. 일명 (구) 밤나무절. 아버지는 대처승이에요. 대단했어 요. 진짜 한량이라. 소리도 잘하셨고, 목청도 좋았어요. 옛날에 모내기 할 때 모내기 소리 있죠. 그것도 잘 했어요. 만수사는 이 동네뿐만 아니 라 부산시내에서 많이 왔어요.

79

“여기가 옛날 만수사예요. 지금은 밑으로 내려와 있지만 옛날에는 더 위였 어요. 요거는 내려와서 1967년도인가 1968년도에 찍은 거고. 이건 대웅전 [오른쪽 건물]이고, 이거는 요사체[왼쪽 건물]고. 절 밑에 논하고 밭이고 있 었어요.”

80

“이건 이구친목회. 거제리 여기서 쫑바리나 꿰는 사람입니다. 힘 있는 사람 이라는 뜻이에요. 29명이라고 이구친목회인데, 쉽게 말해서 지역의 유지들 이죠. 나이가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아래 우로 같이 모이고, 친한 친구처럼 지냈어요.”

81

“유림아시아드 뒤에 보면 만수사 옆에 우물이 하나 있어요. 그 우물이 생길 때인데, 사람들이 여기서 물을 많이 떠다가 먹었거든요. 사람들 복판에 빈 자리 여기가 우물이에요. 옛날에 여기 밑에 양씨라고 계시거든요. 악세사 리 만드는 사람인데, 그걸 만드는 공장에 물을 가져간다고 이 물을 못 먹게 한 거라. 그래서 데모했는데, 동아일보 신문에도 났어요. 66년도인가 보다. 그때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싸운다고 해서 신문사에 혹시 필요할 까 싶어서 사진 찍어 놓았어요.”

82

83

“반대로 돌아서 찍은 사진이에요. 산동네에는 전부 다 쪼끄맣고 하꼬방이 었어요.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왜냐면 공장이 많았거든요. 조 선견직, 쌍미실업, 한창실업하고 기타 등등 해서 직물 공장하고, 모직 공장 이 많았거든요. 부산 시내에서 세 손가락에 들었어요. 시장도 세 손가락 안 에 들었어요. 그만큼 인구가 많았는 거라. 동광 백화점 자리에 통일 목재가 있었어요. 동산병원. 구 동산의원. 5층짜리 건물 거기가 버스 정류소 자리. 옛날 구 동광 백화점. 동광 아파트라고 하면 돼요. 상가 아파트 같은. 그리고 거제리 안동네, 거제2동하고 거제 본동 사람이 올라가던 상여 길이 있었어요. 뒤에 공동묘지 있거든요, 꽃상여 해서 올라가면 “어어어 어기동 차, 어어어. 어기동차” 그거 하는 사람이 요 밑에 살았어요. 초상났다 하면 그 사람 불러서 꽃상여 앞에 타고, 요거 흔들면서 소리를 했거든요. 이 양 반이 목소리가 참 좋아요. 여기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돌아가신 분 자식들한테 그 양반이 이래저래 지시해주고 절차를 알려줬어 요. 평소에는 노가다 하다가 거제동 사람들이 부르면 갔어요. 옛날에 동래 구 거제동 664번지가 우리 본적지인데, 1, 2, 3, 4동 이런 게 없었어요. 그 때는 그냥 거제동, 거제리이지.”

84

거제동의 철도관사 이야기

85

86

건축 사진작가가 담아낸 거제동 철도관사 이인미 (사진작가)

“1995년에 찍은 흑백 사진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고 거제동 관사가 많이 있던 골목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당시 거제동에 철도관사로 쓰던 목조주택이 많이 있었습 니다. 마당에 빨래도 널려있고, 닭도 키우고, 목재소도 골목에 있습니 다. 3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까마득한 옛날 모습 같아 보이네요.”

87

88

거제4동 철도관사의 유형과 구조 ※ 아래 자료에서 거제4동 철도관사와 관련된 내용을 발췌했다.

• 김수영(2000). 해방이전 건립된 철도관사의 공급방식과 평면유형의 특성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논문.

• 국토교통부 외(2019). 新한국철도사: 총론. 한국철도문화재단 편찬

일제강점기에 지방철도국 및 철도사무소가 있었던 곳인 용산, 대전(정동), 부 산(수정, 거제), 순천, 안동에 집단관사가 조성되었다. 동해남부선이 1930년 7 월에 착공되고 부산진~해운대 구간이 1934년 7월에 영업을 시작했고, 거제역 01

사가 1942년 영업을 개시했다. 거제역 부근의 철도집단관사는 1934년경 건립 되었다.

직위별 신속한 철도관사 건립과 많은 직원을 위한 대량 건립을 위해서 3~8 등급의 등급별 표준설계평면에 의해 관사가 건립되어 공급되었다. 보편적으로 3~5등 관사는 단독형, 6~8등 관사는 연립형으로 나타난다.

철도종사원용 주거시설의 종류는 철도국장, 대규모 철도역의 역장을 포함하 는 고위직에게 공급하는 단독사택(관사)과 중하위급 종사원이 거주하는 집단관 사, 기숙사형 독신숙사, 승무원 합숙소(철도의 시발, 교차, 종착역 등에 있는 승 무원 숙박 또는 휴식 시설), 번소(番所, 철도건널목 등 중요 철도관련 시설물을 보호 감시하는 관리원의 주거시설) 등 다양했다.

01 출처: 부산역사문화대전 “거제리 철도관사”. 김의향, 김혜경 구술자는 자택의 서류상 준공일이 1937년으로 기재되어 있다고 구술했다.

89

규모가 큰 철도집단관사 주거지 내에 다다미 6장 내지 8장의 2인 거주를 표 준으로 매년 각처에 독신자관사를 건축했다. 1939년에는 종사원의 급격한 증 가로 부산, 대전, 이리, 순천, 영등포, 평양, 원산, 성진, 길주 등에 독신관사(獨 身官舍)를 건축하였다. 이 독신자관사는 후에 승무원들의 합숙소로 많이 사용 되었다.

철도 업무가 많은 큰 역 인근에는 늘 집단관사 단지가 들어섰다. 이러한 단지 는 구획 정리된 넉넉한 토지 공간을 확보하고 일조량, 생활동선을 고려하여 관 사채와 공동시설을 배치하고 설계도면에 의거해 건물과 시설을 건축함으로써 ‘계획된 집단주거지’의 면모를 지녔다. 중간역인 경우에는 분할된 필지에 집단관 사를 짓거나, 역과 가까운 곳에 단층연립건물(한 동에 2가구)을 2~5동을 세워 역원들의 관사로 사용했다. 일제강점기 철도관사 등급별 관사규모 구분

규모 평

㎡

4등 관사

50

약 165

5등 관사

30

약 99

6등 관사

25

약 83

구분

7등 관사 8등 관사

참고문헌 : 朝鮮鐵道40年略史, 昭和15年(1940年) 11月12日 發行

규모 평

㎡

20

약 60

15

약 50

10

약 30

90

5등 관사 01

02

5등 관사는 주임관의 관사이다. 일식 요소인 다다미, 오시이레 및 방이 연속 03

되는 쯔즈끼마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연속되는 방의 외곽으로 툇마루가 있는 전형적인 일식주택이다. 중복도(中複道)의 도입으로 동선을 해결하고 있으며 남쪽에 거주공간인 연속된 방이 배치되고 북쪽으로 목욕실, 화장실, 가정부실 의 종속공간이 중복도에 의해서 분리되어 계획되고 실내목욕실 및 대소변이 분 리된 실내화장실이 도입되었다.

01 たたみ [畳]. 일본식 주택에서 짚으로 만든 판에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돗자리를 붙인, 방바닥에 까는 재료. (두산백과) 02 おしいれ [押(し)入れ]. 반침, (일본식) 벽장. (네이버 일본어 사전) 03 続き間. 일본의 연속되는 다다미방 구조로 방과 방 사이에 미닫이 문이 있고, 방을 크게 사용하고자 할 때는 문을 제거하기도 함. (Yahoo! JAPAN)

거제4동의 5등 관사 건물로 현재는 철거되고 빌라가 생김 (사진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91

거제4동의 5등 원형 유추 평면도

92

7등 관사 규모가 작은 역의 역장, 부역장, 조역 등의 관사로 7등갑과 7등을로 나눈다. 7 등갑은 8조방 1개, 6조방 1개, 4.5조방 1개이고 7등을은 6조방 2개, 4.5조방 1 개가 기준이 되어 건립되었다. 7등 관사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거제4동의 경우 04

유형2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 7등갑1 : 경 부·호남·전라·경전·중앙선 등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전국에 다수 건립됨 • 7등갑2 : 동해남부선 부설시(1930~35년) 건립되어 분포함 • 7등갑3 : 대구·중앙·동해남부선에 건립되어 분포함

04 권길철 님은 집에 8조, 6조, 4조 반의 방이 있다고 했고, 김의향, 김혜경 님은 연결된 방 두 개의 크기가 같다 고 구술해 각각 유형2의 7등갑, 7등을로 추측된다. 그러나 김의향, 김혜경 님의 주택의 경우 마루쪽 창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기본 유형의 변형이거나, 추후 개조 했을 가능성이 있다.

거제4동의 7등 관사 건물로 연립 2주택 중 하나는 철거되고 한 주택이 남아있는 형태이다.

93

7등 관사의 유형 분류 7등갑

7등을

유형1

• 2개의 방이 연속 되고(쯔즈끼마형) 1개의 방이 중앙현관을 기준으로 떨어져 있는 유형 • 중복도를 이용한 동선 해결 • 전국 곳곳에 건립되었고 온돌이 도입된 경우 통상 남쪽의 6조방에 온돌을 설치

유형2

• 3개의 방이 “ㄱ”형으로 연속 되는(쯔즈끼마형) 유형 • 중복도를 이용한 동선 해결 • 동해남부선 부설시와 대구선이 국철화된 후에 건축됨(온돌이 있는 경우-4.5조방)

유형3

• 3개의 방이 “ㄱ”형으로 연속되고(쯔즈끼마형) 목욕실이 없는 유형 • 중복도를 이용한 동선 해결 • 동해남부선 부설시 건축(이 유형에는 목욕실이 없어 역관사 내 공동욕장이 있음)

94

김의향, 김혜경 님의 기억으로 그린 거제동 철도관사 116호1의 도면

마루

벽장 화덕

찬 장

개수대 디 딤 돌

벽장 온돌방

다다미방

벽장

쪽문 벽장 다다미방 현관 쇠욕조

대변기

남자 소변기

불단

디딤돌 부츠단(仏壇, 불단） , 일반 가정에서 조상의 위패나 불상을 모시는 곳

95

96

거제동 인근의 산업 풍경과 ‘여공’

97

98

거제4동은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삶터를 떠나야 했던 피란민이 모여들어 머 물렀던 곳이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간 이들이 있는 반면 돌아갈 고향 이 없어 그 자리에 남게 된 이들도 많았다. 피란민이 떠나간 빈자리에 새로운 주 민들이 들어왔다. 경상도, 전라도 등 각 지역에서 직업을 찾아 이주해 온 ‘여공’ 들이었다. 1962년부터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수립되고 이에 수출증진과 공업 육성이 정부의 중요한 정책이 되면서 당시 부산의 외곽지역에 해당하던 연제구 곳곳에 공장들이 설립되었다. 부산에서 고용기회가 창출되자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이를 노동력으로 하는 공장지대가 연제구 일대에 형성되는데 주 로 당시 주요 산업이었던 직물 및 섬유 관련업체나 화학공업 등이다. 이들은 대 부분 노동집약적 형태로 1969년 당시 조선견직은 종업원 1,841명, 도남모방은 614명, 쌍미섬유는 935명으로 조사되어 있다. 동래구의 통계에 의하면 1962년 에 124개였던 제조업체가 1969년에는 383개가 되고 고용 인원은 27,486명에 이른다. 특히 방직산업 및 의류제조업은 1962년 46개 업체에서 69년 131개로 증가했는데, 이 업종이 동래구 제조업 고용인원의 69%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 들 대부분의 산업체는 현재 거제리 시장과 남문구마을 일대에 분포하였다. 이는 거제4동 산동네와 거제2동 안동네 마을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 래지편찬위원회가 1981년 발행한 『동래지』에도 ‘거제4동 지역 내에 중소기업 체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다고 할 수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공’들은 방세 가 저렴한 거제4동의 산동네와 거제2동 안동네에서 자취했다. 집의 구조는 기 다랗거나 ㄱ자 형의 집에 방 하나, 부엌 하나가 달린 거처가 여러 개가 어어져 있 는 형태였다.

99

이 지역은 60~70년대 노동현장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며 슬럼화되기도 했 고, 노동자들의 여가를 위한 동궁극장, 신도극장 등이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 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중화학 공업정책 추진으로 연제구의 산업 입지상의 중요성이 크게 감소했고, 80년대에 이르러 수출전략산업을 저기술 경 공업제품에서 중화학공업제품으로 전환하면서 섬유 의류산업의 수출경쟁력이 점차 줄어들었다. 이에 거제동 지역의 공장들이 사상이나 경남 등지로 이전하면 서 사람들도 떠나고 빈집이 생기기 시작했고, 거제동 향토기업의 역사는 사라지 게 되었다.

“조선견직은 사택이 없으니까 전부 방을 얻어서 다녔지. 우리 집에도 신발 공장 다니는 아가씨도 있었고, 조선견직에서 실 감는다든가 하는 애들도 있었어요. 방 구조가 … 기다랗게 해서, 방문 하나 열면 부엌이고 방이고. 그래서 우리도 지금 집은 작아도 방이 여섯 개예요. 세 주면 그때만 해도 몇 만원씩 받았어요. 엄마가 살 때는 보증금 15~20만 원 받고, 5~6만 원도 받고 그랬어요.”

- 김춘자

“조선견직, 한창섬유, 쌍미실업, 금강모방, 유화통상, 종화모직 등이 있었 고, 진양, 태화, 국제, 삼화고무 공장 등에 납품하는 하청 공장들도 많아서 여직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특히 아침저녁 출퇴근 시 통근 버스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 그러다 하나둘 씩 공장이 다른 곳으 로 옮겨 가거나 문을 닫고, 공장 부지에 아파트가 지어졌어요.”

- 송인호

100

거제동 일대의 공장 위치도 ※ 시대구분 없이 표기

101

조선견직

쌍미실업주식회사

1937년 일본인 신류조가 ‘아사히견 직[旭絹織]’으로 창립. 해방 후 김지 태가 관리를 맡아 1949년 ‘조선견직’ 으로 이름 변경, 1951년 정식으로 불 하받음.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 기업 으로 1975년에는 전국 1,000대 기 업 중 130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나, 1982년 김지태 사망 후 1985년 거 제동 공장을 매각하고, 1995년 중국 이전을 시도했지만 시대의 변화에 적 응하지 못한 채 사라짐.

쌍미실업은 1944년 설립하여 1959 년 8월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섬유업 을 이끌었다. 1983년 봉제수출액으 로 국내 12위를 기록. 1970년대 말까 지 스웨터의 주원료로 쓰이는 니트 와 실 등의 모방직을 주로 생산해 국 내 시장과 수출을 선도했음. 1980년 대 말까지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봉 제 의류 제조·수출업체였으나, 수출 과 국내 판매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1992년 최종 부도를 맞아 폐업함.

102

한창섬유

진주햄

1967년 한창섬유공사로 창립. 1977 년 우리나라 의류수출 5위의 반열 에 이르는 등 1970년대 종업원 수 4,000여 명 이상의 부산의 대표적 섬유 업체로 성장함. 1973년 한창제 지 설립, 1977년 금속, 전자, 기계 분 야에 진출, 1984년 (주)한창으로 상 호를 변경하고 전자통신산업 진출, 1992년 부일이동통신이라는 이름의 통신사업을 겸하며 부산방송국을 설 립하는 등 섬유회사로 시작해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음.

1966년 중구 대교동에서 동일상역주 식회사로 설립. 1967년 찐어묵 제품 을 생산하여 일본 수출, 그해 소시지, 햄, 베이컨 등 제품 생산. 1969년 3월 본사를 거제동으로 이전함. 1977년 당시 국내 육가공식품 제조공장 분야 에서 대표적인 회사가 됨. 1985년 조 양그룹이 진주햄을 인수함.

미원(주) 1956년 대신동에 동아화성공업(주) 으로 설립. 같은해 ‘미원’을 공식 상 표로 등록하고 생산하기 시작함.

1960년대 초 조미료 대량생산 시대 를 열었음. 1962년 12월 상호를 미 원(주)로 바꾸고 이후 거제동으로 공 장 이전함. 1977년 미원 부산공장이 서울 미원에 흡수 됨. 1997년 대상그 룹으로 이름을 바꿈.

103

유연화학공업사

평화유지공업주식회사

1957년 창립. 팔각형 모양의 곽성냥 을 만들었고, 1970년대 중반까지 보 통명사나 다름없었던 ‘유엔성냥’이라 는 브랜드의 기원. ‘팔경표 유엔’ 성 냥을 만들기도 했음.

1953년 부평동에서 창립. 1970년 토지 구획정리로 인해 거제동으로 이 전. 비누 제조, 판매 및 무역업을 함.

1997년 회사정리 절차에 들어가서 2002년 제조를 중단하고, 2003년 본사를 서울로 이전함.

천광유지공업사

내쇼날푸라스틱(주)

1953년 창립. 말표 세탁비누를 앞세 우며 부산의 대표적 비누제조회사로 성장함. 중저가 브랜드는 말표비누 와 사슴표비누로, 고급브랜드는 밍크 비누로 승부함. 이후 학장동으로 이 전하였는데 그 시기와 폐업한 시기가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음.

1965년에 창립, 플라스틱 바가지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가정에서 사 용하던 조롱박 바가지를 플라스틱으 로 대체함. 1977년 서울로 이전하였 고 1999년에는 부산 공장을 폐쇄. 현재의 NPC 주식회사.

1·4후퇴 때 평양에서 피난 왔어요 김춘자 1945년생 1·4 후퇴 때 5살이었던 김춘자 님은 어머니와 피란 과정에서 아버지, 오빠와 헤어지게 되었다. 고향에 돌아가 가족과 꼭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살아온 김춘자 님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가족 상봉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마을에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는지, 산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은 어땠는지 알 수 있었다.

106

Max Desfor, 한국 난파된 다리를 건너는 피난민들의 비행, 퓰리처상 수상 사진

107

1〮4후퇴 때 평양에서 피난 왔어요 피란해서 내려오셨다고 들었어요.

5살 때 이북에서 피란 왔어요. 평양 시내에서 살았어요. 바로 우리 집 대 문을 열고 계단 한 서너 개 내려가면 큰 도로 건너편에 한국 군인 부대가 있었어요. 딴 건 기억을 못 하는데 눈만 뜨면 부대 경비 보는 아저씨들한테 가서 놀았어요. 점심시간 때면 안에 가서 장난감 갖고 놀고 했어요. 그때 우 리 아버지가 30대 초반이었거든요. 저는 막내고, 언니가 큰딸인데 12년 차 이였어요. 중간에 오빠가 있고 동생이 있는데, 여동생은 죽고 오빠는 피난 가다 헤어졌어요. 부산에 있던 우리 큰이모부가 평양에 있으면 안 된다, 빨리 피신하라고 해

서 1〮4후퇴 때 피난 왔어요. 사돈총각이 그때 헌병이었어요. 한국군이니까 외삼촌하고 오빠하고 아버지하고는 지프차에 태워서 서울로 갔다가, 부산으 로 온 거예요. 우리 친정엄마는 아들을 찾겠다고 서울로 가고, 아버지는 이 북에 가족을 찾으러 들어가면서 길이 어긋났어요. 대동강 다리가 끊어져서 우리는 나룻배로 강을 건너왔는데, 아버지는 우리를 찾으러 들어갔어요.

어떻게 피란 해왔는지 기억하시나요? 평양에서 대동강 다리를 건너오려고 줄 서 있었는데, 피난 못 가게 대동 강 다리를 끊어버리니까, 가던 사람이 다 물에 빠져 죽었잖아요. 우리가 추 워서 덜덜 떨고 있으니까 조그마한 고깃배 같은 배가 두 척이 와서 몇 사람 을 태워 갔어요. 그 배를 서로 타려고 하니까 배가 뒤집혀서 빠져 죽고 하 는 사람도 있고 그랬어요. 우리 친정엄마가 그래도 굶어 죽진 않으려고 사

108

촌오빠하고 우리 언니, 이모 어깨에 쌀을 메게 했어요. 1월 4일이니까 얼마 나 추워요. 이불 하나 끈으로 매고, 나는 어리니까 그 위에다 올리고. 그러 다 힘들면 내려서 걸어가고.

평양에서 힘들게 부산으로 오시게 되었네요. 서울에서 화물차 단 기차를 탔는데, 자리가 없어서 차 꼭대기에 타고 왔 어요. 일곱 식구가 뭉쳐서 안 떨어졌지. 차 위에서 부딪히면 사람이 떨어지 고 그랬는데, 이불 잡고 서로 의지하면서 안 떨어지고 왔어요. 부산에 섰는 데 또 어디 가서 배를 타야 한다고 하는 거야. 그때 피난민들 전부 거제도 로 보냈거든요. 우리는 거제도에 안 가고 부산에 내렸어요. 부산 영도다리 에 가면 피난민들이 전부 거기 모여 있으니까, 거기 가면 아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해서 영화 <국제시장> 나오는 거 보면 큰 배 있잖아. 그런 배를 누가 이야기해서 거기서 두어 달을 살았대요. 그러다가 우리 이모부가 그때 아 01

마 30대 초반인가, 조선견직 과장 자리에 있었어요. 조선견직 독관사에 살 면서 한쪽 방을 주더라고요. 거기 살면서 친정엄마는 무조건 가족을 찾아 야 한다 해서 영도다리에 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찾아보고. 거기에 있는 사 람들을 보면 꼭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헤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가 더 가슴이 아픈 거지. 15살짜리가 가족과 헤어져 굶어 죽는다며 밥 안 먹 고, 새벽이면 영도다리에 갔어요. 그때는 신문에 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해서 신문에도 소식을 내고. 엄마가 아들 생각 때문에 세월을 보내다 돌아 가셨어요.

01 현 거제3동 부산은행 뒤쪽 편으로 조선견직 사택들이 있었다. 골목시장 금옥당의 송인호 님 또한 처음 부산에 와서 살았던 외삼촌 집이 조선견직 사택이며 몇 채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109

통일되든지, 아들을 찾고 나서 죽어야 한다 이랬어요 조선견직 관사에 처음 정착하셨네요. 우리가 여기서 정착을 해야 내 가족을 찾겠다 싶었는데, 암만 이모 집이 라도 남의 집이잖아요. 우리는 여기 조선견직 관사에서는 얼마 안 살고 친 02

정엄마가 그중에는 제일 낫다는 집을 샀어요. 하꼬방을 사서 우리가 온 거 지. 이 동네에 왔을 때 피난 온 사람들이 몇 가구 없었어요. 서울서 피난온 사람들은 여기서 얼마 안 살 것이라는 생각에 집을 텐트같이 만들었는데, 대문이 없으니 가마니를 쳤어요. 그래도 몇 년 살았지. 친정엄마는 김치를 해 먹으려면 항아리가 있어야 하잖아요. 항아리 파는 데 가서 찌그러진 거 사서 써요. 통일되면 이북 가서 가족 찾을 거라고. 내가 시집가는 그때까지 도 항아리가 예쁜 게 없었어요. 그때는 철도관사도 무조건 거기서 살면 내 집 돼요. 불하받으면 되는 거 예요. 왜 그러냐면 일본 사람이 살다 간 집이고, 철도역 다니는 사람 장(長) 급은 독관사에 살고, 그다음에 1호, 2호 기다란 데에는 철도 평직원도 살 았어요. 방이 여러 개니까 바로 옆에는 피난민도 살았어요. 그러다가 그 사 람들이 이사 가서 피난민이 차지하면 내 집이 되는데, 친정엄마는 집에 탐 이 안 나는 거예요. 나는 집도 필요 없다, 비만 안 맞고 살다가 통일되든지, 아들을 찾고 나서 죽어야 한다 이랬어요.

철도관사 주변 풍경이나 분위기는 어땠어요? 우리는 학교에 맨날 가니까 분위기는 괜찮았어요. 철도 공무원들도 집만 관사 집이지 월급이 작으니까 잘 살지는 않았거든요. 오히려 위에 사람들 02 상자같이 작은 판잣집을 이르는 말로 일본식 표현에서 유래하였음.

110

은 거의 이북 사람이니까 악착같이 생활력이 좋았어요. 거지 집 같아도 통 일되면 이북 갈 거라고 돈을 모으기 때문에 알부자고. 밑에는 관사 집이래 도 돈이 없어서 쌀을 한 되씩 사다 먹을 때 우리 엄마는 가마니 쌀을 사다 놓고 먹었다 하잖아요. 그때 나는 고생을 안 했어요. 이북 사람들이 다 거 기서 돈 벌어서 나가 살았어요. 예전에는 철도관사 길에 벚꽃이 있어서 지 금 요맘쯤 되면 오색 등이 피어서 남자, 여자 모여서 놀고 그런 거 많았지. (웃음)

111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다마내기” 초등학교 다닐 때는 어땠어요? 거제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가니까 전부 부산 사투리잖아요? 우리는 완전 저쪽이고. 그래서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다마내기” 그렇게 맨날 놀리 는 거예요. 그리고 서울 혜화국민학교 교사가 여기 와 있었거든요. 지금 유 림아파트 101동, 102동 그쪽 자리에 천막을 쳐놓고 혜화동래국민학교라고 분교를 만들었어요. 그게 애들이 패가 갈라져 싸우기도 했어요. 거기서 우 리가 4학년까지 공부를 하고, 5학년 때는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니까 합치 자 해서 거제초등학교에 갔는데,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그대로 반을 안 바 꾸고 서울 애들만 따로 모았어요. 그때는 어느 정도 친구들도 사귀었고, 그 애들하고 1년을 공부하고 졸업했어요.

졸업 후에 진학하셨어요? 그때는 초등학교 졸업하면 학교를 안 보내고 조선견직 베 짜는데 보냈어 요. 이북 사람들이 교육에는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이거거든요. 공부해야 눈을 뜬다고 해서 엄마가 처음에는 나를 학교에 보내려고 했어요. 가만 보 니까 공부를 하면 돈이 들어가야 하잖아요. 이북으로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조선견직에 나를 갖다 넣었는데, 공장 입구만 가면 머리가 아 파서 도저히 못 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안 간다고 그러면서 돌아오고. 또 한 번은 어디 신발 공장인지 거기에 넣었는데, 그 근처에 가니까 냄새가 나서 또 못 있겠다는 거야. 그렇게 있다가 피난 나온 사람이 의지할 데는 없고, 교회를 나가기 시작을 한 거예요. 나는 고등학교를 제대로 시험 쳐서 가본 적이 없어요. 친정엄마가 자꾸 돈 벌러 가라 하니까.

