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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THE MIJUCHOSUN E*NEWS

목포 삼학도공원은 지금 인공섬이다. 3

개의 섬 사이를 인공 물길이 흐른다.

섬이 세마리 학이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해서 삼학도가 됐다. 이름부터 비상한 이

공원엔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까.

◇K팝 원조를 찾다

K팝의 원조는 누구인지, 대중음악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가수가 하나 있다. ‘목포의 눈 물’이 앞에 붙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이난영 (1916∼1965)이다.

그를 일제강점기 트로트 가수로만 알아 서는 곤란하다. 1939∼1940년 그가 부른 ‘

다방의 푸른 꿈’, ‘항구의 붉은 소매’, ‘바다

의 꿈’ 등은 스윙재즈, 스캣 송, 블루스 등

이 가미된 곡들이다.

그룹 활동도 했는데, 이난영이 포함된 ‘ 저고리시스터즈’는 걸그룹의 효시격이다.

전통민요와 신민요에도 능했으며 뮤지컬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배우 기질도 다분 했다. 폭넓은 음악적 양식을 소화한 만능 가수였다.

◇프로듀서 이난영

이난영은 남편인 작곡가 김해송이 납북 돼 사망한 뒤 자신의 딸들과 조카로 구성

된 ‘김시스터즈’라는 걸그룹을 키워낸다.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역할이다.

김시스터즈는 대성공이었다. 비틀스가

미국에 상륙할 때 교두보가 됐던 ‘에드 설

리번쇼’에 22차례나 출연했다. 그 자신도

쇼에 출연해 김시스터즈와 함께 아리랑을

노래하기도 했다.

이난영은 1965년 서울 회현동 자택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 누구보다 화려했으나 이

면엔 한 여성으로서 불행과 불운의 그림자

를 오랜 시간 떨치지 못했다.

어려서 가난과 고생을 달고 살았고 오

랜 부부 갈등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남편

이 죽은 뒤에는 7남매를 데리고 생활을 꾸

려나가야 했다.

또 이후 사실혼 관계였던 동료 가수 남

인수가 병사하자 나중에는 상실감에 약물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난영을 말할 때

프랑스의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와 비교

하기도 한다.

경기 파주에 있던 이난영의 묘는 2006

년 목포 삼학도공원으로 옮겨왔다. 우리나

라 최초의 수목장이다. 이난영 묘역은 지

금 난영공원이라 부른다. 삼학도공원 안에

난영공원이 있는 것이다.

◇인공섬이 된 삼학도

목포 삼학도는 ‘섬→육지→(인공)섬’의

운명을 밟아온 특이한 섬이다. 삼학도라

하면 대삼학도, 중삼학도, 소삼학도 3개의

섬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오래전 삼학도는 세종 21년(1439) 목포

시 만호동에 설치된 수군 진영인 목포진( 鎭)에서 병사들이 배를 타고 건너가 땔감

을 구하던 섬이었다.

국유지이던 삼학도는 일제강점기 헐값 에 일본인의 손에 넘어갔으나 해방 후 시

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1968년 간척사업으로 삼학도는 육지가

된다. 그리고 이곳에 항구가 생겨 배가 드

나들고 세관도 들어섰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삼학도를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

면서 공원 조성 사업이 진행된다. 들어섰

던 부두 시설들이 하나씩 바깥으로 빠져

나갔다.

3개 섬 전체가 삼학도공원이 됐다. 폭 7

m의 수로를 만들어 3개의 섬을 물 위로 띄 웠다. 인공섬이 된 것이다. 하루 두 번 밀물 과 썰물 때 이곳 수로에도 바닷물이 들어

갔다가 빠져나온다.

2006년 난영공원이 들어섰고, 2013년 에는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과 김대중 노

벨평화상기념관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바다에 빠진 세 마리 학 삼학도(三鶴島)라는 이름은 섬의 모습이

세 마리의 어린 학이 어머니 품을 떠나 영 산강으로 날아가 앉은 형상이라는 데서 얻 어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을에 사는 세 처녀가 유달산에서 수 도 중인 한 청년을 흠모했는데 청년이 이 를 거절하자 처녀들은 상사병으로 죽고 그 넋이 세 마리 학이 되어 유달산 주변을 날 아다녔다. 청년이 수도를 마친 뒤 세 마리 학을 보고 활을 쏴서 맞췄더니 바다에 떨 어져 그 자리에 세 개의 섬이 생겼다는 전 설이다.

항구와 바다 풍경에 무신경한 사람이 아 니라면 천천히 섬 전체를 돌아보는 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난영 묘 언덕에서부터 곳곳에 동백의 붉은 꽃잎이 자칫 단조롭게 보일 겨울 공

원길을 애써 위로해준다.

