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2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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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사 합 니 다 이근욱 2022년 6월 8일 50만원 이석동 부이사장 2022년 8월 11일 1,000만원 덕천군파 영동공종회 2022년 8월 11일 100만원 이오주 2022년 8월 11일 100만원 이연호 여성이사 2022년 8월 11일 100만원 이영일 2022년 8월 25일 300만원 승경원 건립기금 헌성자 방문
감 사 합 니 다 이강주 대전시지원장 2022년 8월 31일 100만원 임영대군파종회 2022년 9월 5일 1,500만원 이영주 2022년 9월 8일 100만원 이규복 고문 2022년 9월 21일 400만원 경녕군파 익흥군종회 2022년 9월 21일 300만원 금천구분원 2022년 9월 21일 100만원 승경원 건립기금 헌성자 방문
2022.9.15. 현재 하늘에서 본 부지전경 1하늘에서 본 부지전경 2 기념관1 지붕 합판 시공기념관1 지붕 방수시트 시공 기념관1 외벽 라임스톤 시공기념관2 내부및기념관3 가설비계해체 승경원 공사 현장

발행인/이귀남

편집인 겸 주필/이규원

발행처/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 소/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89

우편번호/03131

전 화/(02)765-2124

팩 스/(02)742-1676

인쇄인/이재복

인쇄처/(주)경인인쇄

전 화/(02)2272-8063

발 행/2022년 9월 1일

등 록/1973년 12월 31일

홈페이지(http://rfo.co.kr)

이메일(rfo@rfo.co.kr)

값 2,000원

(1년 6회, 정기구독 10,000원)

4. 본원 소식 · 지원 · 분원 · 파종회 · 봉향회 소식

천성의 기부사업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22.6.1.) 당선자 추가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18. <지원탐방> 대구광역시지원

태조고황제와 회암사

본원 문화부위원 이상훈(李尙勳)

22. 서울시 25개 구 분원장, 이귀남 이사장 초청 고회(高會)

묘역 및 신도비

봉향회의 내력

전주 건지산에 건립될 승경원

광장> 역사는

회장 이병훈(李丙勳)

전주 덕진구분원장 · 전주이씨화수회 총무 이정길(李廷吉)

본원 이사 · 문학박사 이범직(李範稷)

조선왕릉실록(11) / 단종대왕 장릉

창경궁~종묘 연결 개통에 즈음하여

본원 문화이사 · 시인 이규원(李揆元)

서울 노원구 명예분원장 · 건축사 이종호 40. 만화로 보는 역사이야기 109 ………………………………………………………………………본원 문화위원 이전경(李田景)

42. <세계의 왕실 이야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덴마크 왕실 …………………………………………………………… 본원 문화위원 · 소설가 이기윤(李起潤) 47. 날지 못하는 천사 …………………………………………………………………… 서울 양진초등학교 4학년 홍정민 48. 드라마「太宗 이방원」을 보고 ……………………………………………………… 한양대 명예교수 · 문학박사 이완재(李完宰) 50. 우리 문학 ‘향가’의 아름다움 …………………………………………………………………… 본원 문화부차장 이병혁(李丙赫) 52. 제주가족 오름동호회 창설 ……………………………………… 제주도지원장 · 계성군파 제주도종친회장 이철헌(李哲憲) 54. 남이 장군 아내와 귀신 …………………………………………………………… 본원 상임고문 · 수필가 이승창(李承昌)

56. 조선의 삼인결의와 단경왕후 신씨 ………………………………………… 본원 문화위원 · 세종대왕신문 발행인 이상주(李相周)

생사(生死)가 고(苦)인 것을

배움을 향한 갈망과 열정 사이

본원 문화부 수석차장 이병준(李炳俊)

공무원 이문학(李文學

乙支文德

주정자

헌성자

특별원원 가입을 환영합니다

2022/9 · 10월호 (통권 295호) 숭조돈종 태조고황제가 주석했던 양주 회암사지 관련기사 21면 사진 · 이상훈 문화위원
10.
12.
12.
21.
……………………………………………………………………
25. 인흥군
26. 건지산
…………………………………………………………………건지산봉향회
30.
……………………………………
32. <李花
………………………………………………………………
34.
………………………………………………………………
38.
…………………………………………………………
59.
……………………………………………………………
60.
…………………………………………………………………
봉화군
) 63. 한시(漢詩) 한 수 / 지족(知足) ………………………………………………………………………………… 을지문덕(
) 64. 진경희 박사의 치과계의 최신 동향 ………………………………………………………………… 서울뉴욕치과 원장 진경희(陳京熙) 66. 나의 제언 ……………………………………………………… 서울 은평구분원 상임고문 이남식(李南植) 67. 영시( 英 詩 ) 한 수 / THE ARROW AND THE SONG (화살과 노래) ……………………………………………………………… H.W. Longfellow (헨리 롱펠로우) 68. 아버지께 무공훈장을 드립니다 ………………………………………………………………………………………… 이재유(李在囿) 70. 그립다는 말조차 …………………………………………………………………………………………… 白思 이진우 71. 가슴으로 쓰고, 눈물로 읽는 어머니 봉양일기 ………………………………………………………………… 세종대왕신문 문화전문기자
72. <방하착(方下着) ⑧> 마음을 내려놓고 76. 승경원 건립기금 모금
82.

소식

상임이사회(2022.7.4.(월) 10:00)

◎ 참석 : 재적 상임이사 13명중 상임이사 11명 참석

의안 심의 결과

· 2022년도 사직대제 봉행위원회 구성의 건

- 기구표를 원안대로 승인 함.

· 회인원 석물 설치에 관한 건

묘역조성 할 시공업체로 중앙석재조경(주)를 선정 함.

· 인평대군파종회에 관한 건 - 보류하기로 함.

기타사항

· 유튜브 시행에 대하여

- 1인 방송체제를 사직대제 봉행 전에 검토하기로 함.

회인원 기신제 봉행의

7월

제향을 본원에서 주관하기로 함.

李花 295호

4
제707회
-
·
건 -
16일(토) 도래하는 제17주기
본원
◇ 특별원원 가입 안내 ◇ - 가입자격 : 종친 개인이나 파종회 단체 - 가 입 비 : 200,000원 이상 - 연 회 비 : 연 30,000원 이상 (파종회 단체:100,000 이상/가입 당해 연도는 연회비 면제)

재적

1제상에 8위씩(4함)하면

삭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와 대한예전의(大韓禮典儀) [大夫士庶人時享 陳設圖]를 보완 하여 잔(盞)의 기(器) 수를 3잔에서 1잔으로 축소하고 촉대(燭臺) 2기와 조과(造果) 3기를 증설 ③승경원 간판비는 자연석으로 제작하여 승경원 외부에 설치 ④승경원 건립비와 헌성비는 승경묘 내부에 조경과 어울리게 자연석으로 제작하여 설치 ⑤승경원 준공식을 11월 24일(목) 개최(상황에 따라 변경 가능) 하기로 함.

제708회 상임이사회(2022.9.5.(월) 14:00)

◎ 참석 : 재적 상임이사 13명중 상임이사 11명 참석

◎ 의안 심의 결과

· 2022년도 사직대제 봉행의 건

- 9월 24일(토) 정오에 사직단에서 봉행하기로 함.

· 2022년도 칠궁제 봉행일자 변경의 건

- 5월 10일 청와대 완전 개방으로 인해 칠궁 휴무일이 화요일로 변경됨에 따라 10월 18일(화)로 변경하고, 매년 10월 셋째주 화요일에 봉행하기로 함.

기타사항

이상 헌납자까지 포함하기로 함.

李花

따라,

295호 5 임시 상임이사회(2022.8.11.(목) 15:00) ◎ 참석 :
상임이사 13명중 상임이사 12명 참석 ◎ 의안 심의 결과 · 승경원 건립에 관한 건 ①위판(位版) ➪ 2세조부터 17세조까지 32위로서 양위분을 1함에,
4실에 4제상, 글씨는 公·府君은 포함하되 諱·名은
②진설도(陳設圖) ➪
· 승경원 헌성비 관련하여 개인은 500만원
본원, 懷仁園 친향례 봉행 본원은 회인원 제향 주관단체였던 선성군파종회가 봉향회를 반납(22.4.4.접수)함에
섭행할 단체가 지정되지 않아 7월 16일 제17주기 회인원 제향을 본원에서 주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친향례로 봉행했다.

회인원(懷仁園)은 회은 황세손의 원(園)으로,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부속림 영원 내에 위치한다. 제관명단 : 초헌관 황사손, 아헌관 관주 재정이사, 종헌관 부용 제1조직이사, 집례 용태 이사, 찬례 규돈, 감찰 환주, 대축 도재, 근시축사 종국, 근시재랑 춘묵, 집준관 준우, 집사자 태희, 전사관 석표, 원사 병근, 알자찬인 남정, 해설 범민 전례위원. (헌성자 명단 84면 참조)

본원 미술위원회(위원장 男兒)는 8월 6일부터 8월 20일까지 강원도 삼척시 송종관미술관에 서 제5회 이화미술회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에는 이남아 회장(서예)을 비롯 석구(동양화), 성영(동양화), 순(서양화), 용훈(서 예), 일구(서예), 재옥(조각), 혜연(동양화) 종친 작가 8인이 참여했다.

6 李花 295호
본원 미술위원회, 제5회 이화미술회 개최

정릉봉향회 전례이사, 종헌관 용섭 대의원, 집례 종림 전례이사, 대축 동섭 봉산군이사, 좌집사 종품, 우집사 찬해 전례위원이 봉무했다. <덕양군파종회>

진안대군 괴산지파종중(회장 종철)은 8월 27일 토요일 11시, 충북 괴산군 괴산읍 신기리 도락동 마을 입구에서 진안대군파 세거지와 진안대군의 5세손 대호군(諱 瑀)의 표석 건립 제막식을 거행했다. 표 석은 대군의 24세손 세영과 수영 등 종형제들이 사비로 건립됐다. 이날 제막식에는 괴산파종회장, 방호 파종회장, 충북도의회 의원, 괴산파 종손, 신기리 이장, 대호군

성주이씨 등 종친들과 마을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진안대군 5세손 대호군은 단종이 세조에 양위하는 것을 보고 도락동 북지곡에 은거 하여 두문불출하였다. 증손인 윤(輪) 목도, 복(輻) 설피, 원(轅) 지장, 진(軫) 괴산파, 식 (軾) 방죽안 5형제가 중시조가 되어 각 지역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많은 후손을 두었다. 도락동은 진안대군 후손들의 성지이자 정신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제공 : 진안대군 괴산지파종중>

李花 295호 7 덕양군파종회, 파시조고 441주기 기신제 봉행 덕양군파종회(이사장 有燮)은 7월 20일 새벽 4시에 경기도 성남 시 궁내동 재실(정희사)에서 중종 제5왕자 덕양군 파시조고 441주기 기신제를 30여 명의 종친이 참반한 가운데 엄숙히 봉행했다. 초헌관 성근 종손, 아헌관 정주
진안대군 5세손 대호군 표석 건립
처가인

지원 분원명 (지원 ․ 분원장) 회수 일시 장소 참석 인원 중요의제 사진 부산광역시(龍欽)48 22.6.27(수) 11:30 지원 회의실28△예산 결산 승인①

대전 중구(勉宰)32 22.7.12(화) 11:00 남촌회관25△예산 결산 승인② 강원 원주시71 22.7.23(토)

민생회관39 △예산 결산 승인 △신임 분원장: 德宰 ③ 홍천군(奉根)41 22.8.6(토)

정흥 총무 자택 30△예산 결산 승인 평창군(康國)2022 22.8.18(화) 18:30 일순이 풍천장어 15△예산 결산 승인 충북 청주청원구(秀哲) 64 22.7.18(월)

회의실16△예산 결산 승인 경남 거창군(淙演

사무실59△예산 결산 승인④

8 李花 295호

11:00
11:00
11:00 지원
)37 22.7.23(토) 11:00 분원
①부산광역시지원②대전 중구분원 ③강원 원주시분원④경남 거창군분원 정기총회 결과보고 현황 ◇ 정기총회 개최 및 결과보고에 대한 안내 ◇ 정기총회 개최보고는 총회개최 7일전, 정기총회결과보고는 총회개최 후 15일 이내에 회의록, 회의서류, 임원명단, 총회사진을 첨부하여 본원 조직부에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체명 전임 신임 비고

세종‧충청남도지원석주(奭周)찬구(燦九, 의평군 15대)22.7.22

월산대군파종회주영(柱英)근호(漌鎬, 월산대군 18대) 22.4.29.정기총회 敬陵봉향회장 창‧공릉봉향회계형(啓珩)원섭(元燮, 덕양군 14대) 22.5.31.정기총회 오릉왕자파돈종회장 廟壇陵 園號墓 尊 號 日時 場所 在位者 主 管 祭 官 名 初獻官 監 察 亞獻官 贊 者 終獻官 大 祝 典祀官 陵 司 祝 史 齋 郞 執尊者 執事者 謁者 解說 長陵 仁祖大王 仁烈王后韓氏 6.17 11:30 경기도 파주시 장릉로 60장휘릉봉향회 璿柱 錫杓 車文誠 鍾國 賢柱 範春 喆宰 吉中 根洙 載興 承鎔 泰喜 道宰 秀奉 隆陵 莊祖懿皇帝 獻敬懿皇后洪氏 7.12 11:30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135 융건릉봉향회 (회장 鎬洛) 俊在 承榮 洪敬熹 振儀 炳吉 正在 鎬奭 承在 光在 愚昆 龍在 京九 南政 鎬憲 明陵 肅宗大王 仁顯王后閔氏 仁元王后金氏 7.13 11:30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로 58 명릉봉향회 (회장 玄昌) 光源 炳根 閔根弘 泰喜 金峻經 道宰 吉中 喆宰 成柄 鍾國 範玟 浩燦 秀奉 振勳 思陵 定順王后宋氏 (斷種大王妃) 7.17 11:30 경기도 남양주시 사릉로 95 장사릉봉향회 (회장 東宰) 東宰 達浩 宋燾錫 東成 鄭琪升 錫雨 起澤 点植 政柱 鍾大 週日 廷基 炅根 起秀

健陵 正祖宣皇帝 孝懿宣皇后金氏 7.26 11:30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150 융건릉봉향회 (회장 鎬洛) 鎬洛 起星 金長五 正在 鎬憲 振儀 揆鎬 浚圭 承在 鍾明 光在 京九 華永 在鎬

孝陵 仁宗大王 仁聖王后朴氏 8.18 11:00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길 100 효릉봉향회 (회장 忠九) 金龍圭 光九 朴勝章 顯揆 鼎洙 東成 浩燦 殷燦 起鍾 殷雨 鍾國 秀奉 錫雨 南懋

獻陵 元敬王后閔氏 (太宗大王妃) 8.27 11:00 서울시 서초구 헌인릉길 300 헌릉봉향회 (회장 鍾) 廷日 延燮 閔承基 筍宰 奕根 起洙 喆宰 炳根 哲秀 龍宰 在春 炅根 道宰 起秀

李花 295호 9

■ 대표자 변경 ■ 제향봉행 이화보 정기구독 기간이 금번 호(통권 제295호)로 만료되는 종친에게는 별도로 지로 용지를 첨부하여 보내드립니다. 지로 용지에 정확한 주소와 성함을 기재하고, 1년 구독료 1만원을 가까운 은행이나 우체국으로 납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부 (02)765-2124

승경원 건립기금 3억원 쾌척 ” 천성의 기부사업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우리나라 아파트 대표 브랜드 중 부영(富 榮)그룹의 ‘사랑으로’는 화목한 가정을 의 미하는 원앙 한 쌍으로 표현되어, ‘사랑’ 을 상징한다.

50년 간 기업가로, 건축가로 살아오며 30년 가까이 국민 주거문화를 선도해온 부영그룹의 수장 자리를 지켜 온 이중근(李重根, 호 宇庭, 완창대군 18대손 ‧ 시조39세) 회장은 평소 ‘사 랑’을 실천하는 천성의 기부사업가이다.

1941년 전남 순천에서 나고 자라 건국대학 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어려운 가 정형편으로 중퇴, 이후 독학사로 학사 과정을 이수하고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행정학 석 사 및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1997년에는

10 李花 295호

37년 만에 건국대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 아 배움의 한을 풀었다. 자수성가형 부자 1위, 교육기부로 사회에 환원 이중근 회장은 어린 시절 가난을 이겨내고 큰 부를 쌓아 올린 자수성가형 부자1위로 꼽 힌다. 때문에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의지는 남달랐다. 특히 교육기부에 매우 적극적인데, 평소 ‘교육재화는 한 번 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재생산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육기부 활동은 1991년 순천의 부영초등학 교 신축 기증을 시작으로 전국 초중고·대학 의 기숙사, 도서관, 체육관, 복지시설 등을

신축 기부했다. 이중근 회장이 그동안 전국의 학교에 기부한 기숙사 ‘우정학사’가 100여 곳이 넘고, 교육복지 시설에 대한 기부도 60여 곳이 넘는다. 또한 2003년부터는 국내 뿐 아 니라 아태지역 및 아프리카 각국에도 학교시 설을 기증하고 피아노와 칠판 기증, 졸업식 노래 보급 활동 등을 벌여왔다. 교육에 대한 애착은 사회활동으로 이어져, 건국대 이사장(1999~2001), 우정학원 이사 장, 우정교육문화재단 이사장, 세계태권도 평 화봉사재단 총재를 역임하며 각급 학교 지원 사업과 교육활동을 이어간다. 이러한 다방면 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내외에서 많은 훈장을 받았지만, 특히 제21회 인간상록수 상 수상을 통해 이중근 회장의 ‘애향심 ‧ 애국심 ‧ 교육 심’을 인정하게 된다. 한편, 우정문고를 설립하여 역사서를 발간, 학교와 행정기관은 물론 각종 단체에 기부를 하였다. “우리 역사를 후손들에게 있는 그대 로 알게 하는 것이 나이든 사람들의 의무”라고 강조하는 이중근 회장은 ‘올바른 역사 교육은 의무’라는 생각으로 『6 ‧ 25전쟁 1129일』 과 요약본 약 1,000만부를 발간하여 배부했 고,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광복 1775일』 도 펴냈다. 이 책들은 각각 6 ‧ 25전쟁 발발부 터 정전협정까지, 1945년 8월 15일부터 1950 년 6 ‧ 25가 발발하기의 격동기를 편년체로 정리한 역사서다. 또한 1392년 조선 개국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의 역사를 『조선개국 385년』 『여 명 135년 48,701일』 『미명 36년 12,768일』 에 담아 우정체로 펴냈다. 이 책들은 이중근 회장의 판단이나 의견은 배제하고 사실을 있 는 그대로 잘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부는 필요한 곳에 하는 것 이중근 회장의 기부는 ‘필요한 곳에 시설을 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전국 6만 4,460개 경로당, 시·군·구 지회 244 개, 시도연합회 16개 조직으로 구성된 대한노 인회의 부회장으로 7년간 재임시에는 경로당 200여 곳을 지어 기부하고 전북 무주에 대한노 인회 ‘우정연수원’을 신축 기부하였고 독거노 인 지원, 노인행사 지원 등을 꾸준히 해왔다. 금년 6월에는 전남 여수시 노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노인회관 ‘우정원’을 신축하여 대한노인회 여수시지회에 기부했다. 2017년 제17대 대한노인회 회장에 당선되어 3년간 노인건강, 복지향상, 노인 일자리 창출 등 노 인권익 옹호를 위해 앞장섰다. 이러한 이중근 회장의 행보는 교육 및 문화시 설 기증, 장학사업, 역사 알리기 등 다양한 분야에 서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 까지 기부한 금액만 약 1조원 이상에 이른다. 이중근 회장은 탁조왕자 완창대군 후손으 로서 종약원과의 인연도 40년이 넘는다. 후학 양성을 위해 설립된 ‘이화장학회’의 운영위원 장을 역임하며 4억원 이상을 수습·기탁했고, 종약원 부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대외적으 로 건설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다. 특히, 최근에는 승경원 건립기금으로 3억 원을 쾌척하여, 승경원 건립의 재정적인 어려 움을 해소하여 완공에 박차를 기했다. 이중근 회장은 80여 년의 세월을 쉼 없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려왔고, 그 흔적은 곳곳 에 ‘우정(宇庭)’, 그리고 ‘사랑으로’ 남고 있 다. 대한민국의 주택건설 시장의 성장과 함께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아름다운 기부는 이중 근 회장의 인자한 미소로도 감출 수 없다. <편집부>

李花 295호 11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진복(珍福, 무림군 20대) 국회의원은 지난 5월 대통령비서실 정무 수석 비서관에 취임했다. 1957년 부산 출생으로 부산대 정책과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래구청장을 거쳐, 18대~20대 국회의원을 역 임했다.

正夏

덕천군

독립유 공자가 8월 15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故 정하 종친은 1901년 충남 예산군 응봉면에서 태어나 예산과 서울을 오가며 지하에서 독립운 동을 하던 1929년 12월, 광주학생운동을 옹호

12 李花 295호 ■전라남도(구례) ■ 경남 창원특례시 광역의원 기초의원 현창(絃昌)천수(千洙) 도평군 19대 前전라남도의원 덕천군 21대 前창원시의원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22.6.1.) 당선자 =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 珍福 종친,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독립운동가 故 이정하, 대통령표창 수상 하는 격문을 산포하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7개월 복역 후 면소처분을 받았다. <자료제공: 故 정하 종친의 장손자 문호> 일제 강점기 때 국내 항일 운동을 했던 故 이 정하(
:1901~1950,
16대)

炳俊 종친, 어머니 봉양일기 출간

병준(炳俊, 온녕군 17대) 종친이 최근 에세이집 ‘어머니 봉양일기 (문학세계 천우)’를 출간했다. 저자가 72세이던 2020년부터 96세 어머니를 만 2년간 봉양하며 158일의 일상을 기록한 논픽션 일기 다. 2022년 현재 노모는 98세다. 책은 하루 24시간을 함께 하는 90대 노모와 칠순 아들의 일거수일 투족이 적나라하게 숨 쉬는 효행 실천 현장서다. 홀로 노모를 모시

는 아들의 혈서이고, 고해성사이고, 어머니에게 올리는 헌사(獻辭)라고 할 수 있다. 병 준 종친은 수필가이자 서예가이며 본원 문화부 수석차장이다. 愛熙 종친, 청춘마루 신진작가 아트캠페인 전시 애희(愛熙, 수춘군 17대) 종친은 9월 1일부터 30일까지 홍대거리 삼각지대에서 아트캠페인 Dream Project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여 3인의 예술가가 합 동으로 개최한다. 애희 종친의 작품은 원경왕후가 세종대왕 잉태 시 태몽을 컴퓨터 그래픽미술로 영상화하였다. 독일에서 순수 미 술을 전공하고 현지에서 다수의 전시를 진행해 온 청년예술가로 2016년Zonta 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친은 영종(榮鍾) 종친 으로 파종회 이사와 돈종회 부회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35년째 파 종회 종사활동을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수춘군파종회> 승창 본원 상임고문의 외손자 김재무(金載武) 씨는 지난 8월 과학 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한국생명공학연구원 캠퍼스) 석사 박사 통합 과정을

마우스의 인플루엔자 백신에 대한 면역 보

받았다.

