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 THE MIJUCHOSUN 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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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현 교수 작곡…도르트문트 청소년 합창단 인연으로 공연
국현 전남대학교병원 교수가 작
곡한 종교 미사곡이 한국인 최초
로 독일 쾰른 대성당에서 연주돼
눈길을 끈다.
전남대병원은 국현 전남대병원·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 교수
가 작곡한 ‘어린이 합창을 위한 작
은 미사(Missa brevis)’가 지난달
30일 쾰른 대성당에서 연주됐다고
24일 밝혔다.
한국인이 만든 곡이 쾰른 대성당
에서 연주된 것은 처음이다.
쾰른 대성당은 630여년의 전
통을 자랑하는 가톨릭교회로, 선
곡을 매우 까다롭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엄격한 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국 교수
의 곡을 불러 유명해진 도르트
문트 청소년 합창단의 덕분이기 도 했다.
도르트문트 청소년 합창단은 2023년 바리톤 박흥우의 소개로 국 교수의 곡을 받아 최고 권위의
독일합창대회에서 우승했다. 한국 정서와 한국어 가사를 담
아 만든 ‘수리수리 마수리’, ‘달아
달아 밝은 달아’가 이 합창단의 목 소리를 타고 흘러 청중들의 귀를
사로 잡았다.
당시 우승을 계기로 전세계서 활
동하던합창단은 쾰른 대성당 무대
에 서게 되자 지난 11월 국 교수에
게 미사곡 작곡을 요청했고 국 교
수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
서(Kyrie)’ 등 총 5곡을 만들었다.
이중 장구와 함께 연주된 ‘축복
의 노래’는 돌림노래 형식을 민요
가락에 담아 한국의 예술혼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 교수의 작품은 도르트문트 청
소년 합창단, 피아노 배선경, 오르
간 다비드 키퍼, 장구 김남숙과 함
께 정나래, 죌로 다부토비치의 지
휘 아래 쾰른 대성당에서 울려 퍼 졌다.
국 교수는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370여 개가 넘는 곡
을 만들어 50여 곡이 미국 출판사 에서 발표됐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 을 선보였다. 국 교수는 “아마추어 작곡가로 서 부족하지만, 한국의 영역을 더 욱 다양하게 넓힐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의과대학 교수.
한국인 2명, 7만4천㎞ 전 구간 항해하고 英 귀항 “어려울까 포기했던 것, 후회 없이 해보려 도전”
전 세계 바다를 11개월간 요트 로 항해하는 ‘클리퍼 세계일주 요
트대회’(Clipper Round the World Yacht Race) 전 구간을 한국인 두
명이 완주했다.
주인공은 문지현(43·남), 이나경 (38·여) 씨다. 이씨는 한국 여성으
로는 최초로 이 대회 전 구간 완주 에 성공했다.
이들은 27일 오후 다국적 팀인 베케젤라(BEKEZELA) 팀의 일원
으로 영국 잉글랜드 남부 포츠머스 항에 귀항, 11개월의 대장정을 마 쳤다.
지난해 9월 포츠머스에서 출항 해 스페인, 우루과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호주, 베트남, 중국, 미국, 파나마, 스코틀랜드 등지의 14개
항을 거쳐 포츠머스로 돌아왔다.
이씨는 이날 입항한 뒤 “인생에 서 정말 값진 경험이었기에 도전을 시작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감
격해했다.
문씨도 “무사히 도착하게 된 점
이 그저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 다.
항해 중 어려웠던 부분을 묻자
이씨는 궂은 날씨를 뚫고 항해했
을 때와 바람 한 점 없는 무풍지대
에 갇혔을 때 느꼈던 압박감을 꼽 았다.
좁은 공간에서 거의 1년에 걸쳐
여러 명이 팀을 이뤄 지내야 하는
환경상 팀원간 마찰을 피할 수 없
다는 문제도 있었다.
이씨는 “여기서는 숨을 곳이 없 기에 솔직한 나 자신이 된다”며 “좋
은 점을 인정해주고 조금 못난 점 이 있어도 서로 보듬어 안아주며
한 팀이 됐다”고 설명했다.
문씨도 “다들 본인의 위치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한데 모였 기에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 었다”고 말했다.
격년제인 이 대회는 세계 최초 로 무동력으로 중간 기항지 없이 세계 일주에 성공한 로빈 녹스-존 스턴 경이 만든 것으로 1996년 시 작됐다.
길이 70피트(약 21m)의 해상 경 주용 요트로 4만해리(7만4천㎞)를 8구간으로 나눠 경주한다. 항해 경
험이 없는 아마추어가 참여할 수 있는 대회로는 세계에서 가장 명성 높은 대회로 꼽힌다.
아마추어 참가자들은 4주간 집 중훈련을 받아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전문적인 선장(skipper)
이 아마추어 선원들을 이끌어 항 해한다.
장기간에 걸쳐 세계를 일주하는 것이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과 거 사망자가 나온 적도 있었고 중 도에 경주를 포기하는 사례도 종
종 있다.
