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2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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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5 · 6월호 (통권 293호)

사진설명 : 전주 경기전 내의 전주사고(史庫) 사진ㆍ이규원 / (관련기사 54면)

발행인/이귀남 편집인 겸 주필/이규원 발행처/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

소/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89

우편번호/03131 전

화/(02)765-2124

스/(02)742-1676

인쇄인/이재복 인쇄처/(주)경인인쇄 전

화/(02)2272-8063

행/2022년 5월

록/1973년 12월 31일

1일

홈페이지(http://rfo.co.kr) 이메일(rfo@rfo.co.kr) 값 2,000원 (1년 6회, 정기구독 10,000원)

숭조돈종 2. 2022년 조경단 대제 봉행 3. 2022년 종묘 춘향대제 봉행 4. 세종대왕 숭모제전 봉행 5. 본원 소식 · 지원 · 분원 · 파종회 · 봉향회 소식 12.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13. 경기도지원장 소임을 내려놓으며 ………………………………………………………………… 前 경기도지원장 이완선(李琓善) 14. 74년 만에 개방된 청와대 19. 자유의 가치와 문화 ……………………………………… 본원 이사 · 문학박사 · 건국대 명예교수 이범직(李範稷) 20. 유네스코가 인정한 광릉숲, 문화유산 광릉 …………………………………………… 창원군파종회 감사 / 농경제학 박사 이종갑(李鍾甲) 23. 조선왕릉실록(9) / 성군 세종대왕 영릉(下) ……………………………………………………………… 본원 문화이사 · 시인 이규원(李揆元) 28. 생육신 남효온과 이생전 …………………………………………………………… 본원 상임고문 · 수필가 이승창(李承昌) 30. 만화로 보는 역사이야기 107 …………………………………………………………………… 본원 문화위원 이전경(李田景) 32. 어머니 봉양일기(10) …………………………………………………………… 본원 문화부 수석차장 이병준(李炳俊) 34. 부마(駙馬)의 성을 이(李)씨에서 한(韓)씨로 바꾸다 ………………………………………… 본원 문화위원 · 세종대왕신문 발행인 이상주(李相周) 36. 영국 왕실의 거름이 된 서사시 베오울프 …………………………………………………………… 본원 문화위원 · 소설가 이기윤(李起潤) 39. <영시(英詩) 한 수> INFANT JOY (어린이의 기쁨) ………………………………………………………………… William Blake(윌리엄 블레이크) 40. 조선초 공신과 삼공신(개국 · 정사 · 좌명) 회맹제 ……………………………………………………………… 광평대군파종회 이사 이은표(李銀杓) 43. 선조왕자 인흥군 묘역 · 신도비, 도지정 문화재 확정 44. 진경희 박사의 구강암이란? ………………………………………………………………… 서울뉴욕치과 원장 진경희(陳京熙) 46. 長壽負子(장수부자) …………………………………………………………………………… 중헌(中軒) 이관재(李觀宰) 48. 아버지의 꿈 ……………………………………………………………… 본원 문화위원 · 시인 이언수(李彦秀) 50. <한시(漢詩) 한 수> 春夜洛城聞笛 (낙양성 피리 소리 듣다) ……………………………………………………………………………………………… 李白(이백) 51. 족보 편찬에 관하여 …………………………………… 헌릉봉향회 이사 / 근녕군파종회 재무이사 이병준(李炳俊) 53. 조선왕조실록과 사고(史庫) 55. <방하착(方下着) ⑥> 마음을 내려놓고 59. 승경원 건립기금 모금 헌성자 60. 특별원원 가입을 환영합니다 61. 종묘제례보존회 / 사직대제보존회 가입을 환영합니다 62. 조경단대제 헌성자 63. 종묘춘향대제 헌성자 65. 종묘춘향대제 봉행위원 및 제관


2022년 조경단 대제 봉행 시조 제향인 조경단(肇慶壇) 대제가 4월 10일 일요일 정오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조경단에서 봉행됐다. 조경단은 519년간 조선왕조를 이룬 조선왕실 시조의 묘역이다. 1899년 고종황제가 전주 건지산에 조경단을 쌓고 비를 세워 은덕을 기려오는 곳으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시조묘이다. 금년 조경단 대제는 코로나19의 위기경보가 발령되어 제한된 인원으로 귀남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진 일부와 제관 및 준비위원 등 최소 인원만 참석하여 봉행했다. <조경단 제향 헌성금 62면 참조> ■ 제 관 명 단 제관

성 명 / 파대수

소 속 / 직 위

제관

성 명 / 파대수

소 속 / 직 위

初獻官

李貴男(회산군17)

본원 이 사 장

執尊者

李泫境(성녕대군19)

전라북도지원

亞獻官

李錫東(의평군17)

본원 부이사장

祝 史

李承亨(담양군19)

전라북도지원 이사

終獻官

李康弼(효령대군18)

전라북도지지원 이사

齋 郞

李 準(평장사공21)

전라북도지원

李商訓(선성군18)

본원 전례부 차장

執事者

李哲守(담양군20)

전라북도지원

李道宰(근령군18)

본원 전례부위원

典祀官

李羲澤(회안대군19)

전라북도지원

李喜昌(익안대군20)

전라북도지원

壇 司

李重箕(회안대군21)

전라북도지원

李範春(광평대군17)

본원 전례부위원

謁 者

李南政(선성군18)

본원 전례부위원

李元敎(회안대군16)

전라북도지원

解 說

李炳學(성녕대군19)

본 원 이 사

李喜源(익안대군20)

전라북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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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종묘 춘향대제 봉행 영녕전만 봉행… 정전은 선원전에서 전알례 올려

2022년 종묘대제가 5월 1일 일요일 오후 2시 종묘 영녕전에서 봉행됐다. 금년 종묘대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2년 간 미공개로 치러진 지 3년 만에 공개 봉행을 하는 것으로, 영녕전 16개 실에 모셔진 34위께만 제향을 올렸다. 정전은 보수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제향을 올리지 못하고, 이안된 신주가 모셔진 창덕궁 선원전에서 전알례로 올렸다. 한편,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어가행렬이 재현되어 왕과 왕세자를 비롯한 300명의 인원이 경복궁 광화문에서 출발하여 종묘에 이른 후 제향을 봉행하였다. 종묘대제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왕이 직접 행례를 하는 왕실의례로 써 경건하고 엄숙한 제사이자 조선왕실이 지낸 가장 크고 중요한 제사이다. 1969년 복원된 이후 매년 봉행되고 있으며 2001년에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주최, 종묘대제봉행위원회와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한 가운데 인터넷 유튜브 영상으로 실시간 제공되어 영녕전 입장을 하지 못한 관람자에게도 자료를 제공하였다. 한편 이번 대제에 사용된 제수 협찬은 민속주왕주에서 왕주 4말, 울창주 1말, 국순당에서 예담 차례주 76박스를 기증했다. <제관 명단 및 봉행위원 63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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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모제전 봉행 - 세종대왕 탄신 625주년 기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소장 박판용)는 세종대왕 탄신 625주년을 기념 하는 숭모제전을 5월 15일 오전 11시, 경기도 여주시 영릉(英陵) 정자각에서 봉행했다. 숭모제전은 매년 양력 5월 15일 한글 창제를 비롯하여 국방, 과학,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리는 행사이다. 이날 행사에는 본원 귀남 이사장을 비롯한 상임이사진과 최응천 문화재청장, 장소원 국립국어 원장,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유관기관과 한글관련 단체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헌관의 분향과 헌작, 축사의 축문 낭독, 문화재청장의 대통령 명의 화환 헌화와 분향, 축사의 순서로 진행됐다. 탄신제에 봉무한 제관은 대부분 본원 전례위원 겸 영릉(英陵)봉향회 회원으로 헌관만 세종대 왕유적관리소 소장이 맡았고, 의례자문 태우 전례이사, 집례 상훈 전례부 차장, 찬례 규돈, 감찰 석표, 대축 범민, 좌장례 춘묵, 우장례 부열, 좌근시 범춘, 우근시 천재, 집준자 찬호, 축사 형수, 재랑 호찬, 전사관 수봉, 능사 규호, 찬자 후원, 알자 남정, 해설 병학 종친이 맡았다. 한편,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 세종대왕의 북방 영토 개척을 주제로 한 기획전시 ‘세종, 우리 옛 땅을 되찾다’를 6월 26일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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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 소식 제704회 상임이사회(2022. 4. 4.(월) 14:00) ◎ 참석 : 재적 상임이사 12명중 10명 참석 ◎ 의안 심의 결과

‧ 상임이사 보직의 건 - 3월 25일 이사회에서 선출이 되거나 추대되신 분, 추가로 이사장에게 위임된 분을 석동 부이사장 및 경훈 부이사장과 협의한 결과 부이사장으로 수석부이사장 이중근, 부이사장 이석동, 부이사장 이경훈, 분규조정위원회 위원장 이병하, 승경원건립위원회 위원장 이덕규,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 이유섭, 홍보위원회 위원장 이순동, 복지재단설립위원회 위원장 이세림, 재정위원회 위원장 이승현, 총무이사 이석무, 재정이사 이관주, 문화이사 이규원, 전례이사 이태우, 제1조직이사 이부용, 제2조직이사 이명승, 청년이사 이재복, 여성이사 이연호, 무임소이사 이복례로 하고, 각 위원회 위원장과 상임이사에게 연구과제 부여하여 차기 회의시 계획을 보고토록 함.

◎ 기타사항 - 상임이사 요일별 1∼2명씩 조편성 하여 근무하기로 함. - 상임이사회의는 매월 제1 월요일 개최하되 공휴일 또는 특별한 경우에는 변경하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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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회 상임이사회(2022. 5. 4.(수) 14:00) ◎ 참석 : 재적 상임이사 12명중 11명 참석 ◎ 상임이사 보직 발표 - 승경원건립위원회 위원장과 제2조직이사가 개인적인 사유로 사임함에 따라 공석인 제2조직이사에 이유섭 덕양군파종회장을 임명하고, 승경원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이사 장이 직접 주관하고 위원을 부이사장, 총무이사, 재정이사, 문화이사, 전례이사로 구 성하여 운영하기로 함 ◎ 의안 심의 결과

‧ 2022년 건원릉친향례 봉행위원회 구성의 건 - 기구표가 황사손, 고문, 위원장, 부위원장, 지도위원, 총무부, 재정부, 홍보부, 의전부, 제무부, 어가부, 경호부, 봉사부, 사무처이고, 부장은 8명, 차장은 15명, 위원은 140명으로 구성되나 부장에 제2조직이사, 무임소이사를 추가하기로 함.

‧ 각 부 위원 위촉의 건

- 총무부 7명, 재정부 9명, 문화부 10명, 전례부 내 전례 32명, 제무 25명, 제복 24명, 종묘 25명, 사직 18명, 제1조직부 9명, 제2조직부 10명, 청년부 25명, 여성부 18명 등 총 222명을 상임이사가 검토하여 추천하였으나 이중 제2조직부 위원과 청년부 위원은 담당 상임이사가 검토하여 추천하고, 그 외 부서는 원안대 로 위촉 함.

‧ 연구과제 보고

- 4월 4일 제704회 상임이사회에서 이사장님으로부터 연구 과제를 부여받은 위원장, 상임이사가 추진 계획을 보고 함. ①광주 · 전남지원 등의 분규 해결 방안 : 이병하 분규조정위원장 ②유튜브 개설, 이화보 개편 방안 : 이규원 문화이사 ③재단 설립을 위한 기초 계획 수립 : 이세림 복지재단설립위원장 ④제물·제기 분야 의혹 해소를 위한 전수 조사 결과 : 이석무 총무이사 ⑤제례 관련 교재 개편, 의례 정립 : 이태우 전례이사 ⑥재정 확충 방안 : 이관주 재정이사 ⑦지원·분원 조직 활성화 방안 : 이부용 제1조직이사 ◎ 기타사항 - 시중공파종회 회장 등록에 관한 건은 시중공파종회 임원으로 보고한 이병칠 회장을 파종회장으로 등록 함. - 인평대군파종회 회장 변경 공문 접수에 관한 건은 파종회 내부에 분규가 있음으로 이병하 분규조정위원장이 양측 의견을 청취한 후 협의할 때까지 보류하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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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15기 전수교육 개강 본원은 5월 7일 10시 본원 강당에서 종묘 · 사직 · 환구 · 왕릉 제향을 교육하는 종합15기 전수교육 개강식을 하였다. 전수교육은 국가무형문화재의 전수 및 보존을 위해 매년 실시하는 것으로 금년에는 코로나19의 완화로 인해 65명의 수강생이 개강식에 참여했다. 한편 귀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19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많은 분들이 교육에 임해주셔서 감사하다. 조선 왕실 제향의 전반적 지식 습득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해 주시기 바라며 모든 분들이 수료식에서 뵙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수교육은 종약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와 사직대제의 보유단체 로 선정되어, 2000년부터 종묘대제 전수교육을, 2004년부터 사직대제 전수교육을 각각 실시해 오다가 2008년부터 종합1기 교육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른다. 종합15기 교육은 11월 19일 까지 24회에 걸쳐 매주 토요일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실시할 예정이다.

광평대군파종회, 삼선조 제향 봉행 광평대군파종회(이사장 元夏)는 4월 15일, 종친과 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삼선조(무안대군, 광평대군, 영순군) 제향을 봉행했다. 한편 지난 3월 30일 오전 11시, 파종회 회의실에서 제61회 대의원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다. 재적인원 100명중 89명이 출석하여 2021년도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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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출 결산서(안), 2022년도 수입 · 지출 예산(안)을 원안대로 결의하였 으며, 대의원 정기총회 후 임시이사회 에서 이원하 이사장이 연임되었다. 광평대군파종회는 세종대왕의 지 존위엄을 이어받아 숭조목족, 융화단 결, 성심처사, 지공무사의 종훈을 새 기며 종친 간의 화합을 제일 모토로 묘역관리, 종재관리를 최우선으로 하 는 자손만대 번성하는 종회다. 대동종 약원의 일원으로써 더불어 발전하고 또한 리드해 갈 수 있는 종회가 될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 <광평대군파종회>

덕양군파종회, 장학금수여식 개최 덕양군파종회(이사장 有燮)는 5월 4일 토요일 11시, 성남시 궁내 동에 위치한 정희사 잔디광장에서 정희장학생 및 학부형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희장학금 수여식을 진행하였다. 이날 유섭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 해 “생각이 미래를 결정하고 만들 어 가기도 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각자가 뜻하는 자리에 꼭 진출하여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본원 귀 남 이사장은 “숭조돈종의 종시를 기억하며 자신이 세운 뜻을 반드시 이루어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동량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하라”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덕양군파종회는 매년 20명의 특별장학생과 23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묘소 참배와 함께 강의를 통해 숭조돈종의 미덕을 교육하고 있다. <덕양군파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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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령군파종회, 승경원 건립기금 500만원 헌성 후령군파종회(회장 栢圭)는 4월 4 일, 본원을 방문하여 승경원 헌성기금 500만원을 기탁했다.

정기총회 결과보고 현황 ■ 지원·분원 지원․ 분원명 (지원․ 분원장)

회수

서울 성북구(世雨)

48

22.3.25(금) 고향산천 식당 28 △예산 결산 승인 17:30

금천구(在福)

27

22.4.13(수) 12:00

32 △예산 결산 승인

대전 서구(海演)

32

22.5.9(월) 장수촌 32 △예산 결산 승인 11:00 버섯이야기 식당

강원 동해시(建三)

42

22.4.

서면 총회

충북 충주시(鴻商)

47

22.4.8(금) 11:00

분원 회의실

22 △예산 결산 승인

제천시(炳觀)

66

22.4.30(토) 11:00

분원 회의실

100 △서면총회

전남 고흥군(在德)

일시

장소

분원 사무실

202 22.3.31(목) 좋은자리뷔페 2 10:00

참석 인원

중요의제

사진

△예산 결산 승인

56 △예산 결산 승인

96 △예산 결산 승인

함평군(錫鉉)

63

22.4.15(금) 11:00

장흥군(長守)

39

22.5.9(월) 정남진새마을 △예산 결산 승인 40 ⑥ 11:00 금고 관산지점 △임원 개선 : 今鎬 신임 분원장

경북 문경시(廷煥)

202 22.3.30(수) 2 11:00

제주도(哲憲)

2022

22.4.2(토) 11:00

분원 회의실

은성회관 제주계성회관

38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 應學 신임 분원장

59 △예산 결산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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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서울 성북구분원

②서울 금천구분원

③대전 서구분원

④전남 고흥군분원

⑤전남 함평군분원

⑥전남 장흥군분원

정기총회 개최 및 결과보고에 대한 안내 정기총회 개최 보고는 총회 개최 7일전, 정기총 회 결과보고는 총회 개최 후 15일 이내에 회의록, 회의서류, 임원명단, 총회사진을 첨부하여 본원 조직부에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⑦제주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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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종회 파종회명 (파종회장)

회수

일시

장소

참석 인원

중요의제

익안대군파(汕九)

22

22.3.28(월) 11:00

종중 재실

49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 永九 신임 회장

석보군파(順植)

2022

22.4.30(토) 11:30

탑골솔밭갈비

27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 張根 신임 회장

함녕군파(政秀)

68

영민사

35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 時久 신임 회장

수춘군파(千柱)

42

숭조각 회의실

33

△예산 결산 승인

월산대군파(柱英)

31

파종회 사무실

48

△예산 결산 승인

영산군파(武珩)

61

숙용단 전

49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 壽薰 신임 회장

영양군파(海吉)

16

영산정

14

△예산 결산 승인

22.3.27(일) 11:00 22.4.30(토) 11:00 22.4.29(금) 11:00 22.4.17(일) 10:30 22.4.10(일) 11:00

①수춘군파종회 尊

濬慶墓 陽茂將軍公

②영양군파종회

■ 제향봉행 廟壇陵 園號墓

사진

主 管

祭 官 名 初獻官 亞獻官 終獻官 典祀官 祝 史 執尊者 監 察 贊 者 大 祝 陵 司 齋 郞 執事者

日時

場所

在位者

4.20 11:30

강원도 삼척시 준경길

193

준경묘영경묘봉향회 충노 (회장 鎔瑄)

연상 호직

종순 도재

도재 원규

윤호 운찬

춘하

남정 범민

학순 대용

병용 맹하

맹하 범재

희한 상기

성영

영호

載錄 尹寧富 京鎔 明根 亨洙

鎬奭 錫泳

康根 道珩

載喆 愚天

庚鎬

永慶墓

陽茂將軍公 4.20 妣 李氏 11:30

강원도 삼척시 하사전리

97

준경묘영경묘봉향회 행진 (회장 鎔瑄)

泰陵

文定王后 尹氏 5.16 (中宗大王 繼妃) 11:30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

38

태릉봉향회 (회장 富鎔)

謁者 解說

◇ 준경묘 : 전사관 · 대축 겸무, 가자군 영연 · 인환 ◇ 영경묘 : 전사관 · 대축 겸무, 가자군 동영 · 강식 ◇ 태 릉 : 집례 殷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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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鍾宇 종친, 제11회 변호사 시험 합격 종우(鍾宇, 태종/익녕군 18대) 종친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 업하고 (주)호텔신라에 다년간 근무 중, 법조인의 꿈을 이루기 위 해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제11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종우 종친은 삼성전자 상무이사와 서울도시철도 엔지니어링(주) 대표이사를 역임한 진규(晉圭)의 아들이며, 익녕군파 함천군종회 회장인 혜규(惠圭)의 5촌 조카이다. <익녕군파종회>

社 告 ◑ 본원은 조직운영규정 제7조 ‘특별원원은 본원에서 정한 연회비를 납부하고 종사 발전에 협조한다’는 조항에 의거, 가입 후 3년 동안 연회비를 납부하지 않은 종친을 대상으로 이화보 무료 구독을 중지키로 하였습니다. 특별원원은 21.12.31.현재, 2319명에 이르고 있으나 연회비를 납부해 주시는 종친은 연평균 500여 명에 불과합니다. 특별원원 연회비의 수입이 낮아지고, 물가상승으로 인해 제작비 인상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무료구독 제공 중단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점에 대하여 특별원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하며, 연회비 납부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아울러, 이화보 필자에게 드리던 1년 무료 구독권도 중지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이화보 정기구독 기간이 금번 호(통권 제293호)로 만료되는 종친에게는, 별도 로 지로용지를 첨부하여 보내드립니다. 지로용지에 정확한 주소와 성함을 기재 하시고, 1년 청 독 료 1만 원 을 가 까 운 은 행 이 나 우 체국으로 납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부 (02)76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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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원장 소임을 내려놓으며

이완선(李琓善) 前 경기도지원장

경기는 원래 수도 한양을 에워싸고 있는

재 약 100만 명의 일가들이 거주하고 있습니

지정학적 위상으로 왕권 강화를 위해 진충(盡

다. 경기도 전체 인구 1천3백만 명과 비교해

忠)해야 하는 소임을 맡아왔으며, 전국 각지

볼 때 미약한 수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전주이

에 산재한 조직의 활성화 향방을 갈음하는

씨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크다고

롤 모델이기도 하였습니다.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이루

이처럼 중요한 지역의 지원장 소임을 저같

지 못하고 후임 지원장에게 무거운 짐을 올려

은 미천한 자가 20년 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놓는 것 같아 자괴감을 억제하기기 힘듭니다.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종현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에 힘입은 바 컸습니다.