낮게 깔린 잿빛 하늘 아래로 흐려서 더욱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 유달산과 목포 진이 흑백사진처럼 무뚝뚝하게 서 있다.

무장애길로 꾸며진 무한대 기호(∞) 모

양의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한편엔 소나 무 숲과 동백꽃이, 다른 한편엔 바다와 항 구, 정박한 배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번갈 아 눈을 즐겁게

카페, 소삼 학도 한편에 조성된 포장마차촌까지 둘러 본 뒤 삼학도공원을 정면에서 보고 싶어 항구 건너편 목포진으로 향했다. 목포진에 오르니 목포항과 삼학도가 한 눈에 시원스럽게 잡힌다. 전영자 목포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목포 는 수많은 섬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는 길 목 같은 곳이며 그래서 이난영의 노래 제 목이기도 한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이 유 명해진 것”이라면서 “목포에서 봤을 때 삼 학도는 모든 섬을 대표하는 섬”이라고 말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이난영의 노래 제목과 가사가 다시 보였다. 그의 대표곡 ‘목표의 눈물’도 왜 목포의 눈물인지 다시 한번 생 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봄이면 이곳에 온통 튤립이 만발한다고 한다. 훈풍에 튤립 사이를 걸으면 ‘사공의 뱃노래’ 대신 튤립꽃 향기가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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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나온 마리아 칼라스의 목

소리가 10대였던 제 어머니의 마음을 흔들

어놨다고 합니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반

드시 성악가를 시키겠다고 결심까지 하셨

대요. 완전히 칼라스에게 매료됐던 거죠.”

소프라노 조수미는 19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영

화 ‘마리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자신

이 마리아 칼라스(1923∼1966)로 인해 성

악가의 길을 걷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마리아’는 20세기 오페라계 최고의 디

바 중 하나로 꼽히는 칼라스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다.

조수미의 어머니는 조수미를 임신한 당

시 칼라스의 음악으로 24시간 태교했을

만큼 그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 영향을 받

아 딸을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키워냈다.

조수미는 “태어났을 때부터 저의 운명은

딱 정해져 있었던 것”이라면서 “네 살 때부

터 성악, 피아노, 발레, 한국 무용, 피겨스케

자신이

한 다.

술,

울증 등 심리적 요인으로 무대에 서지 못 했다.

조수미는 대학 시절 연애를 하느라 학업 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서울대에서 제적당 한 일을 떠올리며 “그때 저도 사랑을 열심 히 했다”고 웃었다.

그는 “아직 그분(전 남자친구)의 영향이

있어서 사랑 노래를 할 때면 그 사람을 생 각한다”면서 “예술가에게 사랑은 매우 중

요하다”고 말했다.

기를 줬다. 돈이 없어서 레슨을 받지 못했 을 때 3년 동안 돈 한 푼 받지

가르쳐준

“요즘은 결혼도 하고 커리어도 잡는 게

가능한데, 제가 처음 유학하러 갔던 당시

만 해도 그럴 수가 없었어요. 40년 전에 김

포공항에서 아버지께서 제게 ‘노래하든 시

집을 가든 둘 중 하나만 정하라’고 하셨죠.

저는 노래를 택했습니다.”

조수미는 서울대 제적 뒤 부모의 손에

하지만 그는 칼라스가 오나시스로 인해 짧은 전성기를 누린 것을 보며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는 30년, 40년, 50년 동 안 무대에 설 거야”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끌려 이탈리아 로마의 명문 음악학교인

산타체칠리아국립음악원에 입학했다. 5년

과정을 2년 만에 끝낸 그는 1986년 오페라

‘리골레토’로 데뷔한 뒤 세계적인 프리마

돈나로 활약했다. 내년이면 그가 국제 무

대에 선 지 꼭 40년이 된다.

조수미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기 영화로

만든다면 유럽에서 활동했던 스토리를 꼭 넣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밖에서 얘기하지 못했던 그 시절 경험을 영화로 푼다면 10일은 걸 릴 것 같다”면서도 “동양인이라는 점은 핸 디캡(장애물)이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사 람이라는 자존심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해 나가 는 동안 위험,

갔어요. 하나의 투쟁이라 할 수 있죠. 아마 칼라스도 그랬을 겁니다. (제가 하는 것처 럼)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나는 왜 이렇게 외 롭나 이런 고민을 엄청나게

이어 “처음 이탈리아에 갔을 때 먹지를 못해서 병원에 실려 갔더니 간호사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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