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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19(수) 우리신학연구소․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공동주최 월례발표회

라틴아메리카 해방그리스도교와 경제 문제1) 김항섭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1. 들어가면서 종교는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일정한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 발전, 변화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교는 한편으로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 내 일 정한 변화를 추동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종교는 어느 정도까지 사회적 변화에 기여할 수 있 을까? 이 점에 대해 논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만, 적어도 지난 세기에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사례가 라틴아메리카의 이른바 ‘해방 그리스도교’2)라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경제에 대한 관점을 중심으로, 해방 그리스도교를 살펴볼 것이다. 종교와 경제의 관 계에 대한 논의는 흔히 낯설게 느끼지만, 종교사회학의 전통을 보면, 마르크스나 베버 이래 지속적 으로 다뤄온 주제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라틴아메리카의 해방 그리스도교도 원래 라틴아메리카의 부정적인 사회 현실을 규정짓던 종속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에 서 출발했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민중이 겪는 가난과 비참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적 관점, 구체적으로는 종속이론의 관점을 차용한 것으로, 라틴아메리카의 가난과 비참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유럽과 미국을 모델로 삼아 자본주의적 근대화, 또는 발전을 이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 라, 유럽과 미국이라는 중심부에 종속된 경제 구조를 끊어내는 데, 다시 말하면 그로부터 해방되는 데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해방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관점은 단지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에만 힘입은 것이 아니다. 근 대 가톨릭교회의 오래된 반자본주의적 정서를 라틴 아메리카적 현실에서 새롭게 재해석하면서 나 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반자본주의적 정서가 근대 유럽의 가톨릭교회 안에 서 어떻게 형성되었고, 이러한 정서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그리스도교 안에서 어떤 식으로 재해석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해방그리스도교 197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크게 활성화된 일련의 진보적인 그리스도교적 움직임을 이야기 할 때, 흔히 ‘해방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신학’이라는 범주가 이러한 종교사회적 실 천들을 포괄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예를 들어 미카엘 뢰비는 1970년대에 해방신 1) 강의안으로 작성된 이 글은 완성된 논문이 아니며, 따라서 글쓴이의 동의 없이 내용을 인용할 수 없다. 2)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적 변화를 추동했던 일련의 진보적인 그리스도교의 흐름을 흔히 ‘해방신학’이라는 용어로 통칭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다분히 이론적 차원에 국한되어 이 흐름이 갖는 실천적 차원을 포괄하지 못하므로 이 글에서는 이 두 가지 차원을 아우르는 의미로 ‘해방 그리스도교’라는 미카엘 뢰비의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이 점에 대해 상세한 논의는 2장에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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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라는 신학적 성찰이 출현하기 이전에, 이미 1960년대부터 이른바 ‘가톨릭 좌파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진보적인 종교사회운동이 존재했고, 해방신학은 이러한 신앙적 실천들을 비판적으로 성찰 하면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진보적인 움직임을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부적절한 표 현이다. 왜냐하면 이 움직임은 제도로서의 교회라는 경계를 뛰어넘는, 훨씬 더 포괄적인 사회 관계 망 안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뢰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60년대 이후 형성 된 진보적인 신앙 실천, 그리고 70년대 이후 이러한 실천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나타난 해방 신학, 그리고 이후 이러한 실천과 신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개된 일련의 진보적인 그리 스도교적 움직임을 ‘해방 그리스도교’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정의는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의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수용되고 있다.3)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그리스도교는 신학적 차원, 사목적 차원, 평신도 운 동과 기초공동체 차원, 일반 민중운동 차원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신학적 차원은 라틴 아메리카 적 맥락에서 새롭게 등장한 혁신적인 신학적 성찰을 말한다. 뢰비는 이 신학의 공통적 특성을 다음 과 같이 여덟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종교의 주요한 적으로서의 (무신론이 아니라) 우상숭배에 대한 투쟁이다. 여기서 우상은 물 질적 재화, 부, 시장, 국가안보, 국가, 군사력, ‘서구 그리스도교 문명’ 등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를 ‘무신론적 공산주의’라 규정하면서 그리스도교의 가장 무섭고 음험한 적으로 금지하였고, 이로 인해 전 세계에 걸쳐, 그리스도교 신자와 마르크스주의적 정치운동 사이에 적대적인 장벽을 쌓았다는 점 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 구원의 예기(豫期), 하느님 나라의 예기로서의 역사적 인간 해방이 다. 