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잡지 [인터뷰, 마을이음] (시즌2, feat.장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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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문화플랫폼시민나루협동조합 발행·편집인: 심소영 대표전화: 02 2244 9623 (광고 문의) Vol. 2 2022. 8 여름·가을 동대문 이슈이음 가족 돌봄·돌봄 노동 발달장애 돌봄·자기 돌봄 우리 동네 안전망 장안종합사회복지관 우리 동네 점포 이야기 동대문 문화이음 무아레 서점 소소한 문화살롱 feat. 장안동 feat. 장안동

이번 <인터뷰, 마을이음>의 주제는 ‘돌봄’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의 일상에서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었다. 2년 을 훌쩍 넘는 방역 기간 동안 우리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 편의시설 영업(이용) 제한, 재택근무, 자가 격리, 거리 두기 등 다양한 방역시스템에 적응했다. 그러나 이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이나 동료와 관계 맺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팬데믹 이전부터 사회적 돌봄 시스템에 대한 이슈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바로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2017년 이후 100년간 일본 사회에서 벌어질 일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미래연표》를 통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우리의 가까운 미래도 전망해보려고 했다. 그리고, 현재 돌봄을 맡은 동네 사람을 인터뷰하여 우리의 현재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인터뷰를 통해 삶이 아주 오래전부터 견고하게 타인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 았다. 또 우리가 ‘돌봄’이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해왔다는 것을 깨우쳐주었 고, 공동체가 무너지면 우리의 미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정해진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 하지만 동네에서 만난 ‘지금 현재’는 암 울하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본다. 이런 교훈을 일상에서 실천할 방법을 찾고, 실행하 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일상에서 실천할 방법을 널리 널리 공유하고, 다시 우리 문화로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 역량에 달려있다. 이번 호를 마무리하며 팬데믹이 우리의 삶에 던진 ‘암울한 미래’를 피해 가는 방법이 무엇일지 질문해 본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선택지가 아직 있을 때 ‘경쟁’보다는 ‘협력’에, ‘개인’보다는 ‘공동체’에 관심을 가져보 는 것이 어떨지를.

편집인의

2022. 8 여름·가을

<인터뷰, 마을이음> 시즌2 feat. 장안동

발행처: 문화플랫폼시민나루협동조합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로38길 19 A동 2층)

발행·편집인: 심소영

취재기자: 박혜원, 심소영, 오은형, 윤덕환, 임정희, 최다솔, 박식빵

대표전화: 02 2244 9623(광고 문의)

이메일: ddmplf@gmail com

인터뷰마을이음 웹본: https://issuu com/ddmplf

블로그: https://blog naver com/ddmplf 페이스북: https://www facebook com/ddmp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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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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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 여름·가을 Vol.2 001 편집인의 글 002 발행정보 004 동대문 이슈이음 ① 미래연표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지 않는, 소름 돋는 시대가 온다 009 동대문 이슈이음 ②

(1) 가족 돌봄 우리 인생 자체가 돌봄이죠! (2) 돌봄 노동 ‘각자도생’의 삶에서, 돌봄으로 ‘공생’을 꿈꾸다

(3) 발달 장애 돌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4) 자기 돌봄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026 우리 동네 안전망

031 우리 동네 점포 이야기 최첨단 스마트팜 올되다 농장 육회 & 연어 전문식당 형제집

037 동대문 문화이음 사람과 사람이 겹쳐 만들어지는 물결 무아레 서점

042 소소한 문화살롱 원예 – 치유정원 꽃이 주는 위로에 대하여 드라마 – 눈이 부시게 모든 사람은 언젠가 노인이 된다 책 – 《돌봄 선언》 우리의 일상은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Contents
동네 쉼터가 되고픈 장안종합사회복지관

2020년 초.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정부에서 발표한 낯선 용어를 듣게 되

었다. 사람들은 집회는 물론, 일상적인 미팅, 종교

행사 참석, 심지어 출근도 자제하고 재택으로 전환

하라는 강력한 권고를 받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다.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서구 사회는 이 정책에 격렬

하게 반발했지만, 의외로 한국 사람들은 여기에 순

응했다. 한국인들에게 이 거리두기 정책은 역설적

으로 ‘가고 싶지 않은 모임’, ‘보고 싶지 않은 관계’

를 가지 않아도 되는 중요한 명분과 일종의 해방감

을 준 것이다. 하지만, 이 거리두기 정책은 양날의

칼과 같은 효과를 나타냈다.

IT 기기 활용이 원활한 젊은 세대들은, ‘혼자서도

잘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잘 찾아서 스스

로 진단과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스 마트폰이나 IT 기기 활용이 어려운 노년 세대에게

‘거리두기’는 일종의 방치와 고립이었다. 특히, ‘돌

봄서비스’의 혜택을 ‘구매할 수 없는’ 사회적 취약 계층에게 '거리두기'는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 오기도 했다. 노인 돌봄의 문제는 별거가 아니라고?

일본을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

코로나 3년 차에 접어들면서, 다행히 코로나바이러 스가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한 범위 이내로 관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함께, 노년 세대와 취약계층의 돌봄의 이슈도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간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던져준 '일상적 돌봄'의 부 재라는 숙제는 노년층을 포함한 취약계층에게 여전 한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있다. 취약계층, 특히 노년 세대 취약계층의 돌봄의 문제는 계속 미룰 수는 없 고 언젠가는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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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저의 출산 동대문 이슈이음 ➊ 미래연표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지 않는, 소름 돋는 시대가 온다 답이 나와 있는 돌봄의 암울한 문제, 《미래연표》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약간 힌트, 《호그벡 마을》 글: 윤덕환 (문화심리학 박사)
숙제다.

율(0 . 84)에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만65세 인구 증

가율)를 고려할 때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도 많지 않

다. 만약, 지금 일시적으로 이런저런 바쁜 것을 핑

계로, 노년 세대의 돌봄의 문제를 계속 미루게 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 어려운 문제를

미루면 어떤 참혹한 미래가 오는지를 알려주는 책 이 있다.

로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할머니 대국

이 되다’나 ‘2018년 국립대학이 도산 위기에 처한다’

등. 어느 정도 생산 가능 인력의 감소가 파생되는

결과로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부분으로 지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노인이 늘어나면, 노인을 간병하는 사람도 늘 어나야 한다

책 제목은 2018년에 출간된, 《미래연표》라는 책. 일 본의 중견 기자가 쓴 이 책의 직관적이지 않은 제목 의 어색함은 ‘미래’와 ‘연표’라는 단어의 의미가 충돌 하는 지점에 있다.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인데, 역사적인 일이나 사건을 정리한다는 개념인 연표라 니. 책의 때깔은 살짝(?) 촌스럽다. 글꼴도 단단한 ‘고딕체’가득한 표지에 색감도 ‘그레이’톤. 하지만, 이 ‘단단한 고딕스러움’은 본 책 내용에서 묵직한 팩 트의 폭격으로 이어진다.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구구조의 문제는 벌써 3~4년 전부터 전망되어왔던 문제다. 이런 관점에

서 보면, 이 책의 1부에서 다루고 있는 ‘인구감소 캘 린더’는 아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식상’한 문제

반전은 2021년부터다. 처음에는 ‘다 아는 내용이네, 그래서 뭐’ 이렇게 시작하던 부분이 ‘어, 어, 어, 장 난 아닌데?’ 이렇게 바뀌기 시작한 대목이 2021년부 터이기 때문이다(물론 이 책의 저술은 코로나 팬데믹을 고려한 책은 아니기 때문에 순수한 인구변동에만 의거한 분석이다). 저자는 2021년을 시점으로 해서 대규모 의 간병 이직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50대가 되면 부모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요 양 서비스를 받게 되는 ‘요개호(간호 필요)’ 인정의 연령대로 접어든다고 한다. 그런데, 2021년은 단카 이 주니어세대의 선두(1971년생)가 50대가 되는 해 이고, 고령자 수의 급증에 따라 요양보험료가 급증 하는 시기(50% 이상 증가)와 맞물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렇게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거나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개인들은 가족의 돌봄에 의지 할 수밖에는 없는데, 이때 일하면서 간병하는 사람 이 엄청나게 증가하는 첫해가 바로 2021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40~50대에는 직업의 공백이 생기 는 경우 이직이나 복직이 쉽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 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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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스럽게도 이 예상은 정확히 일본의 현재 상황과

일치한다. 일본의 간병인정자(간병받아야 하는 사람)

수는 2015년 632만 명에서 2030년에는 907만 명에

이르고, 2060년에는 1 ,035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간병자(간호하는 사람)의 수는 정확히 이 간병인정자의 수에 비례해서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미즈호 종합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에 가족 간병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고 이직하는 사람은 매년

약 10만 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1) .

더욱 심각한 것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돌봄 스

트레스’를 경험하는 간병자가 급증하는 데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020년 자료에 의하면

2020년도(2020년 4월~2021년 3월) 가정 내 고령자 학

대 건수는 1만 7천 281건으로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래 가장 많았다고 보고하고 있다2) . 65세 이상 인

구가 30%에 육박하는 일본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간병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간병자(주로 가족)의 비율

이 증가하고 있다. 간병은 가족 관계를 위로가 아니

라 스트레스로 만든다.

엄청난 속도의 노령화로, 병원에서 수혈을 못 받을 수도 있다

의료와 관련한 더욱더 심각한 일상적인 문제는

‘2027년 수혈용 혈액’의 부족 사태에 대한 저자의 지

적이다. 도쿄도의 수혈상황조사(2012년)에 따르면

수혈용 혈액제제의 85%는 50세 이상의 환자에게 사

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혈액 공급의 절대다수

는 10대~30대의 헌혈이었다. 수혈용 혈액은 어디

에 쓰일까? 교통사고와 같은 응급수술? 통계에 따

르면 부상 치료에 쓰이는 혈액은 3.5% 정도에 불과

하다고 한다. 혈액의 80%는 암이나 심장병, 백혈병 등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장차 일본인 2 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는 예측도 있는데, 이를 고 려할 때 수혈용 혈액의 수요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 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혈액을 미리 준비하면 되지 않냐고? 혈액의 부족은 미리 준비한다고 되는 문제 가 아니라는 데 있다. 혈액제제는 보관이 지극히 어 렵기 때문에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고, 혈소판제제 는 채혈 후 겨우 4일밖에는 사용할 수가 없다. 일본 적십자사와 도쿄도의 추계에 따르면 고령화 등에 따라 필요량이 최대화되는 해가 2027년이고, 약 86 만 명분의 혈액이 부족하다고 예상된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것은 ‘병원에 가면 살 수 있다’는 당연한 상식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저자는 직설적으로 주장 한다. 이외에도, 2039년에는 사망자 수가 절정에 이르러 묘지 부족과 화장장의 문제가 대두될 것이고, 2040 년에는 자치단체 절반이 소멸 위기에 처하게 되는 등 고령화와 인구절벽의 문제가 아주 일상적인 개 인의 문제에 미치게 될 것을 저자는 구체적으로 전 망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할 만한 부동산 문제는 ‘2033년’에 나와 있다. 궁금 하시면 115페이지를 참고해 보시라. 결론에 대한 감 정을 살짝 알려드리면, ‘매우 우울’하다. 1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얇은 2부에서는 저자의 다소 ‘꼰대’스럽 지만, 과감한 제언들이 있다. 책의 두께는 가볍지만, 이 책은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불편한 미래’를 무겁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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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에는 이 저자의 개인적인 주장을 넘어

서는 거부할 수 없는 ‘데이터의 폭격’이 고스란히 담 겨있다. 2016년 IMF 한국 보고서는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만 15세~64세)의 급격한 감소가, 1996년 이후에 진행된

일본과 거의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 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이 대한민국의 인 구절벽(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 현상)의 문제를 제

기해 왔다. 하지만, 인구학 전문가인 서울대 조영태 교수의 주장처럼, 그동안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 문 제는 일상적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이슈였고, 언제 나 늘 ‘국가의 관점’에서 거시적 차원으로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이 책은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 혹은 고령화의 문제로 인해 파생되는 노인 돌봄, 간병, 노인 의료 등의 결과를 사람들의 ‘일상’의 심각한 문

제로 전환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인구절벽 과 고령화의 문제는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당신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안은 없어 보이지만, 대안 비슷한 것 – 공동 체 내에서의 서로 돌봄

돌봄, 특히 노인 돌봄의 숙제는 미룬다고 저절로 해 결되지 않는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급증은 엄청난 돌봄의 이슈를 제기한다. 이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 용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지금이 라도 국가적 이슈로 이 노인 돌봄의 이슈를 관리해 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 노인 돌봄의 이슈를 감당 할 수 있을까. 한가지 힌트가 될만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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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그벡 마을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이다.

