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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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비밀동툰 / 사진. 글.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62, 63 / 사진. 글. @Ahopsi 영화로 읽는 시공간 - 음란의 마스터 알프레드 히치콕 / 글. 곡주대비 변호인을 보는 또 다른 시선 / 글. 남지연 회사옆 미술관 / 글. 강세기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이문재 / 글. 고수진 뼈그림 - 틱 타알릭의 발 / 글. 그림. 왼손이 곁다리 인텨뷰 - 타투이스트 타쿠야 님 / 정리. exxx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 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웹디자이너 생존 매뉴얼 - 교양의 생존 매뉴얼 / 글. 그림. 김성연 독신자의 독서일기 -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그림. 이다솜 글.권고마 사진 일기 / 사진. 글. 박민수 아무런 ‘것’ 이야기 / 그림.D 글.Jooeny 0,0,0 (마지막회) / 글.그림. Night Planet 건축이 좋아 - 신문로 옆 ‘작은집’ / 글. 사진. aoikasa 물질과 비물질 - 2.눈 / 사진. 황은정 글. 김종소리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젖 / 그림. 글. 두리 우울한 청춘 / 그림. 글. 철민 부산오뎅 이야기 - 오 마이 세훈 / 글. 주용 국가란 무엇일까? - 2회 / 글. exxx 바다비 일요 시극장 광고 뒷 표지 / 글. 그림. 지인


올 초, 작년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꼽아 본 일이 있었는데 목표치에는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었습니다. 어찌나 부끄럽던지... 원. 딱히 뭘 한 것 같지 않은 2013년을 보내고 나니 책 이라도 읽어둘 걸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러분도 잘 모르겠다 싶을 땐 책을 읽어 보는 건 어떨까요? 월간이리는 1월호에서 말씀드렸던 변화의 한 가운 데 있습니다. 2월 호 부터, 인터뷰 코너가 생겼고 짝사랑과 관련 된 <아무런 ‘것’ 이야기>, 여행기 인 <사진일기>, 또 다른 인디 잡지, 젖은 잡지 편집장님의 코너 < 젖> 그리고 부탁드려 받은 원고 <변호인을 보는 또 다른 시선> 이렇게 다양한 코너들을 준비해 보 았습니다. 다음달에도 재미있는 코너들이 예정되어 있고요. 여러분이 올 한해 몇 권의 책을 읽든 그 안에 월간이 리가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한번 독자여러분 그리고 함께 수고해주시는 필 진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편집: 이훈보 공식트위터 @postyri

표지: 이주용, 한지인


비 밀 동물툰 Animal Toon by BEAMIL

2014년에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나름 위트있게 , 뜨끔하게 쓰고 그린 짧은 만화를 기고합니다. 팩트를 뒷받침하는 기사와 간단한 의견도 함께입니다. 많이 공감해주세요. 제보도 감사합니다.

G


Goose down * 유행에 그다지 밝지 않은 나는(눈에 밟히는대로 사고 손 가는대로 입는다.) 자주 보던 프로그램에서 처음 C 브랜드의 디자인을 보

고, 가격을 듣고 정말 진심으로 놀라버렸다. 그 다음날 일이 있어 동네를 벗어났다가 더더욱 진심으로 놀라버렸다. 거짓말이 아니라

Duck down down down down down down down 눈으로 목격한 진실로 20명에 한 명은 그 브랜드의 점퍼를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커플 점퍼라니.. 가격이 엄청나서 한 사람이

몰아서 사긴 힘들테니 반반? 그렇다면 와! 참으로 귀여운 커플이다! ,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엔 그닥 예뻐보이지도 않았다. 매년 최악의 폭설 , 최악의 한파라고 극성을 떠는 것과 달리 내가 느끼는 한국의 겨울은 매년 따뜻해지고 있는데 보고 있는 장면이 어색하다 느껴

질 만큼 이상했다. 늦여름부터 겨울 옷을 입고 찍은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달까. 사계절의 햇빛은 색감도 분위기도 모두 다르다. 내가 너무 어려서 앞뒤 분간 못할 때 부모님 따라 다녀온 한 겨울의 체코에서는 어울릴 것 같다. 어렸지만 살에 닿는 공기의 느낌만큼은

그래서인지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때 그곳은 정말 정말 추웠고 처음보는 현지의 사람들은 모두 비니를 푹 눌러쓰고 살색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꽁꽁 싸맨 채였으니까(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 옷에 관심이 없네라고 생각했다). 여하튼 요지는 그 점퍼는 너무 비싸다. 한국 사람들에게 예쁘게 어울리지도 않는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쌍하게 살다 죽는 동물의 개체 수를 늘린다. 추위에 생사고락이 달려있는 환경에서야 어쩔 수가 없다. 북극 원주민이 입는 생 모피를 반대할 만큼 편협하지는 않다.

몇년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된 다큐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상은 찌푸려졌지만 그들이 입는 모피,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고기마저 비난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그게 삶이니까. 그런데 우리의 레벨 낮은 겨울과 모피와 털 내장재가 어울리는 삶인지는... :ㅣ

동물자유연대

Korean Animal Welfare Association

‘올겨울 ‘다운점퍼’ 인기는 열풍을 넘어 광풍이라 할 정도로 뜨겁다. ‘다운(down)이

란 오리, 거위 등 새들의 외부 깃털 안에 난 솜털을 지칭하는 것으로, 털 사이사이에 공기를

가두어 체온을 유지하고 거위, 오리 등 물새류의 경우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부력이 생기게 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명품으로 구분되는 10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해외 브랜드 제품들 은 없어서 못 팔정도며....’, ‘고가 다운 점퍼에 대한 수요가 늘자 백화점들은 저마다 명

* 몸에 꼭 맞는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거위

품 브랜드 유치와 물량확보에 바쁘고, 모 백화점의 전체 명품 다운 점퍼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60%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국내 여러 중저가 업체들은 명품 브랜드를 그대로

베낀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 탓에 극한의 추위도 견딘다는

보온성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효과를 보는 덕도 있다. 하지만 고가의 다운 점퍼 브랜드마다 매달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현상을 보면 소비자들의 유행을 좇는 성향이 다운점퍼 열풍에 큰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일부 생활침구의 충전재로 이용되던 다운은 이제 의류 뿐 아니라 모자나 부츠 등 그 사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많 은 양의 깃털과 장식용 모피를 생산하는 과정에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다운은 새의 털을 미는 방법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새의 털을 잡아 뜯는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도살 전까지 3번 이상 채취가 가능하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채취된 털이 더 고급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털을 채취하는 전 과정은 새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준다. 보통 작업자들은 거위나 오리를 목이나 연약한 날개를 잡아 운반한 후, 무릎

사이에 놓아 제압한 뒤 한 손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가슴부위의 털을 잡아 뜯는다. 살점이 함께 찢겨나가는 고통에 새 가 발버둥치고 소리를 지르지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털을 생산해야 하는 작업자에게 새의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 저항하는 새를 힘으로 억압 하면서 새의 날개나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며, 심지어 최고 품질로 여지는 다운을 생산하는 헝가리 거위 농장에서는 작업자가 털을 뽑다가 거

위의 피부가 찢어지자 마취도 없이 바늘과 실로 생살을 꿰매는 장면이 폭로되기도 했다. 털 채취는 거위와 오리가 약 10주 정도 됐을 때 시작

해 6주 간격으로 도살 전까지 반복된다. 비인도적인 깃털 채취 방법이 폭로되면서 다운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제품에 쓰

이는 다운은 동물의 털을 산 채로 뽑아 만든 것이 아니며, 식용으로 도살된 개체로부터 얻은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입은 점퍼에 사용된 충전재가 고기를 목적으로 도살한 개체의 털로 만든 것인지, 산 채로 털을 뽑아 만든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MK 패션

ⓒ 매경닷컴 MK패션 (news@fashionmk.co.kr) 조혜원 기자

부모들의 등골 브레이커로 불리는 10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노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했던 패딩 트렌드가, 올해에는 캐나다 구스, 몽클레 르로 옮겨가며 2~30대까지 연령층을 넓히고 가격적으로도 한층 비싸졌다. 가장 비싼 아우터로 불리는 모피의 가격과 맞먹는 기본 120~130 만원대부터 시작해 300만원을 넘는 이 고가의 패딩이 대중적으로 유행하며 가격과 소비 성향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이 논란은 최근 브랜드 현지 가격과 국내 가격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며 더욱 거세지고 있다. 몽클레르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90만 원대인 제품이 국내에서는 150만원을 넘으며, 캐나다 구스도 캐나다 현지에서 80만원대 제품을 한국에서는 100만원을 훌쩍 넘긴 가격에 판 매되고 있다는 것. 현지와 국내의 가격 차이는 거의 2배에 가깝다.

* 보여주기식 소비에 익숙한 한국에서 어떤 브랜드의 제품들이 현지나 타지의 가격보다 높게 책정되는 일은 흔하다. 현지에서는 보통의 인기인 브랜드가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끄는 기현상은 해당 브랜드의 홈페이지에서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사업가고, 소비패턴을 빠르게 파악해

매번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덧붙여, 캐나다 구스는 거위의 털로 내부를 채울 뿐 아니라 모자에 코요테의 털을 탐스럽게 장식한다.




19금 특집 II

‘음란’의 마스터, 알프레드 히치콕 (A Master of Cinematic Obscenity: Alfred

영화로 보는 시공간 _ 글.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며칠전 이동진 평론가의 빨간 책방이란 팟캐스트를 듣는데, 문학 비평가가 김승옥 작품들에 별을 다는 것이나 영화 비평가가 시민 케인에 별을 다는 것은 의미 없고 무모한 일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뭐 이유야 다들 짐작 하 시겠지만 둘 다 너무 뛰어난, 다들 이미 인정하는 대가/작품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 대목에서 내가 히치콕에 대해 글을 쓰려 했던 것에 심하게 망설여 졌지만 이 번호에서 굳이 강행 하려는 것은 일단 1. 별을 달려는 목적이 아 니고 2. 히치콕을 빼고는 야한 영화를 논할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저번 호에서 말했던 그런 종류에 ‘야함’은 아니다. “obscenity”:한국어로 ‘음란’으로 해석함이 가까울 것이다. 히치콕의 영화들을 본 적이 있는 독자들은 필자가 왜 히치 콕의 지극히 서스펜스 적이고 심오한 작품들에 음란함 이라는 컨셉을 갖다 붙이는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더군 다나 그의 cinematic oeuvre 가 음란이나 “원천적 야함”을 다루거나 그러한 주제들과 ‘유희’ 하고 있다고 필자가 보 는 것은 그가 영화 이미지나 장치들을 통해 표현 했던 일련의 주제들이 보수적이었던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가치들에 서 철저히 금해졌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미 그의 초기 작품들 (1920년대에 만들어졌던 무성영화들) 에 서 그 당시 터부시 되었던 매춘이나 간음, 동성연애들이 암시나 메타포를 통해 등장한다. 히치콕의 1927년 작품 다운힐 (Down Hill)은 남자 사립학교에 다니는 부잣집 자제 (아이버 노벨로 분) 가 소녀를 임 신 시켰다는 누명을 쓰고 집에서 쫓겨나 인생의 하락세를 걷다가 결국 그의 결백을 알게 된 부모 품으로 돌아간다는 표 면적으로는 지극히 도덕적인 영화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초기 작품으로 히치콕의 작품적 성향을 점쳐 볼 수 있는 것은, 캐스팅이 다. 당시 동성연애 주제나 동성연애자 캐릭터를 영화에 재현하는 것은 철저한 금기였기 때문에 그러한 테마를 (암시 적으로) 그리고 싶을 때 그는 동성연애자 배우를 캐스팅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커밍아웃 조차 흔치 않았기 때문에 히 치콕의 개인적인 연줄(?)을 동원했을 것이다. 주인공을 연기하는 Ivor Novello 는 게이 로서 이미 유명한 연극배우였 다. 히치콕의 작품에서는 성 정체성이 모호한 살인자 (The Lodger, 1927)나 다운힐 처럼 게이 성향을 가진 부잣집 자 제, 연예인 같은 역할을 맡았다. 물론 동성연애 라는 암시를 단지 배우의 성향으로만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히치콕은 시각적인 암시 (visual embodiment) 에 매우 강한 감독이 아닌가. 가령 다운 힐 에서 남자아이들이 옷을 갈아입는 락커룸에 주인공과 임신 스캔들로 엮이게 되는 소녀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 노벨로 캐릭터는 다른 남자 아이들과는 눈에 띄 게 차이가 날 정도로 심하게 놀라고 마치 유령을 본 것처럼 가슴을 쓸어 내린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이상한 리액션은 반드시 클로즈업으로 처리 된다. 조금 더 심오한 은유로는 노벨로 캐릭터가 종종 옷장이나 캐비닛 옆에서 서있거나 서 성이는 프레임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흔히 커밍아웃 이라는 영어식 표현의 원 문장이 coming out of the closet (옷장 에서 나오다) 라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동성 연애가 음란한 주제냐”고 반문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음란”함을 ‘성적인 금기’ 정도로 받아들이는데 그러한 맥락에서 그가 다수의 작품들 – Downhill, Rope, Rebecca, Marnie, Psycho, 등등 – 에 서 (더구나 1920년대에서 1950년대 까지 헐리우드의 극 보수파 William Hay 가 이끌었던 검열 시스템을 고려했을 때) 많은 동성연애작가들, 배우들 과 작업하고 그들만의 싸인 들을 영화적인 기법으로 녹여놓았다는 것은 괄목할 만 한 사실일 것이다. 히치콕이 집착했던 또 하나의 주제는 근친상간이다. 히치콕의 대 히트작 새 (Bird) 나 싸이코 (Psycho), 그리고 오명 (Notorious) 같은 작품들에서 우리는 눈에 띄는 마마보이 캐릭터를 보게 되는데 이들은 그들의 어머니와 단순히 친한 관계를 넘어선 상에 있다는 시각적인 은유들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아들이 성적으로 매료되는 여자들은 반드시 남근 상징적인 무기에 살해되는데 이는 아들을 조종하는 어머니의 일련의 감정적인 폭발 (화를 내거나 질투를 하거나) 이 있은 후 일어난다. 싸이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인 자넷 리가 남성의 성기를 닮은 큰 칼에 수십 번 찔려 살해되는 것이 칼 쇼트와 여성의 나신 쇼트로 이루어진 점프 컷/크로스 컷 형태로 처리된 것은 살해를 나타냄과 동시에 여자와의 성 관계를 의미하고 모든 ‘의식’ 이 끝난 후 욕조 바닥으로 쏟아지는 그녀의 피는 남성의 정액을 상징한다. 박찬욱 감독은 몇몇의 인터뷰들에서 히치콕의 영화적인 기법을 숭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그의 영화에서도 이러 한 오이디푸스 적인 (박찬욱의 경우 일렉트라적인) 근친 상간의 메타포가 등장하는데 가령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 호에게 딸이 달려가 다리를 벌리고 나무에 감싸 안기듯 안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묘하게 블랙 엔 화이트의 그림 자 씬으로 처리되어 결국 부녀 관계 임을 인지 하기 힘들게 나온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암시가 올드보이 에서 는 당당하게 부녀/연인 관계로 등장하지 않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히치콕을 존경하는, 혹은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고 그의 최고작들, 앞서 논한 싸이코나 새 등을 선호 하는 작품으로 언급한다. 물론 필자도 그 중 하나 임을 주저 없이 말하곤 하는데 굳이 작품들까지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반드시 그의 초기 무성영화들을 말한다. 그가 헐리우드로 자리를 옮겨 좀 더 발전된 기술과 장치들을 쓸 수 있 기 전, 또한 영화라는 매체에 사운드가 적용되기 전, 그는 모든 주제적인 요소들을 미장센이나 배우의 모션, 표정등에 시각적 그리고 회화적으로 녹이려 했다. 가령, 로프 라는 영화 중반에 벽지 배경으로 등장하는 ‘대각선’은 그가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주장한 신의 더블 크로스를 상징한 것이고, 이는 로프의 주인공들이 수퍼맨 이 론을 주장 하며 자신들이 다른 인간들 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행하는 살인은 죄악시 할 수 없다 라는 주장을 상징화 해서 보여주고자 함임을 몇몇 히치콕 학자들은 지적한 바 있다. 사실 히치콕이라는 거장을 논하기에 A4 몇 장 혹은 책 몇 권은 모욕적일 정도로 부족하다. 3-40년 동안 히치콕 학자 로 살아가는 영화 학자들도 있으니 말이다 (Robin Wood, 그리고 나의 스승님들, Sidney Gottlieb & Richard Allen at NYU). 내가 지금 쓴 글이 그들을 욕되게 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서지만, 이번 호로 인해 한 두 명의 독자라도 히치콕 의 고전을 꺼내 볼 수 있다면 일련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변호인을 보는 또 다른 시선

글쓴이 : 남지연 이메일 : hypatia0001@gmail.com ※ 스포일러 없습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송강호 분)은 외친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다.”

