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적삶: 버섯되기 Micro Life:Becoming Mush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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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하철역에서 버섯인가? 녹사평역을 오가는 시민들은 매일 몰라보게 자라나는 버섯을 목격하게 됩니다. 균의 집합체 ‘버섯’은 균류 중에서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포자를 형성하는 무리를 총칭합니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만 있다면 버섯은 특별히 영양분을 공급하지 않아도 꿋꿋하게 몸집을 불려 갑니다. 이것은 스스로 자라나는 공공미술입니다. 공공미술은 지역사회를 위해 제작되고 지역사회가 소유하는 미술을 말합니다. 녹사평역 프로젝트는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의 자매 프로그램입니다. 지하철이라는 공공의 공간에 문화예술공간이 움텄습니다. 서울 전체를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는 ‘서울은 미술관’프로젝트 아래 녹사평역은 지하 예술정원을 상상합니다. 지하에서도 무리 없이 자라나는 기특한 버섯을 병풍처럼 두른 곳에 자리하는 작가의 작품이 있습니다. 포자와 세포의 움직임을 도구로 자신의 예술세계 구현하는 작가의 작품이 그것입니다. ‘서울은 미술관_녹사평역 프로젝트’‘미시적 삶 ; 버섯되기’展입니다.

빛이 들지 않는 지하에 예술정원을 꾸리기 위해서는 인공의 조명을 설치하고 수급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전구를 설치하여 식물로 하여금 태양빛을 착각하게 하고 습기와 비를 대신하는 인공강수를 조절해야만 ‘정원’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꼴이 갖춰집니다. 한층만 올라가면 볕과 비를 누리며 자라나는 나무와 풀들이 있습니다. 인공의 자연을 조경하여 그곳에 식물을 위치시키는 것은 일종의 ‘식물에 대한 학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하여 ‘무소속 연구소’는 지하에서 꿋꿋하게 자생하는 생물을 고민했습니다. 우리의 해답은 버섯입니다. 그늘이 드리우고 습한 곳이라야만 잘 자라는 버섯은 일종의 곰팡이 덩어리 입니다. 다른 식물의 뿌리나 줄기에 기생하여 영양분을 받으며 자라는 버섯은 이곳 녹사평역 지하1층에 이주하기 위해 1인가구의 구성을 본떠 단촐한 살림을 꾸렸습니다. 한 무리의 버섯이 자라기 위해 필요한 적당량의 양분을 담고 있는 병은 말하자면 버섯을 위한 지하의 원룸입니다. 그 속에 버섯 포자가 움터있습니다. 지하의 원룸에 입주한 버섯은 녹사평역의 적당한 그늘과 습기를 머금으며 이곳을 예술정원으로 만들 것입니다. 잎 푸른 식물에게는 열악한 조건이 버섯에게는 생장을 위해 더없이 적당한 환경입니다. ‘지하라는 조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 속에 버섯의 생장이 알려주는 지혜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악조건은 누군가에게 완벽한 환경이 되기도 합니다. 지하에서 틔우는 버섯은 수많은 제약 속에서 기어코 정원을 탄생시키는 탁월하고 전에 없는 신선한 시도입니다.


버섯이라는 이름 버섯 [버섣] 균류(菌類) 중에서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크기의 자실체(子實體;ᅠ균류에 있어서

포자를 만드는 영양체)를 형성하는 무리의 총칭. 주로 그늘진 땅이나 썩은 나무에서 자라며, 홀씨로 번식한다. 송이처럼 독이 없는 것은 식용하나 독이 있는 것도 많다.

출처 두산백과, 네이버 국어사전

한자로 풀이한 버섯 菌 (버섯 균, 버섯 훤, 버섯 권)

1. 버섯 2. 세균(細菌), 균(菌) 3. 죽순(竹筍) 4. 무궁화나무(無窮花--) 5. 하루살이(하루살이목의 벌레 총칭) 6. 육계(肉桂: 계수나무의 껍질) 7. 군살 8.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소리 9. 울적해지다

형성문자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囷(균)이 합(合)하여 「버섯」을 뜻함.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버섯은 청소부다. 버섯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물 자원으로,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산과 들에 자생한다. 버섯은 학술적으로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버섯은 식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미생물이며 미생물 중에서 곰팡이(균계: Fungi)에 속한다.

