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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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도토루의 하루 / 그림. 호지 남들이 추천하지 않는 영화 / 스윙키즈 호조머니 - 버터쫀득이 치아바타, 가마다마 / 그림. 오조한민 어느 클럽 중독자의 일기 - 바리바리 보따리 클럽 / 글. 그림. 수수 오늘의 날씨는 / 시. 글씨. 류새봄 체니 사이드 - 테트라포드의 인어 / 글. 사진. 장수양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사진. 철민 Ping Pong - 12. 도과(徒過) / 글. 황정운 이훈보


사랑이 떠나간다는건 큰 슬픔입니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이루말할 수가 없습니다. 작년에는 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올해는 1월부터 편집인이 애정하던 표 지 화가의 애견 ‘호두’가 길을 떠났습니다. 자주 생각하지만 슬픔은 표현할 길이 없고 그저 쌓이는 것 같습니다. 버틸 수 있으면 생명이 다할때까지 안고 가야 하겠죠. 호두도 외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다 안고 가야 합 니다. 언젠가는 이 잡지도 마찬가지의 기억으로 남겠죠. 역대 필진들에게 두루 나눠드린 원두 배송이 거의 마무리 되었고 포장의 허접함과는 달리 감사의 마음은 이루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또 좋은 기회를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까지 이 작고 노쇠한? 잡지가 살아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날까지 잘부탁드립니다. 이달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2013년의 동백

2016년의 호두




남들이 추천하지 않는 영화 스윙키즈(2018) 감독 강형철 <매우 강한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지난해 겨울 <스윙키즈>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처음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생각은 역시 2004년 제작했던 비슷한 제목의 영화인 <스윙걸 즈> 였습니다. 누가 만들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 과거에 봤던 비슷한 영화의 제목을 먼저 떠올리 는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던 중 <스윙키즈>를 강형철 감독이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강 형철 감독이라면 어떻게든 꽤 괜찮은 영화를 만 들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 실 제가 갖고 있는 감독에 대한 기대는 이정도가 아니라 ‘내가 투자를 해야 한다면 강형철 감독에 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크고 강한 편입니다. 저만의 생각이지만 한국에서 상업영 화를 제일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하고 있 고요. 그래서 정보를 찾아보다가 영화를 보기에 이르렀습니다. 영화를 보기로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영화의 제목이 <스윙키즈>라는 것은 영 께름칙한면 이 있었습니다. 감독을 신뢰하고 있지만 우연히 보게되는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통해 얻는 정보라 는 것은 흔한 오락영화의 패턴을 떠올리기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안봐도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든 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서 강형철 감독이라면 뭔가 해줄거야!라는 마음 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하고도 찜찜하게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남아있었습니다. 하지 만 모두가 ‘그게 될까?’라고 생각했던 <타짜2: 신의손> 또한 성공적으로 완성해 냈던 감독이니 저 는 어떻게든 되게 하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저의 모든 기대 역시 강형철 감독의 전작 인 <과속스캔들> 과 <써니>의 흥행 때문이 아니라 안될 것 같던 <타짜2: 신의손>을 꽤 볼만한 영화 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죠. 고백하자면 저는 <타짜2: 신의손>을 3번 정도 봤는데, 따로 챙겨 본 것은 아니고 케이블에서 방송을 하면 보는 것이죠. 