하지만 그 속에, 여성은 어디 있을까? 사건의 주축을 담당하는 변호사도 검사도 판사도 피고도 증인도 모두 남성인 이 영화에서, 여성은 그저 어머니와 부인으로 기능한다. 영화 속에서 여성은 어떤 남자의 아내, 어떤 남자의 어머니로 표현된다. ‘어떤 남자’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독립된 개체로서가 아니라 세금전문변호사로 잘 나가는 남편 송우석의 평탄한 생활을 보여주는 도구로, 부당한 공권력에 짓밟히는 연약한 존재의 비애를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소모된다. 부림사건이 있었던 1981년은 여성이 사회 외적으로 활약하는 시대는 아니었다. 토끼 같은 자식들 도닥이며 야옹 야옹 소리로 쥐를 쫓는 아내, 고단한 시절 따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안식을 주던 모성이 감독이 그려낼 수 있었던 여성상의 전부일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변호인> 속에서 여성은 남성 캐릭터의 선 굵은 고난과 도전에 잔물결 같은 감정적 떨림만을 변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바야흐로 남성 일변도의 세상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처우 개선에 대해 논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걸스데이가 목놓아 외쳤던 것처럼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 발등의 불은 꺼지지 않았나.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은 사회 전반에 암약하고 있는 남성 위주의 코드이다. 영화에서 고개를 살짝 돌려 TV를 바라보자. 무한도전을 필두로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일박이일, 정글의 법칙, 런닝맨까지. 방송 3사의 대표 예능을 모두 남성이 장악하고 있다. 여성은 홍일점으로 끼워 넣어져 우호적 차별(Benevolent Sexism)의 대상으로,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개체로 쓰인다.. 우호적 차별은 적대적 차별(Hostile Sexism)만큼이나 해롭다. 전통적 역할을 유지하는 여성에 대해 보상을 주고 칭찬함으로써 기존의 권력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호적’이라는 단어에 가려 그 뒤의 ‘차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남성은 약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자신의 모습에 반한다. 여성은 당장의 호의가 주는 달콤함에 가려 전통적 성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스스로를 겁박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제시하는 틀에 자신을 구겨 넣어 맞추고 쏟아지는 찬사에 도취되어 종래는 겨자씨 한 톨만큼의 자아 – 성 역할 문제에 있어서는 - 를 가지게 되었다. 러브라인의 형성은 기본적으로 두 명 이상이 함께 있어야 한다. 어느 쪽의 젠더라도 사랑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남성성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여성은 타자화된 이미지만으로 존재하기 일쑤다. ‘화난 여자친구를 달래는 방법’ 이 SNS에서 재미있는 자료라 하여 돌고 있다. “일단 먹여. 단 걸 먹여. 계속 먹여.”의 짤막한 세 문장으로 구성된 이 자료를 웃음을 떠나 정색하고 분석해보자. 상대여성을 고유의 캐릭터를 가진 ‘인간’으로 보기 이전에 내가 알 수 없는 타자, 즉 ‘여성’이라는 블랙박스에 가두어 규정한다. 구성원 대부분이 홍일점을 타자화하는 상황에서 여성은 한 인간으로서 캐릭터를 가지기보다 누군가에 의해 부여된 속성을 충실히 수행하게 된다.


미디어의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우호적 차별이 여성에 대한 우대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 세상에서 눈길 닿는 곳마다 모두 남성인 이 세상에서,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어떤 식으로 행동지침을 세우며 누구를 자신의 대표자로 삼아야 하나.

독일 출신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다. “악한 일은 대부분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우리는 분명 악을 행하고 있다. 억울한 것은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악인지조차 모른 채, ‘나쁜 놈’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이다. 나치에 부역하던 모든 사람은 크나큰 죄를 지었다. 하지만 개인의 잘잘못을 논하기에 앞서 그들을 그렇게 몰아갈 수 밖에 없었던 시스템을 먼저 논해야 한다. 자신의 스펙 만들기에 목매달며 오늘도 끊임없이 자신을 백척간두의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학생들을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도 없는 머저리라며 탓하기 이전에, 그들의 열정을 담보하여 착취하는 시스템을 먼저 탓해야 한다. 우리는 억울하다. 네모진 틀 안에 갇혀 수동적인 역할만을 재생산해야 하는 여성의 억울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끊임없이 나쁜 놈 소리를 듣고 있는 남성 역시도 억울하다. 내 주위의 엄친딸들 모두 좋은 대학 나와 대기업에 취직해 고액연봉 받고 있는데, 심지어 새파란 청춘 빌어먹을 군대에서 2년 썩히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떤 차별이 그들에게 가해지고 있단 말인가. 시스템은 무서울 정도로 공고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그러하기 때문에,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그려진 가슴마저도 모자이크 할 정도로 ‘옳은’ 일을 하는 미디어가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넌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있는 내 처지가 꽤나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 말에 나는 “너희도 여자로 태어나지 그랬니.”라고 응대하는 동시에 나 자신의 망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부모님처럼 할머니처럼 차별하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며 살고 있는 내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말이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고래로 인간은 항상 성인 남성의 특성만을 갖추고 있었다. Man이 Human의 동의어인 것처럼. 여성은 인간들의 사이, 그 어느 즈음에서 표상만의 외부자로 존재해 왔다. 무엇이 잘못인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남성 위주의 코드는 곳곳에 잠복해 있다. 이제는 누구나 그렇게 하기 때문에 가해지는 폭력에 주목할 때다. 뚱뚱한 여성을 비웃는, 스타벅스 커피를 사랑하는 여성을 비웃는, 개념녀라고 추켜세우는, 하나의 이미지로 여성을 규정하고 소비하는 코드에 저항해야 한다. 문제를 푸는 것의 출발점은 그것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에 횡행하는 비하(卑下)의 웃음 코드를 보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다면, 당신은 이미 열차에 올라탔다. 남성과 여성은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이다. 타인에게 상처 입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격하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들씌워진 이미지의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이해에 다다르지 않을까. <변호인>은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의 명문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민주정부의 원칙을 또렷하게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People은, ‘Man=Human’인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 일반만을 정조준 한다. People이 ‘여성∪남성’이라는 본연의 의미를 명확히 가지게 될 때 <변호인>은 더 이상 “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영화가 아니게 될 것이다.


옆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제법 들을 수 있다. 뭐 대 부분은 작품에 대한 사교적인 칭찬이 대부분 이지

만, 시시하게 보고 넘어갈 전시의 재미를 좀 더한 다는 점에서 아직도 애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동시대 미술의 경우는 귀동냥을 할 만한 곳도 마땅

치 않고 어렵다. 앞에 섰을 때 “좋다”라는 느낌보 다 “이건 뭐지”라는 의문을 남기는 작업이 훨씬 많 다. 작업 앞에 선 (업계 종사자가 아닌 일반)관객

들이 10초에서 길면 몇 분 사이에 그것을 향유하 고 공감하기에는 아는 지식과 시간이 너무 부족하

다(빨리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 마음 의 압박 때문에).

그래서 동시대 미술은 연예인을 좋아하듯 단순한 방식의 팬덤 보다는 어떻게 보면 살짝 오타쿠적인 태도가 필요한 취미이다. 더군다나 한 눈에 읽혀

지기를 거부하는 이네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회사 옆 미술관

그런 점에 있어서 니꼴라 부리요의 ‘관계의 미학’ 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요리사의 레시피, 회계사 글. 강세기

미술 구경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귀

의 세법전처럼 요즘 미술을 잘 ‘읽고’ 싶은 나를 포 함한 사람들이 옆에 두고 있을 만한 책이라는 생 각이다.

동냥을 하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뭔가 아우

니꼴라 부리요는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

는 얘기를 듣는 것이다. 이런 부류를 알아보는 것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어 작품 속에 냄비

라를 풍기는 사람들 옆에 살짝 붙어서 이들이 하 은 조금의 눈짐작만으로도 쉽다. 먼저 대부분 2인

이상이 함께 들어온다(그래도 세 명을 넘어가는 일 은 거의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갤러리에 들어왔는데 프런트에 있는 직원이 후다닥 사무실로 들어가서 사장 또는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을 데리고 왔다면, 그 사람

린다. 부리요는 미술작품의 이미지는 그 자체만이 가 하나 있다고 치자. 그 앞에 선 우리는 냄비가 얼

마나 정교하게 묘사되었는지, 물감은 어떤 재질인 지, 다른 사물들과는 어떻게 배치 되어있는지 같

은 눈에 보이는 것만 감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 만 부리요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형태 뿐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주목해야 한 다 것이다.


가령 이 냄비가 탄생하기까지 요소, 예를 들면 이

그도 그럴 것이 전시장에 음식이 차려져 있고 그

기에는 어느 캄보디아 깡촌 공장에서 하루에 12시

서는 작품이 될 수 없을 것 아닌가(리크리트 티라

냄비는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며, 여 간씩 일하면서 하루에 1불 이하의 월급으로 일하

는 12살짜리 어린아이의 피땀이 담겨있을 수도 있 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화겠지만, 중요한 점은 관 계 작가들의 작업 속에는 이미지 이면에 그와 관 련된 누군가를 작업 속에 끌어들인다는 데 있다.

그러나 작업 앞에서 눈에 힘주고 무언가 통찰을 발

것을 먹는 것이 작품자체라면, 관객이 먹지 않고 바니자, 베니스 비엔날레 아페르토 93 설치). 이런 시도는 미술작업 제작 과정 속에 관객을 끌어들여,

미술에서 관객의 역할을 한 단계 넓혔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액자에 가려진

작품과 관객과의 관계를 툭 터놓고 둘 사이의 간격 을 없애 놓은 것이다.

견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디까지

한발 떨어져 지켜보기만 하던(觀) 손(客)에 불과했

서 공감을 못 얻는다면 그것은 아티스트가 너무 앞

에서 밀어낸 한 부류가 있으니, 미술을 소유하려는

나 이미지로 승부하는 것이 예술일텐데, 이미지에 서가는 것이거나 관객과의 소통에 방법적으로 부

족한 탓이겠거니 하고 넘어가면 될 테니 말이다( 동시대 미술을 보려면 이게 당최 무슨 놈인지 모를

지언정 끝까지 그건 내 탓이라고는 하지 않는 당

돌함이 필요하다. 잘 보이면 내가 잘난거고, 아니

면 아티스트가 요상하게 만들었다는 그런 철면피 적인 태도 말이다.)

던 관객(觀客)과 친밀해지면서 자동적으로 미술판

사람들이다. 관계 미술에서는 선택받은 1%의 소 유자는 사라지고 99%의 손님이 진정한 주인이 되

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소유되기를 거부하고,

그것을 보러 오는 관객들을 통해 작업을 완성한다 는 생각은 지금까지 팔리기 위해 걸려있던 미술품 의 개념을 뒤집는 생각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는 편가르기 심보가 약간 들어간 사견이다.

이런 점에서 부리요의 책은 요즘 미술에 대한 좋

왜냐하면 부리요는 관계 작가들이 미술품의 물질

한가지 특징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작가만이 제공

술, 물질로 존재하는 작업을 보는 것 만이 미술 관

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부리요는 동시대 미술의

자 노릇을 했던 기존 미술과 달리 관객도 한 몫 거 들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미술에서 관객은 언제 나 한 몫을 담당해왔다. 미술이 이 땅 위에 나타났 을 때부터 누군가 그것을 봐왔고, 누가 봐 줘야 미

술의 존재가치가 있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립서비

스에 불과했던 말이었을 뿐 아티스트가 A부터 Z까 지 미술품 제작에 관여해왔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

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단지 소유하는미 람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술 감상에 대

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일침을 놓는 셈이다. 그

래서 미술은 보는 것이 아니라 만져 볼 수도 있고 냄새를 맡을 수도 있으며 그 속에 빠져 헤엄칠 수 도 있는거야… 이런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 관계 미 술의 시작이다.

실이다. 하지만 부리요는 요즘 미술에서는 관객이

관객과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한 이들은 자신과의

장했다고 제시한다.

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껏 자신의

없이는 물리적인 완성자체가 불가능한 작업이 등

관계도 새롭게 설정한다. 미술작업에 “내”가 전면 모습을 그려넣은 “자화상”에 국한되어 왔던 기존 미술과는 다르게 90년대 이후 새로운 경향은 “나”


를 미술작업 자체로 삼는다. 내가 작업의 소재가 되니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나를 통해 연인, 사회, 다른 사람, 관객을 얘기한다.

이렇게 전시 형식을 허물고, 자신에게 둘러쌓인 가림막을 해제한 미술가는 관객 그리고 주위 구성원들 에게 손을 내민다. 이들과 작업을 통해 친밀히 엮이고 싶다는 것이겠다. 나에 대한 얘기를 하며, 관객

이 나를 더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내가 만든 미술품에 관객이 손 한번 더 내밀어주기를 원하는 그런 상 호 작용을 원하는 것이다.

관객과 작품, 그리고 작가간의 한데 장을 어우르려는 시도는 관객이 작품(작가)을 보고 그냥 지나가면 끝나는 일회적이고 서로 따로 노는 형국이었다면, 부리요의 관계작가들은 관람이 작업이 되는, 작가관객-작업이 돌고 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마당놀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관객의 추임새와 끼어들기가 자연스레 이뤄지고

하나 둘 경계 없는 원안으로 들어가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보면 무대 객석 할 것 없이 서로 어울려 노는 그런 광경이 상상되었다.

관계 작가들이 손을 내미는(관계를 형성하려는) 대상들은 점점 그 폭이 넓어지고 있다. 생면부지의 행인 에서 시작하여 특정 장소에까지 관계 작가들이 맺으려는 관계의 스펙트럼은 무궁무진하다.

한편 관계 미술은 단순히 관계 맺기를 넘어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무브먼트까지 발전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면 탈 인종주의, 성적소수자 운동, 환경, 노동, 반전 운동 등 물적, 심리적 동참을 호소

하는 관계 작업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관계 미술이 정치적 메시지를 담으려는 현상은 꽤나 자연스러운 전개로 보인다.

미술의 사회적인 책임을 진지하게 요구했던 민중미술의 DNA가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 경

향이 조금 더 진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을까. 시간이 허락한다면 좀 더 알아볼 요량이다. 그러나 개인

적으로는 미술은 열 관객이면 열 모두 다른 해석과 공감을 낳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정 메 시지로 귀결하는 미술 작업은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는 못하기는 하다.

부리요의 책은 뒷 편에 가면 조금 더 깊은 내용으로 들어가는데 이것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관계 미술… 그리고 부리요…두고두고 같이할 좋은 친구 하나 생겼다. 나 좀 잘 끌고 가주게 말이요, 부리요~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이문재

나무는, 그 자체로도 참 아름다운데 말이야. 오늘은 현대시 이문재 시인의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이다. 이 작품은 2001년도에 발표된 작품이다. 지금껏 다루었던 작품 중에 가장 최신작품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지나치게 밝은 빛에 갇혀 사는 것 같다. 사실 낮보다 아름다운 게 도시의 밤이기도 하다. 특히 나무에 걸린 자그마한 꼬마전구들은 도시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주는데 일등공신들이다. 가로등도 있는데 나무도 길을 밝혀 주고 있다. 문득 이문재 시인은 그런 풍경이 지나친 인간의 이기심으로 비춰졌다. 과연 그만 그렇게 느낀 걸까? 아마 이 시를 읽고 나면 우리도 조금은 생각이 달라질 것 같다.

해가 졌는데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겨울 저물녘 광화문 네거리 맨몸으로 돌아가 있는 가로수들이

엽록소를 버린 겨울나무들

일제히 불을 켠다 나뭇가지에

한밤중에 이상한 광합성을 하고 있다.

수만 개 꼬마전구들이 들러붙어 있다.

광화문은 광화문(光化門)

불현듯 불꽃나무! 하며 손뼉을 칠 뻔했다.

뿌리가 내려가 있던 겨울나무들이 저녁마다 황급히 올라오고

어둠도 이젠 병균 같은 것일까.

겨울이 교란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밤을 끄고 휘황하게 낮을 켜 놓은 권력들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내륙 한가운데에 서 있는

광화문 겨울나무 불꽃나무들

해군 장군의 동상도 잠들지 못하고

다가오는 봄이 심상치 않다

문 닫은 세종문화회관도 두 눈 뜨고 있다.


‘불현듯 불꽃나무! 하며 손뼉을 칠 뻔했다.’라는 구절을 읽어보면 처음 화자 역시 전구를 매달아 밝혀놓은 나무에서 순간적으로 외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다. 작가의 생각이 단적으로 드러난 행이며 매우 현실 적이다.

보는 것도 예쁘고 따뜻한 겨울의 느낌, 달달한 핫초코가 생각나는 겨울을 상기 시키고 무엇보다 그 밑에서 셀카를 찍으면 정말 예쁘게 나오기 때문이다. (읭?) 아마 이러한 이유로 겨울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아름답게 그 아래 걸어가는 커플들......은 무슨,,,

과꼬

잘전

!!!!!!!