생태계에서 버섯은 청소부이다. 식물은 엽록소로 광합성을 하여 유기물을 만드는 생산자이고 동물은 이 유기물을 먹이로 하는 소비자이며, 버섯은 식물이 만든 유기물인 나무, 풀을 분해하여 물과 가스로 변화시키는 분해자 또는 환원자이다. 따라서 버섯이 없다면 지구는 점점 쓰레기 더미에 묻히게 될 것이다.

출처 유영복, 『버섯학 각론 (재배 기술과 가능성)』, 교학사*


버섯의 몸

출처 “버섯의 부위별 구조”, 대흥농산, 2006년 6월 29일 수정,

2019년 2월 26일 접속, http://www.dhdb.co.kr/museum_02.htm?tblid=13&j=125&page=1

버섯의 일생

출처 “버섯의 일생”, 대흥농산, 2006년 6월 29일 수정,

2019년 2월 26일 접속, http://www.dhdb.co.kr/museum_02.htm?tblid=7&j=125&page=1

이 버섯은 몇 등급 입니까?

출처 “송이·능이 등급안내/공판현황”, 산림조합중앙회 산림경영지원,

2019년 2월 26일 접속, http://iforest.nfcf.or.kr/forest/user.tdf?a=common.HtmlApp&c=3001&pa ge=/cyber/ information/Product0401.html&mc=CYB_FIF_DGS_SNI_01


반려 버섯

: 집에서 버섯과 함께 사는 방법. 버섯이 좋아하는 환경 온도, 습도, 통풍.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 잘 자란다. 1. 온도 14 ~ 20℃ 느타리 버섯 _ 14 ~ 18 / 노랑느타리 버섯 14 ~ 18 / 노루궁뎅이 버섯 15 ~ 20 2. 습도 50 ~ 90% 버섯은 9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외부습도가 낮으면 버섯이 수분을 배출한다. 하지만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배지가 썩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3. 통풍 공기순환이 순조롭지 않은 곳에서는 버섯 성장이 어렵다.

버섯이 좋아하는 장소 : 집에서 버섯 키우기 적당한 장소 1. 봄, 가을 햇빛(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베란다 또는 욕실. 실외 그늘진 곳. 2. 여름 시원한 곳. 현관, 욕실 또는 해가 전혀 들지 않는 베란다. 영상 20 이하 3. 겨울 현관근처 또는 욕실, 주방. 영상 10 이상

버섯의 양식 : 물을 주는 횟수와 양은 계절과 재배환경에 따라 다르다. 발아 전 버섯 배지(종균병의 윗 부분)가 마르지 않도록 유지한다. 단, 배지위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발아 후 병 밖으로 버섯이 자라기 시작하면 버섯 머리가 마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물방울이 맺힐 정도로 충분히 분무한다.

버섯을 기다리는 시간 : 버섯의 종류와 계절, 재배환경에 따라 재배기간이 달라진다. 느타리버섯류 재배기간 10 ~ 20일 / 발아기간 3 ~ 7일 노루궁뎅이버섯 재배기간 20 ~ 45일 / 발아기간 10 ~ 20일



도시의 청년 : 미생

대한민국의 청년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단어는 ‘청년문제’입니다. 푸르른 시절을 뜻하는 청년(靑年)세대는 언제부턴가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의 총체처럼 여겨집니다. 좀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취업률, 10년을 꼬박 모아도 내 집을 마련하기 힘든 주거비용. 결혼과 출산은 사치라는 선언과도 같은 n포의 늪... 푸르다는 청년의 시절은 현대에 이르러 서슬퍼런 시절로서의 청년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수저의 재질로 스스로를 조롱하는 냉소가 농담처럼 번지는 대한민국의 청년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지하1층의 전시장에는 마침, 대한민국 청년세대가 주로 거주하는 원룸의 지하를 살고 있는 버섯이 자라는 중입니다.