李花 295호 13

졸업하고 ‘노령
강제 연구’ 논문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承昌 상임고문 외손자, 김재무 공학박사 취득 ◾294호 12면 6줄 서울중지법 → 서울중앙지방법원 13면 5줄 감사 → 검사 19면 당선자 중 용권(容權) → 용권(鎔權)으로 바로잡습니다. 바로잡습니다 ●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

제114회 이사회(2022.8.26.(금) 14:00)

◎ 참석 : 재적 이사 15명중 7명 참석(위임 8명)

◎ 의안 ‧ 2022년도 2학기 장학생 선발의 건

- 신청자 21명중 19명 선발 함.(코로나19로 인해 장학금은 온라인 송금) ‧ 재산 투자처에 관한 건

- 원금 보장되고 확정금리가 높은 금융상품을 이부용 상임이사가 검토하여 이사장님께 보고 후 가입하기로 함. ‧ 임원(이사 ‧ 감사) 선임의 건

-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 8인중 5인은 유임하고 3인은 새로 선임하며, 감사 2인은 유 임하기로 함. 장학금 기탁 종친 (2022.7.1.~8.31.) 기탁일자기탁자금액비고

8.1-8.2종배(鍾培, 익녕군 18대)60,000본원 재정부위원, 2회

8.9익근(益根, 익녕군 15대)50,000

8.9은갑(殷甲, 덕천군 17대)1,000,000장학회 이사

14 李花 295호

2022.08.26. 이사회이은갑 이사(100만원) 성 명씨족성별학 교 명학년 이민주(李民柱)밀성18남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제약학과5 이종세(李鍾世)익녕18남서울시립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3 재단법인 이화장학회 소식 ■ 2022년도 2학기 이화장학생 명단

성 명씨족성별학 교 명학년 이동현(李東炫)회안24남동의대학교 공과대학 컴퓨터공학과2 이경민(李京玟)회안20여전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학과3 이예나(李汭娜)효령18여전주대학교 생활체육학과3 이효은(李孝恩)효령19여동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3 이효재(李涍在)진안21남강릉원주대학교 예술체육대학 체육학과1 이정재(李政宰)효령19남청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4 이영우(李暎雨)선성18남서울체육고등학교1 이원주(李苑奏)효령23여전남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생활복지학과3 이가은(李嘉銀)영양17여광주대학교 문화산업대학 항공서비스학과1 이은진(李銀珍)영해19여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생명화학고분자공학과 4 이정현(李柾縣)의안22여 위덕대학교 인문사회계열 경찰정보보안학과 4 이수현(李守賢)효령23여 경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식물과학과 3 이승철(李昇哲)계성19남 세한대학교 체육학부 스포츠건강관리학과 3 이진규(李振圭)덕양15남 여주대학교 공과대학 안경광학과 3 이동규(李東奎)광평20남 아주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2 이예규(李禮圭)덕양15남뉴욕대학교 호텔경영대2 이남이(李男而)벽진이씨여우송대학교 보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3

전화 사기판매 피해방지를 위한 안내

종친회의 산하기관(예:문중뿌리보존회, 숭조연구원, 전주이씨유적연구회, 이씨족보 편찬위원회, 이씨가훈제작사 등) 또는 종친회의 임직원인 것처럼 가장하여, 전국의 종친들께 영상물 및 책자(예 :전주이씨대관2편,전주이씨보감,전주이씨의뿌리등),가훈등을판매하는 행위가기승을부리고 있습니다.

이들은주로전화로 구입의사를물어오거나먼저 안내장과 책자를보내고추후일방적으로대금을 요청하는 등 다양한 수법으로 판매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도시민은 물론 농어촌의 종친들께 무작위로 행해지고 있으며, 특히 농어촌의 종친들이 그 피해사례를 호소하고 있으므로 지방에 거주하고 계시는 종친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됩니다. 본원에서는 모든 간행물과 제작물은 반드시 이화보에 공지하고 있고, 각 지원과 분원, 파종회, 봉향회 등을 통하여 홍보하고, 또한 보급하고 있으며, 절대로 전화를 이용하여 판매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영상물이나

반드시 종약원에 확인하시기 바라며

반송하시어서 더 이상의 피해를 입는 종친들이

李花 295호 15

책자 구입에 대하여 전화 안내를 받은 종친은
혹시 그것들을 받으신 분은 발행처나 발송처로
없도록 당부드립니다. 문 의 :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부 ☎(02)765-2124 / FAX(02)742-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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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탐방

대구광역시지원

회원 배가확보 특별위원회 구성 “수십 년 전에는 대구광역시 8개 분원 모두 인원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매년 회 원이 줄어들어 총회 때에나 지원에서 치 러지는 돈종행사에서도 참여 인원이 많지 않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지난해 5월 제37회 총회에서 제9대 대구시 지원장으로 취임한 돈모(敦模, 완창대군 18대) 지원장의 걱정이다. 대구시지원의 역사는 1989년으로 올라간 다. 그해 8월 10일 달성공원에서 150여 명의 종친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고 초대 지원장으로 故용팔(龍八, 선성군 15대, 前본

원 자문위원) 종친을 선출했다. 대구시지원은 뛰어난 결속력을 자랑하며 일취월장,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1990년 대명동에 2층 건물 인 이화회관을 마련하며 산하 8개 분원도 가 일층 발전하게 되었다. 2010년 제5대 지원장인 효균(孝均, 완창 대군 20대, 본원 자문위원) 종친을 중심으로 종친회관 이전을 위한 기금 모금을 전개, 현재 의 위치에 3층 건물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잘되는 듯 하다가 매년 나이 많으신 종친은 고인이 되고 새로운 회원 가입이 되지 않은 채, 3년째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이어지고 있

18 李花 295호

는 가운데 이번 여름은 유난히 잦은 폭우와 태풍의 영향으로 종친회원들의 회동이 어려 운 상황이다. 그러나 요즘 대구시지원 사무실 은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름 아닌 금년 7월부터 내년 6월 말까지 1년 동안 “회원 배가확보를 위한 대대적인 활동으로 특별위 원회”를 구성하여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특 별위원회는 위원장 1인(기필(起弼) 달서구분 원장), 간사 1인(상원(相元) 지원 총무이사), 연구위원 3인(희성(羲成) 동구분원장, 중화 (重和) 북구분원장, 해균(海均) 서구분원장) 으로 구성하여 활동한다. 저출산 초고령화의 사회적 흐름 속에서 종 친회의 활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신규 인원 의 유입은 적고, 기존 회원은 고령화 되면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에 대구시 지원은 등록된 인원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우 편물 발송과 전화 연결을 시도해 안부를 묻고 참석을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60세 이하 젊은 사람들은 직장 근무를 이유로, 60세 이상 종친 들은 줄어든 수입과 건강을 이유로 종회 참석 이 부진하다고 한다. 대구시지원은 자구책으로 회원 배가 확보 를 해보자는 구호를 내걸고 특단의 조치로 우선 각 분원에 3개씩 현수막을 게시토록 하

였다. “종친 회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원 의 경우 운영자금이 빈약할 뿐더러 기존 회원 이 내주시는 회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 다. 유지 종친들께서 찬조금을 지원하시면 좋은데 여러 가지 여건상 찬조금도 넉넉지 않아 분원장님들께서 분원 운영을 할 때 크고 작은 금액을 사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 다. 시지원에서는 각 분원에 현수막 1개의 제작비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시지원의 이러한 노력은 조금 더 구체 적인 계획으로 분원에 전달되었다. 그 예로는 현수막에는 전주이씨 회원 등록을 요하는 내 용과 분원장의 연락처를 기재하여 친숙함을 더하였고, 게시장소의 선정에는 좋은 곳과 나쁜 곳의 예를 들어 알려줬다. 그리고 일가 한사람이라도 더 볼 수 있도록 하 기 위해, 게시됐던 현수막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장소를 이동하여 다시 게시할 수 있는 방안도 전달 했다. 대구시지원과 분원의 노력 으로 그동안 현수막을 보고 종친 회원 참여를 희망하겠다는 일가 는 9월말 현재 63명에 이른다.

李花 295호 19

대구시지원은 각 분원에서 배가운동을 하 는 과정에 대하여 매월 월례회에서 1인씩 확 보하여 명단을 제출토록 하고 있다. 매월 1회 평가 후 1년 후 최종평가를 하여 최우수 분원 에는 현금 50만원 지급과 함께 표창할 계획이 라고 한다. 이 사업을 중점적으로 실무에서 추진하고 있는 상원 총무이사는 “지원장님과 뜻을 같이 하는 분원장님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 린다. 지원장님을 보필하여 앞으로 1년간 최 선을 다해서 종친 찾기에 주력할 것이다.”라 고 의지를 밝힌다. 대구시지원이 종친 찾기에 동참하는 분원 의 평가는 어떤 방식으로 치러질까? 돈모 지원장은 “종친 배가 운동에 대한 분

원별 평가에는 우선 여러분의 고문님을 평가 자로 모시고 진행을 하는데, 분원이 얼마나 많은 인원을 확보하였는지를 큰 점수를 줍니 다. 그리고 현수막을 이동하면서 얼마나 많은 장소에서 홍보를 했는지 등에 대하여 살피는 데 사진자료를 참고하여 평가를 합니다. 인구 고령화 사회에 종친회 일을 지속해 나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 의미는 굉장히 큽니다. 대구시지원의 작은 노력과 관심이 지역 내 종친들에게 많이 알려져 젊은 세대에게 잊혀 져가는 조상과 전통문화 사상을 전달하는 기 회가 되기를 바랍니다.”라며 희망을 전한다. 대구시지원에서 ‘회원 배가확보를 위한 대 대적인 활동’이 도화선이 되어 종친회의 활성 화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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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고황제와 회암사

이상훈(李尙勳)

본원 문화부위원

회암사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에 있는 사찰로 1328년(고려 충숙왕15) 지공(指 空) 선사가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 떠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했다. 1378년 (고려 우왕4) 나옹(懶翁) 화상이 중건하였다. 태조고황제는 고려말부터 회암사를 내왕 하며 불가와 인연을 맺었 다. 이러한 사실은 나옹 화상의 부도탑에 완산부 원군으로 기록된 시주자 명단을 통해 확인할 수 있 다. 회암사는 경내가 1만 평에 이르는 조선시대 최 대 규모의 사찰이었다. 출 토된 유물로는 용, 봉황 문양의 백자(왕실 도자 기), 악귀를 물리치는 잡

상(경복궁 잡상과 동일), 궁궐에서만 사용되 는 청기와, 종 모양의 금탁(풍경) 등이 있다. 조선시대 가장 정교한 70개 온돌의 형태가 있고 천보산의 물줄기를 이용한 풍수의 원리 가 창건 당시 적용되었다. 전통사찰의 가람 배치와 다르게 회암사는 8단지 정청 건물로 관청의 건물 배치 형식으 로 지어졌다. 창덕궁 낙선재 후원에 있는 형태 의 화계가 있고 왕비 침전으로 볼 수 있는 정청, 남북 일직선상의 배열, 어도가 있는 삼 도형, 신하가 위치하는 월대 등은 경복궁의 배치와 유사하다.

나옹의 법맥을 이은 무학대사가 회암사에 주석하면서 태조의 회암사와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졌다. 태상왕 시에는 여말선초의 전란 으로 희생된 영령을 추모했다. 조선 추존왕들 의 제사를 모신 태조의 정신적 의지처였다. 회암사는 왕실의 지원으로 지어진 사찰로 왕궁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규모와 조경이 빼어 나다. 종묘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건축기술로 지어진 태조의 제2왕궁이라 할 수 있다. <태종/효령대군 20대 ‧始44세>

李花 295호 21
회암사 일주문

진작

서울시

숭조돈종 함양하는 발판 삼기로

25개 구 분원 분원장과 전주이

이귀남 이사장과의 간담회가

022년 9월 1일 오후 5시 서울 국도호텔 2층 두 메라룸에서 개최됐다. 서울특별시 지원 구 분원장들이 종약원 이 사장을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한 건 처음이다. 이를 주최한 이훈재 서울시 지원장은 간담회 를 고회(高會)라 칭했다. 고회는 추사 김정희 가 만년에 남긴 대팽고회(大烹高會)에서 인 용한 말이다. 대팽(大烹)은 세상 돌아다니며 온갖 산해진미 다 먹어보았으나 소박한 두부, 오이, 생강, 나물 등 집 음식이 최고의 반찬이라 는 의미이다. 고회 역시 살면서 많은 모임 가져 보았으나 돌이켜 본즉, 가족이나 종친 만남이 최고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고회가 전하는 뜻 그대로 이날 상차림은 소박했지만, 종친 간의 돈종 열기는 어느 자리보다 뜨거웠다. 이사장, 분원장 협조로 이뤄진 자리 훈재 서울시 지원장은 인사말에서 “이사장 님과 분원장님들을 한자리에 모시는 일이 처 음이기에 쉽지는 않았다”면서

모셨으니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시지원과 분

원 발전, 나아가 대동종약원 발 전에 도움 되는 기탄없는 담론

을 개진해 주시 기 바란다”고 말 했다.

답사에 나선 귀남 이사장은 “지난 1월 이사 장에 재선임 된 후 바로 각 시 ‧ 도 지원 및 분원장과의 만남을 갖고자 하였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차일피 일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며 “뒤늦게나마 훈 재 서울시 지원장의 주선으로 서울지역 분원 장님들과 자리를 갖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이어 “그동안 주력해 온 승경 원 건립사업에 오늘 서울시 지원도 500만원의 헌성금을 출연, 모두 14억 원 가까운 성금이 모 아짐으로써 공사비를 충당하고도 여유가 생겨 부수적인준비까지걱정없이할 수있게되었다 며, 이 자리를 빌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종현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다.” 고 강조했다. 종약원 차원에서 추진할사업 언급 이어 귀남 이사장은 금년 1월 재선임 된 이후

22 李花 295호
25개 구 분원장, 이귀남 이사장 초청 고회(高會) 서울시지원 간담회
축사하는 이귀남 이사장
있어야 할 간담회 서울특별시
씨대동종약원
2
“분원장님들의 적극 협조로 90% 참석율을 보여주어 나름 보 람을 느낀다”면서 “모처럼 이사장님을 가운데

종약원 조직의 내실화를 위해 인사 추천위원 회 및 심사위원회를 만들어 실무 능력 중심으 로 조직을 시스템화하고, 아울러 ▲장학재단 설립 구상 ▲노령화 되는 종현을 위한 복지시 스템 구축 ▲나아가 현대 감각에 맞는 홍보를 위해 유튜브를 개설할 포부까지를 폭넓게 밝 히고, ▲또 우리 모두는 세종대왕을 역사 이래 최고의성군으로 추앙하지만, 막상 세종대왕 기념관 하나 변변치 않은 것이 현실이라면서, 종약원이 구상하는 사업에 전국 분원장님들 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입장이라고 했다. 당장은 승경원 건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 지만 금년 말쯤 사업이 마무리 되면, 고려 중인 사업들을 하나하나 추진할 의향임을 밝혔다. 이날 고회에는 서울시 지원 25개 구 분원장 중 20개 구 분원장이 참석하였다. 시지원에서 는 훈재 시지원장, 성대 시부지원장, 인중 시부 지원장, 기윤 문화이사가 참석했고, 종약원에 서는 귀남 이사장, 석무 총무이사(서대문구분 원장), 범성 총무부장 등 총 25명이 동참 했다.

행사의 주인공이 각 구 분원장이었던만큼, 분원장 한분 한분이 모두 이사장을 향해 한마 디씩 덕담 내지 건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양 한 질문에 빠짐없이 이사장이 답변하는 훈훈 한 자리가 되었다.

15년째 종약원 청년 이사로 봉사 중인 재복 이사가 금천구 분원장이라는 걸 오늘 처음 알 았다는 사실과, 종약원 석무 총무이사가 서대 문구 분원장인 것도 새삼스러웠다는 이사장 의 표정이었다. 규대 강남구 분원장 겸 서울시 지원 총무이사는 서울시지원에 인재가 많 은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 습니까? 가급적이면 서울 시지원은 물론 전국 각 분 원에 소속된 인재를 많이 활용해 종약원

▲ 앞줄 좌로부터 성대((부지원장)/석무(서대문구)/철의(노원구)/훈재(시지원장)/귀남(종약원이사 장)/광재(강북구)/재훈(동작구)

李花 295호 23 이귀남 이사장과 이훈재 서울시지원장(왼쪽) 서울시지원에서 승경원 건립기금으로 500만원을 헌납했다. 2022고회기념사진 ▲뒷줄좌로부터 평규(중구)/규대(강남구)/익재(영등포구)/기성(강동구)/ 성관(용산구)/세우(성북구)/동재(구로구)/동우(서초구)/재복(금천구)/경식(송파구)/범수(성동 구)/순호(관악구)/관우(양천구)/운상(동대문구)/광래(도봉구)/철섭(중랑구)/기윤(문화이사)
발전을 도 모하기를 청원하자, 이사 장은 분원이 종약원 조직 의 핵심임을 잘 알고 있다 면서“나역시용산에살며 용산구분원 소속임을 긍 지로 여기고 있다” 고 했

다. 특히 금년에는 용산구분원에서 행사에 꼭 참석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참석하기로 했는데 코로나 탓인지 통보가 없다고 하자, 성관 용산 구 분원장이 곧바로 일어나 10월 20일 하겠다 고 밝히자 즉석에서 일정표에 메모하는 열의도 보였다. 평규 중구분원장 겸 시지원 사무국장은 “오 늘 이사장님 모시고 간담회 한다는 게 너무 영 광스러워 즐거운 마음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코로나 상황에도 열정적으로 종약원 이끌어 가시느라 바쁘신 가운데도, 시지원 분원장들 을 위해서 이 자리 참석해주신 것에 감사드린 다. 앞으로도 계속 참석해 주실 것인가”를 묻자 귀남 이사장은 즉석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이 만

남을 정례화하자고 시원하게 답변했다. 첫 간담회였던 탓인지 덕담이 주류를 이루 었는데 공통적인 것은 ▲이사장님을 멀리서 만 보다가 이렇게 오붓하게 간담회에서 마주 하니 특별히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과거에 없던 이런 자리 만들어 준 훈재 시지원장에 대 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고 ▲오늘과 같은 자 리가 연례행사나 정기행사로 이어졌으면 좋 겠다는 의견에 많았다. 이날 행사장에서 서울시 지원은 승경원 건 립기금으로 500만원을 전달했는데 300만 원 은 시지원 자금, 200만원은 훈재 시지원장이 개인으로 출연했다. <이기윤 서울시지원 문화이사>

정 증 보 판 How to Name 이동우 성명학 전서 - 전국 유명서점과 인터넷 절찬리 판매중 초판 절판으로 개정증보판 발행s효령대군 15대손 東宇 s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서울특별시 지원 감사

대동종약원 서울시 서초구분원장

인릉(순조숙황제)봉향회

펴낸곳: 한솜미디어

문의 H.P 010-2804-6438, 02)565-6438

정가15,000원(우리은행1002-115-265927이동우)

24 李花 295호 책소개 개
*사)전주이씨
*
회장 *성균관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수상:녹조근정훈장,청백봉사상등 다수 *서초구민신문,매일폴리스뉴스(논설위원) 이름해설가, s서초구청 OK민원센터장,종합민원실장,서초2동장,호적계장 *KBS TV등에 160회 출연채널A.TV.명랑해결단에 박근혜,노태우,김대중 이승만대통령과 이병철 이건희 구본무 정몽구회장 등 이름풀이 출연 *작명경력45년,서초구청에서 만 16년간 6,000여 명 작명 *서울시 작명의 달인 선발(2010년) *서초구 서운로13중앙로얄 빌딩 1404호 양재역1번 출구 서초구청 외교센터 건너 *명품 신생아 작명, 개명, 아호,상호
저자 이동우

인흥군 묘역 및 신도비

경기도기념물 지정기념 학술심포지엄 개최 선조왕자 인흥군파종회(회장 京柱)는 경 기도 포천시가 7월 8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 당에서 개최한 ‘인흥군 묘역 및 신도비 경기도 기념물 지정기념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이날 학술 심포지엄은 포천시가 주최한 가 운데 이경주 회장 외 종친을 비롯해 백영현 포천시장, 박경식 한백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 및 관련 분야 전문가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심포지엄은 ‘인흥군과 낭선군의 생애와 예 술’ 등 총 다섯 가지의 주제를 중심으로 17세 기 서예가·금석학자로만 알려져 왔던 낭선군 이 아버지 인흥군의 묘역과 신도비를 조성했 다는 사실과 함께 그의 학술적·예술적 세계관 을 새롭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낭선군은 아버지에 대한 효심으로 인흥군 묘역과 주변의 석물 등을 설치했으며, 생전에 자신의 묘소에 쓸 묘표, 망주석, 향로석, 고석 등을 건립했다. 자신이 평생 작업한 내용을 ‘백년록(百年錄)’, ‘잡저록(雜著錄)’에 저술 하는 등 이번 학술 심포지엄을 통해 그의 뛰어 난 능력을 재조명했다. 또한 심포지엄을 통해 한글비석의 명칭과 한자음독 오류를 정정했다. 묘산비에 새겨진 한글은 17세기 유일한 한글 금석문으로 한글 및 서예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시 관계자는 “이번 학술 심포지엄을 통해 인흥군·낭선군 묘역의 석조문화재들과 17세 기 유일한 한글 금석문이 새겨진 인흥군 묘산 비의 역사적 가치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며,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역사적·학술 적 기반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고 밝혔다. <편집부>

李花 295호 25

건지산 봉향회의 내력

승경원 준공과 관련하여이병훈(李丙勳) 건지산봉향회 회장 전주는 예로부터 선원대향(璿源大鄕) 또 는 풍패지향(豊沛之鄕)이란 이름으로 불리 기도 했다. 전주이씨의 관향이고, 조선왕조를 창건한 태조대왕의 선조들이 살았던 땅이라 는 뜻이다. 풍패란 중국의 한나라를 창건한 유방의 고향이라고 한다. 전주 건지산 아래에는 전주이씨 시조 신라 사공공 휘 한(翰)과 시조비의 묘소가 자리한 조경단(肇慶壇)이 있다. 지금의 시내 한 복판 에는 태종 10년(1410년)에 창건한, 태조대왕 의 수용(晬容)과 신주를 봉안한 경기전(慶基 殿)이 있다. 그 북쪽에 시조 사공공 양위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 조경묘(肇慶廟)가 있다. 이 묘당은 영조 47년(1771년)에 지어졌다. 경기전 남쪽의 산비탈에는 태조대왕의 고 조인 목조께서 사셨다는 목조대왕구거유지 (穆祖大王舊居遺址)와 태조대왕이 운봉황 산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개선하는 길에 선조 의 고향에 들려 종족들과 잔치를 벌였다는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驆遺址) 라는 고종황제 어필의 비가 세워져 있는 오목 대(五木臺)가 있다. 조선왕조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이러한 묘역과 시설들이 국가에 의하여 원만히 관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왜국의 식민 지가 되어버린 36년간은 말할 것도 없고, 조국이 광복 된 이후에도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남북의 분단 그리고 새로운 정부 의 탄생, 곧 이어지는 6 ‧ 25라는 미증유 의 동족상잔의 대전란 등 우리 민족에게 닥친 불운과 고통은 한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조경단의 주봉 아래의 석산(石山) 과 그 인근 토지가 정부에 의하여 사인에 게 불하가 된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조경단과 경기전의 관리와 제사가 끊어진 지가 오래 되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전주이씨들의 마음에 쌓인 허탈감과 상실 감이 컸다. ‘건지산 조경단봉향회 창립취

26 李花 2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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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경과개요’라는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해방 후 이 나라의 최고집권층이 우리의 종원 이었음에도 건지산의 대부분을 타인에게 불하했 다는 엄연한 사실이 입증될 때 우리는 어찌 일각 인들 안연(晏然)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찰라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닥쳐 올 운명만을 좌시하고 있는 것이 전왕족(前王族)이면서 국중유일(國中唯 一)의 오백만(五百萬) 거족의 체통일까요? 실로 앙괴천부괴지(仰愧天俯愧地)로서 피눈물을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 었다. 그리하여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전라 북도지원 이사회(도지원 이사장 同宰, 화 수회장 宗燮, 동고문 承鎬)의 발의로 도 내 유지종친들과 각 지역분원들의 협찬과 성금을 모아 1965년 2월 건지산(乾止山) 조경단봉향회(肇慶壇奉享會)를 설립하여, 끊어진 제사를 잇고 후손으로서 보본추원 (報本追遠)의 도리를 계승할 수 있었다. 그 때 모아진 성금이 백미 270여 석이었 다. 당시로서는 큰 재산이다. 건지산 조경단봉향회 회칙(헌장)에는 ‘본회는 건지 시조산 조경단 춘향대제(春 享大祭)와 조경묘 경기전의 봉향과 그 수 호에 필요한 경비일체를 담당 지속한다’ (제19조)라고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대 동종약원 전북도지원의 유지발전을 도모 하는 경비일체와 화수회(덕진 화수각 소 속)의 조직 강화와 유지를 도모하는 경비 일체를 담당 지속한다(제20조, 제21조)라 고도 되어 있다. 당시 건지산 봉향회의 역할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다.

