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겨울호_기분 좋은 가능성_통권 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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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가능성

표지 이야기

책방 주인장은 종이 박스로 피켓을 만든다

‘윤석열도 없고 비정규직도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윤석열은 없고 차별금지법은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오늘도 책방 주인장은

종이 박스를 버리지 않고

그림도 그리고

피켓도 만들고 있다

- 수원 동네 책방 광화문 서림 -

기분 좋은 가능성

2024년 겨울호 [통권 28호]

다시 읽는 페다고지_대화적 행동

주민조직가 일기 주민지도자 일기 우리 운동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주민조직운동의 바람, 주민조직가

살아가는 주민지도자

12·3 국회로 달려간 사람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윤석열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발표했다. 비현실적인 계엄령 발표에 일상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에 떨고 있을 때, 누군가는 국회로 달려갔다. 불법계엄을 막기 위해 그 시간, 그 공간을 온 몸으로 지켜낸 이들이 있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결국 비상계엄령은 2시간 반 만에 해제되었다. 드러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1.

최만진 (송주 / 2기시흥주민리더아카데미 수료)

마침 YTN 뉴스 시청하고 있었었는데요. 먼저 뜬금없는 자막이 하나 떠요. 그게 비상계엄 선포한다고.

처음에는 이게 무슨 얘기지 오보인가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근데 뒤이어서 영상 나오는 거 하고, 그 다음에 YTN 뉴스 진행하던 앵커 포함해서 토론자들까지도 미처 준비되지 못한 상황이라 안절부절못하고. 쥐가 고양이 무는 상황이었죠. 더 피할 곳이 없겠구나 싶어서 계엄을 발동을 하는 것 같았고요. 전혀 시대에 안 맞죠. 저는 전두환 이를 지켜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계엄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거고 얼마나 나라와 국민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저는 목도를 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지속되거나 성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졌습니다.

그래서 주섬주섬 옷을 챙기기 시작했죠. 저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국회에서 계엄 해제 가결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더라면 국회의원들 분명히 정족수를 못 채우게끔 먼저 점령을 하든지 방해를 하든지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한 사람의 파수꾼이라도 더하기 위해서 일단은 출발을 했어요.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야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면 그 옳은 사람이 많은 만큼 이기는 거거든요. 파수꾼 한 사람의 머릿수 채우고 힘을 보태자라는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자가용으로 갔어요. 저희 집(시흥)에서 고속도로로 연결하면 바로 여의도예요. 10시 40분쯤에 나간 것 같아요. 마침 차가 막히는 시간이 아니라 비교적 빨리 갈 수 있었어요. 도착하니 11시 15분이 안 되었어요. 가면서 DMB로 이어폰 꽂고 들으면서 갔어요. 국회 정문 쪽으로 가게 되면 돌아서 가야 되기 때문에 저는 뒤쪽으로 진입을 했어요. 노들길 통해서 국회 뒤편에 가서 주차를 한 거죠. 이제 걸어서 정문 쪽으로 가는데 놀랐어요. 시민들 벌써 나와 계시고 경찰들 뒤섞여 있고 경찰이 처음에는 몇 번에 걸쳐서 차단을 했다가 열었다가 또 차단을 했다가 열었다가 그랬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국회의원이 누구고 시민이 누군지

모르겠더라고요. 뒤섞여 가지고. 그 다음에 헬기가 왔죠. 다 보이지는 않아요. 이제 사람에 가리기도 하고

나무에 가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정확한 대수는 모르겠는데 군인들 이제 내려서 국회 당사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대충 다 보였어요. 불이 훤히 밝지는 않아도 군인들 이동하는 모습. 헬멧 쓰고 총 들었는데 저 정도면 군인이다 싶었죠.

저는 정문을 바라보고서 오른쪽으로 갔어요. 우측으로 가서 한적한 쪽. 그 쪽에 국회의원들이 많이 남았죠. 제가 엎드렸던 것은 저만 엎드린 게 아니라 이제 국회의원 비서들도 엎드리고 하여튼 상황 되면 누가

누군지 할 것 없이 엎드리면 바로 바로 넘고 그랬어요. 한꺼번에 다 가기보다는 상황 될 때마다 넘게끔

발걸이를 해준 거죠. 제가 엎드리니까 누가 아프지 말라고 등에다가 가지고 있던 수첩도 얹어주기도 하고, 그게 떨어지니까 가지고 있던 목도리도 접어서 얹어주기도 했어요. 저를 밟고 넘어가신 분들이 한 대여섯

명 돼요. 아플 정신이 없었죠. 저는 3시 반 즈음 빠져나왔나요. 빠져나오기도 어려웠어요. 그 병력들이 차에

올라탄 지 꽤 됐는데 한참 있다가 대통령 계엄 해제 소리 나오기 전에 이동을 시작했어요. 이제 그것까지는

봤고 나는 너무 추워가지고 더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모이면 두 사람이 될까 싶잖아요. 할 일 했다 생각이고요. 나 한 사람이라도 거기에 얹혀야 못된 놈이 지 맘대로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요. 부당한 것에 대해서 아니라고 하는 그 한 사람의 더하기를 했을 뿐이에요. 전두환 시절 저는 고등학교 때였으니까요. 저 혼자 서울로 올라와서 아까운 친구들 선배 후배를 잃었죠. 그러니까 그게 너무나 선명하고 진하잖아요. 나라 넘어간다고 저 혼자 한 사람의 힘이 나라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마는 힘을 보태야죠.

2.

조덕남 (독곰 / 24기 주민지도자과정 수료)

당시 MBC를 보고 있었는데 속보를 보게 됐어요.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기가 차더라고요.

거부권이나 행사하던 사람이 계엄령을 선포하니, 사람 돌겠더라고. 열 받아서 씩씩거리고 있는데. 국회로

빨리 좀 나와 달라고 하는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국민이 막아줘야 된다는 소리를 하더라고. 듣고 나니까 움찔하더라고. 그래서 나 혼자 가면 안 되겠다 싶어 갖고 동네 사는 젊은 사람이 있거든. 그 친구한테 전화해서 같이 가자고 하니까 못 간다고 하더라고. 그 친구가 안 간다니까 좀 망설여졌지만, 어떻게 화가 나야지 그래서 주섬주섬 옷 주워 입고서 자전거를 끌고 나왔죠. 그때가 시간을 정확하게 모르는데 12시가 넘었을 때에요.

여기서(관악) 가려면 도림천을 쭉 따라가면 갈 수 있는데 그건 좀 멀어서. 빨리 가려고 보라매공원을 통해서 63빌딩 쪽으로 가는 직진 길이 있거든. 자전거로 1시간 조금 안 걸렸을 거예요. 가다가 길을 좀 헤맸고 도착했더니 다 끝났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안심을 했는데 갈 때만 해도 정말 아닌 게 아니라 각오가 대단했지. 신림선 전철이 끊겼으니까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온 거고.

기억이 있으니까. 비상계엄을 몸으로 막아야 하니 안 움직일 수가 없더라고.

두근두근은 했죠. 계엄군들이 다리를 막을까 봐 그 뒤로 간 거거든. 도착해서 거기 있는 사람들과 같이 앉아서 진짜 3년 동안 묵은 욕 다 했지 뭐. 개새끼 소새끼 소리 다 나왔어. 진짜 욕하는 사람들이 다

끔찍하다고 이 정도가 천만 다행이라고. 다들 하는 소리가 우리는 죽어도 괜찮다. 그런데 내 자식들이 살 땅, 살아갈 나라가 걱정된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광주 사태를 본 사람들이 나왔더라고. 광주에서

자식들 시체 붙들고 통곡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 아줌마들은 나온 것 같더라고. 그 가슴앓이가 무지무지 심했던 거야. 근게 비상계엄 해제가 국회에서 가결되니까 다들 서로에게 감사하다고 칭찬하고 기뻐했지. 기분이 최고더라고. 그 사람들은 용감했고 끝까지 자리에 있더라고. 6시가 넘어서도 떠날 수가 없었고

다들 들어갈 생각을 아예 않더라고. 집에 도착하니까 8시 다 되었지. 계엄을 막으려는 시민들한테 내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다는 계 느껴져서 아주 뿌듯했죠. 살아 있는 맛이 생겼지요. 그러면서 이런 게 진짜

민주 시민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죠.

3.

김종필 (바람 / 30기 주민조직가과정 수료생)

안녕하세요. 용혜인의원실에서 일하는 김종필이라고 합니다. 2023년 30기 주민조직가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저는 의원실에서 사용하는 슬랙(업무 플랫폼)을 통해 비상계엄령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계엄 선포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직전에 샤워를 하러 들어갔으니 한참 지난 후에 알게 되었죠. 슬랙이 너무 시끄러워서 봤더니 난리가 났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TV를 켜고 뉴스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슬랙을

통해 이미 여러 사람이 올린 글을 읽었고 TV를 통해서 생중계를 보면서도 현실감이 안 느껴지더라고요.

이거 레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어요.

잠시 후 실제 상황임을 깨닫고 바로 국회로 갈 준비를 했습니다. 국회로 가는 택시 안에서는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까? 계엄은 얼마나 가는 거지? 특수부대가 들어오고 있다는데 나는 어떻게 될까? 5.18때는 어땠었지? 등등. 근데 한편으로는 설마 이게 되겠어? 하는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아요.

바로 택시를 불렀습니다. 국회 근처에 4일 새벽 12시 15분쯤 도착해서 정문으로 갔더니 이미 모든 출입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회의원과 보좌진은 출입을 시켰는데 다시 차단을 한 거죠. 담을 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국회 담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경찰이 촘촘하게 배치가 되어 담 넘을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어요. 계속 걷다보니 국회 6문 근처에서 국회에 들어가는 군인에게 경찰이 길을 안내하자 사람들이 항의하면서 소란이 일었어요. 일정한 간격으로 담을 지키던 경찰도 그리로 몰려갔고 그 틈을 타서 담을 넘었습니다. 곧바로 뛰어서 본회의장이 있는

자료에서 봤던 그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암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섭기도 했고요. 외곽 출입문과 달리 의사당은 직원 출입을 허용하고 있어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은 진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

모든 집기를 꺼내 출입구를 막느라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여전히 군인들의 진입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보좌진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들어오려는 군인과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내가 도착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임시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가결했고 이후 군인들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던 긴장 상태는 조금씩 누그러졌어요. 그러나 국회 의결 후에도 윤석열은 계엄 해제를 선포하지 않았고, 제2계엄을 할 수 있다는 얘기에 초조한 시간이 너무도 느릿하게 흘렀습니다. 결국 국회 의결 후 3시간 반이 지나서야 윤석열이 계엄 해제를 발표했고 그제야 초조했던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위대한 힘을 느꼈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맨몸으로 중무장한 특수부대 군인들과

싸우고 장갑차를 막아서는 걸 보면서 그 위대함이 그냥 온몸으로 느껴졌어요. 우리 민주주의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도 하구요. 민주적 제도의 소중함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미친 통치자가

총칼을 동원해 계엄을 선포했지만 국회 의결이라는 절차를 통해 막을 수 있다는 점이 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체험할 때 느껴지는 그 신기함. 정말 민주주의는 소중하더라고요. 다행히 윤석열이 탄핵이 가결되었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헌재 판결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투쟁!!!

4.

이미선 (리리 / 19기 워크숍촉진자과정 수료)

안녕하세요. 저는 화곡본동 마을에서 세 아이를 공동육아로 키우며 생활정치를 실현해보려는

리리(이미선)입니다. 비상계엄령 선포 당시 저는, 오랜만에 10시경 아이들을 재우다가 잠들었는데 밖에 있던 남편한테서 전화가 와서 깼어요. 전화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어!"라는 소리에 제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고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열었는데, 직장(제가 최근 진보당이라는 정당의 대변인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단체 소통방에서 빨리 국회로 모이라는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 당시 정말 잠결에 꿈인가, 생시인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리고 집을 나설 준비하며 든 생각은 며칠 못 들어올 수도 있겠다, 제가 국회에서 근무하고 있는 진보정당 활동가이니 우리 집에도 계엄군이 들이닥칠 수 있겠다 싶어 가족들이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정말 어안이 벙벙했지만 어쨌든 국회로 계엄군이 이동을 하고 있다고 하고, 직장에서 국회로 모이라고 했으니 짐을 챙기고, 황급히 들어온 남편과 짧은 포옹을 하고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정말 영화의 주인공들 같았어요) 카카오 택시를 불러 나섰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계엄 소식을 알리느라 부랴부랴 전화통화를 하니, 택시 기사님이 무슨 일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대통령이 계엄을 선언했다고 하니 기사님도 황당해하시며, 80년 광주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국회 앞에 도착하니,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계셨고 경찰들은 국회 출입구를 막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국회 출입증이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한명씩 들여보내 주더니, 나중에는 아예 출입을 막았습니다.