셋째, 성서 전통의 산물이 아니라 플라톤적 희랍 철학의 산물인, 전통적 이원론 신학에 대한 비판이다. 넷째, 출애굽과 같은 성서 본문을 중시하는 새로운 성서 해석이다. 출애굽을, 노예화된 백성들이 자신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패러다임으로 간주한다. 다섯째, 불의하고 부정한 체제, 구조적인 죄의 형태로서의 종속적 자본주의를 도덕적으로, 사회적 으로 신랄하게 고발한다. 여섯째, 가난의 원인, 자본주의의 모순, 그리고 계급투쟁의 형태를 이해하 기 위해, 사회분석적 도구로서 마르크스주의를 활용한다. 일곱째,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 고, 이들이 자신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활동과 연대한다. 여덟째, 새로운 교회 형태로서, 자본주 의 체제가 강요하는 개인주의적 생활 방식에 대한 대안으로서 기초공동체를 발전시킨다. 해방 그리스도교의 두 번째 차원, 즉 사목적 차원은 기본적으로 해방신학적 교의에서 출발하여 활동하는 노동사목, 토지사목, 원주민 사목(CIMI) 등 다양한 민중사목을 통해 이뤄진다. 세 번째 차원으로서 평신도운동과 기초공동체(CEBs) 차원이 있다. 평신도운동은 평신도 중심의 자율적인 운동으로, 가톨릭대학생운동, 가톨릭노동청년운동 등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초공동체 활동가 들이 직접 창립했거나 관여하고 있는 다양한 민중운동단체(여성 클럽, 주민 협회, 농민조합, 노동조 합 등)가 있다. 이 마지막 차원은 비록 신앙이라는 동기에서 출발할지라도, 제도로서의 교회의 틀 을 벗어나, 사회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해방 그리스도교가 다른 대륙의 진보적인 그리스도교 운동과 다른, 다시 말하면

3) 다소 장황하게 이 문제를 다룬 것은 이것이 단순히 정의(定義)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종교 현상을 분 석할 때 흔히 공식적인 제도나 지도자 중심으로 다루려는 다소 편의적이고 편향적인 경향과도 관련 있기 때문이 다. 종교의 공식적인 제도나 범주에서 벗어나 있거나 이에 대해 비판적인 종교 현상들의 경우 대부분 연구에 필 요한 자료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편의적으로’ 공식 제도나 지도자 중심의 논의에 머무는 경우가 많으나, 이러 한 편의성은 또한 ‘편향성’을 내포할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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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해방 그리스도교적인 차원은 기초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기초공동체,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회기초공동체(Comunidades Eclesiais de Base)는 해방 그리스도교의 여러 실천적 매개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라고 한 것은 기초공동체가 제도로서의 교회의 틀 안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가톨릭교회의 경우, 그 기본 단위이라고 할 수 있는 본당의 관할 구역 내에, 특히 사목적 손길이 미치지 않는 가 난한 동네를 중심으로 기초공동체가 발전한다. 본당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초공동체를 형성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본당의 사목 활동이 관할 구역 전체에 충분히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은 식민지 시대 때부터 광대한 영토에 비해 고질적인 사제 부족을 겪어 왔고, 이에 따라 평신도들 의 다양하고 자생적인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결국 기초공동체는 브라질 가톨릭교회의 이 러한 역사적 현실로 인한 본당의 사목적 공백 속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평신도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기초’라 함은 주된 계급적 구성에 관한 것으로, 대다수의 기초공동체 성원들이 하층계급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초공동체 이론가 중의 한 사람인 베뚜(Frei Betto)에 따르면, 기초 공동체의 성원은 “자신의 손으로 일하는 사람들(민중계급)”, 즉 사회의 ‘Base’, 즉 ‘기초’(또는 ‘바 닥’)에 속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도시 지역의 경우, 가정주부, 노동자, 불완전고용자, 퇴직자, 젊은 이, 서비스업 종사자 등이고, 농촌의 경우, 임금농업노동자, 토지점유자, 소규모 농토 소유자, 소작 인, 목동과 그 가족들로 이뤄졌다. 이처럼 기초공동체는 서민 지역, 빈민촌, 마을, 또는 가난한 농촌 지역에 속하는 이웃들의 작은 집단이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기도하고, 노래하고, 의례를 거행하며, 성서를 읽고, 무엇보다도 성서를 자신의 삶의 체험에 비추어 논의한다. 이처럼 신앙과 삶이 함께 어우러지고, 그러면서 서로 를 고무하고 추동하는 힘이 생겨나며, 거기에 기초공동체의 힘이 있다. 이처럼 해방 그리스도교는 기초공동체를 비롯한 다양한 실천적 매개를 통하여, 자신에 속한 제도 교회를 쇄신하고 개혁했을 뿐만 아니라, 70, 80년대 군사독재 하에서의 민주화와 민중운동에 지대 한 영향을 끼쳤다. 기초공동체는 지난 세기 브라질에서 국가가 아닌 기관에서 행한, 가장 광대한 대중 교육이었다. 이 교육은 특정한 교육 개념, 즉 비지시적인 교육론, 행동하고 생각하고 조직하 는 대중의 능력에 대한 신뢰, 그리고 참여자의 책임감 제고에 바탕을 두었다. 이러한 대중교육은 기초공동체 성원의 의식과 실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변화 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민중 운동을 태동시키거나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기초공동체 성원들은 아주 단순한 운동 - 상수도, 하수도, 또는 도시 교통의 개선을 위한 투쟁 - 에서부터 토지 점거 투쟁, 어용 노조 지도부에 대한 투쟁, 파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와 차원에서 민중운동에 투신하였다. 브라질의 ‘종교연구소’(ISER)가 1993년 상마떼우스(São Mateus) 교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591개 기초공동체 중 76%가 일정한 형태의 협회, 운동, 노 조, 협동조합 또는 정당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 기초공동체는 다양한 민중운동에 적극 참여하거나, 새로운 운동 분야를 개척함으로 서 민중운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레스바우핀은 기초공동체의 이러한 기여를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첫째 민중운동 안에서 민주적 절차와 그 실천을 제고하였다. 기초공동체는 그 일상적 활동에서 민주적 절차에 익숙해 있다. 다시 말하면

