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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원


밀어密語 : 왕의 속삭임

양대원

Yang Dae Won 2019. 11. 8 - 12. 15


양대원 전을 마련하며 지난 9월 경기도 덕소에 있는 양대원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의 작업실에서 기존에 알고 있던 양대원의 작업 스타일과 완전히 다른 새롭고 낯선 작품들을 만났다. 작품의 급격한 변화는 내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때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혼란스럽지만 대견하고 불안하면서도 유쾌했다. 미술관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글을 떠올렸다. 그는 창의적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창의적 인간이란 기존의 영역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변형을 만드는 행위나 사고방식, 또는 새로운 작품을 창작한 사람을 가리킨다’ 제 아무리 창의적 인간일지라도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극소수의 인간만이 자신이 세운 전통과 역사를 스스로 뛰어넘는다. 그의 창의성은 늙지 않을뿐더러 계속해서 성장한다. 그는 열정적인 에너지를 쏟으면서 새로운 영역을 탐사한다. 양대원 작가가 그런 특별한 예외에 해당하는 인간이다. 창작에 대한 강렬한 욕구, 창작 과정에서 부딪치는 현실적 어려움, 창작활동에 대한 고뇌와 두려움, 불확실한 미래, 인정받고 싶은 갈망이 그가 변화를 주도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사비나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작품이 그가 자신의 작업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 인식했다는 증거물이라고 생각한다. 변화에 대한 의미와 평가는 작품을 감상하는 미술전문가와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2019년 11월 사비나미술관장 이명옥


왕 의 일 생1 210×150cm, 2017


왕 의 빵 200×137cm, 2017


왕 의 생 149×147cm, 2017


왕 의 세 계 148×179cm, 2017


왕 의 왕 148×138cm, 2017


왕 의 生 149×148cm, 2016


왕 의老 149×148cm, 2016


왕 의 病 149×148cm, 2016


왕 의死 149×148cm, 2016


왕의초상( 生) 148×105cm, 2018


왕 의 초 상 (老 ) 148×105cm, 2018

왕의초상( 病) 148×105cm, 2018


왕 의 죽음 212×148cm, 2016


왕 의 드 라 마 148×87cm, 2017


왕 의방 148×105cm, 2018


왕 의 수 평 선2 210×148cm, 2018


왕 의 수 평선3 210×148cm, 2018


◀ 왕의 격 언 - 0 4 154×94cm, 2019 ▶ 왕의 격 언 - 0 3 154×94cm, 2019


왕 의 사 냥 -05 91×154cm, 2019


왕 좌 ( 사 랑) 89×74cm, 2013


사유와 형식 사이, 탐미주의자 양대원의 가설(假說)

미있는지 키득키득 실실 웃기까지 하는 그들에겐 눈 씻고 봐도 군기라고는 없었다. 물론 김일성광장이나 천안문광장 열병식 군인들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야말로 어정쩡한 상태. 민간인도 학생도 군인도 아

이준희 건국대 겸임교수

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전후좌우 떼 지어 다니는 모습 이 처음엔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

양대원 작업실에 다녀온 지 며칠 후. 태풍은 동해안에

다. 그 광경을 한동안 지켜보자니 서서히 심기가 불편

서 소멸했다. 그 여파로 하늘은 유난히 파랬고, 뭉게

해졌다. 예전 군대시절 똑같은 교육을 받던 기억이 트

뭉게 순백 구름이 피어났다. 그날 오후, 나는 어느 대

라우마처럼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학교 교정 나무 그늘에 앉아 양대원 작업실에서 본 작