112

우리 친정엄마가 또 공장 가라 할 건데 어머니께서 돈을 열심히 모으려고 하셨네요. 엄마는 돈을 벌어서 반지 같은 거, 그걸 덩어리로 사서 땅속 항아리에 넣 고 묻어서 돈을 모았다고. 하꼬방에 살아도 이 동네에서 우리 집 보고 부자 라고 했어요.

03

지금 빌라가 들어섰는데, 그때 정양원이 있었어요. 상이용사들이 정양 원에 있었어요. 우리 학교 다닐 때 까꾸리[갈퀴] 갖고 우리 보고 차비 내놓 으라고 해요. 정양원에 수간호사도 있었고, 남자 간호원, 여자 간호원이 전 부 객지에서 돈 벌러 와서 이 동네에 살았어요. 상이용사들도 많이 살았어 요. 사는 게 어려우니까 시골에서 여자들이 밥이라도 얻어먹으려고 상이용 사랑 결혼하더라고. 결혼해서 살면서 그 동네에 많이 살았어요. 정양원에 서 밥을 하면 그 집에다가 밥을 갖다줘요. 배달해 주는 총각들이 각 지방 에서 와서 자취 생활하면서 자기는 밥 얻어먹고 배달해 주고. 밥값은 안 들 잖아요. 그때 야간 학교가 많아서 야간 학교도 다니고, 주간에 다니는 애들 도 있었어요. 상이용사들이 야바위하는데, 엄마가 장을 보러 지나갈 때 “동네 아주머 니, 아주머니 이거 해서 잘하면 돈 따가니까 한번 해 봐라.” 자꾸 시키더래. 안 한다고 하니까 그 옆에 다 한 패거리잖아요? 옆에서 돈 얼마 땄다, 얼마 땄다 그래요. 엄마가 돈이 있다는 게 소문이 났거든. 엄마가 거기 가서 내가 먹고 싶은 거 사달라고 해도 안 사주고 모은 돈 항아리를 뺏겼다, 그러면서 한 일주일 드러눕더라고. 모으고, 모으고 했는데, 결국 통일은 안 되고.

03 부산 동래구에 소재한 부산국립재활원(당시 정양원)은 1952년 6·25 이후 전상자들의 재활을 위해 설립되어 상이군경은 치료하고, 직업기술을 가르쳤다.

113

아껴서 모은 돈을 그때 잃고 고생하셨을 거 같아요. 그렇게 해도 우리는 별로 고생 안 했어요. 엄마도 회사에 돈 벌러 가고, 이모하고 언니는 미군 부대에서 일하니까 맛있는 것도 갖다줬어요. 이모하 고 언니가 한 살 차이인데, 여기 와서 타자학원에서 영문 타자를 배워서 하 야리아 부대에서 서류 만드는 일을 했어요. 엄마는 거기 빨래하러 다녔다 고 했어요. 엄마 올 시간 되면 입구에서 소세지 같은 거 얻어먹으려고 기다 리고 그랬지. 여기 사람은 먹어도 못 봤겠죠.

처음에는 학교에 안 보내려고 하셨는데, 이후에 어떻게 진학하게 되신 거예요? 혜화여중, 혜화여고를 나왔는데, 그때 혜화여중, 거기는 예능, 예술 특기 생들을 많이 모였어요. 엄마가 학교를 안 보내줘서 중학교 입학할 때 입학 을 못 한 거예요. 우리 형부가 요즘엔 공부 안 하면 시집 못 간다 해서 학교 를 찾아줬어요. 그래서 여름방학 지나서 입학했어요. 중학교 졸업하고 나 니까 또 회사에 가라는 거예요. 그때는 조선견직에 베 짜는 거 말고 가발 만드는 것도 여기서 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가발 하는 데는 고등학교를 나 와야 쓰더라고. 가발을 만드니까 좀 그래도 머리가 돌아가야 한다고 자격이 그랬는데, 나는 중학교 밖에 안 나왔으니까, 엄마가 거기라도 보내려니까 학교에 보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겠다고 하니 까 엄마가 기가 차는 거죠.

그래도 유치원 교사가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내가 음악에 소질이 있어서 대학교에 가려고 시험을 쳤어요. 그때는 사범 대학이라고 했어요. 지금은 교대지만. 거기 2년제를 나오면 무조건 교사가

114

되고 취업이 되는데, 시험을 쳐서 걸리면 학교에 가는 거였어요. 부모들은 04

떨어지길 바랐는데, 걸렸어요. 그런데 이종사촌 오빠를 공부 시켜야 하는 데, 둘은 대학을 못 보내잖아요. 그래서 내가 포기하고 우리 오빠는 한양공 대를 갔어요. 내가 등록금만 넣어주면 무슨 짓을 해서도 졸업한다고 해도 절대 안 보내주는 거야. 그래서 일주일을 집에서 울고불고 그러니까 교회에 서 목사님이 찾아오셨어요. 우리 언니가 이만저만 이렇다고 이야기하니까, 그러지 말고 거성유치원에 교사로 가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그때는 교사 자격증이 없었거든요. 가야지. 집에서 놀면 우리 친정엄마가 또 공장 가라 고 할 건데. (웃음)

04 당시 김춘자 님의 오빠로 호적에 입적이 되어있었다고 함.

115

거성유치원은 어디에 있었나요? 거성교회 옆에 있었어요. 그때 교인들이 벽돌로 쌓아서 조그만 교회를 지 었어요. 학생들도 학교 갔다 오면 책가방을 집에 놓고 교회에 와서 벽돌 한 장씩 쌓았어요. 그때 이북에서 유치원 하다가 피난 나온 엄마가 한 분 있었 어요. 그 선생님이 처음에는 철도관사를 하나 얻어서 거제유치원이라고 이 름을 짓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 목사님이 교회는 장소도 크고, 이 관 사는 작으니까 우리 교회에서 유치원을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목사님 소 개로 내가 유년부 애들, 7살, 8살 까지 애들을 가르켰어요. 거기서 유치원 경험을 얻은 거지. 처음에 보조로 있으면서 친구가 피아노 치고 나는 무용을 가르쳤어요. 그때는 유치원 교사 교육은 서울밖에 없었어요. 겨울방학, 여름방학 때 교 사들이 거기 가서 한 달 동안 교육을 받아요. 먹고 자는 거는 자기가 해결 해야 하지. 요즘 같으면 보조금도 나오지만. 그래서 교육받으러 갔다가 아저 씨를 만났고, 결혼해서 사는데 엄마는 내가 서울에 가서 사니까 불안한 거 예요. 또 전쟁이 나면 이 자식하고도 헤어지겠다 싶어서.

116

방하나 부엌하나 하꼬방

117

여기에 방문 하나 열면 부엌이고 방이고 그렇게 해서 경기도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다시 내려오게 되셨네요. 아침에 자고 나면 부산 생각났어요. 나는 부산이 고향이에요. 이북에서 5년밖에 안 살았지. 여기가 내 고향이거든요. 부산 친구들만 생각나고, 부 산만 생각나서 딴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저씨가 결국은 나 때문에 부산으로 온 거예요. 엄마 옆에 살라고. 여기 와서는 일체 이사 안 가고 여기 살았어요. 처음에는 엄마 집이었는데, 우리는 다른 데 살다가 남 한테 세를 주면 집 버린다고 해서 우리 보고 와서 살라고 했어요. 그러다가 거제 대우아파트 새로 지으면서 그리로 이사 갔다가 다시 여기에 자리를 잡 고 내가 터줏대감이 되어버렸어요.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처음에는 방 2개 갖고 살다가 옆으로 무허가 짓고, 또 짓고, 하나는 세 받아서 생활했어요. 조선견직 아가씨들 전부 시 골에서 와서 자취 생활하니까 방세 받아서 살았어요. 그래서 우리도 지금 집은 작아도 방이 6개예요.

자취하는 사람들이 많았네요. 공장에서 기술이 있는 애들은 딴 데 안 보내기 위해서 기숙사에서 재웠 고, 밑에 보조하는 애들은 기술이 없으니까 방 얻어서 자취 생활했어요. 그 리고 또 신발 만드는 데 다니는 아가씨들도 거의 자취했어요. 우리 집에도 신발 공장 다니는 아가씨도 있었고, 조선견직에서 실 감는다든가 하는 애 들도 있었어요. 방 구조가 지금은 ㄱ자로 되어있지만, 그때는 기다랗고요. 방문 하나 열면 부엌 하나, 방 하나, 부엌 하나, 방 하나. 세 주면 그때만 해

118

도 몇만 원씩 받았어요. 엄마가 살 때는 보증금 15~20만 원 받고, 5~6만 원도 받고 그랬어요.

주민들이 자주 교류를 했나요? 그때는 그저 내 벌어 내가 먹고사는 거지 뭐. 오히려 피난민 끼리끼리 살 때는 같은 피난민이니까 모여서 같이 음식을 해 먹곤 했는데, 자취하는 사 람들은 노동하러 와서 돈 벌러 가요. 그러니까 그때는 아침 눈 뜨면 문 잠그 고 일 갔다가 저녁에 들어오고 그랬지, 뭐. 아가씨들은 그런 분위기니까 교 류가 별로 없었어요.

지금은 주민들과 어떻게 지내세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잘 못 만나잖아요. 그래도 몇 명 모여서 같이 밥 먹 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계신 할머니들이랑 계속 모여서 밥 먹게 되는 거예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뭘 좀 했으면 좋겠어요. 마을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노인들이 쉴 수 있는 쉼터가 생기고, 젊은 사람들과 도 어울리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119

쫄쫄이 샘물이 계속 흘러 이 동네가 유지된 겁니다 임상호 1935년생 임상호 님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부인을 위해 공무원을 그만두고 거제동으로 이주했다. 산동네 주민들의 삶을 유지하게 도와준 쫄쫄이 샘물, 공장에 다니 던 주민들의 주거 환경과 생활상, 거제역의 번개장터등 1974년 이주 당시의 마을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간의 친목 모임인 ‘거 일 친목회’ 이야기를 들으니 산동네의 정겨웠던 주민들의 일상이 그려지는 듯 했다.

122

123

처와 장모님이 서로 그리워해서 공무원을 사직하고 1974년에 왔습니다 경기도에서 장모님이 살고 계시는 곳으로 이주해 오셨다고 들었어요. 결혼을 33살에 했습니다. 그때 나이로는 상당히 늦게 한 편이죠. 그런데 결혼해서 경기도에 살아보니까, 친정엄마 생각이 나서 자꾸 부산으로 오고 싶어 해요. 장모님이 피난민이에요. 평양에서 딸만 둘 데리고 와서 여기로 피난 왔는데 경기도에 가서 살고 그러니까 서로가 그리워했어요. 그래서 내 가 우리 처한테 아주 큰 인심 쓰는 척하고 14년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사 직하고 1974년 8월에 이리로 왔습니다.

공무원 일을 그만두고 타지에 오셨으면 일자리 구하기 어려웠겠어요. 사실 그때 막막하죠. 여기 오면 먹고 살길도 없고. 그때 제일 들어가기 좋 은 자리가 신발 공장이었어요. 처음엔 삼화고무 계열공장에서 일을 배우 고 나서 자재 관리업무를 봤어요. 조금 배우고 나니까 다른 데서 오라고 해 서, 동양고무에 가서 총무과장으로 한 10년 일했어요. 1988년 올림픽 개최 하기 전에, 전두환 대통령이 뭘 했느냐 하면 통행금지 해제, 그다음에 교복 자율화를 주장했습니다. 교복이 없어지고 나니까 여학생화, 남학생화 하 는 그 신발이 따라 없어져 버렸어요. 그때부터 공장이 안 됐더라고요. 고무 신, 학생 신발을 만드는 게 주 업무였는데, 그게 없어지고 나니까 일감이 없 어졌어요. 또, 자꾸 인건비가 높아지니까 공장들이 중국이나 필리핀, 태국 으로 갔잖아요. 그래서 회사가 문 닫게 돼서 할 수 없이 나왔는데, 먹고 살 아야는 되겠고, 어디 갈 자리는 없고 그래서 서면의 인쇄 골목에 가서 빙빙

124

돌아다녔죠. 글자만 확실히 구분할 줄 알아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인쇄공장을 조그맣게 차려서 한 20년 했습니다.

삼화고무 계열공장이라는 건 뭔가요? 국제상사나 삼화고무, 동양고무, 태화고무 이런 데가 하청공장에 일감을 줬는데, 동양고무는 하청공장이라고 안 하고 협력업체라고 했어요. 동양고 무에도 동양고무산업주식회사가 있는데, 그거는 수출품만 하고 동양고무 판매주식회사가 따로 있어요. 지금 화성산업이 그 회사입니다. 나는 판매 주식회사 소속으로 있었습니다.

동양고무 (출처 : 화승그룹 홈페이지)

125

번역물 인쇄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일본 인쇄물이나 중국 인쇄물 같은 거. 우리나라 인쇄물은 그냥 들여다 보면 대강 알지만, 내가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녔어도 일본 어에 자신이 없어요. 번역 사무실에 의뢰하면 조그만 거 한 장 해도 돈이 들고 해서 경성대학, 외국어대학 중국어과 일본어과에서 석사 학위 받으려 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찾아갔어요. 그 학생들이 참 잘해줘요. 그 사람들도 그게 공부니까. 그렇게 인쇄업을 했어요. 원고가 작성되면 교정하는 게 문 제거든요. 잘못된 걸 찍으면 다 버리는 거니까요. 그것 때문에 사람이 많지 않아도 어느 정도 했습니다. 저 늙은이한테 가면 그래도 꼼꼼하게 봐준다, 그래서 찾아오더라고.

보통 직장 때문에 이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내를 위해서 멀리 오신 게 대 단하신 것 같아요. 그렇죠. 공장을 할 때 느낀 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가까이 안 하려고 그 래요. 틀림없이 무슨 사고를 치고 나왔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 생활 을 그만두고 여기 와서 신발 공장 다닐 리가 없다고. 나는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했거든요. 같이 사는 사람이 엄마를 그리워해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어주지를 않아요. 그래서 당시에는 마음대로 직업을 바꾸는 건 아닌가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장모가 99세까지 사셨는데 끝까지 모 셨죠.

126

127

장모님이 산동네에 집을 사면 세를 주기 편하다고 했어요 어떻게 이쪽에 자리를 잡게 되셨나요? 여기 와 보니까 이 마을 자체가 피난민촌인데, 집을 지어도 엉성하게 지 었어요. 보로꼬[블럭]도 아니고 전부 흙벽돌이었어요. 그리고 지붕이 슬레 이트가 아니고 루핑. 장모님이 여기 와서 살려면 이쪽 산동네 집을 사라는 거예요. 그때는 이쪽을 ‘산동네’라고 그랬어요. 저쪽은 철도관사라 그러고. 왜 그러냐니까 철도관사는 방이 하나나 둘밖에 없어서 세를 줄 수가 없고, 이 판잣집에 올라오면 방마다 세를 줄 수 있고, 수도 요금 안 나가서 세 주 기 편하다고 그랬어요. 그때 기억에 철도관사는 보통 50평, 60평짜리 관사 한 채가 480만 원 그랬는데, 산동네 집을 내가 180만 원에 주고 샀습니다. 셋방을 두 개나 세 개는 줄 수 있었어요.

세를 사는 집은 구조가 어땠나요? 그냥 출입문 하나에 문 열고 들어가면 부엌 겸 주방이죠. 그리고 또 문 하 나 열고 들어가면 거기가 방이었어요. 방 하나 부엌 하나, 딱 그겁니다. 그래 도 방이 없어서 세 못 줄 정도였어요. 부엌은 하난데 방은 세 개가 있는 집 에는 시간을 정해놓고 밥을 해 먹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지금 사람들은 상 상이 안 되죠. 집을 지을 적에 아예 세를 주기 위해서 그렇게 지어요. 마당 도 좁고, 제일 그랬던 게 화장실. 그때는 실내에 화장실 만드는 걸 모를 때 였거든요. 화장실은 밖에 하나만 해놓았는데, 그게 사실상 제일 곤란했던 것 같아요. 적당히 가려놓고 비만 안 맞게 해놓은 거지.

128

동네에 공동 화장실은 없었나요? 공동 화장실은 없었어요. 그런데, 옆집에 두 식구만 사는데 화장실을 같 이 쓰게 해주면 돈을 얼마 주고 그랬어요. 그거는 참 서로가 필요한 거거든 요. 그때는 화장실 청소하려면 똥 퍼서 지게로 가져갈 때니까 그 값은 받아 야 할 거 아니에요. 내가 시골에 살다가 1954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갔는데 하숙을 해야 되잖아요. 그때 고등학생은 경기도 말로 쌀 소두 여섯 말, 대 학생은 일곱 말이었어요. 하숙생들을 자기 집에 오라고 선전하는데, 종이 를 써 붙일 때 전화 있다, 변소 두 개다, 그리고 수도 나온다, 그게 1, 2, 3이 었어요. 그랬던 시절이거든요.

당시 집 주변 모습은 어땠나요? 주변은 다 산이었죠. 우리 마을 위쪽으로 논밭은 하나도 없었어요. 산에 적당히 나무 잘라내고 거기서 집 짓고 그러다 보니까 자꾸 마을이 커졌어 요. 유림아파트 103동, 104동 들어선 자리가 전부 그 땅이거든요. 아래쪽 으로는 사람 안 사는 풀밭이었습니다. 거제4동이 개발지구라서 1지구, 2지 구, 3지구, 4지구 그러는데 내가 사는 데가 2지구예요. 2지구가 제일 후져 요. 6.25 전쟁 이후에 가장 먼저 시작한 동네니까 집이 오래되고 낡고 그래 요.

129

장모가 이 동네에 올라올 때 집이 세 채 있었대요 그럼 어떻게 집이 늘어났나요? 우리 장모가 이 동네에 올라올 때 집이 세 채 있었대요. 집 한 채가 쌀 한 가마 반, 두 가마도 안 했던가 봐요. 그때만 해도 남의 땅에 가건물 지어놓 은 거였어요. 내가 여기 오고 나서도 자꾸 집이 늘어났어요. 낮에 대강 나 무를 짜놓고 있다가 밤에 홀딱 세우고, 지붕만 딱 덮고 들어가서 아기 안고 앉아 있으면 내쫓지를 못하잖아요. 인간이 크게 모질지 못하잖아요. 단속 하는 사람이 가버리면 자기 집이 돼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집을 짓더 라고요. 그리고 선거철 되면 단속을 덜 하잖아요. 경찰관이 와서 때려 부수 고 그런 건 안 하거든요. 구청에서도 안 왔어요. 그때는 하룻저녁 자고 나면 집 한 채씩 생기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400호 이상 살았어요. 내가 들어왔 을 때는 100호도 안 됐어요. 산에서 내려오는 ‘쫄쫄이 샘물’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사람이 모여든 거예요.

인구가 갑자기 늘어난 이유가 뭐였나요?

01

여기에 쌍미섬유나 성냥공장, 조선견직 이런 데 공원들이 많았어요. 외 지에서 온 처녀들이죠. 방이 작고 보잘것없어도 우선 싸니까. 그 사람들이 오면서 이 동네가 커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또 그때는 전차가 다녔잖아요. 전차역이 지금 거제해맞이역 바로 건너 거기거든요. 거제리역도 있고 하니 까 사람이 몰려들더라고요.

01 공장에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

130

1952년 거제리 전차 선로(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거제역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역이었나요? 옛날에는 많이 이용했어요. 울산, 울주 이쪽에서 농산물, 수산물 보따리 장사들이 이리로 왔으니까요. 동래역 아니면 거제리역이었습니다. 여기서 안 내리는 사람들이 부전역에 내려서, 부전 시장이 그렇게 커진 거거든요. 지금 거제해맞이역 안쪽 이면도로에서 큰 도로로 돌아가는 거리에 박닥박닥 앉 아서 장사했어요. 거기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거제시장을 만들어놓 고는 거기로 보내버리는 바람에 없어졌어요. 기차가 대개 아침 7시 반, 8시 에 와요. 학생들 싣고 오고 그러니까요. 10시쯤, 또 하나 오고 나면 기차가 안 와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팔고 2시 기차 타고 집에 가야 되잖아요. 그러 니까 12시, 1시 그때쯤 가면 싸게 떨이로 팔아요. 이 동네 사람들은 그 시 간에 맞춰서 사러 가지. 그렇게 산 게 이 동네의 삶이었어요.

산동네 안에도 가게들이 있었나요? 처음에는 양계장, 콩나물 공장, 두부 공장, 떡집 그런 것들이 도랑가를

131

중심으로 몰려왔어요. 그러다가 돼지, 개 키우는 사람도 있고 그랬는데 냄 새가 내려가니까 관사촌에서 가만히 있습니까. 떠나라고 아우성을 쳐서 그 사람들은 서서히 가고 두부 공장, 콩나물 공장은 좀 오래 했죠. 구멍가게가 여기에 4개 있었어요. 쌀집 하나, 연탄집 하나. 그만치 상권이 형성되어 있 었다는 얘기 아닙니까.

거일 친목회를 2015년까지 했습니다 산동네에서 이웃들 간 관계는 어땠나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죠. 그렇게 살다 보니까 서로 의지해요. 친목회도 만들고 정답게 살았어요. ‘거일 친목회’라고 했는데 그전에는 거 제리 산동네라고 ‘거산 친목회’였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씨 호가 거산이에 요. 대통령 되고 거산 친목회를 주장했는데, 우리하고 이름이 똑같아요. 이 런 얘기 하면 내가 나쁜 사람인지 모르지만, 호남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김영삼이 꼴 보기 싫어서 거산 빼자 그랬죠. 그래서 내가 거제 리에서는 제일 오래된 계니까 ‘산’자 빼고 ‘일’자 넣자 해서 거일 친목회로 만들었어요. 2015년까지 친목회를 했습니다. 1964년에 시작된 계예요. 회 원이 30명 이상 됐었는데 거의 다 죽고 네 사람 남았어요

친목회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대소사 있을 때 서로 부조하고, 기금 조금 만들어놓고, 봄, 가을로다 여행 가고 그거였죠. 처음에 내가 여기 와서 그 계에 들어갈 때만 해도 모임을 각

132

133

자 집에서 했어요. 살림살이도 넉넉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공동으로 쓰는 그릇을 좀 사다 놨어요. 사람이 30명이나 되는데 국수 한 그릇이라도 끓이 면 담을 그릇이 있어야 하니까요. 거기다 소주 큰 거 몇 병 사다 놓고 희희 덕 대면서 먹었는데, 그 계를 참 오래 했어요. 그러는 바람에 이 동네를 못 떠나고 정이 들었지요.

친목회 이외에 마을 주민들 간의 교류가 있었나요? 반상회 그런 거 있었잖아요. 74년도 부산에 왔을 때는 반상회가 활성화되 지 않았을 때예요. 한 75년, 76년 되니까 반상회를 전국적으로 확대했던 것 같은데. 내 사는 데가 8통 5반이었어요. 그런데 저기는 철도관사고 요기는 못사는 사람들이에요. 같이 반상회를 하니까 서로 안 와요. 내가 통반을 잘 못 정했다, 끼리끼리 모이게 해줘야 한다고 건의를 했어요. 적십자회비, 찬조 금 이런 것 때문에 반대도 있었지만 한 1년 지나니까 통과가 되어서 반상회 를 훨씬 재미있게 했어요. 사람은 처지가 비슷해야 모이는 거거든요.

마을 분들은 주로 어떤 경제활동을 하셨나요? 각자 다 달랐죠, 비슷한 거 한 사람도 없어요. 누가 뭐 하는지도 모르지 만 대부분 일용직 노동을 했을 거예요. 우리 계원 중에는 철도청 출신들이 많았고, 경찰관도 있고, 구청에 청소하러 다니는 사람도 있고, 또 나같이 신발 공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어려울 때 밥 한 끼라도 같이 나눠 먹었 던 정이 있어서 지금도 자기 생일날, 또 자기 돌아간 남편의 제삿날, 그럴 때 음식을 좀 해서 몇 사람 불러서 나눠 먹고 그래요.

134

쫄쫄이 샘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 내려와서 이 동네가 유지된 겁니다 1970년대 이후에 새마을운동으로 도로 정비나 지붕 개량 사업들이 있었 는데, 여기에는 어떤 사업이 있었나요? 새마을운동 했어요. 우리 마을에 쫄쫄이 샘물이 산에서부터 내려왔는 데, 물 저장 탱크를 만드는 걸 새마을운동으로 했어요. 또 지금 소방도로 난다는 자리에 복개 도로가 있어요. 이것보다 좀 폭이 넓었는데, 그 복개 도로는 새마을사업으로 만든 겁니다. 정부에서 아마 시멘트를 제공 받고, 철근 조금 받아서 그렇게 해서 했을 거예요. 지금 내가 사는 집 옆으로 나 란히 네 집이 있는데 그 앞에도 도랑이 있었어요. 제일 밑의 집은 외나무다 리 놓고 건너다녔거든요.

산에서 물이 많이 내려왔나요. 화지산에서 정보고등학교 안쪽으로 흘러오는 물이 여기로 내려와요. 장 마가 질 때는 물의 양이 상당히 많아요. 1년 12달 물이 안 끊어지는 자리라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거예요. 쫄쫄이 샘물을 그냥 두면 밤새워 흘러가고, 물 탱크를 두 개, 세 개 만들어놓고 그 밑에 바가지로 뜨는 샘물을 만들어 놨 는데 그 물이 항상 넘쳤어요. 그때는 하루에 한 번이나 이틀에 한 번씩, 간이 상수도를 만들어놓고 2시 간 동안 수도꼭지를 틀었거든요. 처음에 내가 왔을 때 물세가 한 달에 800 원 한 것 같아요. 마지막엔 2천 원까지 올랐었는데 그것도 한 집에 한 꼭지 밖에 안 줘요. 방 5개 이상이 되는 집은 두 꼭지. 이발소가 우리 마을에 두

135

개가 있었어요. 이발소는 물을 아침, 저녁으로 써야 되니까 그 사람들한테 는 한 꼭지를 달아줘도 다섯 배 받고 그랬어요. 자율 관리조합을 만들어서 정한 규정이죠. 그런데 두 꼭지 이상 되는 집은 열 집도 안 됐고, 전부 한 꼭 지였어요. 한 집에 여러 사람이 세 살면 돌아가면서 물을 받는데, 집주인은 주인 노릇 한다고 먼저 물 받고 그랬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공장 다니는 아가씨들이나 아주머니들이 일하고 늦게 와도 자기만 부지런하면 샘물에 서 세탁도 하고 물도 떠다가 쓸 수 있었어요. 고단하게 새벽잠 못 자고 외등 도 없을 때인데 쫄쫄이 샘물에 와서 물 떠다가 그렇게 살고 그랬거든요. 그 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 내려와서 이 동네가 유지된 겁니다. 그랬는데 2001년도에 유림아파트가 입주했거든요. 유림아파트 지으면서 간이 상수도를 해서 지하수를 뽑아 올려줬어요. 한 3년 지나니까 지하수까 지 말라버려서 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간이 상수도 조합이 그때 깨 지고, 폐쇄해버렸죠. 지금은 물탱크만 하나 덜렁 남아 있어요. 산에도 아직 2개 남아 있습니다. 그 물탱크는 상당히 용량이 커요. 400세대가 먹을 물 이었으니까.

