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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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호조머니 - 로투스 쨈, 마루짱 탄탄멘 / 그림. 오조한민 아빠만화 - 내외, 아빠와 리프트 / 그림. 오조한민 체니 사이드 - 7. 테트라포드의 인어 / 글. 사진. 장수양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사진. 철민 Ping Pong - 14. 가배(珈琲) / 글. 황정운 이훈보 이제는 만들지 않아요 / 글. exxx


이달의 편집은 아주 아주 늦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월간이리는 이달로 종료되기 때문입니다. 4월호가 없으니 3월 언제 나오든 상관 없지 않을까 하는 못된 심보를 부리는 거지요. 매번 독자와의 약속에 쫓기곤 했는데 오늘은 얼마나 여유로운지 모릅니다. 태업 까지 는 아니고 이정도는.. 봐주지 않을까 하는 연민에 기대는 마음이지요.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모레 편집을 할 생각으로 컴퓨터에 담아둔 원고를 클릭 클릭 해보기만 했습니다. 가능한 오래 동안 마지막 편집을 미뤄가면서 그동안 제가 월간이리를 통해 느낀 감 정들을 깊숙히 들여다보고자 했기에 전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서두르는 마 음이 없습니다. 그래도 말일이 다가오는건 어쩔 수 없어 약간의 초조함이 있습니다. 몇 년동안 월간지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모릅니다. 이달의 발간 이 조금 늦어지면 다음달도 지연되고 말아서 악순환에 빠지는 만큼 매월 초가 되면 초조했습니다. 오늘은 아주 여유가 있습니다. 휘파람도 불 수 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뒷장을 빌려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저희의 훌륭한 필진들을 아끼고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들의 혜안에 깊이 감사를 드리며 물러 갑니다. 눈물나게 감사했습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한멍의문의1패 #지금은예뻐해줍니다 #똥은안치워줌 #아빠한멍 #어사



#고소공포증 #아빠도무서워 #말시키지마


필진 모집이 완료되었습니다.


