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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온 무형의 얼굴. 그의 눈빛이 뚫어질 듯이 래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괜찮아? 그는 그렇게 묻고 있는 듯 했다. "이게 보이시나? 칭허 뮈렌? 자네의 예쁜 여자가 우리 손에 들어왔거든." "용건만 말해." 딱 부러지는 무형의 목소리. 래인은 오열이 솟구칠 것만 같은 입술을 꽉 깨물 었다. 검은 용의 여자는 절대로 울면 안 된다. 죽을 때는 죽더라도 적에게 애원 운하고 비겁하게 질질 짜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내가 그녀를 돌아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래인의 옆에 서있던 다른 사내가 래인의 하얀 목줄기 아래에 단도를 가져다댔다. 당장 휘둘러 그녀의 목을 댕강 잘라버릴 것처럼 "뭐 소문에 듣자하니 검은 용의 소중한 아이를 가지신 몸이라고? 건방진 애 송이! 네 놈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 여자는 죽는다. 내 말이 거짓이 아니란 뜻으 로 이년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 이 년의 오라비에게 보내주지. 네 여자와 네 세 까릴 죽이고 싶지 않으면 내 앞에 나타나 무릎을 끓어!" 화면 속의 무형이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차고 냉혹하고 잔인한 미소. 단 한 번도 래인이 본 적 없는 무형의 진짜 얼굴. 전혀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얼굴을 한 그가 웃자 보기좋게 가지런한 치아가 하얗게 드러난다. 아주 쉽게 그가 이 사이로 씹어냈다. "죽여!" <29> 달콤한 항복 설마 그런 말이 무형의 입에서 나오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것일까? 황당해 서는 서로를 마주보며 낭패했다는 얼굴을 하는 사내들을 응시하며 그가 다시 웃었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요악한 미소였다. "죽이라고! 그 여자 말고도 내 아들을 낳아줄 여자는 많으니까." 그리고는 그 쪽에서 먼저 OFF 스윗치를 눌러 버렸나보다. 핏 소리를 내며 새 까매지는 화상을 응시하다가 그 사내가 불 맞은 산돼지처럼 길길이 날뛰며 휴 대전화를 바닥에 내던져 박살을 내버렸다. 래인은 홀로 미소지었다. 역시 그녀의 남자였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허약한 감정으로 자신을 자학하지도 않고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깨끗이 가려내 가차없이 쳐낼 수 있는 잔혹함을 가진 남자. 제왕 으로 태어나 제왕으로 길러진 내 남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 연인. 바로 그때였다. 바깥에서 쉭쉭 귀를 찢는 듯한 소음 - 정신도 차릴 수 없을 만큼 시끄러운 총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은. 당황한 사내들이 정신을 수습할 틈도 없이 래인이 묶여진 의자 뒤, 바깥으로 통하는 유리창문이 와장창 깨어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개처럼 온 몸으로 유리파편을 맞으며 방안으로 달려 들어온 한사람이 손에 든 기관단총을 마구 휘두른 것도, 래인 옆에 서 있던 사내와 벽 쪽에 서 있던 또 다른 부하 하나가 온몸과 머리통을 관통당한 채 뇌수와 선혈을 내뿜으며 더러운 걸레처럼 바닥에 나동그라진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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