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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녹색순례 벼리 순례대장 글

고찌글라 고찌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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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정신

땅 위를 걷는 사람, 사티쉬 쿠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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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역사

1998~2017 ‘강화도에서 오키나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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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밥가 / 평화란 무엇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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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남도 / 고찌글라

녹색순례 지도

녹색순례가 걸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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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일정

녹색순례 전체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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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지침

녹색순례 원칙, 녹색순례 준비물, 모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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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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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4.3이 머우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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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삼나무숲과 조릿대, 무장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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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용암이 흘러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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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순이삼촌, 너븐숭이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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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숨비소리, 해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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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유채꽃 흐드러진 봄, 관 짜던 터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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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끝나지 않은 전쟁, 제주는 평화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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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키나와와 제주, 태평양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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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한라산, 통곡의 세월의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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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4.3의 도화선, 관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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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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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코너 구간별 이야기

도움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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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를 시작하며|

고찌글라 고찌가게 2018 녹색순례 대장 김성중 고찌글라 고찌가게 느영고찌글민 지꺼짐이 열배여 영도 곱닥헌 날 공기 좋고 사람 좋고 느영나영 고찌글민 무신 걱정 싯나 무슨 말일까요? 순례 때 가장 많이 말하게 될 말입니다. 스물한 번째 녹색순례는 아프고 슬픈 역사를 가진 제주 4.3의 길을 걷습 니다. 제주 4.3 당시 이념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했습니다. 제주 의 아름다운 장소에 새겨진 학살의 흔적을 찾고 남아있는 상처를 만나게 됩니다. 상처로 인해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는 사람의 아픈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길을 걸으며 만나게 되는 아픈 사람들이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현재 제주 4.3의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에는 또 다른 아픔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강정 구럼비와 해군기지, 서귀포 오름과 제2공항, 제주전역 골프장 등 개 발로 인해 제주의 자연이 학살당하고 있습니다. 마치 4.3처럼... 현장과 자연을 온몸으로 걸으며 녹색의 가치를 공유하고 고민하며 녹색 운동가로 성장합니다. 함께하는 활동가와 함께 자신과 타인의 고민을 공 감하고 이해하며 해소하는 시간입니다. 스물한 번째 녹색순례는 제주의 현장과 자연을 온몸으로 걸으며 녹색의 가치를 공유하고 고민하며 녹색운동가로 성장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활동가로서 가지고 있는 무수한 고민과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같이 걷는 사람과 함께 해소하고 치유하길 바랍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당 신 옆에는 녹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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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의 정신|

땅 위를 걷는 사람,

사티쉬 쿠마르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다가 신문의 어느 글이 눈에 들어 왔습 니다. 90세의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핵 반대 시위를 하다가 투 옥되었다는 글이었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90세에 평화를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감옥에 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 동료인 프라바커 메논과 의논하여 핵 강대국들의 수도인 모스크바, 파리, 런던, 워싱턴까지 평화행진을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버트란드 러셀에게는 우리가 도우러 간다고 편 지를 썼습니다. 그는 “나는 매우 늙었으니 빨리 걸으라.”라고 답장해 주었습니다. - ‘사티쉬 쿠마르’의 인터뷰 중에서

사티쉬 쿠마르(Satish Kumar)는 인도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마을의 한 점성가는 그의 인생은 끝없는 여행이 될 것이며,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은 맞았다. 아홉 살 때 쿠마르는 모든 친지들과 접촉을 끊고 세속적인 관심을 멀리 한 채, 9년간 자이나교 승려가 되어 인도를 걸어서 횡단했다. 그러나 시 동백꽃 다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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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지나면서 그는 세상과 단절이 그의 영성을 더욱 깊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질식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종단을 떠났지만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인도의 토지개혁운동에 참 가하여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서, 불가촉천민들에게도 땅을 나 누어줄 것을 부유한 지주들에게 요구했다. 그의 걷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 았다. 여러 해 뒤 그는 핵무기에 반대하기 위해 돈 한 푼 없이 인도에서 모스크바, 파리, 런던 그리고 워싱턴까지 걸었다. 아마 우리 중 누군가도 쿠마르가 러셀의 기사를 읽었듯이 우연히 쿠마르 의 평화 순례에 대해 읽었을 것이다. 그리곤 진정한 운동을 위해, 이 땅에 서 일어나는 여러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 인지, 그리고 지금 그 일을 온전히 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 이다. 그 고민이 무르익을 무렵, 우리는 자연스럽게 녹색순례를 계획하게 되었고, 짐을 꾸려 환경 현장으로 길을 떠났다. 녹색순례는 그렇게 시작되 었다. “중국인들이 어떻게 만리장성을 쌓았습니까? 벽돌 한 장을 놓고 그 위에 다시 한 장을 놓았던 겁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핵무기에 반대 해서 평화행진을 하면서 인도에서 모스크바, 파리, 런던, 워싱턴까지 걸어 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걸음씩, 한걸음씩 걸었던 겁니다. 자이나교를 떠난 후 나는 비노바 바베와 같이 일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간디와 함께 일했던 분으로 간디의 정신적인 후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 는 주로 가장 빈곤한 계층, 즉 하리잔(불가촉천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 기 위한 토지개혁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도 곳곳을 걸 어 다니면서 하리잔과 지주들에게 땅도 공기나 해, 물과 같이 신의 선물 이며, 모든 사람들(그는 '흙의 아들들'이라고 불렀습니다)은 땅에 대한 권 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의 위는 무척 작지만 가난한 자들의 위는 매우 크다."고 말했습 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려면 끈질기고 참을성이 있어야 합니다. 비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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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는 1955년에 토지개혁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1985 년까지 30년 동안 땅 없는 이들에게 땅을 찾아주려고 온 인도를 걸어 다 녔습니다. 땅 위를 걸어가면 나무, 강, 나비, 딱정벌레 같은 자연과 아주 가까이 있 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나는 내 두 다리가 내 신체에서 가장 창조적인 부분이고, 걷기가 에너지 의 가장 창조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가 자 연의 아름다움, 즉 생명과의 친밀한 접촉을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비폭력의 문화를 건설하는 데 비방(秘方)이나 지름길은 없습니다. 매우 힘 들고, 고통스럽게 느린 작업입니다. 참을성이 아주 많아야 합니다. 자비심 도 필요합니다. 참을성과 자비심은 비폭력의 두 가지 덕목입니다. 문화는 한사람, 한사람씩 변화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하나의 운동, 하나의 큰 대화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 녹색평론 53호, ‘사티쉬 쿠마르와 데릭젠슨의 대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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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의 역사|

강화에서 오키나와까지

1998년 첫 발걸음을 내디뎠던 녹색순례가 올해 21회를 맞았다. 현장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느끼며 우리는 매번 강렬하고 정확한 해답을 얻는다. 녹색순례 지난 20년, 우리 발걸음은 어느 곳을 거쳐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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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제01회

갯벌을 살리자 강화도 갯벌에서 새만금까지

1999년 제02회

송전탑과 핵발전소, 환경파괴 현장을 가다

2000년 제03회

지구를 위해, 갯벌을 위해, 땅끝에서 새만금까지

2001년 제04회

생명과 평화의 DMZ

2002년 제05회

빼앗긴 들에 생명의 씨앗을, 미군기지를 가다

2003년 제06회

낙동강, 생명의 물줄기를 따라서

2004년 제07회

백두대간, 공존을 꿈꾸다

2005년 제08회

천성산, 생명의 속도로 가라

2006년 제09회

지리산, 길에서 길을 묻다

2007년 제10회

제주도, 강방왕 고라줍서

2008년 제11회

경부운하 반대, 그대로 흐르게 하라

2009년 제12회

울진, 생명의 품에 들다

2010년 제13회

무진장, 경계를 넘나들다

2011년 제14회

너의 길을 만들어라

2012년 제15회

자연의 봄. 나를 보고, 당신을 봅니다

2013년 제16회

너와 나 사이의 비무장지대

2014년 제17회

강이 바라는 바다, 강이 그리는 바다 강강순례

2015년 제18회

좋아서 걷는 순례

2016년 제19회

그렇게 모두 설악이 된다

2017년 제20회

오키나와 평화나와

2018 녹색순례


녹색순례는 온전하게 자연을 만나는 시간이었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자, 공동체의 중요성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불 편한 진실, 우리 땅 어느 곳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사람 뿐 아니라 자연도 상처를 받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이 파괴 된 곳을 만나면 우리 몸과 마음이 함께 아프고, 자연 그대로 살아있는 곳 에선 가슴이 열리고 다리에 힘이 붙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람과 자 연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그래서 함께 아프고 함께 기쁘다는 것을 녹 색순례를 통해 배웠다. 뜨거운 태양 아래 피부가 검게 타고, 발에는 쓰라린 물집이 잡히고, 온종 일 흙먼지를 마시면서 걷는 녹색순례를 어떤 이들은 고행이라고 했다. 그 러나 이 고행이 끝날 무렵, 틀림없이 우리는 내년 순례를 상상하며 다시 기대에 부풀어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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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노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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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노래 ②|

평화가 무엇이냐 원곡 '조약골 / 편곡 'core 작사 '문정현·조약골 + buzz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나를 둘러싼 세상의 것을 보라 상대적인 가치와 기준에서 나의 판단이 옳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낮은 곳을 못본 척 외면하진 말아 그 곳에 진정한 너와 나의 모습이 있으니까 *세상은 모두의 것이니까 아기 까마귀, 아기 다람쥐, 한 마리의 메뚜기 모두가 주인이니까 신나게 노래하자 일어나 춤을 추자 화사한 너의 얼굴 이제는 낯익구나 말뿐인 나의 행동이야 메마른 얕은 강물이야 너만을 기다리고 있어 그래서 살아갈 수 있어 동백꽃 다시 핀다 11


|녹색순례 노래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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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노래 ④|