체니 사이드

글. 장수양


7. 테트라포드의 인어

유만의 침묵을 좋아한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므로 나는 잠들기 쉽다. 유만이 내 앞에서 그 큰 눈을 열고 있을 때면 그것은 손이기도 하고 얼굴이기도 하다. 그 눈꺼풀의 가로 길이는 신 장일지도 모른다. 만일 눈이 신체의 전부라면 그것을 눈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할까? 바다라고, 우주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할까? 그게 아니라면 마땅한 일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유만이 눈을 감고 사라지는 순간, 나는 유만의 한 부위가 되어 기능한다. 그를 기다리는 일은 나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그의 몸이 되게 한다. 유만이 나를 움직이거나 인지하기를 바란다. 리 와 노크가 탄 차가 강에 떨어지는 꿈에서 강물은 유만처럼 파란색이었다. 나는 그런 욕망에 대 해서도 조금 관대해진다. 나는 유디와 유만을 만나게 하기로 하였다. 그들 모두 이제는 펜던트가 된 인어의 행성에서 태 어났고 그 사실이 괴롭지 않다면 서로를 잠시 만나보는 일이 크게 나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 다. 나는 이것이 주제 넘는 참견이거나, 잘못된 실험이 아니길 바랐다. 그저 어떤 일을 해도 나의 고고한 인어들에게는 아무 영향도 없을 테니까, 내가 받는 강력한 이로운 영향력만큼 나도 그들 에게 무언가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날 나는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리와 노크가 꾸린 지저분한 거실과 부엌을 청소했다. 치워도 말끔해지지 않는 이 집은 유디와 유 만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그저 비참하다. 두 인어를 만나게 하겠다는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 화면 속에 언제나 건조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나를 보는 건 한없이 지루한 일이었을 것이 다. 나는 채널이 아니지만 누가 나를 보며 다른 것으로 돌려지길 원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안다. 낮부터 유디를 오랫동안 붙잡아 두었다. 저녁이 되도록.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다. 나는 오래 생각해도 끝나지 않고 답을 내리려 해도 그럴 수 없는 대화를 억지로 이끌었다. 그 과정은 괴로웠다. 유디와 있으면서 이렇게 괴로운 적이 없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유디는 내 마음을 아는 듯 더 이상 나조차 하고 싶지 않은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 않았고 화나지도 슬프지도 않은 선명한 검은 눈으로 나를 보기만 했다. 그렇게 유디는 밤까지 떠나지 않았다. 나는 작고 비좁은 방으로 들어가 토퍼를 깔고 불을 껐다. 어둠 속에 꽂힌 칼처럼 유디의 바다 는 초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 의사에 따라주고 있는 유디의 머 리카락이 천천히 나풀거렸다. 한참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유디의 바다에서 대각선 방향의 모서 리에 파란 빛이 틈 사이를 파고드는 듯 길고 날렵한 선이 그어지더니, 유만이 눈을 떴다. 나를 편 안하게 해줬던 눈 속의 바다가 전에 없이 격렬하게 찰랑거리고 있었다. 불가사의한 두려움 때문 에 나는 눈을 감았다. 유디의 침묵은 유만의 침묵과 달리 반드시 무언가를 의미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 았고 읽어낼 수도 없었기에 나는 그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바다를 각각 오래 바라 보았던 나는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물결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반짝이는지 감각하고 있었다. 내가 한 순간이라도 두 인어를 연구한 적이 있었을까? 나는 그런 적이 없었지도 모른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다. 눈꺼풀 너머로 한 파란 바다가 다른 검푸른 바다로 흔들리지 않는 직선을 만들며 이어져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한이 들었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을 떴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유디는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만의 눈동자가 비워지듯 긴 물 줄기를 펼쳤고, 유디의 바다는 전에 없이 얼음송곳 같은 호스를 미끈한 표면 밖으로 꺼내어 그 파란 물줄기를 받아내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유디의 바다에서 유만의 바다에 투명한 무 언가를 수혈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심해 깊이 쳐박 힌 돌덩어리처럼 가만히 있었다. 의식이 둔해지기 전 유디의 목소리를 들었다. 신음이거나, 웃음 이거나, 한숨이거나, 탄식. 어쩌면 하품인지도 모르지만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그 말을 놓 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을 하면서도 방과 방을 꽉 채우고 있던 어둠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어둠에 꽂힌 칼, 유디 와 어둠을 가른 선, 유만. 그리고 아무도 감지할 수 없는 돌덩어리가 되어 꼼짝하지 않는 나를. 내가 눈을 감으면 오래전 컴퓨터의 화면보호기처럼 그 방의 어둠은 큐브가 되어 각 면을 보여주 며 돌아다녔고 눈을 깜빡이면 순간적으로 현실의 화면 위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내가 돌이 킬 수 없는 짓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에 돌아오자 유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적은 없었다. 내가 언제나 그를 기다렸다. 할말이 있고 들을 말이 있는 것은 나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유디의 바다는 평소와 달랐다. 마름모꼴로 길게 펼쳐져 있었고 전보다 훨씬 거대했다. 마치 이 집의 벽이 온통 수족관 인 것처럼 유디의 바다는 유동적으로 그것을 감싸며 계단을 스치는 치맛자락처럼 이동했다. 그 건 유디만의 바다가 아니었다. 유만의 바다도 아니었다. 인어학자로서 나는 그것을 유디와 유만