수많은 노인들이 인지 저하증(치매)을 경험한다. 최

근의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3초에 한 명, 한

시간에 1 ,200명씩 늘고 있는 것이 바로 인지 저하증 (치매) 환자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2년에는 10조, 2040년에는 78조 정도로 국가재정의 1/6이 이 인지

저하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으로 들어간다고 알려

져 있다3). 인지 저하증(치매)은 돌봄이 필요한 대표

적인 질환이다.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에는 2021 년까지 주민들

400여 명이 살고 있었는데, 상당수가 인지 저하증

환자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에는 인지증 환자들을 격리하지 않고 일반인들처럼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한다. 슈퍼마켓에서 장도 보고, 미용실도 가며, 가 족과 영화도 보고, 카페에서 수다도 떤다. 다만, 이 공간에는 평상복을 입은 간호 요원들과 요양 관리

사들이 늘 머물며 이 인지증을 앓는 노인들의 일상 을 돕는다. 전 세계적으로 인지 저하증 환자가 급증 하는 현재, 언론들의 관심이 여기에 쏠려있다. KBS의 명견만리 제작진들은 이곳을 취재하면서, 중 요한 통찰을 한가지 발견한다. 인지증 환자의 경우 ‘일상성’이 가장 중요한 인지 저하증에 대한 대응인 데, 익숙한 환경에서의 삶이 환자들의 편안함과 안 정감을 주어 이 증상에 잘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다. 이 ‘일상성’에는 인지 저하증을 일종의 감기처럼

가볍게 대하는 태도와도 관계가 있다. 그래서, 놀랍

게도 이곳 호그벡 마을에 있는 인지증 환자들은 자

신의 치매 증상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주변의 도

움을 구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친구,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수록 오히려 사회생활은 편안해진다

고 한 환자는 설명한다. 그리고, 이곳에 거주하는 대다수는 이전보다 삶의 속도가 느려졌지만, 흥미 롭게도 주변 사람들과 더 깊은 유대감을 나눌 수 있 게 되었다고 전한다4). 누구나 이 공동체 속에서 ‘서 로 돌봄’의 안전함 속에 있는 것이다. 지금의 돌봄, 특히 노인 돌봄의 문제가 사회 전체 의 재앙으로 다가오지 않게 하려면 이 고령화, 인 구절벽 등의 이슈가 그냥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 라, ‘개인에게 어떤 일상적인 문제로 다가오는지’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 가다 보면, 모든 것이 ‘개인화’되고, ‘경쟁’은 필연인 시대에 사는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돌봄의 문제는 ‘공동체성’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역설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후속세대, 내 주변 사람, 가까운 이 웃이 존재하지 않으면 현세대의 미래는 지속가능하 지 않기 때문이다. 주

1. 가족 간병 위해 관두는 직장인 연 10만…일본의 또 다른 고민, 중앙일보 (2020.02.09)

2. 노인학대·간병 살인 증가하는 일본…'한국 등 아시아의 미래', 연합뉴스 (2022.01.20)

3. 명견만리(2017.08), KBS 《명견만리》 제작팀 저, 265p

4. 명견만리(2017.08), KBS 《명견만리》 제작팀 저, 270p

008

코로나19를 거치며 아이를 키우는 많은 여성이 돌봄

노동의 고됨에 대해 성토했다. 특히 영유아가 있는 가정에서 여성이 일을 그만둔 경우, 4명 중 3명이 아

이 돌봄을 퇴직 이유로 들었고, 코로나 시기 배우자 의 돌봄 참여가 이전과 동일하다는 답변은 60%에 육 박했다1). 맞벌이 부부의 경우 어린 손자녀를 돌보기 위해 조부모가 같이 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 우 여성은 자연스럽게 일과 대가족 돌봄의 이중부담 을 떠안게 되곤 한다. 박혜진 님도 시어머니가 아이 를 돌본 시기가 있었고, 현재 3대(본인, 시어머니, 남편, 자녀_대1, 고1)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다. 그를 만나 가 족 돌봄 현황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평소 하루의 일과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아침 6시 반쯤 일어나서 작은 아이 등교시키고, 가 끔 반찬도 하고 주방일을 해요. 7시 반쯤 되면 출근 준비하고, 9시까지 출근해요. 근무하다가 중간중간 에 시어머니나 근처 사시는 친정 부모님에게 ‘뭘 못 하겠다. 뭐가 잘 안된다.’라고 하며 도움을 요청하 는 전화가 오는 일이 많아요. 그렇게 일하다가 5시 조금 넘으면 퇴근하고 집으로 가서 다시 집안일을 시작하죠. 빨래, 청소하고, 요리해서 저녁을 먹고 나면 강아지랑 좀 놀아주거나 산책시켜요. 남편이 어디서 데려왔는데 어느 순간 보니 강아지도 제 차 지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러고 12시~1시쯤 되어 자 는 편이에요. Q. 가족 돌봄을 책임지고 계신 데, 선생님께 돌봄은 일(노동)인가요?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어떤 점이 그런지, 아니라면 왜 그런가요?

저는 돌봄을 노동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고 제 인 생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삶의 한 부분이죠. 어찌 되었든 돌봄은 순환되는 거잖아요.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 돌봄 받고, 내가 장성하고 어느 정도 위치 가 되니까, 우리 부모님이 나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009
동대문 이슈이음 ➋
우리
(공익활동가) | 취재 : 박식빵, 심소영, 최다솔 | 글: 박식빵(작가) ▲ 박혜진 (동대문구 공익활동가) “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 가족 돌봄과 집안일 사이에 껴있는 사회적 자아 ”
가족 돌봄
인생 자체가 돌봄이죠! 만난 사람: 박혜진

시기가 오고, 아이들도 지금은 내 돌봄을 받지만,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이 저를 돌봐 주는 시기가 올

거고요. 그래서 돌봄은 그냥 삶의 한 부분이고, 돌

봄을 떼어내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냥 받아

들이는 거죠. 흔히 ‘돌봄 노동’이란 표현을 쓰는데, 돌봄을 일이 아

니라, 당연한 인생의 일부라고 표현하는 것이 새로웠

다. 인간은 20년 가까이 아주 긴 기간을 돌봄과 양육

을 받아야 혼자 독립할 수 있게 되고, 내가 받았던 것 을 다시 되돌려주어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 또

한 길어진 평균수명, 낮아진 출생률에 따라 젊은 세 대가 져야 할 노인 돌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사회 적 돌봄’의 영역이 지금보다 훨씬 더 포괄적으로 변 해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치중된 가족 돌봄의 고충 속에 꼭 필요한 것은 ‘자기 돌봄’의 시간이다.

Q. 계속 직장에 다니셨어요. 많이 힘들었을 텐 데, 일을 놓지 않은 게 잘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버틴 것 같아요. 어쨌 든 아침에 가방을 들고나와서 직장에 가서 일하면 만족감이나 성취감이 있어서 힐링도 해요. 근데 집 안 살림은 그게 아니거든요. ‘깨끗하네!’ 뭐 이 정도 지 대단한 그런 건 없는데 직장생활은 그게 있더라 고요. 최근에 지역주민 대상으로 부모교육 프로그 램을 운영했는데 참여한 엄마들이 저한테 와서, ‘너 무 감사해요.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에요.’ 그런 말 을 해주시면 정말 마음이 치유돼요. ‘나는 이렇게 필요한 사람이야.’ 이런 생각이 드니까 자존감이 올 라가죠. Q. 그럼 가족을 돌보는 분도 다른 일을 하거 나, 자기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자기 돌봄은 나를 지키는 돌파구를 찾는 것 ”

Q. ‘자기 돌봄’은 필요하다 보시나요? 본인은 어떻게 자신을 돌보고 있나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밤에 가족들 다 자면 그때부터 12시~1시 정도까지가 제시간이에 요. 유튜브도 보고, 멍도 때리고, 책도 보고, 잠시 저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다가 좀 늦게 자는 편이에 요. 그리고 항상 공부하고 뭔가 해야 해요. 저도 지 금 직장생활을 하지만 틈날 때마다 주식방송도 보 고 공부하거든요. 나를 잃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나 가야죠.

그렇죠. 상황에 따라 돈을 버는 일을 할 수 없는 분 들도 많으니, 일이 아니더라도 ‘자기 돌파구를 찾으 라고’ 말하고 싶어요. 돌봄을 하는 여성은 내 자존 감을 지킬 수 있는 다른 어떤 방법이나 돌파구를 찾 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전 직장이 어린이집 원장이셨는데, 나라 또 는 지역사회에서 아이 돌봄 시스템은 잘 작동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어린이집을 하고 나서 지금은 공익활동가로 일하잖아요. 주변에 엄마들을 되게 많이 봐요. 그 런데 엄마들이 집에서 혼자 양육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거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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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지역에서 돌봄을 좀 도와주면 그 엄마들이 자

기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고, 자기만의 시간도

생기고, 자기 돌봄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안타까 워요. 실질적으로 나라에서 아이 돌봄을 해주는 건 한계가 크다고 생각해요.

“ 가족 내에서 혼자 감내하지 말고 처음부터 나누고 투쟁할 것 ”

Q. 왜 가족들과 집안일을 전혀 분담하지 않나요?

남편이 건축일을 하는데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편이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다 보니 시어머니 께서 가부장적인 사고가 커서 아들이 집안일을 못 하게 하세요. 어머니가 좀 더 젊으셨을 때는 집안일 을 좀 해주셨는데, 이제는 다리가 안 좋으시고 나이 가 드셔서 아예 못하시고 제가 다 하고 있죠. 돌아

가신 시아버지도 굉장히 가부장적인 분이셨어요. 큰아이의 경우는 제가 용돈을 일절 안 주고 본인이

벌어서 써야 하니까 아르바이트를 해서 집에 잘 없

어요. 둘째 아이는 예민한 시기이고 공부해야 하니

까 가사 분담까지 시키기가 좀 그렇죠. 쉬는 날에는 청소기 좀 돌려달라든지 강아지 산책 좀 시켜달라 든지 얘기하기도 하는데 웬만하면 그냥 ‘내가 해야 지 뭐’ 하며 제가 하는 편이었어요. Q. 선생님 댁 가족 돌봄 방식은 변화가 필요하 다고 생각하세요?

가족의 생애주기에 따라 계속 변하기는 하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요. 혼자 감내하면 집안이 조용하다고 생각했고, 또 아이들이 영향을 받을까 봐 내가 투쟁하지 않고 다 수용했거든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엄마의 투 쟁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필요도 있었겠구 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아이들도 어디 가 서 불합리한 일이 있을 때 투쟁할 수 있을 테니까 요. 다행히 아이들이 제 아빠 성격을 닮아 할 말은 하더라고요. 아무튼, 투쟁은 필요한 것 같아요. 그 런데 초창기에 해야 하더라고요.

011
▲ 공익활동_마을 배움터(청귤청 만들기) ▲ 공익활동_마스크 만들기 자원봉사 활동

Q. ‘휘경 아뜰리에 마을 활력소’ 운영자시다. 주 활동이 주민 커뮤니티 활동 지원인데, 커뮤 니티 활동으로 돌봄 대안을 만들 수 있을까요?

공동주택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동네 친한 언니들 하고 나중에 나이 먹으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아

파트 하나 얻어서 공동 거실 사용하고, 방 하나에 한 사람씩 차지하고 관리비 똑같이 내고 이런 식으 로 살면 좋겠다고 얘기하곤 해요. 그게 서로 처지가

비슷해야 가능하더라고요. 그렇게 서로 비빌 언덕 이 되어주는 것이 대안이 되지 않을까요?

노인 돌봄을 그 자식한테 하라는 것이잖아요.

노인 돌봄은 국가가 해주는 게 맞아요. 사실 젊은

Q.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공동주택이 현재 있 을까요?

장안동에 노인주택이 있더라고요. 노인 부부도 많 은데 거기는 1인이 원룸 형태의 집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또 거기 들어가려면 청약을 몇 개월 이상 들어야 하고, 부양가족이 몇 명이면 몇 점 이런 식 으로 점수를 매겨서 현실적으로 안 맞아요. 노인을 위한 정책들이 노인 실상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은 임대주택 정책 하나에도 노인, 청년, 신혼부 부, 차상위계층이 다 섞여 있어요. 그런 것들이 개

별화되어서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정책들은 노인보다는 청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노인주택은 별로 없는데 청년 주택

은 대대적으로 짓잖아요. 무엇보다 제일 큰 문제는

친구들한테 미안하지만, 복지가 잘 된 나라들을 보 면 급여의 50%를 세금으로 낸대요. 우리나라도 그 런 복지국가 시스템으로 가서 본인들도 나중에 노인 이 됐을 때 나라에서 돌봄을 받으려면 지금 젊었을 때 세금을 더 내고 나중에 경제적인 부분에 걱정이 없이 독립할 수 있게, 그렇게 되면 좋지 않을까요. 저만 봐도 저 하나에 어르신 셋(시어머니, 친정 부모 님)을 돌보잖아요. 주변에 보면 거의 자식 하나나 둘 인데 모셔야 할 어르신은 서넛이에요. 그러니까 부 모님 부양은 제 세대를 끝으로 마무리하고, 우리 밑 세대의 노인은 노인이 삶을 주체적으로 살게 나라 에서 정책을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돌봄을 인생 자체라고 생각한다는 박혜진 님은 가 부장적인 부모 세대와 개인주의적인 자녀 세대에 낀 세대다. 부모 봉양, 자녀를 양육하면서 직장생활 을 놓지 않고 병행해 왔다. 구구절절 얘기 듣지 않 아도 ‘저는 나중에 늙으면 하고 싶은 가장 첫 번째 버킷리스트가 혼자 사는 것이에요’라는 말이 힘든 시간을 고스란히 가늠하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아 이 돌봄에도 일과 양육이 병행, 가능한 정책이 수반 되어야 하고, 노인은 국가가 나서서 돌봐야 한다는 얘기에 그의 삶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드라마 〈엄마 가 뿔났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엄마들처럼 자유 롭게 혼자 살며 동네 친구들과 소소한 모임을 하는 혜진 님을 상상한다.

012
주 1.
2021년
「코로나19 이후 일·돌봄
돌 봄 정책 개선과제」 참조 보고서 원본 보기 https://policy.nl.go.kr/search/searchDetail.do?rec_
“ 독립적으로
커뮤니티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행한
변화와
key=SH2_PLC20210266950
활동하고 모일 수 있는
문화가 필요. 노인 돌봄의 주체는 자식이 아니라 국가가 되어야. ”

‘돌봄’의 뜻은 ‘누군가를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는 일’이다. 특히 인간은 홀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얻 기까지 가장 오랜 기간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고, 또 죽음에 이르는 과정 또한 오랜 기간 돌봄이 필요하 다. 그러니 ‘돌봄’은 ‘생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데 세상은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었고, 돌봄이 필요 한 약자는 가려지고, 존재하지만 안 보이는 존재처럼

여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더는 ‘각자도생’할 수 없 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돌봄 노동’은 생존을 위한 ‘필수노동’이 되었다. 필수노동이 된 ‘돌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만나 지 금 이대로 괜찮은지, 우리가 아직도 가려진 채 잊고

사는 것은 없는지, ‘돌봄’ 현장에 관해 얘기해 보기로 했다.

