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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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비스 신전의 지하시설을 노리는 테러와 공격은 빈번히 있었지 만 유독 최근에 들어선 그 공격들이 제법 집요해졌다. 헬릭스 시큐 리티의 파리하 아마리는 자신의 어머니의 옛 동료들을 불러서 함께 방어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음을 느끼며 슈트의 헬멧을 벗고 신전의 돌무더기에 걸터앉는다. “수고하셨습니다 제군들” 몸을 풀기 위해 허리를 들어 올리니 2미터는 족히 넘는 거구의 고 릴라 과학자가 품에서 새 안경을 꺼내었다. “당신의 어머니는 우리의 영웅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인류의 영웅이 되실 겁니다” 승리의 쾌감과 안도 속에서 과학자가 내뱉은 칭찬은 파라의 마음 속에 묘한 씁쓸함을 끌어올린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그저 감사를 표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헬멧의 노란 바이저에 비친 자신의 눈 부분에 새겨진 문신을 본다. 호루스의 눈. 어머니가 보호의 상징이라며 자랑하던 그 문신. 어머니를 추모하기위해 자신이 계승한 문신.


“혹시 어디 편찮으신가요..?” 백금발에 새하얀 피부, 하얀 슈트까지 합쳐져서 이집트의 뜨거운 태양을 받아 전신이 빛나는 것 같은 여성이 자신의 안부를 살펴오 자 파라는 정신을 차리며 헬멧을 자신의 허리춤에 끼며 허리를 세 웠다. “아닙니다 치글러 박사님” “앙겔라나 메르시라고 불러줘요” 그녀의 치료는 생사를 뛰어넘을 만큼 훌륭했다. 하지만 파라는 그 녀의 슈트가 왜 타인의 생체신호에만 반응해서 기동성을 일시적으 로 발휘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제작결함이라고 생각되어 머릿 속으로 과학자들의 설계의도를 유추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군인이고 눈에 들어오는 것을 부수는 일만을 한다. 아마 자신보다 키나 체구가 훨씬 큰 고릴라 과학자에게 물어보면 무언가 답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파라는 이전에 그 과학자에게 슈트 추진제에 대해 무언가를 물었을 때 족히 20분은 뙤약볕 아래에서 온갖 설명을 들어야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주 덥구만! 언제 끝나서 이걸 벗나 학수고대했다네!” 상의의 갑주가 증기를 뿜어대자 어깨와 팔, 하반신으로 슈트가 튕 겨 나가듯이 나가떨어지며 모래먼지를 일으킨다. “자 다 같이 저녁이나 먹음세! 내가 사지!”


라인하르트 빌헬름, 자신의 방에 있던 포스터의 인물을 눈 앞의 현 실로 보자 파라는 자신이 지금 현재와 과거의 오버워치 요원들 사 이에 있음을 실감했다. 자신의 어머니와의 추억이 숱하게 있는 사람들 안에서 정작 딸인 자신은 어머니와의 추억이 몇 없다. 그들은 자신을 보며 어머니를 회상하지만 자신은 그들을 보아도 그들과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상 상할 수 없다. “라인하르트, 아마리씨가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좀 쉬게 하 는 게 어때요?” “아프면 어쩔 수 없지!” “아니 저기..” 이들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난 그 속에서 상처를 받을까. 아니면 어머니의 살아생전 모습이 떠오르며 가슴이 뛸까. “윈스턴! 오늘은 기분이니 땅콩버터 한 박스는 사라고!” “오오 그럼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라인하르트씨” “저기 그게..저도 괜찮다면” 난 어머니의 길을 잘 따라 걷고 있는 것일까. “그럼 메르시는 아마리양을 돌보다가 같이 저녁을 드시게!” “저도 같이 저녁을...” “응 그러도록 하죠” 어긋난 대답이 묘하게 들어맞아 결국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그것


이 어머니 생각만 가득하던 파라의 마음속에 작은 돌이 던져져선 가슴이 다른 의미로 뛰기 시작했다. “체크해보니 몸의 피로가 제법 누적되어있네요 하루정도는 푹 쉬시 는 게 좋겠어요” 팔을 걷어 올린 하얀 와이셔츠와 테가 얇은 안경이 그녀와 잘 어울 린다. 파라는 스포츠 브라와 팬티만을 걸친 채 헬릭스 시큐리티 건 물 내에 있는 의무실 검사대에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멘탈 수치가 레드에 가까운 게 걱정이에요 고민상담을 하시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가져봐요” “알겠습니다” 그녀의 손에 자신의 신체수치가 적힌 서류가 한 더미 쥐어진다. 몇 몇 곳에 동그라미와 조언들이 적힌 것이 그녀의 세심함이 느껴져서 작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혹시 어머니 문제인가요?” “네?” 감정을 숨기고 싶었지만 갑작스레 찔린 정곡에 긍정이 담긴 당황한 표정이 나와 버리자 고개를 뒤늦게나마 돌려보았다. “걱정마세요 아마리씨.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이 굳이 오버워치 요원