어구

울의

허 헉

리나 는무

흠흠, 어쨌든 이어서 2연을 읽어보자. 처음에는 감탄하였던 화자가 이내 휴식과 충전의 시간으로서 어둠과 겨울을 인정하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고 예쁘게만 보였던 꼬마전구가 ‘권력’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둠도 이젠 병균 같은 것일까’라는 구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인데, 자연의 섭 리마저 인간의 힘으로 바꿔 버리는 현대 문명의 파괴성을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 하고 있다. 여기까지 읽어보 니 어느덧 이 작품의 주제가 한 눈에 파악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읽어보자. 광화문 거리를 수놓은 불꽃나무 장식의 이면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기이한 풍경 으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광화문 사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바다에 있으셔야 할 해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나 겨울밤에 광합성을 하게 된 나무들, 그리고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화자의 시선에 들어왔다. 어둠’과 ‘밤’은 자연적인 상황에서 모든 생명체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해 ‘휴식’과 ‘충전’을 누리는 시간 이고, ‘겨울’도 나무들이 돌아올 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무언가 뒤바뀐 상황에서 시대의 수상함, 즉 인간만을 위한, 그것도 소수의 권력자들만을 위한 부정적 시대의 심상치 않음을 읽어내며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 ‘다가오는 봄이 심상치 않다’를 읽어 보자. 일반적인 경우 봄은 환희와 희망, 기다림의 상징인데, ‘봄이 심상치 않다’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위기감을 강조하고 있다.

심상치 않은 지금의 부조리함, 화자는 광화문의 불꽃나무를 보며 시 안에 작가의 우려심을 꼭꼭 눌러 담았다.

나무는 나무 자체로 아름다웠었다. 그걸 잊고 있었다니.


뭐, 별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심각하나? 시인들은 참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구만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것에도 왜? 라는 의문, 우리가 놓치고 사는 부분을 따끔하게 보여주는 것이 자기성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서른이 되다 보니 다른 것은 후회가 없는데 아직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를 모른다 는 것은 참 부끄럽게 느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 유독 인문학책을 많이 읽는데 ‘시’야말로 인문학의 첫 걸 음 인 것 같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해도 오늘도 본진에 미네랄을 퍼 주는 겨우 scv1호

눈이 많이 오는 1월 20일 날 난 집에서 쉬고 있었다. 비록 황사 눈이지만 전구도 감지 않은 나무인데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그 계절을 담고 있는 나무, 아름답고 기분이 좋아지고 따뜻해지고 그러면 된 거다. 그런데 그게 내 이기심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은 가끔 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도, 연애도, 우정도.

다음 시간에는 현대소설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를 살펴보겠다. 풋풋한 풋사랑, 첫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단어가 참 예쁘다.

지각하면 보강이다.

글, 고수진(gomin19@hanmail.net)




곁다리 인터뷰 타투이스트 - 타쿠야 (수프림 타투) http://blog.naver.com/aksaksgksk

타: 그런거 많이 찾으니까. 노보라는

이: 아-

분이 계시는데, 그분 스타일도 괜찮죠. 콜라보도 많이 하시고

타: 외국이랑 한국은 개념이 좀 다른

유승범씨도 받으셨고. 올드스쿨과는

것 같아요. 외국은 전 애인도 같이

달라요.

놀고 하는데 한국은 그런일이 좀 드물죠. 이름이 있고 그러면 덮으려고

곡: 한국은 일러스트레이션처럼 크게

하고.

않하죠. 곡: 그냥 그림같은 것들도? 타: 노보씨의 스타일은 호불호가 있죠.

이: 이래 저래 지우겠죠. 군대

이: 부담이 없어서 좋은 것 같아요.

때문인가?

곡: 한국에서는 가리려면 가릴 수

타: 요즘은 휴가나와서도 해요.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

인터뷰라는 것이 전통적으로 대상이 있고 질문자가 있는 것인데, 때로는 그렇지 아니 하고 이미 서로를 알고 있는 둘의 대화에 곁다리로 좋은 이야기를 듣는 일도 있으니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된것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녹음 버튼도 누르기 전에) 이하. 곡: 곡주대비 타: 타쿠야 이:exxx

그렇게 했어요. 작게.

이: 지우는 것 궁금하네요.

타: 커플 손님이 오셨었는데

타: (주먹을 쥐고 손가락 마디들을

여자친구분 이름을 새긴 적이

보여주며) 저 이거 레이저로 지우고

있었어요. 여자분은 안 하시고.

있는데 이게 레이저 3번 맞은건데

남자가 작업을 받고 가시고 여자분의

처음 2번은 잘 되었는데 세번째는

친구분이 또 오셔서 이런 일이

아는 분이 연습삼아 시술해 주셨는데

있었다. 이야기 했더니 조금 무서워

서툴러서 조금 흔적이 남았죠.

하더라고요. 여자분들 끼리는 그런

살짝 벌어진 것 처럼도 보이고,

이야기도 하시나봐요. 나중에 보니

약간 데인 자국 같기도 하네요.

다른 남자분 사진이 카카오톡에

이쪽은 없잖아요. 그런데. 피부

올라와 있더라고요

따라서 파워 조절을 잘 하면 별 무리 없을 것 같아요. 요즘은 깔끔하게

곡: 동네마다 스타일이 달라요? 이: 자기소개가 들어가야 하는데.. 타: 타투를 하는 타쿠야 입니다. 시작하는건가요? 동네마다

곡: 당연한거 아녜요.

지워진다고도 하고

타: 두분이 처음에 왔을 때 커플

곡: 레터링에 대해 어떻게

타투를 하시긴 하셨는데 문양 같은

생각하세요?

것을. 남자분이 여자분을 많이 좋아하셨던 거죠.

생각해요. 패션이나. MC몽 GD 그

비슷비슷하죠. 거의 레터링을 많이 찾으시죠. 곡: 우리나라 애들은 거의 그거잖아요.

타: 레터링이 연예인 때문이 아닐까

곡: 근데 타투를 누구의 이름을

전에는 주석씨도 있었고 그때그때

새기거나 의미를 나누기 위해 같이

따라서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아하는 척도가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자신이 하고

곡: 근데 타투는 영구적이라 좀

싶은 타이밍에 그 사람이 있어서 하는

위험하잖아요. 유행이긴해도, 전에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같이 하기도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허리에 나비

하고 다른 이유로 지우기도 하고 그런거 같아요.


했잖아요. 그게 노는 친구들 사이에

트러블이 일어난 경우도 있었죠.

미국에서 폭풍적인 인기였는데

그때 3분이 다 같은 트러블이 나면

사람들 엄청 했었어요.

문제가 되었겠지만 2분은 괜찮아서 문제는 없었는데, 타투 자체가 바늘을

타: 외국에서는 여자 허리에 있으면

넣어서 염색을 하는 것이라 염증이

그렇게 본다는데

생길 수 가 있거든요. 컨디션에 따라서. 그런데 소염제 밖에 없어요. 병원에가도 곪지 않는 이상은 항생제

곡: 아니, 안그래요

까지 주지도 않고요. 피어싱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타 : 에이 뭐가 아녜요. 인식이 좀 다르다니까요.

곡: 홍대 인근에는 타투 하시는 곡: 아저씨 제가 살다왔는데.

분들이 몇 분 정도 될까요?

타: 아니 타투 하는 사람이 더 잘알지

타: 한 백명? 다 합치면 얼마 안된

(한참 옥신각신)

분들까지 다 하면 몇 백명도 되지 곡: 작업할 때 체력 소모가 큰가요?

않을까요?

같더라고요. 유행하는 것을 해서

타: 체력 소모가 크죠 3-6시간도

이: 저는 이것을 처음에 어떻게

그런가

하는데, 하루에 다 못할때도 있어요.

배우게 되었는지가 궁금했어요.

곡: 근데 나중에는 좀 후회하는 것들

손바닥 크기만 넘어가도 받으시는 타: 근데 한국 사람들은 유행 따라서

분들이 아파서 못해요. 아웃라인이

많이들 하시는데, 나르샤, 유승범

칼로 긋는 느낌이나고 살짝 찌릿찌릿

씨 따라서 별 많이 했었고. 그래서

하고

타: 학원이 있었어요. 이: 그것도 불법이었겠네요. (타투는 현재 의사가 아닌 이상

요즘에는 별 하면 조금 말려요. 많이 하시기도 했고. 그래서 좀 촌스러워

곡: 꼭꼭 눌러서 하시더라고요.

진 감도 있죠

살짝만 하면 선이 흔들거리니까. 그럴때 좀 아프던데..

불법인 상황이다.) 타: 그렇죠. 근데 학원 자체는 미술학원처럼 해서 하면 상관이

곡: 직접 폰트를 만들어오시는 분도 타: 아픈건 색 넣는게 더 아프죠 계속

없는데, 그때는 시술도 했었거든요.

비비고 그 위에 채도를 내려면 위에

그리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미술도

타: 있어요 그림을 그려오는 분들도

덮고 덮으니까. 남자분들 같은 경우는

전공하셨었는데, 타투와 미술에 대해

있죠. 트래블 같은 것도 많이 하고요.

하루에 다 하고 싶어 하다가도 라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저는 타투가

구준엽씨가 한 문신 같은 것. 그것도

따고 조금 더 하면 그만하고 싶다고

미술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한때 유행했었죠.

말하시죠. 아프니까.

어떤 분들은 그림의 습관 때문에

있어요?

타투가 잘 안나온다고도 하는데 저는 곡: 잉크는 어디서 사요?

곡: 마음에 안들어 하시는 분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타투가 그림과

있어요?

굉장히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요. 홍대에서 타투 하시는 분 중에 제가

타: 국내에 구매처가 있어요. 의료 자격증을 가진 분이 외국에서 수입해

타: 있죠. 피부가 다 달라서 트러블이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오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3분이

든다고 생각하시는 분인데 그 분은

받았는데 2분은 괜찮고 1분이


지금도 그림을 하루에 2-3장씩

타: 그 당시에는 부산도 있긴

그림을 그리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있었을텐데, 검색해도 나오지 않고

그분을 잘 하시는 것 보면 연관이

전부 숨어있었으니까. 그래서

많은 것 같아요. 타투가 처음에는

아무래도 서울이 메카라고 해서

쉬워요. 별이나 레터링을 전사를 따서

홍대쪽이 크다고 해서 이쪽으로 왔죠.

따라 하는데 이걸 해서 돈을 벌면 그림을 안그리는 경우도 있어요. 굳이

이: 저는 90년대 말부터 수면위로

큰 그림 할 필요가 있나 싶으니까.

올라와서 이야기 되는 걸 본 것

작은 레터링 하루여 몇 개씩 하는게

같아요. 이태원에 살아서 어렸을

힘도 덜 들고 비용적으로도 나은

때부터 목욕탕에서 문신을 보기는

경우도 있고요. 실수확률도 적고 빨리

했는데 정식으로 합법이냐

타: 있어요. 한 두분 정도,

끝나고 쉽고 찾는 사람도 많고.

불법이냐를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건

성형외과에서 취직해서 반영구시술 (

그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미용)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단속이

곡: 파마 손님보다 커트 손님이

이게 2014년까지 정리가 안될 줄은

오고하면 시술은 의사가 하고 이분은

남는거랑 비슷하네요.

몰랐죠.

디자인만 하는 형태로 이야기를

곡: 의사가 하는 고도 있나요?

하는 데, 실상은 그렇지 않죠. 편법을 곡: 일본은 합법이죠?

쓰는거죠

그런데 레터링을 잘하시는 분도

타: 일본은 합법도 불법도 아니라고

곡: 지금 8년 했는데 재미있어요?

계세요. 레터링도 쉬운 것 같지만

하던데, 단속을 하면 걸리는 것으로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섬세하게

알고 있어요. 중국처럼 완전 합법은

타: 재미있어요. 좋아서 하는거니까.

들어가니까. 재미있는건 큰 그림을

아니고 중국은 쇼핑몰 안에도 있다고

근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

많이 하시는 분들이 레터링을 못하는

하더라고요. 작년에 타투 하는 사람들

그렇게 많이 안 벌어요. 쉽게 버는

분도 계세요. 미니타투 패션타투 많이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 있었어요,

것도 아니고,

하신 분들은 큰그림에 좀 약한 경우도

올해(2013) 합법화 된다는 이야기가

있고

있었어요.

곡: 뭐가 더 강하세요?

이: 근혜누나가 해줄까요?

타: 그렇죠. 그런데 큰 그림 잘 하시는 분들은 레터링 잘 안하시려고 하고요.

곡: 잘 벌 것 같지 않은데요 제가 봐도? 타: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작은 것

타: 저는 그림 쪽을 많이하죠.

타: 그것 때문에, 세금 때문에,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 그림 그렸거든요.

타투, 흥신소, 큐레이터 이렇게

지방에서는 그림으로 할 그게

합법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곡: 그럼 피어싱도 포함되겠네요.

않으니까요 곡: 지하철만 봐도 타투 한 사람 별로

그런데 선배 형이 이태원에 문신을 받아서 너도 한번 같이 가자고 해서

곡: 근데 수요가 많지 않잖아요? 타: 보통은 그렇게 까지 생각하지는

없으니까. 이런 저런 일을 했는데, 전에 이야기 했던 요가도 했었고

하나해서 5만원 하면 그러니까

타: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안보이던데요?

곡: 피어싱은 공공연히 있잖아요.

타: 많긴 한데, 홍대역만 가도도 꽤

같이 받았는데, 근데 울산에는 배울 곳이 없어요, 그게 또 불법이니까.

되고 그래도 이 동네는 지역적 특성이 곡: 부산에 많지 않아요?

타: 피어싱도 부산에서는 단속이

있기도 하고 해서, 그런데 한편으로는

심하다고 하던데, 피어싱도

아직까지 젊은 친구들도 보수적인

한국에서는 의사가 해야되요. 타투도 마찬가지 이고 반영구도.


친구들이 많아서 타투 그거 미친 것

이: 라이벌 구도가 심할 것 같아요.

아니냐? 왜 하냐? 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곡: 그게 왜 심해요?

곡: 제가 2001년에 목욕탕에 갔는데

이: 제 생각에는 자존심에다 돈까지

아줌마가 때를 미시는데, 타투를

겹치니까 그리고 손님이 손님을

보시고 신기하셨는지 다른 곳을 미실

물어오는 형태니까.

생각을 안하시고 계속..(웃음) 다 민 다음에도 눈을 떼지 못하시더라고요

타: 그리고 지금 광고를 하는데 한계가 있으니까. 홍대 입구

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잖아요.

전철역에 있는 것은 꽤 비싼 요금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삼거리

곡: 그때만 해도 많지 않으니까

포차 앞에도 입간판이 있었는데

그랬나봐요. 그때 대중 목욕탕을

없어지기도 했고 누가 신고했는지..

마지막으로 갔어요. 지금은 좀 틀리겠죠. 그때와

곡: 그게 걸리면 뭐가 되는 거예요? 징역은 아니죠?

이: 저는 그림 스타일이 다른 것도 신기해요. 화풍 같은 것 이야기를

타: 세 번 걸리면, 집행유예 기간에

듣고 보니까 몇 개가 나뉘는 것

걸리면 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같더라고요. 이: 업종 같은 것은 어떻게 타: 예 나뉘죠. 올드스쿨이랑 블랙

되어있나요?

앤 그레이, 이레즈미, 뉴스쿨. 올드스쿨은 예전 뱃사람들이 하는 것

타: 그런걸 할 수가 없죠. 그냥

같은 하트에 화살, 배 앵커와 밧줄,

작업실로 업종을 얻을 수가 없죠.

장미, 여자친구 디자인 그런 것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런 음지의

올드스쿨은 색을 많이 안써요 2-4

사업들을 합법화해서 세금을

타: 장단점이 있어요. 세금 안내고

개 정도 대신에 강렬하게 쓰고요.

걷으려고 하는 것이고 이게 합법화가

조금 벌어도 내가 일해서 벌어

뉴스쿨은 컬러를 좀 많이 쓰죠. 그림

되면 광고 사업이 되겠죠. 병원처럼.

쓰면 되는데 경찰 단속이나 법적인 부담감이 크죠.

스타일도 다르고 벽에 붙어있는 담비같은 것들 색도 은은하게 많이

곡: 안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곡: 그걸 바라시나요? 곡: 합법적인 가격은 있나요? 미국

쓰이고 이레즈미는 일본에서 하는 것

같은 경우는 정해져 있는데.

야쿠자들이 하는 그런 것들 잉어나 뭐

타: 그게 장단점이 있어요. 그렇게

그런 종류의 이미지들,

되어버리면 나중에 취직해야죠.

이: 그런데 한국에는 특징적인 뭔가가

병원이 붙어서 시술 관리 치료까지

타: 성형외과도 정해져 있지

왜 없을까요?

다 해버리거나 아니면 돈이 많은

않잖아요. 그런데 어느 정도 가격은

분들이 인테리어 잘 해서 샵을 하면

형성되어 있어요. 미니타투틑 3-5

타: 한국에는 아직은 없죠. 발달을

작업자들이 월급 받고 들어가는

만원 원 포인트 담배 갑 크기는

하려면 교류가 많이 되어야 하는데

형태도 생기겠죠. 큰 병원이

15-20정도 거의 비슷해요. 미국 같은

아직 합법화 되지도 않았고 라이벌

그렇잖아요.

경우는 잘하는 사람들은 시간당으로

구도 같은 것이 있으니까.

받지 않나요?


곡: 가격은 비슷한데 외국은 팁이

(특정 부위 시술에 대한 이야기를

타: 타투는 중독성이 있어요.

들어가니까 짭짤해 보이더라고요.

하던 중)

하나하면 두 개 하고 싶고. 손님 중에 한 분이 손등에 담배빵이 있어서

타: 외국 손님들은 한 번씩 와서

타: 그거 많이 물어봐요. 여성분들

레터링으로 가리려고 해서 하고

받으면 팁 주는 일이 있어요. 한국

가슴 부위에 하면 좋겠다는 둥 좋지

갔는데, 하면서 너무 아팠다고 다시는

손님들도 계시고,

않냐? 솔직히 조금 긴장은 되죠.