장송연(60세) 님은 4년 차 요양보호사다. 어려서 공 부를 잘했지만, 장학금 혜택을 받기 위해 공고에 진 학했고, 졸업한 학교에서 일하다, 결혼하고 시부모를 모시며, 삼 남매를 키우고, 자신이 꿈을 이룰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Q. 요양보호사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조리 말고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요양보호

사 교육생 모집 공고를 봤어요. 제가 사실 결혼 전 모교에 근무할 때부터 봉사 활동을 많이 했었거든 요. 나중에 사회생활 할 때는 제게 도움을 주었던 라이온스 클럽1)에서 활동했고, 지금도 후원금은 내

013
동대문 이슈이음
‘각자도생’의
돌봄으로 ‘공생’을 꿈꾸다 만난 사람: 장송연(요양보호사) | 글: 심소영(시민나루 기자) ▲ 장송연 요양보호사 “ 돌봄은
➋ 돌봄 노동
삶에서,
생존이에요. 봉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어요.

고 있고요. 그래서 제가 돈을 벌면서 봉사하는 마음

으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그래서 요양

보호사 교육을 받고 시작했죠.

Q. 요양보호사 일은 하실만한가요. 현재 맡고 계신 어르신 댁 일은 어떤가요?

처음에 맡은 어르신을 계속하고 있어요. 어르신 댁

에 처음 갔을 때 정말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딱 내리는데, 이상한 화장실 냄새가 엄청나서 왜 그런가 했는데, 그 어르 신 댁에서 났던 거예요. 제가 맡기 전에 다른 요양 보호사 샘이 1년 6개월을 하셨다고 하는데도 집 냄 새가 너무 심각했어요. 어르신 댁 바닥은 때가 찌들 대로 찌들어서, 제가 과도를 가지고 다니면서 3개월을 긁었어요. 닦아서 도 안 되고, 약품으로도 안 되어서, 약품을 뿌려놨

다가 과도를 밀고 다녔어요. 임대아파트니까 방 두 개, 거실도 크지는 않거든요. 그 집이 3개월 딱 되 니까 냄새가 사라지고 집이 좀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러고 나니까 제 팔목 인대가 늘어나더라고요. 그 래서 접어야 하나 했는데, 제가 안 하면 또 누가 맡 아서 할 수 있을까 걱정되더라고요. 제가 오기 전에 다른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몇 분을 센터에서 모시 고 왔었어요. 입구에서 들어오지도 않고 다 그냥 가 버리고, 건강보험공단에서도 방문하면, 저 출입구

에서 얘기하다 가고 그랬다고 해요. 너무 냄새가 심 하니까. 형님을 맡고 열심히 하니까 동생분도 자기 도 맡아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형님은 인지 저하증(치매)과 요실금, 변실금, 연하 곤란(섭식장애)이 있으시고, 동생분은 뇌경색이 와 서 불편하신 데다가 왼쪽 눈을 실명하셨거든요. 그 래서 두 분 식사를 따로 해드려야 하고 정말 힘들어

요. 봉사 정신이 없으면 못 했을 거예요. 근데 지금

은 정도 들고 저를 믿으셔서 부식비도 맡겨서 장도 봐달라 하시고. Q. 봉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어렸을 때 못 먹어서 영양실조도 많이 걸리고 약했어요.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를 아홉 살에 들어 갔어요. 1학년 때 너무 약해서 엄마가 업고 다녔어 요. 죽은 줄 알고 몇 번 이불 덮었었데요. 그래도 공 부하려고 중·고등학교 때 조간·석간 신문을 돌리 면서 학교 다녔고, 고등학교도 저희 때는 시험을 봐 서 들어갔어요. 3년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공고에 갔 어요. 그래야지만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까. 라이온 스 클럽이 주는 장학금도 받고, 졸업하고는 모교에 근무하게 됐어요. 졸업하고 일하다가 보육원에 사는 4학년짜리 남자아이와 자매결연해서 후원하게 됐어 요. 라이온스 클럽에도 제가 도움도 받았던 부분이 있 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생활이 되니까 되돌려드려 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제가 자진해서 들어갔어 요. 요양보호사 공부하면서 굿네이버스 이런 데도 후원하는데, 정말 조금이고 미약하지만, 저 자신이 위안받아요. 제 조그만 정성이지만 어려운 사람들 생활이 좀 나아지면 우리 사회 복지제도가 더 좋아 지지 않을까 생각해서요. 저도 도움을 받았으니, 그 냥 누가 하라고 안 해도 제가 자발적으로 한 거죠.

Q. 일도 봉사하는 마음의 연장선에 있는데, 봉 사와 일을 연계하기 어렵지 않았나요?

봉사해도 좋겠지만, 제 노후도 생각해보면 내가 수

014

입도 어느 정도 창출하면서 이렇게 봉사하는 마음

을 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돈만 필요하

다고 하면 정말로 식당 같은 데서 12시간씩 일하면

수입이 더 많겠죠. 그렇지만 저는 제 접었던 꿈을

이뤄보고 싶었고, 또 이 일은 제가 시간을 조절해서

일할 수 있으니까, 일하고 남은 시간은 저를 위해서

쓰면 자신도 한 번 돌아볼 계기가 되지 않을까 했어

요. 그래서 반은 일하고, 반은 제 시간을 가져요.

돌봄이 필요한 분들을 이상한 존재로, 불필요 한 존재로 바라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바라보 아요. 누구나 늙으니까. ”

Q. 일도 하시고, 장구도 배우시고, 공부도 하 시고, 쓸 수 있는 에너지를 100% 이상 쓰며 사 시는 것 같습니다. 체력이나 여러 가지로 힘들 것 같은데 비결이 있나요.

등산했어요, 산행할 때는 날씬했어요. 릿즈도 있었 고, (릿즈가 뭐에요?) 릿즈는 바위 타는 신발이에요. 산행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무릎에 무리가 와서 그만두긴 했는데, 하다가 안 하니까 이렇게 살찐 거 예요. 그때는 완전히 몸이, 다리가 진짜 엄청나게 딱딱했었는데, 그때 체력으로 지금도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남편도 ‘왜 그렇게 바쁘게 그러고 다니 냐고’ 하면 저는 항상 그렇게 얘기해요. ‘내가 집에 살림을 안 하느냐? 아이들을 안 키웠느냐? 내가 할 일을 다 하면서 시부모까지 이십 년 모시고 살면서, 내 잠을 줄여서 하는데, 왜 뭐라고 하느냐?’ 그러니 까 말을 안 하더라고요. 지금도 일 끝나고 집에 살 림하면서 학교 공부하고, 장구도 칠 수 있는 것은, 제가 부지런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Q. 처우(급여)는 어떻나요. 만족하시나요. 만족 하지 않으신다면 원하시는 수준은 어느 정도인 가요?

선생님들의 시간당 급여가 조금씩 달라요. 보통 11 ,500원에서 11 ,550원 이렇게 받는데, 우리가 3년 전부터 주장하는 게 있어요. 시급 13,000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우리가 하루 3시간씩 4등급 어르신 을 보면서 23일을 일하면 69시간이잖아요. 그러면 저희가 월 70여만 원 받아요. 어르신들이 심사를 통 해 1등급에서 5등급까지 등급을 부여받는데, 등급 별로 지원금이 다르지만 제가 맡은 4등급 어르신 기 준을 예를 들면 2022년도에는 한 달 140만 원 정도 가 요양비거든요. 근데 70여만 원만 저희한테 와요. 나머지 어르신한테 주어진 요양비는 상당 부분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직접 활동하는 요양보호사에 게 더 책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케어링’이라는 회사에서 TV 광고하는데, 요양 보호사 시급 13,000원이라고 광고하더라고요. 전부 는 아니지만 제가 생각했던 목표에 도달했어요. 이 정도는 해야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도 정말 긍정적으 로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돈만으로 어르신들을 잘 돌본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내 권리를 찾으면서 일하면 자부 심이 생기고, 그런 자부심이 있으면 어르신들도 조 금 더 질 높은 돌봄을 받지 않으실까 하거든요. 잘났다고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든 말든 난 봉사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하고, 그 일이 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계속 공부하면서 꿈을 향해 가는 장송연 요양보호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기하 노래가 생각났다. 노래 제목은 〈부럽지가 않 어〉 노래 가사는 대충 이렇다.

015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

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 가 않어.」

장소연 님이야말로 가사 딱 그대로 일하고, 취미 생 활하고, 공부하며,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삶을 사 는 중 아닐까. 근데 요양보호사 처우도 좋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자부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봉사하는 마음이 자부심으로 전환된 것일까?

Q. 그렇다면 선생님의 요양보호사 일에 대한

자부심은 어디서 나오나요?

저희는 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요양보호사 자격이

주어지고 일을 하는 거잖아요. 근데 제도가 처음 시 작될 무렵 일하신 선생님들 얘길 들어보면, 그냥 어 르신들도 당연하게 가사도우미로 알고, 그냥 아줌 마로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고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했어요. 업무에 한계선이 없었다는 거죠. 근데 요즘은 안 그래요. 저희한테 함부로 아줌마 소

리 안 하시고, 어르신들도 그리고 저희 업무를 어느 정도 아시고 그렇게 저희를 봐주세요. (선을 지켜주 시는 거네요) 그렇죠. 그런 부분을 봤을 때 자부심 도 생기죠. 그리고 아직 미흡하긴 하지만 저희 시간 수당도 나아졌고요. 그리고 제가 2019년 1월에 일을 시작하면서 4월에 요양보호사 협회에 가입했어요. 협회가 좋은 일을 너무 많이 해줘요. 강사님을 초빙해 노동법도 가르

쳐 주고, 산재법도 가르쳐 주고, 무료 심리 상담도

해주고, 힐링하라고 문화생활비도 지원합니다. 여

기 시조사 사거리에서 외대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경남한의원 있거든요. 거기 5층에 요양보호사 ‘회

기 쉼터’가 있어요. 서울요양보호사협회에서 함께

▲ 회기 쉼터 개소식

활동해서 조례(서울특별시 장기요양요원 처우 개선 및 지위 향상에 관한 조례)를 만들 수 있었어요. 그 결과 중 하나로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쉼터에요. 우 리 협회에서 마스크, 소독제, 방역용품 등 엄청 많 이 지급했고, 저희한테 필요한 자료도 만들어 주고, 필요한 교육을 해서 저희 역량 강화도 시켜주죠. 그 래서 저희 인식개선도 역량 강화도 많이 됐죠. 함께 하면서 더 자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Q. 제도개선이 되어야 할 부분을 짚어 주신다면?

제도개선까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한 건 있어요. 제 가 평일에 아프면, 하루 일을 쉬고 병원에 가야 하 는데, 근무시간에 절대 못 가요. 요양보호사들도 하 루 정도는 유급휴가를 주면서 대체인력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지원해 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르신 들 돌볼 때 체중 나가시는 어르신을 들고 힘을 써야 할 때가 많아요. 허리 보호대 같은 보호장구를 지원 해 주시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요양보호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 동료, 이웃 등 이 기사를 볼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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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동료들한테는 협회 회원 가입해서 함께 하자고 말하

고 싶어요. 작년에 회비가 월 2천 원에서 4천 원으

로 올랐는데, 그거 아깝다고 빠지시는 분들이 있었 고, 치매 수당 없어졌다고 협회가 뭐하냐고 빠진 분

들도 있는데, 그럴수록 더 함께해야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아니에요. 누가 우리 역량을 강화해주고, 힐링하라고 비용 내주겠어요. 상담도 그렇고, 나무 한 그루만 보지 말고 숲 전체를 보자고 얘기하고 싶 어요. 또 요양보호사에 관심 있는 분들한테는 지금이 기 회인 것 같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점점 요양보호 사 수요도 커지고, 일의 전문성도 높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 어려운 일이라 난 할 수 없다고 생각하 는 분들이 많은데, 젊었을 때 나도 못 할 것 같다고 했어요. 근데 내가 60세가 되고 보니까, 어르신을 바라보면서, ‘나도 머지않아 저 길을 가고 있겠구나’ 생각해요. 그동안 살아왔던 그 자체를 존중해야 하 고요. 누구나 9988 그렇게 살고 싶었겠지만, 개인 마다 건강의 차이가 있고, 물론 본인의 노력 부족도

있었겠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 러니 돌봄이 필요한 분들을 이상한 존재로, 불필요 한 존재로 바라보지 말고, 나도 거기에 간다는 긍정 적인 마인드로 바라보라고요. 누구나 다 늙으니까. 그리고 학교에서 유아기서부터 돌아보는 과제를 내주셨어요. 제 청소년기를 회상하니까 눈물이 많 이 나오더라고요. 옛날 생각 하면서 ‘그때 좀 더 조 금 더 잘했으면 좋았을 걸, 그때 이랬으면 좋았을 걸’ 그러지 말자 했어요. 어르신을 보면서, 남은 시 간 사회에 조금 더 모범이 되고, 어르신들한테도 더 잘해서 돌아가시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자. 그런 다짐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이제 나이가 많으니

까 요양보호사 일을 멈췄을 때도 작은 도움이라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면 끝까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생겼어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에 이 런 글이 나온다. “아침을열때는죽음을생각하는것이좋다.첫째이 미죽어있다면제때문상을할수있다.둘째,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 다. 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 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 넷째,정치인들이말하는가짜희망에농락당하지않 을수있다.다섯째,공포와허무를떨치기위해사람 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침착함을 가지고 혹시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자기 자신의 생과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다. 화전민이나 프리라이더가 아니라 조용히 느리게, 그러나 책임 있는 정치 주체로 살아 보고야말겠다는열정을가져보는거다.”

장송연 요양보호사는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나누는 삶을 사는 이였다. 나이 들고 죽어감을 인지한 침착 함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성심껏 선택하 고, 정치인에 농락당하지 않기 위해 함께 협회 활동 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하며 공생을 위해 책임 있는 정치 주체로 사는 사람. 장송연 님을 만난 여러 분, 그처럼 함께 책임 있는 정치 주체로 살아보지 않 으시렵니까.