몸이 옥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발걸음조차도 제 맘

품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운동장 구석에서 함성

대로 뗄 수 없도록 만드는 제식훈련은 인간의 자율의

이 들렸다. ROTC 후보생들이 제식훈련 받으며 외치

지를 무력화시키는 과정이다. 개성을 말살하고 본능

는 소리였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스탠드를 따라 돌아

을 거세하는 잔인함. 인간이 인간을 통제하고 억압하

좀 더 가까운 곳으로 걸어갔다. 앳된 얼굴이었다. 다

는 폭력과 다름없다. 교관 구령에 따라 떼 지어 움직

림질도 하지 않은 구겨진 군복을 입고, 뭐가 그리 재

이는 군인은, 적어도 그 순간 정상적인 인격체가 아 니다. 자아와 개성을 송두리째 빼앗긴 영혼의 껍데기 일 뿐, 전체를 위한 부분이자 익명으로 불리는 소모품 같은 존재일 따름이다. 그들에게 창조적 행위는 기대 할 수 없다. 군인의 대척점에 예술가가 있다. 몰개성 적 개체인 군인은 절대 권력에 통제된다. 규율에 얽매 여 획일화를 강요받는다. 반면 예술가는 이 모든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예술가가 고독하고 외로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세상에 예술가가 필요한 이유, 범인( 凡人)이 예술가를 부러워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예술가는 자유와 창조성을 발현하는 이상적 인간상의 최후 보루다. 20여 년 동안 알고 지내온 작가 양대원. 그가 바로 이런 예술가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양대원은 누구의 간섭이나 통제 따위는 받지 않는다. 철저히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삶의 패턴 속에서 올곧 이 자신만의 주관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내용에서 형식으로 이번 양대원 개인전은 공식적으로 3년 만에 열리는 전시다. 3년 전엔 동산방갤러리에서, 그 보다 앞서 3 년 전엔 사비나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렸었다. 그러


니까 6년 만에 다시 사비나미술관에

고루 펼쳐 바르고, 이것을 걸레로 닦

서 개인전이 열리게 된 셈이다. 그 사

아내고 그 위에 다시 기름칠하는 과

이 사비나미술관은 신축 재개관하며

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이렇게 함

변모를 거듭했다. 이에 부응하듯 양

으로써 한지 특유의 표면 질감이 부

대원 역시 이번 전시에서 지금까지

각된다. 바탕색은 한지 본연의 색에

보여주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 가장

흙 가루색이 보태어져 누르스름한 빛

눈에 띠는 것은 ‘입체-설치작품’이다.

깔로 은은하게 드러난다. 군데군데

신작은 파격적이다. 사전 정보나 설

미세하게 얼룩무늬가 보이지만 표면

명이 없다면 양대원 작품이란 걸 쉽

은 매끈하게 마무리된다. 그림 바로

게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낯설고 새

앞에 코를 들이박고 가까이 다가가서

롭다.

살펴보라. 닥나무 섬유질 사이에 누

양대원이 입체작품을 본격적으로 만

런 흙가루가 어떻게 안착되어있는지

들기 시작한 건 2년 여 전, 사비나미

를. 그 자체가 웬만한 모노크롬 단색

술관 이전계획이 구체화 될 즈음이었

화 회화를 뛰어넘는 ‘수행’의 흔적이

다. 입체에 대한 구상은 이미 10여 년

다. 이렇게 힘들여 바탕을 만들고 비

전부터 해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벼

로소 그 위에 원하는 모양으로 선을

르기만 해왔다. 짐작대로 가장 큰 이

긋는데, 뾰족한 송곳을 힘껏 눌러서

유는 녹록치 않은 제작비용 때문. 그

오목하게 패인 자국, 즉 홈을 내는 식

사이 여건이 크게 좋아진 것도 아니

이다. 옴폭하게 눌린 선 자국에 다시

지만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입체작업

토분을 발라 홈을 메우고 닦아내기를

을 시작했고, 그 결과물을 이번 개인

반복한다. 완성된 작품에서 가는 선(

전에서 선보인다. 상황이 여의치 않

線)이 예리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이

더라도 밀고 나가는 추진력. 무모해 보일지언정 하고

유가 여기에 있다. 고려청자 상감기법처럼 고운 흙가

싶은 작업은 반드시 해내는 실행력. 누가 강제로 시켜

루가 홈을 매워 선자국을 뚜렷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서도 아니고 등 떠밀려서도 아닌, 자발적인 창작동기

검은색 형상도 마찬가지다. 묽게 탄 검은 색 물감을

와 필연성. 지시와 명령에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군인

얇게 칠하고, 완전히 마르면 다시 덧칠하는 과정을 10

과 비교되는 예술가의 속성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여 차례 반복한다. 칠흑같이 짙은 검은색은 이렇게 구

예술가로서 양대원의 면모를 실감한다.

