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금요일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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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웨이에서 오클랜드 스트리트로

우회전 핸들을 틀자마자, 눈부신 초록의 나

라가 시야에 확 펼쳐졌다. 눈이 맑아지고 머

리가 시원해진다. 문득 가와바타 야스나리

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

다.’로 시작되는 설국(雪國)의 첫 페이지가

떠올랐다. 하얀 눈의 나라로 들어가는 대신,

나는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든 별세계로 들

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길은 조금 지나

면, 디어 레이크 파크 숲을 우측으로 끼고

돌면서 계속 이어진다. 여기에선 자동차 창 문을 내리고 숲으로부터 오는 신선한 공기

를 한껏 들이켠다. 마음속까지 시원해진다.

이 멋진 도심 속의 가로수 길을 이용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몇 년간 이

용하던 프레이저 하이웨이가 공사로 전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대안으

로 1번 하이웨이를 타게 되면서, 이어지는

이 길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도로공

사로 늘 다니던 길이 폐쇄된다는 표지판을

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실망과 짜증이 났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그토록 변화를 싫어하

고, 늘 하던 관성에 따라 움직이려는 걸까?

길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드라이브 중 나의

마음은 초록으로 촉촉히 물들어 갔다. 물론

공사가 완료되어 이전 길을 사용할 수 있게

되더라도, 예전의 길로는 안 갈 것이다. 지

금 이 길이 내 맘에 꼭 들기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태평양을 건너 밴쿠

버까지 오게 된 것도 변화에 저항하며 끝까

지 버티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바꾼 때

문이다. 오랫동안 다니던 일터에서 원치 않

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기때문이다. 엎어진

한 켠에 곱게 접어 놓았던 버킷 리스트를 꺼

내 보았다. 젊은 시절 늘 꿈꾸던 ‘외국에서

살아보기 ’였다. 그런데 내 나이가 이미 50

대 중반에 다가서고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는

가, 어찌 어찌해서 도움을 받아 밴쿠버에 발

디뎠을 때는 50대 후반이 되어 있었다. 이

후 알게 된 지인들로부터 ‘이 나이에 여기

는 왜?’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내 대답은

항상 ‘젊은 시절 나의 로망이었고 버킷 리스

트 1호였는데, 그 어려운 것을 이루었다.’였

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했다. 나무도 뿌리

째 옮겨 심으면 잘 자라기 힘든데, 오래된

나무를 뿌리째 옮긴 것과 같으니 고생은 온

전히 나의 몫이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겪

지 않을 일을, 뒤늦은 나이에 수도 없이 겪

었다. 오죽하면 내가 사는 동네에 공원 하나

가 있는데, 그것이 공원이고 이름이 키즈비

파크(Kisbey Park) 란 걸 인식한 것은, 이 동 네 살면서 6년이 지난 후였다.

다행히 고생만 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경험한 적 없는 배려하는 마음을 느껴 보

기도 했다. 어느 날 늘 다니던 메트로타운 의 캐네디언 수퍼스토아에 들렀다. 내가 고

른 물품은 땅콩 캔 하나와 미용용품 하나 두

가지 합해서 20불이 채 안되었다. 그런데 내

가 계산대에 섰을 때 앞 사람의 카트에는 물 건이 잔뜩 실려 있었다. 계산이 좀 늦어 졌 지만, 무심하게 내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계산하려는 데, ‘이미 계산 이 끝났다.’는거다. 놀라서 다시 물으니, 앞

사람이 계산했다는 거였다. 앞 사람은 막 떠 나려던 참이었다. 나는 ‘아니에요’ 라면서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말이 잘 나오지가 않 았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기에. 계산한 사람은 하얀 얼굴에 짙은 눈썹을 한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

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자기가 너무 많은

물건을 사서 내가 많이 기다렸고, 내 물건은

달랑 두 가지 뿐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같이

계산했으니 좋게 생각해 달라고 한 것 같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감사의 말도 제대

로 못한 채,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내 가 캐나다에 와서 이런 경험도 해보는구나.

같이 솟아올랐다. 아쉽지만 아직 실천은 못

하고 있다.

여기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부터는, 이전으로 돌아가서 예전에 원치 않게 그만 둔 일을 계속하게 해 준다 해도, 그 선택은 안 한다이다.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길로 왔기에 많은 인생 경험을 해 볼 수 있었고, 오늘 내가 누리는 소소한 기쁨도 있다고 믿 는다. ‘되어도 좋고, 안되면 더 좋다.’란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살면서 한 치 앞을 예측 못

잡고 주저 안게 만들고, 탄식 하게 만든다. 궤도를 이탈했다고 느껴 방황 하기도 하지만, 돌고 돌아서 다시

외국 살이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예로 부터 드물다는 고희(古稀)에 이르렀다. 이 나이는 종심(從心) 이라고도 불린다는데,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벗어나

지 않았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하고 싶 은 대로 해도 되기는 커녕, 귀도

배우기이다. ‘이 나이에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스쳐 지나 갔으나, 눈 딱 감고 클래스에 등록했다. 그 런데 클래스 메이트 중 한 분이 80세 라는 것이 아닌가! 그 분은 70대 중반에 이민 와 서 영어 클래스에 다니다가, 지금은 우리 글 과 시를 배우려고 온 것이다. 외모도 연세에 비해 젊어 보였으나, 내면의 열정이 은연 중 에 밖으로 비치어 마치 소녀와 같은 느낌을 내게 주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늙어가고 소멸한 다. 살아가는 과정, 늙어가는 과정, 죽어가 는 과정은 다름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지

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삶을 극대화하면 서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죽는

날까지 낭만적으로 자유롭게 살려면 공부

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죽을 때까지 깨

어 있고 굳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늘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정 임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그리움 바람이 전해준 말 제13회

김에 쉬어 가라고 했던가, 그 동안 마음 속

마음이 훈훈해 져서, 나도 이런 느낌을 다 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전문은 www.vanchosun.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그라져 가는 물안개

아침 햇살에 부서지고

파도가 뿜어낸 당신 닮은 은빛 숨결 물 비늘이

허공 위로 흩어지네

그대 향한 서성임이

아픔의 태산 되어 울고

요란한 살여울

지쳐 밀려온 그 자리

차디찬 빙산 이어라

볕 뉘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한 당신 목소리에

오늘도 목이 메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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