고찌 글라 고찌 가게 느영 고찌 글민 지꺼짐이 열배여 고찌 글라 고찌 가게 느영 고찌 글민 지꺼짐이 백배여 영도 곱닥헌 날 공기 좋고 사람 좋고 느영 나영 고찌 글민 무신 걱정시냐 하영 골민 존다니 (같이 가요 함께 해요 너와 함께 하면 즐거움이 열배야 같이 가요 함께 해요 너와 함께 하면 즐거움이 백배야 이렇게 예쁜 날 공기 좋고 사람 좋고 너와 내가 함께 하니 무슨 걱정 있으랴 많이 말하면 잔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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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녹색순례 구간|

녹색순례가 걸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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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전체일정|

2018년 4월 3일(화) ~ 12일(목) / 9박 10일

날짜

코스

4/3 (화)

제주공항 ~ 4.3 평화공원 ~ 절물오름 ~ 제주절물자연휴양림

4/4 (수)

사려니숲길 ~ 이덕구 산전 ~ 제주교래자연휴양림

4/5 (목) 4/6 (금) 4/7 (토)

세계자연유산센터 ~ 거문오름 ~ 선흘리 벵뒤굴 ~ 선흘1리 경로당 동백동산 습지센터 ~ 동백동산, 먼물깍 ~ 낙선동 4.3성터 ~ 서우봉 진지동굴 ~ 북촌 너븐숭이 ~ 이을락 (버스이동) ~ 종달 선착장 ~ 우도 하우목동항 ~ 톨칸이 ~ 검멀레 ~ 비양도 ~ 등머울펜션 우도 하우목동항 ~ 성산포항 ~ 서북청년단 주둔지 ~ 성산일

4/8 (일)

출봉 진지동굴 ~ 터진목 ~ 광치기 해안 ~ 제2공항예정지 ~ 신산리 마을회관

4/9 (월) 4/10 (화) 4/11 (수) 4/12 (목)

(버스이동) ~ 가시마을 4.3길 ~ 남원 충혼묘지 ~ 현의합장묘 ~ 송령이골 ~ 강정마을 ~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 생명평화100배 ~ 강정천 ~ 인간띠잇기 ~ (버스이동) ~ 송악 산 ~ 섯알오름 ~ 알뜨르비행장 ~ 돈내코숙소 돈내코탐방소 ~ 윗세오름 ~ 어리목탐방소 ~ (버스이동) ~ 유니온훼밀리타운 도두봉 ~ 관덕정 ~ 제주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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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의 지침|

∎ 순례 원칙 - 녹색순례는 걷는 것이 기본이다. 차를 되도록 적게 타고, 될 수 있 는 한 모두 걷는다. - 녹색순례는 하루 8시간 가까이 걷는다. 지구별을 두발로 걸으며, 자 연의 경이로움과 상처 입은 생명까지 온몸으로 느껴본다. - 녹색순례는 자연과 하나되는 곳에서 시작된다. 자연에 미치는 영향 을 줄이기 위해 도시의 생활을 버리고 소박한 생화을 한다. - 녹색순례는 함께하는 순례이다. 나보다 옆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진정한 순례가 되기 위해 동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눈다. - 녹색순례는 짐을 줄인다. 자신의 배낭에 담을 수 있는 정도의 짐만 챙긴다. - 녹색순례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음식을 먹는다. 일회용품이나 타지 않는 쓰레기가 나오는 음식은 준비하지 않는다.

∎ 도보와 생활 지침 - 녹색순례의 주제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환경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생활한다. - 일어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지킨다. - 출발 전·후 체조에 참여한다. - 모둠별로 돌아가며 공동취사를 한다. - 일부 구간은 버스로 이동한다. - 순례 기간 내내 보조 배낭 (점심 선식용 병과 물병, 기타 개인물품 등) 을 메고 걷는다. - 모든 상황에서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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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 지침 - 밥 먹기에 앞서 자연에 고마움을 갖고 밥가를 부른다. -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 식사로 출발이 늦어지지 않게 한다. - 하루 한 끼는 선식을 먹는다. - 공식적인 술자리 외 음주를 하지 않는다.

∎ 모둠장 지침 - 모둠원의 건강상태와 안전에 신경 쓴다. - 모둠별로 이동할 때 모둠인원을 꼭 확인한다. - 물품 신청과 수령을 담당한다. - 모둠장 회의에 참여하고, 모둠별 토론을 잘 이끌어 낸다.

∎ 지원 지침 - 행사 준비와 식사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관리한다. - 숙소에 미리 도착하여 준비를 해 놓는다. - 지역 단체와 연대를 돈독히 한다. - 순례 진행에 지장이 없는 지원 방법을 찾는다. - 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원차량을 이용 재빨리 대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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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준비물|

∎ 개인 물품 (필수) - 신분증, 항공권 (비행기 탑승시) - 큰 배낭과 보조 배낭 - 등산화 혹은 트레킹화 - 침낭 - 샌들 혹은 슬리퍼 - 여벌의 옷과 속옷 - 모자 - 우의 - 물통 - 선식용 쉐이커병 - 수저 - 칫솔, 수건 (세안용품은 지원팀에서 제공) - 개인 의약품 * 세안용품은 친환경제품으로 지원팀에서 제공합니다. ∎ 각 모둠별 준비할 물품 - 모둠별 반찬 : 김, 밑반찬, 진공 포장 식품(기내 반입 규정 확인할 것) - 모둠별 행동식 (예. 견과류, 견과일 등)

∎ 전체 준비물 - 지원 차량, 순례 깃발, 녹색연합 깃발, 구급약품, 문구류, 지도, 파워 선, 야광봉, 무전기, 노끈, 세안용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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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

우리 모둠을 찾아라! 순례 진행팀 역 할

담당자

순례대장

김성중

부대장

김수지

기획팀

신수연 최승혁

지원팀

배보람 윤상훈

한솥밥 먹는 우리 모둠! 구분

모둠

1모둠

2모둠

3모둠

4모둠

5모둠

이다솜

김세영

박주희

이미리

이예은

김성중

김수지

신수연

최승혁

배보람

윤상훈

황인철

임성희

김백정은

박그림

박윤미

석은자

김초록

한만형

허승은

박효경

오은혁

정규석

지연희

이용희

윤정숙

박유미

최명진

김란희

정명희

김순주

성은혜

박지혜

강예원

조태경

임태영

배제선

황일수

이인숙

신지형

전미란

신지선

이재민

박수홍 윤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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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코너|

제주어 배우기! ∎ 제주 사투리 제주의 사투리는 타지방 사투리와 달리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힘들다. 말이 짧고, 대부분 줄임말로 되어있으며, 어미에 ‘시’가 많이 붙고 아래아 (·)가 발음상에 남아 있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제 주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조상들의 삶에서 묻어온 사투리를 생활 속 깊숙 이 간직하며 살아왔다. 현재까지도 이러한 사투리를 사용하며 제주도만의 아름다운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 종결어미 특징 ~서예 : 혼저옵서예(어서오세요), 하영봅서예(많이 보세요), 강옵서예 (갔다 오세요), 쉬영갑서예(쉬어 가세요), 경허지 맙서.(그렇게 하지 마 세요), 차탕갑서(차를 타고 가세요.) ~시냐 : 이시냐(있느냐), 햄시냐(하고 있느냐), 와시냐(왔느냐), 놀암시 냐(놀고 있느냐?), 감시냐(가느냐?), 가시냐(갔느냐?) ~쑤과 : 좋쑤과(좋습니까), 있수꽈(있습니까) ~쿠과 : 온돌방 허쿠과(온돌방 하시겠습니까) ~양 : 제주엔 참 종거 만쑤다양(제주엔 참 좋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 오쿠다 양(다시 오겠습니다), 영 갑서양(이쪽으로 가세요.) ~꽈 : 얼마나 사쿠꽈?(얼마나 사겠습니까?), 이거 얼마우꽈(이거 얼마 입니까.)