일정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오랫

동안 토의하고, 다수가 참여하여 결정을 한다. 기초공동체의 이러한 민주적 실천들은 민중운동 안 에서 정보 공개, 회의와 총회, 민주적인 의사결정, 집단행동 등으로 표출되었다. 둘째 기초공동체는 민중운동의 편에서 활동했던 국가, 정치인, 포퓰리즘적 지도자, 정당, 외부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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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지식인 또는 학생)와의 관계에 있어서, 민중운동과 조직의 자율성을 적극 옹호하였다. 이런 식 으로 기초공동체는 민중운동의 정치적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브라질 정치 문화에 특징적으로 나타 나는 엘리트주의, 권위주의, 정치적 야합 등을 비판하면서, 브라질 정치생활의 민주화 과정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해방그리스도교가 민중운동이나 사회변화에 끼친 이러한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는 최근 라틴아메리카에 일어난 대표적인 사회운동 사례들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오늘 날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민중운동으로 자리 잡은 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MST)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가톨릭교회의 토지사목은 1980년대 중반, 이 운동의 태동에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운동의 발전과정에서 토지사목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운동의 길을 걸었지만, 여전히 무 토지농민운동의 대다수 적극적인 활동가들이나 임원은 원래 토지사목과 기초공동체 출신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이 단체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이들 모두의 사회적-종교적 문화와 투 신을 위한 토대가 되는 윤리적 동기부여는 해방 그리스도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해방 그리스 도교의 사회적-종교적 유토피아는 무토지농민운동의 투쟁과 점거지 생활방식을 특징짓는 수많은 의식(儀式)─축제, 행렬, 행진, 노래, 연설─에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내재해 있다. 1994년 1월 멕시코의 치아파스에서 일어난 사파티스타 봉기도 해방 그리스도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록 그 이데올로기는 종교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교구의 사 무엘 루이스 몬시뇰과 교리교사들이 오랫동안 원주민 공동체를 교육하고 강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작업이 사파티스타 운동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에콰도르에 서 일어난 원주민 봉기도 ‘원주민의 주교’로 널리 알려진 프로아뇨 몬시뇰과 관련 있다. 몬시뇰은 오랫동안 원주민의 교육과 조직에 많은 노력을 쏟았고, 원주민운동단체의 결성에 직접 도움을 주기 도 했기 때문에, 몬시뇰과 해방그리스도교가 이 봉기들을 직접 ‘촉진’하거나, ‘지도’하지도 않았을지 라도, 케츄아 원주민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조직하는데 명백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해방그리스도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과 사회변화에 적극적인 역 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해방 그리스도교(해방신학과 기초공동체)의 위기에 관한 논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0년 초반 동구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유효성에 대한 논 쟁이 있었고, 그 논쟁은 마르크스주의적 분석틀의 차용과 사회주의 이념과의 친화성 이유로 해방신 학과 기초공동체의 유효성에 대한 논쟁으로 번졌다. 그러나 이 논쟁 자체가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는 해방 그리스도교에 덧씌워진 이념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 는다. 예를 들어 기초공동체의 위기에 관한 논쟁을 보면, 주로 기초공동체의 수적 규모와 성격 변화에 서 출발하는데,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연구자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해석이 개입되기도 한다. 특히 해외 브라질학자들과 브라질 국내 연구자들 사이에, 보수적인 연구자와 진보적인 연구 자 사이에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데, 전자들은 주로 외적 위기 요인에 초점을 맞춰 위기를 강조한 반면, 후자들은 외부 요인에 의한 위기를 전면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을지라도, 그 위기가 공동체의 기반 자체를 허무는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뢰비의 접근은 신선하다. 그는 이 위기 논쟁과 관련해 핵심적인 문제는 해방신학이 지적 운동으로서 지속성을 갖는가가 아니라, 이 신학이 여전히 민중적 지지를 확보하고 있느냐이 다. 해방신학은 얼마나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해방 그리스도교는 어느 정도까지 주민의 주 요 부문들을 동원할 수 있는 사회운동으로서 기능하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앞서 살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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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와 같이 해방 그리스도교 운동은 여전히 유효성을 갖고,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사회운동 과 사회변화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근대 가톨릭과 경제 문제 흔히 아는 것처럼, 유럽의 근대, 더 구체적으로 자본주의적 근대는 봉건적이고 가톨릭적인 중세 질서가 해체되면서 등장했다.4)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경우에 따라 이 근대와 타협하고 또 결탁하기 도 하였으나, 그 저변에 깔린 기본적인 정서는 새롭게 등장하는 자본주의적 근대 체제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근대 가톨릭의 몇 가지 주요한 특성들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유럽 대륙에서 처음 등장한 자본주의 체제와 종교의 관계에 대해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다뤘으나, 단연 막스 베버의 논의가 돋보인다. 