1. 라이온스 클럽은 시카고의 사업가인 멜빈 존스가 1917년 설립한 것으로 서, 세계 구급의 봉사 단체이며 210개국에서 140만 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정식 명칭은 "국제라이온스협회"이다. 2.《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2018, 어크로스 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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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한국 영상매체에서는 다양한 발달장애 캐릭터가 등장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케이’, 영화 〈증인〉의 ‘지우’,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문상태’, 그리고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이상한 변 호사 우영우〉까지 영상매체를 통해 발달장애의 다양 한 증상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발달

장애 당사자와 가족들은 하나같이 “발달장애를 일반 화하지 마세요”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자폐스펙 트럼이라는 명칭처럼 생각보다 다양한 증상을 보이 기 때문이다.

발달장애란 어느 특정 질환 또는 장애를 지칭하는 것

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의사소통, 인지 발달의 지 연과 이상을 특징으로 하고, 제 나이에 맞게 발달하 지 못한 상태를 모두 지칭한다. 크게는 ‘지적 장애’, ‘전반적 발달장애’, ‘특이적 발달장애’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지만,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중복되는 부분도 많이 존재한다. 동대문구에는 발달장애인 가족이 모여 돌봄 서비스 를 제공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꾸마시협동조합’이 다. ‘꿈’과 ‘품앗이’를 합쳐 만든 단체의 이름처럼 발달 장애인 양육자의 돌봄 부담을 경감하고 안심할 수 있 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꾸마시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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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이슈이음 ➋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만난 사람: 한동숙, 안송이(꾸마시협동조합 조합원) | 취재: 심소영, 박혜원 | 글: 박혜원(시민나루 기자) ▲ 안송이 님 중2가 된 지적 장애 2급 아들을 돌보고 있다 ▲ 한동숙 님 20대 초반 자폐성장애 아들을 돌보고 있다
발달장애 돌봄

동조합의 활동가 두 분을 모시고 개인과 사회가 지고

있는 발달장애인 돌봄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꾸마시협동조합을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동숙(이하 한) : 발달장애가 다양하잖아요. 다양

한 만큼 증상도 천차만별이에요. 복지기관 서비스

를 이용한다고 해도 중증이거나 신변자립훈련 1 )이

안 되어 있으면 그마저도 이용하기 어려워요. 그러 면 부모가 24시간 쉼 없이 자녀를 돌봐야 해요.

안 : 저도 오후 3시까지 꾸마시협동조합에서 활동 하고 있어요. 퇴근하고 나서는 비장애 자녀(둘째) 도 있어서 둘째를 돌보죠. 첫째 아들은 장애 정도 가 심하지 않아서 하교 후 지역아동센터를 다니고 있어요. 그 사이에 둘째 학원 보내고, 첫째는 활동 끝나면 치료센터 가고 거의 분 단위로 움직이고 있 어요(웃음). Q. 비장애 자녀도 같이 돌보시네요. 다른 점이 있나요?

안송이(이하 안) : 그래서 동대문장애인부모회 구성

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직접 아이를 맡길 수 있 고 돌봐줄 수 있는 곳을 만들었습니다. 저희는 되도

록 ‘안 돼요’보다 ‘해볼게요’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게 하고 있어요. Q.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일과는 어떻 게 되나요?

한 : 자폐성 장애인들은 일어나는 시간이 정확해

요. 저희는 6:50이면 일어나고요. 최근에 아들이

복지관 일자리를 얻어서 출근 준비를 도와주죠. 아

들이 출근하면 저도 꾸마시협동조합으로 출근해서

“ 개인이 책임지는 발달장애인 돌봄 ” “ 사회가 지원하는 발달장애인 돌봄 ”

오후 3시까지 워킹맘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 사 이 아들은 12시에 퇴근해서 활동 보조 선생님과 오 후 일반 프로그램을 이용하고요. 저녁에 가족이 모 두 집으로 돌아오면 그때부턴 일상적인 가족 돌봄

을 하죠.

안 : 장애 자녀 같은 경우는 보이는 것들만 해결해 주면 되거든요. 그런데 비장애 자녀 같은 경우는 무 슨 생각을 하는지, 속마음이 뭔지 알아채서 해결해 줘야 해요.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한 : 저의 집에도 비장애 누나가 있어요. 요즘 비장 애 자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탈시설 운동이 주 류가 되었잖아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함께 살 기를 바라면 나중에 비장애 자녀가 보호자가 되니 까 스스로 부담감을 많이 느끼나 봐요. 그래서 저도 저희 딸한테 돌봄의 책임을 너한테 지우진 않겠다, 대신 나중에 계약 같은 거 할 때 도장 찍는 것만 봐 달라고 얘기했어요. Q. 발달장애는 어떻게 진단받게 되나요? 한 : 보통 병원에서 의사가 ‘장애인입니다’ 이러고 끝이에요. 간호사는 장애 등록하라고만 말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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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저희는 주민센터 가서 등록하고 지역 정보

책을 받아요. 사실 부모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서

장애인 부모운동의 성과로 각 지역에 장애인가족지

원센터가 생겼어요. 동대문구에도 있어서 동료 상

담이나 전문 상담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

습니다. Q. 시급하게 보완되어야 하는 발달장애인 돌

봄 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 : 장애를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선 되 어야 할 것 같아요. 저희 아들이 4살까지 말을 안 해서 못 듣나 했는데 발달장애가 있으면 못 알아들 어서 반응을 안 하기도 하더라고요. 외국에는 태어 나자마자 청각 테스트를 하는 곳도 있대요. 빨리 발 견해서 치료가 빨라지면 조금 나아질 수도 있으니 조기 발견하는 시스템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 부모교육도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똑같은 장 애 등급을 받아도 증상이 다 달라서 내 아이를 이해 하고 증상에 맞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교육이 필요해요. 한 : 어떤 나라에서는 의사가 발달장애 진단을 하 면 바로 코디네이터가 붙는대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정방문 해서 부모교육도 하고 필요한 부분을 지 원하기도 하는 거죠. 사실 이렇게 옆에 누가 있기만 해도 버틸 힘이 생겨요. Q. 현재 동대문구에 가장 필요한 정책이나 서 비스는 무엇인가요?

안 : 지금 동대문구에 특수학교가 없어요. 동대문구

뿐만 아니라 각 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게 가장

필요하죠. 그리고 다른 구는 모르겠지만 동대문구

에는 일반 학교에도 도움반(발달 지연·장애 등의 학생을 모은 학급)이 없는 학교도 많아요. 학교에 도움반을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Q. 최근 발달장애인 가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자주 하는데,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 : 최근 40대 엄마가 6살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 하고 자살한 게 충격이었어요. 6살이면 자녀의 장애 를 받아들이고 학교를 보낼 시기예요. 그러면 특수 학교를 보낼지, 일반 학교 특수학급으로 보낼지 결 정해야 하는데, 그 결정을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아 무도 없었던 것 같아요.

“ 위로와 연대의 발달장애인 돌봄 ”

Q. 자녀를 돌보면서 힘들 때 어떻게 이겨냈나요?

한 : 제가 예전엔 시시콜콜한 수다 떠는 걸 이해하 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수다를 떨면 스트레스가 해 소되더라고요. 특히 장애인부모모임 같이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과요. 사실 저희는 물리적으로 ‘나를 위 한 시간’을 내기가 어렵잖아요. 남들과 대화하면서 교류를 하는 게 생각보다 큰 위로가 돼요. 또 재밌 는 게 ‘저 아이는 안 되는데 우리 아이는 되는구나’ 라고 비교하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것도 있어요. (웃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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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 맞아요. 서로 도토리 키 재고 있는 거죠. (웃

음) 그리고 서로의 상황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가

끔 서로의 자녀를 돌봐주기도 해요. 만약 제가 학교

에 비장애 형제를 상담하러 가야 한다면 다른 부모

들이 제 아이를 잠깐 봐주죠. 그러면 저도 일상적인

엄마의 일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 : 저희한테 돌봄은 생존이에요. 그래도 서로 ‘돌

봄 품앗이’를 해주면 그나마 숨 쉴 시간이 생기는 거

죠. 이렇게 양육자가 숨 쉴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돌봄 기관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쉬고 싶어요. (웃음)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현재도 장애 인과 그들의 가정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존재하지 만, 그 한계 역시 명확하다. 제도적 지원이 미처 닿 지 못하는 곳에 꾸마시협동조합과 같은 시민들의 연대가 피어나는 이유다. 시민들의 연대는 힘이 세 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폭넓고 깊이 있는 장애인 지원 제도가 보편화되어 우리 사회 전반이 다양성 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길 바라본다. ※꾸마시협동조합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천호대로 385 101동 301호(글로벌팰리스 전화번호 02-6955-0799 홈페이지 https://blog.naver.com/kumasi2021 ※동대문장애인가족지원센터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21, 8층(다사랑행복센터) 전화번호 02-2249-1717 홈페이지 http://ddm.dfsc.or.kr/main/index.php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중적으로 큰 인 기를 얻은 최근, 공교롭게도 서울의 지하철에서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이어졌다. 그러나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 쏟아진 지지와는 대조적으로 ‘현실의 장 애인’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냉소적이 다. 이러한 간극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은 물론이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하여 시 사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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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지적장애인의 신변처리 및 생활 자립 기능 향상을 위하여 생활하면서 이루 어지는 교육 및 훈련 ▲ 꾸마시협동조합 이용자와 안송이

▣ 쉽게 피로를 느낀다.

▣ 하루가 끝나면 녹초가 된다.

▣ 이유 없이 슬프다.

▣ 자주 한계를 느낀다.

▣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힘들게 느껴진다.

위의 항목은 안전관리공단에서 만든 번아웃 증후

군 간이 테스트 항목의 일부다. 위 항목에 고개를 끄

덕이고 있지는 않은가. 지난 7월, 20대~60대 남녀 1 ,542명을 대상으로 한 틸리언 프로의 설문조사에 따 르면 응답자의 34 7%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한 적 이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 죽을 때까지 일해도 집을 소유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해소되지 않는 불 안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능력을 입증해야만 살아남 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심리적 소진 상태 를 겪고 있다. 이처럼 쉬지 않고 달리다 일어설 수 없 을 만큼 지치기 전,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자기돌봄’의 정의를 찾아보았지만 명확한 정의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여러 가지 정의를 찾아보니 ‘인간 발달 그리고 건강한 생활 전반에 대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구 체적인 행동’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에세이를 쓰며 자

기돌봄을 실천하고 있는 박서운(38) 작가를 만났다. 오 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아가 고 있는 그는, 지쳐 쓰러졌을 때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자기돌봄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Q. 나를 잘 돌보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스스로에 대해 잘 알 수 있을까요?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나에 대해 파헤쳐가며 글을 써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글을 쓰 다 보니까 옛날의 나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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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되더라고요. 그 렇게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 나와 부모님 사이에 있 었던 일, 내 친구들과 있었던 일, 그것들이 모여 내 동대문 이슈이음 ➋ 자기 돌봄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만난 사람: 박서운(작가) | 취재 글: 최다솔(시민나루 기자) ▲ 박서운 작가

가 되는 과정, 내 성격이 된 과정을 돌아볼 수 있었

어요. 글을 쓰면서 나를 더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글을 쓸 때 처음부터 결론을 정해놓고 쓰지 않잖아

요. 그 과정을 찾기 위해 글을 쓰며 결론으로 가는

건데,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어요.

Q. 자신을 돌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출산 전에도 제가 몸이 많이 안 좋긴 했는데, 출산 후에 서서히 더 안 좋아졌어요. 제가 원래 골골대 는 스타일이라 허약해서 아픈 거로 생각했는데, 작 년 연말에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 몸이 회복이 안 되는 거예요. 가족 셋 다 코로나에 걸렸는데 남편

이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한의원에 약을 지으러 간 김에 저도 진맥을 받아 봤어요. 근데 제 몸이, 특히 간이 너무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한의사가 남편 옆에 놔두고 제 몸이 훨씬 안 좋다며, 지금 이 렇게 놔두면 큰일 난다고 하길래 한약을 지어 먹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이제 운동을 좀 해야겠구나’ 생각했죠. 몸이 건강한 상태여야 마음도 더 건강해 지고 뭔가를 할 힘이 생기니까. 그렇게 나를 돌보 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Q. 마음을 돌보기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2년 전쯤에 우울함에 굉장히 심하게 빠져서 불면증 으로 2~3주 정도 잠을 거의 못 잤을 때가 있었어 요. 그러니까 사람이 미치겠더라고요. 특별한 사건 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소소한 일들이 겹치 고, 겹치고, 겹쳐서 우울증처럼 빠지게 되더라고요. 점점 더 깊이 빠지는 느낌,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더니 ‘나는 어떻게 살지?’, ‘왜 살지?’ 창문으로 뛰 어내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 처음으 로 정신의학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 먹었더니 조 금씩 잠을 자게 됐어요. 상태가 좋아져서 괜찮을 거 로 생각했는데 올해 초에 또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됐 어요. 내가 정말 나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책도 많이 했죠. 근데 계속 그렇게 살 순 없잖아요. 아이 도 키우고, 내 삶을 살아야 할 텐데 어떻게든 방법 을 찾아야 했어요. 그때 ‘나를 돌봐야겠다, 내가 어 떤 사람인지, 나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러면서 글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어요. Q. 무엇 때문에 그런 우울한 감정이 찾아왔을 까요?