이제 지원을 앞에 서서 이끄는 막중한 책무 를 내려놓고 자연인으로서 이미 80성상을 넘

돌이켜보면 지난 20년 전 지원장의 소임을

어섰으니 경기지원과 같은 조직을 이끌어 가

맡으면서 조직의 활성화와 자립기반 조성 등

기에는 신선한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 등 한계

영역의 확대를 목표로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자

바라건대 연부역강(年富力强)한 새 일꾼

하는 저의 성벽(性癖)의 산물이었습니다. 목

에게 소임을 맡겨 경기지원이 다시 한 번 도약

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저는 각계에서 활약하

의 계기를 신임 이태섭 지원장님을 중심으로

는 일가들을 한데 묶어 보려고 노력하였으며

걸출한 성씨로서의 위업을 계승, 발전할 터전

특히 청년회, 여성회의 큰 틀을 가지고 웅비할

을 마련해 주실 것을 앙망합니다.

수 있도록 여러 차례에 걸쳐 시·군·구 순회 체육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경기도에는 현

그동안 저에게 보내주신 지지와 성원에 새 삼 감사드립니다.

<세종/화의군 17대 ‧ 始42세>

李花 293호 13


74년 만에 개방된 청와대 - 경복궁 후원 영역, 국보급 문화재 다수 서울의 상징인 청와대가 5월 10일, 전국민 에게 개방됐다. 청와대는 고려 시대에는 수도 밖 궁궐이었 고,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이었다. 일제시 대 조선 총독에 이어 미 군정 장관의 관저로 쓰이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이승

바위,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가 모셔진 칠궁 등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등 60여 건의 문화재가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관광재단은 최근 청와대 건물과 그 안 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했다.

만 대통령이 ‘경무대’라는 옛 이름을 되살렸다. 이후 윤보선 대통령 때 ‘청와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청와대의 얼굴 본관 청와대 본관은 조선총독부의 관사를 대통

청와대는 대통령이 묶었던 관저와 함께 영

령의 집무실로 사용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빈관 등 여러 건물들과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못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1991년에 만들었

일제강점기 경주에서 옮겨 놓은 잘생긴 불상

다. 한옥에서 가장 격조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

이 있고, 임금의 쉼터로 만든 오운정, ‘天下第

지붕을 올리고 15만여 개의 청기와를 얹었으

一福地’(천하제일복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14 李花 293호

며, 본관 앞으로는 대정원이라고 이름 붙은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경무대의 흔적 수궁터

청기와는 청자의 나라였던 고려 시대부터 사용되어 조선 전기까지 궁궐 지붕에 쓰였던 기록이 남아있다. 청기와를 만들기 위해선 전략자산이자 화약의 핵심 원료 염초(질산칼 륨)가 다량으로 필요했다. 자연적인 초석 광 산이 없던 한반도에서 염초는 그 생산이 매우 어려웠으며 군사용으로도 늘 재고가 부족했 다. 그만큼 청기와는 중요한 건물에만 사용됐 다. 현재 남아있는 궁궐의 청기와는 창덕궁에 있는 선정전이 유일하다. 청와대 본관의 지붕에는 잡상 11개가 있다. 경복궁의 근정전에 잡상이 9개가 있는데 청와 대가 근정전보다 격이 더 높은 셈이다. 전체적 인 건물 구조는 궁궐의 목조 건축양식을 기본 으로 하고 있어 한국적인 미가 담겨 있으면서 도 팔작지붕이 중후한 느낌을 가미한다.

관저로 넘어가는 길에는 수궁(守宮)터가 있다. 경복궁을 지키던 병사들이 머물던 곳으 로 이 일대를 경무대라고 불렀는데, 조선총독 부가 전각을 허물고 총독관사를 지었다. 광복 이후에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다가 지금의 청와대 본관을 지으면서 총독관사는 철거했 고, 현재는 총독관사 현관 지붕 위에 장식으로 놓여있던 절병통만 옛 자리에 놓아 과거를 기억하고자 했다.

청와대의 아늑한 숲 소정원 대통령의 사적 공간 관저

본관에서 소정원을 통해 관저로 향할 수 있다. 대정원이 넓은 잔디밭이었다면 소정원

수궁터를 지나 오르막길을 약간만 오르면

부터는 아늑한 숲이다. 정원 사이로 난 숲길이

관저에 도착한다. 관저는 본관과 마찬가지로

아기자기하다. 숲의 나무들도 꽤 울창하여

팔작지붕에 청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 구조로

햇빛이 파고들 틈이 없을 만큼 그윽한 그늘을

이루어져 있다. 생활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만든다.

공간인 별채가 ‘ㄱ’자 형태로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으로 마당이 있다. 마당 한쪽에는 사랑채

李花 293호 15


인 청안당(청와대에서 편안한 곳이라는 뜻)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로 가는 길에

이 있으며, 관저 바로 앞에는 의무실이 있다.

는 시야가 트여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가 한눈 에 들어오는 포인트가 있으니 풍경을 감상하

청와대의 문화유산 오운정과 미남불

기도 좋다. 미남불은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하여 9세기 에 조각된 것으로 자비로운 미소를 띤 부처님 의 얼굴과 당당한 풍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교 양식을 보여주는 대 표 유물로 생김새가 멋스러워 ‘미남불’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본래 경주에 있던 것이 일제 에 의해 서울 남산의 총독관사에 놓였다가 청와대 자리로 총독관사를 옮기면서 함께 이 곳으로 왔다. 외국 귀빈을 위한 한옥 상춘재

관저 뒤로 이어진 숲길로 난 데크를 통해 언덕으로 올라가면 청와대 내의 역사문화유 산인 오운정과 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조여 래좌상)을 볼 수 있다. 오운정은 조선 고종 시대에 경복궁 후원에 지어졌던 오운각의 이름을 따른 것으로 추정 된다. 오운(五雲)은 ‘다섯 개의 색으로 이루어 진 구름이 드리운 풍경이 마치 신선이 사는 세상과 같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현판은 어 린 시절부터 붓글씨에 능통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자이다. 오운정 아래로는 짙은 숲이 펼쳐지고, 초록빛 나무 틈 사이로 청와대 관저와 종로 일대의 풍경이 얼굴을 내민다. 오운정을 지나 보물로 지정된 미남불

16 李花 293호

상춘재는 외국 귀빈들을 맞이하는 의전 행 사나 비공식 회의 장소로 사용된 한옥이다. 과거에는 조선총독부가 지은 일본식 목조건 물인 상춘실이 있었던 장소였으나, 청와대 내에 한옥의 아름다움을 외국 손님에게 소개 할 장소가 없었기에 1983년에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해 대청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된 우리의 전통 가옥을 지었다. 상춘재 앞에는 120여 종의 나무가 심어진 녹지원으로 연결된다. 한옥과 숲을 동시에 감상하기 좋은 공간으로 외국에서 국빈이 오


면 상춘재에서 만찬을 진행했었다. 상춘재

으로 언론의 자유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위로는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 는 침류각이 있다. 침류각은 서울시 유형문화

국빈들을 위한 공식 행사장 영빈관

재로 등록돼 있으며 1989년 관저를 신축하면 서 지금의 자리로 왔다고 한다. 청와대의 숲, 녹지원

청와대 본관 쪽으로 돌아가 왼쪽으로 가면 영빈관이 있다. 대규모 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 행사를 열었던 건물이다. 우리나라를 알리는 각종 민속공연과 만찬 녹지원은 청와대 경내 최고의 녹지 공간이

이 열리는 행사장으로 쓰이거나 회의와 연회

다. 넓은 공간으로 구성 돼 대통령과 국민이

를 위한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18개의 돌기둥

만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던 공간이다. 120

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형태이며 특히

여 종의 나무가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

앞의 돌기둥 4개는 화강암을 통째로 이음새

식수들이 곳곳에 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없이 만들어 2층까지 뻗어 있다. 정면에서

또한, 녹지원에는 한국산 반송(盤松)이 있는

보는 영빈관은 웅장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데 그 수령이 170년을 넘었다. 후궁의 신위 봉안된 칠궁 청와대의 프레스센터 춘추관

영빈관 앞쪽의 영빈문을 통해 나가면 청와 대통령의 기자 회견 장소이자 출입 기자들

대 담장 옆에 붙어 있는 칠궁으로 갈 수 있다.

이 상주하던 춘추관이 있다. 고려와 조선의

칠궁은 조선의 왕을 낳은 어머니이지만 왕비가

역사 기록 기관이던 춘추관에서 비롯된 이름

되지 못한 후궁 일곱분의 신위를 모신 장소다. 李花 293호 17


칠궁은 원래 영조가 후궁 출신인 모친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 육상궁을 건립한 이후, 역대 왕 또는 왕으로 추존되는 이의 생모인 후궁의 묘를 옮겨와 합사하게 된 곳이 다. 육상궁만 있던 자리에 1908년(순종 2년) 연호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이 옮 겨왔고 1929년 덕안궁이 들어오면서 7분의 신위를 모시게 되어 칠궁이 되었다. 칠궁 방향 코스는 전체적인 길이는 좀 더 북악산 청와대 전망대

짧지만 가파른 계단 구간이라 다소 힘에 부치

1.21사태 후 폐쇄됐던 북악산이 전면 개방

고, 춘추관 방향은 오르막길이지만 계단이

되고 북악산을 오르는 등산로 2개 코스도 공

없이 경사가 급하지 않아 비교적 순탄한 편이

개됐다. 하나는 칠궁에서 출발하는 길이고,

다. 어느 길로 가든지 백악정까지는 약 20분

다른 하나는 청와대 춘추관 뒤쪽으로 올라가

남짓이면 다다르고, 백악정에서 다시 청와대

는 길로 두 코스는 중간 거점 장소인 백악정에

전망대까지 약 10분이 소요된다.

서 만나 하나로 연결된다.

18 李花 293호

<청와대 사진자료 : 서울관광재단 · 편집부>


李花광장

자유의 가치와 문화

이범직(李範稷) 본원 이사 · 문학박사 건국대 명예교수

역사발전의 지표 가운데 하나는 자유정신

역사 방향을 정함은 바로 한국고대사로부터

가치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 지표에

축적된 대한민국의 문화 전통이 있었기 때문

접근되었는가?

이다. 단군조선 이래 홍익인간의 정신, 삼국시대

대한민국헌법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 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 언론ㆍ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ㆍ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③ 통신ㆍ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 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④ 언론ㆍ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 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ㆍ출판

통일신라의 화랑도 정신, 고려의 개방적이고 진취적 국정운영 방식 속에서 배양된 차세대 국정운영 이념으로 신유학을 수용할 수 있는 조선의 사대부 지식인들의 역사의식을 주목 할 수 있겠다. 1910년 조선의 정치적 주권은 소멸되고 식민지로 추락되었으나 세계사가 추구하는

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보편적 가치 ‘자유’ 정신에 동참하는 정치 문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화적 결심을 하고 대한민국 헌법에 그 ‘자유’ 정신을 기술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한국고대

여기까지 한국 역사가 발전하는 과정은 순

사 이래 축적된 역사문화 전통이 바탕이 되어

탄치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식민지 시기와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헌법으로 국민의 언론,

1·2차 세계대전 가운데서 한국의 독립과 한국

출판의 자유와 집회 · 결사의 자유를 보호받

역사의 발전 방향을 자유민주주의 정체로 선

는다는 법으로의 천명을 확인할 수 있다.

택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이러한

<세종/광평대군 17대 ‧ 始42세>

李花 293호 19


유네스코가 인정한 광릉숲,

문화유산 광릉 이종갑(李鍾甲) 창원군파종회 감사 / 농경제학 박사

조선왕조는 총 27분의 왕이 계셨으며 왕릉은 42기의 능과 2기의 묘가 있다. 이는 국왕의 능 외에도 왕비의 능과 추존 왕의 능이 있기 때문이다. 총 44기의 왕릉 중 남한에는 42기의 능이 있고, 제2대 정종대왕의 후릉과 태조대왕의 정비이신 신의왕후의 제릉은 북한에 모셔져 있다. 2009년 6월 27일 유네스코(UNESCO)는 조선왕릉 40기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으며, 이는 인류문화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건조물 유형, 건축적 기술적 총체, 경관의 탁월한 사례가 담겨져 있는 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유네스코의 기준에 적합하기 때문에 조선 왕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이다. 북한에 있는 후릉과 제릉 그리고 연산군묘, 광해군묘 등 4기는 등재에서 제외되었다. 조선 왕릉은 1408년 태조 건원릉(健元陵 : 구리시 동구릉)부터 1926년 순종황제 유릉(裕陵 : 남양주시 홍유릉)까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어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기 드문

20 李花 293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왕릉을 조성하면서 작성한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에는 석물의 배열이나 정자각의 조성과정은 물론 왕릉조성을 위해 참여한 단순 노역자의 이름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왕릉의 입지(立地)는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면서 자연의 지세를 존중하는 자연조화적 조형술을 따르고 있어 중요한 자료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제7대 세조대왕의 광릉(光陵)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위치하며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하나의 정각 뒤로 한 언덕의 다른 줄기에 별도의 봉분과 성설을 배치한 형태)으로 조성되었다. 세조대왕(1417 ~ 1468)과 정희왕후(1418 ~ 1483) 윤씨가 잠들어 계신 광릉숲은 1468년 조선왕실에서 “세조대왕 능림(陵林)”으로 지정하여 조선왕조 내내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의 채취도 금할 정도로 보호되었으며,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소중한 자연유산으로 국가가 관리 보전해 오고 있어 동식물의 낙원이자 천연박물관이다.

2021년 광릉제향

일제강점기인 1914년 조선총독부에서도 광릉숲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시험양묘장(試驗養苗

場)을 개설하였으며, 1924년에는 숲 전체를 임업시험장림(林業試驗場林)으로 지정하고 학술 조사연구사업 추진과 더불어 일체의 사적 행위를 금지하였다. 다행인 것은 일제강점기나 6 · 25 동란에도 숲이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지켜져 내려왔다

는 것이며, 이는 정부는 물론 지역주민의 숲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에서 발로한 숲을 지켜내려는 노력의 결과이며, 또한 세조대왕의 영험(靈驗)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62년에는 숲 전체를 천연기념물 제11호로 지정하여 크낙새 서식지로서 “천연기념물보호 법”에 의거 보호되고 있으며, 현재는 산림청(국립수목원, 산림생산기술연구소)과 문화재청(광 릉관리소)이 각각 기능에 맞춰 철저히 관리(국유림 280ha)하고 있어 우수한 생태계 형성 등 종다양성(種多樣性)이 월등히 높아져 우리나라 임업기술과 생태환경 연구의 본산지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광릉숲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생태적 가치와 생물 다양성을 국제적으로 인증받고 李花 293호 21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 보전 능력과 우수한 생태환경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자랑하기 위해 경기도와 산림청이 손을 맞잡고 수년간 노력하여 2009년 6월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등재를 신청하였으며, 그 결과 2010년 6월 2일 파리 유네스코 본부 “인간과 생물권계획위원회 (Man and Biosphere Programme)총회”에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 BR)으로 등재하였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BR)이란 전 세계 산림이나 해양의 생태계에서 생태적 가치가 뛰어나고 생물 다양성이 풍부해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이 필요한 곳을 말하며, 해당 국가에서 신청하면 유네스코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지정하는 특별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과 제주도, 신안 다도해에 이어 광릉숲이 네 번째로 지정되었다. 광릉숲은 생물 다양성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풍부한 곳으로 유명하며, 동식물이 무려 3,737종 이나 서식하고 있고 그 가운데 크낙새, 까막딱따구리, 하늘다람쥐, 장수하늘소, 광릉요강꽃 등 천연기념물이 무려 41종이나 될 정도로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또한 광릉숲 핵심지역은 500여년 이상 원시림 상태로 보전되어 자연천이(自然遷移)에 의한 극상림(極上林)에서 나타나는 “서어나무”가 군락으로 자생하여 건강한 생태숲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어 세계 산림 · 생태학자들의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 실제로 유네스코 BR 심사를 위해 현장을 방문한 세계 생태학자들이 서울 도심에서 한시간 거리에 어떻게 이와 같이 수백년 간 잘 보존된 생태숲이 있을 수 있는지 놀라워하며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다. 생태보고인 광릉숲을 보전하기 위해 국립수목원은 예약 관람제 실시로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매주 월요일은 휴원하고 있으며, 의정부와 남양주 진접을 잇는 광릉숲 관통 도로는 대형 화물차 통행 제한과 주행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하고 있다. 광릉숲 생물권 보전지역 등재 프로젝트는 경기도와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이 공동으로 추진하였으며 계획수립, 주민설득, 관련 기관·단체협의 등 당시 업무를 주관한 경기도청 실무 책임공무원(담당과장)인 필자는 숲의 주인이신 세조대왕의 후손으로 숲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 이 남달라 소명의식을 갖고 업무를 추진하여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광릉숲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세조대왕 릉)과 생물권보전지역(BR)이 중복 지정 되어있는 세계 유일한 곳으로 그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받고 있다. 광릉 숲은 대대손손 보전해 나가야 할 소중한 국가 유산이다.

<세조/창원군 16대 · 始42세>

바로 잡습니다 ■ 292호 24면 자문위원으로 성구(成求, 회안) 前지원장을 추가하고, 77면 44줄 상훈(서울 동대문구)의 연회비는 조경단 헌성금으로 바로잡고, ■ 289호 69면 14줄 昌寧(영해19, 전북 남원시 운봉읍) 종친은 17.11.29.30만원을 내 주셨기에 총 50만원 헌성했음을 추가합니다.

22 李花 293호


조선왕릉실록(9)

성군 세종대왕 영릉(下)

이규원(李揆元) 본원 문화이사 · 시인

성군 세종대왕(이하 대왕)이 등하(登遐)하 자 조정은 극진한 슬픔 속에서도 국상을 선포

올리나이다.”로 비롯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고 국법에 따른 예장 절차에 들어갔다. 유교 이념이 사회 전반을 주도했던 조선 왕조는

“황고(皇考) 대왕께서는 바른 도리에 통하심이

제반 장의 법도가 매우 지엄했다. 장례 기간은

넓고 깊으셔서 슬기롭고 도리에 밝으셨습니다. 마음

6개월에서 1년까지도 소요됐는데 왕릉 조영

이 밝고 뛰어나게 지혜로우셨습니다. 항상 학문에

과 석물 조각, 특히 치산 작업에 많은 시일이

종사하시어 정치 잘하는 근본을 연구해 강목(綱目)

걸렸다. 대왕의 왕계(王系)와 업적을 음각한

‧ 풍습)를 일으키셨습니다. 농사를 권면하시고 형벌

신도비 내용은 비할 데 없는 명문장으로 뭇 백성의 심금을 울렸다. 신도비 명(銘)은 대왕 재위 시 예문관대제

을 넓게 펴셨습니다. 유교를 숭상하시어 풍화(風化 을 측은히 여기셨으며 조상을 존대하고 친척을 공경 하는 데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구족(九族)이 모두 넉넉히 베푸심에 고르심을 받

학과 공조판서를 역임한 정인지(鄭麟趾 ‧

았고 백성 모두는 옹희(雍熙)한 다스림으로 편안하

1396~1478)가 지었다. 시책문(諡冊文)과

였습니다. 예법이 구비되고 음악이 조화되었으며

애책문(哀冊文)을 쓴 신료의 벼슬과 이름은

문화 정치는 일월처럼 빛났습니다. 상서로운 일이

명기하지 않았다. 시책문은 “고애자 사왕(문

자주 나타나 칭송하는 소리가 다투어 일어났습니다.