이씨는 이번 세계일주 전에는 요 트 항해 경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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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알고 보면 악성(樂聖)
베토벤과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를
키운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토벤을 후원한 것도 당시 보헤
미아를 주름잡던 로브코비츠 가문
이었다. 베토벤은 로브코비츠 가문
에게 자신의 교향곡 5번 ‘운명’과 3
번 ‘영웅’ 등을 헌정했다. 모차르트
는 프라하 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
에 용기를 얻어 불우했던 말년에도
불후의 명작들을 남길 수 있었다.
◇베토벤 키운 로브코비츠 가문 프라하성은 대부분의 관광객이
빠뜨리지 않고 찾는 곳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실제 프라하성
으로 착각하며 사진을 찍는 건물은
알고 보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가운데 하나인 성 비투스 대
성당이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2018년 방 문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꿈에도 생각하
지 못했던 곳에서 큰 보물을 발견
했다.
체코에서는 민간 궁전으로 특이하
게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례적
으로 등재된 로브코비츠 궁전이다.
로브코비츠 궁전은 프라하성을
관람하고 나오는 길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 프라하성을 둘러본 뒤에
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또 다른
여행목적지로 향하기 마련이어서
이곳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러나 알고 보면 로브코비츠 궁
전의 주인 로브코비츠 가문이야말 로 지금의 서양 클래식 음악을 발
전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가문이다.
알고 보면 프라하는 악성(樂聖)
베토벤과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를
오늘날 이 자리에 있게 한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데 로브코비츠 가문이
있었다. 로브코비츠 가문으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은 베토벤은 교향
곡 3번 ‘영웅’과 5번 ‘운명’을 비롯
해 많은 교향곡을 로브코비츠 가
문에 헌정했다.
교향곡 3번 영웅에 얽힌 스토리
는 너무나 유명하다.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 헌정하
려고 작곡했지만, 나폴레옹이 황제
에 오르자 분노에 차 악보 표지를
찢어 버렸다는 이야기다.
로브코비츠 궁전에는 베토벤 교
향곡 5번 '운명' 등의 친필 악보가
전시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모차르트를 열렬히 후원한 프 라하
프라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초연된 곳이다.
모차르트는 이처럼 프라하 시민
들의 열광적인 지지에 용기를 얻어
병색이 짙은 말년에도 불후의 명작
들을 남길 수 있었다.
모차르트는 자신을 따스하게 맞
아준 프라하 시민들을 위해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했고, 1787년 10 월 29일 에스테이트 극장에서 역사
적인 초연을 했다.
그래서 프라하는 ‘돈 조반니의
도시’라는 별칭을 얻었다.
모차르트를 아꼈던 프라하 시민
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얼굴
없는 유령’이라는 청동상을 제작해
그에게 선물했다.
그러면 모차르트는 왜 당시 변
방에 불과했던 이 프라하를 이토
록 사랑했던 것일까. 그것은 신성로
마제국 소속의 보헤미아 지역인 프
라하에는 왕이 거주하지 않았기 때
문에 민중들의 삶이 더 자유로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모차르트의 희극 오페라 ‘피가로 의 결혼’은 중세 봉건시대 영주의 초야권(初夜權)을 비꼬는 희극 오 페라이다.
초야권은 중세 시대 영주가 남녀 의 결혼 시 그 신부와 먼저 하룻밤 을 보낼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초야권의 실제 존재 여부는 논 란의 대상이지만, 모차르트를 비 롯한 예술가들이 작품 소재로 많 이 다뤘다.
이는 프라하에서 귀족과 군주들 을 풍자하는 작품들이 자유롭게 만들어질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강원도 횡성에 있는 횡성호는 자
연을 관조하며 잠시 쉬어갈 수 있
는 여행지다.
특히 이맘때는 푸른 숲과 하늘이
수채화처럼 호수에 비쳐 색다른 풍
경을 보여준다.
소박한 장식물을 보며 흙길을 걷
다가 탁 트인 전망과 마주칠 수도 있다.
◇수몰민의 애환이 서린 망향의
동산
횡성군 갑천면에 있는 횡성호는
1993년 착공돼 2000년 횡성댐이
완공되면서 생겨난 인공호수다.
횡성호로 가는 길에서 허리까지
자란 옥수수, 이미 모내기를 끝낸
논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날씨는 더웠지만, 바람은 시원했
고 건너편 산의 나무들은 짙은 녹
색에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도롯가에는 노란 금계국이 여기
저기 피어 있었다.
이곳에는 호수와 주변 산을 테마
로 해 모두 6개의 횡성호수길이 약
31㎞에 걸쳐 조성돼 있다.
이 중 가족 길로 불리는 5구간
은 호수를 끼고 있는 평탄한 길인
데다 원점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코스다.
길은 ‘망향의 동산’에서 시작과
마무리를 할 수 있다.
