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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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도토루의 하루 / 그림. 호지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어요, 하지만 행복하세요 - 글. 사진. 박주원 백림서신 - 16. Old records never die / 글. 사진. composer B 만든다오 - 15. 들뜬 꿈을 낚아채다. 드림캐쳐 / 글. 사진. 진선 체니 사이드 - 4. 과나 2 / 글. 사진. 장수양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사진. 철민 하늘 사진 - 사진. 민하 노회찬, 그사람 Ping Pong - 07. 합숙 / 글. 황정운 이훈보


6월이 더웠다는 말이 무색하게 7월의 더위는 어마어마했습니다. 공포스럽기까지 했 었죠. 삶을 영위하면서 경험이 축적되고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예상하다 보면 벌써 2019년의 여름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2018 년의 겨울도 오지 않았는데 여름을 걱정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일 겁니다. 물론 정치영역에서야 내년 여름의 전기 계획과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냉방 복지 계획 을 고민해야 하겠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해결할 수 없는 불필요한 걱정을 미리 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 그때까지 살아 있 을지 없을지도 모르는걸요. 무책임하지만 저는 그런 자세로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그 런 느긋한 마음 때문에 쓸모없어 보이는 이런 책을 만들면서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 습니다. 커피와 빙수를 먹으며 기우제를 드릴 수 있는 여유 넘치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길 기 원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너무도 더운 7월에도 마다 않고 원고를 작성해 주신 저희 필진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 사를 남깁니다. 월간 이리 EXXX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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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어요, 하지만 행복하세요

6월 말쯤 싱가포르에서 같이 일했던 피디가 한국에서 취재와 촬영을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한국의 공무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주제를 추천했다.

사실 나는 썩 공무원이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공무원 집안에서 자랐는데 ‘철밥통’이라 떠들어대는 언론의 보도와는 상반되게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했던 아빠와 집에까지 일을 가져와서 밤새 일했던 엄마를 보면서 자랐다.

하지만 사회성 있는 주제라고 생각해 적극 추천했고 그 결과로 지난 열흘간 나는 싱가포르 국영방송국 팀과 절실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한국 청년 네 명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했다.

다큐멘터리를 위한 취재는 공무원 학원의 메카 노량진에서 시작했다. 생각 없이 뛰어들었던 노량진 취재는 내가 지금까지 했던 취재 중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학생 섭외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사람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알아가고 관계를 쌓는 것은 다큐멘터리의 정석이다. 일본 방송국 NHK는 몇 개월에 걸쳐 학생들을 알아가며 시험 준비 기간부터 결과까지 촬영했다고 한다. 한데 이 쉬운 공식을 짧은

호흡의 영어 기사를 뽑아내는 일에만 익숙한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노량진과 종로에 위치한 학원 열네

곳이 넘게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냈지만 한곳에서만 연락이 왔다. 학원을 통해 학생 한 명을 어렵게

섭외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공부에만 매달려 있는 학생에게 연락을 취하는 일은 어려웠다. 드문드문 오는 한두 마디의 답장 때문에 사전 조사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취재 허락을 받고 스케줄 상의와 협조를 위해 학원 담당자에게 보낸 열 몇 통의 문자와 전화에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한달 가까이의 사전 조사가 마무리 될 때쯤 싱가포르에서 카메라맨 두 명과 피디 Jenn 이 도착했다. 내가 싱가포르에서 일을 했을 때 따뜻하게 대해 주셨던 분이라 나도 이번에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촬영은 순조롭지 않았다. 담당자는 휴가를 가면서 학원에 근무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우리가 촬영을 온다고 말하지 않았다. 회신 받은 이메일과 문자를 보여줬지만 카운터에 앉아있던 학원 담당자는 우리에게 경비를 보내 재차 확인을 거듭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강의실 뒤에서 조용히 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선생님들은 차가운 표정으로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 옆을 지나갔는데 간혹 찌푸린 얼굴로 불쾌함을 표시하는 학생도 있었다.

인터뷰할 학생에게 오늘 단어 시험은 어땠냐고 물어봤다. “못

봤는데요?” 학생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 시험이 어려웠 나봐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가 신경이 쓰여서 시험을

못 봤다고 했다. 그는 몇 초마다 반복적으로 시계를 쳐다봤다. 우리도 나름 신경 쓴다고 쉬는 시간 때 1~2분 정도 인터뷰를 했지만 학생에게는 그 시간도 아까웠 나보다. 학생들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공부했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자고 물어보는 일은 내게 고역이었다. 인터뷰한 네 명 모두 하루에 12-13 시간씩 공부를 한다고 했다.

첫번째로 인터뷰한 학생의 보금자리는 노량진 한 골목에 위치했다. 좁은 골목을 휘감은 전깃줄과 주황색

불빛 아래 학생은 재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고시텔로 안내했다. 아예 방음이 안 되는 벽 때문에 촬영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카메라맨 한 명이 따라 올라가 학생 방에 GoPro 카메라를 설치하고 내려왔다.

학생이 취침과 기상할 때만 카메라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촬영이 되었다. 나중에 촬영된 영상을 보니 학생의 침대와 벽 사이에는 곧게 뻗은 팔 반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방은 20평대 아파트의 화장실보다

비좁았고 창문은 없었다. 거주자들은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고 코고는 소리는 고스란히 벽을 통해 옆 방에 전달된다고 했다. 고시텔은 ‘관 (Coffin)’ 만큼 좁은 악명높은 홍콩의 Coffin house을 연상시켰다.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들의 일상은 타인이 관리하고 지배했다. 첫 번째 학원에서는

조교가 문을 지키며 지정된 시간 이후 화장실을 가는 학생에게 벌점을 부여했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벌점이 쌓이면 퇴출이 된다. 노량진 촬영 후 방문한 안동의 기숙학원도 비슷했다.


400명 정도가 있는 안동학원의 하루는 7시 30분 점호로 시작된다. 군대 출신 사감은 굵고 낮은 목소리로

“기상, 기상, 기상”을 반복했다. 학생들은 재빨리 문 앞에 집합하여 “하나! 둘! 셋!”을 외치며 앉았다

일어섰다. 인터뷰했던 남학생에게 이런 강제적인 규율이 익숙한지 물었보았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익숙하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때도 11시까지 강제로 야자하고 군대도 다녀왔으니까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학원은 “4 無 정책”을 도입하여 핸드폰 사용과 이성 교제, 게임 그리고 유흥을 금지한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동석 및 대화 자체를 금지하고 신체접촉이나 음주가 적발되면 바로 강제퇴소 된다. 혈기왕성한

학생들이 휴게실 안에서 마치 금단의 선을 사이에 둔 듯 테이블 너머로 서로 힐끗힐끗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기숙학원 학생들이 “4 無 정책”

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호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엄격한 규율과 규칙적인 생활 덕분에 방해 없이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학원에 따르면 90% 정도가 자발적으로 입교했고 부모님의 손에 끌려서 온 학생은 곧 자발적으로

나간다고 했다. “간혹 시험을 앞두고 긴장을 못 이겨서 도망가는 경우도 있어요, 근데 얼마 안 돼서 돌아와요. 돈도

없고, 어디를 가겠어요?” 학원 관계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몇 년 전에 폐교한 한 대학교의 부지에 위치한 학원의 주변에는 시골 농가 몇 개와 산이 둘러싸고 있다.