∎ 사람을 부르는 말 어멍(어머니), 아방(아버지), 아즈망(아주머니), 아즈방(아저씨, 아주버니) 할망(할머니), 하르방(할아버지), 오라방(오빠), 똘(딸) 삼촌(제주도에서는 '삼촌' 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 말은 친척 삼촌에게도 사용하지만 가까운 이웃들에게 사용하는데, 그 범위가 정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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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않고 남녀 관계없이 전부 '삼촌'이라고 부른다) 예) 이웃집에 들어가는 길에 그곳의 할머니를 만나면 "삼촌 안녕하세요", 그곳의 아버지를 만나도 "삼촌 안녕하세요", 그곳의 어머니를 비롯한 나 이가 연배인 다른 사람들에게도 "삼촌 안녕하세요", 식당에 들어가서도 “삼촌, 한라산 병 줍써”

∎ 문장 연습 혼저 옵서 (어서 오세요) 무신 거옌 고람 신디 몰르쿠게?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지요?) 게메 마씀, 귀눈이 왁왁하우다 (글쎄 말입니다. 귀와 눈이 캄캄합니다) 경해도 고만히 생각호멍 들으민 조금씩 알아집니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하며 들어보면 조금씩 알게 됩니다) 펜안 하우꽈? (편안/안녕하십니까?) 산이영 바당이영 몬딱 좋은게 마씀 (산이랑 바다랑 모두가 좋습니다) 서울에 갈 때랑 하영 담앙 갑서 (서울에 갈 때는 많이 담아서 가세요) 호꼼만 이십서게 (조금만 계세요) 몽케지 마랑 혼저 오라게 (꾸물대지 말고 어서 와라) 호꼼이라도 고치만 있구정 호연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혼저 왕 먹읍서 (어서 와서 먹으세요) 맨도롱 하우꽈? (따뜻합니까?) 맨도롱 홀 때 호로록 들여 싸붑서 (따뜻할 때 후루룩 마셔요) 과랑 과랑혼 벳디 (쨍쨍한 햇볕 속에) 속았수다 (수고 했습니다) 안트레 들어 왕, 저녁 먹엉갑서 (안으로 들어오셔서, 저녁 먹고가세요) 어떵 살아 점쑤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이거 얼마꽈? (이거 얼마입니까?) 어디 이쑤꽈?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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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리지 말앙, 촌촌이 고르라 보게 (너무 서두르지 말고서, 천천히 말해 보 아라) 무싱거 호미꽈? 도르멍 옵서 (뭐 하십니까? 뛰어서(빨리) 오십시오) 둥그리멍 키웁서. 경 해사 실호게 큽니다 (고생시키면서 키우세요. 그래야 튼튼하게 자랍니다)

∎ 제주어 동시 할망네 우영팟듸 가민

할머니네 텃밭에는

애기호박이영 호박잎 부루 고치 

아기호박 호박잎 상추 고추 배추

우리 할망네 우영팟듸

우리 할머니네 텃밭에

명줖진품 세간살이덜은 덤

명품진품 살림살이는 덤

벗덜 불렁

친구들 불러

자파리 게

소꿉장난 하자

어멍도 뒈곡

엄마도 되고

아방도 뒈곡

아빠도 되고

으로 밥도 곡

흙으로 밥도 하고

쿡도 끌리곡

나물국도 끓이고

조물조물  무치고

조물조물 나물도 무쳐놓고

밥 먹게 (할망네 우영팟듸 자파리)

밥 먹자 (할머니네 텃밭 소꿉놀이)

빗방울덜

빗방울들

하늘서 곱을락당

하늘에서 숨바꼭질하다가

마당더레 툭 털어지민

마당으로 뚝 떨어지면

어듸 곱으카

어디로 숨을까

글글 거리당

보글보글 거리닥가

이녁찌레 모다들엉

끼리끼리 모여

응상응상 거리당

웅성웅성 거리는데

우르르 쾅 (부끌레기 동동)

우르르 쾅 (보글보글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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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녹색순례


|녹색순례 첫째날- 2018. 4. 3(화)|

4.3이 머우꽈

이동구간

제주공항 ~ 4.3 평화공원 ~ 절물오름

프로그램

4.3 추념식, 발대식, 모둠별 시간

숙소

절물자연휴양림

제주 4.3평화공원 제주 4.3평화공원은 제주 4.3의 비극적 역사를 기억하고 재현하여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제주도를 평화와 인권의 섬으로 만 들기 위하여 조성됐다. 4.3평화공원에는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비 롯해 위령제단, 위령탑, 각명비, 행방불명인 표석, 유해봉안관 등과 조형물들이 있으며 매해 4월 3일 4.3위령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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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이 머우꽈 2000년 1월 12일 공포된 4.3 특별법(정식명칭은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과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를 통 해 ‘4.3’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서북 청년단)의 타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독선거)·단정(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대까지 제주도에 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 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586쪽)

당시의 제주도 상황은 해방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이 점차 무너지고, 미 군 정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약 6만 명에 이르는 귀환 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전염병(콜레라)의 만연, 대흉년과 미곡정책의 실패 등 여러 악재가 겹쳤다. 특히 과거 일제시대 경찰출신들이 미군정경 찰이 되어 밀수품 단속을 빙자한 모리행위 등이 민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1947년 제주 북초등학교에서 있었던 3.1절 기념식에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을 안고 모인 3만 여명의 제주도민들은 ‘3·1정신으로 통일 독립 전취’를 외쳤다. 해방이 되어도 세상이 변화하지 않는 상황, 특히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로 인해 한반도 분단과 전쟁 위험에 불안을 느낀 도민들 은 ‘통일 독립’을 주장했다. 당일 기마경관의 말에 어린아이가 다치는 사 건이 벌어지고, 아이를 그냥 두고 가버리는 기마대에 군중들은 돌을 던지 며 항의했다. 미 군정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날 희생자 중에는 초등학생과 젖먹이를 안고 있 었던 20대 젊은 엄마도 있었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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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군정 당국은 이 발포사건을 정당방위로 주장, 민심수습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군정 경찰은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오히려 제주도민을 '폭도'로 몰았다. 제주도민들은 이에 항의하여 파업을 단행하 였다. 이에 대해 미 군정 당국이 군정 경찰과 서북청년단을 추가로 파견 함으로써 제주도민들을 극심히 탄압했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강행 하였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는 한라산 정상과 주요 고지에 일제히 봉화를 올리고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 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하였다. 이들은 경찰관과 우익인 서북청년 단원, 독립촉성국민회 소속 회원 등과 그 가족들을 살해했다. 이후 미 군 정의 진압이 시작되고,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 될 때까지 6년 6개월간 엄청난 유혈사태가 지속되었다.

ⓒ강요배 작, 한라산 자락 백성

미 군정은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5월 5일에는 '제주도 비상경비 사령 부'를 설치하였다. 이어서 즉각 전국 각 지역에서 차출한 대규모의 군대, 동백꽃 다시 핀다 25


경찰, 서북청년단 등 반공단체를 증파하였다. 여기에 맞서 제주도 일부 주 민들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인민 유격대를 조직하고 대항하였다. 무장대는 경찰과 서북 청년단 등 극우 반공청년단체의 탄압에 대한 반감과 저항, 남한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와 조국의 통일독립, 반미구국투쟁을 무장 항 쟁의 기치로 내세웠다. 제주 4·3으로 30여 만 명의 도민 중 2만 5천~3만 명이 학살 되었다. 희생 자 수를 정확히 알기 어려워 1만 5천~2만 명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심지어 '8만 명 희생설'까지 나오고 있다. 3만 명은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 다. 당초 토벌대가 파악한 무장대 숫자는 최대 500명이다. 재일 한국인들 중 제주도 출신자가 상당히 많은데, 이는 제주 4·3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 군정경찰 및 서북청년단 등의 반공 극우단체의 가혹한 탄압을 피하 기 위해 이른바 '보트피플'로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지역(주로 오사카지역) 을 피난처로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당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김구, 김규식 등은 남북대표자 연석 회의 개최를 제의하고 북한을 오가며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이에 반해 미국은 국제사회에서의 강력한 파워와 영향력 을 바탕으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요구하게 되고, 이승만과 친일세 력들은 이에 적극 동조하게 된다. 민족자주 세력과 미 군정과의 대립에서 미 군정이 승리하고, 해방 후 겁에 질려 도망쳤던 친일파들은 미 군정이 들어서자 복귀하여 활개를 치는 가운데, 독립운동가들은 '사회주의' 사상 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라는 굴레를 쓰고 온갖 핍박을 받는다. 해방이 되었어도 일제 조선총독부에서 미군정으로 외양만 바뀌었을 뿐 변한 것은 없었던 시기,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죄과를 숨기기 위해 민족자 주와 통일국가 건설을 외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하거나 동조 해 보이는 사람들을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 학살을 서슴지 않았는데,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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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제주 4.3과 6.25 전쟁당시 예비검속도 이런 맥락에서 자행된 유혈참 극이다.

ⓒ강요배 작, 하산민

1948.5.10.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가 실시되었으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온갖 부정투표 행태가 속출하였고, 제주도는 무장대의 투표방해와 투표 보이콧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총선거에서 제외되는 사태를 빚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는 미군정과 친일파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미국은 배후조종이 용이한 이승만 정권을 앞세워, 결국 1948.7.20. 국회의원들의 간접 선거로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다. 완고한 반공주의자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고,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 이 선포되면서 “해안선 5km 밖에 있는 사람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무 차별 사살”되는 대학살극 자행이 시작된다. 영화 지슬의 첫 장면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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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소개령은 바로 이 시점이다. 소개령이란 “무장대의 은신처와 보급처를 없애기 위해 주민들을 해변마을로 강제 이주시키기 위한 토벌대의 정책” 을 말한다. 4.3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4.3은 통칭 ‘제주 4.3사건’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동안 서로 다른 시각 과 주장에 따라 ‘4.3’은 ‘폭동’ ‘반란’ ‘민중 항쟁’ ‘봉기’ ‘사건’ ‘사태’ ‘양민 학살’ 등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다. 이처럼 표현이 서로 다른 이유는 4.3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시각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명칭 들 가운데 대다수 한국인의 기억을 가장 오래 지배해 온 표현은 ‘폭동’과 ‘반란’일 것이다. 4.3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인식이 그러했고, 거의 20여 년에 걸친 박정희 군부 독재정권과 그 뒤를 이은 정권 또한 이러한 인식을 전면에 내세우며 다른 시각의 논의를 허용하지 않았다. 국가기관 의 기록물과 교육부에서 발행하는 국정 교과서에는 4.3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동’이라고 기술했으며, 이에 반하는 주장은 처벌 대상이 됐다. 4.3을 둘러싼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고 ‘항쟁’이라는 인식 위에 진실을 규 명하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1980년 후반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는 과정 에서였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4.3 특별법 제정과 진상보고서 채택, 이에 따른 대통령의 사과는 오랜 세월 국가에 의해 씌워졌던 ‘4.3 폭동’이라는 굴레를 벗기는 계기가 됐다. 2007 년 국사교과서에는 4.3이 “제주도에서 벌어진 단독 선거 반대 시위를 진 압하는 과정에서 수만 명의 인명 피해가 일어난 사건”으로 나와 있다. 앞 으로 계속 ‘4.3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진실 규명과 더불어 ‘역 사적 성격’ 규명, 정명(正名)의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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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둘째날- 2018. 4. 4(수)|

