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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THE MIJUCHOSUN E*NEWS

조선왕릉이라고 하면 한 시대에 국한된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왕릉의 역사도 흘러가는 시대와

함께한다는 점에서 과거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서울에서 가까운 고양 서삼릉은 조선시

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 이야기 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의 궤적 경기도 고양특례시에 있는 서삼릉은 서

쪽에 있는 3기의 능이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조선 11대 중종의 두 번째 왕

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 12대 인종과 인 성왕후의 능인 효릉, 25대 철종과 철인황후 의 능인 예릉이 있다.

이들 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나온 연산군 의 생모 폐비 윤씨, ‘비운의 왕세자’ 소현세 자의 무덤 등도 있다.

서삼릉은 이곳만의 역사를 품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 각지에 있던 조선 왕실 가족의 태실(胎室·왕실에서 태어난

아기의 태반과 탯줄을 봉안한 뒤 조성한

시설) 54기가 이곳으로 옮겨졌다.

1960년대를 중심으로 서삼릉 인근에 여

러 시설이 들어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특수한 상황으로 능역 이 분절 또는 훼손됐다는 지적이 제기됐

다.

현재 관람객은 서삼릉 입구로 들어가면

희릉, 예릉 등을 볼 수 있다.

효릉과 태실 등은 여기에서 2㎞ 정도 떨

어진 곳에 있고 입구가 따로 있다.

서삼릉을 포함해 한국에 있는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

재됐다.

이 중 마지막까지 비공개였던 효릉은

2023년 9월 일반에 개방됐다. 서삼릉의 역

사는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2년 전 개방된 효릉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인 효릉은 봉분이 나란히 있는 쌍릉 형태다.

두 봉분이 난간석으로 연결돼 있는데,

병풍석은 인종의 능에만 있다. 인종의 재 위 기간은 9개월 정도로, 조선 국왕 중 가

장 짧았다.

취재팀은 효릉을 먼저 찾아갔다.

근처에 이르자 ‘효릉·태실 정문’이 보였 다.

효릉 취재에 필요한 절차는 미리 밟아

뒀고 고양시 문화관광해설사, 궁능유적본

부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 서삼릉 관리

소 직원이 동행했다.

효릉 주변에는 국내 농가에 젖소 종자를

공급해 온 젖소개량사업소가 있다.

효릉 관람을 위해선 방역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들었다.

방역 부스에서 10여초 있으면 되는 간

단한 절차였다.

2년 전 당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유관기관과 오랫동안 논의 끝에 효릉을 개

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효릉까지 가는데 전망이 트인 넓은 땅이

양옆으로 펼쳐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살문이 보였다.

눈앞에 정자각은 있는데, 수복방과 수라

간이 보이지 않았다.

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사초지를 거쳐 능침까지 올라갔다.

묵직한 뒷모습의 무석인(왕을 호위하는

무인 모습의 석물), 수염까지 표현한 문석 인, 석마(말 모양의 석물)와 석양, 석호가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돌의 느낌은 울퉁불퉁 거칠었다.

석물의 독특한 느낌과 빛깔, 푸른 하늘 과 초록빛의 왕릉은 평온함을 안겨줬다.

동행한 해설사는 효릉의 역사를 설명해

준 뒤 “인근에 과거 골프장 등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일반인이 효릉과 태실을 관람하기 위해 선 온라인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가축전염병 발생으로 효릉 관람은 중지 될 수 있으니 미리 확인이 필요하다.

◇일제 강점기 옮겨진 조선 왕실 가족 태실

효릉을 빠져나온 뒤 오솔길을 지나자 비

석이 수십 개 늘어선 묘역이 보였다.

조선 왕실 가족의 태실군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곳이라고 안내판 에 적혀있다. 조선 시대에는 태를 백자 항아리에 담 아 전국의 길지에 묻었고 관리인도 따로 뒀다.

어두운 빛을 띤 오석 비석의 명단을 살 펴보니 태조, 세종, 숙종 등의 이름이 보 였다.

대부분 국왕이었다. 화강석 비석에는 왕자와 왕녀 등의 이 름이 있었다.

1996년에 서삼릉 태실에 대한 발굴 조 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는 국립문화재연구 소의 보고서에 자세히 실렸다. 태항아리 등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 돼 있다. 지금은 여기에 비석만 남아있다고 한다. 묘역 앞에는 2020년 서삼릉태실연구소 가 기증한 태항아리 재현품이 전시돼 있어 이해를 도왔다.