종) 신(臣)은 삼가 재배하옵고 머리를 조아려

하늘같이 만 년을 계실 줄 알았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말씀 올리옵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천지

하늘이 무너질 줄 뜻하였겠사옵니까. 길이 부여(付

같으신 큰 덕을 감히 형용하여 다 말할 수 없사옵니다. 신자(臣子)의 지극한 정리에 조 심하고 상헌(常憲)에 따라 아름다운 칭호를

與)하신 어려움을 움켜잡고 부르짖으며 가슴을 치고 발을 굴러 슬퍼함을 이길 수 없사옵니다. 조금이나 마 슬퍼 사모하는 마음을 풀고자 삼가 옥책을 받들어 높이 시호를 올리나이다. 李花 293호 23


감히 영문예무(英文睿武) 인성명효대왕(仁聖明

음악을 만드시고 예법을 정하셨으며 저울질하심

孝大王)이라 하옵고 묘호를 세종(世宗)이라 하였사

에 터럭만큼도 틀림이 없으셨습니다. 토지 경계를

옵니다. 아름다우신 영혼께서는 크게 드리는 책(冊)

바르게 하여 부세를 고르게 하셨습니다. 부역을 가

을 깊이 보시고 대대로 변함없는 큰 이름을 드리우도

볍게 하시고 공물을 박하게 하셨습니다. 감옥에 갇

록 굽어 살펴 주옵소서. 순전한 복을 내려 주시어

힌 자를 불쌍히 여기셨고 뽕나무 심기와 농사를

무궁한 보조(寶祚)를 도와주시옵소서.”

권장하셨사옵니다. 늙은 사람을 잘 부양케 하셨고 곤궁한 이들은 은혜로 새롭게 하셨습니다. 옆 자리

이때부터 백성들은 조선 4대 임금을 세종대

에 어진 선비를 맞이하시어 허심탄회하게 충성스런

왕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후부터는 문자를

말을 받아 들이셨습니다. 혹 험한 것을 믿는 자는

모르던 백성들도 억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훈민정음으로 상소를 올렸다. 부패한 신료들 을 질타해 모골을 송연케 했다. 애책문은 그 내용이 애달프면서도 명징(明

깎아 없애고 군사를 다스리셨습니다. 병기도 장만하 여 변방을 굳게 하여 성을 쌓으셨습니다. 백성들이 베개를 높이 하여 편안하였고 경계 침입이 없어 봉화가 끊겼사옵니다. 이제 재위하신지 30년이 넘어 태평한 정치와 거룩

澄)해 전달력이 더욱 강렬하다. 애책문은 오

하신 적공은 탁연히 비할 데가 없었습니다. 오래

늘날의 추도사에 해당한다.

사시기를 바랐사온데 어찌 금상의 자리를 갑자기 버리시나이까. 아아, 슬프옵니다. 근심하고 수고로

“임금님의 관에 휘장을 거두고 상여 실은 수레가

우심이 오래 쌓여 드디어 환우를 얻으시게 되자

바퀴를 멈춥니다. 흰 상여 줄은 서리 같이 둘러

세자에게 명하시어 모든 서정을 참예하고 결단케

있고 붉은 명정(銘㫌)은 구름같이 인도합니다. 우뚝

하셨습니다. 한없이 부지런하심을 잠깐 쉬시고 생명

우뚝 자미궁(紫微宮)을 향하여 어두컴컴한 현대(玄

을 보살피려 하심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떠나시옵니

臺)로 나아갑니다. 비통하게 부르짖음이여, 만백성

까. 갑자기 해가 어둑어둑 빠지고 하늘이 망망함을

의 소리가 슬프고 엷은 안개가 가리었는가. 해와

그 뉘에게 호소하오리까.

달빛도 참담합니다.

궁궐 문을 잠가서 문소리가 적막하옵니다. 임금님

성상이시여, 어이하여 길이 땅을 두드리게 하는

자리에 먼지가 앉음에 응어리진 눈물 흘리는 일이

슬픔을 더하게 하시고 영원토록 하늘이 끝나는 슬픔

이다지도 허무하옵니까. 뜨거운 눈물이 수면의 고기

을 아프게 하시옵니까. 신령의 노니심이 아득하오매

가 뚫릴 만큼 흐르고 곡소리는 뇌성처럼 커서 주체할

움켜잡을 수가 없사옵니다. 거룩하신 가르침은 항상

길이 없사옵니다. 청오(靑烏 ‧ 푸른 까마귀)가 묘지

우러르며 모범으로 삼겠사옵니다. 슬기로운 말씀을

를 점치고 황룡이 앞길을 인도해 대모산(大母山

금란(金鑾)에 내려 주시고 찬란한 빛은 취염(翠琰)

·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을 향해 천천히 나아갈 적

에 나타내 주시옵소서.

광주 한강을 지나 곧장 가옵니다. 들판이 텅 비었으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대왕께서는 성스러움이 하 늘이 내리신 것으로 슬기롭고 도리에 밝으셨습니다. 항상 학문을 닦아 어지심과 효도하심을 정성스럽게

보존하셨습니다. 주기(主器 ‧ 세자)는 바꾸지 못하

며 물조차 목메어 울고 바위굴이 어두워 구름도 가지 못하옵니다. 오호통재(嗚呼痛哉) 오호애재(嗚呼哀哉)려니 애 통하고도 슬프옵니다. 헌릉(태종대왕)과 이어진 산

는데 특별히 세자 자리에 오르시어 온 세상이 바라시

줄기에 영릉(英陵 ‧ 세종대왕)을 모셔 부자가 같은

는 정리에 따르셨사옵니다.

언덕에 계시옵니다. 말갈기같이 봉분을 성토함에

24 李花 293호


때 제정된 『국조오례의』에 따라 최초로 조 영된 합장 능이다. 신도비와 능지의 기술 내용 이 중복된다 하여 세종 이후에는 신도비 건립 이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국조오례의』는 고려 말부터 행해오던 중국식 『주자가례』를 간소화시킨 조선의 독자적 예법이다. 이처럼 대왕은 농사짓는 ▲ 조선 최초의 합장 왕릉, 혼유석은 왕과 왕비 별도로 조성되었다. 용안을 깊이 우러를 길이 없사옵니다. 밤은 길고 긴데 깊고 먼 곳은 아득하고 아득하옵니다. 아아, 슬프옵니다. 거룩한 성인의 생애도 끝남이 있사옵고

역법에서부터 해시계, 측우기 등의 과학기구 발명, 인쇄술의 발전 등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의 문화적 독립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다음은 대왕의 치세 내용과 훈민정음 창제 사실이 기술된 신도비 명을 간추려 압축한 것이다.

어진 이의 수명도 간혹 인색하여 요절하기도 합니 다. 하늘의 뜻을 헤아리기에 믿기 어렵사옵고 까마

“세종대왕께서는 궁에 계실 때부터 천성이

득한 하늘의 이치도 측량할 길이 막연하옵니다.

학문을 좋아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다.

돌아보건대 임금께서는 만고에 빛나는 지극한

늘 침잠 과묵하시며 씩씩하고도 아름다운 위

정사를 펼치셨습니다. 천지가 우러르는 성덕(盛德)

의가 계셨다. 매일 이른 새벽 정장을 갖추시고

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공적 오래오래 청사에 빛나

평명(平明)에 조회를 받으신 다음 정사를 살

면서 민멸(泯滅 ‧ 행적이나 모습이 없어지는 것)하지 않을 것이오며 하늘과 짝이 됨이 끝없을 것이옵니 다. 아아, 슬프옵니다.”

대왕의 가장 큰 업적은 글자가 없던 조선 백성들에게 소리 나는 대로 적어 의사를 전달 하고 기록할 수 있게 한 훈민정음의 창제다. 당시 기득권층 관료나 사대부들은 무지렁이 백성들의 학문적 지평 확대를 두려워했다. 백정이나 노비까지도 쉽게 깨칠 수 있는 훈민 정음의 대중적 확산은 훈구 세력에 대한 도전 이고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대왕의 신도비는 조선 왕실의 능제를 가늠 하는 데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영릉은 세종

피셨다. 경연에 임어하신 후 내전으로 드시면 서사(書史)를 보심에 집중하셨고 다스리지 못한 일이 없으셨다. (이하 경어 생략). 중외에 산재한 사찰과 사단(社壇)을 혁파 하고 노비 모두를 관가에 귀속시켰다. 이에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양파로 그쳐 이단 교도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세종 2년(1420) 봄 비로소 집현전을 설치하고 문학하는 선비 들을 뽑아 모음은 고문(顧問)으로 대비하려 는 제도였다. 세종 3년 9월 태종대왕께 태상왕의 존호를 더했다. 성균관에 납시어 문묘에 배알하고 문사를 뽑았다. 금과 은이 우리나라 토산물이 아닌데도 명나라에서 과도한 공물을 요구하 자 아우 공녕군 인(裀)을 보내 이의 변경을 李花 293호 25


주조케 했고 음률을 조화시켜 아악을 일신했 다. 백성과 함께 즐길 악곡을 마련하고 조종의 공덕을 펼쳐 정대업악(定大業樂)을 짓게 했 다. 역사를 참작해 『오례의』를 엮어 문화의 갖춤을 다하고 비로소 양로 연례를 창설했다. 100세 이상 노인에게는 달마다 주육을, 80세 이상에게는 차별 있게 작위를 내려 주니 그야 말로 은휼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가뭄이 나 홍수 때 수재민을 구휼할 때는 실제에 치중 ▲ 영릉 입구에 있는 세종대왕 상.

관철시켰다. 함길도 북문 연강(沿江 ‧ 두만강) 주군(州郡)은 본래 우리 선조께서 왕업을 이 룩한 고장인데 오랑캐에게 점령당했다. 회령 부령 종성 온성 경흥 경원 등 육진을 개척해 옛 강토를 회복하였다.

하고 공문 따위로 그치지 않았다. 해시계와 측우기 등을 만들게 해 한양의 해돋이와 해넘이를 분간케 했다. 의학 서적까 지 세밀 교정은 물론 새 활자 만듦에도 임금 뜻을 쓰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전함을 수리하고 화통은 더 만들며 갑병(甲兵)을 훈련시켜 국

세종 27년(1445) 걱정 근심으로 옥체가 미

방을 엄밀히 했다. 법률은 밝게 판결하고 소송

령해 금상(문종) 전하에게 명해 모든 정사를

했다. 기예(技藝)의 백공(百工 ‧ 온갖 기술자

결재케 했다. 이듬해(1446) 훈민정음을 창제

은 공평하게 형벌은 정확하게 술은 경계토록

하여 성(聲)과 운(韻)의 분변(分變)을 구진

와 장인)일지라도 그 기능을 정밀하게 발휘토

를 위시해 번어(藩語 ‧ 변방의 각국 언어)와

과 협의한 뒤 실행했으므로 잘못되는 일이

(具盡 ‧ 모든 것을 다 갖춤)하였다. 한어(漢語)

록 했다. 일의 크고 작음에 구애치 않고 대신들

모든 글의 번역에도 통치 못함이 없었으니

없었다.

고금동서에 초출(超出)한 바였다. 세종 30년 (1448) 원손(단종)을 봉하여 왕세손으로 삼 았다. 여러 신하를 예우하되 착한 점을 가상히 여기고 모자라는 점을 긍휼이 여겨 형륙(刑

세종 32년(1450) 2월 옥체 미령함에 의약 치료를 다하고 명산대천에 기도를 드렸건만 끝내 차도가 없었고 17일 별궁에서 승하했다. 거룩하신 임금의 대덕으로 만년 수(壽)를 길

戮) 받는 자가 없었다. 여러 자제를 의방(義

이 누릴 것을 바랐는데 문득 만백성을 버리고

에 대해서도 의장(儀章) ‧ 은교(恩敎)의 등급

노비) 하천배(下賤輩)까지도 소리 내 호곡하

方)으로 교도했고 적서(嫡庶)와 존비(尊卑)

가셨다. 대소 관료 신하로부터 복예(僕隷 ‧

이 분명했다.

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학문을 좋아해 사리를 통달했고 결코 호화 롭거나 교만한 습성이 없었다. 손실(損失)의 법칙을 개혁하여 공법(貢法)을 공평하게 했 고 유사(有司)에 명하여 종(鍾)과 경(磬)을 26 李花 293호

명 황제도 몹시 슬퍼하며 사신을 보내 제사 드리고 고명장(誥命狀)을 보내왔는데 시호 를 장헌(壯憲)이라 했다. 고명장의 내용은 이 러하다. ‘고(故) 조선왕은 인자하고 겸손하며


총명하고 통달하여 선(善)을 좋아하고 사리

번지로 천장됐다. 『국조오례의』에 따른 조

에 밝아 세밀하고 정묘로웠다. 인후한 풍도에

선 최초의 왕릉으로 병풍석을 없애고 난간석

온 나라 백성이 믿고 따르며 빛나는 공적은

만 세웠으며 석물들도 단출하다. 합장릉으로

천하에 뚜렷하였다. 조선에 나라 있은 이래로

혼유석은 왕과 왕비를 따로 배치했다.

왕과 같은 이가 드물도다.’

영릉은 풍수를 운위함이 외람된 천하제일

신(臣 ‧ 정인지)이 생각하건대 조화의 교묘

의 명당이다. 원래 이 곳은 제7대 세조 때

함은 만물에 나타나고 성인의 정대(正大)한

대제학을 지낸 광주이씨 이계전과 영의정을

마음씨는 치정(治政)에서 나타난다. 우리 세

지낸 이인손의 문중 묘역이었다. 평안도 관찰

종 임금께서는 생이지지(生而知之)하신 성

사로 있던 이극배(이인손의 장남)를 예종이

인으로 중극(中極)을 세워 인륜의 정점에 이

불러 자리 양보를 청하니 가족들과 상의해

르셨고 훌륭한 이름이 사해 팔방에 넘치셨다.

어명에 따랐다. 당시 이인손의 묘를 파묘하니

신이 가까이 모신지 10년이고 육조(六曹)로

“이 자리에서 연을 날려 높이 오르거든 연줄을

정부에 드나듦이 20여 년이다. 친히 대왕의

끊고 연이 떨어지는 자리에 묘를 모셔라.”는

빛나는 성덕을 가까이 함에 넓고도 크나큰

기록이 나왔다. 그대로 따르니 연은 서쪽 십

업적을 이룩하시고 천명을 다해 중용을 추구

리 밖에 떨어졌고 이장한 후에도 광주 이씨

하셨다. 참으로 동방의 요순(堯舜)이시다.

문중은 번창했다.

신은 원래 필력이 무추(無觕 ‧ 치밀하지 못

함)하고 문장이 비졸(鄙拙)하여 능히 훌륭하 게 칭송할 솜씨가 없다. 어찌 하늘과 땅의 광대 함을 그대로 그려내며 해와 달이 소명(昭命) 함을 똑바로 본 뜰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받든 어명을 굳이 사양할 길이 없어 삼가 머리 숙여 절하옵고 명(銘)을 지어 올리는 바이다. 하늘 과 땅과 더불어 그 빛이 오래오래 가오리다.” 대왕은 4년 앞서 승하한 소헌왕후(청송 심 씨)를 부왕(태종대왕)이 잠든 헌릉 서쪽에 안 장하고 훗날 자신도 묻히려 했다. 승하 후

국풍(國風 ‧ 왕릉 터를 잡는 지관)들이 물이 나는 흉지라고 만류했으나 대왕의 유명이어 서 합장으로 장사 지냈다. 세월이 흘러 제8대 예종 1년(1469). 영릉은 현재의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 다음호에 계속

<세종/광평대군 19대 ‧ 始 44세>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이용 시 경기도 여주 버스터미널에서 이천 방향 111번 버스를 타고 공군부대 앞에서 내린다. 승용차는 여주 IC에서 왕대리 방향 42번 국도로 가면 이정표가 나온다. 지하철은 경강선 세종대왕릉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문의 (031)885-3123~4. 영릉은 제17대 효종대왕(재위 1619∼1659)의 영릉(寧陵‧사적 제195호)이 영릉 좌측에 예장돼 있어 영녕릉(英寧陵)으로도 회자된다. 효종대왕 영릉은 왕비 인선왕후 장씨와 동원(同原) 상하연봉 릉(上下連封陵)으로 조영된 조선 왕실의 독특한 묘제다. 상하연봉릉은 좌우 혈장(穴場)의 협소로 명혈(名穴)이 상하에 위치할 때 용사하는 왕릉 풍수 비법이다. 제22대 경종대왕(재위 1720∼ 1724) 의릉도 상하연봉릉이다. 효종대왕 영릉은 원래 건원릉(태조고황제) 서쪽에 있었으나 병풍석 에 틈이 생기고 물이 차면서 세종대왕 영릉 옆으로 천장했다. 효종대왕 영릉은 서인의 50년 장기 집권이 몰락한 고산 윤선도(남인)와 우암 송시열 (서인)의 풍수 논쟁으로 유명하다.

李花 293호 27


생육신 남효온과 이생전

이승창(李承昌) 본원 상임고문· 수필가

육신전(六臣傳)을 지은 남효온

족적이 닫지 않은 곳이 별로 없었다. 언제나 시사(時事)에 분개하여 혹은 모악

남효온(南孝溫 : 1454~1492)은 본관이

산(母岳山)에 올라 통곡을 하고 돌아오곤 하

의령(宜寧)이다. 자는 백공(伯恭)이요, 호는

였고 바른 말[直言]과 과격한 노란[激論]을

추강(秋江)이며 또는 행우(杏雨)이다. 학문

거리낌 없이 하니 김굉필과 정여창이 경계를

에 독실했고 옛일, 즉 전통과 문화를 좋아[好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김시습이 항상 남효온

古]했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

에게 이르기를 “나는 세종대왕에게 두텁게

1431 ~1492)에게 수업(受業)을 받았는데,

알아주신 은총을 받았다. 그러니 이렇게 신고

스승인 김종직이 감히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의 생활을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공(公)은

반드시 우리 추강(秋江)이라 하였다.

나의 경우와 다른데 어찌하여 세도(世道)를

그리고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과

계획하지 않고 있는가?” 하니 남효온이 말하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매월당(梅月

기를 “소릉의 일은 천지의 큰 변이다. 소릉이

堂) 김시습(金時習), 안응세(安應世) 등의 제

복원된 뒤에 과거에 응해도 늦지 않습니다.”

현(諸賢)들이 추대하여 중히 여기며 형제같

하니, 김시습이 더 강권하지 않았다. 남효온이

이 여겼다. 성종조 때에 나이가 18세였는데

육신전(六臣傳)을 지으니 문인(門人)들이 화

상소하여 소릉(昭陵 : 단종대왕 모후인 현덕

가 두려워 중지를 청하자, 남효온이 말하기를

왕후 권씨의 능호)의 복원을 청하였다. 상소

“내가 어찌 죽음을 아껴서 대현(大賢) 충의

가 들어가자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마침내 이

(忠義)의 이름을 끝내 없어지게 하리오.”하

세상에 뜻을 끊고 산만한 생활로 일을 삼아

고, 마침내 야사(野史)를 만들어서 세상에 행

명승고적이 있는 곳을 두루 찾아다녀서 그의

하게 하였다. 그 후에 모친(母親)의 명령을

28 李花 293호


따라 힘써 과시(科試)에 응하여 경자(庚子, 성종11, 1480)년 진사과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여러 번 나라에서 불러도 일어나지 않으니 가난하여 집에 거적자리도 없었고 먹

그의 성격이 술을 좋아했는데 어머니가 책

을 거란 숟갈질과 젓가락질 할 것이 없었지만

망하시자 지주부(止酒賦)를 짓고 10년 동안

편안한 마음으로 걱정하는 뜻이 없었다. <海

술을 끊었다. <東儒師友言行> 임자(壬子, 성

東名臣錄> 친한 벗들을 모두 사절하고 왕래

종23, 1492)년에 졸하니 나이 39세였다. 연산

를 끊고는 자제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수양

군 10년 갑자사화 때 소릉 복원의 상소를

(修養)하기 위해서 꺼리는 것이다.” 하였다.

