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다 Vol.26(2) : Ewha Pharm magazine 2024. F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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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 신임 교수님 특집

이기현 교수님 - 2008. 이화여대 약학대학 약학과 학사 졸업 - 2010. 이화여대 약학대학 면역학 석사 졸업 - 2018. Weill Cornell 의과대학 줄기세포생물학 박사 졸업

전수빈, 배유미 | 편집위원

- 2022. UCSF(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Gladstone Institutes 박사 후 연구원 - 현재 이화여대 약학대학 조교수

장맛비가 내리던 7월의 어느 날, 한때 만화가가 꿈이었지만 현재 약학대학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질환 발병 원인을 연구 중이신 이기현 교수님을 만나 뵈었 다. 교수직을 맡으시기까지의 긴 여정을 생생하게 들으며, 교수님의 연구에 대 한 열정과 진로를 고민 중인 후배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수빈, 배유미 | 편집위원

Q

1년간 이화여대 약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면서 힘들거나 어려운 점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학교를 다녔을 때와 다르게 PEET로 들어온 학생들의 공부 방향이 임상 쪽으로 집중되었다는 느낌 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흥미를 많이 느낄 만한 임상적 예시를 넣어 학생들의 집중도를 높이려 고 했습니다. 그리고 굉장한 부담감을 느끼면서 영어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영어 강의에 대해서 교수와 학생 모두가 부담을 느끼는구나’ 싶어서 그 부분이 조금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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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Q

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저는 강의와 연구 중 연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교수직을 선택했어요. 연구자로서 갈 수 있는 길에는 교수, 회사 연구소, 정부출연연구소 등이 있어요. 실상 연구를 할 수 있는 직업 자체가 몇 없는 거죠. 그런데 회사 나 정부출연연구소를 가게 되면 연구소만의 기조가 있고, 그것에 맞춰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있거든요. 교수는 원하는 걸 연구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곳보다 월등하게 좋은 것 같아요. 자영업과 비슷하기도 해요. 연구비를 잘 받아왔는지, 좋은 실력을 갖춘 친구들을 리쿠르팅 했는지 여부가 이 사업이 영세사업자가 되는 건지, 혹은 중소, 대기업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거든요. 정리하자면 저는 연구 직을 하고 싶었는데, 그중에 교수라는 직업이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어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학부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나 공유하고 싶은 기억이 있으신가요?

A

학부 시절에 동아리 에파트(EPHART) 부원이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방학 때 동아리 방에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실습할 때 다섯 시간씩 기다리면서 친구들이랑 실험실 복도에서 삼삼오오 사진 찍고 놀았던 기억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방학 때는 도서관에 가서 영화도 보고 소파에 누워서 책도 읽고, 그런 기억들이 나네요.

Q

석사 과정은 한국에서, 박사 과정은 미국에서 밟으셨는데 두 과정을 각각 다른 나라에서 하시면서 힘드 신 점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영어로 작성된 논문을 읽을 줄 아니까 영어를 잘 하는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논문을 읽을 줄 안다 고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었어요. 첫 수업에 갔는데 한 25%밖에 이해를 못 했어요. 특히 책에 쓰인 내용 이랑 사람이 직접 발음하는 내용을 매치하는 게 어려웠어요. 설명을 이해해야 받아 적을 텐데 그것조차 힘들었을 정도였거든요. 녹음도 의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같이 수업 듣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죠. 저는 영어 점수를 만드느라 석사 졸업하고 1년 반이나 더 지나서 입학했기 때문에, 제가 박사를 들어갔을 때 웬만한 학생들이 저보다 어렸어요. 나이가 많은데 수업을 제일 못 따라간다는 것이 힘들었죠. 또 다른 문제는 제가 바이오 메디컬 사이언스, 즉 의과학과를 갔다는 것이었어요. 의과대학에 속한 학과 여서 생명 쪽으로 심도 있게 수업을 하다 보니, 유전학 수업에서 fail을 받았어요. 저는 고등학교에서 생 물2를 배울 때, 멘델의 유전법칙을 끝으로 유전학을 배운 적이 없는데 다른 학생들은 이미 학부 때 배운 내용이라 유전학이 쉽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유전학을 학부 때 배우지도 못했고, 학부 수준도 아닌 박사 수준의 공부를 다 영어로 배우고 있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fail 한 또 다른 이유는 족보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거예요. 친구들은 점수 잘 나온 족보를 구해서 그걸 외우고, 거기서 살짝만 수정해 만점을 받은 거죠. 당연히 전 정규 분포의 뒷부분에 있었어요. 그때 어딜 가나 공부가 힘들면 기 출을 공부해야 한다고 느꼈던 기억이 나네요. 정리하자면 영어가 가장 힘들었고요.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이 크게 차이가 나서 힘들었던 것도 있었어 요. 석사는 어떻게 보면 진짜 꼬맹이 느낌이고 박사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느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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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석사 중 자신에게 연구자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일이 계기가 되었나요?

A

큰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저는 중학교 때 만화 동아리를 직접 만들 만큼 그림 그리는 것과 손으로 만드는 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의 반대에 과학고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과학고에 가서도 산업디자인학과나 건축학과 진학을 희망하다가, 또다시 부모님의 반대에 의료계로 목표를 바꾸 며 점수에 맞춰서 약대에 왔어요. 그때는 약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어요. 고등학교에서 탈 출해서 대학에 가야 하는데, 약대가 좋다고 해서 온 거였거든요. 지금 약대 학생들은 공장, 병원, 약국, 회사에서 다양하게 실습할 수 있는데, 저 때는 그러지 못했어요. 그 래서 방학 때마다 한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고 싶은 걸 스스로 많이 찾아봤던 것 같아요. 병원 에서 한 달 실습했었고, 약국은 졸업하고 나서 한 번 가봤는데 아무리 봐도 저한테는 회사같이 다이나믹 한 공간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Honors research나 인턴십 같은 프로그램 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었어요. 실험실을 경험하고 싶어서 가면 설거지만 했거든요. 그래서 ‘연구 활동 을 주로 하는 대학원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은데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졸업하자마 자 취업 전선에 뛰어 들어가서 무언가를 바로 하고 싶지는 않았고, 아직 더 배워야 할 게 있을 것 같았어 요. 자유롭게 이것저것 해보면서 조금 더 학생으로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제 대학 시절에는 120명 중 40명이나 될 정도로 많은 동기들이 대학원에 갔어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대학원 진학이 힘든 선택이었 을 것 같은데, ‘3분의 1이나 가니까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네요. 대학원에 가기 전에는 연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논문을 읽어본 적도 없었어요. 하지만 대학원에 다 니면서 몇 가지 좋은 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첫 번째는 제 손으로 직접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점 이었어요. 저는 간접 체험을 좋아하지 않고 제가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실험을 하면서 내가 잘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는, 제가 가지고 있는 궁금증을 직접 풀 수가 있다는 점이었 어요. 대부분의 직업은 자기 자신이 결정권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예를 들어 약국에서 는 처방전대로 조제도 하고, 손님이 오시면 증상에 맞춰서 약을 추천해 드려야 해요. 제약회사에서 신약 파이프라인의 허가 업무를 진행한다고 하면, 그에 따라 각자의 일이 정해지죠. 회사의 매니저가 되더라 도 부하 직원들의 일을 정해줄 뿐, 직접 자신의 일을 정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연구를 하면 원하는 주제 와 방법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더라고요. 스스로 질문을 정한 다음,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해 서 검증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입학하고, 5월쯤 엄마와 밥을 먹다가 “엄마, 나는 이 길을 가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었죠.

Q

수많은 랩실 중 지도 교수님을 황은숙 교수님으로 선택하시게 된 계기나 일화가 있을까요?

A

저는 황은숙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황은숙 교수님 랩실을 선택한 이유는 황은숙 교수님께서 자녀분을 학교에 데리고 오신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요. 교수님이 30대 초반 정도에, 되게 일찍 교수님이 되셨어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나 봐요. 대체로 4학년 2학기쯤 대학원을 결정하잖아요. 다양한 교수님들을 만나 뵈면서 어느 랩실에 갈지 고민하죠. 제가 학점 이 3점대였는데, B가 가득한 제 성적표에서 굉장히 빛이 나던 과목이 있었거든요. 면역학이 A+이 나온 거예요. ‘이건 계시다. 난 면역학을 해야 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면역 관련 랩실 중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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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준 교수님은 바이러스 쪽이라 제가 생각한 분야와 달랐어요. 그래서 황은숙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어보 고, 면역학 쪽도 하신다고 해서 가게 되었어요. 다시 생각해보면 nonscientific한 이유로 지도 교수님을 결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사람한테 가는 건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내 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으면 뭐 하나라도 따라 하게 되는데, 그게 무의식중에 큰 역 할을 했던 것 같아요.

Q

2011년 교수님께서 자가면역질환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셨는데, 어떤 동기로 자가면역질환을 자세히 연 구하게 되신 건지, 지금의 줄기세포생물학을 연구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황은숙 교수님 랩실에서 연구하던 게 면역학이라 자연스럽게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주제를 연구하게 되 었죠. 줄기세포학 연구에도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흘러가다 보니 석사를 2년하고, 1년 반 후에 해외로 가게 되었어요. 3년 반 동안 논문만 계속 읽는데 내용이 다 면역학이었어요. 쥐로 각종 면역 질환을 제어하는 실험을 했었는데, 그런 게 재미있긴 했지만 지겹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질환과 쥐 유전 자만 바꿔서 똑같은 걸 반복했거든요. 그래서 인간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쥐와 달리 인 체 실험은 불가능하잖아요. 사람에게 적용해 볼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껴서 줄기세포생물학을 연구 하게 되었어요.

Q

UCSF(University of California in San Francisco)에서 어떤 연구를 하셨는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덧붙여서 UCSF가 어떤 방식으로 연구원을 모집하는지, 만약 면접이 있다면 팁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저는 UCSF에서 선천성 심장 기형에 대해 연구했어요. 박사 과정 때는 줄기세포를 췌장의 베타세포로 분 화시키면서 ‘어떤 유전자가 베타세포의 숫자를 줄여 선천성 당뇨병을 일으키는가’를 연구했는데, 췌장에 서 다른 분야로 뻗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문제는 당시 지도 교수님이 mouse genetics를 하시 던 분이어서 human genetics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으셨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다루고 있는 틀이 인간 만능 분화 줄기세포이기도 하고 human genetics를 베이스로 하는 연구 결과를 이용해 실험을 하다 보 니까, 누가 미리 해놓은 연구를 컨펌하는 형태에 불과해서 좀 아쉬운 거예요. 저는 mutation을 직접 발 굴하는 것부터 하고 싶었어요. UCSF에서 제 지도 교수님이셨던 Deepak Srivastava 교수님은 12개의 병 원이 모은 선천성 심장 기형 환자들의 샘플을 이용해 유전체 연구를 하는 협력단에 들어가 계시거든요. 그래서 이분께 가서 그 분야를 조금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UCSF가 연구원을 모집하는 방식을 말씀드리자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학원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학 교에 입학하는 것처럼 각 학교의 일관된 입학 전형 절차를 따라야 해요. 그런데 박사 후 연구원, 혹은 학 사나 석사 연구원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는 개인 컨택이 필요해요. 내가 관심 있는 교수님한테 얼마나 잘 어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어 전 세계 줄기세포 학자 들이 모이는 ISSCR 학회에 가서 어필했어요. Deepak 교수님이 노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교수님이 자기 실험실 학생들을 다 데리고 가서 밤에는 파티 시간을 가지셨어요. 그때 교수님이 dancing floor에서 춤 추고 계시길래, 교수님께 “나는 기현인데, 박사 때 GATA6 했어”라고 속삭였어요. Deepak 교수님께서 는 GATA4라는 유전자가 선천성 심장 기형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최초로 밝히셨는데, GATA4랑 GAT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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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같은 gene family라서 유사성이 있거든요. 그래서 “나는 췌장에서 GATA6 연구했어. 너희 실험실 가 고 싶어!”라고 말씀드렸더니 “일단 지금은 춤추고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고 하셨어요. 그 뒤로도 마주칠 때마다 그렇게 어필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들이대는데 절 기억할 수밖에 없으셨겠죠. 아무튼 준비 팁은 “들이대라.” 즉 나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들이대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Q

연구를 하다가 예측과 다른 실험 결과가 나오는 경우, 문제를 해결하시는 교수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A

첫 번째는 프로세스 중에 잘못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예를 들면 농도를 잘못 계산했다거나 뭔가 생 각을 잘못한 거죠. 두 번째는 가설이 틀렸을 경우예요. 만약 실험 절차에 이상이 없고, 모든 걸 제대로 했 는데도 결과가 예측과 다르면, 실험을 다시 해봐야 해요. 똑같은 결과를 얻는다 해도 적어도 세 번은 해 봐야죠. 틀림없이 올바른 절차를 거친 상태로 세 번을 시도했는데 같은 결과가 나오면 그 가설이 틀린 거 예요. 그럴 땐 바로 수용하고 가설을 수정해서 또다시 다음 실험을 계획하면 돼요.

Q

교수님께서 마라톤, 등산 등 여러 운동을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세계 6대 마라톤을 정복하고 싶 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는데요, 이런 특별한 취미가 끊임없는 연구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는 지, 교수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A

인생은 버티는 거죠. 제가 뉴욕에서 살았을 때 집이 뉴욕 마라톤 경유지였어요. 어느 주말, 커피랑 베이 글을 사서 실험실에 가려 했는데 경찰이 곧 마라톤 선수들이 밀려올 거라며 길을 건너려던 저를 통제했 어요. 전문적인 마라톤 선수들은 빠르기 때문에 일찍 출발해서 먼저 뛰어나가고, 뒤에 순차적으로 평범 한 사람들이 와요. 제 연구실과 기숙사 앞을 지나는 지점이 42.19km 중에서 한 30km 중반을 넘는 지점 이었기 때문에 다들 정말 힘들어 보였어요. 힘든데도 좀비처럼 끝까지 뛰어오고 있는 게 굉장히 신기했 고 인상 깊었죠. 그 마라톤 행사가 매년 11월 첫 번째 일요일마다 개최되었는데 볼 때마다 신기하면서도 저 사람들과 저랑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 번쯤 보았을 때 ‘왜 나는 줄 밖에서 저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고, 저 사람들은 줄 안에서 응원받으면서 뛸까? 나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마라톤을 취미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뉴욕 Manhattan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센트럴파크인데, 거기가 한 바퀴를 크게 돌면 10km예요. 그래서 체육관보다는 센트럴파크에서 마라톤 트레이닝을 하곤 했는데, 뛰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풀었던 것 같아요.