여러 가지가 겹쳤던 것 같아요. 코로나가 터졌을 때 아이의 유치원 입학이 미뤄져서 5개월을 하루, 종 일 붙어있었어요. 5개월 동안 24시간 붙어있었는 데, 아마 그때 엄마들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또 그 때 첫 책이 나왔는데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굉장히 열심히 쓰고, 글 수정하고, 설레는 마음이었는데 막 상 책이 나오니까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더라고요. 허탈하고 허무했죠. 책이 나오고 나서 갑자기 할 일 이 없어지기도 했고, 내가 꿈꿔왔던 일이지만 생각 보다 반응이 좋지도 않았고, 책 하나 써서 뭐가 되 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몸소 겪었어요. 같은 시기 에 출간한 다른 작가님들의 책을 보면 내 책이 제일 별로인 것 같기도 했고요.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책을 계속 써야 하나 싶더라고요. 이제 뭘 해야 할 지 모르겠고, 그런 마음들이 다 겹쳐서 우울함이 찾 아온 게 아닐까 싶어요. 박서운 작가가 자신을 돌보는 방법은 글쓰기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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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책 《이혼하고 싶어질 때마다 보는 책》을 출

간한 후 또다시 마음이 무너지는 시간을 보냈다. 번

아웃 증후군 또는 우울증을 완전히 이겨내는 건 불가

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썩 괜찮은 날들을 보내다 아

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또다시 불안감에 빠질 수도 있 다. 그때 박서운 작가는 다시 펜을 집어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나갔다. Q. 우울감에 빠지면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을 갖는 것조차 부담일 때가 있어요. 그런 사람 들에게 무엇을 추천하시나요?

저도 항상 잘해보고 싶은데 잘 안되는 거기도 해요. 저는 글을 쓰며 저를 이해할 수 있었기에 글쓰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작가여서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 하실 수도 있지만 사람은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동물 이잖아요. 언어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고, 쓸 수 있 는 도구에요. 언어 없이 사유할 수가 없어요. 그냥 ‘오늘 뭐 해야지, 뭐 해야지’ 생각하거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데 어땠지, 그랬지.’ 하다 보면 머릿속 에서만 있고 금방 잊어버려요. 글로 정리해보면 나 한테 일어났던 어떤 일이나 경험을 한 번 더 복귀해 서 그걸 다시 생각해보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더라고요. 삶을 한 번 더 산다고 해야 할까요.

건 아니고, 요즘 조금 힘들었다거나 스트레스를 많 이 받았다고 느끼면 혼자 산책하거나, 보고 싶었던 영화를 집에서 편하게 보거나, 그냥 멍하니 혼자 있 기도 해요. 도서관 가는 것도 좋아하는데, 저는 책 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여러 권 빌려서 쌓아두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다 보지도 않을 책을 잔뜩 빌 리고는 해요. 그럼 기분이 좀 좋아지더라고요.

Q. 불안, 우울, 공황장애 등 정신적 어려움을 느 꼈을 때, 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돌봄시스템이 있을까요?

Q. 살아가며 온전히 나를 위한 습관을 갖기가 쉽지 않아요. 작가님이 자신의 돌봄을 위해 실 천하는 소소한 일들은 무엇인가요? ‘오늘 좀 우울하니 이걸 꼭 해야겠다.’ 이런 게 있는

전에 INSIDE라는 앱을 통해 비대면으로 심리상담 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일회성이라 장기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상담 후 마음 이 편해지기는 했어요. 전문적으로 심리상담을 배 우신 분이고, 상담을 계속해오셨던 분이니까 같이 얘기하다 보니 제가 왜 이런 사람인지 조금씩 이해 하게 되더라고요. 내 마음이 그때 왜 그렇게 아팠는 지, 왜 난 이런 식으로 사고하는 사람인지 궁금했던 걸 물어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씩 맘이 편 해졌어요. 심한 우울증을 겪으신 분들에게는 상담받 는 것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심리상담은 보 험 처리가 안 되다 보니 나라에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요.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도 바뀌어야 하고요. INSIDE 심리상담은 비대면 심리상담으로 앱을 통해 상담하는 서비스다. 앱을 설치하고 상담 선생님의 성 별 및 다양한 전문 분야(인간관계, 가족/연인, 우울, 불 안 등)를 선택할 수 있으며 상담을 나누고 싶은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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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작성하여 예악을 하면 상담 당일 INSIDE 앱에서

알림이 온다. 화상통화를 하듯 50분 정도 상담사와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일반 상담

보다 조금 더 저렴한 비용으로 상담을 진행할 수 있

다. 무료 심리상담 서비스를 찾는다면 서울심리지원

센터를 이용해 보자. 예약제로 진행되며, 전화, 온라 인, 방문 접수가 가능하다. 접수 상담 후 심리전문가 배정이 이뤄지고, 상담은 대면/온라인/전화 상담으 로 이뤄진다. 동대문구 제기동에 중부센터가 있으며, 19세 이상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대화를 통해 본인의 심리상태의 원인을 찾길 원한다면 심리상담을 이용해 보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Q. 삶을 살아갈 때, 자기돌봄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현대인들은 항상 시간에 쫓기잖아요. 힘든 시기에 회사를 다니면 뭔가 고갈되는 느낌을 받거나 ‘번아 웃’이라고들 하죠. 주기적으로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런 시기가 왔을 때 다시 회복해서 사회로 나아가 고, 자기의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자기 돌봄’이라 생각해요. 어차피 삶은 계속 이어지잖아 요. 내가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을 사는 게 아니라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자 기를 돌보는 시간이 없다면 너무 쉽게 지칠 것 같아 요.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나요?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그런 시간이 필요하죠.

‘다들 잘 사는 것 같고, 행복한 것 같고, 여유로워 보이는데 나만 아닌가?’ 저도 이런 생각을 많이 해 요. 그런데 결국 얘기를 들어보면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산다는 건 원래 힘든 거다’ 그 말을 하고 싶어요. 살 면서 누구나 계속 행복할 수만은 없잖아요. 삶이 10 이라면 그중에 9는 고통이고 가끔 찾아오는 것이 행 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9의 고통을 견뎌야 1의 행 복을 즐길 수 있고, 기다리면 또 다음의 1이 오잖아 요. 삶은 고통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견뎌 내면 시간은 흘러가고 또 좋은 순간은 찾아온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든 있는 힘을 다해 버티며 살아내고 있는 그 자체에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버 티며 살아가는 그 사이 사이에 마음의 고갈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오늘 내가 지쳤다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한 걸음을 내디뎌 보자.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아무도 없이 홀로 있을 수 있는 작은 뒷산에 오르거 나, 박서운 작가처럼 펜을 들고 글자를 적어 내려가 거나.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나를 돌보는 방법을 찾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살아갈 힘이 가득 차 있을 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존재가 모두 취약해서 아픈 것이고 그러면서도 방어적 본능, 강인함을 갖고 있어 견딜 수 있다.’ _《삐삐 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중에서

Q. 마지막으로 다들 잘 사는데 나만 이상한가, 나만 왜 이 모양일까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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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심리지원 중부센터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고산자로 36길3, 301호(제기동) 전화번호: 02-959-8002~6 이메일: selpsy4@naver.com / selpsy4@gmail.com 운영시간: 평일(09:~18:00) 토요일(10:00~14:00)/ 점심시간 12:00~13:00

지역사회에는 다양한 복지관이 있다. 흔히 복지관이라고

하면 특정 계층이 이용하는 곳 또는 어려움이 생겼을 때

찾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역사회복지관은 지역

주민 모두가 대상이자 일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이다. 주변에 늘 있지만 주민들은 잘 모르는 지역사회복지

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장안종합사회복지관에

방문했다. 이번 호에서는 사회복지사의 인터뷰를 통해 복

지관과 복지사 개인의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자.

이거든요. 사회복지사들 또한 착한 일 하는 사람들이 아니 라 지역사회 복지를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첫 번째로 장안종합사회복지관의 서비스제공1팀 강상묵 팀장을 만났다. 서비스제공1팀은 경계선지능 아동·청소년·

청년 및 한 부모 가정 지원, 단해가족상담치료센터 등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경계선 지능인1) 지원 프로그램을 운 영하는 강상묵 팀장은 사회복지 전반에 대한 인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지역사회복지관은 대상이 지역사회이자 지역주민 모두이 거든요. 근데 복지가 무조건 착한 일이라고, 특정 계층만 복 지를 이용한다고 인식하게 돼요. 사실 복지는 누구나 나눌 수 있고, 누구나 누릴 수 있어 지역주민 모두가 동참하는 것

그리고 특정 계층의 이용자들도 그런 인식 때문에 계속 그 프레임 안에 갇혀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다문화 아 동도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고, 보호자 중에 한 분이 다 른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다문화라는 이름 하나로 아 동을 가둬버리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부분 이 있죠. 경계선 지능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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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특 우리 동네 안전망 장안종합사회복지관 동네 쉼터가 되고픈 장안종합사회복지관 취재: 심소영, 박혜원, 최다솔 | 글: 박혜원(시민나루 기자) ▲ 강상묵 팀장(서비스제공1팀)
마찬가지예요. 나와는 다른

성이 있는 사람, 또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식이 높아져야

해요. 그런 인식의 변화로 사회도 변화됐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사례관리팀 이연주 팀장이었다. 사

례관리팀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팀이 아닌 말 그대로 사

례관리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사례관리란 쉽게 말

해 지역사회 내에서 경제적, 정서적, 양육, 부양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헤쳐 나갈 수 있는지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고 자원을 연계해주는 일 을 말한다. 이연주 팀장은 사례관리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 지에 대해 우리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어머니랑 어린 자녀가 동대문구로 오면서 저희한테 의뢰

된 한 부모 세대 사례인데요. 주거지도 열악했고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생겼던 것으로 보였

어요. 일단 가장 필요한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센터와

연계해서 수급자로 신청했습니다. 월마다 일정하게 돈이

들어오면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수급자면 임대아파트나 임대주택에 신청할 수가

있어요. 그렇게 신청해서 선정됐는데 보증금 마련이 어려 운 거예요. 그래서 보증금 지원해주는 외부의 여러 자원을

찾아서 다행히 타 구에 있는 임대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었

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도 아동을 돌볼 수 있는 드림스타트2)

사업이 있거든요. 거기와 연계해서 아동이 정서적으로 도

움을 받을 수 있게끔 지원했습니다.

사실 저희가 가장 바라는 마지막 모습은 ‘아름다운 이별’이

에요. 사회복지사가 옆에 없어도 스스로 해결할 힘을 길러

서 ‘저 이제 혼자 살아봐도 될 것 같아요. 그동안 감사했어 요. 잘살아볼게요’라고 해주시면 저희로서도 감사하죠. 아 름다운 이별이야말로 저희가 가장 바라는 희망의 모습이 에요. 그리고 많은 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주민센터든 복지관이든 찾아오시라는 거예요. 오셔서 어려움을 토로하면 직접 지원해주든 다른 기관과 연계해 주든 방법을 찾아드릴 거란 말이죠. 그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먼저 문을 두드리고 찾아와 주세요.”

세 번째로는 지역사회조직팀의 고소영 사회복지사를 만났 다. 지역사회조직팀은 지역사회 주민의 복지증진을 위해 인적·물적 자원을 개발 및 조직화하고 주민참여와 공동체 의식 강화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공동체를 지원한 다. 지역사회조직팀에서는 자원봉사 사업, 후원 및 홍보 사 업, 주민 조직화 사업, 주민복지증진 사업, 지역복지 네트워 크 구축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팀 이름과 사업만 보더라도 주민과 동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제 입사 2년 차가 되었다는 고소영 사회복지사는 인터뷰 내내 열정 가 득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고소영 사회복지사에게 우 리는 열정의 원천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상반기 주민조직에서 부모 육아 부담 완화를 위해 토요 아동 돌봄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는데요. 프로그램이 끝나 고 참여자들이 ‘엄마와 아이가 떨어진 적이 처음인데 아이 ▲ 이연주 팀장(사례관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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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민 팀장(서비스제공2팀)

가 잘 놀았다, 독박 육아에서 벗어나니 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다, 다양한 복지관 사업과 프로그램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는 등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 참여자 들의 복지관에 대한 인식도 변화되었고 프로그램 목적도

달성하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보람찬 순간이었어요.