올해 4월에 실시된 9급 공무원 시험에 200,000 남짓의 수험생들이 응시하였고 그 중 5,000 정도가

합격했다고 언론 보도 되었다. 1:40의 경쟁률이다. 특정 공무원 직종의 경쟁률은 1:100까지 올라간다.

우리가 인터뷰한 교수는 젊은이들이 ‘마음가짐’을 바꾸고 눈을 낮춰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 들어가라고 했다.

순간 감정에 이끌려 인터뷰한 이들을 대변하는 심정으로 나는 되물었다. “중소기업의 열악한 처우와


환경을 아시잖아요. 대기업이 학력과 시험점수를 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사다리 위로 올라갈 수 없어요. 그래서 공무원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그는 꼬일도록 꼬인 이 시스템에 대안이 없다는 비관적인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책 <당선, 합격, 계급>의 저자 장강명은 한국 취업 시장 곳곳의 내부 사다리가 허약하다고 썼다. 그는

공중파 방송사 공채에 도전하는 아나운서를 예로 들었다. 공중파 3사의 아나운서 경쟁률은 기본적으로

1500대 1 정도이다. 그중 현역 지역 방송 /스포츠 채널 아나운서도 많다. 그는 지상파 공채에 이미 타 사에서 경력이 있는 아나운서들이 지원서를 대거로 내는 이유가 언론 업계의 내부 사다리가 허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지방 방송에서 경력을 쌓고 노력을 해도 공중파 아나운서만큼 대우나 임금을 받을 수 없고 업계에서 성공하려면 처음부터 공중파 아나운서로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외신에서 일을 하며 경력을 쌓고 한국에 돌아온 내게도 이 규칙은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한 종편 방송사의 사장은 내가 아무리 외신에 기사를 기고했어도 한국 매체에서 일하려면 무조건 입사 시험을 봐서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박문각 시사 상식” 같은 책에서 나온 상식을 얼마나 많이

외울 수 있는지 판단하는 언론사 시험으로 기자를 뽑는다. “로제타 플랜 (Rosetta Plan)이 무엇인가”

하는, 세계 최고 스피드의 인터넷을 통해 바로 알 수 있는 질문에 답을 못했다는 이유로 많은 지원자들이 1차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큰 변수가 없는 한 뽑힌 기자들의 사회적 지위와 임금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참고로 미국에서 기자들은 대부분 지방 방송국/ 언론사에서 시작해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후 실력이

갖춰지면 대형 미디어로 이직한다. 외신 기자들은 항상 내게 이력서 맨 위에 학력을 쓰지 말고 본인의 경력부터 쓰라고 조언했다. 미국에서 ‘한방’으로 결정되는 일은 복권 당첨뿐이다.


공무원 시험 뒤에 가려진 눈물 스무살 초반의 앳된 얼굴을 가진 그녀가 유난히 쌍꺼풀이 짙은 눈을 껌벅이자 눈물이 방울방울 쏟아져 나왔다. “너무 절실해요… 너무…” 그녀의 갑작스런 눈물에 당황하는 바람에 나는 ‘절실’을 어떻게

통역할지 머리가 새하얘졌다. “Really want”은 소망을 이루자 하는 원함의 무게가 가벼워 보였고

“Desperate”은 기약없이 매달린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절실’하게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다. 경찰서 바닥이라도 청소하는게 꿈이라고도 했다.

매일 밤 촬영을 마치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의 고통은 고스란히 내게 전달이 되었다. 1초도

아껴가며 공부하는 그들에게 짧은 인터뷰를 부탁할 때마다 너무 미안했고 수십 명이 있는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숨 막히는 긴장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 신문에서만 접했던 노량진이란 세계는 세상 모든 곳의

좌절과 불안, 불공평함, 그리고 두려움이 가득한 곳 같았다. 선생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영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노량진의 선생님들이 “teaching machine (가르치는 기계),” 그리고 휴가도 맘대로 못가는

“slave (노예)”라고 소리 높여 말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예쁘게 포토샵이 된 그녀의 얼굴이 다른 선생님들의 포스터와 함께 걸려있었다. “왜 한 나라의 공무원을 뽑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모든 촬영을 끝마치고 뒤풀이를 하는데 Jenn의 친구가 왔다.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피디를 하는 40

대 여성분이었는데 나는 그녀에게 나의 고충을 토로했다. “인터뷰를 할 때 상대방의 감정이 제게 너무 고스란히 전달되어서 너무 힘드네요.” 노량진과 안동에서 몰래 몇 번 울었다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주원 씨 그러면 이 일 오래 못해. 감정을 필터없이 있는 그대로 느끼고 행동하는 일은 동물들이 하는 일이야. 우리는 사람이니까 그 감정에 대해 오랜 시간 곱씹으면서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해,”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키던 그녀는 갑자기 고 노회찬 의원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대답을 하니 그녀는 갑자기 팔에 얼굴을 묻고 서글프게 펑펑 울었다. 촬영을 할 때

본인 감정에 냉정해지라면서 술자리 대화 내내 세상에서 가장 염세적인 말들을 쏟아냈던 그녀는 이십 년 전 공장에서 만났던 노회찬 의원을 추억하며 꺼이꺼이 울고 또 울었다.

꿈을 위해 나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은 사회적으로 강요 받는다. 행복은 잠시 미뤄두고 감정 소비는

최소한으로 하라고. 하지만 그녀의 눈물은 내게 암묵적인 허락을 하는 것 같았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울어도 된다고. 세상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때로는 울어도 된다고. 세상과 함께 슬퍼하고 분노해도 된다고.

헤어질 때 술에 취한 그녀를 안아주며 작게 말했다. “행복하세요, 피디님.” “아니요, 우리는 절대 행복할 수 없어요,” 그녀는 말했다. Bitterly.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피디님, 저는 꼭 행복할 꺼에요. 불행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길어요.

노량진과 안동에서 만난 친구들은 공무원 시험을 붙으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도는 저녁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지난 9일 내내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부디 행복하세요.

