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은퇴 후 의료비용입니 다. 단순하게 병이 드는 것이 아니라 장기요양시설 이용이나, 나의 가족이 아 닌 제 3자의 간병을 필요로 할 때입니다. 각종 질병이나 중병에 따라 다르지 만 간혹 가다가 24시간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일례로 치매나 심각 한 질병에 해당됩니다.
가족들도 각자 생활이 있어서 환자를 돌보지 못 하는 경우가 있고, 전문 의학 에 종사하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환자도 병치레가 쉽고 가족들도 본인들의
업무에 방해가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지 본인과 가족들 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극빈자 경우에는 정부에서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지만, 내 자식이 은퇴 후 극
빈자가 될지도 모르거니와 우리가 생각하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의료시설 장
소가 가끔은 회피하게 됩니다.
시설이나 의료 종사자 그리고 음식 등이 안 맞는 경우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 좋은 시설과 안락한 분위기의 공간과 의료진을 필요로 나
의 은퇴 준비 일 부분을 미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환경에 따라서 병의 호전속도도 달라질 수 있고,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
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은퇴 준비는 나이 들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젊은 나
이에 미리 계획하고, 상황에 따라 변경을 주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1. 은퇴 후 나의 노후 자금은 얼마가 필요한가?
2. 혹시 모를 장기요양시설 사용비는 얼마나 들까?
3. 한국과 다른 상속법에 대한 대처방안은 어디까지 했는지?
잘 계획세우고 시시때때로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게 계획해야 합니다. 100세를 넘게 사는 시대에 이런 계획도 이제는 대충했다가는 노후의 삶이 해 피엔딩이 아닌 불행의 시간으로 연장 될 수 있습니다.
Han Ju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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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까지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가 도달했을 수도 있다.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인간 장수의 한계를 연구하는 제이 올샨스키 박사는 사
람들이 100세까지 살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대부분은 65세에서 90세 사이에 이를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생물학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올샨스키는 말했다. 인간의 진화는 과
도한 나이까지 사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재생산을 선호한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그들의 세포와 조직은 손상을 축적한다. 이런
저런 종류의 손상은 더 자주 일어나고 수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과학자들은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노
화는 잘 이해되지 않은 복잡한 과정이다.
올샨스키 박사는 자신의 관점이 인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장수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사람들은 장수 모임에 몰려들고 자신들의
삶을 연장시켜 줄 화합물을 복용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는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세포
를 더 어린 상태로 재프로그래밍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지지하고 있다. 장수 인플루언서들은 만약 세포가 충분히 오래 살 수 있다면 과학적인
돌파구가 세포를 무한정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활력을 되찾고 활성화시킬 수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과학이 하는 일입니다," 라고 투자자들이 장수 분야
의 과학자들을 만나기 위해 장수 여행을 운영하는 63세의 기업가 피터 디아만
디스 박사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샨스키 박사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예측에 자신감
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90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과 가장 오래 사는 인구가
있는 선진국의 인구 통계 및 사망률 데이터를 연구해 왔다. 그 30년 동안, 그
들은 기대 수명이 느려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기대 수명을 낮추기 전에도 진전은 멈췄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30년을 기다렸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세대교체
확실히, 100세 이상의 사람들의 수는 증가했다. 올샨스키 박사는 그들의 순위 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이비 붐 100주년인 2046년부터 가장 극적으로 증가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구 통계학적인 격차가 평균 수명을 바꾸지는
Lifestyle GK
않을 것이다. 올샨스키 박사는 최상의 상황에서 10% 미만의 신생아가 100세
생일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의 유전학 석좌인 얀 비즈그 박사도 다른 각도에
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최대 검증 연령을 연구했다.
사망 시 최대 연령은 적어도 1950년대부터 정체기로 보였던 1990년대까지 점
진적으로 증가했다.
그는 1997년 122세의 나이로 사망한 프랑스 여성인 진 칼멘트가 사망 당시 검
증된 최고령 연령이라는 세계 기록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이제 깨끗한 물, 항생제, 심장병 및 암과 같은 주요 사망 원인에 대한
개선된 치료법, 더 건강한 생활 방식 등 최적의 조건에서 노년을 맞이한 사람
들이 수억 명 더 늘었다.
만약 수명에 한계가 없었다면, 그 100세 시니어들 중 일부는 지금쯤 칼멘트의
기록을 깼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비즈그 박사는 "이것이 끝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벤키 라마크리쉬난 박사는 하버드 대학의 만원 청중들에게
그의 새 책의 이름인 "우리가 죽는 이유"라는 많은 이유들을 설명했다. 라마크
리쉬난 박사는 현재의 수명연장에 대한 개입이 수명을 극적으로 연장시킬 것
이라고 믿지 않는다.