안한다고 가셨었는데 한 두달 쯤

그런데 오늘 많이 보고 많이 만지고

있다가 갑자기 오른쪽 어깨 근처에

이: (벽에 걸린 사진을 보다가) 저분

좋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작업이

늑대가 하고 싶다고 하셔서 하고 또

타투가 멋지네요.

막상 시작되면 가슴 부위는 피부가

가셨다가 한 두달 뒤에 오셔서 오니편

약해서 조금만 잘못하면 색이 퍼져요,

어깨 근처에 이번에는 잉어를 하고

타: 저 친구가 처음 옆구리에

그러니까 작업 들어가면 작업하기

싶으시다고 양쪽에 늑대와 잉어를

했었는데, 그 부분이 예민하거든요.

너무 바쁜데, 일반 분들은 그런

하고 났는데, 늑대는 블랙앤그레이

그런데 너무 잘 참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까지는 않하죠. 그렇게 따지면

느낌이고 잉어는 화려하게 색감이

크기도 큰데 하루 만에 다했어요.

산부인과 의사들은..

있으니까 이번에는 늑대 부분을 좀

그래서 끝나고 어떻게 참았냐고

곡: 다음 유행은 뭐가 올까요?

더 화려하게 색감을 넣고 싶어하셔서

물어봤는데 제가 욕할까봐 무서워서

레터링은 한물 간 것 같고,

배경을 넣어드렸었죠. 파도나 구름

참았다고 하더라고요. 무섭게

같은 것들을 넣어서 그런데 그

생긴 사람이 지하로 데려가서

타: 유행이 있는 것도 같지만 없는

다음에는 팔 아래쪽도 하시고 가슴

하는데 아프다고 하면 욕하면서

것도 같아요. 각자하고 싶은 것들을

부위에도 하시고. 처음에 손등에 작게

안한다고 할까봐 무서워서 참았다고

하는 거죠. 레터링의 장점은 자기가

하나 하려던 것이 커진것이죠.

하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엄살 좀

좋아하는 문구나 대사, 특정 언어

부리시더라고요.

같은 것을 할 수 있으니까 사실

곡: 약간 그렇게 되더라고요.

분야가 커요.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곡: 무섭게 생겼으니까.

있지만 폰트디자인으로 멋있어질

타: 중독성이 강해요.

수도 있고 폰트 중에서 영어를 타: 안 무섭게 생겼는데 수더분한

아랍어처럽 보이게 디자인 해주는

곡: 약간 수집하는 마음이

얼굴 이예요.

폰트도 있고요. 같은 의미도 모양이

생기더라고요.

다르게 구현이 되죠. 곡: 아티스트한테는 날카롭게 생겼다는 게 좋은 것 아닌가요? 타: 안 날카롭게 생겼는데 수더분하게

타: 약간 수집하는 마음이 들기도 곡: 유행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고, 타투가 없다가 새기게 되면,

고등학교에 팔에 테두리처럼 고리

타투가 눈에 많이 들어와요. 처음에

모양이 유행한 적도 있었잖아요.

없을 때는 잘 모르는데, 내가 타투를

생겼는데 (옥신각신2) 곡: 몇 시에 퇴근하세요? 타: 퇴근시간은 안정해져 있고,

하나 하고나면 다른 사람이 한 것도 타: 그렇게 유행 하는 것은 올드

눈에 들어오고 ‘나도 거기 해볼까?’

스쿨이 좀 더 유행하겠죠. 홍대는

하는 마음도 들고.. 처음이 힘들지

음악이나 그림 그리는 분들이 많고

나중에는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하니까 패션쪽으로 더 올라가겠죠.

갑자기 떠오르는데 전에 미성년자

광고를 올려놓으면 연락이 언제 올지

상대로 하는 타투가 문제가 된 일이

모르니까 대기하는 편이죠. 작업실을

이: 저는 사람들이 어떤 부위에서

있었는데, 미성년자만 전문적으로

떠나는 시간은 보통 8-9시까지

시작하고, 하나에서 끝나는 사람도

해주던 분들도 계셨거든요. 그런데

있어요.

있지만 늘려가는 사람도 있는 것 그런

아무래도 미성년자를 상대로 하면

것들이 궁금했어요.


문제가 되죠. 좀 더 보호해줘야 하는

할 수 있죠. 시간이 필요하니까

타: 있었어요. 할아버지 한 70세?

것이 아닌가 하니까.

혼자서 할 수도 없고, 어려운 것은

그런데 그분은 소개로 오셨어요.

돕기도 하고 장점이 많아요.

동네에 어린 친구를 제가 해줬었는데

곡: 맞다. 군대. 요즘도 타투가 있으면 군대에서 문제가 되나요?

그걸 보신 할아버지가 물어서 오신 곡: 연예인을 전문적으로 하는

거죠. 멀리서 보면 40대 정도로

사람들이 따로 있나요?

보였던 멋쟁이였는데 바바리코트도

타: 예전에는 몸에 무조건 면제였는데

입으시고 오셔서 독수리와 나비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고 해서 몸의

타: 연예인도 보통은 직접 알아보지

양쪽에 하나씩, 운동을 하시는지 몸도

70%로 바뀌었어요. 그 외에는

않으니까 전문적으로 하는 분이

되게 좋으셨어요.

휴가나와서도 하고 입대 전에도 하고

있기보다 스타일에 맞는 분을 찾아서

자유로운 편이예요.

하시는 것 같고 해주시는 분들도

곡: 늙어도 모양이 잘 나와요?

보통은 해도 비밀로 하는 경우가 곡: 타투일을 직업으로 하시다

많죠. 그리고 돈을 받는 일도 드문데

타: 그럼요 피부 탄력이 있는데요. 잘

그만두는 분도 계세요?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나와요.

타투라는 인식 저변을 넓히는 효과가 타: 많죠. 힘드니까. 직업적으로

있어서 그런 것도 있죠. 전체 시장을

이: 타투를 할 때 가장 걱정하는게

유지하는게 힘들어요. 왜냐하면

키우는 효과가 있으니까 서로서로

그거 잖아요. 안지워지는거랑

광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나이들어서 모양 흐트러지는 것

것도 아니고 실력을 계속 키워서

그리고 또 비밀로 해도 어떻게 알고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낼 수 있는

오시더라고요.

상태가 아니면 유지가 쉽지 않아요.

곡: 저도 처음에 하고 들은 이야기 중에 죽은 다음에 염할 때 쯤

재구매라고 하죠. 다시 방문하시는

이: 저는 완전히 오래 하신

흉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이

분들이 있어야 하거든요. 타투를

타투이스트 분이 궁금해요 그런 분도

힘이 다 풀려 버리니까 모양이

하시고 마음에 드시면 친구도

있나요?

이그러진다고요.

오시고 이게 되어야 하는데 이게 안

타: 있어요. 50대 이신 분들도 있고

타: 그때 예뻐서 뭐하려고요.

되는 경우가 많죠. 월세에 재료비

그분들이 거의 1세대 분이시죠.

이런 것 까지 생각하면 버티기

지난 번에 크게 단속했을 때 가장

힘들죠. 그래서 중간에 배운지

문제가 되시기도 하셨죠. 검찰까지

얼마안된 어린친구들은 레터링같은

나섰으니까요. 검찰은 경찰과 달라서

타: 피부가 늙어서 늘어나면 그림이

것으로 시작하고 주변의 친구도 있고

통장까지 다 조사 한다고 하더라고요.

좀 틀어질 수도 있죠. 살아있어도

해서 처음에는 저렴하게 해주고

그리고 그분 시대는 주먹 분들도

누우면 그림이 조금 틀어지죠. 늙은

그러면 친구들이 많이 받고 그래서

하시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런데

시절까지는 그렇게 크게 고민하지

막상 덤벼들면 친구들도 다하고 나면

그때 크게 문제가 된 이유는 그런

않아도 되요.

아는 사람이 없으면 접는 거죠.

이유는 아니고 미성년자 타투 단속이

소개시켜 주고 본인도 또 받으러

커지면서 걸리신 거죠. 메이저를

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 반영구랑 타투랑 뭐가 달라요.

곡: 작업실을 나눠 쓰는 이유도

시작으로 그 당시에 저희까지 단속이

연관이 있겠네요.

되었던 거죠. 주기적으로 피바람이

타: 반영구는 눈썹이나 그런데 하는

불어요.

것인데 염료가 달라요. 없어져서

타: 일단 유지에 강점이 있고 손님이 여러분 오셨을 때 서로 나눠서 같이

부담이 없어서 한다는 이야기도 이: 손님중에 나이가 많은 분들도 계셨나요?

있는데 색이 옅어지기는 해도


없어지지는 않아요. 없어지는 걸

곡: 그래도 오래 하신거 보면

생각해서 반영구를 한다는 사람도

대단해요. 광고도 어려운데.

있는데, 없어져도 전체적으로 뽀얗게 없어지는 게 아니라 군데군데 색이

타: 그렇죠. 아까 경찰 이야기 했던

남죠.

그 시기에 장비도 많이 뺏기고, 그때 장비에 투자를 많이 했었거든요.

이: 의미를 생각해서 하시는 분도

파워, 머신, 잉크, 다 사라졌죠.

있나요? 이: 바늘 같은 것 설명 듣고 싶은데 타: 타투의 의미를 고려해서 하는

어디서 사시는지도 궁금하고요.

분들도 있어요. 잉어의 경우는 조력자 이런 의미가 있는데,

타: 바늘 크기도 다양하고, 좁게

그런것들을 생각해서 하시는 분들도

쓰는 것과 넓게 쓰는 것들 하나에

있고 그저 이미지로 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렇죠. 곡: 출장도 가세요?

바늘이 3개 5개씩도 있고 다양해요. 타: 엄마가 아이를 데려와서 하는

설명하려고 들면 너무 복잡해지고.

일도 있어요. 아이가 받는 건 아닌데,

예전에 바늘 만들어 쓰시는 분들도

그럴 때 물어보긴 했었어요. 나중에

많았는데 납땜해서, 그런데 요즘에는

애가 커서 받는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다 들어오니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죠.

타: 저는 출장 안가요. 출장 전문으로

거예요? 미성년자 일 때 말고 자기가

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저는 출장이

커서 스스로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받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조직 같은 곳에

타투에 대해 좀 트여있는 생각이

타: 의료기기 쪽으로는 통과가 되는

들어가서 못 나온 친구도 있었어요.

있으신 거죠.

걸로 알고 있어요.

계속하라고 밥만 주고 계속

곡: 미래의 계획 같은 것 있으세요?

시키는거죠.

곡: 도구는 불법이 아닌가요?

곡: 인터뷰가 사람들을 많이 타: 계속 하고 싶죠. 하지만 어려운

불러들여야 할 텐데

이: 조명이나 각도 같은 것도 무시

점도 많아요. 유지하고 계속 한다는

못할 것 같아요.

것이 아직까지는 그래요. 큰 돈을

타: 안 불러들여도 되요.

버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보통

타투이스트는 누가 잘하고 이런

얼마정도 버는지 궁금해 하시는데,

것보다 자기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이게 타투가 시즌이 있어요. 봄에서

가서 받으면 되는 것 같아요.

여름까지 성수기 이고 겨울에는

방문하셔서 포트폴리오를 보여

많이들 쉬어요. 큰 작업을 하는

달라고 하면 보여주고 다들 그런 것을

타: 그런 발색 말고 발색 같은

경우에는 천천히 하니까 계절을

꺼리지 않아요.

경우 전체적으로 붉어 보여요.

넘어서도 하고 그게 수입을

살짝 상처가 나는 거니까. 그래서

조금이나마 유지하는데 도움을

전체적으로 그라데이션이나 이런

주는데 작은 것 위주로 하시는 분들은

것들이 더 진하게 보이거든요. 근데

버티기 쉽지 않죠. 그런데 사람들은

타: 예전에는 클럽에서 쓰려고

자극이 줄어들면 색이 좀 옅어져요,

많이 궁금해 하시죠. 벌이 같은 것

팠는데, 요즘에는 늙어서.. 클럽에 잘

근데, 수입이 널을 뛰니까 유지하기가

안가니까

타: 예 맞아요. 많이 신경을 써야 되고 이: 발색 같은 것도 다를 것 같아요.

이: 문신을 자식에게 권하는 분들도 계시는지?

쉽지 않아요.

곡: 명함은 안파시겠네요.


곡: 늙긴 뭐가 늙어요.

구경도하고 가고 그래요. 해달라는

싶은 그림을 이야기 해 주셨는데,

사람도 있고,

바닷가에서 와인을 들고 앉아서

타: 그래요? 명함 다시 파야겠네. 이: 보통 사람들은 타투, 피어싱

큰 파도. 쓰나미를 마주하는 곡: 외국인도 해보셨어요? 피부

모습이었는데 서핑보드랑 갈매기도

질감이 다른가요?

있고 허리에 본인이 갖고 있는

여기서 생각이 좀 과하게 가면 약까지 같이 들어가거든요 심리적으로. 타: 맞아요. 사람들은 타투랑

레터링도 살짝 들어가게끔. 그래서 타: 백인은 해봤는데, 흑인은

영화포스터 해운대보고 쓰나미를

못해봤어요. 질감 차이까지는 없는 것

그리고 모래사장에 사람이랑

같아요.

테이블이랑 넣어서 완성한 적이

마약이랑 많이 엮어서 생각해요.

있었어요.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요. 이: 자신의 문양 같은 것을 개발하는

곡: 진짜?

것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곡: 잉크가 마음에 드는 색은 다 있어요?

타: 맞아요.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타: 만들 때 거의 기본 틀이 있어요.

생각해요. 대마를 피우면서 한다는

타투이스트가 없던 분야의 그림을

타: 기본 적인 컬러는 다 갖고 있고

소문도 있고 하하.

만드는 일은 많지 않고 처음에는

필요한건 섞어서 쓰죠. 톤이 여러

카피를 많이 하죠. 중국에 창롱이라는

가지가 있는데 색 종류는 많이 나와

이: 저런 그림이나 그런 것 보면

타투이스트가 있어요. 그리고 일본에

있어요. 브랜드도 다양하고.. 나도 더

아직도 폭력배 이런 생각 하는

일류 타투이스트 중 시게라는 사람이

사야하는데 돈이 없어서..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약도 공급하고

있거든요. 시게 스타일이 세계적으로

그럴 것 같다는 인식들이 있죠.

많이 먹혔어요. 창롱이 시게에게

타: 그렇죠.

꽂혀서 계속 시게 것을 많이 팠는데

곡: 진짜? 60년대 사고가 아니고?

곡: 오늘은 작업 없으세요?

지금 비교해보면 저는 창롱이 더

타: 오늘은 제가 받을게 하나

위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떤

있었는데 인터뷰 때문에 미뤘어요.

모방에서 시작하는거죠. 하다보면 타: 그래요. 보통 타투이스트라고

스타일이 좀 바뀌어요. 처음에는

곡: 미안하다. 우리 때문에 약속을

하면 애들이 공격적이고 그래서.

올드스쿨에 빠졌다가. 그리다

미루시다니..

생각하기에는 양아치적이고

보면 다른 것에 꽂힐 때가 있어서

무섭고 이런 애들이 있을 것 같다고

서서히 바뀌는거죠. 처음부터

타: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뭐

생각하니까. 보면 똑같은 일반

나만의 스타일을 하기보다 모방을

건져가는게 있나 모르겠네. 하하

사람들인데, 인식이 ... 영화 같은데

할 수 밖에 없어요. 가끔 자신만의

보면 입에 뭐 물고 있고 두건 두르고

도안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있고 그러니까 마약까지 생각하는데

그럴 때는 생각해 둔 것이 있는지

실상은 다 보통 사람들입니다.

혹은 인터넷에서 봐둔 도안이 있는지 물어보곤 하죠. 그렇게 한

곡: 외국은 24시간도 하던데.

다음에 도안을 제작하죠.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나만의 스타일로

타: 우리도 손님만 있으면 해요.

도안을 만들어서 하기가 쉽지 않은

주말에 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것 같아요. 손님들이 찾는 것도

외국인들이 클럽에서 놀다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하니까.

올라와서 물어보기도 하고

예전에 이런 일은 있었어요. 넣고

<끝>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먼저 오래 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지금도 아무 생각없이 끝까지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세 곡을 소개해 드릴게요. 말하자면 저에게 완전히 정착되어있는 노래들입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1. 얘얘 - 플레이걸

2. Eric’s song - 최고은

3. 시소 - 한강의 기적

어릴 때 부터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로

누가 불러도 원곡자만의 매력을

형제 밴드 한강의 기적은 기타와

홍대에서 활동했던 3인조 걸그룹

뮤지션들이 있다. 그 중 한명이

한다. 요즘은 기타/보컬인 주영찬씨

<플레이걸의 24時>(2009), 7

활동했던 故장덕의 노래를 주로 플레이걸이

리메이크했다.

노래

시작 전 카세트 테잎을 트는 소리가 나고

재빨리

밴드

연주가

시작된다.

원곡도 통통 튀는 멋진 곡인데 문샤이너스가

리메이크곡은

연주한

로큰롤스러운

느낌이 들어 절로 춤을 추게 된다.