글. 박주원 www.brunch.co.kr/@pjw7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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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림 서 신

伯 林 書 信

Composer B

16. Old records never die

잘 지냈어? 나는 얼마전 단골 음반가게에 다녀 왔어. 베를린의

북서쪽

구역에

위치한

샬로텐부르크

성(Schloss

Scharlottenburg) 옆의 다리를 건너 주택가가 밀집한 동네로 들어가면, ‘ 플라텐 페드로(Platten Pedro)’라고 하는 조그만 음반 가게가 있어. 100,000 여 장의 중고 LP들이 꽉 들어찬 이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자신을 ‘플라텐 페드로(참고로 ‘플라텐’은 독일어로 LP를 뜻해)’라고 소개하는 과묵한 할아버지야. 젊었을 때는 DJ로도 활동했었고 좋아하는 음반을 물으면 3 만장 정도라고 대답하는 이 분은, 평일 10시 7분에서 오후 4시 53분까지 그리고 주말에는 9시 59분부터 오후 1시 2분까지 손님을 맞아. 그리고 내년 4월 19일이면 무려 개점 5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역사가 아주 긴 음반 가게지. 사실 이 가게를 처음 찾아 왔을 때는 이렇게 역사가 오래된 곳인지 몰랐었어. 내가 이 곳을 처음 알게된 건 베를린에서 중고 클래식 LP를 취급하는 가게를 찾던때였어. 베를린에 LP를 파는 음반점은 많았지만 도시 전체를 점령한 힙스터 문화의 영향 탓인지, 클래식 보다는 힙합이나 락을 취급하는 음반점이 더 많더라구. 하지만 이곳은 거의 모든 장르( 심지어 2차대전때의 방송 뉴스나 연설을 녹음한 LP까지!)의 음반을 갖춰 놓았고 보존상태가 좋은 귀한 음반들을 단돈 5유로에 살 수 있어서, 처음 갔던 그 날 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장소가 되었어. 나는 이 가게의 한 구석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해. 그 구석에서 내가 주로 찾는 건, 동독을 위시한 구 공산권 국가에서 생산했던 음반들이야. 다시 말해 동독,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처럼 정부가 사회 전반을 통제했던 곳에서 나온 음반들 말이지. 이 나라들은


음반 회사를 국가가 운영했던 데다가 문화예술에 대한 강력한 통제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어지간한 수준의 실력자가 아니면 음반을 녹음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해. 또한 녹음 장비나 기술의 노후화로 인해 기본적으로 울림이 좋은 장소만을 엄선하다 보니 날카롭거나 인위적인 소리와는 거리가 먼 편이라고 하더라구. 실제로 이 음반들을 테스트 하기 위해 가게에 설치된 턴테이블에 걸어보면, 흔히 ‘LP 사운드’라고 말하는(때론 미화하기 위해 쓰이는 표현이기도 하고) 풍성하고 부드러운 음향을 들려줘. 그리고 마음에 드는 음반을 찾으면, 음반 커버 뒷면을 샅샅이 훑어보며 녹음 연도와 장소를 확인하지. 1985년 드레스덴, 1981년 라이프치히, 1983년 포츠담, 1987년 헝가리… 그래, 냉전이 끝나기 전에는 가 볼 수도 없었던 곳에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음반들이라는 얘기야. 만약 역사의 흐름이 조금만 다르게 흘러갔다면 이런 음반이 있었는지 조차도 모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과 함께, 이 음반을 손에 쥐게 된 것도 나름의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음반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리곤 해. “니 팔자도 참 기구하다. 그 70년대의 동독에서 태어나서 나중에는 나와 함께 서울까지 따라가겠네. 여기 오기까지 몇 명의 손을 거쳤을까.” 그리고 그 음반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들을 살펴봐. 음반 한쪽에 연필로 쓰여진 가격인지 책의 페이지인지 모를 숫자, 음반을 책장에 꽂아 넣다가 생긴 상처인 듯 구겨진 귀퉁이, 누구의 것인지 모르지만 음반 표면에 달라붙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음반을 녹음하거나 소유했던 이들 중 누군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겠지만, 이 오래된 음반만은 끈질기게도 살아남아서 자신의 몸 구석구석 남겨진 시간들을 보여주고 있는 거지. 누가 이 음반을 들었는지, 몇 개의 나라를 거쳐왔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이 곳에 있었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음반이 지금 내 손에 들어와 있다는 이 감정, 글로는 표현하기가 힘드네. 아마 이것도 누군가에게는 열과 습기에 약하고 잘 휘어져 보관하기도 힘든 단순한 플라스틱 판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플라스틱 판’이 처음 만들어져 지금의 나에게로 오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말이 길어졌네. 또 편지할게.

Ein Besuch bei Platten


만 든 다 오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가내수공업 고군분투기

#15. 들뜬 꿈을 낚아채다, 드림캐처 꿈을 잘 꾸는 편이다. 그것도 꽤나 다이나믹하게. 해일이 집을 덮치기도 하고,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해 결하기도 하고, 때때로 뭔가 영험해보이는 꿈도 꾼다. 꿈속에 가까운 사람이 나왔는데 표정이 좋지 않을 때, 다음날 연락해보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긴 상태.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예지력이 꿈으로 발현된다던데, 난 그 힘이 조금 더 많이 남은 건가 하며 헛허 웃고 말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너무 꿈을 많이 꾼다. 8시간을 잤는데도, 꿈 한 번 잘못 꾸면 한 숨도 못잔 사람처럼 피로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드림캐처를 찾게 된 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드림캐처. 전통적으로는 버드나무로 만들어지며, 고리를 기본으로 한 수제 장식이다. 거미집 모양의 성긴 그물에 깃털과 구슬 등 다양한 소품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지니고 있으면 악몽 을 잡아주어 좋은 꿈을 꾼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주술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물건은 손쉽게 사고 싶지 않다. 공장에서 찍어 나온 듯 한 느낌은 더더욱 사양이다. 정확한 원형을 자랑하는 수틀에 실을 얽어가며 만든다 한들, 제대로 악몽을 걸러줄 것 같지 않았다. 동네에 나무는 많았다. 바람이 심하게 거세게 부는 날이나, 가지치기를 하는 시즌이면, 나뭇가지는 속절 없이 잘려 나가 화단 한 모퉁이에 쌓였다. 다 벚나무였 다. 나는 그 중 쓸모 있어보이는 애들 몇 개를 집어 왔다. 완전 딱딱하게 마른 나무는 잘 휘어지지 않는다. 나뭇 가지 속이 푸릇푸릇한 애들은 활을 만들어도 될 정도 로 잘 휘어졌다. 둥그렇게 모양을 잡은 후 끈으로 칭칭 감았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잊혔고, 그 모양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무더운 여름, 우리는 또 다시 주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년 전 여름, 서울에서 차를 빌려서 내려와, 계약금을 걸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던 그 때처럼. 2년 동안 우리는 바닷바람에 잘 절여져가며, 적절 히 익어갔다. 햇빛은 잔뜩 들어왔고, 베란다에서 고개를 내밀면 바다가 보였지만, 조금 더 괜찮은 곳에서 살고 싶다 는 욕심은 계속 커져갔다.


