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BRICKS - Yield to the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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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여행 매거진 BRICKS - 봄의 미술관


여행 매거진 BRICKS 봄의 미술관 Yield to the Art

피렌체 병에 걸린 사람들

CONTENTS 4

로스코식 이별

18

홍콩에서 사진가로 산다는 것

44

벚꽃 길 따라가면

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 화이트 템플 지금은 잊혀진 왕국에서 온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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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피렌체 병에 걸린 사람들 글 Stella Kim

04 여행 매거진 BRICKS - 봄의 미술관


피렌체 병에 걸린 사람들 05


이른 아침, 찬 공기에 코가 살짝 시려온다. 일어나기 싫은 늦겨울 2월 날씨에 오늘도

투어 고객을 만나기 위해 간단히 씻고 집을 나선다. 오전에만 일하는 아파트 관리 아 저씨와 아침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아파트의 유일한 동양인을 살갑 게 대해주는 아저씨와 몇 마디 안부 인사를 주고받고 서둘러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으로 향하는 트람을 탄다.

언제나 그랬듯 기차역 안에는 떠나는 사람들과 도착하는 사람들이 뒤섞인다. 떠나거 나 닿거나 하나같은 설렘을 안고서.

격자로 된 피렌체의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중세와 르네상스시대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벽안에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굳건할까. 어째서인지 만져봐야 할 것 같 은 호기심에 건물에 손바닥을 대고 스쳐 지나간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의 두

오모,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를 비 롯해 피렌체 도심의 주요 명소들은 오백 년 전 르네상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눈에 띄게 낡았다 싶은 벽의 건물엔 천 년의 역사가 담겨 있지만, 견고하고 단단 해 불도저가 밀어도 끄떡없을 것 같다. 분명 이 건물을 지은 이들은 적의 침입을 막으 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06 여행 매거진 BRICKS - 봄의 미술관


피렌체 병에 걸린 사람들 07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로 등록되어 있는 피렌체는 그 자체가 미술관이다. 무심코 꺾은 골목 어귀에 16세기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거나 집 앞 슈퍼 옆 작은 분수대에 중세

시대에 조각했을 법한 그리스 신들이 우두커니 서 있다. 대부분의 그림들은 종교화이

며,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프레스코화는 붓으로 도화지에 그리듯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석회질 반죽을 벽에 평평하게 펼친 뒤 밑그림 을 그리고 붓으로 물감을 찍어 색을 스며들게 하는 기법이다. 그런 그림은 훔쳐갈 수 도, 떼어 내 미술관에 전시할 수도 없다.

간혹 지진으로 인해 훼손된 건물에서 그림이 그려진 벽을 박물관으로 통째로 옮겨와 전시하는 경우도 있고, 벽 위의 그림들에 투명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씌어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도 한다. 그림 밑에는 그림의 기법과 내용, 추정 되는 제작 시기를 친절하 게 적어 놓았다.

골목은 그대로 중세 미술관이다.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정원 속 미술관을 걷는 것이다. 이 도시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정도다. 투어객들에게 피렌체를 소개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감격에 겨워 울 컥하기도 하는데, 그게 몇 번이었는지 세지도 못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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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병에 걸린 사람들 09


어느새 피렌체 병에 걸린 걸까. 피렌체 사람들은 피렌체 병에 걸려 사는 것 같다. 집

앞 마트에 물 하나를 사러 가면 그 앞 골목에 15세기 조각품이 서 있고, 자주 가는 책 방 골목 벽에는 17세기 종교화가 그려져 있다. 미술관에 사는 피렌체 시민들은 자기 도시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다른 도시를 가면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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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병에 걸린 사람들 13


내가 겪어본 피렌체 사람들은 꽤나 도도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의 조상들이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이고, 일찍부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고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그뿐인가, <데카메론>을 남긴 근대 소설의 선구 자 보카치오, 정치, 시, 음악 그리고 한 여자를 사랑하며 <신곡>이라는 대 희곡을 남 긴 단테 알리기에리가 이 작은 도시 출신들이다.