현된다. 물감을 한두 번 칠한 것과 달리 깊은 맛이 우

입체 신작을 톺아보기 앞서 평면작업을 먼저 되짚어

러난다. 이처럼 양대원의 평면작품은 쉽게 ‘그려진 것’

보자. 양대원이 캔버스 역할을 하는 밑바탕, 즉 평면

이 아니라 어렵게 ‘만들어진 것’이다. 숙련된 장인(匠

지지대를 독특한 기법으로 만든 다는 것은 익히 알려

人)의 노동과 고된 수공(手工)의 흔적이 베인, 완성도

진 사실이다. 스스로 체득하고 미련 맞게(?) 고수해 오

높은 ‘특별한 평면회화’다.

고 있는 제작방식은 이렇다. 먼저 한지를 여러 장 배

번거로운 제작과정에 비해 조형요소는 아주 단순하

접하고 한쪽(뒷)면에 면(綿) 천을 덧대서 두툼하게 만

다. 오직 면과 선으로만 이루어졌다. 컬러도 절제됐고

든다. 그리고 반대쪽 (앞)면 전체에 토분(土粉)을 골

구성도 간결하다. 원초적인 기본 단위로만 조화를 이


룬 미니멀의 극치다. 특히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구성

여기서 ‘왕’은 양대원이다. 그런데 “비밀스러운 말”, “

회화를 연상시키는 검은 색면은 비재현적이며, 비언

속삭임”이라니. 양대원은 굳이 목청 높여 큰소리로 말

어적인 추상 이미지다. 주로 기학적인 도형 형태가 많

하지 않는다. 역설이고 반어법이다. 이 ‘은밀한 느낌’

지만 가끔은 인간이나 눈물을 상징하는 기호로도 표

은 오히려 외침보다 더 강력하고 근엄하게 다가온다.

현된다. 이 색면은 또 다른 조형요소인 선과 어울리

작품주제는 크게 두 갈래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며 다채롭게 변주되는데, 굵기가 일정한 선은 수직/

‘나’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과 천착(穿鑿)에서 비롯된

수평/ 대각 또는 동그라미나 물결무늬 같은 곡선으로

문제, 즉 ‘자화상’으로 대변되는 일련의 작품이고, 또

자유자재 변용된다. 그리고 이 선은 검은 색면과 유

다른 갈래는 타인과 역사, (현실)사회라는 외부영역

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의미해석의 연결고리 역할을

에 대한 ‘반응’의 결과물이 그것이다. 전자는 자의식에

한다. 육중한 무게감을 지닌 검은 덩어리가 화면 위

서 비롯된 실존주의적 태도, 즉 내면으로 깊게 침잠(

에 견고하게 각인되어 고정되어 있다면, 운동감과 방

沈潛)하는 형국이다. 초기작 <섬> 연작이 좋은 예다.

향감을 지닌 선은 가볍게 부유한다. 경직된 화면에 리

반면 후자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우회적으로,

듬, 속도와 율동감을 자아내면서 생기를 불어넣는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발산(發散)하는 모양새다. 이번 전

그러면서 시각효과를 넘어 청각적인 음악적인 감흥

시에 출품된 <밀어(密語) - 왕의속삭임> 연작이 여기

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음악적인 요소는 입체작품에

에 해당한다.

