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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프의 종마는 경주마로 길러진게 아니었지만, 그는 병사들보다 훨씬 앞서서 제분소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 마을 북쪽에 있는 숲을 따라 물살이 급한 시냇가에서 잠시 숨을 돌리면서, 병사들뿐 아니라 수십 명의 마을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 그는 화재가 진압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말을 앞으로 재촉했지만, 더 이상 바람처럼 달릴 필요는 없었다. 순간 화살이 날라와 그의 몸에 박혔을 즈음엔 제분소에 있던 사람들이 그의 비명소리가 아스라이 들릴 만한 거리에 있었다. 화살은 그의 갑옷에 매달린 여러 개의 쇠미늘들을 뚫고서 그의 엉덩이에 박혔다. 롤프느 간신히 정신을 가누고 어두운 숲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지는 형체들을 언뜻 보다가 고통에 휩싸였다.♣

24 레오니는 이처럼 많은 피일지라도 피를 보는 것에 익숙했다. 수많은 상처를 치료해왔지만, 롤프를 치료할 생각에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였다. 아직 희미한 의식이 남아 있는 롤프가 홀로 옮겨지는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을 보고서 그녀는 등골이 서늘했다. 그의 눈 속에서는 격노와 비난이 서려 있었다. 왜지? [아씨] 윌다와 밀드레드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응] 윌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트로프 경은 롤프영주님을 그분의 - 아씨의 - 방으로 옮기고 싶어합니다. 아씨께서 그분을 돌보실 거예요?] [그가 날 불렀니?] 윌다는 레오니의 눈동자를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분은 의사를 불렀어요] 그 말을 듣자 그의 비난의 시선 이상으로 그녀는 무척 기분이 상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그렇지만, 아씨] 밀드레드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얼른 속삭였다. [오도는 이발사일 뿐이에요! 많은 이발사들이 약간의 경험으로 의사로 일하는 건 알지만, 오도는 멍청이랍니다. 그는 자기가 치료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느니, 차라리 사람을 죽게 할 사람이라구요. 아씨도 오도리를 아실 거예요. 그 남자는 저의 어머니를 거의 죽게 해놨다고 아씨께서 혼쭐을 내셨던 바로 그 사람이라구요.] 레오니는 밀드레드를 매몰차게 노려보고는 돌아서 버렸다. 내가 혹시 롤프의 눈빛을 오해했던 걸까? 아니면 정말로 그는 내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획책했다고 믿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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