비석 뒷면에 일본의 연호를 삭제한 흔적 이 있다고 해 취재팀도 살펴봤다. 몇 월 며칠인지와 바로 위에 있는 ‘년’( 年)자는 보이는데, 그 위에 무엇이 적혀있 는지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가까운 왕자·왕녀묘에는 22기 의 묘가 있다.

그 앞의 문석인도, 봉분도 작아 보였다. 담장을 나와 조금 더 걸어가면 후궁묘가 나온다.

후궁묘는 숙의 묘역에 이어 빈·귀인 묘 역이 따로 있다.

⇬7면으로 이어집니다

2025년 7월 24일 목요일

조선왕릉 누리집에 따르면 빈·

귀인 묘역의 묘 일부는 일제 강점

기에, 다른 일부는 광복 후 도시화

개발로 1960~1970년대 옮겨졌다

고 한다.

이 묘역에는 드라마에 자주 나

온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묘도 있다.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회

이동하는 위치상 다음으로 관람

한 곳은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

의 회묘다.

9대 성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연 산군은 폐비 윤씨 묘의 이름을 회 묘라 했다.

몇 년 뒤에는 회릉으로 높이고

능의 격에 맞게 새로 조성했다.

하지만, 중종반정으로 자신이 폐 위됐고 회릉도 다시 회묘가 됐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능의 모습은 남았다.

문석인, 무석인, 석마, 석양, 석호 등의 형식을 살필 수 있었다.

회묘는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에 있었는데, 1969년 이곳으로 옮 겨졌다.

일반 관람객이 가까운 거리에서

석물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의 희릉

철종의 예릉…조선왕릉의 마지

막 형태

이미 점심시간이 지나 인근에서

칼국수를 먹고 이번에는 서삼릉 입

구로 향했다.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을 찾았다.

희릉은 다른 장소에 있다가 이곳

으로 옮겨졌다.

이후 중종의 능도 주변에 만들어

지면서 함께 정릉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중종의 능만 현재의 서

울 강남으로 옮겨졌다.

또 다른 해설사와 동행하며 희릉

의 능침에 올라갔다.

우람한 무석인의 뒷모습이 보였

다.

정면에 서서 얼굴을 뜯어보니 귀

까지 큼직하게 표현돼 있었다.

철종과 철인황후의 능인 예릉으

로 이동했다.

철종은 강화도 유배지에 있다가 국왕이 된 자신의 삶처럼 혼란한

시대를 살다 갔다.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로 추존

됐다.

예릉은 영조 시대에 편찬된 ‘국

조상례보편’의 예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조선왕릉의 형태를 갖췄다

고 한다.

문석인과 무석인은 거대하고 두

께감이 있었으며 옷자락의 선도 굵

었다.

해설사는 일부 석물은 땅에 묻혔

던 중종의 옛 정릉 석물을 꺼내 사

용한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장명등(석등)이 좌우 문석인 가

운데 부분이 아니라 앞쪽으로 꽤

많이 나와 있어 눈에 띄었다.

이곳 지대는 경사가 심하지 않고

비교적 완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효세자의 효창원과 의소세

손의 의령원

‘비운의 왕세자’ 소현세자의 소

경원

여기까지 봤다고 서삼릉 관람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정조와 의빈 성씨의 아

들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 영

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첫째 아

들 의소세손이 잠든 의령원이 함께

있는 공간이 있다.

예릉을 관람하고 나오면 왼편에 있다.

서울 용산에 있던 문효세자의 무

덤은 1944년에, 서대문구에 조성됐 던 의령원은 1949년에 이곳으로 옮 겨왔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자 아담한 크 기의 묘 2개가 보였다. 관람객의 시선에서 보면 앞쪽이 효창원, 뒤쪽이 의령원이다. 여기에 서 있는 문석인은 아담해 보였다.

서삼릉에는 또 한 명의 세자의 무덤이 있다.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의 소경원 이다.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이후 동생 인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 로 갔다.

9년 뒤 돌아왔지만, 두 달 후 세 상을 떠났고 이를 두고 독살 의혹 이 제기됐다.

소경원은 비공개 상태여서 직접

관람할 수는 없었다.

지난해 소경원 정자각 복원 계획

이 알려져 관심을 끌었다.