이탈리아 표준어도 피렌체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1861년 3월 17일, 이탈리아가 하

나의 국가로 통일된 이래 1865년부터 1870년까지 이탈리아의 수도는 피렌체였다. 피렌체 시민들이 늘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척추가 바르게 펴져있던 이유가 납득이 간다. 그래서일까 피렌체 시민들에게 혹시나 ‘당신은 이탈리아 사람인가요?’ 라고 물 어보면 그들은 항상 ‘네. 저는 피렌체 사람이에요.’ 하고 말한다. 마치 ‘한국 분이신가 요?’ 라고 물어보면 ‘네. 저는 부산사람입니다.’ 라고 하듯이 말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태어난 곳에서 초중고를 다 니고 친구들은 모두 평생을 함께한 가족 같은 동무이며, 대학교는 집과 가까운 곳으 로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동네에서 연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그 자식

에게 집과 일을 물려준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나를 거쳐 내 아이와 손자까지 으레 물려받게 될 것이다. 행여나 학교와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도시를 선택해 살 아야 했다면 노년이 되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피렌체 병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도시에서 앓고 있는 고약한 병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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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병에 걸린 사람들 15


피렌체의 작은 옷 가게에서 바지를 사던 날이었다. 주인이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 어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답했더니 마치 유명인을 본 것처럼 ‘와! 그 나라는 미래의 도 시잖아. 그 곳에서 온 거야? 거긴 어때?’ 하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캐물었다. 문 득 몇몇 사람들은 자기 도시가 미래의 도시로 발전되기를 바랄 수도 있지 않을까 하 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묶여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고 좁

은 골목이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아니면 지하철이라도 간절히 바라진 않을까? 현대 적인 건물이 지배하는 21세기가 아닌가. 그 의문은 일단 나만의 것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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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Stella Kim은 짧은 여행이 아쉬워 낯선 도시에 닿으면 3개월 이상 살아보고자 했다. 호주를 시작으로 필리핀,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태국에 머물렀다. 다시 이탈리아에 돌아와 4 년째 피렌체에서 거주하며 여행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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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식 이별 글 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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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식 이별 19


#1 건물의 모티브는 다름 아닌 갓이라고 했다. 보도 자료 같은 곳에 실린 조감도를 보면

정말 그렇게 보인다. 선비와 예술이라니,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가까이 다가갔을 때야 보인다. 나는 예술의 전당을 발치에 둘 때, 내가 이곳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하지만 언덕 밑에서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면 촤 르륵 펼쳐진 계단 때문에 잠깐 숨이 멎기도 한다. “저 계단을 언제 다 오르지.” 생각을 삼키기도 전에 발이 먼저 계단을 밟는다. 막상 한 계단을 밟아 보니 두 번째 계 단을 밟는 건 어렵지 않다. 허벅지 윗근육이 움직이는 걸 느끼며 처음 마냥 고개를 들

었더니 오르기 시작한 순간보다 하늘이 가깝다.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만큼 땅과 내 가 멀어졌음을, 무엇보다 공기의 냄새가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언덕을 오르는 것도, 땅에서 멀어지는 것도, 하늘과 가까워지는 것도. 그 어떠한 것도 내겐 목표가 아니었다. 그저 시작하는 것.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내겐 무엇보 다 중요했다. 막상 굴러가기 시작하면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일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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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와 내가 가까워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은 스스로 원해서 가까워지고 또 멀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삶의 대부분의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다가오고 어쩔 수

없이 멀어진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절실한 시 기에 적절하게 눈앞에 나타났으며, 내가 원하던 것 이상의 순수한 감정을 갖고 있었 다. 우리는 만족하며, 감사해하며, 충실했다.

그와 내가 멀어진 것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원했다. 그는 안정을, 나는 모험을. 어린 시절부터 모험으로 기

울던 나의 영혼을 그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멀어졌다. 멀어지기 위해 울었으며 더욱 멀어지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서로를 향해 가까워지던 걸음을 돌려 원래의 모습을 향해, 처음보다 빠른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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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간단하게 도식화 해보면 나는 나의 삶에서 그와 나의 삶으로 0.3km정도 직진했고, 그의 삶으로 가는 거리가 0.5km정도 더해졌기에 원래의 나, 과거의 나로 회귀하기 위해선 0.8km나 되는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처음엔 쉬울 줄 알았다. 원래의 나는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의 내가 되기 위해서는 기 록된 무언가가 있어야 했는데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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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식 이별 23


#4 좋아하는 그림을 보고, 잊고 있던 음악을 듣고, 희생이라 생각했던 관계의 단절을 회 복하며 그렇게 난 원래의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 나 라는 사람을 찾기 위한, 나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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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식 이별 25


#5 그날은 이상한 날이었다. 갑자기 베토벤 심포니가 듣고 싶었고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높았으며 바람은 여름날의 미풍처럼 시원했지만 서운한 기운을 주는 날이었다. 예정 에 없던 음악회 티켓을 들고 찾아간 예술의 전당에는 봄날의 전시가 한창이었다. 마

침, 한가람미술관에서 로스코Mark Rothko展도 한창이었기에 이별로 인해 잊고 있 던 화가의 전시까지 내친 김에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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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and Orange, Mark Rothko, 1955

로스코식 이별 27


#6 “흰 코트가 참 잘 어울리네요. 저도 그런 옷 좋아하는데 남자 옷은 도통 그런 옷이 없 더라고요.”