이 아니어도 지금 걷는 길이 자랑스러운 길이라며 응원하셨을 거예 요” 은색안경을 벗고는 가슴주머니에 꽂아 넣으며 메르시는 그녀의 어 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무거운 슈트 때문이 아닌, 평소에 단련 된 다부진 몸이 남을 지키는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 “고맙습니다” 파라는 검사대에서 일어나 벗어두었던 상의에 손을 뻗으려 했으나 그곳에는 상의가 없었다. “...?” “아까 직원이 가져가던데요?” 미소를 지으며 메르시가 자신의 청바지 주머니에서 메모를 꺼내어 건넨다. 그곳엔 파라가 지내는 집에 옷을 빨래해서 배달시켜두겠다 는 직원의 글씨가 있었다. “낭패군요” “왜요..?” “갈아입을 옷을 사내에 따로 두진 않았습니다” 다행히 출근할 때 걸쳤던 재킷은 개인 사물함에 두었기에 파라는 사물함에 있던 플라이트 재킷을 입었다. 보잉선글라스까지 쓰자 멋


진 비행조종사처럼 보였다. “하늘을 난다고 패션까지 의식한건가요?” 메르시는 그런 그녀의 패션을 보며 장난스럽게 눈웃음을 지으며 그 녀의 선글라스를 벗겨선 자신이 써보였다. 파라는 메르시의 하얗고 작은 얼굴에 커다란 선글라스가 씌워지자 영화배우 같다고 생각했 다. “의식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편했을 뿐이죠” 평소처럼 재킷의 단추를 푸니 목덜미와 쇄골이 노출되어 시원한 기 분이 들었다. 평소라면 헬릭스 시큐리티의 제복을 입었을 것이다. “혹시 근처에 추천할 식당이 있나요 아마리씨?” “있긴 있습니다만...” 메르시의 질문에 파라는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린다. “여태껏 타지인과는 간적이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이곳 사람들과 도...한 번 정도..” 이집트 전통음식만이 있는 가게인 만큼 스위스 사람인 메르시의 입 맛에 맞을까 걱정이 된 것이리라. “그럼 둘만의 장소가 되는 건가요? 가봐요 우리”


자신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살짝 까치발을 들어 파라에게 씌워주 곤 그녀의 손을 잡아챈다. “흠...” “어...” 폐허가 된 식당의 광경에 파라와 메르시는 할 말을 잃은 채 서있었 다. 정확하게는 지붕이 절반쯤 날아가고 한쪽 벽면이 깔끔하게 박살 나있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파라가 모래먼지 안에서 건물의 파편을 치우는 직원에게 달려가서 는 아랍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 틈에 메르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누비스 신전에서 꽤 먼 이곳에도 날아온 유탄 몇 발이 도시를 할 퀸 자국이 곳곳에 보였다. ‘이래서 오버워치는 다시 결성되지 않았어야 했는데’ 잠시 옛 생각에 빠져들자 파라의 어머니인 아나 아마리의 생각도 스쳤다. 딸을 끔찍이도 사랑하며 모두의 등을 지켜주던 훌륭한 저격 수였다. ‘아나씨...저는...’


당신의 딸을 지킬 수 있을까요. 리예스와 모리슨의 길과는 다른 길 을 걷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과거에.. “다행히 식당은 운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생각이 너무 골똘했던 탓일까. 파라는 어느 샌가 가게 주인과 대화 를 마치고 메르시의 앞에 서있었다. “컨디션이 안좋으십니까?” 어두운 생각이 얼굴에까지 물들었던 것이리라. 파라는 그녀가 일사 병에 걸린 것이라 생각했는지 자신의 선글라스를 그녀에게 씌워주 며 안색을 살핀다. “아뇨..잠시 딴 생각을 했어요” “..알겠습니다” 그녀의 머리 위에 손 그늘을 만들어주며 그녀의 손목을 잡아준다. 워커로 작은 파편들을 치워주며 그녀에게 길을 만들어주곤 햇빛이 절반쯤 들어오는 그나마 멀쩡하게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자리에 마 주앉는다. “죄송합니다만 메뉴는 미리 주문해두었습니다 애초에 메뉴도 몇 없 는 곳이라..” “응 괜찮아요”


햇볕이 그리 쌔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몸에는 적잖이 부담이 갔었나 보다. 그늘진 자리에 앉자 몸이 눈에 띄게 늘어져선 메르시는 주변 을 한번 둘러보고 맞은편에 앉은 파라를 바라보았다. “아마리씨는 지금 일에 만족하나요?” “매우 만족합니다” 직원이 숟가락과 티슈 몇 개를 가져온다. “치글러씨는 어떠십니까?” “네..?” “다시 요원소집에 응하신 것 아닙니까?” “그러게요 이렇게 다시 돌아왔어요” 메르시는 자신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선 맞은편의 그녀에게 건넨다. “어머니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궁금합니다 그리고..쓰고 계십시오 해가 지려면 아직 한참 남았 습니다” 선글라스를 건네려는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며 그녀 쪽으로 밀 어 넘긴다. “하지만 지금은 임무가 끝났고 회포를 푸는 자리이니 그런 질문은 접어두고 싶습니다”