한때는 임원의 관리부실로 봉향회가 위 기에 처한 때도 있었으나, 1968년 고 태 연(泰淵) 종현께서 회장을 맡아 종인들의 출연을 독려하고 회재(會財)의 출납을 분 명히 하고, 정부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화수각(花樹閣) 대지와 그 주변 대지 516 평을 매입하였다. 많은 종인들의 성금으 로 이루어진 봉향회의 재산이 오늘날까지 인멸되지 않고 전해지게 된 것은 오로지 이 분 덕택이다. 나는 평생을 일개 서생(書生)으로 살아 온 사람으로서 종사에는 아는 것이 없다. 조부님과 선고께서 봉향회와 인연을 맺은 관계로 회칙상 영구이사로 참여하게 되었 다. 태연 회장 밑에서 부회장으로 있다가 회장이 고령으로 건강상 도저히 활동을 하실 수 없게 되자 부득이 외람되이 회장 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건지산봉향회는 광 복후의 남북분단과 정치적 혼란, 비극적 인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그 숭조 돈종의 정신을 실천해 왔다. 1979년부터 대동종약원 본원에서 조경단 향사를 맞게 됨으로써 그 임무를 다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건지산봉향회를 설립한 분들의 유지를 받들고 그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그분들의 생각과 뜻 이 너무나 훌륭하고 고귀하게 보인다. 이 러한 정신은 우리 후손들에게 반드시 계 승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봉향회 회장으로서, 태연 전 회장 이 물려준 봉향회 소유 토지 500여 평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봉향회를 창립한 선대 회원들의 유지를 받드는 것일까를 고심하고 있었다. 마침 종약원 본원의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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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台燮) 전 이사장으로부터 승경원(承慶 院)을 짓는데, 그 땅을 제공해 줄 수 있 겠느냐는 요청이 있었다. 승경원은 시조 사공공 아래 2세부터 17세까지 궐사된 선조들의 사당이라고 하 니 종사를 위하여 쓰여지는 것이다. 전북 지원과 화수각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곧 봉향회 총회를 소집하여 회원들의 의사를 물으니 모두 동의해 주 었다. 그래서 종약원에 봉향회 총회의 회 의록과 승경원 건립부지를 제공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종약원 본원에 건물을 설계하고 건축하 는데 실질적으로 그것을 관리하게 될 전 북지원과 화수각 임원들과 긴밀히 상의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 때가 2017년 2월이 니 벌써 5년이 지났다. 본원에서도 어려 운 여건 하에서 큰 역사를 완성하느라고 노고가 많았을 것이다. 태섭 전 이사장과 귀남(貴男) 현 이사장께 위로와 축하를 드리며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전국의 전주이씨 종친분들이 건 지산봉향회를 창립한 선대 회원들의 고결 한 뜻과 그 뜻을 받들고자 하는 우리들의 조그만 의지를 이해해 주시고 기억해 준 다면 고맙겠다. <태종/양녕대군 18대‧始42세>

어느 소년병의 6 ‧ 25 참전일기 저자:반석 이범경 2022년8월20일발행 367면/22,000원/글마당앤아이디얼북스 사관(史官)은 우리 역사에서 그 위상이 임금도 두려워 한 신분으로 전근대 사회에서 명예로운 상위직급이었다. 발전한 우리 역사의 증표로써 광평대군 후손 반석 이범경 님께서 90세 생신을 자축하면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발간했다. 우리 시대의 사관으로 대한민국의 고난과 발전의 시대상의 단면을 고위 신분이 아닌 자유시민의 사관 자격으로 서술했다. 다양한 대한민국의 역사상을 역사의 객관성 ‧ 공정성을 유지하고 애국 정신을 투영했다. 대한민국 역사를 부제목으로 ‘국민 방위병에서 조국 근대화 의 산업 CEO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감동적이다. 대한민국 국가사와 자유 개인의 정력적 활약상을 읽게 한다.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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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건지산에 건립될 승경원

이정길(李廷吉) 전주 덕진구분원장 전주이씨화수회 총무 전주 건지산 조경단은 전주이씨 신라 사공 공과 시조비 경주김씨를 모시는 500만 전주 이씨의 성지이다. 우리는 시조 이래 1300여 년의 유구한 역사와 519년의 왕업을 계승해 온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조선 왕조의 후예 다. 선대의 유업을 계승 보존하고자 시조 제향 을 비롯하여 왕릉제향과 종묘, 사직단과 경기 전, 환구단에서 대제를 봉행해 오고 있다. 종약원에서는 선조의 위업을 보존하고 계 승하는 후손으로서 단 한분의 선조 제향도 궐사해서는 안 된다는 종친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실묘된 선조 15분과 배위의 위패 를 모실 사당을 전주 조경단 근처에 건축하기 로 2013년 12월 20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이사회에서 의결하고 가칭 조경재 건립추진 기금 20억원 확보 등 세부 추진 방안을 계획하 였다.

당초 종약원이 계획했던 조경단 부근은 문 화재로 보호받고 있는 사적지 지역이었다. 당국의 허가를 얻기가 어려워 여러 부지를

검토하던 중, 조경단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건지산봉향회에서 소유하고 있던 화수 각 부지 516평(덕진지 옆 전북대학교 생활관 부근)을 무상으로 기증 받았다. 그 후 자산관 리공사 소유 233평을 매입, 모두 749평 부지 에 건축하기로 하고 사당의 명칭을 가칭 조경 재에서 승경원으로 확정하였다.

승경원에는 승경묘(사당), 삼문, 화수각(위 치 변경하여 신축), 관리실, 창고, 화장실 등이 들어서게 된다.

이곳 화수각은 1899년 5월 건지산에 조경 단을 설단하신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넋을 기 리고 기념하고자 1900년에 전주이씨화수회 가 발족되었다. 전주이씨화수회(대동종약원 소속 아닌 자생단체임)에서는 화수각에서 매 년 음력 7월 25일 고종황제 탄신일에 기념 행사와 함께 제향을 올리고 있다. 금년은 고종 황제 탄신 17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현 화수각 건물은 전주이씨화수회 회원이 십시일반 뜻을 모은 성금으로 1914년 승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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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개축하였고1974년 6월 다시 낡은 정자를 헐고 현재의 건물로 새로 중건하였으며 종무 소도 이때 개설되었다. 전주이씨화수회는 시조의 자손 선원선계 파와 선원세계파를 모두 아울러 사가(私家) 의 문중 종친으로 화합과 친목을 다지고 조경 단을 설단하신 고종황제의 넋을 기념하고 유 지하는데 의미가 있다.

대동종약원은 승경원을 건립하고자 2017

년 9월 26일 이태섭 이사장을 비롯한 200여 명의 종친이 참석하여 철거된 종무소에서 승 경원 건립 개기고유제를 올렸다. 그리고 2019

년 4월 10일 화수각에서 태섭 이사장을 비롯 한 전국 각지에서 온 조경단 참배객과 함께 승경원 착공을 위한 ‘영건 고유제’를 봉행한 후 조경단에서 조경단 대제를 봉행했다. 승경원 건축 시 재건축될 화수각은 이름이 시대에 맞지 않으니 예전 이름 승금정으로 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전주 이씨화수회가 발족되어 100년 이상 유지해온 화수각을 승금정으로 변경하면 안된다는 화 수회의 반대로 그대로 존치하기로 했다. 그 후 인허가 과정의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어 승 경원 건립을 위한 착공을 2019년에 하고, 완공 은 2021년 말 준공 예정으로 추진하였으나

코로나19로 공사를 착공하 지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어려 운 여건에서 대동종약원 귀 남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이 참석하여 2021년 10월 14일 착공식을 하고 2022년 내 완 공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하 였다.

그동안 예를 다하지 못한 후손들의 아쉬움이 담긴 숙원 사업을 더는 미룰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매년 4월 10일 조 경단에서 조경단대제, 음력 9월 9일 경기전 중양대제때는 조경묘 제향과 태조고황제의 수용을 모신 어진전에 제향을 올린다.

전라북도지원에서는 매월 음력 초하루에 많은 종친이 참석하여 조경묘와 경기전에 태 조고황제 수용 어진전에 초삭(初朔) 분향례 를 올리고 있다. 전주 경기전은 우리 전주이씨 시조의 위패 를 봉안한 조경묘와 태조고황제 어진(국보 제317호)이 모셔진 곳이다. 옆에 조선왕조의 실록이 보관되었던 전주사고가 있으며 예종 대왕 태실 및 비(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6 호)를 비롯, 역대왕들을 모신 박물관도 있다. 전주이씨의 성지인 건지산 조경단과 시조 의 위패가 모셔진 조경묘, 태조고황제 어진이 봉안된 경기전은 민족의 문화유산이자 귀중 한 자산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태종/효령대군 20대 ‧始4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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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상고 역사부터 군자와 소인, 대학과 소학, 대인과 소인, 부자와 빈자의 차별과 분별이 있었다. 우리 인류는 이러한 차별과 분별이 없는 이상적 세계를 만들고자 지혜와 방법을 역사의 발전 지표로 설정했다. 더불어 사회, 경제, 철학, 문학, 정치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와 노력하는 모습을 역사에서 읽을 수 있었다. 군자는 바로 역사의 지표에 접근할 인간상 으로 설정하고 성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순자 의 군자론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성인을 존중하는 사람은 왕자가 되고, 현명 한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패자가 된다. 현명한 사람을 공경하는 나라는 존속하 고, 현명한 이를 가벼이 대하는 나라는 망한 다.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므로 현명한 이를 존중하고, 능력있는 사 람을 등용하고, 귀하고 천한 사람의 차등을 분명 히 하고, 친하고 소원한 사람의 분별을 정확히 하고, 나이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의 서열을 올바로 정하는 것, 이것이 왕자의 도이다.

이범직(李範稷) 본원 이사·문학박사

그러므로 현명한 이를 존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부리면 임금은 존귀해지고 아래 백성 들은 편안해진다. 귀하고 천한 신분에 등급이 있게 되면 정령이 행해져 멈춰지는 일이 없게 된다. 친하고 소원한 사람들의 분별이 있게 되면 두루 베풀어져 인정에 어긋나는 일이 없게된다. 나이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의 서열 이 정해지면 행하는 모든 일이 계속 이어지고 이룩되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인(仁)이라는 것은 이 같은 일들을 사랑하는 것이고 의(義)라는 것은 이 같은 일들을 올바로 분별하는 것이고, 절(節)이라 는 것은 이 같은 일들을 위해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것이고, 충(忠)이라는 것은 이같은 일들을 독실하게 힘쓰는 것이다. 이같은 일들 을 다 아울러 잘 할수 있다면 덕을 완전히 갖춘 것이다. 덕을 갖추었으면서도 뽐내지 않고 자기의 선함을 한결같이 추구한다면, 그를 성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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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뽐내지 않게 때문에 천하에는 그와 능력을 다투려는 이가 없고 휼륭한 것을 받아들여 그가 하는 일에 응용하게 될 것이다. 모두 다 지니고 있으면서도 지니지 않은 듯 행동하기 때문에 천하의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시경(詩經)에 ‘훌륭한 군자는 그의 행동이 그릇되지 않네, 그의 행동이 그릇되지 않으니, 온 세상 바로 잡은 것이라 한 것도 이것을 뜻하는 말이다.’ 군자론은 훌륭한 군자와 천자 를 같은 자리에 놓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오늘의 역사는 대중으로부터 대통령을 선출 하려는 민주제도가 갖는 철학은 순자의 군자 론이 시사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현재 세계가 추구하는 민주제도에서 선출하 는 최고 통치자의 덕목으로 우리는 군자를 설정한다면 아직 부족한 면이 있으나 군자 소인의 차별로 신분제라는 고·중세 시대의 병폐를 극복했다고 이해 할 수 있다. 이는 성실한 학자들에 현실의 역사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이해된다. 주자의 대학 장구서문이다. 송나라(960~1279)시대 유학자 주자(朱子

·주희)가 해설한 대학(大學)은 “옛날 대학에 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이다. 이어 위정자로부 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근본을 명덕(明 德), 신민(新民), 지선(至善)의 세계(世界)로 설정하고, 본말(本末), 지식을 극진하는 데는 사물의 근원에 도달해야 한다. 의지를 성실성 있게 한다. 몸을 딱으려면 먼저 마음을 바로 잡으라. 집안을 질서있게 하려면 먼저 몸을 닦으라. 나라를 다스리려면 먼저 집안을 질서 있게 하라. 천하를 태평케 하려면 먼저 그 나라 를 다스려야 한다.”(修身齊家治國平天下) 공자의 철학을 안내하는 교육으로 사대부 계층을 군자로 육성해야 할 내용으로 만들고 있다. 소위 사례(四禮)로 알려진 관혼상제(冠 婚喪祭)는 대부분의 백성 국민을 군자의 덕목 으로 훈련하는 통과의례로 만들어 모든 국민 을 통과의례로 인한 성인(成人)이 되게 이끈 다. 바로 모든 성인은 이상적인 군자(君子)로 서 국가 최고 지도자의 위상을 얻을 수 있는 단계에 도달 한다는 이상이다. 그 속에서 민주 선거 정치시대에 도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종/광평대군 17대 ‧始42세>

치마바위 전설 치마바위는 사직단 서쪽 인왕산 자락에 있는 넓고 평평하게 생긴 바위로, 중종의 첫 번째 왕비인 단경왕후와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즉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진성대군이 중종이 되자 그 부인 신씨는 친정아버지 신수근이 반정 때 피살되었는데 반정을 주도해온 박원종 등이 죄인의 딸은 왕비가 될 수 없다하며 반대하자 인왕산 아래 사직골 옛 거처로 쫓겨나 살게 되었다. 중종은 부인을 잊을 수 없어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을 바라보곤 하였으며, 신씨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종을 시켜 자기가 입던 붉은 치마를 경회루가 보이는 이 바위에 걸쳐 놓음으로써 간절한 뜻을 보였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은 이 바위를 치마바위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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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실록(11)

단종대왕 장릉

사고무친(四顧無親) 어린 임금의 애달픈 곡절 영월 청령포 강물에 녹아 흐르다. 천지신명도 무력할 때가 있다. 경북 순흥 땅에 유배 중이던 세종대왕 여섯째 왕자 금성 대군(李瑜‧ 1426∼1457)이 이보흠과 함께 단종대왕(재위 1452∼1455) 복위를 도모했 다. 조정에서는 후환을 없애겠다며 의금부도

이규원(李揆元) 본원 문화이사·시인 삼국왕릉실록 작가

▲단종대왕이 예장된 영월 장릉. 추운 겨울 노루가 앉아 녹았던 자리로 하늘이 내린 명당이다.

사 왕방연(생몰년 미상)에게 사약을 내려 보 냈다. 조선 6대 단종대왕(이하 대왕)이 한 많 은 생을 마감하니 보령 17세였다. 조선 왕릉에 가면 제향을 봉행하는 정자각 에 이르기 전 박석을 깔아 놓은 참도(參道)가 있다. 좁은 통로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3단계 (2단계 왕릉도 있음)로 구분돼 있다. 중앙이 가장 높고 왼쪽이 약간 낮으 며 오른쪽은 가장 낮다. 중앙 은 신도(神道)로 산릉제향 시 대축관(大祝官)만 오를 수 있 고 왼쪽은 임금이 걷던 왕도 (王道)다. 오른쪽은 왕보다 한 발짝 물러선 세자가 걷던 통로다. 축문을 읽는 걸 독축(讀祝) 이라 한다. 왕릉은 물론 일반 사가에서도 독축할 때 법도가 있다. △음성을 너무 높지 않 고 낮지도 않게 △가성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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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성을 삼가고 △왜 일찍 돌아가셨느냐고 원 망하며 그리워하는 목소리로 독축한다. 부복 한 친인척들의 억장이 녹아난다. 단종의 능 제향은 매년 11월 19일이다. 예부터 부모는 팔자라 했다. 어떤 부모의 몸을 통해 태어나느냐에 따라 절반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의미다. 어느 누군들 돈 많고 권세 누리며 출세한 부모를 만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천륜으로 맺어지는 부모 자식 간 인연은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선택권이 없다. 다만 숙명일 따름이다. ˂단종 대왕 출생 및 현덕왕후 생애는 李花보 제294 호 ‘문종대왕 현릉’편 기사 참조˃ 대왕은 박복했다. 대왕의 생모 현덕왕후 권씨(1418∼1441)는 세종 23년(1441) 7월 23일 대왕을 출산한 뒤 3일 만에 승하했다. 산고였다. 문종대왕(이하 부왕)은 29년 동안 세자로 있다가 등극한 지 2년 3개월 만에 훙서했다. 일국을 통치함에는 옥체 보전이 우선이거늘 부왕은 철야 독서와 과도한 정무 로 대사를 그르쳤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다 해서 의무를 다한 건 아니다. 양육하고 교육하 며 성인이 될 때까지 보살펴야 하는 것이 부모 의 책무다.

대왕은 사고무친이었다. 서조모 혜빈 양씨 (세종대왕 후궁)의 젖을 먹고 자랐다. 친 혈육 이라곤 누이 경혜공주 밖에 없었다. 혜빈 양씨 는 대왕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혈육보다 더 정성을 기울였다. 당시 조정의 권력 구조는 수양대군(1417∼ 1468 ‧ 세종대왕 둘째 왕자)과 안평대군 (1418∼1453‧ 세종대왕 셋째 왕자)의 추종 세력으로 양분돼 있었다. 한명회‧ 권람 등 권 모와 지략에 특출한 책사와 홍달손, 양정, 류

수 같은 힘센 무사들이 수양대군의 수하였다. 조정 권력의 주축이었던 영의정 황보인, 우의 정 김종서 등은 안평대군을 암묵적으로 지지 했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부왕이 예척했다. 12세의 어린 대왕이 왕위를 승계(1452)했다. 현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 가 보위에 오른 것이다. 대왕은 부왕이 아꼈던 대신들을 중용하고 의지했다. 조정이 무주공 산(無主空山)이었다. 왕권이 요동치며 신권 (臣權) 통치로 기울었다. 이 판국에서 한명회 를 비롯한 수양대군 심복들이 계유정난 (1453)을 일으켰다. 이후 조정에는 피바람이 몰아쳤다. 안평대 군은 사사되고 아까운 국가 동량들이 모진 고문 끝에 세상을 떠났거나 유배지로 향했다. 임금 자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권력 향배를

▲장릉 앞의 정령송. 경기도 남양주시 사릉(단종왕후) 에서 옮겨 심은 소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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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길 없던 어린 대왕은 숙부 수양대군만 의지 했다. 숙부에게 매달려 “그저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조정을 장악한 정인지, 한 명회, 권람 등이 어린 대왕에게 선위를 주청하 자 대왕은 “경들이 알아서 하라”고 옥음을 내렸다.

대왕은 왕위에 오른 지 3년 2개월 만에 상왕이 되었다.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이 개 ‧ 하위지 ‧ 유성원 ‧ 유응부)의 복위 계획이 정창손과 그의 사위 김질의 고자질로 탄로 났다.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된 대왕은 배 소지(配所地) 영월 땅 청령포(淸泠浦)에 유 폐되고 말았다. 조정의 강권으로 가례를 올린 정순왕후 (1440∼1521 ‧ 여산 송씨)와도 생이별해 대 왕의 외로움은 극에 달했다. 대왕은 청령포 험한 산 바위에 올라 한양 쪽 하늘을 바라보며 구슬피 울었다. 고립무원의 기막힌 처지를 비관하며 자탄시를 읊곤 했다.

소쩍새 울다 지 친 새벽 봉우리엔 조각달만 밝고 피를 흘린 듯 봄 골짜기에는 떨어 진 꽃들이 붉은데 귀머거리 하늘 은 아직도 이 애달 픈 호소 듣지 못하 고 어찌하여 근심 많은 이내 사람의 귀만 홀로 밝단 말 인가.

조정에서는 의금부도사 왕방연에게 사약 을 내려 보냈다. 왕방연은 기가 막혔다. 계유 정난 이후 대왕의 유배 길에도 자신이 호송관 이었는데 대왕의 목숨 끊는 저승길에도 또다 시 호송관이 된 것이다. 왕방연은 대왕의 사형 을 집행하고 돌아오며 각혈할 것 같은 비통함 에 잠겼다. 자신이 가져간 사약으로 어린 대왕 이 생목숨을 끊은 것 아닌가. 강물에 투신할 작정으로 영월 동강 가에 앉았다. 불현듯 시 한 수가 응어리진 한으로 솟구쳤다.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곳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녜놋다. (‘녜놋다’는 ‘바삐 흐르다’의 古語)

동강 물에 가족 얼굴이 비쳤다. 왕방연은 한양으로 돌아와 벼슬을 내던졌다. 고향 경기 도 구리에 가 배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마쳤다. 대왕이 승하한 10월 24일이면 배를 한 바구니 씩 제사상에 올리고 남몰래 제사 지냈다. 대왕

▲단종 유배지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 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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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유배지로 호송하며 “물 한 모금 주지 말라” 는 군령이 무서워 대왕의 간절한 요청을 못 들어 준 게 철천지한이었다. 어린 대왕은 머나 먼 유배 길에 목이 탈 때마다 애원했다. “의금부도사, 내가 심히 목이 타오르니 물 한 모금만 줄 수 없겠는가?” 어린 왕은 간절히 애원하며 읍소했다. 왕방연은 부복한 채 통곡 하며 눈물만 흘렸다. 왕방연이 농사 지어 올린 배는 유난히도 달고 물이 많았다. 이 후부터 구리 지역에서 수확한 배를 ‘먹골 배’라 부르 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대왕을 사사시켜 동강에 내던 지고 시신을 거두는 자 누구든 삼족을 멸해 버리겠다는 엄명을 내렸다. 이토록 서슬 퍼런 시국에도 의인 하나가 있었으니 영월 호장(戶 長‧ 향리직 우두머리) 엄흥도(생몰년 미상) 였다.