삼나무숲과 조릿대, 무장대의 길

이동구간

사려니숲길 ~ 이덕구 산전 ~교래자연휴양림

프로그램

무장대길을 따라서(조하성봉 감독 안내)

숙소

교래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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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 북받친밭은 1948년 말부터 토벌대의 학살을 피해 숨어든 피난민들이 많 이 살았던 곳이다. 봉개리, 용강리, 회천리, 도련리 등지에서 온 주민들이 마을별로 무리지어 지냈다고 전해진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귀순한 1949 년 봄 이후, 무장대사령부인 이덕구 부대가 잠시 주둔하기도 했었다. 시안 모루 혹은 북받친밭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이후 ‘이덕구 산전’이라고 통용 되고 있다. 1948년 4월 3일, 제주 중산간 오름마다 봉화가 타오르며 남로당 제주도 당의 무장봉기가 시작됐다. 350명의 무장대는 이날 새벽 12개의 경찰지서 와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 요인들의 집을 습격했다. 무장대는 경찰과 서 청의 탄압중지,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통일 정부 수립 촉구 등을 기치 로 내걸었다. 이덕구가 무장대 총사령관이 된 건 1948년 8월 이후다. “친애하는 장병, 경찰관들이여! 총부리를 잘 살펴라. 그 총이 어디서 나왔 느냐? 그 총은 우리들이 피땀으로 이루어진 세금으로 산 총이다. 총부리 를 당신들의 부모, 형제, 자매들 앞에 쏘지 말라. 귀한 총자 총탄알 허비 말라. 당신네 부모 형제 당신들까지 지켜준다. 그 총은 총 임자에게 돌려 주자. 제주도 인민들은 당신들을 믿고 있다. 당신들의 피를 희생으로 바치 지 말 것을 침략자 미제를 이 강토로 쫒겨내기 위해 매국노 이승만 일당 을 반대하기 위하여 당신들은 총부리를 놈들에게 돌리라. 당신들은 인민 의 편으로 넘어가라. 내 나라 내 집 내 부모 내 형제 지켜주는 빨치산들 과 함께 싸우라. 친애하는 당신들은 내내 조선인민의 영예로운 자리를 차 지하라”-1948년 10월 24일 이덕구의 포고문 이덕구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유격대를 지휘하였으나, 대규모화된 토벌대 의 진압에 결국 잡히고 말았다. 결국 1949년 6월 7일 새벽 3시, 비밀리에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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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탈출하여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과 합류할 계획으로 하산하다 가 경찰에게 포위 사살됐다. 그의 나이 고작 스물아홉이었다.

“관덕정 광장에 읍민이 운집한 가운데 전시된 그의 주검은 카키색 허름한 일군복 차림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집행인의 실수 였는지 장난이었는지 그 시신이 예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에 높 이 올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 그랬던지 구경하는 어른들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심란해 보였다. 두 팔을 벌린 채 옆으 로 기울어진 얼굴, 한쪽 입귀에서 흘러내리다 만 핏물 줄기가 엉 겨 있었지만 표정은 잠자는 듯 평온했다. 그리고 집행인이 앞가슴 주머니에 일부러 꽂아놓은 숟가락 하나, 그 숟가락이 시신을 조롱 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었다.” - 소설가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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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셋째날- 2018. 4. 5(목)|

용암이 흘러간 길

이동구간

산굼부리 ~ 세계자연유산센터 ~ 거문오름 ~ 선흘리 벵뒤굴 ~ 선흘1리 경로당

프로그램

선흘 주민 교류 (작은 음악회)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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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 노인정


선흘리 불카분낭(불타버린 나무)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초토화되면서 선흘리 가옥은 대부분 전 소됐다. 마을에 있던 후박나무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모두 타버린 줄 알았던 후박나무의 한쪽에서 싹이 돋았다. 지금도 한쪽은 죽어 버린 상태 그대로 있고, 다른 한쪽에는 흙이 쌓여 팽나무와 덩굴 식물이 함께 자라며 공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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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이 흘러간 길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화산섬 제주도에는 ‘오름’이라고 하는 370여 개의 작은 소화산체들이 분포해 있다. 대표적으로 성산일출봉과 산굼부리, 산방산 등이 이에 포함된다. 그리고 숲이 우거져 검게 보여 검은 오름이라고 했던 ‘거문오름’ 역시 제주도 대표오름이다. 거문오름은 해발고도가 456m이며 능선 길이는 4.5km, 바닥 지름 이 1km 이상인 거대한 화산체이다. 2005년에 천연기념물 제444호 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이름으 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거문오름은 용암동굴계의 모체가 되는 화산으로, 용암동굴계의 형 성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수직굴을 비롯하여 다양한 용암지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거문오름은 대규모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고 용암의 붕괴도랑(용암협곡)이 잘 발달해 있으며, 위성사진에서 용암이 흐 른 흔적이 관찰될 정도로 많은 양의 용암을 분출했을 것으로 보인 다. 이렇게 분출된 용암들은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해안까지 약 14km를 이동하면서 약 10여개의 동굴을 형성하였으며 그 중 벵뒤 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함 께 등재되었다. 거문오름이 형성한 용암동굴계는 그 규모가 세계 적일 뿐만 아니라 형성 당시의 구조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뛰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은 석회동굴에서 만 볼 수 있는 탄산염 생성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 암동굴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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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넷째날- 2018. 4. 6(금)|

순이삼촌, 너븐숭이 대학살

이동구간

동백동산 습지센터 ~ 동백동산, 먼물깍 ~ 낙선동 4.3성터 ~ 서우봉 진지동굴 ~ 북촌 너븐숭이

프로그램

동백동산 안내, 4.3영상 시청

숙소

이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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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 동백동산 곶자왈은 제주어로 '숲'을 뜻하는 '곶'과 덤불을 뜻하는 '자왈'이 합쳐진 말 이다. 덤블숲, 즉 용암이 흐르면서 지나간 돌 위에 숲이 형성되어 독특한 광경을 이룬 곳이 바로 곶자왈이다. 선흘 곶자왈의 동백동산은 습지보호지역이자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곳이 다. 황칠나무, 개과시나무, 동백나무, 머귀나무 등이 자라며 곳곳의 물가엔 독특한 이름이 붙어있다. 마을에서 멀리 있다고 해서 먼물깍, 아기의 요람 처럼 생겼다고 해서 구억물이라고도 한다. 마소가 먹는 물, 생활용수, 식 수에도 각각 이름이 붙어있다. 제주 곳곳의 곶자왈에도 아픈 기억이 설려있다. 동백동산의 도틀굴은 사 람들이 피신해있었던 은신처이자 학살 현장이기도 하다.

도틀굴

함덕국민학교 군주둔지 옛터(현재, 해수욕장 내 놀이기구 자리) 함덕국민학교는 9연대, 2연대 등 토벌대의 1개 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함덕 대대 본부는 조천면, 구좌면 등지의 주민들에겐 잊을 수 없는 악몽 으로 남아있다. 토벌대는 조금만 혐의가 있는 사람도 모두 함덕 대대본부 로 붙잡아 왔다. 거기에 한번 붙들려간 주민들은 대부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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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븐숭이 4.3공원 및 북촌초등학교 북촌리는 4.3 당시 5백여 명의 주민이 토벌대에 학살된 제주도에서 가장 피해가 큰 마을이다. 너븐숭이 4.3 공원은 1949년 1월 17일 함덕 주둔 2 연대 3대대 군인들이 북촌 주민들을 집단 학살한 것을 위령하기 위해 건 립됐다. 현기영, 순이삼촌 1978년에 발표된 현기영(77)의 중편 ` 순이 삼촌'은 30년 동안 묻혀있던 4·3 의 진실을 거의 최초로 공론화한 문 제적 소설이다. 비록 이 소설로 인해 작가 자신은 보안사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책도 발매금지되는 고 초를 겪었지만, 이 작품이 지닌 문학 사적·역사적 의의는 그로 인해 더한층 막중해졌다. 음력 섣달 열여드레인 할 아버지의 제사에 맞추어 고향인 제주 서촌 마을에 내려간 `나'를 화자로 내 세운 소설은 30년 전 향리에서 벌어 진 양민학살을 통해 4·3의 아픈 역사를 고발하고자 한 작품이다. 이 소설 의 제목이 되기도 한 순이(順伊) 삼촌(제주에서는 흔히 이웃이나 촌수 따 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에게 남녀 구별없이 삼촌이라 부른다)은 30년 전의 학살 현장에서 두 아이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인물이지만, 평 생 그 사건으로 인한 충격을 떨쳐버리지 못하다가 그예 자살을 택하고 만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 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 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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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너븐숭이 대학살 그 날(1949년 1월 17일, 음력 1948년 12월 19일)은 군인들이 집을 불태 우며 학교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2동에 살았습니다. 우리가 살던 골목에는 집이 7채가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우측에서 세 번째였는데, 밖 에서부터 불을 질러서 군인들이 안으로 들어오려 해도 연기가 꽉 차고 열기 때문에 못들어 온 것 같애요. 그래서 우리도 나갈까 말까 주저주저 하는데 애기 울음소리가 나버렸어요. 밖거리에 애기가 있었어요. 그 애기 가 우는 바람에 (군인들이) 들어 와서 끌려 나갔습니다. 나와보니 집들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학교 울타리에 기관총이 2개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울타리는 그대로입 니다. 학교 동쪽 울타리에 기관총을 걸어놔 있었고, 운동장에 가보니까 사 람들이 꽉 찼어요. 우리는 정문하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데 앉아 있었습니 다. 남자(군인)가 교단에 있었는데 운동장에 있던 남자 8명 정도가 나가 서 있었습니다. 뭐라 하는지 말은 잘 안 들리고. 하여튼 “마을에서 군인 차를 쏘아서 군인이 죽었다”고, “마을을 잘 못 지켰다”고 해서 앞에서 ‘타 타타’ 쏘아서 죽였습니다. 민보단장인가 민보단원들입니다. 우리 마을에 조ㅇㅇ(50)과 임신 8~9개월 정도 된 부인(38)이 있었는데, 그 사람 부부도 죽여서 운동장 서쪽으로 내던지는 것을 봤습니다. 그 다음부 턴 사람들이 안 죽으려고 뒤로 밀려나려 하자, 기관총이 난사되었습니다. 우린 안 맞을려고 돼지처럼 딱 엎드려 기었습니다. 기면서 보니까 김ㅇㅇ (여, 41) 한 분이 죽었는데, 아기(남, 당시 3)가 배 위에서 젖 먹으려고 하 는 걸 어떨 결에 내가 손으로 탁 짚었습니다. 시체에 걸린 겁니다. 뒤로 물러나다 보니. 그게 북촌기념관에 걸린 그림(강요배 작, ‘젖먹이’)입니다. 기관총 소리가 멎고, 다음엔 군인들이 참나무 긴 몽둥이들 들고 이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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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요배 작, 젖먹이