노화를 되돌리는 기술은 뇌를 포함한 신체의 모든 시스템을 장기간에 걸쳐
도와주어야 한다.
"노화의 원인을 공학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
잡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의학적 진보가 계속된다면 2000년대에 태어난 대부분의 신생아들은 100세까
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논문의 공동 저자인 캐리 크리티튼슨 박사는
누가 옳은지 알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미래의 발전은 정체된 기대수
명 증가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침체는 일시적일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덴마크의 덴마크 노화 연구 센터에서 아주 나이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 구를 운영하고 있는 크리티튼슨 박사는 90대의 사람들이 불과 10년 전에 태어 난 같은 나이의 사람들보다 평생 동안 더 나은 인지 기능과 더 건강한 치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명 논쟁
올샨스키 박사는 인간수명의 한계에 발을 들인 것은 1990년 그가 사이언스지
에 암과 심장병을 포함한 질병이 제거되더라도 기대 수명이 극적으로 증가하
지 않을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구 통계학자인 제임스 보펠 박사는 이 이론에 반박했다. 2021년 논
문에서 보펠 박사는 1840년경부터 일부 국가에서 출생 시 기대 수명이 10년마
다 거의 2.5년 증가했다는 통계를 지적했다.
보펠 박사와 올샨스키 박사는 2022년 76세의 나이로 보펠 박사가 사망할 때까
지 수십 년에 걸쳐 결투 논문을 발표했다.
앨라배마 대학의 생물학 교수인 스티븐 아우스타드 박사는 2001년 과학자 회
의에서 150세까지 살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이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냐는 질
문을 받았다. "저는 그 사람이 이미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아우스타드
박사는 대답했다. 그는 과학자들이 노화의 생물학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알
아낼 것이라는 낙관론에 근거한 자신의 대답을 했다고 말했다.
올샨스키 박사는 그의 이야기에 대해 들었을 때, 아우스타드 박사에게 그것
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150년 후에도, 그는 150세에 살아있는 사람은 존
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사람들은 각각 150달러를 걸었는데, 그
돈을 150년 후에 갚기 위해 펀드에 넣었고, 그 돈을 승자의 상속인들이 그 이
익을 거두게 되어있다.
10년 전에, 그들은 각각 그 계좌에 또 다른 150달러를 추가했다. 아우스타드
박사는 현재 태어난 대부분의 신생아들이 100세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는 올
샨스키 박사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가 150세까지
살 것이라는 그의 낙관론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라파마이신이라는 화
합물이 쥐의 수명을 연장시켰다는 연구를 지적했다. 일부 장수애호가들은 라 파마이신을 직접 복용하고 있다. 다른 노화방지 화합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올샨스키 박사는 어떤 개입도 생명을 그렇게까지 연장시키지는 못할 것이라 고 생각한다. "이 신체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부유하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은 이미 오래 사는 경향이 있는데, 이 그룹에 는 올샨스키 박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올샨스키 박사 는 그의 반대론자들에 대해 "당신의 100세 그룹에 진출 가능성은 그 누구보다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당신의 가능성은 여전히 낮습니다."
인컴유닛으로도 최고조건 마켓,은행,병원 모두 도보거리에 위치 소피아 양 (213) 500-5740
Budapest, Hungary
유럽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나드는 것인데 오스트리아에
서 헝가리로 넘어가는 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기차 창밖 풍경을 바라
보니까 하늘이 흐리고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비엔나의 번화한 도심을 벗어
나 들판이 끝없이 이어지며, 길게 늘어선 나무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고 중간 중
간 작은 마을들이 나타나며 고즈넉한 농촌 풍경이 평화스럽게 보였다.
전원 풍경을 감상하면서 기차여행을 즐기고 있었는데 얼마 후, 당황되는 일이 생 겼다. 헝가리 말로 안내 방송이 나오고 기차가 멈추었는데 승무원이 기차 칸 마 다 다니면서 헝가리 말과 영어로 기차가 고장이 나서 무기한 연착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함께 탄 사람들은 아무 동요 없이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
안해 지기 시작했다.
아직 부다페스트로 가는 길이 먼 것 같았는데 난감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기차가 조금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몇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멈춰 섰다.
헝가리 말로 안내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슬금슬금 내렸다. 앞자리에 있는 헝가
리 아가씨에게 영문을 물어보았지만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주변 눈치만 보다 가 기차에서 재빠르게 짐을 내리고 사라져 버렸다.