의 바다라고 불러야 할 것이었다. 두려워서 축하도 놀라움도 내비칠 수 없었다. ―잠깐의 함께야. 유디가 태연하게 말했다. 다른 성격의 침묵이 그 말을 감싸 내게 잔인한 말인데도 공격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둘은, 떠나려는 거지? ―우리는 서로의 바다에서 잠깐 동안 동일선상에 있을 수 있는 목적을 발견했어. 오래지 않을 거야. ―네가 말한 궤도는… 나는 말을 더듬었다. 유디는 내가 제대로 된 말을 골라낼 수 있게 정지한 채로 기다렸다. ―한 바퀴에 오랜 시간이 걸려. 난 알 수 있어. 너희의 잠깐은 나에게 영원일 거야. 나는 겨우 말했다. 의도와 달리 낙심을 숨기지 않은, 어리고 비겁한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유디와 유만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이런 것밖에 없다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다시 혼자 이 집에 남는다고 생각하면, 아니, 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유디와 유만을 기쁘게 해줄 방법을 떠올렸다. 햄스터에게 뷔페를 차려 주는 사람처럼. 오 만하지만 아무도 미워하지는 않을 방법이었다. ―그러니 나는 너희가 영원히 함께 있다고 믿을게. 유디와 유만은 잠깐 동일해진 하나의 침묵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한 말 과 전혀 다른 이상야릇한 감정에 휩싸인 채 그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내게 좋지 않


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사랑하는 두 인어 앞에서 웃고 있는 지금이 내게 평온함을 주었다. 불행 한 예감도 불행 그 자체도 계속 움직이는 바다 앞에 녹아내렸다. 내가 이들에게 받은 가장 좋은 것이었다. 유디와 유만은 더 넓어진 바다에서 내게 인사 같은 말을 건넸다. 인어의 인사는 길고 슬펐다. 그들은 혼자 살아가기 때문에 인사는 의식이나 다름없었다. 의식은 허상이라는 뜻이었고, 그건 인어가 가진 유일한 약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인어의 행성에서 머문 적이 없어. 보다시피 우리가 머물기엔 너무나 작기 때문이야. 그래도 이곳은 여전히 우리의 고향으로 불리지. 우리에게 우리의 출처는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해. 물론 우리는 출처에 관하여 연구하기도 하지. 그건 우리가 다른 무엇의 출처가 되기로 마음먹었 을 때 품게 되는 어리석은 마음에서 비롯된 거야. 만약 언젠가 내가 그런 연구에 사로잡힌다면 누군가 강력하게 비난해주길 바라.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새로이 사랑하게 된 오직 그것에 관하 여 연구하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 나는 유디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집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보다 육체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지금 막 떠나려고 한다는 것도. 유디는 내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너무 작은 행성에서 태어난 우리는 태생적으로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 그러니 인어가 없 는 곳에도 반드시 인어는 있어. 어디든 네가 아닌 다른 것으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인어가 있다 는 사실을 의심하지 마. 왜냐하면, 네가 바로… 시야를 가득 채운 인어의 바다가 나와 가까워져 있었다. 뜻밖에 유디가 내게 입을 맞추었다. 눈 이 감겼다. 의식이 송두리째 씻기는 것처럼 차가운 바다가 내게로 흘러 들어와 몸을 채우는 감각 은 착각이 아니었다. 한 방울, 두 방울에서 폭우로 이어지듯이 잠깐을, 한참을, 그리고 영원을 생 각했다. 눈을 뜨자 나는 유디와 유만의 바다가 원하던 곳으로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 는 앞으로 단 한순간도 혼자가 아니었다. 끝.


안녕하세요. 저는 2016년 12월부터 월간 이리에서 <수면을 걷는 사람들>, <체니사이드>를 연재한 장수양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월간 이리가 99호로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렇게 짧은 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수면을 걷는 사람들>이 서로 혐오하거나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한 아슬아슬한 경계를 다룬 이 야기라면 <체니사이드>는 몸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잘 풀어지지 않았지만, 사람의 몸과 우리 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들이 함께 있는 이곳에서 어떤 몸도 이상한 것, 기준 밖의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에는 목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있어도 ‘마치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듯이’ 그대로의 것임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을 체니가 처한 상황, 사랑하는 친구를 바 라보는 여러 관점, ‘농담’이라는 선량한 존재를 통해서 그리려 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체니 말고도 같은 주제를 가진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간간히 들어갔는데요. 이번 달까지 연재한 <테트라포드의 인어>도 그중 한 편입니다. <체니사이드>가 계속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편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동안 제 소설을 읽어주신 분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월간 이리의 필진 분들, 편집자님과 표지 디자이너 분께 독자로서 감사와 애정을 전합니다. 월간 이리에 소설을 실 을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뻤습니다. 무기력하고 좋지 않을 때에도 그걸 생각하면 기운이 나곤 했 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좋겠습니다.