에 갈 사람은 따라오면 살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 이 막 몰려가니까 딱 잘랐습니다. 동서로 분단이 되듯이. 따라가려고 하면 몽둥이로 막 두들겨 팼습니다. 대나무 긴 것을 가운데 묶어서 자르니까 38선 자르듯이 갈라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서쪽으로도 가고, 동쪽으로 가 고 그때는 어느 쪽이 사는지를 몰랐습니다. 저는 가족하고 안 떨어지려고 언니 손만 꽉 잡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남동생을 업고 있었고. 남동생은 무서워서 울다가 군인이 휘두른 참나무 몽둥이에 머리통을 맞았는데, 그 후유증인지 4·3이 끝나서 2년 정도 있다가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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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30명씩 끊어서 제주시로 간다니까 다 나갔지만, 처음에는 죽이는 줄 을 몰랐습니다. 첫 번에는 ‘당팟’으로 끌고 갔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타다 닥’, ‘타다닥’ 소리가 났습니다. 한 세 번쯤 끌려 나갔는데. 우리 언니가 “어머니, 암만 해도 시에 데려가는 게 아니고 죽염수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끌려간 것이 옴팡밭. 우리 식구 다 갔습니다. 30명씩 잘라서 갔죠. 그때는 정신없으니까 누가 같이 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상 황에 닥치니까 아무생각이 안 났습니다. 옴팡밭에 가서 보니 사람들이 죽 어 있었습니다. 한 무더기씩 데려가서 죽였으니까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간 것 같애요. 피도 흥건하고, 흙이 피로 시커멓게 변해 있었습니다. 쭈욱 앉혀서 있는데 뒤에서 철거덕 철거덕 총 소리가 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너무 무서워서 떨고 있는데, 뒤에서 군인이 “사격중지!” 하는 소 리가 들렸습니다. 죽이지 말라고 했나봐요. 군인이 “이 간나새끼들, 파리 목숨보다 더 질기네”라고 했나, 하여간 쌍스런 말을 하는 걸 들었어요. 전 라도인지? 이북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는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은 내버려두고, 거기에 앉았던 사람들은 운동장으로 돌아왔어요. 운동장에 오니까 산 사람은 다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마을은 뜨거운 열 기로 하늘이 빨간 불바다 같았습니다. 그날 살아나자,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습니다. 외할머니네 집으로 뛰어가다 보니까 할머니 한분이 죽어 있는데 불 타는 서까레가 떨어져서 타고 있 었습니다. 소 돼지도 날뛰고... 내가 남동생을 업고 언니하고 어머니는 ‘당 팟’에 우리 할아버지 형제분의 시신을 찾으려고 갔습니다. 시신들을 다 뒤 적이며 찾았다고 합니다. 나한테 동생을 업고 있으라고 해놓고. 어머니는 그날 저녁에 할아버지 형제 시신을 찾아서 가마니를 구해다가 흙을 덮고 돌로 지둘려놨어요. 그날 저녁도 마을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습니다. 주민 들은 ‘아이고 어멍아’, ‘아이고 누게야’ 하면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나는 우리 동생 업어서 집에 갔는데, 다행히 골목집이라 우리 집은 안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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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목에 두 집만 탔고 다섯 집은 안탔습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 시신 을 토롱해서 묻어두고 늦게야 왔습니다. 이튿날 아침엔 피난 간다 해서, 함덕으로 가야했습니다. 군인들이 사격을 중지한 후에 대장이 올라서서, “여러분들 집에 가면 집도 불다 타버리고 잘 데 없으면 학교에서라도 하 룻밤 자고 내일은 함덕으로 와라”고 하고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함덕리 서우봉 가면 지금은 길이 크게 났는데, 그 전에는 리어카 하나 다 닐 정도로 좁은 길이 있었습니다. 이튿날(1949년 1월 18일)은 바람이 불 고, 눈비가 와서 걸어갈 수가 없는 날씨였습니다. 어머니는 개나리봇짐 닮 은 거를 언니하고 나한테 지워놓고, 동생을 업고 갔습니다. 함덕으로 넘어 가는 이제 해수욕장 돌아가는 입구쯤 됐나봅니다. 사람들이 쭉 앉아 있었 습니다. 우리도 거기 앉아서 기다리는데 ㅇㅇㅇ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서 서 ‘너, 나와!’, ‘너는 가!’ 하면서 사람을 가려내더라고. 우리는 ‘합격’이 되 어 함덕에 갔습니다. 너무 춥고 떨렸습니다. 이제 같으면 경로당인데 신성 회관이라는 곳에 모이라고 해서 가보니 허벅에 좁쌀로 죽을 쒀서 나눠 주고 있었습니다. 배고프고 춥고 한데 따뜻한 거 미움 같은 것을 주니 살 것 같았습니다. - 생존자 고완순(조천 북촌) 1949년 1월 17일 제주 조천읍 북촌마을에서 발생한 이 학살사건은 4.3 당시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400여 채 가옥 이 불태워졌고 북촌국민학교에 모인 주민 1,000명 중 300여명이 희생당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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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다섯째날- 2018. 4. 7(토)|

숨비소리, 우도 해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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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간 프로그램 숙소

(버스이동) ~ 종달 선착장 ~ 우도 하우목동항 ~ 톨칸이 ~ 검멀레 ~ 비양도 체육대회 등머울펜션/ 할망네 집/ 하루방네 집

우도 해녀 제주 해녀 가운데서도 우도 해녀들은 가장 강인하기로 소문나 있다. (…) 우도의 여성들은 태어나자마자 글보다 물질을 먼저 배운다. 인터뷰 결과 평균 예닐곱 살 때 수영을 시작해서 17~19살에는 본격적인 직업군으로 생활전선에 나선다. 그렇게 바다로 뛰어든 이후 그녀들은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한다. (고희영, 물숨-해녀의 삶과 숨 60~61쪽)

구소은, 검은모래 4대에 걸친 해녀 가족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 우도의 검은 모래(검멀래) 해변에서 어머니로부터 일찍이 물질을 배운 ‘상군’ 해녀가 기구한 운명으 로 동경 앞바다의 화산섬 미야케지마로 건너가 해녀로서 부박한 삶을 이 어간다. 해녀의 신산한 삶과 재일 조선인으로서 겪게 되는 차별, 모국의 분단 상황에 따른 이념적 갈등 등 100여 년에 걸친 서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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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 해녀의 삶

ⓒ 김흥구

해녀는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자를 뜻한다. 제주에서는 ‘잠(潛)녀’, ‘녀’ 또는 ‘녜’라고 불린다. ‘물질’이라고 하는 채취 작업을 여자만 한 것은 아니다. 해녀와 비슷하게 잠수하여 물질하는 남자 잠수부를 ‘보자기’ 혹은 한자음을 빌려 ‘포작인(鮑作人)’이라고 불렀다. 보자기는 깊은 수심에 서 전복과 소라, 고둥 등을 전문적으로 채집하고, 해녀는 비교적 얕은 수 심에서 해조류를 중심으로 채집하여 역할이 비교적 구분되었다. 조선시대, 공납을 둘러싼 많은 병폐로 보자기가 공물로 바쳐야 할 해산물 할당량은 끊임없이 늘어났다. 고된 노동으로 도주하는 보자기가 증가했고 사라진 보자기의 공물부담은 숫자가 많았던 해녀에게 떠넘겨졌다. 보자기 가 사라지고 물질이 해녀 고유의 일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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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이후, 일본은 잠수기 어선을 앞세워 제주 연안 해산물을 싹 쓸 어갔고 제주 어장을 황폐화시켰다. 생산물이 급격히 줄어든 제주에서 물 질을 이어가지 못하게 된 해녀들은 육지로, 멀리 중국과 일본으로 물질을 나갔다. 이를 ‘출가’라 했다. 출가 해녀는 점차 대규모화 됐고 1930년경에 는 4,000여 명에 이르렀다. 출가 해녀는 보통 봄에 출가하여 5~6개월 정 도 물질하고 추석 무렵 돌아왔다. 이들의 수입은 제주 해녀 수입의 3배, 많게는 4~5배에 달했고

이는 당시 제주 경제를 책임지는 한 축이었다.