미생(未生)이란 ‘완전한 삶의 상태가 아닌, 완생(完生)의 최소 조건인 독립된 두 눈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 바둑용어입니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미생‘은 아직 살아나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완전히 죽은 돌이 아니므로 완생할 여지가 남아있음을 뜻합니다. 완생으로 나아갈 수도, 죽은 돌이 될 수도, 혹은 미생인 채로 남아있을 수도 있는 모든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완생’이 되지 못했으므로 실패했다고 취급받지 않습니다. ‘미생’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으므로 어디로 나아갈지 그 자신이 결정하면 될 일입니다. 죽은 돌이 되는 선택 역시 ‘가능성’입니다.

아직 완생이 되지 못했으나 ‘아직‘인 상태 그 자체로 이름을 얻은 ‘미생’의 존재들. ‘미생’의 상태를 곱씹으며 그 속에서 ‘청년’을 발견합니다. 세계적인 저 성장의 깊은 골,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날 수 없는 사회구조, 한 번의 실패를 도약의 기회로 환원하기 힘든 살벌한 경제생태계. 청년에게 완생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만큼 분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을 지하철을 타고 직장으로, 유효기간이 분명한 일터로, 학교와 학원으로 오가는 ‘청년’은 바로 지금 이곳에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미생’인 상태에 적당한 환경을 찾느라 대한민국의 수많은 지하공간을 메꾸며 훗날을 수색중입니다. ‘미생’의 바둑알은 나아갈 길을 탐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독립된 두 눈은 바둑에서 완생이 되기 위한 최소조건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살피는 낮은 포복이 바둑판위에, 도시에 도저합니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아가기 위해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년’, 그들을 ‘미생’으로 묘사하기로 합니다. 마침 이곳에는 적당한 그늘아래 습기를 머금고 자라나는 ‘버섯’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악조건인 환경을 스스로에게는 탁월함으로 둔갑시켜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아가려는 생물입니다. 이 닮은꼴의 두 ‘미생’이 지하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될는지 ‘아직’모르는 상태는 일견 위험해 보이지만 희망을, 또는 기대를 품게 합니다. ‘미생’에게 적당한 온도와 습도만 있다면 그들은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나아갈 길을 탐색하기 위해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며 스스로의 앞날을 고심하는 ‘아직’을 뜻하는 ‘미생’입니다.


청년이라는 이름

청년(靑年)

1. 신체적ㆍ정신적으로ᅠ한창ᅠ성장하거나ᅠ무르익은ᅠ시기에ᅠ있는ᅠ사람. 예) 아버지는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아직도 청년이다. 2. 성년 남자. 예) 혜숙은 길 한옆으로, 영철과 그 청년은 길 가운데로 걸어간다. <<나도향, 환희>>

청년(靑年) [유의어] 젊은이

1. 나이가 젊은 사람. 예) 한 젊은이가 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2. 혈기가 왕성한 사람. 예) 그 노인네 하는 짓이 매사에 의욕적인 게 아직도 젊은이야. 꽃봉오리1

1. 망울만 맺히고 아직 피지 아니한 꽃. 예) 꽃봉오리가 맺히다.

2. 희망에 가득 차고 장래가 기대되는 젊은 세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 어린이는 이 나리를 이끌어 갈 꽃봉오리며 기둥이다.

3. [북한어] 장래가 기대되는 어떤 일의 첫 시기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 지금까지의 성과는 앞으로 더 훌륭한 열매를 맺기 위한 꽃봉오리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말 대사전(1992)>>

청년(靑年) [반의어] 노년

1. 나이가 들어 늙은 때. 또는 늙은 나이. 예) 노년에 들어서다. 노인1

1. 나이 들어 늙은 사람. 예) 노인을 공경하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대한민국 청년은 지옥고에 산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청년가구 중 이른바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라 불리는 곳에서 사는 주거빈곤 가구의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주거빈곤가구는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지하(반지하)·옥상(옥탑)거주 가구, 비닐하우스·고시원 등 주택 이외 기타 거처 거주 가구를 말한다. 권순필 통계개발원 사무관과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청년 가구는 다른 세대와 뚜렷하게 구별될 정도로 지하, 옥탑,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주거빈곤가구 비율이 높았다"면서