<36.5’c>(2010), 6

따라할

싱어송라이터

없다고

<한강의 기적>(2011), 10

생각되는

최고은이다.

깊은

목소리로, 어떤 부분에서는 울려 퍼지듯이

느리게

영어

가사를

부른다. 특히 마지막에 ‘so put the

~ inside’ 부분에 color, friends 에 이어 Gwang-ju를 넣어 부르는 것이 멋지다.

베이스 만으로도 훌륭한 연주를 혼자 활동하고 있다. ‘창문 밖으로 뛰어 내리고 싶었지만’ 이라던지, ‘

내가 언제나 우연을 가장해 왔듯이’ 같은 가사는 쉽게 떠올릴 순 없지만

들어보면 무척이나 공감이 간다. 전체적으로 기발한 가사 중에서도 이

곡의 묘미는 ‘그녀는 머리를 길렀고 나는 수염을 길렀어’.


4. With Me - 스타트라인

5. 사랑은 사막 - 안홍근

6. Hello, Betty - 시베리안 허스키

껌엑스, 카피머신, 타카피 등에서

말하듯 노래하는 뮤지션들 중에서도

사실

펑크밴드. 얼마 전 <아시안 비트

잘 느껴지게 노래를 부른다. 중간에

조금 바꿔준 밴드가 있다면 시베리안

<Light My Fire>(2013), 2

<사랑은 사막>(2012), 1

활동하던 멤버들이 뭉쳐서 만든 2013

그랜드

파이널>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을 정도로 음악과

실력이 좋다. 앨범 소개글에 있던 ‘ 기타와 함께 노래하는 듯하다’ 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라이브

공연에 가면 음원과는 달리 노래 시작 전 관객들과 함께 ‘It’s gonna

be, alright’, ‘With me, yeah yeah’

를 부르는 것이 정말 좋다. 관객들과 함께 부른 후 드럼, 기타, 베이스

순으로 시작되는 노래 첫 부분이 라이브에서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Odd Eyes>(2013), 2

싱어송라이터 안홍근은 억양까지 ‘밤밤밤밤밤~’하는 마음에

들었는데

부분이

가장

라이브에서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꽤 오랜기간

어쿠스틱한 음악을 멀리했지만 이런 음악이라면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펑키(funky)한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을 허스키이다. 공연에 같이 간 친구는 가창력에

놀라고

나는

연주와

보컬의 조합이 너무 좋아 놀랐다.

특히 ‘신나게 춤을’ 부분의 바로 뒤 빈 틈에서의 동작도 흥겨웠다. 항상 로큰롤이 가장 춤추기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펑키음악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월간이리에서 필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식물, 생물, 무속, 종교, 역사, 의학, 과학, 철학, 패션, 요리, 에세이, 연애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필진을 구하고 있습니다. 함께 볼 수 있는 다양한 글을 싣는 책이 되고 싶습니다. 그간 월간이리를 재미있게 봐오셨거나 알게 모르게 끌리시는 분들, 망설이는 친구를 옆에 두신 분들은 언제든 연락주시면 친절하게 안내해 드립니다. exxx2x@gmail.com 으로 메일 부탁드립니다.



Chapter 8 {교양}의 생존매뉴얼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1. 스티브 잡스 덕분인지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도 통합형 인재라는 새로운 인간 유형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통합형’이라는 말의 뉘앙스에서 알 수 있듯 하나의 분야에 국한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 아닌 전 분야에 걸친 통찰을 가진 르네상스형 전인(homo convergence)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한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상이한 분야 간의 이질성을 접합시켜줄 요소가 필요하다.

잘 다니던 4년제 대학을 때려치우고 서울로 상경해 발 빠르게 2년제 디자인 과를 졸업.

2. 한국 속담 중 팔방미인이 밥 굶는다는 말이 있다?

막상 졸업하고 나니 받아주는데도 불러주는 곳도 없다. 그때부터 이 악물고 익힌 갖가지 처세술과 생존법을 이용해

3. 내가 잠시 몸담았던 디자인 회사 역시 이러한 시대적 너울에

첫 취직한 작은 회사에서 2년여 만에 팀장으로 승진했다.

조응이라도 하듯 다양한 인문학 서적들을 사모으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 수주에 걸쳐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몸 건강히

인문학에 대한 경영진의 관심이 내심 반가웠지만, 혹여나

살아남는 방법을 쓸 예정이다.

유행으로 소비되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나는 완전히

거의 모든 텍스트가 주관적 경험에 의거한 것이기에 관점에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한 나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따라 비판적 지점들이 상당 부분 형성될 여지가 크다.

서가는 시간이 갈수록 다양한 인문학 서적들로 빽빽이 들어찼고

국내의 많고 많은 웹디자이너 중 하나의 개별적 사례로

얼마 안 가 디자이너들 사이에 면학 분위기가 형성됐다.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가장 먼저 달라진 시간은 점심식사자리였다. 어젯밤 시청한 드라마나 쇼 프로 이야기로 가득했던 점심시간이 자신들이 현재 읽는 책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4. 한국의 (웹) 디자이너들은 그 당시 내게 있어 책과 그리 친하지 않은 이미지였다. 사실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5. 책 읽는 분위기의 식사 자리와 책을 읽지 않던 시절의 식사 자리는 어지간히 둔감한 사람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차이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얼마 안 가 와해 되었으며 이내 사람들의 서가 출입 또한 현격히 줄어들었다. 어젯밤 드라마 이야기가 점심시간 속으로 다시 귀환했으며 이에 맞서 회사 측에서는 여러 가지 도서 관련 이벤트를 벌여 다시금 초창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책에 대한 사람들의 짧은 호응은 일종의 인정 투쟁적 성격을 띠었다. 내가 읽고 느낀 것을 남에게 뽐내고 싶고 더 나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그런 성격 말이다. 애당초 교양의 기원이 그런 것과 유사했을 테고 나 또한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6. 디자이너들의 책에 대한 반응이 급격히

그리고 ‘대졸자 주류사회’에서 여전히 예전과 같은 위상을

줄어들었던 이유를 추측해보자.

보존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 그 당시 식사자리에는 발화주체만 있을 뿐 정작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경청할 수 있을만한 식견을

12. 기획자들과 업무 외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 미술사 관련

갖춘 관객은 부재 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제가 등장하는 시점이 종종 있다. 기획자들의 오해 중 하나는

도대체 교양이란 무엇일까.

디자이너들이 미술사를 두루 섭렵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현대의 교양은 도스토옙스키나 실존철학이 아니라

그런데 뜻밖에도 미술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아인슈타인이고 뇌과학이라는 일본 저술가

실무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일갈이 떠오른다. 13. 기획자들은 디자인과의 대학 정규과정 중에 미술사가 7. 실상 우리가 쓰는 ‘교양’이란 말도 따져보면

필수교과에 속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고, 교양주의의 ‘원조’ 또한 일본의 ‘다이쇼 교양주의’라 할 수 있다.

14. 적어도 전문대학에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설사 있다

부국강병의 논리에 휘둘렸던 메이지 시대와는 달리

하더라도 선택교양 과목에서나 간혹 볼 수 있을 정도다.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에는 철학이나 문학, 역사

그러므로 디자인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미술사 지식이란 기획자나

등의 인문서 독서를 강조한 새로운 문화가 고학력

개발자가 배울 수 있는 범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며,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그것이 ‘교양주의’라

혹여나 실무에서 미술사에 박식한 디자이너를 만났다면

불리게 되었다.

그 사람은 따로 시간을 내 공부를 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기획자에게 들려주면 겉으로는 태연히

8. 인터넷 사전에 교양이란 단어를 검색해보면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관련 어휘에 품위, 품격, 지식, 지성, 식견, 소양 등의

하지만 그 속에서는 모종의 불신이 싹트고 있을지 모른다.

단어가 나란히 배치된다.

그러한 불신은 당연히 업무에서 가시화되기 마련이다.

9. 애초에 교양은 노동계급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15. 디자인은 조형을 다루기에 근본적으로 미적 판단의 모호함이라는

지배계급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기 위해 세워놓은 일종의

특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결정의 번복이 빈번히 발생하기 마련이다.

장벽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디자인 책임자가 결정한 방향일지라도 기획팀이 보기에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10. ‘세계문학전집’이나 ‘세계사상전집’ 등은

의견이 지배적이면 작업을 중단하고 협의를 거쳐야 한다.

‘교양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표상이다.

그때부터 작업물에는 여러 사람의 입김이 들어가기 시작하며

교양의 지표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디자인의 몬스터화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독서 유무였던

물론 회사마다 디자인팀과 기획팀 간의 정치적 지형도에 따라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 뒤에서 기획자가 팔짱을 끼고

11. 하지만 1970년대 이른바 대중사회가 성립하면서

모니터를 볼펜으로 탁탁 짚어가며

이러한 교양주의는 급격히 쇠락을 맞이한다.

‘왼쪽이 조금 허전한 것 같지 않아요?’

일본의 경우 ‘지식인 시대의 종언’과 맞물리는

‘제가 보기에 색깔이 좀 탁한 것 같아요, 이 색은

이 시기가 바로 교양주의 쇠락의 시작이었다.

어때요?’ ‘폰트가 너무 딱딱한 것 같아요.’ 라고 말할 때에는

이런 ‘역사적 교양주의’가 현대의 지식대중화사회에서,

아직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16. 물론 기획자 대부분은 자신이 간섭할 범위를

21. 그렇다면 우리가 전범으로 삼고 있는 다이쇼적

명백히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양주의는 어떠한 형성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다이쇼 시대(1912~1926년)에 등장한 ‘교양주의'는

17. 앞서 말한 것과 같은 행동은 사회 초년생이거나

일본 동경제국대학이나 제1고교 등 최고 엘리트 학생들이

디자이너에서 기획자로 전향한 분들에게서 많이

공유했던 일련의 ‘서양 고전’ 리스트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일어나는 행동이다. 가끔 입사한 지 약 1개월 남짓한

이런 엘리트 중심적 뿌리가 한국에 고스란히 전해져 지금까지도

기획자가 디자인 팀장의 반짝이는 애플 모니터를

우리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톡톡 건드려 가며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조목조목

필수 도서로 여긴다.

따져 드는 목소리가 사무실 널리 울려 퍼질 때에는 잠시 세상과 단절하기 위해 귀에 꽂은 이어폰의 볼륨을 끝까지 올려버리는 것도 괜찮다.

Zarathustra

18. 하지만 이러한 상황의 책임을 기획자에게 오롯이

22. 하지만 이 책은 니체의 저작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돌릴 수는 없다.

책으로, 이는 ‘교양’이라기보다 교양을 위한 교양이 만들어낸

아니, 오히려 나는 문제의 촉매제 역할을 디자이너들이

거품이라 볼 수 있다.

능동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동경대 학생들은 사회적 프리미엄과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디자이너는 기획자에게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조형원리를

그러한 자부심 저변에는 그들이 체계화시킨 서양고전리스트가

정확히 설명함으로써 모호함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한다.

도사리고 있었고 ‘우리는 이런 교양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하지만 시간에 치여 작업하다 보면 대부분의 현실은 컨셉을

자부심으로 활용된 것이다.

빙자한 디자이너의 고매한 취향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23.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교양이 가진 기능 중 국가 엘리트에 19. 미술, 더 나아가서 조형에 대한 디자이너의

대한 차별적 보상을 정당화하는 기능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 백그라운드가 기획자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다른 한편으로 교양은 부르주아의 사회적 부와 지위를 정당화하는

여겨질 경우, 디자이너가 작업의 당위성을 자신의

기능을 가진다. 이러한 기능은 경제불황 속에서도 미술품

취향에서만 찾으려고 한다면 그에 대한 신뢰는 분명

시장만큼은 초호황을 누리는 기이한 경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안 가 바닥날 것이 분명하다.

미술품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획자는 결과물에 대한 디자이너의 견해를 자신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아요. 비싸다는 게 중요합니다.

언어로 전유해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한다.

미술품의 최대 메리트이기도 하죠. 보통 사람들은 가질 수 없다는 것.

그러한 상황에서 취향 같은 추상적 어휘를 가지고

과거에는 교양이 그런 기능을 했습니다.

클라이언트에게 향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예술이나 문학에 대한 조예가 있으면 ‘저 사람 잘 살아.’ 라고 생각했지요.”

20. 그러므로 디자이너에게 교양 즉, 인문학적 토대는 단순히 사회생활에 필요한 부가적인 지식이 아닌 이 칼럼의 제목이기도 한 생존전략과도 맞닿아있다.


24.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교양의 척도로 삼는

29. 흥미롭게도 디자인 관련 일에 오랜 시간 종사한 사람들을

세계문학전집이나 기타 철학서적들이 다이쇼 시대의

관찰해보면 평소 독서량이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여러 방면에서

엘리트들에 의해 체계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상당한 지식을 보유한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현 세대의 감수성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사업 분야에 맞춰 전문 지식을

오늘날 청년들에게 교양서적이란 대부분 생존(취업)을

배양하지 못하면 일을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위한 가산점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30. 스피노자가 말했다. 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계문학전집을

하나의 구덩이를 깊이 파기 위해서는 우선 넓게 파야 한다고.

읽어야 하고 가끔은 어려운 철학책도 읽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 분야를 접할 수 있는 디자인 분야 자체가

디자인과 같은 창조적인 일은 언제나 타인과 교감할 수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통합형 인재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는 미리 형성된 문화적 고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세계문학전집 리스트가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다더라도 우리 세대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는 것은

31.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은 예술에 가깝다고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인이다.

문제는 초창기 교양의 역할이 자신의 내적 수련보다

UX, UI를 포괄하는 웹 전반의 디자인은 사회과학적

타인과의 관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학문 중에서도 상당히 체계적인 이론적 기반과

우리 부모세대가 그렇게 생각해왔고 그 의식구조를

체계화된 프로세스 방법론을 가지고 있으며 점점 더

오롯이 지금의 젊은 세대가 건내받은 것이다.

경영과 전략에 가까운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과감한

그러므로 디자이너가 자신의 미감만으로 경쟁한다는 것에는

세대적 단절이 필요할 것이다.

명백한 한계가 있으며 시대적으로도 맞지 않다.

26. 경험상 디자이너의 인문학적 자질은 자신의

32. 그렇다면 설명할 수 없는 예쁜 디자인은 나쁘기만 한 것일까?

결과물에 대한 변호보다 기획자 혹은 클라이언트와

상징계의 언어에 포획되지 않는 외부는 부정되어야만 하는가?

갖는 미팅시간에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꼭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멋만 낼 줄 아는 / 알맹이 없는 / 천박하게 아름다운 / 텅 비어버린

27. 또한, 디자인 업무는 그 특성상 만나는 클라이언트의

디자인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스타일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사업 분야에 따라 매번 새로운 형태로 갱신된다.

그것은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디자이너의 오랜 숙제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와 다른 분야 사람들이 모이는

내 고민 역시 정확히 그 지점에서 멈춰선지 오래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 서로의 생각을 모으기 위해 수집된 시장 추이나 통계 그래프 못지않게 그 자리에 착석한

33. 인용 자료

사람들의 교양 수준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로쟈, 8가지 질문에 답하다」(아트앤스터디) 「전략적 UX 디자인으로 성장하라」(프리텍, 2013)

28. 앞에서 여러차례 언급한 바 있듯, 클라이언트들이 생각하는 평균적인 교양의 척도 역시 상당 부분 다이쇼 시대 지식인들이 배치해 놓은 서가에서 맴돌고 있는 게 사실이다.

블로그 clichecliche.blog.me

그러므로 윤리적으로 온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도 디자이너들은 도스토옙스키를 집어 들어야만 한다.