도 반영된다. 가늘고 부드러운 ‘끈’이 ‘선’ 역할을 대신

이처럼 양대원의 관심은 자기 내면과 외부세계에 걸

하는데, 오브제 덩어리를 묶거나 흘러내린 끈은 음악

쳐 폭넓게 퍼져있다. 두 지점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의

선율처럼 유동적이다. 때론 서커스 공중그네처럼 팽 팽한 긴장감을 부여하거나 ‘부드러운 조각’의 느낌을 자아낸다. 시처럼 행간을 읽다 평면작품은 또 다른 측면에서 해석 가능하다. 그것은 수수께끼나 암호를 풀듯 매우 흥미로운 독해과정이 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듯 면과 선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검은 면을 자음으로, 가는 선은 모음 으로 생각하고 보면 그 뜻을 읽어낼 수 있다. ‘서러움’, ‘책’, ‘인생’, ‘생각’, ‘죽음’, ‘돈’, ‘숲’, ‘집’, ‘방’, ‘눈물’…, 제목을 힌트 삼아 해답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도 있 다. 하지만 모든 작품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난이 도 높은 문제처럼 은유와 상징이 꼭꼭 숨겨져 있어 쉽 게 해독할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문자 기호 조합방식은 한글뿐 아니라 한자, 알파벳, 숫자로 도 응용되곤 한다. 이번 개인전 타이틀은 <밀어(密語) - 왕의 속삭임>.


조형언어로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양대원은 안

한, 아니 ‘채집’한 물건을 작업실에 가득 쌓아놓고 바

과 밖, 가벼움과 무거움, 맺고 풀음, 밀고 당김, 환원

라보면서 얼마나 흡족했을까?

과 확산, 응축과 팽창, 침묵과 발언을 적절히 조율할

입체작품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액자나 두

줄 안다. 현미경과 망원경을 때와 상황에 따라 적재

루마리 족자를 활용한 ‘평면 콜라주’, 둘째는 유리입방

적소 활용할 줄 아는 작가다. 따라서 그의 작품세계를

체 진열장 안에 들어있는 ‘오브제 콜라주’와 ‘좌대’, 셋

특정 장르로 묶거나 단정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

째는 천장에 매달거나 열린 공간에 디스플레이 된 ‘오

입체작품은 평면작품 연장선상에 있다. 표현방식이

브제 설치’가 그것이다. 첫 부류가 여전히 평면에 가깝

다를 뿐 그 속에 담긴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다면, 둘째는 완전한 입체형식이고, 셋째는 공간에 펼

주제를 다른 형식으로 전달할 뿐 전달하고자 하는 주

쳐진 적극적인 설치미술로 볼 수 있다.

제의식은 한결같다. 평면으로 구현된 그림을 마주하

먼저 ‘평면 콜라주’. 핵심 소재는 오래된 액자와 족자

는 시선은 고정되어 있다. 정면에서 마주하고 응시해

다. 칠이 벗겨지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상태 그대로

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림 속 이야기의 시작과 끝

를 보여준다. 액자 안쪽에 끼워진 그림/캔버스 뒷면

이 한눈에 파악된다. 반면 입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

엔 검은색 동그라미, 점(點)을 그려 넣었다. 이 검은색

작과 끝이 불분명하다. 접근하기 위한 통로가 사방으

점은 다른 작품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검은 점

로 열려있다. 기승전결을 풀어내는 순서가 따로 정해

은 역사의 진실, 그 이면에 담긴 슬픔의 표상이다. 왜

져 있지 않다. 서사적이고 서술적인 구조를 지닌 평면

곡된 역사로 인해 응어리진 마음, 한(恨)과 눈물을 상

작품에 비해 입체작품은 단절된 단어의 나열이 두드

징한다. 양대원은 말한다. “오래된 액자는 ‘박제된 역

러진다. 그래서 그림이 소설과 비슷하다면 조각은 훨

사’, ‘기억에서 지워진 역사’, ‘틀 안에 갇힌 역사’, ‘강요

씬 더 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양대원의 입체 신작

된 역사’, ‘왜곡된 역사’를 상징 한다”고. 이와 같은 작

은 단순하게 내러티브를 읽어내는 것보다 시처럼 행

가의 진술은 검은 색 동그라미에 대한 해석의 근거를

간에 담긴 의미를 음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공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승자 의 기록이다. 그러니 그것이 반드시 진실이 아닐 수도

평면을 넘어서

있다. 양대원은 오래된 액자와 두루마리 족자를 통해

양대원은 입체 신작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물건’을 찾

드러나 않은 역사의 이면, 잊혀진 역사에 대한 기억을

아 다녔다. 고미술품, 고가구, 온갖 잡동사니를 거래

상기시킨다.