장마나 태풍, 홍수가 올 때 곤란했던 경험이 있었나요? 많죠. 장마가 져서 물이 많아지면 흙탕물이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수돗 물을 먹을 수 없으니까 그때는 흙물이 안 들어가게 잠가 놓아요. 한 열흘쯤 되면 물이 뿌예요. 그러다가 흙이 침전되잖아요. 그렇게 해서 사용하고 그 랬어요. 그럴 때는 상당히 불편하죠. 그 대신 집집마다 추녀 끝에 통을 놓 고선 빗물 받아서 먹고, 그렇게 대비할 줄은 알았어요.

136

137

주변에 아파트가 생기면서 마을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유림아파트 들어오고 아주 큰 벽으로 막힌 동네가 돼버렸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올바른 집이 있어도 사람이 안 살아요. 우선 젊은 사람들이 자동차 가 안 들어오는 자리는 안 와요. 더군다나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면 살기 불 편하니까 안 오죠. 방 3개짜리 10만 원에 세를 줘도 안 와요. 그런 동네가 되었습니다. 어린애도 뛰어놀고, 웃음소리도 나고 그러는 동네여야 하는데, 해만 넘어가면 동네가 조용하고 참 너무 쓸쓸해요. 그 대신 없는 사람들만 사니까 그런지 옛날같이 도둑도 없고, 나쁜 짓 하러 오는 사람들도 없고 해 서 조용합니다. 지금은 물탱크 모터 놓던 자리를 다 뜯어내고 하루종일 앉 아 있어요. 조선일보 한 장 들고 올라가서 본 거 또 보고 해요. 그게 낙이에 요.

슬레이트집은 우리 집이 제일 먼저 났어요 주순필 1936년생 주순필 님은 1965년 경 거제4동 중에서도 제일 꼭대기 마을에 허름한 집을 짓고 살다 산동네로 옮겨왔다. 그후 사진관을 운영하는 남편의 월급과 월세 받은 돈을 부지런히 모아 지금 사는 집을 지었다고 한다. 집을 처음 짓고 나 서는 그동안 고생했던 생각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주순필 님은 장화 없이는 살 수 없었던 동네에 길이 닦이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과정을 모두 지 켜보았다.

140

주순필 님의 결혼 사진(주순필 제공)

141

경남모직에 다녔어요 부산으로 내려오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밀양 예림이라는 데가 있어요, 같은 예림 사람하고 결혼했어요. 우리 아 저씨가 군대에 있을 때 우리 언니의 시동생하고 의형제를 맺었는데, 그 사 형이 나한테 연애를 시켜준 거지. 아저씨는 당감동 통신부대에 있었고, 나 는 경남모직 합숙소에 있었어요. 아저씨가 일요일마다 오는 거라. 오니까 안 만날 수도 없고, 만나다 보니 연애가 되어버렸죠. 옛날에는 남 있는데서 연애한다고 이야기 안 했습니다. 손을 잡지도 못하고, 요새처럼 옆구리 끌 어안고 그러지도 못했어요. 그렇게 결혼이 되어 부산에 내려왔어요. 그때 01

나는 경남모직에 다녔어요. 경남모직이 아주 컸습니다. 밀양 한국모직에서 기술을 배워서 경남모직으로 뽑혀서 왔어요. 양복기지, 방직, 실 빼는 거 이 런 것을 하는 곳이 경남모직이에요.

경남모직에서 어떤 일을 하셨어요? 베 짰지요. 베틀 기계로 짰어요. 기계 한 틀이 탁자만 합니다. 운전대가 02

어떻게 생겼냐 하면 막대기만 한 것이 왔다 갔다 하고 북실이라 하는 것이 이만큼 커서 색깔을 넣으면 3단으로 넣었어요. 그렇게 벌어서 먹고 살았지 요. 지금도 모직 계통에는 환하지요. 기계 소리만 들어도 스텝이 고장 났구 나, 내지가 하나 풀렸구나, 이런 걸 다 알고 기사들이 야간하고 자고 있으면 내가 직접 파이프 렌치(pipe wrench)로 쪼았어요. 그 정도로 기술이 있었 어요. 10년 넘게 했을 겁니다. 경남모직, 부산모직, 도남모직. 모직회사에 많 01 경남모직은 1956년 부산 전포동에서 창립한 직물제조 업체로 지금의 서면 NC백화점 사거리에서 전포동 방 향으로 들어가는 곳에 위치했다.

02 베틀에서 날실의 틈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씨실을 푸는 기구를 북이라고 한다.

142

이 다녔어요. 전포동에 방을 얻어서 자취하면서 50살 묵은 아이가 3살 때 그만두었어요.

거제리에 들어온 건 언제쯤인가요?

03

60년대는 됐을 거 같아요. 근처에도 섬유공장이 많았지요. 그 시절에는 자잘한 가정공업도 많았는데 벌어먹을 데가 없었어요. 왜 그런지 이해가 안가요. 가족들끼리 해서 그랬나 모르겠어요. 그것도 내 생활이 조용해야 여기저기서 일자리 소문을 듣는데, 내 살기가 바빴어요. 머리 빗을 여가도 없이 철길로 걸어서 회사에 다녔어요. 버스가 없었나? 거제리에서 걸어서 댓 명 댕겼거든요.

03 주순필 님이 거제4동으로 이주 후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현재 57세인 아들에 나이로 유추했을 때, 1964년 경 이주 한 것으로 보인다.

143

세 받은 돈은 전부 단지에 묻어놓고 안 썼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터를 잡은 곳이 거제4동이 아니었나 봐요. 양정에 살다가 사직동에 와서 부산모직 뒤에 살다가. 우리 엄마가 나를 피해서 이사 가면 따라갔어요. 우리 엄마가 아이를 안 봐 줄라고 해서 경남 모직을 그만뒀어요. 달세 얻어서 살다가 그 돈을 모아서 전세에도 조금 살았어요. 아저씨가 “이리 살아서 어쩌겠노. 우리가 집이 없어가 어쩌겠노.”, 그래요. “방웃돌[큰 바위] 밑에 흙을 파내고, 장판지 하나라도 깔고라도 내 집이 있었으면” 하고 소원하고 울어대니까 “가만있어봐. 내가 연구를 내어볼게.” 그러더라고. 그 러다가 아저씨가 제대하고 애기를 하나 낳았지요. 큰 딸이 지금 61살 올해 04

회갑이에요. 박노인이라고 있었습니다. 동래정묘 땅인데 호박 구덩이를 파 가지고 팔았어요. 그걸 우리 아저씨가 10개를 샀어요. 한 구더기에 150원 줬나? 거기에 집을 지으려고 보로코[블럭]를 찍기 시작했어요. 흙이 마르 기도 오래 걸리고 진짜 무겁습니다. 8월 15일. 원체 고생해서 몇 년도인지도 모르겠어요. 보로코를 쌓아 올리는데, 비가 보슬보슬 왔어요. 물도 곤란했 어요. 그런데 만수사 절 옆 오솔길로 가면 물이 땅에서 폭폭폭폭 쏟아지는 데가 있더라고요. 산에서 나오는 물이니까 먹어도 된다고 했어요. 우리 집 하고 호박구덩이 파는 할아버지 두 집뿐이니까 바가지로 퍼다 먹으며 살았 어요.

04 호박씨를 심기 위한 구덩이인데, 실제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자기 땅이 아닌 곳을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놓기 도 했다고 한다.

144

처음 집 지은 자리에 그대로 살고 계시나요? 정씨네 가문 산지기가 몇 년 우리 부부를 겪어보더니만 “하OO씨 땅에 집을 지으시오. 우리가 관리해줄게요” 그래요. 철도관사에 사는 분 터를 잡 05

아놨습디다. 축대를 잡고 바로 앞에 집을 지었어요. 화장실도 없어요. 산 에 가서 솔밭에 단지를 묻어놓고 썼어요. 세를 받으려고 세 개, 네 개 방을 냈는데 화장실 지을 데가 없었어요. 그 골목이 원래 논이었거든요. 논을 뭉 개서 돌을 날라서 길을 만들어 산으로 가도록 했고, 거기에 화장실을 지어 서 세를 받았지요. 전에 우리가 지어놓은 건 우리가 그대로 살았어요. 거기도 방을 네 칸인 가 넣고, 전부 세 줬어요. 세 받은 돈은 전부 단지에 묻어놓고 가정에 안 썼 습니다. 은행을 몰랐지요. 그렇게 몇 년을 살았지요.

05 쫄쫄이 샘물이 있는 산동네 마을에 집을 지었다.

145

슬레이트집은 우리 집이 제일 먼저 났어요 그때 산동네의 모습은 어땠어요? 관사 사는 사람, 산동네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관사는 아주 부자들만 살 았지요. 철도관사 빼고는 고급집이 없었습니다. 두꺼운 종이 위에다가 아스 팔트 깔아서 적당한 간격으로 졸대를 대어서 못을 딱 쳤는데 그것이 판잣 06

집입니다. 여기에 공동우물이 있어요. 우물이 5~6개 됩니다. 땅에서 나왔 나 봐요. 호수로 꽂아서 받아먹었어요. 국회의원이 우리 동네 사람에게 해 줄 게 없나 하다가 물탱크를 만들어 줬지요. 아직도 물탱크가 그대로 있습 니다. 동네 사람들이 쪽자로 퍼서 먹었는데, 그 샘도 살아있어요. 빨래는 우물에서 했어요. 그 시절에 댕겨 쓸 생각은 못하고, 지게를 져다가 물동이 에 담아서 빨래했어요. 아이들이 교복을 입었는데, 토요일에도 학교에 갔 거든요. 일요일에 교복을 빨려면 아침에 영감이 물을 몇 번 져다 놓고 가도 모자라서 져다가 와야 되는 거라. 내가 키가 작아서 물동이 긴 건 영감이 지고, 좀 짧은 것은 내가 지고 그렇게 살았죠.

수도나 식수 사정도 많이 변했을 거 같은데 어땠어요? 산에서 지게로 물을 지고 오다가 경사에 미끄러지고 했어요. 양철통은 양철통대로, 나는 나대로 쓰러져 있고 그럴 때도 있었지요. 나중에는 공동 수도가 들어왔는데 격일제로 하루 나오고 하루 안 나오고 그랬어요. 몇 년 있다가 데모해서 매일 나오게 되었어요. 수돗물 먹은 지 그리 오래 안 되었 어요. 산동네 여기만 이랬지.

06 마분지처럼 두터운 종이에 콜타르를 바르고, 모래를 흩뿌려 비가 새지 않도록 하는 소위 ‘루핑’이라 부르던 지 붕재료를 표현한 것이다.

146

147

그 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신 건가요?

1985년도에 지금 사는 집 자리에 집이 하나 났어요. “여보 사요”, “돈이 어디 있노?”, “단지에. 당신 월급만 가지고 살았지. 이 돈은 하나도 안 썼다” 했더니 깜짝 놀라 하더라고요. 얼마나 놀랬는지 눈물이 나는 갑대요. 집 두 채를 파니까 삼십 몇 만원 밖에 안 되는 걸 팔십 몇 만원 주고 이 집을 잡았 어요. 전에는 밭이었어요. 2층집을 친구끼리 똑같이 지었어요. 슬레이트집은 우리 집이 제일 먼저 났어요. 우리 아저씨가 슬레이트를 사 다가 지붕을 덮더라고. 지붕에 경사가 져야 물이 빠지는데 어떤 집은 물이 안 빠져서 집안으로 물이 샐 때도 있었어요. 슬레이트집은 우리 집뿐이었어 요. 거제4동 산꼭대기 보고 슬레이트집 위에 돌 많이 얹힌 집을 찾아오면 우리 집이다 그랬어요. 그때부터는 주변이 슬레이트집으로 꽉 찼지요, 우 리는 장화 없으면 못산다 했어요. 오솔길 내려오다 보면 탱자나무가 있어서 옷에 걸리고. 지금은 살만하지요. 동네가 확 달라졌습니다. 요새는 도십니 다. 유림아시아드아파트 생기고 나니 바람을 막아주는 거 같아요. 여기가 산이었거든요.

동네 사람들이 거제역을 많이 이용했나요? 전차 없어지고 나니 기차를 많이 타고 다녔죠. 기차가 다녀도 부전시장에 서 시장 보고 기차 타고 못 옵니다. 돈이 드니까 걸어서 오지. 요새는 동차 [마을버스]가 다니니까 그걸 타요. 마을버스 나온 지도 얼마 안 됩니다. 산 위에 길 생기고 한 1, 2년 있다가 마을버스가 생겼는데 저것도 손님이 없어 서 한때 쉬었습니다. 쉬다가 새로 댕기고 나니까 손님이 많아서 한 대 더 운 영하더라고요.

148

거제4동에 57년째 납니다 부녀회 부회장도 하셨는데,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부녀회를 16년 했어요. 동장님이 회장을 한번 하라는데, 학력이 모자라 잖아요. 배운 게 있어야 하지. “동장님, 참 고맙습니다. 그런데 동장님과 회 의에 갈 때 부녀회장한테 뭐 적으라고 하는데 내가 못 적으면 그때는 우짤 랍니까.” 하면서 거절하고 부회장을 하니 마냥 편한 거예요. 회장이 다 처리 하니까. 부회장을 한 7, 8년 했지 싶어요. 동래구 산에 쓰레기 주으러 가기 도 하고, 행사 있으면 다 가고. 그때는 일이 많았습니다. 동래구에서 연제구 되고 나서 일이 좀 없어요. 분할되니까 일이 적더라고요.

거제4동 새마을부녀회의 ‘이웃돕기 일일다방’ 행사에서(주순필 제공)

149

아저씨가 사진관을 운영하셨다고 했는데 어디서 하셨어요? 서면에서 하고, 남포동에서도 하고. 본역, 부산역에서도 했어요. 이종형 님이 밀양에서 사진관을 했는데 거기서 배웠는가 봐요. 금강공원 입구에 차려봤는데 안 돼서 울진도 가보고 몸부림을 많이 쳤어요. 옛날에 허바허 07

바사진관 안 있습니까? 그걸 인수 받아서 우리 영감이 했거든요. 사진은 진짜 잘한다 했어요. 학교앨범도 했어요. 월급 받아오면 품에 안고 “아고, 고마워요. 한 달 고생한 게 이건 가베. 너무너무 고마워요.” 그랬어요. 그게 너무 좋았다 해요. 산동네 산다고 내가 희망을 언제 찾겠노, 하는 생각은 안 해 봤습니다. 우리 아저씨는 64세 돌아가셨지만 내가 영감보다 이십 몇 년을 더 살았고, 자식들이 출세를 하고. 내 옷에 흙을 묻혀가며, 떨어진 옷 은 내가 입고, 새 옷은 자식들 입혀 살고 하니 끝이 있어요. 거제4동에 57 년째 납니다.

07 허바허바사진관은 1959년 서울 을지로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전국으로 지점을 낸 적은 없지만, 부산의 허바허바사진관이 처음 생길 때, 허바허바 사진관 창 업자와 구두로만 약속해 지점을 열었고, 부산의 허바허 바사진관에서 주순필 님의 남편이 일하다 이후 인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허바허바의 이름을 무단으로 달고 영업했던 사진관을 대상으로 본사에서 소송을 제 기했고, 주순필 님의 남편 가게에도 경고장이 왔으나, 부부가 직접 본사를 찾아가 사용료를 내고 운영하도록 합의를 봤다고 한다.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고 주순필 님이 이야기했다.

만수사 위쪽에 살 때의 주순필 님의 남편과 아들 모습(주순필 제공)

부산이 물가도 싸고, 따시제, 이웃 사람도 좋지 김순남 1950년생 가족의 행복한 삶을 찾아 정착하게 된 거제동에서 김순남 님 부부는 열심히 도 일했다. 6가구가 사는 콩나물 도가 2층 집에서도 이웃의 정을 느끼며 도란 도란 살 수 있었고, 철도관사에서 세들어 살 때에도 산동네에서의 정겨운 삶 을 잊지 못했다. 부부가 악착같이 돈을 모아 새집을 사게 된 기쁨도 잠시, 남편 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비롯해 거제4동 곳곳에 김순남 님의 추억과 젊은 시절의 땀이 묻어나 있다.

152

153

부산이 물가도 싸고, 따시제, 이웃 사람도 좋지 5대 종손 집에서 자라셨다고 했는데, 남편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내가 6남매 맏딸로 태어났어요. 우리 집 제사가 1년에 12번이야.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해서 아무리 좋은 사람이 와도 외동이면 안 가고, 제사 없는 곳 간다 이랬어요. 우리 아저씨는 중매로 만났어요. 월남 갔다 와서 돈도 좀 벌어놨고, 셋째 아들이라더라. 논도 사놓고 소도 사놓고 부자 동네 사 람이라. 객지에 나가 쪼맨한 공장 같은 데 다닌다더라고. 다른 사람들은 선 보러오면 머리에 기름칠도 하고, 단정하게 하고 나온다던데, 우리 아저씨는 터버리하이 잠바 입고 왔더라고요. 나를 무시한다 생각에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우리 아저씨는 맨날 일하니까 양복도 없었어요. 그래도 제사도 안 지내지, 거기가 최고 편하겠다 싶은 거라. 그래 갔더니 너무 못사는 거예 요. 부자 동네라고 소문났는데.

그러면 결혼 하고 거제동으로 오신 건가요? 울산에서 서울로 가서 목공소를 했어요. 부산에서 친척이 보러 왔는데, 밥은 먹고 있었어도 돈은 못 벌 거 아니야. “처남, 제수씨하고 굶어 죽겠다. 부산으로 오너라. 내 부산에 방 한 개 얻어놓을꾸마.” 그래가 부산으로 내 려왔어요.

거제동 생활은 어떠셨어요? 고모가 거제리에 살아서 거제리에 방을 하나 얻어줬어요. 우리 아저씨가 기술이 있으니까 집 짓는 일을 배웠는데 집을 잘 짓는 거야. 그걸로 돈 많이

154

벌었어요. 여기 아는 사람이 우리 시누밖에 없는데 그 집은 채소 장사했어 요. 부산이 물가도 싸고, 따시제, 겨울에도 일해서 많이 벌어 오제, 이웃 사 람들 마음 다 좋지. 우리 고향이 언양인데 옛날에 2시간 걸렸어요. 지금은 40~50분이면 가. 가까우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콩나물 도가 집인데, 여섯 집이 살았어요 처음에 얻은 집은 어디예요? 이번에 뉴딜 사업 때문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았거든요. 한 바퀴를 도니까 그 집이 폐가가 되어 있더라. 내가 살던 집이에요. 이 동네 사람은 다 알아 요. 콩나물 도가 집이라. 콩나물 도가 2층에 집을 얻어놨더라고. 거기가 옛 날에 여섯 집이 살았어요. 큰 채도 한 사람 살고, 작은 방 살고, 아래채가 세 집 살았는데, 한 집은 이발소를 했어요.

어떤 분들이 주로 살고 계셨나요? 주민들이 형제같이 그렇더라고요. 콩나물 도가 2층에 사는데 여름 되면 마당에 자리 펴놓고 국수도 삶아 먹고, 밥도 해 먹고. 너무 화목하고 좋은 거야. 아이들 어릴 때인데, 너희 집에 오너라, 저거 집에 오너라, 했어요. 오 징어 사서 찍찍 째가, 마요네즈에 찍어 먹고. 그 재미에 너무 좋은 거야. 남 의 집 살다 보니 한 집 나가고 누가 들어오면 또 어불리[어울려서]가 좋고 다 좋더라고요. 이번에 동네 돌다가 콩나물 도가라 하니까 가슴이 철렁하 더라니까. 여기 살았다는 소리를 내가 안 했어요. 그때는 수도가 없었는데,

155

산 밑에 우물이 억수로 좋았어요. 바가지로 쪼매만 내려서 물을 뜨는데, 물 고이는 데가 두 칸, 세 칸이 있었어요.

물 고이는 데는 자연적으로 만들진 건가요? 동네에서 만들었지. 슬레이트를 가지고. 우리 콩나물 도가는 호수만 대 면 물이 풍풍풍 나왔어요. 콩나물 도가집이라니까 수도를 묻어서 밑에 빼 놨어요. 계량기가 있나, 뭐가 있나. 밸브 딱 잠가놓거든요. 열면 나와요. 안 할 땐 잠궈야 다른 사람들이 쓰지. 다른 집에는 물 길러 가야 해요. 우리는 편하게 살았지. 큰 채는 기와집이고, 아래채는 슬레이트집이고, 우리 집은 슬라브 집이고 밑에는 콩나물 도가였어요. 집이 좋았어. 2층 방이 한 칸이 라도 컸어요. 여섯 집 살아도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어요. 줄을 서요. 아침 에는 화장실에 어, 어, 소리 나면 있는갑다했어요. 노크할 시간도 없이 사람 발자국 소리 나면, 어, 어, 어. (웃음) 그렇게 살았어요. 그래도 화목했어요.

156

내가 콩나물 장사도 보름, 한 달이나 했어, 우리 딸내미 업고 당시 아저씨가 집 짓는 일로 생계를 꾸리셨던 거네요? 우리 아저씨가 나는 일을 못 하게 했어요. 클 때는 어렵게 안 컸는데, 벌어 다 줘도 만 가지가 짜쳐요[모자라요]. 일이 내내 있는 것도 아니고 월급쟁이 도 아니라서. 그런데 내가 벌려고 하면 우리 아저씨가 못 하게 했어요. 콩나 물 하는 사람이 장사하면 된다고 하더라고. 거제리 시장에 딸내미 업고 콩 나물 두 통 가져갔는데, 우리 아저씨한테 들켰어요. 발로 딱 차버리는 거야. 이때까지 고생시켰는데, 아이들만 잘 키우라 이거지. 니가 벌러 나가면 내 가 일하러 안 간다, 이러는데 우예[어떻게] 일하러 가노. 못 하지. 그래도 콩 나물 장사를 보름, 한 달이나 했어, 우리 딸내미 업고. 나도 애살이 억수로 많아요.

콩나물은 거제시장에서 파신 거예요? 거제시장 길 가에서 팔았어요. 지금은 전부 아파트인데, 옛날에 쌍미섬유 가 있던 자리 그 앞에서 했어요. 그것도 자리가 없으면 못 하는데, 콩나물 도 가 하는 사람이 “장사 한번 해볼래? 내가 멀리 가니까 그 자리가 빈다.” 이러 대요. “아, 내 주소.” 그랬어요. 권리금 하나 달라고 안 하더라고. 얼마나 좋아 요. 나가 있으면 시간 때마다 콩나물도 가져다주고, 팔고 남으면 덮어두면 되 고. 그 자리가 억수로 좋았어. 다른 사람들 같으면 몇만 원 받았다. 근데 한 집에 살고, 내를 워낙 좋아하니까 내보고 하라고 한 거라.

157

콩나물 도가 집에서 언제까지 사셨어요? 한 3년인가 살았지. 그 정도 살다가 너무 꼭대기라 우리가 이사를 내려왔 는데 철도관사 쪽으로 내려왔어요. 멀리 이사 가기 싫더라고. 우리 아들 학 교도 가깝고. 천수탕이라는 목욕탕이 지금은 없어졌는데, 그 앞에 있는 관 사 어디에 살았어요. 거기서 한 4년 살다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왔어. 땅도 좀 있고 집은 헌 집이라도 우리 아저씨가 목공 기술이 있으니까 돈 벌 어 지으면 된다, 이 생각이 드는 거야. 우리 아저씨는 사우디에 돈 벌러 가고 없었어요.

철도관사촌으로 내려오셨을 때는 동네 분위기가 좀 달랐어요?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좀 지났을 때 갔어요. 관사는 수도도 되어 있고, 학교도 가깝고, 평지라서 좋잖아요. 옛날에 닭 키우던 집이라서 닭집 도 있었어요. 그런데 관사 가니까 옆집만 알지. 주인하고도 별로 안 친하고, 대문 닫아 놓고 영 삭막하지. 그 관사는 지금 다 뜯어서 2층 집을 지어놨어 요. 세 든 사람들이 좋죠. 방이 한 칸짜리인데 부엌은 두 집이 같이 썼어요. 조금 불편해도 옆집 새댁이 나보다 나이가 적은데 착하더라고요. 둘이 잘 지냈어요. 그래도 웃동네가 정이 가는 거라. 내내 놀러 갔어요. 가면 “들어 와, 고구마 삶아 먹고 가.” 이러고. 우에 사람들이 인심이 좋았어요.

158

159

아저씨도 외국 가서 벌었지만, 나도 벌어서 쪼매 보탠 거 아니가 아저씨가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셨을 때 혼자 아이들 키우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내가 “외국 가서 돈 좀 벌어오소. 못 살겠다.” 그랬잖아. “돈 벌어서 누구 좋은 일 시킬라고” 그래요. 내가 바람 날까 싶어서. (웃음) 그때는 남편이 외 국 가면 바람난 여자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크니까 벌이에 한계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가려고 하대. 친구들 세 명이 마음 맞춰서 두 번 갔다 왔어요. 관사 살 때 두 번 갔는데, 그동안 나는 돈 하나도 안 썼어요. 아저씨 버는 거 다 저금했어요. 아저씨 없을 때 몰래 파출부 했어요. 바로 이웃집에서 했는데, 그 집은 억수로 부 잣집이라. 집이 두 채라 일이 억수로 많아요. 난에 물도 두 번 줘야 해요. 개 도 풀어놔서 일이 많았어요. 아저씨도 외국 가서 벌었지만, 나도 벌어서 쪼 매 보탠 거 아니가.

어머니도 똑같이 경제에 보탬이 되셨네요. 내가 좀 보탠 택이잖아요. 아저씨 없을 때 돈 벌려고 전기 미싱을 배웠어 요. 학원에 가서 보름 배웠어요. 보세 공장에 보내주더라고. 공장에 가니까 일이 많아서 새벽까지 일하라고 하는 거예요. 아들이 어리니까 병이 나는 거예요. 아버지도 없는데 엄마 안 오니까 아들이 시근[철]이 빨리 들어서 학교 갔다가 매일 저녁에 선생님에게 전화하는 거예요. 아프다고. 병원에 데리고 가면 아무 이상이 없대요. 마음에 병이 났나 보다 했어요. 엄마가

160

바람 나서 어디 갔나 싶어서. 반장님한테 “우리 애기가 아픈데. 나는 잔업 안 하면 안 됩니까.” 했더니, “아줌마 혼자만 아이 있어요?” 그래요. 그러면 그만두라대요. 그럼 그만둬야지. 미싱 배워놓은 거 하지도 못했어요. 한 달 인가 하다가 나왔어요. 뻐뜩하면[툭하면] 잔업 하라고 하고, 새벽 3시나 들 어가야 하니까 택시비 나가지요. 공장이 멀지도 않았어요. 송상현 동상 있 는 데라 밤중에 걸어와야 돼요. 무섭지. 그래도 택시비 아낄라고. 다른 공 장에 일자리가 있다는데 그것도 잔업을 시켜서 못 했어요. 아저씨가 다른 나라 가서 돈 벌어오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까먹고 있노. 나는 그걸 못하는 거야. 다 저축했어요.