그러나 출가가 마냥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혹독한 노동환경은 그곳에서 도 다르지 않았고 현지 어민과의 충돌도 피할 수 없었다. 4.3과 한국전쟁 의 광풍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해녀도 셀 수 없었다. 제주도 내에서는 일제의 부당한 착취와 억압으로 가혹한 생활이 이어졌 다. 해녀 권익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해녀조합은 본 취지와 다르게 변질 되어 오히려 해산물을 헐값에 사들이고 뇌물을 많이 바친 입찰자에게 지 정 판매하는 등의 행위를 이어갔다. 해녀들의 불만은 쌓여갔고 항의서를 두 차례나 전달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분노는 폭발했고 봉기로 이어졌다. 1932년 1월, 하도리 해녀 300명을 중심으로 시위가 펼쳐졌고 2 차 시위에는 세화리, 종달리, 우도 등 이웃마을 해녀까지 합세해 총 1,000 여명의 해녀가 항쟁에 참여했다. 여성 중심 최대 항일 투쟁이었다. 제주잠 녀항쟁은 3개월 동안 지속됐고 제주 동부 지역에서 연인원 1만7,000명이 참가하는 기록을 세웠다. 투쟁 이후, 해녀들의 요구사항은 대부분 받아들 여졌다. 제주의 정체성이자 상징인 해녀는 1965년 23,000여 명으로 전성기를 누 렸고 산업화와 여성 교육 확대로 그 수가 점점 감소하고 있다. 2016년 집 계된 해녀 수는 4,000명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2016년 제주 해녀 문화 가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관련 정부기관과 지자체는 해녀 문화 보호와 육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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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여섯째날- 2018. 4. 8(일)|

유채꽃 흐드러진 봄, 관 짜던 터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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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간

우도 하우목동항 ~ 성산포항 ~ 서북청년단 주둔지 ~ 성산일출봉 진지동굴 ~ 터진목 ~ 광치기 해변 ~ 제 2공항 예정지 ~ 신산리 마을

프로그램

신산리 주민 교류, 제2공항을 둘러싼 이야기

숙소

신산리 마을회관

서북청년단 서북청년단이 계승하겠다는 서북청년회(서청)는 친일 숙청과 토지개혁, 조 선공산당 등을 피해 월남한 청년들이 1946년 11월30일 만든 극우 반공 단체다. 주요 활동은 좌익 인사와 좌익으로 의심되는 세력에 대한 테러였 다. 이들은 부산극장에 좌익 문화계 인사들이 모였다는 이유로 다이너마 이트를 던졌다.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단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공간에서 테러 단체 서청의 이름을 각인시킨 계기는 제주 4·3 사건 이었다. 2003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고건 국무총리)가 펴낸 진상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승만은‘신뢰할 수 있는 토벌대’로 서북청년회를 지목했다. 미군도 군 병력 대부분을 서북청년회 단원으로 충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4·3사건 직전 제주도에 입도한 서청 단원은 500~700명이다. 4·3사건 발발 직후에는 500명, 1948년 말에는 1000명 이상이 제주도에 파견됐다. 1948년 11월9일 제주도 총무국장 김 두현이 서청의 고문을 받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제주도 서청의 김재능 단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금품 갈취와 고문은 물론 살인과 부 녀자 능욕을 일삼았다고 보고서는 썼다. 서청 출신 이윤도 경찰은 이른바‘도피자 가족’을 지서로 끌고 가 모진 고 문을 했다.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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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여자가 더 많았다.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 다. 이윤도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위에서 바동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다. 당시 경찰특공대로 활동했던 고치돈의 증 언이다.

‘정 주임’으로 불린 서청 출신 경찰 정용철의 악명도 높다. “하루에 한 명 이상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며 사람을 죽여야 밥을 먹던 사람이었 다”“남편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끌려온 임신부의 옷을 벗겨 난롯불로 달군 총구를 몸 아래 속으로 찔러넣은 뒤 머리에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였다. 우리에게 시신 위로 흙을 덮으라고 했는데 아직 덜 죽어 있던 상태라 흙 이 들썩들썩했다” 등 잔혹한 증언이 이어진다. 제주 4·3사건 희생자는 2만5000명에서 3만명으로 추정된다. 신고된 희생 자 수만 1만4028명이다. 이 중 10세 이하 어린이 814명(5.8%)과 61세 이 상 노인 860명(6.1%)이 전체 희생자의 11.9%다. 여성의 희생도 2985명 (21.3%)으로 컸다. 서북청년단은 1948년 12월19일 대한청년단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해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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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진목 성산읍 터진목은 성산국민학교에 주둔했던 서청특별중대에 끌려온 성산 면, 구좌면 관내 주민들이 감자공장 창고에 수감되어 고문당하다 총살됐 던 학살터였다. 이곳에는 성산읍 4.3희생자 유족회가 2010년 11월 위령비 를 건립하여 위령공원을 조성했다. 제2공항을 짓는다고? 2015년 말, 국토부는 '제주 공항인프라확충 사전타당성검토용역' 결과 성 산읍 온평리를 중심으로 한 일대를 제주 제2공항부지로 선정한다고 발표 했다. 이후 현재까지 해당 공항부지와 소음피해 지역에 해당되는 지역 주 민들은 주민동의 절차 하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된 공항부지 선정을 백 지화하라면서 반대투쟁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사전타당성 조사용역진은 용역보고서 말미에 최적입지 선정 사유를 언급 하며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및 곶자왈

ⓒ제주의 소리. 국토부가 제2공항 최적후보지로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를 선택했다 동백꽃 다시 핀다 49


과의 중첩이 없으며, 관리보전지역(경관, 생태계, 지하수자원)과 훼손을 최 소화하고 산재된 용암동굴과도 중첩되지 않음'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검토용역' 결과에 의하면 공항법에 의 거하여 비행기 이착륙에 필요한 안정성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활주로 인 근의 장애물 저촉 여부를 검토한 결과 대수산봉과 대왕산, 낭끼오름 등을 비롯한 주변 오름 10개를 절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선회접근 경로를 이동하여 오름 저촉여부를 최소화한다 하 더라도 대수산봉을 40미터 이상 절취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국토부와 제주도는 오름 절취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한편, 제주도는 작년 말 기준으로 한 해 16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이미 환경 용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기에 제2공항까지 지어지면 한 해 방문 관광객이 4500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어 주민들의 우려 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도 제주 내 8개의 하수처리장이 모두 포 화상태가 되어 처리 되지 않은 하수가 바다로 방류되고, 쓰레기 또한 급 증하여 매립장이 조기포화 되는 일이 잦다. 지하수까지 말라 여름엔 상수 도 제한 급수도 검토되고 있다. 이렇듯 제주 제2공항 문제는 국책사업의 절차적 타당성, 주민수용성 외에 도 생태 훼손과 환경문제 등이 첨예하게 얽혀 있다. 현재의 무분별한 덤 핑관광과 난개발이 아니라 ‘제주를 제주답게’ 두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 유일의 유네스코 3관왕(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인 제주의 뛰어난 생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그 다음’도 있지 않 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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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일곱째날- 2018. 04. 9(월)|