때마침 좋은 조건으로 소형아파트를 계약할 수 있게 됐다. 신축이었고, 입주자를 위한 헬스장이나 사우나도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곳이었다. 짐을 다시 한 번 정리해야할 때였다. 옷가지를 정리하고 책을 정리하고, 이번 이사를 계 기로 조금은 미니멀리즘 한 생활을 해보자며 한참 정리를 하던 때였다. 언제 만들어 놨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드림캐처 틀을 발견한 것은. “이거 지금 만들까?” “그래.” 짐을 정리하다말고 그렇게 샛길로 샜다. 우리가 만드는 드림캐처는 가장 기본형. 간격 을 두고 매듭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간격 이 너무 넓어도, 너무 좁아도 나중에 힘들어 진 다. 엮고, 또 엮기를 반복한다. 실을 엮는 건 인간관계와 닮았다. 이 사람과 어떤 그림을 그려나가게 될지, 그 순간에는 지 레짐작할 뿐이다. 그녀와의 관계가 그랬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 을 서로 느꼈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이 비슷했 다.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했고, 사람의 온기 가 느껴지는 물건을 사랑했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여유에 빠져있었고, 일상을 벗어나 함께 가는 곳 그 곳이 어디더라도 우린 행복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생 이라면, 그녀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이 뜬구름에서 손에 잡히는 그 어떤 것들로 바뀌었다. 나란히 앉아서 같은 드림캐처를 만든다. 분명 같은 방식으로 엮어 나가는데, 촘촘함의 정도나 속도가 차이가 난다. 그녀는 천천히 꼼꼼하게, 나는 빠르게. 하지만 신기하게도 비슷한 모습으 로 완성되어 간다. 같이 나무를 주웠고, 함께 나무를 구부렸으며, 엮을 실을 함께 골랐다. 채 움트지 못한 꽃망울 이 달려 있는 나뭇가지에 두 사람의 온기가 깃 드는 것만 같다.


가을이면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새로운 공간에서 전에 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일들은 우리가 오 랫동안 꿈꿔왔던 일의 초석이기도 하며,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실은 한계에 다다르기 까지 끝없이 엮인다. 매듭과 매듭 사이를 이어나간다. 삼각형의 공간 사이에 실타래를 집어 넣으면, 삼각형은 사각형이 된다.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뻗어나간 원 안의 공간 속에 나는 염원을 담았다.

부디 우리의 꿈이 구체화 되기를, 우리가 앞으로 더 멋진 꿈을 꿈 꿀 수 있기를.

*글쓴이_오진선(@ss_jinsun) 가내수공업 중독자 / 나노상공인 / 애견인 / 페미니스트 / 레즈비언 가정주부/홍대살다 부산거주 중/ 퀴어여성커뮤니티<언니네달방>운영자 /


체니사이드

글. 장수양


4 과나 2

2 나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책을 읽고, 던져버리고, 아무 데서나 졸아대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이름을 들어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대학교에 다녔는데, 흡연실에는 항상 고등학생 티를 벗지 않 은 멍한 표정의 동기가 앉아 있었다. 나는 담배에 정을 붙여보려고 했다. 담배에는 내가 어려서 부터 동경했던 ‘합법적인 못된 짓’의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성년자일 때는 누릴 수 없 던 분위기였다. 하지만 담배 냄새는 지독했고, 값도 비쌌으며, 흡연실도 어쩐지 보기 싫은 모양 새였으므로 곧 그 취미를 포기했다. 이 시기의 나는 몹시 말라가고 있었다. 깡마른 팔꿈치와 손목이 싫어서 여름에도 반팔을 입 지 않았다. 바이크를 개조해서 타는 사람처럼 커다란 가죽 점퍼나 완전히 물이 빠진 청남방을 자 주 입었다. 나는 생리가 싫었다. 그냥 냄새만으로도 역겨웠다. 생리를 하기 싫어 나팔관을 묶어 버리는 상상을 자주 했다. 정말 그렇게 할 마음은 없으면서 이런 계획이 있는 양 입밖에 낸 적도 많았다. 같은 자리에 앉으면 사뭇 즐거운 듯이 떠들었지만, 과 동기들이 뒤에서 나를 꼴통이라 고 부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내가 ‘시끄러운 평온함’으로부터 멀어진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었다. 그것을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여름이었고, 이사한 뒤로 한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갑작스럽게 다시 존재를 드러냈다. 초겨울에 나는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아무리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도 추웠고 아랫배 가 묵직하게 아팠다. 내게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후의 몽롱한 상 태 역시 잠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어떤 이의 호흡을 느꼈다. 귀 뒤가 뜨거웠다. 약했던 열기가 강해지면서 나는 배의 통증을 잊어갔다. 학교 생활, 동생, 할머니, 차가운 침대가 차례로 나를 떠나갔다. 비누방울 속 무지개처럼 불분명 한 색채에 덮여 정보가 사라지자 귀에서 목으로 흐르는 열기만이 남았다. 이런 식의 망각은 처 음이었다. ‘그것’은 어느 사이 나를 장악하고 있었다. 내 정신 안으로 들어와 있거나, 내장의 어느 부분 엔가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그것이 손을 뻗거나 혀를 내민 방향으로부터 기묘한 열기는 퍼지고 있었다. 나는 몸을 뒤채려고 했지만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열기가 전신을 뒤덮으면 그것이 날 죽일 것 같았다. 훅훅 부는 듯한 숨이 귀에서 등에서 느껴졌다. 머리가 뜨겁고 다리에 둔통이 일었다. 누군가 내 위에 올라타고, 나를 부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열기는 강해졌다가 물러났다 가 했다. 이런 건 지독하다, 라고 생각한 순간 나는 ‘그것’이 의지를 가졌고, 나와 정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식하고 나니 나를 억누르고 있는 모양새와 촉감이 생생하게 떠올랐 다. ‘그것’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는 꿈 속의 꿈 같은 상태에 내몰려 으으 소리를 냈다. 물론 실제로는 죽은 듯이 자고 있었고, 머릿속의 지평선은 길어지고 있었다. 몸이 천근 같았다. 정말 죽었다가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그 열기가 어떻게 사라졌는지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 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속옷에 피가 샌 것을 확인하고 왜 돌아왔지? 라고 소리내어 말했다. 옷 을 갈아입고 책상에 앉아 사놓고 다 쓰지 못한 공책들 중 한 권을 펼쳤다. 나는 거기에 방금 일어


난 일을 기술하려고 했지만 한 문장도 쓸 수 없었다. 분했다.