파출부 일은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이웃에서 파출부 구한다고 전단을 붙였대. “아지매, 내가 일은 할 줄 모 르는데 하면 안 되겠습니까?” 집안일 하는데 뭐 어렵노. 꽃밭에 물 주고 청 소하고 빨래하고 이러면 된다는 거지. 그래도 남의 돈 벌기 힘들더라고. 그 집에 음료수 사 먹고 빈 병이 많이 남아요. 우리 아들이 그걸로 아이스크림 바꿔 먹는 거야. 남의 집 일하는 그것도 모르고 좋은 거야. 엄마가 멀리 안 가니까. 아침에는 내가 반찬을 해요. 고기 같은 거 사라고 돈 주는데, 못된 사람 같으면 빼먹겠지만 나는 그런 걸 일절 안 했더니 아줌마가 다 알더라 고요. 카레 같은 거 아이들 먹이라고 한 냄비씩 담아주고, 반찬도 가져가라 고 하고.

161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집을 사신 거네요? 집을 샀는데 집 사기 전에 내가 아팠어요. 그 집에서 일하는데 이상하게 피곤하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에 가니까 유방암이라는 거야. 38살에. 그때 암은 의료보험이 안 됐거든요. 병원비가 엄청 들어갔어요. 아이들한테 아 빠한테 전화 오면 엄마 병원 갔다 하지 말라고 했더니, 큰 애는 엄마 변소 갔다 하고, 작은 아이는 엄마 시장 갔다 하고, 말이 안 맞잖아요. 그래서 우 리 아저씨가 이 여자가 바람났구나, 하는 생각에 자기 누나한테 전화 했더 니, “너희 마누라, 병원에 누워 있다. 수술을 했는데 살란가, 죽을란가 모른 다.” 이랬대요. 그래서 조기 귀국을 해 버린 거라. 내가 뭐하러 왔냐고 화를 억수로 냈지. 그러면서도 고맙더라고요. 항암 치료하러 다니면서 집 보러 다녔어요. 내가 죽기라도 하면 우리 아 이들을 위해서 집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라. 온 천지 다 다녀도 마 땅한 집이 없었는데, 거제리에 가니까 흐리무리해도 집도 있고 땅도 있고 마당도 있고 좋더라고요. 우리 아저씨 목순데, 여기 와서 새로 지으면 되겠 다 싶었어요. 우리 시누씨[아주버니]가 와보더니 “처남댁 되게 잘 봤네요. 이 집 좋습니다. 삽시다.” 이러는 거라. “처남 외국 가서 버는 것보다 처남댁 이 돈 더 많이 벌었다.” 이러면서. 그 집을 내 이름으로 안 하고 우리 아저씨 이름으로 샀어요. 우리 아저씨 더운 데 가서 고생했는데, 아저씨 이름으로 해줘야지.

162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셨네요. 내가 항암 중에 우리 아저씨가 사고로 가버렸어. 아침 잘 먹고 일하러 간 사람이 말 한마디 못 하고 가버린 거야. 가슴을 치면서도 남사스럽지만 먹 고 살아야 하니까, 아저씨 가고 한 달인가 있다가 보험회사에 갔어요. 보험 금을 준다 해놓고, 가면 안 주고, 준다 해놓고, 가면 안 주고 하더니 나를 보 험회사에서 일 시키려고 한 거였어요. 보험 그게 사람 죽는 거잖아요. 우 리 영감 일이잖아요. 남들은 하늘이 노랗다는데 나는 흑색이다,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고요. 우예[어떻게] 살꼬 싶어가지고. 보험회사 교육받는데 매 일 눈물이 나는데, 가슴으로 눈물이 꿀떡꿀떡 침 넘어가듯이 넘어가요. 그 렇게 교육받고 보험 회사에 댕겼다니까요. 낮에 피곤하면 집에 와서 쪼매 누웠다가 나가고. 그렇게 내가 보험회사 7년을 다녔어요. 많이는 못 벌어도 우리 아들딸 시집, 장가 보내야 되고, 공부도 시켜야 된다, 하면서 적금을 넣었지. 아이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정신으로 일하다 보 니까 세월이 7년이 흘렀네. 나중에 화장품 방판[방문판매]으로도 10년은 일 했어요. 열심히 살았어요. 그래도 우리 애들이 착해서 사고없이 잘 컸어 요. 그것만해도 저는 감사했어요.

지금 사시는 집이 그때 산 집인 거죠? 예. 여기 오니까 네 집 살았어요. 우리는 새집은 세를 주고 다른 곳에 살 았어요. 옛날에 화장실이 한 개라. 아침에 줄 섰어요. 마당에 있던 꽃밭을 밭으로 만들었어요. 내가 시골 사람이다 보니까. 건강 때문에 무공해를 먹 어야 되니까 채소를 심어서 내가 먹어요. 상추도 있고, 무시[무]도 있고. 깻 잎, 호박도 있어요. 여러 가지 다 해 먹는 거예요. 산나물도 있고. 마씨도 키

163

우고 있어요. 아저씨가 다 만들어줬어요. 이 집에 이사오고 5년 뒤에 아저 씨가 돌아가셨어요. 안 그러면 집을 더 수리 했을 텐데.

남편분과의 마지막 추억이 있어서 이 집 쉽게 못 떠나시겠어요. 딴 데 못가죠. 추억이 있어서.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이 집 팔라고 해요. 더 좋은 데 가라고. 처음 왔을 때는 집이 좋았어요. 집이 오래 되다보니까 고치고 싶어도 못고쳤는데 도시재생 사업으로 구청에서 지원해 줘서 지붕 에 비 새는 것도 고쳤어요. 너무 고맙지요.

164

‘사람’, ‘삶’, ‘정’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곳, 산동네

165

166

167

마을기록단이 거제4동에서 제일 처음 만난 이가 임상호 님이다. 거제해맞이 역 인근 지대에는 철도관사촌이 있다면 그 위쪽으로는 ‘산동네’라고 부르던 곳 이 있었다. 임상호 님은 산동네의 역사를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셨다.

거제유림아시아드 아파트가 생기면서 산동네 400세대 중 300세대에 가까 운 집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전에는 북적북적한 동네였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 중에도 처음 집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장소가 있다. 사람들은 물 주위에 모이 기 마련이다. 바로 ‘쫄쫄이 샘물’이 그 역할을 했다. 1년 내내 마르지 않고 물을 흘려보내주던 ‘쫄쫄이 샘물’ 덕에 사람들이 살아낼 수 있었다고 임상호 님이 말 했다. 그러나 2001년 거제유림아파트가 들어서고, 2004년 화지산을 관통하는 KTX가 개통되면서 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쫄쫄이 샘물 인근에는 산동네만의 상권이 발달했다. 두부가게, 콩나물 도가, 이발소, 점방 등이 있었 다. 그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곳은 산동네 주민들이 어울려 놀기에도 좋은 공간이었다. 서로 밥상을 나누고, 일상을 나누던 곳의 이웃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임상호 님은 함께 막걸리 한 잔 나누던 그 자리에 매일같이 나간다고 한 다. 쫄쫄이 샘물을 저장하는 물탱크 자리를 정리해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쌓 인 쓰레기를 버리고, 주변 텃밭을 가꾸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임상호 님의 섬 세함도 엿보이는 장소이다. 정성스레 가꾼 그 공간은 옛기억을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곳이라 느껴졌다. 이곳에 다시 새로운 삶과 관계가 피어나길 바래본 다.

※ 2021년 7월 초에 방문했을 때 소방도로 공사를 위해 일부 건물을 철거하고 있었다.

168

169

170

171

“버려진 개를 유기견이라고 그러잖아요. 골목에 버려져 있길래, 가지고 와서 갖다놨어요. 그래서 ‘유기초 치료소’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놔뒀더니 싹이 난 것도 있고,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난 것도 있어요.”

172

정겨움을 주고받던 골목시장, 거제4동을 숨 쉬게 하던 가게들

173

174

문전성시를 이루던 골목시장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거제4동의 일상이 함께 떠오른다. 이른 아침 출근하던 젊은 아가씨의 바쁜 발걸음, 일자리를 찾아 부산 으로 온, 열정만이 무기였던 청년의 뒷모습, 학교 갈 아이를 위해 좁은 부엌에서 도시락을 싸던 엄마의 칼질하는 소리. 골목시장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가 모두 모여 있던 곳이었다. 이웃의 정이 더해져 힘든 줄도 모르고 신나 게 살아가던 청춘 시절이 골목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사직동에서 나와 큰길로 나가는 35번 버스정류장이 골목시장 앞에 있었다. 퇴근길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의 발걸음이 향하던 곳은 어디였을까? 제철 과일 한 소쿠리를 사러 과일가게에 가면 상처 난 과일을 끼워주며 맛보라고 하고, 늦 은 저녁 반찬으로 구워 먹을 생선을 고르면 비싼 생선보다 싱싱하고 알찬 것으 로 사가라고 하는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보이는 것 같다. 골목시장을 지나는 손 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고, 오늘은 엄마가, 아빠가 무얼 사서 오시려나 궁금한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는 가벼운 발걸음이 보인다.

1960년대 산업화 속에 거제동의 인구는 점점 늘어났고, 거제역 앞에 노천시 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봇짐을 지고 장을 펼쳤다. 제대로 된 시장이 아니어서 비가 오면 장이 서지 못했고, 길이 닦이지 않았을 때라 진흙 바닥 위에 서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에 상인들이 의기투합해 시장을 짓기로 하 고 1970년 4월 지금의 거제시장 상가건물을 준공했다.

175

그 이후로도 울산, 기장 지역에서 동해남부선 통학 열차에 짐보따리를 싣고 온 할머니들이 거제역 앞에 물건을 풀어놓고 장사를 하는데, 오후 일찍 돌아가 는 기차 시간에 맞추어 미처 팔지 못하고 남은 물건을 떨이로 팔고 돌아갔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를 번개장터라고 표현했고, 떨이하는 시간에 맞추어 물건을 사러 갔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골목시장이 형성되었다. 담벼락을 뜯고 점포 하나를 놓는 식으 로 시장이 점점 커졌다고 한다. 1976년 골목시장 어귀에 ‘금옥당’을 개업한 송 인호 님은 당시 상권이 거제3동보다 좋았다고 했다. 서면과 동래를 잇는 길목이 기도 했고, 조선견직, 쌍미섬유, 종화모직 등 인근에 공장들이 많았다. 이곳에 다니는 직원들이 거제4동 산동네와 거제2동 안동네에 많이 거주했다. 특히 안 동네 주민들에게 골목시장은 출퇴근 통행로였고, 그러다 보니 골목시장의 주요 고객이 되었다. 거성중학교와 계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오가는 통학로였다고 도 한다.

1992년 골목시장 번영회가 만들어졌다. 1993년에는 회원 점포가 85개까지 있어서, 봄이나 가을 1년에 한 번씩 나들이 갈 때 관광버스 2대로는 모자라 추 가로 승용차가 따라가기도 했다고 한다. 시장 상인들은 충분히 잠잘 시간도 없 이 일했다고 한다.

176

이후 거제리에 있던 공장들이 떠나고, 거제유림아시아드가 준공되면서 산복도 로가 생겨 연제3번 마을버스가 운행되기 사작하자 골목시장을 지나다니던 안동 네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 안동네 자체가 사라져 골목시장을 이용하는 주 고객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이 에 시장 상인들도 떠나고 골목시장엔 몇 집 남지 않아 번영회 활동까지 종료했다.

177

아파트 대단지가 준공되고, 입주가 시작되면 골목시장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까? 시장 상인들은 큰 기대는 하고 있지는 않다. 이미 젊은 사람들은 시장보다 는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을 더 편리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을 떠났어도 마을을 그리워하며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당장 문을 닫을 생 각은 없다. 거제시장으로 자리를 옮긴 채소가게 사장님 또한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참기름 집 사장님은 골목시장만큼 사람들이 정 겨운 곳이 없다고 말한다.

1993년 골목시장 번영회 정관에 기재된 회원 명부(송인호 제공)

1968년 10월 초, 보급행 열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왔습니다 송인호 1951년생 개업한지 45년 된 금옥당은 이제 거제4동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금은방이 다. 송인호 님은 1968년에 부산으로 와서 남들보다 짧은 기간동안, 남들 보 다 몇 배 노력하며 반지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거제4동 골목시장 입 구에 자리를 잡고, 골목시장과 거제역 일대의 변화를 모두 지켜보았다. 아직 도 시계 수리를 맡기러 오는 주민들과의 인연 때문에 쉽게 일을 그만두지는 못할 것 같다.

180

1968년 10월 초, 보급행 열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왔습니다 거제동에는 언제 오셨나요?

1968년 10월 초, 가을에 왔어요. 둘째 숙부님의 자동차 운수 사업 실패 로 가세가 기울어지고, 18살에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놀고 있을 때였습 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학교 가려고 했어요. 지난날을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부산에 계신 숙모님께서 전보를 보냈는데, 내용을 보니 ‘다마 가락지’ 만드는 공장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김천에서 보급행 열차를 타고 급하게 내려왔습니다. ‘다마 가락지’가 뭔지 그땐 전혀 몰랐습니다. 백 금, 합금으로 보석을 물린 반지인데 다마[玉]가 일본말이겠죠. 그때 숙부님 01

께서 조선견직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동래구 거제동 조선견직 사택에 계셨 고, 저도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부산은행 옆 좁은 길을 내려가면 있는 우물 가 첫째 집이었고, 다닥다닥 붙은 관사들이 많았어요. 조선견직에 다니는 직원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락지 만드는 일을 바로 배우셨나요? 조그만 다다미방에 2~3명이 앉아서 무언가 똑딱똑딱 망치로 뚜드리고, 용접하고, 쓸어 담고 있더라고요. 조각하는 게 뭔지 몰랐고, 이걸 배워서 뭐 하겠나 실망도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다닐 때, 제가 그림을 잘 그렸어요. 손재주도 남달랐고 뭐든지 잘 만들곤 했어요. 며칠 공장에서 열쇠와 비녀, 목걸이, 반지 등에 조각하는 걸 보니까,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였어요. 글자 를 새겨넣고, 모양을 내고, 조각하는 것을 보면서 보석에 조금씩 매력을 느 01 거제3동에 있는 부산은행 뒤쪽으로 조선견직 사택이 몇채 있었다고 한다. 1950년대 지도를 보면 열을 지어있 는 집들을 볼 수 있다.

181

껴 세공 기술을 배우게 되었어요. 낮엔 금 공장에서 일을 배우면서 심부름 하고, 밤에는 조각 정과 바이스 공구를 직접 사서 혼자 구리 판에 조각 연 습을 했습니다. 야단도 많이 듣고, 뺨도 많이 맞았습니다. ‘걷지도 못하는 놈이 날 준비’ 한다고 꾸중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숙모 집에서 아침, 저녁으로 먹고 자고 했지만, 3달 동안 돈 한 푼 못 드려 서 미안했어요. 그래서 3개월 정도 다니다가 반지 공장 일을 그만두고 집으 로 올라갔습니다. 69년 설 명절 쇠고 집에서 놀고 있을 때, 숙모님이 내려오 라고 하셔서 다시 부산에 내려왔어요. 숙모님이 하숙을 붙이고 계셨는데, 하숙생이 금세공 기사였나 봅니다. 그분 소개로 범일동에 있는 금방에서 세공 일을 배우며 심부름도 하고, 점포에서 먹고 자고 했어요. 목욕비와 이 발비 정도의 용돈만 받고 기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낮엔 세공 기술을 배 우고 밤에 혼자서 조각 연습을 하며 보낸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182

183

배운 건 일기장에 꼭 기록하고, 연습해서 남보다 빨리 기술을 배웠어요 반지 만드는 기술은 얼마나 배우셨나요? 범일동에서 딱 10개월 정도 배웠습니다. 보통 2~3년 정도 배워야 반지와 메달에 조각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전 그때 19살이었고, 덩치도 다 컸을 때예요. 손재주와 눈썰미가 남달랐나 봅니다. 한번 보면 기술을 터득하고, 제품 모양을 그림으로 남겼어요. 배운 건 일기장에 꼭 기록하면서 연습을 많이 해서 남보다 빨리 기술을 배운 것 같아요. 학교 공부는 더 하고 싶었 지만, 그만 시기를 놓쳤어요. 공부보다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빨 리 월급 받는 금방 기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놈의 돈이 뭔지 말입니다. 범 일동 하면 금은방과 세공 공장이 제일 많은 곳으로 유명했어요. 삼성, 삼일 극장 밑에서 좌천동 가구점 거리까지 금은방 점포 40~50개가 쫙 붙어 있 어서, 밤이면 “귀금속 진열장” 조명 불빛이 정말 호화찬란했습니다. 물론 광복동과 서면에 있던 금방 골목도 유명했지만, 부산에선 귀금속 점포가 범일동에 제일 많았습니다. 범일동에서 세공 일 배울 때, 양화점, 양장점, 양복 재봉사, 시계 기사와 금세공 기사들 월급이 좀 높았죠. 밤이면 조방 앞에서 유명했던 전기통닭구이 집에 여러 점포 기사들이 맥주잔을 주고받 으면서 재미있게 보낸 추억이 생각나네요. 낮엔 각자 점포에서 일하고, 밤 이면 정장에 넥타이 또는 흰 와이셔츠로 차려입고, 깔끔하게 머리에 기름 빗질하고, 빤짝거리는 구두를 신은 세공 기사들이 전기통닭구이 집에 많 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일 배울 때, 금 기사, 시계 기사 따라 많이 갔 어요.

184

일을 배울 때 기억나는 이야기를 더 해주세요.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어요. 한창 식성이 좋을 땐데, 첫 타향 생활에서 배 가 많이 고팠던 것 같습니다. 식당에서 매일 시켜 먹는 공깃밥 양이 저한테 좀 적었어요. 그래서 심부름 간다고 시내버스 요금 6원 받으면, 입석으로 4 원짜리 타고, 2원을 남겼어요. 두세 번 모은 돈으로 빵을 사 먹고 배를 채 운 것이 생각납니다.

18살 시골 촌놈이 범일동 귀금속상, 시계 골목을 매일 나다닐 때, 금방 골목 뒷길엔 술집도 많았습니다. 그 골목길 안쪽에 시계 부속상과 도금공 장, 금세공 공장과 조각 집, 시계유리 집, 재생 공장 등이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녔어요. 그 골목이 옛날에 부유한 귀족들이 마차를 타고 다녔다 고 “마차길”이라고 하더라고요. 술집 색시들이 짙은 화장에 껌을 씹으면서, 양쪽 골목 앞과 뒤쪽 길에서 손님을 호객하며 기다리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 골목을 하루에도 몇 번씩 다니다 보니까, 낯이 익잖아요. 그래서 우리한 테는 절대로 호객 행위를 안 하고, 재수 없다고 하면서 빨리 지나가라고 길 을 비켜주곤 했었습니다.

일을 배우고 바로 취업하셨나요?

1969년 10월, 연지동 첫 개업 금방에 기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에는 일이 어렵고 힘은 들었지만, 기사님이란 호칭에 너무 가슴이 벅차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첫 월급은 15,000원 받았는데, 너무 기뻤습니 다. 많지는 않았지만, 상업고 나온 친구들도 농협조합 직원이나 면사무소 직원으로 취직하면 13,000원 받을 때였어요. 그땐 저도 실업학교 다니면서 주산 3급을 땄는데, 무슨 쓸모가 있나요. 지금은 전자계산기와 컴퓨터가

185

다 하잖아요. 첫 월급 타서 하숙비 내고, 어머니 속옷과 할매 속바지, 이불 을 사고, 구두와 양복 1벌을 맞춰 입고도 돈이 남았어요. 조선견직 사택인 하숙집에서 연지동까지 매일 걸어서 출퇴근했습니다. 그땐 노선버스가 없 었어요. 연지동에서 한 석 달인가 넉 달 정도 기사로 일하다가 부암동에 있 는 금방에서 월급을 더 준다고 해서 옮겨 갔던 기억이 생각나네요. 그땐 금 세공 기사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으니까요. 아마 소문으로 저를 좋게 보았 던 것 같았습니다.

출퇴근 시 통근 버스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개업은 언제 하셨나요? 개업은 1976년도 2월 12일에 했어요. 그 당시 26살이었고요. 결혼은 25 살에 했습니다. 숙모님께서 돈을 빌려줘서 이곳에 “보림양행”이라는 점포 가 있었는데 그 안에 시계부와 금부가 따로 영업했어요. 제가 금부만 인수 해서 개업했고, 시계부는 다른 사람이 했었습니다. 10평도 안 되는데 절반 을 나눠서 진열장 하나 놓고, 직접 망치로 반지와 목걸이 등 주문품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 줬어요. (안쪽 작은 공간을 가리키며) 이 좁은 방에서 신혼 살림도 조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실감이 나질 않고, 웃음 밖에 안 나네요. (웃음) 신혼집은 연산동에 있었지만, 일거리가 바쁘면 밤늦 게까지 일하다가 좁은 방에서 잠을 자고 했던 것 같습니다.

4~5년 동안 장사를 하면서 시계부도 인수했어요. 시계 기사를 두고 장사

186

했는데, 기사 월급 주고 나면 별 재미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계 수리 기 술도 조금씩 어깨너머로 보면서 배웠어요. 어느 날 도매상 하는 지인이 카 세트테이프를 팔아 보라고 권유해서 음악에 취미도 좀 있었고, 그 시절 카

금옥당의 전신인 ‘보림양행’의 모습(송인호 제공)

187

세트, 녹음기, 전축이 유행 할 때라 레코드와 카세트테이프 판매도 재미가 솔솔 있었습니다. 벽면엔 레코드판과 카세트테이프를 진열했고, 앞쪽에 앰 프, 턴테이블과 녹음기가 놓여 있었어요. 노래를 무척 좋아했고 팝송을 많 이 알고 있었어요. 그때 막내 처제가 레코드 점원으로 도와줬고, 그때 시계 기사가 막내 동서가 되었습니다. (웃음)

인근 상권이 괜찮은 편이었나요? 제가 68년도 거제리에 왔을 때, 부산은행 건물을 짓고 있었고, 거제리 전 찻길을 철거하는 걸 보았습니다. 거성중학교, 계성여상에는 주야간 반 학 생 수도 많았고, 골목시장 좁은 길이 유일한 통학길이었습니다. 76년 개업 할 땐 도로 건너편보다 철길 위쪽 상권이 더 발전해 있었어요. 거제역 앞쪽 에 시장도 있었고, 역 주변으로 집들이 꽉 차 있었어요. 사직동 쪽에서 나 오는 35번 버스도 저희 점포 앞에 있던 정류소를 지나다녔어요. 그 시절에 서면과 거제리에 사람들이 많이 붐볐고, 장사도 잘되었던 것 같습니다. 인 근 연산동이나 반송, 반여동에서도 거제리로 시장을 보러 왔어요. 동해남 부선 거제역에 열차 타고 오기도 했고, 사직동 쪽은 농사를 지었는데, 35번 버스를 타고 찾아왔어요. 인근엔 회사와 공장도 정말 많았습니다. 조선견직, 한창섬유, 쌍미실업, 금강모방, 유화통상, 종화모직 등이 있었고, 진양, 태화, 국제, 삼화고무 공 장 등에 납품하는 하청 공장들도 많아서 여직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특 히 아침저녁 출퇴근 시 통근 버스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 다. 그러다 하나둘 씩 공장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거나 문을 닫고, 공장 부 지에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공장 굴뚝의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188

1993년 9월경에 ‘골목시장 번영회’가 발족했습니다 개업했을 때부터 시장 번영회가 있었나요? 제가 1976년 개업할 때는 장사하는 점포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이웃 점포 간의 친목계로 시작해서 1993년 9월경에 ‘골목시장 번영 회’라는 명칭으로 발족했습니다. 40여 곳 점포가 회원으로 있다가 노점상 과 골목 안쪽 점포를 모두 가입시켜서 97년도쯤엔 85명으로 늘어 나기도 했어요. 번영회는 친목을 도모하고 상부상조면서 길· 흉사도 챙겼습니다. 시장 길거리 질서 유지와 명절 야간 방범 활동도 하고, 외부 잡상인이 못 들 어오게 임원진들이 나와서 막곤 했던 기억들이 나네요. 관광버스 2대를 대 절해서 봄이나 가을 단풍 철에 야유회 단합 대회를 매년 했었지요. 하나둘 씩 점포가 늘어나면서 찾아오는 고객들도 늘어 갔어요. 특히 거제2동 안동 네 사람들이 우리 골목시장을 제일 많이 이용했습니다.

거제2동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골목이었군요. 안동네에는 좁은 골목길 언덕에 당산나무가 있었고, 집들이 옹기종기 모 인 허름한 동네였지만 오순도순 정답게 살았어요. 안동네 사람들이 골목 시장 길을 이용하면서 장사가 잘 되니까, 너도 나도 담장을 허물고 가게를 했어요. 점포 수가 많이 늘어서 야채와 과일집, 대형 슈퍼마켓, 생선가게, 식당, 미장원, 전자상, 횟집, 고기집, 쌀집, 순대집, 이발소 등 온갖 점포들이 나름대로 장사를 잘 했었습니다. 마을버스가 산복도로에서 윗동네를 거쳐 서 큰 시장 쪽으로 다니다 보니 골목시장 이용 고객이 줄었어요. 그리고 철 도관사가 하나둘 씩 빌라가 되고, 자가용을 많이 이용하다 보니까 대형 시

189

장이나 마트로 갔어요. 그래서 자연적으로 골목 상권이 시들었습니다. 지 금은 거제동 재개발로 골목시장 많은 점포가 이사하거나 폐점했습니다. 시 장 번영회도 2017년에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가게 말고도 마을에서 맡은 역할이 있었나요? 거제3동에서 분동하면서 거제4파출소가 생겼어요. 파출소 소속 단체인 ‘선진질서 추진위원회’ 총무로 봉사 활동했습니다. ‘바르게살기운동 거제4 동 위원회’ 위원장을 하면서 화지로 나무 심기, 꽃동산 가꾸기를 했고, 태 풍 매미 때는 화지산 고사목을 정리하고, 가덕도 태풍 피해 주민 도배·장판 교체, 농촌 일손 돕기도 했습니다. 온천천에 한 달에 두세 번씩 가서 청소 와 캠페인 했었고, 관내 철길 옆 화단도 회원들이 조성했어요. 회원들이 협 조해 줘서 잘 할 수 있었습니다.