"특히 서울 1인 청년가구의 주거빈곤 가구 비율은 2000년 이후 지속해서 증가했는데 이는 다른 세대에서 관찰되지 않는 역주행 패턴"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서울 1인 청년가구 37% ‘지옥고’서 산다…“주거빈곤 역주행””, 연합뉴스, 2018년 6월 28일 수정, 2019년 2월 26일 접속,

https://www.yna.co.kr/view/AKR20180628086300002


당신은 몇 등급입니까? (실제로 등급표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출처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 ‘망령’.. 185cm에 75kg, 1등급”, 파이낸셜 뉴스, 2011년 11월 8일 수정,

2019년 2월 26일 접속, http://www.fnnews.com/news/201111081757474525?t=y


청년이 살아남기 위한 최소 조건

문재인정부가 5년간 추진할 5대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내세웠다. 이의 실현을 위해 출생에서부터 보육, 교육, 구직·결혼, 노후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이 전 생애에 걸쳐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맞춤형 지원과 사회보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출처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 ‘기본적 삶’지원한다”, 국민일보, 2017년 7월 19일 수정,

2019년 2월 26일 접속, http://www.kukminusa.com/news/view.php?gisa_id=0923786467


버섯과 청년, 미생: 미생물

육안의 가시한계를 넘어선 0.1mm이하의 크기인 미세한 생물, ‘微生物미생물’. 문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생물입니다. 이들은 지구상 어디서나 습기만 있다면 생육할 수 있습니다. 생물로서 최소 생활단위를 영위하기 때문입니다. 굳건한 동시에 간신히 존재하는 미생물의 울타리에 버섯이 있습니다. 습도만 유지된다면 햇볕이 들지 않는 이곳 지하에서도 버섯이 잘 자라는 이유입니다.

현미경을 통해야만 목격할 수 있는 미생물의 존재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미생을 떠올리게 합니다. ‘완생’이 되기 위해 아직은 완전하게 살아있지 않은 ‘미생’의 상태를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 청년이 바로 그들입니다. ‘내 이름을 걸고 수행하는 작업이 미처 일가를 이루지 않아서’, ‘내 이름으로 된 주거지가 없어서’, ‘내 이름을 나누는 가족을 꾸리지 않아서‘사회적 지표에 포착되기 힘든 ‘미생’의 청년입니다. ‘靑年’이라는 문자 그대로 푸르른 시절을 표상하는 청년들은 취업난과 생계라는 엄혹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지하에서, 좁은 방에서 각개전투를 벌입니다. 제 몸에 스스로 물을 줘가며 간신히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 지하에서 고군분투하는 미생들. 미생물의 생태에서 미생을 대한민국의 청년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연상일지 모릅니다.

식용버섯과 독버섯을 구분하듯, 유익한 균과 해로운 균 역시 인간의 필요에 의해 구분됩니다. 해로운 균으로 분류되던 푸른곰팡이는 페니실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어 항생물질로 대접받습니다. 독버섯은 가끔씩 해롭다고 여겨지는 그 독성이 주인공이 되어 약용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유익과 무익의 잣대를 거두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균으로, 버섯을 관찰합니다. 이는 어떤 꼴으로 완결될지 알지 못하는 상태 그대로를 긍정하는 ‘미생’의 태도에서 배운 것입니다.

전시장의 버섯은 인체에 독성이 없어 식품으로 안전하게 이용되는 ‘식용버섯’입니다. 식용버섯은 유익균의 집합체로 정의됩니다. 식용버섯이 ‘유익한’것은 그 기준을 오로지 인간에 두기에 성립하는 해석입니다. 버섯은 그저 균일 뿐 입니다. 독버섯도 식용버섯도 ‘눈으로 식별 가능한 크기의 포자를 형성하는 무리의 총칭’입니다. 유익하다는 것과 무익하다는 것의 경계를 질문합니다. 버섯을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오로지 인간의 쓸모라는 것을 상기합니다. 버섯은 그 속에 들어있는 진균이 면역체계를 강화시켜 바이러스의 감염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독버섯이 때때로 약용으로 사용되는 이유입니다. ‘유익과 무익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대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빛이 잘 들지 않아도, 특별한 영양분이 없어도 습도만 유지된다면 기어코 생존하고 마는 세포덩어리가 여기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말입니다.