2019. 3 수양


글. 사진. 그림. 철민



그림. 철민


PinG

14

PonG

‘가배’ 珈琲

황정운

이훈보

보내는 공

선생님께,

보내주신 커피 원두는 잘 받았습니다. 따로 감사의 인사를 올리지 못했네요. <커피 원두를 원하 시는 기고자는 편하게 이야기를 달라>는 말씀에 작은 샘플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소 포를 개봉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네요. 보내주신 커피 원두는 에티오피아 셀링가, 케냐 니에리 ( 토마토 망고 히비스러스), 온두라스 이렇게 세 종입니다. 겉 표면에 적혀있는 걸 그대로 옮겨 적 었는데 에티오피아, 케냐, 온두라스 이 세 가지를 제외하고 전부 낯선 단어입니다. 낯선 단어에 서는 커피의 맛과 향이 쉽게 상상되지 않습니다만 조만간 각각의 커피를 내려 마시고 보내주신 마음을 따뜻하게 음미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소포 상자를 열어 보니 어느 커피 원두 중 하나가 포장이 뜯어져 원두가 상자 안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얼른 상자 속의 원두를 모아 다시 제 자리에 놓고 몇 알은 직접 씹어 먹어보았어요. 처음 몇 알 주워 먹다가 …… 한 스무 알 은 먹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커피는 향이 오래가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보내주신 커피 원두는 오래도록 입 안에서 좋은 향이 맴돌았습니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건 아마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던 것 같은데요. 당시 학교 캠 퍼스 안에 새로 건물 하나가 들어섰는데, 그 건물 2층에 유명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S가 입점 하여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기사를 찾아 보니 2005년이었는데 학교 곳곳에서는 반발이 꽤 심했습니다. 편의점이나 소규모 베이커리 카페가 아니라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가 교 내에 자리를 잡는 것은 곧 대학이라는 학문의 전당이 자본에 잠식당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끊이


지 않았습니다. 건물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피켓 시위를 하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15년 전만해 도 커피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을 때였죠. 그러나 결국 S업체는 학교에 입점했고,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피켓에 실린 우려와 달리 수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커 피와 문화와 공간을 즐겼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였죠. 이력서를 고치거나 자기소개서를 작성하 거나 중요한 편지를 쓰는 순간이면 항상 2층 창가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의 커피는 일반적인 대학문화와는 단절되어, 조금은 더 사회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착각하게 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어서 대학 다음의 단계, 사회라는 필드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을 커피 한 잔과 함께 삼켰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비가 오거나 더운 날씨거나 상관없이 언제나 뜨거운 브루드 커피 (Brewed Coffee)를 마셨습니다. 이쪽이 에스프레소 샷에 물을 부은 아메리카노보다 몇 백 원 값이 싸다는 이유로 마시기 시작했는데요.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친구들이 일반적으로 별 생 각 없이 주문하는 아메리카노에 비해 제 쪽이 오히려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계속 브루드 커피, 드립커피, 내려마시는 커피,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만 이런 편의 커피만을 먹 었죠. 그때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언제나 드립커피를 먹는 편입 니다. 에스프레소(Espresso)라는 단어가 원래 커피를 신속하게 추출한다는 뜻이니까, 에스프레 소를 베이스로 한하는 커피는 빠르게 준비됩니다. 그런데 에스프레소 특유의 고소함이 어떤 경 우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기도 하고 처음의 강렬한 향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커피 원두 특유의 향이 잘 느껴지는 드립커피를 즐겨 찾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말하니 커피에 조예가 깊어 보입니다만, 사실 커피의 맛과 향을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커피의 맛과 향을 전문가처럼 구분하지 못하지만, 커피를 마시던 느낌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순 간들이 몇 있습니다. 대학 정경대 후문으로 나가면 골목길 사이 지하에 <커피하우스 보헤미안> 이라는 카페가 있었는데요. 주변에 부대찌개, 돈까스, 백반, 닭갈비와 같이 대학생이 찾는 온갖 식당이 밀집한 곳이라 굉장히 생소한 위치에 있는 생소한 커피숍입니다. 보헤미안. 알고 보면 우 리나라 커피업계의 4대 장인 중 한 분인 박이추 선생님이 운영하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박이추 선생님은 강릉으로 터를 옮겼고 그 분의 수제자가 안암동 보헤미안 본점을 맡 아 운영하고 있다고 하시죠. 그러니까 2012년인가 …… 5월 무렵에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가 되 어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가 혼자 보헤미안에서 커피를 마셨던 적이 있습니다. 카페가 있다는 이야기는 학교 다닐 때에 들었지만 처음 찾아간 것은 정작 졸업하고 나서였는데요. 손님이 아무 도 없는 오후 2시. 혼자 뜨거운 드립커피를 마시며 고소한 커피 향기 속에서 들고 간 책을 읽었 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집의 대표 상품은 메뉴판 가장 위에 있다는 제 신 념에 따라, 메뉴판 가장 위에 있는 보헤미안 블렌드 커피를 마셨는데 맛이 정말 좋았습니다. 커 피를 마셨다기 보다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법을 제 몸에 체득했다고 해야 할까요.