조선 왕실의 무덤은 신분에 따라

분류된다.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陵), 왕의

후궁이나 종친, 왕세자와 왕세자빈

은 원(園), 폐위된 왕이나 그 외 왕

족은 일반인의 무덤과 같이 묘(墓) 라고 했다.

◇대중교통으로 찾아가는 길

문화유산의 가치·복원의 염원 되

새겨

대중교통으로 찾아가려면 서울

지하철 3호선 원흥역에 내려 마을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다.

5분 정도 지나면 농협대학교 다

음으로 ‘서삼릉·종마목장 입구’ 버

스정류장이 나온다.

여기에서 내리면 고양 서삼릉까

지 직진하면 600m, 효릉과 태실은

왼쪽 길로 1.3㎞ 걸린다는 안내판

이 보인다.

서삼릉 방향으로 걷다 보면 젖소

개량사업소 안내판이 보이고 그 옆

에 서삼릉 입구가 있다.

서삼릉 울타리 오른쪽에는 한국

마사회 원당목장 간판이 있다.

서삼릉은 지금까지 봤던 조선왕

릉과는 또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

었다.

직접 가 보니 현재의 모습이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화관광해설사의 꼼 꼼한 해설은 이해의 폭을 넓혀 줬다.

능역 복원에 대한 염원도 느낄

수 있었다. 서삼릉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 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세 계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모습에

올해 상반기 K팝 음반 수출액과 판매량

이 모두 감소해 가요계의 위기감이 고조

되고 있다.

특히 K팝의 든든한 ‘텃밭’ 역할을 했던

일본마저 수출액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면서 차세대 슈퍼 IP(지식재산권) 발굴과

공연·MD(굿즈상품) 등으로 매출 다변화

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팝 시장도 못 피한 불황…음반·음원 모두 하락

20일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6월 음반(HS코드 8523.49.1040)

수출액은 1억1천442만5천달러(약 1천595

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1.6% 감소했다.

2023년 1∼6월 1억3천296만5천달러(약 1천853억원)를 기록한 후 상반기 기준으

로는 2년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올해 상반기 음반 수출액을 대상 국가

별로 살펴보면 일본이 3천909만5천달러( 약 545억원)로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은 2 천10만2천달러(약 280억원)로 2위, 미국

은 1천945만2천달러(약 272억원)로 3위

였다.

특히 중국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9.3% 증가하면서 미국(36.1% 감소)을 제

치고 상반기 수출 대상국 2위로 올라섰다.

일본·중국·미국 ‘빅 3’에 이어 대만, 독 일, 홍콩, 네덜란드, 캐나다, 프랑스, 영국 이 상반기 음반 수출 대상국 ‘톱 10’을 기

록했다.

K팝 시장의 불황은 음반·음원에서도 나

타났다.

김진우 음악전문 데이터저널리스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실물 음반(써클차트

1∼400위 기준) 판매량은 4천248만6천

293장으로 전년 동기보다 9.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음원(써클차트 1∼400위 기준)

이용량 역시 6.4% 줄어들었다.

◇‘1등’ 해외 시장 일본도 경고등…공급

과다·대체제 출연 등 영향

가요계에서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K팝

의 든든한 ‘텃밭’인 일본 수출마저 꺾이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대일(對日) 음반 수출액

은 작년 동기 대비 15.0% 감소했다. 전

체 음반 수출액은 감소율 11.6%를 기록

했는데 일본 수출은 더 큰 폭으로 줄어

든 셈이다.

일본은 2000년대 보아·동방신기의 성공

이후 K팝 수출의 거점 역할을 해 왔다. 음

반 수출 대상국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놓

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도가 크다.

이 때문에 국내 가요 기획사들은 규모

와 관계없이 최우선 해외 진출 국가로 일

본을 겨냥해왔다.

일본 시장의 ‘경고등’은 현지 차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리콘이 발표한 올해 상반기 앨범 차

트에 따르면 상위 25위 내에 K팝 앨범은 INI·JO1·앤팀 같은 현지형 그룹을 제외하 면 세븐틴의 ‘해피 버스트데이’(HAPPY

BURSTDAY·3위) 등 총 7개가 포함됐다.

작년 상반기에는 상위 25위 가운데 12 개가 K팝 앨범이었다.