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직접 목격한, 나날이 자라난 바로 그 버섯. 버섯을 생으로 먹어 봅니다.


안다고 생각했던 맛도 오롯이 버섯의 식감과 향을 음미하며 '미식'에 집중하다 보면 미처 몰랐던 다양한 감각의 결이 내 몸의 오감마저 깨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버섯 미식회 미식적 삶 ; 버섯 되기 누군가와 가장 빨리 친해지는 방법은 함께 밥을 나누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잰 걸음으로 스쳐 지나던 이곳 녹사평역에 반짝정원이 들어섰습니다. 반짝정원에는 버섯을 통해 대한민국의 청년을 떠올리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버섯의 포자를 움직임으로 표현한 미술 작품이 있습니다. 녹사평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공공미술과, ‘미시적 삶 ; 버섯 되기’展과 더 가깝게, 더 친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버섯 미식회’입니다. 녹사평역에서 직접 키운 버섯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어 먹어보는 자리입니다. 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직접 목격한, 나날이 자라난 바로 그 버섯입니다. 버섯을 생으로 먹어 봅니다. 안다고 생각했던 맛도 오롯이 버섯의 식감과 향을 음미하며 ‘미식’에 집중하다 보면 미처 몰랐던 다양한 감각의 결이 내 몸의 오감마저 깨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무소속연구소는 2018년 ‘감각 스트레칭 _ 틔우자 ; 씨, 발아’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시들어가고 무뎌진 우리 몸의 오감을 깨우는 ‘감각 스트레칭’을 통해 세상과 만물을 웅숭깊게 감각하기를 의도했습니다. 그 예민하게 벼려진 감각으로 일상을, 예술을 풍부하게 누리고자 마련한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무소속 연구소가 깨달은 사실은 미각을 깨우는 행위가 오로지 혀의 감각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 재료의 맛을 곰곰이 느끼는 ‘미각 깨우기’는 내 몸의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하여 2019년 3월. 서울의 시민들과 함께 미각 스트레칭을 진행합니다. 녹사평역 반짝정원에서 자란 버섯을 시민들과 함께 맛보려고 합니다. 깨어난 미각은 당신의 눈과 귀를, 코와 피부를 한껏 예민하게 돋울 것입니다. 생 버섯을 한 점 맛보고 난 후에 보이는 녹사평역 반짝정원은, 반짝정원의 작품은 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당신이 지하철을 타고 돌아간 집에서 먹는 저녁식사의 맛이 다르게 느껴질 지도 모를 일입니다.




작가 신이피의 작품

그 자신만의 고유한 역사를 가진 개개인을 관찰하고 그들을 Cell(세포)로 은유하여 영상으로 표현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Cell(세포)은 거의 모든 생물의 기능적, 구조적인 기본 단위입니다. 한 인간이 거대한 집단 혹은 광범위한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성을 미시적으로 시각화 하여 실험실의 풍경 속에 녹여냅니다. 한 개인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자 더 이상 쪼개져서는 안 되는 Cell(세포)라고 말하는 듯 한 작품이 실험실에 버티고 있습니다. 작가는 실험실의 주인이자 곧 관찰자입니다. 작가 신이피의 작품은 버섯이 자라는 실경을 병풍처럼 두르고 버섯의 곰팡이 균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을 영상으로 제시합니다. Cell(세포)를 Pixel(화소)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pixel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디지털이미지의 점입니다. Cell은 Pixel이 되고 그 속에는 지하에서 스스로를 틔우는 버섯이 있습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한 생물, ‘미생물’인 버섯은 일견 묵묵하고 꿋꿋하게 자라나고 있는 듯 보일지 모릅니다. Pixel이 보여주는 Cell의 존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자니 그 속에는 미생물과 닮아있는 미생의 존재인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움터있습니다. 작가 신이피와 무소속 연구소, 그리고 대한민국 청년은 그리하여 한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작가 신이피 신이피는 주로 집단과 사회 속에서의 한 인간의 관계성을 미시적으로 시각화하는 과정들로서의 ‘실험실’의 이미지를 표방한다. 작가는 내러티브를 가진 개개인들을 관찰하며, 각 개개인들은 사회적 검열, 규칙 안에 있는 하나의 구성원으로서의 세포로 표현된다. 개인전 《희연한 잠》(송은아트큐브, 서울, 2018), 《No matter how thick the glass》(Basis, 프랑크푸르트, 2018), 《두 동반자의 비밀》(SeMA 창고, 서울, 2018), 《일부러 불편하게》(소마미술관, 서울, 2018), 《팝업랩》(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대전, 2017)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7년 문화예술진흥기금 국제교류에 선정되어 노르웨이