안암동 보헤미안에서, 2012년 5월

그로부터 4년 뒤 아이가 태어나기 몇 주 전에도 잊지 못할 커피를 한 잔 마셨습니다. 저와 아내 가 다니는 산부인과는 마포구 동교동 삼거리 근처에 있었는데요. 병원에서 미리 마련한 산전(産 前) 수업을 들으러 간 어느 날, 수업의 일부는 산모만 참여할 수 있다 해서 남편들은 병원 밖으 로 밀물같이 빠져 나갔습니다. 어디를 갈까 배회하다가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꽤 규모가 큰 카페가 있어 들어가 보니 의외로 다양한 원두를 직접 드립커피로 내려주는 곳이었습니다. 나중 에서야 알았지만 그 일대에서 꽤 유명한 곳이었더군요. 저는 문을 열고 들어가 주인에게 커피 원 두를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제 취향을 물어보더니 케냐 피베리(Peaberry) 커피를 추 천해줍니다. 이국적인 이름의 커피 …… 자리에 앉아 한 모금 마셔보니 특이한 향 너머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2016년 3월. 2015년 여름부터 <월간이리>에 글을 기고해오던 것을 멈추고 제가 직접 독립잡지를 만들어보겠다며 일을 벌이던 무렵이었습니다. <월간 그런사람>이라는 잡지 이름을 빼고는 진도 나간 것이 많지 않았지만 뭔가 역동적인 에너지는 꿈틀대고 있었죠. 일종의 분기점 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정해진 루트에 알맞게 사회 생활은 해왔지만 제 이름을 걸 고 주체적으로 삶을 만들었다고 할 순 없었거든요. 그러나 한쪽에서는 제 아이가 태어나려고 하 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제 이름을 건 잡지의 씨앗이 조금씩 발아하려고 있었죠. 저는 그때, 비가 추적추적 오던 3월 그 날 케냐 피베리 커피를 꽤 맛있게 마셨습니다. 머리 속은 묘한 긴장감으 로 가득했지만요. ▨

황정운 . 10년 차 직장인입니다. http://blog.naver.com/marill00 에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돌아온 공

정운님께

안녕하세요 정운님.

답장이 많이 늦었습니다. 다음 달의 발간이 없다고 생각하니 아주 아주 느리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일부러 미루고 또 미루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허겁지겁했겠지만 오늘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마무리 짓지 않고 또 미루려고 생각 중입니다.

커피를 한잔쯤 내리면서 써야 할 것 같은 주제여서 커피를 내리고 글을 습니다.