시민들은 문을 열어 달라 거세게 항의도 했습니다. 저는 동료들과 현 상황을 확인하고 모인 시민들과 계엄 해제를 촉구하는 구호를 열심히 외쳤습니다. 이미 기자들이 와있었기에, 더 멀리 퍼져나가길 기대하면서요.

국회의원들이 국회 안에 담을 넘어 들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빨리 계엄해제 의결을 하길 바라며, 저는 단 위에 올라가서 시민들에게 구호를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검은색 헬리콥터가 머리위로

날아가는 겁니다. 몇몇 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있었는데, 어떤 시민들은 깃발을 내리라고 울부짖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표적이 되어 죽는 거라며... 그 때, 저 헬리콥터에서 총을 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치며, 처음엔 두려웠다가 나중에는 두려움도 초월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서울의 봄' 영화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고, 1980년 광주가, 2024년 서울 국회 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시공간을 초월해 현실감이 점점 떨어지기도 했어요. 얼마 후 장갑차와 군 장교들이 탄 버스도 도착했습니다. 시민들이 군인의 접근을 막아야겠다는 마음에 맨몸으로 군용 차량들을 막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 아수라장이었던 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 폭력에 과거의 시민들이 이렇게 쓰러져갔구나. 그리고 그 경험이 우리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고, 학습되어 있다는 것. 결국 계엄 해제를 국회에서 결의를 해냈으나, 모인 시민들은 윤석열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시민들이 계속 남아있었는데요. 기다리며 자유발언이 이어졌는데 국회 앞을 지키는 시민들의 자유발언 속에 벅찬 희망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어요.

시선으로 본 탄핵정국

김지선(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집행위원)

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전청넷)를 통해 코넷(CONET)과 인연을 맺게 된 김지선이라고 합니다. 전청넷은 청년 불평등 문제를 지역 간 협력과

제도 개선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저는 평일 낮에는 주거복지센터에서 일하며 시민들의 주거 문제를

당사자분들과 함께 해결해나가는 일을 하고요. 저녁과 주말에는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를 포함한 청년 문제 관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비상계엄이란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직접 계엄을 겪어본 경험이 없었던 저에게, 비상계엄은 구체적인 실체로 느껴지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는데요. 그럼에도 그 짧은 순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그간 보고 듣고 읽어왔던 계엄과 관련된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장면들을 떠올리니 한층 더 이 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역사책 속에서, 박물관에서, 영화에서나 봤던 일이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뉴스를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 비상계엄을 조금씩 현실로 느끼기 시작하자 두려움과 허탈감이 확 몰려왔습니다. 수많은 시민의 헌신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민주주의가, 우리의 안전한 일상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2030 청년, 특히 청년여성이 이번 탄핵집회의 주축이 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이미 많은 언론에서, 또 청년여성 당사자들이 이 질문에 답하고 있고 제 생각 역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 번 더 이야기해 볼게요. 이미 청년여성들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는 방법으로써, 사회

집회, 기후정의행진, 주거권행진 등에 참여했었는데요. 그때마다 정말 많은 청년여성들을

만났습니다. 언제부턴가는 청년여성들이 집회에 많은 게 너무 자연스러워져서, 왜

이들이 많을까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사안만

달라졌을 뿐, 청년여성들은 계속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왔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청년여성들이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사회적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일상에서,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닐까요. 각종 폭력과 재난, 사고로부터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문제(강남역사건, 이태원 참사, 세월호 등), 젠더 영역을 포함한 불평등 문제(미투운동,

성평등문제 등)등 일상에서,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계엄부터 탄핵까지, 전 과정을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12월 14일 청년 사전집회 때, 함께 자리해 주신 시민들과 함께 ‘바위처럼’ 노래를 불렀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2월 3일 비상계엄 다음날 이른 오전, 청년단체들이 모여 이 엄중한 사안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 지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중 하나가 매주 토요일 3시 열리는 본 집회(범국민촛불대행진) 전 청년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사전집회를 하는 것이었는데요. 12월 7일 첫 사전집회 때는

약 300명의 청년 시민들께서 함께해 주셨고, 14일에는 청년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 분들이 목소리를 모아주셨습니다. 이때 ‘왜 다시 광장으로 나오셨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서, 민중가요도 배웠는데요. 악보대가 없어

제가 악보를 드는 역할을 했었어요. 덕분에 함께 자리한 시민 한분 한분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그때 울컥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추운 겨울에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힘차게 노래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이번 비상계엄으로 인해 제가 느꼈던 두려움과

허탈감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애쓰고 있는데 쉽게

좌절하고 냉소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고요. 이번 비상계엄은 소소한 일상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10여 일 만에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이뤄낸 광장의 힘은 그간 시민들이 만들어온 민주주의가 여전히 굳건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지난 열흘간의 경험이, 앞으로 마주할 상황에 두려움을 가지기보다는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에너지가 될 것 같습니다. 광장에서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했던 시간이, 개개인의 일상을

잘 꾸려나가면서 사회 문제를 향한 관심도 지속할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만난 세계, 다시 만들고 싶은 세계는?

먼저, 윤석열 퇴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지난 임기 동안 보장되지 못했던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존중받지 못했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겨우 최저 수준을 맞추는 게 아닌 적정한 삶의 기준을 논의할 시작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앞선 질문에서 제가 누리는 ‘당연한 일상’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누리기 어려운 일상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생각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고, 애정하는 사람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만나고 싶고 만들고 싶은 세계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인간적 존엄 속에서 보장받는 사회예요. 말로만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 법과 정책, 인프라를 포함한 사회안전망의 형태로 구체화되길 희망하고요.

12월 14일 청년 사전집회 때, 제게 ‘왜 다시 광장으로 나오셨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발언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발언을 준비하면서 제 언어의 부족함을 채워주었던 한강 작가님의 말이 있었는데요.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중략)...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일상의 회복을 희망하는 마음도, 불의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도, 안전하면서도 다채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과 실천도 나와 내 주변 사람들, 공동체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추운 겨울이지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함께

곁을 지켜주고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주민운동연대 출범

인간답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더 큰 연대의 시작

지난 2021년 9월은 한국주민운동이 50주년 되는 해였다. 한국주민운동 50주년을 맞이하여 50주년을 잇는 주민운동의 힘과 생기를 다시 회복하고, 자본주의가 낳은 수많은 불의와 불평등에 맞서 체제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더 넓고 개방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2024년 9월 9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국주민운동연대가 출범하였다. 2년여의 논의와 준비 끝에 19단체가 모여 ‘인간답고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주민운동의 대전환을 이루어 내고자 연대의 마음을 모았다.

“이제 우리는 전환의 시대적 요구와 우리 운동의

위기를 직시하려고 한다.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우리는

주민 현장과 주민사실에 집중해왔다. 우리는 전환의

맥락이 주민과 지역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바로 알고 우리 운동의 대전환을 이루어 내고자 다시 ‘주민 속으로’, ‘지역과 현장 속으로’ 천착해 들어가려고 한다. (중략)

주민운동 50년. 연대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민운동의 근원적 지향은 연대함으로 분명해 지며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미래의

주인으로서 “가난한 주민 민중의 민주주의, 함께 잘 사는 지역사회 공동체, 약자와의 연대‘를 결의하며 한국주민운동연대 새 출발의 역사적인 자리에 섰다. 비인간화, 반생태, 불의한 세상 한가운데서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열려고 한다. 가장 인간적이고 생태적이며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기 위해 희망찬 발걸음 내딛는다.

함께 가자!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열어젖히자! 함께 하자! 연대하자!”

[한국주민운동연대 참여 단체] (19개 단체/2024년 12월 현재)

관악주민연대 관악사회복지 관악새숲도서관 기독교지역(도시)빈민선교협의회 동네야놀자 동자동사랑방 두루두루배움터 사회복지법인복음자리 부산주민운동교육원 천주교빈민사목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삼양주민연대 성동주민회 전국공부방협의회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전국주민협동연합회 한국도시연구소 한국주민운동교육원 해외주민운동연대

[한국주민운동연대 중점 사업(2024~2026)]

전환

관계의 전환, 연대의 전환, 체제의 전환

1. 주민운동 어울림 문화

2. 주민운동 다음세대 양성

3. 주민운동 교육

4. 주민운동 지역화

5. 주민운동 역사

6. 주민운동 연대

「주민운동한마당」 「청년조직가 지원」 「지역민주주의학교」 「시군구 조직화」

「한국주민운동 역사 기록」

「사회적약자 이슈 운동 연대」

한국주민운동연대 창립선언문을 3인의 공동대표(나승구, 정은진, 한순미)가 낭독하였고, 축사에는 윤용주 대표(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박종렬 목사(기독교사회발전협의회), 김혜영 전이사장(스무살이협동조합)이 해주셨다.

안녕하세요, 저는 의정부 청년 협동조합 스무살이 협동조합에서 활동하며 제35기 주민조직가 기초교육과정을 수료한 가을이라고 합니다.

우선 한국주민운동연대 창립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른 선배님들, 후배님들, 동료분들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저를 이 자리에 초대해주시고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얼마 전 새벽에 고속도로를 타고 있었는데요, 기름이 없는데 카드를 두고 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주유소는 계좌이체가 불가능하고 카드 결제만 가능하기에 저는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차가 서 버리면 어떡하지?’ 패닉 상태에 있었습니다.

근처 주유소에 가서 사장님께 계좌이체로 금액을 지금 바로 보내드릴 테니, 카드만 한

번 빌려주실 수 없을지 여쭤보았습니다.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곳을 방문한 다른

운전자 분께도 도움을 요청 드려 보았지만 역시나 거절이었습니다.

흉흉한 세상이기에 이해가 가면서도,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니 순간 사람이 미워지고 세상이 미워지더라고요.

저는 다른 주유소로 갔고, 이제는 누가 오든 말든 휴대폰으로 혼자서 이 난관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요. 그때 한 운전자분께서 먼저 다가와 주셔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봐 주시고, 카드를 선뜻 빌려주셔서 바로 해당 금액을 보내드리고는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미워했다가 다시 사랑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남짓이었습니다.

언제나 제게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삶은 아직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건 잘

만들어진 정책 하나보다도 다정하게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걸어주고,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주민운동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자가 ‘움직일 동’자 인데요.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진심’으로부터 시작되므로, 고귀한 진심들이 모인 이 자리가 빛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솔직히 뭐가 뭔지도 잘 모른 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는 것들을 좇아서 해왔습니다. 그런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청년 활동가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셨던

어른들이 계셨던 덕분이며 여러 분야에서 몸소 실천하시고 행동하시는 모습들에 큰

용기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덕분이었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가장 쉬웠던 건 외면하기, 무너지기, 포기하기였습니다.

반대로 정말 정말 어려운 건 마주하기, 일어나기, 계속하기였습니다.

혼자서는 어렵고 힘든 일이 둘이라고 셋이라고 안 어렵고 안 힘든 것은 아니지만 함께라면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것, 함께라면 포기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있고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누군가는 피하고 도망치고 애써 외면하는 것들에 선뜻, 그리고 깊게 관여하시는 선배님들이 계시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한국주민운동연대’ 창립에 진심 어린 축하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당신이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저 또한 ‘한국주민운동연대’와 상호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늘 함께하며 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민주주의를 광장에서 외치는 시대, 깨어있는 시민들의 더 넓고 개방적인 연대가 요구되어진다. 지역 속으로, 주민 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주체들과 만나고 연대를 넓혀 가야하는 과제를 안고, 2024년 9월 9일 한국주민운동연대는 출범했다. 인간답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다 함께 내딛는 걸음걸음이 서로에게 돌봄이 되고, 웃음이 되고, 역사가 되길 바란다.