사실 그 영화가 그렇게 여러번 볼 영화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보고 있자면 기본적인 촬영이나 리듬감, 한정된 시간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이 허술하지가 않다 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흥미를 끌 것들이 별로 없어도 어떻게든 감상에 거부감이 없게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죠. 이는 다시 말하면 어떻게든 시작부터 끝까지 쭉- 보게 되는 매끈한 영화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 있다는 것이죠. 감독으로 이런 재능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흥행과 무관하게 이때부터 강형철 감독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스윙키즈>도 그렇습니다. 흔한 영화일 것 같다는 고민은 기우에 불과했고 영화는 짜임새도 좋고 재 미도 있었습니다. 이야기 구조도 꽤 잘 짜여져 있어 끝나고 나왔을 때는 ‘어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감탄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알고보니 원작 뮤지컬 ‘로기수’ 가 있더군요. 하하. 그래도 감 독의 역량은 대단했습니다. 보는 동안 돈 값을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관객에게 재미를 주기 위 해 구성된 장면들은 하나같이 재미가 있었고 신이났습니다. 편집이나 영상미도 무척 좋았고요. 그 럼 저의 기대와 영화의 완성도에 따라 <스윙키즈>는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을까요? 145만. 개봉 1개월이 지난 2019년 1월 초 <스윙키즈>가 받은 성적표 입니다. 거의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영 화는 상영이 종료될 듯하고 150억 가량이 들어가 340만 이상이 넘어야 한다는 영화의 흥행은 실패 하고 말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이 <스윙키즈>의 관람객 평점은 9점 초반대로 올해 최대 흥행을 했 던 <신과함께:인과 연> 보다도 높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고 나와서 ‘와 대단하다. 또 흥행하겠구나.’ 싶었고 보고 온 사람들도 정말 재미있다고 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마어마하게 예상에 실패한 셈 이죠. 왜 그럴까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스윙키즈>가 갖고 있는 단점이 너무 도드라지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관 객들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까지 최대한 노력을 해온 주조연 인물들이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기관총 을 이용해 잔인하게 몰살당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감독의 의도’라는 것 때문에 영화를 보다가 관람객들의 기분이 확 상하고 이게 꽤 큰 반감을 일으켜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 다. 실제로 저도 보면서 ‘아.... 저렇게 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뚝 떨어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단순히 완성도 만으로 이 영화를 추천하는게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으니까요. 실제로 후 기를 뒤져보다가 이런 내용의 글을 보기도 했었고요. 영화를 보고온 지인들이 던지는 부정적인 피 드백이 영화의 예매율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145만이라는 흥행스코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화의 완성도 대비 145 만은 너무합니다. <7광구>가 200만을 넘겼고 <알투비: 리턴 투 베이스>가 120만이라는 숫자라 는 것을 감안하면 <스윙키즈>의 흥행은 좀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가 처음에 걱 정했던 기대가 되지 영화라는게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단 티켓 을 끊어야 하는데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도 꽤 잘만든 영화니 케이블 TV나 넷플릭스 등에 나오면 꼭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ps. 개인적으로는 클라이막스 부분의 의상이 전체 영화 대비 조금 심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 울 수 없습니다. 총 천연색으로 흘러가다가 갑자기 흑백영화가 된 것 같은 인상이 남습니다.