엄흥도는 “옳은 일을 하다 화를 입게 되면 달게 받겠다”며 동강 물위에 떠 있는 대왕 시신을 수습했다. 영월 동을지산에 몰래 암장 하고 표시해 놓았다. 세월이 흐른 어느 해 겨울. 눈 덮인 동을지산에 노루가 앉아 있던 자리만 녹아 있었다. 엄흥도가 그 자리를 파고 장사지낸 뒤 억장이 미어지도록 울었다. 수상(殊常)한 세월은 무심했다. 천신만고 의 우여곡절 끝에 19대 숙종대왕 24년(1698) 노산군이 단종(端宗)으로 복위됐다. 망각됐 던 대왕 묘가 왕릉으로 새로 조영되니 오늘날

의 장릉(莊陵)이다. 장릉은 건입수(乾入首) 임득수(壬得水) 진파수(辰破水)에 신좌(辛 坐‧ 서에서 북으로 15도) 을향(乙向‧ 동에서 남으로 15도)의 동향이다. 조선 왕릉 중 7대 명당으로 손꼽히는 명당이다. 대왕은 승하한 지 240여 년 만에 시호를 추존 받고 신주는 종묘 영녕전(보물 제821호) 에 부묘(祔廟)됐다. 11대 중종대왕과 17대 효종대왕 당시 뜻있는 조정 대신들이 대왕 복위 상소를 올렸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숙종대왕 재위 시 대제학 서종태(1652∼ 1719)가 장릉을 복원하며 정자각 상량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구불거리는 장엄한 산세는 멀리서부터 그 줄기가 갈라졌다. 기운 찬 봉황이 나르며 용이 오르는 기상을 머금었다. 뭇 산이 둘러쳐 옹위 함이 마치 임금께 절하는 듯하다.’ 근자에 와 대왕의 정비 정순왕후 사릉(思陵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번지) 과 합폄하자는 의견이 분분했다. 역사학계에 서는 6백 년 전 왕릉을 후세인들 판단으로 이장한다는 건 가당치 않은 발상이라고 일축 했다. 장릉 앞에는 사릉에서 옮겨 심은 소나무 정령송(精靈松) 한 그루가 대왕 능침을 마주 보며 쓸쓸히 지키고 서 있다. <세종/광평대군 19대 ‧始44세>

찾아가는 길 장릉(사적 제196호)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영흥리 산133-1번지)에 있다. 대중교통 이용 시 영월읍에서 영월~장릉행 시내버스를 탄다. 버스는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승용차는 충북 제천 IC에서 영월 나들목을 지나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59번 국도) 하면 장릉에 이른다. 문의:(033)374-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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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언론에서는 “조선 시대

가 보자” 며 창경궁~종묘 옛길이 전면 개방된 것처럼 보도했지만, 1932년 일제 때 종묘 관

통 도로(현 율곡로)를 내며 갈라놓았던 창덕궁·창경궁과 종묘가 90년 만에 다 시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고 감회가 깊다. 풍수지리상 북한산의 주맥 이 창덕궁과 창경궁을 거쳐 종묘로 다시 이어지게 된 사실도 반갑다. 서울시에서 2011년 5월부터 율곡로 를 지하화하고 그 위에 흙을 덮으면서 두 궁궐과 종묘를 하나의 숲으로 연결하 는 녹지(8,124㎡)로 조성한 것이다. 그 위로 옛 종묘 담장도 복원하여 두 궁궐과 종묘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이었 던 일제 강점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돈화문 앞에서부터 창경궁 경내를 지나 원 남동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새로 조성된 담장 과 산책로(340m)를 걸어보았다. 폭 3m인 산 책로는 황토 원료의 흙시멘트 길이라 걷기에 편했다. 길이 503m 궁궐담장은 거의 원형대 로 쌓았는데 담장의 돌(사괴석)이 저마다 다

38 李花 295호 창경궁~종묘 연결 개통에 즈음하여 종묘도 5대 궁궐처럼 전면 개방을 해야 하나? 이종호 서울 노원구 명예분원장 건축사 ▲창경궁과 종묘 사이로 연결된 녹지공간 지난 7월 22일 창경궁과 종묘를 연결하는 길이 90년 만에 복원되었다. 종묘를 통해서 창경궁으로, 창경궁을 통해서 종묘로 갈 수 있는 것은
왕이 걷던 길

른 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공사 중 발굴한 종묘 담장의 석재와 기초석 을 30% 이상 재사용했다고 한다. 산책로 옆에 는 실제 담장이 있던 터에서 발굴한 기초석을 그대로 보전해 관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산책로 담장 중간에는 북신문(北神 門)을 조선 시대 모습 그대로 복원하였다. 창경궁과 종묘를 넘나들 수 있는 문이다. 동궐 과 종묘가 도로에 의해 갈라지기 전엔 조선의 왕들이 이 문을 이용했다고 한다. 일제 때 총독부에서 도로를 만들며 조선 왕실의 반발 과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설치했던 연결 육교 가 있던 자리다. 현재 북신문 앞에는 매표소가 설치됐지만 자유 관람인 창경궁과 예약을 통한 시간제 관람인 종묘의 매표 시스템이 아직 통합되지 않아 아직은 북신문을 통과해 창경궁과 종묘 를 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창경궁과 창덕궁은 이미 함양문으로 연결 돼 있으니 북신문만 개방되면 동궐과 종묘의 연계 관람이 가능해진다. 서울시와 문화재청 은 복원 취지에 맞게, 향후 북신문 개방에

필요한 조치를 협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서울 시는 전면개방을 원하지만 문화재청은 난색 을 표하고 있는 것 같다. 종묘는 일반 궁궐과 달리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 고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국가 사당이기 때문 이다. 종묘는 1995년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영건 당시 조선 시대 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늘날까지도 제례가 행해지고 있는 곳이다. 조선 시대 임금이 평소에 거주하고 정치 행위를 펼친 5대 궁궐(경복궁·창덕궁·창경 궁·경희궁·경운궁(덕수궁))과는 개념 자체 가 다른 것이다. (참고로 서울의 조선 5대 궁궐 면적은 140만㎡에 달하며 도쿄 에도성 과 비슷하고 베이징 자금성보다 훨씬 넓다.)

왕궁은 우리나라 근대의 긍정적 유산으로 국민 공간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종묘는 경우 가 다르다.

문화재는 민족의 얼이요, 한 나라 정신문화의 결정체이다. 종묘의 존재가 바로 그러하다. <중종/덕양군 16대· 始4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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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조성된 산책로와 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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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

이기윤(李起潤) 본원 문화위원 소설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덴마크 왕실의 여왕 은 현재 마르그레테 2세이다. 아버지 프레데 리크 9세와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세 딸 중 장녀로,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는 8촌 자매이다. 프레데리크 9세는 아 들을 희망했지만 계속 딸이었고, 나이 들어 더 기다릴 수 없게 되자, 마음을 바꿔 친척 가문에 왕위가 돌아가는 것을 막고 장녀 마르 그레테가 즉위할 수 있도록 힘썼다. 다행히 네덜란드나 영국에서 여왕이 즉위 하는데 영향을 받아 1953년 성별 상관없는 장자승계 원칙을 세울 수 있었고, 계승 범위를 왕가의 후손으로 한정하는 헌법 개정에 이어 왕위 계승법까지 개정함으로써 1972년 마르 그레테 2세가 여왕으로 즉위했다. (1940년생 으로 올해 82세)

936년으로 추정되는 ―기록으로 실재가 확 인되는 가장 오래전 덴마크 국왕인― 고름 가믈리(왕)부터 현 마르그레테 2세 여왕까지

1000년이 넘게 왕위를 계승해 온 덴마크 왕가 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럽 군주국 중 가장 역사가 긴 계보를 가지고 있다,

고름부터 천 년 넘게 계보 이어온 군주국 덴마크 왕국에 대한 기록은 바이킹 시대, 프랑크 왕국 카를 대제(재위 768∼814) 때 처음 나타난다. 덴마크에 고드프레드 왕이 있어 프랑크의 북방진출을 저지했고, 그를 이은 아들 헤밍 왕과는 811년 조약을 맺어 아 이더강(江)을 프랑크 왕국과의 경계로 설정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것은 구전이고 헤밍 왕 이후의 연결도 없다. 실체가 확인되는 덴마크의 첫 번째 국왕은 고름 가믈리이다. ‘가믈리(gamli)’는 나이가 많다는 뜻이니 우리 식으로 해석하면 ‘노왕 (老王)’ 고름이거나 부족의 지도자였을 것이 다. 덴마크의 역사학자 삭소 그라마티쿠스에 의하면, 고름이 덴마크 왕국의 가장 정통 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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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왕실 이야기 ③ 덴마크 편

이고, 동시대 인근의 군주들보다 나이가 많았 다고 한다. 현재 덴마크의 왕실은 이 혈통을 물려받았다.  그는 덴마크의 전설적 임금 크누트 1세(하 르다크누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록에 따르 면 크누트 1세는 10세기 초 북(北) 유틀란트 예링에서 새 왕조를 일으킨 후 서쪽 지방을 다스리던 올라프 왕조의 시그트리그 그누파 손을 몰아내고 영토를 확장했다. 크누트 1세 가 죽자 고름이 뒤를 이었다. 예링에 있는 암석각문(岩石刻文)에 덴마크 왕국이란 명 칭이 처음 등장한다. 독일 사학자 옐링 스톤에 의하면 959년 고름이 죽자 차남 하랄 드가 왕위를 이어 덴마 크 전역을 평정했다 하니, 고름 왕의 영향력은 그 정도까지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아버 지 크누트 1세가 정복했던 땅을 기반으로 윌 란반도 일대를 다스렸을 것이다. 하랄 왕은 960년경 국민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고, 그의 아들 스벤(스웨인) 1세는 1013년  잉글랜드를 정복하였다. 스벤의 아 들 크누드(카누트) 대왕(재위 1014∼1035) 은 덴마크와 잉글랜드 및 노르웨이의 왕위를 겸하는 대왕국을 창건하였다. 크누드가 죽자 대왕국은 분열되고, 덴마크 는 다시 스칸디나비아의 한 세력으로 전락하 였으나, 크누드의 조카 스벤 2세에 의해 로마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신(新) 덴마크 왕국이 건설되었다. 스벤 2세가 죽은 뒤 1074~1134년까지 스 벤 2세의 다섯 아들이 차례로 왕이 되어 다스 렸는데, 그 무렵 덴마크교회는 앵글로색슨 세력에 좌우되다 다시 함부르크 세력 아래에 놓였었다. 1104년경 룬드를 대주교구(大主

敎區)로 독자적인 국교회를 가지게 되었다. 1134년 이후 다시 교회와 국가가 분열되면서 분쟁을 지속하다가, 1157년 발데마르 1세(재 위 1157∼1182)가 일어나 내분을 깔끔하게 가라앉히고 발데마르 왕조를 일으켰다. 발데 마르 1세는 군사력을 재편성하여 독일에 대항 하고 발트해의 슬라브 세력과 싸웠는데 그때 슬라브인의 침입에 대비하여 셸란섬에 구축 한 성새(城塞)가 오늘날 코펜하겐의 기원이 되었다. 기록상 덴마크 최초의 왕은 고름 가믈리 발데마르 2세(재위 1202∼41) 때 정치와 경제의 발전이 촉진되었으나 그가 죽자 다시 왕, 교회, 귀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왕권이 약화됐다. 같은 시대에 발트해지배 및 슐레스 비히 영유를 둘러싸고 스웨덴·노르웨이·한자 동맹 세력과의 항쟁이 지속되어 왕국의 약체 화를 가져왔다. 발데마르 4세가 죽은 뒤, 발데 마르의 딸 마르그레테는 아들 올라프 2세(재 위 1375∼87)를 왕좌에 앉히고 섭정(攝政)을 했는데, 아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1387년 자신이 직접 덴마크 및 노르웨이의 군주로 승인받았다. 남편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왕 위 계승자였기에, 마르그레테는 1389년 스웨 덴 왕도 겸했다. 동군연합(同君聯合) 형태의 3왕국 통합도 1397년, 이른바 칼마르동맹에 의해 정식 승인되었다. 영국의 번영이 16세기 튜더왕조의 마지막 군주 엘리자베스 1세 때 구축된 통합과 평화 와 성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난 현재 엘리자베스 2세가 등장해 오늘의 영국을 이끌었 듯, 덴마크 왕실 역사는 14~15세기 마르그레테 1세 여왕이 통합의 빛나는 업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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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았다. 수백 년 시차를 둔 뒤 현세의 마르그레 테 2세가 즉위해 안정을 구가하고 있는 셈이 니 유럽에서 여왕의 존재를 빛낸 이름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 국가를 강성하게 만든 여왕들이었지만 ― 튜더왕조가 엘리자 베스 1세를 끝으로 스튜어트로 바뀌었듯, 덴 마크 왕조도 1448년 올덴부르크가(家)로 바 뀌었다. 그러나 칼마르동맹은 그대로 유지되 는 등 여왕 시절 만들어놓은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16세기 종교개혁 … 루터파의 신교 받아들여 1520년 크리스티안 2세(1513∼1523) 때 에 스웨덴의 독립 열기는 전쟁으로 확대됐다. 역사적으로 규모가 컸던 보게순 전투에서 독 립을 희망한 스웨덴의 스투레 일파는 덴마크 에 격파당했다. 그러나 스웨덴은 다시 봉기하 여 독립을 이룩하였고 3년 후인 1523년 칼마 르동맹은 해체되었다. 덴마크 종교개혁은 크리스티안 3세(1534 ∼1559) 때 추진되어 루터파의 신교가 받아 들여졌다. 칼마르동맹은 깨졌으나 노르웨이 의 입지는 스웨덴 독립 이후 자치운동이 완전 히 봉쇄당한 전보다 못한 속국이었다. 크리스 티안 3세는 원로원 등 귀족세력 강화를 바탕 으로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인재육성 정책으 로 학자를 많이 배출하는 등 국가번영의 기운 을 보였다. 성과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덴마크 ·스웨덴·폴란드·뤼벡 사이에 북방 7년 전 쟁이 일어났다. 크리스티안 4세(재위 1588∼ 1648) 때 2차에 걸친 스웨덴과의 싸움으로 국토의 손실과 국력의 쇠퇴를 가져왔다. 1660년 프레데릭 3세(재위 1648∼70)는 귀족세력과 대립하는 도시 부르주아 및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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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성직자와 결합하여 왕위의 세습제를 승인 받고, 1665년에는 국왕의 절대주권을 승인받 아 절대군주제를 확립하였다. 1788년 농노제

가 폐지되고, 1797년 자유무역 원칙에 입각 한 관세법이 성립되어 덴마크의 경제가 활력 을 얻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함대 의 공격을 받고 나폴레옹 편에 서게 된 덴마크 는 영국·러시아·스웨덴 등 동맹국과 싸운 끝에 1814년 킬조약에 의해 노르웨이를 스웨 덴에 할양하고 4세기에 걸친 노르웨이 지배도 종지부를 찍었다.

프레데릭의 절대 왕정이 비판의 대상이 되 면서 1842년 입헌적 대의정치를 주장하는 국민 자유당이 결성되었다. 1849년 프레데릭 7세(재위 1848∼1863)는 자유주의자들의 요 구에 따라 전제정치를 포기하고 자유 헌법을 성립시켜 입헌군주제를 수립하였다.1864년 에는 15세기부터 동군연합(同君聯合) 형태 로 덴마크에 속해 있던 유틀란트 남부의 슐레 스비히·홀슈타인 두 공국(公國)의 영유를 요 구하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와 싸워서 패한 뒤 그곳도 할양하였다. 후사(後嗣)가 없는 프레데릭 7세의 뒤를 이어 글뤽스부르흐가(家)의 크리스티안 9세 (재위 1863∼1906)가 왕위에 올라 왕조를 열 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후 내정이 안정되어 국민의 역량을 농목업 및 해운업을 주축으로 하는 경제발전에 집중시켰고 20세 기 초부터 사회복지제도를 정비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키는 데 성공 하여, 전후 주민투표에 의해 북(北)슐레스비 히를 되찾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중립선언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침입을 받

았으나 전쟁 피해는 비교적 적었다. 노르웨이가 덴마크 지배를 받을 때 일괄적 으로 덴마크에 속하게 된 아이슬란드는 전쟁 중인 1944년 6월 동군연합을 해소하고 독립 하였다. 세계대전 이후 덴마크는 중립 전통을 깨고 1949년 NATO에 가입하였고 자국령인 그린 란드를 미국에 기지로 제공하고 있다. 덴마크 왕가는 이렇게 긴 역사의 계보를 가지고 있다. 왕조가 바뀌긴 했으나 덴마크의 왕조 교체는 방계 계승이나 모계 계승으로 성씨만 바뀐 것이기에 왕가의 혈통은 1000년 넘게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유럽 특징 보여주는 덴마크 건국 신화 북유럽 신화에는 오딘과 토르, 로키 등 유명 하고 재밌는 일화가 많다. 덴마크 건국 신화도 재미있다. 지혜롭지만 더 많은 지혜를 갈구하 고 욕심냈던 스웨덴 왕이 평민 차림으로 새로 운 지혜를 찾는 모험에 나섰다. 해가 저물자 밤을 보내기 위해 한 동굴에 들어갔는데 절세 미녀가 단 아하게 앉아 있었다. 왕은 그 녀에게 자신의 지혜를 뽐내 는 이야기를 했지만, 미녀는 웃기는커녕 시큰둥했다. 기 분이 상한 왕은 더 할 이야기 도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미 녀가 입을 열었다. “저도 재미 난 이야기를 해 드리죠.”

그런데 웬일, 그녀의 이야 기는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이야기로 밤을 새운 후 왕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너의 이야기가 훌륭하니 상을 주마. 하루 동안 황소로 쟁기질해서 나아간 만큼을 너의 땅으로 주마.”

그런데 이건 왕의 엄청난 실수였다. 미녀는 계피온의 여신이었다. 그녀는 얼른 자기 아들 들을 황소로 만들어 하루 동안 엄청난 양의 땅을 떼어가 왕국을 만들었다. 그게 코펜하겐 이 있는 셀린 섬이라는 설도 있다. 민주주의 물결 가운데 군주국이 존재하는 이유? 현재 유엔에 가입된 지구촌 195개국 중 아직 군주제인 나라는 무려 44개 국가에 이른 다. 21세기 대명천지에 23%의 나라가 여전히 왕이 지배하거나 국가를 상징하고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모범적인 민주 국가들이 즐비한 유럽에도 영국 스페인 네덜 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덴마크 스 웨덴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등 대를 이어 왕위 를 세습하는 왕국이 10개국이나 된다.

유럽 최고의 관광상품인 근위병 교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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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럽의 군주제는 대부분 “군림은 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 입헌군주제이다. 하지만 그래도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제도이고, 따라서 군주 폐지론자들이 내세우는 주장도 출생 신분에 따른 차별과 특혜는 민주주의에서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도 유럽 국가에서 왕실 지지는 탄탄하다. 왕실 유지에 막대한 비용을 국민 세금에서 지불하는 것에도 관대한 이유는 과 연 무엇일까? 여론은 대체로 다섯 가지를 꼽 는다. ▲첫째, 왕실의 존재가 비용보다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영국은 물론 덴마크도 (단순 히 경제적 득실만 따져도) 왕실로 인한 지출보 다 소득이 크고, 왕실로 인한 홍보 효과를 더하면 그 이익은 비할 바 없이 커진다. 왕실 가족은 유명 연예인을 뛰어넘는 관심의 대상 이다.

최근만 해도 덴마크의 왕세자 프레드릭과 왕세자비 메리의 세기적 신데렐라 러브스토

리에 전 세계의 관심과 사랑이 쏟아져 흥행(?) 을 올렸다.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오는 관광객 덕에 생 기는 소득은 또 얼마나 많은가. ▲둘째는 입헌 군주국들이 국민에게서 충분히 존중받을만 한 역사적 정당성을 가졌다는 것 ▲셋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입헌군주는 명예직 이기에 정치와 무관하다.

▲넷째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사는 군주나 왕실 가족이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소외지역 약자를 대상으로 자선사업이나 복지 관련 활 동에 적극적이어서 국민적 단합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덕이고 ▲다섯째는 입헌군주제 가 국민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는 것. 다시 말해 의원내각제는 정권교체가 많을 수 밖에 없는 데 반해 왕실은 영속성이 있어, 현실 정치에 만족하지 못할 때, 한결같은 품위 를 가진 왕실의 존재에서 위안을 받는다는 게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이유들이다. <태종/효령대군 17대· 始41세>

도평군은 휘가 말생(末生)이며, 정종대왕

사이에

아들로 태어났다. 1872년

(共昭公)시호를내렸다. 1901년9월에는효헌공(孝獻公)시호를추증하였다.1874년3월에도평군의

봄,가을에제례를봉향토록 하였다. <글:도평군파종회 총무이사 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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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헌사(孝獻祠) (구례향토문화유산 제1호) 효헌사는 조선조 2대 정종대왕의 12번째 왕자 도평군 (1402.8.9.~1466.8.15.)과배위 두 분의위패를 봉안한 부조 묘(不祧廟)이다.
과성빈충주지씨
12번째
3월고종황제는도평군겸영종정경부사로추봉하고공소공
후손이살고있는구례군마산면사도리에위패를봉안하도록하여매년

날지 못하는 천사

홍정민

서울 양진초등학교 4학년

우리 윗집에는 5살 쌍둥이 천사가 산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날 수 없는 천사들은 항상 날기 연습을 하며 파닥거린다. 아침에 파다닥 소리는 나의 모닝콜이 되고, 저녁에 파다닥 소리는 나의 이른 잠을 깨운다. 엄마에게 윗집이 너무 시끄러우니 인터폰 한 번만 눌러 달라고 하면 우리 집도 윗집 못지않게 시끄러우니 아랫집 생각해서 참자 고 하셨다. ‘이 날지 못하는 천사들은 언제쯤 커서 날개 가 돋아날까?’ 빨리 날개가 돋아날 수 있으면 좋겠다. 엘리베이터에서 한 번씩 마주칠 때 윗집 아줌마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만 아이 들은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다. “뛰지 말자~!” 라는 아이들 엄마 말씀에도 청개구리처럼 오히려 더 뛰어야겠다고 결심 을 하지 뭐람. ‘천사의 탈을 쓴 이 꼬마 악동들 같으니라 고. 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파닥거리지 않겠

지?’

장난감 가게에서 파는 천사 날개라도 사서 걸어주고 싶다. 윗집에서는 우리에게 수시로 맛있는 음식 을 갖다 주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시하고, 엄마도 아랫집에 계절마다 블루베리, 찐 옥수 수, 군고구마 등을 갖다 드린다. 가끔 나의 유치원적 친구들이 늦게까지 놀 다 가면 일찍 잠을 자는 나는 아랫집 도깨비가 “조용히 해라~ 뚝딱!”하고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를 때도 있지만, 서로 얼굴을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드리고 친구들과의 날갯짓을 사 과드리면 서로의 관계가 훨씬 부드러워진다.

지금도 윗집 천사들은 날지 못하는 날갯짓 으로 파닥거린다. 저 천사들이 오늘 하루만큼 또 날개가 자랄 수 있기를. 오늘도 나는 잠자리 에서 기도해 본다. <이 글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주최한 국내 유네스 코학교 활동 60주년 기념 ‘평화 열전 쓰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본원 연호 여성이사 손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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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재(李完宰) 한양대 명예교수 문학박사 대하 사극(史劇) 「太宗 이방원」이 KBS1 TV에 의해 영상 제작되어 지난해 12월 11일 부터 전부 32회에 걸쳐 방영되었다. 한국 역사상 제왕 중 ‘가장 주목받을만한 리더십의 소유자’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물음 에서 조선의 제3대 국왕 ‘태종’이 선정되어 제작된 사극이라고 한다. ‘권력의 화신’이 아 니라 ‘탁월한 리더’ 태종 이방원에 대하여 “리 더가 갖춰야 할 모든 자질과 권력자가 짊어져 야 할 모든 숙명을 보여주려는” 기획과 의도하 에 제작된 작품으로 알고 있다. 대선에 즈음한 정치의 계절에 시의 적절하 게 방영되는 작품일 것이라는 호기심과 기대 감 속에 급부상한 ‘태종 리더십’의 실체는 과 연 무엇이었으며, 또 어떻게 이해되었는가에 주목하며 시청하였다. 이에 필자는 대강 다음 의 네 가지 문제점 검토를 통해 시청한 소감을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 역사서술이나 영상을 통한 역사드라 마는 그 전개에 있어 공통되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사실(史實 :Fact)에 입각해야 한다 는 것이다. 역사 서술을 흔히 “사료(史料)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극 드라마 역시 역사적 문헌 기록에 근거한 영상 물을 통해 ‘역사를 복원’ 내지 재구성하는 작 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적 사실의 근거로 삼을만한 문헌 기록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부득이 상상력 을 동원해 사실을 복원하는 부분에서 사실의 퍼즐로는 맞춰지기 힘든 부분이 다수 눈에 띄 었다.