2024 (사)한국주민운동교육원·(사)한국도시연구소 창립기념 공동심포지움

모두가 기후 위기를 말하고 있죠. 정부와 서울시도 기후위기

이름으로 토건 사업들을 펼치고 있기도 한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후 정의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누려고 합니다. 이 의제로 가장 날카로우면서도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 주실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학자라고도 소개하지만 기후정의 활동가라고 소개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기후정의동맹 활동가이신 정치학자 채효정 선생님 모시고 누구의 목소리로 기후위기를 말할 것인가 주제 발제를 듣고 주제별 토론을 이어가겠습니다. (이원호/한국도시연구소)

채효정(정치학자, 기후정의동맹활동가)

제가 지금 사는 곳은 강원도 인제예요. 오늘 인제에서 올라왔는데 어제 눈이 많이 왔잖아요. 되게 걱정을 했는데 오늘은 그래도 날씨가 개어서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재난 문자가 정말 눈처럼 쌓여 있더라고요. 그러셨죠? 근데 그 재난 문자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지금 기후 위기를 말하는 방식도 꼭 재난

문자처럼 말하고 있다고 생각돼요. ‘기후 위기다. 위기다’라고 하는데 재난 문자도 눈이 온다. 조심해라 이런 건 얘기하는데 그거 말고는 아무 것도 없잖아요. 언제부턴가 우리가

기후 위기를 얘기하는 방식도 비슷비슷해지고, 그 틀을 이제 못 벗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평등, 기후 정의, 기후 위기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큰 주제 안에서 얘기를 해달라고 하셨는데, 누구나 이제 기후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그거를 어떤 위치에서

누구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위기가 전혀 다르게 상상이 되고, 부상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전혀 다르게 대응할 수 있는데 현재 기후 위기를 말하는 방식은 너무 압도적으로 한쪽에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기후 위기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후 위기 이야기가 되게 압도적이고 우리는 그걸 들으면서 ‘아 그렇구나, 그래야 되는 구나’라고 생각하고, 대부분 너무 또 전문적이어서 이게 옳은지 옳은 얘기인지 틀린

얘기인지를 우리가 검증을 할 수가 없어요.

탄소 배출량 이런 거 계산하면 우리가 계산기 두드려서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도 알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이제 계속 이제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죠. 그런 와중에 기후 정의라고

하는 용어, 개념도 등장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을 가지고 운동을 시작한 거는 짧아요. 2019년 첫 번째 글로벌 기후행진 이후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기후정의행진이

2022년 다시 재개되면서 3만 명이 결집된 대중 운동으로 주목을 받았죠. 하지만 탄소 중립이 어려울까요, 기후 정의가 어려울까요, 사실 탄소 중립이 훨씬 더 어려운 개념이에요. 그런데 탄소 중립은 지금 엄청나게 많이 쓰잖아요. 우리 귀에 계속 박아 넣어서 그렇게 익숙해진

말이잖아요. 근데 기후 정의는 그렇지 않잖아요. 어쨌든 운동을 통해서 기후 정의라는

말을 확산시켜 나가고 또 운동의 좌표로 삼으려고 노력했던 실천의 결과라는 말이죠. 근데

기후 정의가 뭐냐고 물어보면 저는 기후정의 운동을 이렇게 소개해요. 이건 불평등과

싸우는 운동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기후 위기라고 하는 거는 불평등 체제가

만든 위기라고도 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 선진국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성장 체제를 가동시키기 위해서 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느라고 다른 거 돌보지 않았잖아요. 자연을 엄청나게 파괴하고 여성으로부터 수탈하고, 가난한 나라들한테 쓰레기 다 보내놓고, 공해 산업 다 수출해 놓고, 그러면서 불평등이 아니고는 가능하지 않았던 그 체제가 만들어낸 위기인거죠. 그러니까 기후 위기로 인한 불평등과 불평등으로 인한 기후 위기를 이제 동시에 거기에 맞서서 싸우는 운동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말씀을 드려요.

중심부의 지배체제에서 만들어졌으며 그것을 지탱하는 관점과 언어, 담론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여전히 서구-자본주의-기업-백인-남성-

인간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바라본다. 그것은 이 위기를 초래한 근대 문명과

세계관, 자본주의적 시장과 기업 관점, 합리성과 효율성에 입각한 관점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의 목소리로 기후위기를 말할 것인가는 우리가 기후 위기를 어떻게 구상하고

상상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해요. 특히 이렇게 이제 상상과 표상에서 가장 문제적인 것이

과학기술주의적인 재현과 시장주의적인 재현에 너무 압도되고 있어요. 이게 너무 전문가

주의적이고 시장주의적인 방식이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가 않다는 거예요. (중략) 그런데 이 탄소 중립이라고 하는 프레임이 굉장히 지배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것을 압도하고 있어요. 저는 이게 거대한 하나의 상징 폭력이라고 생각을 해요. 어떤 상징을

만들어서 지배 계급이 바라보는 것처럼 민중들 또는 노동자들도 그렇게 바라보도록 혹은

믿도록 만드는 거예요. (중략) 책임을 회피하고 현 질서를 유지하려는 지배층이 구성한

기후위기를 폭로할 때만 우리는 실체적 위기에 올바르게 대응해 나갈 수 있고, 현재의

기후위기를 제대로 진단하고 정의하며, 실체적으로 민중적 대안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죠.

그러면 기후 위기를 누구의 목소리로 어떻게 말할 것인가? 저는 이제 두 가지를 좀 제안을 하는데 먼저, 역사를 빼놓지 말고 얘기하자. 그 다음엔 계급적 위치를 분명히 하고 얘기를 하자예요. 역사를 빼놓고 얘기하면 모든 인류의 문제가 되는 거예요. 이제 역사에서 되게

중요한 교차점이 있는데 사회체제의 역사와 생태적 분기점이 한 번 크로스 되는 시기로 제일 주목하는 연대기가 1990년대예요. 왜냐하면 1990년대를 기점으로 탄소 배출이 폭증을 해요. 1990년대 이후에 배출된 탄소량이 그 이전에 배출된 전체 탄소량보다 훨씬 더 많아요.

30년밖에 안 됐잖아요. 90년대 이후에 그렇지 않아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것밖에 답이 없어요. 그 시기가 사실은 완전히 압축적으로 추출해 내는 자본주의

최후의 마지막 단계였다고 볼 수 있고, 그 핵심이 저는 금융 자본에 있다고 생각해요.

엄청나게 많은 집을 짓고 엄청나게 많은 차를 사고,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빨리빨리 쓰고

버리면서 살아가게끔 했던 그 수단이 바로 부채에 있었다고 생각을 해요. 이 부채가 바로

금융 자본의 배를 불리는 수단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90년대 생태적 분기점 탄소 배출이

급증했던 것과 자본주의 성장의 강도와 규모 양이 엄청나게 팽창했던 시기거든요. 이제는

역사적인 어떤 궤적 속에서 우리가

그러면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의 그 기후거버넌스라고 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작동했는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작동했는지를 지금은 검토해야 되는 시점인 거죠. 그리고 이제

노동자 민중, 농민 빈민 여성 그러니까 기후 위기의 최일선에 있는 당사자의 목소리로 이

위기를 다시 재구성해야 돼요. 서사를 다시 만들어서 우리의 이야기를 가지고 요구를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참 우려스럽게도 지금 이게 펼쳐지고 있는 정세가 그런 걸 잘 해

나가기에 되게 어려워요. 오히려 위기를 이용해서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억압하고 이게 지금 너무 위기니까 찍소리 하지 마라는 식이죠. 시민을 보호하라고 했는데 기업을 보호하고, 노동자의 안전을 얘기했는데 부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얘기하고, 다음엔 난민이나 이주

노동자로부터 내국인의 보호하는 식으로 굉장히 배타적이고 혐오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또 지금 요구 낚아채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우리의

목소리가 낚아채이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도 해야 되는 상황인데요.

그럼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되냐, 저는 저항과 돌봄이라고 하는 좌표를 삼았어요. 저항하는 돌봄, 돌보는 저항. 이 두 개는 반드시 같이 해야 됩니다. 돌봄만 해서도 안 돼요. 지금

왜냐하면 그걸 너무 많이 바꿔주기 때문에. 그 돌봄의 어떤 장소와 우리의 돌봄의 행위가

이 체제에 대한 저항의 행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방식의 운동을 좀 하자. 그 다음에

저항을 하면서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지금 사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세력에

대해서 저항도 해야 되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삶의 벼랑 끝에

서 있고 우리도 지금 막 삐끗 삐꺼덕 하고 있잖아요. 그 사람들도 한 편에서 묶어내면서, 연대하면서, 서로를 구하면서, 저항해 나가자라는 거죠. 저항과 돌봄이라고 하는 척도를 저는 좀 대항 담론에 놓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걸 이제 발제 글에서는 ‘빈자의 방주’라고 표현했어요. 빈자의 방주를 만들자. 왜냐하면 부자들은 부자의 방주를 만들고 있거든요. 빈자의 방주를 우리가 스스로 만들자. 그리고 그 거점이 이 거대한 체제의 어떤

틈새에 균열을 내는 곳이자 우리들의 어떤 저항지이면서도 근거지이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곳을 만들어 가자고 제안을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우리 운동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신명호(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소 소장)

요즘 민간의 사회적경제 운동 진영에서 일부 사람들이 ‘사회적경제’라는 용어를

‘사회연대경제’로 바꾸어 부르자는 주장을 하는 모양이다. 현 정부가 사회적경제를 워낙 적대시해서 예산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우니 이참에 분위기도 쇄신할 겸, 아예 새 이름을

쓰자는 취지인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2000년대에 들어 쓰이기 시작한 용어―‘사회적경제’는 유럽어 ‘Économie sociale’ 혹은 ‘Social economy’의 번역어다. 우리 것이 아닌 수입품이로되, 660년 전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씨처럼 형체를 가진 사물이 아닌지라 처음부터 ‘사회적경제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를 설명하느라 날이 샜다. 낯설었던 ‘사회적기업’이란

단어가 육성법의 제정과 함께 조금씩 우리 귀에 익숙해질 무렵, 그 사회적기업을 위시해서

협동조합, 자활기업, 마을기업 등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회적경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행정기관 입장에서도 그 용어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비록 중앙의 담당 부처는 달라도

그 원리와 성격이 비슷비슷해서 “그게 그거 같던”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 등등을 하나로

묶어서 부르니 ‘관리’하기가 좋았을 것이다. 사회적경제과(혹은 팀)라는 부서명이 생길

정도이니 공무원들도 좋건 싫건 사회적경제 공부를 해야 했고, 하다못해 귀동냥으로라도

이해를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한 계층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들이 쏟아졌다. 지자체들은 청년, 주부, 은퇴자들에게

사회적경제에의 관심을 촉구하고 창업을 권유했으며 또한 지원했다. 기존 재직자를 위한

역량 강화 교육들도 다채로운 이름을 달고 시행되었다. 민관 할 것 없이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을 수립할 때는 ‘일반 시민들이 사회적경제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에 힘쓴다’는 과제도 빼놓는 법이 없었다.

이러한 과정과 노력 덕분에 처음에는 생경하기 짝이 없던 ‘사회적경제’란 말이 어느덧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의 친숙함을 확보했다. 그사이 크게 늘어난 사회적경제기업

종사자들은 자신들을 사회적경제 부문의 일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니 ‘사회적경제’란

용어는 일종의 공유재(commons)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사회연대경제’라 불러야 한다고? 그렇다면 이제까지 ‘사회적경제’만을

알고 있던 이들에게 ‘사회연대경제’를 새로 일러 주어야 할 텐데 그 둘의 차이를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두 개념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새 용어를 가르쳐줘야 할 사람들 중에는 지금은 정부의 돌변한 태도

때문에 ‘인연이 끊겨 버린’ 공무원들도 있을 것이고, 어렴풋이 옛날 명칭을 추억하는

장삼이사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몇 년 후 세상이 바뀌어 사회적경제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그때 가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인가?: “예전에 당신들이 ‘사회적경제’라고 알고

있던 게 그동안 ‘사회연대경제’로 바뀌었어. 세계 유행을 따라가려고 우리가 바꿨지. 둘의

차이가 뭐냐고? 글쎄, 별 차이는 없어. 그냥 같은 거라고 보면 돼.”