Q

개별 환자와 대면하는 약사로서의 삶보다 연구를 통해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셨 는데, 교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A

개별 환자를 대면하는 약사의 삶도 당연히 보람이 있어요. 저도 미국 가기 전에 몇 달을 약국에서 약사로 일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매우 뿌듯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의 기쁨을 위 해서 연구를 해요. 일차적으로 그 일이 재미가 없으면 못하겠더라고요. 또 저는 제 연구를 통해서 더 많 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이렇게 큰 그림 없이는 인생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기도 해요. ‘1억을 만들겠다’, ‘한강 뷰 아파트를 사겠다’, 이런 종류의 목표도 좋은데, 많은 사람들이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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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에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허망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종국에는 남들과 나누는 삶을 목표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대학교 때 충남 서산으로 자원봉사를 가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어요. 공부방에 선 생님도 아무도 안 계시고 그냥 기부받은 문제집만 쌓여 있었거든요. 거기에 여러 나이대의 학생들이 있 었는데, 어떤 고등학교 1학년이 다른 저학년 친구들의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었어요. 제가 옆에서 가르쳐 보니까 그 학생은 이해력과 학습 능력이 아주 뛰어나서 주변에서 지원만 조금 더 받을 수 있다면 더 성 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태껏 제 삶은 굉장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죠. 그래서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엄청 열심히 공부를 도와줬어요. 나 중에 헤어질 때 그 친구가 저처럼 되고 싶다고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나요. 이 경험을 통해 저에게 주어진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Q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 중인 학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 립니다.

A

일단 여러 길을 다 시도해 보세요. 실습이나 방학 때 직접 무언가를 해보지 못했다면 간접 체험이라도 해보세요. 경험해 보고 싶은 직종에 계신 선배에게 연락해 보세요. 잘 모르겠다면 링크인(http://www. linkedin.com)으로라도 관련 직종에 근무하시는 분들을 찾아보세요. 가고 싶은 회사를 검색하면 해당 회 사의 사람들의 정보가 나와요. 그 사람들에게 연락해 보세요. 가장 중요한 건 나보다 5년, 10년 앞서 있 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 그분들은 학교에 없으니 직접 찾아가야 해요. 예를 들어 특허 사무실 같은 곳에 관심이 있는데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면 검색을 해보세요. 특허 변리사 중 에 약대 출신인 분이 계시면 찾아내서 연락을 해보세요. 그분들은 적극적인 친구라고 생각하시면서 함 께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실 수 있어요. 이렇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나중에 그 분야로 가지 않게 되더라 도 굉장히 이점이 돼요. 그래서 직접 뛰어다니는 적극적인 태도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마 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가 다르잖아요.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겠다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만약 뭐 든지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요. 직접 뛰어들어서 경험하며 이 길 이 좋다는 확신을 얻는 것이 필요하죠. 확신을 가지고 선택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살아보 니 그래요. 그런데 또 중요한 점은 경험해 봤는데 내 길이 아닌 것 같잖아요? 도망치면 됩니다. ‘빠른 손 절’이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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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 신임 교수님 특집

황인아 교수님 - 2006. 이화여대 약대 약학과 졸업 - 2011. 이화여대 약대 약물학 박사 - 2021. 원큐어젠 general manager - 2023. 이화여대 약대 교수 부임

본교 약대에 새로 부임하신 황인아 교수님을 만나 뵙 고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화여대에서 긴 시간 동안 있으신 만큼 학교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크신 게 느 껴졌다. 교수님의 학창시절과 교수 부임 이후의 생활 에 대한 경험담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영광인 시간 이었다. 정유진, 용지혜 | 편집위원

Q

이화여대에서 학사, 박사 학위를 받으신 만큼 교수로서 학교에 돌아오신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간단한 소감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제가 이대 약대를 다닌 시간만 14년인데, 바다가다 인터뷰를 하게 된 건 처음이라 너무 영광 입니다. 2002년에 입학해서 학사를 2006년에 졸업하고 2011년에 석박 통합 과정으로 박사 학위를 딴 후, 포닥으로 일하다가 2014년에 미국에 갔죠. 제가 이대 교수가 될 만한 사람이어서 된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고, 훌륭하신 교수님들 덕에 잘 성장해서 이렇게 본교 교수로, 특히 지도 교수님의 후임으로 임용 되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후배들을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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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Q

저번 학기에 이대 약대에서 강의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으셨는지, 강의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 소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어떤 과목을 연구한다고 해도 그 과목의 교과서를 통달하고 있진 않기 때문에, 한 시간의 강의를 하기 위 해 보통 3일씩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공부한 것을 다 전달해 주려고 하다 보니 강의 내용이 너무 많아서 우리 20학번 학생들이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나름 요약한다고 했지 만, 중요한 내용이 너무 많으니까 강의하는 저도 헷갈리고 번복하기도 했어요. 많이 준비한 것에 비해 잘 전달하지 못한 게 속상하고 학생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죠. 또 저는 머릿속에 강의밖에 없어서 매 수업 목 표한 곳까지는 다 강의해야 한다는 마음에 학생들에게 사담을 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20학번 친 구들이 신임 교수한테 이 중요한 과목을 어렵게 배우느라 고생이 많았죠. 그래도 학생들이 잘 따라와줘 서 결론적으로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어요.

Q

학부시절 교수님께서는 스스로 어떤 학생이라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저는 약물학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성격이 다른 12개 이상의 전공 필수 과목 중 한 과목쯤은 자기한테 맞 아요. 도서관에서 매일 공부하는 친구들은 뭐든 잘 했겠지만, 저는 그런 학생은 아니었고 학부 때는 완벽 한 E 성향이었어요. 오죽하면 교수님들께서 가지고 계신 저에 대한 기억이 제가 약대의 온갖 장기자랑을 다 섭렵하고 1등하고 다녔던 거였을까요. 그 당시에는 3월 개강파티, 가을 주홍제 등 약대 내의 축제가 많았어요. 그래서 행사마다 매호씨 풍물패 공연도 해야 하고, 장기자랑도 나가야 했기 때문에 공부에 별 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냥 대학생활을 즐겁게 하자는 마음이 컸죠. 그래서 등수도, 학점도 중간이었는데 약물학은 암기도 잘 되고, 이해도 쏙쏙 되고, 교수님도 너무 좋았어요. 아까 말했듯 12과목 중 저에게 딱 맞는 한 과목이 약물학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진짜 공부를 안 하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시험기간 에는 친구들을 모아 놓고 약물학을 가르쳐 주기도 했어요. 한 동기는 제가 약물학만 A, A+ 받으니까 신 기해하며 약물학 공부법을 물어보길래 당당하게 제 정리 노트를 주면서 “야 이것만 공부하면 너도 약물 학 A대 맞을 수 있어!”라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줬어요. 그 정도로 약물학을 좋아했어요.

Q

교수님께서 대학원 과정을 약리학으로 결정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자신의 전공을 찾을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알려줄 수 있으실까요?

A

학부 때 지도 교수님이 김화정 교수님이셨는데,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 생각을 참 많이 해주세요. 전 학교 에서 좀 시끄러운 학생, 그래서 교수님들을 피해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김화정 교수님께서는 절 엄청 응 원해주셨어요. 그러다 3학년 때 처음으로 약물학을 배웠는데, 친구들은 어렵다고 했지만 저는 이상하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암기도 잘 되는 거예요. 그걸 보고 제 길은 약물학이구나 했죠. 전공을 찾는 팁 이라면, 가장 좋은 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걸 전공으로 삼는 것이고, 좋아하는 전공이 많거나 뭘 해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10년 뒤에 가장 유망한 산업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약 물학을 선택했을 때 바이오가 뜨던 시절이어서 유망했거든요. 솔직히 연구는 정말 힘들어요. 연구는 세 상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지식 한 줄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려면 무한히 많은 실험들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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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증명해야 하고, 그로부터 파생된 논리들이 기존의 과학과 어긋나면 안 돼요. 그래도 좋아하는 과목 을 공부하면 덜 힘들어요. 내가 꼭 그 과목의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그냥 좋아하는 과목이면 돼요.

Q

제약회사와 학교에 모두 계셨는데, 어느 쪽이 교수님과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하시는지와 둘의 차이가 궁 금합니다.

A

제약회사는 목표를 회사가 세워주고, 학교는 목표를 내가 세운다는 차이가 있죠. 제약회사는 어쨌든 돈 을 벌어야 하는 곳이에요. 연구 주제에 대해서 회사가 불필요하다고 결정하면, 내 학문적인 호기심이 남 아 있더라도 그것을 풀어내지 못한 상태로 회사의 목표에 따라야 해요. 회사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 의 이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실험들을 해요. 하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죠. 시행착오도 많고, 수익성이 적은 연구도 할 수 있고 필요하면 후속 연구를 하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이왕이면 문제의 답은 다 찾고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회사에 있으면서 갈증이 생겼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학교가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회사는 1년의 목표를 매년 세우고 그 다음 해에 성과를 바탕으로 평가를 해요. 프로젝트 를 중단시키거나 팀을 재편성하는 일들이 굉장히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낭비가 없어요. 반면, 학교 는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사방으로 노력해야 해요. 이미 연구를 50% 진행하는 순간 중 단하기가 되게 힘들거든요. 국가에서 받은 펀드를 가지고 연구비를 충당하게 되면, 다소 돌아갈 수는 있 더라도 중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게 되죠. 하지만 어려운 프로젝트 를 완료해냈을 때 성취감은 굉장히 크고 좋은 저널로 이어질 수도 있죠. 그런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Q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에서 학사, 박사 학위를 모두 취득하셨는데 그 계기와 한 학교에서 석박사를 모두 취득했을 때의 장점이 궁금합니다.

A

저는 지도 교수님으로 너무 훌륭하신 하헌주 교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제 연구와 공부의 동기가 온 통 그분이었어요. 이대 약대의 연구환경이나 지도 교수님의 연구수준, 지도방식 등이 너무나 좋아서 다른 학교로의 진학이나 유학을 고려한 적은 없었죠. 그때 하헌주 교수님께서는 당뇨병성 신장병인 nephropathy를 연구하셨어요. 당시는 대사성 증후군에 대한 연구들이 막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시절이었고, 저는 그런 성인병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렇게 이대에 있으면서 좋은 기회를 많이 얻었고 좋 은 가르침도 많이 받았습니다. 본교에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던 것 같아요.

Q

약대에서 박사과정을 끝내고 코넬의대에서 포닥 과정을 밟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의대에서 연구를 하다 보면 약대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이 나올 것 같은데, 그 부분에서 느끼신 어려운 점과 도움되셨던 점이 궁금합니다.

A

사실 약대와 의대에서 하는 연구는 대부분 비슷해요. 저도 교수님의 연구 분야를 보고 간 거죠. 당시 서 울대 약대 출신의 백지혜 교수님께서 코넬의대에서 당뇨병성 신장병의 병리 기전의 주원인인 활성산소 종에 대한 연구를 하셨어요. 저는 대학원 때 이와 관련된 세포 생리 기전을 중심으로 연구를 하다가, 잠 깐 줄기세포 치료제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 관심이 생겨 추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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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구를 하고 싶었는데, 우리 교수님은 줄기세포 연구를 하시는 분은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의 랩에서 줄기 세포 연구하시는 분을 찾아 메일을 드렸죠. 여러 차례 면접을 거쳐 랩실에 들어가게 됐는데, 첫 1-2년은 연구분야를 바꾸느라 고생했어요. 그래서 포닥도 성과가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Q

해외에서 포닥을 하시면서 유학생으로서 힘든 적은 없으셨는지, 대학원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는 것을 추천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일단 저는 만약 박사까지 생각이 있으면 한국에서 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미국 가서 박사를 따는 건 시간이 많이 소요되거든요. 일단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를 준비하고 토플 점수 만드는 데 도 거의 1~2 년을 소비해야 되지만, 석사를 따지 않는 이상 그렇게 해도 좋은 아이비리그 대학원에 입학 하기가 힘들어요. 또 요즘 GRE 성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비리그가 많지만,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 는 논문이 필요해요. 그래서 보통 한국에서 석사를 하고 논문을 쓴 후 해외로 박사를 가는데, 준비기간까 지 고려한다면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한국의 연구 수준이 결코 미국에 뒤처지지 않아요. 특히 실험을 배우는 입장에서 되게 좋아요. 같은 실험, 혹은 더 어려운 실험을 배우는 선배, 그리고 포닥 선생님이 계셔서 여러 실험들을 배울 수 있는 체계들이 잘 잡혀 있거든요. 반면 미국 은 우리와 문화가 다르니까 그런 식으로 배우는 부분이 다소 부족하죠. 물론 제가 미국의 학위과정을 경 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말하기는 조금 조심스럽지만요. 다만 체계가 잡혀 있는 한국에서 빨리 교육을 받고 실험 경험을 쌓은 후에 미국에 포닥으로 가서 큰 연 구를 하는 건 매우 추천해요. 아무래도 미국에서의 펀드 단위가 한국보다 훨씬 크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서, 한국에서 아직 하지 못하는 연구들을 미국에선 많이 해요. 병아리 때 사회에 나가느냐 닭이 돼서 사회에 나가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또 미국 포닥 자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요. 포닥은 회사로 치면 경력직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수요가 되게 많아요. 신입사원을 위해서는 회사가 희생해야 하는 부 분이 많은 반면 경력직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Q

교수님께서 항암제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많은 분야 중 암 관련 연구에 관심 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A

줄기세포가 암 줄기세포로 변이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분들이 있어요. 신경교종의 가장 유 명한 변이로서 isocitrate dehydrogenase 유전자의 변이가 알려져 있는데, 저는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 하다가 자연스럽게 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 NIH에서 혈액암의 일종인 lymphoma 관련 주요 단백질에 우리의 연구를 적용해서 치료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받게 됐어요. 또 지금은 약대 내 항암제 연구의 인프라가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 인프라를 활용해서 지금은 항암제 개 발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죠. 학문적인 얘기를 하자면, 암은 어떤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서 생긴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유전학을 포닥 때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유전자의 변이를 연구하고, 그 유전자를 타겟 으로 항암제를 개발하는, 이러한 일련의 연구 방식이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여전히 암은 굉장히 진취적 인 연구 분야예요. 암 연구에서 새로 발견된 기전들이나 단백질들이 다른 질병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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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그래서 대학원 때 세미나에 가면, 항암제를 연구하시는 분들은 이미 몇 걸음이나 앞서 계신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항암제 연구에 대한 갈증도 있었어요.