Nomad AIR에 참여하였다.





공유공간과 예술의 미시정치,

<미시적삶 : 버섯되기> 최정은 (예술학)

# 리좀적 도시 공간, 지하철

19세기 런던에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된 지 100여 년이 지난 1974년, 대한민국 서울에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지하철 역사는 그 도시의 현대화 맥락과 함께 한다. 근대 이후 많은 도시들이 도시계획 하에 씨실과 날실의 격자 형태들을 갖추어 나갔고, 지하공간에 교통 체계를 구축해 왔다. 촘촘히 많은 노선들로 거대한 망을 구성하는 지하철의 플랫폼과 역사는 도시 구성원들의 대표적인 공유공간이다. 시민들의 ‘이동’을 책임지는 기능적인 공간인 동시에 외부인들의 접근과 타자와의 접속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특수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하철의 형태와 의미는 리좀(rhizome)적 도시 공간으로 설명될 수 있다. 리좀이란 뿌리줄기 식물을 의미한다. 수직 성장하는 수목 식물과는 다른 개념으로, 땅속에서 수평적으로 성장하며 증식의 형태로 나아간다. 지하철이라는 공간 특성은 리좀을 설명하는 6가지 구성 원리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연결접속의 원리, 이질성의 원리, 다양체의 원리, 탈 기표작용적인 단절의 원리, 지도 제작의 원리, 그리고 데칼코마니의 원리이다. 지하철은 어떤 지점들과 계속 연결되고, 이질적인 개체들을 서로 연결하며 전체를 이룬다. 하나 혹은 여럿의 형태가 아닌 다양하게 확장되며, 어떤 곳에서도 끊어지거나 깨질 수 있는 동시에 또한 복구될 수 있다. 개방되어 있으며, 이용자들의 자율적 선택에 의해 새로운 경로가 생성되고 조금씩 변화하며 창조적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리좀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지하철은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짐을 반복하는 이합집산의 공간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자유롭게 소통하며 다양한 의미들을 생산할 수 있는 확장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다만 교통수단이라는 강력한 목적성에 의해 그 변용 가능성이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명확한 것은, 시민들이 이러한 공유공간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며 타자들과의 관계 맺음을 이루어 나갈 때 그 공동체가 보다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관계 맺음은 바로 예술적 실천들로 인해 촉발된다. 지하철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탈영토화하고, 새로운 사유와 의미들로 재영토화해 나가며 새로운 주체성 생산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 청년들의 자발적 소수자 되기 언제부터인가 이 시대 청년들이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청년 세대가 건강해야 그 도시와 국가가 건강하기 마련이나, 몇 년간 지속되는 경제 불황과 극심한 취업난이 청년들을 사회가 책임져야 할 약자로 만들어 버린 지 오래이다. 이러한 시대적,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들이 스스로의 주체성을 변용할 필요성이 있다. 하나의 방법론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소수자 ‘되기(becoming)’이다. 여기서 소수자란 수적으로 소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 어린이, 노인, 장애인, 예술가, 동성애자, 이주민, 심지어 동물이나 식물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내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목소리를 가진 존재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록 소수일지언정 주류와 기득권 체제에 구멍을 만들고 균열을 내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존재들이다. 특이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생산 주체들인 것이다. 이러한 변용은 주류가 아니더라도 그 사회 혹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낮은 존재들에 대한 감성적 교감과 독특한 관계 맺기를 시도할 때 가능하다. 예를 들어, 버섯이라는 생물은 생태계 내에 음지에 서식하는 균류의 미생물이다. 버섯의 존재가 부재하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지에 대한 상상력으로 시작하여 그 의미를 부여하고, 정서적으로 관계 맺기를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들 삶의 환경을 이해하고, 직접 키워보고, 느끼고 이야기해보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용이 일어난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변용을 통해 “존재를 사랑하라”라고 말한다. 그 사랑이 호혜적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것이며, 도시를 살아가는 여러 주체들 간의 새로운 관계망 형성의 원동력이 된다. 소수자의 입장으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다른 차원의 방식으로 삶을 구축하는 것은 오늘날 자본주의와 경쟁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이다. 삶의 미세한 부분들을 들여다보며 그로부터 발견되는 다양한 욕망들을 긍정해야 한다. 우리는 청년이되, 자발적 소수자 되기를 통하여 사회를 미세하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미시정치(micropolitique)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 미시적 배치와 창조적 분열 예술의 영역에서는 존재 혹은 객체들이 새롭게 배치(agencement) 되면서 다른 존재들로 변화, 생성되는 것을 곧잘 목격할 수 있다. 구조와 재현의 영역을 넘어 탈구조화되고 특이화 과정을 거침으로써 다양체(multiplicity)로 나아간다. 