이메일 clichecliche@naver.com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 엄기호 지음 | 따비 | 2013년

“개인들은 침묵함으로써 스스로를 세계와 단절하여 고립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취향만 남게 된다. 이처럼 다 른 사람의 감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강도가 강해질수록 사람들 은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집착한다. (…) 이 시대가 가진 취향과 사교에 대한 강박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 다.”(293쪽)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었다. 만약 친구가 내게 자기 가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읽는 이유뿐만이 아니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우울한 현실을 굳이 묘사하고 서술함으로써, 즉 언어화함으로써 확정하려는 것일까?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지난 삶을 생각했다. 고통받는 타인의 얼굴을 대면하고 직시하는 일이 두려운 내가 여전히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사람들과 공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불편해지면서 그런 화제가 나올 때면 언제나 침묵했고 아예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이젠 내가 이 책에 등장하는 침묵하고 자기 단속하는 교사 들을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말이 필요 없지만 말하기 쉬운” 익숙한 친구들과의 만남, 즉 정치가 아니 라 사교의 장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공적 장에 참여하고 나서는 일을 그만둔 나는 나의 냉소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일까? 이 책은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생생하고 마음 아픈 보고서이다. 하지만 저자 가 그리는 학교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책을 읽는 내내 숱한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저자는 성장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은 다름을 만나고 마주쳤을 때에만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람의 성장이, 자기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함께 나와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면, 다름/타자성은 인간의 성장에 필수적이다.” 학교가 성장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면, 학교는 “나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과 일상적으로 부딪치고 만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무관심하고 적대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학생과 교사뿐만 아니라 교사와 교사도 그렇 다. 1부 ‘교실이라는 정글’은 학생과 학생 사이,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노바디(nobody)와 섬바디(somebody)라는 개념을 들어 학생 간의 신분 체계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물리학 자 로버트 풀러가 쓴 『신분의 종말』에서 노바디는 “모욕을 당하고, 괄시를 받으며, 착취와 무시에 시달”리는 사람 이고 섬바디는 “추종과 추앙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다른 노바디를 괴롭힘으로써 섬바디가 되려고 한다. 노바디를 파괴하는 것을 통해서만 섬바디 간의 결속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특정한 정체 성을 공유하는 집단의 탄생이 매우 동질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무언가를 ‘적’으로 삼 을 때 ‘우리’는 매우 손쉽게 탄생한다. 요즘 인류의 사회적 불평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형태로 탄생했는지를 설명하는 고고학 책을 편집하고 있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우리’와 ‘다른 자들’의 구분이 인류에게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인류라 는 종의 생물학적 본성이 아닌가 싶었다. 여기서 ‘다른 자들’이 곧 타자이다. 역사를 공부할수록, 특히 20세기 역사를 공부한 뒤로는 타자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곧 한 사회의 지성과 양식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 사


회의 동료 시민들은 장애인, 동성애자, 노숙인, 이주 노동자를 어떤 존재로 여기며 어떻게 대우하는가? 그런데 이 책 에 등장하는 어느 교사는 교육의 목적이 타자를 이해하고 관계가 넓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류 교사에 따르면 타 자란 원래 공유한 부분이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한다.” 이 책의 백미는 2부 ‘교무실, 침묵의 공간’이다. 학교 현장의 절망스러운 현실에 누구보다 먼저 고민하고 토론하 고 대화해야 할 교사들이 어떻게 침묵과 자기 단속에 급급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많은 시민들이 한가한 업무, 이 른 퇴근, 방학 등을 들어 교직을 선망과 질투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저자는 교사의 노 동 구조뿐만 아니라 그들의 소통 방식까지 들여다본다.

“한 교사는 이것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교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보 기에 다른 직업에서는 업무가 회의로 시작해서 회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회의는 정규적인 노동 시간의 앞과 뒤에 공식적으로 배치된다. 그런데 교사들의 업무는 수업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함께 모여 회의하는 것은 거의 퇴근 시간에 임박해서나 퇴근 시간을 넘겨 진행된다.”(157~158쪽)

교사 노동의 특징을 “바쁨이라는 압축적 시간 경험”과 “노동이 전혀 공유되지 않고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긴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 즉 학생을 상담하거나 수업을 준비하고 동료 교사와 토론하고 협력하는 등의 “진짜 업 무”는 퇴근 시간 이후에나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학교에서 “동료 교사의 교육 방식에 대해 조언하고 충고하는 일은 공연한 간섭이나 공격, 주제넘은 짓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모습은 학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공적 공간에 도 해당한다. 나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의견과 의견이 부딪히는 것은 “서로 간의 ‘취향’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토 론할 만한 문제가 아니라 서로 건드리지 말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 되어 있었다.” 공적 문제를 정치로 해결하지 않고 사교로만 해결하는 습관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던진 물음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냉소에 도전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당신 이 알고 있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폐허를 응시해야 한다. 희망은 그 폐허에 대한 응시에서 나온다.” 세상의 많은 문제에 대해 우리는 이미 제각각의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는 읽고 대화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

“취향을 공유하는 사적인 친밀감으로서의 우정이 아니라 공동의 세계를 창조하는 평등한 이들의 우정이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학교는 망하더라도 가르치는 이가 아직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319쪽)

결국 친구들이 던질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내 친구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끝>


사진 일기

박민수


일행들과 떨어져 Taman 이라는 전철역에 내려 무작정 걸었다. 공장부지인듯 하다. 아파트복도 에 아주 당연한듯이 빨래가 걸려있는데 색이 마음에 든다. 현관에 비밀번호 같은 것이없어 들어가본다. 경계하는 사람이 없다. 비밀번호 없는 아파트가 얼마만 인지 모르겠다. 아파트를 나와 옆에 허름한 식당에 들어간다. 외국인이 거의 안오는지 나를 무척이나 신기해 한다. 종업원들이 체스를 두고 있었는데 같이 하자고 제안한다. 나도 그들도 영어가 짧아 아주 간단한 영어로 대화를 하면 체스를 둔다. 모두졌다. 한국에서도 체스를 안두는데 말레이시아까지와서 체스를 두다니 신기하다. 그들과 친구가 된것같아 좋다. 밤에 게스트하우스 옥상바에 올라갔다. 바람은 시원하고 맥주는 맛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마지막날 늦잠을 잤다. 11시가 넘어 일어나 씻고 어제 체스하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러간다. 요번에는 한국에서 같이온 친구도 함께다. 그들에게 내 증명사진 뒷면에 이름을 써서 주었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옆에 마트에서 고기와 간장을사 불고기를 해주었다. 여기서 불고기를 한다는것 역시 상상도 못하던일이다. 라마단 기간이라 먹는시간이 정해져있어 먹는 모습은 못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별거안했는데도 더위때문에 아주지친다. 조금 쉬다가 친구와 야시장을간다. 길을 몰라 물어물어 겨우 도착했다. 닭고기와 돼지고기 꼬치요리, 게 요리를 시켰다. 둘다 매우 맛이좋다. 꼬치에 나오는 소스는 정말 훌룡하다. 정확히 무슨소스인지는 모르겠다. 맥주와 함께 마시니 공중에 떠있는 기분이든다. 바람은 시원하고 음식은맛있다. 내일 인도로 떠나기 위해 너무 늦지않은 시간에 돌아와 씻고잔다.


아무런 ‘것’ 이야기

그녀와 나는 강남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기위해 카페로 들어갔다. 간단한 주문을 하고 30분 정도가 지난 뒤 인터뷰를 시작했다. (J: 필자 D: 20대 여) J: 혹시 예전에 짝사랑 했던 사람에 대해 기억나세요? D: 당연히 기억나죠~ J: 그렇다면, 그 사람하면 떠오르는 인상 깊었던 ‘것’ 들이 있나요? 물건이나 공간이나 그야 말로 모든 ‘것’들이요. D: 하나 있네요. ‘곰 인형’이요. 그의 집에 있었던 곰 인형... 「 그녀는 그 날 그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 그녀는 짝사랑 중이라 서로 이렇다 저렇다 한 관계는 아니였다.하지만 그도 싫지 만은 않았던지 그녀가 만나자고 할 때마다 매정하게 밀어내진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그녀는 이런 그의 태도때문에 더 포기할 수 없었다고) 그 날 그녀는 그의 집에 놀러가자 했었고, 그는 아무 사심 없이 그녀의 방문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는 설레는 한편 긴장되기도 했다. 그의 집은 주인의 성격답게도 먼지 한 톨 굴러다니지 않는 깔끔한 집이었다. 괜히 심술이 날 정도로 깔끔한 집이였다. 한참을 구경했을까. 그녀는 그의 책상 한 켠 이질적으로 자리잡은 ‘곰 인형’ 을 발견했다.」 J: 여기서 ‘곰 인형’이 등장하네요 D: 맞아요. 참 그 공간이랑 안 어울리게 어색하게 웃고있는 ‘곰 인형’이었죠. 처음엔 아무생각 없이 그 사람이 오면 저게 뭔지 물어봐야지 생각하고 그 근처를 구경하는데 ‘힘내’ 라고 쓰인 포스트잇과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 이 그 근처 벽면에 붙어있더군요.알죠? 여자의 촉. 생각하기 싫어도 왜 떠오르는거 있잖아요.’곰 인형’과 포스트잇 그리고 폴라로이드 사진 한장. 사실 알고 있긴했어요. 분명 이 사람 아직 헤어진지 얼마 안됐고, 그래서 얼마든지 섭섭할 일이 일어날거라고 각오는 했는데, 그 물건들이 ‘너는 아무리해도 안돼’ 라고 말하고 있는것 같더라구요. J: 아...그럼 그 물건들 진짜 집어 던져버리고 싶었겠다. 안 그래요? 역시 짝사랑은 너무 힘들어.. D: 음..근데 이상한게 그 물건들이 눈꼴시렵고 ‘곰 인형’도 그래야하잖아요.근데 이상하게도 ‘곰 인형’이 너무 슬퍼 보이는거 있죠. J: 어떤 점에서? D: 뭐랄까...사실 그전에 그 사람이랑 같이 있을때 한번씩 그사람이 멍 때릴 때가 있어요. 다른 생각할때 멍~한 표정있잖아요.근데 그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싫어도 알게 될 때가 있어요.아..저사람은 예전의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구나..그냥 뭐 이건 그렇게 생각하기 싫어도 너무 얼굴에 드러나니까.근데 그 때 그 사람 얼굴이 밉기보단 너무 슬펐거든요. 그냥 그 상황에 있는 나도 슬펐고 그 사람 얼굴도 슬펐고, 그리고 그런 그 슬픈 표정이 ‘곰 인형’이랑 오버랩 되기도 하고.... 아무튼 그 ‘곰 인형’을 발견한 날 저는 뭐 거기에 대해 묻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집 구경 잘하다가 역시나 그날도 아무런 발전도 못하고 집에 돌아갔던 기억이 나네요.


J: 근데 사실 슬픈기억이 떠올라서 제일 인상 깊었다.라고 하기엔 다른 수 많은 것들이 많을 것 같은데 , 왜 그 날 그 물건인가요? D: 아...그러게요.질문 받자마자 떠오른게 그 물건이라서 그렇기도한데, 사실 그때 부터였던것같아요. 짝사랑에 끝이 있다면 그게 이제 머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든 것도 그렇고, 사실 짝사랑이 조금 지쳐가기도 한 때였기도해서 약간 원망하기도 했거든요. 그사람. 그럴꺼면 매정하게 밀어나내지..그런데,아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구나.내가 내 마음을 매정하게 접어야겠구나. 이런 생각들 있잖아요.수 많은 생각으로 시작해서 결국 이제 포기해야지로 끝나게 되는.. 그 결심을 하게 된게 그 때였고, 그 ‘곰 인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J: 알 것 같아요. 그 기분. 어느 계기로 이제 나와 상대방 사이에 더 이상 노력해서 나갈 수 있는 건 없겠구나라는 결심과 함께 막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단절되는 듯한 느낌..너무 슬프네요. D: 거기다가 제가 사실 그 분이 다른 분을 만나고 있을 때부터 혼자 그랬거든요.그래서 사실 그 분이 헤어졌다는 소리를 듣고나서 내심 아 이젠 잘 될 일만 남았구나 라고 생각했는데.상황이 바껴도 관계가 바뀌지는 않았어요.그 때 사실 이제 어떻게 할 수 없다 라고 무의식중으로 생각하긴 했었는데,괜히 집착적으로 놔야하는 관계를 붙들고 있었는데,어떻게 보면 그때 그 ‘곰 인형’이 각성제? 처럼 작용한거죠. J: 그렇구나....아 말하기 힘들 수도 있었을 부분인데 대답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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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짝사랑과 관련된 ‘것’ 들 치고 수식이 붙지 않는 아무런 것들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마냥 달달하리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들도 짝사랑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달기보다는 쓴 것에 더 가까운 물건이 되버리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칠 공간이 누군가에겐 그 곳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벅차오르는 공간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욕이 나오는 ‘것’ 들 이기도 하고 .그런 아무런 ‘것’들에 대해서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코너를 시작했습니다.

글. Jooeny

*재밌는 일&프로젝트를 하시는 사연있는 새로운 분들과의 컨텍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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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성Night Planet

twitter : @hitchhiker_j


열한번째집

2013 ~

적당히 떠밀려 살다보니 어물쩡 20대 후반이 되었다. 대학은 졸업을 했는데 지금껏 뭔가를 강렬히 원했던 적 도, 특별히 뭔가를 성취했던 경험도 없었다. 돈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알바비가 들어오면 또 얼마간 놀 면서 속 편하게 지냈다. 막내 특유의 낙천주의적 기질이라고 볼 수 도 있을 것 같다. 집이 세계의 전부인 것처 럼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일년 가까이 백수생활을 했다. 꾸역꾸역 밥벌이 하며 살다보니 거창하게 꿈 이랄 건 없었어도 이런 일을 해보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서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 먼저 취업을 하고 저마다 바빠진 친구들의 발길도 줄어들면서 차츰 집에 대한 불만이 쌓이기 시작 했다. 그러고 보면 열번째 집의 물리적으로 부족했던 환경은 사람의 온기로 채우고 있었던 셈이다. 온기가 식은 집에 혼자 남아 좋게 보려 애쓰던 마음을 걷어내고 나니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며 벽마다 얼룩덜룩 생긴 곰팡 이 때문에 반지하라면 넌더리가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약 기간도 끝나가니 이사갈 집을 알아봐야겠다 마음 을 먹었다. 이사를 간다는 건 자! 이사를 가자! 하고 마음을 먹으면 집주인은 미리 보증금을 준비해뒀다는 듯이 (새로운 세 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계약 만료일에 맞춰 돈을) 내어주고, 때 맞춰 뿅! 하고 나타난 적당한 집의 계약서에 싸인을 쓱쓱 하고 나면 이삿짐이 새 집으로 짜잔! 하고 옮겨지는 게 아니다. (그렇게 쉽다면 얼마나 좋 을까!) 2년 전보다 1원도 더 늘어나지 않은 보증금으로 집을 알아보려니 대학이 두개나 모여 있는 지역에서 반지하를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반지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강한 열망을 아는 친구들은 집 값이 저렴한 지 역으로 이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지만 열번째 집이 있던 곳에는 대학 시절 친구들도 꽤 모여 살고 있었고 대학을 다니며 익숙해진 곳이었기 때문에 저렴한 집을 찾아 아무 연고도 인연도 없는 곳으로 뿌리채 옮 겨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부모님 집에서 독립할 집을 알아보던 친구 한 명이 이태원 이슬람 사원 근방으로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집 값도 싸고 동네도 괜찮다며 주말에 같이 집을 보러 가자고 했다. 별 기대 없 이 친구를 따라 나섰다가 동네 분위기에 반해서 몇 주를 더 혼자서 집을 보러 다녔다. 무엇보다도 가지고 있는 보증금으로 지상층에 살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보러다니는 집마다 구조가 독특해서 집을 보러 다니는 것만 해 도 재미있었고 이태원역 특유의 들뜬 분위기와 번화가에서 한 켜 벗어나면 바로 세월과 생활감이 느껴지는 골 목과 집들이 나오는 것도 좋았다. 오래된 주택들이라고는 하지만 집 집마다 키우는 식물들이나 나름대로 집을 손보고 가꾸며 사는 흔적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놓였다. 국적과 연령이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섞여 살면서 모두 가 이방인이지만 아무도 그 사실에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지대가 높은 탓에 동네 곳곳에서 서울이 내려다보 이는 탁 트인 전경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현실적인 이유를 따져보면 출퇴근이 쉽고, 서울 어디로 가기에도 편리한 위치였다.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처럼 두근거려 너무 흥분한 것이 문제였다. 이사라는 전 과정을 이사를 가겠다는 결심이라는 출발선에서 시작해서 이사 완료라는 결승선에 들어가기까지 한 단계 한 단계를 뛰어넘어


야 하는 장애물 달리기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나는 모든 허들에 걸려 넘어지며 달렸다. 몇 주 동안 주말마다 발 품을 팔아 마음에 드는 집을 찾고는 성급한 마음에 계약금을 걸면서 일이 복잡해졌다. 집 주인이 새로운 세입자 가 구해질 때까지 보증금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계약 만료 한달 전에 계약 해지 통보를 해야하는데 날짜가 이 틀 지난 것이 문제가 됐다. 해지 의사를 확실히 하기 위해 내용증명을 보내두고, 보증금을 돌려 받을 때까지 대 출을 받기로 결정했다.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은행으로, 시청으로, 법원으로 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하는 일 들을 처리하느라 들어간지 얼마 안 된 회사의 눈치도 봐야 했다. 이사하면서는 전기, 가스, 수도 요금 정산도 제 때 하지 않아 문제를 만들었고,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 안쪽에 집을 얻은 바람에 이삿짐을 옮기느라 애를 먹 었다. 이삿짐 하나 제대로 싸지 못해 용달차는 불러놓고도 짐을 한 번에 옮기지 못해 남은 짐을 몇번에 걸쳐 택 시로 옮겨야 했다. 돈은 돈대로, 체력은 체력대로 써가며 겪을 수 있는 모든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 같다. 다 내 가 어리석고 어리숙해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 모든 일이 아빠(평소에는 대화도 없이 지내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 면 나타나서 척척 해결해주는 어른)의 부재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는 것 같은 기분에 서러웠었다. 보증금을 돌려받던 날 대출금을 갚고 은행에서 나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고생을 했어도 삼개월 남짓의 기간에 대해 후회가 없는 건 과격한 방법이긴 했지만 분명히 배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직접 부딪히고 실패해봐야 뭔가를 배우는 나 같은 바보도 있는 법이다. 열한번째 집은 1991년에 지어진 다세대 주택이다. 반지하층과 1층, 2층에 각각 한 세대씩이 살고, 집마다 각각 소유주가 다르다. 반지하층에는 가나에서 온 흑인 친구들이 살고, 1층에는 시끄럽게 짖어대는 강아지를 키우는 20대 청년이 산다. 나는 2층에서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건물 외부에 난 계단을 올라와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 로 들어가면 먼저 폭이 1m가 채 안되는 복도가 있다. 복도 중간에 옥상으로 가는 나무 계단이 있는데, 계단이 라고 해야할지 사다리라고 해야할지 애매할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고 발판의 폭도 좁다. 옥상에 올라가면 한강 과 강너머까지 내려다 보여 가슴이 탁 트인다. 이 동네에서는 다들 옥상에서 뭔가를 키우기 때문에 봄, 여름에는 나도 여기에서 방울 토마토며 상추를 키웠다. 물 주러 올라간 옥상에서 옆집 할머니, 할 아버지와 인사를 하는 날도 가끔 있다. 빨래 널러 올라가고 친구들과 맥주 마시러 올라가고 틈만 나 면 옥상에 올라가 누워있곤 했는데 날이 추워지고 는 뜸해졌다. 옥탑방도 있는데 사람이 살았던 흔적 이 있고, 보일러도 따로 설치되어 있지만 지금은 비어있다. 천정까지의 높이가 1600mm 정도 밖엔 안돼서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서 있을 수 없다. 다 시 2층으로 내려오면 계단 뒤쪽으로 신발장과 신 발장에 채 들어가지 못한 신발 박스들이 너저분하 게 쌓여 있고, (여자에겐 왜 이렇게 많은 신발이 필 요한 걸까!) 복도 끝에 폭이 좁고 긴 욕실이 있다. 욕실에 라디에이터가 있긴 하지만 너무 추워서 샤 워할 때마다 고역이다. 현관 왼쪽으로 난 문을 열 면 거실이 있다.