그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이 둘 사이의 선택적 친화성을 이야기한다. 베버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서구의 합리화 과정이었다. 그 에 따르면 이 과정은 세계를 끊임없이 개혁, 정복하려는 지향이 각종 제도 속에 자리 잡아온 과정 이고, 그것이 종교적으로 표출된 것이 금욕주의이다. 초월적인 기준을 가지고, 세계를 끊임없이 개 혁해나가려는 이러한 금욕주의는 서구의 경우, 고대 유대교에서 초대 그리스도교, 중세 가톨릭을 거쳐 근대 개신교, 특히 칼뱅적 개신교에서 만개했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정신을 형성하는 데 일정 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가톨릭은 어떠한가? 이 점에 대해선 베버 이후 오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경우 는 가톨릭이 지배적인 지역에서의 자본주의 발전 사례를 입증하면서 베버의 논제를 반박하기도 하 고, 또 다른 경우에는 베버의 논의가 종교들 간의 공시적인 비교가 아니라, 통시적인 비교였다고 주장하면서 논의의 방향을 틀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베버에 따르면, 가톨릭교회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발전에─완전히 적대적인 환경은 아닐지라도─칼뱅교파나 감리교파보다 훨씬 더 불리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베버는 그 이유를 명백 히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여러 저작들을 추적하면, 이에 대한 일정한 답을 추정해볼 수 있다. 베버는 가톨릭 윤리가 ‘구원론적 형제애 윤리’이고, 이 윤리는 세속적 가치들, 특히 자본주의 체제의 추상적이고 물화된 논리를 도덕적으로 적대시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가톨릭교회 내에는 자 본주의 정신과 화해할 수 없는, 기본적인 혐오 또는 거부, 다시 말하면 일종의 문화적 반감이 존재 했다. 이에 대해 뢰비는, 베버가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사이의 선택적 친화성을 이야기한 것에 빗대어, 가톨릭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사이에 ‘부정적 친화성’(negative affinity)이 존재한다고 표현한 다(뢰비 2012).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문화적 혐오감 또는 반감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경제가 촉 진하는, ‘관계의 비인격적 특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이러한 비인격적 특성 때문에, 교회가 일정한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또 그 관계에 개입 하여 윤리적 관점에서 틀 짓는 것을 방해한다고 본 것이다. 에밀 풀라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혐오 또는 반감을 가진 가톨릭적 흐름을 ‘비타협적 가톨 릭’(intransigent Catholicism)이라 지칭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타협적 가톨릭은 역사적으로 단일한 형태 4) 이는 유럽의 근대를 내적 발전의 결과로 보는 서구중심주의적 견해에 동의함을 뜻하지 않는다. 라틴아메리카 근 대성ㆍ식민성 연구그룹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럽의 근대화는 라틴아메리카의 식민화의 또 다른 얼굴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이 글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논의를 유럽 내적 역동성에 제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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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띠지 않았고, 크게 보면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하나는 압도적으로 보수적이 고, 복고적이며, 반동적인 경향이다. 이는 교회가 봉건적이고 조합주의적 과거, 대단한 권력과 특권 을 누렸던, 전(前)자본주의적 위계 사회에 대한 향수에서 출발하여, 반자본주의적 정서를 표현한다. 또 다른 하나는 가난한 이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한 공감하는 유토피아적 경향이다. 이는 지배적 인 복고주의적 경향과 달리, 자본주의 체제가 낳는 가난과 비참을 인지하면서 반자본주의적 정서를 갖게 되고, 더 나아가 이와 다른 새로운 체제를 꿈꾸는 경향이다. 따라서 비타협적 가톨릭 전통에 서 간헐적으로 분출되었던 이러한 경향을 이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매료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톨릭교회가 이처럼 일반적으로 자본주의를 혐오하거나 반감을 가졌다고 해서, 현실주의 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거나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가톨릭교회의 비타 협적인 태도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일정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자본주의 체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화되고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 잡음에 따라, 가톨릭교회의 자본주의 비판도 그 내용에 있어 일정 한 변화를 겪는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의 토대 자체를 의문시하기보다는, 이 체제의 지나침, 즉 폐해나 부작용을 겨냥하여 그 개선을 촉구하게 된다. 둘째 사회주의적 노동운동의 등장이다. 가톨 릭교회는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를 무신론으로 규정하면서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로 단죄하게 된다. 그에 따라 교회는 자본주의 세력과 연합하여 공동의 적에 대항하려는 경향을 띤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교회의 관점도 일정한 변화를 겪는다. 