취재팀도 망향의 동산에서 취재
를 시작했다. 횡성댐이 담수를 시
작하면서 갑천면 구방리, 중금리, 화전리, 부동리, 포동리 등 5개 리
가 물속에 잠기게 됐고 253세대 938명이 고향을 떠나 이주했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
려야 했던 수몰민에게 고향에 대한
정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망향의
동산이 조성됐다고 적혀있다.
망향의 동산에는 새의 날개를 구
현해 희망찬 내일을 표현했다는 기
념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그 옆에는 중금리 3층 석탑이 서
있다. 석탑의 원래 위치는 이곳에
서 2.2㎞가량 떨어진 갑천면 중금
리 탑둔지의 옛 절터였는데, 댐 건
설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석탑의 건립 시기는 9세기 말로
추정된다. 석탑 뒤쪽으로는 맑은 날
씨 속에 파랗게 보이는 호수가 넓 게 펼쳐져 있다.
망향의 동산에는 화성의 옛터 전
문화,
대한
등을 전시한 공간이다.
망향의 동산에서 조금만 시선을
안쪽으로 돌리면 눈에 띄는 조형
물이 보인다. 소
품 ‘코뚜레 게이트’다. 예부터 코뚜
레를 문에 걸어두면 복이 들어온다
는 이야기가 있다.
코뚜레 조형물을 보고 나니 다시 한번 횡성이 한우의 고장이라는 점 이 떠올랐다.
◇소박한 장식물을 보며 흙길을
걷다
매표소를 지나자 싱그러운 풀냄
새가 났다. 해가 쨍하게 났지만, 그 늘이 많이 져 더위를 걱정할 만큼 은 아니었다.
잠시 걸어갔는데, 길가에 깨진
장독과 오래된 나뭇조각이 놓여
있고 그 안에 식물이 심겨 있는 모 습이 보였다.
옛날 소 여물통 형태의 나뭇조 각에도 역시 풀과 꽃이 자라고 있 었다.
흙길을 걷는 동안 이러한 장식물 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주변의 자 연과 꽤 잘 어울렸다. 호수로 이어진 지점에 놓인 ‘장 터 가는 가족’이라는 브론즈 작품 이 눈에 띄었다. 장터로 가는 가족의 여정을 조 명한 작품으로, 오일장으로 이어 지던 길은 호수에 잠겼지만, 과거 와 현재를 잇는 마음의 길을 연결 하고자 했다고 안내판은 설명하고 있다.
양쪽 길가에 놓인 ‘장터 가는 사 람들’이라는 작품은 오일장에 모인 여러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이 작품 은 지게 짐을 진 남성, 머리에 짐을 이고 아기를 업은 여성 등을 실루 엣 기법으로 표현했다. 길을 가는 동안 나비, 나뭇잎 등 여러 형태의 벤치가 놓여 있었다.
필자는 호수 방향으로 난 벤치에 앉아 떡갈나무, 아까시나무 사이로 보이는 호수를 잠시 바라보기도 했 다. 여러 개의 벤치에 자작나무로 만든 사람 형태의 조형물이 앉아 있었다.
어깨에 팔을 두른 조형물 양옆
으로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가방 을 멘 방문객들이 앉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순서를 기다리는 일행도 여럿 보였다.
청명한 날씨에 풍경이 푸르러서 인지 지나가는 사람들도 유쾌하게
보였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
아 안정적이고 적당한 거리감이 느 껴졌다.
사람이 함께 걷는 발소리가 들리다 가 더 시간이 지나자 필자 자신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다.
흙길에 내려앉은 작고 귀여운 딱
새도 보였고, 꾀꼬리의 휘파람을
부는 듯한 소리도 자주 들렸다.
◇호수에 비친 자연의 수채화
몇시간 걸었더니 배가 출출해졌
다. 전망 좋은 큰 쉼터에는 이미 여
러 일행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그 옆에 조그마한 나무 의자에 앉
아 가져온 간식을 먹었다.
먹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마치
수채화 풍경 같다”는 동료의 말이
들려왔다.
그제야 호수를 바라보니 건너편
에 산과 하늘이 거꾸로 비치고 그
경계에 윤슬이 빛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잔물결이 이는 부분은 형태가 살
짝 풀어져 있었다. 호수에 비친 초
록색과 하늘색·흰색, 산과 하늘의
형태는 단순하면서도 많은 것을 담
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일어나 길을 걸었다.
중간중간 삼한 시대 진한의 마지
막 왕인 태기왕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태기왕의 군사들은 신라군에 쫓
기던 중 이곳에서 피 묻은 갑옷을
씻었다고 한다. 횡성호가 있는 갑
천면의 지명은 이것에서 유래했다
는 이야기다. 길을 걷다 보니 횡성호의 계절
풍경을 보여주는 사진을 야외에 전 시한 ‘호수 갤러리’도 있었다. 길은 이전까지는 꽤 널찍했는데
이제부터는 오솔길이었다. 폭이 좀
더 좁고 호젓했다.
이따금 호수를 바라보니 물 밖으 로 경사진 흙길이 층을 이뤄 이색
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넓은 호수에 뚝 떨어진 작은 섬
(히브리서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