고향 간다고 양장점에서 옷 맞춰 입고, 시계나 반지, 목걸이 하러 많이 왔어요 개업한 후에 결혼하셨나요?

25살에 연애 결혼으로 좀 일찍 했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다 보니 까 장인어른께서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결혼하고 2달 후에 금 방을 인수했어요. 점포 개업을 해 놓으니까 총각인 줄 알고 주변 모직회사, 섬유회사 아가씨들이 많이 찾아 오곤 했지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하고 갈 등도 종종 생겼습니다. 시골에서 곱게 자라다가 나만 믿고 결혼해서 이곳

190

까지 왔는데, 손님으로 온 아가씨들 손가락 사이즈 재고, 팔찌 맞춘다고 손 목 치수 재는 게 이상하게 보였던가 봐요. (웃음) 그땐 거제리에 여성이 남성보다 두세 배가 많을 때라 문간방에 부엌 하나 만들어서 셋방 놓고 하니까 회사 다니는 여성들이 정말 많이 살았어요. 설 이나 추석 명절 때, 고향 간다고 양장점에서 옷 맞춰 입고, 시계나 반지, 목 걸이 하러 많이 왔어요. 그래서 명절이 다가오면 밤도 새고, 대목 장사가 참 재미있었지요. 특히 서부경남 쪽과 호남 쪽 사람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옛날 인근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세요. 그때는 우리 집 앞의 길이 안 넓었지요. 여기 길 앞에 동네가 있었거든요. (동해선 철로 아래 다리를 가리키며) 철길 다릿발 있죠? 그곳 좌측에 있던 좁은 골목 안쪽에 가정집들이 많았고, 도로변 쪽엔 한약방과 목욕탕, 이발 소, 문짝 만드는 목공소도 있어요. 그리고 다방 옆에 거제3동 파출소와 동 사무소가 있었습니다. 이쪽 우측 도로 주변엔 문방구와 가방집, 양복점, 세 탁소, 유리점, 양화점이 있었어요. 금방·시계점도 네 군데나 도로변에 있었 어요. 언제였는지, 거제시장도 새 건물을 지어서 옮겨 가고, 10차선 대로 길 이 확장되면서 집들이 흔적조차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도 철도관사 집에 몇 년간 전세로 살아 보았습니다. 정남향이고 기와지 붕이라 여름철은 정말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고 볕이 잘 들어서 살기 좋 은 관사 집이었습니다. 천장 나무 틈 사이로 고양이들이 살았는데, 새끼들 이 엄마를 찾을 땐 정말 시끄럽고, 귀찮을 때도 많았어요. 그래도 딸, 아들 낳고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고 잘 살았는가 봐요.

191

거제역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역이였나요? 동해남부선 거제역은 완행 열차역이었기 때문에 많이 이용은 하질 않았 어요. 그래도 여름 피서철엔 탈 자리가 없었어요. 여름에 좌천, 일광, 송정 해수욕장에 가려면 제일 앞쪽 엔진이 있는 부분과 곳배에 매달려서 간 기 억도 나네요. 곳배는 디젤기관차 첫 칸을 말합니다. 지금 생각하니 추억이 되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웃음) 그런데 제일 아쉬운 게 거제역 이름을 도 둑맞은 거예요. 지금은 ‘거제해맞이 역’ 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참, 기가 막 혀요. 사람들이 바닷가에 있는 역인 줄 알더라고요. (웃음)

아는 거라곤 한 길로 45년을 걸어온 이길 뿐이에요 시계 수리대는 개업 때부터 쓰신 건가요? 그것보다는 (망치를 보여주며) 여기 방에서 이 망치로 반지를 두들겨 만 들어요. 이게 얼마나 닳았으면, 이렇게 짧아졌을까요? 이게 오래된 증거입 니다. 요즘은 이렇게 금을 불에 달궈 두들겨서 제품을 만들지 않지요. 주물 로 금을 불에 녹여서 모양 틀에 주조하면 한꺼번에 여러 개 만들 수 있지만, 저는 옛날 대장간 식으로 금을 산소 불에 달궈 뚜들겨서 모양을 내고, 용접 하고, 줄질하고, 무늬를 조각하고, 광택 내서 만듭니다.

주물로 하는 것과 두드리는 것이 제품에 차이가 있나요? 차이가 있죠. 손으로 두들겨 만든 제품이 잘 휘어지지도 않고, 탄탄하고, 광택도 잘 나고, 오래갑니다. 주물 반지는 조금 물러서 잘 휘어지는 것 같습

192

니다. 그래서 손으로 만든 금, 은 제품들 공임이 더 비쌉니다. 귀금속을 부 러뜨려서 작은 실 구멍, 기포를 확대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망치로 두들겨 만든 제품은 기포가 전혀 보이질 않고 단단하고 강합니다.

선생님은 이 일이 적성이 맞아서 평생하고 계시는가요? 이 나이에 안 맞아도 어쩔 수 있나요. 옛날에는 밥 먹고 사는 것이 급했지 요. 가세가 기울었을 때, 숙부님이 공부보다 기술이라도 배워야 먹고 산다 고 했었지,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거제4동에 있던 금은방 이 4개 점포나 있었는데, 저희 금옥당이 장수하게 되었네요. 지금 거제동 에선 우리 집이 오래되었고, 동래구, 금정구, 연제구 쪽에서도 세네 번째는 될 거예요. 아는 거라곤 한 길로 45년을 걸어온 이길 뿐이에요. 한자리에서 오래 영업하다 보니까 많은 사람이 저를 찾아요. 그것 때문에 미련이 남아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제도나, 양산, 김해, 울산, 기장으로 멀리 이사 간 고객들이 종종 찾아 주시니까 이곳을 지키고 있는가 봅니다. (웃음) 오늘도 화명동에서 로렉스 금통 시계 고치려 찾아오셨네요. 진심으 로 감사합니다. 시력이 보일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지요.

193

바르게살기운동 거제4동위원회 꽃동산 가꾸기 활동 (송인호 제공)

1993년 시장번영회 정관 자료(송인호 제공)

1970년대 초 해운대행 피서열차 ‘파도호’와 피서행렬 (정광삼 국가기록원)

1980년대 피서가던 날 거제역에서(송인호 제공)

만디에 있는 집 불빛이 별인 줄 알았어요 이상화 1948년생 산동네의 불빛을 보고 별인 줄 알았다는 울산 시골에서 올라온 소녀는 아직 도 소녀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몇 가구가 한 집에 살 때 ‘울자리’ 가 없어 섭섭했으며, 곡식 가루가 솔솔솔솔 내려오는 모습이 여전히 너무 좋 다는 이상화 님의 이야기는 질문을 던지는 이를 종종 깜짝 놀라게 했다. 여 느 참기름 가게와는 달리 여성이 혼자 가게를 꾸려온 흔적은 작은 가게 안 곳곳 정돈된 물건들과 깔끔한 가게 모습에 스며 있었다.

196

“오늘 잘 놀았는가?” 아침에 몇 시에 나오세요? 전에는 8시 반에 나왔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줄어서 빨라야 9시에 나옵 니다. 아저씨가 문 열어주고, 닫아줘요. 옛날에는 간이 탔거든요. 빨리 가 야 하는데, 이랬는데, 요즘은 돈 벌러 가는 게 아니고 둘이 운동 삼아 놀러 간다 생각해요. 남편이 저녁에 문 닫으러 오면 이럽니다. “오늘 잘 놀았는 가?” (웃음)

그리고 저녁 몇 시에 닫으세요? 전에는 9시에 닫았는데 지금은 6시, 이 골목에서 제일 게으른 집이에요. (웃음) 늦게 열고, 빨리 닫고. 갈 때는 조금 미안해요. 뭐하러 다니는 거냐고 생각할까 싶어서. 예전에 9시에 문 닫고 집에 가서 저녁 먹으려면 애들은 자버리는 거예요. 옳게 안 먹고 잘 때가 많았어요. 그래도 엄마, 아빠가 우 리를 그렇게 키워서 우리가 잘산다고 애들이 그래요.

남편과 함께 장사하셨어요? 같이 안 했어요. 둘 다 공직생활에 있었는데, 그때는 애기 봐주는 데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여기 맡겼다가, 다른 데 맡겼다가 했어요. 친정엄마한 테도 한번 맡겼는데 내가 막내다 보니까 엄마가 연세가 많았어요. 나 하나 로 인해 온 식구가 고생이다 싶어서 일을 그만뒀어요. 그렇게 놀다 보니까 저녁이 되면, 오늘 해를 그냥 보냈다 싶었어요. 이러다 우울증이 올 수도 있 겠다 싶었어요. 시간에 내가 매달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가

197

게 열고 오늘은 얼마 팔았다는 얘기 하면 아저씨가 코웃음을 짓더라고. 그 러던 걸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이 업종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전기, 기계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올케언니의 친정 오빠가 시골에서 농 사짓다가, 부산 내려와서 기름집을 차렸어요. 그분도 농사짓다가 왔는데, 여자라는 차이일 뿐이지 나도 하겠지, 뭐, 이런 생각에서 친정 오빠가 주선 해서 시작했어요. 올케 언니와 같이 하다가 언니가 다른 사정이 있어서 그 만두고 저 혼자 했어요. 그런데 이게 중노동이에요. 장날이 일요일이면 아 저씨가 기차 타고 올라가서 물건 주문해 놓고, 거제역으로 부쳐왔어요. 그 때는 정말 앉아있을 여가가 없었어요. 어쩌다가 앉아있으면 지나가던 형님 들도 “아이고 앉아있네” 이렇게 할 정도로. 35살 때 시작했는데, 그 세월에 얼굴 주름을 다 만들어 버렸어요. 그랬는데 요즘은 그냥 노는 거죠. (웃음)

사형 되시는 분께 장사를 배우신 건가요? 아니요. 중고기계를 사 들이면서 기사님이 고추 한 번 찧어주고, 쌀 한 번 찧어주고 그게 가르쳐 주는 건 거예요. 깨 볶아서 한번 짜는 거 돌리면 그 게 배운 거고. 미숫가루도 한번 돌려주면 그게 배운 거고. 제일 어려운 게 스위치 올리는 거. 스위치가 좀 큰 거, 올리는 거였어요. 무서웠어요. 그리 고 깨 볶는 건 석유를 가지고 바람을 실어서 불을 켜는 거였거든요. 불 켤 때 어떨 땐 퍽 하는데, 어려웠어요. 한 1년 반 되었을 때 익숙해졌어요.

198

199

곡식을 찧을 때 가루가 솔솔솔솔 내려오는 거 보고 있으면 너무 좋아요 처음에 가게 여셨을 때 시장 모습이 기억이 나세요? 그때는 전부 가게였어요. 점포 건물 옆에 앉아서 장사하는 사람들 많았 어요. 생선, 채소 파는 분들도 많았는데 많이 돌아가시거나 그만두셨어요. 집을 새로 지으니까 장사할 자리도 없어졌어요. 전에는 관사 집 담 앞에서 장사하기도 했는데, 주인이 자기 집이 지저분해진다고 못 하게 했어요. 알 고 보면 집 가격을 올려주는 거였는데. 그리고 오후 4시, 5시 정도 되면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집에 가요. 길이 비좁았어요. 이 길로 제일 많이 다녔어요. 요즘에는 학생들 보기 힘들어요. 다른 길로도 가고, 마을버스 타고 내려가고요. 여기 사람들은 다른 시장보다 사람들이 다 착하고 정겨운 것 같아요. 예 전부터 장사하던 사람들은 몇 사람 안 남았어요. 지금은 사무실, 창고 같 은 걸로 많이 바뀌었어요. 번영회에서 봄가을로 놀러도 가고 그랬는데 그 것도 없어졌어요.

가게 들어오기 전에는 여기가 어떤 집이었어요? 그전에는 대 소쿠리 가게였어요. 그때는 빈 가게가 잘 안 나왔거든요. 주 인이 오빠하고 잘 알아서 가게 비면 하나 달라고 했어요. 미숫가루를 방앗 간에서 많이 했는데, 다 씻어야 하거든요. 근데 수도가 없어서 처음에는 뒤 에 우물이 있어서, 뒷마당에 가서 씻었어요. 나중에 수도 설치를 했어요.

200

기계들은 처음에 할 때부터 쓰셨던 거예요? 처음에는 중고를 사서 했고, 몇 년 쓰고 난 뒤에는 새 걸로 맞췄어요. 그 리고 부품만 바꿨어요. 이게 기름 짜는 거고, 저거는 고춧가루 가는 거고. 저쪽은 미숫가루 하는 거고. 기계가 한 번씩 고장이 났어요. 그래도 기사 들이 오면 여자가 해서 그런지 고장은 잘 안 난다고 그래요. 남자들은 좀 우 악스럽게 사용하는가 봐. 기계가 고장 날 때는 가슴이 막 쿵쾅거려요. 고장 안 나고 잘되면 재밌어요.

어떤 부분이 재미있으신 건가요? 곡식을 갖고 오면 찧어주거든요. 찧을 때 가루가 솔솔솔솔 내려오는 거 보고 있으면 너무 좋아요. 쌀이 보실보실해요. 쌀 양은 요만한데 찧으면 애 법[제법] 많이 불거든요. 그런 것도 좋고, 고추도 가루가 날리면 매운데, 나 는 기침을 잘 안 해요. 태양초 좋은 걸 갖고 오면 좋고, 좀 별로인 걸 갖고 오 면 색깔이 안 좋아요. 그러면 찧을 때 좀 덜 재밌고 그래요.

201

저 위 만디에 있는 집에서 나오는 불빛이 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거제리에 오래 사셨나요? 울산 시골에서 4학년 말에 부산으로 왔어요. 그때 저녁에 기차를 탔나 봐요. 밖을 내다보는데 별이 너무 많더라고. ‘참 희한하다. 우리 고향에는 하늘에만 별이 있는데, 도시에는 밑에까지 별이 많네’ 이랬거든요. 그런데 낮에 보니까 그게 전부 집이더라고요. 저 위 만디에 있는 집에서 나오는 불 빛이 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반짝반짝했다는 게 전기는 들어왔다는 거네요 예. 시골에서 호롱불을 쓰다가 밝으니까 참 좋대요. 시골에서 공부하려 면 엄마가 호롱불 기름 든다고 공부 못하게 했어요. 낮에는 소 먹이러 가야 하지, 풀 베야 하지, 공부할 여가가 없고요. 그래도 공부 좀 한다고 했는데, 여기에 전학을 오니까 담임 선생님이 “공부 좀 열심히 해야 되겠네” 이러더 라고요. 우리 오빠 같으면 좀 덜 부끄러웠을 건데 오빠 친구가 전학할 때 데 려갔거든요. 좀 부끄럽대요.

물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있더라고요. 두레박으로 퍼가는 물탱크를 만들어 놨어요. 위에서 닫았다, 열었다가 할 수 있고요. 전부 이고 날랐어요. 요 밑 에 살 때는 여기 옆에 있는 절 자리쯤에 우물이 하나 있었어요. 주위 사람 들이 거의 다 그 물을 먹고 살았을 거예요. 우리 셋째 오빠가 거제역 앞에

202

서 술 도매상을 했어요.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서 계단을 올라가 물통에 물 붓는 식이었는데, 올케언니가 임신했을 때는 내가 물을 날라줬어요.

부모님은 시골에 계시다가 왜 부산으로 오셨을까요? 너무 못살아서요. 우리 엄마가 장손 며느리였거든요. 근데 아버지가 일찍 이 돌아가셨어요. 엄마한테 야단 들어본 적이 없어요. 우리 6남매 어느 누 구 꼭 집어서 뭐라 하는 일이 없고. 우리가 옷을 해 드려도 몇째가 해주더라 안 해요. 그냥 우리 애들이 해주더라고 했어요. 우리 아저씨가 제일 존경하 는 사람이 장모님이라고 그랬어요.

거제리로 이사 오신 건 이쪽에 공장이 많아서였을까요?

01

작은아버지가 거제역에서 일본말로 마루보시, 기차에서 물건이 내리면 그 물건을 배달해주는 짐꾼이라. 그 일을 하고 계셨는데, 우리 큰오빠를 거 기에 취직을 시켜줬거든요. 그때 작은 삼촌이 우리 집을 마련해 줘서 살았 어요. 그 작은집 사촌 동생들도 다 잘되고, 지금은 자주 만나고 그래요.

요즘 같으면 택배네요. 맞아요. 대한통운이에요.

01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세대들은 대한통운을 일본어로 마루보시(丸星)라 부르기도 했다. 마루보시의 공식명칭 은 조선운송(주)로 일제강점기 철도역에서 물자운송이나 하역을 전문으로 한 운송회사이다. 대한통운이 마루보시와 합병했기 때문에 이름이 익숙해 그렇게 부른다. (나무위키 “CJ대한통운”)

203

조선견직에 들어가서 실 한올 한올 잇는 일을 했어요 이사 와서 학교를 계속 다니셨겠네요.

9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어요. 그때는 늦게 보내고 그랬어요. 중학교 시 험을 쳐야 하는데 돈 없다고 안 쳤거든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지금 현대아 파트 자리에 있던 조선견직에 다녔어요. 15살 때예요. 나이가 안 되는데 다 녔어요. 엄마하고 잘 아는 분 집에 언니가 나이가 되는 거라. 그래서 그 이 름으로 서류해서 들어갔어요. 조선견직에 우리 올케언니의 외삼촌이라 하 던가. 좀 높은 데 계셨어요. 야간을 했는데, 야간 일주일, 주간 일주일 이렇 게 하대요. 야간 조는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일했어요. 그런데 못하겠 대요. 일도 모르고 잠이 얼마나 오던지. 일하다 보면 밤에 손바닥만한 빵 한 개를 야참으로 줬어요. 나중에는 “엄마, 나 다른 일 할란다. 거기는 안 할란다. 나는 내 이름으로 할란다” 이랬어요. 엄마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니 었는데. (웃음) 그래서 6개월 다녔어요.

조선견직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실 감는 일 하다가 그다음에는 베틀을 짜요. 뒤에 실을 감아놓고 짜는데, 그걸 다 짜고 나면 다시 실을 이어야 해요. 저는 그 실 한올 한올 잇는 일을 했어요. 못해도 1년 반, 2년은 돼야 그 단계에 올라가는데, 나는 6개월이 되 기 전에 벌써 그 일을 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빽이 얼마나 크면 그러냐고. 단계가 올라가면 월급이 조금 더 많았겠지. 친구도 한 사람 없었어요. 내가 신분을 속여서 왔다, 이런 마음이 있으니까 내 이름 으로 다른 일 하려고 했죠.

204

205

그럼 조선견직을 그만두고 상급학교에 진학하신 건가요? 둘째 오빠가 공군이었는데 휴가 나와서 “돈을 빌려서라도 공부해야지 공 부 안 하고 뭐 할래” 하고 혼냈어요. 내가 돈을 벌어야 공부할 수 있다고 생 각해서 야간 중학교에 갔어요. 그때 1차 시험은 경남여중, 동래여중을 쳤 고고, 혜화여중은 2차로 시험 보는 학교였어요. 그때는 직장 다니면서 공 부하는 학생이 많았거든요. 오빠 친구가 경찰이었는데, 그분이 등록금을 대주고, 졸업할 때도 와줬어요. 그리고 실력이 안 되는데 학교에서 경남여 고 시험을 치라고 해서 쳤다가 떨어졌어요. 그게 맞죠. 그래서 또 고등학교 야간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아는 스님이 등록금을 대줬어요. 이런 이야 기를 아저씨한테 하면, 본인한테 갚는 거는 힘들고, 그만큼 베풀라고 해요. 근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거성중학교 바로 산 밑에 만디에서 살았어요. 그때는 마루가 기다랗고, 각 방에 들어가는 그런 집에서 학교 다녔어요. 그때는 골목이 비좁았잖아요. 요즘엔 그런 좁은 골목길이 없더라고요. 부 산에 와서 연지, 거제리, 연산동으로 오빠가 이사 가면 따라다녔어요. 엄 마하고 오빠들 다 돌아가시고 6남매 중에 2명밖에 없어요.

206

동네에서 계속 문 열라고 하는 사람들과 같이 뭘 해 먹으면 재밌어요 결혼 후에는 계속 거제4동에 사셨나요? 아니요. 거제3동에서 살다가 이리로 이사 와서 저 위에 있던 한동약국 안 집에서 살다가, 그 집을 뜯는다고 해서 여기 중간쯤 와서 관사 집에 살았어 요. 한 집, 두 집, 세 집, 네 집이 살았나? 아래채에 한 집이 살았어요. 그 중 에 한 집이 생선을 팔았어요. 물건 하러 갈 돈이 없는데 아침에 돈을 빌릴 데가 없어서 나한테 말을 했나 봐요. 아무 말도 안 하고 빌려줘서 장사할 수 있었다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나는 아무 기억이 없어요. 마당은 너른데, 건너서 화장실이 저쪽에 있었어요. 우리 문을 열어놓으면 화장실 가는 사람들 다 보였어요. 방 2칸에 앞의 방은 싱크대도 있고, 딸하 고 아들이 잠도 자고 그랬어요. 아저씨한테 “이 집이 안 좋은 게 있다. 내가 울 수 있는 자리가 없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3층집 세가 나왔는데, 한 35 평 정도 될까. 거기 이사 가고 싶다고 하니까, 아저씨가 그냥 비좁은 듯이 살자 이러는 걸, “만약에 내가 빨리 죽어버리면 너른 데도 못살아보고 죽 는다 아니가. 내 집을 사기는 멀었고, 너른 데라도 살아보다가 가야지” 이래 서 갔어요. 처음에는 넓고 좋던데, 한참 살아보니까 여기나 저기나 똑같더 라고요. (웃음) 집이 잠시 바뀔 때 마음이 조금 틀렸지 나중에는 똑같다 싶 었어요. 마당에서 채소 키워서 해 먹다가 아파트에 이사 가니까 별로더라고 요. 주택이 얼마나 좋은지.

207

장사가 잘될 때 1년 중 언제쯤이 대목이었나요?

10월쯤 되면 그때부터 설까지. 가을 추수하고 갖고 오잖아요. 조금 있으 면 김장한다고 또 하고. 설 쇠고 나면 장 담는다고 하고요. 요즘 젊은 사람 들은 마트 걸 많이 먹잖아요. 그리고 요즘은 택배도 잘 되어서 산지에서 바 로 주문 배달해서 먹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지금은 곡식 갖고 오면 찧어 주고, 참기름, 깨소금 그 정도 팝니다.

골목시장이 쇠퇴하고 나서 수입에 줄어들었을 것 같아요. 우리는 병원에 가는 거 말고는 별로 안 써요. 먹는 것도 요새 채소 3천 원 어치 사면 반찬 세 가지는 돼요. 장은 여기 골목시장에서 봐요. 그래도 집 에만 있으면 힘이 없어지잖아요. 복지관에도 시간 내서 다녔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것도 못 하고. 그나마 가게라도 있으니까 오는 거죠. 동네에서 계 속 가게 문 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요. 여기에서 쉬면서 이야기하 려고. (웃음) 같이 뭘 해 먹으면 재밌어요.

옛날에는 토요일에 비가 오면 정구지를 많이 팔았어요 박갑진 1955년생 한향순 1959년생 박갑진, 한향순 님은 울산에 살다 돌이 갓 지난 아들과 함께 거제동으로 이 주했다. 골목시장의 점포를 소개 받아 채소 장사를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했던 시절, 수저를 물고 잠들 만큼 수면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젊으니까 할 수 있었다. 비오는 토요일이면 정구 지가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 속에 그들만이 기억하는 마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210

1984년도에 울산에서 거제4동으로 왔습니다 ※ 박갑진은 ‘진’, 한향순은 ‘순’으로 표기했다.

거제4동에 오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진8 4년도에 울산에서 여기 거제4동으로 왔습니다. 거제시장으로 내려온

지는 한 4년 됐습니다.

울산에서 두 분이 결혼하신 후 같이 내려오신 거네요? 진네 . 저는 울산 현대자동차 다녔어요. 처형하고, 제 형수의 언니 되는 사

람이 연결해주어서 결혼했습니다. 회사 근무하다가 갑자기 오라고 해서 만났는데 그 길로 연결이 됐습니다. (웃음) 한 5년 정도 울산에 살다가 이리 와서 장사하게 되었어요. 우리 큰애가 지금 39살인데, 그 아이 돌 지내고 부산에 온 거죠. 그러니까 세월이 많이 흘렀죠.

울산 현대자동차면 꽤 안정적인 직장 아니었나요? 진제 가 자전거 타고 출근하면서 다리를 다쳤는데, 계속 안 나았어요. 컨베

이어벨트 작업장에서 작업을 했어요. 한 자리에서 계속 서서 작업한 게 무리가 많이 간 것 같아요. 그래서 다친 게 잘 낫지도 않았어요. 침도 맞 고, 아무리 좋은 걸 해봐도 작업 환경이 그러니까 안 낫는다 싶어서, 그 길로 회사를 나왔어요. 이후로 계속 놀 수는 없는 상황이었는데, 형님이 부산에 오래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점포를 하나 소개받아서 야채 가게 를 시작했습니다.

211

원래 회사 다니시던 분이신데, 장사를 한다는 게 어렵지는 않으셨어요? 진그 때는 나이가 젊기 때문에 그런 건 못 느꼈어요. 장사를 시작하면서 자

전거 타니까 다리가 안 아프더라고요. 자전거 타다가 다리가 아프면 오 토바이 사려고 했는데, 자전거가 다리를 낫게 한 건지. (웃음) 저도 모르 게 다리가 나았어요. 그것만 해도 저는 좋은 성과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웃음)

212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가, 수저를 물고 잤어요 처음에 장사를 시작한 장소가 어딘가요? 진거 제4동 815-60번지 자리에서 장사를 한 35년 정도 했어요. 참기름 집

앞이에요. 그때는 거제2동 쪽에 공장이 하나씩 있었어요. 장사도 잘됐 어요. 우리가 잠을 거의 안 자다시피 가게를 했으니까요. 밤 12시까지 장 사하고, 새벽 5시 정도 일어나서 다시 가게를 열었어요. 그래도 젊으니까 수면이 부족해도 힘에 부치지 않았어요. 저녁에 시마이[마감]한다고 바 깥에 있는 물건을 들고 들어와야 하는데 눈이 안 떠져서 집 안 대문에 머리를 박을 때도 있었어요. 저녁 먹으러 들어갔다가 수저를 물고 잤어 요. 지금 생각하면 참. (웃음) 아내가 사람이 안 나오니까 집에 들어와서 봤더니, 제가 밥 먹다 수저 물고 자고 있더라고. (웃음) 화장실에 가면 앉 아서 앞으로 한 바퀴, 뒤로 한 바퀴 이래도 하고. (웃음)

밤 12시까지도 손님이 있었어요? 진한 사람씩 오는 사람도 받으려고 그때까지 있었어요. 점빵을 치우는 시

간도 많이 걸렸고요. 그때는 장사도 조금 됐으니까 그렇죠. 그 당시에는 젊어서 장사 욕심도 있고요. 저 사람은 집에 가서 빨래하고 나면 새벽 2 시, 3시까지 잠도 못 잤어요. 저보다 더 욕봤습니다. 젊으니까 그걸 했지. 그때는 나이가 30대니까.