동생이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던 이 시기에 할머니는 나를 매우 싫어했다. 어쩌다가 식 탁에라도 같이 앉으면 ―저년 꼴 보기 싫어 죽고 말지. 라는 말을 예사로 했다. 그런 할머니를 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이었다. 단지 습관 때문에 나는 할머니의 말을 짜증으로 받아쳤다. 점점 이사온 집이 싫어지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오래된 초콜릿처럼 보이는 이 빌라의 붉은 벽돌들은 서로 긴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겨울이면 바람이 새고 여름이면 방안으로 습기가 들어왔다. 나 는 아직도 유령처럼 내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과거의 아파트보다 여기가 더 싫었다. 자취 할 계획을 세웠다. 매번 돈을 써버리는 바람에 실패했다. 자랄수록 반복이라는 말을 극도로 싫 어하게 된다는 걸 알았다. 이제 그 말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퇴색하고 있었다. 나는 공책에 다이 아몬드가 반복해서 빛난다 라고 쓰고 그 문장의 어색함을 혐오했다. 내 안에서 부정적이고 어두 운 빛깔을 띤 단어들은 점점 늘어났고 그 중 하나의 단어만 접해도 그것들은 묶음으로 딸려왔다. 벨벳 같은 할머니의 주름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그 주름을 보는 내 표정이 어땠는지 모 르지만, 눈이 마주치면 할머니는 대개 이렇게 말했다. ―누가 데려갈꼬 나는 가끔 내방에 웅크리고 앉아 설거지하는 할머니가 그릇을 싱크대에 거칠게 내려놓는 소 리를 듣곤 했다. 언제나 듣는이가 있다는 점에서 할머니의 화는 연주와 비슷했다. 그렇게 세찬 소리를 내는데도 설거지통의 그릇들은 깨지지 않았다. ―안 피우면서 왜 가지고 다녀요? 흡연실 앞을 지날 때면 이런 핀잔을 들었다. 멍하고 앳되어 보이는 그 남자애였다. 오랜만에 동생에게 전화가 온 날이었다. 할머니는 방에 내가 있는줄 모르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설거지 를 했다. 나는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다가 그애에게 내밀었다. 그 남자애는 졸린 얼굴로 담뱃갑을 열어 한 개비만 가져갔다. 이후에도 여덟 개비나 더 빌렸다. 도둑놈.

Q는 열아홉 살이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쳤다고 했다. 교육과정을 남들보다 일찍 마친 사람은 대체로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던데. Q는 그런 것엔 도통 관심이 없어보였다. Q는 이과였고, 로직과 수학 문제집 푸는 게 취미였다. 나는 Q에게 왜 식품영양과에 들어갔는지 묻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저는 먹는 것이 좋아요, 라고 Q는 멍하니 말했다. 나는 Q의 멍함 이 무심함에서 왔다는 것을 인정했다. 담배를 빌리지 않게 된 후에도 학교에선 Q를 만났다. Q와 나는 같은 교양과목을 들었다. 철학 관련된 교양 과목이었다. Q가 말하길, ―저 이런거 듣고 싶 었어요. 혼자서는 들을 수가 없었어요……이해가 안 됐다. 키에르케고르, 스피노자, 고르키, 데 리다, 호메로스, 쇼펜하우어의 어감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거 말곤 꽝이 었다. 내 성적도 꽝이었다. 강의가 예상보다 더 지루해서 나는 질려버렸다. Q는 내 옆자리에서 첫 강의를 듣다 말고 공 책에 이런 것을 그렸다.

γ


―이게 뭐야? ―감마요. 문제집에 자주 나와요. ―관심 없는데 ―섹시하게 생기지 않았어요? ―이게? ―여자랑 남자를 합쳐둔 것처럼 생겼잖아요.

강의에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공책 위에다가 욕설을 썼다. Q도 썼다. Q는 강의시간 에 공책에 써서 대화할 때만 욕설을 썼다. 의외로 야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매일 밤새도 록 감마에 시달렸다. 일어나면 항상 땀에 푹 젖어있었고 내 몸에서 땀냄새가 났다. 소이캔들을 켜놓고 자다가 할머니가 내 머리칼을 당겨 깨운 후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나 고 나면 나는 항상 침대에서 일어나 공책을 꺼냈다. 그리고 γ를 그렸다. 이제 너를 적을 수 있다. 그리고 이걸 찢어버릴 자유도 있다. 전보다는 조금 덜 분했다.


글. 사진. 그림. 철민



니체 “생각을 수집하려면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필요하다네”

7/24 3:58 pm 연희동


7/31 4:01 pm 망원동

사진 : 민하


노회찬, 그사람

처음에는 돌아가셨구나.. 하고 별 생각이 없다가 문득 슬프다고 느낀 이후에 매일 슬픈것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평소에 그를 떠올릴 적에 조금 재미있는 사람이라 여기고 가볍다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대체가 되지 않는 존재였다는걸 실감하게 됩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안타깝고 슬퍼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하다가 노회찬 의원이 20 대 국회에 제안했던 그리고 통과되지 않았던 법들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 17, 19, 20 대에 활동을 했었고 119건의 대표발의를 했습니다. 법안이라는 것이 수정되기도 하고 폐기되기도 하지만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은 20대 국회에서 그가 대표 발의 했던 법들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벼운 수준이니 많이 궁금하신 분들은 국회 입법 현황에서 검색해 보면 좋습니다. 20대 국회에서 노회찬 의원은 57건에 발의자로 참여하였습니다. 오른편은 의도를 적어두었습니다.