끝나지 않은 전쟁, 제주는 평화의 섬

이동구간

(버스이동) ~ 가시마을 4.3길 ~ 남원 충혼묘지 ~ 현의합장묘 ~ 송령이골 ~ 강정마을

프로그램

제주바당 연산호워크숍, 강정마약 댄스 연습

숙소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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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령이골 1949년 1월 12일 의귀초등학교 교전에서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이 집단매 장된 곳이다. 이 날 군인 4명이 전사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무장 대가 교전 중 사망했다. 이들의 시신은 학교 옆에 방치됐다가 나중에 이 곳 송령이골로 옮겨져 집단 매장됐다. 2004년 5월, 생명평화 탁발순례단 (단장 도법스님)이 이 곳을 벌초하고 표지판을 세웠다. 현의합장묘 현재의 현의합장묘는 2003년 9월 옛 묘역에 있던 시신들을 발굴, 이곳으 로 옮겨 안장했다. 발굴 당시 세 개의 봉분 중 서쪽묘에서 17구, 가운데 8구, 동쪽에서 14구, 총 39구가 발굴됐다. 유해는 화장한 후 원래대로 3개 의 문에 이장했다. 묘역은 기념관과 조형물, 세 개의 봉분이 녹색잔디와 잘 어우러지는 위령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강정마을 강정의 한자말은 江汀으로 물을 뜻하는 글자가 두 개나 들어갈 정도로 물이 풍부한 동네이다. 이는 제주 안에서도 독특한 환경이다. 대부분의 하 천이 우기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강정은 일 년 내 내 물이 흐른다. 강물이 흘러 바다로 이어지는 강정천은 냇길이소라는 큰 용천 샘이 수원ㅈ이다. 물이 많았기에 제주에서 제일 먼저 벼농사가 시작 됐고, 농사가 잘 되어 잘 사는 동네라는 뜻으로 오래 전부터 '일강정' 혹 은 '제일강정'으로 불리며 마을주민들의 자부심이 컸다. 오랜시간 친족이 함께 살며 '제삿날이면 다음날 아침까지 서로 집을 살피며 음식을 돌리곤 했다'는 어르신들의 말처럼 정이 넘치는 마을이었다. 1,900여 명이 살던 마을에 해군기지가 유치되기 직전까지도 200여 개에 이르는 동네 자생단 체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2007년 4월 26일 해군기지 유치신청은 이 마을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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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친구들, 강정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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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기지에 맞선 ‘생명평화문화마을’ 2007년 제주도 서귀포시 최남단 작은 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이 결정됐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주민동의 없이 강행된 해군기지 결정에 저항했고, 2007년 5월 18일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투쟁 10년. 민주적 절차의 실종, 강정 해안의 생태적 우수성과 보호구역, 보호생물종 의 가치, 태풍경로를 마주하고 있는 입지의 부적절성, 미군기지로 운용될 가능성과 동북아 평화에 미칠 영향 등 긴 싸움이 지속됐고 육지와 전국 의 연대 움직임이 이어졌다. 해군기지를 둘러싼 찬반 입장으로 마을 공동 체가 피폐해진 가운데 2016년 2월 해군 준공식을 했다. 해군기지에 저항 하고자 했던 싸움이 준공식을 맞이하자, 많은 사람들은 해군기지 반대 투 쟁은 실패했으며 더 싸울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해군이 준 공식을 하던 날 강정 주민들은 '생명평화문화마을' 선포식을 했다. 강정이 해군기지의 부속마을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또한 빼앗 긴 삶의 권리는 물론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이어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숱한 분쟁의 현장이 그렇듯, 이곳 강정마을 역시 살가운 공 동체였다. 200 여 개가 넘는 자생단체들은 해군기지 싸움과 함께 찬반 갈 등으로 깨어졌다. 만나는 것은 물론, 제사도 함께 지낼 수 없는 서먹한 사 이가 되었다. 국책사업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했던 마을의 아픔 은 제주 4.3의 고통을 상기시킬 정도였으며 해군기지가 강행되는 과정을 두고 '자연에 대한 학살'이라고 이야기했다. 모두가 끝났다고, 이제 그만두라고 했던 강정마을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 적인다. 평화를 배우려는 국내외 다양한 사람들이 강정으로 모여 여전히 지속되는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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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바당, 연산호 무사게? "우리나라에는 30분 안에 10여개의 법적 보호종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 한 곳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강정 바당! 아름다운 연산호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부드러운 겉표면과 유연한 줄기구조를 갖춘 산호를 통틀 어 연산호라 합니다. 제주 송악산과 서귀포 해역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연산호 군락의 자연 상태를 전형적으로 잘 보여주는 곳으로 학술적인 가 치가 매우 높습니다. 2004년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섶섬, 문섬, 범섬 등 서귀포 해 역 7041만 688㎡와 화순항, 형제섬, 대정읍 등 송악산 해역 2222만 9461 ㎡를 천연기념물 442호로 지정했습니다. 이곳만의 독특한 연산호 군락지 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색수지맨드라미, 둔한진총산호, 해송, 금빛나 팔돌산호 등 이 일대에서 발견되는 다수의 산호들은 환경부와 문화재청, 멸종위기종의 국가간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의해 국내외 보호종으로 지정된 국제적 멸종위기종입니다.

경관이 뛰어나고 해양생태의 보고인 강정 앞바다는 2000년 이후 7개의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2002.12), 천연기 념물 제421호 문섬·범섬천연보호구역(2000.7),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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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연산호군락(2004.12), 해양수산부 지정 생태계보전지역(2002.11), 제주도 지정 제주도해양도립공원(2006.10), 해양수산부 지정 절대보전연안지역 (2007.4) 등 이지요. 그 중 제주해군기지 공사현장과 겹치는 지역은 모두 보호구역에서 해제되었습니다. 환경영향평가 과정에도 해군기지 공사의 직접 영향권인 서건도 일대의 연산호 조사는 실시하지 않았으며, 공사 지 점 안쪽에는 연산호 군락이 없는 것으로 단정지었습니다. 공사가 시작되 자 방파제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풍랑으로 사석이 유실되고 오탁수방지막 이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 빈번해졌습니다. 2012년 구럼비 발파 이후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으로 7기의 케이슨이 파손되고, 파손된 케이슨 을 수중 절단하여 다른 케이슨의 속채움 용도로 사용하였지요. 그 과정에 서 막대한 부유물질로 바다가 오염되었습니다.

녹색연합은 강정마을회, 강정 해상팀과 함께 제주 연산호 TFT를 구성해 연산호 모니터링과 정책대응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요.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콘크리트 블록과 훼손된 오탁방지막이 방치되어 있는 등 해군이 오염물질 관리에 손 놓고 있었다는 점, 또한 강정등대와 서건도 일대에서 쇳가루 색깔의 침전물이 가득 쌓이고, 연산호가 위협받 는 모습을 촬영해 언론에 알리기도 하고요. 위협받는 연산호를 기록하고 관계기관에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것, 군사기지 건설과 군비경쟁이 아니라 생태, 평화의 가치를 확산하는 활동은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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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녹색순례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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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여덟째날- 2018. 04. 10(화)|

오키나와와 제주, 태평양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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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간

생명평화100배 ~ 강정천 트레킹 ~ 인간띠잇기 ~ (버스이동) ~ 송악산 ~ 섯알오름 ~ 알뜨르비행장 ~ (버스이동) ~ 돈내코힐리조트

프로그램

전쟁의 흔적 안내

숙소

돈내코힐리조트

섯알오름 섯알오름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모슬포를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의 예비 검속자들이 집단 학살된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1950년 8월 20일 새벽2시 에 한림어업창고 및 무릉지서에 구금됐던 63명, 새벽 5시경에는 모슬포 절간고구마 창고에 구금됐던 132명이 해병대 제3대대에 의해 집단학살됐 다. 최근 학살터 주변을 정비하여 위령공원을 조성했다. 백조일손지지 섯알오름에서 학살된 132명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이 집단묘역은 학살 6년 후인 1956년 5월 18일 조성되었다. 수습 당시 서로의 시신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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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어려워 뼈대를 대충 맞추어 안장했다. 때문에 ‘백 할아버지 한 자손’ 이라는 뜻인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 이름이 지어졌다. 4.3희생자들 을 모신 집단묘역 중 가장 큰 묘역이다.

오키나와와 제주, 태평양전쟁 제주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침략상을 보여주는 군사시설 흔적들이 고스 란히 남아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던 1945년 초, 일본군 은 만주의 관동군과 한반도, 일본 본토의 병력을 제주도로 이동시켰다. 일 본 본토로 진격해오는 미군을 제주도에서 막기 위해서였다. 1945년 3월 3,000 여명이던 제주도 주둔 일본군 병력은 해방 무렵 6만5000여명(조선 인 징병자 포함)에 이르렀다. 오키나와에서는 1945년 4~6월 미군과 일본 군 사이의 전투로 오키나와 주민 12만명이 희생된 것을 포함해 2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연구자들은 일본의 항복이 늦어졌더라면 제주도가 ‘제2의 오키나와’ 운명을 맞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제주지역 곳곳에 남아 있는 일본군 군사시설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역사교훈의 장 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옛 일본 해군 오무라항공기지)은 중일전쟁 (1937~45) 때 일본 항공기가 중국 상하이와 난징을 폭격한 뒤 들러 재급 유나 보급을 하는 기착기지로 활용했다. 지금은 잔디밭 등으로 변했다. 알 뜨르는 ‘아래 벌판’이란 제주어다. 산방산과 모슬봉을 배경으로 10여개의 엄체호(공습으로부터 비행기를 보 호하기 위해 만든 시설)가 보인다. 1944~1945년 만든 38개의 엄체호 가 운데 19개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당시 일본군은 0.6~1m 두께 콘크 리트 지붕에 흙을 덮고 풀을 심어 위장했다. 인근 셋알오름 갱도진지의 입구는 수풀로 우거져 있었다. 이 갱도진지는 총길이 1220m, 너비 4m, 높이 3m 안팎에 연면적 5만7000㎡에 이르러 일본 나가노현 마쓰시로 대 본영(일본 군 통수기관)의 지하시설(3만2000㎡)보다 1.5배나 크다. 알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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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에는 고사포 진지가 있고, 알뜨르비행장 근처 송악산 해안 절벽에는 ‘인간어뢰’라고 불리는 가이텐 기지 구축 흔적도 있다.

송악산 해안절벽, 일본군 해군특공기지로 구축된 갱도진지

알뜨르비행장 주변은 일본의 침략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다. 특히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전쟁유적 가운데 원형 그대로 남은 대규모 비행 장은 알뜨르비행장이 유일하다고 한다. 제주도 내 전체적으로 700여개의 갱도진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성산일출봉 을 비롯해 제주시 서우봉해안, 서귀포시 황우지해안 등에도 해군특공기지 가 건설된 흔적이 남아 있다. 군사시설 구축에는 제주도민들은 물론 전남 등 다른 지역 청장년까지 노 무자로 강제 동원됐다. 특히 제주도민들은 일본군의 요새화 작업에 총동 원됐다. 아버지와 자식들이 함께 동원되거나, 농사일을 해야 하는 아버지 대신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자식이 동원되기도 했다. 군사시설 구축작업 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44년께부터 마을별로 할당돼 적게는 5~6명, 많 게는 30~100명 단위로 동원됐다. 엄체호를 만들거나 셋알오름 갱도진지 구축 작업에 끌려갔다 다쳤으나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 상처를 간직한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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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아홉째날- 2018. 04. 11(수)|

한라산, 통곡의 세월을 넘어

이동구간

돈내코탐방소 ~ 윗세오름 ~ 어리목탐방소 ~ (버스 이동) ~ 유니온훼밀리타운

프로그램

마지막 밤, 회고의 시간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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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녹색순례

유니온훼밀리타운


잠들지 않는 남도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아~아~아~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안치환 씨가 4·3진상규명운동 초기인 1988년에 만든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는 4·3의 아픔과 분노가 들어있다.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 람들’의 2집 「저 평등의 땅에」 수록되어 있으며 제주 4.3을 추모하며 부 르는 대표적인 곡이다.