저는 요즘 커피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중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자동화’ 입니다. 커피와 자동화라는 것이 어쩐지 어울리지 않지만 제가 처음 먹었던 그리고 가장 많이 마셨던 커피가 자판기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자동 머신의 커피. 어떠신가요? 캡슐 커피와는 다른 편의점의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커피메이커를 떠올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이런 기기들에 대해 반감이나 의구심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과연 이게 정말로 별로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사람이 하는 것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기도 하고 마치 알파고의 바둑 이전 시대처럼 절대 사람보다 빼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스타벅스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자동으로 바뀐 것도 그렇고 편의점에서 파는 아메리카노들이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진 이후로는 자동이 정말로 별로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은 제가 직접 로스팅을 해보면서 더욱 강하게 되었는데요. 그동안은 로스팅 한 원두를 손으로 내려 마시다가 제가 자주 원두를 드리는 분이 3만 원짜리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려 마신다는 사실을 알고 저도 한 번 들러 맛을 봤더니 이게 정말로 우리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그 커피메이커의 커피 맛인가? 하는 의문이 든 것이죠.

완벽하지는 않아도 또 아주 모자라서 비난할 수는 없는 수준의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본격적으로 커피의 자동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장의 상황을 살펴보니


스타벅스뿐만 아니라 많은 곳들이 커피머신의 자동화를 꾀하고 있더군요. 버거킹이나 뚜레쥬르 롯데리아와 같은 패스트푸드 점들은 원래 자동화를 꾀했지만 전보다 맛이 발달했고 스타벅스는 자사의 기기를 전부 독점적인 자동 커피 머신으로 바꾸기 위해 자동 커피머신 회사를 구입했고 할리스도 몇몇 매장들은 자동 에스프레서 머신으로 바꾼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까이서 볼 수 있는 GS25의 1000만 원대 에스프레소 머신 유라도 있고요.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니라 드립에서도 이와 같은 흐름이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마르코 SP9, 스테디 푸어, 브루비 등 상업용 드립 머신이 많이 등장했고 집에서도 꽤 괜찮은 수준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전통적인 커피머신 밀리타 아로마 보이 나 테크니봄의 모카 마스터 그리고 밀리타의 시그니처 디럭스, 윌파, 하리오 스마트 7, 필립스 커피 머신까지 그야말로 한껏 다가와 있었습니다.

특히 드립머신(커피메이커)들은 제가 수차례 비교 테스트해 본 바 어지간한 수준의 드립 유저들보다 나은 상황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지요. 물론 여전히 커피 머신들보다 나은 솜씨의 음료를 만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그 수가 범용성에 비해서는 모자라겠지요.

커피를 두고 자동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왜일까요?

기술이 우리를 따라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제가 직접 확인해 보기까지 만연해 있던 ‘아직 기계는 사람만 못하지..’ 나 ‘커피메이커는 커피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쓰는 거야.’ ‘그거 맛이 없어.’라는 편견을 경험을 통해 확인해 나가며 사회의 통념이 깨져가는 순간들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통념에 따라 비하하기보다 솔직하게 스스로의 눈으로 해석해보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비단 커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요? 그것은 아닐 겁니다. 커피에 대한 저의 사랑은 이것을 제외하고도 더 나눌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여러 필진들과 함께 만들었던 월간 이리가 무가지라는 이유로 가벼이 볼 글들이 담겨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달에도 좋은 주제 감사드립니다.

이훈보 드림


이제는 만들지 않아요.

