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금요일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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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 틈새를 메워 서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지만, 아이도 많

고 큰 개도 키우다 보니, 우리 집은 항상

물건이 넘친다. 희한하게도 분명 자주자주

비워내고 있지만, 어느새 비워둔 그 자리

에 또 다른 물건이 쌓여 있고, 채워 지고

의 반복이다. 아마 나도 모르게 비우지 못

하고 물건들을 붙잡고 있는 성향을 가졌을

지 모르겠다. 마침 이를 깨닫게 된 경험을

얼마 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가만히 테이블

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오

전의 여유를 잠시 즐기는 것은 나의 삶에

작은 낙 중 하나다. 이때 혼자 앉아 여러

생각을 하며 머릿속을 정리하거나,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함을 즐기려고 하

기도 한다. 문득문득 가구 배치를 바꾸고

싶다 거나, 집안의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

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하루는

주방의 서랍장을 다 정리하고 싶어 져서 서랍들을 열어 정리를 시작했다.

가장 위에 있는 서랍을 열어보니, 그곳 엔 수저가 가득했다. 낡아진 나무 젓가락 은 모아서 묶어 버리려고 담아두고, 낡은

포크, 숟가락 등을 분류해서 버리려고 했 다. 그러다 작고 낡은 하늘색 손잡이의 어

린 아이 숟가락이 눈에 띄었다. 로보카 폴 리”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오래된

낡은 숟가락이었다. 5살, 7살이던 아이들

과 함께 캐나다로 올 때, 당시 아이들이 사 용하던 숟가락과 에디슨 젓가락 등등을 모

두 가지고 왔었다. 그런데 10년간 자연스

럽게 하나 둘씩 망가져서 버리고, 이사할

때 사라지고,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것들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흔 적이었다. 아마도 둘째 아들이 한국에서부 터 사용하던 작은 숟가락이었던 것 같다. 이 수저가 들어있는 서랍을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봤을 텐데, 왜 발견하지 못했을 까? 너무 자주 봐서, 익숙해져서, 눈에 띄 지 않았던 것일까? 이렇게나 눈에 띄는 색 상과 모양을 가진 아이용 숟가락을 보지

않았다니 스스로도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

없기도 한 마음이 일었다. 숟가락을 좀 더

자세히 보니 메탈 부분과 플라스틱의 연 결 부위에 작은 녹이 보였다. 숟가락 머리

아래 부분은 약간 휘어져서 제대로 쓸 수 있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또한 손잡이 색

은 바래 져서 예전에 알록달록하던 로보카

폴리 캐릭터는 이제 거의 흔적만 남아있

었다. 글씨도 원래 알던 사람이 아니면 알

아보기 힘들 정도로 닳아져 잘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작

은 숟가락 안에 남아있었다. 처음 정리를 시작했던 것이 안 쓰는 물

건을 버리고자 함이었으니, 이 작은 캐릭

터 숟가락 또한 버려야만 하는데 좀처럼

쓰레기를 분류해둔 곳으로 손이 가지 않더 라. 이제는 낡고, 쓸모없는 숟가락인데 이 를 버리려니 마지막 하나 남아있는 내 아

이의 어린 시절을, 그 기억을 버리는 것만 같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몇

이상목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나무와 나무 틈새 바위와 바위 틈새 눈보라 살을 비벼 맞는 통한의 세모

빙하도 꽃을 피운다 틈새를 메워가며

저문 노을의 궤적 가득 찬 산 허리에 꼬장한 바람들이 뒤집는 산촌 풍경

*삭(朔)지나 걸어 나오는 대비조차 멋진 달

로키는 돌아누워 내면의 싸움터에

든든한 후원자로 교만을 경고한다

무성한 내 안뜰 악습 온기 없이 싸늘한

이 겨울 민 낮 들어 땟국을 벗고 싶다

로키여 수세 몰려 경(景)을 포기하지 마라

못내 아쉬워서 결국 버

리지 못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생각보다

단순하고 깔끔하게 잘

수 있는 위인이 못 된다. 여전히 낡 고 지난 것들을, 그것이 유행이 지나 아무 도 사용하지 않고, 그 용도로 사용할 수 없 을 만큼 닳아졌어도 추억이

담겨있는 것들이라면 다시 그대로 그 자리에 둘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걸 다시 꺼내어 추억을 떠올리거나 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내 손으로 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잘 정리 정돈된 깨끗한 집에서 살

아가기에 나는 너무 미련하다. 어쩔 수 없 이 오늘도 다시 내 손으로 비워두려던 그

자리에 버리지 못한 물건을 또다시 채워

놓았다. 그 채워놓는 순간, 그것이 비단 찰

나일지라도 어린 시절 마냥 예쁘기만 했던 아이들 과의 추억을 잠시 기억하는 것만으 로도 행복하고 의미 있다고, 그렇게 생각 했기 때문이다.

白樺皮 흰 속살마저 틈새를 메워 섰다

*朔-음력 초 하루 *景-아름다운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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