월간이리에서는 늘 새로운 필진을 찾고 있습니다. 차분 하게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듯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하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림, 사진, 음악, 영화, 여행, 식믈, 곤충, 의학, 각종 기술정보 등등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이것이 될까 싶은 연재들도 가능한 연재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니 연재와 관련해서 문의 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 exxx2x@gmail.com 으로 문의 주시면 친절 안내 드립니다. 이달에도 이런 과정을 거쳐 참여해주신 필진이 계십니다. 여러분도 참여해 보세요!




의 일기 자 독 클럽 중 어느

글. 수수


[바리바리 보따리 클럽] ‘노트북을 챙길까? 아이패드랑 무선 키보드로 충분할까? 오늘 날씨엔 디카가 좋을까 필카가 좋을까? 책을 읽을까? 반쯤 읽은 [슬픔이여 안녕]을 들고나갈까 [노르웨이의 숲]을 새로 시작할까? 카드 지갑만 있으면 되겠지? 장지갑도 넣을까? 립밤은 색깔 있는 게 나을까 없는 게 나을까? 그림이 그리고 싶어질 수도? 펜은 Uniball Signo 0.28 한 자루만 있으면 되겠지? 혹시 모르니 0.38도 챙길까? 다이어리? 무지 노트?’ 치열한 고민 끝에 전부 다 챙겨 넣고 겨우 반나절의 나들이를 떠나는 나는 [바리바리 보따리 클럽]의 멤버다. 이 클럽의 멤버가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모든 외출에 앞서 가방을 챙길 때, ‘혹시 모르니까’를 주문처럼 외우며 모든 경우에 대비하고, 그 결과 늘 터질 것 같은 짐 꾸러미를 이고 지고 다니며 어깨를 혹사 시키면 된다. 가방 속 물건의 가짓수에 따라 회원 등급의 높낮이가 결정되는 이 클럽에 가입한지 벌써 햇수로 10년이 넘은 나는, 이제 그만 탈퇴를 꿈꾼다. 갑자기 뭐가 하고 싶어질지, 뭐가 필요해질지 미리 알 수가 없으니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이런 성격은, 냉정히 말해 철저함보다는 결정장애에 가깝다. ‘오늘 난 뭘 할 거고, 그러려면 필요한 것은 이거 이거다’ 와 같은 선택과 결정을 유보하는 습관. 나의 결정장애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주말에 공부하러 독서실에라도 가려면, 오늘은 어떤 과목들이 공부하고 싶을지 미리 알 수가 없어서 (아니, 미리 결정하고 싶지가 않아서) 수학, 언어, 사탐, 제2외국어 문제집을 모조리 챙겨 나가곤 했다. 체육 수행평가 기간엔 배구공까지 넣고 다닐 기세로, 제 몸만 한 검정 잰스포츠 가방을 꽉 채워 메고 다니던 고딩.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결정을 미루는 대가로, 그 고딩(나)은 천근만근 무겁고 피로한 삶을 살았더랬다. 이러한 결정장애로 무거워지는 것이 가방뿐이면 참 다행인데, 더 큰 문제는 머리도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수많은 선택지들을 끌어안고 있자니 머리가 아주 복잡하다. 이런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던 일을 좀 더 해볼까? 이런 공부는? 저런 공부는? 공부를 한다면 미국에서? 유럽에서? 그 모든 선택지들과 각기 다른 준비과정들을 머리에 품고 지내는 통에, 요즘 내 머리는 10년 전 나의 검정 잰스포츠 가방처럼 무겁다. ‘오늘은 수학을 파겠어!’라고 결심하고 달랑 문제집 한 권을 챙겨 나오던 내 친구처럼, ‘이번 생엔 (예를 들어) 영화를 파겠어!’ 라고 결심하고 나머지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나의 머리와 인생이 좀 더 홀가분해질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수학 책만 들고 나온 날엔 유독 언어 공부가 하고 싶고, 언어 책만 챙겨 나온 날엔 외국어 공부가 하고 싶어 후회를 하던 나니까. 어깨가 뻐근해지더라도 전부 다 챙겨 나와서, 수학이 하고 싶을 땐 수학을, 지겨워지면 언어를, 또 지겨워지면 외국어를 공부하는 편이 언제나 능률이 더 높았다. 인생 전체를 어떻게 독서실에서 보낸 하루와 비교하겠냐마는, 뭐 그렇게 다를까 싶기도 하다. 나는 그냥 나답게,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껴안고, 그때그때 제일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당분간은? 서로 다른 일들을 번갈아 할 때, 빠르게 모드를 전환 할 수 있는 유연한 삶의 태도. 그리고 다양한 선택지들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 무거운 가방과 더불어 그 두 가지를 늘 지니고 다니길 바라며… 결정하지 못하는 자여, 선택지의 무게를 감사히 견디자. 5soojin22@gmail.com / Insta : s00jini








체니 사이드

글. 장수양


테트라포드의 인어

나는 유일한 인어학자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불평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만족스럽다. 영원한 비밀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 비밀을 믿지 않을 것이다. 유디와 유만. 그들의 이름이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연구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말을 하면 듣고, 가능한 그들에게 말을 하고, 그들이 움직이면 바라보고, 움직이지 않아 도 바라본다. 나는 그들에 대한 나의 마음을 반추한다. 몇 번이나. 몇백 번이나. 이 연구는 수련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그들 중 하나의 이름을 적는다.

