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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탐구 ◀아시안 연맹 월례 모임 후 서라벌 회관에서 경 찰국장 및 아시안 연맹 회원들과 함께 한 박만 서 총재.

의원이 목숨을 걸고 한국까지 가지 않았 을 것이라고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 은 단언한다. 김대중씨가 한국으로 돌아갈 당시는 필 리핀의 야당 정치인 아퀴노씨가 오랜 해 외 생활 끝에 귀국했지만 비행기를 내리 자마자 공항에서 저격당한 후였기에 모 든 사람들이 “지금 귀국하면 죽는다”고 만류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김대중씨의 귀국은 그 자신은 말 할 것도 없고 동행하는 사람들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는 공포의 기간이었다. 그 시 기에 포그리에타 의원이 박만서 총재만 을 믿고, 미국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앞 세워 죽음을 무릅쓰고 김대중씨와 동행 한 것이다. 박만서 총재는 훗날 한국에서 평민당 총 80년대 한국은 유신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의 봄이 왔다가 다시 혼란에 빠진

▲박총재 말에 목숨 걸고 김대중씨 호위해 한국 간 포그리에타 의원

추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훗날 김대중씨가 한국으로 귀국할 때

재가 된 김대중씨를 만나지만 냉대를 받 고 결별했다.

김대중씨가 미국에서 정치인들을 만나

같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갔던 토마

주변에서는 박 총재가 고집이 세고 아집

인물로 지목됐던 박만서 총재는 미국으

고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미국 의원들

스 포그리에타 의원을 비롯한 많은 정치

이 강하며 성격이 곰살맞지 못해 적이 많

로 정치 망명을 온 김대중씨를 적극적으

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고 미국 정치인들

인들은 박총재가 아니었으면 김대중씨가

다고 하지만 정작 박 총재는 “나는 내 식

로 돕고 보살피게 된다.

과 교류할 수 있었던 것도 박만서 총재가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고 포그리에타

대로 한다”고 잘라 말한다.

다. 유신시절부터 한국정부로부터 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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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라 May 23.2014-May 29.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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