Q

최근 항암제 개발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아무래도 면역관문 억제제겠죠. 원래 암세포는 외부 항원이에요. 종양 특이 항원을 T- cell이 공격해서 암세포를 없애야 하는데, 암세포가 우리 몸에서 자랄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 면역을 회피하는 방식 때문 이에요. 보통 항암제에는 세포독성 항암제, 그러니까 DNA 복제를 억제해서 사멸을 일으키는 독한 약들 이 있고, 그 다음에 kinase, EGFR, K-Ras처럼 암을 일으키는 pathogenic driver들을 타겟으로 하는 타겟 베이스 항암제가 있는데, 세포독성 항암제들은 오래 쓰면 내성이 생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타겟 베 이스 항암제는 쓸 수 있는 환자들이 한정되어 있다는 게 문제예요. 그런데 면역관문 억제제들은 잘 듣기 만 하면 모든 암에 쓸 수 있어요. 그래서 굉장히 치료가 어려웠던 암들, 이를테면 악성 흑색종이나 신장 암 등의 first-line therapy가 되고 있어요. 하지만 많이 치료가 되는 암종도 40% 정도고, 실제로는 치료 제가 없는 암 중에서 20% 이하만 이 약들이 잘 들어요. 이것은 암이 종양 미세환경을 바꾸기 때문인데, 그래서 면역관문 억제제가 잘 작용하게 하는 약들을 개발하는 게 두 번째 중요한 화두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첫 번째는 면역관문 억제제, 두 번째는 면역관문 억제제가 잘 작용하게 하는 약, 기술적으로 세 번째는 최근 승인받은 EGFR inhibitor, EnhertuⓇ 등 ADC(antibody drug conjugate)라고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Q

원큐어젠에서 약 2년 간 근무하실 때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 힘든 점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입사할 당시 원큐어젠은 시리즈A를 받기 전인 신생 회사였어요. 기업부설연구소와 본사의 역할이 거의 구분되지 않았고, 직원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연구개발업무를 전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연 구 계획을 세우고, 실험을 하고, 결과를 내고, 투자자들과 미팅을 진행하고, 그 자료를 만드는 것까지 모 든 업무를 다 맡았어요. 처음에는 연구원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했는데, 시리즈A 투자 를 받고 회사의 체계를 갖춰가기 시작할 때부터는 익숙하지 않은 업무들을 해야 해서 힘든 점이 있었습 니다. 하지만 회사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많이 배웠고, 그건 제가 교수가 되어 제 랩을 운영하면서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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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Q

이화여대 약대에서 오랜 시간 보내신 만큼 이화여대에 애정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화여대 약 대의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듣고 싶습니다.

A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대학원은 꼭 진학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은 학부에서 배우 는 것의 연장선이라기보다는 아예 새로운 차원에 있다고 생각해요. 또 회사의 입장에서 석사 과정을 마 친 약대생은 화학, 생물학, 약학에 대한 기본 지식을 두루 갖춘 인재인데, 현장에서 만나기 힘드니까 굉 장히 아쉬워요.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조교를 하거나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들도 학부 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은 후에 다양한 직업군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 각합니다. 그래서 대학원을 짧게라도 가는 걸 추천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진로에 대해 충분히 고 민하고 선택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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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3 바다가다 특집

최남경 교수님 - 바다가다 2기 - 2002 이화여대 약학대학 졸업 - 2004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석사(예방의학) - 2007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예방의학) - 현재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 융합보건학과 교수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바다가다의 시작을 함께하신 최남경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인터 뷰 내내 후배들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고 인 터뷰 이후에는 맛있는 식사를 사주시며 교수 님의 학창시절 추억을 공유해주셨다. 바다가 다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을 가지고 계신 교수 님께 감사한 마음이 드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엄현아, 이유진 | 편집위원

학부 시절 선배님은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오래 전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 그 당시엔 학교 열심히 다니는 학생이었어요. 시험 기간에 열심히 공부하 고, 시험 끝나면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고, 동아리도 ‘바다가다’, ‘에포’, ‘사진반(현재 모노롤)’ 세 개나 참여했 어요. ‘에포’는 1학년 때까지만 활동했었고, 2학년 때는 ‘바다가다’ 편집장을 하면서 편집부 활동을 주로 했었고, 3학년 때는 지금의 ‘모노롤‘인 사진반에서 총무를 맡아 방학 때마다 출사 여행을 다녀왔어요.

학부 시절 학업적인 면부터 휴식, 취미생활까지 후회되는 일이나 혹은 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많이 하면서 여러 친구들을 사귀고 열심히 학부 시절을 보낸 게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해요. 취미생활은 3학년 때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도 했고, 일본에 여행가서 메 뉴판을 보고 직접 음식을 주문해보고 싶어서 약 1년 동안 학교 수업 오기 전에 아침 6시 수업을 들었어요. 그런 데 저희 학창시절에 의약분업으로 전국 약대 학생 모두가 수업 거부 시위에 참여하게 되면서 학사일정이 미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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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졌고, 기말고사를 겨울방학 기간에 몰아보게 되는 바람에 그 해 겨울방학에 일본 여행은 못 가게 되었어요. 지 금은 일본어를 잘 안써서 거의 잊기는 했지만, 그 덕에 아직 조금 일본어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국제학회에는 다양한 나라의 전문가들이 오는데, 일본 교수님이랑 일본어로 몇 마디 대화해 볼 수 있어서 즐거웠던 기억이 나네요.

학부 시절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인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그런지 학부 시절에 특별히 기억에 남도록 힘들었던 것은 없었던 것 같아요. 굳이 다 시 떠올려보면 대학원 입시와 약사고시를 함께 준비하던 시기는 조금 힘들었던 것 같네요. 저는 4학년 여름방 학 때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원 연구실에 인턴학생으로 가서 연구실 세미나에 참관하고, 연구를 보조하였어요. 그리고 졸업 전 11월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약시 준비에 몰입해 있을 시기이지만, 저는 대학원 입시 필기시험 때 문에 제가 진학하려고 했던 예방의학 분야의 학부 교과 내용도 공부해야 했어요. 요즘은 대학원 필기시험이 없 어졌지만, 그 당시에는 입학시험이 있었고, 예방의학 전공의들이 석사과정에 입학할 때 보는 시험을 똑같이 봐 야 했어요. 이 시험을 위해서 학부 때 배우지 않았던 예방의학, 직업환경의학 등 방대한 내용을 혼자서 공부하 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다행히 저는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할 때 일을 더 늘리는 스타일인데, 일을 늘리 면 ‘내가 스스로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더 잘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 여름방학 인턴 이 끝나고, 2학기 개강하면서 아르바이트로 고등학생 대상으로 학원에서 과학과목 강의도 시작했어요. 그 때 몸도 너무 힘들었고, 걱정도 많았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바쁘게 보냈고, 다행히 대학원 입학시험 및 약사고시도 무사히 잘 치렀어요.

바다가다에서 첫 교지를 발간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지 그리고 발간 후에 소감이 어떠셨 는지 궁금합니다. 바다가다 1호 창간호는 약대 학생회에서 편집부 주도로 1997년에 발간되었어요. 제가 1998년 1학년 때 학 생회 편집부원으로 2호 바다가다 교지 제작에 참여했어요. 1999년도에 편집부가 학생회로부터 독립하여 약학 대학 단과대학 동아리로서 ‘바다가다’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단대지 이름이 그대로 동아리 이름이 되었어요. 이 때 제가 동아리 ‘바다가다’ 첫 동아리 회장 및 편집장으로서 3호 교지를 발간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교지 2호, 3 호에 발간에 대한 소감을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옛날 것들인데(1, 2, 3호 교지를 보여주시며) 이 교 지들에 아직도 큰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편집장이던 1999년에는 도정애 교수님의 정년퇴직 기념식, 신 약개발 심포지엄, 약업박람회 등에 대한 내용들을 교지에 실었어요. 기사 작성을 위해서 교수님들께도 자문을 구하고, 부원들끼리 여름방학 내내 많은 논의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편집부 활동을 하면서 편집부가 아 니었다면 쉽게 만나지 못할 선배님들을 만나뵐 수 있어서 뜻 깊었어요. 이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에 방 문하셔서 이화여대에 오셨었고, 약대 실험 수업에 참관하셨어요. 레드카펫이 정문부터 약학관까지 깔려 있었 고, 수많은 경호원들이 레드카펫 옆을 지키고 있었어요. 저도 친구들과 함께 약학관 앞에서 여왕님이 지나가시 는 것을 보았어요. 저는 당일은 실습 수업이 없었는데 친구들의 실습 수업에 참관하셨고, 여왕님이 실험에 관 한 질문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저에게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 있었던 일은 교내 신약개발 심포지엄에 취재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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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에요. 현재 석좌교수님이신 김대기 교수님께서 SK에 계실 때 우리나라 국가 신약 1호 선플라를 개발하신 것에 대하여 심포지엄에서 초청연자로 발표하셨었고, 그 날을 계기로 저도 신약을 개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고 생각하며 관련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러다 신약 허가 후 부작용 평가에 대한 연구가 우리나라 에서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 열심히 신약을 개발하면 누군가는 안전성을 평가하고 연구 하는 사람도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약물역학 분야를 전공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전공을 선택했던 모 든 생각 및 결정의 기반이 바다가다 활동으로부터 비롯되었어요. 그래서 교지 발간이 저에게 매우 의미가 깊었 던 것 같네요.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을 만나러 오면서 3호 교지에 제가 적었던 발간사를 읽어 보았는데 ‘고민을 제법 많이 하면서 교지를 만들었구나’싶더라고요. 편집장으로서 교지의 구성 및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 는데, 고생 끝에 부원 모두가 힘을 모아 ‘우리의 숨결이 살아있는 책’을 발간했음이 뿌듯했어요.

바다가다의 초창기를 함께하신 만큼 애정이 크실 것 같은데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아리 가 되길 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가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다. 바다가다가 이화여대 약대 4년을 담아둘, 기억하고 싶은 과거가 되길 바란다.’ 제가 3호 바다가다 교지의 발간사에 이런 문구를 썼더라구 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다시 보면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책, 그리고 우리의 숨결이 살아있는 책, 이 화여대 약대의 전통 있는 종합 단대지가 될 책’, 바다가다가 이런 의미를 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 고 바다가다가 약대생들의 관심사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하는 동아리가 되었으면 하는 꿈 이 있었어요. 그 꿈이 여기 있는 후배들 덕분에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매우 고맙게 생각해요. 앞으 로 더 많은 후배들이 바다가다에서 꿈을 꾸고 추억을 만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해외 연수를 다녀오시게 된 계기와 타 학교가 아닌 하버드 의과대학을 가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석사, 박사학위를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에서 약물역학 전공으로 받았어요. 그 후에 서울대학교 의 학연구원과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연구협력센터에서 연구교수로 있었고요. 그런데 제 박사 학위논문 주제가 보 건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알려지지 않은 의약품 부작용을 탐지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어요. 제가 2007 년 박사학위를 받을 때만 해도 이 분야 연구들이 초기 단계였는데, 2010년 이후에 미국 및 유럽 등에서 관심 이 높아지게 되었어요. 더불어 제가 지도 교수님을 따라서 대학원 학생때부터 국제약물역학회에 거의 매년 참 가했었는데, 그 곳에서 만났던 연구자들과 꾸준히 교류가 있었어요. 마침 제 연구 분야와 하버드 연구진들이 미국 FDA 지원을 받아 수행하고자 하는 연구가 유사한 것이 있어서 공동연구를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 어 가게 되었어요. 특히 하버드는 의과대학(Harvard Medical School)에 약물역학 및 약물경제학과(Division of Pharmacoepidemiology and Pharmacoeconomics)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제가 관심 있었던 연구방법 론을 개발하는 연구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어요. 현재는 국내에 약물역학을 전공한 교수님들은 저를 포함하여 몇 분 더 계시지만 아직까지는 대학 및 대학원에 약물역학과가 별도로 있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결 국 학교를 우선적으로 선택해서 가는 것보다는 수행하고자 하는 연구 내용에 맞추어 함께 할 수 있는 연구자들 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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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해외 연수 중에 어려움을 겪으셨던 일이 있으셨는지, 만약 있으셨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2015년 연수를 떠날 당시에 남편이 한국에서 일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 고민 끝에 혼자 6살 딸을 데리고 보스턴에 갔어요. 갑자기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내가 극기 훈련을 왔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고요. 그래도 너무나 운이 좋게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2년 동안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이때 만 났던 분들은 지금도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있고, 소중한 인연이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힘들 때는 꼬마였던 딸 도 저를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 주더라고요. 정말 큰 힘이 되었고, 지금도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학교 다 니면서 주어진 일들을 독립적으로 수행해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무언가를 스스로 해냈을 때 뿌듯함을 느 끼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연수를 통해 크게 깨닫게 된 점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주변의 도움을 잘 받고, 그 도움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도 내 주변 누군가의 사정을 먼저 헤아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궁극적으로는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 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하시는 진로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교수님께 서는 어떤 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원하는 진로를 찾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약대에 입학하였을 때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였어요. 아까 얘기했듯이 2학년 때 교내 신약개발 심포지엄에 바다가다 기사 취재차 참여했었는데 연자분들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고, 저런분처럼 되 면 나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어요.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가지던 중에 신약 개발에 수반되는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약물 안전성에 대한 연구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침 약물역학 분야를 연구하시는 교수님을 알게 되어 진학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약물역 학 연구를 하시는 분이 제가 알기로 저의 지도 교수님 한 분 뿐이셨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의대 대학원에 진 학하게 되었지요. 이후 국제약물역학회에 참여하면서 학회에서 의사, 약사, 보건학자, 통계학자 등 다양한 직종 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연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학생들도 주변에 관심있는 분야에서 존경하는 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서 진로를 탐색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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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4 바다가다 특집

[학부 관련 질문] Q. 학부 시절에 선배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A. 저는 무언가를 계속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국악반, 프 리메드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며, 학교에서 운동 수업을 들으러 다녔어요. 수업은 열심히 들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학점에 신경 쓰는 학생은 아니었고 오히려 외부 활동을 열 심히 했죠. 제 기수는 ‘CK-2’라고 해서 정부지 원장학금으로 학생들을 외국에 보내주는 프 로그램이 많았거든요. 2016년에 면역항암제 주제로 팜챌린저도 다녀왔고, 멘토-멘티 프 로그램 같은 장학 프로그램 등에도 꾸준히 참 여했어요.

