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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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돌이켜 지난날을 그리며 - 追憶을 回想하면서 류 희 열 졸업5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장 (31회)

늘 저희들의 졸업 50주년 기념행사를 경축해 주시려고 방문해 주신 귀빈 그리고 선·후배와 동문 내·외분 앞에서 인사말을 올리게 됨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희들의 학창시절은 매사가 그저 감개무량할 뿐 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3년전 입학생 모집시에는 광주서 고등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만 바로 한달이 못되어 그러니까 1953년 4월 입학식 때는 광주제일고등학 교로 교명이 정착되었습니다. 동북쪽 모서리에서는 학생탑 건립의 망치소리를 들으며 조국 통일에 눈 을 뜨게 되었고 1954년 6월 탑이 완성된 후에는 등·하교 때마다 탑을 향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경 례를 드리면서‘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 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라는 슬로건을 되새기 며 항일 투쟁에 앞장선 선배님들의 얼을 배웠습니 다. 특히 통일이 되면 교가(校歌)를 만들겠다는 일념

으로 응원가를 교가로 대신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동란 직후이기에 군대에서 사용한 방독면(防毒面) 케이스가 우리들의 책가방이요, 군화 (軍靴) 일명 워카(walker)가 학생화였으며 군복에 검정물감으로 염색하여 재조한 옷이 교복이었습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교정에서 긍지와 자부심 을 가슴에 가득 안고 학교생활에 충실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학교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 왔는지는 제가 말 씀드리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하리라 믿습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입학 당시부터 창설된 축구부가 전국대회 우승팀인 모(某)학교와 시합 때면 목청껏‘우러러 보아라 우러러 보라’ 의 응원가를 외치며 승리의 함성이 교정을 진동시켰던 여파가 지금도 저희 귓전에 생생함 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여파로 1980년 11월에 제1회 일고인 체육대회를 창설하게 되었습니다.

32 제42호 동창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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