‘그 사건’을 이야기 하는 건 서로에게 괴로운 고해의 시간이 될 것 임에 틀림없다. “정말 강한 사람으로 자라주어서 고마워요” “...?” 자신의 옛 동료가 입이 닳도록 자랑한 딸이 어머니의 빈자리에 망 가져 있었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오버워치와 블랙워치의 요원들 모 두가 슬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유추해내지 못한 파라의 입장에선 뜬금없는 감 사의 표현이었다.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말없이 음식을 기다렸다. “혹시 시킨 음식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따미야라고 불리는 음식입니다 안에 각종 야채를 넣은 빵을 튀긴 건데 이곳은 꽤 특별한 속이 들어있다더군요” “그렇군요” 이상한 전통음식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빵이라는 말에 한시름 놓는다. “이곳 식당에는 꽤 예쁜 테피스트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녀가 잡담하는 광경은 좀처럼 볼 수 없던 메르시는 선글라스를 코 밑으로 살짝 걸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쪽 언저리에 있었는데 음식만큼이나 유명했죠” 그녀가 가리키는 손끝에는 이젠 벽이 완전히 무너져선 파편더미 위 로 시장골목만이 훤히 보일 뿐이었다. “우리들이 오늘 벌어진 분쟁에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겼기에 지켜낸 것도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원이 은빛으로 빛나는 바구니에 빵을 가득 담아온다. “저는 어머니가 최선을 다해 동료를 지켰다고 믿습니다” “그래요..” 빵을 하나 집어선 베어 물곤 맛에 만족스러워 하며 다시 입을 열었 다. “저는 당신이 어머니가 남겨준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치글러 박사 님” 어째서인지 가슴이 두근거려 메르시는 빵을 들려던 손길을 멈춘다. 그제야 자신이 한 말을 깨닫고 파라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기 시작 했다. “아니 그러니까 윈스턴씨나 라인하르트씨 오버워치 요원들 모두 가...” “저도 당신이 아나씨가 우리를 위해 남겨준 보물이라고 생각해요 파리하씨”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진 파라가 물을 직원에게서 찾고는 빵을 묵 묵히 먹기 시작했다. “만약 테피스트리가 전쟁에서 잃은 무언가고.. 이 맛있는 빵이 전쟁 속에서 지켜낸 무언가라면..” 메르시는 자신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선 의자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햇빛이 드는 파라의 자리까지 몸을 들어 그녀에게 선글라스 를 씌워준다. “당신은 절 먹고 있는건가요?” “........?” 메르시의 농담에 갑자기 목이 막혀선 직원이 가져오는 물을 자리에 서 일어나선 낚아채 한 번에 절반쯤 크게 마신다. “그럴리가요..애초에 어머니가 닥터를 지킨 건 맞지만..아니 그리고 아무리 이 빵의 속이 맛있어도 사람은 재료가 아닙니다” 비유와 농담에 당황하는 것도 모자라 어수룩하게 답하는 것이 귀여 워 메르시는 눈웃음까지 지으며 환히 미소를 지었다. “앙겔라라고 불러줘요 아니면 엔젤이라고 애칭이라도 지어줄래요?” “네...?” “같이 전장도 누비고 하늘도 날아다니는 사이인데..그 정도 애칭은 있어도 좋잖아요? 같이 밥도 자주 먹고 저는 그럼 당신이 있어야


하늘을 높게 날아오를 수 있으니.. 파리하니까.. 파라오라고 부르며 여왕 대접을 해드릴까요..?” “애칭은 잘 모르겠고 그보다.. 밥을 자주 먹는다는건.. 그만큼 전투 를 앞으로 함께 하겠다는 겁니까?” 메르시는 그녀의 말에 뭔가 미묘함을 느껴선 빵을 집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전투를 해야 같이 밥을 먹는건가요?” “보통은... 음... 전투의 회포를 푸는 의미이지 않습니까 같이 밥을 먹는건” 고지식한 대답에 메르시는 빵을 한입 먹고는 자신의 묶었던 머리끈 을 풀어선 그 머리끈을 손목에 걸어둔다. “같이 밥을 먹는건 데이트로도 가능하잖아요?” “.....?” 테이블 위에 물잔을 툭 놓으며 파라는 말을 잃는다. 메르시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연다. “이거 데이트 아니였어요?” “아뇨 아뇨 아닙니다” “데이트인줄 알았는데” “아뇨 이건 함께 전투를 한 전우간의 식사입니다” “데이트라고 하면 안 되나요?” “데이트가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런 식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그럼 나중엔 같이 데이트로 밥을 먹어줄건가요?” 서로의 말이 빠르게 오고가다가 일순 멈춘다. 파라는 흡사 큰 결심 을 한 것처럼 크게 고개를 들곤 대답한다. “네 다음엔 데이트로 먹죠” “쿡..응 그래요..” 그런 식으로 합의를 봤음에도 이후에 이 둘은 이 날이 첫데이트라 고 여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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