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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는 과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난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거야― 잔시스는

골똘히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일층의 바닥을 막 밟았을 때, 넓은 홀에 면한 문이 열리면서 서른 살 정도의 아름다운 금발 미인이 나타났다. 그 뒤엔

토프가… 아뿔사, 하고 잔시스는 생각했다. 토프는 이미 외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층으로 뛰어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토프와 금발의 여성이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세련된 금발 미인으로부터 저울질하는 듯한 눈길을 받자, 잔시스는 그 자리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열패감을 느꼈다. 상대는 롱드레스에 모피 코트 차림인데, 자신은 진

팬츠에 스웨터를 걸쳐 마치 골목대장 같은 꼴이다. 두 사람은 막 외출하려는 참인 듯싶다. 이 여자가 오늘 밤 토프의 진짜 상대군. 나는 저녁식사에 초대된 귀찮은 방해꾼에 지나지 않는다.

토프는 금발 미인을 아이린 포브스라고 소개했다. 잔시스는 악수하려고 했으나, 상대가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잘 어울리는 오만한 한쌍이군, 하고 생각하면서

잔시스는 두 사람 곁을 빠져 나갔다. 주방은 오른쪽이었던가… 토프와 금발 미인이 홀에 있는 동안에는 전화번호부를 찾고 싶지 않다. "무슨 볼일이라도?" 토프가 물었다.

'당신한테 볼일은 없다구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저어, 헤밍즈 부인은 어디에 있나 싶어서…" 잔시스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그녀는 남편의 시중을 들러 갔을 거요." 토프가 말했다.

그때 아이린 포브스가 초조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곧 갈 테니 차 안에서 기다려 줘요, 아이린."

아이린이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토프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잔시스는 싸늘하게 내뱉았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전화를 걸까 하는데, 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서요." "그럼, 전화번호부를 가지러 왔단 말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토프는 전화 박스로 걸어가 밑에 있는 장을 열었다. "어디?"

그는 몸을 굽히면서 물었다. "런던의 M항(項)이에요."

토프의 변죽울리는 표정을 본 잔시스는 일부러 태연하게 대답했다. "벌써 남자들이 그리워졌는가, 잔시스?"

전화번호부를 손에 든 토프는 빈정거리면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매서운 말투로 다짐하듯

말했다.

"여기에 있는 동안은 나의 조카를 타락시킬 만한 행동은 삼가해줘."

분노로 녹색의 눈동자를 빛내면서, 잔시스는 토프의 손에서 전화번호부를 낚아채자,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잔시스는 일 초라도 더 거기에 머문다면, 토프에게 손바닥 세례를

퍼붓고 말 것 같아서였다. 그런 호령조의 말은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에게 잔시스라고 불린 것도 싫었다. 언젠가는 복수할 테야! "야, 제법이야. 찾아왔구나."

잔시스가 돌아오자마자, 소피는 명랑하게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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