예를 들어 가톨릭교회는 더 이상 자본주의의 폐지가 가능하다거나 또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의 자본주의 비 판은 단지 그리스도교의 창의적이고 사회적 행위들을 통해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바로잡 으려는 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19세기 말에 이르러 명료한 형태로 드러난 이러한 변화, 즉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지나침 을 비판하지만, 더 이상 현행 사회적, 경제적 질서에 도전하지 않는 이러한 경향을, 뢰비는 ‘사회적 가톨릭’(social Catholicism)이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가톨릭이 오늘날 이른바 가톨릭 사 회교리의 기반이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비타협적 가톨릭이 사회적 가톨릭으로 탈바꿈할 무렵, 특히 프랑스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톨릭 사회주의가 등장했다, 샤를 페기, 에마뉘엘 무니에와 같은 지식인들, 1940년 대와 50년대의 노동 사제들,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가톨릭운동 등으로 분출되었던 이러한 가톨릭 적 흐름은 비타협적이나, 좌파적 형태의 반자본주의를 표방하면서 급진화되었다. 뢰비는 이러한 가 톨릭 사회주의가 1960년대 브라질의 그리스도교 좌파 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4. 라틴아메리카 현실과 자본주의 그러나 유럽 가톨릭 사회주의의 이러한 영향을 부인할 수 없을지라도,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그리 스도교는 무엇보다도 라틴아메리카의 가난과 비참이라는 사회적 상황을 직시하면서 촉발된 운동이 다. 가난과 비참의 상황에 대한 당시의 지배적인 생각은 이러한 상황이 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에서 비롯되었고, 이러한 저발전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 갖고 있는 내적인 결함 탓이라고 보았으며, 서구의 가치, 자본 및 기술의 확산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발전 단계론, 또는 근대화론이었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이러한 발전 전략에 따라 시도되었던 경제 발전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더욱 더 악화되면서, 발전에 대한 새로운 관점, 즉 종속이론이 힘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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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국민 경제’를, 상품, 자본, 그리고 심지어 노동력의 세계 시장으로 통합하는 세계 경제의 구성 과정을 분석해 보면, 이 시장이 형성하는 관계기 불평등하고 조합된(unequal and combined)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체제의 일부의 발전이 다른 부분의 희생 하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불평등하다. (중략) 조 합된 발전이라고 한 것은 이러한 불평등과, 가장 낙후되고 종속적인 부문으로부터 가장 발전되고 지배 적인 부문으로의 자원 이전의 조합이기 때문이다(dos Santos 1970, 231). 이처럼 해방신학자들은 종속이론의 도움을 받아, 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을 “다른 나라들의 발전 의 역사적 부산물”로 이해한다. 발전한 나라와 저발전한 나라 사이의 불평등은 종속 관계로 인해 더 첨예화되었고, 따라서 ‘계급 분석’만이 억눌린 이들과 억누르는 자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온전 히 파악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해방신학자들은 이러한 각성에서 출발하여 현실의 근본적인 변 혁 과정으로서의 해방 운동에 투신하였다. 다시 말하면, 해방은 해방신학자들에게 대륙의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키고 억누르는 사회 조건과 단절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다. 브라질 중서부 지역의 주교들과 수도회 장상들은 1973년 공동 선언의 형태로, ‘교회의 외침’(The Cry of the Churches)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표하였다. 이 문서의 결론 부분에 자본주의에 대한 관점

이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다.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가장 큰 악이고, 축적된 죄이며, 썩은 뿌리이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난, 굶주림, 질병, 죽음 등과 같은, 모든 결실을 만들어내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산수단(공장, 토지, 상업, 은행)의 사적 소유를 뛰어넘어야 한다(Los Obispos Latinoamericanos entre Medellin y Puebla 1978, 71). 해방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반자본주의적 태도는 기본적으로 비타협적인 가톨릭에서 물려받은 자 본주의에 대한 적대감 또는 혐오감이다. 그러나 해방 그리스도교는 이를 라틴아메리카에 단순 복 원, 또는 재생산한 것이 아니라, 이 대륙의 가난과 비참이라는 상황과 조건 아래서 크게 수정하고 근대화하였다. 비타협적 유럽 가톨릭과 해방그리스도교의 이러한 차이에 대해 뢰비는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 째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성을 더 급진화하고, 훨씬 더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둘째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 항의나 비판을, 착취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인(보다 더 구체적으로 종속이 론적인) 근대적 사회 분석에 의해 보완하였다. 셋째 자선을 사회적 정의로 대체하였다. 이는 기본 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희생자, 또는 동정이나 자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사의 주체이고 자신의 해방을 일구는 행위자로 인지함을 뜻한다. 넷째 가부장적인 과거를 이상시하는 것 을 거부했다. 다섯째 사회화된 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해방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새로움은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뛰어넘어 자본주의 자체의 폐지를 요청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구티에레스에 따르면, 가난한 이들은 다음과 같은 혁 명적 투쟁을 필요로 한다.