거실의 복도 쪽 벽에는 허름하긴 해도 싱크대가 있고 맘만 먹으면 곰국도 끓일 수 있을 정도로 어지간한 조리 기구는 다 있는 주방이지만 일주일의 5일 정도는 장식처럼 그 자리에 잠자코 있다. 거실의 창문 쪽은 원래 베란 다여서 거실과 베란다 사이에 샷시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이사를 왔을 때는 이미 확장되어 샷시문은 없 었고 베란다에도 장판이 깔려 있었다. 이곳에 책장과 테이블을 두었는데 거실의 남쪽 전면에 난 창 밖으로 보 이는 풍경은 앞 집의 적벽돌 벽이 전부지만 햇빛이 잘들어서 마음에 든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를 와서는 주말 에 늦잠을 자다가 햇빛이 눈부셔서 잠에서 깨면서도 행복하다고 중얼거리며 일어나곤 했었다. 반지하에 살 때 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거실을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3평 조금 못되는 방이 하나씩 있어서 동쪽의 방은 친 구가 쓰고, 나는 서쪽의 방을 쓰고 있다. 친구 방이 내 방에 비해 조금 더 작은 대신 벽장이 있다. 방에도 책상이 있지만 컴퓨터를 할 때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하기도 하고, 거실 바닥에 앉아서 친구와 음식을 나눠 먹고 매니 큐어를 바르며 수다를 떨고는 했는데 겨울이 온 이후로는 거실의 냉기가 너무 심해서 퇴근하면 인사만 하고 각 자 방으로 들어간다. 날이 따뜻할 때는 거실과 옥상까지가 활동 영역이었는데 날씨가 추워지고 보일러도 마음 껏 틀지 못하면서는 집에 오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전기 장판 속에만 들어가 있게 되었다. 추운 거실에는 사람 대신 빨래가 언제나 어수선하게 널려 있고, 미처 개지 않은 마른 빨래들이 테이블 위를 차지하고 있다. 열한번째 집에 산지는 아직 1년이 채 안되었지만 친구와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고, 동네도 집도 꽤나 마음 에 든다. 2년의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도 가능하면 2년 정도는 더 이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여기도 재정비 촉진지구에 속해 있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다른 재개발 지역처럼 이 주변 전체가 백지가 되었다가 아파 트 단지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 좀 아쉽기도 하고 이사할 걸 생각하면 벌써 걱정이 되면서도 다음엔 어떤 집에 살게 될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사를 할 수록 느끼는 건 어디에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 요하다는 거다. 그나저나 일단은 이 집에서 좋은 추억을 더 많이 만들며 사는 데에 집중해야겠다.


건축이 좋아. #6 신문로 옆 ‘작은 집’ aoikasa

The city, however, does not tell its past, but contains it like the lines of a hand, written in the corners of the streets, the gratings of the windows, the banisters of the steps, the antennae of the lightning rods, the poles of the flags, every segment marked in turn with scratches, indentations, scrolls. Italo Calvino, ‘Invisible Cities’

도시가 아름다운 건, 이딸로 칼비노가 말하듯, 도시는 굳이 그가 겪은 시간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 시간 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간은 도시의 작은 골목 골목에 새겨져 있고, 도로변 건물들의 창문에, 계단에, 벽면에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굳이 유럽의 어느 도시를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매 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도시에도 이런 시간의 흔적들은 꽤나 남아 있는 듯 다. 사실상 무려 정도 600 년을 자랑하는 서울이라면 그 시간의 흔적들은 무지막지하게 많아야 할 텐데… 안타깝게도 임진왜란과 식민지화, 한국전쟁… 그리고 불도저 시장 김현옥 시대를 거치며 서울의 시간들은 많이 지워져 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도시의 건축들이 있다. 이번 달은 도 시 곳곳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이름없는 ‘무명씨’ 건축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신문로’ 옆 작은 집 , ‘신문각 ’ 광화문 역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신문로 대로변에는 주변의 크고 높은 오피스들과 확연히 달라, 지나가 는 이들의 눈을 사로 잡는 ‘작은 집’ 하나가 있다. 큰 간판들에 가리어 그 원래 모습이 잘 드러나지는 않 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그 숨겨진 매력이 하나 하나 드러난다. 이 건물은 전면부는 2층 한옥 상가의 모 습을, 뒷부분은 ‘ㅁ’자형 도시형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다. 앞의 2층 상가 부분은 새문안교회와 통신사 가, 뒤의 한옥 부분은 신문각이라는 중국집이 사용하고 있는데 본디 이 두 건물은 한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1가 51번지 ‘신문각’ 건물

먼저 대로변 2층 상가 부분을 살 펴 보자. 파란 색 맞배 지붕과 돌출된 양 측의 측벽이 이 건물 의 주된 인상이다. 그리고 2층임 에도 불구하고 층고는 (주변 건 물에 비해) 매우 낮으며 일정한 기둥 간의 6칸 구성을 하고 있는

1900년대 초반 종로 시전(장랑)들이 늘어선 모습(좌)과 대표적인 시전의 모습

것을 볼 수 있다. 벽체는 시멘트 블럭 혹은 벽돌 조적조인듯 하지만, 실제 구조는 목조이다. (내부에 들 어가 보면 2층에 나무 기둥들과 보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이 건축물의 구조가 목조임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이 언제 지어진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 건물과 유사한 형태의 건축물은 1900년을 전후 하여 서울에 등장하였던 듯 하다. 조선시대 서울의 상가 건축은 ‘육의전’으로 대표되는 시전처럼 대로변

에 일자로 길게 늘어서 있는 한옥(이를 장랑(長廊)이라 부른다.) 형태가 주를 이루었는데 점차 도시화, 상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그리고 청나라 등에서 새로운 기술과 재료가 들어오게 됨에 따라) 2층 한옥 상가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2층 한옥 상가는 전통적인 한옥 구조를 2층으로 만든 양식 과 신문로의 이 건물처럼 주구조는 목조로 하되 조적을 사용하여 벽체를 구성한 양식의 두 가지 타입이

주를 이루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2층 앞 부분에 베란다를 붙인 경우도 많이 있었다. 이러한 한옥 상가

다양한 종류의 2층 상가들 (1930년대 남대문로)


의 경우 2층은 매장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주로 창고나 작업장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는 2층 부분이 상대적으로 층고가 더 낮았으며 오르내리는 부분이 편하게 되어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 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2층에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사람들로서는 2층에서 오랜 시간을 머 무는 것은 무서운 일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조선 시대 종로의 대로변에 있던 육의전을 포함한 시전들은 앞에서 이야기 했듯 가로변 장랑이 매장으 로 사용되었으며, 이 장랑 뒤로는 피맛길이 있고 그 뒤에 ‘ㅁ’자형 한옥이 있어 주거용으로 주로 사용되

었는데 신문로의 이 2층 상가건물과 뒤의 신문각 건물을 보면 바로 조선시대 시전과 뒤의 ‘ㅁ’자형 한옥 이 붙어 있는 구조와 거의 유사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문각 내부로 들어가보면 이 건물의 원

형이 ‘ㅁ’자형 한옥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마당 부분에 지붕을 만들어 내부화시켜 식당의 홀로 사

용하고 있지만, 나무기둥의 주춧돌과 기단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원래 마당-대청마루-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원래 건물의 형태가 그대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 아저씨의 말씀으로는 건물은

100년 넘게 되었고, 신문각은 30년 이상 영업한 곳이라는 설명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현재의 구조로 변경이 된 것도 꽤나 오래전 일인 듯 하다.

놀랍게도 필지모양은 100여년간 거의 변화 가 없었다. 이 건물이 언제 생긴지는 정확 히 알 수 없으나 이 땅만큼은 주변의 필지 들이 합쳐지며 점차 대형화되는 상황 속에 서도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런 건물이 재미있는 건 그 자체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건 아니지만 오랜 시간 그 곳

에 서 있으면서 주인이 바뀌고 오가는 사람들도 바뀌면서 자연스레 변형되어 왔다는 점이다. ‘무명씨 건 축’의 아름다움은 원형 그대로를 지켜와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그 곳을 스쳐간 사람들의 삶이 담겨 그

소소한 일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일테니 말이다. 아무튼 재개발로 종로마저 다 파헤쳐지고 피 맛골마저 사라진 지금, 이 작은 집 하나가 신문로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은 그저 고맙게만 느껴진다. 사실 이 집 역시 ‘정비구역’에 속해 있어 언제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디 이 ‘작은 집’의 시 간들이 조금만 더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


서울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무명씨’ 건축들 신문각의 경우 상당히 변형이 되었기는 하여도 20세기 초반 2층 한옥상가와 도시형 ‘ㅁ’자형 한옥의 형

태를 꽤나 잘 간직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처럼 그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지는 못할지라도 꽤나 오랜 시 간을 담은 ‘무명씨’ 건축들이 서울의 구석구석에 꽤나 남아 있다. 아마 대표적인 것은 북촌과 서촌의 도

시형 한옥들일 것이다. 이 두 곳의 도시형 한옥들은 나름대로 정비도 많이 되었고, ‘지켜야 한다’, 혹은 ‘지키고 싶다’라는 사회적 인식들로 인해 대중에게 소개도 많이 되었고 사랑도 많이 받는 곳들이 되었다. 이 두 곳은 뭐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 있으니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하고…

신문각을 본 이후 비슷한 형태의 건축물이 보문동에 있다는 이야기들을 듣고 보문동을 찾았다. 지하철 6호선 보문역에서 성북구청에 이르는 2블럭 정도의 대로변에는 신문각보다는 조금 덜 오래되기는 하였 으나 역시 유사하게 전면부의 ‘2층 상가’와 후면부의 ‘한옥’으로이루어진 건축물들이 다수 존재하였다.

이 건물들은 신문각에 비해서는 많은 변형이 이루어졌으나 그래도 여전히 주거로 사용되고 있는 한옥도 다수 존재하였다.

보문동에 남아 있는 한옥 상가들

사실 이러한 건축이 매력적인 것은 건축물 자체의 뛰어난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그 때 그 때의 필요에 솔직하게 대응하는 모습으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앞에서부터 계속 이야기 해 온 약 100년의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시간의 힘’이 느껴진다. 물론 이러한 건축물들이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도시에는 끝없이 많은 대형 건물들이 새롭게 세워지고 그 안에 는 또한 새로운 삶과 문화가 채워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속 이렇게 작은 ‘무명씨 건축’들

이 몇 개라도 남아 있어 가로변 건축경관을 이루고 있는 시간의 켜가 다양하게 보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세히 보니 더욱 사랑스러운 그 사랑스러움을 간직한 채 말이다.

p.s.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겠지만 ‘신문각’의 옛날 짜장면은 꽤나 맛있다. 광화문에 가실 일 있으실 때 들려서 ‘옛날 짜장면’ 한 그릇 드시면서 이 ‘작은 집’의 옛날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일지도..



“카나다.” “카나다?” 우린 편의점 앞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시각은 새벽 세 시 즈음. 해가 떠오 르기까진 몇 시간이 남아있었다. “응. 카나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말했고, 나는 캔을 들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맥주가 입 안에 가득 차고, 혀와 목을 탄산이 톡톡 쏘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캬아, 나다?” 내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다시 한 번 되물었을 때, 그녀는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내가 카나다에 간 날, 눈이 엄청 많이 왔거든. 도착한 날부터 3일 동안 쉴 새 없이 계속 눈이 왔어. 신기한 건 그렇게 눈이 많이 온 건 몇 십 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더라 고. 그런 날에 내가 간 거지. 그래서 눈 내리는 걸 보면 카나다가 떠올라. 그리고 카나 다가 그리워져.” 카나다. 나는 그녀가 카나다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카나다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지에 대해 많은 상상을 했다. 어쩌면 그 상상들이 내겐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상상을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물어봤어야 했다. “내가 카나다에 갔을 때, 친구 둘이 먼저 살고 있었어. 그래서 걔들이 공항으로 나를 마중나와줬는데, 셋이서 같이 아파트로 가는 내내 눈 얘기만 했어. 짐 풀기 전에 눈 구 경하러 가자고. 그날 정말정말정말 눈이 많이 왔거든.” 정말정말정말. 그녀는 정말을 세 번씩 반복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우리는 아파트에 내 짐을 던져놓고, 바로 뛰쳐나왔어. 그리고 다 같이 공원으로 뛰 어갔어. 그때 얼마나 신이 났는지. 나는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 고, 그냥 친구들만 무작정 따라갔어. 잠깐만.” 그녀는 주섬주섬 아이폰을 꺼내 구글 어스 앱을 켰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바라보 며, 반지를 상상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반지를 사주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생 각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 진짜 그립다. 여기야, 그날 갔던 데가. 보여?” 아이폰 액정에 녹색의 널따란 공간이 보였다. “데이비드 램. 그래. 여기 이름이 이거였어. 이쪽 동네가 부자들이 사는 동네여서 한 적한 편이거든.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전부 요트를 한 대씩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자 들이야.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밤에는 거의 사람이 없어. 그날도 역시 사람이 별로 없 어서, 이 넓은 공원에 우리 셋밖에 없었어. 수북이 쌓인 눈을 밟은 사람도 아무도 없었 고. 이때 말고도 산책 삼아 이 공원에 자주 갔었는데, 가보면 진짜 좋아. 바다도 바로 앞 에 보이거든. 정말정말정말 좋은데.”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눈 앞에 있는 건, 약 38만km 멀 리 떨어진 인공위성이 찍은 잔디였을 뿐이니까. 내 상상에 한계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 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추억들이 있었다. 나와는 공유하지 않는.


“정말 유치하게 놀았어. 뒹굴고, 뭉쳐지지도 않는 눈 가지고 눈싸움도 하고. 이상하 게 눈이 뭉쳐지질 않더라고. 아무튼 그땐 정말 좋았어.” 나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캔을 들어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정말, 정말정말정말 유치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땐 정말 좋았다고? 그럼 지금은 좋지 않은 건가? “눈이 점점 더 오네.” “그러게.” 우리는 노란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눈송이들을 바라보았다. “행복해.” 뜬금없이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뭐라고?” “행복하다고.” 나는 행복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바로 후회했다.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주워 담고 싶 었다. 티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것이 불과 한 시간도 채 되기 전의 일이었는데. “갑자기 왜?” “그냥.” 그녀가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을 던졌고, 나도 아무 의미 없는 답변을 했다. 그때 내가 다른 답을 했다면 지금 우리는 함께 살고 있을까? 나는 맥주캔을 들어 그녀 앞에 내밀 었고, 그녀는 내 맥주캔에 자신의 맥주캔을 부딪쳤다. “한 잔만 더 할까?” “아니. 추워.” 그녀는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응. 많이 마셨지. 집에 가자.” 나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와 맥주를 한 캔 샀다. 하얀 입김이 퍼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여전히 눈송이들이 이리저리 흩날 리고 있었다. 건너편 길가에 서있는 자동차에 쌓인 눈이 보였다. 나는 길을 건너가 본 네트 위에 캔을 내려놓고, 창 위의 눈을 쓸어 모아 뭉쳐보았다. 꾹꾹 눌러보았지만 잘 뭉쳐지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카나다에 가서 살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내가 도착하는 날에는 눈이 펑펑 올 것이고, 그곳에서 먼저 살고 있는 친구들이 나를 마중나와줄 것이다. 짐을 풀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나와 눈 구경하러 공원으로 뛰어갈 것이다. 가는 길은 온통 낯선 풍경들이고, 그 낯섦, 그 새로움에 가슴 이 뛸 것이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 그날따라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던 건, 그 상상 탓 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눈이 오는 날이면 그날, 낯설게 느껴졌던 집으로 가는 길 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가, 카나다가, 떠오른다.