국회법 일부 개정 법률안 : 예산요구서에 특수활동비 등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등에 소요되는 경비가 포함됨에 따라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예산 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고, 국회 소관 예산 편성에 시민 참여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있음

산업안전 보건법 일부 개정안 : 노동현장에서 고령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사고 위험을 줄이고자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 공공기관의 임원이 채용비리· 금품비위 등의 비위행위가 있을 경우 수사·감사 의뢰 및 직무정지, 관련 임원에 대한 해임· 해임건의, 채용비리 행위자의 명단공개, 채용비리에 의한 부정합격자 및 관련자에 대한 인사조치,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행정에 대한 감사 등 채용비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임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 개정안 : 중소신용카드가맹점의 연간 매출액 산정 시 부가가치세 이외의 기타 세금 및 부담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외하도록 명시함으로써 영세한 중소상공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 경제활성화에도 기여하려는 것임

국회법 일부 개정법률안 : 국가정보원 소관 예산안과 결산에 대한 심사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도 하게 하고, 함께 전부개정하려는 「국가정보원법」에 따라 국가정보원의 명칭을 대외정보원으로 변경하며, 비밀활동비를 다른 기관의 예산에 계상할 수 없게 하려는 것임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 :직 및 직무범위를 명확히 하여 국내정치 등에 개입할 수 없도록 하며, 직무감찰 사무를 담당하는 감찰부서를 독립적으로 설치하도록 함. 또한 국가정보원 차장 역시 인사청문회의 대상으로 하여,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직접 그 능력과 자질 등을 검증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고자 함. 한편,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지시가 있을 경우 절차에 따라 이의를 제기하고 그 직무의 집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국회 정보위원회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대외정보원의 예산·결산 심사를 하도록 하여 예산수립과 집행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고자 함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 : 주요방위사업체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에 대해 근본적인 권리제약을 가하고 있는 현행법 조항을 일정한 조건과 합리적 기준 하에 제한하는 방식으로 개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 아동학대범죄사건과 피해아동명령보호 사건에 대해서는 국선변호인 및 국선보조인 선임을 의무화하려는 것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개정법률안 : 「헌법」 제23조 및 제31조에서 제36조까지에 해당하는 기본권과 관련한 침해 또는 차별행위가 발생한 경우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UN 사회권 위원회의 권고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본권 보호 활동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


법인 세법 일부 개정안 : 법인세 인하와 감면 등으로 인한 내부유보금을 환수하고, 기업의 성과가 임금 등을 통해 각 경제주체들에게 골고루 배분되거나 생산적으로 투자되어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 : 비교적 고소득층일수록 많이 발생하는 주식양도차익에 대해 10% 내지 20%의 세율만을 부담하도록 것은 수직적 불공평을 초래. 주식양도소득에 대해서도 다른 소득과 동일하게 누진세율로 과세함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 : 1.보증금의 이자상당액, 이사비용, 주택중개비용에 대해서도 세액공제를 적용하도록 하고 세액공제율 또한 현행 10%에서 15%로 상향조정함으로써,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고 주택임대사업자, 이사대행업체, 공인중개사 등의 소득에 대한 세원의 투명성을 제고 2.법인세 감면은 원칙적으로 최저한세의 적용을 받도록 하고, 과세표준 1 천억원 초과 법인의 최저한세율과 과세표준 100억원 초과 1천억원 이하 법인의 최저한세율을 현재의 17%와 12%에서 20%와 15%로 인상하여 과세의 공정성을 확보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 : 세대를 건너뛴 상속 및 증여에 대한 할증과세율을 산출세액의 100분의 30(상속인·수증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100분의 40)에서 100분의 50 으로 상향조정함으로써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고 부의 대물림 현상을 억제하려는 것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 : 「소득세법」의 과표구간에 따라 불규칙하고 복잡한 세율체계를 일부 정비함과 동시에 최고세율을 45%로 상향 조정함으로써, 소득 재분배를 통해 공평과세를 실현하고, 복지재정의 재원 확보에 이바지하고자 함.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 : 이명박 정부의 감세 이전으로 법인세를 원상회복함으로써,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으로 인해 급증하는 복지재정 확충에 기여하고, 기업의 적정한 조세부담을 통해 기업소득과 국민소득 간의 과세 불공평을 개선할 필요가 있음.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 : 사업장 등의 조사에 재해 당사자를 참여시키는 내용을 법률에 명시함으로써 근로복지공단 재해조사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함.

초중등 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 고등학교 및 고등학교 과정을 무상(無償)으로 실시하여 「 헌법」 및 「교육기본법」에 규정된 균등한 교육기회의 보장을 실현하고 경제적 부담 없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함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 : 상대다수투표제도는 다수의 후보자 가운데 최고득표자를 뽑는


방식으로 지지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경우라도 당선될 수 있어 민주적 정당성의 결여와 이에 따른 정치적 안정성의 부재 등 많은 부작용을 발생. 대통령, 지방자치단체의 장 선거에 있어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당선자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유권자에게는 최종적으로 후보자를 결정할 기회를 주려는 것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 : 가결된 법안의 평균 처리기간이 129.1일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안건신속처리절차는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음. 입법취지에 부합하도록 안건 조정제도와 안건의 신속처리제도를 정비하고자 함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 : 수어 또는 자막 관련 임의규정을 의무규정으로 개정하고, 대담이나 토론회의 경우 수어통역사를 2인 이상으로 한 화면에 배치하며, 수어화면을 전체화면의 6분의 1이상으로 함으로써 청각장애선거인의 참정권을 강화하고자 함.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 : 기업의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기업 자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 : 결의안의 의미와 효과성을 강화하기 위해 결의안이 가결될 경우 이를 관계 기관(예: 정부, 국제기구, 외국 정부·의회 등)에 송부 및 공시하는 등의 내용을 정하도록

정치자금법 일부개정법률안 :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정당의 중앙당 및 시·도당 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후원회의 모금한도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정의견과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고려하여 정함으로써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형성의 자유 및 정당정치 참여의 권리와 정당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확대보장하려는 것

군에서의 형의 집행 및 군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 징벌위원회와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위원 중 공무원이 아닌 사람에 대해 「형법」의 공무상 비밀의 누설죄와 뇌물죄에 따른 규정을 적용할 때에는 공무원으로 보도록 함으로써 업무의 공정성과 책임성을 보장하려는 것

법무사법 일부개정법률안, 변리사법 일부개정법률안, 국세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 공무원이 아닌 사람에 대해 「형법」의 뇌물죄에 따른 규정을 적용할 때에는 공무원으로 보도록 함으로써 업무의 공정성과 책임성을 보장하려는 것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 현행법의 적용범위,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 권리금의 회수기회 보호, 임대차 보증금 및 월 차임의 인상률, 우선 변제권의 대상과 금액 기준에


대한 조항들을 개정함과 동시에 지역별로 다양한 특성을 반영해 조례를 통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임대차 계약에 관한 규율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자 함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 전월세 세입자의 계약기간을 연장하고,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하며 전월세 인상률 상한을 설정함으로써 주거비 부담 인상을 억제하고 주거안정을 도모

공익신고자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 및 보상을 강화하고 공익신고 여건을 개선하고자

