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Francisco Journal (샌프란시스코 저널) Nov, 2015

Page 25

Q. 어린 시절 기억나는 추억은?

날개 짓을 할 준비가 되어있어. 비록 먼지가 싸인 땅에서 퍼덕이며 더러워지고 있지만, 언젠가 나중에 멋진 독립적인 여성이 되어서, 마치

A. 어릴 때부터 예술과 관련된 모든 것 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불사조처럼 화려한 깃을 내세우며 하늘로 박차고 올라 갈거야. 난 널

가족들과 함께 각종 전시회나 미술관, 공연을 보러 다녔고, 어디를

믿어. 넌 정말 훌륭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될 거야.” 라고 격려해줬어요.

가든 저는 항상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캐나다에서 공부할 때 수시로

나중에 시간이 흘러, 호주에 가게 된다면, 그 친구와 맥주한잔을

빈 미술교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미술전시회나 연극부에서 제 작품을

하면서 “그땐 그랬지, 네가 그런 말을 해줘서 내가 지금까지 꿈을 잃지

전시하곤 했어요. 그 때부터 저는 미술전공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않고 달려올 수 있었어 고마워 친구야” 라고 말하고 있겠죠?

초등학교때 중국과 프랑스에서 온 소년소녀합창단 친구들이 저희

알렉스는, 일본, 중국, 호주, 한국에서 살아서 다양한 경험이 많은

집에서 홈스테이를 해서 같이 지내면서, 서로 선물도 교환하고, 말은

사람이었고, 도전정신이 강했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뛰어났고, 목표를

잘 통하지 않았지만,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어요. 당시에

위해서 부지런히 뛰어가는 사람이었어요. 지금 알렉스는 지금 항상

집에 있던 안마의자를 프랑스인 친구가 정말 좋아하던 게 기억나요.

꿈꾸던 구글에 취업을 해서, 삶과 일을 동시에 즐기는 멋진 인생을 살

그리고 중국인 친구는, 밤에 함께 내복을 입고 밤새며 춤도 추고

고 있습니다. 그는 제가 힘들고 지쳐있을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며,

웃긴 표정으로 사진도 찍고 놀다가 부모님께 혼난 적도 있었어요.

정신을 똑 바로 차릴 수 있게 등을 떠 밀어준 사람이었어요. 마치 항상

신기하게도 언어도, 문화도, 생김새도 달랐지만, 스스럼없이 정말 잘

싱싱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뿜는 샐러드 같은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지냈어요.

항상 존경하는 친구입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달랑 지도 하나만 들고 일본으로 배낭여행을 갔었어요. 아무도 일어를 할 줄 몰랐고, 대충 한자만 읽고, 현지인들에게 물어가면서 전철을 타고 여행을 했습니다. 시간이

Q.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굉장히 많이 걸리고, 돌아다니느라 몸도 지쳤지만, 가족들의 소중함과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지 못했던 일본의 구석구석을 새로 느낄 수 있게 되서 재밌었어요. 저도 용기내서 연습했던 일본어로 뜨문뜨문 현지인들에게 말도

A. 2015 미스 아시안 글로벌 미인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가 가장

해봤어요. 그 때 가족들과 우연히 발견한 교토의 한 반찬가게에서

행복했습니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한국에 있는 동안 저에게 정말

사먹은 반찬이 맛있어서, 9년 뒤에 혼자 그 가게에 찾아가서 맛있던

많은 사건사고가 많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항상 정신 없이

반찬을 사왔었어요.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바빴고, 개인적인 가정사 때문에 우울하고, 무기력한 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오는 길이 항상 무겁고, 두려웠어요. 그 와중에서도

Q. 소중한 멘토가 있다면 ?

미인대회에 관련해서 밤을 새며 열심히 준비 했는데, 솔직히 혼자서 다 견뎌내기가 너무 힘들어서

A. 21살 철이 없던 시절, 호주에서 그저 마냥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낼

포기를 할까 하고 생각 했었지만,

때, 호주인 친구 워싱턴과 한국인 알렉스가 좋은 긍정적인 조언을

내가

해주어 더욱 열심히 살게 되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워싱턴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서 혼자 어렵게 호주로

같아 굳게 결심을 하고 대회에

들어와, 영어공부를 하고,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밑바닥 부터 차근차근

참여했습니다. 쟁쟁한 경쟁자가

일을 해서 현재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멋진 삶을 살 고 있는

많아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친구입니다. 제가 바보 같은 실수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지금의 너는

시상때 이름이 호명되어 굉장히

이걸

극복해야

스스로

기뻤습니다. 비록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오지 못해 아쉬웠지만, 함께 자리를 빛내준 친구들이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했고,

제게는 큰 감동이었습니다. 모든 힘들었던 경험들이 마치 필름처럼 지나가고, 그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을 때 모든 것이 다 씻겨져 나가는 기분이었어요. 앞으로 또 힘든 일이 부딪혀도 다시 극복해나가면 이런 행복한 순간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I ♥ SF Journal

25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