하는 경매장을 드나들며 발품을 팔았다. 작업실 인근

한편, 액자는 현대미술을 규정하는 중요한 단서다. 미

공장지대에서 버려지다시피 방치된 마네킹 조각(부

술과 미술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장치다. 근대

품)을 발견했고, B급 골동품이 거래되는 경매에 직접

인이 발명한 ‘제도로서의 미술’이라는 개념과 논쟁의

참여해 갖가지 오브제를 사 모았다. 이미 쓰임새를 다

중심에 있는 ‘요상한 물건’이다. 양대원은 액자를 재현

했고 세월의 때가 잔뜩 뭍은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특

(再現)하지 않았다. 그것을 그대로 제시(提示) 했다.

히 일본에서 흘러들어온 것이 틀림없는 인형, 장식장,

이 지점에서 자연스레 지난 20세기 서구 모더니즘미

액자, 자전거 등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번 전시 출품

술사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선구자들과 그들의 창의적

작에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화려한 색

기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레디 메이드, 오브제,

채를 다루는 화가가 다양한 색깔 물감을 잔뜩 장만해

콜라주, 앗상블라주, 콤바인, 모빌 …. 이번 전시에서

놓고 뿌듯해 하듯, 양대원 역시 이렇게 발견하고 수집

양대원이 새삼스레 이런 전통적인 개념과 형식을 호


출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철지난 유행, 매너리

입장이 되어 보는 것. 양대원에 빙의해 그가 작품을

즘에 가까운 익숙함, 진부할 만큼 고리타분하게 여겨

만들 때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제작순서를 거꾸로 거

지는 한물간 모더니즘 조형방식을 지금 이 시점에서

슬러 오브제 조합 순서를 역으로 추적해 보는 것이다.

굳이 꺼내든 이유는 뭘까?” 그 이유가 궁금하다.

제일 마지막에 붙여졌을 것 같은 오브제를 반대로 가

이어서 두 번째 연작. 유리 입방체 안에 들어있는 ‘오

장 먼저 떼어내고 이어서 다음 오브제를 해체하는 방

브제 콜라주’와 그것이 놓여있는 ‘좌대’로 구성된 시리

식. 그러다보면 결국 제일 처음, 즉 작품의 기본 골격

즈.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작품들이다.

이 된 오브제만 남는다. 예를 들어 마네킹 두상이나

유리 입방체 안에 들어있는 오브제는 마네킹 머리, 몸

몸통, 혹은 일본 인형 같은 것 말이다. 맨 처음 이것을

통, 손가락을 비롯해 일본 인형과 장식 부속품 그리

선택한 이유는? 여기에 어떤 감정을 이입했을까? 그

고 목장갑, 철사, 택배 박스, 붓과 나이프, 끈, 나뭇조

리고 그 다음에 어떤 오브제를 선택했고, 어느 위치에

각 등 온갖 잡동사니다. 국적불명, 시대와 용도를 쉽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덧붙였을까?

게 가늠할 수 없는 물건들이다. 이것을 덮고 있는 유

이 과정은 선택과 판단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선택과

리 입방체 나무틀도 이국(異國) 취향이 물씬 풍긴다.

판단의 결정이 끝나면 실행에 옮겼을 테고, 이리저리

감각적인 오브제 디테일과 콜라주 형식이 먼저 두드

둘러보며 다시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

러져 보이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다양한 얘깃거리가

리고 최종 어느 지점에서 ‘완성!’이라고 결정하고 더

담겨 있다.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것이다. 예를

이상 손을 대지 않았을 게다. 이때 완성의 증거가 바

들어, 마네킹 머리와 손가락을 조합한 작품은 갑질 행

로 사인(sign)이다. 문장에서 마침표 같은 것. 양대원

패를 부린 재벌총수 부인을 모티프로 제작한 것이다.