유디

지난주 일요일부터 집이 비었다. 리와 노크가 싸우던 도중 집을 나가버렸다. 그들이 탄 차가 다 리를 벗어나 파란 강으로 낙하하는 꿈을 꾼다. 기쁘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한데, 끔찍함은 나 자 신을 향한 것이다. 꿈 자체는 티없이 기쁘다. ―왜 노크야? 유디가 묻는다. ―노크했으면 해서. ―리는? ―발음하는 시간이 짧았으면 해서. 내 말이 끝나자 그는 미소를 짓는다. 그의 미소를 좋아한다. 유디는 그의 바다와 함께 나타난다. 유디의 바다는 그의 키보다 조금 더 긴 투명한 주머니의 형 태를 하고 있다. 지저분한 집의 허공에 떠오른 타원형 바다의 모습은 부패한 토양을 선택한 아 름다운 식물의 뿌리처럼 보인다. 유디는 그 뿌리 안에 든 생명이다. 그의 바다는 심해처럼 어둡 지만 유디의 하얀 몸에서 은은하게 흐르는 빛이 이따금씩 푸른 결을 노출한다. 그곳에 유디 외 의 생물은 보이지 않는다. ―네게 안 보이는 거야. 유디가 말한다. 나는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연구하는 사람이 연구 대상보다 무지한 것이 당연 하기 때문이다. 유디는 나를 알고 있다. 내가 그를 바라보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리와 노크가 돌 아오지 않는 동안 유디가 아는 사실은 나의 전부이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나는 유디와 유디의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러고 싶은 만큼 가만히 있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몸을 씻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 일련의 과정이 슬프 다. 내가 나라면 어째서 내가 아닐 수 없을까. 사실은 전체인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 겁이 난다. 두려움이 엄습하기 전에 가만히 있는 바다로 시선을 돌린다. 움직이지 않으며 흐르는 바다 는 보석이나 빛무리 같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으므로 막연함을 좋아하게 된다. 일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집에 빨리 가고 싶어한다. 예전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곳에 일찍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알게 되었다. 사 랑의 형태는 휴식일 수도 있고 안전일 수도 있고 아무도 지시하거나 조언하지 않는 고요일 수도 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그것을 음미하고 어루만질 수 없다면 사람들의 삶은 어둡고 비참해진


다. 나는 일을 하면서 집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들처럼 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덥거나 추운 와중에 집을 떠올린다. 유일한 것이다. 나는 유디를 본다. 유디의 눈은 검푸른 색이다.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나의 첫 염색이 떠오른다. 같은 반에 있던 많은 애들이 이런저런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왔다. 처음에는 그런 것 내게 필요 없다고 믿었는데 갈수록 염색이 너무 하고 싶었다. 집에 가서 리에게 내 머리카락이 갈색이어서 학칙에 걸려 염색 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내 머리카락은 검은색에 가까운 고동색이니까. 리는 코웃 음을 쳤지만 돈을 주었다. 그는 어디서든 내가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내 머리카락이 다른 사 람들에 비해 짙은지 옅은지도 모를 것이다. 나는 미용실에 가서 햇빛을 받으면 약간 푸르게 보 이는 검은색으로 염색을 했다.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염색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선생님도


학생들도 같았다. 나 혼자 알았다. 나는 인어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는다. 인어학자는 그렇다. 인어가 나 오는 창작물 속에서 인어를 만난 자들은 그 일을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다. 세상은 노출된 것이 라면 적어도 한 번 이상 부정한다. 인어학자는 인어가 부정당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 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 중에서도 리와 노크가 그들을 몰랐으면 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 나는 자주 리와 노크가 그러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리와 노크는 언제나 그렇게 했다. 그때마다 나는 ‘죽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리와 노크가 유디와 유만에 대해 알 게 되면 그들을 죽일 것이다.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잘못이 없다. 그리고 리와 노크에게 무리하고 꺼려지는 일을 바라거나 명령한 적이 없 다. 나는 단지 그들이 나를 가만히 두기를 바랐다. 그들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내 소원 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조금도 힘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기 위해 서 힘이 필요했다. 만일 리와 노크, 그리고 나 이 두 가지 잎 중에 한 장을 줄기에서 뜯어내야 한 다면, 내가 아니다. ―네 말이 맞아. 유디가 말했다. 나는 이야기를 멈췄다. ―네가 아니야. 그것만 알면 돼. 그 말을 듣자 리와 노크를 미워하고 죽이고 싶던 마음까지도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글. 사진. 그림. 철민



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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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G