이것으로 끝입니다. 2010년 눈 오는 12월 오후 3시경, 서촌에서 경복궁으로 향하는 길에서 갑자기 <월간 이리>라는 잡지를 만들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순간이 얼마나 선명한지 언제든 떠올릴 수 있습니다. 차가 운 공기와 밟아 나가던 눈더미의 소리가 생생합니다. 그전에는 <월간 고민과 잡담>이라는 잡지를 1년 반 정도 만들고 쉬다가 <월간 이리>를 만들겠 다고 마음먹고 2019년 3월까지 만들었으니 무가지만 한 10년을 만든 셈이죠. 이 정도면 할 만 큼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손해를 봤다거나 희생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인생의 여정 에서 그어볼 수 있는 획으로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멋지게 나왔던 무수한 독립 서적들과 눈길을 끌었던 잡지들이 사라지는 동안 버틴 게 참 용합 니다. 전적으로 적은 힘과 열정으로 할 수 있는 구조를 짜야한다는 처음의 결심을 잘 지켜왔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멈추기로 마음을 먹고 오랫동안 느껴온 감정과 추억들을 곱씹는 동안 즐거워하고 또 슬퍼하여 쓸 것이 많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글로 옮기려고 보니 별로 할 말도 없고 낯이 간지럽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 이야기 중에 금전적인 이야기를 조금 하고 떠나려고 합니다. 월간 이리가 무가지였던 만큼 이 이야기를 하면 혹시 이 글을 볼 누군가가 잡지를 만들 마음을 먹을 수 있 지 않을까 합니다. 월간 이리에 필요한 비용은 월 20만 원 정도입니다. 역대 필자들의 호의를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 문에 이 비용은 순전히 인쇄비입니다. 제가 너무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표지 디자이너가 절반의 비용을 대고 제가 절반을 내는 형태로 운영해 왔습니다. 외부의 도움은 국가의 도움을 잠시 받 은 일이 있었고 그 외에는 이렇다 할 도움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월간 이리>가 돈을 받음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제약에 대해 시작부터 깊이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무 가지인 만큼 언제든 큰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었는데 표지 디자이너가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대단한 잡지는 아니지만 표지를 포함해 흔쾌히 참여해주시는 필자 분들 그리고 제가 자유롭게 의견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원고를 제외한 마음의 빚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겉으로는 좀 열악하고 모자라 보여도 필진 전체가 전달하려는 생각과 의도만큼은 깊고 날카롭게 유지하 자는 게 지향점이었고 목표였습니다. 그런 모토가 있어야 필진들도 서로를 믿고 의지 하면서 연 재의 보람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날카로움을 위해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버티는 구조가 중요했고 그 목표에 따라 처음부터 최소한의 비용으로 만들 수 있도록 기획을 했습니다. 더 큰 기획을 했다면 몇 번 은 멋있게 만들었어도 이만큼 해오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월간 이리를 만드는 동안 월간 이리에 들어간 돈은 제 총수입의 1/6에 서 1/7 정도는 되는 돈이었고 저에는 이게 꽤 큰돈이었습니다. 발간을 멈추기로 결심한 날 총 출판 비용을 헤아려 보니 못해도 1980만 원 정도는 들어갔더군요. 저야 괜히 이상한 것에 꽂혀 서 했다고 하지만 표지 디자이너는 웬 미친놈이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몇 년에 걸쳐 근 1000만 원에 달하는 큰 지출을 하게 된 셈입니다. 아마 이렇게 오래 만들 거라는 생각을 둘 다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다 보니 온 것이지 가겠다고 마음먹고 달려온 것은 아니 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돈 10만 원이 아쉬워 입맛을 다신 기억이 없는 것으로 봐서 잘 아끼 며 버틴 것 같습니다. 마지막인 만큼 표지 디자이너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이 감사는 돈 때문이 아니라 잡지 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금액을 제외하고도 표지 디 자이너의 이탈이 있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만들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월간 이리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다가 이윽고 멈추기로 마음먹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 었습니다. 나는 왜 멈추는 것일까? 돈 때문일까? 지긋지긋함 때문일까? 시대의 흐름이 지나서일까? 글쎄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번 기획은 이만큼의 기획이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99호가 나오기까지 8년 3개월. 그간의 활동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 와 표지 디자이너는 분명 <월간 이리>가 예술 잡지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들 수 있 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깊이 감사드리며, 월간 이리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들의 안녕과 예술적 관철을 기원합니다

exxx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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