둘째, 역사적 문헌 기록에 근거하여 제작된 사극이라고 해도 당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과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이 부분은 부족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방석 왕자가 세자로 책봉된 것은 태조 2년 이다.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 설치를 계기 로 추진된 병권중앙집중정책을 시행하는 과정 이었다. 태조의 측근 정도전이 ‘왕권과 신권 (臣權)의 균형적 조화’를 구현할 수 있는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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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太宗 이방원」을 보고

▲태종의 어필

중심의 정책 수행을 위해서였다. 과대하게 강 화된 왕권의 등장을 사전 저지하려는 의도에서 방석 세자로 정하게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 었다.

14년 간이나 세자위에 있던 세자 양녕을 폐하고 충녕으로 교체한 것은 10여 년에 걸친 부왕 태종의 외로운 고뇌였다. 의정부 육조 ‧ 삼공신 ‧ 삼군도총제부 ‧ 문무대소 각사(各 司)의 신료, 그리고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별 도의 상소까지 합쳐진 끝에 최종적으로 결정 한 것이다. ‘충녕에의 세자 전위는 순전히 태 종의 독단적 의사로써 결정되었을 뿐 아니라 충녕 세자가 지성으로 사양함에도 불구하고 부왕의 거의 강압적 처사로’ 이루어진 것이었 다. 셋째, ‘태종 이방원’의 궁극적 목표는 ‘화가 위국’(化家爲國 :집을 일으켜 나라를 이룸) 의 구현이었고, 책임지는 리더로서 철저하게 사(私)보다 대공(大公)을 우선시하는 것이었 다. 고려라는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 는 새 질서를 만들어가던 여말선초 시기에

누구보다 새나라 건설에 적극적이었던 ‘리더 이방원’이 추구한 정치적 목표는 단연 ‘화가위 국’의 실현이었다. 세종이 즉위하던 그 해 9월 에 예조에서 올린 ‘상왕과 대비께 존호 올리기 를 청하는 상소문’에 태종이 ‘화가위국’을 어 떻게 구현하였는가가 잘 요약되어 있다. 태종대왕은 조선국 27 국왕 중 유일하게 대과(大科)에 급제하고, 중요한 국난때마다 탁월한 정보력과 판단력으로 ‘선발제지’(先 發制之 : 先手를 쳐서 사태를 제압함)하여 난 관을 극복했다. 이러한 이방원의 ‘화가위국’ 구현이 어떤 이유로 권력만을 탐하는 장면으 로 비추어지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사극 에서 국왕의 치세 이전 단계, 곧 방원 왕자가 실권을 완전 장악하기까지 몇 번의 고비를 넘긴 중요한 초창기만을 다루었기 때문 아닐 까 생각된다. 넷째, 일반 영화나 영상물과 달리 사극이 보다 관심과 흥미를 끄는 것은 그 내용이 역사 적 사실 곧 실화이기 때문인데, 당대 역사 전개의 사실을 밝혀줄 기록이 엉성한 경우 가설로서 메꾸는 수도 있다. 재구성의 시간이 워낙 부족한 경우 역사 해석에 대한 왜곡과 과장이 따르게 마련이므로 『太宗 이방원』 또한 작품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이 부족하게 주어졌기 때문에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으로 메꾸어져 구성 전개된 듯한 아쉬움도 있다. 특정한 인물이 대상일 경우 그에 대한 평가 문제가 가장 어려운 일임은 주지하는 바이다. ‘太宗 이방원’의 작품에서는, ‘家를 넘어 國’ [化家爲國]이 ‘리더십 태종’ 이미지화의 기본 이념이었으므로 본 작품 전체에 스며있어야 했는데, 이 부분이 다소 소홀히 다뤄진 감이 있다. <태종/효령대군 19대 ‧始4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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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 ‘향가’의 아름다움

이병혁(李丙赫) 본원 문화부차장 문학은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 한 예술로 국문학은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이 담겨진 호수이다. 우리 시가(詩歌)의 흐름은 대체로 고대시 가, 향가, 고려가요, 시조가사, 판소리, 창가가 사, 신체시, 현대시로 강처럼 흐르고 있다. 특히 향가는 우리 역사와 문화, 민족 화합의 노래가 되어 삼국통일의 계기가 되었다. 향가 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14수, 혁련정의 균여전에 14수 도합 24수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 왕경(王京) 서라벌에서 화랑들이 수련 과정의 하나로 향가를 지으면서부터 어린이 들에게도 구전되었다.

백제 30대 무왕이 청소년 시절. 신라 진평왕 의 딸 선화공주가 제일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었다.

어머니와 둘이 살던 서동왕자는 마를 캐어 생계를 잇는 소년 가장이었다. 지혜로운 마음을 먹고 향가 ‘서동요’ 4구체 동시를 지어 서라벌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면서 부르게 했다.

서동요

善花公主니믄 善化公主主隠 남 그즈지 얼어 他密只嫁良置古 맛둥바알 薯童房乙 밤에 물 안고가다 夜矣卵乙抱遣去如 Princess Sonhwa Hoping a secrt marrige Went away at night With Mattung in her armso

민요 4구체 향가로 정착한 향가 중 유일한 동요이다. 서동설화가 노래의 배경되고 민족 동질성 회복을 뜻하는 대표적 노래이다.

1구에 선화공주님과 3구에 맛둥바알 주인 공이 있고, 2구는 남몰래 사귀어 4구엔 밤에 몰래 안고가네로 풀이된다.

설화 내용은 공주가 서동과 바람이 나자 관료들과 임금은 소문을 듣고 선화공주를 궁 에서 내보낸다. 청년 서동은 매일 밤 기다리다 공주를 수행 하며 잘 모셨다. 선화는 사랑의 선물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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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주신 금패물을 서동에게 선물했는데, 서동

은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유를 들으니, 자 기 고향에서 마를 캐다보면 이런 금덩어리가 수도 없이 나온다고 했다. 신라에서 금을 귀하 게 여긴다는 사실을 안 서동은 많은 금은보화 를 지명법사 이름으로 진평왕에게 보냈다. 그러자 진평왕은 서동을 보통사람이 아닌 용 의 아들로 생각하고 선화공주와 합근례를 쾌 히 승낙했다. 세월이 흐른 후 서동은 백제 30대 왕에 등극 하니, 그가 무왕이다. 신라 진평왕과 백제 무 왕시대에는 백년동안 태평성대를 누리고 나 라와 나라 사이 경사에는 남녀노소 향가를 부르며 만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 향가에 근거한 국보 역사 문화재로 익산 미륵산엔 석탑이 있고 미륵사와 왕릉사를 건 립하여 전해오고 있다. <태종/양녕대군 18대 ‧始42세>

2022 조선왕릉 문화제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의 가치와 품격을 널리

위해 2020년부터 시작된 제3회 조선왕릉문화제는

보다, 조선 왕릉’ 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개최됩니다

: 2022. 9. 23.(금) 20:00 / 태강릉

: 2022. 9. 24.(토) ~ 10. 16.(일)

바퀴를달다:10. 23.(토) ~ 10. 24.(일)/전주경기전

본행사)

https://www.jrt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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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알리기
‘새로
1. 행사기간 ○ 개막식
○ 본행사
○ 왕릉,
2. 행사장소 : 조선왕릉 9기(개막식 및
3. 행사 참여 및 신청 안내 ○조선왕릉문화제 홈페이지 :
4. 행사문의 : 한국문화재재단 02-3210-4806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11호)

제주가족 오름동호회 창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제주특별자치도지원 (지원장 철헌, 계성군파 도종친회장)은 코로 나19 방역지침을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다. 특히 종친가족들의 참여 분위기 조성과 화합 의 장을 열기 위한 종사(宗事) 현안사업들을 하나하나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제주도지원에서는 지난 5월 7일, 노꼬메오

이철헌(李哲憲) 제주도지원장 계성군파 제주도종친회장 제1회차 탐방활동(22.5.7.노꼬메오름)

름에서 전주이씨 도내 9파 종친회 회장단과 임원 24명이 참여한 가운데 ‘조선왕조 제주가 족 오름동호회’를 창설하여 발대식과 첫 탐방 활동을 가졌다. 이어서 7월 2일 붉은오름 자연 휴양림에서 9파 종친회 38명의 종친가족들이 함께 참여하에 역동적인 탐방 활동을 벌였다. 조선왕조 제주가족 오름탐방은 매월 첫째 주 토요일 8시, 종친가족들이 제주상공회의소 주차장에 집 결하여 탐방지로 가족별 또는 종친별로 삼삼오오 각각 출발 한다. 이번 제주도지원 탐방활동 운영은 이영배 등반대장(효 령대군파, 前 제주도종친의 날 축제위원장)과 도내 9파 종친회장단을 비롯한 각파 임 원 이사와 여성회장, 청년회 장 등 종친가족 38명이 참여 하에 구슬땀을 적시면서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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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차 탐방활동(22.7.2.붉은오름)

앞에펼쳐지는 푸르른 대자연의 풍광을 만끽 하며, 정겨운 탐방에 대성황을 이뤘다.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정상 탐방 및 자연휴 양림 둘레길 걷기(약 4.7km, 해발 657m)를 했다. 각파 종친회장단 및 임원 소개, 전주이 씨 오름동호인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서 덕담을 나누며, 모두가 함께하는 정겨운 순간이었다.

8월 탐방활동지로 ‘교래리 자연휴양림’을 오름동호회 36명이 참여, 9월 17일에는 사려

니 숲길에 31명이 참여하여 탐방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한편, 제주도지원은 지난 1월 전주이씨 종 보지 ‘제주이화 제4호’를 펴내어 제주도 전역 의 종친가족들에게 종사에 관한 정보 제공과 종친간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전국 1천여 전주이씨 종친단체에 제주 종보지를 보냄으로써, 조선왕조 제주가족의 존재감을 전국에 드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앞으로도 제주도지원은 코로나 정국을 면 밀히 살피면서 제주 종친가족들에게 자 긍심을 고취시키고 ‘화합의 장’을 열어 나갈 계획이다. 올해 11월 5일 종묘추향 대제 참관을 시작으로 7일까지 2박 3일 간 “조선왕릉 및 조선왕조 태동지”를 답 사 참배할 계획을 기획 홍보하는 등 종사 에 종친가족 참여

제3회차 탐방활동(22.8.6.교래리 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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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조성해 나간 다. 종친 간 탄탄한 결속을 다져 나감은 물론종친가족들에게 숭조돈종 사상을 더 욱 크게 키워나가게 될 것으로 확신하는 바이다. <성종/계성군17대 ‧始45세>

남이 장군 아내와 귀신

이승창(李承昌) 본원 상임고문·수필가 남이(南怡 ·1441~1468)는 의령(宜寧)이 관향(貫鄕)으로 의산군(宜山君) 휘(暉)의 아 들이고 태종대왕의 외손이다. 사람됨이 걸출 하고 담력이 출중했다. 어릴 때 거리에서 놀다 가 소해(小奚 :여종)가 작은 상자를 싼 보따 리를 지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보따리 위에 분면여귀(粉面女鬼 :흰 얼굴의 여자 귀신) 가 붙어 앉아있는 것을 보았는데, 남이에게는 그 귀신이 보이지만 남들은 보지를 못하였다. 남이가 마음으로 괴이하게 여겨 그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니 한 재상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 집에서 호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이가 그 까닭을 물으니 주인집의 작은 아가 씨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었다. 남이가 “내가 들어가 보면 아가씨를 살릴 수 있다”고 하자 그 집에서 믿지 않더니 얼마 후 허락을 해주었다. 남이가 그 집 대문에 들어 가 보니 분면 여귀가 낭자(娘子)의 가슴을 누르고 있다가 남이를 보고는 즉시 달아나 피했다. 낭자가 소생하여 일어났다. 남이가

밖으로 나오자 낭자는 다시 죽었다. 남이가 다시 들어가자 낭자가 다시 살아났다. 남이가 묻기를 “소해(小奚)가 가지고 온 상자에 있는 물건이 무었이오”하니 “홍시(紅 柿)인데 낭자가 먼저 먹고 기가 막혀 쓰러졌 다”하였다. 남이가 자기가 보았던 것을 자세 히 말하고 사기(邪氣)의 빌미[祟]를 다스리는 약으로 구원하여 살아나게 하였는데 이는 좌 정승 권람(權擥)의 넷째 딸이었다. 권람이 그 일을 기이하게 여겨 정혼을 하려 고 복자(卜者)에게 점을 치게 했다. 복자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반드시 죄로 죽습니다.” 하였다. 그 딸의 운명을 점 보게 하니 복자가 “이 사람의 운명은 극히 짧고 또 아들이 없으 니 마땅히 그 복(福)은 누리고 그 화(禍)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사위로 삼아도 되겠습니 다.”하였다. 권람이 그의 말에 따라 혼인을 하였다, 남이가 나이 17세에 무과(武科)에 장원을 하니 세조에게 은총을 받았다. 남이는 날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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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이남보다 뛰어났다. 북방으로는 이시애 (李施愛)의 난을 토평(討平)하였고 서쪽으로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는데 있어 언제나 남보다 먼저 적성(敵城)에 올라 역전(力戰)하 는 전공(戰功)을 세웠다. 그 공이 책훈(策勳 :공훈이 있는 사람의 이름을 책(冊)에 기록 하는 일) 1등에 기록되었다. <건주위(建州 衛)>를 물리치고 돌아올 때에 지은 시다.

화성 남이 장군 묘

남이가 병조판서에 임명되니 그때 나이가 26세였다.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즉위하니 때마침 혜성(彗星)이 나타났다. 남이가 금중 (禁中 :宮中)에 숙직(宿直)을 하면서 사람들 과 논의하기를 “혜성은 바로 옛것을 제거하고 새것을 펴는 형상이다.” 했는데 유자광(柳子 光)이 몰래 그 말을 들었다. 유자광이 그 말을 부연(敷衍)하고 날조하여 남이가 모반을 하 고 공주(公主)와 증(烝 :사통)을 했다고 고변 (告變)했다. 그로 인해 옥사가 이뤄져서 주륙 (誅戮)을 당하였는데 그때 나이 28세였다. 권람(權擥)의 딸도 남이가 죽기 수년 전에 먼저 죽었다. 복자(卜者)의 말이 정말로 징험 이 있었던 것이다. <태종/양녕대군 16대· 始4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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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 돌 은 칼을 갈아 없어지고 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물 은 말이 마셔 마른다 南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남아 이십 세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

조선의 삼인결의와 단경왕후 신씨

이상주(李相周) 본원 문화위원 세종대왕신문 발행인 “강천(剛泉)의 맑은 물은 동쪽으로 우렁차 게 흘러가고, 온릉(溫陵)의 울창한 나무는 북 쪽을 바라보며 푸르고 푸르네. 비석은 닳아 없어질 수 있겠으나 선생들의 이름은 끝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조선의 도원결의 장소인 순창 삼인대(三印 臺)에 서 있는 비의 문구 일부다. 삼국지연의 에 나오는 도원결의는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 아밭에서 의형제를 맺고, 난세를 바로잡기 위해 거병한 행위다. 관용적으로 도원결의는 대의를 위해 생사를 같이하는 의로운 다짐을 뜻한다. 중국의 도원결의 장소는 장비의 복숭 아밭이 있는 유주(幽州) 탁군(涿郡)의 탁현이 다. 조선판 도원결의인 삼인결의(三印結義)는 전라북도 순창의 강천산 계곡에서 이뤄졌다. 조선 중종 때인 1515년 8월, 세 명의 관리가 각자 신분증인 관인을 계곡의 소나무 가지에 걸고, 의로운 행위에 목숨을 걸기로 결의했다. 이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1744년(영조 20)

4월에 삼인결의가 행해진 삼인대(三印臺)에 비석이 세워졌다. 비문은 도암(陶庵) 이재(李 縡)가 짓고, 글씨는 정암(貞庵) 민우수(閔遇 洙)가 쓰고, 전각(篆刻)은 지수재(知守齋) 유 척기(兪拓基)가 했다. 조선의 도원결의인 삼인결의는 7일의 왕비 인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慎氏(1487~1557) 로 연결된다. 단경왕후 신씨는 인생의 희로애 락에서 즐거움이 빠진 ‘희로애’로 삶을 마감한 여인이다. 희(喜)는 로열패밀리 출신성분이다. 본관 이 거창(居昌)인 왕후는 좌의정 신수근의 딸 이다. 할아버지 신승선은 세종의 4남 임영대 군의 사위다. 고모는 연산군의 왕비다. 작은어 머니는 예종의 왕비 안순왕후의 여동생이다. 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는 그녀는 13세에 한 살 아래인 진성대군과 결혼해 완벽한 왕족이 된다. 노(怒)는 중종 반정이다. 1506년 9월 2일, 박원종 성희안 등 반정 세력이 그녀의 고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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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 이면 왕실사] <3>

인 연산군을 폐위시켰다. 고모도 폐비시켰다. 아버지 신수근도 살해됐다. 친정이 풍비박산 되는 가운데 남편 진성대군이 중종으로 등극 했다. 그녀는 왕비가 되었다. 남편도, 아내도 원하지 않은 옥좌였다. 반정 세력은 칼날을 그녀에게도 겨눴다. 자신들이 옹립한 중종을 겁박해 강제 이혼시켰다. 그날이 9월 9일, 왕비가 된 지 불과 7일 만이었다. 애(哀)는 사무친 그리움이다. 남편 중종도, 폐비가 된 신씨도 서로를 잊지 못했다. 왕은 지켜주지 못한 왕비를 마음속 거울을 통해 보곤 했다. 이는 궁녀들의 입을 통해 밖으로 새나갔다. 중종이 승하할 무렵에는 궐 밖으로 쫓겨난 왕비를 몰래 궁으로 부른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폐비는 왕이 볼 수 있는 인왕산에 치마 를 걸어 애타는 마음을 전한다. 그녀는 끝내 남편 중종을 만나지 못하고 71세로 숨진다. 반정 세력은 왕비를 내친 뒤 중종에게 다시 혼인할 것을 강권했다. 왕은 단경왕후 신씨를 폐출시킨 다음날 장경왕후 윤씨와 국혼을 한 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장경왕후가 10

▲2022년 8월 26일 순창 강천사 경내 삼인대에서 열린 삼인문화 기념행사

년 후인 1515년 왕자(인종) 출산 뒤 6일 만에 산후병으로 승하한 것이다. 궁궐을 해바라기 하던 폐비 신씨에게 복위 희망 길이 열린 것이 다. 더욱이 반정의 주역들이 하나둘씩 퇴장하 던 무렵이다. 은연 중에 애처로운 폐비 신씨를 동정하는 사람이 늘었다. 이때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 감 유옥이 순창 강천산 계곡에서 비밀 회동했 다. 세 명의 관리는 억울하게 쫓겨난 신씨의 복위에 앞장서기로 했다. 이들은 각자의 관인 (官印)을 나뭇가지에 걸어 맹세했다. 의로움 을 위해 관직과 목숨을 내놓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그곳이 삼인대(三印臺)다. 이들은 결 연한 의지로 봉사(封事)를 올렸다. 봉사는 왕 만이 볼 수 있도록 밀봉(密封)하여 올린 상소 (上疏)다. 세 사람은 상소에서 유학 경전에 나오는 부부의 도리 등을 인용하며 폐비의 부당함과 반정 세력의 의도 비판, 폐비 주동자 처벌, 폐비의 복위를 주장했다. “까닭이 없음에도 신씨를 폐위하신 것은 무슨 명분입니까.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등 이 정국 당시 신수근을 제거했습니다. 이들은 신수근의 딸이 왕비로 있으면 뒷날 후환이 있을까 염려했습니다. 이에 자신들의 보전을 위해 왕비를 폐위시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는 진실로 까닭이 없고 명분도 없는 것입니 다.”<중종 10년(1515) 8월 8일>. 상소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중종의 고민은 깊어졌고, 일부 대신은 상소 내용에 동조했다. 그러나 반정 세력의 뿌리는 강했다. 또 중종은 대통을 생각했다. 폐비 신씨가 왕자를 낳을 경우, 장경왕후 소생 원자(인종)와의 왕위계 승에 문제가 생길 게 뻔했다. 이로 인해 국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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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분될 것을 우려했다. 결국 중종은 폐비 신씨 의 아픔에 눈을 감았다. 상소를 올린 김정은 보은, 박상은 남평으로 각각 유배됐다. 당시 3인 중 외아들인 유옥은 부모 공양을 위해 동료들이 상소문에서는 이 름을 뺐다. 폐비 신씨는 한을 품은 망부석 생활을 해야 했다. 중종 승하 21년 뒤에 사가에서 숨진 폐비 신씨는 영조의 명으로 1739년에 단경왕 후로 추상 복위됐다. 양주에 예장된 왕비의 안식처는 온릉(溫陵)이다. 이때 김정과 박상 에게 시호가 내려지고, 자손도 유공자의 후손 혜택을 받게 됐다. 1744년에는 순창 강천산 계곡에 세 관리의 사적을 기리는 삼인대 비가 건립됐다. 보은에 서 귀양살이를 한 김정은 기묘사화 때 제주로 유배돼 사사됐다. 불과 36년의 짧은 삶이었 다. 상소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동료들의

후손을 책임지려 했던 유옥은 35세에 병사했 다. 삼인대 결의를 한 세 관리는 훗날 순창의 화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순창군은 1963, 1977, 1987, 1991년에 삼 인대를 보수했다. 또 1978년에는 삼인대 비 (三印臺 碑)의 내용을 한글로 풀이한 새로운 비도 세웠다. 1994년 향토 인사들과 세 관리 의 후손들이 삼인문화선양회를 구성했고, 1995년부터 이곳에서 매년 음력 7월 29일에 삼인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2022년부터 는 순창문화원에서 주관해 세 관리의 충(忠) 효(孝) 예(禮)의 절의정신을 더욱 체계적으로 널리 알리고 있다. 조선판 도원결의인 삼인결의에 대해 영조 는 “하늘은 높고 높아 굽히지도 펴지도 않는 다”고 했고, 정조는 “삼인대는 만고에 닳지 않는다”며 그 정신을 높이 샀다. <세종/밀성군 19대 ‧始44세>

□ 행 사 명: 조선왕릉 제향체험 국가의 예를 만나다

행사일시: 10. 8.(토) ~ 10. 30.(일) 매주 토·일요일 총 8회

제물 진설 체험 : 오전 11시 (회당 20명)

제향 제관 체험 : 오후 1시 (회당 12명)

□ 행사내용

제물 진설 체험 : 제향 제물(제수)을 제기에 담아 제사상에 진설하는 체험

제향 제관 체험 : 제관복을 입고 실제 제관이 되어 제향을 봉행하는 체험

□ 행사접수 : 9. 19.(월) 오전 11시부터 마감시까지 (사전 신청, 선착순 마감)

신청방법 : 누리집(궁능유적본부 및 조선왕릉) 및 전화 접수

1인당 최대 4명까지 신청 가능(가족단위 우대)

제물 진설 체험과 제관 체험 중복 신청 가능

참가비 : 무료(단, 입장료 및 주차료는 개별 부담)

□ 문의처

ㅇ 신청 접수 : 기억과상상 (☎02-3454-0892)

ㅇ 관련 문의 :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02-765-2124~5)

58 李花 2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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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生死)가 고(苦)인 것을

이병준(李炳俊)