‘도과(徒過)’ 황정운

이훈보

보내는 공

선생님께,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도과(徒過)라는 표현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생소한 단어라면 생소한 대로 사용하면 그만이지만, 이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일본식 법률 용어이 기 때문에 단어에 대한 설명과 양해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도과(徒過)는 ‘시간이 지나가다’라는 뜻으로 우리 말 ‘경과 (經過)’, ‘만기(滿期)’ 등과 비슷한 뜻입니다. 대한민국의 법을 최초로 제정 할 당시에 일본 법률을 주로 참고했기에 일본식 표현이 많이 차용되었다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 은 흔적 중 하나라고 하죠. 일본식 표현을 주제어로 떠올린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를 몇 년 전 처음 들었을 때 단어가 자아내는 언어학적 정취라는 것이 좀처럼 머리 속에서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저는 <도과>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합니다. 시간 이 지나가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이 단어 이외에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지, 지금의 저로서는 좀처럼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시간과 함께 그 시간에 머물렀던 제 자 신도 함께 지나갔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어제 (2018년 12월 8일) EBS 세계의 명화 <500일의 썸머(500 Days of Summer, 2009)>를 보며 비슷한 생각이 들었죠. 우선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분명 어제 오전 아내에게 주말에는 책을 좀 덜 읽고 아메리카 스타일의 로맨스 영화를 한 편 봐야겠다고 이야기를 했거든요. 적당히 캐주얼하면서 달달한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경 쾌해지는 그런 로맨스 영화를 한 편 보고 싶었는데, 아이를 재우고 TV를 틀어보니 마침 이 영화 가 시작된 참이었습니다. 제가 애정하는 조셉 고든래빗이 이 영화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죠.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는데, 순진했던 남자 주인공이 사랑에 실패하는 내용을 다루다가, 마지막에 새로운 사랑이 막 시작되는 것 같은 여운을 주며 영화는 끝이 났습니 다. 영화를 다 보고 나자 저의 기분은 경쾌해졌습니다. 로맨스 영화의 미덕이죠.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조금 미묘한 기분이 피어 오릅니다. 어제 영화를 보았던 경쾌함은 사라지 고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조금 낯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곰곰이 생각해보 니 로맨스 영화, 혹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오랜만이었는데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수 많은 감정들이 지금 2018년을 살아가는 저와 결을 같이하지 않기 때문이었어요.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다루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설렘, 기쁨, 두려움, 찌질함, 절망스러 운 느낌들은 어느 새 제가 가까이하지 않는 감정들이 된지 오래더군요. 아내를 만난 것이 10년 전, 결혼을 한 것이 7년 전, 아이가 태어난 것이 3년 전. 이 것이 서른 넷의 저를 구성하는 현 주 소입니다. 그러니까 로맨스 영화가 다루는 감정에 감응하고 공감하던 나는 시간이 지나가며 동 시에 함께 지나가 버린 겁니다. 500일의 썸머에 반응할 수 있는 나는 현재 존재할 수 없으니, 그 래서 영화가 낯설게 다가왔던 셈입니다.

<사랑의 설렘에 공감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다>. 이것과 비슷한 문장을 어디선가 분명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단어와 조사를 조금씩 바꾸어가며 비슷한 의미로 반복되고 있 겠죠.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표류하는 감정에 집착하던 나의 모습도 분명 과거 속에 존재했습니다. 제 기억이 과거의 저를 증명합니다. 한때는 그런 섬세한 감정들만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 믿고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않았죠. 그로부터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도과(徒過)했고, 그때 그런 식으로 감정을 품고 사고하고 행동하던 제 자신도 도과(徒過)했습니다. 지금의 언어 로 다시 말해보자면, 나를 구성하는 감정과 사고의 포트폴리오는 과거와 분명 다른 것들로 이루 어졌습니다. 예전과는 다른 것들에 반응하고 다른 감정을 쫓고 있습니다. 지금 저를 반응하게 만 드는 것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설렙니다. 어떻게 보면 사랑을 하는 젊은이 같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영화를 보고 경쾌해졌다가 이내 낯선 감정이 들었다고 했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저의 마음은 굉장히 따뜻해졌습니다. 어떤 것을 떠올렸을 때 여전히 나를 가슴 뛰게 하고 설레는 것들 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 설렘의 감정이 백 퍼센트 순수하지만은 않고 사회적 욕망, 경제적 욕 구, 주변의 인정에 대한 갈망 …… 이런 속물적인 이유가 섞여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조용미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말할 수 없는 감동에 한 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기도 하고, 회사에서 야근을 하며 보고서를 만들다가 조직 속에서 성장하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톨스토이의 안나 카 레니나를 읽으며 등장인물 이름의 난해함에 욕을 하다가도 안나의 대사에 공감하기도 하고 …… 그러니까 저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정의에 대해 조금은 반박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 겠습니다. 올 한 해, 1년에 걸친 긴 꿈을 꾸었다고 한다면, 저는 꿈 속에서 여전히 사랑하는 대상 이 있었습니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습니다. ▨

추신. 2018년 열 한 편의 핑퐁은 무승부였으니 2019년 열 두 개의 핑퐁 게임, 더 신청합니다.