의 모든 작품엔 빠짐없이 사인이 있다. 이것을 찾아보

천박한 부(富)에 기댄 몰상식하고 “재수 없는 인간”에

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서명은 (예술)작품과 작품 아

게 되돌려주는 양대원 방식의 ‘삿대질’이다. 이 밖에

닌 것을 구분한다. “내가 작품에 사인을 하는 이유는 “

도 텅빈 머리통, 하늘을 향해 치켜 뻗은 가운데 손가

이건 버려지는 쓰레기가 아니야, 작품이야!”라고 규정

락, 싸구려 금박(金箔) 장식, 주르륵 흐르는 눈물 같

하기 위해서다.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라고 했지만,

은 끈, 등 뒤에 박힌 굵은 대못과 검은 피, 속이 훤히

나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아니기도 하다’

들여다보이는 비닐 옷 …. 의미와 사연 없는 것이 하

고 생각 한다”고 양대원은 말한다.

나도 없다.

마지막으로 ‘오브제 설치’. 천장에 매달린 마네킹이

‘오브제 콜라주’ 못지않게 좌대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

나 가죽 덩어리는 역사에 대한 양대원의 생각과 기억

받침은 단순히 입체작품을 떠받치는 이른바 ‘조각 다

에 관한 편린이다. 영혼 없이 텅 빈 신체, 정신은 말라

이’가 아니다. 오브제 콜라주와 대등한 몫을 지닌 독

비틀어지고 껍데기만 남은 육체, 왜곡된 역사, 파묻힌

립된 조형물이다. 그러니 이 받침 역시 찬찬히 뜯어

진실을 상징한다. 오래된 액자마냥 박제화 된 역사에

볼 필요가 있다. 거기엔 유리진열장 속 얘기에 버금가

대한 의문이자 질문이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는 이야기가 있다. 어이없는 세상, 역사의 진실, 억울

병풍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매달린 갖가지 오브제와

암, 분노, 속상함 등에 대한 촌철살인을 담고 있다. 양

흑백 인물사진은 인연과 추억에 대한 증거물이다. 양

대원은 평면 그림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얘기를 입체

대원은 평면그림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얘기를 이런

로 맘껏 쏟아낸다.

물건들을 빌어 대신 전한다. 세월의 흔적이 뭍은 설치

이런 작품을 감상하는 좋은 방법은 이것을 만든 작가

물은 과거를 거슬러 현재의 양대원을 대변한다.


벽이나 좌대에서 떨어져 휑한 공간에 매달리거나 바 닥에 놓인 설치물엔 과거와 현재 시간이 혼재되어 있 다. 여기에는 양대원의 자전적 사연이 주로 담겨있다. 낡을 대로 낡아빠진 일본산(産) 자전거는 아바나 시 내를 달리는 미국산(産) 올드카처럼 클래식한 디자인 이다. 이 자전거는 양대원의 과거를 소환한다. 자전거 를 타고 남해안 일주를 하던 대학 1학년 때 양대원. 그 리고 그 짐칸에 실린 옛날 책 묶음. 『예술이란 무엇인 가』, 『기형도 전집』, 『죽음의한硏究』, 『짜라투스 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랭보詩選』, 『예술에 있어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美學理論』 …. 청년시절 그의 손에 쥐어졌다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여전히 작업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다. 지금 보니 조금은 낯간지러운 제목들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때는 그랬으니까. 그 시절부터 형성된 감수성과 관 심, 취향이 지금의 양대원을 있게 한 토양이자 자양분 이 되었으리라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형식으로 말하다 앞서 “양대원이 철지난 유행, 매너리즘에 가까운 익숙 함, 진부할 만큼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는 한물간 모더 니즘 조형방식을 지금 이 시점에서 굳이 꺼내든 이유” 는 뭘까? 궁금해 했다. 그 의문은 양대원이 “아름다움 이 먼저고 비판은 그 다음이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풀 린다. 내용보다 형식에 무게 중심을 두겠다는 말로 이 해된다. 이 진술처럼 양대원은 이제 탐미주의적 성향

대목에 다시 주목한다. 양대원은 이제야 비로소 내용

을 감추지 않는다. 추측은 이렇게 이어진다. 지금까지

을 초월한 형식으로 발언하기 시작했다. 내용으로 꽉

양대원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내용과 형식 중

찬 형식은 공허하지 않다. 아름다움에 대한 천착이 동

간지대 어디쯤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듯 균형을 유지

반된 형식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해왔다. 그런데 이번 개인전을 통해서 형식 쪽으로 확

결론적으로 양대원은 아름다움과 메시지를 동시에 보

연히 기울어진 것 같다. 그래서 양대원을 ‘탐미주의자

여준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양대원의 사유와 형식사

(眈美主義者)’로 규정한 것이다. 양대원이 “자전거 안

이에서 구현된 가설(假說)의 시각적 현현(顯現)이다.