[가난한 이들은] 현존 사회질서를 송두리째 의문시하는 [혁명적 투쟁을 필요로 한다]. 사회가 진정 자 유롭고 평등하다면, 사람들이 권력에 쉽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적 소유로 인하여, 소수가 많은 이들이 수행한 노동의 결실을 빼앗 고, 사회 내 계급 분열이 일어나며,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기 때문이다(Gutiérrez 1983, 1-2).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인 부정은 또한 비타협적 가톨릭에서 진화해온 사회적 가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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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과 해방 그리스도교를 구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느님나라의 신학이 은총과 협력하는 인간의 적극적인 역할을 전제한다면, 그리고 이 신학이 하느님 이 지배하는 인간 삶의 모든 차원을 포괄한다면, 사회과학을 활용하는 것은 ... 하느님나라의 선물을 받기 위해 역사를 준비하고 처리하는 인간적 협력으로서 명백한 요청이다. 그러나 여기서, 즉 사회분석적 매개와의 관계 차원에서, 해방신학과 교회의 사회교리는 보다 더 명백하게 대립한다. 왜냐하면 해방신학은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의문시하는 학문을 활용하기 때문이다(Antoncich 1991, 147). 이제 해방 그리스도교는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한 비타협적 반대, 또는 원칙적인 투쟁의 이름으 로, 교회와 근대 (부르주아) 세계 사이의 타협에 대해 비판한다. ‘사회주의를 위한 그리스도교 인’(Cristianos por el Socialismo) 운동의 주창자 가운데 한 사람인, 칠레 신학자 파블로 리차드는 다음 과 같이 주장한다.

억눌린 계층에게, 신앙과 근대 세계 사이의 이러한 수렴 또는 결합은 낯선 현실이었다. 왜냐하면 그것 은 억압을 신성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앙과 근대 과학적 이성의 만남, 구원과 인간 진보의 만남은 교회와 지배 계급의 만남 또는 화해를 일관되이 반영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교회의 근대화 과정, 그리 고 근대 세계와의 타협 과정은 그것이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한, 그 자체로 왜곡적인 것이 된다(뢰비 2012, 99). 5. 경제신학과 자본주의 비판 해방 그리스도교의 자본주의 비판은 이른바 경제신학에 이르러 보다 더 체계화되고 급진적인 형 태를 띤다. 경제신학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프란츠 힌켈라메르트)과 신학(우고 아스만, 파블로 리 차드, 훌리오 데 산타 아나), 철학(엔리케 두셀)의 학제적 대화에 바탕을 두고, 코스타리카의 DEI 연구소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힌켈라메르트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단순히 경제 논리에 바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논리를 신학적으로 치장하고 나타나기 때문에 기존의 정치경제학적 분석으로는 자본주의의 본 질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면서, 자본주의를 보다 더 정확히 이해하고 극복하려면 그러한 신학적 치장을 가능케 하는 자본주의적 기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이러한 이해를 위해 마르크 스의 물신숭배 비판을 성서적 전통의 우상숭배 비판과 접목하여 새롭게 재해석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고 아스만과 파블로 리차드는 신학적 관점에서 70년대 중남미의 억압적인 독재 정권들이 스스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는 것을 보면서, 이는 단순히 체제 이익을 위해 종교 적 요소를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활용함을 뛰어넘어서, 자본주의 체제가 잉여나 사회계급 뿐만 아 니라 또한 자체의 상징적 세계, 영성, 종교를 생산 또는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 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들은 피상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잘 나타나지 않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종교 심, 고유한 신비와 덕, 윤리와 상벌을 갖는 국가 종교의 가면을 벗기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필요하 다고 보고, 이를 위해선 마르크스의 물신숭배 비판이 유용하다고 판단 아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 의 대화를 시작한다. 이처럼 경제신학은 상품, 화폐, 자본 물신숭배에 대한 (근대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전통 적인) 구약성서의 거짓 신에 대한 예언자적 고발, 즉 우상숭배비판과 결합하면서, 거짓 종교(false religion),