본원 문화부 수석차장

만 2년간 어머니를 조석으로 봉양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생존해 계셔서 봉양할 기회를 주신 것에 늘 감사하면서도 걱정과 우려가 항상 동반함을 느낀다. 고질적인 천식으로 숨넘어갈 듯 토악질을 할 적엔 옆에서 지켜보 는 마음도 안쓰럽고 괴롭기 그지없다. 어머니의 목숨을 건 아픔 속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정작 아픔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궁 속에서 우주 밖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무지각 내지 무의식 상태에서 태어나 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태어날 적 고통을 느꼈다고 얘기하는 사람, 그런 기억을 가진 사람이 없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없다.  사람이 이승을 등지는 절차는 금방 숨 거둘 듯한 상황을 여러 번 거치고 간다는 사실을 어머니를 모시면서 실증적 체험을 한다. 출생 (生) 자체가 노(老) ‧ 병(病) ‧ 사(死)를 필수적 으로 동반하니 출생이 어쩌면 노 ‧ 병 ‧ 사의 숙주나 다름없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생을 포함해서 인간사의 피해갈 수 없는 사고(四 苦)로 보는 것이다. 출생이 사고의 뿌리, 그 근원인 셈이다. 생

(生)이 없으면 노 병 사는 원초적으로 일어 날 수 없는 게 인간의 삶이다.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 시켜놓고 좀 쉴 수는 있으나 걱정되는 건 집에서 모실 때보다 훨씬 크다. 코에 튜브를 꽂은 모습이 두렵기도 하고 지극히 측은하기도 하다. 사고(四苦)중 병 (病)사(死)의 과정을 동시에 견디시는 고통이 오죽하시겠는가. 어머니의 고통 속에서 자식 들은 수월하게 태어나지만 이승을 떠나는 모 습은 하나같이 고통 속에 떠나야하니 백수를 넘겨 이백 수를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고요, 죽지 도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로움일세.” 삼국유사에 나오는 일화로 원효 스님이 어느 날 거리에서 늙고 병들어 굶어죽은 임자 없는 송장을 스스로 메고 어느 공동묘지에 가서 흙구 덩이를 파면서 혼자 중얼거린 말이다. 이를 지켜보던 사복성자(蛇福聖者)가 “여보 게 무애도인(無碍道人), 무슨 말이 그리도 많 은가? 생사고(生死苦)라 하면 그만이 아닌가” 라고 하였다. 사복성자가 실존인물이라면 아라 한과(阿羅漢果)의 경지에 오른 원효 스님도 뒤통수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격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었을 것으로 연상되는 장면이다.  나도 재빠르게 ‘생사고라고 생각하면 그만 이 아닌가’ 라고 큰 깨달음을 주신 사복성자의 경지에 이르러 봐야 알겠다. 비로소 어머니 영결에 대한 근심 걱정을 덜어버릴 수 있겠는 데, 언제 그 경지에 이르러 평상심을 회복할 수가 있겠는가. 아득하고 막연한 생각에 아직 은 그저 한숨만 내쉬는 꼴이다. 자신이 참으로 너무나 무기력하고 나약해 처량스럽게 느껴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다. <태종/온녕군 17대 ‧始4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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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배움을 향한 갈망과 열정 사이

이문학(李文學) 前 봉화군 공무원 선대에서 정감록 비결파(秘訣派)를 쫓아 태 백산의 끝자락 한 여맥 첩첩산중에 다래나무와 가시덩굴을 찍어내고 이 곳에 지게 목발을 벗 어 놓고 일곱 식솔들의 한파와 혹서를 쫓고 목구멍에 거미줄을 피해 살아 왔던 터였다. 봉화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 하고 허기에 이골이 나게 주리며 자라고 살아온 곳이다. 뭇 여성들이 꺼린다는 빈농의 맏이로 세상에 첫울음을 내지른 곳은 마흔 일곱 해 가까이 모진 풍상과 세파에 부대끼며 대를 이어 온 곳이다. 남한 일대에서 연중 여름철은 수은주 가 가장 높이 치솟는 날이 많고, 겨울철에는 설화(雪花)피는 날이 많아 ‘한국의 시베리아’ 라고 이름난 고을이다. 그 한파와 혹서로부터 지켜 온 곳은 통나무 위에 아래 위쪽을 도끼로 찍어 내 나무와 나무 사이가 엇물리는 집. 네 귀가 잘 들어 끼도록 아귀를 맞춰 ‘우물 정(井)자’모양으로 쌓아 올려 돼지 울간과 같이 지은 귀틀집(일명 투방 집) 두 칸의 방과 솔가지를 얽어매고 세워,

칼바람과 눈보라가 들이치는 부엌 한 칸이 재산 목록의 전부였다. 거기서 혹서와 맹추위에서 벗어나야만 했 다. 뒷간이라야 사방에 솔가지를 잘라 다 얽어 매고 쇠죽통 같은 통을 묻고, 그 위에 두 개의 나무를 도끼로 찍어 날린 송판을 걸쳐놓고 볼일을 볼 수 있게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세끼 입 풀칠도 어 렵고 종자도 부족한 터에 당시 귀한 감자로 떡까지 빚어 어머니께서 주셨다. 한편으론 우선은 잘 먹게 되었으니 잘됐다고 생각했으 니 철딱서니가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것 같다. 가난에 찌든 날들의 귀틀집 안에는 궁핍이 덕지덕지 묻어났고 가슴에는 한숨과 맺힌 응 어리가 수북수북 쌓이고 있었다. 그러한 실정 이다 보니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고 받아들이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근근이 중·고 등학교를 어렵사리 졸업할 수 있었다. 당시 대학 입학은 꿈도 꿀 형편이 못되었고 시골에 서 당시 백 여 만원씩 하는 한우 최소 5~6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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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족히 있어야 했다. 당시 면단위에서 면장의 자제 1명이 겨우 4년제 대학에 들어갈 정도였 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소는커녕 병아리 한 마리도 없었다. 일찌감치 대학의 꿈은 접고 당시 5급 을류 지방공무원 공개채용시험 준비 도서를 학교도서관에서 빌려 눈이 빠져라 밤 낮없이 공부를 해 운 좋게 합격, 지난 41년 전부터 직장생활을 하다 2019년 9월 평생을 몸담아온 직장에서 퇴직했다. 서울의 최고 명문대를 합격하거나 광역시의 국립대학교를 합격하면 부모들은 춤을 추며 성형 수술을 해 준다, 명품 백과 신발, 옷가지를 사 준다, 뭐를 해 준다 난리법석을 떨지만 집의 딸아이도 기백만 원의 입학금까지 납부해줘도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퇴서를 써내 고 왔다.

또, 한 녀석은 대구에 학자금을 다 보내줬건 만 한 학기동안 뭘했는지 하루도 학교를 나가 지 않아 ‘올 F’의 성적표가 집으로 날아왔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울화가 치밀고 부모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야속하기 만 했다. 부모는 학비를 못 구해 대학 문턱에 들어 가 보는 게 소원이었건만 힘들게 벌어 바친 학비를 내팽개치고 대리 만족조차도 시 켜주지 않았다. 직장에서 밀려난 후, 행정사·사회복지사

자살예방지도사·장애인 활동보조인·위험 물 및 소방안전관리자 등 많은 자격증을 취득 했지만 지역사회에서 인생 2막 출발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남들이 다하는 농사를 지을 땅도 마땅치 않아 집에 먹을 정도만 하고, 지역문화재지킴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별로 하릴없이 소일을 하며 지내다가 경북도민 행 복대학에 지원하여 지난 해 12월 21일 명예학 사학위를 받았다.

그간 보고 듣고 느낀 것 중에서 뇌리에 남는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 을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다. 썬 샤인 잡지에 세계를 움직였던 위대한 인물들은 65세 이상 이 30% 이상을 넘고, 70세 이상이 20%, 80세 이상이 60%를 넘는다는 내용이다. 우린 아직 멀었다. 인생은 60부터 죽을 때가지 배워야 산다는 내용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감동을 받았다.

인생은 정말 짧다. 일장춘몽이라는 말처럼 한 아이가 한숨 자고 나니 머리가 성성하게 변해갔다. 노년의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죽음이란 늙은이나 젊은이나 다가오게 마련 이란다. 그러니 만큼 “오늘 하루를 마지막 사는 것처럼 살면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가는 시간이 귀중하지만 이를 멈춰 세울 수는 없다.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것을 한 가지씩 배우면 우리 뇌에서 도파민(행복 호르 몬)이 나온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만족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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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심리상담사·장례지도사·

시간이 늦춰진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신체 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해져도 지혜를 붙잡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노년에는 과거는 붙잡고 살지 말아 야 한다. 과거의 실수와 실패를 모두 초석으로 삼아서 내 앞길과 미래에 대해 어떤 지혜를 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맥아더 장군은 “나이 먹어서는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아서 늙어 가는 것”이라 했다.

내 마음의 주름은 지지말자.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는 고정 관념을 버리자. 살아

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당당하게 매 순간 최선의 마음과 최고의 에너지를 발휘해 살아가자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삶의 시작이다. 내가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하며, 우리의 세포를 움직여야 건강해진다. 모든 세포가 살아 있는 한 움직여야 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나 스스로 이루고 싶은 꿈을 갖고 성장해 간다는 것이다. <환조/의안대군 21대· 始43세>

특별원원(院員) 연회비 자동이체 안내 종약원 특별원원은 소정의 절차를 거쳐 본원에 등록한 개인, 파종회, 단체를 말하며 본원 총회 대의원은 특별원원을 가입한 자를 기본 요건으로 하고 있고, 1975년 1월부터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특별원원은 가입시 가입금을 납입하고 이듬해부터 연회비를 납부하고 있으며, 현재 연회비 는 무통장 송금 또는 지로용지를 이용하여 납부해 주고 계십니다. 이에 본원에서는 특별원원께서 금융기관을 방문하는 번거로움과 본원에서는 지로용지를 송부하여야 하는 부담을 해소하고자 자동결제 시스템(CMS)를 도입하였습니다. 2022년도 연회비 납부를 이미 하신 특별원원 께서는 2023년도부터 적용되며, CMS를 이용하지 않으실 특별원원께서는 종전과 같이 무통장 송금 또는 지로용지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월 5천원 등으로 다양화

문의 ☎(02) 765-2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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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음 ― 1. 연회비를 월 3천원,
하였습니다. 2. 매월 납입하지 않고 특정 날짜에 납부하실 분은 신청하신 금액을 1년 중 지정하신 날짜에 한 번에 납입하시거나 또는 분납하실 수 있습니다.(비정기 출금) 3. 특별원원 계좌/신용카드 자동출금 이용신청서를 작성하여 본원에 신청하시면 특별원원님의 은행계좌 또는 카드에서 본원 계좌로 자동이체 됩니다. 4. CMS 신청 후 취소를 원하실 경우 본원에 요청하시면 언제든지 취소가 가능합니다.

지족(知足)

(신책구천문:신통한 계책은 천문을 헤아리며)

(묘산궁지리:묘한 계략은 지리를 꿰뚫는구나.)

(전승공기고:싸움마다 이겨 공이 이미 높았으니)

(지족원운지:족한 줄 알아서 그만둠이 어떠하리.)

※ 을지문덕(생몰년 미상)은 고구려 26대 영양왕(재위 590∼618) 당시 맹장으로 평양 석다산(石多山) 출신이다. 612년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별동대 30만 5천명의 대규모 군단을 이끌고 고구려 수도 평양을 침공했다. 선봉장은 우중문(생몰년 미상)이었다. 별동대가 압록강 서쪽에 집결했을 때 을지문덕 장군은 거짓 투항으로 적진에 진입해 수군(隋軍) 동향을 샅샅이 염탐했다. 전투에 패주하는 척하며 평양성 부근 살수(薩水 ‧ 현 청천강)까지 유인했다. 이 시는 보급로가 끊겨 전의를 상실한 우중문에게 보낸 희롱조의 오언시다. 분기탱천한 우중문이 일거에 병력을 투입했다. 을지문덕 장군이 퇴각하는 수군의 후미를 쳐 2,700여 명만 살아남고 전멸했다. 우중문도 겨우 도망쳤다. 세계 전사에 찬연히 빛나는 살수대첩이다. 오언시 ‘지족’의 백미(白眉)는 도덕경(道德經) 44장의 인용이다. 지족불욕(知足不辱 ‧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지지불태(知止不殆 ‧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아) 가이장구(可以長久 ‧ 오래 갈 수 있다). 32장 내용도 함축돼 있다. 시제유명(始制有名 ‧ 처음 만들어 짐은 이름이 있다) 명역기유(名亦旣有 ‧ 이름이 있고나면) 부역장지지(夫亦將知止 ‧ 그칠 줄 알아야 한다) 지지소이불태(知止所以不殆 ‧ 그침을 알면 위태롭 지 않다). 양측 간 도덕경을 통달했다는 전제가 내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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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
㑖文 ‧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주다) 을지문덕(乙支文德)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한시(漢詩) 한 수

박사의

치과계의 최신 동향

진경희(陳京熙) 서울뉴욕치과 원장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혁명들과는 다르게 급진적이며 전반적이 어서 우리 모두 매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주요특징으로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은 정보를 자동으로 데이터화하고 분석한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체계를 구축하여 ‘초연결성’, ‘초지능화’, ‘융합화’에 기반하여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고 보다 지능화된 사회로 변화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4차 산업혁명의 높은 파고는 치과계에서도 대단히 많은 변화와 변혁으로 거듭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단 목적으로 촬영한 엑스레이 필름을 현상하여 판독하던 것이 디지털화하 면서 현상과정이 없어 즉시 판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엑스레이의 조사량도 대폭 감소되었고, 취득한 임상 데이터는 타 전문의와 임상토론에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치아신경 치료 시 엑스레이를 촬영하여 뿌리 끝 주변 상태를 확인해 가며 치료를 한다. 그런데 현상과정이 생략되니 여러 각도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확인해 가며 치료의 끊김 없이 어느 때나 필요하면 바로 촬영 판독하여 진단과 치료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 효과적인 치료를 하려면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하며, 정확한 진단을 하기위해서는 정밀한 검사가 필수적이다. 결국은 정밀하게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술에서도 시야 확보가 수술의 성패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술 부위를 직접 바로 보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이 활용되어 왔다. 치아 신경치료시 구강 현미경의 활용은 좋은 예가 된다. 치아 신경관은 미세한 조직이고 모양과 신경관의 수나 위치도 특이한 경우가 종종 있어 치수관을 찾는데 현미경이 큰 역할을 한다. 종합병원에서나 사용하던 CT 촬영도 일반의원에서 사용할 수 있게 보편화되어 임플란트 시술시에 필수장비로 이용되고 있다. 임플란트 식립 수술에 앞서 시술 부위의 악골의 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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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희

신경관과의 거리, 치조골 형태, 주변 해부학적 특징사항 등을 고려하여 임플란트 식립 위치와 임플란트 사이즈 등을 결정하여 시술한다. 때문에 안전도는 물론 수술 시간의 축소로 임플란트 성공률의 향상을 기하게 되었다. 더구나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CT 영상과 CAD/CAM이 융합되어 필요에 따라서는 임플란 트 시술 전에 장착할 보철물까지 제작하여 수술 후 즉시 보철물을 장착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의치나 금관 제작 시 치아 모형을 만들기 위해 인상 채득을 한다. 소위 “본 뜨는” 과정이다. 본을 뜬 인상재는 치과 기공소에서 석고 모델로 만들어져 이 모델상에서 금관 제작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인상 채득 과정이 구강 스캐너라는 디지털화된 인상 채득 장비가 개발되면서 인상재로 본뜨는 대신 스캐닝하는 촬영과정으로 진화되게 되었다. CAD/CAM이 초기에 치과계에 소개될 때에는 해당 치아 부위에 특수 파우더를 도포하여 스캐닝을 하였다. 구강 내에는 침과 김 서림 등으로 정확한 영상을 얻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와 기기의 꾸준한 발달과 레이저 등이 활용되며 파우더의 도포 없이 원하는 이미지를 바로 스캐닝하게 되었고, 숨겨져 있는 치아우식 부위도 조기 발견하게 되었다. 본을 뜨는 대신 구강 스캐너를 통하여 얻어진 자료는 치과 기공소로 전송되어 원하는 금관이나 의치를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제작하게 되었다. 4차 혁명이 초래하는 또 다른 변화는 인구분포의 변화이다. 의학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 수명의 증가를 가져와 100세 인구의 증가는 물론 노인 환자에 대한 치과의료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노인층에 대한 치과 치료도 독립한 전문 분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 하고 있는 이유이다.

필자 약력

△ 서울대 치과대학 졸업, 동 대학원 예방치의학 전공, 박사학위 취득

미 뉴욕 콜럼비아대 치과대학 치아신경치료 전문의 과정 졸업

미 코네티컷 브리지포대학 건강의학 대학장 역임

미 맨해튼 치과병원 개원 치아신경치료 전문의

현 서울뉴욕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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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제언

이남식(李南植) 서울 은평구분원 상임고문 데일 카네기는 저서 『인간관계론』에서 ‘인간관계는 친구를 만들고 적을 만들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과 표현 의 방법이 제각각이다. 지금 우리들의 하루는 두렵고 힘든 삶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사회는 그런 냉정함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긍정 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힘들 때가 있 으면 편안 할 때가 있고, 울고 싶은 날이 있으 면 웃는 날도 있고, 궁핍할 때가 있으면 넉넉할 때가 있어 살맛이 난다. 젊은 시절에는 자식을 키우느라 힘이 들었어도 자식들이 다 커서 각자 제 몫을 하는 지금에는 힘들었던 그때가 왠지 좋을 때 같다. 한창 일 할 때는 몇 날 푹 쉬었으면 좋다고 생각 했는데 부르는 이 없고 찾는 이 없는 날이 오면 그때가 제일 좋은 시절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 중에서 힘들 때와 궁핍할 때가 어려운 시절 같지만 그래도 참고

사노라면 그 때의 힘듦과 눈물이 오늘의 편안 함이요, 그 때의 열정과 아낌이 오늘의 넉넉함 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힘들고 어렵다고 다 혼자 가질 수 없는 것은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고 나를 사랑해주고, 나도 사랑하는 이들 이 있어 서로 소중한 시절을 가꾸며 함께 살아 가기 때문이다.

사람은 강하고 높아질수록 낮음을 배워야 한다. 강자가 된 사람은 쉽게 자신을 망각하게 된다. 강한 사람일수록 적을 많이 만들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강자는 강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인생은 일과의 관계가 중요하며 나이가 들수록 열정을 잃지 않고 사랑, 여유, 용서, 아량의 부드러운 마음과 숭조돈종 정신 으로 종사에 초지일관 매진하는 사람이다.

-미수년(米壽年)을 맞아<정종/정석군 16대· 始4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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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ROW AND THE SONG (화살과 노래)

I shot an arrow into the air, (내가 공중에 화살 하나를 쏘았는데)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화살은 땅에 떨어져 간 곳이 없었다)

For, so swiftly flew, the sight (너무 빨리 날아가, 시선으로)

Could not follow in its fight. (그 누가 뒤따를 수 있으랴)

I breathed a song into the air, (내가 공중을 향해 노래 한 곡 불러 보내자)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노래는 땅으로 떨어져 간 곳이 없었다)

For who has sight so keen and strong (그 누가 날카롭고 강한 시력이 있어)

That can follow the fight of song? (날아가는 그 노래를 따를 수 있으랴?)

Long, long afterward, in an oak (오랜, 오랜 훗날 한 참나무에서)

I found the arrow, still unbroke; (고스란히 꽂혀 있는 그 화살을 찾았고)

And the song, from beginning to end, (그 노래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Ifound again in the heart of a friend. (어느 친구의 가슴 속에 들어 있음을 발견했 노라.)

※ 롱펠로우(1807∼1882)는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 출신으로 미국의 대표적 낭만파 시인이자 번역가다. 미국 보든대학 졸업 후 모교에서 6년 간 근대어학을 강의했다. 1836년부터는 하버드大 어학교수로 재직하며 18년 동안 후학들을 양성했다. 2차에 걸친 유럽 여행에서 시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롱펠로우가 살았던 시기는 시작(詩作)이라는 것 자체가 전문 지식이 풍부한 상류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는 이 같은 시대상을 극복하고 평범한 시어로 감상적 면이 다분한 시를 썼다. 대표작으로는 ˂마을의 대장장이˃가 수록된 《민요와 그 밖의 시, 1841》 비련의 서정시집 《에반젤린, 1847》 인디언 영웅시 《하이어워사의 노래, 185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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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英詩) 한 수

아버지께 무공훈장을 드립니다

이재유(李在囿)

아! 아! 잊으랴! 어 찌 우리 이날을. 한국전쟁 72주년을 맞으며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이 뜨겁다. 우리 마을은 학동들 의 글 읽는 소리와 동 구밖 나무 그늘에서 선 비들의 시조 소리가 들 리는 평화로운 농촌 마 을이다. 전주이씨 화 의군파 대형공 충주지파 자손들이 70여 호 모여 씨족사회를 이루고 산다. 숭조돈종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전형적인 선비 마을로, 이웃 마을보다 학구열이 남다랄 여고생, 대학 생이 많은 마을이었다. 이 평화롭던 마을에도

6 ‧ 25 전쟁의 고통은 피할 수 없었다. 1950년 6월 28일 3일 만에 서울을 내어주 고 파죽지세로 중부와 호남을 휩쓸며 남하하 는 적을 막지 못했다. 우리 국군이 처음으로

승전한 곳이 충주의 가엽산 전투이다. 이 전투 는 충주 동락초등학교 김재옥 여교사의 기지 로 인민군의 남하를 막은 유일한 전투이다. (전쟁과 여교사) 영화에도 소개된 바 있으며, 승전 기념탑과 전시관도 있다. 이때 나의 아버지는 원주 전투에 보국대라 는 이름으로 참전하였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되새겨본다. 전쟁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포탄 이 떨어지는 험한 고지까지 날라야 했다. 적의 포탄은 군인에게만 날아오는 것이 아니다. 쉬익- 소리는 머리 위에 떨어지고, 삐우- 소 리는 멀리 가서 떨어진다. 군인뿐 아니라 보국 대도 많은 희생을 치렀다. 낮에는 국군이 고지 를 점령하고 밤에는 고지를 다시 내어주기를 며칠간 반복되었다. 백병전은 주로 밤에 일어 나는데 머리카락을 만져보고 머리가 하나도 없으면 적군이므로 찌르고 벤다. 나도 언제 베일지 몰라 심장이 쪼그라든다. 머리칼이 없으면 무조건 찌르고 베어야 하는 전투가 백병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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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망은 점점 가까워 백병전의 위기인데 우리 군의 수가 너무 적어 승산이 없음을 안 소대장은 “죽을 각오로 있는 총알을 모두 퍼부 어라”고 했다. 나도 소대장이 주는 총으로 사정없이 쏘았다. 그런데 총알이 떨어졌다. 수류탄 두 개도 모두 던졌다. 중공군이 십여 명 쓰러졌다. 중공군이 주춤하는 사이 우리는 포위망을 벗어났다. 이때 포격기가 중공군 기지에 포탄을 퍼부 었다. 우리가 있는 곳에도 예외 없이 포탄이 날아왔다. 살아남은 사람은 소대장과 네 명뿐이다. 서로 쳐다보니 몰골이 해골같다. 어느 날인지 총소리가 멈추고 전선이 조용해 졌다. 우리는 순간 또 포위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서 야 휴전임을 알았다. 어느 부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대장으로 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휴전이 되고 우리 부대 는 어디론가 이동을 했다. 아버지는 11월 말에서야 집에 오셨다. 보국 대에 참여하신 분들은 모두 휴전되고 바로 집에 오셨는데 아버지만 오시지 않아 어머니 손 잡고 산 넘고 등넘어 아버지의 행방을 물었 으나 아무도 모른단다. 어머니는 우리 몰로 눈물을 보여셨다. 혹시나 하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 동네 사람들도 우리 시선을 피해 돌아가 셨다고 수군수군 거렸다. 그런데 집에 오시니 이상한 생각을 한 우리 는 불효한 것 같아 죄송하다.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가 겪으신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저녁마 다 사랑방에 모였다. 아버지의 무용담은 몇 날 며칠 이어졌다. 그간 겪은 고초와 고생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중대장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을 벽에 걸어 두고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표창장은 빛바 랜 모조지에 붓으로 쓴 상장인데 충주댐 수몰 로 이사 중에 분실되어 죄스럽고 안타깝다. 목숨과 바꾼 상장인데 불효를 한 것 같아 마음 이 더욱 아프다. 사진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51년 1월 9일 아버님께서 원주 전투에 참여 하신 이후 가장이 없는 우리 집은 사정이 어려 웠다. 어린 5남매를 돌봐야 하는 어머니는 산에 가서 땔감을 준비하시고 소먹이 풀도 마련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니 안 하시던 지게 도 짊어져야 했다. 그때 아버지를 걱정하시던 동네 어른들의 마음이 지금까지 고맙게 느껴 진다. 장남인 내 나이 겨우 9살, 온 식구가 살아가기 막막할 따름이다. 꽁보리밥을 먹는 날이면 잔칫날이다. 늘 풀죽에 찬 없는 밥상이 일상,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외양간의 소먹이 풀도 먹어 보았다. 아버지는 늘 사람은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 하시고 없는 살림에 상급학교 진학을 도와주 셨다.