문무병, <살의 노래, 피의 노래, 뼈의 노래> 중 50년 전 무자(戊子). 기축년(己丑年) 한라산에서 군경의 쏜 총에 억울하게 나는 죽어 무정한 세월 피묻은 옷에 고이 싸서 여기 살의 노래 몇 글자 적어봅니다. 이제 나의 살은 썩었습니다. 어머니, 나의 살은 썩어서 흙이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자 미군이 왔습니다. 미군이 오고, 군인이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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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경찰과 서북청년단이 오고, 모두 무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 나는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나는 산에 숨었다 잡히어 빨갱이가 되었습니다. 나는 빨갱이가 아니라 하였습니다. 빨갱이가 아니라면 산에서 잡혀온 다른 빨갱이를 이 죽창으로 죽이라 하였습니다. 눈감고 “살려줍서, 살려줍서”하며 반은 미쳐 내 이웃을 향하여 죽창을 들고 찔렀습니다. 피묻은 죽창을 들고 내가 미쳐서 소리지를 때, 희미한 여명 속에 “겨누어 총! 쏘아!”하는 소리 반복되고 사람들은 허망하게 쓰러져 있었습니다. 모두 구덩이에 처박아 휘발유를 뿌려! 어머니, 그 시국에 우리는, 제주 땅에 태어난 죄로 허망하게 쓰러져야 하였습니다. 이제, 나의 살은 부정하여, 이승도 저승도 오도 가도 못하여 어머니, 나는 구천을 떠돌고 있습니다. 이것은 피의 노래입니다. 내가 부르는 무자(戊子). 기축년(己丑年) 피의 노래입니다. 어머니, 태양은 떠도 캄캄한 이 세상 피로 물들고 미친 듯 울어대는 바람 까마귀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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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 할망 이야기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설문대는 거신(巨神)이었다. 설문대가 어느 날 바다 한 가운데로 흙을 가득 퍼 나르기 시작했고 커다란 산이 하나 완성되었다. 어찌나 높은지 은하수를 만질 수 있을 만큼 높다고 해서 ‘한 라산’이라 이름 지었다. 한라산을 만들며 치마 구멍 사이로 떨어져 쌓인 흙들은 ‘오름’이 되었다. 한라산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 설문대는 봉우리를 꺾어 던져버렸고 그 부분이 움푹 패어 백록담이 되고, 봉우리는 안덕면 사계리로 날아가 ‘산방산’이 되었다. 설문대는 어찌나 컸던지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는 제주시 앞바 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빨래를 할 때는 팔은 한라산 꼭대기를 집 고 서서 관탈섬에 빨래를 놓아 발로 문질러 빨았다. 그런가 하면 한라산 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왼쪽 다리는 관탈섬에 놓고, 오른쪽 다리는 마라 도에 놓고, 성산일출봉 분화구를 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삼아 빨 래를 하기도 했다. 우도는 원래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었다. 어느 날 설문대가 한쪽 발은 성 산읍 오조리에 있는 식산봉에 디디고, 한쪽 발은 일출봉에 디디고 앉아 오줌을 쌌다. 그 오줌줄기가 어찌나 세었던지 땅 조각이 하나 떨어져 나 갔는데, 그것이 바로 우도가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성산과 우도 사이 의 물살이 유난히 세고 빠르다고 한다. 설문대는 너무 커서 제대로 된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주백성 들에게 속옷 한 벌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했다. 설문대의 속옷 한 벌을 만들려면 명주 1백통이 필요했다. 제주백성들은 최선을 다해 명주를 모았지만 99통밖에 되지 않았다. 한 통이 모자라 설 문대의 속옷을 만들어주지 못했고, 설문대도 다리를 좀 놓다가 중단해 동백꽃 다시 핀다 65


ⓒ제주전통문화연구소

버렸다. 조천리, 신촌리의 앞바다에 있는 ‘여’라고 부르는 바위줄기들이 그 흔적이라고 한다. 설문대는 그 큰 키가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제주도 안에 있는 깊은 물들 가운데 자신의 키 보다 깊은 것이 있나 시험해 보기로 했다. 제주시 용담 동에 있는 ‘용소’가 깊다는 말을 듣고 들어서보니 물이 발등에 닿았다. 서 귀포시 서홍리에 있는 ‘홍리물’이 깊다고 해서 들어서보니 무릎까지 닿았 다. 그렇게 물이란 물은 다 들어서보며 깊이를 시험하고 다녔다. 어느 날 한라산에 있는 ‘물장오리’에 들어섰다가 영영 나오지 못하고 말았 다. 물장오리는 밑이 터져 한없이 깊은 물이었던 것이다. 설문대는 그렇게 물장오리에 빠져 죽고 말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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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열흘째날- 2018. 04. 12(목)|

4.3의 도화선, 관덕정

이동구간

도두봉 ~ 관덕정 ~ 제주공항

프로그램

해단식

숙소

각자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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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뜨르 비행장 (4.3 유해발굴지/ 현, 제주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의 시작은 ‘정뜨르비행장’이다. 넓은 들 한가운데 우물이 있 다고 해서 우물 정(井)과 들판을 의미하는 ‘드르’가 합쳐진 말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2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해 1944년 5월 준공한 일본 육군 의 비행장이다. 4.3사건 당시 정뜨르 비행장에서는 1948년 12월 말부터 인근 지역 주민 들을 끌어다 학살한 것을 시작으로 1949년 2월에는 경찰서에 수감되어 있던 화북 등지의 주민 76명이 토벌대에 의해 학살, 1949년 10월에는 249명의 군법사형수들이 총살됐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에는 제주시와 서귀포지역 예비검속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이 이어졌다.

4.3 유해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제주국제공항모습

제주경찰서와 주정공장에 갇혀 있던 주민들은 트럭에 실려 공항에 와서 총살됐다. 증언에 따르면 트럭 10대에 실린 희생자 수는 약 500명 정도 다. 4.3 최대 학살터였음에도 다른 지역과 달리 희생자의 시신은 수습되 지 못했다. ‘공항’이라는 특성상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고, 학살 이후 제주국제공항이 4차에 걸쳐 확장되면서 정확한 장소를 확인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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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다. 이곳에 대한 유해 발굴작업이 진행된 것은 2003년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한지 4년이나 흐른 2007년부터였다. 두 차례에 걸쳐 유해발굴이 진행 됐으며 장소는 남북활주로 북서쪽 지점과 북동쪽 지점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이곳에서 4.3 유해 발굴 사업이 진행되어 시신 384구를 발견 했다. 관덕정 1947년 제28주년 3·1절 기념식을 마친 군중들이 빠져나오다 경찰의 발포 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사상 초유의 민관총파업이 이어졌고, 이후 수많은 도민들이 이곳 경찰서에 끌 려와 고문 취조를 당하거나 구금됐다. 4.3의 도화선이 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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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발췌 자료|

대한민국 정부,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 4.3 생존자 증언기록 제주 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자료집 강정마을 안내서, <안녕 강정> 현기영, <순이삼촌> <지상의 숟가락 하나> 허영선,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신여랑, 오경임, 현택훈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 고희영, <물숨-해녀의 삶과 숨> 구소은, <검은 모래> 녹색연합, <강정 앞바다, 연산호 훼손실태보고서> 제주 제2공항 반대대책위원회 보도자료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시사인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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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주신 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늘 녹색연합 활동가들의 편인! 윤정숙 대표님, 원정 대표님, 이재민 대표님, 이동규 대표님 이숙례 선배님, 석광훈 선배님, 이유진 선배님, 전세이라 선배닙 김희정 선배님, 고이지선 선배님, 최성열 선배님, 남상민 선배님, 김제남 선배님, 오재옥 선배님, 장주영 선배님, 허욱 선배님, 이석제 선배님, 신화자 선배님, 한상민 선배님, 박경화 선배님, 이태화 선배님, 김타균 선배님, 박정은 선배님, 배영근 고문님 최재홍 변호사님, 박항주 보좌관님, 김두석 고문님, 윤상훈 사무처장님, 녹색연합 활동가 상조회

제주에서 녹색연합을 맞아 주신! 고제량 제주생태관광협회 대표님 이혜영 선배님 정은혜 회원님 백가윤 다크투어대표님 문용포 곶자왈학교교장선생님 엄문희 강정마을 주민 강원보 제2공항 반대 성산읍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상수 거문오름 세계자연유산센터 신사란 우도레지던시 예술가 조하성봉 감독님

녹색연합의 친구! 아이쿱서울생협 한살림연합회 한살림북동지부 태성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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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녹색순례 ‘동백꽃 다시 핀다’ 자료집 펴낸이 | 조현철 펴낸곳 | 녹색연합 펴낸날 | 2018년 4월 글 기획․ 편집 | 녹색순례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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