새로운 형태의 우상숭배로서의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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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학이 해방신학 안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80년대라고 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80년대는 한편으로 민정 이양을 통해 형식적 민주화를 어느 정도 이룩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외채 위기와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반 대중의 삶이 더욱 열악해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 프 로그램 하에서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은 서민의 삶과 직결되는 복지적 성격의 지출을 대폭 삭감함으 로써 외채 상환을 위한 재원 마련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는 자 본과 시장경제에 대한 물신숭배에 사로 잡혀, 오히려 더 많은 자본, 더 확대된 시장경제가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고집한다. 여기서 경제신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저변에 깔린 종교적 논리를 본다. 다시 말하면 신자유주의 에 바탕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체제를 도덕규범과 동일시하고 이 규범을 신성시하며, 과학과 초월화된 시장 경제의 이름으로 인간을 희생을 요구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경제종교’”를 만 들어 내고 있다. 이렇게 종교화된 시장논리는 시장체제가 양산하는 각종 폐해나 부작용을 ‘필요한 희생’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삶을 희생과 죽음으로 내몬다. 따라서 이제 중요한 것은 삶이다. 해방신학이 60,70년대의 상황을 종속과 해방의 구도로 보아 출 애굽 이야기, 예언자들의 전통 등 성서의 해방 전승을 주된 전거로 사용했듯이, 이제 경제신학은 80년대의 상황을 죽음과 삶의 구도로 본다. 앞서 보았듯이 외채 위기는 단순한 금융상의 문제가 아니라 중남미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삶 자체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제신학은 이러한 죽음의 체제에 맞서 삶의 하느님을 고백하고 삶을 옹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경제신학을 “삶의 신학”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적 체제 하에서 인간과 자연의 희생과 죽음이 구조화된 현실 속에서, 해방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바탕 또는 지향은 삶이 되고, 삶을 향한 이러한 “신학적 지향은 인간적 희망, 즉 유토피아가 기독교의 타고난 넋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해방신학은 몸의 필요를 충족하고 향유함으로써 해방된 몸의 신학이고 그래서 삶의 신학이다. 인간이 자신의 실제적․물질적 삶의 내부에서 해방을 체험할 때 하느님과 만날 수 있고 또 만난다(힌켈라메 르트 1999). 6. 자본주의를 넘어서 해방그리스도교의 자본주의 비판은 체제 자체를 문제시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를 대체할 새로 운 체제를 꿈꾸게 된다. 그러나 해방 그리스도교는 일차적으로 종교 운동이기 때문에, 특정 체제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나 선호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사회적 영역에 있어서 교회의 기본적 선택은 사회주의적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이다. 따라서 교회의 기본적 준거는 하나의 체제이거나 일 수 없고, 살아있는 사람이다. 체제는 사람 다음에 오는 문제이다(C. 보프 1992). 그러나 사람의 선택, 즉 가난한 이들의 선택은 곧 이들의 삶을 보장하고 개선하기 위한 보다 더 나은 체제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해방그리스도교는 무엇보다도 가난한 이들, “억 눌린 이들의 삶과 정의를 보다 더 잘 실현하기 위한 매개”로서 사회주의를 선택한다. 그러나 사회 주의는 역사 속에서, 그리고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음을 전제한다면, 해방 그리스 도교는 어떤 사회주의를 선택하는가? 분명한 것은 동유럽에서 발전해 온 현실 사회주의는 아니다. - 9 -


이는 동구 사회주의 붕괴 이전과 이후에 나온 해방신학자들의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 어 프레이 베투는 동구 사회주의를 이렇게 평가한다.

사회주의는 계급 차이를 급격하게 줄이고 모두에게 기본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해주면서, 주민들 에게 실제적인 사회적 혜택을 보증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들에 지배적인 불만은 다 음 두 가지 요인으로부터 설명될 수 있다. 첫째, 경제의 국유화로 자본재의 현대화를 이루지 못했고, 따라서 서구 유럽과 비교해 과학적 기술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둘째, 시혜적이고 가부장적인 유일 정당의 독점은 민주적 참여 구조를 금했고 정치적 반대를 탄압하였다(F. 베또 1992). 따라서 해방 그리스도교가 선택하는 사회주의는 라틴 아메리카적 맥락에서 형성, 발전해 온 사 회주의를 뜻한다. 특히 해방 그리스도교인들이 혁명 과정과 혁명 이후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 적극 참여하였던, 니카라과의 사례는 이러한 사회주의적 지향과 관련하여 중요한 준거점이 되고 있다. 해방 그리스도교인들의 이러한 참여는 니카라과의 아주 독특한 사회주의 과정(혼합경제, 다당제와 국제적 비동맹주의)에 윤리적, 유토피아적 내용을 담아내는데 이바지했다. 요약하자면 해방 그리스 도교인들은 사회주의 자체를 선택하기보다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따라서 사회주 의가 가난한 이들의 대의를 정확하게 육화시킴에 따라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해방그리스도교의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이는 다양한 형태로 이 야기될 수 있지만, 주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사회주의가 갖고 있는 인본주의적 측면과 관련 있 다. 다시 말하면 비타협적 가톨릭이 반자본주의적 감수성을 드러냈던 것은 자본주의 경제가 촉진하 는, 관계의 비인격적 특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데, 해방 그리스도교는 그러한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있는 인본주의적 측면에 주목한 것이다.