213

주로 어디서 물건을 떼오셨어요? 진부 전시장에서도 가져오고. 반여동에 옛날 삼립공장 맞은편에 공터가

있었어요. 지금은 아파트가 다 들어섰는데, 그 공터에 밭이 많았거든요. 거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직접 단배추 그런 걸 한 50단씩 싣고 와서 팔았어요.

두 분이 장사를 함께 하시면서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았겠네요? 진예 . 그 당시에는 우리 애들을 제대로 못 돌봤어요. 장사하느라 바쁘게

있다 보면, 애가 겨울에 하수구에 빠져서 위에서부터 밑에까지 물이 줄 줄 흐르고 빨가이[빨갛게] 얼어서 오고 그랬어요. 요새는 아들 보기에 좀 미안해요. 학교 마칠 때까지 학교에 제대로 못 가봤습니다. 진짜 앞만 보고 살았습니다. 순 어릴 때 놀러도 다니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 키웠어요. 같이 장사하다

보니까 그런 건 생각도 못 했어요.

가게랑 집을 같이 쓰셨나요? 진그 당시에는 가게가 앞쪽에 있고, 저 뒷방 한 칸짜리 방에 4식구가 살

았습니다. 뒷방 지붕이 슬레이트여서 여름 저녁에 들어가면 한증탕이 라요. 요즘은 주로 슬라브집 아닙니까. 슬레이트 집은 열을 받아서 방에 들어가면 따끈해요. 땀이 절로 납니다. 요새 사람들 그래 못 살겠지요. (웃음) 단칸방에 살다가, 그 건물이 3층 건물인데, 주인이 나가고 우리가 2층에 살게 되었습니다. 애들이 좀 많이 커서 올라갔지요. 지금은 거제3 동 살고 있습니다.

214

215

달동네처럼 그렇게 살다가 재개발로 다 흩어지니까 아쉽죠 골목시장에는 어떤 가게들이 있었어요? 진그 때는 시장에 노점 가게가 쫘악 있었어요. 생선가게, 문방구, 옷집도 있

었고, 있을 건 다 있었는데, 늦게까지 사람이 많이 다녔어요. 요즘은 상 권이 완전히 없어졌어요. 공장도 없어지고, 집도 많이 없어졌어요. 빈집 도 많아요. 순그 때 당시만 해도 마트 같은 게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다 시장에서 장을

봤어요. 종목도 엄청 많았는데, 생활필수품은 거의 다 있었어요.

거제2동 주민들이 주요 고객이었나요? 진예 . 거제2동을 안동네라고도 했어요. 공장이 없으니까 떠나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죠.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시장이 죽어갔어요. 장사는 안됐 지만,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정이 들어서 몇 년을 계속했어 요. 그러다가 위에 아파트 짓는다고 전부 나가고 철거하면서 거제시장으 로 3년 전에 내려온 거죠.

골목시장에 번영회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진 골목시장이 활성화될 적에는 번영회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없었어요.

제가 장사 시작하고 수 세월 보내다가 번영회가 생겼어요. 저도 오랫동 안 몸담았지요. 처음에는 회원으로 있다가 총무를 오래 했어요. 시장이 활성화가 안 되면서 다른 사람이 총무 하다가 나가면 제가 또 맡고, 또

216

누가 하다가 나가버리면 제가 맡아오다가 회장도 한 번 했어요. 그러다 가 몇 년 후에는 시장이 너무 안 되니 번영회를 없앴다 아닙니까.

번영회는 주로 어떤 활동을 했나요? 진가 게에서 길에 물건을 많이 내놓으면 차가 못 다니니까, 노란 줄을 그어

서 나오지 못하도록 관리했어요. 그리고 회원들이 회비를 얼마씩 내면 1 년에 한 번씩 야외에 갔어요. 단합대회 겸 서로 얼굴도 보고 이렇게 하 루 지내고 오자 했죠.

거제역 근처에도 장이 열렸다고 들었어요. 순시 장이라는 건 없고, 저쪽 남창이라든가, 울산 가는 쪽에 사는 할머니

들이 시골에서 열차 타고 와서 역 앞에 다라이 펼쳐서 팔았어요. 다 팔 고 나면 기차 시간 맞춰서 또 가고, 그런 시장이었어요.

사람들이 떠날 때는 기분이 어떠셨어요? 순아 쉽죠. 달동네처럼 그렇게 살다가 재개발로 다 흩어지니까 일단은 아

쉽죠. 눈만 뜨면 보는 사람이었죠. 거제4동 이쪽이 살기가 참 좋아요. 살다가 이사 가신 분들이 여기가 그리워서 또다시 오기도 했어요.

번영회 활동 외에 거제4동에서 자치활동에 참여하신 적이 있나요? 진거 제4동 바르게 살기를 한 십몇 년 했습니다. 동네에 도와줄 일이 생기

면 우리 단체가 갔어요. 나무 심기도 했고요. 순경 로잔치도 한 번씩 하고, 마을 청소도 했어요. 뒷산에 풀베기도 하고.

217

활동할 때는 열심히 했어요. 잠잘 시간은 없어도 짬을 내서 빠짐없이 갔 어요.

정기적인 모임이 있었나요? 진한 달에 한 번, 저녁에 한가할 적에 모여서 회의했어요. 몇 월 며칠, 풀베

기를 하자든가, 나무 심기나 거리 청소를 하자든가, 이런 걸 결정했습니 다. 주로 상인들이 많았는데, 젊은 사람들은 많이 없었어요. 거의 남자 들이 하다가 뒤에는 여자분 몇 명이 들어오긴 했어요.

218

옛날에는 토요일에 비가 오면 정구지를 많이 팔았어요 이리로 오니까 골목시장 때와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가요? 순일 단은 사람이 저기보다 많죠. 명절 때는 옛날 명절 기분이 나요. (웃음)

60대까지는 그래도 시장에 오는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거의 다 차가 있 잖아요. 비싸든 어쨌든 관계없이 마트로 가요. 보통 여기는 6시 되면 사 람이 거의 끊겨요. 그런데 우리는 일하러 왔다가, 어쩌다 보면 밭에도 갔 다 오고, 그렇게 하면 항상 꼴찌로 문을 닫아요. 9시 넘을 때도 있고, 진 짜 늦을 때는 10시 넘을 때도 있고요.

거제시장으로 옮긴 후에 거제4동 단골들이 찾아오시나요? 진 와요. 우리가 거기서 오래 했기 때문에, 아시는 분은 다 내려오세요. 그

리고 한 번씩 배달을 갑니다. 옛날부터 아는 사람들이 시킵니다. 전화하 면 가져다줘요.

옛날에는 일 다니는 사람들이 퇴근하면서 저녁에 장 보고 그랬는데, 문화가 좀 달라졌나 봐요. 순그 렇죠. 요즘에는 마트가 생기니까. 옛날에는 토요일에 비가 오면 상추,

깻잎, 정구지[부추] 같은 걸 많이 팔았어요. 찌짐[전] 구워 먹는다고 정구 지 사러 많이 오고 그랬거든요. 요즘에는 그런 문화가 없어요. 항상 뭐 든지 냉장고에 재어 놓고 먹으니까.

219

정구지처럼 특별한 날에 잘 팔리는 게 또 있나요? 순토 요일에 상추 한 소쿠리 씻어놓으면 금방 나가요. 주말에 집에서 가족

끼리 고기 먹으니까. 진처 음에 할 적에는 감자를 깎아서 많이 팔았어요. 그때는 사람이 많으니

까 감자 깎은 것도 많이 나가고, 제철에 다시마를 삶아 놓으면 많이 나가 거든요. 요새는 젊은 사람들이 먹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아예 안 나가 요.

마늘, 생강, 고추도 여기서 직접 갈아서 파세요? 순가 지고 오면 씻어서 제가 다 해드려요. 김치 담게끔 양념 다 해주고. 요

즘에 마늘은 우리가 농사지은 걸 직접 까서 팔아요. 칠암 옆에 문동 마 을에 조그만 농장이 하나 있거든요. 거기 쪼마난 밭이 있어요. 상추, 양 파, 호박을 심어놓고 그걸 한 번씩 뜯어와서 팔아요.

220

221

우리 집에 와서 팔아준다고 생각하니까 뭐든지 다 고마워요 건강은 어떠세요? 언제까지 가게를 하실 생각인가요? 진실 제로 잔병은 많이 안 하는 편이지요. 사람이 좀 움직이면 몸이 좋은

모양이에요. 순전 아직까지 재밌어요.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요. 젊을 때부터 해서 그런

지 당연히 이렇게 사는 거다, 하고 사는 거지. 불만 가지면 힘들잖아요. 그러니 항상 긍정적으로 내 일이고, 좋다, 재밌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힘 들지는 않아요.

어떤 부분이 재밌다고 느끼세요? 순내 가 이걸 해줌으로써 누군가 맛있게 먹는다는 거요. 그리고 우리 집에

와서 팔아준다고 생각하니까 뭐든지 다 고마운 거예요. 진 사람들이 야채를 사러 마트보다 시장에 더 많이 와요. 몇백 원 붙으면

떼 줄 수도 있고요. 순양 도 많고, 마트보다 싸요. 한두 개씩 끼워주는 재미도 있고, 얻어가는

재미도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아무리 마트에 가더래도 가끔 급하게 필 요하면 시장 찾잖아요.

222

거제동 최초의 초등학교, 거제초등학교의 역사 사진 제공: 거제초등학교

223

1946년 6월 부산 제10공립학교 18학급으로 편성 인가 1955년

양정국민학교로 학생 1,000명을 분리

1964년

창신국민학교로 분리

1967년

연제국민학교로 분리

1981년

양성국민학교로 분리

2021년

현재 학생수 565명

224

“초등학교도 철도 건물이에요. 옛날에 부속건물이었어요. 나도 거기서 살 았거든요. 철도 부속건물에 개교한 거예요. 뜯어서 없앤 그 자리에 학교가 새로 지어진 거예요.”

- 권길철

225

“그때 당시 53년도 휴전되기 전까지 거제초등학교 뒤에 보면 강당이 있었 어요. 거기가 해양대학이 임시로 있었어요.”

- 이종화

“내가 거제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비행기 격납고 모양의 둥근 군인 막사 퀸 셋 같은 게 있었어요. 내 기억에 초등학교 앞쪽에 시멘트 건물이 있었고, 그 뒷부분이 그렇게 돼 있었어요. 거기에다가 칸을 막고 교실을 만들었는데 내가 1학년 때 그 교실에서 공부했어요.”

- 김의향

226

“많이 바뀌었지요. 2층이었어요. 교실이 12개였어요. 미국 원조로 만들었 다고 태극기하고 성조기를 엑스자로 해서 표시를 해놨어요”

- 이종화

“거제초등학교에 학생이 많아서 분산 시켰는데, 1차가 양정초등학교였어 요. 그리고 우리 동기들이 연제국민학교 1회예요. 연제국민학교에는 4학년 때 전학 갔어요. 창신초등학교도 1회예요. 우리 반 아이들 다 잘라서 갔어 요. 그때는 운송 수단이 없으니까. 창신초등학교에 3학년 초 애들이 자기 책상을 들고 갔어요.”

- 이종화

227

“엄청 많았죠. 학생이 3천 명 넘었죠. … 지금 주차장 쪽에서 등나무 있는 쪽으로 목조건물이 있었거든요. 목조건물 없어지고. 거기에 이제 등나무, 애들 놀이기구도 있고, 주차장도 생겼고.

- 김점례

개교 당시에는 철도관사 건물을 활용해 학교 로 사용하다가 한국전쟁 후 미국의 대한원조로 새로운 건물을 짓게 되었다. 건물은 서양식 건축 양식으로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건축물이 다. 1960년대 산업화로 인구수가 폭발적으로 늘자 인근에 초등학교들을 설립 하여 분산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신축 건물이 세워지기도 했다. 미국 원조로 지어진 본관은 1970년대 초반 현재의 일반적인 초등학교 외형으로 재건축되었 다. 이후 신축 본관 증축과 남측 별관 철거 등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옛날엔 앞에 포플라 나무가 쭉 있었어요 김점례 1956년생 포플라 문구점의 이름에는 옛날 거제초등학교 앞의 풍경이 담겨 있다. 거제 역 담벼락 앞 포플라 나무 아래에서 주민들이 평상을 깔고 일상을 나누고, 아이들은 문구점 앞을 놀이터 마냥 드나들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옛 풍 경은 사라지고, 북적북적 하던 아이들은 이제 간혹 보이는 정도이다. 하지만 옛 단골이었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찾아올 수 있도록 김점례 님과 포 플라 문구점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30

231

옛날엔 앞에 포플라 나무가 쭉 있었어요 가게 이름이 예뻐요. 이렇게 지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지은 거는 아니고 원래 하시던 분이 지었어요. 제가 인수할 때 넉넉 한 형편이 아니라서 간판을 안 바꿨어요. 그때만 해도 여기 앞에 포플라 나 무가 쭉 있었어요. 동해선 공사하면서 없어졌어요. 저기 보이는 신호등부터 학교 앞까지 아름드리나무가 있었어요. 나무가 크니까 여름 되면 어른들도 평상 갖다 놓고 거기서 놀았어요. 에어컨이 없으니까 밤에도 나와서 놀았 어요. 옛날에는 할머니들이 많이 살았거든요. 조금 시골스러운 동네예요. 아마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 같아요.

평상에 나와 계신 분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겠네요. 감자 철 되면 누가 한 솥 삶아 와서 같이 먹고 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없어요. 코로나도 있지만, 그때 분들이 많이 돌아가셨어요. 옛날에는 이사 오면 떡을 돌리잖아요. 요즘엔 그런 게 없어진 것 같아요. 그 래도 이쪽에 있는 음악학원, 미술학원이 20년 이상 됐거든요. 또 어린이집 하고 거성아파트, 목화아파트 이런 데 오래 계신 분들과는 인사하고 친하 게 지내죠.

원래 이 동네에 사셨나요? 네. 이 동네에서 산 지가 엄청 오래됐죠. 거제4동에 21살 때부터 살았나?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왔어요. 온 가족이 이사를 왔 어요. 처음에는 기차 소리가 적응이 안 됐죠. 조용한 데서 살다 왔는데, 기

232

차가 지나가면 집이 울리는 거예요. 밤에도 기차 소리 듣고 깨고, 트럭 큰 거 지나가면 깨고 했는데, 그것도 살다 보니까 만성이 되었어요.

처음 오셨을 때 마을의 모습은 어땠나요? 법원 있는 쪽은 섬유공장, 모직공장이 있었고, 논밭도 있고 많이 시골스 러운 동네였죠. 이 위쪽이 철도관사예요. 여기부터 보면 빌라가 전부 들어 섰어요. 빌라 들어선 자리가 전부 철도관사예요. 지금 두세 개 남아 있어 요. 바둑판처럼 골목길을 닦아놨어요. 그래서 빌라 짓기가 그렇게 좋답니 다. 네모반듯하고, 남향이기도 하고요. 시장은 거제시장에 많이 다니고, 골목시장이라고 조그마한 시장이 있었 는데 거기 가면 웬만한 것들은 다 있었어요. 주위에 마트도 없고 하니까 계 성여고 위쪽에 있는 사람들이 골목시장으로 많이 갔어요.

233

초기에는 노트에다가 하루에 50명씩 이름을 써놓고 외웠어요 문구점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애가 두 명인데 제 손으로 애들을 키워야겠다 싶었어요. 애들 클 때만 해 도 기혼 여자들이 취업하기가 어려울 때였거든요. 그래서 애들을 돌보면 서 뭔가 할 수 없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장사하는 체질도 아니거든요. 말도 잘 못 하고 그랬는데, 우연히 전봇대에 문구점 전세 나온 걸 보고 하게 됐어 요. 저희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부잣집 아이들은 그때부터 생일 초대도 하고, 선물도 사 갔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월간지 ‘완전학습’, ‘이달 학습’도 사가고, 준비물도 사 가는 걸 봤어요. 제가 또 크리스천이다 보니까 주일을 지켜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주위 분들과 상담도 해보면서 괜찮 겠다 싶었어요. 애들이 어린데 놔두고 직장 다니기는 불안해서 방이 딸려 있는 집을 구하게 됐어요. 옛날에는 저 옆쪽에 있었는데 집이 너무 오래되 고 해서 이쪽으로 옮겨 왔어요.

거성중학교 학생들도 문구점에 오네요. 유림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집에 가는 길에 오는데, 거제초등학교 출신 이라서 잘 알아요. 저는 우리 집에 온 아이들 이름을 거의 다 알아요. 초기 에는 노트에다가 하루에 50명씩 이름을 써놓고 외웠어요. 예를 들어서 우 락부락하게 생긴 남자아이에겐 “이야. 너 너무 튼튼하게 잘생겼다. 장군 하 면 되겠다.” 하면서 칭찬을 해주거나 특징을 살려서 이름을 불러주면 애들 이 너무 좋아해요. 옛날에는 저녁에 준비물 사러 많이 오는데, 아이가 뭐

234

때문인지 꼭 이 집에 가야 된다고 했다고 부모님들이 물어봤어요. (웃음) 그 렇게 하루에 한 50명 정도 기록을 했어요. 어떤 아이가 왔는데 생각이 안 나면 수첩을 퍼뜩 보고 누구야 어서 와, 이러면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 요?” 이래요.

선생님만의 고객 관리네요. 처음에 문구점 시작할 때는 학생이 엄청 많았을 거 아니에요. 엄청 많았죠. 학생이 3천 명 넘었죠. 저쪽에 있을 때는 문구점 세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맨 앞에 있는 문구점에서 장사 수단을 다 배웠 어요. 이분은 장사 수완이 얼마나 좋은지 애들이 전부 그 집으로 가요. 어 쨌든 장사를 시작했으니까 잘해야 안 되겠나 싶어서 애들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어요. 우리 집에 온 애들을 거의 다 외웠죠. 그리고 한 번 따라온 아 이들도 외우고. 또 우리 딸들이 1학년, 4학년 될 때니까 친구들 데리고 오 고 그랬죠. 옛날에는 학원에 별로 안 다니고, 학교 마치고 나면 문방구가 놀이터예 요. 남자애들이 아예 가방을 우리 집에 놔두고 놀아요. 1학년 때부터 6학 년 때까지 단골이 되니까 뭐라 해도 능글능글해져서 말을 안 듣는 거예 요. 제발 집에 좀 가라고 나도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얘기하는데, 얘들은 시금을 안 타요. 겁을 안 낸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쫓아내면서 애들하고 친하게 지냈어요. 애들이 순수해요. 그래서 애들 만나는 게 좋아요. 제 적 성에 잘 맞아요.

235

236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던 아이들이 커서 찾아오기도 하나요? 얼마 전에 누가 카네이션을 사러 왔어요. 몇십 년 만에 온 아이였는데 내 가 이름을 기억을 했어요. “제 이름을 아직도 기억해요? 이모님 고마워요” 이러면서 갔어요. 또 어떤 청년들은 제가 못 알아봐요. 물건을 조금 사고 5 만 원을 탁 내면서, “이모님, 그때 우리 엄마가 용돈을 하도 안 주셨는데, 뛰 어놀다 보니 배는 고프고 해서 이모님 모르게 제가 뭐 많이 훔쳐 먹었어요” 이러는 청년도 있었어요. 요즘도 한 번씩 그런 청년들이 와요.

237

옛날에는 운동회를 하면 마을잔치였거든요 판매하는 물품도 옛날하고 많이 달라졌죠?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게 그때는 대형마트도 없고, 다이소나 천냥마트 이 런 것도 없으니까 준비물을 문구점에 와서 해결해야 했어요. 그런데 요즘 에는 학교에서 준비물이 80% 이상 나오거든요. 초등학교도 그렇지만 중고 등학교도 체육복을 사는 그때가 시즌이거든요.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 체육복을 구입해서 나눠 줬는데 올해는 그렇게 안 하네요.

문구점을 하려면 주민들하고도 친해야 할 것 같아요. 주민들하고 많이 친합니다. 아이들이 졸업할 때 엄마들이 입학하는 아이 엄마들을 소개시켜 줘요. 옛날에는 준비물을 사야 되는데 아이들이 깜빡 잊어버리고 가면 외상으로 좀 챙겨 달라고 하거든요. 아이들한테 먹는 건 외상을 해달라고 해도 안 해줘요. 먹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학교 공부에 필요한 건 돈 안 받을 각오를 하고 외상 해줘요. 남들 다 있는데 자기만 없으면 또 그렇잖아요.

문구점 처음 하실 때보다 동네가 많이 바뀌었죠? 문구점 처음 할 때가 91년 초 1, 2월이었던 것 같아요. 이쪽은 거의 주택 가고 법원 쪽에 공장이 있었어요. 거제3동 밑으로 쌍미섬유가 있었어요. 여기에는 이발소 하나 있고 문구점이 셋 있고. 비디오 가게 하나, 분식 가게 가 있었어요. 옛날에 분식 가게는 학교 앞에 꼭 있으니까. 그때만 해도 오 가는 사람들이 많았죠. 요즘은 애들 내놓기가 무서운지 학부형들이 차로

238

태워주고, 태권도 다니는 애들은 학원에서 등교시켜줘요. 하교 때는 학원 에 많이 가죠. 여기 앞은 전부 담이었습니다. 저 밑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쫙 있었어요. 차가 많이 안 다니니까 애들이 길에서 놀았어요. 고무 뛰기도 하고,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서는 여자애들이 놀고, 남자애들은 평상 펴놓 고 미니카 돌리고 했죠.

문구점을 하는 입장에서 느끼는 또 다른 변화도 있을 거 같아요. 졸업식 때는 이웃 사람들이 아이에게 샤프라도 한 개 사주고 이렇게 정 을 나눴는데, 요새는 친척 아이들한테나 선물해요. 어느 순간부터 졸업하 면 엄마들이 핸드폰 사주고 이렇게 바뀌었어요. 이웃 아이가 졸업해도 관 심이 없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어린이날 되면 우리 다닐 길만 만들어 놓고, 선물을 키 높이만큼 쌓아놨거든요. 엄마들이 주문하면 그걸 학교에 배달 했어요. 어느 날부터 학부모들한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요즘엔 그 런 게 없어요.

장사하신다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운동회 할 때 잘 못 가셨겠어요. 그때는 더 바빠서 애들 운동회를 한 번도 못 갔어요. 옛날에는 운동회를 하면 마을잔치였거든요. 할머니들이 새벽 5시부터 자리 잡으려고 돗자리 깔고 이랬어요. 종일 김밥 싸고,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학부형들이 김 밥 많이 싸 왔다면서 먹으라고 주고 했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그런 지 운동회를 오전에만 하고 급식 먹고 집에 가요. 부모님들도 직장에 가니 까. 추억거리가 별로 안 생기는 거 같아요. 저희 딸이 무용을 좀 잘했나 봐요. 학교에서 뽑혀서 운동회 때 무용을 했

239

는데 제가 바쁘니까 옆집에 친하게 지내는 동생 보고 사진 좀 찍어달라고 했는데, 잘못 찍어서 사진이 하나도 안 나왔어요. 그래도 우리 애들이 잘 자라 주는 바람에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소리도 듣고 있어요.

240

241

여기는 이웃 간에 정이 있어요 거제4동에서 학생 수가 줄어든 이유는 뭘까요? 우리나라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잖아요. 이러다가 정말 나라가 없어지 는 거 아닌가 해요. 저는 문구점 몇 년 하다 그만두면 되지만, 국민이 있어 야 나라가 있는데, 인구 절감이 실감이 난다니까요. 지금 한 학년이 100명 이 안 됩니다. 작년 1학년이 72명이었어요. 한 학년에 7, 80명 많으면 90명 이고, 100명 되는 학년이 4학년인가 5학년인가. 학년당 한 반에 20명에 4 학급이에요. 계성여상 그쪽이 지금 개발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거기 있 는 사람들이 이사 많이 갔어요. 그쪽 애들이 더러 왔는데, 그 영향도 약간 있는 것 같아요.

이 동네의 좋은 점이 있나요? 아파트에서 별로 안 살아봤거든요. 잠시 살아보기는 했는데 고층 아파트 는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여기가 이웃 간에 정이 있어요. 누가 안 보이면 왜 안 나오지, 어디가 불편하나, 그렇게 걱정을 해요. 그리고 제가 사람들 택배 를 받아주면 고맙다고 본가나 시댁에서 가져온 상추 같은 걸 갖다주고, 그 러면 저도 다른 걸 나누고 해요. 동네 사람들하고 친할 수밖에 없어요. 그 런 점들이 좋아요. 작은 거라도 서로 마음을 전해줄 수 있는 거니까.

242

화지공원의 5월

243

244

화지산을 알게 된 것은 800년 배롱나무 때문이었다. 내 배롱나무 사랑은 어 느 해 여름휴가 때 지리산 대원사 마당 한 모퉁이에서 첫 대면을 하면서부터이 다. 연분홍 꽃을 활짝 피운 배롱나무의 환한 반김은 내 초라한 마음을 사로잡기 에 충분했다, 이후로 전국의 배롱나무를 찾아다닐 정도로 배롱나무의 매혹에 폭 빠졌었는데 병산서원의 존덕사 배롱나무, 명옥헌의 배롱나무를 으뜸으로 꼽 게 되었다. 배롱나무는 봄이 되면 원숭이도 미끄러워질 만큼 매끈매끈한 수피를 자랑하면서 허물을 벗기 시작한다. 여름이 가까워져 오면 선홍빛 꽃망울을 터 뜨리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피고 지기를 백일 동안 한다고 해서 배롱나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뜨거운 8월에 배롱나무의 꽃은 절정에 다다르게 되고 꽃망울 을 선하게 피워낼 때는 그 붉음에 심장이 쿵 소리를 내는 순간이 있기도 하다.