장과 핸들로 황소머리를 구현한 피카소의 감각적인

이제 우리에겐 양대원이 제시한 가설을 검증하는 시

단순함과 천재성을 오래전부터 흠모해왔다”고 말한

간이 주어졌다.▒


왕 의 생 각 2019

왕의 몸 2019


왕의 노동 2019


양 대 원 (梁 大 原)

1966

경기도 양평 출생

학력

1996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서양화전공) 졸업

1993

세종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과 졸업

개인전

2004

제4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문화재단) - 미술상

1996

제3회 공산미술제(동아그룹) - 우수상

외 다수의 공모전 수상

해외 프로그램 2013

“Sandarbh Artist Workshop”, 인도

2012

“Tâches-Tâches” 국제 심포지움, 노르망디, 프랑스

2012

“With Artist - Usine Utopik”, “Usine Utopik” 레지던시

프로그램, 노르망디, 프랑스

2002

“Taipei Artist Village” 레지던시 프로그램, 타이페이, 대만

2019

密語-의심, 어반아트, 서울

2016

密語, 동산방갤러리, 서울

2015

검은별, 갤러리담, 서울

2014

의심-오래된 눈물, 갤러리희, 경남 양산

2013

오래된 눈물, 사비나미술관, 서울

2012

오래된 눈물, Usine Utopik, 노르망디,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경기도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경기문화

2010

의심Ⅱ, 동산방갤러리, 서울

재단, 송은문화재단, 사비나미술관, 금호미술관, 아라리오미술관, 동산

2009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웨이방갤러리, 서울

방화랑, (주)림스코 등

2008

의심, 사비나미술관, 서울

2007

서울 화인 아트쇼-한국미술 현장과 검증, 예술의 전당, 서울

교육경력

제1회 인사미술제-단순과 복잡, 동산방화랑, 서울

2014 - 현재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겸임교수

2006

푸른섬, 사비나미술관, 서울

2018 - 2019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 동양화과 강사

가일미술관, 경기도 가평

2015

세종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겸임교수

2004

양대원, 가 갤러리, 서울

2014 - 2015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겸임교수

2003

난II, 사비나미술관, 서울

2014

부산 신라대학교 서양화과 강사 역임

2002

난I, 대북 국제예술촌(Taipei Artist Village), 타이페이, 대만

2011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강사 역임

2001

중독, 갤러리사비나, 서울

2008 - 2010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강사 역임

2000

외출, 금호미술관, 서울

2007 - 2008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강사 역임

1998

섬II - 제3회 공산미술제 수상작가 초대전, 동아갤러리, 서울

2005 - 2008

용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강사 역임

1995

섬I, 청남 아트갤러리, 서울

2006 - 2007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강사 역임

1993

그림일기, 제3갤러리, 서울

2004

용인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강사 역임

1991

새, 세종대학교 과학관 106호, 서울

2001 - 2003

세종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강사 역임

외 다수의 그룹전 참가

작품소장

주 소 : 12203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글개울로 105-19 주요 수상

전 화 : 031) 576 - 6456

2005

제27회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

휴대폰 : 010 - 9197 - 6456

제24회 대한민국미술대전 - 비구상부문

이메일 : yang660110@hanmail.net


Yang, Dae-Won

1966

Born in Yangpyeong, Kyoungki-do, Korea.

2004

The 4th SONGEUN Art Festival (Songeun Art Fondation) :

2nd Prize.

Education

2005

The 24th Grand Art Exhibition of Korea : Part of Non-repre

1996

M. F. A. Graduate School of Fine Arts(Painting), Sejong Univ.

sentational

Seoul, Korea

The 27th JoongAng Fine Arts Competition

1993

B. F. A. College of Natural Sciences(Chemistry), Sejong Univ.

and also won many prizes at the art competitions.