6 ‧ 25 참전용사, 월남 참전용사,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등은 국가에서 상응한 대우를 해 주지만 3년간 나라를 위해 헌신한 보국대는 아무 대우도 받지 못했다. 공로가 큰 군인은 훈장도 받는데 자식으로서 너무 억울한 것 같아 나라도 아버지께 훈장을 드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국가를 대신해서 아들 이 아버지께 1등급인 태극무공훈장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세종/화의군 16대 ‧始4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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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는 말조차

갈 것이고 내가 그러했듯 자신의 가 족에게 집중하고 책임지고 삶의 의 미를 찾아 갈 테니까. 이 세상 부모 는, 아버지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 면서 외로움의 갈옷을 걸치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白思 이진우

일렁거리는 푸르름이 금세라도 후두둑 떨어져 온 누리가 푸른빛으로 물들어 버릴 듯하다. 마치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허물 어진 듯 하늘바다가 되어버린 세상 한 가운데 서 한 마리 고래가 되어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어지는 시간이다. 요즘처럼 푸르름이 에메랄드 빛으로 그려 지는 날이면 부산의 바다가 그리워진다. 바쁘 다는 이유로,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휴일 당직 근무나 서야 겨우 동창들을 찾아볼 수 있는 나의 무심함을 너무 탓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먹고 살기위해 사회에 이미 깊숙이 발을 디딘 우리들에게 이 명제는 어쩔 수 없이 짊어 지고 살아야하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때로는 살아가는 이유를 나 스스로가 아닌 가족에게 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외로울 때가 있다. 어차피 아이들은 장성하면 품에서 떨어져 나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어쩜 지금 의 부산이 아니라 오래 전 과거속에 서 활보하던 추억속의 부산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부산에 내려가도 반가움으로 조우할 친구들도 친척 들도 하나 둘 연락이 끊기고 그립고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했던 나의 부 산은 오래 전 전철도 없고 바나나 한 송이면 부잣집 아이 소리를 듣던, 카바이트 불빛 아래 머리통만한 석 화를 안주 삼아 잔술을 마시던, 겨울 이면 온통 화려한 장식으로 하늘을 덮은 성탄 절 축하 트리와 캐럴송으로 떠들썩해서 그 복작복작한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그 시절의 부산일지도 모르겠 다.

나이를 먹으면서 철이 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우리가 잘라버 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모르는 새 조금씩 그 나무를, 그 존재를 잊어가는 것이 다. 지우개로 지우듯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과거의 모습들을 잊어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립다는 말조차 사치스럽게 느껴 지는 요즘, 내 그리움의 존재들은 그렇게 사라 지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사라진 존재들 을 향해 손을 내미는 나와, 그립다고 말하면 그래…. 나두 니가 그립다….고 말해주는 친구 들이다. <태종/온녕군 18대 ‧始42세>

70 李花 295호
하늘가에

가슴으로

奉養

사전적 의미는 부모나 조부모와 같

웃어른을 받들어 모시는 일이다. 바로 그런

의미가 담긴 <어머니 봉양일기(도서출판 천 우>는 97세 어머니를, 며느리도 딸도 아닌 고희를 훌쩍 넘긴 73세 아들이 2020년 9월부터 2022년 3월까지 모신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작가의 어머니가 계신 곳은 경상북도 봉화 다. 영화 《워낭소리》의 무대이기도 한 봉화 는 특산물로 송이가 유명하다. 그만큼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다. 작가의 어머니가 100세를 바라볼 수 있는 것도 환경 덕분이 적잖음이라 여겨진다. 어머니에 받은 사랑은 우리들 자식들에게 대물림을 하게 된다. 내가 부모가 되는 순간부 터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은 물밀 듯 일어나지 만 정작 효도를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후에 라야 땅을 치고 통곡하며 후회를 하는 게 일반 적이다. 작가는 어머니를 모시면서 그러한 후회를 덜 수 있었을까?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 이 끝이 없는 것처럼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효도 또한 다함이 없는 것 같다. 돌아가시고 나면 그 어떤 부분에서든 후회는 남는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그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어쩌면 이병준 작가가 어머니를 봉양한 것은 어머니 께서 돌아가신 후 후회를 덜하기 위함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어머니를 봉양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병준 작가의 <어머니 봉양일기>는 죽을 때까지 쥐고 있는 재산 자식들에게 모두 나누 어 주지 말라는 현시대에서 우리 모두가 읽고 새겨야 할 지침서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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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눈물로 읽는 어머니 봉양일기 주정자 세종대왕신문 문화전문기자 ▲어머니 봉양일기 책표지 봉양(
)! 봉양의
독후감

마음을 내려놓고

국내 점술(占術) 운세산업 규모가 연간 2조 5천억 원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첨단과학‧ 인터넷 정보가 실생활의 주류지만 점(占)은 사라지지 않고 ‘운명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 미아리와, 최첨단 패션 현장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는 ‘점술 밸리’가 형성돼 있다. 화려한 수입품 매장과 고급 레스토랑 사이로 ‘용한 점집’에서부터 대나무 뽑기, 타로카드, 사주카페 등이 100여 개나 성업 중이다. 전국 유수 대학에는 이미

▲ 여러 종류의 대나무 시초

관련 학과가 개설돼 있고 유명 인터넷 사이트 의 운세서비스 매출액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점의 역사는 유구하다. 우리 조상들은 삼국 시대부터 점에 의존해 왔다. 고구려 2대 유리 왕(재위 BC 19∼AD 18)은 왕궁으로 무당을 불러 들여 자신에 대한 저주와 역모를 밝혀냈 다. 신라 27대 선덕여왕(재위 632∼647)은 첨성대 축조 후 별의 운행을 분석해 국가 미래 와 흥망성쇠를 점쳤다. 백제 31대 의자왕(재위 641∼660)은 ‘백제가 곧 망한다.’는 땅 속 거북 등 예언을 불신하고 자만하다 패망을 자초했 다. 모두 《삼국사기》에 전하는 기록이다. 점의 종류도 다양하다. 삼국시대의 동물점‧ 기상점, 고려의 식물점 관상점 농점 질병 점, 조선의 해몽점 ‧ 택일점 ‧ 사주점 ‧ 토정비 결 등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성행했다. 중국 각 제국(諸國)에서는 국가 중대사나 국혼을 치를 때 용한 점술사를 동원해 예언을 따랐다. 특히 인접국과의 전쟁 전에는 반드시 점을 쳐 승괘(勝卦)가 나와야 병력을 동원했다.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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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착(放下着) ⑧

쳤던 점이 바로 주역에서 유래한 시초(柴草)점 이다. 시초는 원래 중국 서북 고원 추운지대인 간쑤성(甘肅省)에서만 자라는 여러해살이 초목이다. 생장과정이 까다롭고 희귀하기 이 를 데 없다. 하늘과 땅의 놀라운 동기감응(同 氣感應)과 영험성으로 중국 왕실에서만 비밀 리 사용됐다. 대만의 태풍초가 시초와 흡사하 다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일반에서는 주로 대 나무를 절개한 시초로 점을 쳤다. 우리 선조들도 대나무 시초를 통한 작괘(作 卦)로 학문의 도를 깨우치며 인간의 길흉화복 과 미래를 예측했다. 시중의 불교용품점이나 죽세공 전문 매장에서 대나무 시초를 구할 수 있다. 시초점은 중국 전래의 비술(秘術)로 중국 현지는 물론 국내에서도 도사(導師)가 드물어 일반화돼 있지 않다. 시초점의 제반 절차는 이렇다. 시초 50개를 입수한 다음 정갈한 마음으로 다음의 반복 훈련을 거듭한다. 시초점은 50개 의 시초로 음효(陰爻)와 양효(陽爻)를 도출한 뒤 그 효에 해당되는 점해(占解‧ 괘 풀이)를 확인하는 수순이다. ‘주역점해서’는 시중 대형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우선 자신이 소장한 시초를 매우 소중 히 여기며 신성성을 부여해 굳게 믿는다 는 마음 자세가 절대적이다. 옛 선인들은 시초점을 칠 때 목욕재계는 물론 부부 합방까지도 회피했다. 시초를 보관하는 독(匵)이 별도로 있어 신주 단지 모시듯 신령하게 여겼다. 1단계 ; 시초를 상하 두 손으로 정중히 쥔 다음 마음속으로 주문(呪文)을 암송 한다. 주문은 점자(占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신령함과 떳떳함이 넘치 는 시초의 영험을 빌리고자 합니다. (두 번 반복) 서울특별시 OO구 OO동 OO번지에 사는 김갑돌은 금년 대학입학 시험에 딸 김갑 순의 합격 여부를 알지 못해 의심나는 바를 신령님께 묻사옵니다. 부디 밝게 밝혀 주소 서”의 형식이다. 2단계 ; 50개 시초 중 1개를 무작위로 뽑아 바닥에 가로 놓으면 곧 태극을 상징하는 것이 다. 남은 49개 시초를 빈 마음으로 양손에 나눠 쥔다. 이 때 양손 시초 개수의 많고 적음 은 관계가 없다. 왼손 시초는 천책(天冊)으로 하늘이고 오른손 시초는 지책(地冊)으로 땅 을 상징한다. 이어서 오른손 지책 모두를 바닥 에 놓고 그 중 1개를 집어 천책을 쥔 왼손 새끼손가락 사이에 낀다. 땅에서 태어나는 인간을 뜻한다. 이로써 천 ‧ 지 ‧ 인의 삼재(三 才)가 구성되는 것이다.

3단계 ; 왼손에 쥔 천책을 오른손으로 4개 씩 덜어내 남는 시초를 왼손 중지와 약지 사이 에 끼워 잡는다. 4개씩 세는 이유는 1년 4계절 을 의미하며 주역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

▲ 시초를 양손에 나눠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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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음은 바닥에 놓아둔 지책을 오른손에 쥐고 앞의 요령대로 4개씩 세고 난 나머지 지책을 왼손 중지 사이에 낀다. 세 손가락 사이에 낀 시초를 세어보면 신기하게도 5개 아니면 9개가 된다. 그 시초를 합쳐 바닥에 가로 놓여 있는 태극에 ∔자로 걸쳐 놓는다. 4단계 ; 바닥에 놓여 있는 천책과 지책을 다시 합쳐 양손에 쥐고 앞의 방식대로 반복한 다. 두 번째 나오는 숫자는 신묘하게도 4이거 나 8이다. 그 시초를 바닥의 태극 위에 놓인 5개 또는 9개의 3단계 시초와 섞이지 않도록 걸쳐 놓는다.

5단계 ; 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남은 시초를 나누면 이번에도 4나 6이 구해진다. 이를 태극 위의 시초와 합치면 비로소 1개의 효(爻)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18번 반복하면 6개의 효가 작괘된다. 6효가 바로 한 사람의 명운을 점치는 시초 점괘다.

시초점 작괘에는 고도의 집중력과 정성이 요구된다. 작괘 도중 자칫 딴 생각이나 사념 (邪念)으로 작괘에 실패하면 그 이후 치는 시초점은 일체 무효가 된다. 이미 영험성을 상실한 것이다.

시초점 핵심인 괘의 조합법은 간단하다. 작괘로 찾아진 숫자 안에 4(4계절)가 1개면 양(陽)이고 4가 2개 들어 있으면 음(陰)이다. 예를 들어 4나 5에는 4가 1개 들어 있어 양이 고 8이나 9에는 4가 2개 들어 있어 음이다. 6개의 효를 ‘주역점해서’에서 찾아내면 시초 점의 모든 절차가 마무리 된다. 주역은 64괘 384효로 구성돼 있는데 어떻 게 많고 많은 사람 운세를 점칠 수 있을까. 함수(含數)가 따로 있다. 주역(周易)은 해 (日)와 달(月)처럼 두루(周) 변한다 해서 周易

74 李花 295호

이다. 동효(動爻)와 변효(變爻)에 따라 노양 (老陽)과 노음(老陰)을 취하다 보면 4,096개 의 효를 적용할 수 있다. 삼라만상 중 384∔ 4,096=4480효 범주를 벗어나는 예외는 아무 것도 없다. 시초점의 심오하고 무궁무진한 경지다. 풍수지리에서 좌향을 측정하는 신기(神器) 를 나경(羅經)이라 한다. 명당을 택지하는데 필수 휴대품이다. 옛 지사(地師)들은 허리에 차고 다닌다하여 패철(佩鐵)로도 불렀다. 羅 經은 삼라만상(森羅萬象) 경륜천지(經綸天 地)에서 羅자와 經자를 취한 것이다. 나경 4층(지반정침)의 건(乾‧ 서북향, 아버 지) ‧ 곤(坤‧ 서남향, 어머니) ‧ 간(艮‧ 동북향, 막내아를) ‧ 손(巽‧ 동남향, 장녀)에 해당하는 좌(坐)나 향(向)의 명칭은 주역의 괘명(卦名) 에서 유래된 것이다. 풍수 학인들에게는 필수 상식이다.

고수(高手) 전문 용어이긴 하지만 정음정 양법(正陰正陽法)에서 3효 중 가운데 효를 빼고 관측하는 간산법(看山法‧ 산의 物形 관 측)이 있다. 이 때 아래 위 효가 같은 건(乾) 곤(坤) 감(坎) 리(離)는 정양이고, 상하가 다 른 진(震) 손(巽) 간(艮) 태(兌)는 정음이 된 다. 정음정양 향법(向法) 역시 주역이 근원이 다. 고양 허음 왕양 상음도 이와 동일하니 주역을 모르고는 풍수를 운위할 수가 없다. 특정 종교에서는 동 ‧ 서양 점술을 무속이나 미신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올해로 불교 기원 이 2566년이고 기독교는 2022년인데 무속 역사는 1만년이 훨씬 넘는다. 세계적 명성이 자자한 프랑스 별점보다 시초점 역사가 유구 하고 적중 확률이 월등하다. <편집부>

李花 295호 75

33,700,000 울진군 1,300,000

1,800,000

23,230,000

100,000

60,680,000 이천시 2,000,000 덕진구 4,000,000 창원시 1,800,000

2,000,000

2,300,000 군산시 울산시 중구 300,000 여주시 2,000,000 익산시 2,000,000 마산 1,000,000 서구 광주시 2 000 000 정읍시 진주시 1 300 000 동구 연천군 2 000 000 남원시 800 000 진해 영도구 770 000 포천시 2 300 000 김제시 통영시 부산진구 2,000,000 가평군 1,500,000 완주군 사천시 동래연제 2,000,000 양평군 2,000,000 진안군 김해시 1,000,000 남/수영구 1,000,000 안성시 2,000,000 무주군 밀양시 북구 김포시 1,000,000 장수군 거제시 1,000,000 해운대구 2 000 000 의왕시 임실군 양산시 사하구 송탄 순창군 의령군 금정구 900,000 오산시 고창군 함안군 강서구 1,200,000 소계 42,300,000 부안군 500,000 창녕군 사상구

강원도 2,100,000 소계 9,100,000 고성군 기장군 춘천시 700,000

광주전남

광주전남 2,000,000 남해군

1,000,000

76 李花 295호 승경원 건립기금 지원, 분원별 헌성금 집계표 (2022.9.25.현재) 시도별 지 분원별 헌성금액 시도별 지 분원별 헌성금액 시도별 지 분원별 헌성금액 시도별 지 분원별 헌성금액 서울 서울시 8,000,000 대전 서구 2,000,000 충북 영동군 2,000,000 소계 16,600,000 종로구 2,000,000 유성구 2,600,000 진천군 2,000,000 경북 경상북도 3,050,000 중구 2,000,000 대덕구 300,000 괴산군 1,000,000 포항시 2,000,000 용산구 2,000,000 소계 11,900,000 음성군 2,500,000 경주시 성동구 2 000 000 경기 경기도 3 000 000 단양군 김천시 광진구 2,000,000 팔달구 증평군 2,000,000 안동시 동대문구 2,000,000 장안구 1,000,000 소계 27,900,000 구미시 중랑구 3,300,000 영통구 1,100,000 세종충남 세종충남 2,300,000 영주시 2,680,000 성북구 1,000,000 권선구 500,000 세종시 2,000,000 영천시 1,000,000 도봉구 2,000,000 성남시 천안시 4,900,000 상주시 3,700,000 노원구 3 000 000 의정부시 공주시 2 000 000 문경시 2 000 000 은평구 2 000 000 안양시 보령시 2 000 000 경산시 서대문구 2,000,000 부천시 2,000,000 아산시 2,300,000 군위군 마포구 광명시 서산시 2,000,000 의성군 양천구 2,000,000 평택시 2,000,000 논산시 2,500,000 청송군 강서구 2,000,000 양주시 2,300,000 금산군 영양군 구로구 3 500 000 안산시 부여군 2 100 000 영덕군 2 000 000 금천구 3 000 000 고양시 2 000 000 서천군 청도군 영등포구 2 000 000 과천시 청양군 3 000 000 고령군 동작구 1,500,000 남양주시 2,000,000 홍성군 2,600,000 성주군 2,000,000 관악구 3,000,000 구리시 예산군 2,000,000 칠곡군 2,500,000 서초구 2,200,000 화성시 5,300,000 태안군 2,000,000 예천군 1,000,000 강남구 2,000,000 시흥시 2,000,000 당진시 2,000,000 봉화군 송파구 2,000,000 군포시 소계
강동구 2,000,000 하남시 전북 전라북도 소계
강북구 2,180,000 용인시 완산구
경남 경상남도
소계
부산 부산시
파주시
강원
소계 12,170,000 원주시 1,100,000 광주동구 하동군 대구 대구시 6,000,000 강릉시 2,600,000 광주서구 산청군
중구 1,700,000 동해시 광주남구 함양군 1,500,000 동구 2,100,000 태백시 3,200,000 광주북구 500,000 거창군 서구 2,100,000 속초시 광산구 합천군 남구 700,000 삼척시 2,300,000 목포신안 2,000,000 울주군 북구 2 550 000 홍천군 여수시 2 000 000 서마산 수성구 2 550 000 횡성군 300 000 순천시 소계 8 700 000 달서구 5 900 000 영월군 나주시 2 000 000 제주 제주도 6 900 000 달성군 평창군 광양시 제주시 소계 23,600,000 정선군 담양군 서귀포 인천 인천시 7,100,000 철원군 곡성군 북제주 중구 화천군 1,000,000 구례군 1,800,000 소계 6,900,000 동구 양구군 고흥군 일본 일본지원 미추홀구 500 000 인제군 보성군 관동 연수구 고성군 2 000 000 화순군 관서 남동구 양양군 2,000,000 장흥군 3,000,000 소계 0 부평구 1,500,000 소계 17,300,000 강진군 1,000,000 북미주 로스엔젤리스 계양구 충북 충청북도 4,300,000 해남군 샌프란시스코 2,677,592 서구 청주상당 2,000,000 영암군 2,000,000 시카고 1,310,000 강화군 청주흥덕 2,800,000 무안군 300,000 워싱턴 510,000 옹진군 청주청원 2 000 000 함평군 뉴욕뉴저지 소계 9,100,000 충주시 2,000,000 영광군 휴스턴 대전 대전시 3,000,000 제천시 장성군 캐나다 동구 2,000,000 보은군 3,300,000 완도군 소계 4,497,592 중구 2,000,000 옥천군 2,000,000 진도군 총계 307,677,592

000

후릉봉향회 陽10,800,000 茂 주부공파 3,000,000 의창군파 英陵봉향회 2,000,000

000 000 한남군파 19 900 000 장사릉봉향회 안12,000,000 원대군파 3,000,000 밀성군파 10,000,000 광릉봉향회 안2,000,000 풍대군파

안천대군파

수춘군파 16,000,000 창릉봉향회 2 000 안000 창대군파

익현군파 3 000 000 공릉봉향회 안3,000,000 흥대군파

400

600

영풍군파 靖陵봉향회 2,210,000

함원대군파 영해군파 6,880,000 목릉봉향회 2 000 함000 양대군파 담양군파 12,500,000

명릉봉향회 2,000,000

世祖 덕원군파 32,000,000 의혜릉봉향회 2,000,000 완원대군파

완창대군파 9,300,000

000 000 창원군파 10 000 000

景陵봉향회 2,000,000 완천대군파

완풍대군파 14,300,000

의안대군파 1,800,000

월산대군파 17,600,000 洪陵봉향회 2,000,000

계성군파 7,000,000 대빈묘봉향회 1 000 000

안양군파 30,000,000 선순릉봉향회 2,000,000

진안대군파 2,000,000 완원군파 15,160,000 헌릉봉향회 10,000,000 익안대군파 5 300 000 회산군파 10 300 000 광해주숭모회 2 000 000 회안대군파 5,350,000 봉안군파 7,800,000

의평군파 14,400,000 견성군파 4,000,000 기타 단체 헌성금액 순평군파 3,000,000 익양군파 12,000,000 서봉회 5,000,000 선성군파 64 330 000 이성군파 3 000 000 정후회 2,000,000 종의군파 3,000,000 경명군파 10,800,000 의친왕가 1,000,000 진남군파 13,500,000 전성군파 9,700,000 원정회 300,000 수도군파 3,000,000 무산군파 5,000,000 본원 위원별 단체 7,250,000 임언군파 5 000 000 영산군파 18 900 000 서울시지원 여성부 2 000 000 석보군파 1 000 000 운천군파 3 000 000 종합기수별 단체 5,700,000 덕천군파 33,550,000 양원군파 31,700,000 전문기수별 단체 300,000 미술분과위원회 1 000 임000 성군파 150,000 中宗

해안군파 6,600,000 전주이씨화수회 도1,000,000 평군파 7,000,000 금원군파 3,000,000 종묘제례전수회 장1,000,000 천군파 3,000,000 영양군파 5,200,000 정석군파 3,000,000 덕양군파 113,880,000 무림군파 10,000,000 봉성군파 3,000,000

양녕대군파(재)지덕사 55,900,000 덕흥대원군파 11,400,000 효령대군파(사)청권사 51 000 000

신성군파 3 000 000 성녕대군파 20,000,000 순화군파 경녕군파 15,400,000 인성군파 30,000,000 함녕군파 5,300,000