사회연대경제로의 개명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가장 주된 이유는 그것이 “유엔의 공식

용어이고 세계적 추세”라는 것이다.01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벨기에에서 최근까지

국제협동조합연맹(ICA) 학술국장으로 일했던 엄형식 선생에게 메일을 보냈다. 사회적경제의 국제 동향에 관한 한, 가장 잘 알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편지에 긴 답장이 날아왔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유엔 결의문의 토대가 되는 ILO 결의문(2022년)에는 “‘사회연대경제’(SSE)는 광범위한 기구들의 견해를 아우르는 포괄적 용어(umbrella term)”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엔이나 국제기구들은 지역과 국가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대체할 보편적 표현을 강제하는 것에 대해 ‘패권적’이라 보기 때문에 매우 조심합니다. 따라서 기존 개념들의 대체 개념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가 아니라 다양한 표현들의 “umbrella term”이라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려는 국가들에서는 점차 ‘사회연대경제’라는 표현을 쓰겠지요. 그러나 이미 자국 전통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개념을 쓰고 있던 나라들에서는 그런 동향이 전혀 없습니다. 가령 유럽연합(EU)과 퀘벡에서는 여전히 ‘사회적경제’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미 실체로서 자리 잡은 개념을 구태여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엔의 공식 표현이니 세계적 추세이니 하는 것은 하등 명칭 변경의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 도리어 제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사회적경제의 본령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고, 법적·정책적 개념들을

엮어 만든 ‘사회적경제기본법’이라는 행정 편의적 법률에 연연하시던 분들이 갑자기 현재의

사회적경제가 정부 주도적이라는 비판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를 정의하는 주체가 된다면 국가가 뭐라 하든, 연구자가 뭐라 하든, 외국에서 뭐라 하든 필요한 만큼만 가져다

쓰면 되는데, 국가 또는 국제기구라는 외부의 권위에 의존하려는 버릇이 반복되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사회연대경제가 유엔의 공식 용어이고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한, 견강부회(牽強附會)의 언설인 것이다. 항상 말에는 역사가 깃들어 있다.

01 이들의 주장은 주로 <라이프인>에 게재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김형미의 “사회적경제에서 사회연대경제로” 라는 글이 있다. https://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16408

‘사회연대경제’(économie sociale et solidaire)라는 용어는 1980년대 프랑스에서

‘사회적경제’(économie sociale) 진영을 비판하며 등장한 ‘연대경제’(économie solidaire)

진영이 20여 년의 갈등과 긴장 끝에 사회적경제 측과 타협한 결과로 만들어진 명칭이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장기 실업자 등 사회적 배제 집단을 포용하는

데 소홀했던 전통적 사회적경제에 대해서, 연대경제 그룹은 사회 연대성을 강조하며

자신을 확장해 나갔다. 국제적으로는 남미의 ‘민중경제’와 연대하여 입지를 강화하면서

사회적경제 진영이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으로까지 나아간다.02 마침내 2000년

무렵, 양쪽은 서로를 인정하고 하나가 되기에 이른다. 그러니 우리의 단어―‘사회적경제’에

우리나라에서의 지난 20년 역사가 아로새겨진 것처럼, Économie sociale et solidaire(사회연대경제)의 첫 페이지에는 실체로서의 프랑스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오랫동안 여럿이 힘들여 지은 집을 일시에 허물고 다시 지을 때는, 파괴에 따른

‘사회연대경제’라는 새로운 집의 찬성 여론이 더 높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수긍이 안 가기는 마찬가지다. 현재의 집을 허물면 어떤 부작용과 혼란이 있을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려주지 않고 ‘새집이 좋으냐?’고 묻는 설문 조사가 과연 타당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집을 허물고 다시 지을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02 김신양(2021), “사회적경제는 어떻게 사회연대경제가 되었나?”, 장원봉 외, 『한국 사회적경제의 거듭남을 위 하여』, 착한책가게.

주민조직운동의

바람, 주민조직가

박재천(한국주민운동교육원 초대 대표)

이번 칼럼은 ‘주민조직운동의 바람, 주민조직가’를 되새긴다. 바람은

어떤 보이지 않는 양심(良心-靈)같은 이미지가 있다. 바람은 계절마다

불어오는 모습이 다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불어올지 모른다. 이런

바람은 때로 잔잔하고 시원한 바람에서 폭풍과 태풍을 불러오는

바람까지, 자연과 인간의 삶에 크게 영향을 준다. 주민조직운동의 바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주민 속에서, 주민지도자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불어오고 주민조직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주민조직가(Community Organizer)를 현장과 주민과 주민지도자의 바람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주민조직가는 주민조직운동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생각과 실천으로 언제나 개입하고 함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보이지 않는 양심(良心) 즉 생각과 실천은 활성화(Animation, 영-기-신-흥힘)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활성화는 어떤 사람과 조직에 생명을 불어넣고, 기를 불어넣고, 신나게 흥을 돋우어서 힘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또 주민조직가는 활성가(Facilitator, 조력자촉진자)라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주민조직가1, 개입하고 함께 있다.

주민조직가의 주된 관심은 현장과 주민과 주민지도자다. 주민조직가는 누구인가? “주민조직가는 주민에 의한, 주민의 운동을 촉진하고 활성화하는 사람이다. 주민 속에서 주민과 함께 일하며, ‘개입하는 과정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주민운동의 힘 조직화p60」” 개입하는 과정의 삶, 이것이 주민조직가의 삶이다. 주민조직가의 개입은 현장과 주민과 주민지도자에 대하여 진정으로 관심을 집중하는 것으로, 이런 관심과 집중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다.

어떻게 진정으로 관심을 집중할 것인가? 여기에 바람이미지가

필요하다. 우선 걸림이 없어야 한다. 바람은 어디에도 걸림이 없듯이.

주민조직가가 가지고 있는 걸림이란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실천이다.

주민의 생각과 실천, 주민지도자의 생각과 실천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그런 주민조직가는 자연스럽게 현장과 주민과 주민지도자에 대해서

걸림이 없다. 그래서 주민에 의한, 주민의 운동을 촉진하고 활성화하는

사람으로서 주민조직가의 삶을 살게 한다.

주민조직가2, 어떤 힘을 만들어간다.

주민운동의 힘, 주민조직운동에서 힘은 무엇일까? 주민조직의 규모나

세력이 힘이다. 그러나 주민조직가는 주민조직의 힘을 물리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힘의 진정성을 놓칠 수 있다. 주민조직의 힘은

조직의 주체이며 주인인 주민과 주민지도자의 생기와 서로 통하는 흥(興)이다. 주민조직가는 현장과 주민과 주민지도자에 대하여 진정으로

관심을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것은 주민조직의 주인인 주민과

주민지도자의 기(氣)를 살리고 활성화하는 일이다.

어떻게 주민의 기를 살리고, 주민지도자의 생동을 활성화할 것인가?

바람은 사람을 시원하게도, 따뜻하게도, 차갑게도, 세차게도 한다. 때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주민조직가는 주민과 주민지도자의

바람이라고 비유했다. 바람처럼 주민조직가는 주민조직의 주인들이

기운이 넘치게,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보듬게, 객관적으로 비판하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게, 조직의 목적과 방향에 맞게 의식하고 실천하게 한다. 그래서 주민조직의 주인들이 기운과 생동으로 살게 하는 힘이 되게 한다.

주민조직가3, 조력하고 촉진한다.

주민조직가는 주민에 의한, 주민의 운동을 촉진하고 활성화하는

사람이며, 주민 속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때문에 주민조직가는 조력하고 촉진하는 현장과 실체를 주민 속에서, 주민지도자 속에서 조력하고 촉진하는 것이 우선이다. 주민조직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실천으로 즉 어떤 지식이나 정보, 관습이나 관행, 시류나 유행, 임시방편 등으로 조력하고 촉진한다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주민에 의한

주민의 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조력하고 촉진할 것인가? 주민조직가는 늘 바람처럼 주민에 대해서, 주민지도자에 대하여 흥얼거려야 한다. 사실 바람은 모든 자연생태에 대하여 흥얼흥얼댄다. 그러면서 자연생태계를 정화하기도, 튼튼하게 하기도, 생기 넘치게도 한다. 바다의 파도가 바람에 따라 해양생태계를 춤추게 하는 것과 같다. 주민조직가도 주민을, 주민지도자를 흥에 겨워서 자꾸만 입으로 흥얼흥얼대며 음미하는 것이

좋다. 주민조직가의 이런 음미가 주민에 의한 주민의 운동이 되도록 하는 조력과 촉진제 역할을 하게 한다.

주목1, 주민조직가는 어떤 보이지 않는 양심에 대하여 성찰하고 있는가?

양심은 각 개인을 성장시키고 사회를 혁신하는 힘이다. 때문에

주민조직운동 원리의 주체인 주민과 주민지도자, 주민조직가 모두가 각

개인의 삶과 양심에 대하여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주민조직가는

현장과 주민과 주민지도자에 대하여 어떤 보이지 않는 조직가의 양심에

대하여 성찰하는 훈련이 더 필요하다.

주목2, 주민조직가는 어떤 보이지 않는 양심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이 질문은 어떻게 주민조직가 개인의 양심을 성장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양심을 쌓고, 양심을 쓰고, 양심을 닦고, 양심을 펴고, 양심대로 하고 등 양심에 붙어있는 실천들이 많다. 주민조직운동에서는 이 모두가 필요하겠으나 특히 주민조직가는 주민과 주민지도자에 대하여 양심의

무엇을 더 성장시켜야 하는 지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일상적 실천-대화적 행동

최종덕(한국주민운동교육원 트레이너)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어느 시대이든지 인간사회에는 억압구조가 존재하고 비인간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1968년 브라질의 교육사상가 파울로 프레이리는 피억압자의 교육학이란 이름의 페다고지를 세상에 내 놓았다. 억압구조에 순응하게 하는 주입식-은행저금식 교육을 거부하고, 비판적 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문제제기식 대화 교육만이 인간화의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다운 삶을 향한 참된 의식과 행동을 고민하는 이들이 계속 곱씹어 보아야 할 책이다.

「A 주민조직의 주민대표와 활동가(조직가)는 최근 고민이 깊어졌다. 조직의 일상 활동은 여전하다. 회의도 정기적으로 하고, 기본 사업과 행사도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리더들의 역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새로운 리더(지도력)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내부적으로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다. 주민조직의 사업과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리더들이나, 거기에 참여하는 주민의 열의가 예전 같지 않으니 기운이 빠진다. 외부에서 찾아오는 손님이나 외부로 나가서 연대하는 활동이 그나마 자극이 된다. 그러다 보니 외부 단체의 활동문화에 점점 익숙해지고, 그것에 만족하는 리더들과 회원들은

적극적으로 연대 활동에 참여한다. 조직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보다 외부의 자극이 더 에너지가 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주민대표와 활동가는 임원들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더 열심히 해보자고 독려해도 그다지 변화가 없어 보인다. 주민대표와 활동가(조직가)는 이런 현실이 답답하다.」

의식적 대화의 주체

어느 순간 의식적 대화가 멈춰진 것을 느끼게 된다. 일상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인사하고 안부와 근황을 묻고 답한다. 회의에서 보고하고 안건을 처리한다. 행사가 끝나면 평가를 한다. 모두가 일상의 반복이 되어 버렸다. 주민조직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리더들이나 회원(주민)들은 주민조직 운영에 필요한 수단이 되고 만다. 회원(주민) 개개인에게 삶의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 해결을 위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거나 직접 해결해 준다. 회원(주민) 개개인은 주민조직의 지원 대상이다. 다시 읽는 페다고지 의식화의

이런 현상을 근본적으로 성찰해보면, 주민 리더들이나 회원(주민)을 대상으로 여길 뿐, 진정한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현장 활동가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주민들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인사하는 것은 기본, 주로 사업이나 활동을 안내(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하고, 참여한 소감도 물어보고... 그럼에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은 의식적 대화 주제를 못 찾겠다는 말이다. 못 찾는 것이 아니라 안 찾은 것이다. 주민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활동가들끼리 모이면 엄청나게 할 말이 많다. 많은 의식적 대화를 한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과는

하지 않는다. 주민을 의식적 대화의 주체가 아니라, 단지 활동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적 대화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주민 리더들이나 주민(회원)을 인식대상, 즉 사물의 위치로 전락시키는 것과 같다.