황정운 10년 차 직장인입니다. http://blog.naver.com/marill00 에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돌아온 공

정운님께

안녕하세요 정운님 이달에는 생경한 표현으로 시작하여 시작부터 흥미를 끄는 것 같습니다. 우선 저는 도과(徒過)라는 표현을 오늘 정운님께서 이야기하시기 전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었습니다. 하여 먼저 알려주신 표현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도과(徒過)의 각 단어를 한 번 살펴보니 도(徒)는 1.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동아리(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패를 이룬 무리) 2. 동류(同類) 3. 제자(弟子), 문하생(門下生) 4. 종(從), 하인(下人) 5. 일꾼, 인부(人夫) 6. 보졸(步卒), 보병(步兵) 7. 맨손, 맨발 8. 죄수(罪囚), 갇힌 사람 9. 형벌(刑罰), 징역(懲役), 고된 노동을 시키는 형벌(刑罰) 의 의미를 갖고 있고,

과(過)는 1. 지나다 2. (지나는 길에) 들르다 3. 경과하다(經過--) 4. 왕래하다(往來--), 교제하 다(交際--) 5. 초과하다(超過--) 6. 지나치다 7. (분수에)넘치다 8. 넘다 9. 나무라다 10. 보다, 돌이켜 보다 11. 옮기다 12. 허물 13. 잘못 14. 괘(卦)의 이름(=巽下兌上) 15. 예전의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무리가 지나간다는 의미가 왜 시간이 경과하였다는 의미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주로 쓰인다는 일본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전국시대와 같은 전쟁의 경험이 이와 같은 언어 표현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장군님 어제 낮 경에 군대가 지나갔습니다(도과했습니다). 같은 응용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과한 시간은 언제더냐? 와 같은 응용도 가능했을 것 같고요.

상상의 유래와 무관하게 한국에서 유일하게 쓰인다고 말씀하신 사법 분야에서 활용은 보통 ‘―기간이 도과하여’와 같이 특정 구획된 시간이 경과하였을 때를 이야기하는 것 같더군요. 한 부대의 무리와 같이 시작과 끝이 있는 단위를 지칭하는 경우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정리를 적고 있자니 인터넷에서 최근에 유행한 ‘아싸와 인싸의 대화법 차이’라는 글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인싸’들은 서로의 각자가 느낀 인식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대화를 하고 이는 팩트


전달보다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목적의 대화라고 하더라고요. 반면 ‘아싸’들의 대화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하는 말싸움이기 때문이 논리와 팩트를 끌어다 상대를 공격하는 게 목적이라고 합니다. 결국 별것 아닌 흠을 찾고 꼬투리를 잡아서 시시콜콜하게 논쟁하는 대화법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죠. 생각해보면 저의 대화는 늘 그런 방식이었던 것 같아 글을 적고 있자니 문득 웃음이 났습니다.

다시 ‘인싸’들의 대화 방식으로 돌아와 말씀하신 단어를 보고 있자면 혹시 모르게 그 말의 유래가 전쟁과 닿아있다 하더라도 ‘도과’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소리가 주는 느낌은 상당히 좋아 괜히 발음해 보게 됩니다.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기분도 들고 밝고 아름다운 색이 감도는 듯합니다. 복숭아가 떠올라서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말이 어려운 듯해 자주 사용할 것 같지는 않지만 긍정적 이미지가 뿜 뿜 하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보내주신 글을 보고 처음의 목적에 맞게 저는 어떤 시간을 보냈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우연히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얼마 전에도 생각했던 일이 있었는데 제가 근 10년을 넘게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만났던 사람들이 저에게는 많은 가르침을 줬던 경우가 종종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힙합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미디를 배우고 음향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믹싱을 배우고 커피를 하는 사람을 만나서 커피를 배우고 노래를 하는 사람을 만나서 노래를 배우고 시를 쓰는 사람을 만나서 잡지도 만들어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만나서 전시도 기획해보고 여러모로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금전적 성과랄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인간의 삶에서 보람이나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사람들과 멀어져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지만 곱씹어 볼수록 참 감사한 일입니다. 많은 사랑을 받지 않고는 할 수 없었던 경험들이겠지요.

누군가는 저것이 무슨 사랑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나누어준 시간이 저는 큰 사랑이 아닌가 합니다. 굳이 제가 아니어도 좋았을 순간들에 저를 둔 것에 깊이 감사하는 일이 요즘의 행복이자 쓸쓸함입니다. 정운님과의 시간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감사드리며 글을 줄입니다.

언젠가 이 대화가 다 모여 좋은 기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훈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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