올린 죄를 추론하여 화가 무덤에 미쳐 부관참

그리고 매월 초하루 날이면 동쪽의 아침 해를

시를 당했다. 정조 8년 갑진(甲辰, 1784)에

바라보며 절을 하였는데 또한 그 까닭을 물으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시호를 문정(文貞)이라

면 “내 몸에 병을 낫게 하려고 기도하는 것이

했다.

다.” 하니, 비록 한 집에 사는 식구들이라도 그 속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평생 궁궐을 바라보고 앉지 않은 이맹전(李孟專)

하루는 김종직과 더불어 말하면서 자기의 마음속[心肝]을 다 드러내어 응답함에 끝이

사연

없었다. 김종직이 말하기를 “선생의 병이 지 이맹전(李孟專)은 본관이 벽진(碧珍)이

금 거의 다 쾌유 되었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다. 자는 백순(伯純)이요, 호는 경은(耕隱)으

“병이 나은 것이 아니라, 군자를 만나보니

로 판서 심지(審之)의 아들이다. 세종 9년

스스로 나도 모르게 가슴이 확 열렸노라.”

정미(丁未, 1427)에 문과 정언(正言)으로 상

하였다.

왕(上王 : 문종) 초엽에 지방의 보직[外補]을

김종직이 그의 은미(隱微)한 심증(心證)의

자원하여 거창현감(居昌縣監)이 되었고 청

뜻을 알아차리고 얼굴빛을 고쳐 공경을 더

백리로 소문 나 있었다.

하자, 그의 아내 김씨도 그제야 남편의 병이

단종 2년 갑술(甲戌, 1454)에 시사(時事)

진짜의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맹

의 어려움을 보고 선산(善山)으로 물러가 살

전은 나이 90세에 졸하였다. 정조 5년 신축(辛

면서 눈이 어둡다[昏瞶]고 핑계를 하고는 문

丑, 1782)에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시호를 정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기거하면서 30

간(靖簡)이라 했다.

년 간 궁궐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태종/양녕대군 16대 · 始40세>

◇ 특별원원 가입 안내 ◇ - 가입자격 : 종친 개인이나 파종회 단체 - 가 입 비 : 200,000원 이상 - 연 회 비 : 연 30,000원 이상 (파종회 단체:100,000 이상 / 가입 당해 연도는 연회비 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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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花 293호 31


어머니 봉양일기(10)

이병준(李炳俊) 본원 문화부 수석차장

2021.4.9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어저께 등산길 나가서 봉성재를 거쳐 다덕 재로 가는 산길 중간쯤 지점 능선에서 두릅

2021.4.10 사그라져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두촉을 채취하고 귀가길 갈방 사택 마을길로

지켜보며 나는 수년 전에 읽었던 칼릴 지브란

접어들었다. 신점숙 초등 후배 집 앞을 지나가

의 소설 <부러진 날개>에서

다 얻어온 달래를 다듬어서 요양보호사에게 부탁해 일부는 된장찌개에 넣고 일부는 무쳐

“노인의 눈물은 쇠잔해 가는 육신의 삶의 찌꺼기이

서 점심 반찬용 조리로 끝냈다. 그저께 사온

기 때문에 젊은이의 눈물보다 더 애절합니다. 젊은

도라지도 고추장 무침으로 조리했다.

이의 눈물이 장미 꽃잎 위의 이슬방울과 같다면,

점심 먹고 난 뒤에 어머니께서 가위로 손톱 을 깎으시길래 손톱깎이를 드렸더니 팔 힘이

노인의 눈물은 겨울이 다가오면서 바람에 떨어지는 노란 낙엽과 같습니다.

없어 안 된다고 해서 손톱을 깎아드렸다. 처음 깎아드리는 엄마 손이 아기 손 같은 느낌이었

노인은 나그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으나 손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서 슬픈 느낌

것처럼 젊은 날의 추억 속으로 되돌아 가기를 좋아했

이 왔다. 어머니에게 해드린 것이 며칠 전에

습니다. 그분은 지난 날의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밥을 떠먹여 드린일과 오늘 손톱 깎아 드린 일에 이어 또 직접 해드려야 할 일이 뭐가 발생할까 심리적으로 두려워진다. 자력으로 못 하시는 일들이 소소하게 자주 발생한다는 건 사소하게 지나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잔뜩 32 李花 293호

자신의 가장 좋은 시를 암송하며 즐거워하는 시인처 럼 기뻐했습니다. 현재는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고 미래는 그에게는 침묵의 무덤으로 다가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분은 정신적으로 과거 속에서 살고 있습니 다”


이 작가의 말을 길게 언급하는 것은 지상에 서 마지막 삶의 끝자락을 겨우 붙잡고 애처롭

하게 하는 유익한 시간을 갖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게 버티며 견디는 하루하루의 노인의 모습이 지금 봉양하고 있는 내 어머니 모습과 너무나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죽음을 나이에 결부시켜

도 생생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또 얼마 지나

말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규정하는 나이가 다르다.

지 않아서 똑같은 모습으로 이승을 아니 다녀

과연 몇 살을 죽기 적당한 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간 듯 사라져 가야할 내 자신 인간으로서 운명 적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비춰오고 있기 때문 이다. 중세 일본의 도겐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죽을 때가 오면 그냥 죽어라. 죽음 속에는 죽음 외에 아무것도 없다.” 죽음 속에는 죽음 외에 아무것도 없다! 참으 로 난해한 표현이다. 이 말은, 어떤 것에 완전 히 빠져들면 다른 것은 모두 사라진다는 뜻이 다. 우리가 다른 것을 외면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지금 이 순간이다. 삶은 온전히 삶이고, 죽음은 온 전히 죽음이다. 살아가든 죽어가든, 우리가 그 속에 완전히 잠겨 있으면 그 순간이 전부다 (샐리 티스데일 지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 인용) 아흔 일곱의 어머니를 봉양해 모신지 겨우 1년여 시간이 흘러갔다. 내 나이도 일흔셋이 니 하루에도 수십번 만감이 교차한다.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죽음에 대해 '죽음 과 죽어감에 대한 실질적 조언' 이란 부제가 붙은 샐리 티스데일이 지은 <인생의 마지막

흔히 장수하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불행한 상 태로 오래 산 사람도 봤고 상당히 짧지만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산 사람도 알고 있다. 삶의 질은 삶 의 기간에 달려 있지 않다. 직접 살아보기 전까진 뭐가 좋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라는 샐리

티스데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과연 죽음에 나이를 결부시켜 적당한 때를 일률적으로 규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 이다. 좋은 죽음은 적당한 때에 죽는 죽음을 이를 것인데 이 또한 일률적으로 규명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엔 각자 개인이 자기의 온전 한 생각으로 아마도 죽음 바로 직전에 자신이 자신에게 판정을 내리고 마지막 갈길 가야하 는 일이라 생각된다. 고로 제삼자가 타인의 죽음을 두고 '행복한 죽음' 또는 '행복한 삶'이 었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오로지 자기만이 그 만족도를 스스로 측정해 결론을 내리면서 그러나 타의에 의해 자기의 삶을 온전히 마감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것이 온전히 자기 삶을 완성해내는 이승에서의 마 지막 인간으로서 사명 완수 행위일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태종/온녕군 17대 ‧ 始41세>

순간에서> 책을 읽으며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실질적 사례들을 책 속에서 접하며 또한 접해 있는 내 현실 앞에서 많은 것을 숙고하고 사유 李花 293호 33


[흥미 이면 왕실사] ①

부마(駙馬)의 성을 이(李)씨에서 한(韓)씨로 바꾸다 - 세종대왕의 왕족 성씨개명 사건 -

이상주(李相周) 본원 문화위원 세종대왕신문 발행인

역사는 스토리의 보고다. 특히 조선 왕실 519년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알 듯 모를 듯한 왕실의 이색 이야기를 연재한다.

역사에는 충격도 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발음은 천황폐하인 ‘덴노헤이카(天皇陛下)’

일도 있었다. 세종대왕이 부마의 성씨를 바꾼

다. 물론 이처럼 일제를 조롱하고 반발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세종대왕의 성씨개명

창씨개명은 등록이 거부되었다.

사건이다. 우리가 잘 아는 창씨개명은 일제 강점기의 검은 역사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에 일본제

일제에 의해 강제된 창씨개명은 광복 후인 1946년 10월 23일에 조선성명복구령 공포시 행으로 청산됐다.

국주의자들은 우리나라 사람에 대해 성과 이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국가가 반듯하던 시

름을 바꾸게 강제했다. 한국인의 가계전통과

대에 왜 왕족의 성을 바꾸었을까. 이는 명나라

정신적 기반 말살이 목적이었다. 창씨는 성을

와의 외교 때문이었다. 세종은 동성동본은

새로 만드는 것이고, 개명은 이름을 바꾸는

물론 동성이본의 결혼에 대해 탐탁지 않게

것이다. 일제는 일본식 성과 일본식 이름을

여겼다. 왕족인 전주이씨의 전주이씨와의 결

우리나라 사람에게 강요했다.

혼은 물론이고, 본관이 다른 이씨와의 혼인도

이에 뜻있는 사람들은 견자웅손(犬子熊

孫), 견분식위(犬糞食衛), 전농병하(田農炳

인륜에 거슬린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미 다른 이씨와 결혼한 왕족이

夏) 등의 창씨개명 신고로 저항했다. 견자웅

있었다. 이에 세종은 그 왕족에게 창씨(創氏),

손은 강아지가 된 단군의 자손, 견자웅손은

즉 새로운 성을 만들게 했다.

개똥을 먹다는 뜻이다. 전농병하의 일본식 34 李花 293호

태종의 부마 중 한 명이 이완(李梡)이다.


세종 12년(1430) 10월에 태종의 후궁인 숙선

을 이완(李梡) 대신 한완(韓梡)으로 쓰게 한

옹주 안씨 소생의 경신옹주와 혼인한 이완은

다. 이로써 이완은 사신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전의군(全義君)에 봉해졌다. 종친 중 궁마와

그 해 10월 28일까지 한완으로 살아간다. 임

활쏘기에 능한 그는 세종 24년(1442) 6월

금은 이날 종부시에도 전지한다. “지금부터

북경에 사신으로 가게 됐다. 황후의 책봉을

대소 종친들의 동성혼을 금하고 이를 항식(恒

축하하는 진하사(進賀使)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긴다. 하필

式)으로 삼게 하라” <세종 24년 6월 계측(24 일)>

그의 성이 이씨였다. 본관은 전의(全義)로 전주

이완은 중국에 가 임무를 수행하고, 4개월

이씨와는 타성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세종의

만인 그해 10월 28일에 귀국한다. 그렇다면

생각은 달랐다. 임금이 승정원에게 전한다.

그 후 이완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조선에

“중국은 비록 종실(宗室)이 아닌 사대부도

와서는 한완이 아닌 이완으로 살았다. 세종이

성(姓)이 같으면 혼인하지 않는다. 이에 진하

외교관계, 조선이 인륜에 밝은 나라임을 보여

사 전의군(全義君) 이완(李梡)에게 성(姓)을

주기 위해 일시적으로 왕족의 창씨를 했기

빌려 쓰게 하는 게 어떨까.” 권제가 답을 올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세종은 왕족은

다. “이완의 어미가 한씨(韓氏)입니다. 그 성

본이 다른 이씨와도 혼인하지 못하게 하는

을 빌려 씀이 편하겠습니다.”

법을 만들었다.

세종은 명나라에 보내는 국서에 사신 이름

<세종/밀성군 19대 ‧ 始44세>

전화 사기판매 피해방지를 위한 안내 종친회의 산하기관(예 : 문중뿌리보존회, 숭조연구원, 전주이씨유적연구회, 이씨족보 편찬위원회, 이씨가훈제작사 등) 또는 종친회의 임직원인 것처럼 가장하여, 전국의 종친들께 영상물 및 책자(예 : 전주이씨 대관2편, 전주이씨 보감, 전주이씨의 뿌리 등), 가훈 등을 판매하는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전화로 구입의사를 물어오거나 먼저 안내장과 책자를 보내고 추후 일방적으로 대금을 요청하는 등 다양한 수법으로 판매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도시민은 물론 농어촌의 종친들께 무작위로 행해지고 있으며, 특히 농어촌의 종친들이 그 피해사례를 호소하고 있으므로 지방에 거주하고 계시는 종친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됩니다. 본원에서는 모든 간행물과 제작물은 반드시 이화보에 공지하고 있고, 각 지원과 분원, 파종회, 봉향회 등을 통하여 홍보하고, 또한 보급하고 있으며, 절대로 전화를 이용하여 판매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영상물이나 책자 구입에 대하여 전화 안내를 받은 종친은 반드시 종약원에 확인하시기 바라며 혹시 그것들을 받으신 분은 발행처나 발송처로 반송하시어서 더 이상의 피해를 입는 종친들이 없도록 당부드립니다.

의 :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부

☎ ( 0 2 )7 6 5 - 2 1 2 4 / F A X (0 2 ) 7 4 2 - 1 6 7 6

李花 293호 35


세계의 왕실 이야기 ① 영국 편

영국 왕실의 거름이 된 서사시

베오울프

이기윤(李起潤) 본원 문화위원· 소설가

작지만 크다고 할까, 크지만 작은 섬나라 영

나라이다. 현재는 미국이 주도하지만 이 다섯

국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깊이 있게 아

나라의 공통점은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

는 사람을 만나기는 드물다. 나라 이름부터 헷

화적 주류가 앵글로색슨족이라는 점, 영국에

갈린다. England라는 사람도 있고 Britain 또

서 유래된 역사를 공유한다는 점, 영어가 제1

는 Scotland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공용어이고 기독교, 특히 개신교를 국교 수준

UK(United Kingdom)라고도 한다. 공식 국명

의 신앙으로 삼는 국가들로 최우방국이자(군

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

사정보를 포함하여) 핵심적인 가치를 공유하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는 네트워크이다.

Northern Ireland)이다. 스코틀랜드 · 잉글랜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도 대영

드 · 웨일스 · 북아일랜드로 구성돼 있는데, 지

제국 시절의 영광을 강조하며 독자노선을 고

역마다 독립적 성격이 강해 누가 국적을 물으

수했다. 그러나 1956년 수에즈 전쟁에서 미국

면 출신 지역으로 답하는 게 일반적이다.

과 소련의 핵 협박에 굴복한 뒤, 더는 초강대국

영국 연방도 있다. 본국과 함께 캐나다, 호

이 아닌 현실을 인정하고, 이후 철저하게 미국

주, 뉴질랜드 등 54개 국가로 구성된 국제기구

에 협력하는 나라로 변신해 오늘로 이어오고

이다. 대부분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다. 호주 같

있다.

은 경우는 영국계 백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 고 있다.

현재의 영국도 이렇게 헷갈리는데 역사 ― 그것도 왕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더 헷갈린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도 있다. 영국, 미

다. 이 지역도 고대 원주민이 있었을 것이다.

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핵심 동맹 다섯

그러나 기록은 기원전 4세기경 인도유럽어족

36 李花 293호


색슨족(독일 북쪽 작센지방 민족)에게 구원 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들개를 막으려고 늑대를 불러들인 격이었다. 영국에 온 색슨족은 살기 좋은 땅임 을 알자 침략자로 돌변했다. 여기 앵글로 족 (게르만족의 하나)이 가세하자 켈트족은 도 망쳐 지금의 스코틀랜드(Scotland), 웨일스 (Wales), 아일랜드(Ireland)로 흩어졌다. 평 야 지대인 잉글랜드 지방은 앵글로족과 색슨 족의 땅이 되었다. 그들은 합쳤다. 그것이 지금 영문학 최초의 잉글랜드 서사시 베오올프

인 켈트족이 대거 이주해 살면서 시작된다. 씨 족이 모여 사는 부족 국가로 여기저기 흩어 져 살았다. 그러다가 기원전 55년경 카이사 르(시저)가 이끄는 로마의 침략으로 잉글랜 드는 로마제국이 지배하는 영토가 되었다. 템 스강 가에 요새를 만든 로마 군대는 물자 수 송기지(항구)를 만들고 론디니움(Londinium) 이라 불렀는데, 이 항구가 오늘날 영국의 수도 런던(London)이다. 켈트족은 로마의 앞선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라틴 문화의 뿌리를 내렸다. 로마의 지배는 무 려 300년간 지속됐는데 이 시기 로마는 전쟁 없는 평화 태평성대(Pax Romana)였다. 영국 역사의 지각 변동은 4세기부터 시작 4세기 초 게르만족이 로마 본국을 위협하자 영국에 주둔하던 로마군이 돌아갔다. 영국 역사의 지각 변동은 이때부터 시작된 다. 로마군이 돌아가자 북쪽의 스코트(Scot) 족이 조상의 땅을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살 기 좋은 남쪽 지역을 침략했다. 로마인과 어 울려 평화롭게 살던 켈트족은 위기에 몰리자

세계를 지배(?)하는 앵글로색슨족의 시작이 고 England라는 지명도 이들 종족의 이름에 서 비롯되었다. 앵글로색슨족이 정주민이 되면서 기독교 개종이 이루어졌다. 577년 그레고리 교황이 영국 선교를 위해 Sir. Augustine를 파견하 였고, 8세기 이후 영국 전 지역은 로마가톨 릭 교회에 귀속되었고, 왕들은 로마 교회의 제도와 조직 등을 받아들였다. 명예를 열망했던 자 ― 베오울프 이 시기에 고대 영어로 된 영문학 최초의 잉 글랜드 서사시 베오울프(Beowulf)가 탄생한 다. 줄거리는 설화나 민담에 흔한 한 영웅의 일 대기다. 예어트 족의 장수 베오울프가 이웃 나 라 덴마크에 출현한 괴물 그렌델을 물리치고 영웅으로 부상하여 왕이 된다. 이때 화룡(火

龍)이 등장 베오울프 왕국을 초토화하자, 베오 울프는 이에 용감하게 맞서 용을 살해하고 자 신도 장렬한 죽음을 맞는 내용이다. 평범한 줄거리지만 베오울프가 특별한 것은 영웅주의 도덕관을 다룬 서술자(작자는 미상 이다)의 기교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군주를 중 심으로 소수의 정예용사가 뭉쳐 코미타투스 李花 293호 37


영국 왕조 계보 시기 802~1066년 1066~1154년 1154~1399년 1399~1471년 1471~1485년 1485~1603년 1603~1714년 1714~1901년 1901~현재

왕조 웨섹스 왕조 노르만 왕조 플랜태저넷 왕조 랭커스터 왕조 요크왕조 튜더 왕조 스튜어트 왕조 하노버 왕조 윈저 왕조

유래지 북유럽 색슨족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 프랑스 앙주지역 호족 플랜태저넷 방계 벨기에 헨트 케임브리지 백장, 요크 공작 랭커스터 왕가의 후손 스코틀랜드 하노버 스튜어트가의 외손자 독일 작센, 빅토리아여왕 후손

대표적 군주 앨프레드 정복왕 윌리엄 사자왕 리처드 헨리5세 에드워드4세 엘리자베스1세 메리2세 빅토리아여왕 엘리자베스2세

(Comitatus)를 만든다. 군주는 평화 시에 자신

전설적 지도자 알프레드 대왕이 등장, 영토를

을 따르는 이 용사들에게 술과 보물을 하사하

지킨다. 이어 928년, 알프레드의 손자 애덜스

는 동시에, 법적이고 경제적인 안정을 보장한

턴이 노섬브리아를 정복하면서 잉글랜드 전

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용사들은 군주와 소속

지역에 직접적인 지배권을 갖게 되자 명실상

집단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을 다

부한 최초의 국왕이 된다. 비로소 나라다운 나

짐하는 충성맹세를 다진다. 이러한 결의가 실

라 ― 영국 왕국이 태어나고, 이것이 앵글로색

제 전투 현장에서 행동으로 입증되었을 때 진

슨족의 첫 통일 국가이다.

정한 영웅이 된다. 이점, 용사들의 영웅주의 행

영국 왕실은 이렇게 앵글로색슨 시대 탄생

동철학을 물질에 기반을 둔 쌍무적 계약 관계

한 왕조를 시작으로 중세 노르만 왕조, 플랜테

에 끝나지 않고 명예 획득이라는 이상주의를

지넷 왕조를 거치고, 근세로 접어들어 랭카스

포함시키면서 온전히 구현한 것이다. 영웅주

터, 요크 왕조, 튜더 왕조 스튜어트 왕조, 하

의 용사들은 종교의 불멸성과 같이 영웅적 업

노버 왕조. 그리고 현재의 윈저왕조로 이어지

적으로 얻게 되는 명예가 자신들의 이름과 함

는데 그 계보가 단순하지는 않다.