주민의 프락시스

문제제기식 교육에서 다루었던 자활사업단 주민리더(반장) 교육의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다. 주민리더들과 담당 실무자들이 함께 하는 교육이었다. 주민리더들과 의식적 대화 주제들을 던지고 토론하고 작업하고 발표했다. 교육이 끝난 후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주민리더(반장)들 : 왜 센터 실무자들은 이제까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나?

실무자들 : 반장님들이 자활사업에 대하여 그 정도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

왜 이럴까? 간단하다. 실무자들이 주민과 자활사업에 대한 의식적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하루 일정이나 업무 수행에 대한 이야기만 주로 했다. 주민을 자활사업단 참여 대상으로만 여기고, 자활사업을 수행하는 의식적 주체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주민을 사고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사고의 주체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행동-성찰-행동이 순환하는 과정으로서 프락시스(praxis)는 의식과 행동을 촉진하는 원리다. 이 과정에 대화가 있다. 프락시스가 일상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면, 대화 또한 일상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자활사업 실무자뿐만 아니라 현장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프락시스는 일상적으로 한다. 그러나 정작 주민의 프락시스를 촉진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나 교육, 행사 등에 주민 만족도 조사는 한다. 이것은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주민의 만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주민을 만족시켜야 야 할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민의 의식과 행동에 변화가 없다고 강변한다.

반대화적 행동 : 정복, 분할, 조작, 문화 침략

반대화적 행동의 첫째 특징은 정복 욕구다. 지시와 명령, 지침 등으로 관리하고 그렇게 관리되고 있는

현실을 고정불변한 진리처럼 신화화하여 주민에게 내면화시킨다. 고대 로마

주고 그들을 ‘어르고 달래서’ 침묵하도록 만든 것과 같다.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공동체를 분할하며 통제한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고 자기에게 힘을 실어 줄 사람 중심으로 활동한다. 편 가르기는 곧 분할이다. 심지어 활동가(조직가)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주민을 리더로 세우고 다른 주민을 관리하게 한다. 그 리더는 주민이 아니라 활동가-조직가와 일한다. 이 또한 분할이다. 리더십 훈련 과정에서 비슷한 분할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활동가들이 그런 의도를 품지 않았다 하더라도) 리더십 훈련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능력으로 다른 구성원들을 소외시키며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하기 때문이다.

주민이 조직화를 이루는 길에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하나는 주민이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조직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목적을 실현하려는) 타인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다.

조작은 주민을 침묵하게 하고 사고하지 못하도록 만들며 자기 목적 실현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주민이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조직화된 힘을 가지려 할 때, 주민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조작의 책략’을 부리는 반대화적 행동이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조작의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주민의

왜곡시키고 문제의 진정한 원인과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게 한다. 나아가 시혜 서비스를 무기 삼아 주민을 무력화시키고 분열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문화침략은 반대화적 행동의 근본적인 특징이다. 활동가-조직가들이 주민에게 자기 삶의 목적과 가치관을 강요하고 주민의 말-표현을 억제하며 그들의 창조성을 떨어뜨리는 현상을 자주 본다. 주민은 활동가(조직가)를 동경하고 그들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싶어 한다. 전문가 의식에 젖은 활동가(조직가)는 이런 주민의 모습을 기뻐한다. 이것은 주민의 삶과 가치관을 열등한 것으로 보는 것이며, 주민이 언어와 삶의 가치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

대화적 행동 : 협동, 단결, 조직, 문화통합

반대화적 행동은 정복의 주체가 다른 사람들을 정복하고 ‘대상-사물’로 전락시키는 것이었다면, 대화적 행동은 대화적 주체들이 서로 협동해 삶의 변화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협동은 주민의 잠재력을 믿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주민과의 친교가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대화적 친교가 곧 협동이다.

반대화적 행동은 주민을 분할시켜 통제하려 하지만, 대화적 행동은 끊임없이 주민 사이의 단결 그리고 주민과 활동가(조직가)의 단결을 도모한다. 주민의 단결은 ‘구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민의 단결은 자기 존재가치, 소속감,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 놀이, 노래, 집단 활동 등의 ‘문화 활동’에서 일어난다. 대화적 행동은 인간을 분할하고 사물화하는 문화를 거부하고 단결하는 문화활동을 창조한다.

조직화는 단결의 자연스런 발전이다. 주민 리더를 포함하여 활동가(조직가)가 단결을 추구한다면

필연적으로 주민을 조직해야 한다. 또한 주민 자신의 조직화된 행동이 공동의 과제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해 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주민이 자신의 삶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는 의식적 실천으로 조직화한다. 그 결과 주민과 더불어 사고하고 행동하는 주민조직은 주민으로부터 참된 권위를 얻게 된다. 조직화는 주민이 함께 참된 삶, 참된 권위를 경험하는 고도화된 교육 과정이다.

활동가(조직가)는 ‘다른 세계’에서 출발하여 주민의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무언가를 가르치고 전달하고 부여하기 위하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더불어 주민의 세계에 관하여 배우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다. 문화통합 행위자들이다. 주민의 삶으로부터 생성적이고 유의미한 대화주제를 연구하는 것은 문화 통합을 향한 행동의 출발이다. 주민의 관심사, 사회적 인식, 삶의 태도와 신념 등 주민의 세계관을

존중하고 동시에 그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며 새로운 삶의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A 주민조직의 대표와 활동가-조직가는 리더들과 회원(주민)들의 삶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면 좋겠다.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 말아야 한다. 겸허하게 그들과 대화할 주제를 찾아내고 진지한 대화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표와 활동가가 마주치는 사람들과 일대일로 의식적 대화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물론 이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모이고, 때로는 회원(주민)들을 초대하여 의식적인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대표나 활동가(조직가) 자신만의 프락시스가 아니라 진정한 주민의 프락시스가 일어나게 해야 한다. 정복 · 분할 · 조작 · 문화침략과 같은 반대화적 행동 방식이 아니라, 협동 · 단결 · 조직화 · 문화통합의 대화적 행동방식을 구상하고, 이를 중요한 조직 활동으로 삼고 실천하면 좋겠다.

현장일기

주민조직가 일기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날씨: 맑음

강슬기 (의정부EXODUS 활동가)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오랜 기간 국내 거주한 미등록01 이주아동02의 체류자격

부여제도가 존재하지 않음에 따라,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 사건(19진정073100)에 관해

법무부장관에게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적정한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에 법무부는 2021년 4월『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이하 구제대책)』03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구제대책의 까다로운 신청

조건, 한시적 시행 기간, 과도한 범칙금은 큰 걸림돌이었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극소수의

미등록 이주아동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뿐, 인권위 권고에 따른 근본적인 대책이 아님을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하였다. 결국 법무부는 2022년 1월, 신청 조건을 완화하고 범칙금 추가

감면을 골자로 한 개선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2025년 3월 31일까지 시행하는

한시적 대책에 불과하였다. 어느덧 구제대책 종료일은 90일도 남지 않았고 여전히 법무부는

구제대책의 시행 지속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01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하거나 한국에서 태어나 90일 이상 체류하려면 ‘외국인등록’을 해야 한다. 외국인등록은 한국인으로 치면 주민등록과 같은 것으로, 외국인등록을 하면 부여받는 외국인등록번호는 주민등록번호와 마찬가 지로 신분 증명과 본인인증에 사용된다. 하지만 외국인등록은 주민등록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외국인등 록을 하려면 90일 이상 장기체류할 수 있는 ‘체류자격’이 있어야 한다. 흔히 비자라고 부른다. 둘째, 한 번 등록을 하

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유효 기간이 있다. 유효 기간이 끝나기 전에 비자를 갱신하거나, 좀 더 오래 체류할 수

있는 다른 비자로 변경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미성년자들은 독립적인 비자를 발급받지 못한다. 부모가 먼저 비 자를 받고, 거기에 수반되는 ‘동거’나 ‘동반’ 같은 비자를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비자가 없거나 만료된 채 미 등록으로 체류하고 있으면, 그 자녀는 어쩔 수 없이 ‘미등록 이주아동’이 된다. 02 본인 또는 부모가 ‘이주’의 경험과 배경을 지닌 만 24세 이하 연령의 아동과 청소년 모두를 지칭한다. 출생지 (국내 또는 국외), 체류자격 유무(등록 또는 미등록), 국적 및 출생등록 여부(외국국적, 무국적)에 따라 속하는 범주 가 달라진다.

03 2021년 발표된 구제대책은 국내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계속해서 국내에 체류했고, 국내 초·중·고등학교에 재 학 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대상 아동의 부모에게는 범칙금 납부를 조건으로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임시 체류자격을 부여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만 법무부는 이 구제대책 을 2025년 2월 28일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2022년 구제대책 개선안을 통해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는 아동의 국내 체류기간은 15년 이상에서 국내에서 출생했거나 영유아기에 입국한 경우는 6년 이상, 영유아기를 지나 입국한 경우는 7년 이상으로 줄었다. 범칙금 납부 능력이 부족한 부모들에게는 범칙금을 감면해주겠다는 내용도 추 가되었다. 그러나 구제대책 개선안도 2025년 3월 31일까지라는 한시적 시행을 전제로 하고 있다.

구제대책 보도 자료가 발표된 날 아침, 나는 병원에서 한 난민여성과 동행중이었다. 소식을

듣고 구제대책을 통해 비자를 얻게 될 이주아동의 얼굴들이 떠올랐고 너무 기뻐 눈물이 났었다. 이주민, 난민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한국에서 비자를 받고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늘 이야기 해왔고, 진짜로 어머니들이 바라던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활동 초기에

만난 많은 아동들은 성장해서 현재 초·중·고에 재학 중이다. 구제대책 신청요건이 맞아

신청 가능한 아동들은 대부분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범칙금(부모가 7년

이상 미등록으로 체류한 경우 1인 900만원)을 준비하지 못하면 신청에 어려움을 겪는다.

새로 태어난 동생들은 조건이 맞지 않아 여전히 미등록 체류상태로 남게 되고, 본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보호자들은 본국으로 떠나야 한다. 이런 구제대책을

기적이라 불렀는데 이마저도 곧 종료 된다.

개선될 점이 많은 구제대책이지만 상시적 제도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컸다.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이주배경아동청소년들을 만나며 계속 구제대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말마다 모여 구제대책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작은 이야기가 터지더니,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는 충격적이었고 일상에서 미세한 인종차별들이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차별들이 한 사람에게 쌓이는 경험은 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한 미세차별을 매일 겪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한 명이 눈물을 흘리니 다른 친구가 함께 눈물을 흘린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 서로를 공감하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 자체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기를 바랐다.

본격적으로 기자회견을 준비하게 되었고 2010년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미등록 청소년, 청년들의 첫 기자회견 영상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기자회견 때 사용할 현수막과 피켓도

직접 함께 만들었다. ‘WE ARE ALL DREAMERS(우리 모두는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의 이름도 지었다. 기자회견에 발언자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초대할 수 없었다. 대신 그를 추모해야 했다. 기자회견이 있기 바로 일주일 전, 전북 김제시에 있는 특장차 회사에서 산재로 돌아가신 고 강태완 님이다.

고 강태완 님은 1998년 1월, 만 5세 나이에 엄마를 따라 몽골에서 한국으로 이주하여 초.중.고를 모두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고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던 그는 결국 2021년 7월, 법무부가 자진출국 신고를 하고 본국에 돌아가는 미등록 이주민들에게 다시 입국할 기회를 주겠다고 하여, 스물아홉의

나이에 몽골로 자진출국을 했다. 2022년 3월 한국의 대학에 합격하여 구제대책을

신청했고 유학 체류자격을 받았다. 다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안정적인 체류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경기도

군포에 살았지만, ‘지역특화형 비자’를 얻기 위해 전북 김제에 있는 회사로 취업을 하였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는 입사 8개월 만에 2024년 11월 8일 산재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04

내가 이주아동들을 어떻게 조력해야할지 고민할 때 고 강태완 님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되었고 그를 통해 길을 만들 수 있었다. 고 강태완 님이 걸어간 길은 내가 지역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이주아동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이었다. 그런데 그가 산재로 사망한 날 인터넷에

올라온 뉴스기사는 ‘또 ‘기계 끼임 사망’···김제 특장차 제조공장서 이주노동자 숨져‘ 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평생 한국이름과 몽골이름 사이에서 고민하면서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던 그였다. 어렵게 돌아온 한국에서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체류자격을 얻은 그였다.