예술가는 어떤 공간에 색다른 배치를 시도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예상치 못한 예술적 경험을 주고, 다양한 감각과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시간과 공간, 에너지의 창조적 분열은 분산되어 있던 이질적 개체 혹은 집단들의 접속과 흐름을 촉진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흥미로운 작업을 전개하는 작가가 있다. 신이피의 작업은 잘 구조화되어 있는 영역으로 몰래 침입하여 관찰자가 된 후, 수집된 요소들에 예술적 상상력을 교묘하게 섞어 재배치하여 관객에게 제3의 관찰자가 되기를 권유한다. 자연사박물관 혹은 과학 실험실에 투영되는 작가의 주 관심사는 근대와 식민주의로부터 출발한다. 근대는 계몽주의와 과학 발전을 토대로 모든 영역에서 구조가 형성된 시기이다. 문화인류학과 분류학, 박물관 등의 새로운 분야가 시작된 근대는 서구와 비서구를 위시한 상부와 하부의 전형적인 구조주의적 형태를 취한다. 오늘날 아무리 탈구조화를 지향한들, 이미 거대한 구조 속에 함몰되어 있는 현대사회의 정신계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근대의 기억들을 재소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는 미세하게 벌어진 균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 이면에 감춰진 미시사를 포착한다. 그리고 새로운 내러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짐짓 실험실의 형태를 연출하고, 주의 깊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행위를 유발하는 작가의 의도는 근대로 표방되는 구조주의와 거시적 역사관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이러한 미시적 배치는 우리가 응당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에 대한 의미를 뒤흔들고 창조적 분열을 일으킨다. 신이피의 작업이 지하철이라는 근대적 산물의 자리 한편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역시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차원에서 흥미롭다. 공간이 거대하고 구조화되어 있을수록 미시적 차원의 작품들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들은 구조와 목적이 고정된 ‘홈 패인 공간’을 자유롭게 유목하는 ‘매끄러운 공간’으로 부드럽게 변화시킨다. 또한 제도권의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자율성을 획득하는 틈들을 만들어준다. 이러한 예술적 시도들이 도시 환경 내에서 유발되어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접속할 때, 그로 인해 생겨나는 주름들이 새로운 공동체의 무의식을 형성해 나간다. 이 모든 개념들은 프랑스의 생태철학자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의 용어들을 빌려 구성되었다. 후기구조주의 대표적인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앙티 오이디푸스 (Anti Oedipus, 1972)』, 『천 개의 고원 (A Thousand Plateaus, 1980)』 등을 공동 저술한 가타리는 프랑스 68혁명의 중심에서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고, 프랑스 녹색당의 이론가이자 직접 실천가로 활동한 철학자이다. 서구사회의 사유와 정신계를 지배하는 수목 형태의 구조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수평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는 리좀적 사유체계를 강조하였다. ‘되기’를 통해 분열하고, 다양한 주체들로 등장하여 미시정치를 형성한 후 아래로부터의 혁명, 즉 대안을 꾸려 사회를 변화시키자는 것이 핵심 철학이다. 미시적인 영역의 욕망들을 긍정하며, 특이성을 생산하고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라는 가타리의 제안은 오늘날 공동체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제안들이 우리 사회에 실천적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공동체의 변화는 상부로부터도 오기도 하지만 아주 작은 개인의 밥상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소수자인 동물과 식물에 대한 변용과 사랑으로부터 얻는 깨달음은 누군가의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게 한다. 이러한 채식 습관은 직접 텃밭을 꾸려 농사를 지어 수확하는 생산의 기쁨을 얻게 한다. 이 기쁨을 이웃과 나누다 보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와 문화가 생겨난다. 마을회관에서 채식 영화제를 할 수도 있고, 미식회를 할 수도 있다. 수공예로 작품을 만들어 장을 열기도 하고 축제를 열어 주민들이 함께 마주할 기회들을 만들어 낸다. 이런 활동들이 누적되면서 공동체가 지향하는 욕망들이 생성되고, 그것이 다시 상부로 향하는 변화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가타리가 말하는 미시정치의 방법론이다. LGBT, 반려동물, 다문화, 페미니즘, 노동자, 청년의 활동들도 같은 맥락에서 변용과 삶의 리듬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소수자들의 미시정치임을 재차 강조할 수 있다. 무소속연구소는 이러한 미시정치 영역의 예술 활동들을 생산하는 단체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예술가, 실천가들과 공동체에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기획들을 전개해 왔다. 이번 <서울은 미술관 : 녹사평역 프로젝트>의 일환인 “미시적삶 : 버섯되기” 프로젝트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버섯’이라는 식용 미생물을 매개로 임의적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실험으로 마련되었다. ‘미식회’라는 장치를 통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발언권을 나누고, 주체성 생산의 기회를 가진다. 이에 신이피 작가의 작품들은 보다 다차원적인 담론에 대한 접근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함께 공유하는 예술적 경험들로부터 촉발되는 임의적 공동체의 주체들은 새로운 의식의 창조적 분열을 통해 다양체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무소속연구소