수도법 일부개정법률안 : 공공재 성격의 수돗물 공급비용 등을 수도요금 이외에 국고보조금 등으로 마련할 수 있도록 하고, 수도 설치비용 및 개량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 소재분야 기술역량을 하나로 모으고 기술 및 정보의 교류·협력을 주도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필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 도시지역 대규모점포의 설치를 제한하도록 함과 동시에 대규모점포의 건축 제한에 관한 규정을 「유통산업발전법」으로 일원화 하고자 함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 : 도시·군관리계획을 입안할 때에는 소상공인의 영업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소상공인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고자 함. 또한, 중소유통기업과 소상공인의 영업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매장면적 1만제곱미터 초과 대규모점포 개설을 제한할 수 있는 중소유통상업보호지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 장애인이 정당한 편의 등을 제공받아 관광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일부개정법률안 : 재해대책 특별교부금을 지진, 집중호우, 태풍, 폭설 등 재해예방을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그 용도를 확대해 정부의 재해대책 특별교부금의 효과적인 집행을 확대하고자

박근혜대통령 및 박근혜대통령의 측근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 현행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로 특별검사를 임명하여 이 사건을 수사토록 할 경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규명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음. 이에 정치권력, 행정권력, 검찰권력 등으로부터 중립적인 특별검사를 임명함으로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객관적으로 밝힐 수 있도록 보장하여,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도록 하려는 것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 : 월세액 뿐만 아니라 보증금의 이자상당액, 이사비용, 주택중개비용에 대해서도 세액공제를 적용하도록 하고 세액공제율 또한 현행 10%에서 15% 로 상향조정함으로써,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고 주택임대사업자, 이사대행업체, 공인중개사 등의 소득에 대한 세원의 투명성을 제고하려는 것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 전사하거나 순직한 전몰군경, 순직군경 또는 순직공무원으로서 국가유공자로 결정된 경우, 가족관계등록부에 사망사유를 전사 또는 순직으로 기록하도록 하여 전몰군경, 순직군경 또는 순직공무원을 국가유공자로서 예우하려는 것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 기존 경영진의 모럴해저드(Moral Hazard) 현상을 방지하려는 것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 현행법상 주주대표소송의 제소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여, 이사 등의 부실경영과 위법행위로 인한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대표소송이 제기되는 경우가 드물고 주주가 대표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이사의 책임을 증명하여 손해배상을 받아내기 쉽지 않은 실정 사외이사 중 1인을 근로자대표가 추천한 인물로 선임하도록 하여, 근로자의 경영참가를 보장하고, 기업에 대한 준법감시를 강화함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 : 대통령실 재직경력자를 퇴직 이후 3년간 검사로 임용할 수 없도록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에 관한 법률안 :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상설기구로써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해 고위공직자 등의 범죄를 상시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판단할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경영상 해고의 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해고의 절차를 구체화하며, 해고노동자의 우선재고용과 관련한 제도를 정비하고, 대규모 경영상 해고의 경우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함으로써 사업주와 노동자의 신뢰 기반을 만들고 노동자의 노동권을 두텁게 보장하려는 것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 : 학교의 무상의무급식이 안정적으로 확대 실시되도록 하고, 급식의 안전성이 보다 철저하게 확보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 :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5인 이상으로 완화하여 소수 정당 소속 의원이나 무소속 의원들도 쉽게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정치적 세력의 형성과 사회계층의 다양한 의사를 국회 운영에 반영할 수 있도록

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


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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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G

‘합숙’ 황정운

이훈보

보내는 공

기억 하나. 2004년. 대학에 입학하고 엠티를 가게 되었습니다. 첫 합숙이었습니다. 입학하기 전 모여 2박 3일 간 합숙하는 새로배움터 (새터)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친구들이 처음이었고 모든 관계가 낯설었습니다. 제가 입학한 과의 신입생은 모두 430명. 과에 다섯 반이 있으니 제 가 속한 반에는 80여명의 낯선 얼굴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교는 성북동에 있었는데 성북동에서 버스를 타고 꽤 올라가면 우이동 계곡이 나옵니다. 개강 엠티는 도봉구 우이동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우이동 계곡에 가니 100명도 들어갈 큰 방 하나가 있어 모두가 칸막이 없이 앉았습니다. 정체 모를 게임을 했고 술을 마셨고 일부는 자신도 모를 자신이 되어 여기 저기 사 고를 치며 돌아다녔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저는 가장 먼저 일어났습니다. 시체처 럼 누워 있는 80명을 조심스럽게 건너 뛰며 우이동 계곡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나 결심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낯선 잠을 자지 않겠다고.

기억 둘. 2009년. 주위를 둘러보니 80명보다 더 많은, 낯선 얼굴들이 보입니다. 2009년의 저는 스물 다섯, 대학교 4학년이었는데 여름방학 두 달 동안 모 그룹에서 인턴으로 있게 되었습니다. 인턴은 대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어정쩡한 경계인 입니다. 때문에 직장인이라는 경계선 안쪽으로 발을 옮기기 위해 합숙 일상은 더 없는 바쁨으로 가득했습니다. 돌아보면 그것이 열 정인지 조급함이었는지는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아침 일곱 시면 하루 일과가 시작됩니다. 당시 모 그룹의 광고 모델이었던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노래가 아침 기상 노래로 매일 흘러 나왔습니다. 교육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패기, 열정, 도전 이런 단어를 정말 패기, 열정, 도전이 있는 듯한 표정으로 외쳤고 모든 과제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에 누군가를 도망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5년 전 저는 우이동에서 도망쳤지만 이번 에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계속 남고 싶어졌습니다.

기억 셋. 2010년. 모 그룹 인턴을 마치고 최종 합격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다음 해 1월, 지금 다니는 직장의 연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확실히 경계선 안쪽으로 안착했습니다. 제 스스로 돈을 벌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주적인 상태에 조금 더 가까워졌습니다. 경계선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 그것은 동시에 내가 어떻게든 제도권에 들어왔고 쉽게 그 제도권에서 벗어 나지 않으리라는 정해진 미래를 의미했습니다. 불확실하지 않은 미래는 재미가 없는 법이지요. 그래서 두 달 간 이어진 합숙 과정은 꽤나 지루했습니다. 다양한 교육을 받고, 회사생활을 소재 로 연극도 하고, 연극 도중에 책상 위에 올라가 독백을 해서인지 상도 받았지만 지난 여름과 같


은 조급함은 없었습니다. 도망치려는 것도, 더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것도 없어졌습니다. 직장인 으로서 나는, 더 이상 원래 내가 알던 나와는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직감했습니다. 밥벌이의 삶 과 개인의 취향이 불일치 한다는 것은 참 슬펐습니다.