이런 순간들이 더욱더 힘을 내게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주민 조직화 사업을 맡고 있는데 주민들을 만나는 게

정말 좋아요.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

면서 에너지가 충전되는 편이거든요. 근데 업무 자체가 주 민분들을 계속 만나는 것이다 보니까 일하면서 계속 행복

이 누적되는 것 같아요. 일할수록 주민들을 만나고, 그러면 또 에너지가 쌓이니까 행복한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주민 조직화 사업을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왜 냐하면 현대사회는 개인주의 사회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

다. 서비스제공2팀은 크게 어르신과 다문화 가정을 대상 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제도권에 서 지원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놓인 미등록 이주민 아동 에 대한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박상민 팀장에게 장안종합사회복지관이 자랑할 만한 점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지역주민 욕구에 기반한 복지를 실천하고자 하는 복지관 입니다. 저희는 지역주민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욕구가 있는지 알기 위해 2~3년에 한 번씩 ‘지역사회 욕구 조사’를 진행해요. 이를 바탕으로 지역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관 차원에서는 사회복지에 대한 가치를 깊게 고 민하고 실천하려고 해요. 사회복지사마다 가지고 있는 가 치는 다 다르거든요. 개인마다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더욱 뚜렷하게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목표 를 실현할 수 있도록 잘 다듬어주는 것이 복지관의 장점이 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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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주민조직은 지역을 위해 활동한 다는 것도 있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 친구가 생기는 거잖아 요. 이게 점점 발전하면 지역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줄어 들지 않을까요. 주민조직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서비스제공2팀의 박상민 팀장이 ▲
고소영 사회복지사(지역사회조직팀)

모집하고

키오스크 등 디지털 교육을 진행

단해가족상담 치료센터 장애가 있는 아동 또는 장애는 없지만 심리, 정서, 행동, 적응 등의 어려움이 있는 아동들에게 언어치료, 인지치료, 놀이치료, 감각통합치료를 지원

느린학습자(경계선 지능인) 지원사업 아동·청소년·청년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 최근 느린학습자가 운영하는 카페를 센터 1층에 오픈

한부모가정 식생 활 지원사업 한부모가정의 초등학교 고학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월별로 주제를 정해 어린이와 같이 레시피를 만들며 자존감 향상과 식생활 개선을 지원 사례관리 지역사회 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인 혹은 가족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함께 돕는 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자원을 연계하고 주변 관계망도 형성할 수 있도록 함 장안 스마트교실

취약계층

029
늘푸른 도서관 아동·청소년 도서관이긴 하지만 성인들도 자유롭게 이용 가능 디지털문예학습장 지원사업 중·장년 어르신을
대상 프로그램명 내용 지역주민 가족관계증진 프로그램 동대문구 내 가정을 대상으로 가족문화 체험, 어린이 체험활동 등을 진행 지역주민 조직화 사업 주민이 지역사회 문제에 스스로 참여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주민조직 육성을 지원하고 필요한 교육 실시. 주민조직 참여자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지역주민 대상으로 진행하기도 함 자원봉사 자원봉사자를
연계하는 것뿐만 아니라 활동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이나 간담회를 진행 공간 개방 토요일에 지역주민이 복지관을 대여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진행 (현재는 코로나로 이용 불가)
대상으로
다슬기
미등록 이주민 아동 지원 제도권에서 지원할 수 없는 미등록 이주민 아동을 발굴하여 식비, 병원비, 생활비 등을 지원 아동 식사지원 사 업 식사에 어려움이 있으나 가정에서 해결되지 않고 외부 자원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지원.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조리 완제품을 각각 1식씩, 매주 화요일에 2식 분량의 밀키트 배달 웰라이프 사업 과거 성차별로 트라우마가 있는 여성 독거 어르신 대상인 정서지원 집단상담 프로그램입 노인사회활동 지원사업 기초연금을 수급하는 만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연결하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사업 장안종합사회복지관 프로그램
다문화가정 아동과 자원봉사자를 1:1로 매칭하여 학습 멘토링과 정서 멘토링을 진행
프로그램 ‘다문화 가족의 슬기롭고 기쁨이 넘치는 생활’이라는 뜻으로 다문화 가족관계 증진을 위한 가족 독서 프로그램

▲ 장안종합사회복지관 전경

우리가 만난 사회복지사들은 하나 같이 지역주민과 소통

하는 복지관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특정 계층만을 위해서

가 아니라 마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작동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가질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지역의 복

지가 결국 나의 복지로 돌아와 살기 좋은 마을을 함께 만

드는 것을 꿈꾸는 장안종합사회복지관의 진심이 지역주민

들에게도 닿길 바란다. 오늘은 장안종합사회복지관 1층에 느린학습자 청년들이 운영하는 카페 안단테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복지관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은 어 떨까.

1.웩슬러 지능검사 기준 70~79점, DSM 기준 70~84점으로 장애도 비장애 도 아닌 모호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경계선 지능인 또는 느린학습자라고 한다.

2. 취약계층 아동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고 공평한 출발 기회를 보 장함으로써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대상자의 복 합적인 욕구를 파악하여 지역자원과 연계한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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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종합사회복지관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한천로18길 48 전화 02-2242-7564 홈페이지 https://janganwelfare.modoo.at 주

코로나19로 인한 무역 봉쇄, 기후 위기 그리고 농촌인구

의 고령화로 식재료의 안정적인 공급에 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식량 자급률 향상 방안으로 스 마트팜 도입이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팜이란 ICT(정보통신 기술)를 통해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원격으로 작물의 생육 환경을 관측하고 최적의 상태로 관리하는 과학 기반의 농 업이다. 또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산에 가장 최적화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18년 스마트 팜을 혁신성장 8대 과제로 삼고 확대 보급하겠다고 밝히 기도 했다. 동대문구 장안동에도 이런 최첨단 스마트팜이 문을 열었 다. 여기서 재배된 작물로 샐러드도 함께 판매하는 ‘올되

다 농장’의 오지선 대표를 만났다. Q. 올되다 농장은 어떤 곳인가요?

올되다 농장은 체험형 스마트팜 샐러드 카페에요. 유럽형 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해서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팔고 있 어요.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서 인정한 스페셜티 생두 를 직접 로스팅하여 커피도 판매하고요. 카페에 스마트팜 수경재배기가 크게 설치되어 있어서 설명도 듣고 직접 체 험해 볼 수도 있어요.

Q. 스마트팜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에 주말농장을 했었는데, 여름 그 더운 날, 주말에 농장 까지 가서 아이들과

너무

되는데 매주 갈 수 없는 상황도 있잖아요. 그러다 가 우리 베란다에 텃밭을 직접 만들어 보자고 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스마트팜’을 해보면 괜찮겠더라고요. 그래서 남 편과 둘이 만들기 시작했어요. 파이프 사다가 구멍 뚫고, 3D 프린터로 물 흐르는 관도 만들었어요. 살 수 없는 건

031
직접
죠.
농업은 기존 땅에 파종해서 키우는 것보다 최첨단 스마트팜 ‘올되다 농장’ 우리 동네 점포 이야기 ① 올되다 농장 만난 사람: 오지선 대표 취재: 심소영, 임정희, 최다솔 글: 임정희, 최다솔(시민나루 기자)
텃밭 가꾸기가
힘들더라고요.
가면 안
만들고, 작물도 키워보고, 시행착오 겪으면서 시작했
스마트팜

노동강도가 훨씬 더 줄어들고 편하죠. 그리고 수경재배로 키우면 2.5~3배 수확이 빨라요. 1단, 2단, 3단, 단을 쌓아 위 로 올라가기 때문에 수확량도 많을 수밖에 없죠. 당연히 토양에서 키울 때보다는 장점이 많아요.

Q. 스마트팜을 만들 때부터 샐러드 카페 창업을 생각하셨나요?

먹거리산업에 스마트팜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아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환경오염이 심각하잖아요. 스마트팜이 신산업이기 때문에 앞으로 많이 발전할 거예요. 아이들이 스마트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면 이 산업이 문 화하고도 연결될 수 있고요. 기계를 처음 만들고 개발할 때 카페와 함께 운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물을 바로 먹을 수 있는 공간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함께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Q. 식물을 유럽형 작물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유럽형 작물이 시중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작물은 아니에요. 올되다 농장에 왔을 때 시중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기계와 유럽형 작물들을 본다면 특별함에 더 자주 오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유럽형 작물이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먹기 좋 아요. 우리나라 작물은 쓴맛이 살짝 있는데 유럽형 작물은 쓴 맛이 좀 덜해요. 맛이 달고 키워보면 예쁘기도 하고요. 제 가 거의 다 파종하고 정식 작업해서 키운 작물들이에요.

Q. 스마트팜 체험에서는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나요?

쾌적한 실내 공간에서 직접 작물도 만지고 냄새도 맡으며 힐링할 수 있도록 ‘스마트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데요.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서 작물 설명도 듣고, 직접 따와 랩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요. 미니 수경재배 작물을 하나 씩 가져갈 수 있고요. 앞으로 아이들이 접하게 될 미래산업을 미리 체험해보는 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또 올되다 농장 회원이 되시면 84,000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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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 큐브&수제 리코타 치즈 샐러드 ▲ 올되다 농장 스마트팜
선결제한 후 스마트팜 기계 한 줄(7 포트=7 작물)을 분양해가실 수 있어요. 언제든 오셔

서 내 작물이 자라는 걸 확인하실 수 있고 1년 365일 언제든지 싱싱한 채소를 드실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선결제한 금 액은 올되다 농장의 모든 메뉴에서 사용하실 수 있고, 사용할 때마다 금액이 차감되는 형식이에요. 무료로 스마트팜 기계를 분양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Q. 스마트팜 교육을 따로 진행하시기도 하나요?

이전부터 드론, 3D 프린터 관련한 교육을 학교에서 하고 있었어요. 스마트팜 교육도 한다고 하니 학교에서 연락이 왔 죠. 교육받은 학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서 동대문구 이외의 학교에서도 교육하고 있어요. 스마트팜 교육을 관심 있게 봐주셔서 동아리 활동으로 작물 키우기, 수확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제가 발달장애인을 대상 으로도 교육하고 있거든요. 그분들을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커요.

Q. 요즘 일하시며 제일 즐거운 때는 언제인가요?

작물 키우는 것도 즐겁고, 손님들이 오셔서 신기해하시고 맛있게 드시면 그게 제일 즐거워요. 저희는 계속 메뉴를 개 발하고 있어요. 아이들 면역력 높일 수 있도록 세세한 곳까지 신경 쓰면서요. 커피 한 잔 내릴 때도 원두 그램을 재서 내려요. 음식의 퀄리티를 높이려고 주방에서 꼼꼼하고 정확하게 하고 있죠. 이렇게 하니까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고, 가 실 때 행복해하셔요. 그럼 저도 너무 즐겁죠. Q. 올되다 농장 자랑 한마디 부탁드려요. 주말농장에서 흙을 만지며 작물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유럽형 작물도 키워볼 수 있다는 것이 올되다 스마트팜의 큰 장점이에요. 직접 키우며 잘 자라고 있는지 자주 지켜볼 수 있고, 수확해서 나만의 음식을 만들 어 볼 수도 있고요. 자신만의 농장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올되다 농장입니다. 먹거리에 대한 걱정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뜨거운 여름날이 길어질수록,

033 ☆올되다농장음료교환권☆ 아이스or아메리카노 (선택1잔)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 계속될수록 그 심각성을 더욱 느끼고 있다. 핸드폰에만 존재할 것 같았던 ‘스마트’가 세탁기, 냉장고를 이어 어느새 우리 식탁 앞으 로 성큼 다가온 지금, 머지않아 집 집마다 스마트팜 수경재배기 하나쯤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올되다 농장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장한로 137, 2층 / 운영시간: 월~금 10:00~22:00 / 토~일 10:00~21:00 / 인스타그램: @alldaeda / 문의: 02-2232-0927

코로나19로 가장 힘들었던 영역이 어디냐 물으면 늘 일

순위로 뽑히는 영역은 ‘자영업’이다. 그중에서도 요식업은 영업시간 제한, 4명 이상 모임 식사가 금지되면서 큰 어려 움이 있었다. 그런데도 코로나 시기(2020.12)에 창업해 망 하지 않는 것도 대단한데, 규모를 늘리며 성장한 식당이 있다. 그 비결을 묻기 위해 찾았다. ‘형제집’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두 형제 사장이 의기투합 해 만든 육회·연어 전문 식당이다. 장안동 근린공원과 늘 푸른 어린이 공원 사이에 있다. 20평 남짓한 작은 가게는 최근 마련한 가게고, 원래는 현재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8 평의 공간에서 배달전문점으로 시작했다.

Q. 8평 배달 전문 식당에서 20평 넘는 테이블이 있는 식당으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성공으로 보시는지요?

이원철 : 성공이라기엔 소소하지만, 비수기라 요즘 장사 잘 안돼서 놀고 있거든요. 근데 저는 지금 되게 만족하고 있어요. 사는 게 마이너스가 아니잖아요. 저는 빚이 많아 서 맨날 마이너스였거든요. 예전에 단체 티셔츠 사업을 했 는데, 말아 먹어서 돈을 많이 빚졌거든요. 근데 이 일을 시 작하면서 오래간만에 빚 없이 살다 보니까, 이 정도면 되 게 좋은 삶을 사는 것 같아요. 욕심은 끝없잖아요. 이렇게 쉬는 날 쉬고, 맛있는 거 먹고, 가족 건강하고, 그게 행복인 데, 행복합니다. Q. 마이너스 인생 탈출이라는 성공을 이루셨네요. ‘신의 한 수’라 할만한 것이 있다면?

이원석 : 시기가 잘 맞았어요. 이쪽으로 넘어온 것도 타이 밍이 괜찮았고요. 요즘 배달은 많이 줄어든 상태니까. 생각 을 빨리빨리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빅데이터라도 분석하시나 요?) 아뇨. 뉴스 보면 언제쯤 풀리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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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보고 감 잡 는 거죠. 육회, 연어 전문식당 ‘형제집’ 우리 동네 점포 이야기 ② 형제집 만난 사람: 이원석, 이원철 사장 취재: 임정희, 심소영, 최다솔 글: 임정희, 심소영(시민나루 기자) ▲ 왼쪽 이원철 사장, 오른쪽 이원석 사장

Q. 손님들이 이곳에 오셔서 칭찬하시는 것은? 그리고 추천 메뉴는?

이원철 : 이구동성으로 맛있다는 분들이 제일 많죠. 네이버에 ‘영수증 리뷰’라는 게 있어요. 우리 가게 방문한 사람이 먹고 사진도 찍어 올리는 건데요. 거기 보면 사진이 정말 잘 나와 있거든요. 거기 보면 사람들이 맛도 있고 푸짐하다고 칭찬해요. 진짜 모르고 온 사람들은 다 놀라거든요. 우리는 맛도 중요하지만 우와! 처음부터 시각적으로도 우와! 가 나 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요. 저희 추천 메뉴는 당연히 ‘형제집 스페셜’인데요. 이걸 드시는 분들이 제일 만족하시고, 거 의 80% 이상이 이걸 드시죠. 여성분 같은 경우는 2~3인분 양이 나오니까. (3인분이 37,000원이면 싼 거 아닌가) 물가가 많 이 올라서 어렵긴 해요. 연어가 엄청나게 올랐거든요. 구하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곧 메뉴를 개편할 예정이에요. 산낙 지랑 육회를 비벼 먹는 육회탕탕이를 새로 선보일 거고, 한우 육회사시미도 준비하고 있어요.