- 물질과 비물질 2. 눈 <끝>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이달에도 재미있는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PDF를 보시면서 누르셔도 되고 스마트 폰으로 찍으셔도 됩니다. 여전히 월간이리 내 원고의 일부분이나 필진 이름, 블로그 주소등을 누르시는 경우 해당 페이지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우울한 청춘

글. 그림. 철민


부산오뎅 이야기 (오 마이 세훈-)

십수년 간의 홍대 밤생활로 피폐해진 필자에게 부산오뎅 사장의 원고 청탁 살짝 부담. 하지만 10년간 부산오뎅의 흥망성쇄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산증인이자. 수많은 술집을 전전하다 내 영 혼을 안착시킨 곳의 주인장이자 나의 친구 아닌가? 그래 써준다. 필자의 홍대 삼대 술집은 술집(현 살롱바다비 사장이 운영했던, 폐업), 곱창전골(LP 빠, 영혼없는 나를 발견 할때가 종종 있음), 그리고 단연 나의 음주 흑역사의 화룡정점을 찍은곳 바로 부산오뎅이다. 나는 그들에게 단골이라 말하고 그들에겐 진상이라고 불릴듯하다. 부산오뎅 지금의 부산오뎅과는 달리 2004년 6월 처음 방문 시 3~4평 크기의 선술집 느낌 단촐한 오뎅빠 하나 주방에는 곰돌이 푸 하나 (콧수염과 턱수염으로 중무장 하였으나 푸의 부끄러움을 상쇄 시킬 순 없었다) 그리고 오뎅 먹는 손님 하나 부산오뎅의 첫기억이다.


고민한다. 부산오뎅을 미화화 시켜 쓸 것이냐? 주인장 인간 이세훈 을 조명 할 것이냐? 맛집 블로거가 아닌 관계로 독자분들에게 직접 방문하시라고 권하는 바이나 강력추천. 오뎅탕 닭똥집이 별미다 <맛집소개 끝> 자영업 그거 만만치 않다 홍대바닥 수많은 업소들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몇백개의 업소가 산재해 있는 홍대 산울림 소극장(커피 프린스) 골목 인근에서 10년 이상을 유지 시켜온 업소는 세네 손가락안에 들 정도이니 그의 포스를 가늠 할 수 있으리라 그런 그가 요즘 부쩍 술을 더 마시 고 곱창전골에서 춤을 춰도 더 더럽게 춘다 <직접 봐야 안다 더러운 춤에 최적화된 몸- 육체 상태 소개 끝> 그리고 인사불성이 되어 뻗어 버린다 최근에 보인 모습이라 적잖 이 충격을 받았다. 술먹고 간혹 개가 되는 나에게 든든한 목줄 같 은 존재가 말이다 그의 눈을 잔잔히 바라본다. ‘그래 자영업이 너의 청춘을 앗아가 버렸구나! 전환점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 게?’아침 동이 뜰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몇 해전 격렬한 토론을 거친 그주제 이후로 심각하게 이야기 하 지 않았나 싶다. (몇해전 주제는 사자와 펭귄이였다. 동물원의 사 자와 펭귄이 행복한가 야생의 그들이 더 행복한가 나는 야생의 편에 그는 동물원에 들어가 있었다 (여기서 그의 보살핌에 굶주 린 애정결핍과 사회안에서 도태되어 가는 정신 세계 발견) 음주 중 그 신비스런 주제는 까만밤을 지새우며 핏대세워 언성을 높이 기에 충분했고 몇년이 지난 지금 그땐 미쳤지라고 회상한다.) 여 전히 내가 맞다. 여하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는 부산오뎅이란 틀 안에서 그의 존재가치를 정립하려는 듯 보였고 (일명 업 자 증후군) 나는 “아니다! 세훈아 니가 있고 부산오뎅이 있는거야!” 한번 정도는 부산오뎅의 그늘에서 벗 어나야 될때다 이때가 아니면 늙어 죽을때까지 오뎅국물에서 허우적 거릴지도 몰라 뾰족한 묘안이나 대책 도 없이 가게를 제주도로 옮겨 보라는둥 가게이름에 오뎅이란 단어를 빼고 쉬크하게 새롭게 시작해 보라는 둥 내 밑으로 들어와 나를 보필하라는 등 아니면 우리 같이 살까? 라는 시덥잖은 대화가 오고 같던것 같다. 그러나 나의 애정어린 조언에 적잖이 감동받은 그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는 눈웃음이 매력적인 남자다. 지도 그거 알고 일부러 여자들한테 꽤 써먹는것 같다<감정상태 소개 끝>


그렇게 예전같지 않는 노쇠한 그에게도 그의 생활 패 턴은 아이돌 뺨친다. 새벽 퇴근-음주가무후 취침-오전 기상-아메리카노 타임- 점심식사(입 맛은 까다로와 홍대인근 밥집 정 보는 꽤 쓸만함)-권투도장에서의 몸매관리(프로자 격증 취득 몸매 안 달라짐)- 음악레슨(드럼수업 롸 커를 꿈꿈)- 카페로 와 커피 리필(뻔뻔함)-집으로 귀 가- 짧은 낮잠- 가게 출근 이런 타이트한 일상의 반복 중에도 갖은 지인들의 전국적 경조사 다챙김. 한만큼 거둔다면 결혼식 하객 3000명 정도 예상 <라이프 스타일 소개 끝> 이렇게 자아발전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에게 진실로 필요한것이 무엇일까. 아! 사랑이다. 10년동안 밤일하는 그에게 왜 불타는 로맨스는 없었겠는가? 필자는 직감한다. 가끔 그에게서 풍기는 낯선 향기를 - 비내리는 새벽 마감즈음 살짝 눈이 풀린 한 여인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온다. 스캔 0.1초 끝 마감시간 됐다고 이야기 안함. 남자고객이나 혼성고객에겐 절대적인 그의 칼같은 마감타임 그리고 영업시간 종료를 알리는 외부간판 소등 상당히 민감하고 사적인 부분이라 여기까지 문득 그런 기회가 예전같지 않은게 10년간의 가게 운영에 회의 를 준건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을 한다<그의 사랑관 소개 끝> 인간 이세훈에게 좀 더 심층적으로 다가가려 했으나 편집장의 간결한 글 요구로 여기서 끝. “십주년 축하합니다 부산오뎅!! 그리고 인간 이세훈!” -이리카페 친구로부터-


국가란 무엇일까? (2회)

돌림판에 금을 그어 놓고 표창을 던지거나 땅위에 큰 네모를 그려 놓고 등 뒤로 돌을 던져 보면 깨닫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결정이 나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나는 흔히 이것을 물리적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확정과 한계를 동시에 표현하기로는 이만한 단어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단어를 무모하게 쓴다는 것은 아마도 물리적이라는 말이 뭔지 제대로 모른다는 의미겠지만 말이다. 흠흠. 돌이 네모 안에 떨어지거나 밖에 떨어지거나, 표창이 돌림판의 어느 부분에 꽂혀 결정이 확고해 지는 순간을 사람에 대입하면 하나의 확정. 즉, 탄생의 순간이 된다. 오늘은 사람의 확정과 순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물론 국가와 관련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국가 안에서 태어나 속하고 따른다. 역사상 국가를 배신한 사람들도 많고, 요즘에는 사람들이 국적을 바꾸기도 한다지만 그것은 전체 국민 수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 하고 보통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죽는 일이 부지기수다. 게다가 자신이 원해 국적을 바꾼 사람들조차 내 맘 속의 조국은 그대로라는 말까지 하고 있으니 국가라는 것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닌가 보다. 아무튼, 오늘도 나는 과거로 날아간다. 이번엔 삼국시대. 처음은 천년고도 신라로. 나는 신라의 복판에서 태어났다. 이처럼 누군가 신라인이 되는 일은 쉽고 간단하다. 신라에서 태어나면 그만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잠비아에서 태어나면 잠비아인이 된다.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뱃속에서부터 그렇게 되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많은 문제의 시작은 사실 여기에 있다. 애초에 우리가 국가 안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바꾼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사고의 기저에 국가는 자리잡아 버린다. 거의 엄마, 아빠와 같은 최저 지점에 국가는 들어 앉는다. 그럼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어찌 될까? 바로 이렇게 된다. “아름다운 골품제가 있는 나의 사랑 나의 조국 신라.” 이런 나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나는 태어나서 자라며 열심히 신라의 문화와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습득해 나간다. 비록 하층 계급에서 태어났지만 기적적으로 뛰어난 운동 신경과 학습 능력, 화술과 천운을 바탕으로 성공을 쟁취한다. 어느 인생에 고난과 역경이 없을까 싶지만 신의 보살핌과 나의 힘이 2:8 정도로 조화되어 모든 시련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낸 것이다. 이윽고 나의 성공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누대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 볼 정도에 이르렀다. 이야 신난다. 만년에 누대에 오르니 얼마나 좋은가? 나는 마을을 굽어보며 생각한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정말 열심히 산 인생이었다. 힘이 들기도 했지만 성공을 향해 달렸고 비로소 성공했다. 그나저나 저 아랫것들은 왜 이렇게 굼뜨고 무능하고 게으를까? 쓸모없도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말이야.’


이런 생각을 할 때 쯤, 나는 구운몽의 주인공처럼 잠에서 깨어난다. 신라인의 마지막 대사에 이상한 부분은 무엇일까? 없다. 정말이지 없다. 그냥 저런 상황, 저런 나이가 되면 “내 나라 신라. 기회의 땅 짱짱맨”이 되면서 삶은 마무리 된다. 이상하고 말도 안된다고 ? 장담하는데 대부분은 저렇게 된다. 지금은 국가가 무엇이니 하는 글을 쓰고 있는 나라도 저 상황이라면 꿈을 찾아 떠돌겠다는 자식들에게 “그러지 말고 화랑이나 되려므나.” 하고 말 것이다. 누대에 오를 정도의 성공이 아니더라도 등 따시고 배 부르다면 일반적으로 저렇게 생각할 것이다. 삶은 순간이고 나는 괴롭지 않은데 힘들게 뭘 돌아본단 말인가. 그런데 이것으로는 글이 별 재미가 없으니 신라인은 혼자 두고 한번 만 더 점프해보자. 이번에는 양 옆으로 두 산을 끼고 있는 마을로, 모양으로 치면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이런 모양의 지역이다. ^_^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저 이모티콘의 입 부분의 마을이 이번 생의 무대이다. 그런데 참 행복하면 좋으련만 불행하게도 고구려 ^_^ 백제에 뚝 떨어지고 말았다. (하아.. 조금 전에 우리 좋았잖아.) 맨 처음 고구려에 속했던 나는 눈뜨면 일어나 고구려 식 인사를 하고 복장을 갖추고 고구려의 습속을 받아들이면서 잘 자라 간다. 엄마랑 아빠랑 봄에는 씨 뿌리고 여름에는 잡초 뽑고 가을에는 수확하고 겨울에는 추위에 떨면서 그렇게 보편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어느 겨울 백제의 군대가 오른편의 산에서 내려와 신나게 말을 달리더니 왼편의 산으로 올라가 고구려 군사들을 몰아내고 성을 점령해 버렸다. 그리고는 마을로 내려와 이제 너희는 백제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 따위 허접하고 지저분하면서 격식 없는 옷들은 다 버리고 새로운 복장과 문화를 받아들여 살라고 한다. 당연히 세금도 오른쪽 산으로 갖다 바쳐야 한단다. 뭐 별 수 있습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모아놓은 가죽과 고구려 식 장식들을 버리고 백제에서 유행한다는 깃털과 천을 구해 옷을 지어 입고 늘 가던 일터로 향한다. 밭도 그대로고 나도 그대로고 엄마도 그대로이고 뜨고 지는 해도 그대로 그냥 옷과 습관만 좀 바뀌었다. 그렇게 몇 년이던가? 이제 좀 백제의 옷이 덜 남사스럽게 느껴질 때 쯤, 왼편의 산에서 고구려 병사들이 내려와 신나게 말을 타고 오른 편을 향해 내달린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백제의 군사들은 제대로 된 싸움도 하지 못하고 줄달음을 치고.. 백제군을 다 몰아낸 고구려 병사들은 다시 마을로 돌아와 말을 한다. 어허 이 옷들은 다 무엇인가? 네, 네, 알겠습니다. 세금도 다시 왼쪽 산에 갖다 바치란다. 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나무를 하다말고 너른 바위에 앉아 생각한다. ‘고구려에서 태어났으니 고구려 인 인가? 아니 백제가 쳐들어 온 다음에는 백제 인 이었는데, 땅위에 선을 긋고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나는 그대로인데 고구려인도 되고 백제인도 되었다가 다시 고구려인도 되었다. 세금으로 쓸 콩 한 자루를 들고 왼 산에 갔다 오른 산에 갔다 하면서 나는 고구려인과 백제인을 반복하고 있네. 뭐지? 아아 모르겠다.’ 그러다 또 꿈에서 깨어난다. 고구려나 백제가 무엇이기에 무거운 나무 짐을 앞에 둔 나무꾼을 쉬지 못하게 했던 것일까?


사실 ^_^ 마을에서 고구려고 백제고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당장 내일 먹을 곡식과 자식 키우는 게 중요하지. 고구려가 백제가 되었다가 고구려가 된다고 덜자라던 보리가 쑥쑥 자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백제가 저수지를 만들어서 좀 살만하게 해준다면 그건 좀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세금만 뜯어가는 거라면 고구려든 백제든 나의 국적이 무슨 상관일까? 그럼 이제 적당히 기회주의자가 되어 신라의 누군가처럼 성공을 향해 질주하며 배부르게 살아보자는 목적 하나로 “화이팅!”을 외치며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할까? 에이 그러려면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조금 더 가보자. 내가 신라인이든 백제인이든 고구려인이든 아마 나는, 물리적인 나를 공격하는 외부의 침략 (노략질)이 없다면 순순히 고구려인도 되었다가 백제인도 되었다가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이건 앞에서도 이야기 했었다. 2014년의 내가 지금의 상태 그대로 ^_^ 마을로 날아간다면 어떨까? 주권이니 자유니 법치니 뭐니를 알고 있다 해도 나의 삶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고구려면 어떻고 백제면 어떠하랴. 세금을 내듯 콩을 내고 자식을 키우듯 자식을 키우고 직업을 가지듯 농사를 짓고 저축을 하듯 곳간에 곡식을 채우면 그만이지. 흙먼지를 일으키는 말들이 다가와 나의 안방을 짓밟지 않는 이상, 말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가나보다 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얌전하게 고구려와 백제의 군사들이 지나간다 해도 말굽에 땅은 패이고, 패인 땅에 물이 고여 진흙 들은 끈적끈적한 손놀림으로 내 발을 붙잡을 것이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외부는 나를 붙잡고 늘어지게 되어 있다. 글을 이리 저리로 빙빙 돌리고 별일 아닌 것처럼 흐리게 써봐도 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내가 물리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이야기에도 이런 그늘이 존재하는데 현실은 어떨까? ^_^ 마을만 해도 현실의 이야기라면 한때의 군사들이 지나갈 때마다. 적국의 영토라며 집은 불태우고 남자들은 살해당하고 여자들은 봉변을 당할 것이다. 현실은 끔찍하게 나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만약, 현실이 나를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저수지라도 하나 지어주는 쪽의 편이 되어 살아가는 게 낫다. 왜냐면 어차피 나의 삶에선 백제든 고구려든 국가의 이름은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확정되고 순응하는 것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 마을을 밟고 지나간 것은 국가가 아니잖아. 말과 말을 탄 사람들이었잖아?’ “그럼, 국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2회 끝>

글. exxx


국가1國家[발음 : 국까]

명사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主權)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 회 집단. 국민ㆍ영토ㆍ주권의 삼 요소를 필요로 한다. [비슷한 말] 나라1 ㆍ방가1(邦家)ㆍ방국1(邦國).

(네이버 국어사전)


바다비 일요 시극장

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4.2.23 http://cafe.daum.net/badabie


지난 1월호의 뒷표지는 피카소의 석판화 연작 'Bull' 의 패러디였습니다. 'Bull'은 피카소가 60대 중반이던 즈음 작업한 석판화 연작입니다. 첫번째 황소 1부터 마지막 황소 11 까지 약 1달에 걸쳐 작업되었으며. 제시한 도판은 마지막 11번째 작업입니다. 최종적으로 황소는 상징만 남아 기호처럼 되었고 그자체로 몹시 유려하고 완벽해보입니다. http://bit.ly/1fvECdv 본 페이지의 정보를 참조했습니다. 도판이 작업 순으로 실려있어 보시기 좋습니다.

이번호 뒷표지는 테오도르 제리코의 광인 연작에서 주제를 따왔습니다. 제리코는 정신과 의사인 친구의 권유로 실제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의 초상을 여럿 그렸으며 제시한 도판은 그 중 손꼽히는 작품으로 프랑스의 리옹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제리코의 서른 살 무렵 작업입니다. 제리코는 실제 광인을 대하며 작업을 했지만 저는 다만 정신이상자의 인상이 필요했으며 google을 통해 많은 단어로 찾아보았습니다. 광기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선택한 최종 검색어는 'murderer' 였습니다. 뒷 표지의 소년은 19세의 살인용의자입니다.


그림.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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