Q. 학부 시절에 학업적인 면부터 휴식, 취미생 활 등 어떤 분야에서든 후회하는 부분이나 되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A. 후회되는 건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학교에서 하는 여러 운동 수 업을 들어본 거예요. 학교 안에서 수영, 테니 스, 골프, 발레 등을 배웠어요. 학교 밖에서보 다 확실히 저렴하게 다양한 운동을 배워볼 수

김수인 선배님 - 2019 이화여대 약학대학 졸업 - 2019. 5. ~ 2022. 11. 분당서울대병원 약제부 입원조제실

있으니 학생 때 이런 혜택을 많이 누리길 추 천해요. 평생 써먹을 근육을 키우기 위해 운 동을 꾸준히 했고, 여행을 많이 간 것도 좋았

- 2022. 12. ~ 2023 현재 분당서울대병원 물류자산팀 약품관리 파트

어요.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길게 휴가 내기

- 병원약사회 인증 전문약사(노인약료분야)

가 어려워서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학생 때 길 게 여행 간 게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지난 여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시는 바다가다 17기 김수인 선배님을 만나 뵈었다. 인터뷰 내내 선배님의 따뜻 하고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선배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약대생들이 가장 관심있는 진로 중 하나인 병원 약사 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김은서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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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Q. 이대 약대 재학시절에 국악반으로 활동하시 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재미있었던 에피소 드가 궁금합니다. A. 국악반에서는 제가 총무를 맡았었는데, 여 름방학 두 달 내내 학교에 살다시피 하면서


60주년 공연을 준비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국

로그램도 진행했었는데, 그때 만들어 둔 연으

악반으로 다른 분반 친구들도 많이 알게 되고

로 바다가다 인터뷰도 했답니다. 특히 컨택부

재미있는 추억도 많이 남기게 되어 좋았어요.

터 질문까지 주도해서 준비했기 때문에 기억

아쉬웠던 점은 공연 날에 다른 동기들은 틈틈

에 많이 남아요. 인터뷰 진행 후에도 GSK 이

이 연주복 입고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저는 하

사님께 연락을 드리면 흔쾌히 받아주셨는데,

루 종일 공연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사진을 거

제가 직장인이 되어보니까 그게 정말 힘든 일

의 못 남겼던 거예요.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한

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일도 많고 귀찮으셨

과정이 기억에 남습니다.

을 텐데 제 요청을 다 받아주셨다는 것이 너 무 감사했어요. 바다가다를 통해 인연을 만들 기도 하고, 그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되

[바다가다 관련 질문]

어서 좋았습니다.

Q. 바다가다에 지원하셨던 이유와 졸업하신 후 바다가다가 현재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지인을 통해서 09학번 선배를 소개받았고 입 학 전에 만나서 대화하면서 바다가다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그러고 나서는 새내기 배움터 에서 한 학번 위 선배들을 보았는데 소규모 동

Q. 김수인 선배님께 바다가다란? A. 따뜻하고 순둥순둥한 소녀들. 다들 소녀스러 웠던 것 같아요. 생일 때 롤링 페이퍼 적고 선 물 주고받는 것도 너무 좋았어요. 바다가다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같아요.

아리의 끈끈한 분위기가 좋아 보이더라고요. 또 말하는 것과 듣는 것, 글 쓰는 것을 좋아하

[직장 관련 질문]

는 저의 성향에 교지 동아리가 딱 적합했어요. 바다가다 동기들이 엄청 순하고 밝았어요. 빡 빡한 약대 생활 속에서 그런 친구들이 주변에

Q. 학부 졸업 후 병원 약사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있는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팜챌린저나 멘

A. 사실 약대 재학 중에는 제약회사에 관심이 많

토-멘티 프로그램도 바다가다 동기들이랑 했

았어요. 그러다 병원 실습을 강남 세브란스병

고, 시험 기간에도 서로 의지가 많이 됐어요.

원에서 했는데 당시에 참 분위기가 좋다고 느

국시 스터디도 바다가다에서 꾸려서 했었고

꼈어요. 병원 약사의 일은 정적인 줄 알았는데

요. 바다가다에서 소중한 친구이자 학교생활

저보다 더 외향적인 선생님도 계시고 업무 자

의 동반자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체도 생각보다 활동적인 거예요. 많이 돌아다 니면서 몸을 쓰는 게 저랑 생각보다 잘 맞는다 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국시를 준비하던 중에

Q. 바다가다에서 진행한 인터뷰 중 어떤 인터뷰 가 기억에 남으시는지와 이유가 궁금합니다.

분당서울대병원 공고가 떴는데 집과 너무 가 깝더라고요. 그래서 지원하게 됐죠. 만약 나중

A. GSK 이사님 인터뷰가 기억에 남아요. GSK

에 회사로 이직을 한다 해도 병원 약사를 거치

이사님은 제가 약대에 입학하기 전에 면접 스

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다른

터디를 하면서 알게 된 분이었어요. 저는 회

일을 하게 되더라도 약사다운 업무를 하다 가

사에 관심이 많았어서 그분과 멘토-멘티 프

야 약사임을 내세우며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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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생각이 그 당시에 들었던 것 같아요. 회사에

제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환자를 대면할 일이

가고 싶었던 이유는 작은 약국에 있기보다는

지역약국만큼 많지 않지만, CGA를 통해 환자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는 조직 생활을 해보고

와 대면해서 약력평가를 하고 복약지도를 하

싶었기 때문인데, 병원 약사는 그 부분도 충족

는 게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고 적성에 맞았어요.

될 것 같았어요.

팀 의료에 참여하지 않을 때에도 매일 처방 감 사를 할 때 노인전문약사를 따며 공부한 내용 이 도움이 되어요.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환자

Q. 노인약료분야 전문약사를 취득하신 계기와 원 내 일반 약사 업무와의 차별점이 있는지 궁금 합니다.

이죠. 조제 전 처방 감사는 약사의 기본 의무이 고, 병원에서는 처방 중재도 활발한 편입니다.

A. 아직까지는 특정 분야 전문약사를 땄다고 해

TDM(Therapeutic Drug Monitoring) 업무가

서 꼭 관련 업무를 하지는 않아요. 그것 때문

있어요. 치료 범위가 좁은 약물의 농도를 모니

에 회의감을 느끼고 전문약사를 굳이 따지 않

터링하여 개별 환자에게 알맞은 농도를 추천하

는 동기들도 많아요. 작년까지는 전문약사 제

는 작업인데, TDM 대상 약물들은 범위를 조금

도가 국가공인이 아닌 병원약사회 주관이었어

만 벗어나도 독성이 심해질 수 있어요. 대표적

요. 그런데 2023년부터는 국가 차원에서 인

으로는 반코마이신 같은 항생제가 여기에 해당

정을 해주는 전문약사 시험이 도입돼요. 다행

하죠.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약제부에 그날 측정

히도 전 운이 좋아서 취득한 직후에 바로 노

한 개별 환자의 약물 농도 데이터를 주면 약물

인 관련 업무를 했어요. 병원에서 전문약사 취

농도를 어떻게 조정해야 되는지를 계산해서 제

득을 권장하기도 했고 노인 약료가 궁금하기

시해요. 학교에서 배운 약동학 지식이 그대로

도 했죠. 고령화 사회니까 만약 병원을 떠나

쓰이는 순간이죠. 또 병원 안에서의 조직 생활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도움이 될 거

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약제부에 있을 때는 다

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어요. 저희 병원이

른 부서랑 소통한다고 해봤자 간호사, 의사와

노인의료센터 팀 의료가 유명해서 노인약료

전화나 메시지로 대화하는 게 전부였어요. 지

분야 전문약사를 많이 따는 것 같기도 해요.

금은 물류자산팀 약품관리파트, 쉽게 말하자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간호사, 영양사, 약사가

면 약품창고로 부서 이동되어 일하고 있는데,

한 팀으로 시행하는 노인 포괄평가라고 하는

구매계약팀이나 보험심사팀과 협업을 많이 해

CGA(Comprehensive Geriatric Assessment)

요. 의약품 입찰·계약 과정과 수가 변경 과정에

검사가 있어요. 한 환자를 인터뷰하면서 간호

서 약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담당하며 약사 직

사는 인지 기능 평가를 기록하고 영양사는 영

능에 대해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어 좋고, 다

양평가를, 약사들은 약물 평가를 해요. 중복

른 부서와 서로 잘 아는 부분을 공유하며 일 처

되는 약이 없는지, 불필요하게 복용하는 약

리하는 과정이 재밌어요. 약제부 입원조제실에

이 없는지, 과용량으로 드시거나 잘못된 용법

있을 때는 타 부서 사람이라면 주로 의사나 병

으로 드시는 약은 없는지, 그리고 약물 간 혹

동 간호사들과 임상 위주의 대화만 했었거든

은 약과 환자의 질환 사이에 상호작용이 없

요. 조제실에서는 생각해 보기 어려웠던 의약

는지 노인주의 약품은 없는지까지 모니터링

품 유통 과정 혹은 수가 산정 과정에 대해서 알

하고 평가해요. 약사가 기록을 꼼꼼히 해서 의

게 되는 것도 흥미로워요.

사가 진료 시 참고할 수 있도록 하죠. 병원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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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들의 많은 비율이 노인 환자분들이기 때문

기획 인터뷰


Q. 진로를 결정하는 게 어려워 졸업하고 어떤 일

서 일찍 퇴근하고, 대신 다른 날 야근하시더라

을 해야 될지 갈피를 못 잡는 후배들에게 해

고요. 또 전반적으로 덴마크 사람들은 가족과

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으신가요?

의 시간을 1순위로 확보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

A. 저처럼 갑자기 진로가 확 바뀔 수도 있어서 막 연히 고민만 하기보다는 직접 이런저런 활동 을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혼 자 여행을 가도 스스로 하나하나 결정하고 우 여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자기 성격이 나오고, 능력이 개발되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여러 차 원의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잘 파악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대 약대 올 정도 면 사실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자기가 얼만 큼 꿈꾸냐에 달려있는 것 같아요. 결국 자신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알아야 해요. 저는 약 대 입학 전에 덴마크로 교환학생을 다녀왔었 어요. 당시 현지인의 집에 방 한 칸을 빌려 하 숙을 살았었는데, 호스트 아주머니께서 점심 시간마다 집에 와서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아 이 운동회가 있는 날은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그게 행복지수가 높은 비결처럼 보였어요. 추후 약대에 진학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약사가 되면 생애 주기에 따 라 내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하기 좋을 것 같았 어요. 워낙에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과 과학 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또 의료봉사동아리 활 동을 하면서 의대, 간호대 친구들은 물론 전산 담당 친구들과 같은 다양한 직군들과 소통하 는 것도 재미있었기 때문에, 지금 속해 있는 물 류자산팀으로 로테이션 권유를 받았을 때 흔 쾌히 수락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임상 부서에 있을 때랑은 또 다른 것들을 새로 배우고 경험 하며 즐겁게 직장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학교 안에 앉아서 공부만 해서는 알 수 없어요. 학부 생활을 하는 동안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 신을 잘 파악해 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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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5 바다가다 특집 임성은 선배님 2023 이화여대 약학대학 졸업

바다가다의 과거는 어땠을까? 전 회장이신 임성은 선배님과 함께 바다가다의 3년 전을 밟아가 보았다. 과거 를 회상하시는 모습에서 여전히 교지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느껴졌다. 현재는 대학원에서 LNP 전달 연구에 몰두하고 계시며,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학부생들의 걱정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지윤 | 편집위원

Q 바다가다 회장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동아리 관련 에피소드가 있나요? 회장으로서 교지 발행에 대한 부담감이 매우 컸어요. 3학년으로 들어갔을 때는 바다가다 언니들과 같이 지낼 수 있었는데, 4학년 때는 코로나로 인해 모임이 제한된 상황에서 교지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 었어요. 인터뷰도 거의 서면으로 진행이 되었죠. 그렇게 어렵게 교지를 냈던 기억이 나네요. 또, 제가 3학 년 때는 동방에 모두 모여 대면으로 퇴고했어요. 앉을 자리가 없어서 소파 위에까지 올라가거나, 친구 무 릎 위에 앉아서 퇴고하기도 했는데, 한 명이 말꼬를 트기 시작하면 수다가 시작되니까 언니들이 말을 끊 어 주기도 했어요. 그렇게 교지를 내기 위해서 같이 옹기종기 모여 퇴고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퇴 고 끝나고 회식 가서 신나게 놀 생각에 아주 열심히 집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많이 지나도 몽글몽글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아요.

Q 바다가다와 VVC 모두 경쟁률이 높은 동아리인데, 합격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동아리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지원했어요. 그래서 이 동아리는 무슨 활동을 하는지, 내가 부원이 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 다 생각해 보고 지원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예상 질문도 많이 생각했어요. VVC 면접에서는 바다가다 회장이면 시간이 없지 않은지, VVC 활동에 에 참여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을 받았는데 제 플래너를 보여드리면서 철저한 시간 관리 능력을 각인시키려고 했어요. 예상 질문을 준비 하면서 그 동아리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충분히 한 후 면접을 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지만 사람들이 제일 많이 놓치는 부분인 것 같아요.

Q 바다가다에서 여러 인터뷰를 진행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무엇인가요? 재작년에 은퇴하신 이공주 교수님 인터뷰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때가 한창 대학원 진학을 망설이고 있을 때였어요. ‘내가 할 수 있을까? 학위 과정이 너무 긴 거 아닌가?’ 이런 걱정으로 망설이고 있던 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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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에, 교수님께서 ‘그 긴 과정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마라. 이약 친구들이라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때 이 말씀이 진로 고민의 해결책이 되었고, 제 선택에 용기를 주었어요. 그 인터뷰와 분위기, 제가 느낀 감정이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어요.