합숙(合宿). 훈련이나 교육 등의 목적을 위해 여러 사람이 한곳에서 함께 묵으며 생활한다는 의 미입니다. 2004년의 나는 우리가 되자며 가까워지려고 다가오는 자들로부터 도망쳤습니다. 내 가 나로 존재하지 못하고 취향이 훼손되는 것 같았습니다. 상처 입으면서까지 우리가 될 필요 는 없었기 때문에 무리의 구속력은 약했습니다. 도망칠 수 있었고 낯선 것에 낯선 채로 있어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무리에 남아야만 하는, 무리를 벗어나면 많은 것들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직 감되는 순간에는 도망칠 수 없고 낯선 것을 껴안아야 했습니다. 합숙은 나의 존재를 가늠해보 고 취향의 자주성(自主性)을 시험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낯선 무리들이 나와 가까워지려고 다 가와 내 옆에 눕습니다. 그들 옆에서 나만의 취향을 지킬 것인지 잊을 것인지 그런 것들이 끊임 없이 시험되고는 했습니다. 낯선 이들과 함께 잠을 자야 하는 목적이 있을 때, 그리고 그 무리 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때, 그때 나의 취향은 잊혀지고 다치곤 했습니다.

낯선 것들이 꼭 싫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목적을 위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웃고 떠들 고 잠을 자는 과정에서 나의 취향을 버리고 잊어야 한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직장생활이라는 제도권에 들어온 지 어느덧 9년째입니다. 한 곳에서 밥벌이가 오래 될수록 이 제도권에서 더 오 래 살아남고 싶다는 목적은 뚜렷해집니다. 동시에 마음이 허전해지네요. 어떠한 목적이 없으면 서도 나의 취향을 나누고 이해할 수 있는 무리가 그리워졌거든요. 허름한 술집에서 어른과 아 이와 시인과 과학자가 어울려 술을 마시며 문학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무리,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 속 뒷골목의 상처를 하나 둘씩 꺼내며 서로 얼굴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무리, 평범한 삶을 어떻게든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어서 자신에 대해 글을 써보는 무리. 그런 무리라면 우리 는 정말 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아무도 다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무리라면 처 음 만난 낯선 이들이라도 한곳에서 함께 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지배적인 취향에 다치는 날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고 지우면서 일찍 자기로 해

둘이 하고 싶은 마음이 쏠리는 같은 쪽에서 우리는 정말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아무도 다치지 않을 수 있을까?

- 「취향의 손상」 부분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 황혜경)

[끝] 황정운 9년째 석유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현대미술을 좋아합니다. https://brunch.co.kr/@aboutexpression


돌아온 공

정운님께.

이달의 주제도 재미있는 주제를 정하셨네요.

합숙이라는 건 간단하게 보면 모여 잠을 자는 일이죠. 조금 더 생각하면 말씀하신 대로 목적에 맞게 집단을 일체화시키는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문학 적 측면에서 본다면 개인의 공간 그러니까 자기 결정권의 범위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의 공간이 타인의 공간과 겹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겠네요. 더운 만큼 흘러가는 대로 두서없이 적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여러 사람을 한 군데 묶는 정도를 생각해 보니 개인적 경험은 학창 시절의 00 단련 류의 합숙이 있었고 군 시절의 훈련병 기간이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군대에서는 함정 생활을 해서 함정은 개인 침대가 있어서 스트레스가 조금 덜 했던 것 같습니다. 배에서 내린 후에 있었던 군생활에서는 여느 군대와 같이 곁에 동료를 두고 촘촘하게 잠을 자야 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불편했지요. 군대를 제외하고 있었던 합숙들 모든 단체 여행 때는 애초에 집에서 나와 합 숙지로 출발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사회적 입장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걸어나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은 뭐, 다 지난 일이죠.

합숙은 공동체 생활에 따른 자유의 제약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자유라는 것은 좋고 멋있지만 한편으로는 제약이 없고 많이 이기적인 구석이 있어서 그것을 내버려 두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되느냐 (공공의 이익) 하는 문제는 늘 논쟁적이고 생각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합숙이 그런 부분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제가 그 시절을 지나와서 ‘너 이 녀석들 너희들도 한번 굴러봐라.’ 하는 심보가 아니라 조금은 강제적으로 그것이 지나치게 폭력적이지 않다면 (지나치게 라는 게 다소 상대적이라는 의견이 있을 수는 있겠죠?) 한번 답답한 마음을 갖고 굴러 보면서 공공의 영역에서의 감각 조율에 대해 배우는 것도 해볼 만한 경험이 아닐까 합니다. 마냥 자유로운 인간이 늘 긍정적인 사회적 결과를 불러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단기간’에 ‘돌아갈 여지’가 있는 합숙이라는 경험을 통해 질문 속으로 던져지는 것도 체험해 볼만한 경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겪었던 합숙이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폭력적이고 괴팍했던 것이 맞지만 각각의 시대에 맞게 조금씩 수정해 간다면 말이죠.

합숙이라는 것이 아주 촘촘하게 다닥다닥 붙어서 자는 것을 보통 이야기 하지만 조금 범위를 확대한다면, 텐트 여행이나 가족 단위, 멘션 혹은 아파트 단위까지 일반적인 삶으로 확대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마을 단위의 삶이 될 수도 있겠네요. 이런 측면에서 신뢰와 공동체를 떠올려


보면 합숙이라는 문제를 갖고 또 다른 접근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합숙에 반드시 동반되는 잠도 그런 부분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잠을 잔다는 것이 생명체에게는 무척 취약한 상황이라. 큰 믿음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목을 내놓고 휴식을 취하는 거죠. 잠을 안 잘 수는 없으니 정말 신뢰가 가득한 상황에서 취하는 휴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숙을 통해서 근거 없는 불안을 씻어내거나 신뢰를 쌓는 등의 경험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일부는 적응하지 못하고 극도의 불안감에 잠을 자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요.

합숙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워낙 예전의 경험이라 조금은 그립기도 하네요. 부모님과 친척들이 함께 떠났던 여행도 그립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합숙은 훨씬 더 스트레스가 크겠지만요.

저는 운이 좋게도 합숙 기간 동안 이렇다 할 문제가 없었고 어찌 되었든 본질적으로 돌아갈 여지가 있는 경험이기 때문에 마냥 부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합숙의 긍정적 경험을 보다 폭넓게 전달할 수 있도록 연구한다면 합숙이 줄 수 있는 장점이 분명 있지 않을까 합니다. 쓰다 보니 너무 옛날 사람 같은 발언이네요.

뭐 나이를 생각하면 옛날 사람은 맞죠. 하하

이달에도 좋은 주제 감사드립니다.

이훈보 드림

https://brunch.co.kr/@e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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