한국에서 자라고 한국어를 잘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함께 갖고 있는 그였다. 그런 그를

이주노동자, 외국인이라 부르고 있었다. 비통하고 견딜 수 없이 아프고 슬펐다. 04 이후 고 강태완 님이 근무했던 회사 HR E&I는 사고 원인을 고 강태완 님의 탓으로 돌리고 회사는 아무런 책임 이 없다는 태도로, 책임을 통감하는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라는 유족의 요구를 수용 하지 않으면서 장례는 미뤄졌다.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 기자회견, HR E&I 규탄 현수막 걸기, HR E&I 본사 앞 출근 길 피켓시위, HR E&I 규탄집회와 故 강태완님 추모제 등을 진행하며 회사와 싸워야 했다. 30여 일이 지난 12월 10 일, 유족과 회사는 다음과 같이 합의를 하게 되었다. ▲ 회사는 책임을 통감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한다. ▲ 회사는 사 과문을 작성해 홈페이지에 올리고, 2024년 12월 31일까지 게시한다. ▲ 회사는 행정청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되, 특히 다음과 같은 유족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긴급 정지 기능 등 우선 개발 및 적용, 장비 운 용 시 충분한 안전 공간 확보, 유족이 지정하는 대리인에 재발 방지 대책 수립에 대한 확인) ▲ 회사는 산재신청과 관련해 적극 협조한다. ▲ 회사는 소정의 합의금을 유족에게 지급한다.

고 강태완 님을 기억하며 11월 16일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토요일 오전에 진행된 기자회견 자리에 놀랍게도 전국 이주인권 포함

시민단체 활동가와 변호사, 지역 활동가, 종교인, 예술인, 시민 등 70여명이 참석해주었다.

‘WE ARE ALL DREAMERS’ 청소년들은 자신들만 있을 줄 알았던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와주어 용기를 얻었다고 하였다. 처음 기획하고 참여하는 기자회견이었기에 긴장되고

어색했지만, 함께 박수치며 공감하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한다. 연대의 힘이었다.

함께 마음을 나누며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우리가 계속해서 연결되고 연대할 때, 삶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고 강태완 님을 기억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곁을 지켰으면 좋겠다. 고 강태완 님의 다채로운 삶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그의 삶을 체류자격 안에서밖에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있다. 고

강태완 님에게 체류권 이상의 더 자유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거주할 수 있는 권리가

한국에 살게 된 것은 아동의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주아동 스스로 선택의 자유가 있는 삶을 펼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고 강태완 님을 통해 다른 이주아동들이 선택할 길을 보았고, 이제부턴 그 길 위에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주민지도자 일기 현장일기

부산지부 주민지도자과정을 마치며

2024년 8월 8일, 목요일, 날씨: 폭염

강혜정 (부산자활기업협회 협회장)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로 기지개를 켤 무렵, 한국자활기업협회 부산지부 회원사들을 위한 주민지도자과정이 시작되었다. 전국 최초로 광역자활센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10명의

교육생들이 장장 2개월간의 여정을 꾸렸다. 한국주민운동교육원과 한국자활기업협회가 전국 지부 임원들을 대상으로 매년 진행하고 있지만, 부산에서는 지부 회원사들의 참여 독려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1회차는 6월 13일에 진행되었고, 환영과 인사로 문을 열었다. 늘 보는 대표와 중간관리자들이었지만 주민지도자과정의 훈련생으로 함께 만나니, 어릴 적 엄마 손잡고 간 초등학교 입학식이 떠올랐다.

반장 짱구 이상철, 꼴통 서상복, 오뚜기 유영순, 깡양 강혜정, 둘리 김지훈, 보슬비 주보순, 전실장 전성재, 꽃돼지 김연지, 돌봄 장태희, 김팀 김진희. 개성 있는 별칭을 정하고 인사를 나눴다. 다들

무엇이든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참여했고, 대표로서 이들이 자신감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 자활기업의 비전을 품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다양한 기대를

안고 수줍은 1차 모임은 맛있는 회와 그리고 달콤 쌉싸름한 소주 한잔으로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늘

그렇듯 우리 주민운동과 자활기업운동의 시작을 듣고 있노라면 뭔지 모를 뭉클함이 솟아오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귀한 움직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2회차는 ‘자조금융과 주민지도자에 관한 주제’였다. 내가 배우고 싶은 내용이었다. 어떤 지도자를

본받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훌륭한 경영인처럼 되고 싶다는 훈련생, 프란시스코 교황처럼

솔선수범하고 검소하게 살고 싶다는 훈련생, 낮은 자들과 함께하는 마음가짐을 본받고 싶다는

동료들의 대답이 오갔다. 내가 생각지 못한 지도자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져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오인숙 전 한국자활기업협회장님을 본받고 싶다. 상대가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기회를 주는 겸손함, 원만한 조직 운영을 위해 몸에 배인 배려심, 언행일치와 강단까지. 난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런데 사실 쉽지 않다. 정말이다.

3회차는 ‘주민지도자의 말과 소통’이라는 주제로 부산주민운동교육원 유영란트레이너가 진행하였다. 자신의 소통에 대해 간단한 테스트도 해 보고, 영상도 보는 즐거운 수업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의사소통의 기술이었다. 두 명씩 짝지어 이야기하고 들은 대로 돌려주고, 확인하며 듣기였다. 난 십오야 박기홍 트레이너랑 했는데 열심히 들었는데 기억이 잘 안 나서 너무 창피했다.

‘내가 건망증이 있어서’라고 변명은 했지만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만 빼고 다들 상대 말을 너무 잘 들은 거 같다. ‘말의 힘’이란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거고, 상대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을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회차를 지나 5회차는 우리가 어려워하는 ‘민주적 회의운영’이라는 주제였다. 회의는 어렵다. 회의는 왜 하는 걸까?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중지를 모으기 위함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조직의

발전을 위해 모두가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다. 그러나 정작 회의에 대해 공부하거나 배워본 적이

없어서 회의 운영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묻고 답해본다. 기본적인 조직 경영을 위해 회의는 필요한데 중요한 건 어떤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지 구성원들이 알아야 의견을 낼 수 있다. 주민이 자활기업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한다. 정기적으로 사업을 계획하고 평가하는 회의는 기업 운영의 중요한 책무이자 원리이다. 우린 일상에서 당연한 것들을 놓치고 살기 일쑤다. 회의가 그렇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못하고 안하고 이래저래 넘기며 살아간다.

6회차를 지나 7회차는 강서구지역자활센터에서 진행하였다. 윈드서핑을 즐기는 멋진 여성! 정은숙센터장님의 시원한 환영사와 더불어 생기 팍팍 넣어 격려사까지 기분 좋게 시작했다.

‘자활기업은 자활사업의 꽃이라는 데 어떤 의미일까?’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으니까? 그런데 꽃으로

끝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단단하게 뿌리내려야 나무에 영향을 충분히

지원하고 탄탄하게 키워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지역사회에서는 우리가 받은 것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협회 활동을 하는 것은 더불어 일어서보자는 마음으로 하는 거다. 이익만으로 움직이지 않고

옳고 그름으로 움직이는 협동경제의 주체로 자활기업을 세우는 거다.

8회차까지 모두들 열심히 참여하고 깨달아간다. 수료식은 서로가 서로에게 수료증을 전달하며

뜨거운 마음을 전했다. 울컥 눈물이 나올 분위기였지만, 다들 후련한 마음에 그렇지도 않았다. 올 여름도 꽉 찬 일정으로 뿌듯했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우리 동기들의 열기까지 참으로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이 열정과 기운을 모아 9개의 공동신조가 만들어졌다.

제1기 부산 자활기업 주민지도자과정 공동신조

1. 나는 자활기업 지도자로서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진다.

2. 나는 자활기업 지도자로서 인식과 열정을 가진다.

3. 나는 자활기업 지도자로서 칭찬을 생활화 한다.

4. 나는 자활기업 지도자로서 구성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5. 나는 자활기업 지도자로서 구성원과 작은 일도 공유한다.

6. 나는 자활기업 지도자로서 구성원과 회의를 통해 의사 결정한다.

7. 나는 자활기업 지도자로서 구성원과 함께 협회 활동에 참여한다.

8. 나는 자활기업 지도자로서 다른 기업의 소식에 관심을 갖는다.

9. 나는 자활기업 지도자로서 내외부에 자활기업을 열심히 알린다.

우리 부산지부 주민지도자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신 부산광역자활센터 이윤희 센터장님, 교육지원부 유순옥부장님, 이소림, 김민주과장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부산까지 좁은 KTX열차 타고 왕복하시느라 고생하신 박기홍, 최종덕, 이보영트레이너 참, 고맙습니다.

우리의 자활기업! 나의 자활기업! 자활은 오늘도 나의 심장을 나대게 만든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늘 함께해 준 그리운 이들이 떠오른다. 그 그리운 이들은 나에겐 태양이고 밤하늘의 별이다.

자활이라는 광활한 벌판을 휘저으며 달려가는 사람들, 그 틈에 나도 함께 달려본다. 오늘 밤은 그런 밤이다. 꿈속에서 광활한 벌판을 휘젓고 다닐테다!

다시 살아가는 주민지도자

24기 주민지도자과정은 살아남은 자들의 여정이었다.

지독한 폭염으로 따가웠던 8월, 숙박 일정으로 이동하던 중 타이어가 터지는 사고가 났다. 터널을

나오자마자 ‘펑’소리와 함께 차가 흔들렸지만 다행히 갓길에 주차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사고에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다”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그날 밤, 우린 둘러앉아

놀란 속내를 털어 놓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린 다시 태어난 거다, 주민운동 열심히 하라고. 앞으로의 삶을 선물 받은 거다. 자녀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싶다” 함께 놀란 마음을 나누니 안심되었고, 안심된 마음을 나누니 고마움이 솟아났고, 고마움으로 넘어설 힘이 생겨났다.

그래서 24기 주민지도자과정은 ‘다시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이다. 넘어져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생명력을 가진 이들, 아프고 힘들어도 서로 보듬고 도우며 끝끝내 살아내서 나아가는 이들. 이 과정을 함께 한 아름다운 수료생 5인의 소감이다.

조남철 (사랑/동자동사랑방)

친구들과 같이 보냈던 많은 시간이 생각 날 것 같네요. 주민지도자 과정 24기 친구들 그동안 수고 많이, 많이 하셨습니다. 친구들과 첫 만남이 얼마 지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느새 아쉬운 수요일이 다가옵니다. 저는 배우고자 했던 주민과의 대화나 관계맺기도 주민만나기를 통해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1박 2일 수유동에서 인생이야기 나누던 게 기억에 남네요. 2박 3일 부산 대연우암 공동체

정금희(해바라기/창신동건강돌봄회)

24년 주민지도자 과정은 그동안 활동들을 돌아보는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성구 조직가님의 추천을 받고 부담이

커서 망설이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고 지원해주신 덕분에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주민리더로, 단체에서

활동가로 자신 있게 앞에서 이끌어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던

모습, 무엇이든 먼저 해주며 생색내던 모습을 떠올리며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주민운동은 주민 스스로의 운동이며,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주민이 서로 돌보고 협동하도록 돕는 주민지도자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주민의 그늘이 되어주고 응원하며 함께 품고

다음으로 가도록 응원하는 것 또한 배웠습니다. 함께 한 24기

훈련생들, 수고해 주신 트레이너님들 행복했습니다.

최갑일(스마일/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번 지도자 과정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나는 원래 학교 다닐 때도 숙제란 걸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했는데 갈수록 어려운 과제가 나오고, 일주일에 주민 2명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솔직히 열두 번도 더 그만두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버텨보자 해서 버텼다. 주민지도자가 이게 말이 쉽지, 생각과 행동은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주민지도자는 주민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라는 뜻도 배웠다. 24기 동기들이 모든 면을 같이 했고 한마음으로 해왔다. 그러면서 서로 끈끈해졌다. 우리 24기 모두, 주민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거라 느낀다. 같이 웃고 즐기고 공부하면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과정을 하면서 내가 사람이 좀 된 것 같다. 끝나서 아쉽지만 그런대로 재밌었다.