www.musosoklab.com

문화, 예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구성원과 다양한 분야의 조력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지역과 도시에 대한 관심으로 연대하고, 예술 이라는 연결고리로 사회적 소속감을 대체합니다. ‘무소속’인 상태를 견 지하면서, 그러나 예술에 소속되어 있는 구성원들은 ‘지역과 예술’ 그리고 ‘도시와 예술’의 바람직한 공존방법을 탐구합니다.

2019년, 녹사평역 프로젝트와 만난 무소속연구소는 지하 예술정원에서도 꿋꿋하게 자생하는 생물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버섯은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자라는 균의 집합체입니다. 빛이 잘 들지 않아도, 특별한 영양분이 없어도 습도만 유지된다면 생존할 수 있습니다.

무소속연구소 농사예술 시리즈

2016 CR Collective <프로젝트 액츠2017> [ 실패하는 농부 ] 2017 씨부렁대지 말고 씨뿌령, 농사예술프로젝트 [ 잠깐만팜 ] 2018 농사를 통한 감각 스트레칭 [ 틔우자, 씨:발아 ]




기획

무소속연구소

책임 · 글

옥민아

참여작가

신이피

비평

최정은

편집

이정아

리서치

강예솔

디자인

데이워크

전시제작

최민석

주최 · 주관

서울특별시 서울교통공사

시행사

티팟(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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