Q. 형제 동업의 단점은 없나요?

이원석 : 한참 생각했는데, 단점이 없어요.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서로 위로가 되니까. 일하면서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것 은, 누구나 있는 거고 가족이라서가 아니니까요. (동업하지 말라는 옛사람 조언도 있는데, 형제라 수익금 배분 갈등도 없나?) 수입 은 얘(동생) 통장으로 다 들어가거든요. 수익금 반씩 나눠요. 얼마 찍었으니까, 이번에 얼마씩 가져가자고 하면 가져가 는 거예요. 얘(동생)가 주는 대로. 갑자기 난데없이 통장을 확인해야죠. (웃음) 다만 서로 야금야금 가져다 쓰지 않고, 결 과가 나오면 나눠요.

Q. 자영업을 시작하려는 분은 언제나 어느 곳에나 많은데, 그분들께 성공의 경험을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이원석 : 저도 처음 보쌈집 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고, 잘하는 거라서, 일단 시작하면 되겠지 했어요. 대부분이 그렇게 망할 생각 안 하고, 시작하거든요. 근데 요리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요식업은 자신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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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집
▲ 형제집
스페셜
입구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음식은 당연히 맛있어야 하는 거고, 그 외에도 알아야 하는 것이 많아요. 요식업을 준비한다면 홀서빙도, 설거지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음식도 만들어 내어보고, 그런 경험을 많이 하신 다음에 시작하면, 실패 확률이 준다고 생각해요. 손님들은 딱 알아요. ‘이 집은 뭐 망할 수밖에 없겠구나.’ 장사하다 보면 짜증 나는 일 많으니까 이해 는 되는데, 손님은 이해 못 해요. 그래서 인사하는 것부터 연습해야 해요. 은근히 성격상, 손님 응대 못 하는 사람 많거 든요. 이원석 : 엄마도 그렇고 장사 시작할 때 주위에서 다 말렸어요. 근데 저는 얘(동생)가 싫다고 해도 계속 설득해서 어쨌 든 했을 거예요. 저는 일단 실패 한 두 번은 해 봐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얘(동생)도 다행히 그래요. 그래서 둘 다 실패를 몇 번 해봤죠. 그런데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았어요. 실패에서 배웠죠.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면서 보완할 수 있으니까. 처음부터 너무 무리해서만 안 하면 좀 작은 거부터 시작해서 경험 쌓으면서, 실패도 해보고, 두세 번 실패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면 무조건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비전을 말씀해 주신다면?

이원석 :저는 일단 10억 정도 벌면 서울 말고 바닷가 가서 살고 싶어요. 제가 생선 요리나 회 이런 거 엄청나게 좋아해 요. 직접 잡아서 요리하며 살면 좋겠다는 꿈을 꿔요. 진짜 배 하나, 집 하나 사는 게 목표에요. 형제는 용감했다. 아니 형제라서 더 용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형제집은 개업 서너 달 만에 동네 맛집으로 소문나 투자 금 회수하고, 현재는 멀리서도 찾아올 만큼 제법 유명한 맛집이 되었다. 그들의 성공은 몇 번의 실패와 실패에서 얻은 경험으로 함께 몇 년을 준비하고, 개업하면서 웬만한 것은 직접 설치했다. 이전하면서도 인테리어 전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을 골라 비용을 아끼는 등 벼르고 벼른 칼이 있었다. ‘자영업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 각해요’라는 이원석 사장의 말은 자영업의 대부 격인 백종원 님의 말보다 잘 벼려진 칼처럼 날카롭게 들렸다. 군침 도는 인터뷰를 마치며, 그들이 원하는 성공을 그려본다. 어느 날, 어느 순간, 어느 바닷가 분위기 좋은 집이다. 장 사하는 것인지 본인들 식사를 준비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두 형제가 한껏 미소를 머금은 채 담소를 나누며 회를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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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집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장한로 173 1층 전화번호: 02-2212-5558 *매주 일요일 정기 휴무 음료☆형제집음료교환권☆ 1캔or주류1병(선택1)
037 사람과 사람이 겹쳐 만들어지는 물결 ‘무아레 서점’ 만난 사람: 운영자 문어 | 취재 글: 최다솔(시민나루 기자) 동대문 문화생활 무아레 서점 ▲ 무아레 서점

대형화되어가는 서점 속에서 소규모 독립서점의 생존법은

무엇일까? 동네서점지도 앱 서비스를 운영하는 퍼니플랜

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 97개에 불과했던 독립서점 수는

2020년 6배가 넘는 634개까지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소

상공인, 자영업자의 폐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독립서점의 폐점률(16.7%)은 전년 폐점률(15.2%)과 비슷한 수준이다. 오 프라인 서점의 위기 시대에서 소규모 독립서점은 어떤 매 력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걸까. 장한평역 3번 출구에서 음식문화 거리를 따라 500미터

쯤 걸으면 그 뒷골목에 독립서점 무아레가 있다. ‘무아레 (Moire)’는 프랑스어로 ‘물결무늬’라는 뜻으로 강물처럼 말 하고 물결처럼 나아가는 삶을 만나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

다. 한참을 앉아 책을 읽어도 좋은 휴식처이자, 끊임없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이곳은 책, 그리고 사람들과 창작하 는 공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무아레, 규칙적이고 일정한 삶이 겹치는 곳에 불규칙하고 예측하지 못한 마주침을 만듭니다.”

“서울은 왜 이런 형태의 도시가 되었을까, 아파트 공화국이

라 불리는 도시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왜 서울에 살 수밖에 없을까, 이런 문제에 이야기할 거리가

정말 많잖아요. 집이나 공간에 대해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 을 수 있고, 그걸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동네 도 마찬가지고요.”

무아레 서점에서 큐레이션 하는 책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청년공유주택 ‘장안생활’ 내에 자리해서인지 집과 관련된 책을 특히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내 삶을 ‘사는(生)’ 집이 아 닌 투자의 수단으로 ‘사는(賣)’ 곳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집 다운 집, 그 집을 둘러싼 동네와 도시에 대해 고민한다. 아 파트, 빌라, 단독주택 또는 자가, 전세, 월세 등 획일화된 주거 형태를 벗어나 새로운 주거를 상상하고 다른 삶을 엿 볼 수 있는 책을 선보이고 있다. 기계 도시, 장한평 산책

집, 동네, 도시 - 더 나은 공간을 위한 서점

“장한평역 인근 지역이 정말 재밌는 곳이에요. 중고차 시장, 고미술 상가, 물 재생 센터 그리고 공업사들. 서울에서 찾기 어려운 풍경과 재미있는 요소들이 모여 있어요. 지금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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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아레 서점 서가

이 사라진 편이지만 그런 흔적들이 조금씩 남아있어요. 변 화의 가능성을 가진 곳이라 그 전에 이 풍경들을 기록해두 면 좋겠다는 생각에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모임을 기 획하게 되었어요.”

서적뿐만 아니라 서점 한쪽에 마련된 전시 공간에서도 무 아레 서점의 특색이 짙게 드러난다. 책 또는 공간에 대한

전시가 이뤄지는 이곳에서는 지금 〈기웃기웃 기계 도시 산

책〉 전시가 진행 중이다. 여기서 ‘기계 도시’는 중고 자동 차 산업의 중심지인 장한평을 가리킨다. 지역주민들과 도 시 기록에 관심이 있는 청년 9명이 모여 한 달간 도시를 산책하며 장한평의 모습을 담아냈다. 익숙하거나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한 곳들도 산책자의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새 로운 장면을 목격하게 한다. 필름 사진에서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느끼며 또 다른 도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무 아레 서점의 소소한 볼거리다. 책을 매개로 이어지는 사람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지만 사실 책이라는 게 저희 서점에 서 사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종류의 책들이 여러 서점에 다 있잖아요. 그렇다면 지역에 있는 서점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 나 많이 고민해왔어요. 무아레 서점의 역할은 책을 매개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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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 섹션 ▲ 전시 공간 (기웃기웃 기계 도시 산책) ▲ 우리 동네 책방 배움터 책 소개

역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닐까요?”

무아레 서점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책을 사고파는 일 외에도 다양한 문화인을

초대하여 강의, 북토크 등을 진행해왔고, 소책자 제작 워 크숍 등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열 리고 있다. 특히 무아레 독서회는 매월 꾸준히 운영되는데 독서회 당일 현장에서 함께 책을 읽기도 하고, 책을 끝까 지 읽고 난 후 진행자가 준비한 발제문을 중심으로 이야기 를 나누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과 떠올린 생 각을 공유하며 서로의 대화를 이어 나간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소극적인 행동이지만 서점을 방문하는 이들의 연결을 통해 편견을 깨고, 생각의 빈틈을 메워가는 확장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를 매 번 다짐하지만, 매번 좌절하고 있다면 무아레 독서회를 통 해 함께 읽는 책의 힘을 느껴보길 바란다.

9월에도 독서회와 ‘우리 동네 책방 배움터1)’의 다양한 프로 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무아레 서점 인스타그램에서 빠 르고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니 인스타를 팔로우하 여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을 추천한다. 무아레 서점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서점 운영진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주민 또는 관심 있는 사람을 기획 자로 초청하여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지난 7월 에 진행한 ‘필름에서 픽셀까지’ 프로그램 또한 미디어학을 전공한 학생과 협업하여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 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새로운 물결, 새로운 문화를 만 들고 싶다는 책방 주인의 다짐이 이처럼 사소한 곳에서 드 러나는 듯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 끊임없이 사람들 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곳이 무아레 서점이었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모임이 있다거나 재미있는 아이 디어가 떠올랐다면 무아레 서점 문을 두드려보자. 혼자 하 면 외로운 기획도 무아레 서점 동료들과 함께라면 무엇이 든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모임을 열었을 때 과연 사람들이 찾아올까?’라는 걱정은 내려놓자. 무아레 서점에 서 모든 걸 동원하여 좋은 분들이 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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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대형서점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베스트셀러 목록이다.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지만 왜인지 늘 아쉬웠던 이유는 그 목록에서 내 취향을 찾을 수 없었 ▲ 『서울집』 함께 읽기 ⓒ무아레 서점 ▲ 무아레 서점 운영자 문어 ▲ 하재영 작가 북토크 ⓒ무아레 서점

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독립서점을 찾게 된다. 서 점을 천천히 둘러보며 책방 주인의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 이 즐겁고, 그곳에서 나와 통하는 부분을 발견하는 건 꽤 설레는 일이다. 그곳에서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함께 책을 읽으며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이 나를 더더욱 독립서점으로 이끈다. 그럴 때면 책방 주인은 어떤 분일까 궁금해지고는 한다. 두 차례 무아레 서점 프로그램 을 참여하고 난 뒤 말 한마디 건네보려 서성거렸지만, 괜 히 부끄러워져 발길을 돌리고는 했다. 무아레 서점 운영자 문어 님과 인터뷰를 끝낸 후 괜한 동 질감이 생겼다. 저 생각은 나만 하고 있던 게 아니어서.

오늘도 무아레 서점은 누군가의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무아레 서점 Moire Books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천호대로89길 9, 장안생활 2층 운영시간: 12:00~19:00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moire_books 입고/문의: moire.books@kakao.com 주 1. 서울시와 서울시평생진흥원이

“저도 다른 서점에 갔을 때 책방 주인과 책이나 서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말 걸기가 어렵더라고요. 바빠 보이 기도 하고, 뭔가 시크해 보이기도 해서요. 저희는 다행히도 말하는 걸 좋아합니다. 서점에 오신다면 아무 말이나 해주 세요. 마음이 통한다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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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하여 시민 누구나 근거리 생활권 동네 서점에서 인문학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인문학적 성찰과 사고를 경 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 ▲ 무아레 서점 입구

위로에 대하여

아버지의 선물 ‘꽃밭’

5년 전 어머니께 찾아온 갑작스러운 병마로, 지병을 앓으셨 던 아버지는 자식들이 있는 서울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아 버지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셨고, 우울감은 극에 달했다. 결국 다시 시골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난 풍기의 고향

집에 자주 내려가 아버지를 보살폈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무언가를 했다기보다는 나도 농부의 딸인지라 아버지와 텃

밭에 다양한 나물거리와 채소를 심었고, 꽃과 나무를 가꿨 다. 어릴 적 아버지와 들과 산을 누비며 풀 향기와 산 내음, 꽃향기를 다시 느낄 수 있었고, 우리를 다시 웃게 해주었다.

아버지는 다시 안정감을 찾았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도 안정감을 찾는 것 같았다. 얼마 전 아버지와의 긴 이별을 한 후 아버지와 가꾼 꽃과 나무는 아버지의 선물이었음을 느 낀다. 지금 동생들과 함께 아빠와 만든 꽃밭에서 서로를 위 로하며, 그리움을 가꾼다.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드리는 선물 ‘꽃밭’

여주의 치유정원에서 인지기능 저하증을 앓고 있는 어르신 들과 가족을 위한 ‘기억의 정원’ 컨설팅 프로그램에 참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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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소소한 문화 살롱 원예 ▲ 치유정원 꽃길 ▲ 오은형(원예사회복지사)
주는
글: 오은형(원예 사회복지사)

었다. 꽃이 가득한 정원을 어르신 가족이 함께 천천히 걸으 며 꽃향기와 함께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고, 향기 나는 식물과 야생화를 화분에 옮겨심기도 하고, 꽃과 나무 를 안아도 보고, 식물과 교감하며 인지·신체·감각 기능향상 을 지원했다. 어르신들은 알고 있던 꽃과 식물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무뎌진 손으로 원예 활동하기 수월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작업하며 사소한 실수에도 아이처럼 웃으 며 즐거워했다. 기억과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어르신을 돌보 는 가족들도 그동안 꽃 예쁜 것도 모르고 지냈다며, 몇 회차 의 수업에 참여하며 힐링 되고,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치유의 정원에 오는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후기 를 접했다. 어르신과 가족 모두에게 ‘꽃밭’이 선물이었다. 이외에도 치유 원예로 다양한 직장과 발달장애인, 대안학교 청소년, 아동센터, 도서관 등을 찾았다. 씨앗을 심고, 새싹 을 틔우고, 줄기와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함께 했다.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지 않지만 바쁜 일상에 잊

고 지내다 만난 꽃밭과 텃밭은 직장인에게는 일하다 잠시

라도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고, 부모님을 기다리는 아동에게

도 편안함을, 사춘기 청소년의 마음을 다스리기에도 도움을

준다. 식물의 색감과 형태·질감을 느끼고 디자인함으로써 나를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꽃밭’ 선물이다.