이상섭(날다람쥐/윗말주민협의회)

2024년 24기 주민지도자 3개월 교육ㆍ훈련을 통하여 그동안 지역공동체 대표로 활동하며 지내온 자신과 공동체를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민운동은 주민이 주체가 되어

주민 스스로 하는 것이며 주민지도자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잘 듣고 주민들 곁에 함께 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주민들을 살피며

주민들과 공동 목표를 세워 한 방향으로 나가도록 응원하고 격려하며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과 마을공동체, 지역사회의 변화는 나

자신부터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행동하고 성찰하고 행동하면서

자신이 변화되면 주민들이 변화되고 마을공동체가 변화되고

지역사회가 변화될 것입니다. 앞으로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함께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공동체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법을 모색해 나겠습니다. 무더운 폭염 속에 교육과 훈련을 철저히 준비하여 힘써 주신 트레이너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교육과 훈련에 동참하여 한분도 빠짐없이 24기 모든 분이 함께 수료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드립니다. 성취감, 감사함, 희망, 그리고 새로운 지식과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조덕남(독곰/윗말주민협의회)

이 한 몸 어찌 살까 했는데, 여러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코넷

주민지도자 교육을 받으며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우선 삶의 가치를 찾았습니다.

내 남은 시간들을 채울 수 있는 의미를 찾았어요. 그동안 내 방식, 배운

대로 경험대로 살아 온 굳어 있는 생각들이 풀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넷 교육은 젊은 사람들이 받아야 하지만 늙고 고립된 마음을

여는데도 중요한 교육인 것 같습니다. 나의 안위보다 주민의 안위를 생각하고, 세상을 향해 소리 내는 나팔이 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시흥시 주민조직가 워크숍

김용현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 사무국장)

2024년 12월, ‘주민조직화 교육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시흥시에서 살고 있거나 활동하고 있는 주민조직 가 교육훈련 수료생 4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2022년에도 비슷한 취지로 모임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때 함께했던 사람이 11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40’이란 숫자가 제법 크게 다가온다. 각기 다른 현장에서 일하면 서, 다른 시기에 주민조직가 교육훈련을 수료했지만,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사람들. 우리는 어떻게 지내 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 만나고 있는가? 무겁지 않게, 그렇지만 주제를 갖고, 서로 대면할 시간을 바라는 여 러 사람의 바람으로 마련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복음자리-주민의지역사회교육원-시흥

1976년 양평동 판자촌의 ‘복음자리’ 사랑방에서 비롯하여 복음자리·한독·목화 마을까지 이어진, 조직된 주 민들의 힘은 자신과 이웃의 삶과 지역사회를 변화시켰다. 1985년에 만든 ‘작은자리’ 회관은 그러한 힘을 만

들고 확산하는 거점 공간이었는데, 1990년대의 사회변화에 대응하여 마을공동체운동에서 지역사회로 활동 의 폭을 넓히면서, 1996년에 ‘작은자리’를 ‘작은자리사회복지관’으로 바꾸고, 운영 법인으로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를 설립했다. 법인 설립 20주년이 되던 2016년, 사회운동에서 비롯한 복음자리가 정책수행자 역 할에 충실한 채 주민의 힘이 아닌 단체의 영향력만 커지는 게 아닌지 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주

민의 조직된 힘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사회를 이루기 위해 2017년부터 ‘주민의지역사회교육원’ 활 동을 시작했다.

한국주민운동교육원과 연대하여,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복음자리 실무자들이 참석하는 ‘복음자리 주민 조직가 교육훈련’을 9회 진행하면서 74명이 교육훈련에 참석하여 수료했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 과제를 발 견했는데, 하나는 주민조직가 교육훈련을 받는 훈련생들이 자신을 ‘조직가’로 인식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이 고, 다른 하나는 ‘주민지도자 교육훈련’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민의지역사회교육원 활 동 평가를 하면서, 주민조직가 및 주민지도자 교육훈련은 시흥의 다른 단체들과 함께 만들어가기로 하고, 2022년 8월부터 6개월 정도의 준비 과정을 가졌다. 개별 기관 및 실무자들을 만나고, 네 차례의 전체 회의 를 거쳐 2023년 3월에

10월에 ‘시흥 주민리더 아카데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2024년에도 두 과정을 다시 열었고, 그 결과 두 해 동안 진행한 주민조직가 교육훈련 에는 18명이 참석하여 수료를, 주민리더 아카데미에는 12명이 참석하여 10명이 수료를 하였다.

조직가로 일한다는 것은 양파를 까는 것과 같다.

조직가로 일한다는 것을 주제로 한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은 조직가로서 자신과 주민과 현장을 살펴보고 어 려움을 공유했으며, 그것만으로도 예정한 2시간은 너무 짧았지만, 자신과 주민의 상황을 주도적으로 만들 어가기 위한 연대의 필요성까지 얘기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워크숍에 참석한 대부분이 저녁 식사를 같 이했고, 한 차례 옮긴 마지막 자리에서도 10여 명이 남아, 웃음과 진지함과 한숨이 뒤섞인, 시끌벅적한 대화 가 이어졌다. 국가 정책으로 운영하는 기관의 실무자로서 주민조직가 교육훈련을 수료한 참석자들이 조직 가로서 일하는 데 겪는 어려움은 비슷했다. 제도의 목표 및 성과 지표와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한 어려움과 주민들과 동료들을 만날 때 소통의 방식과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한 어려 움, 조직가로서의 정체성과 실천을 고민하는 다른 사람들, 가까이에 있지만 만나지 못했거나 만나더라도 그 러한 관점으로 얘기하지 못했던 사람들, 주민들을 만나고 있는데도 점점 주민들과 멀어져가고 있다고 느끼 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한 참석자가 말했다. 양파 껍질은 마르고 쭈그러들었지만, 양파를 깔수록 알맹이는 신선하다. 조직가는 주민을 새롭게 만나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이 너무 맵고 뜨겁 다. 그래서 조직가로 일한다는 것은 양파를 까는 것과 같다고. 그 말을 한동안 되새기며 생각했다. 맵고 뜨거 워 눈물이 나더라도, 겉모습을 넘어 새롭고 산뜻하게 서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런 사람들의 조직된 힘은 싱싱하고 매콤달콤하겠다고.

교육현장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협의회

교육훈련

임기헌 (부산주민운동교육원 트레이너)

주민조직운동에서 주민지도자 교육훈련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늘 주민이 주인이고 주체라고 하면서도 주민조직가가 그 선을 넘어 ‘나를 따르라’라는

생각으로 자기도 모르게 주민을 이끌고 가려는 모습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주

민지도자를 세우는 과정에서 자칫 잘못해서 그 선을 넘는 순간 주민조직화는 일개 분파주의

자의 개별 활동이 되어 주민조직운동이 변질될 수도 있다. 부산에서 여러 차례 주민지도자

과정을 개최하려고 했지만 교육생을 모집하는 것이 힘들어서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는데 다

행히 올해는 예산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서 기존의 주민지도자 교육훈련과

정을 진행하는 동시에 별도의 특별과정으로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협의회 회원들(5명)과

함께 주민지도자 과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영화숙·재생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독립과정이

더 적절하겠다는 판단에서 특별과정으로 했다.

영화숙·재생원은 6.25 전쟁 이후 부산지역에 설립된 집단수용시설 중에 하나이며 8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던 부산시 최대의 ‘부랑인’ 수용시설로 이를 모델로 박인근이 인권유린으로

악명이 높았던 형제복지원을 세웠다. 이 시설은 1951년 설립된 뒤 1976년 1월 문을 닫을 때

까지 폭행·감금·강제노역·성폭행·사망 등을 당한 피해자가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될 정 도였다. 지금은 60~70대의 노인이 된 피해생존자들이 잡혀갈 당시에는 10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이 분들의 원한과 억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아주 가까운 사이 외에는 누가 누구인지 서로를 모를 정도로 관계성은 약했다.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동료로서

의 관계보다는 피해 보상 등 개별적인 관계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생존자협의회가 만들어지고 비영리단체로 등록까지 했지만 영화숙·재생원 대표님이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구조였다. 스스로 조직하지 못한 주민조직은 주민조직이 아니며 당면한 개인 문제가 해 결된다면 지속하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 악명 높았던 형제복지원의 피해생존자들은 이미 여러 개의 조직으로 분열되어 힘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고 있어서 너무 안타까운데 혹시

영화숙·재생원 마저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래서 대표님을 만날 때마다 주민지도자 교육의 필요성을 말씀드렸고 마침내 특별과정(5회)을 진 행할 수 있었다.

‘자각하고 주체가 되면 스스로 행동한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1강에서는 주민조직운동 총론, 주민은 누구인가, 모임과 조직의 차이점, 주민조직은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함께 학습했다.

솔직히 대표님을 빼고 나면 ‘형님 따라 어쩔 수 없이 참석한 부부, 대표님 소개로 어쩔 수 없 이 참석한 또 다른 부부’로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사람이 교육생 총 5명 중에 4명이었다. 어떤 반응이 나올까 내심 걱정했는데 형님, 형수님하면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지옥 같았던 집 단수용시설의 경험이 공통분모여서 누가 한 마디 하면 저마다 두 마디, 세 마디 사연이 이어 졌다.

2강에서는 비인간적인 근무여건과 함부로 대하는 주민들 때문에 힘들어하던 어느 아파트 경

비원이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경비법’을 공부하고 다른 경비원들을 조직하여 구조적인 문제

점을 해결해가는 동영상을 시청했다. 미리 준비한 짧은 질문지를 읽으면서 ‘주민지도자란 누

구인가’에 대해서 함께 대화했다. 결론은 열악한 아파트 경비원의 투쟁이나 우리 영화숙·재 생원 피해생존자들의 투쟁이나 본질적인 면에서는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의식화와 조직 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내용이지만 파울로 프레이리의 '억압과 피억압의 구조, 인간화와 비인간화, 해방의 대화'에 대해서 쉽게 설명하며 함께 학습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 운 일이었다. 교육생이셨던 정OO 형님께서 소감으로 ‘배울게 마이 있네예. 몰랐던기 너무 많 았고. 사살(살살) 깨우쳐 갑니더’ 하셨던 말씀 자체가 감동이었다.

교육 주제는 진행하면서 교육생들과 함께 정했다. 이어서 3강에서는 ‘주민조직이란 무엇인 가’라는 주제로 주민조직의 8가지 구성요소-목적과 목표, 지도력, 회의, 재정, 의제, 조직구 조, 교육훈련, 연대-의 개념을 하나씩 살펴보았고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협의회 조직의 문제점을 자세히 살폈다. 공식적으로는 협의회였지만 사실 이번 교육을 기점을 새롭게 태어 나야할 정도로 보완할 부분이 많았다. 사실은 의도적인 접근이었지만 얘기를 나누다보니 이 분들은 정말 힘겹게 모든 것을 걸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OO 형님

은 그동안 힘들어 했던 OOO 회원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 사람의 가능성을 보고 말을 들 어주고 있다고 하니 정말 큰 변화이고 감사한 일이다.

4강에서는 참석한 교육생 모두에게 필요한 ‘주민지도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과거 어려운 시절 때문에 학교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없었던 분들이라서 종이에 글을 쓰는 것 자체 를 힘들어 하셨다. 그래서 사진 카드를 선택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도 했고, 새 로 나온 CO방법론 교재를 미리 읽고 줄을 그어오라고 과제를 내고, 그 줄 그은 문장을 돌아 가면서 읽으면서 때로는 크게 인쇄해서 화이트보드에 자석으로 붙여 놓고 함께 읽기도 했다. 가끔씩 선생님처럼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으시기도 했다. 교육방법이든 무 엇이든지 주민에 대해 미리 단정해서는 절대 안 된다. 오로지 우리가 믿어야할 것은 주민의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밖에 없다. 교육 일정 대부분이 토요일, 일요일 아니면 공휴일이었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으셨다. 마침

내 5강에서는 지난 교육내용을 복습했고 ‘주민조직 세우기’ 부분에서는 개인적인 보상 및 배

상 문제를 넘어 지역 연대와 사회 공공성을 추구할 때 비로소 진정한 주민조직이 될 수 있다

는 사실을 함께 확인했다. 수료식에는 영화숙·재생원 사건을 본격적으로 기사화했던 국제신

문 심OO 기자님, 부산에서 초기단계부터 관심을 가졌던 OOO단장님이 오셔서 진심으로 축

하해주셨고 부산주민운동교육원에서 예쁜 꽃과 수료증, 게다가 후원금까지 준비해주셨으니

너무 보기 좋았다.