김진우 음악전문 데이터저널리스트는

“일본 내에서 자생적으로 K팝을 대체할 팀들이 나오고 있다. 일본 그룹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 예전 같은 퀄리티가 아니

다.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것”이라며 “일 본 시장에서 (K팝이) 꺾인 것이 사실이

라면 장기적인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다만 “’프로듀스 101 저팬’ 데뷔조

등 현지형 그룹은 우리의 노하우로 만들 어 키워냈고, 경쟁력 있게 활동하고 있지 만, 소속사를 해외에 두고 있어 우리의 수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음악전문

걸그룹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콘 셉추얼한 사운드와 영어 가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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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부터 광복 80주년 되새기는 영화까지…재개봉

저명한 감독이 만든 명작에서부터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까지

사랑받았던 영화들이 재개봉한다. 국내에

선보이지 못했던 유명한 영화도 이달 상영

관에서 만날 수 있다.

◇할리우드 거장 스필버그 ‘죠스’·스코세

이지 ‘셔터 아일랜드’

할리우드의 두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틴 스코세이지의 작품을 다시 스크린으 로 볼 수 있게 된다. 롯데시네마의 ‘보석발

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들 영화가 선

정됐다.

스필버그가 연출한 ‘죠스’가 제작 50주 년을 맞아 다음 달 재개봉한다. ‘죠스’는 1975년 선보인 영화로 평화로운 휴양지에 거대한 백상아리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죠스’는 스필버그에게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이자 대규모 제작비와 공격적인 마케 팅, 동시 개봉으로 블록버스터의 시초라고 알려진 영화다. 스필버그의 서스펜스 연출 과 작곡가 존 윌리엄스의 배경음악으로 유

명하다. 이 작품은 1976년 열린 제48회 미 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향상과 음악상, 편집상을 받았다.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셔터 아일랜드’는 23일 재개봉한다. ‘셔터 아일랜드’는 정신

병원이 있는 고립된 섬 셔터 아일랜드에서 환자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연방보안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2010년 개봉했다.

스코세이지의 페르소나로 꼽히는 리어 나도 디캐프리오가 보안관 역을 맡아 강렬 한 연기를 선보인다.

◇광복 의미 되짚는 ‘아이 캔 스피크’…제

2차 세계대전 다룬 ‘미드웨이’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다 시 돌아볼 수 있는 영화도 재개봉한다.

나문희와 이제훈이 출연하고 김현석 감

독이 메가폰을 잡은 ‘아이 캔 스피크’를 다

음 달 상영한다.

‘아이 캔 스피크’는 민원을 많이 내기로 유명한 옥분(나문희 분)과 공무원 민재(이

제훈)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2017년 영화다. 개봉 당시 일본군 위안부라는 무거운

호평받 았다. 주연 나문희는 호연(好演)으로 청룡 영화상, 대종상 영화제, 백상예술대상 등 에서 여우주연상을 석권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미드웨이해전을 다룬 전쟁 영화 ‘미 드웨이’도 8월 재개봉한다. 진주만 공격 이 듬해 벌어진 이 전투는 2차 세계대전의 향 방을 결정지었다고 평가받는다. ‘미드웨이’는 2019년 개봉했다. ‘투모로 우’(2004), ‘2012’(2009), ‘화이트 하우스 다운’(2013) 등을 연출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구이룬메이(계륜미)와 천보린(진백림)이 출연한 대만 청춘영화 ‘남색대문’,

상 영하는 감독전도 열린다. 일본 대표적인 영화 감독 소마이 신지( 相米愼二)의 ‘이사’도 오는 23일 개봉한다. ‘이사’는 히코 다나카의 소설 ‘두 개의 집’ 을 바탕으로 부모의 이혼을 마주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1993년 열린 제46 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영끌족에 공감 못해도

치열하게 연기”

“주인공 우성에게 공감은 못 했어요. 저는 모든

걸 쏟아 넣고 ‘제발 잘돼라’ 하는 스타일은 아니

거든요. 그렇지만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이해가 됐

죠.”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 속 주인공 우성 역을

맡은 배우 강하늘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이나 층간소음 모두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다며 이렇

게 말했다.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하

늘은 “(집을 사기 위해) 모든 걸 다 거는 것도 결국 ‘

승부사 기질’”이라며 “저였다면 비상구 하나 정도는, 이를테면 어머니 땅 정도는 남겨놓지 않았을까”라며 웃음 지었다.

‘84제곱미터’ 속 우성은 모은 월급과 대출금, 당겨 받은 퇴직금과 어머니의 시골 땅을 판 돈까지 모두 끌 어모아 산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에 시달린다.

강하늘은 “매매하기 전에 그

붙였다.

