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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라는 차에서 내리자 머리를 숙여 차창으로 콘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제 한 번만 더 이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것으로 끝이다. 영원히. 갤라는 자기자신에게 다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콘." "잘 자요." 자동차 뒤의 빨간 불빛이 인적이 끊긴 눈길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 한 번만 더." 갤라는 또다시 확인하듯 자신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나 집 앞에 채 이르기도 전에 갤라의 눈은 이미 눈물로 흐려져 있었다. 6 이튿날, 오랜만에 비가 나무들이며 병원의 창을 사정없이 두들겨 댔다. 도로는 녹아내린 눈으로 질척거리다가 저녁때가 되자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들판은 로맨틱한 흰옷을 벗어던지고 무미건조한 제 모습에 당황하고 있는 듯했다. 갤라는 귀로의 차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런던 가까이에 다달았을 때는 이미 해질녘이 되어 겨울의 황혼이 긴 그림자를 끌면서 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온종일 콘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지난밤의 흥분은 이미 가셔 있었고, 두 사람의 건조한 관계를 생각하면 우울할 뿐이었다. 그런데 콘에 대한 이런 감정은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끌리는 한편으로는 거부하고, 희망을 가지면서도 믿지 못하는 서로 반발하는 두 얼굴이 혼합돼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갤라의 내부 깊숙이에 뿌리내리고 있어 아무래도 떨쳐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기 분이었다. 지난밤 콘으로부터 몸을 빼낸 행위는 자신의 일부를 비틀어 뽑아낸 거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모레 또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이 불처럼 달아오른다. 겨우 2, 3 주일 사이에 콘은 누구보다도 깊숙이 갤라의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잡고 있었다. 콘을 단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다. 생동감 있고 독특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콘과의 접촉에서 얻었기 때문이다. 갤라는 하루종일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질 않았다. 쉴새없이 콘의 장점과 단점을 헤아려 보고 그는 신용할 수 없는, 사람을 배반한 적이 수없이 많은 사람임이 분명할 거라고 생각했다. 전혀 기운이 나지 않는 상태에서 환자의 치료가 그럭저럭 끝났다. 집에 돌아온 갤라는 파샤에게 먹이를 주고는 안락의자에 몸을 던졌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갤라는 꼼짝도 하기 어려웠으나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세련된 정장 차림의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갤라와 같은 색조의 옷차림에 적갈색 머리를 짧게 깎은, 또한 어쩐지 상처받기 쉬울 듯한 푸른 눈을 가진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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