께 후대에 영원히 전해진다는 강한 믿음을 갖

영국 왕실도 세습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앵

게 된다. 서사시는 이러한 명예를 가장 열망했

그로, 색슨, 켈트, 노르망, 스코트 등 영국 프랑

던 자가 곧 베오울프라는 헌사로 끝맺는다.

스 독일 덴마크 지역의 부족 중심 군주국들이

8-9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베오울프

얽히고 설키면서 정략적 결혼에 의한 변동, 잦

는 게르만 전통에 입각한 운명관 및 명예 충성,

은 패권 전쟁으로, 우리의 고려 480년 조선 500

복수를 기반으로 한 영웅주의 사회의 행동철

년처럼 길게 이어진 왕조는 어느 곳도 없다. 다

학을 영국에 심는데 그치지 않고, 명예 권위 격

만 재미있는 것은 근세 영국의 왕조 역사에 조

식 등을 중시하는 영국 왕실의 규범이 된다.

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던 세조와 문종 같은

앵글로색슨족은 우리나라 가야국처럼 7개

일화, 장희빈 같은 비운의 국모, 왕비들이 많았

의 작은 나라로 갈라져 있었는데 8세기 후반, 바이킹의 침략을 계기로 뭉치게 되었고 이때

38 李花 293호

다는 사실이다. <다음 호에 계속>

<태종/효령대군 17대 · 始41세>


영시(英詩) 한 수

IN F A N T JO Y (어린이의 기쁨) William Blake (윌리엄 블레이크)

“ I h a v e

n o

n a m e:

(나는 아직 이름이 없어요:)

I a m

b ut tw o

d a y s old.”

(태어난 지 이틀 밖에 안 되었답니다)

P r e t t y J o y ! (아름다운 기쁨이여!) S w e e t J o y, b u t t w o

d a y s old.

(이틀 바기야, 달콤한 기쁨이구나.)

w h a t s h a ll I c a ll t h e e ?

S w e e t J o y c a ll t h e e :

(너의 이름을 뭐라고 부를까?)

(달콤한 기쁨이라 부르자:)

“ I h a p p y a m , (나는 바로 행복이에요,)

T h o u

J o y is m y

I s i n g t h e w h il e , (나는 노래 부르고,)

n a m e. ”

(기쁨이 내 이름인 걸요.)

S w e et jo y

b e f a ll t h e e !

(달콤한 기쁨이여, 너와 함께 하여라!)

d o s t s m il e , (웃어라 아가야,)

S w e et jo y

b e f a ll t h e e !

(달콤한 기쁨이여, 너와 함께 하여라!).

★천재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영국 런던 출신으로 아버지는 양말 제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12∼20세 때 출판한 《습작 시집》은 해맑은 신선함, 참신한 상상력, 강렬한 서정성 등으로 18∼19세기 영국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블레이크는 시작(詩作) 외에도 작가, 화가, 삽화가, 예언가로도 맹활약해 당시 영국 사회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우뚝 섰다. 인간 내재 심성을 따뜻이 보듬는 영혼의 시 세계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그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나 교회 관습과는 거리가 먼 독창적 세계관의 소유자였다. 1794년에 집필한 예언서《유리즌의 서》는 천재의 작품인지, 광인(狂人)의 작품인지 현재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합리주의와 물질주의 철학에 과감히 도전했다. 인간의 상상력이 다른 어떤 인지 능력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했다. “미술은 생명의 나무고 과학은 죽음의 나무”라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李花 293호 39


조선초 공신과 삼공신(개국·정사·좌명) 회맹제

이은표(李銀杓) 광평대군파종회 이사

공신은 국가와 왕실을 위하여 공이 많은

년) 대청관(大淸觀) 북동(北洞)에서 거행했

인사를 호칭한다. 조선왕조는 건국 직후 3차 에 걸쳐서 책훈하였다. 개국공신을 태조대왕

다. 회맹한 삼공신의 서약문에는 개국공신(開

원년(1392년)에, 정사공신은 제1차 왕자의 난 직후인 정종 즉위년(1398년), 그리고 좌명 공신은 태종대왕 즉위년(1400년)에 책훈 하 였다. 이들 삼공신의 책훈은 왕조의 건국과 더불어 왕자의 난이나 왕의 옹립 등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사건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져 서 책훈 된 것이다. 공신의 책훈은 국가에 여러 가지 어려운

國功臣), 정사공신(定社功臣), 좌명공신(佐

命功臣)들 66인이 서명을 하고 맹세하였다.

태종대왕은 그 맹세한 글에 서압(署押)하였 으나 그 모임에 친림(親臨)하지는 아니하였 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중인 삼공신회맹 문을 열거해 보면 아래와 같다. “조선 국왕은 삼공신을 삼가 모두 거느리고 감히 황천(皇天)의 상제(上帝)와 종묘(宗廟)

일이 일어났을 때 곤경을 극복하는데 기여를 한 인사들을 포상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이 다. 조선 건국 후 10년이 지나지 않은 기간에 3차에 걸쳐 공신책훈을 한 것에 미루어 당시 정치적으로 매우 격동기였음을 알 수 있다. 태조 1년 9월 28일 병오(1392)년 개국공신들 이 왕세자와 여러 왕자들과 회동하여 개성 왕륜동(王輪洞)에서 맹세하였다. 회맹제는 태종 4년 11월 16일 갑인(1404

40 李花 293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삼공신 회맹문.


사직(社稷)과 산천(山川)의 여러 신령(神靈)

징험(徵驗)으로 나타난 것이니, 가히 두렵지

에게 밝게 고(告)합니다.

않겠습니까?

엎드려 생각하건대, 나라에서 군신과 붕우

소자(小子)인 내게 미쳐, 왕위를 계승한 뒤

(朋友)를 가지는 것은 가정에서 부자와 형제

에도 또한 좌명(佐命)한 신하와 더불어 같이

를 가지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충성과 신의와

맹세하여 피를 마시고 더불어 보전할 것을

성실로 그 마음을 굳게 맺어서 길이 종시(終

기약한 지 이제 여러 해입니다. 이때부터 삼맹

始)를 보존하여야 하는데, 하물며 상제(上帝)

의 신하가 마음을 합하여 나를 도와, 이제

에게 신하가 임금에게 굳게 약속을 지켜 충성

지금에 이르도록 평안하였으니, 가위(可謂)

을 하고 피를 마시고 같이 맹세하는 사람들이

화합하여 틈이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전후

겠습니까? 생각하건대, 우리 태상왕(太上王)

(前後)에 같이 맹세하는 데 참여하지 않는

은 신무(神武)한 자질로 하늘과 사람의 도움

자가 그 마음이 오히려 미안(未安)하게 여길

을 얻고, 소자(小子)인 나도 또한 능히 조력

까 일찍이 염려하여, 특별히 길일을 가려서

(助力)하여 큰 기업(基業)을 도와서 이룩하였

이에 삼맹(三盟)의 신하를 모아 상하(上下)의

습니다.

신기(神祇)에게 밝게 고(告)하고, 다시 전의

개국하던 처음에 먼저 훈신(勳臣)과 더불

맹세를 찾아서 그 뜻을 굳게 합니다. 이미

어 같이 맹세하여 충성과 신의를 굳게 하였으

맹세한 뒤에는 각각 스스로 면려(勉勵)하고,

나, 뜻하지도 아니하게 권간(權奸)이 사심(私

충성으로 서로 믿고 은애(恩愛)로 서로 좋아

心)을 품고 맹세를 저버리고 어린 세자를 끼고

하고, 친애하기를 골육(骨肉)같이 하고, 굳건

적통(嫡統)을 빼앗고, 우리 형제를 해치기를

하기를 금석(金石) 같이 할 것입니다. 정성을

꾀하여 장차 우리 종사를 위태롭게 하였는데,

다하고 충성을 다하여 왕실(王室)을 협보(夾

다행히 천지 종사의 음덕(陰德)의 도움에 힘 입어, 충성스럽고 어진이가 의(義)에 분발(奮

輔)하며, 그 사사 감정을 잊고 오로지 공도(公 道)에 따르고, 항상 사직(社稷)을 평안하게

發)하니, 흉도(凶徒)가 스스로 궤멸(潰滅)되

하고 국가를 이롭게 하기를 생각하며, 부지런

었습니다. 적자(嫡子)로서 장자(長子)로서

히 마음을 합하여 종시(終始) 변(變)하지 아

상왕(上王)을 부액(扶腋)하여 세우니, 천륜

니하고, 길이 복록(福祿)을 누려 함께 안전과

(天倫)이 이에 바르게 되고 종사가 다시 안정

영화를 보존하여 세세 자손(世世子孫)이 오

되었습니다. 또 훈신(勳臣)과 더불어 같이 맹 호(盟好)를 맺었는데, 얼마 되지 아니하여 간 사한 이가 다시 그 맹세를 저버리고 흔단(釁 端)을 얽어 집안끼리 싸우게 하여, 거병(擧兵)

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훈친(勳親)과 장상 (將相)이 시기에 응하여 평정(平定)하여, 죄 인은 곧 잡아 이미 죄를 복죄 하였습니다. 이것은 맹세를 어기면 반드시 죽이는 것이

호암미술관 소장, 겸재 정선의 북단송음.

李花 293호 41


래 찬란한 문화시대와 태평성대 열리는데 기반

늘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로 사정(私情)을 품고 간사한 마음을 끼거나, 맹세를 어기고 몰래 의심하여 두 가지

을 다지고 근세에 이르러 27대왕과 519년이라 는 조선왕조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마음을 품거나, 겉으로는 친한 척하고 속으로

회맹단은 현재 경복궁 북동쪽, 현재 청와대

는 꺼려하거나, 붕당(朋黨)을 나누어 결당(結

에 위치하고 있다. 겸재 정선의 북단송음에

黨)하거나, 나라를 경복(傾覆)하기를 꾀하거 나, 사직(社稷)에 관계된 죄를 범하는 자는 마

사방으로 된 제단이 조선시대 왕실에서 제사 를 지낸 제단이다.

땅히 법으로 논하자고 맹약문에 서명하였다.

요즘 새로이 들어선 정부가 청와대를 개방

참석한 삼공신(三功臣)은 모두 66인이었

했다. 조선왕조를 개국하고 삼공신회맹제를

는데, 맹세가 끝나고 예궐(詣闕)하여 큰 연회

주관한 태종대왕과 공신 그리고 신하들이 회

(宴會)를 베풀어 이들을 위로하였다. 공신에

맹단에 모여 충성을 다짐하는 회맹제의 모습

게는 훈공에 따른 노비와 토지를 하사하고

을 그려보고 싶다.

<세종/광평대군 20대 · 始45세>

자손에게는 은전을 베풀었다. 이후 조선왕조는 세종대에 이르러 단군 이

책소개

개 정 증 보 판

이 동 우

H ow

to

성 명 학

N am e

전 서

- 전국 유명서점과 인터넷 절찬리 판매중 초판 절판으로

개정증보판

발행 -

s효령대군 15대손 東宇 s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서울특별시 지원 감사 *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서울시 서초구분원장 *인릉(순조숙황제)봉향회 회장

저자 이동우

*성균관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수상:녹조근정훈장,청백봉사상등 다수

*서초구민신문,매일폴리스뉴스(논설위원) 이름해설가, s서초구청 OK민원센터장,종합민원실장,서초2동장,호적계장 *KBS TV등에 160회 출연채널A.TV.명랑해결단에 박근혜,노태우,김대중 이승만대통령과 이병철 이건희 구본무 정몽구회장 등 이름풀이 출연 *작명경력45년,서초구청에서 만 16년간 6,000여 명 작명 *서울시 작명의 달인 선발(2010년)

*서초구 서운로13중앙로얄 빌딩 1404호 양재역1번 출구 서초구청 외교센터 건너 *명품 신생아 작명, 개명, 아호,상호 문의

펴낸곳: 한솜미디어

42 李花 293호

H.P 010-2804-6438, 02)565-6438 정가15,000원(우리은행1002-115-265927이동우)


선조왕자 인흥군 묘역 · 신도비, 도지정 문화재 확정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선조왕자 인흥군의

적 자료를 근거로 오는 7월 ‘인흥군·낭선군의

묘역 및 신도비가 지난해 11월 경기도 기념물

예술세계와 가치(가칭)’ 학술대회를 개최할

지정 예고를 거쳐, 금년 5월 2일 경기도 지정

예정이다.

문화재(기념물)로 확정됐다.

<제공 / 인흥군파종회>

인흥군 묘역은 인흥군의 장남인 낭선군 이 우가 1651년부터 1690년까지 40여 년 간 수차례 개수(改修)하며 조성한 곳으 로 종친 3대의 묘소와 석물들이 원형을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인흥군 묘역에 는 봉분 1기, 신도비 2기, 기타 석물 13점 등이 있으며, 묘역에는 1662년에 제작한 규수방부(圭首方趺) 형식의 신 도비와 1683년에 다시 건립한 개석귀 부(蓋石龜趺) 형식의 신도비가 있다. 낭선군은 1670년 ‘정효공가승(靖孝

公家乘)’을 간행하여 묘소 조성과정과 석물의 배치 등을 기록하고, ‘백년록 (百年錄)’과 ‘잡저록(雜著錄)’에는 자 신에 대한 기록과 부친인 인흥군을 추 모하고 기록했다. 낭선군은 평생을 종 친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고, 40년에 걸쳐 조성한 선친의 묘역과 석조문화 재들은 17세기 최고의 문화유산이라 고 전했다. 포천시는 경기도 지정문화재 ‘인흥 군 묘역 및 신도비’ 지정을 기념해 학술 李花 293호 43


진경희 박사의

구강암이란?

진경희(陳京熙) 서울뉴욕치과 원장

현대의학 발전의 혜택으로 교통사고와 암 발병을 피할 수 있다면 100세를 구가하기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고들 한다.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암 정복을 위하여 모든 의학이 암 극복에 총력을 기울여왔으나 아직 암의 근본적 발생 원인이나 치료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암은 우리 몸의 어느 부위에나 발생함을 볼 수 있으며 특히 구강에 발생하는 암을 구강암이라 한다. 암이란 세포의 비정상적 성장을 의미한다. 세포가 정상적인 조절 기능을 상실하여 지속적으로 증식하거나, 인근 조직에 침투하거나, 인체의 먼 부위로 옮겨가는 전이 현상을 본다. 구강암은 잇몸과 입천장을 비롯해 혀와 혀 밑 부위, 볼 점막, 입술 및 인두 등 구강 내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이 가운데 혀에서 생기는 설암이 가장 흔하다. 증가 추세의 구강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구강암으로 치료받은 남성은 1974명에서 2629명으로 약 33% 증가한 반면, 여성은 같은 기간 1365명에서 1689명으로 23%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구강암은 매년 발생률이 남녀 모두 증가하고 있으며, 여자보다 남자에서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구강암의 정확한 발생 원인도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흡연과 음주가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알려졌다. 흡연자는 비흡연자 보다 5~6배, 매일 5잔 이상의 음주를 하는 경우 음주하지 않는 사람보다 5~6배 구강암 발생 위험이 높다고 한다. 또한 하루 2갑 이상 흡연과 4잔 이상의 음주를 하는 사람의 경우 흡연과 음주를 모두 하지 않는 사람보다 구강암 발생 위험이 약 35배로 높아진다고 한다. 이외에도 불량한 보철물에 의한 만성적인 구강 연조직의 자극도 44 李花 293호


백반증과 같은 전암 병소를 거쳐서 구강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구강암은 혀의 후방부위 인두나 안구, 두뇌, 상악동 등 생체주요부위와 인접해 발생하는 관계로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수술 후 외관손상이나 언어기능 장애 등을 초래하는 위험한 암에 속한다. 구강 병변 발생 시 치과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조직검사를 시행해 구강암 여부를 감별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암에 비해 조기 발견이 용이한 편이다. 정기적인 구강검진을 통해 조기 발견 후 즉시 치료가 이뤄진다면 최소한의 후유증을 동반하며 완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조기 발견을 못 할 경우 심각한 후유증을 가져오는데, 구강암 발생 부위에 따라 암 치료 후에도 저작, 발음, 연하 등의 기능 손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얼굴 외형 손상이 동반될 경우 사회로의 건강한 복귀를 어렵게 함은 물론 정신적 장애까지 동반하게 된다. 몇 해 만에 내원한 40대 여성의 구강검진 중에 혀 밑에 하얀 줄무늬의 백태가 발견되어 조직검사결과 상피세포암으로 판정되었고 조기치료를 받고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한 케이스가 있었다. 이런 경우 발견이 늦거나 치료가 지연되어 혀와 인후 후방부위가 외과적 치료에 포함되었다면 평생 수술후유증으로 고생했을 것이다. 정기 구강검진과 조기 발견 및 적절한 치료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좋은 증례라 하겠다.

필자 약력 △ 서울대 치과대학 졸업, 동 대학원 예방치의학 전공, 박사학위 취득 △ 미 뉴욕 콜럼비아대 치과대학 치아신경치료 전문의 과정 졸업 △ 미 코네티컷 브리지포대학 건강의학 대학장 역임 △ 미 맨해튼 치과병원 개원 치아신경치료 전문의 △ 현 서울뉴욕치과 원장

李花 293호 45


長壽負子(장수부자) - 오래 살아서 자식에게 빚을 지다 중헌(中軒) 이관재(李觀宰)

我生軟弱 婆禱三神 [아생연약 파도삼신]

백리 밖 멀리서 살면서도 애비 의식주를 걱정

내가 약하게 태어났으므로 할머니가 삼신에

하네.

게 빌기를

難省朝夕 不安天倫 [난성조석 불안천륜]

完然夭相 神助防夭 [완연요상 신조방요]

아침 저녁으로 살피기 어려워 천륜이라 편치

요수할 상이 완연하니 신께서 도와 요수를

가 못하나

막아 주소서

幸有四子 週一交省 [행유사자 주일교성]

三七連禱 至誠感天 [삼칠연도 지성감천]

다행히 넷 자녀를 두어 주일마다 교대로 살피

삼칠이 될때까지 계속해 비시니 지극 정성이

네.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月一造饌 覲親通情 [월일조찬 근친통정]

不過甲境 何如望百 [불과갑경 하여망백]

한달에 한번 반찬을 만들어 어버이 뵙고 정을

환갑도 넘기지 못한다 하셨는데 어찌해 백세

나누는데

를 바라보도록 사는가

猶獨女息 多如關心 [유독여식 다여관심]

多經風波 穩全至今 [다경풍파 온전지금]

유독 여식이 관심을 더 많이 쏟는 것 같다.

많은 풍파를 경험하고도 결점없이 오늘에

頻送間食 朝夕問安 [빈송간식 조석무안]

이르렀네.

자주 간식도 보내 주고 아침 저녁 안부를 묻는

自力偕老 子之爲憂 [자력해로 자지위우]

자신의 건강으로 해로해도 자식들이 걱정을

昨送炙鷄 佳肴一盃 [작송자계 가효일배]

하는데

어제는 치킨을 보내주어 맛좋은 안주에 술

無力獨老 子不安心 [무력독노 자불안심]

한잔 하였네.

힘도 없이 홀로 늙어가면 자식 마음도 편할

今送晩餐 肉膾雜飯 [금송만찬 육회잡반]

수 없다.

오늘 보내온 만찬은 육회 비빔밥으로

百里遠居 衣食住患 [백리원거 의식주환]

與肉界醬 利用朝餐 [여육계장 이용조찬]

46 李花 293호


육계장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였네.

犯罪天道 必隨收監 [범죄천도 필수수감]

隔日透析 晝送療院 [격일투석 주송료원]

천도를 어겨 죄를 범하면 반드시 투옥됨이

하루 건너 투석시켜야 하고 주간에는 보호시

따르겠네.

설에 보내면서

王主忠孝 民主自由 [왕주충효 민주자유]

然不懶職 五重苦生 [연불라직 오중고생]

왕정시대에는 충효를 주장했지만 민주주의

그렇다고 직장은 게을리 할 수 없어 다섯 겹으

시대는 자유를 주장하는데

로 고생을 하네.