Q 동아리 활동이 선배님의 진로 선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약대에 있는 동안 모든 진로를 경험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바다가다 인터뷰를 다니며 다양한 분야에 계시는 선배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간접 체험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고, 시야도 더 넓어졌어요. 그리 고 제가 참여한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퇴고 과정에서 모든 인터뷰를 읽어보게 되잖아요. 마지막 질문은 항상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이고, 이에 대한 인터뷰이 저마다의 답변을 보며 인생의 목표에 대해 일 찍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 덕분에 진로 선택이 확실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Q 바다가다 회장으로서 부원 혹은 임원진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저희는 교지 발행이라는 목표가 있잖아요. 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그저 일이라고 생 각하면 너무 힘들어요.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모여서 다 같이 끝내는 게 좋아요. 그리고 약대 교육과정이 6년제로 전환되면서 1~4학년이 모두 있으니, 임원진 입장에서는 끌고 가야 할 부원들이 2배로 늘어난 거잖아요. 각 부원들의 능력을 활용해서 역할 분배를 잘 하는 것도 임원진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혼 자서 다 안고 가려고 하지 말고요.

Q 선배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저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렇지만 후배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처음 약대에 들어왔을 때 는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뭘 못하겠어’라고 생각하면서 열정 가득한 상태로 입학했어요. 그래서 돌이켜 보면 외부 활동도 많이 하고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데 졸업하고 나니까 정말 국시만이 최 종 목표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 혼자 잘나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없어요. 도움받을 것은 받 고, 베풀 것은 베풀어야 훨씬 효율적이거든요. 그래서 누구 하나 뒤처지는 사람 없이 다 같이 으쌰으쌰 하면서 졸업을 향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Q 연구 진로를 고려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추천해 주실 교내 외 활동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캡스톤 프로젝트를 추천해요. 캡스톤의 진행 과정을 보면 주제를 정하고, 관련된 선행 연구와 조사를 하고, 전문가를 직접 인터뷰하고, 그 모든 과정을 보고서로 작성한 후 발표를 하는 거잖아요. 대학원 생활의 압축 본이라고 보시면 돼요. 저는 논문을 읽고 공부만 하는 줄 알았는데, 대학원도 캡스톤과 마찬가지로 발표까 지 아우르는 전 과정을 다뤄야 하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캡스톤을 미리 경험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학부 인턴도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학교에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학교 안에서 경 험해 볼 수 있는 건 최대한 해 보고, 외부 세미나나 강연은 온라인이라도 좋으니 적극적으로 수강하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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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좋겠어요. 새로운 관심 분야를 혼자서 공부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리뷰 논문 하나를 읽는데 일주 일이 소요되기도 하거든요. 그러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분야 최고의 인물에게 강연을 듣 는 게 훨씬 효율적이에요. 강연 관련 포스터나 공지사항이 단톡방에 올라오면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키워드 하나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약국 및 병원 실습 후 선배님이 느끼신 각 진로의 장단점이 궁금합니다. 약국의 좋은 점은 환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배운 지식을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최 고의 공간이죠. 또 약국은 파트가 많아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 이렇게 유연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은 약사밖에 없는 듯 해요. 일을 많이 하는 친구들은 파트타임 근무를 3개씩 해요. 약국마다 스타일이 다양하다는 장점도 있어요. 예를 들면 문전이어서 조제만 하는 약국이 있어요. 이런 곳은 장기 처방이 많다 보니 학부에서 배운 약물 상호작용과 관련된 지식을 활용할 수 있어요. 반면 종로처럼 건강 기능식품 상담을 주로 하는 약국도 많아요. 이런 약국에서는 약물 치료 지식은 많이 적용되지 않지만, 새 로운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어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여러 약국을 다니며, 약사로서 능력을 다양 하게 계발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병원은 소속감이 제일 크고, 안정적인 면이 있어요. 기업처럼 휴가를 비롯한 복지가 잘 제도화 되어 있어 요. 또한, 시스템이 체계적이고 임상 분야에서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어요.

Q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한 연구실에서 인턴을 두 번 하고, honors research도 하고, 심화 실습도 하면서 실험실 생활에 익 숙해져 자연스레 선택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다만 실험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고민했었죠. ‘연구는 천재 들만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작년 심화 실습 사수였던 김민정 박사님께 서, 제가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해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 말씀해 주시고 다음부터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실수하더라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방법을 깨닫게 된 거죠. 박사님과 같이 일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나도 저런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대학원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뚜렷해졌던 것 같아요.

Q 진로 결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요소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최소 5년 동안 질리지 않고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성장할 수 있는 곳 인지였어요. 5년 동안 질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저에게는 대학원이었고요. 작은 실험들이 모여 서 큰 성과가 되는 거라, 실험 하나하나를 성공할 때마다 짜릿했어요. 그게 제 원동력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작년 심화 실습 때 대학원 졸업 후에는 분명히 지금보다 성장해 있을 거라 느꼈어요.

Q 이혁진 교수님 연구실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는지,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소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희 연구실은 세 팀으로 나뉘어 있는데, mRNA 팀, oligo 팀, LNP 팀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는 세 가지 분야 중 LNP(Lipid Nano Particle, 지질 나노 입자) 팀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LNP는 mRNA나 siRNA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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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은 유전 물질들을 봉입해서 전달하는 전달체예요. 우리가 생물 시간에 배우는 central dogma 기억나죠? DNA에서 mRNA가 되고 이게 단백질이 되는 것이 만물의 근본 원리라는 내용이잖아요. 이게 제가 지금 하는 연구를 관통하는 한 문장이기도 해요. 단백질 서열을 알고 있으면, 그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mRNA 서열도 알 수 있잖아요. 이 mRNA를 in vitro에서 합성할 수 있는 기술(IVT mRNA)이 있어요. 만약 A라는 단백질을 만들고 싶은데, A의 염기서열을 알면 mRNA를 합성할 수 있는 거죠. 이 mRNA를 LNP로 감싸 서 전달해요. LNP가 간세포에 전달되면 mRNA가 번역되고 단백질이 합성돼요. 이때, 저는 간 이외에 다 른 곳으로도 LNP를 전달할 방법을 연구하고, LNP를 활용한 유전자 편집 기술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Q 대학원생의 일상은 어떤지, 대학원 생활에 대한 선배님만의 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전날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해요. 일단 그 주에 수행할 실험과 요일마다 수행할 실험을 정리하고 언제 그 기기를 쓸 건지 예약해야 합니다. 대학원이라고 하면 ‘또 공부하러 가?’, ‘지금까지 공부 많이 했는데,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라는 반응이 많은데, 결국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전까지 하던 단순한 공부보다는 정말 필요에 의한 공부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왜 실험 결과가 예상대로 나오지 않는지 너무 궁금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게 되거든요. 저는 이러한 능동적인 공부가 훨씬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원 생활은 사회생활 미리보 기라고 생각해요. 데이터를 잘 가공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것을 유의미한 자료로 만들어서 발표할 수 있는 능력 이 모든 게 다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당연히 쓰이는데, 대학원에서 하드 트레이닝을 해서 사회로 내보내는 느낌이에요.

Q 선배님의 최종 목표와 꿈,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진로 고민이 많았어서 당분간 너무 먼 미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 당장의 단기 목표는 많은 사 람들한테 인정받는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것, 그리고 논문을 완성하는 것이에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역량 은 시간을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서 효율을 뽑아낼 수 있어야 해요. 대학원에서의 첫 학기는 적응 기간으로 빠르게 흘려 보냈지만, 이번 학기부터는 시간 관리를 해보자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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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약대생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들 김민지, 최이준 | 편집위원

“친구들이 ‘한약재 보조 식품과 감기약이나 비타민을 같이 먹어도 되냐’고 맨날 물어봐요..!”

가능여부 ◯/×

일반 약 진통소염제

항생제

×

만성질환 약

비타민

❶ 일반 약과 한약 - 해열 진통제: 같이 복용하면 안 됩니다!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은 간 손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해열 진통제로 간 수치가 높은 상황에서 한약을 먹으면 간에 부담을 줄 수 있어 한약의 복용 은 잠시 중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 항생제: 시간차를 두고 복용하거나, 한약 복용을 중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약은 장내 미생물총과 상 호작용하며 효과를 내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런데 항생제는 몸 안의 유해균 뿐만 아니라 유익균도 죽 일 수 있기 때문에 항생제 복용 직후 한약을 복용하면 한약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항생제 복용으로 위장 기능이 약해진 상태에서 한약을 먹으면 설사, 복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항생 제와 한약을 함께 복용할 때에는 최소 1시간 이상 간격을 두고 먹거나 되도록 항생제 복용이 끝난 1주 일 뒤에 한약 복용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❷ 만성질환 약과 한약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같은 만성질환의 경우, 대체로 같이 복용해도 괜찮으나, 한약과 양약의 효과가 중 복되거나 한약이 양약의 효과를 저하시킨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만성질환 치료를 위해서는 양약 복용을 우선시해야 하며, 한약사에게 관련 질환이 있음을 꼭 알려야 합니다. ❸ 비타민과 한약 같이 복용해도 좋으나 한약은 공복에 복용해야 흡수가 잘 되고, 비타민은 식후에 복용해야 속 쓰림을 비 롯한 위장장애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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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친구들이 ‘영양제를 추천해달라’ 해요!”

구분

권장섭취량/충분섭취량

최적섭취량(ODI)

최대섭취량

비타민A(레티놀)

2,000~2,500IU

5,000IU

10,000IU

비타민D

200~400IU

400~4,000IU

4,000IU

비타민E

15~30IU

400~600IU

1,000IU

비타민K

65~75mcg

120mcg

비타민B1(티아민)

1.2~1.4mg

25~100mg

비타민B2(리보플라민)

1.2~1.7mg

15~50mg

비타민B3(니아신)

14~16mg

25~30mg

35mg

비타민B5(판토텐산)

5~10mg

25~100mg

10,000mg

비타민B6(피리독신)

1.4~2.0mg

25~50mg

100mg

비타민B7(비오틴)

30~200mcg

400~800mcg

비타민B9(엽산, 폴산)

250~400mcg

400~800mcg

비타민B 12(시아노코발라민)

2.4~3.0mcg

200~400mcg

비타민C(아스코르브산)

60~100mg

1,000mg

1,000mcg

2,000mg

출처: 비타민 혁명(세리 리베르만)

종합비타민 ❶ 종합비타민 효능 종합비타민은 비타민과 미네랄이 함유된 영양제로, 건강에 필수적인 미량원소의 결핍을 예방하거나 해 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면역력 강화(비타민 C, D)에 효과적이며 뼈 건강 유지(비타민 D)와 노화 예방(비타민 A, C, E), 피로 개선(비타민 B), 피부 건강 유지(비타민 A, C, E)에 도움이 됩니다. ❷ 종합비타민 선택 방법 - 우리 몸에 필요한 적합한 영양소 조성과 충분한 함량 표의 ODI (Optimum Daily Intake) 최적 섭취량 기준으로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는 함량과 다양한 비 타민을 포함하는 영양제로 고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 흡수율, 생체 이용률이 높은 원료 흡수율 및 생체 이용률이 높은 활성형 비타민, 유기산염 미네랄 등의 비타민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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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 ❶ 오메가3의 효능 오메가3는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억제해 만성 염증을 개선시키며, 심혈관계 질환 예방 및 혈액순환에 도 움이 됩니다. 면역 반응을 조절하고 기능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뇌 유래 신경영양인자인 BDNF(BrainDerived Neuroptopic Factor)를 증가시켜 뇌 기능을 향상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❷ 오메가3 선택 방법 - 1000mg 이상의 EPA+DHA 함량과 70% 이상의 순도 건강상 유익을 볼 수 있는 EPA와 DHA 합의 최소 권장량은 500mg 이상이며, 이상적인 복용량은 1000mg입니다. 순도를 고려하여 1000mg 이상의 함량에서 70% 이상의 순도(최종 700mg)를 가진 오메가3를 추천합니다. - 원료의 형태 TG형

불포화지방산

포화지방산

rTG형

글리세롤

불포화지방산

에탄올

글리세롤

포화지방산

EE형

불포화지방산 불포화지방산 불포화지방산

자연 상태의 지방산

인공 상태의 지방산

자연 상태의 지방산

저순도

고순도

고순도

흡수율 ↑

흡수율 ↓ , 흡수속도 ↓

흡수율 ↑ , 생체이용률 ↑

생체이용률 100%

생체이용률 73%

생체이용률 124%

출처: 윤민호 (2022). <지금 당장 건강에 투자하라!>. 매일경제신문사

오메가3의 원료 형태에는 TG형(1세대), EE형(2세대), rTG형(3세대)이 있습니다. TG형은 자연 상태의 오 메가3로, 순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여 고순도, 고농축 형태로 가공시킨 것이 EE형이 지만, 자연형인 TG형에 비해 흡수율이 낮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rTG형으로, 자연상태로 오메가 3의 구조를 재조립하여 순도가 높고, 흡수율 및 생체 이용률이 가장 좋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rTG 형이나, EE형도 효능이 좋다고 합니다. - 인증 마크 오메가3에 포함되는 불포화지방산은 불안정하여 변질되기 쉬우므로 순도, 산패 정도, 중금속 불순물 등 의 오염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사하여 받는 인증 마크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증 마크인 IFOS와 GOED, USP의 인증을 받은 원료를 사용한 제품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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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마그네슘 ❶ 마그네슘의 효능 마그네슘은 혈관 내피에서 NO와 PGI2의 생성을 촉진해 혈관을 이완시키므로 심혈관 건강 개선 및 신경 안정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마그네슘은 에너지 생성을 촉매하는 효소의 조효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피로 개선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산화스트레스로 인한 만성 염증 및 인슐린 저항성을 예 방할 수 있습니다. ❷ 마그네슘 영양제 선택 방법 - 종류 마그네슘 영양제에는 킬레이트형, 유기산염형, 산화형 마그네슘이 있습니다. 킬레이트형 마그네슘은 가장 부작용이 적고 흡수율이 높지만 가격이 비쌉니다. 산화형 마그네슘은 가격이 낮지만 설사 등의 부작용이 있습니다. 유기산염형 마그네슘은 흡수율 등 효능과 가격, 부작용 면에서 킬레이트형과 산화 형의 중간에 있습니다. - 나에게 맞는 마그네슘 찾기 마그네슘은 하루에 750~1000mg을 섭취해야 하는데, 음식물을 통한 섭취량을 고려하면 영양제로는 200~350mg정도를 보충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처음에는 산화형 마그네슘 350mg 정도 시도해보세 요! 하지만 복용 시 설사와 복통 등 부작용이 있다면 유기산염형 마그네슘으로 바꿔 200mg~300mg 정도 섭취해보세요. 그래도 부작용이 있다면 킬레이트형 마그네슘 200mg~300mg 섭취를 권합니다!

“친구들이 ‘비타민을 먹어봤자 소변으로 그대로 다 나오는 거 아냐? 소변 색깔을 보면 먹은 보람이 없어’라고 물어봐요!”