손OO 대표님의 마지막 소감 중에 ‘아마 대한민국에서 집단수용시설 피해자들이 이런 교육

을 받는 건 우리밖에 없을 거다’라는 말씀과 김OO 형수님이 ‘영화숙·재생원 회원들한테 이런

교육 안 받으면 보상금 못 받게 해야 된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이번 주민지도자 과정의 가치

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교육을 마친 지금도 이 분들과는 현장에서 늘 소통하고 있다. 집단수용시설 피해자들의 관심

은 이해가 가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피해 보상금’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보상금에 관한

부분은 당연히 중요한 것이지만 그 이후의 조직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아서 더 안타깝다. 그

래서 집단수용시설 피해생존자협의회의 주민지도자 과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런 국가폭력

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체계의 구조적 모순과 부당한 질서체계에 있음을 주민들이 스스로

자각하는 ‘세상읽기’와 자각한 이들과 세력을 모아서 권력을 만들고 함께 새로운 ‘세상 만들

기’를 촉진하는 주민지도자 교육훈련 과정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집단수용시

설 피해생존자들에게 연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CO방법론

개정증보판

발간

*도서구입과 관련해서는 홈페이지(conet.or.kr) 출판도서 참고 / 사무국(02-766-9051)으로 문의·신청하시면 됩니다.

한국주민운동의 역사는 50년, 반세기를 넘는 역사발전의 과정입니다. 여기에는 비인간화된 현실과 사회적 억압에 저항하며 투쟁한 주체로서 민중, 빈민, 주민이 있습니다. 차별과 억압에 맞서 침묵하지 않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어 말하고 행동한 이들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봅니다. ‘주민 스스로의 운동인가?’

「주민운동의 힘, 조직화-CO방법론」은 한국사회에서 펼쳐진 주민조직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전까지 사용하던 교육교재를 보완하여 2010년 11월 29일 초판 발행되었습니다. 이 책은 주민, 주민지도자, 주민조직가에게 주민

조직운동의 가치와 철학을 분명히 하고, 현장을 성찰하고 도전하도록 안내했습니다. 교재가 발간된 지 10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시대와 현장의 변화를 반영하고, 현 시점으로 용어와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되었습니다. 「주민운동의 힘, 조직화-개정증보판」은 2022년 2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총 36차례의 모임을 통해 트레이너들이 토론하고 모아낸 공동작업의 결과입니다. 주민조직운동 현장의 변화와 교육훈련의 경험 속에서 알게 된 사실,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초판 교재를 리뷰(Review)하며 내용을 수정·보완하고, 새로운 주제를 추가했습니다. 「주민운동의 힘, 조직화-개정증보판」의 주요 변경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주민조직운동 현장 변화를 반영하여 개념 및 용어를 분명하게 정리했습니다.

둘째, 주민조직화 4과정 10단계를 재검토하여 단계와 핵심 요소를 조정했습니다. 셋째, 주민조직화 단계에 따라 주제명과 세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넷째, 현장 변화를 반영하여 새로운 주제를 추가했습니다.

"주민조직화는 단순히 기술이어서는 안 됩니다. 인격의 변화, 삶의 변화, 미래에 대한 재정립이어야 합니다. 민중 스스로

자신의 말을 당당히 할 때 사회변혁의 주체가 됨을 통찰하며, 주민조직가에게 단순히 주민조직화를 기술로 인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허병섭)

주민 스스로의 운동, 세상변화를 만들어가는 운동의 길에서 이

책이 여러분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벗이길 바래봅니다.

- 서문 중에서 -

2025 코넷(CONET) 교육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교육훈련

근본적 물음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교육훈련

지혜를 모아 행동으로 실천하는 교육훈련

사)한국주민운동교육원은 주민의 가능성을 찾고, 지역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민, 주민지도자, 주민조직가를

교육훈련하고 조직합니다. 주민현장을 교육훈련의 교과서이자 조직화의 토대로 보고, 주민의 무한한

가능성을 구체화하고 촉진합니다. 주민의 협동하는 힘으로 협동민주주의를 지역사회에서 실현합니다.

** 2025년에는 현장별 다양한 특별교육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특별교육, 기획교육, 정규교육, 현장교육 등 자세한 교육일정과 교육비 등은 추후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됩니다. 아래 내용은 사정상 변경될 수 있습니다.

기획과정

1기 알린스키CO방법론세미나 2025년 2월-3월 (총 4회)

‘다수의 평범한 주민의 힘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방법’ 사울 D. 알린스키의 조직화방법론을 통해, 효과적인 조직화 방법의 해답을 찾아갑니다. (총 4회/ 2시-6시)

· 알린스키 급진주의자에 대해- 지향과 목적

· 조직화를 위해 전제되어야 할 규칙-의사소통

· 조직화 방법론과 실제- 전략과 전술

· 변화의 방향-침묵하는 다수를 행동하게 하는 방법

22기 워크숍촉진자과정

2025년 9월-11월 (6회)

어떻게 하면 주민의 자발성을 높이고,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책임 있는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민주적

조직운영의 핵심 원리-워크숍! 워크숍촉진자로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총 6회 / 1시-6시)

· 워크숍 기본 원리와 과정

· 워크숍 촉진자의 역할과 자세

· 활동평가워크숍의 실제

· 활동기획 워크숍의 실제

· 문제해결워크숍의 실제

· 사명비전워크숍의 실제

36기 주민조직가 기초과정

2025년 3월-5월 (총 8회)

31기 주민조직가과정

2025년 5월-11월 (총 14회)

주민조직화를 바로 알고 주민조직가로서 동기와

의식을 갖는 기본 과정으로서, 주민조직화 방법과 단계를 훈련합니다. (총 8회 /1박2일 숙박 2회)

· 주민운동이란 무엇인가? (개념과 지향)

· 주민조직화란 무엇인가? (원칙과 방법)

· 주민조직가는 누구인가? (역할과 비전)

· 주민조직화 방법과 단계

· 주민조직가로서 주민만나기 실천

한국사회 주민운동가를 양성하는 교육훈련으로, 현장의 과제를 가지고, 단계적으로 조직화가

이뤄지도록 훈련합니다. 한국사회 주민운동의

역사와 현장을 배우며 비전을 그려갑니다.

(총 14회 /1박2일 숙박2회)

· 한국주민운동의 역사와 현장 탐방 · 과제를 통한 CO단계별 훈련

· 주민 대화와 주민지도력 세우기

· 주민조직 세우기와 운영

· 한국주민운동 비전 및 전략세우기

현장교육

마을공동체, 주민자치, 협동조합, 복지, 자활, 청년, 환경 등 주민운동 현장별 구체적 상황과 요구에 맞게 교육훈련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문의】 - 【교육접수/홈페이지】 - 【교육상담】 - 【진행】 - 【평가】

마을공동체현장

자활운동현장 협동조합현장

지역복지현장

건강(돌봄)현장

마을공동체운동의 역사와 철학 이해

마을공동체운동과 조직화

주민조직화 방법과 단계

마을 의제 발굴과 공론화

주민관계 맺기와 대화

민주적 조직운영과 회의, 비전 개발 등

· 협동조합의 가치와 윤리, 운영원리

· 협동조합 활성화 워크숍

· 협동조합 임원의 역할 이해

· 민주적 소통과 회의 운영

· 협동조합 과제해결, 비전수립 워크숍

· 자활사업단 반장 리더십 교육

· 자활사업단 민주적 회의 운영

· 신입 실무자 자활현장 이해 교육

· 자활사업단 공동체성과 조직력 세우기

· 자활사업단 공동규칙세우기위크숍

· 자활자업단 역할세우기워크숍 (문제해결워크숍)

· 자활기업 진단과 컨설팅

· 지역밀착형실천- 지역사회분석과 전략세우기

· 마을의제개발 및 주민만나기 훈련 ·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복지의제 찾기

· 사회적고립 주민 만나기와 대화

· 주민조직화 실천과 단계 이해 교육

주민조직 진단과 전략세우기

건강(돌봄)운동과 주민조직화

2024 1월-12월 후원 현황

보내주신 후원금은 ˙정규과정 운영 ˙훈련생 교육비 지원 ˙전략현장(쪽방지역) 조직화지원 ˙연대활동 ˙기타 목적사업 등으로 사용됩니다. 2024년 1월부터 12월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입니다.

(294명 / 단체 8곳)

강경규 강경미 강기연 강동근 강민아 강수정 강슬기 강은하 강정식 강정혜 강현우 강혜란 강혜정 강홍배 고명선 공해빈 곽동순 구자현 권영규 권영지 권용옥 권 혁 권혁근 권호경 길종각 김경호 김관식 김광환

김나정 김대용 김대호 김도환 김동훈 김명신 김문재 김미자 김미정 김민선 김민정 김보라 김보하 김봉준

김상진 김선희 김성재 김성현 김송희 김수정 김순규 김순복 김슬기 김승오 김영례 김영실 김영찬 김용경

김용현 김윤정 김은라 김은미 김은주 김은주 김인해 김재필 김종철 김진구 김진수 김 철 김태열 김태풍 김하슬린 김현정 김현준 김현화 김혜진 김호태 김화겸 김화영 김희정 나기창 나리아 남상덕 남수연 남원준

남윤수 남 일 노인경 류승희 류현희 문 은 문종원 민경자 민

민정원 박경복 박근주 박길석 박도선

박미숙 박미현 박민진 박보아 박선미 박선영 박성진 박성호 박소진 박수진 박숙경 박승한 박신영 박영심

박용수 박인상 박인숙 박재준 박재천 박정선 박지원 박진수 박찬규 박혜옥 박희숙 반기숙 반주희 배명원

백명희 백승철 서용식 서주현 선동수 손서봉 손영희 손이헌 손혜진 손 훈 송기호 송영호 송예순 송태훈

신명호 신민경 신민정 신바른 신보람 신순화 신인권

신지윤 심미경 안기덕 안혜란 양미나 양영숙

양영희 양정애 양진영 엄미경 엄태인 연기룡 연화자 오미옥 오수영 오승일 오영범 오인숙 오재신 우세옥 유명섭 유문경 유인성 유진선 유현만 윤명숙 윤성집 윤용주 윤은정 윤재일 윤정자 윤종화 윤지영 이경란 이경아 이경희 이규선 이규원 이도상 이두진 이민주 이병채 이보영 이상미 이상영 이선영 이선주 이선화 이세민 이세희 이수연 이순이 이승용 이승희 이양경 이영선 이윤아 이율진 이은미 이은아 이인순 이재홍 이정미 이정임 이정혜 이정후 이종재 이종환 이종희 이주아 이준경 이지현 이진만 이창열 이현옥 이현희 이 호 이훈희 이희석 임소연 임오정 장경혜 장동철 장옥희 전두희 전미정 전웅일 전재형 정경민 정금희

정담인 정대철 정덕영 정두영 정상길 정 선 정선영 정성희 정영재 정재숙 정정민 정지은 정진영 정현주 조남철 조두선 조문영 조성호 조영정 조윤경 조중근 조현은 조혜진 조환기 주신원 지상현 지종섭 진형미 차재설 채봉균 최갑일 최경우 최문철 최분이 최선희 최수진 최순례 최은경 최은영 최익현 최종덕 최지영 최희령 추승엽 하태욱 하현우 한금희 한순미 한승엽 한 진 허헌중 형동선 홍여옥 황세진 황의석 황현주 (사)관악주민연대 (사)삼양주민연대 (사)한국도시연구소 천주교서울대교구빈민사목위원회 (주)세움건축 제이앤씨 신명기획 부산주민운동교육원

<전략현장특별후원> 자활기업 (총 9곳) : 미소협동조합, 부천희망나르미 주식회사, 사회적협동조합 행복나눔, 안양희망나르미(주), 웰쉐어사회적협동조합, 주식회사 한울, 주식회사 흥산기업, (주)웰쉐어로지스, ㈜희망유통

한살림서울소비자생활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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