기차에는
데 앉을 자리가 없이 사람이 많았다. 좌석 행 열차를 예약한 보람 없이 기차가 고 장 나서 입석 기차를 탈 수 밖에 없는 불편함 보다는 비를 맞아 축축하게 젖은 몸으로 낮선 사람들과 낮선 냄새가 나는 부다페스트 행 기차를 타는 내내 여행 기분이 별로였다.
자유 여행은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에서 수 많은 변수와 돌발 상황을
만나게 될 때마다 낮선 환경에서 빠른 적응력과 판단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다.
앞으로 남은 여행에 대한 기대감보다 어떤 일이 생길지 두려운 마음이 꿈틀거렸 다.
어느덧 기차는 짙은 어둠이 내린 시간에 부다페스트 역에 도착했다. 역사 내부는
굉장히 오래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기차는 중간에 거쳐 가는 기차역보다는 한 노선의 종착지나 출발지의 역할을 한다.
페스트 지역 동쪽에 위치한 중앙역은 헝가리 내 도시와 유럽의 주요 도시를 연결
하여 헝가리 교통의 허브 스테이션으로 자리 잡았다. 기차역 주변에서 우버를 불
렀는데 숙소까지는 몇 분 안 되어 도착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저녁 식사도 못해 호텔에서 짐만 내려놓고 주변에 식당을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이 밝아왔다. 깊은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여행 중에는 아침마다 알
람이 아닌 설레는 마음만으로도 눈을 뜰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 보았는데 전날 밤의 두려웠던 숙소인근은 밝은 아침에 보니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숙소 인근 로타리에 지하철도 있었고 노란 트램이 지나갔고, 생각보다 안전했는
데 교통의 중심지라 이동이 편할 것 같았다.
부다페스트에는 일정이 짧아 숙소 인근을 중심으로 몇 곳만 구경하기로 했는데 긴 북유럽 여정의 피로감을 확실히 풀어줄 것 같은 장소로 향했다.
부다페스트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온천이다. 여행으로
지쳤을 때 최고의 휴식을 선사할 부다페스트의 온천은 약 2,000년 전 고대 로마
시절, 목욕 문화가 발달한 고대 로마인들이 헝가리에 들어오면서 목욕탕을 만들
었다고 했는데 이 목욕탕은 부다페스트 전장의 부상병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으 로도 활용했고, 미네랄 함량이 풍부해서 미용과 건강에 좋아 유럽 부호들의 휴양 을 위해서도 쓰였다고 한다. 소금과 미네랄이 풍부해 치료 효과가 뛰어난 풍부한 헝가리 곳곳의 천연 온천은 수영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치료뿐 아니라 가족과 연인들의 휴식처로 인기 만점이다. 1931년에 처음 문을 연 세체니 온천은 마치 궁 전 같은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세체니 온천은 우리가 아는 뜨거운 물이 아니라 38도 정도의 미지근한 온도인데, 삼삼오오 모여 체스를 두는 등 독특한 온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시립 공원 안에 있어서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핫 플레이스로 입구
부터 노란 고풍스런 건물을 바라보니 기대가되었다.
세체니 온천은 단순히 온천이라기보다는 큰 스파 시설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스파 시설처럼 사우나, 수영, 물놀이도 즐길 수 있어 가족과 즐기기 좋을 것 같았 다. 먼저 티켓을 구입한 후 안으로 들어가 개인 탈의실을 지정받고 수영복으로 갈 아입은 후 온천장으로 들어갔는데 고풍스런 건물을 배경으로 여유 있게 온천을 즐기니까 여행으로 찌든 피로가 모두 풀리는듯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뜨
끈뜨끈한 온천물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온천을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야외 온천 풀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 수
있었는데 특히 멋진 건물을 배경으로 추운 날씨에 따뜻한 온천을 즐기는 경험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세체니 온천을 즐기고 부다페스트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것 같았다. 도시는
성과 현대적인 페스트의 거리가 서로 어우러져,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져 보였는데 그 속에서 헝가리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 를 느끼며, 독특한 음식과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낮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하고, 밤에는 도
나우 강 위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야경에 취해보기위해 헝가리 국회의사당으로 향 했다. 이 건물은 부다페스트의 랜드 마크 중 하나로, 도나우 강가에 위치한 웅장 한 건축물이다.
노란 트램이 지나가고 고풍스런 건물을 배경으로 카메라 렌즈 속에 가득한 풍경
은 동유럽의 또 다른 매력을 표현해주었다.