꽃과 함께하면 행복을 배운다. 나무와 함께하면 사유를 배운다. 존 스튜어트 콜리스1)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그리고 돌봄 장미꽃이 만발했던 지난 6월 영화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 원〉이 개봉했다. 영화는 주인공 베르네 부인이 아버지의 일 생이 담긴 장미정원을 유산으로 상속받아, 정원을 유지하기 위한 좌충우돌 과정을 그렸다. 보호관찰 중인 직업훈련생들 과 정원을 가꾸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꽃의 언어 장미 를 돌보며 아픔으로 가득 찬 마음을 치유한다. 식물의 돌보 는 일을 하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성장하는 힘이 느껴진다. 사람이 꽃을 돌본 것일까? 꽃이 사람을 돌 본 것일까? 식물 돌봄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싶은 분들께 추 천한다. 그리고 상처 주는 말 대신 사랑이 담긴 꽃의 언어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 1. 존 스튜어트 콜리스(John Stewart Collis, 1900년 2월 6일 ~ 1984년 3월 2일)는 아일랜드 전기 작가, 시골 작가, 생태 운동의 선구자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에 근무했던 전시 경험을 바탕으로 《벌레는 쟁기를 용서한 다》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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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 원예 활돌
▲ 실내정원

줄로만 알았다.

총 12회 분량인 이 드라마의 반전은 극의 후반부에 가서야

젊은 혜자가

044 〈눈이 부시게〉는 스물다섯 혜자(한지민)가 특정 매개체인 시 계를 통해 갑자기 노인(김혜자)이 되며 겪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2019년 방영된 JTBC 드라마다. 가끔 고개를 갸 우뚱거리게 하는 장면이 있긴 했지만,
드라마 〈나인〉, 〈내
그대와〉, 〈시그널〉 같은 타입슬립물인
뒤섞여 나타난 섬망 증상이었던 거다. 본인이 청년에서 하루아침에 노인으로 변한 걸로 굳게 믿 고 있는 혜자가
려고
힘든
에게
모든 사람은 언젠가
글: 박식빵(작가) 소소한 문화 살롱 드라마 ▲ 드라마 〈눈이 부시게〉
드러난다.
겪은 걸로 그려졌던 이야기들은 사 실 인지 저하증(치매)1)을 앓는 노인 혜자의 젊은 시절 기억 과 트라우마가
부모님 마음 아프실까 봐 혼자 멀리 가 살
가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버스터미널에서 방황하던 혜자를 향해 다가온 의문의 2인조는 조상에게 제를 지내면
일이 모두 해결된다며 혜자를 꼬드긴다. 혜자는 그들
억울함을 성토한다.
노인이 된다

“제가 사실 스물다섯 살이거든요. 근데 어쩌다가 이렇게 늙

어버린 거예요.”

(황당한 표정) “네? 언제…. 스물다섯이?”

“그니까. 한두 달 됐나. 갑자기 이렇게 늙어버린 거예요. 그

동안 뭐, 조금씩은 늙어봤는데 갑자기 이렇게 팍 늙으니까

진짜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제 지내는 곳이 머냐고 묻는 혜자에게 2인조는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떠났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인지 저하증을

앓는 환자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지만, 당사자가 느끼

기엔 꽃다운 청춘이 하루아침에 저문 것처럼 말 그대로 황 당무계하고 억울하다. 나는 인지 저하증 환자를 실제로 만 나본 적이 없다. 한지민 배우가 나와서 재밌는 청춘 로맨스

물인 줄 알고 보기 시작했다가 반전을 맞닥뜨렸을 때, 주변 인물과 과거의 기억을 환자가 진짜 느낀 것처럼 이렇게 치 밀하게 뒤죽박죽으로 재배치한 것이 놀라워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한편 혜자의 며느리인 정은은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랐 지만, 시어머니인 혜자에게 가족과 부모의 정을 느끼며 며 느리로 받아들여졌다.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하는 남편과는 대조적으로 혜자는 그녀를 딸처럼 품어주었고, 병에 걸린 혜자가 그녀를 못 알아보기 시작하자 엄청난 슬픔을 느끼 고 그녀를 끝까지 모시게 된다. 자신을 정은의 딸이라 생각 하는 혜자를 위해 ‘엄마’를 연기하고, 병원 밥이 입에 안 맞 을 혜자를 위해 반찬을 해다 나르는 수고를 한다. 어린 시절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된 자신을 홀로 키우느라 모질게 했던 엄마 혜자에게 차가운 모습을 보이는 아들과 대조적 이다. 둘이 우동집에서 우동을 먹다가 혜자는 정은에게 “엄마 아

빠가 이혼해도 난 엄마 편이야. 엄마나 되니까 아빠랑 살지.

난 언제나 엄마 편이야.”라며 그간 자신을 돌봐준 며느리

에게 딸의 모습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흐르는 정은의 눈물

에 흘러간 시대에서 여성에게 전가되어 온 희생과 돌봄 노

동자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돌봄 노동의 힘듦은 해본 자만

이 안다. 나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감히 그것이 얼마나 고되

고 지치고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일인지 말할 수 없지만, 30 년 가까이 까탈스러운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산 엄마를 보 며 간접 경험을 했었다. 어린 시절 본 엄마는 자주 울었고, 자주 가슴을 쳤다. 엄마는 할아버지의 막말을 수시로 들었 고, 말년에는 할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리고 똥도 치우다가 결국엔 요양병원에 모셨다. 마침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뭔가 대단원의 막이 드디어 내렸다고 생각했고, 마 침내 엄마가 해방되었다고 느꼈다. 이 작품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의 젊음이 가버리기 전 에, 건강이 다해 병들기 전에 모든 순간을 눈부시게 즐기라 는 것이지만, 많은 장면에서 인지 저하증이라는 노환과 노 인 돌봄의 장면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2020년 기준 우 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인지 저하증 유병률은 10.3%, 환 자는 84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 누구에게나, 나의 부모님에게도, 또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자식이나 배우자의 처지에서 인지 저하증을 바라 보는 작품들은 많았지만, 인지 저하증을 앓고 있는 환자 본 인을 화자로 두었다는 점이 굉장히 새로웠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이 슬픈 병에 대한 대리경험의 기회를 제공한 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진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노인이 된다. 무엇보다 그 전에 노인을 돌보는 위치에 놓일 가능성 또한 아주 크다. 여러분도 드라 마 〈눈이 부시게〉를 통해 생각보다 가까이 내 등 뒤에 와있 는 노년의 병에 대해 알아보며 울고 웃어보는 기회를 얻어 보시길 추천한다. 주

어리석을 치(癡)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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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리석을 매(呆)를 쓰는 ‘치매’라는 용어가 가진 어감 이 부정적이고, 환자를 비하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와 인식하에 대체할 단어 를 찾고 있으나 아직은 합의된 바가 없어 그 중 ‘인지 저하증’으로 썼다

회사 노트북이 수명을 다했다. 그래서 회사 노트북을 바꿨 다. 최신형의 새 노트북으로 교체하게 되니 ‘당연히’ 업무효 율이 올라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희망찬 기대는 ‘예상치 못한’ 디테일의 벽에 부딪혔다. 이전에 작업했던 원 고를 찾지 못했고, 즐겨찾기로 담아 두었던 인터넷 자료를 찾지 못했고, 늘 쓰던 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았고, 이전에 보냈던 메일도, 메일주소도 찾지 못했다. 업데이트된 최근 OS의 버튼도, 환경도 낯설었다. 최신 모델의 노트북을 지급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노트북 교체 후 거의 일주일 동안 ‘상 당한’ 시간을 갈아 넣고 또 기술지원팀의 도움을 받고 나서 야, 이전의 ‘기본적인 업무’의 루틴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노트북 교체라는 ‘외부의 사건’이 없었다면, 내 업무의 루틴 을 가능하게 하는 소소한 도구, 기술지원팀의 소중함을 못 느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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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사건은, 전 세계 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돌아가는데 무엇이 필요 우리의 일상은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글: 윤덕환(문화심리학 박사) 《돌봄선언》 더 케어 콜렉티브 지음 | 정소영 옮김 | 니케북스 펴냄 소소한 문화 살롱 BOOK
엄청난
‘원활하게’

한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던졌다. 마스크 수급이 원활하

지 않자 외출이 어려워졌고, 택배가 원활하지 않자 일상생

활이 불편해졌고, 배달이 폭주하자 끼니를 놓치는 경우가

생겼으며, 공공병원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자 사망자가

급증했다. 심지어, 장애인들이나 거동이 불편했던 노인들 에게 제공되던 돌봄서비스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화로 중

단되거나 크게 줄어들어 생존의 위기를 경험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는, 우리가 너무 흔해서, 또는 낮은 '수

익'을 핑계로 폄훼해왔던 그런 서비스들이 사실은 공기와 같이 우리 삶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중요했었나를 비싼 대

가를 받아 가면서 알려주었다.

이런 일상 유지에 필요한 ‘돌봄’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 러내어, 전 세계적인 이슈 차원으로 부각하려고 하는 책이 있다. 《돌봄 선언 The Care Manifesto》이라는 책이다. 마 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에 출판한 《공산당 선언 The Communist Manifesto》과 비슷한 분위기의 소책자로 구성 되어있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돌봄’이라는 주제에 대 한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돌봄 선언》의 저자들은,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 스가 19세기를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고 진 단한 형식과 거의 유사하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봄 의 부재, 무관심(carelessness)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진단한 다. 그리고 이 진단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미 국,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던 노 인들,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비정 규직 노동자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수많은 사상 자를 내면서 입증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것에 실패했던 선진국들의 역사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수면 위로 부각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부각 되기는 했지만, 돌 봄의 위기는 지난 40여 년간 특히 심각해져 왔다고 분석한 다. 많은 나라가 수익 창출을 삶의 핵심 원리로 보편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원칙을 전방위적으

로 확장하면서부터라는 것이다. 즉,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

지 않는다는 이유로, 병원들이 가장 기본적인 개인용 보호

장구도 갖추지 못한 채 방치되었고, ‘비생산적’이라는(많은 수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돌보는 직업들은 오랫동안 평가절하되어왔으며, 돌봄은 ‘셀프 케어 산업’이 되어 개인 적으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으로 격하되어 왔다는 것이 다. 그래서, 돌봄에 관련한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가 돌 봄 종사자들에게 가장 의존하는 사람들이 바로 부유층이라 는 것이다. 또 여기에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자체가 ‘협력보다는 경쟁’에 기반을 둔 형태이기 때문에, 아주 오랫 동안 낯선 사람들이나 우리와 거리가 먼 사람들은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도록 부추김을 받아왔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인간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아주 기본적인 돌봄의 역량마저 이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인간관이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의 도발적인 진단과 분석에 머무르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저자들은 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미치 는 현재의 글로벌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린다. 글로벌한 우파적인 정치와 정권의 탄생은 결국 국가의 벽 을 쌓고 경계를 강화하면서, 국가가 '원치 않는 사람들'을 구분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해당 국 가에 이미 널리 퍼져있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기반으로 하는 동시에 점점 더 부추기고 있다고 일갈한다. 이들이 진 단하는 돌봄이 결여된 세상은 배척과 혐오에 근거해 타인 에 ‘무신경한’ 집단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토양을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직진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이 신자유주의 이 데올로기의 정치적 주창자들은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 건이라고 ‘대놓고 지목’한다. 이들이 당시까지의 모든 종류 의 돌봄을 개인적 문제로 전환하고 개인이 경쟁적 시장과 강력한 국가의 중추라고 몰아갔다는 것이다. 즉, 이들이 집 권하던 시기에 돌봄은 ‘개인의 문제’로 전환되고, 상호연결 성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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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보편적 돌

봄’의 개념을 제안한다(‘난잡한 돌봄’이라는 본문의 표현도 이 개

념과 유사하다). 이것은 삶의 모든 수준에서 돌봄을 우선시하

며 중심에 놓고, 직접적인 대인 돌봄뿐 아니라 공동체를 유

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종류의 돌봄에 대해 모두가 공동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렇게 돌봄의 주체를 ‘불특정 다수’로

설정해야 친족 중심의 돌봄의 책임도 보다 자유로울 수 있

고, 공동체가 복원될 수 있다. 다만, 이 이상적 돌봄 개념이 실천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확립된

돌봄의 시장 논리를 깨야 한다고 진단한다. 이를 위해 저자

들은 협력적인 상호지원 네트워크, 협동조합 등의 연대를 강조한다. 더 나아가 이런 연대는 글로벌 좌파 동맹의 형태 로 확대되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돌봄 선언》의 주장은 다양한 통계나 다양한 입장에서 복

잡하게 논리를 끌어가지 않는다. 현실의 문제에 대한 깊숙

한 진단은 군더더기 없이 훅 들어온다. 하지만 이들의 밀도

있고, ‘쎈’ 주장에는 다소 아쉽게도, 대안은 구체적이지도

않고, 간단하지도 않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갑작스레 일상을 덮치기 전까지, 사람들 은 점점 혼자서 뭐든 가능하다고 믿어왔다. 먹고, 자고, 관 리받고, 인간관계 맺는 것을 포함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그 래오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나지 만 않는다면, 실제로 ‘혼자서 뭐든 하는 삶’은 가능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의 삶에 ‘돌봄’이라는 묵직 한 교훈을 던졌다. 사실 우리의 삶은 아주 오래전부터 견고 하게 타인과 이어져 있었고, 돌봄을 우리는 ‘돈은 안 된다’ 라는 이유로 너무 ‘함부로’ 대해왔으며, 이제는 이 교훈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시기라는 것을.

이 책 《돌봄 선언》은 바로 이런 교훈을 실천하자는 의지를 담은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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