평소 성향과는 다른 인물이 지만 연기는 치열하게 했다.

강하늘은 극 중 우성이 코인

투자에 열을 올리는 장면을 언 급하며 “컷이 끝날 때마다 감

독님과 회의하며 진짜 치열하

게 찍었다”며 “건설적인 순간

들이었고, 그게 너무 재미있었

다”고 떠올렸다.

우성이 경찰서에서 테이저건

을 맞고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혹시나 코미디처럼 웃기

게만 보일 가능성을 가장 경계했다”고 말했다.

강하늘은 “감독님과 저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그림을 제일 원했다”며 “블랙코미디처럼 만들고 싶었

는데, 원하는 분위기가 난 것 같다”고 했다.

땀자국이나 수염 길이 하나까지 신경 쓴 김태준 감 독의 ‘디테일’이 현실감을 더했다고도 평했다.

강하늘은 “예를 들어 카메라가 제 손만 찍고 있을

때도, 손끝에서 땀이 한 방울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야 했다”며 “한 장면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았던 것 같 다”고 회상했다.

김 감독은 땀에 절었던 옷이 마른 상태를 찍을 때 도 ‘땀이 이런 모양으로 났으니까, 말랐을 땐 소금기 가 이 정도 돌아야 한다’는 식으로까지 디렉팅을 했

다고 한다.

늘 주변에 밝은 에너지를 전파하는 ‘배우 강하늘’의

비결도 설명했다.

강하늘은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을 떠올리면 작품

의 흥망이나 관객 수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촬영

할 때 재미있었던 순간만 떠오른다”며 “작품의 흥망

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현장을 얼마나

재미있게 즐기느냐”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화가 잘되고 못 되고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날 하루 촬영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뿐”이라고 배우

로서의 신념을 밝혔다.

“’84제곱미터’는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작

품 중 가장 ‘극현실주의’적인 작품이 아닌가 생각해

요. 현실에서 나올 수 있는 스릴러 장르를 보고 싶으 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평범한 얼굴로 시작해

“민주영이 첫 회에서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지막 회에서는 피로 얼룩지고 상처 때문에 일그러 진 괴물 같은 얼굴이 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17일 서울 강남구 프레인TPC 사옥에서 만난 배우 오정세는 JTBC 드라마 ‘굿보이’ 속 악당 민주영을 이 렇게 연기했다고 돌아봤다.

민주영은 낮에는 모범적인 관세청 7급 공무원이지

만, 밤이면 마약과 자동차 밀수 등 온갖 범죄에 손을

대고 있는 지하 세계 거물이다.

사연 있는 빌런도, 코믹한 깡패도 아닌 두 얼굴의

악한을 표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스타

일링과 표정, 말투 등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했다.

오정세는 “극 중 다른 악역들은 각자 사연이 있지

만, 민주영은 동정심을 느낄 수 없는 완전한 악인으로

생각했다”며 “사실 약간만 방향을 틀면 재밌게 만들

수 있는 대사 포인트들이 있었는데, 일부러 힘을 풀지

않고 연기했다. 민주영이 가볍거나 인간답게 보이지 않길 바라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마트폰에 저장해뒀던 이미지 하나 를 꺼내 보여줬다. 한쪽 눈썹 위에 세로로 검은 흉터 가 난 외국인의 얼굴이었다. “ ‘굿보이’ 작품을 접하기 한참 전 눈에 들어와서 저 장해 둔 영화 스틸 이미지에요. 민주영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이런 식으로 얼굴에 상처가 있으면 했고, 분장팀에 말해 실제로 적용하기도 했죠.”

의상과 헤어스타일에도 신경 썼다. 초반에는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머리카락도 세팅하지 않은

채로 등장해 공무원 민주영을 표현하려고 했다.

오정세는 “자신의 세계가 무너질 리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민주영의 무기”라며 “(그는) 큰 권력과 검은돈 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라

작 지만 큰 어려움이었다”고 웃었다. 이번에 강렬한 악역을 했으니 다음에는 선한 역을 원할 법도 하지만 오정세는 “내가 다음에 뭘 하고 싶 다고 계획하고 싶지는 않다. (정해두지 않고) 좋은 작 품을 만나고 싶다”고 열린 태도를 보였다. 연기 경력만 30년이 가까워진 그의 목표는 앞으로 도 오랜 기간 즐기며 활동하는 것이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멋있는 배우나 좋은 배우 가 될 자신은 없었지만, 오래 할 자신은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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