至今民主 孝烈失色 [지금민주 효열실색]

自鼻三尺 何修父鼻 [자비삼척 하수부비]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이나 효자 열녀는 빛을

자신의 코가 석자나 빠졌는데 어떻게 애비

잃는구나.

코를 딱을 수 있으랴

古色蒼然 毋主孝烈 [고색창연 모주효열]

如今孝父 猶恐受孝 [여금효부 유공수효]

예스러운 풍치는 그윽한데 효자열녀 주창하

지금 같이 아비에게 효도 함은 오히려 효도

지 말고

받기가 겁이 나니

至今自重 自生思人 [지금자중 자생사인]

無廉望百 還爲苦子 [무염망백 환위고자]

지금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중히 여겨 자신이

염치없이 백세를 바라보도록 살아 도리어 자

먼저 산 다음에 남을 생각해야지.

식에게 고통만 주는구나.

自存思親 自食給人 [자존사친 자식급인]

過猶不及 適齡八十 [과유불급 적령팔십]

자신이 존재해야 부모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이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아 팔십년 삶이

먼저 먹어야 남에게 줄 수 있다.

적당한 나이라면

<태종/온녕군 18대 ‧ 始42세>

以上偸生 犯罪天道 [이상투생 범죄천도] 그 이상 욕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은 하늘 도리 를 어겨 죄를 범하는 것이니

李花 293호 47


아버지의 꿈

이언수(李彦秀) 본원 문화위원 · 시인

시조(始祖) 이 한(李翰) 신라 시대 이전

파도에 흔들리는 뱃전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사국시대 열국시대를 넘어 삼성조(三聖祖)

원(元)나라 다루가치(達魯花赤) 익조(翼祖)

시대

행리(行里)의

머나먼 그 옛날 신화시대를 거슬러

아버지

세상이 처음 열리고 인간이 사랑으로 가족을 이룰 때

살기 위해 원나라 말을 타고

자식이 있어야만 불리는 호칭

말갈기 휘날리며 활시위 당기고

아버지

번쩍이는 검(劍)을 휘둘러 여진(女眞)을 호령했을

궁진(宮進)

도조(度祖) 춘(椿)

용부(勇夫)

환조(桓祖) 자춘(子春)

린(璘), 양무(陽茂) 장군의 아버지

고려 명궁(名弓) 성계(成桂) 아버지의

자식이 남다른 두각을 나타내어야만 살아나는

아버지

아버지 우왕(禑王), 장인(丈人) 최영과 밀의(密議)한 전주 목조(穆祖) 안사(安社)

요동정벌(遼東征伐) 명(命)을 받아

위험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홍건적(紅巾賊)으로 승승장구하여

높고 높은 태백산맥을 넘어 삼척으로

명(明)나라 세운 황제 주원장과 대전(大戰)을

삼척에서 배를 타고 멀고 먼 간도(間島) 지방

앞두고

으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48 李花 293호


장마로 불어나는 압록강을 바라보고

수많은 역경을 헤쳐오며 역사 이루어

전력(戰力)이 역부족(力不足)이라는 판단

오얏 열매 소중한 씨앗

이 강을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방방곡곡(坊坊曲曲) 널리 퍼져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위화도(威化島) 회군(回軍)했을

전주이씨 파종(派宗)

조선(朝鮮) 태종 방원(芳遠)의

가문의 전통을 지킨 입향조(入鄕祖)

아버지

고향 마을 내려다보이는 선영(先塋)에서

자식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대대손손(代代孫孫) 번성

되어가고

영원히 이어가기를 바라는 꿈

아버지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가족의 앞날을 위해

<태종/양녕대군 17대 · 始41세>

문무(文武)의 학문과 기술을 연마

李花 293호 49


한시(漢詩) 한 수

春夜洛城聞笛 춘 야 낙 성 문 적

(낙양성 피리 소리 듣다) 李 白(이 백)

誰家玉笛暗飛聲

(수가옥적암비성 ‧ 뉘 집에서 부는 옥피린가 은은한 소리)

散入春風滿洛城

(산입춘풍만낙성 ‧ 봄바람 타고 들어와 낙양성에 가득하네)

此夜曲中聞折柳

(차야곡중문절류 ‧ 이 밤중에 애절한 절류곡을 듣는다면은)

何人不起故園情

(하인불기고원정 ‧ 누군들 고향 정이 일지 않으랴). ▲시성(詩聖) 이백(701∼762)은 중국 당(618∼907)나라 감숙성 농서현 출신이다. 그의 어머니가 태백(太白 ‧ 金星)이 가슴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낳아 자(字)를 태백이라 했다. 천재적 자질을 타고나 고뇌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시대를 아울렀다. 시선(詩仙)으로 불리며 술을 좋아해 주선(酒 仙)으로도 회자되었다. 동시대 문호 하지장(賀知章 ‧ 659∼744)은 “신선이 지상으로 귀양 온 것 같다”하여 적선인(謫仙 人)이라 불렀고, 문명(文名)을 함께 날렸던 두보(杜甫 ‧ 712∼770)는 “붓을 대면 비바람도 놀라 일게 하고(筆落驚風雨 ‧ 필락경풍우) 시가 완성되면 귀신도 울린다(詩成泣鬼神 ‧ 시성읍귀신)”고 찬탄했다. 이태백이 남긴 1,000여 편의 시문은 신의 경지에 이른 신품(神品)으로 평가되며 모든 시를 망설임 없이 단숨에 지었다. 61세 되던 해 장강에 비친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 익사했다. 이 시의 백미(白眉)는 3행이다. 예부터 중국에는 이별하는 정인(情人)에게 버들가지를 꺾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버들 류(柳)와 머물 류(留)는 발음이 같아 붙잡고자 하는 애달픈 심정을 대신해 주었다. 버들가지를 꺾어 만든 둥근 반지(環 ‧ 반지 환)를 님에게 끼워주며 다시 돌아와 주기(還‧돌아 올 환)를 눈물로 애원했다. 環과 還은 발음이 같다.

50 李花 293호


족보 편찬에 관하여

이병준(李炳俊) 헌릉봉향회 이사 근녕군파종회 재무이사

족보는 일족(一族)의 혈통과 가계를 명백

핵가족화 되면서 씨족에 대한 관념이 점점

히 하고 동족 간의 질서유지와 조상을 존숭하

희박해져 사실상 조상에 대한 관심조차 없어

며 동족의 단결과 의리를 돈독케 하는 숭조돈

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종(崇祖惇宗)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값진

그리고 젊은 세대들은 일가 간에도 왕래가

보감(寶鑑)이다. 부계 중심의 씨족 간에 만들

적고 서로 얼굴도 모르고 친인척 사이에 관계

어진 가족의 계통을 기록한 서책으로서 가족

와 촌수도 잘 모르며 남과 다름없이 지내는

에 대한 역사 기록이다.

경우가 많은 것이 현대사회의 일반적인 실정

선조가 나라에 크게 기여하고 공적을 남겼

이다.

으면 그 유덕을 찬양하고, 그 자손임에 자부와

족보 제작은 보통 30년을 한 세대로 볼 때

긍지를 가지고 국가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30년 전후를 주기로 후계 자손들을 빠짐없이

있는 본보기로 삼아왔다. 이에 우리는 모두

파악하고 편수하여 족보를 다시 속간하게 되

같은 자손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가족 상호

지만 수단(收單 : 기본정보 기록용지를 수집)

간 돈독하면서 선조의 유업을 계승하여 보존

하고 편수하여 속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하고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니다.

족보는 대동보(大同譜), 파보(派譜) 등으

족보의 제작에 있어 가장 어렵고 중요한

로 수 백 년 전 초보(初譜) 발행 후 수차 속보

것이 새로 등재할 종인들의 이름과 행적, 혼

(續譜)를 편수(編修)하여 편찬하고 있다. 그

인, 출생, 사망, 기재오류 등의 내용을 수단(收

러나 한자와 고전용어, 왕조 연도로 표기되어

單)하는 것이다. 남북 분단으로 재북자와 이

족보를 읽고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한,

산가족의 기록 누락과, 글로벌 시대에 편승한

족보를 소지하고 있는 가정이 드물다. 사회가

국외 거주자와 이민자의 증가, 다양화된 직업 李花 293호 51


과 생업에 따라 핵가족으로 각각 흩어져 살게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책자족보 이외의

되어 연락이 두절되는 일이 허다하다. 과거에

인터넷족보, 전자족보, 홈페이지 제작 등 과거

는 수단하지 못하는 경우 호적등본, 주민등록

족보의 작성 방법과 격식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등본, 개인전화 번호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또한 기존 족보의 한자와 고전용어를 읽고

확인하였다. 그러나 2011년 3월 29일 제정한

이해하기 쉽도록 만드는 게 좋다. 모든 종인

‘개인정보보호법’의 규제로 확인이 불가능하

(宗人)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를 가까이하며

여 후계 자손들의 신상에 관한 추적과 파악이

널리 활용하여 가족과 문중의 뿌리에 대하여

매우 어렵다. 또한, 사회적으로 여권(女權)이

올바르게 알고 자긍심을 가지고 가문의 품위

신장됨에 따라 과거 부계사회 중심의 호적법

를 지켜나가는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한다. 숭조

이 폐지되고 2008년 1월 1일 ‘가족관계의

와 돈종을 바탕으로 조상을 존숭하고 종친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모계의 성을

간에 돈목하면서 문중의 단합과 선조의 유업

따를 수 있게 되어 이에 수반된 모든 제도와

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의식이 바뀌어나가는 실정이다. 이제는 시대적 흐름과 4차 정보화 시대에 맞추어 젊은 세대들이 족보를 가까이 접하여

52 李花 293호

<태종/근녕군 17대 ‧ 始41세>


강화 전등사 경내에 있는 정족산 사고. 1998년에 복원됐다.

조선왕조실록과 사고(史庫) 조선왕조가 개국한 지 12년 째 되던 태

종대왕(제3대 ‧ 재위 1401∼1418) 4년(1406)

알지 못하게 하라” 하지만 사관은 왕의 낙마 가록은 물론 이를 감추라고 명한 사

음력 2월 8일 지엄(至嚴) 군주 태종대왕

실까지 실록에 기록했다. (태종실록 권7

(이하 대왕)이 산적한 정무를 잠시 뒤로

태종 4년 음력 2월 8일조)

하고 모처럼의 사냥 길에 나섰다. 창업

제4대 세종 20년(1438) 3월 2일. 세종

초기 제반 소요도 진정돼 새 왕조가 안정

대왕(재위 1419∼1450)은 부왕(태종대왕)

기에 접어든 이른 봄날이었다. 대왕은 노

의 실록 기록이 궁금해 졌다. 영의정 황

루 사냥을 좋아했다.

희(1363∼1452)에게 실록 열람을 은밀히

비호같이 날렵한 노루를 쫓던 대왕이 한 순간의 방심으로 말에서 낙마했다. 즉

요청했다. 탑전(榻前)에 부복한 황희가 아 뢰었다.

각 호위무사들이 달려 왔으나 부상은 없

“전하, 불가한 일이옵니다. 금상이 선왕

었다. 민망하게 여긴 대왕이 주변을 돌아

의 기록을 보면 후세 사람들이 그릇된 일

보며 명을 내렸다. “이 일을 사관(史官)이

을 옳게 꾸미고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게

李花 293호 53


되옵니다.

이로

인해

사관은 두려움을 느껴 사실대로 기록을 못하 고 결국 후손들은 기록 을 믿지 않게 되옵니 다. 부디 통촉하소서” 세종대왕은 실록 열람 을 단념했다. 조선시대 기록 문화 의 꽃인 조선왕조실록 (이하 실록)은 총1,893 권 888책으로

정족산 사고 정문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

유일하게 남았다. 유생(儒生) 손흥록‧안의

다. 1대 태조고황제로부터 25대 철종대왕

등의 헌신으로 정읍 내장산에 옮겨졌다.

까지 472년(1392∼1863) 간의 역사가 편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6년(1603) 5월

년체로 망라돼 있다. 《고종황제실록》과

등서(謄書) 편의를 위해 다시 강화 전등

《순종황제실록》은

일인들

사 내 정족산 사고로 옮겨졌다. 실록은

통제로 사실 왜곡 및 조작이 심해 실록의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

가치를 인정 못 받고 있다.

산본 27책, 기타 산엽본 21책을 포함해

일제강점기

실록은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군사,

총 2,077책이 국보 제151호로 지정됐다.

법률, 경제, 종교로부터 천문, 지리, 음악,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자연 재해까지 소상히 기록된 세계적인

등재되었다. 1984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역사 기록물이다. 실록의 편찬은 차기 국

정족산본 및 태백산본을 분리해 보존하고

왕이 즉위한 직후 실록청을 개설하고 독

있다.

립된 사관(史官)을 배치해 진실성과 신뢰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청역조실록(大淸

성을 보장했다. 사법(史法)이 매우 엄격해

歷朝實錄)도 296년의 기록에 불과하다.

사관 외에는 왕조차도 볼 수 없었다.

일본의 삼대실록(三代實錄)은 빈약하고,

실록이 완성된 후에는 불의의 사고를 대비해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각각

남원조(南院朝)의

대남실록(大南實錄)은

548권으로 편성되었다. 중국 황명실록(皇

1부씩 보관했다. 세종 21년(1439) 7월 서

明實錄)은 2,964권으로 권수만 많을 뿐 내

울 춘추관, 충북 충주, 경북 성주, 전북

용은 부실하다. 조선왕조실록이 총 6,400만

전주(표지 사진)의 4(四) 사고가 정비돼 운

자인데 비해 황명실록은 총 1,600만 자에

영됐다. 임진왜란 병화로 춘추관, 충주,

불과하다.

성주 사고가 소실되고 전주사고 본(本)만 54 李花 293호

<편집부>


방하착(放下着) ⑥

마음을 내려놓고

기생은 조선시대 팔천민(八賤民) 가운데서

도 하류 천민으로 멸시 ‧ 천대 속에 기구한

삶을 연명했다. 팔천민은 사노비 ‧ 승려 ‧ 백정 ‧ 무당 ‧ 광대 ‧ 상여꾼 ‧ 기생 ‧ 공장(工匠)을

대하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정한 짙은 고려 가요 다수가 이들의 작품이다. 조선시대 황진 이, 홍랑, 이매창 등 명기들이 당대 지성들과

주고받은 연모 ‧ 절창 시는 기방 문학의 효시

이른다. 그러나 기생들의 자존심은 남달랐다.

로 전해온다. 국문학계에서는 이들이야말로

양반집 부녀자들처럼 비단옷을 입고 노리개

당대 교양과 풍류를 상징하며 기층문화를 이끌

를 찰 수 있어 허영심이 충족됐다. 직업 특성상

어 온 실질적 예술 리더였다고 높이 평가한다.

사대부들과의 자유연애도 가능했다. 타고난

조선시대 국비를 들여 기생을 양성하던 기

미모로 고관대작의 첩실에 들기라도 하면 팔

관을 교방(敎坊)이라 했다. 관기(官妓)는 관

자를 고치고 권속은 출세했다.

청의 재산으로 간주됐고 한번 기적에 오르면

기생의 역사는 유구해 신라 김유신(595∼

천민이란 신분 굴레를 평생 벗어날 수 없었다.

673) 장군과 천관녀의 설화로 소급된다. 삼국

1909년 관기 제도가 폐지되면서 일본식 기생

시대를 거쳐 고려-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기생

조합 명칭인 권번(券番)으로 그 역할이 대체

의 존재는 뚜렷하다. 기생들이 익힌 재능은

됐다. 권번은 일본 가부키 극장에서 파티를

그 당시 사대부가(家) 여인이나 여염집 규수

열 때 차시중, 술시중, 떡시중을 들던 당번을

로는 엄두도 못 낼 대중적 놀이문화였다. 역사

칸반(券番)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이후 조

의 향방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비천했던

선총독부가 한자음을 그대로 차용해 권번시

그들의 생계 수단이 이 시대 한류 문화의 주류

대를 열게 된 것이다.

로 자리매김하게 될 줄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조선 교방의 기 ‧ 예술을 일본식 교방으로

기생들이 우리 국문학사에 끼친 영향은 지

변질시키는 데는 친일파 협잡꾼들이 앞장섰 李花 291호 55


다. 매국노 송병준(1858∼1925)은 친일을 위

폐해도 심각했다. 생강 장수와 평양 기생에

한 발판으로 여색만을 일삼는 권번을 운영해

얽힌 기록이 야사(野史)에 전한다.

색작(色爵)이란 악명까지 얻었다. 이같은 권

삼정(田政 ‧ 軍政 ‧ 還穀)의 문란으로 국정

번의 횡포에 맞서 기생들은 동맹 파업으로

이 위태롭던 조선 25대 철종 13년 10월. 황해

대응하기도 했다.

도 해주 사는 젊은 생강 장수가 생강 한 배를

조선 교방에서 기생들은 교양 과목으로 궁

가득 싣고 평양에 팔러 갔다가 평양 기생한테

중악, 예의범절, 시문, 사군자, 산수화, 인물화

홀려 모두 털렸다. 집에 가 마누라를 대할

등을 학습했다. 예능과 실기로는 판소리, 시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몰락한 양반집

조, 가곡, 민요, 굿거리타령, 부채춤 등을 배웠

자제였던 생강 장수가 노자도 없이 씁쓸히

다. 그들이 익혔던 예 ‧ 기능은 오늘날 국가

주요무형문화재나 각 시 ‧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기생은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 하여 해어화 (解語花)로 불렸다. 아무나 꺾을 수 있는 ‘길가

돌아 서며 자탄시 한 수를 읊었다.

遠看老馬目(원간노마목 ‧ 멀리서 보니 늙

은 말의 눈 같더니만) 近見患膿瘡(근견환농

창 ‧ 가까이서 보니 고름 든 환부의 상처 같구

나) 兩邊皆無齒(양변개무치 ‧ 양쪽 어디에도

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이란 뜻으로 노류장화(路

이빨 하나 없는데) 喫盡一船薑(끽진일선강

을 수 없는 한량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이별과

생강 장수의 이 장탄식이 어찌 옛날에만

柳墻花)라고도 했다. 기생들은 허장성세로 믿 배신을 되풀이 했다. 그들의 노후 대책은 오직 재물뿐이었고 이로 인한 가정 파탄과 사회적

56 李花 293호

‧ 내 생강 한 배를 몽땅 먹어 치워 버렸네).

국한되랴.