260

宣祖

300 000

경창군파 2,500,000 온녕군파

6,000,000

李花 295호 77 승경원 건립기금 파종회, 봉향회, 기타 단체별 헌성금 집계표 (2022.9.25.현재) 제왕별 파종회별 헌성금액 제왕별 파종회별 헌성금액 봉향회별 헌성금액 宮進 시중공파 4,000,000 世宗 화의군파 14,800,000 준경묘영경묘 1,000,000 제릉봉향회 2
勇000 夫 평장사공파 2,000,000 계양군파
穆祖
3
4,300,000
2
000
3
000
翼祖
度祖
3
德宗
桓祖
成宗
太祖
定宗
太宗
8
000 경평군파 5
근녕군파 10,000,000 인흥군파
※ 30만원 이상 헌성자는 승경원 내에 영구 게시되며, 30만원 이하 모든 헌성자도 헌성록에 게재함 ※ 상기 금액은 파종회별(소종중 포함) 집계 금액임 혜령군파 10,500,000 영성군파 3,600,000 희령군파 6,500,000 元宗 능원대군파 후령군파 5,000,000 仁祖 소현세자파 3,000,000 익녕군파 11,500,000 인평대군파 3,000,000 승경원 건립 모금 계좌 국민은행 : 817201 04 124567 예금주 :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世宗 임영대군파 28,600,000 숭선군파 800,000 광평대군파 84,500,000 낙선군파 금성대군파 누 계 1 104 070 000 영응대군파 50 160 000

구분 단체명 대표 금 액 일 자 파종회별

덕천군파 영동공종회 五周 1,000,000 8.12 덕양군파종회(세부명단 참조) 有燮 7,050,000 8.24/8.31

시중공파종회 炳七 2,000,000 8.30 선성군파종회(세부명단 참조) 致中 1,100,000 8.30

임영대군파종회 종남 15,000,000 9.5 의평군파종회(세부명단 참조) 錫東 2,400,000 9.15 경녕군파 가림군종회 재근 1,000,000 9.19 경녕군파 익흥군종회 충로 3,000,000 9.21

서울시지원 薰宰 3,000,000 8.22 제주특별자치도지원 哲憲 2,000,000 8.29 분원별

지원별

서울 금천구분원 在福 1,000,000 9.21 기타

본원 여성부 燕浩 300,000 9.13 전승교육 종합5기회 光敎 300,000 9.15

계 39,150,000

번 명

주 소 직업(직책) 일자

1008 光洙 계성16 500,000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녹차분재로59번길 51 7.15

1009 성우 효령 2,661 7.22-9.13 까지 5회 7.22

1010 旼奎 운천11 500,000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6길 17, A동 701호 병진고문 子 7.27

1011 哲奎 운천11 500,000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6길 17, A동 701호 병진고문 子 7.27

1012 富奎 운천11 500,000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6길 17, A동 701호 병진고문 子 7.27

1013 喜奎 운천11 500,000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6길 17, A동 701호 병진고문 姪 7.27

1014 永奎 운천11 500,000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6길 17, A동 701호 병진고문 姪 7.27

1015 在甲 금성18 321,000 충북 청주시 청원구 공항로64번길 17 8.2

1016 範英 광평17 100,000 강원 원주시 남원로 661, 5동 301호 특별원원 8.2

1017 慶薰 봉안14 3,000,000 경기 부천시 원미구 역곡로19번길 26, 101동 1704호 본원 부이사장 8.4

1018 光敎 선성17 1,000,000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남가로1607번길 32 본원 이사 8.5

1019 일로한의원 수춘 300,000 전남 무안군 일로읍 시장길 9 일로한의원 수춘군파 로암종중 8.8

1020 東烈 영응18 500,000 대구 달서구 파도고개로1길 13 특별원원 8.9

1021 燕浩 임영17 1,000,000 서울 성동구 독서당로 175, 101동 601호 본원 여성이사 8.11

78 李花 295호

승경원 건립기금 모금 헌성자
파별 금 액
■ 단체 (22. 7. 12~9. 25) ■ 개인 (22. 7. 12~9. 25)

1022 康秀 효령18 1,000,000 광구 남구 서문대로 668, 4동 502호 지원 사무국장 8.11

1023 枝淑 영응17 500,000 서울 구로구 구일로4길 65, 108동 1504호 본원 제복부위원 8.11

1024 枝順 영응17 500,000 서울 광진구 뚝섬로 508, 파워부동산 본원 여성부차장 8.11

1025 五周 덕천18 1,000,000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로122, 1610동 501호 덕천군파 영동공종회장 8.12

1026 錫東 의평17 10,000,000 경기 이천시 마장면 중부대로533번길 42-24 본원 부이사장 8.12

1027 京植 익녕19 300,000 서울 송파구 오금로 551, 205동 603호 송파구분원장 8.16

1028 光洙 밀성17 500,000 경기 파주시 와석순환로 347, 204동 905호 밀성군파 만지종중 전회장 8.16

1029 鎬洛 덕원17 500,000 경기 오산시 청학로147번길15, 110동 602호 화성시분원장 8.18

1030 長德 덕원손부 300,000 경기 오산시 청학로147번길15, 110동 602호 호락 妻 8.18

1031 承澈 덕원18 300,000 경기 오산시 청학로147번길15, 110동 602호 호락 子 8.18

1032 漢植 수춘18 400,000 경기 안양시 만안구 병목안로172번길 28, A-305 수춘군파종회 대의원 8.18

1033 德燦 수춘19 300,000 전남 무안군 일로읍 선비길 3 수춘군파 로암종중 총무 8.18

1034 薰宰 효령19 2,000,000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89, 301호 서울시지원장 8.20

1035 範昭 광평17 1,000,000 서울 강서구 강서로45나길 15, 101동 509호 본원 총무부위원 8.22

1036 重根 완창18 300,000,000 서울 중구 세종대로9길 42, 부영빌딩 본원 수석부이사장 8.22

1037 準鎔 경평11 2,000,000 서울 도봉구 마들로 616, 101동 1802호 경평군파종회장 8.23

1038 永日 완풍25 3,000,000 서울 관악구 행운1마길 30, 701호 8.25

1039 性大 완창19 1,000,000 경기 고양시 덕양구 호국로859, 119동 404호 서울시 부지원장 8.26 1040 浩澈 영해18 500,000 서울 강남구 선릉로68길 15, 4층 8.26

1041 郁奇 안양14 3,000,000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귀서길 22 제주도지원 이사 8.29

1042 成根 경녕18 200,000 충북 청주시 흥덕구 주현로33번길 14 서원 ‧ 흥덕구분원장 8.30

1043 漢震 해안14 300,000 경기 안산시 상록구 팔곡두레길 119 경기도 부지원장 8.30

1044 興根 희령18 500,000 충남 천안시 동남구 풍세로 1010-31, 105-2201 종묘제례보존회원 8.31

1045 洪圭 익녕17 300,000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4길 21, 가22호 본원 재정부위원 8.31

1046 炳七 시중공28 1,000,000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세내로241, 103동 306호 시중공파종회장 8.31

1047 錫根 시중공27 1,000,000 전북 전주시 덕진구 틀못1길 15, 506동 901호 시중공파종회 총무 8.31

1048 錫務 완풍20 1,300,000 서울 은평구 서오릉로 149-26 본원 총무이사 8.31/9.15

1049 淳容 희령17 500,000 경기 용인시 기흥구 용구대로2469번길 168 8.31

1,000,000

300,000

서구 문예로 16, 9동 1302호 대전시지원장 8.31

미사강변서로167, 1703동 502호 함풍군 진천공 상무 8.31

1052 在春 함녕21 300,000 경기 구리시 건원대로76번길 134, 412동 603호 본원 제무부위원 8.31

漢洙 영응16

1054 鳳洙 수춘17

1055

밀성19

칠곡군 왜관읍 외기2길 11-1 칠곡군분원 이사 8.31

춘천시 서부대성로 33, 108동 1404호 수춘군파종회 감사 8.31

보령시 한내여중길

9.8/9.9

李花 295호 79

번 명 파별 금 액 주 소 직업(직책) 일자
1050 康柱 효령18
대전
1051 鎔三 덕천19
경기 하남시
1053
300,000 경북
300,000 강원
良淑
2,000,000 충남
68

1056 榮柱 능원12 1,000,000 서울 은평구 연서로23길 12-12, 202호 9.8 1057 善求 회안18 300,000 충남 서산시 부석면 봉락지산길 373-12 특별원원 9.8 1058 鍾和 수춘16 300,000 서울 구로구 구로중앙로8길 41-5, 105호 수춘군파종회 이사 9.20/9.21 1059 圭福 의안20 4,000,000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151, 115동 602호 본원 고문 9.21 1060 海東 인평10 300,000 경기 포천시 신북면 신평로 186 9.22

계 352,523,661

※1009번 성우 종친은 총21,686원 헌성함. ※1016번 範英 종친은 22.5.30(2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30만원 헌성함. ※1017번 慶薰 종친은 17.11.16(20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500만원 헌성함. ※1021번 燕浩 종친은 14.9.18(100만원) 16.6.17(1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210만원 헌성함. ※1026번 錫東 종친은 16.5.25(9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1,090만원 헌성함. ※1028번 光洙 종친은 15.1.4(30만원) 21.10.6(7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150만원 헌성함. ※1034번 薰宰 종친은 14.11.20(50만원) 21.4.26(100만원) 21.12.14(50만원) 22.6.28(10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500만원 헌성함. ※1037번 準鎔 종친은 19.1.17(3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230만원 헌성함. ※1039번 性大 종친은 14.10.22(5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150만원 헌성함. ※1042번 成根 종친은 17.12.14(3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50만원 헌성함. ※1048번 錫務 종친은 17.7.27(30만원) 22.2.6(4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200만원 헌성함. ※1055번 良淑 종친은 13.12.23부터 22.9.9까지 14회에 걸쳐 총747만원 헌성함. ※1059번

종친은 14.5.22(10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500만원 헌성함.

: 2,631,906,913원

당기(2022.7.12~2022.9.25) : 391,673,661원

연번성명파대수금 액주 소비고

1德榮(보.鍾德)덕양16300,000경기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길 55-129제례부장

2海蒼덕양17300,000경기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길 55-129덕영 子

3海範덕양17300,000경기 수원시 영통구 인계로 165, 520동 306호전례위원

4鍾彬덕양16400,000경기 용인시 수지구 손곡로54, 203동 903호양성공

5申海덕양1750,000경기 용인시 수지구 손곡로54, 203동 903호종빈 子

6精海덕양1750,000경기 용인시 수지구 손곡로54, 203동 903호종빈 子

7鶴圭덕양15500,000서울 서대문구 연희로46, 103호이사

8봉산군종중3,000,000서울 중구 을지로9길 8 봉산빌딩

9吳美英덕양손부500,000서울 광진구 자양로 325, A동 401호故 영섭 妻

10有燮덕양14150,000서울 노원구 마들로31, 124동 2301호이사장

11許蓮淑덕양손부300,000서울 노원구 마들로31, 124동 2301호유섭 母

12韓京實덕양손부300,000서울 노원구 마들로31, 124동 2301호유섭 妻

13權惠忍덕양손부300,000서울 노원구 마들로31, 124동 2301호유섭 子婦

지석로 10, 301동 1402호부이사장

14동 102호종일 고문

106동

80 李花 295호

번 명 파별 금 액 주 소 직업(직책) 일자
圭福
전기(2013.11.5~2022.7.11)
총계: 3,023,580,574
14元燮덕양14300,000강원 춘천시
15海郁덕양17300,000서울 강북구 삼각산로 143-1
子 계7,050,000 연번성명파대수금 액주 소 1重雨선성19300,000경기 서울 중랑구 봉화산로24길 44, 401호 2應宰선성16300,000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로146번길 19-3 3容植선성17500,000서울 성북구 보문로30길 15,
1601호 계1,100,000 ※重雨종친과應宰종친은19.5.2.(각30만원)을내주셨기에총60만원씩헌성함. ■ 단체(덕양군파종회) 세부명단 ■ 단체(선성군파종회) 세부명단

■ 단체(의평군파종회) 세부명단

연번성명파대수금 액주 소

1于山副正(회장 錫東)300,000경기 이천시 마장면 중부대로533번길 42-24

2于山副正 鷗浦(회장 錫東)300,000경기 이천시 마장면 중부대로533번길 42-24

3錫龍의평17300,000서울 송파구 충민로 188, 104동 201호

4柱燁의평19300,000경기 남양주시 봉현로36번길 11-1, 105동 1211호

5尙源의평18300,000경기 부천시 범안로 117, B2층

6起源의평18300,000서울 마포구 새창로 52, 104동 608호

7斗源의평18300,000인천 부평구 부흥로 246, 18동 1103호

8柱庸의평19300,000경기 성남시 중원구 원터로105번길 23 계2,400,000

승경원 건립기금 송금자명을 찾습니다

(22.9.25.현재)

입금자명 금 액 입금일자 입금자명 금 액 입금일자 덕천군파은규1,000,000 14.05.15 이순기1,00017.08.28 무산군14대손경창300,000 15.12.31 이순성50,00017.11.11 무산군파이상춘10,000 16.01.11 이승섭50,00017.02.11 무산군파이응천10,000 16.01.11 이해헌50,00018.12.12 무산군파이정우10,000 16.01.11 이영길50,00018.07.08 무산군파이한구10,000 16.01.11 이영상20,00017.12.02 완풍대군파이두환300,000 18.02.21 이인영경녕17100,00014.12.09 이강욱50,000 15.04.08 이인재300,00015.02.27 이관웅300,000 20.05.09 이재규300,00017.06.12 이광수300,000 15.12.21 이정길310,00018.01.19 이광주덕천18손500,000 18.03.02 이정애50,00018.05.14 이규형350,000 17.12.04 이정완수춘문중회장100,00016.06.15 이기명300,000 19.01.10 이정주10,00018.02.12 이기우453 22.04.19 이정진20,00017.12.29 이기준50,000 19.04.20 이정현100,00014.12.06 이기현10,000 17.12.22 이정현200,00014.12.21 이나래300,000 18.04.24 이제연30,00018.04.21 이대한500,000 17.12.08 이종기310,00017.04.13

이동옥효령19대300,000 14.10.22

이동호500,000 18.12.17

이명규500,000 19.01.09

이복주300,000 21.10.19

이봉성50,000 14.08.22

이부구100,000 14.10.11

이상옥3,000,000 17.11.29

이석순500,000 17.11.13

이석재500,000 17.12.08

이선구100,000 15.04.24

이선용500,000 16.05.16

이종혁10,00018.03.05

이준우무산군파300,00015.02.23

이중구50,00020.10.30

이채권50,00015.06.19

이철구300,00014.11.03

이철수100,00017.12.27

이한남300,00016.10.10

이환식50,00015.06.04

이희성경녕군파16대50,00014.11.24

이희열500,00017.11.22

진안대군20손이승수300,00019.04.02

이성휘50,000 14.01.03 함원군16세손 성우70322.06.20

이송주50,000 14.09.16

※ 위 표기된 송금자들께서는 본원에 전화를 주셔서 인적사항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승경원헌성내역은종약원홈페이지(http://rfo.co.kr)에서확인이가능하오며,변경사항이있으신경우연락주시기바랍니다 (☎02-765-2124 문화부)

李花 295호 81

명 파대수

직업(직책) 가입비 등록 일자

東烈 영응18대구달서구파도고개로1길13대구시지원상임이사200,0008.8

(2022.7.1~8.31)

30,000 은호자문위원기수이사근수(강원춘천시)두연(경기용인시)원주(서울종로구)

[CMS자동이체]

50,000인재(경기오산시)

20,000(2회,각1만원) 범직이사

10,000(2회,각5천원) 병진고문태호자문위원 세림복지재단설립위원장 재복청년이사 우덕이사경민(경남김해시)상일(경기광주시)수봉(서울영등포구) 정희(경기고양시)해헌(충남홍성군)호헌(경기화성시)

6,000(2회,각3천원)종성이사고순복이사관우(서울양천구)규상(인천서구) 범소(서울강서구)수자(경기부천시)영주(서울중구)은수(경기여주시) 준하(서울금천구)천재(경기하남시)태신(전남순천시)해호(경기수원시)

82 李花 295호 임원 협찬금 (2022.7.1~8.31) 1,000,000 고순복 이사 등록 번호
주소
2335
특별원원 연회비 납부 종친(無順)
100,000 안원대군파종회익양군파종회 50,000 재희(대전동구)정록(경북포항시)
조숙희(경기여주시) 5,000석진(경기군포시) 종묘제례보존회 연회비 납부 종친 (2022.7.1~8.31) 100,000은택(경기수원시) 30,000은호자문위원 [CMS자동이체] 40,000(2회,각2만원)종화(경기고양시) 10,000(2회,각5천원)기중(강원철원군)기중(경북김천시)석진(경기군포시)석진(경기군포시) 인선(경기포천시)창규(경기이천시)형표(충남천안시) 특별원원 가입을 환영합니다 (2022.7.1~8.31) 종묘제례보존회 가입을 환영합니다 (2022.7.1.~8.31) <기간내가입자없음>

8,000(2회,각4천원)철수(경기수원시)

6,000(2회,각3천원)재복청년이사범소(서울강서구)범태(경남함양군)장호(경기남양주시) 천재(경기하남시)호헌(경기화성시)

4,000(2회,각2천원)경훈부이사장재갑(충북청주시)해호(경기수원시)

종친(無順)(2022.7.1.~8.31)

50,000종달자문위원

10,000(2회,각5천원) 찬해(서울구로구)창규(경기이천시,특별성금)

6,000(2회,각3천원)재복청년이사범소(서울강서구)한영(경기부천시)

4,000(2회,각2천원)경훈부이사장원규(강원춘천시)

종친 (2022.7.1.~8.31)

100,000 정만자문위원

20,000(2회,각1만원) 경호(서울영등포구)범설(경기부천시)범성(총무부장)범제(인천부평구) 범조(경기부천시)전경(서울종로구)정민(경기김포시)

10,000(2회,각5천원)범경(서울성동구)서종(서울영등포구)주리(경기부천시)창규(경기이천시) 해니(서울강서구)호종(경기부천시)

6,000(2회,각3천원) 슬기(인천부평구)

5,000민종(경기부천시)

바랍니다.

입금자를 찾기가

상황

李花 295호 83

사직대제보존회 연회비 납부
[CMS자동이체]
원원(회원) 회비 자동이체 납부
사직대제보존회 가입을 환영합니다 (2022.7.1.~8.31) <기간내가입자없음> 자동출금(CMS) 등록자 명단 <기간내가입자없음> 입금내역을 찾습니다 (2022.1.1.~8.31) 입금일은행(예금주)금액통장기장 내용찾는 내용 1.21우체국(종약원)3만원경주전태종왕좌입금내역및송금자 3.3국민(종약원)2천원잡협국립12,1월입금내역및송금자 3.31국민(종약원)2천원잡협국립2월입금내역및송금자 4.6농협(종약원)3만원이강원입금내역 4.19국민(보존회)3만원종묘대제헌성송금자 6.22국민(종약원)1만원전주헌성금이신입금내역및송금자 6.27국민(종약원)50만원이병석입금내역 7.13국민(종약원)2천원잡협국립5월입금내역및송금자 8.5국민(종약원)2천원잡협국립6월입금내역및송금자 ※최근 스마트폰, 텔레뱅킹,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송금이 많아지면서 본원에 송금된 금액 중 일부가 미확인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본원에 송금할 경우에는
매우 어려운
이므로, 송금 후에는 반드시 본원에 알려 주시기

조경단대제 헌성금 (2022.7.1 ∼ 8.31)

50,000세림이사익양군파종회선순릉봉향회 30,000수훈이사경기부천시분원

종묘춘향대제 헌성금 추가분 (2022.7.1 ∼ 8.31)

50,000세림이사익양군파종회선순릉봉향회

건원릉친향례 헌성금 (2022.7.1 ∼ 8.31)

50,000동성이사재영(전례부위원)익양군파종회선순릉봉향회 30,000세림이사강주(서울구로구)근수(전례부위원)엄윤자(여성부차장) 경기부천시분원

회인원 제향 (2022.1.1 ∼ 8.31)

200,000승현재정위원장성녕대군파종회

100,000종달자문위원병하분규조정위원장관주재정이사정원(서울동작구) 융건릉봉향회대한헤리티지봉사단홍릉봉향회일본부인회 50,000은갑자문위원도수장학회이사재복청년이사연호여성이사 복례무임소이사병학이사곤재(서울은평구)국재(효령대군손) 범소(총무부위원)춘화(서울구로구)학관(서울송파구)홍재(광주북구) 희섭(청년부차장)김용수(경기수원시) 손귀옥(인천미추홀구) 서울동대문구분원 서울양천구분원서울은평구분원영해군파종회월산대군파종회 인성군파종회대빈묘봉향회목릉봉향회순창원봉향회 숭릉봉향회영릉(寧陵)봉향회영원봉향회예릉봉향회 온릉봉향회장사릉봉향회정릉(貞陵)봉향회정릉(靖陵)봉향회 제릉봉향회헌릉봉향회현릉봉향회홍릉봉향회 효릉봉향회광해숭모회연산숭모회 30,000동성이사범수(조직2부차장)지순(여성부차장)학선(경기포천시) 20,000경희(경기남양주시)

◑ 본원은 조직운영규정 제7조 ‘특별원원은 본원에서 정한 연회비를 납부하고 종사 발전에 협조한다’는 조항에 의거, 가입 후 3년 동안 연회비를 납부하지 않은 종친을 대상으로 이화보 무료 구독을 중지키로 하였습니다. 특별원원은 21.12.31.현재, 2319명에 이르고 있으나 연회비를 납부해 주시는 종친은 연평균 500여 명에 불과합니다. 특별원원 연회비의 수입이 낮아지고, 물가상승으로 인 해 제작비 인상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무료구독 제공 중단이라는 어려 운 결정을 내린 점에 대하여 특별원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아울러, 이화보 필자에게 드리던 1년 무료 구독권도 중지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李花

84
295호
30,000경기부천시분원
社 告
李花 295호 85
86 李花 295호
李花 295호 87

李花報 구독 倍加 운동을 합시다 全州李氏의 宗報인 이화보를 모르고 지내는 종친이 많습니다. 종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상호 정보를 교환하시어 이화보를 알리고 홍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화보를 통해 일가들의 동정을 알리고 상호 정보를 교환할 수 있습니다. 참여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동정란 에 게재할 소식과 자랑스런 종친의 이야기와 시, 수필, 교양, 논문 등 알리고 싶은 원고를 기다립니다.

※ 종친 기업의 협찬 광고를 모집합니다. 본 이화보는 종친 여러분의 구독료와 광고수익금으로 운영, 간행되고 있습니다. 게재소식 및 광고 문의 : 종약원 문화부 전화(02)765-2124 / 팩스(02)742-1676 이화보 구독 계좌번호 : 예금주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국민은행 817-01-0031-375 농 협 053-01-162048 우 체 국 010579-01-000891

〈李花報〉에 게재할 원고를 아래와 같이 모집하오니, 종친 여러분의 많은 투고를 바랍니다.

1. 내용 가)종사에 관한 미담이나 중요 행사 제언 나)종사와 관련 있는 수필·콩트·기행문 다)종친 교양을 위한논술문 라)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소식

2. 기 간 : 연중 계속 접수함

3. 분 량 : 200자 원고지 15장 이내

4. 첨부물 : 증명판 사진 1매 및 관련자료(파·대·이름·주소·연락처 및 직업)

5. 채택된 원고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합니다.

6. 제출처 : 서울시 종로구 돈화문로 89(와룡동) 이화회관 4층 문화부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부(이-메일:rfo@rfo.co.kr)

7. 홈페이지에서도 원고를 접수 받습니다 ※ 홈페이지 주소 http://www.rfo.co.kr

조석으로 느껴지는 쌀쌀한 기운이 가을을 만들어 갑니다. 나 뭇잎 빛깔은 초록을 벗어나며 온전한 가을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은 이렇게 유유히 빠르게 흘 러갑니다. 종약원은 금년 말 승경원 완공을 목표로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여러 종친님들의 후의에 감사드리며 발 빠른 소식 전달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문화이사 규원 외 문화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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