국회의사당과 함께 부다페스트의 대표적인 포토 존으로 유명한 세체니 다리를 빼놓을 수 없어 헝가리 국회의사당주변을 돌아보고 강이 흐르는 다리가 있는 방 향으로 걸어가 보았다.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데 강둑에 누가 벗어 놓은 듯, 낡은 신발들이 놓여 있
었다. 그곳에 신발들이 설치된 이유는 무엇일까 해서 검색해 보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도나우강가에 유대인을 세워 총살하여 강으로 빠트렸다고 했
는데 참혹했던 역사의 한 부분을 기억하며 조형물을 만들어 둔 것이었다. 그곳의
신발들을 보면 어른 남자 신발에서부터 여자 신발, 아이들의 신발까지 남녀노소
를 가리지 않고 나치가 무차별적으로 유대인들을 학살했음을 알 수 있었다. 가 까이 들여다보니 신발에는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작은 초를 켜두고, 꽃도 놓아 두고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마음들이 담겨있었는데 도나우 강을 따라 아름다
풍경으로 주목받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이지만 덧없이 흐르는 강물을
으로 보였는데 국회의사당과 더불어 밤에 빛나는 세체니 다리를 감상하기 위해
노을이지고 어둠이 깔릴 때까지 주변을 거닐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세체니 다리를 건너고 부다 지역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부다왕궁을 향해 걸어가
보았다.
부다왕궁은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데 옆길 계단으로 천천히 오르며 주
변을 감상하며 오르는 것 도 좋을 것 같아서 푸니쿨라는 타지 않았다.
부다왕궁에서 천천히 걸으면 10분 거리에 있는 마차시 성당과 어부의 요새가 있
는데 어부의 요새라는 이름은 중세시대에 어부들이 형성하였던 어시장에서 비롯
됐는데 7개의 희색 고깔 모양의 지붕이 인상적인 곳으로 부다왕궁과 더불어 부다
페스트를 조망하기 좋은 곳이었다. 전망을 보기위해 식당으로 들어섰는데 사람
들이 많지 않았지만 전망 좋은 창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기다리는 사람 들이 보였다.
조금 기다려보니까 전망 좋은 자리가 나와 바로 앉았지만 주변을
기다렸던 밤이 찾아왔다. 부다페스트에서의 마지막 밤, 다뉴브 강 가에 서서 바라본 야경은 마치 꿈결 같았다. 고요한 물결 위로 반짝이는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지며, 도시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순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체인 브릿지 위에서 바라본 부다성과 국회의사당은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성
처럼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조명이 비치는 건물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그들의 역사를 속삭 이고 있었다.
어둠이 깔린 하늘 아래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은 부다페스트의 과거와 현재를 연
결해 주는 매개체였다.
야경을 감상하며 다리 위를 걷는 동안, 도시가 가진 매력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
다. 부다페스트는 낮에도 아름답지만, 밤이 되면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았다.
고요한 강물, 반짝이는 조명, 그리고 그 속에 녹아 있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어우
러져 만들어내는 이 밤의 풍경은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부다페스트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 도시의 역
사와 문화를 간직한 건축물들, 따뜻한 사람들의 미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놀
라운 야경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그곳을 찾아,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
소련식 건축물들과 현대적인 낙서가 눈길을 끄는 부다페스트의 뒷골목은 이제
전혀 위험해 보이지도 낮 설지도 않게 보였다.
모든 것이 익숙해질 무렵 도시와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져 못내 아쉬움에 뒷골목
에 눈에 들어온 한글 간판이 반겨주는 한식집에서 늦은 밤까지 여행하는 동안에
느꼈던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의 매순간은 삶의 모습을 걸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힘이 들기도 하고 숨 막힐 정도로 지치거나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정도로 속상하
기도 했다. 하지만 사서 고생하는 내가 좋아서 한 여행이건만 여행이 무조건 즐거
워야 될 것 같았지만 즐겁지 않아도 되는 것이 여행이었던 것 같다. 때론 낮선 곳
에서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잊지 못할 꿈같은 시간 속에 머물러 있기도 했 다. 인생이 언제나 즐거운 일만 가득할 수 없는 것처럼 여행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려가고
다.
다녀온 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그 때가 마지막 여행지가 아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몸이 많이 아팠다. 크게 앓고 나서 살아야할 이유를 찾게 해주었는지 시간이 지나니까 온몸이 정화 된 사람처럼 가뿐해졌다.
사서 고생했던 여행이 무조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변수나 악재도
추억으로 만들어버리는 여행의 밝은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또 떠날 준비를 하 고 있다.
왜 그렇게 여행을 떠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몰랐던 것들 과 마주치는 순간이 좋아 떠난다고, 사랑하는 사람, 일과 꿈 그리고 함께 할 때
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떠나오면 더 잘 보일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