아닙니다! 소변과 혼합되어 나오는 비타민은 체내 필요량을 초과한 만큼이 흡수되지 못해 배출된 것입 니다. 일부 비타민이 배출되면서 소변의 색상에 영향을 주는데, 일반적인 원인은 비타민 B2(리보플라빈) 으로, 대다수의 비타민 제품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성분입니다. 또한 수용성인 비타민 B 중 B9(엽산)과 B12(코발라민)의 과량 복용 시에 소변이 형광색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량 복용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과다한 비타민 B 섭취 시 위장관 불편, 저림, 피부 발진, 기 분 변동 등 부작용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걱정이 되신다면, 일일 권장 섭취량을 넘지 않도록 보충제의 라벨을 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또, 혹여 밝은 노란색이 아니라 탁하거나 이유 모를 색상 변화가 나타나 는 소변의 경우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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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약 먹는 거를 잊어버렸으면 늦게라도 먹어야 해? 아니면 그 다음부터 챙겨 먹어야 해?’라고 물어봐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 뜻하지 않은 복약 불이행 발생 시, 대개의 CMI(Consumer Medicine Information) 지침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놓친 복용은 어쩔 수 없고, 다음 복용 때 정량 투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약바약’이 맞는 말입니다. 놓친 복용이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먼저 판단해야 합 니다. 환자 상태의 심각성, 임상적으로 중요한 지표로의 도달 가능성, 의약품의 특성 등 여러 요인에 따 라 놓친 복용에 대한 대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혈압이나 고콜레스테롤혈증 등의 대다수 질병은 누락된 복용에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치료 농도 유지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간질이나 혈전색전성 질환(thromboembolic diseases requiring anticoagulation) 등의 경우, 약의 반감기를 고려 한 후속 조치가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약물이나 활성 대사산물의 반감기가 길다면 복용 누락의 영향이 적지만, 특정 약물의 경우 임 상 효과가 반감기와 무관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환자들은 대체로 약물의 특성이나 반감기를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자신이 복용하는 약에 대해 약사 등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친구들이 ‘의도치 않게 마약을 접하게 된다면 (ex. 독극물 테러)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물어봐요!”

소위 ‘마약 청정국’이던 우리나라도 학원가 마약 테러가 자행되면서 완전히 안전치만은 않다는 점이 알 려져 이런 질문을 자주 들을 것 같습니다. 혹시 TV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에서 마약범죄 수사대 박남규 경감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경감님께서 언급하신 마약 중 일명 ‘좀비 마약’으 로 불리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펜타닐은 2mg만으로도 호흡 중추가 마비 되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성분입니다. 만일 펜타닐을 과량 흡입하게 된다면 길항제인 날록손 (Naloxone, 상품명 Narcan)을 비강에 분사해야 합니다. 30~90분 이내에 분사해야 하며, 분사 2~3분 후 안정적인 호흡을 되찾을 수 있기에 위급 시 마약중독 해독제로 취급됩니다. 현실적으로 어떤 마약에 노출되었는지 알기 어렵고 눈에 두드러지는 공통 증상을 특정할 수 없기에 만 족감이나 우울감 등의 감정 변화, 무호흡, 체온 강하, 무통 등의 신경계 증상들 위주로 주위 사람들이나 자신의 신체 상태를 확인한 후 119에 신고를 하거나 전문가에게 진단을 받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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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약학대학 동창회를 소개합니다

선교부 1986년 5월 이화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교수 한 분, 동창 두 분이 이화와 약대 복 음화를 위해 뜻을 모아 기도함으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약대 가족기도회’로 출발 하였는데 1992년 10월 약대동창회 선교부로 동창회 소속이 되었다. 선교부는 매월 둘째 화요일 오전 11시에 약학관 B동 108호 교수 휴게실에서 월례 에배를 드리고 매월 선교사들에게 선교사 후원사역으로 후원금을 보낸다. 1992년에 ‘약대 가족 기도회’에서 ‘약대동창회 선교부’로 개칭하고 선교부장학회를 발족시켰다. 현재 활동으로는 선교사 후원 사역과 기도편지 사역, 약대 신입생을 위한 사역, 선교장학금 지급, 재학생 선교부 후원 등의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선교부 장학회 선교부 장학회는 약대가족기도회로 시작하여 1987학년도 1학기부터 약대 내 복음 화의 목적으로 믿음을 가진 학생에게 선교부장학금(등록금의 50%)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1992년부터 선교부장학회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현재는 재학생 선교부원 (IaM) 중에서 선정하고 있다. 첫 장학생은 1987년 1,2학기에 30만원씩 4명에게 지 급되었고, 현재는 300만원씩 연 4명에게 수여되고 있다.

2023년 8월 월례예배. 설교와 축도를 해주신 이상웅 목사님, 예배를 준비해 주시고 식사와 간식을 준비해 주신 약대 교수님들과 IaM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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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진로 인터뷰

박명신 배우님 이소연 선배님: 굿밸런스온누리약국 허수진 변호사님: 법무법인 ‘태평양’ 이수정 청장님: 광주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한주연 선배님: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한혜원 선배님: 서울아산병원



| 진로인터뷰 |

Interview 01

박명신 배우님 - 1988. 이화여대 약학대학 졸업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 연기과 예술사 졸업 - 2002. 영화 <오아시스>로 데뷔

유일무이한 이대 약대 출신의 배우, 데뷔 21년 차의 박명신 배우님을 만나 뵈었다. 인터뷰를 통해 스 스로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변명 속에 실행을 주저하고 있진 않았는지 다시금 마음가짐 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후배들을 위해 인터뷰에 응해주신 배우 님께 감사드리며, 인터뷰를 통해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주예, 김경인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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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인터뷰


Q1. 약학대학에 입학하시게 된 계기와, 언제부터 배우의 꿈을 가지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사실 약사가 꿈은 아니었어요. 막연하게 의대를 생각했었죠. 중학생 때 본 소설에서 백혈병에 걸려 죽는 것을 너무 아름답게 묘사했어요.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왜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고 그걸 아름 답게 생각하는지 너무 화가 나서 의사가 돼서 저런 병을 다 고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대학 진학 무렵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부모님께서 상대적으로 금전적인 부담이 적은 약대에 갔으면 하시더라 고요. 그래서 이대 약대에 오게 됐어요. 연극을 하게 된 거는 조금 어릴 때로 돌아가는데, 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우리 학교에서 크게 학예회를 했었어요. 그때 어린이 오페라로 백설공주를 한 적이 있는데,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솔로곡 한두 곡이 있 는 동물 역할을 맡았고 그 작업 과정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 기억으로 대학교 때 연극반에 들어갔고, 정 기 공연에서 운 좋게 무대에 올랐는데 그때 ‘이건 내 천직인가 봐’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2. 학부 시절의 선배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학부 시절 기억에 남는 경험이나 현재 이화여대 약대 학생들 과 공유하고 싶은 기억이 있으신가요? 학부 시절을 돌이켜보면 약대보다 연극반에 대한 추억이 더 커요. 저를 소개할 때 이대 연극학과고, 부 전공이 약학과라고 얘기할 정도였어요. 그렇다고 반항적인 학생은 아니었고 졸업을 위해 수업과 실습 은 꼬박꼬박 들어갔어요. 약대 생활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1학년 때 학생들끼리 농활을 갔다 온 거예 요. 직접 농사를 짓는 걸 돕다 보니 내 입에 들어오는 먹거리들이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농활을 하며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하지 말고, 대상의 고유한 특성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 를 갖자’는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도 농활 체험 등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 보면 좋겠 어요.

Q3. 약학과 연기는 분야의 차이가 너무 크기도 하고 공부량이 많은 약학과와 연극동아리의 병행이 쉽지 않 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과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1학년 첫 연극 공연이 끝나고 나서 배우가 나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약대 졸업 후 약사가 되어서 아마추어 연극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3학년쯤 사회에 대한 눈이 뜨이면서 내가 약사라 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졸업을 위해 최소한으로 수업을 듣고, 성적은 학사경고를 안 맞을 만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연기와 약학과를 병행했어요. 4학년 말 이후로는 그냥 연기를 계속하겠다는 생각으로 아예 극단에 들어가서 극단 활동을 시작했죠. 그 다음에 정말 운 좋게 약 사고시에 붙었어요.

Q4. 지금까지 여러 가지 다양한 작품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첫 번째는 한예종 연극원에 들어간 거고, 두 번째는 제 데뷔작인 ‘낙타들’이라는 예술 영화에 출연한 거 예요. 조감독들이 한예종에 직접 와 재학생 인터뷰를 다 따갔는데 알고 보니 그게 오디션이었어요. 두 번 째 미팅에선 감독님께서 극 중 역과 제 이미지가 별로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셔서 저는 제가 될 줄 몰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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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요. 그런데 3차 미팅을 하고 캐스팅이 확정된 이후 감독님께서 저를 위해 시놉시스를 다 바꿨다고 얘 기하시더라고요. 여자 주인공을 동네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로 설정하고, 배경을 신촌으로 하는 등 제가 잘 아는 내용으로 구성해 주셨어요. 제가 작품을 하게 될 줄 몰랐다가 참여하게 됐고, 제가 잘 아는 내용 으로 구성한 저의 첫 영화이자, 불륜 영화라는 파격적 소재였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Q5. 전공 공부를 하시던 경험이 연기를 하실 때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굉장히 이성적이라 흥분을 잘 안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다른 배우들 보면 살짝 특이한 사람들 이 많잖아요. ‘배우가 되려면 저렇게 미쳐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스스로가 배우를 하기 위한 끼가 하 나도 없는 것 같아 연기를 계속해도 되는지 고민에 빠졌었어요. 그래서 다시 학교에 가기로 결정한 거예 요. ‘배우’라는 것을 학습해야 자신 있게 연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시에 따르던 선생님을 따라 한국예술종합대학교에 학부생으로 입학했어요. 한예종에 들어간 것은 천운인 것 같아요. 제가 한예종을 안 가고 연기를 했으면 한계에 부딪혔을 수도 있고 이론으로만 공부했다면 더 그만두고 싶었을 텐데, 실기 위주인 한예종에서 신체 훈련을 받으며 제가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생각에는 그게 약대 공부를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생리학이나 해부 학 공부를 했기 때문에 제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객관적으로 이미지화하기가 훨씬 수월했던 거죠. 신 체적 감각을 훨씬 잘 느끼고 이성적이다 보니 그걸 복기하거나, 객관적으로 설명하거나, 적용하는 게 다 른 친구들보다 수월하더라고요. 이과 과목을 잘하는 게 연기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걸 한예종 수업을 들으면서 알았어요. ‘논리적이다’라는 것은 내가 지금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거든 요. 그동안 나는 내가 너무 이성적이어서 배우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연기는 정말 이성적 인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연기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6. 대학원을 마치고 학생들을 가르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와 선배님께서 연기를 지도하실 때 특별히 중점을 두는 포인트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은데, 모든 재밌는 에피소드는 본질에서 벗어난 것들 같아요. 제 가 한예종에 가서 너무 놀랐던 게 교수님들께서 너무 친구 같고 교수님과 학생들 사이 경계가 희미하다 는 점이었어요. 저는 그런 경계가 허물어지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저도 그런 관계가 되고 싶었어 요. 첫눈 오는 날에는 학생들과 나가서 막걸리 한 잔을 한 적도 있고 가끔 수업 대신에 맨발로 학교 근처 공원을 돌아다녔던 적도 있는데, 이처럼 일상적이지 않은 활동들을 하며 학생들과 가까워졌던 에피소드 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제가 지도할 때 연기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딱 하나예요. 어떤 친구가 옛 날에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그때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면 잘할 수 있다고 답했어요. 저는 ‘나를 위해서 연기하지 말고 캐릭터를 위해서 연기하라’는 얘기를 계속해요. 연기 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나를 위한 마음인 거죠. 보통은 내가 사람들한테 멋진 배우로 보이고 싶고 잘하는 배우로 대접받고 싶은 마음만을 가지는데, 그런 마음이 아니라 ‘이 사람의 인생은 어떨까, 내가 어떻게 이 사람을 잘 대변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해야 해요. ‘캐릭터를 위해서 연기를 해라’라는 문 장이 제 수업의 핵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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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인터뷰


Q7. 앞으로 맡고 싶은 배역이나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큰 욕심은 없어요. 배우 일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배우가 됐으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배우로서 성공한 거죠. 저는 배우로서 성공할 생각이 없었고 어릴 때부터 연기를 통해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 했어요. 초반에는 약사 일을 하면서 배우 일을 했는데, 처음으로 강의를 하면서 제가 약국에서 일하지 않 아도 먹고 살 수 있게 됐을 때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또 2018년도에는 전업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으 로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나올 때 너무 뿌듯했어요. 저는 가르치는 것도 안 하고 연기하는 것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배우가 됐으니까요. 그래서 더 하고 싶은 역할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는데, 제 학부와 화술을 살려 지적인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변호사나 검사 같은 역할을 한 번 정도 맡아봤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그 무엇보다도 제 건강을 잘 유지해서 연기를 오래 하는 것이 배우로서의 제 꿈 이에요.

Q8. 선배님의 지난 경력과 인터뷰를 보면 중요한 순간들에 결단력 있게 결정을 내리신 것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느껴지는데, 그런 도전과 선택의 순간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서 조언해 주실 만한 게 있을까요? 저는 사실 도전을 즐기는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종종 ‘어떻게 약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배우를 할 수 있어?’라는 이야기를 해요. 근데 저는 반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에 가능성 이 있는데 어떻게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할 수 있지?’라고 반문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사실 약사를 포기한 게 아니라 약사를 업으로 삼지 않은 거예요. 사람들이 저를 결단력 있다고 생 각한 이유는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 것인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 중요시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중간에 스스로가 너무 이성적이어서 배우는 좀 힘들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오히 려 논리적으로 스스로를 점검하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느꼈고, 배우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과감하게 선택을 한 게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게 선택했다는 생각 이 들어요.