그런 배롱나무가 부산광역시 진구 양정1동 산73-28번지 동래정씨 시조 선산인 화지산에 2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나무의 나이는 800년으로 추정된다. 내가 처음 이 배롱나무를 찾았을 때는 7월 하순 연붉은 꽃망울이 막 터지기 시작할 해거름 무렵이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구름은 비켜선 듯, 마주한 듯, 반쯤 걸친 듯한 모습으로 묘역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멧비둘기의 구구 소 리가 무거운 적막을 깨며 한층 반가움을 더해 주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찾아갔 던 5월의 배롱나무는 푸르기만 할 뿐이었지만, 아마도 여름에 꽃을 활짝 피울 준 비를 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이곳 배롱나무 두 그루는 둘 다 국가지정문화재인 천 연기념물 168호로 지정되어 있다. 배롱나무는 고즈넉한 절집 마당이나 무덤가에 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절개와 지조를 상징해 충신이나 열사, 선비의 무덤에 심었다 하니 이곳이 바로 정씨 문중 정묘사가 아니던가. 그래서일까? 내가 어릴 적에는 묘지 옆에 있는 나무다 해서 저승꽃이라고 불리었던 기억이 있기도 하다.

245

2021년 5월 초입 화지산을 찾았다. 화지산은 도 심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도시 숲으로 짧은 시 간에 살짝 시간을 내어 걷기 좋은 곳이다. 화지산 의 화지공원은 거제4동 사람들도 즐겨 찾는 곳이 라고 한다.

5월에 찾았을 땐 때죽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워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떨어진 하얀 꽃들은 숲 이 만들어 낸 작은 옹달샘 위로 하얗게 떨어져 최 때죽나무

상의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별들이 꽃을 피웠다고 말하기에 충분했다. 5월의 산야에서 이토록 하얗 게 빛을 내는 꽃이 있다면 그건 단연코 때죽나무라 할 것이다. 때죽나무는 특이하게 꽃이 아래를 향 해 핀다. 하얀 종들이 조랑조랑 열려 일제히 아래 를 향하고 있는데 다섯 장의 꽃잎 속 노랗게 물들 인 수술 열 개를 보려면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

하얗게 빛나는 별꽃들을 지나고 묘지 앞에 우뚝 솟은 배롱나무 두 그루를 지나면 화지사로 가는 길목이 나오는데. 절집 마당을 오고 가는 길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태평스럽게 뒹굴고 있는 느림 의 미학을 증명하는 개 두 마리의 게으름을 확인 할 수도 한다.

246

화지사 마당엔 모란이 있다. 작약과의 낙엽관목 으로 작약과 닮아 있어 작약으로 착각하기 쉽고 모란은 화려한 꽃으로 유명하나 나무다. “꽃 중의 모란

왕”이란 뜻의 화중지왕으로 불리기도 하고 “나라 에서 가장 빼어난 향”이란 뜻의 국색천향이라 불 리기도 하나 분명 모란은 나무다. 한겨울. 마당 한 켠에서 위풍당당하게 서서 나무줄기를 보여주는 데 모란이 나무임을 증명한다.

보통 나무의 나이는 나이테로 센다고 알고 있지 만, 나이를 알겠다고 나무를 벨 수는 없는 일이다. 소나무류의 경우는 규칙적으로 가지가 생기기 때 소나무

문에 가지의 마디로 나이를 세기도 한다. 고령화된 나무보다는 어린 나이의 나무에서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사람의 몸에 살짝 스치게 되면 향긋한 향기를 품어내는 아이가 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얇은 가지에 길쭉한 잎을 달고 비목나무

있는 비목나무이다. 비목나무는 온몸으로 품어내 는 초콜릿 같은 향기로 자신이 비목나무임을 말해 준다. 혹시 화지산을 가거들랑 잎을 살짝 비벼서 코끝에 대어보시라.

247

5월은 조금 이른 때였을까, 하얗게 눈처럼 하늘 거리는 마삭꽃의 향기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곧 다 가올 6월의 화지산에는 하얀 꽃 속에 향기를 차곡 차곡 모으는 달콤한 마삭줄이 있음을 안다. 비록 마삭줄

남의 몸을 빌려야만 성장할 수 있는 몸이지만 향 기를 나누는 것에는 1등이다. 길을 걷다 초콜릿만 큼이나 진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면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올려다보라. 거기서 새하얀 마삭줄꽃이 편백나무를 끌어안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환하게 자지러지는 웃음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배롱나무 안내판이 보이는 바로 앞에는 수령이 좀 되어 보이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계신 다. 모과나무는 나무껍질을 봄마다 조각조각 벗겨 내는데 떨어져 나간 자리는 푸른 빛을 내며 여러 가지 형태를 나타낸다. 이른 봄 다른 봄꽃보다 조 모과나무

금 일찍 연분홍꽃을 피우는데 꽃망울이 터질 때면 어린아이의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볼을 상상하게 한다.

화지산은 봄의 정원, 여름의 정원, 가을의 정원, 겨 울의 정원으로 그 자체로 가진 모습들이 다양하다.

248

거제4동, 마을의 미래를 준비하다

249

250

251

‘쿵쾅쿵쾅!! 드르륵드르륵!’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은 여기를 보나, 저기를 보나 ‘공사 중’이다. 주택은 빌라 로, 빌라는 아파트로 시간이 지날수록 재개발로 과거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원주민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고, 어린 시절 자랐던 동네는 사라져 버렸다. 부산 연제구도 거제1구역 재개발, 거제2구역 재개발, 연산1구역 재개발 등 십여 년이 넘게 일반 주택들이 아파트로 변신 중이다.

날이 갈수록 신축 아파트에 둘러싸인 주택가는 외로운 섬처럼 고립되고, 그들 이 볼 수 있는 하늘의 크기는 손바닥만큼 작아져 버렸다. 주거정책은 아파트를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이렇게 고립된 주택가 지역을 ‘재개발’이 아닌 ‘재생’이라 는 이름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사업들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2018년 국토교통부가 공모한 도시재생 뉴딜 공모사업에 ‘연으로 다시 피어 나는 거제4동 해맞이 마을’ 사업이 선정됐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에 걸친 사업에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어 추진 중이다. 주민들의 주거복지 실현, 생 활기반 개선, 공동체 활성화 사업이 주요 전략사업이다.

도시재생 현장 지원센터 활동가들은 이 사업들을 위해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주민이 참여하는 사업을 발굴하며 관계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도시 농부, 마을기자학교, 도시재생대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주민 들이 제안한 사업으로 미싱으로 소품을 만드는 팀과 글쓰기 모임을 하는 팀이 운영되고 있다.

252

도시재생 사업으로 진행하는 마을 주민 참여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주민들 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주민들 간 교류가 점차 사라져가던 일상에서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으며, 마을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주민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과정이라고 느꼈다.

253

“우리는 주변 일에 별로 관심 없었어요.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면서 산동 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알았어요.”

- 김의향

“언니들하고 이야기해보면 이런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가고 싶다는 생 각이 들어요. 그런 욕심이 있어요. … 저는 사람이 좋은 걸 처음 겪어봤어 요.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살면서 처음 해 봤어요. … 이런 사람들을 어디서 만나겠나 싶어서 끈을 놓고 싶지 않아요.” - 박순철

“그 전엔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마을기자학교에서 글이 나오면 신문 이 되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혼자서는 안 될 일이잖아요. … 사람이 모 이면 작은 거라도 이어갈 수 있겠다 하는 바람이 있죠. 내년까지는 열심히 교육받고, 그다음에는 우리가 자립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좋겠어 요.”

- 김인순

<연으로 다시 피어 나는 거제4동 해맞이 마을 사업>의 주요 내용 주거복지실현 사업

생활 기반 개선사업

• 30년 이상 단독주택 개·보수

• 공영주차장 신설

• 노후 불량 주택 정비

• 순환형 임대주택 공급

공동체 활성화 사업

• 복합커뮤니티 센터 건립

• 소공원과 커뮤니티 가든 조성

• 주거밀집지역에 소방도로 개설 • 계단 안전 손잡이 설치

• 골목길 미끄럼 방지 바닥 정비 • 벽화 이야기 길 조성

• 횡단보도 LED 보도블록 설치

• 스마트 쓰레기 수거 관리 시스템 도입 • 스마트 버스정류장 운영

254

255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내가 살기 좋은 마을이 아니라 함께 살기 좋은 마 을을 만들기 위한 고민도 엿볼 수 있었다.

“놀이터는 2개의 빈 땅 중에 외곽이 아니라 중심에 배치하는 걸로 요청했 었죠. 아무래도 마을의 중심에 놀이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놀이 터뿐만 아니라 마을 광장의 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 보면 쿨데삭[cul de sac]이라는 도로 구조가 있어요. … 최대한 차량 통행 이 불편한 구조로 가게끔 제안했어요. 아이들이 놀기에 안전하고 사람들이 도보로 산책하기 편안한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 박왕국

마을 주민들이 모이는 프로그램에 갈 때마다 정겨운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통한 배움이 주민들에게 가까운 미래에 스스로 마을을 꾸려 가기 위한 자양분이 될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는 듯 했다. 주민공동체가 만들어 갈 거제4동이 기대된다.

사진제공 : 거제4동 해맞이마을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저는 사람이 좋은 거 처음 겪어봤어요 박순철 1974년생 남주옥 1957년생 인터뷰는 종종 박순철 님과 남주옥 님의 대화로 이어졌다. 유림아시아드아 파트에 사는 박순철 님과 마을에 산지 오래 된 남주옥 님은 도시재생 프로그 램에서 만나 많은 나이 차에도 언니 동생으로 지내고 있다. 언니들에게 배우 고, 아우들에게는 나눔하는 관계에서 마을의 미래를 함께 이야기 하는 관계 로 계속 발전 중이다. 그들의 대화는 줄곧 그런 내용이었다.

258

259

살아보니 전망도 좋고 살기가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 박순철은 ‘철’, 남주옥은 ‘옥’으로 표기했다.

유림아시아드 아파트로 오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철제 가 주택에 살다가 빌라에 살았어요. 그런데 우리 옆집에 도둑이 든 거

예요. 그날 제가 집에 있었거든요. 그 당시 나이도 젊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무섭잖아요. 바로 이사갈 집을 알아봤는데 여기에 왔을 때 경치 가 너무 좋은 거예요. 다른 데보다 여기가 살기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바로 온 거죠. 살아보니 전망도 좋고 살기가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 고 우리 아들이 이 집을 좋아해요. 마하사 쪽 산도 보이고, 해운대 쪽도 보이거든요.

이 아파트만의 특징이 있던가요? 철이 런 대단지에 산 건 처음이에요. 유림아시아드에 사는 사람들은 유림

아시아드에서 돈다는 말이 있어요. 왜냐하면 여기를 떠나면 이만한 경 치가 별로 없어요. 아파트가 길쭉하게 돼 있잖아요. 저 밑에 몇 군데 빼 곤 앞뒤가 다 뚫려 있어요. 이런 전망을 가진 데가 없어요. 대신에 단점 은, 저는 아파트 내에서 이사 다녔기 때문에 이 동 사람도 알고, 저 동 사람도 아는데, 보통은 자기 동 밖에 몰라요. 그래서 진짜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이 아파트에 오면 된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조용해서 우울증이 오더라, 이런 얘기도 있어요.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많이 다녀야 하는데, 여기뿐만 아니라 거제4동 일대가 진짜 사람 없는 동네거든요. 나오면 사람 만나기가 너무 힘들어요. 애들이 없어요.

260

옥우 리 목화아파트도 애들이 없어요. 애들 우는 소리, 웃는 소리를 들어야

활기가 생기잖아. 우리 아파트 주차장 앞에 놀이터가 있었거든요. 노는 애들이 없어서 지금은 철거했어요. 전에 옆집에 신혼부부가 살았어요. 애 우는 소리 들리니까 너무 기분이 좋은 거라. 시끄러운 게 아니고 너무 기분이 좋아 지대. 음악 소리보다 더 좋은 거야. 유림아파트에는 그래도 애들이 있는데 여기 빌라에는 거의 없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은 엘리베 이터도 없지, 불편하니까 거의 안 살아요.

그래도 유림아파트에는 아이들이 좀 있죠? 철저 는 애 둘을 키우면서 매년 생일 때 한 번도 안 거르고 생일파티를 해

줬어요. 그리고 이 아파트에서 제일 큰 놀이터가 있거든요. 거기는 옛날 에 사슴도 키우고, 토끼 키우고, 새도 키웠어요. 거기가 산책로처럼 연결 되어 있고, 더 밑으로 가면 농구대, 인라인 장이 있거든요. 그 놀이터에 서 제가 아이들을 모았어요. 저는 애들 데리고 노는 걸 되게 좋아해요.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동네 아이들 불러서 ‘다망구’, ‘잡기 놀이’도 했어 요, 애들이 시간 되면 우리 집 인터폰으로 연락해요. 놀다가 배고프면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간 애들도 있어요. (웃음)

261

같이 만나서 이야기 듣고, 이야기하고 이러면 인생 공부지 두 분은 어떻게 서로 친해지셨어요? 철우 리는 도시재생 활동하면서 알게 됐죠. 언니 딸내미가 저보다 나이가

많아요. 근데 제가 왜 언니라고 하냐면, 처음에 캘리그라피 수업한다고 모였을 때 어떤 분이 나이가 80세가 넘었어요. 언니라고 불러주는 게 너 무 좋다는 거예요. 그때 제가 농담으로 “그럼 다 언니죠.”라고 했는데, 너 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 뒤부터 80세 미만은 다 언니예요. 그러다 보 니까 더 친해지는 것 같아요. 옥나 는 동사무소에서 요가를 해서 형님들을 먼저 알았잖아. 나이가 좀 들

었으니까 언니라고 하긴 그렇거든. 그래서 형님, 형님 했어요.

세대마다 호칭이 다르네요. 철저 는 기자학교에서 막내예요. 사실 언니 같이 ‘삶의 지식’ 수준이 높으신

분들이 밭 관리 잘하고 재봉틀도 잘하시거든요. 재봉틀을 하나 받았어 요. 언니가 구해주는 거예요. 누가 뭔가 필요하다면 알아서 착착착 찾아 요. 그런 걸 잘하세요. 옥그 냥 같이 만나서 이야기 듣고, 이야기하고 이러면 인생 공부지.

262

동네 홍반장 역할을 하시네요. 미싱은 어디서 구해오시는 거예요? 옥 옛날

어른들 쓰시는 거 있잖아요. 요새는 자동으로 오버로크도 되고 다

되는데, 옛날 건 일자로 박는 거만 됐잖아요. 연세 많은 분들이 쓰시다 가 요양병원 가시고, 돌아가시고 하니까 필요가 없잖아요. 그것도 사려 고 하니까 10만 원씩은 줘야 사겠더라고요. 배울 때는 굳이 좋은 게 필 요 없으니까. 나도 오래된 미싱을 쓰는데, 바짓단 줄이고, 옷 터진 데 깁 고, 손에 들고 다니는 가방 같은 거 만들고 그래요. 정식으로 홈패션 이 런 걸 배우지는 않았어.

해맞이마을신문 창간호 3면 남주옥 님과 박순철 님의 기사 (출처: 거제4동 해맞이마을 블로그)

263

글이 살아 있다는 게 이거예요 마을 기자로 활동하신다고 들었어요. 철 마을 신문을 기자단에서 만드는 거예요. 기자단은 작년 3월이었나, 처

음 수업을 시작했고 기자단을 만들어서 뭔가 하자고 했던 건 아마 작 년 말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준비호가 처음 나왔죠. 12월에 준비호 나오고, 창간호는 바로 했죠. 이번에 3호 준비하고 있어요. 3호는 6월, 4호는 9월에 나와요. 옥 우리 같은 사람은 옛날에 시골에서 살기가 힘드니까 공부를 못했잖아

요. 기자학교에 가면 아무것도 모르겠고, 글 쓰는 것도 어려워서 힘들어 요. 건 당연한 거예요. 그래도 언니 글이 마을 신문 메인이 올랐잖아요. 언 철 그 니 글은 공감이 많이 되고, 상황 묘사를 되게 잘하세요. 글이 재미있어요. 옥 내가 나이 많다고 잘 봐줘서 그렇지. (웃음)

마을 신문에 실을 글을 직접 쓰시네요. 철 언니가 글을 참 잘 쓰세요. 필명이 ‘세이노’예요. 저는 ‘하비’고. (웃음) 다

른 사람들이 ‘예스[yes]’라고 얘기할 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이 되라는 거죠. 마을 신문 창간호 3면인가 2면에 무전, 배추전에 대한 언니 글이 있는데, 글을 내고 무전, 배추전을 또 만들어줬어요. 그러다 보니 글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글이 살아 있다는 게 이거예요. 그리고 언니가 따로 공간을 마련했어요. 언니가 그 집을 사랑방같이 활 용해요. 항상 가면 냉장고에 있는 걸 싸주세요. 나눔을 잘하세요.

264

그게 어떤 공간인가요? 옥그 냥 주택 쪼맨한 거 하나 있는데, 손주들이 오면 뛰어놀기 좋으라고요.

여기는 아파트라서 마음대로 못 뛰잖아요. 그 집을 평소에는 우리 사랑 방으로 쓰면서 누구든지 시간이 있으면 모여서 차도 한잔하고 그렇게 쓰 려고요. 철 언니가 구해준 미싱을 혼자 가지기 그래서 다 같이 공유하게 갖다 놓을

까 싶은데. 언니, 우리 그런 거 한번 만들어봅시다. 옥 공유할 거 있으면 공유하고, 그렇게 하자고. 참 좋은 얘기다. (웃음)

마을 기자단 외에 또 다른 활동도 하세요? 철 뉴딜 사업으로 교육 프로그램들이 많더라고요. 마을에서 활동을 좀 하

라고 이런 교육을 하는 것 같은데요. 저도 우리 아이를 학원에도 안 보 냈고, 집에서 제 아이만 신경 쓰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 게 집에만 있다가 우울증인가 하는 의심이 생길 때쯤 캘리그라피 프로 그램이 있다고 아파트에 붙어 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제가 입문을 한 거죠. 캘리그라피 수업이 뭔지도 모르고 일단 갔는데, 수업을 해 보니까 선생님도 편안하시고,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들도 너무 좋은 거예요. 그 래서 주민들과 수업을 한 개, 두 개 듣게 되었는데, 하나하나가 너무 좋 은 거예요. 지금은 새로운 수업 있으면 바로 신청해요.

265

저는 사람이 좋은 거 처음 겪어봤거든요 프로그램을 통해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으신 것 같아요. 철 삶의 질이 많이 올라갔죠.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듣는 거니까 훨

씬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옛날에 학점만 따려고 바득바득했던 대학 때부터 훨씬 나은 것 같아요.

남주옥 님은 결혼해서 이곳에 오셨으면, 그동안 마을의 변화를 많이 보셨겠네요. 옥유 림아파트 들어오기 전에는 여기에 전부 산이었어요. 산동네는 전부 판

잣집이었는데, 공동우물에서 물을 퍼다 먹었어요. 새벽에 줄 서서 지게 지고 물 갖다 먹고, 연탄을 땠고요. 지금도 113동 밑으로 그 흔적이 남 아 있어요. 목욕탕 밑 사거리 있잖아요. 거기서 올라가는 길이 완전히 고 바위[언덕배기]잖아. 그런데 거기에 집 지어놓고, 참 옛날에는 그렇게 살 았어요.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여기에 해맞이역이 없었어요. 거제초등학교에서 철도 소리가 나면 기차 보려고 뛰어간 애들이 있었어요. 그 길이 조금 불 편했었어요. 지금은 길을 많이 닦아놨는데, 차 다니는 길과 아이들 다니 는 데가 분리가 안 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차단기가 있었는데, 기차 지나 는 시간이 되면 못 지나가요. 큰길로 나가는 길이 몇 개 없었던 걸로 알 고 있어요. 지금은 다니기 편하게 길을 많이 만들어놓은 거예요.

266

267

도시재생사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신데, 이런 마을의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철 저는 좋게 생각해요. 뭘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결과가 조금 나쁘게 나오

더라도 어떻게 보면 나중에 본보기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 경험을 해야 알 수 있기 때문에 변화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아요.

도시재생 사업이 끝나더라도 뭔가 지속될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겠다 싶어요 철 언니들하고 이야기해보면 이런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싶다는 생

각이 들어요. 그런 욕심이 있어요. 수업 외에 개인적으로 만날 때 빠져 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거 아니에요. 왜냐하면 전문가가 있는 것도 아니 고, 특별한 리더가 없으면 빠져나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사람이 좋은 걸 처음 겪어봤어요.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살면서 처음 해 봤어요. 예전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기댄다는 생각에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내가 뭔가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조금만 잘 해드려도 되게 감동하시고, 나한 테 이만큼 주세요. 그런 걸 보면서 진짜 여기 모인 사람들은 진국이구나, 이런 사람들을 어디서 만나겠나 싶어서 끈을 놓고 싶지 않아요. (웃음)

이웃이 준 반찬을 맛있게 먹으면 그게 좋은 거잖아요 김인순 1961년생 아파트를 떠나 텃밭과 마당이 있는 집을 찾아 거제동으로 이사온 지 6년이 된 김인순 님은 마을 토박이 못지 않게 주민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 도시재생 프로그램으로 만나게 된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 마을 주 민들과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마을의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좀 더 나 은 세상을 꿈꾸는 김인순 님과 마을 주민의 마음이 맞닿아 있어 보인다.

270

271

봄이 되면 아침에 일어나서 뭐가 피었나 봐요 거제4동에 언제 이사 오셨나요? 한 6년 됐어요. 저희 친정이 문현동이에요. 제가 직장생활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오랫동안 거기서 살았어요. 아파트에 많이 살잖아요. 근데 나는 땅 을 밟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옆에 텃밭이 10평 정도 있었어 요. 그게 좋았어요. 나에게는 최적의 집이었는데, 이 집만 도시가스가 안 들어와요. 도로공사 하는 줄도 모르고 샀어요. 도로가 난 건 좋은데, 우리 텃밭이 날아간 건 아까웠어요. 하지만 지금도 아파트에 살았다면, 하고 생 각하면 그래도 주택이 나아요. 이 집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거였어요. 봄이 되면 아침에 일어나서 뭐가 피었나 봐요. 며칠만 지났는데도 어느새 꽃이 피어 있는 거 보면 “미안해” 그래요. 니가 이렇게 피었는데 내가 몰라 봐서 미안하다고 아침 인사 나누고 해요.

집을 알아볼 때 이 동네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올케가 이 동네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나보고 이 집이 여러모 로 다 갖춰져 있는 집이니까 기왕 주택 사려면 이 집을 사라고 했어요. 가격 이 되게 싸게 나왔어요. 저는 집을 재테크 대상으로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 해요. 사람들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272

선생님이 여기 이사 온 후에 집 구조를 바꾸거나 외벽을 고친 게 있나요? 내 스타일에 맞게끔 다시 고친 거죠. 외관은 그대로예요. 약간 페인트 칠 을 다시 하고, 창문이 좀 많이 넓어졌어요. 그러고는 손을 별로 안 봤지요. 벽이 갈라져서 신랑이 한 1년 반 전, 한여름에 보수 했어요. 그렇지만 사람 이 이렇게 고치며 사는 능력을 가지는 것도 괜찮은 것 같긴 해요. 어려운 건 돈 들여서 하고, 간단한 거는 신랑이 알아서 하고. 본인도 좋아해서 그렇지 않을까요. (웃음)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나서도 마을이 많이 변했죠? 많이 변했죠. 여기에 집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죠. 앞집도 있었는데 도로 때문에 다 뜯었어요. 어떻게 보면 깨끗하게 보이기는 하는데, 우리 앞집 사람 이 한동안 왔었어요. 그리움이 있나 봐요. 엄청 오래 살았다고 하더라구요.

273

이웃이 준 반찬을 맛있게 먹으면 그게 좋은 거잖아요 여기 오시고 난 뒤에 동네 분들과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하셨나요? 조용한 곳이었는데 도시재생 마을로 선정이 되었어요. 2년째 접어들었어 요. 전에는 도서관 같은 곳에 수업 들으러 다녔는데 우리 마을에도 그런 게 있구나, 하고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도시재생 사업으로 하는 도시 농 부, 글쓰기, 마을기자학교, 캘리그래피 이런 프로그램에 거의 다 참여하고 있어요.

그전에는 따로 주민들이랑 만날 계기가 없었는데, 프로그램으로 만나게 되셨나요?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지금은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을 늘 봐요. 마 을기자학교에서 글이 나오면 신문이 되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혼자서 는 안 될 일이잖아요. 사람들의 생각이 모여서 글이 되고, 신문이 되니까 되게 신기해요. 누가 읽어보면 좋겠어요. 마을기자학교 선생님이 계속 신 문이 나오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시면 그게 될까 생각 하다가도 사람이 모이 면 작은 거라도 이어갈 수 있겠다 하는 바람이 있죠. 내년까지는 정부에서 지원해주니까 열심히 교육 받고, 그다음에는 우리가 자립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좋겠어요.

274

프로그램 이외에 평소에 주민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아파트에 살면 누가 옆집에 사는지도 모르는데 수업에서 만난 이웃들은 음식을 만들면 무조건 나눠요. 뭘 많이 갖다주세요. 그럼 나도 집에 뭐 없 나 찾아보게 되고요. 신랑이 고마운 사람들한테 선물 줄 거라고 마늘을 항 상 사요. 마당 안쪽 창고에서 흑마늘을 만들어요. 그걸 이웃분께 드려요. 그런 게 흐뭇하잖아요. 이웃이 준 반찬을 맛있게 먹으면 그게 좋은 거잖아 요. 저도 웬만하면 뭐라도 나누려고 노력을 하죠.

주민들이 모이게 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숙제죠 도시재생 프로그램이 좋은 기능을 하네요. 대천마을에 견학 가보니까 거기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더라고요. 우리 마 을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 이런 자극도 받고 부럽기도 하고 그랬죠. 요새는 아이들도 공부만 하는 시대는 아니더라고요. 그걸 내가 이때 알았다니까 요. 우리 애들 키울 때 학원을 자꾸 뺑뺑이 시키잖아요. 퇴근할 때까지 계 속 돌렸거든. 그런데 그 동네는 안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도시재생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서 앞으로 어떤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으실까요? 그런 수업들이 얼마나 내 역량을 높일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배운게 쓰 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건 우리 숙제 같은 거거든요. 주민들을 모 이게 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숙제죠. 텃밭 분양도 하고 자치회에서 같이 할

275

일을 만들 거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제 열심히 해보려고요. 옛날에는 어느 정도 일했으니 이제는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새는 나이가 들어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우리 마을이 재생 마을이어서 좋고 제가 혜택을 많이 받고있는 것 같습니다. 감 사한 거죠. 좋은 발전이 있기를 바라죠. 어제 주민 공모 사업 발표를 했어요. 제가 바느질을 좀 좋아해서 관련 사 업으로 발표했어요. 손바느질로 마스크를 만들어 쓰고 다녔어요. 필요성을 어필하는데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됐어요. 코로나 때문에 애하고 어른하고 할 거 없이 마스크를 다 쓰는데, 폐기물이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서 일회용을 줄이고 환경을 생각했으면 해요. 얼마 전에 책을 읽었는데, 너무 공감가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우리는 하 루도 거르지 않고 쓰레기를 만들고 있고, 화장실 한 번 가는데, 물과 휴지 를 참 많이도 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였어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 복하면서 쓰레기를 만들잖아요. 물을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 어요. 저는 마을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소하지만 환경을 위 해 작은 실천을 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276

여기 계속 살고 싶어요 평소 마을에서 일상은 어떤가요? 저는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걸 좋아합니다. 산책하면서 이 집에 사는 사람 이 누굴까 생각해요. 가끔 여행 온 기분도 들고요. 코로나 때문에 어디를 못 가잖아요. 그러면 내가 지금 여행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출발해서 철도관사 건물[116호를 말함]까지 내려가서 한 바퀴 돌고 와요.