<편집부>


승경원 건립기금 지원, 분원별 헌성금 집계표 (2022.5.15.현재) 시도별

서울

지․분원별

시도별

지․분원별

대전

서구 유성구 대덕구

2,000,000 2,600,000 300,000 10,900,000 3,000,000

서울시 종로구 중구 용산구

2,000,000 2,000,000 2,000,000 2,000,000

성동구 광진구 동대문구 중랑구

2,000,000 2,000,000 2,000,000 3,300,000

경기도 팔달구 장안구 영통구

성북구 도봉구 노원구 은평구

1,000,000 2,000,000 3,000,000 2,000,000

권선구 성남시 의정부시 안양시

서대문구 마포구 양천구 강서구

2,000,000 2,000,000 2,000,000

부천시 광명시 평택시 양주시

구로구 금천구 영등포구 동작구

2,500,000 2,000,000 2,000,000 1,500,000

안산시 고양시 과천시 남양주시

관악구 서초구

2,000,000 2,200,000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강북구 소계 부산시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부산

헌성금액

소계

영천시 상주시 문경시 경산시

2,100,000

2,000,000

구리시 화성시

3,800,000

예산군 태안군

2,000,000

시흥시

2,000,000

2,000,000

군포시

2,000,000 2,180,000 51,680,000 2,000,000

하남시 용인시 이천시 파주시

2,000,000 2,300,000

전라북도 완산구 덕진구 군산시

300,000

여주시 광주시 연천군 포천시

2,000,000 2,000,000 2,000,000 2,300,000

익산시 정읍시 남원시 김제시

1,500,000 2,000,000 2,000,000 1,000,000

경기

770,000

강서구 사상구 기장군

1,200,000

900,000 소계

2,000,000 2,300,000

광주서구 광주남구 광주북구 광산구

강릉시 동해시 태백시 속초시

2,600,000

남구 북구 수성구 달서구

700,000 2,550,000 2,550,000 4,800,000

삼척시 홍천군 횡성군 영월군

2,300,000

양구군 인제군 고성군 양양군

500,000

1,500,000

옹진군 대전시 동구

9,100,000 2,000,000 2,000,000

중구

2,000,000

충북

3,200,000

목포신안 여수시 순천시 나주시

300,000

1,000,000

광주전남

광양시 담양군 곡성군 구례군

1,000,000 3,700,000 2,000,000

2,000,000

3,000,000 2,600,000 2,000,000 2,000,000

칠곡군 예천군

2,000,000 1,000,000

2,000,000

봉화군

2,000,000

울진군

1,300,000

소계 경상남도 창원시 울산시

1,800,000 4,000,000 2,000,000

22,730,000 100,000 1,800,000

마산 진주시 진해 통영시

800,000

완주군 진안군 무주군 장수군

부안군 소계 광주전남 광주동구

2,680,000

군위군 의성군 청송군 영양군

경북

33,700,000

40,800,000 2,100,000 700,000 1,100,000

6,000,000 1,700,000 2,100,000 2,100,000

평창군 정선군 철원군 화천군

전북

17,600,000 3,050,000 2,000,000

영덕군 청도군 고령군 성주군

1,000,000 1,300,000

사천시 김해시 밀양시 거제시

임실군 순창군 고창군

12,170,000

22,500,000 7,100,000

당진시 소계

대구시 중구 동구 서구

강원

세종충남

2,000,000

강원도 춘천시 원주시

소계

소계 세종충남

헌성금액

소계 경상북도 포항시 경주시 김천시 안동시 구미시 영주시

부여군 서천군 청양군 홍성군

의왕시 송탄 오산시

부평구 계양구 서구 강화군

대전

1,000,000 1,100,000

지․분원별

2,000,000 27,700,000 2,300,000

2,300,000 2,000,000 2,500,000

달성군

인천

단양군 증평군

아산시 서산시 논산시 금산군

2,000,000

동구 미추홀구 연수구 남동구

충북

시도별

2,000,000 2,000,000 1,000,000 2,500,000

2,000,000

해운대구 사하구 금정구

인천시 중구

영동군 진천군 괴산군 음성군

헌성금액

2,000,000 4,900,000 2,000,000 2,000,000

가평군 양평군 안성시 김포시

소계

지․분원별

세종시 천안시 공주시 보령시

2,000,000 2,000,000 1,000,000

소계

시도별

500,000

부산진구 동래연제 남/수영구 북구

대구

헌성금액

1,000,000 1,000,000

양산시 의령군 함안군

경남

500,000 9,100,000 2,000,000

창녕군 고성군 남해군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거창군 합천군

500,000 2,000,000 2,000,000

1,000,000 1,500,000

울주군 서마산 소계

2,000,000

8,700,000 1,900.000

제주도 제주시 서귀포 북제주

제주

1,800,000

소계

3,000,000

일본지원 관동 관서 소계

0

로스엔젤리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워싱턴

2,677,592 1,310,000 510,000

2,000,000 2,000,000

고흥군 보성군 화순군 장흥군

소계 충청북도 청주상당 청주흥덕

17,300,000 4,300,000 2,000,000 2,600,000

강진군 해남군 영암군 무안군

청주청원 충주시 제천시 보은군

2,000,000 2,000,000 3,300,000

함평군 영광군 장성군 완도군

뉴욕뉴저지 휴스턴 캐나다 소계

옥천군

2,000,000

진도군

총계

일본

1,000,000 2,000,000 300,000

북미주

1,900,000

4,497,592 290,377,592

李花 293호 57


승경원 건립기금 파종회, 봉향회, 기타 단체별 헌성금 집계표 (2022.5.15.현재) 제왕별

파종회별

宮進

시중공파

勇夫

평장사공파

2,000,000

계양군파

제릉봉향회

2,000,000

陽茂

주부공파

3,000,000

의창군파

후릉봉향회

10,800,000

안천대군파

3,000,000

한남군파

17,900,000

英陵봉향회

2,000,000

안원대군파

3,000,000

밀성군파

10,000,000

장사릉봉향회

12,000,000

안풍대군파

4,300,000

수춘군파

14,400,000

광릉봉향회

2,000,000

안창대군파

2,400,000

익현군파

3,000,000

창릉봉향회

2,000,000

안흥대군파

3,600,000

영풍군파

공릉봉향회

3,000,000

靖陵봉향회

2,210,000

목릉봉향회

2,000,000

명릉봉향회

2,000,000

의혜릉봉향회

2,000,000

景陵봉향회

2,000,000

洪陵봉향회

2,000,000

대빈묘봉향회

1,000,000

穆祖

翼祖

太祖

定宗

世宗

世宗

14,800,000

6,880,000

담양군파 9,300,000 3,000,000

世祖 德宗

12,500,000

덕원군파

22,000,000

창원군파

10,000,000

월산대군파

14,600,000

완풍대군파

10,300,000

계성군파

7,000,000

의안대군파

1,800,000

안양군파

30,000,000

진안대군파

2,000,000

완원군파

15,160,000

익안대군파

5,300,000

회산군파

10,300,000

회안대군파

5,350,000

봉안군파

7,800,000

의평군파

12,000,000

견성군파

3,000,000

순평군파

3,000,000

익양군파

12,000,000

선성군파

63,230,000

이성군파

종의군파

3,000,000

진남군파

봉향회별 준경묘영경묘

헌성금액 1,000,000

선순릉봉향회

2,000,000

헌릉봉향회

10,000,000

광해주숭모회

2,000,000

기타 단체

헌성금액

서봉회

5,000,000

3,000,000

정후회

2,000,000

경명군파

10,800,000

의친왕가

1,000,000

13,500,000

전성군파

9,700,000

원정회

수도군파

3,000,000

무산군파

5,000,000

본원 위원별 단체

6,950,000

임언군파

5,000,000

영산군파

8,500,000

서울시지원 여성부

2,000,000

석보군파

1,000,000

운천군파

3,000,000

종합기수별 단체

5,400,000

덕천군파

31,550,000

양원군파

25,300,000

전문기수별 단체

300,000

해안군파

6,600,000

미술분과위원회

1,000,000

成宗

임성군파

太宗

헌성금액

영해군파

함양대군파

완원대군파

파종회별 화의군파

완천대군파 桓祖

제왕별

함원대군파

완창대군파 度祖

헌성금액

300,000

도평군파

7,000,000

금원군파

3,000,000

전주이씨화수회

1,000,000

장천군파

3,000,000

영양군파

5,200,000

종묘제례전수회

1,000,000

정석군파

4,200,000

덕양군파

106,830,000

中宗

무림군파

10,000,000

봉성군파

3,000,000

양녕대군파(재)지덕사

55,900,000

덕흥대원군파

10,400,000

효령대군파(사)청권사

51,000,000

신성군파

3,000,000

성녕대군파

20,000,000

순화군파

경녕군파

14,400,000

함녕군파

5,300,000

온녕군파

인성군파

30,000,000

경창군파

2,500,000

8,260,000

경평군파

3,300,000

근녕군파

10,000,000

인흥군파

혜령군파

10,500,000

영성군파

희령군파

6,500,000

후령군파

5,000,000

소현세자파

3,000,000

익녕군파

11,500,000

인평대군파

3,000,000

임영대군파

13,600,000

광평대군파

54,500,000

금성대군파 영응대군파

58 李花 293호

宣祖

元宗

仁祖

능원대군파

숭선군파

800,000

※ 30만원 이상 헌성자는 승경원 내에 영구 게시되며, 30만원 이하 모든 헌성자도 헌성록에 게재함. ※ 상기 금액은 파종회별(소종중 포함) 집계 금액임.

승경원 건립 모금 계좌 국민은행 : 817201-04-124567

낙선군파 누 계

50,160,000

3,600,000

979,720,000

예금주 :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승경원 건립기금 모금 헌성자 ■ 단체 (22. 4. 1~5. 15) 구분 파종회별

단체명

대표

후령군파종회

栢圭

5,000,000

4.6

경녕군파 충렬공후 창토공문중

尙龍

200,000

5.12

금 액

일 자

5,200,000

■ 개인 (22. 4. 1~5. 15) 번

파별

980

永在

금 액

진안21

1,000,000

981 성우 효령 982 南政 선성18 983 朴英順 반남인 984 漢範 해안14

4,291 100,000 200,000 700,000

4.14-5.19 까지 7회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악대로359번길 28-17, 3동 101호 서울 은평구 서오릉로25길 21, B동 202호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8길 28, 102동 104호

985 986

기우 珍洙

밀성17

453 200,000

서울 은평구 진흥로1길 28, 502호

987 988 989 990

在鎬 明周 春花 漢根

밀성16 안원23 익안19 계성16

300,000 300,000 500,000 1,000,000

4,304,744

직업(직책)

강원 삼척시 엑스포로1길 3-15

충남 서울 서울 제주

천안시 강동구 구로구 제주시

동남구 광덕면 해수길 29 명일로172, 102동 1702호 고척로 82, 201동 701호 삼무로5길 8, 제주올레호텔

4.5 본원 전례부위원 본원 조직1부차장

당기(2022.4.1~2022.5.15) : 9,504,744원

4.14 4.14 4.15 4.19 4.30

본원 종묘위원 본원 제복부위원 종합15기 교육생 제주지원 이사

※980번 永在 종친은 14.11.4(5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150만원 헌성함. ※981번 성우 종친은 총19,236원 헌성함. ※983번 朴英順 님은 19.11.1(15만원)을 내주셨기에 총35만원 헌성함. ※984번 漢範 종친은 14.12.27(30만원)을 내주셨기에 총100만원 헌성함. ※985번 기우 종친은 총715원 헌성함.

전기(2013.11.5~2022.3.31) : 2,527,028,772원(이자포함)

일자

4.30 5.10 5.12 5.12

총계 : 2,536,533,516

승경원 건립 추진 현황 승경원 건립 모금 현황은 22.4.30.현재 25억 3천여 만원 모금되었으며, 토지 매입비 등 9억 7천여 만원을 지출하였습니다. 공사 진행 상황은 2022.2. 부지 내 시설물 철거, 흙깍기 및 토사 반출 완료, 옹벽 터파기, 가설 휀스 설치 2022.3. 배면 옹벽 콘크리트 구체 3차 타설, 철근가공 및 조립 구체 3차 완료 2022.4. 삼문 및 전면부 옹벽 기초 터파기 및 철근 배근

승경원 계좌안내 국민 817201-04-124567 예금주 :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李花 293호 59


임원 협찬금 (2022.3.21~5.15) 5,000,000 귀남 이사장 1,500,000 석무 총무이사 1,000,000

관주 재정이사 재복 청년이사 연호 여성이사 병하 분규조정위원장 순동 홍보위원장 권재 이사 근호 이사 남무 이사 동성 이사 부용 이사 석홍 이사 용태 이사 우덕 이사 정수 이사 종성 이사 준재 이사 찬구 이사 천주 이사 학구 이사

태우 전례이사 복례 무임소이사 계연 이사 기수 이사 명승 이사 선성 이사 장길 이사 주우 이사 창근 이사 호근 이사

부용 제1조직이사 광교 기호 병학 연의 재승 주화 창용 훈재

이사 이사 이사 이사 이사 이사 이사 이사

특별원원(院員) 가입을 환영합니다 (2022.3.21.~5.15) 등록 번호 2330 2331 2332 2333

天宰 揆淑 承浩 錫杓

파대수 온녕 광평 임영 광평

18 19 17 20

주소 경기 서울 서울 서울

하남시 용산구 강서구 송파구

직업(직책)

하남대로 802번길 55, 203동 502호 이태원로 223-16, 101호 강서로56길80, 701호 위례광장로185, 104동 1402호

전례부 위원 총무부 위원 전례부 위원

가입비 200,000 200,000 200,000 200,000

등록 일자 3.31 4.22 4.28 5.10

특별원원 연회비 납부 종친(無順) (2022.3.21~5.15) 400,000 시중공파종회(19,20,21,22년 각 10만원) 100,000 견성군파종회 금성대군파종회 50,000 귀남 이사장 광수(서울 성북구) 30,000 순복 자문위원 재환 자문위원 명옥(경기 안산시) 영수(서울 관악구) 지순(서울 광진구) 태호(충남 천안시) [CMS자동이체] 30,000 근왕 자문위원 석무 총무이사 20,000(2회,각1만원) 범직 이사 10,000(2회,각5천원) 태호 자문위원 상일(경기 광주시) 호헌(경기 화성시) 6,000(2회,각3천원) 종성 이사 수자(경기 부천시) 천재(경기 하남시) 5,000 병진 고문 3,000 관우(서울 양천구)

60 李花 293호

봉안군파종회

창원군파종회

희령군파종회

부용 제1조직이사 인규(경기 가평군) 평규(경남 진주시)

훈재 이사 정기(서울 구로구) 학수(서울 성북구)

강원(광주 북구) 정섭(경기 양평군)

경근(충북 청주시)

정재(서울 관악구)

중화(대구 북구)

세림 복지재단설립위원장 석진(경기 군포시)

재복 청년이사 수봉(서울 영등포구)

우덕 이사 해헌(충남 홍성군)

고순복 이사 영주(서울 중구) 태신(전남 순천시) 경민(경남 김해시)

규상(인천 은수(경기 해호(경기 정기(경기

범소(서울 강서구) 준하(서울 금천구) 조숙희(경기 여주시) 정희(경기 고양시)

년재(경남 진주시)

서구) 여주시) 수원시) 고양시)


종묘제례보존회 가입을 환영합니다 (2022.3.21~5.15) 등록 번호 864

파대수

주소

직업(직책)

가입비

李昭靖

등록 일자

재령인

경남 진주시 진주대로 879번길 19, C동 705호

한량무 전수자

100,000

4.18

종묘제례보존회 연회비 납부 종친 (2022.3.21~5.15) 50,000 귀남 이사장 30,000 명준 고문 수훈 이사 춘재(서울 광진구) [CMS자동이체] 50,000 40,000(2회,각2만원) 30,000 10,000(2회,각5천원) 8,000(2회,각4천원) 6,000(2회,각3천원) 4,000(2회,각2천원) 2,000

극종(경기 양주시) 순복 자문위원 재승 이사 학수(서울 성북구)

재환 자문위원 훈재 이사

권선(경기 용인시) 종화(경기 화성시) 석무 총무이사 기중(강원 철원군) 인선(경기 포천시) 철수(경기 수원시) 재복 청년이사 천재(경기 하남시) 재갑(충북 청주시) 경훈 부이사장

창재(경기 양평군) 경근(충북 청주시) 기중(경북 김천시) 창규(경기 이천시) 범소(서울 호헌(경기 해호(경기 창구(경기

강서구) 화성시) 수원시) 하남시)

부용 제1조직이사 강원(광주 북구)

광교 이사 주윤(서울 동대문구)

동규(제주 제주시) 형표(충남 천안시)

석진(경기 군포시)

범태(경남 함양군)

장호(경기 남양주시)

사직대제보존회 가입을 환영합니다(2022.3.21.~5.15) 등록 번호 82 83 84

직업(직책)

가입비

등록 일자

충남 서천군 서천읍 두왕길 12

종합14기

100,000

4.11

덕원 16

경기 화성시 팔탄면 삼천병마로 501

본원 이사

100,000

4.30

반남인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중로 164, 565동 103호

종합 12기

100,000

5.6

파대수

康滿

효령 18

俊在

朴德雨

주소

사직대제보존회 연회비 납부 종친(無順) (2022.3.21~5.15) 50,000 귀남 이사장 30,000 부용 제1조직이사 [CMS자동이체] 10,000(2회,각5천원) 6,000(2회,각3천원) 4,000(2회,각2천원) 2,000

광교 이사

훈재 이사

용국(용하,경기 안산시)

찬해(서울 구로구) 재복 이사 원규(강원 춘천시) 경훈 부이사장

창규(경기 이천시, 특별성금) 범소(서울 강서구) 한영(경기 부천시)

학수(서울 성북구)

李花 293호 61


원원(회원) 회비 자동이체 신청 및 발전기금 납부 (2022.3.21~5.15) 20,000(2회,각1만원) 범설(경기 부천시) 10,000 10,000(2회,각5천원) 6,000(2회,각3천원) 5,000

범제(인천 경호(서울 민종(경기 해니(서울 슬기(인천 원종(경기

부평구) 영등포구) 부천시) 강서구) 부평구) 파주시)

범조(경기 부천시) 범성(총무부장) 범경(서울 성동구) 호종(경기 부천시)

전경(서울 종로구)

정민(경기 김포시)

서종(서울 영등포구)

창규(경기 이천시)

주리(경기 부천시)

입금 내역을 찾습니다 (2022.1.1.~5.15) 입금일 1.21 3.3 3.31 4.6 4.14 4.19

은행(예금주) 우체국(종약원) 국민(종약원) 국민(종약원) 농협(종약원) 농협(종약원) 국민(보존회)

금액 3만원 2천원 2천원 3만원 10만원 3만원

통장기장 내용 경주전태종왕좌 잡협국립 12,1월 잡협국립 2월 이강원 이충숙 종묘대제헌성

찾는 내용 입금내역 및 송금자 입금내역 및 송금자 입금내역 및 송금자 입금내역 입금내역 송금자

※ 최근 스마트폰, 텔레뱅킹,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송금이 많아지면서 본원에 송금된 금액 중 일부가 미확인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본원에 송금할 경우에는 입금자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 이므로, 송금 후에는 반드시 본원에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조경단대제 헌성금 (2022.1.1. ∼ 5.15) 사단법인 청권사 부섭 장학회 이사 석동 부이사장 희령군파 참판공 용인종중 병진 고문 윤중 고문 광교 이사 기수 이사 규명(서울 마포구) 범소(총무부위원) 휘찬(서울 성북구) 전남 목포신안군분원 완풍대군파종회 익녕군파종회 회안대군파종회 희령군파종회 정릉(貞陵)봉향회 50,000 귀남 이사장 승창 고문 순영 자문위원 종달 자문위원 석무 총무이사 태우 전례이사 연호 여성이사 복례 무임소이사 도수 장학회이사 동성 이사 병학 이사 복용 이사 연의 이사 용태 이사 정수 이사 종성 이사 찬구 이사 창용 이사 훈재 이사 금창(전북 전주시) 상명(경기 고양시) 상훈(문화부위원)

1,000,000 500,000 300,000 200,000 100,000

62 李花 293호

(헌성금 총계 : 10,360,000원)

일훈 고문 경웅(무산군파종회장) 세연(청년부위원) 경명군파종회 혜령군파종회 희령군파 용인종중

관주 재정이사 귀재(전북대 부총장) 춘묵(전례부위원) 영응대군파종회 화의군파종회 숭릉봉향회

정훈 고문 중근 수석부이사장 부용 제1조직이사 근호 이사 무형 이사 선성 이사 우덕 이사 주우 이사 학구 이사 길형(경남 진주시) 성대(제복부위원)

성구 자문위원 경훈 부이사장 재복 청년이사 기호 이사 범직 이사 승동 이사 재승 이사 준재 이사 형수 이사 범성(총무부장) 성만(대구 달성군)


50,000

30,000

20,000 10,000 ※ 제향 헌성금을

세형(경기 군포시) 수기(경북 청송군) 순구(서울 노원구) 순구(전북 익산시) 용삼(경기 하남시) 운상(서울 동대문구) 정복(전북 전주시) 정선(경기 부천시) 주용(제무부위원) 준하(서울 금천구) 진삼(충남 아산시) 춘호(충남 천안시) 평규(경기 고양시) 한범(조직1부차장) 해호(조직1부위원) 형우(경기 시흥시) 강원도지원 경상남도지원 대전광역시지원 인천광역시지원 제주도지원 충청북도지원 경기 고양시분원 대전 중구분원 부산 부산진구분원 서울 성동구분원 서울 종로구분원 전남 함평군분원 견성군파종회 덕원군파종회 덕천군파종회 덕천군파 오원군종회 덕흥대원군파 웅한공종회 봉안군파종회 석보군파종회 신성군파종회 안풍대군파종회 양원군파종회 영산군파종회 영양군파종회 완원군파종회 월산대군파종회 의평군파종회 익양군파 장계령문중 인성군파종회 임성군파종회 임언군파종회 창원군파종회 해안군파종회 강릉봉향회 경릉(景陵)봉향회 명릉봉향회 목릉봉향회 연산숭모회 장사릉봉향회 효릉봉향회 종합4기회 명준 고문 강석(강릉시분원장) 강주(서울 구로구) 곤재(서울 은평구) 광주(경기 고양시) 규수(경남 창원시) 남식(서울 은평구) 병준(문화부차장) 상훈(서울 동대문구) 석우(경기 고양시) 성수(서울 동대문구) 수균(경남 창원시) 순구(전북 익산시) 영재(강원 삼척시) 영주(서울 은평구) 영희(여성부위원) 용국(용하, 경기 안산시) 용호(경기 평택시) 원재(부산 사하구) 종열(대전 중구) 지숙(서울 구로구) 춘재(서울 광진구) 홍일(서울 영등포구) 엄윤자(여성부차장) 강원 강릉시분원 경북 문경시분원 강열(여성부위원) 종탁(서울 동작구) 미리 내주신 종친들의 명단은 해당 제향기사와 함께 게재하오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종묘춘향대제 헌성금 (2022.1.1. ∼ 5.15) 부섭 장학회이사 석동 부이사장 청풍김씨대종회 병진 고문 관주 재정이사 양숙(충남 보령시) 덕양군파종회 완풍대군파종회 화의군파종회 헌릉봉향회 50,000 귀남 이사장 계형 자문위원 순복 자문위원 재환 자문위원 경훈 부이사장 재복 청년이사 기호 이사 수훈 이사