Q9.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대해 아직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이나 전공 전향에 대해 고민하는 학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약사는 스스로 원한다면 얼마든지 잠재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매력적이고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 해요. 약사를 포기하지 않고 충분히 다른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요. 돌아갈 곳이 있어서 눈치 보지 않고 하 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시간적, 경제적으로 자유로움이 있는 거죠. 학생들이 약대에서 다른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런 시선에 대해서 무뎌질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자기 자신도 그래야 해요. 약사가 아닌 다른 사회적 위치로 가는 것에 대해서 용감해질 필요가 있어 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괜찮은 거예요. 아까도 말했듯이 ‘어떤 사람 으로 보일 것인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에 대해 더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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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0. 약대 특성상 도전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은데,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안정감 자체가 실제로 ‘절대적인 안정’인지 ‘인식의 안정’인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해요. 우리가 어떤 사 회적인 부나 지위를 포기한다고 해서 범죄의 대상이 된다거나 갑자기 비위생적인 공간에 놓이는 게 아 니거든요. 지금은 평화롭고 너무 안전한 세상이고 백수로 살아도 굶어 죽지 않아요. 우리가 위험이라고 생각하는 그 실체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낯선 상황에 놓여있을 때 느끼는 공포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진화의 속도보다 문명의 발달이 더 빨라졌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공포감이 의미가 없다는 거죠. 연기를 하면서도 낯선 상황을 마주했을 때 공포감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사 회가 인정하는 표준에서 벗어날 때 사회에서 내 존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생기는 것은 자 연스러운 것이지만, 세상은 사실 그렇지 않잖아요. 내면에서 생긴 이 공포감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타당한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 어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참 많은데, 모범생이었던 학생들에게 틀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자연스러운 것은 이해하지만 그 공포감이 타당한 실체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자기 영역을 넓혀 나갔으면 좋겠어요.

Q11. 끝으로 배우가 아닌 개인으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으신 목표가 있으신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물질적인 것에 욕심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더 자유롭게 살았던 것 같아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내 모습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주지 않게끔 살 고 싶어요.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살아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되면 더 좋고요. 그 래서 오래 작품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제 연기를 보면 서 ‘저 사람은 약사인데 약사를 그만두고 연기를 하네?’하는 생각 을 시작으로 ‘나는 뭘 하고 싶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연기를 보는 사람들이 지 금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자신한테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 면 좋겠어요. 배우가 되는 건 저에게는 결단력이 필요했던 선택이 아니라 정말 당연한 선택이었 고, 제가 선택한 것들이 사람들한테도 다시 한번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보다 스 스로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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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인터뷰


| 진로인터뷰 |

Interview 02 이소연 선배님 2001년 이화여대 약학대학 졸업 2022년 굿밸런스온누리약국 개국

지난 8월, 본교 약대를 졸업 후 수원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계 시는 이소연 약사님을 만나 뵈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약국 을 방문한 손님들을 약사님은 마치 아주 오래된 이웃처럼 따 뜻하게 맞아주셨다. 후배들에게도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약사님의 배려 덕에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양은영, 최지민 | 편집위원

Q. 세 번의 개국 경험이 있으신데, 여러 번 개국을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개국을 하실 때마다 중점을 두거나 차별화하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미국 약국에서 일을 했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1년 정도 근무를 하다가 넷째 아이가 생겼어요. 그리고 육아 휴직 중 약대 임상 교수와 개국의 갈림길 중에서 고민하다가 개국의 길을 걷게 됐죠. 저는 병원 근처에 약국이 있는 한국 약국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주거지 근처에 있는 미국 약국 처럼 운영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 개국할 때 병원이 없는 아파트 근처 상가에 약국을 열 었어요. 그 동네 주민들을 단골손님으로 만들었지요. 일반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상담도 함께 해드리면 서 맞춤 케어를 해드리려고 노력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타병원 처방전도 들고 오셔서 전문약까지 포함 한 나름 이상적인 개인 맞춤형 케어를 해드리게 되었어요. 그런데 너무 상담에 치우치다 보니 몇 년이 지 나니 조금 힘들더라고요. 제가 있어야만 약국 운영이 되었고, 다른 약사님들을 양성하기에도 현실적으로 역부족이었고요. 그래서 약국 옆에 병원이 하나라도 있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처방이 받쳐주면 했어요. 그때 우연히 근처에 가정의학과 옆 약국 제의가 들어왔고, 두 번째 개국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동네 병원 근처 약국이라 쓰이는 약만 몇 년 동안 계속 쓰게 되다 보니 좀 더 다양한 약을 폭 넓게 다뤄보고 싶다는 생 각을 슬슬하기 시작했어요. 마침 제 단골손님께서 광교의 어떤 유명한 원장님이 약국을 찾으신다고 저한 테 개국을 제안하셨어요. 처음에는 너무 멀기도 하고 대학병원 근처라 문전약국 간의 경쟁도 심할 것 같아 서 엄두가 안 났어요.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분위기도 괜찮았고, 제 능력으로 운영하기에도 적절해 보였고, 원장님도 저랑 뜻이 잘 맞으셔서 세 번째 개국을 하게 된 거죠. 개국은 특정한 계기로 했다기보다는 타이밍이라 생각해요. 만약 본인이 아직 준비가 덜 되었을 때 제안 이 들어오면 인연이 아닌 거지만, 마침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안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세 번의 개국을 정리하자면 첫 번째에는 일반의약품에, 두 번째에는 조제에 초점을 두었어요. 그 리고 세 번째인 이번 개국에서는 일반의약품과 조제 두 가지를 다 포괄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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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러 번 약국을 운영하시면서 약국

약국은 기본적인 매뉴얼은 다 정해져 있잖아요. 하지만,

이 차별화될 수 있는 포인트는 어디

본인의 성향이나 근처 병원의 진료방식에 따라 약국마

에 있다고 느끼셨나요? 그리고 차별

다의 차이가 생기고 이 차이를 풀어내는 일을 약사가 해

점을 가진 약국을 운영하기 위해서

요. 이를 위해서는 약사로서의 경험뿐만 아니라 인간으

는 통찰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로서의 경험도 중요해요. 여행을 많이 다니고 영화도 많

생각되는데, 이런 자질들을 기르기

이 보고 책도 많이 읽으면서 쌓은 삶의 경험들이 결국

위해 추천하시는 활동이 있을까요?

약국 운영의 차별화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 때만 해도 약사는 외로운 직업이었지만 요새는 SNS의 발달로 소통이 쉬워지면서 전보다 고립되지 않는 직업 이 되었어요. 소통을 자주 해야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각 이 나고, 이것을 약국에 반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약학 지식은 물론 기본이고, 문화적인 경험과 다른 약사들과 의 소통이 약국 경영 아이디어에 중요한 것 같아요.

Q. 상 담 약국을 운영하시면서 약국 이름처럼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밸런스’ 있게 잘 보살펴 주시 는 것 같습니다. 상담했던 환자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신가요? 주택가에서 한정된 고객을 지속해서 깊이 있게 마주하다 보니 한 분을 딱 꼽기가 힘든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개국 초반에 난임 때문에 약국에 오신 젊은 여성분이셨어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친해지 다가 영양제를 조합해 맞춰드렸어요. 그렇게 난임 치료를 받으시면서 영양제 복용 시작 3개월 정도 되 었을 때 임신이 되셨어요. 그래서 그 분의 시댁, 친정 가족 전부가 제 손님이 되셨죠.

Q. 타 인의 고민을 들어주며 공감하다 보면, 간섭과 조언 사이에서 균형 잡는 걸 어려워하는 학생들 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약사로서 환자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 여쭤보 고 싶습니다. 맞아요. 상담할 때, 저는 제 얘기가 나오기 쉬운 걸 알아서 의식적으로 안 하려고 해요. 그냥 많이 듣고 공감하려고 해요. 하지만 공감을 위해 너무 감정 이입을 하게 되면 제가 지치고 감정 소모가 커지게 되 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나름의 메뉴얼을 정해 놓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해요. 상담 질문지를 만들 어 놓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환자분의 말을 덮어놓고 100% 신뢰하기보다는 판단하면서 듣고, 진실을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상담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야 충분한 상담이 가능해서 해 답이 잘 나와요. 예를 들어 약국이 바쁘면 상담과 조제 사이 시간분배가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집중할 수 없죠. 그럴 때는 차라리 약국이 한가한 시간대에 예약을 하고 오시면 마음 편하게 집중해서 상담해 드릴 수 있죠. 정리하자면 과도하게 친절하기보다는 객관성을 유지하고, 서로 마음 편히 상담할 수 있는 조건 을 만들어야 한다고 답변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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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 담을 하면서 많은 분들의 고민을 듣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로해지실 것 같은데 약사님의 심리 적 건강은 어떤 식으로 관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은데, 감정적으로 꼬일 때가 피곤해요. 그럴 때는 너무 감정적으로 일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요. 상담이 잘 이루어지고 문제가 잘 해결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없는데, 잘 안 풀리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계속 생각을 해봐도 답이 안 나올 때는 일단 생각을 멈추고 일정 시간동안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생각을 비워요. 그러면 불필요한 긴장이 풀리면서 해결법이 잘 생각나거든요. 해결이 되면 스트레스는 없어집니다.

Q. 손 님들이 호소하는 증상이나 문의하는 의약품 종류가 매우 다양할 텐데 이렇게 넓고 깊은 지식을 어떻게 계속 공부하시는지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오픈북 테스트 아시죠? 기본적인 지식을 가진 상태에서 구체적인 것만 확인하기 위해서 책을 펼치잖아요. 저는 실전에서 오픈북 테스트를 매일 하는 느낌이에요. 지금 답변이 명확히 생각나 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어디를 찾으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죠. ‘알아보고 바로 연락드리 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지식을 머릿속 책장에 잘 정리해 두고 위치맵만 가 지고 있으면 언제든 꺼내쓸 수 있겠죠. 약사로서 지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하는데, 이때 학회나 세미나를 활용하면 돼요. 약 사회 같은 곳에서도 공부할 기회를 많이 주시거든요. 그것만 참여해도 똑똑한 약사가 될 수 있어요. 이렇게 평생 공부로 계속 업데이트 된 약사가 되는 거죠.

Q. 오 랜 시간 약국에서 일하시면서 다양한 환자들을 접해보셨을 것 같은데요. 사람을 대 면으로 상대하는 일을 하시면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상황 에서 약사님만의 대처법이 있으신가요? 할아버지 한 분이 기억나네요. 개업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분이 처방전을 가지고 오셔서 는 다른 약국은 조제료를 깎아준다고 저희 약국이랑 비교하시는 거예요. 그게 너무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조제료는 나의 전문성에 대한 대가인데 왜 이걸 없애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화가 나서 몸살까지 났었는데, 그러고 나니까 나를 비난하는 감정적인 말을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다 싶었어요. 그런 분들은 그냥 흘려들어요.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 까지 다 수용하고 더 친절하게 말씀드려서 내 손님으로 만들려고 했었는데, 그게 정답이 아 니더라고요. 그냥 그런 분들은 제 손님이 아닌 거죠. 모든 사람을 다 제 손님으로 만들 수 없 다는 걸 인정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대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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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육아와 약사 일을 병행하신 것인지, 그리고 만약 병행하셨다면 그 비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세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때는 육아휴직이 12주밖에 안 돼서 무조건 육아와 일을 병행 할 수밖에 없었죠. 비법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포기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전업주부이 셨던 제 어머니께서 저에게 해주신 것처럼 아이들 공부부터 옷 입는 것까지 다 돌봐주고 싶었는데 현실 적으로 그게 안 되니까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 애들한테 오히려 짜증 을 내게 되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마이너스 작용을 하는 거예요.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포기를 했어요.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 놓아주니까 마음이 편해서 온전히 애들만 봐도 기 분이 좋고, 기분 좋은 엄마가 아이들도 행복하게 했지요. 이후 한국에 왔을 때는 운 좋게도 어머님 아버 님과 같이 살게 되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완벽한 엄마 역할을 어느 정도 내려놓으니까 오히려 아이들이 혼자서 독립적으로 너무 잘하더라고요. 조금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와 그렇게 해도 잘못된 게 아니라는 믿음이 육아와 약사 일을 잘 병행할 수 있게 한 것 같아요.

Q. 약 대를 졸업하시고 Pharm.D 과정을 준비, 수료하시면서 영어 공부에 힘쓰셨을 것 같은데 어떤 방식을 택하셨는지 약사님만의 팁이나, 언어 공부를 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으셨다면 듣고 싶습니다. 대학 때 이미 원서로 수업을 들어서 공부 자체는 별 어려움은 없었어요. 그리고 목적 없이 영어가 재미 있어서 방학 때마다 어학원에 다녔었어요. 그러다 저는 3학년 때 생각이 많아져서 휴학을 했고 어학연 수를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캐나다로 갔죠. 아무래도 그때 많이 늘었어요. 미국에서는 병원에서 임상 약 사들이 의사들과 함께 PK를 도는데 거기에서 Pharm.D에 대한 로망이 생겨 유학 준비를 하고 미국 약 대로 편입했지요. 첫날 수업을 들어갔는데 이건 현실이었어요. 약대 교수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 거 예요. 좌절했어요. 당장 MP3를 사서 수업을 죄다 녹음하고 수업 마치고 기숙사에서 녹음본을 반복해서 돌려 몇 번이고 돌려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조금씩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결국 언어 공부는 왕도가 없 어요. 될 때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Q. 미 국 드럭스토어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는데 미국 드럭스토어와 한국의 보편적인 약국에는 어 떤 차이점이 있는지 그리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미국과 한국은 특히 보험 제도가 달라요. 우리나라는 국가보험 한 가지 뿐인데 미국은 사보험 제도라서 회사 마다 보험 코드가 다르고 각 회사에서 비용을 지원해 주는 약들도 다 달라요. 그래서 미국 드럭스토어에서 약 사가 하는 일은 처방전을 받아 환자에게 가장 부담이 적으면서 효능은 최선인 약을 찾는 거예요. 결국 환자, 의사, 보험회사들을 모두 연결하는 역할이죠. 미국 약국의 장점은 페이가 세다는 것과 2주에 80시간의 풀타임 안에서 스케줄을 옮겨 다닐 수 있어서 근무 스케줄이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것이 장점이에요. 그리고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의사보다 약사를 더 믿을 만큼 약사의 권위가 굉장히 높아요. 선배 약사분들이 위상을 많이 올려놨고 제도적으로 안정되어서 의사와 약사가 대등한 관계에 있거든요. 그래서 일에서 오는 만족감이 있어요. 반면, 단점은 일이 정말 힘들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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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약사의 장점은 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보험 종류가 국가 보험 하나이기 때문이죠. 처방전대로 하면 되니 일도 간단하고 개국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아요. 단점은 약 종류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미국에 비해 허가된 성분 종류가 너무 많아서 약국의 약 종류가 병원의 영 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Q. 생 활체육지도사 자격증에 도전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약사 업무와 연관시키실 생각이셨 나요? 원래도 운동을 좋아해서, 육아에 여유가 생긴 후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던 와중 코로나 로 인해 약국이 한가해져서 좋아서 하는 운동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활체 육지도사 책을 덥석 샀어요. 좋아하는 걸 공부 하니 너무 재밌더라고요. 하는 김에 시험도 봐버렸죠. 순 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암 환자나 대사질환 있으신 분들의 영양제에 앞서 더 기본이 되는 생활 습관과 식단 교정을 도와드리다 보니 운동도 빠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생활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몇 가 지 운동을 설명해 드리기 시작했어요. 매트랑 스파인 코렉터를 갖다 놓고 동작도 직접 보여드리니까 접 목이 잘 되더라고요. 공부를 하니까 설명에도 힘이 실리고 그만큼 자신 있게 임할 수 있었어요. 약사의 직능 폭이 넓으니까 그 안에서 다른 전문 분야를 찾아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후배들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환자의 불편함의 원인을 찾을 때, 그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약사가 되었으 면 좋겠어요. 사실 환자의 신체적인 통증은 몸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요인과도 연결되어 있고, 통증 부 위에서 뚝 떨어진 곳의 흐름이 깨어진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을 보는 관점이 중요해요. 상담 스킬을 키워서 원인을 효과적으로 유추하고, 개별 영양 성분 공부를 탄탄히 해서 우리 무기를 잘 조합하는 방법도 익혀야 하지요.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증세가 너무 심각해지기 전에 혹은 치료 후 유지를 위해, 신체와 정신의 균형을 계속 잡아주는 것이 약사로서 힘써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약 사로서 한 사람의 삶을 개선하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경험하면 그 짜릿함에 중독 이 되고 선순환이 되는 것 같아요. 후배들은 조금 더 빨리 이 사실을 깨우쳐서 약사 일에 적용해 보기 를 조언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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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로인터뷰 |