... 사회주의는 바로 인류의 보다 오랜 그리고 저항적인 꿈, 즉 연대적이고 평등한 정의 사회를 표현하 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적 제안의 힘은 사회의 진실, 다시 말하면 형제애적이고 화해적인 사회의 실현을 표현하는데 있다고 본다. 사회주의의 열쇠는 그 인간주의에 있다. 사회주의는 기독교적 관점에 서 보면, 자본주의 보다 의심할 나위없는 윤리적 우월성을 지닌다. 그 우월성은 자본 앞에 노동을 놓 고 사적 이해 앞에 사회적 이해를 놓는다는 사실이다. 앞에 놓는다고 했지, 역사에서 일어난 것처럼 반드시 반대로 놓는다고 말하지 않았다(C. 보프 1992). 해방그리스도교의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 그리고 사회주의를 위한 선택’은 또 다른 한편으로 개 인이냐, 공동체이냐 라는 선택과 관련 있다. 왜냐하면 가톨릭교회는 인간적 유대에 바탕을 둔 “공 동체 생활이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본질이고, 또한 하느님 나라의 본질”이라고 여기는데, 이에 반 해 근대 자본주의는 이러한 공동체성을 부인하는 냉혹한 개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는 근대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근대적 사고에 따르면, 개인적 인 인간이 절대적 시작이고, 자율적인 결정의 중심이다. 개인적 이니셔티브와 개인적 이해(利害)는 경 제활동의 출발점이고 원동력이다(뒷셀 1990,172-173,218). 라틴아메리카에서 도시적이고 산업적 근대성이 갖는 가장 부정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는 - 사회 적,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 전통적 공동체적 유대의 파괴이다. 자본주의적 근대화 물결이 농촌으 로 밀려들면서, 대다수의 주민들은 농촌 특유의 공동체적 환경으로부터 쫓겨나 대도시 변두리의 빈 민가에 내던져졌다. 이들은 대도시에서, 이기적인 개인주의 분위기, 고삐 풀린 경쟁 그리고 생존을 위한 모진 투쟁에 직면하고, 거기서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기초공동체 운동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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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자본주의에 의한 이러한 공동체 파괴 앞에서, 해방 그리스도교는 공동체적 유대를 지키고 새로운 방식으로 재건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토지사목(CPT)이나 원주민선교위원회 (CIMI)와 같은 민중사목의 주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는 대규모 농공(農工) 회사나 국가 주도의 거대 한 근대화 프로젝트의 탐욕으로 위협받는, (가난한 농민들과 원주민 부족의) 전통적인 공동체를 지 키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도시 지역, 특히 도시 빈민 지역에서는 기초공동체를 통하여, 가난 한 이들의 집단적 기억 속에 아직 남아 있는 과거 농촌 전통─협력, 연대와 상호부조의 관습─의 도움을 받아, 공동체적 생활양식을 다시 세우고자 했다. 브라질 예수회 신학자인 마르셀루 아제베두(Marcello Azevedo)는 기초공동체에 관한 최근 저서에서, 기초공동체는 자본주의적 근대가 개인과 그가 속한 집단 사이의 모든 연계를 파괴하는 데 책임이 있다고 비판하면서, 사회나 교회에서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이중적인 시도의 집중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하비 콕스(Harvey Cox)도 가난한 주민들이 기초공동체 덕분에 “자본 주의적 근대화의 맹공격에서 살아남은, 일련의 이야기와 도덕 전통을 되살리고, 공식적인 기존 가 치체계와 의미 체계에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해방신학은 “개인주의보다는 공동체, 기 계적인 공생 형태보다는 유기적인 공생 형태를 우선시하는 조직 형태”를 강조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기초공동체가 전근대적인 유기적 공동체로 복귀하거나, 전근대적 사회관계를 단순히 재 생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해방 그리스도교는 전통적인 공동체와 관련해서도 쇄신과 개혁을 단행한 다. 특히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규범이나 의무를 강요하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구조와는 작별을 고하고, 오히려 공동체 참여의 자유로운 선택을 포함하여, 몇 가지 중요한 근대적 가치들을 받아들 여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다만 기초공동체가 공동체 전통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근원적인 인간관계, 상호부조의 실천 그리고 공동 믿음의 공유이다. 이처럼 해방 그리스도교는 인격적 개입이나 공동체적 삶을 허용치 않는 자본주의 체제, 신자유주 의 체제 앞에서, 체제의 개선이나 개혁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본질적으로 부인하면서, 새로운 대안 사회를 꿈꾼다. 해방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대안성을 비록 명료한 형태로 묘사되지는 않을지라도, 적 어도 ‘사회주의’와 ‘공동체성’이라는 두 개념에서 출발해 논의를 심화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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