500,000 300,000 200,000 100,000

(헌성금 총계 : 16,140,000원)

원정(왕세자 역) 선재 고문 기수 이사 춘묵(전례부위원) 선성군파종회 익녕군파종회 희령군파종회 홍릉봉향회 승창 고문 기전 자문위원 순영 자문위원 종달 자문위원 석무 총무이사 연호 여성이사 도수 장학회이사 승동 이사

윤중 고문 대두(인천 미추홀구) 호석(충남 부여군) 영응대군파종회 진남군파 사형공종중 희령군파 용인종중 서울시지원 여성부 원호 고문 삼목 자문위원 은숙 자문위원 희천 자문위원 태우 전례이사 복례 무임소이사 범직 이사 연의 이사

일훈 고문 범소(총무부위원) 경북 영주시분원 온녕군파종회 혜령군파종회 융건릉봉향회 정훈 성구 은홍 중근 부용 근호 선성 용태

고문 자문위원 자문위원 수석부이사장 제1조직이사 이사 이사 이사

李花 293호 63


우덕 이사 재승 이사 정수 이사 준재 이사 치중 이사 형수 이사 훈재 이사 강덕(경기 용인시) 경우(경기 성남시) 계화(서울 성북구) 광호(서울 송파구) 극종(경기 양주시) 기택(경기 수원시) 래길(서울 양천구) 명종(광주 동구) 범성(총무부장) 범소(총무부위원) 범수(조직2부차장) 성대(제복부위원) 성만(대구 달성군) 성후(경남 거제시) 수영(서울 강동구) 수훈(경기 의정부시) 영구(제복부차장) 영순(여성부차장) 용삼(경기 하남시) 우곤(제무부위원) 운상(서울 동대문구) 원주(서울 종로구) 인규(경기 가평군) 정복(전북 전주시) 준하(서울 금천구) 진삼(충남 아산시) 한범(조직1부차장) 한영(견성군파종회장) 해호(조직1부위원) 화용(경기 파주시) 신현정(제복부차장) 정순옥(여성부위원) 강원도지원 경상남도지원 인천광역시지원 제주특별자치도지원 충청북도지원 경기 고양시분원 서울 광진구분원 서울 금천구분원 서울 동작구분원 서울 성동구분원 서울 양천구분원 전남 함평군분원 충남 청양군분원 충북 청주서원흥덕구분원 견성군파종회 경명군파종회 덕원군파종회 덕흥대원군파 웅한공종회 봉안군파종회 석보군파종회 신성군파종회 안양군파종회 안풍대군파종회 양원군파종회 영산군파종회 영양군파종회 완원군파종회 완창대군파종회 완천대군파종회 월산대군파종회 의평군파종회 익양군파 장계령문중 인성군파종회 임성군파종회 임언군파종회 진안대군파종회 창원군파종회 함녕군파종회 해안군파종회 강릉봉향회 경릉(景陵)봉향회 대빈묘봉향회 명릉봉향회 목릉봉향회 소령원수길원봉향회 연산숭모회 영릉(寧陵)봉향회 영원봉향회 의혜릉봉향회 장사릉봉향회 본원 제무부일동 본원 재정부일동 본원 청년부일동 예절교육1기회 종합4기회 종합7기회 혜산사회복지법인 30,000 명준 고문 학구 이사 강석(강릉시분원장) 곤재(서울 은평구) 광우(서울 서초구) 규수(경남 창원시) 규흔(총무부차장) 금수(충북 진천군) 남식(서울 은평구) 동우(경기 포천시) 동환(서울 관악구) 민호(경기 연천군) 상훈(서울 동대문구) 석우(경기 고양시) 성수(서울 동대문구) 언수(문화부위원) 영신(경기 의정부시) 영주(서울 은평구) 영주(서울 중구) 영희(여성부위원) 용국(용하, 경기 안산시) 원재(부산 사하구) 은수(여성부위원) 인선(경기 포천시) 전구(전북 군산시) 정섭(경기 양평군) 정순(여성부위원) 종열(대전 중구) 중교(서울 서초구) 지숙(제복부위원) 지순(여성부차장) 춘재(서울 광진구) 충우(경기 수원시) 호헌(경기 화성시) 홍일(서울 영등포구) 해진(서울 중랑구) 엄윤자(여성부차장) 강원 강릉시분원 경북 문경시분원 대구 달서구분원 충남 태안군분원 10,000 종근 자문위원 ※영녕전 제관 헌성금 440만원 포함금액임. ※제향헌성금을 미리 내주신 종친들의 명단은 해당 제향기사와 함께 게재하오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50,000

이화장학금 기탁 종친 (2022.3.26~5.15) 기탁일자 4.2 4.14 4.21-5.7 4.25

64 李花 293호

기탁자 기수 익근(益根, 익녕군 15대) 종배(鍾培, 익녕군 18대) 화진(和鎭, 희령군 16대)

금액 500,000 50,000 60,000 50,000

비고

4.21, 5.7 2회/ 본원 재정부위원


2022 종묘춘향대제 봉행위원회 皇 嗣 孫 : 李 源 顧 問 : 李會昌 李洪九 李賢宰 李海瓚 李台燮 金現模 委 員 長 : 李貴男 副委員長 : 李重根 李錫東 李慶薰 趙運朝 國家無形文化財 宗廟祭禮 藝能保有者 : 李基田 國家無形文化財 宗廟祭禮 名譽保有者 : 李亨烈 國家無形文化財 宗廟祭禮 傳承敎育士 : 李康德 (社)國家無形文化財 宗廟祭禮樂保存會 會長 : 趙運朝 (사)아악일무보존회 회장 : 金英淑 指導委員 李甲宰 李康龍 李康善 李康安 李康伍 李康一 李康煥 李介昊 李健九 李建雄 李建中 李建鎬 李卿東 李庚雄 李景宰 李京柱 李京和 李桂淵 李啓珩 李坤雨 李寬基 李光敎 李光宰 李廣載 李君普 李權宰 李圭福 李揆一 李揆衡 李根旺 李根儀 李漌鎬 李根煥 李起龍 李紀秉 李基秀 李起洙 李起秀 李基榮 李起鍾 李起虎 李吉女 李洛淵 李洛川 李南基 李南懋 李男兒 李南永 李내원 李陵雨 李達相 李達宇 李德圭 李悳中 李道洙 李都瀅 李敦模 李東烈 李東萬 李東宇 李東宰 李東熹 李得龍 李龍淳 李明承 李明俊 李木春 李武珩 李文九 李文源 李敏燮 李培鎔 李栢圭 李範觀 李範吉 李範洙 李範在 李範稷 李柄琦 李炳辰 李炳郁 李炳一 李丙昌 李炳七 李秉夏 李炳學 李秉爀 李炳勳 李甫淵 李普熙 李福禮 李福秀 李福用 李富燮 李芙鎔 李汕九 李三穆 李尙隋 李相益 李相珍 李相浩 李西珩 李錫雨 李奭周 李碩泰 李錫浩 李錫洪 李奭喜 李先性 李善宰 李成寬 李聖基 李成鎔 李聲宰 李世林 李世鎭 李秀實 李秀煥 李壽薰 李淳東 李淳福 李順植 李淳永 李淳浩 李昇九 李勝東 李承洙 李承栽 李承鍾 李承俊 李承重 李承昌 李昇炫 李承勳 李時久 李亮壽 李暘熙 李連義 李演柱 李演昌 李永基 李榮復 李英浩 李瑛熙 李嗚九 李完敎 李完根 李琓善 李完洙 李旺浩 李容九 李鎔奎 李龍彬 李鎔瑄 李鏞燮 李鎔太 李瑢徽 李龍欽 李愚德 李愚錫 李雲相 李元柄 李元燮 李元鎔 李元旭 李元夏 李元炯 李元浩 李有燮 李潤圭 李潤柱 李允中 李允漢 李殷甲 李殷燮 李殷淑 李銀珩 李殷浩 李殷弘 李應贊 李義基 李義鍾 李仁秀 李仁永 李仁濟 李一薰 李長吉 李將燮 李章漢 李載萬 李在順 李載天 李在煥 李庭滿 李楨文 李政秀 李正洙 李正雨 李廷一 李廷日 李貞宰 李政薰 李廷喜 李 鍾 李鍾權 李鍾根 李鍾南 李鍾達 李鐘大 李鍾木 李宗成 李鍾衍 李鍾雄 李鍾一 李鍾鎭 李鍾憲 李周官 李柱英 李柱雨 李柱和 李準奇 李埈鎔 李準鎔 李俊在 李埈泰 李燦九 李燦鎬 李昌根 李昌成 李昌鎔 李昌宰 李昌炫 李千柱 李哲男 李轍燮 李哲憲 李春根 李春培 李忠九 李致燁 李致中 李鐸徽 李泰燮 李台成 李泰鎬 李平揆 李弼薰 李學永 李學源 李漢寧 李恒求 李海瓊 李海寬 李海龜 李海吉 李海文 李海山 李海運 李海煥 李行順 李幸珍 李憲九 李鉉命 李玄昌 李亨烈 李炯錫 李亨洙 李惠恩 李皓根 李虎根 李鎬洛 李鎬洙 李烘基 李弘培 李煥用 李孝均 李勳揆 李薰宰 李興雨 李羲天 李熙澤 高順福 金英云 具滋信 權正達 金南應 金悳泳 金용철 金萬壽 金學元 閔泳三 朴齊勳 徐眞錫 宋基台 慎鏞日 沈宜洛 魚浩善 尹判求 張奭在 趙璟九 趙源煥 韓甲洙 洪在億 委 員 : 李在敏 李在春 李柱庸 李重宰 李璨海 李杓儀 金明惠 鄭鏡順 黃美淑

1. 總務部 次 長 : 李揆昕 部 長 : 李錫務 委 員 : 李揆淑 李範昭 李卨榮 李千在 李海相 李和植 2. 財政部 部 長 : 李寬周 次 長 : 李基浩 委 員 : 李德榮 李武鎔 李敏燮 李榮浩 李鍾培 李柱成 李采垠 李洪圭 3. 弘報部 部 長 : 李揆元 次 長 : 李炳俊 李丙赫 委 員 : 李康貞 李起潤 李文燮 李相周 李尙勳 李彦秀 李田景 洪杏淑 4. 儀典1部 部 長 : 李東成 次 長 : 李燦九 李亨雨 委 員 : 李炅根 李京彔 李光燮 李兢周 李起洙 李達浩 李道珩 李孟壽 李錫鎭 李淳浩 李承重 李時久 李榮柱 李英浩 李潤鎬 李在鎬(천안) 李在鎬(서울) 李政柱 李鍾國 李鍾柄 李鍾城 李學善 李洪宰(광주) 李洪宰(서울) 이보라 5. 儀典2部 部 長 : 李泰雨 委 員 : 李建宰 李南政 李承鎔 李振勳

李揆敦 李道宰 李承允 李讚浩

李揆鎬 李範玟 李愚珍 李天宰

次 長 : 李商訓 李炳學 李根洙 李紀定 李起鍾 李吉秀 李範春 李炳根 李錫杓 李成炳 李愚燦 李載永 李載興 李鍾國 李喆宰 李春黙 李泰喜 李浩燦

李吉中 李秀奉 李鵔雨 李桓周

6. 祭務部 部 長 : 李宰丞 次 長 : 李龍宰 李光敎 委 員 : 李康元 李京根 李圭大 李揆亨 李根俊 李起先 李琪中 李吉燮 李文源 李璧浩 李昇九 李承文 李涎燮 李鎔甲 李愚昆 李元圭

7. 祭服部 部 長 : 李鶴九 次 長 : 李永九 申鉉幀 委 員 : 李康成 李康注 李敎成 李根浩 李突康 李東九 李東根 李東元 李東鉉 李萬根 李明珠 李炳旿 李性大 李淳天 李完珩 李沅根 李應鎬 李枝淑 李昌薰 李哲秀 李泰鉉 李漢圭 李賢九 李亨輝 8. 御駕 1部 部 長 : 李富鎔 次 長 : 李漢範 委 員 : 李石雨 李承默 李龍在 李愚天 李浚圭 李漢弼 李海浩 李浩永 9. 御駕 2部 次 長 : 李範洙 委 員 : 李康善 李康稷 李東宰 李炳玗 李瑢杓 李應羅 李宰吾 李貞男 李哲秀 10. 警護部 部 長 : 李在福 次 長 : 李喜燮 委 員 : 李康洙 李炅在 李桔宰 李金洙 李德耆 李世衍 李 昇 李允種 李垠錫 李在達 李鍾天 李昌來 李泰雄 李邰薰 李亨九

李海昌 李東寧 李丙文 李相一 李点植 李廷基 李鍾大 李孝根 李禧眞

11. 奉仕部 部 長 : 李燕浩 次 長 : 嚴尹子 李枝順 李瑛純 委 員 : 李康烈 李文子 李寶姬 李仙羽 李受耔 李英姬 李恩道 李銀洙 李貞順 李海淑 李鎬慶 鄭順玉 趙錦春 曺淑姬 崔秀任 12. 事務處 職 員 : 李範成 李賢友 朴凞縯 李效貞 李準爀 李鍾允

李花 293호 65


2022 宗廟春享大祭(永寧殿) 祭官 初獻官

一 二

室 室

四 五

室 室

六 七

室 室

八 九

室 室

十 室 十一室 十二室 十三室 十四室 十五室 十六室

亞獻官

終獻官

大祝官

內齋郞

外齋郞

執奠官

李世林 李俊在

李燦九 李政柱

李鎔太 李起洙

李根洙 李淳浩

李紀定 李在鎬(서울)

李駿雨 李洪宰(서울)

李鍾培 李吉中

李起鍾 李鉉命

李陵雨 李建祚

李亨洙 李銀熙

李鍾城 李殷雨

李承鎔 李應彰

李泰喜 李信在

李殷鎔 李錫鎭

李喆宰 李閏周

李昇炫 李學在 李東宰 李廷薰 李壽薰

李亨雨 權赫遠 宋洙能 李柱雨 李泳雨

李厚源 李長吉 李榮澤

朴勝進 沈應植

李孟壽 李鍾國

李秀康 李起澤

曺琚鉉 洪相憙

朴鍾秀 李起秀

李鎬昱

朴性勳 李光敎 李光銀

朴性云 李琯雨

禮儀使

李天宰

李京彔

堂上贊儀 李建宰

李泰鉉

李正九 李廷朝

李承伶 李潤圭

李鼎洙 李錫泳 李福用 李珍洙

李範春

李康注 朴誠富

李承允 李俊雨

李薺鎬 李大薰

李鍾國 李敎燮

李鍾祐 李範玟

李庚鎬

李愚燦

李錫杓

李道珩 李丙善

李在鎬(천안) 李廷基

李哲源 李点植

李明鎭 李天浩

李鍾甲 李暻燮

李桐圭 李海範

李賢九 李根俊

李振勳 李根宗

李景用 李揆錫

李洪宰(광주) 李達浩

李愚珍 李根浩

李鎬稙 李秉煥

李根培 李秀奉

李鴻逸 朴德雨

李載興

李鎔甲

朴基業

金詳植

朴春圭

李閔鎬 李承重

李南奎

室 外 李東成

皇嗣孫 李寛周

李炅根

李秦九 李振儀

祭 官 堂下贊儀

李揆敦

李道宰

李春黙 李揆鎬

薦俎官

李浩燦

捧俎官

李吉秀

李桓周 李成柄

李鍾柄 洪錫勳

盥洗位

李南政

李炳根

특별원원(院員) 연회비 자동이체 안내 종약원 특별원원은 소정의 절차를 거쳐 본원에 등록한 개인, 파종회, 단체를 말하며 본원 총회 대의원은 특별원원을 가입한 자를 기본 요건으로 하고 있고, 1975년 1월부터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특별원원은 가입시 가입금을 납입하고 이듬해부터 연회비를 납부하고 있으며, 현재 연회비 는 무통장 송금 또는 지로용지를 이용하여 납부해 주고 계십니다. 이에 본원에서는 특별원원께서 금융기관을 방문하는 번거로움과 본원에서는 지로용지를 송부하여야 하는 부담을 해소하고자 자동결제 시스템(CMS)를 도입하였습니다. 2022년도 연회비 납부를 이미 하신 특별원원 께서는 2023년도부터 적용되며, CMS를 이용하지 않으실 특별원원께서는 종전과 같이 무통장 송금 또는 지로용지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 다

음 ―

1. 연회비를 월 3천원, 월 5천원 등으로 다양화 하였습니다. 2. 매월 납입하지 않고 특정 날짜에 납부하실 분은 신청하신 금액을 1년 중 지정하신 날짜에 한 번에 납입하시거나 또는 분납하실 수 있습니다.(비정기 출금) 3. 특별원원 계좌/신용카드 자동출금 이용신청서를 작성하여 본원에 신청하시면 특별원원님의 은행계좌 또는 카드에서 본원 계좌로 자동이체 됩니다. 4. CMS 신청 후 취소를 원하실 경우 본원에 요청하시면 언제든지 취소가 가능합니다. 문의 ☎(02) 765-2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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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花보 구독 배가 운동을 합시다 全州李氏의 宗報인 이화보를 모르고 지내는 종친이 많습니다. 종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상호 정보를 교환하시어 이화보를 알리고 홍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화보를 통해 일가들의 동정을 알리고 상호 정보를 교환할 수 있습니다. 참여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동정란 에 게재할 소식과 자랑스런 종친의 이야기와 시, 수필, 교양, 논문 등 알리고 싶은 원고를 기다립니다. ※ 종친 기업의 협찬 광고를 모집합니다. 본 이화보는 종친 여러분의 구독료와 광고수익금으로 운영, 간행되고 있습니다. 게재소식 및 광고 문의 : 종약원 문화부 전화(02)765-2124 / 팩스(02)742-1676 이화보 구독 계좌번호 : 예금주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국민은행 817-01-0031-375 농 협 053-01-162048 우 체 국 010579-01-000891

이화보 원고 모집

〈李花報〉에 게재할 원고를 아래와 같이 모집하오니, 종친 여러분의 많은 투고를 바랍니다.

1. 내용 가)종사에 관한 미담이나 중요 행사 제언 나)종사와 관련 있는 수필 · 콩트 · 기행문 다)종친 교양을 위한 논술문 라)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소식 2. 기 간 : 연중 계속 접수함 3. 분 량 : 200자 원고지 15장 이내 4. 첨부물 : 증명판 사진 1매 및 관련자료(파 · 대 · 이름 · 주소 · 연락처 및 직업) 5. 채택된 원고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합니다. 6. 제출처 : 서울시 종로구 돈화문로 89(와룡동) 이화회관 4층 문화부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부(이-메일 : rfo@rfo.co.kr) 7. 홈페이지에서도 원고를 접수 받습니다 ※ 홈페이지 주소 http://www.rfo.co.kr

편 집 후 기

계절의 여왕이라 일컫는 5월, 코로나19의 단계적 일상회복 에 접어들면서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미뤄왔던 야외 활동을 하면서 잃었던 활력을 되찾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택과 결정을 할 때는 언제나 신중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께서 보내주신 옥고를 살펴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게재하지 못한 내용에 대해서 양해를 구하며 더욱더 호응받는 이화보가 되도록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 합니다. <문화이사 규원 외 문화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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