어떤 것에 관심이 많으세요? 제가 어릴 때부터 일기를 좀 많이 썼어요. 지금도 글 올리는 사람이 몇 사 람 안 돼요. 저하고 박순철 씨 하고 두 사람이 많이 올리는 편이고요. 도서 관에 가면 책을 5권 빌려와요. 도서관에 자주 가는 편이에요. 그리고 아까 도 얘기했지만 제가 환경에 관심이 많아요. 환경을 위해 실천한다는 게 약 간 고달픔이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내가 어디 갈 때 컵을 들고 가야 하잖아 요. 바쁜데 그걸 챙겨 간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사람들은 빨리빨리를 외치 는데 뭐든 쉽게 하려고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거제4동에 거주하면서 좋은 점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여기 계속 살고 싶어요. 가장 좋은 거는 공기인 것 같아요. 제가 전포동 도로변에 있는 아파트에 한 10년 넘게 살았거든요. 물론 여기 있다고 먼지 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때는 뒷베란다 보면 까매요. 미세먼지 이런 걸 생각 하면 여기는 사람으로 사는 환경으로는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리고 이 동네가 도로변이 넓어서 좋아요. 옛날에 관사 지을 때 그렇게 해 놓

277

은 것 같아요. 산이 근처에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화지산에도 한 번씩 가 요. 그것도 너무 잘 되어 있어요. 높지도 않고 산책하기 좋아요. 지하철이 안 다닌다 뿐이지 교통편은 많은 것 같아요. 서면하고도 가깝잖아요. 시민 공원도 걸어서 갈 수 있고.

지금과 크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 머물 수 있는 마을이면 좋겠어요 박지영 1982년생 박왕국 1978년생 박지영, 박왕국 가족은 거제4동의 예비 주민이다. 박왕국 님의 고향인 거제2 동은 아파트 단지 건설로 사라졌지만, 어릴 때의 기억이 많이 남아 있어 인접 한 거제4동에 집을 짓고 싶어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 집만을 생각하는 것 이 아니라, 살고 싶은 마을의 모습을 그려가며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 다. 꿈을 위해 박왕국 님은 멀리 남극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박왕국 님과 박지영 님의 인터뷰를 각각 진행하게 되었다. 박왕국 님의 인터뷰는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했다.

280

281

지금은 거제3동에 거주하고 있어요 결혼으로 거제동에 오시게 된 거죠? 네. 저는 김해가 고향이고요, 13년 전 결혼하면서 거제3동으로 이사 왔 습니다. 남편은 지금 아파트 재개발하고 있는 거제2동에서 태어나 쭉 살았 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은 남극에 있고, 두 딸과 시어머님이랑 같이 살고 있 습니다.

산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거제4동에 집을 지으려고 결심하게 되셨나요? 아이가 네다섯 살 때쯤 직장생활에, 육아에 지쳐 있을 때, 주말 저녁에 남 편이 아이들은 두고 둘이서 잠깐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더라고요. 목적지를 알려주면 저도 찾아볼건데, 이날은 그냥 가자고 하더라고요. 교육청 뒤쪽 으로 한참 올라가요. 나무 동굴처럼 녹음이 짙은 터널을 따라 올라가면 청 구하이츠까지 못 가서 공터가 있어요. 거기 서서 시청 저기 멀리까지 내려 다보이는 전망이 너무 좋더라고요. 항상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들만 보다가 시청이랑 저희가 사는 아파트까지 내려다 보이는 게 너무 좋았어요. 약간 노을이 지는 하늘, 조금씩 불이 켜지는 건물들, 그리고 저 멀리 황령산 모 습. 바람도 조금씩 불고, 막힘없이 시원한 느낌. 산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쪽에 땅 매물이 있다는 부동산 연락을 받고,

282

우여곡절 끝에 매입하게 되었어요. 거기가 유림아시아드 근처 공터거든요. 사실 그 공터를 보면 ‘여기에 어떻게 집을 짓지?’ 이런 생각을 하실 거예요. 주택 매물도 많이 보러 갔어요. 그런데 새로 지으려면 건축법 때문에 용적 률이 거의 반토막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땅을 사게 된 거예요. 20평 정도 이고 옆 땅을 사지 않는 이상 집짓기 힘들기도 하지만 일단 꿈은 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구매했죠. 거기가 거제4동입니다.

집을 지을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저희는 매년 건축박람회 같은 곳에 다녀요. 집을 어떤 식으로 짓겠다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요. 콘크리트 구조라든지 목조주택이라든지 이런 것들 있잖아요. 창호는 무슨 창호를 하고. 이런 자료들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요. 땅을 산 건 거의 마지막에 산 거지, 저희 머릿속으로는 창의 방향 등 다 계 획이 있었던 거죠. 땅을 보시는 분들은 맹지가 아니냐, 뭘 모르고 샀다고 하시는데, 당장 지을 것도 아니고 저희는 아직 젊으니까 몇 년 동안 돈을 모 아서 좀 더 땅을 사든지 하자고 했죠. 현재 거기는 마을 주민들이 농작물 을 짓고 계세요. 저희가 집 지을 때까지만 하기로 하고요. 땅을 놀리는 것보 다 나으니깐요.

거제4동 도시재생 사업에는 어떻게 참여하시게 되었나요? 땅 사고 나서 한 1년 뒤에 구청에서 연락이 왔어요. 뉴딜 사업에 선정되었 다고. 처음에는 집 짓는데 제약이 많거나,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없는 거 아 닌가 하는 걱정을 안고 주민 설명회에 갔거든요. 처음 주민 설명회 때는 분 위기가 좋지 않았어요. 다들 도시재생이라는 사업을 이해 못 했고, 저도 마

283

찬가지고요. 재건축, 재개발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언성도 높아지고요. 도 시재생 사업하면서 마을 센터에서 여러 가지 교육을 하잖아요. 남편도 집 수리 봉사단에서 변기 설치하고, 수도 배관 고치는 것들을 배우면서 혼자 서도 집을 지을 수 있겠다고 생각할 만큼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라 고요. 저도 작년에 육아휴직 할 때 도시 농부 수업을 들었어요.

남편이 남극에 세 번 정도 더 갔다 와야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집을 직접 짓고 싶은 건지요? 네. 지을 수 있으면 지어야죠. 남편이 저 멀리까지 돈을 벌어오겠다고 간 건데요. 요즘 집값이랑 물가 오르는 거 보면 남편이 남극에 세 번 정도 더 갔다 와야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남편분은 어떻게 남극으로 가게 되셨나요? 남편 전공은 철학이랑 법학을 전공했는데, 결혼하면서 기술직으로 기계 냉동 관련한 직장생활을 했어요. 2년 전 제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남극 에 월동대원을 모집한다는 채용 공고를 봤어요. 과학자들만 가는 줄 알았 는데, 남편이 하는 일로도 갈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추천했고, 남편도 처음에는 의아해했는데, 잘 준비하면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서 준비했어요. 왜냐하면 아무나 갈 수 있는 데가 아니기도 하고, 살면서 한 번 정도는 경험 해보고 싶은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284

혼자 하는 육아는 어떤가요? 남편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저는 바깥으로 활동하는 걸 좋아해요. 아이들 키울 때도 제가 다 했거든요. 남편이 없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사실 살림은 어머니께서 도와주시고요. 1년인데요. 평생 같이 살 텐데 1년 정도 없는 것도 서로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었죠. (웃음) 아이들 도 이제는 좀 컸으니깐요.

남편은 언제부터 집을 직접 짓고 싶으셨나요? 어디든 우리만의 집을 짓고 싶어 했었어요. 저희가 건축박람회 매년 가는 것도, 직접 짓고 싶어서예요. 그전에는 친정이 있는 김해에 매물이 나서 지 으려고도 했어요. 하지만 시어머님께서 거제리 쪽에서 오랜 시간 사셨다 보 니 이사하기도 그렇고 해서 인근에 알아보다 그쪽에 땅을 사게 된 거죠. 시 어머님은 지대가 높아서 싫다고 하세요. (웃음)

아이들 반응은 어떤가요? 저희가 텔레비전을 보더라도 집 짓는 프로를 많이 봐요. 그래서 그런지 특이한 집들을 많이 알아요. “아빠, 우리는 고양이 집으로 지어주세요. 1층 에는 잔디도 있고, 다락방도 넣어주세요”. “고양이 가게 부엉이 집처럼 불을 켜면 부엉이 모양이 뜨게끔 해주세요”라고. 상상력이 가득해요. 평범한 집 에서 벗어난 집들을 원해요. 지난번에 가족사진 촬영을 하러 스튜디오에 갔는데, 거기 마당 벽에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림을 그려놓 은 거예요. 지브리스튜디오 영화를 애들이 많이 봐서 아는데, 딸아이가 고

285

양이하고 자기가 그림을 그려서 마을 벽화를 계절마다 바꾸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네가 알아서 그리라고 말했죠. 계속 그렇게 우리 집에 관해서 얘기를 하죠.

286

우리가 유니크한 집을 지으면 그게 랜드마크처럼 되어 동네 분위기가 바뀌지 않을까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드림하우스는 어떤 형태인가요? 옆에 있는 땅을 더 매입하지 않으면 10평밖에 안 돼요. 조금 힘들긴 한데 요즘 협소주택도 많이 지으니깐요. 5층까지도 올릴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1층은 차고이면서 남편의 공구 창고가 되고, 2층은 슬라이딩도어를 열면 야외활동 할 수 있는 일체 오픈 공간으로 짓고, 3층부터는 생활공간으로, 옥상은 평상 놓고 맥주 한잔 마실 수 있는 그런 공간. 또는 1층에는 오래된 캠핑카 두고 애들 방처럼 사용하자고도 해요. 그게 법에 저촉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남편은 1층에 커피숍처럼 차려놓고 마을 사람들이 오 고 가는 사랑방처럼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어요.

남편분이 집에 대한 철학이 남다르신가 봐요? 우리가 유니크한 집을 지으면 그게 랜드마크가 되어 동네 분위기가 바뀌 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해요. 저희가 산 땅 주위에 정말 다 쓰러져가는 폐가 같은 집들이 몇 채 있더라고요. 주위는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고요. 그 래서 너무 신기했어요. 거기 골목이 뉴딜사업 지정구역이에요. 도로는 아 니고 골목길이라 우리가 집을 짓는다고 달라질까 싶지만, 밑에서 올라가면 저희가 지을 집이 잘 보이는 구조거든요. 갈 길은 멀겠지만, 남편 말대로 된 다면 좋은 거니깐요.

287

거제4동 주민들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요?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지금 사는 동네의 주민들도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도시 농부 수업을 들으면서 거제4동 어르신들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제가 제일 어린 것 같았어요. 농작물 키우는 것에 대해 처음 보는 분들임에도 관 심 가져주시고 많이 알려주셨어요. 수업에 오시면 어제 있었던 일을 가족 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분들이시더라고요. 도시 농부 수업에서는 작 물을 잘 키워서 마지막에는 가든파티 하면서 이웃들 초대해서 고기 쌈도 먹고 했어요. 남편은 주민 협의체 모임에 가서 얼굴도 익히고 자기가 어떤 집을 짓겠다 는 이야기도 이미 다 한 것 같더라고요. 이웃이 될 어르신에게 조금 돈을 보 태서 집을 수리하면 예쁘지 않겠냐며. 그 사업은 어차피 도로 내고 주민들 편리하게 하는 사업들을 하지, 집 자체를 어떻게 해주진 않잖아요. 그건 자 기들 몫이기 때문에 마을을 좋게 꾸미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해야 하니 까, 자기가 집을 이렇게 할 거니 그 인근 집들도 조금씩 꾸미자는 얘기를 계 속한 것 같더라고요.

288

지금과 크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 머물 수 있는 마을이면 좋겠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거제4동 주민이 될 사람으로서, 마을이 어떻게 변 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을까요? 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을의 변화라고 하면 다 밀고 새로 뚝딱뚝딱 화려하게 건물을 짓는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철도관사 라든지 오래된 건물들은 지키면서 골목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기는 어디든 빌라잖아요. 소통이 잘 안 되잖아요. 마 을이 가든 빌리지도 좋고, 뭔가 사람이 머물 수 있게끔 하는 그런 컨셉이었 으면 해요. 놀이터, 공원, 어르신들 커뮤니티 센터라든지 소통의 장이 되게 끔 잘해놨는데, 도시재생 사업 자체가 끝나더라도 어르신들과 이웃분들이 같이 어울려서 우리 마을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지면 좋겠어요. 이웃이라 는 느낌이 전해지고, 크게 변하지 않는 마을, 그런 마음들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289

[제15회 부산가족축제_가족영상공모전] 최우수상_남극에 간 아빠를 기다리는 우리가족 (출처: 부산광역시건강가정지원센터 유튜브)

290

291

여기는 남극세종기지입니다 안녕하세요. 잘 들리시나요? 안녕하세요. 잘 들립니다. 한국이랑 12시간 시차가 나는 여기는 남극세종기지입니다.

남극 생활은 어떠신가요? 여기는 출퇴근 개념이 없습니다. 숙소에서 한 층 내려가면 바로 출근이거 든요. 그만큼 출근 시간이 절약되니까 그 시간에 책도 볼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할 수 있어서 한국보다 더 알차게 보내고 있는 것 같 습니다.

남극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원래는 비행기를 타고 여러 나라를 거쳐서 가게 되어 있는데, 이번에는 코로나 영향으로 아라온호라는 배를 타고 가게 됐습니다. 바로 간 게 아니 라 먼저 자가격리 2주하고, 출발해서 뉴질랜드를 거쳐서 장보고 기지에 도 착한 뒤에, 다시 또 칠레를 거쳐서 세종과학기지까지 오게 된 겁니다. 76일 로 알고 있어요. 날짜 변경 선을 두 번 넘었거든요.

어떤 업무를 하시나요? 세종과학기지 안에 설비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계 설비를 담당하고 있고 요, 월동대원들이 1년 동안 먹을 식자재들을 보관하고 있는 냉동창고가 있 는데, 거기 냉동 설비를 담당하고 있어요.

292

남극에 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아내가 모집 공고를 보고 알려줬는데요, 거제4동에 집 지을 비용 마련뿐 만 아니라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행정 업무가 저의 주 업무였는데요, 책 중에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라는 책을 읽고, 손으로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된 이후로 기술직으로 갈아 타게 됐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293

산도 깎이고 이제 예전 어릴 때 모습이 다 사라졌어요 거제4동에 집을 짓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 중인 거제2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 데, 이제는 돌아갈 수가 없어요. 산도 깎이고, 예전 모습이 다 사라졌어요. 아주 속상합니다. 추억이 있는 곳인데. 거제2동과 4동의 경계선이 있어요. 거성중학교하고 계성여고. 거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서 농구 많이 했죠. 거제4동과 2동이 맞붙어 있어서 같은 동네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머리가 복잡하면 정리하러 가기도 하고, 바람 쐬러 가기 도 하고, 친구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던 곳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보면 우리 가 사는 아파트부터 시청 그리고 황령산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거든요. 아 내도 여기에 오면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서 드라이브하자고 했습니다. 예 상대로 아주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저의 의도대로 됐죠. 본격적으로 집 지을 땅을 보러 갈 때는 전문가를 데리고 갔습니다. 전문가의 관점에서 괜찮 다는 말을 들으니 아내가 설득되더라고요. 그 땅의 위치가 거제4동입니다.

그곳에 가면 느낌이 어떤가요?

20년 전에 ‘네 멋대로 해라’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요. 양동근 주연의 드 라마입니다. 그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랑 비슷해요. 산동네 살면 되게 못사 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위에 살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 죠. 그게 호기심을 끌었던 것 같아요.

294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 원하는 집의 형태는 무엇인가요? 지금은 직접 짓는 게 목표입니다. 전문가를 많이 만나봤어요. 주택 전문 가는 없더라고요. 아파트 전문가는 많은데요. 그리고 제가 생각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건축사를 아직 못 만났어요. 그것 때문에 일부러 캐드학원도 오랫동안 다녔습니다. 직접 설계해보려고요. 인테리어 회사도 좀 다녔었어 요. 원하는 형태는 중정이 있는 집을 원합니다. 로마식 건축이나 그리스식 하고도 비슷하고요. 한옥하고도 비슷하겠네요.

집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청년들이 지금 고민 많잖아요. 자기 집도 못 갖고. 무주택자를 위해서 집 을 가질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어요. 나라에서 해결해 주기 어렵고 그렇다고 개인이 해결하기도 어렵고 해서. 그럼 다른 나라에는 어떤 방식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지 보니 있더라고요. 그걸 한번 도입 01

해볼까 했어요. 예컨대 ‘해비타트’라는 게 있습니다. 집을 고쳐주기도 하고 집을 지어주기도 하고요. 방법이 있어요. 어떤 거냐면 자기가 해비타트 직 원으로 활동을 하면 돈을 받지는 않아요. 무상으로 일을 해주고 반대로 내 가 집을 지을 때는 다른 직원들이 내 집을 지어주는 거예요. 품앗이 개념이 죠. 부산에만 없어요. 다른 지역은 있습니다.

01 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는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집이 있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1976년 미국 에서 시작한 국제비영리단체이다. 한국에는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해비타트가 알려지고 조직화하기 시 작하였는데 ‘(사)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라는 명칭으로 법인화 후 현재는 ‘(사) 한국해비타트’라는 이름 으로 활동하고 있다. https://www.habitat.or.kr/

295

직접 지을 집 뿐만 아니라 마을의 모습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형태대로 집을 짓고 싶습니다. 그게 시작이 되어서 옆집 사 람들도 따라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집들을 상상해보면 되게 멋이 없어요. 이건 혼자서 할 게 아니라 구에서 조례로 진행해 줬으면 좋겠는데 한 마을이 예쁘게 조성하려면 건축자재라든지 페인트 색깔, 지붕 색깔도 통일하면 좋거든요. 마을 자체가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될 수도 있어요. 각각 의 집이 개성 있게 지어지게 되면 하나하나의 집은 이쁘지만, 마을 전체로 놓고 보면 무질서해 보이거든요. 그게 사실 걱정이긴 해요. 그래서 제가 예 쁘게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모델로 삼고 있는 데는 ‘그리스 미코노스섬’입니다. 미코노스라는 마을 에 가보면 골목길 하나하나 다니는 게 재밌어요. 포카리스웨이트 광고에 나오는 골목을 실제로 걸어봤거든요. 고양이들이 많이 놀더라고요. 마을 에 동물이 살기가 좋으면 되게 좋을 것 같아요. 혼자 사는 가구들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혼자 사는 사람이 계속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안 좋잖아요. 동물을 데리고 산책하기도 좋은 그런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 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사람을 만 든다.” 처칠이 한 말인데요. 항상 어릴 때부터 남의 집 담벼락만 보고 살았 어요. 너무 갑갑했는데 탁 트인 곳에 살다 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부산에 는 산도 많고 해서 조금만 지형을 잘 살리면 괜찮을 것 같아요.

296

미코노스 섬의 마을 풍경 (사진출처: https://www.pexels.com, @jimmy teoh)

297

꿈이 조금 더 현실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제4동이 뉴딜 사업에 선정되었다고 들었을 때 어땠나요? 꿈이 조금 더 현실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토지를 매 입했을 때는 막막했었거든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뉴딜 사업으로 주민들이 모이고, 함께 논의하잖아요. 같이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제가 집을 짓게 되면 집을 짓는 것과 관련된 노하우는 무료 로 오픈할 계획입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어린이 놀이터 위치 선정에 적극적인 의견을 내셨다고 들었어요. 어린이들이 놀기 좋은 마을이 되어야만 젊은 신혼부부들이 이곳에 올 수 있습니다. 거제4동에는 노인들이 많이 살아요. 전체적으로 마을이 침울 하고 활기가 없어요. 애들이 뛰어놀기 좋고,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 는 공간이라고 한다면 좀 더 많은 사람의 유입을 기대할 수도 있고 마을이 되게 밝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놀이터는 2개의 빈 땅 중에 외곽이 아니라 중심에 배치하는 걸로 요청했었죠. 아무래도 마을 의 중심에 놀이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놀이터뿐만 아니라 마을 광장의 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298

또 어떤 제안을 하셨나요?

02

외국에 보면 쿨데삭[cul de sac] 이라는 도로 구조가 있어요. 지금 거제 4동 위쪽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거기에 만일 도로가 새로 생기 게 되면 사람들의 출퇴근 도로로 변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어린이들이 다 니기에 안전하지 못한 곳이 되겠죠. 그리고 도로가 주차장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최대한 차량 통행이 불편한 구조로 가게끔 제안했어요. 사람들이 도보로 산책하기 편안한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제 안을 많이 했었습니다. 외국에는 그런 사례가 많거든요.

주민들과 의견 충돌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주민들간 생각하는 것들이 달랐어요. 도시재생 사업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시고, 임대사업 등을 하려고 하시는 분도 계셨고요. 다양한 사 람들이 모이다 보니 의견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매달 주민협의체 를 통해서 소통하고 의견교류를 하면서 도시재생 사업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02 주로 주택단지에 설치되는 도로의 유형으로, 도로에 막다른 길을 조성하고 차량이 회전하여 나갈 수 있도록 회차 공간을 만들어주는 기법으로 통과교통을 배제하여 소음 및 안전을 제고시켜 단지 주민의 편의를 도모하 기 위해 사용한다. (출처: 서울정보소통광장)

299

문화가 있고 즐거움이 있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모이게 되죠. 모여야 상권도 활성화됩니다 거제2동에서 아주 많은 가구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고 들었는데,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다 흩어졌습니다.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요. 친구 중에는 장전동으로 간 친구도 있고, 일자리 때문에 서울이나 경기도 쪽으로 다 갔습니다. 다시 내 려오려고 해도 못 내려올 거예요. 일자리가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 유입이 가능한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지금 거제4동 앞을 지나가고 있는 동해 선이 울산까지 개통이 돼요. 직장은 울산, 집은 거제4동이 가능합니다.

마을이 어떻게 하면 활기찬 곳으로 살아날까요? 근처에 중·고등학교가 많잖아요. 동해선 아래 공간이 청소년들이 놀고 싶 어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댄스 공간이 된다든지, 인라 인을 탈 수 있다든지,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이 어울려서 놀다 보면 그 주변 에 분식집도 생기고,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게 된다면 그 주변에 애견 사업 도 생기게 돼요. 그런 식으로 상권이 형성되어서 마을이 커졌으면 하는 바 람도 있어요. 부산대 지하철역 인근 스트리트처럼 젊은 사람들이 춤도 추고, 음악도 하는 공간이 조성되면 친구라든지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보게 되지 않을까. 문화가 있고 즐거움이 있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모이게 되죠. 모여야 상권도 활성화되고, 시장도 커진다고 봅니다.

참고자료

[도서] 동래지편찬위원회. 동래지. 부산: 세명출판사. 1981.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구지. 부산: 동래구. 1995.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제구지. 부산: 연제구. 2005. 부산광역시 연제구. 재미있는 연제구 스토리 여행-도란도란 연제. 부산: 연제구. 2019. 국토교통부 외. 新한국철도사: 총론. 한국철도문화재단 편찬. 2019.

[논문·보고서] 김수영(2000). 해 방이전 건립된 철도관사의 공급방식과 평면유형의 특성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논문. 김태현(2004). 부산 기업사. 부산발전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

[신문기사] 부산일보, 축 동해남부선 기공, 1930. 07. 13.

[사이트] 연제구청 https://www.yeonje.go.kr 연제구 데이터 포털 https://www.yeonje.go.kr/opendata 부산역사문화대전 http://busan.grandculture.net 부산생활지도 http://lifemap.busan.go.kr 거제초등학교 홈페이지 http://geoje-p.gne.go.kr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블로그 거제4동 해맞이마을 이야기 https://blog.naver.com/sunrisecommunity4

[사진 출처 및 제공] ※ 본문에 출처 표기가 되지 않은 자료

하늘에서 본 마을의 변화 • 국토지리정보원 https://www.ngii.go.kr • 부산생활지도 http://lifemap.busan.go.kr 거제4동 마을 사전 • 이름의 기원, 행정구역 변화, 거제4동의 자연마을: 부경근대사료연구소 • 거제리 전차역: 김구현(블로거 성산지기, https://blog.naver.com/kgh19941061/220959102224) • 거제역: 부산시청(부산역사문화대전에 게재) 거제동 인근의 산업 풍경과 ‘여공’ • 1960년대 조선견직(표지사진): 부산시청(부산역사문화대전에 게재) • 1950년대 조선견직(참고자료): 『부산의 상공업 100년』, 부산상공회의소, 1989 (부산역사문화대전에 게재) • 쌍미실업주식회사: 국가기록원 https://www.archives.go.kr • ㈜한창 로고: ㈜한창 홈페이지 https://www.hanchang.co.kr • 진주햄 로고: 광고정보센터 https://www.ad.co.kr/index.waple • 미원(주): 『약진, 50년의 자취』, 부산박물관, 2013 • 유연화학공업사: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http://www.emuseum.go.kr • 평화유지공업주식회사: 『부산의 상공업 100년』, 부산상공회의소, 1989 (부산역사문화대전에 게재) • 내쇼날푸라스틱(주): 1969년 내쇼날푸라스틱 홍보관 사진 (블로거 바람꽃, https://blog.naver. com/maenam111/90183066791) • 천광유지공업사: eBay Korean Co., Ltd 화지공원의 5월 : 때죽나무 • 공유마당 https://gongu.copyright.or.kr/ * 사진과 글은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발행처 문의 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사소한 기억, 어쩌면 모두의 이야기 거제4동 마을기록화 프로젝트

발 행 처 : 부산광역시 연제구 발 행 일 : 2021년 7월 26일 펴 낸 곳 : 빨간집 자문 및 감수 : 김한근(부경근대사료연구소), 차철욱(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책임연구 : 배은희 연 구 원 : 배정애 도시기록자 : 강다이, 강성화, 박소영, 윤해정, 이슬기 사

진 : 이화숙

표지·내지 일러스트 : 이유진 편집디자인 : 이노그램디자인 인 쇄 처 : 까치원색 주

소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제로 2 (연산동) 연제구청

발간등록번호 : 52-3370000-000043-01 ISBN 979-11-969056-5-1(03090)

부산광역시 연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