Interview 03 허수진 변호사님

- 1996. 서울대학교 약학과 졸업 - 1998.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원 석사 - 2005. 제34기 사법연수원 - 2011 ~ 2014.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의약전문검사) - 2013. 의약분야 공인전문검사 인증(대검찰청) - 2019 ~ 2020. 서울동부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 2020 ~ 현재. 대한약사회 고문변호사 - 2021 ~ 현재. 식약처 식품의약품안전기술위원회 위원 - 2021 ~ 현재.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계시는 허수진 변호사님을 만 나뵈었다. 많은 이들이 꿈꾸는 길을 걸어오신 만큼, 학생들을 응원하는 변호사님의 따뜻함을 인터 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바쁘신 일정 중에도 인터뷰에 정성껏 응해 주신 변호사님께 감사드리며, 변 호사님의 이야기를 바다가다 교지에 담을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다. 안효빈, 김서현 | 편집위원

바다가다 지금의 진로를 선택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약학대학 석사와 법조인의 길에 어떤 연관 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변호사님 저는 원래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행정고시를 6개월 정도 공부했는데, 사법고시 선발 인원이 1천 명으로 늘어나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2년 반 만에 붙었으니까 생 각보다 시험은 빨리 붙은 거죠. 연수원에 들어가서 시보를 했는데 검찰이 되게 재밌더라고요. 법원, 검 찰, 변호사 순서로 임관을 하는데 다행히 성적이 돼서 검찰을 했어요. 2010년에 검찰에 전문 검사 제도가 생겼어요. 제가 약학 전공이니 마약 검사를 해보겠냐고 제안이 왔고 1호 의약 전문 검사가 되었죠. 법조계에 종사하고 있지만 계속 약학 관련 일을 해오면서 전공 지식이 도 움이 되었던 거예요. 약학대학에서 6년 동안 배우는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제야 좀 알게 되었어 요. 다양한 경험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사회에서 약대 출신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변함이 없어 요. 결국 나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약학에 대해 잘 안다는 효용 때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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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다 변호사가 되기까지 정말 많은 공부를 해내셨을 것 같은데 번아웃이 오거나 지치지는 않으셨 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변호사님 엄청 힘들었죠. 사법고시가 쉬운 과정은 아니에요. 사법고시를 준비했을 때가 제 인생에서 가 장 공부를 열심히 한 시기였어요. 사법고시 공부는 다른 공부와 차원이 다르고 번아웃이 많이 왔거든요. 특히 저는 시간을 정해놓고 공부했는데,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토해가면서 배수진을 치고 공부한 거죠. 지금 생각해도 두 번은 못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사법고시 책에 는 한문이 많아요. 한문이 싫어서 이과로 온 것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책이 한문이니까 친구에게 읽는 법 을 써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어요. 저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며 힘을 냈던 것 같네요.

바다가다 여성 검사 최초로 강력부에 배치되셨는데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이나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 리고 현재는 그때와 다른지 궁금합니다. 변호사님 강력부가 아니어도 예전에는 여자 검사가 정말 없었어요. 당시에는 여자가 검사직을 하는 것 만으로도 굉장히 편견이 많았죠. 검사는 정말 업무량이 많아요. 한 달에 처리하는 사건이 기본적으로 200건이 넘거든요. 또, 2년마다 돌아다니는 순환근무가 있다 보니 여성 검사들은 어쩔 수 없이 육아랑 도 많이 부딪혀서 매우 힘들어요. 제가 있던 강력부는 마약이랑 조폭만 다루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경찰 을 한 번 거쳐 오기 때문에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은 드물었고 업무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니 흥미롭기도 하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여성 검사분들 이 많아지면서 강력부나 마약 조직범죄 과장직도 여성 비율이 높아요. 저는 서울동부지검에서 부부장으 로 2020년까지 근무했는데, 당시에 6명 중 4명이 여자였어요.

바다가다 검사로 일하시면서, 특히 리베이트1) 단속반에서 맡으신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 으신가요? 변호사님 검찰에 리베이트 단속반을 만든 것부터 굉장히 인상적인 경험이었어요.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제약사 측을 주로 처벌하다가 리베이트를 제공받는 의료인들까지 처벌받는 쌍벌제2)가 도입되는 것은 업계에서 굉장한 이슈였어요. 그리고 이를 계기로 검찰이 주도하고 경찰, 복지부, 심평원, 식약처까지 모 든 정부 부처가 합심해 중앙지검에 리베이트 합동단속반이 만들어졌죠. 리베이트 합동단속반에 소속되 어서 양형 기준을 만들고 직접 현장 압수수색도 나갔던 경험은 아직까지 기억에 많이 남는 일 중 하나예 요. 당시 리베이트로 제약업계가 많이 혼탁해져 있었는데 국내외 제약사에 대한 리베이트 합동단속반의 활약으로 불법 리베이트가 근절되고 동시에 제약업계가 유통 질서 정화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였다고 평가받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1) 리베이트: 거래에 대한 대가로서 지불 대금 일부나 이자 등을 지불처에 다시 되돌려주는 행위 2) 쌍벌제: 리베이트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모두 처벌하는 대한민국 보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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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다 약학 학사 및 생약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공부하신 내용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었는지 궁 금합니다. 변호사님 공부한 내용 자체가 직접적인 사건 해결의 단서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약학이나 의학 은 사람들이 전문적이라고 인정해 주는 분야예요. 돌이켜보면 약물학, 약제학 등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 요. 제가 맡았던 의료 과오 사고가 보통 법조인들이 굉장히 두려워하는 분야거든요. 그런데 저는 약학에 대한 배경지식도 있고 용어도 익숙하니까 사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약학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약학을 공부할 수 있는 시기가 딱 대학생 때밖에 없더라고요. 약학 전공은 저에게 지식의 원천이고, 저를 빛나게 해줄 수 있는 존재가치 같은 거예요. 그 덕에 제가 그 동안 전문성을 인정받고 저에게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바다가다 변호사님의 하루 일과는 어떤지 궁금한데요, 평소에도 약학 이슈를 공부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변호사님 변호사는 회의가 되게 많아요. 왜냐하면 혼자 결정하는 시스템이 아니고 모든 케이스마다 내 부 회의, 의뢰인과의 회의를 거치거든요. 또한 로펌 구성원은 주니어와 시니어로 나뉘는데, 저는 시니어 로서 주니어들이 배우는 것을 검토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공부도 정말 많이 해요.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제도가 많거든요. 예를 들면 약가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정부와의 협상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항상 한발 앞서 있어야 기업에 자문도 하고 인사이트를 제공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로펌 내부 교육이나 바이오 USA, DIA(Drug Information Association)와 같은 학회 에 많이 다니고 있어요. 의약학 분야는 항상 함께 변화하는 하나의 산업이고 세계의 흐름에 맞춰가야 하 거든요. 관련 경영이나 정책, 투자 전체를 알려면 의약 지식은 기본이고, 산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해 서 평소에도 공부를 많이 해요.

바다가다 변호사님의 법조인으로서의 신념, 그리고 최종 목표와 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변호사님 일단은 제가 하고 있는 일을 해내면서 워라밸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최종 목표라고 하면 헬스케어에 특화된 전문 변호사로 자리 잡아 많은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고요. 지금 저는 형사팀이 아닌 규제 그룹에서 헬스케어 담당을 하고 있는데, 헬스케어 안에도 분야가 많아서 모든 분야의 법적인 사항들을 아우르는 변호사가 되려면 공부할 게 정말 많답니다. 또한, 저는 대한약사회의 고문 변호사이기도 해요. 약사분들이 법에 대해서는 취약할 수 있어서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특히 형사 분야에서 조언이 필요한 분들께 무료 상담과 재능 기부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 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바다가다 법조인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변호사님 검사의 경우, 피의자를 조사하다 보면 즉문즉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많아요. 재판에서도 상대방 변호사 또는 검사와 설전을 벌이고 공격을 하기 위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순발력을 발휘해 야 해요. 그뿐만 아니라 사건에 어떻게 접근해서 승소를 이끌 것인가, 무죄를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인정 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잘 세우는 것도 중요해요. 종합해 보면 판단력이나 순발력을 바탕으로 전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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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인터뷰


수립하는 것이 중요한 직업이기 때문에 아는 게 많아야 해요. 전문 지식은 물론, 여러 가지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략을 세우기 때문이죠. 따라서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은 법조인에 적합하지 않 아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사건이 많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결단력 있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성격 이 법조인에 적합한 것 같아요.

바다가다 제약 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소송도 증가할 텐데 전망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의약 전문 법조인 이 맡는 역할은 무엇이고, 일반 법조인과의 차별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변호사님 제약산업이 커지면서 분쟁이 많아지고 의약학 전문 지식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분야이기 때 문에 최근 대형 로펌에 약사 출신 변호사가 많이 채용되고 있어요. 지적재산권(IP)과 관련된 사건의 경 우, 의약학 관련 전문 지식이 없으면 처음부터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사건들이 많거든요. 약학은 확실히 범접할 수 없는 전문성이 있죠. 제약회사들이 계속해서 블록버스터급의 신약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규제와 정책, IP를 알기 위해선 기술과 약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요. 예를 들면 대웅제약과 메디톡스가 보톡스로 경쟁하고 있는데 양쪽 전문가들이 기본적으로는 약사 출신 법조인 분들이에요. 특 히, 기술에 대해서만 보는 제약 관련 특허는 전부 약사 출신 분들이 하실 정도로 많이 특화되어 있어요. 또한, 소송뿐만 아니라 제약사들이 직접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도와주는 자문 업무가 로펌에서 많이 늘 어났어요. 반면 법조인의 능력도 갖춰야 하는데 약대에서 법조인 관련 교육을 받지는 않잖아요. 법조인이 가져야 할 소양이 약사와는 다르다 보니까 그런 측면에서 고생스러운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바다가다 약대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변호사님 제약 산업의 변화와 흐름을 관심 있게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내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약사회에는 현재 어떤 이슈가 있는지,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뭐든지 관심을 갖고 있어야 문제가 해결되고 결과가 나오거든요.

바다가다 약사가 어떤 경우에 소송에 휩싸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관련하여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 신가요? 변호사님 한국에는 생각보다 소소한 약사법 위반 사건이 많아요. 우리나라 의약 산업이 공적인 성격이 강하다 보니 규제 사항도 많고 그에 따른 벌금, 과태료, 형사 처벌이 많아요. 호객행위, 유인행위, 광고가 다 문제가 되거든요. 이렇게 전문가로서 의약품 유통에 대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많지만, 많은 약사분들 이 약사법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계세요. 그렇기 때문에 대한약사회에서도 강조하듯이, 전문가로서의 인식을 꼭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다가다 의료 규제 정책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로펌은 어떻게 대비하는지 궁금합니다. 변호사님 의료계는 경쟁이 심해서 디지털 헬스케어, 치료제 등등 새로운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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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의료계가 워낙 유동적이라 로펌에서는 여러 방법으로 변화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어요. 관련 부 서 사람들을 실무를 해본 사람으로 뽑기도 하고,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자문을 구하는 등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하고 있어요.

바다가다 약대 졸업이 로스쿨 입시에 도움을 준다고 보시나요? 4년제 대학에 비해 더 불리하지는 않을 지, 6년의 학부 생활 이후 3년의 로스쿨 공부까지 거쳐야 법조인이 될 수 있는데 이를 추천하시는지 궁 금합니다. 변호사님 몇 년제 대학 출신인지는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30세에 임관해 늦게 법조인이 된 것은 아니었는데, 지나고 보니 빠르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그 과정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얻 는 것들이 굉장히 의미가 있어 시간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또한 정말로 법조계로 진출하고 싶 다면, 평생 중에 3년 정도 로스쿨에 투자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봐요. 다만 신중히 생각을 해보고 도전하 면 좋겠어요.

바다가다 법조인을 꿈꾸는 약대 학생들이 학부 시절에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약대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변호사님 약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약대 공부를 탄탄하게 해놓으면 이후에 다양한 기회들이 생기고, 어느 진로에 가도 약에 대한 전문가로서 일할 수 있어요. 학업이 부족한데 면허만 있다 고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어요. 또, 멘토를 잘 만나서 조언을 듣고 진로에 대해 미리 고민해 보면 큰 자산이 될 것 같아요. 혹시 법조계로 오고 싶은데 상의할 곳이 없으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그리 고 성격이 어떤지 고려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외향적이라 사람을 만나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 어서 이 직업과 잘 맞거든요. 그래서 저는 후배분들이 6년 동안 학업에 충실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 나보고 여러분이 하고 싶은 걸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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