Seoul, Korea Overseas Program

Solo exhibitions

2013

“Sandarbh Artist Workshop”, India

2019

密語-Doubt, Urbanart, Seoul

2012

Tâches-Tâches International Painting Symposium, Normandy,

2016

密語, DongSanBang Gallery, Seoul

France

2015

Black Star, Dam Gallery, Seoul

2012

“Usine Utopik” Residence Program, Normandy, France.

2013

Long-standing Tears, Savina Museum, Seoul

(With Artist Foundation)

2012

Old Tears, Usine Utopik, Normandie, France

2002

“Taipei Artist Village” Residence Program, Taipei, Taiwan.

2010

Doubt II, DongSanBang Gallery, Seoul

(Kyoungki Cultural Foundation)

2009

Taking out the Diary of 10 years ago, Weibang Gallery, Seoul

2008

Doubt I, Savina Museum, Seoul

Collection

2007

Seoul Fine Art Show, Seoul Art Center, Seoul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youngki Cultural Founda-

Insa Art Festival-Simplicity&Complexity, DongSanBang

tion, Songeun art & Cultural Foundation, Kyoungki-do Art Museum,

Gallery, Seoul

Kumho Art Museum, Savina Art Museum, DongSanBang Gallery,

2006

Blue Island, Savina Museum, Seoul

Arario Gallery, Limsco Inc. Kim Taesik, Usine Utopik(France) etc.

Gail Museum, Gapyeong, Kyoungki-do

2004

Yang Dae Won, Ga Gallery, Seoul

Lecture Career

2003

Nan II, Savina Museum, Seoul

2014 - current College of Fine Arts(Painting), Sungkyunkwan Univ.

2002

Nan I, Taipei Artist Village, Taipei, Taiwan

2018 - 2019

College of Fine Arts(Painting), Sungshin Women’s Univ.

2001

Addiction, Gallery Savina, Seoul

2015 - 2016

College of Fine Arts(Painting), Sejong Univ.

2000

Excursion, Kumho Museum of Art, Seoul

2014 - 2015

College of Fine Arts(Painting), Chung-ang Univ.

1998

Island II-The Invitational Exhibition for the Winners of the 3rd

2014

College of Fine Arts(Painting), Silla Univ.

KONGSAN Art Festival, Dong Ah Gallery, Seoul

2011

College of Fine Arts(Painting), Sungkyunkwan Univ.

1995

Island I, Cheong-Nam Art Gallery, Seoul

2010 - 2008

College of Fine Arts(Painting), Sungshin Women’s Univ.

1993

Picture Diary, The 3rd Gallery, Seoul

2008 - 2007

College of Fine Arts(Painting), Sungkyunkwan Univ.

1991

Birds, Science Hall at Sejong University, Seoul

2008 - 2005

College of Fine Arts(Painting), Yongin Univ.

and also participated in many group exhibitions.

2007 - 2006

College of Fine Arts(Sculpture), Sungshin Women’s Univ.

2004

Graduate School of Fine Arts(Painting), Yongin Univ.

2003 - 2001

College of Fine Arts(Painting), Sejong Univ.

Awards 1996

The 3rd KONGSAN Art Festival (Dong Ah group): 2nd Prize.


밀어密語 : 왕의 속삭임

양대원

Yang Dae Won

2019. 11. 8 - 12. 15 총괄

이명옥

기획

사비나미술관 학예실

학예실장

강재현

큐레이터

이꼬까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박제언

에듀케이터

황지선

인턴 큐레이터

이민진, 한상익

시설운영 및 관리

박노춘

사진촬영

박홍순

인쇄

KC기획

발행처

사비나미술관

발행인

이명옥

후원

서울문화재단

본 도록에 실린 글과 도판은 사비나미술관과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전재 및 복제할 수 없습니다. ⓒ 2019 Savina Museum of Contemporary Art and The Artist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161-10 Tel. 02-736-4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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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원: 밀어密語 - 왕의 속삭임  

양대원: 밀어密語 - 왕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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