“아, 어떤 사람들은 목욕 가운 같다고 하던데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햇살에 눈이 부시네요. 코트에 반사되는 빛이 눈이 부셔요. 옷 때문인지 사람 때문 인지 모르겠어요.”

“아… 저 때문일 거예요. 하하” 우리의 첫 데이트는 리움이었다. 꽁꽁 얼어있던 눈이 녹을 만큼 찬란한 햇살에 눈부 셨던 겨울의 끝자락을 걸으며, 닿을 듯 말 듯 손가락을 의식하며, 미술관을 향해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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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술의 전당에서 마크 로스코의 생애를 다룬 연극을 하던데. 혹시 로스코 아세 요?”

“로스코요?”

“네, 러시아계 미국인인데 현대미술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 이야기를 다 룬 연극이라는데…”

“그럼 보러 갈까요?”

“네, 좋아요. 그럼 연극 보기 전에 먼저 로스코 그림을 봐야겠네요.” “네, 좋아요.”

우리는 리움에 단 한 점 있는 로스코의 그림 앞에 섰다. 혼자 볼 땐 별 감흥이 없었던

그의 그림 앞에 미묘한 설렘을 안고 서 있었다. 새로웠다. 마치, 뛰고 있는 나의 심장 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강렬한 Red. 새삼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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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미술관 로비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과 누군가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 두리번거 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눈을 피해 어두운 천막 사이로 들어간 나는 처음으로 보

는 형태가 있는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당황했다. 오로지 Red를 만들어 내기 위한 붓 질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색 이면에는 서로 다른 형태의 결합과 여러 실험의 흔적이 남

아 있었다. 허리가 긴 여자의 형태, 구름 같은 덩어리들의 결합, 하나가 되기를 거부하 고 각기 다른 색으로 존재하는 형태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그림은 형태를 무너트 리고 색의 본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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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삼면이 색으로 둘러싸인 공간, 길고 딱 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혼자 울고 있었다. 애매한 선의 경계를 응시하며 나는 깨달았

다. 서로 다른 색을 같은 색처럼 보이게 한다는 게 얼마나 억지스러운 것인지. 서로 다른 개체가 하나 되기 위해선 더 강렬한 색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 혹시 미량의 Black이라도 섞여 들어가면 저 모든 색이 검은색이 되어 버리고 말리라는 것을. 우리는 헤어져 마땅한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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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 시간 반 동안 하나의 그림 앞에 앉아 넋을 놓고 울고 있는 내게 누군가 다가왔다. “그쵸? 색과 색의 경계를 실눈을 뜨고 응시하는 나의 모습을 아무에게나 보여줄 순 없어요.”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희미하게 보이는 낯선 사람의 숨결에 고개를 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침묵과 고독을 끝내고 다시 한 번 숨을 내쉬고 자신의 팔을 쭉 펴는 것이다” - 마크 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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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Mark Rothko, 1970

글쓴이 별나는 클래식 작곡 전공, 빌보드 코리아 아나운서, 예술 강사를 거쳐 이젠 현실과 이 상의 경계에 선 (우아한) 몽상가. 수전 손택을 닮고 싶고, 그보단 소박하게 전 세계를 산책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시를 쓰고 소설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때론, 몽상의 나래가 현실의 결보다 나을 때가 있다. 아니, 많다.

로스코식 이별 33


벚꽃 길 따라가면 글 프리드리히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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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길 따라가면 35


바야흐로 3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습니다.

이게 매우 중요한 날인 게, 한국에선 아주 한참 전에 그 실효성의 문제로 폐지된 “서 머타임”이 유럽연합인 이곳에서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서머타임은 매년 3월 마지막 주 새벽 2시가 3시로 당겨지면서 시작되는데요, 아침 형 인간인 제게는 이 한 시간의 강제 시차적응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암튼 이놈의 아날로그적이며 야만적인 유럽 인간들의 제도 때문에 매년 이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제 길고 어두웠던 독일의 겨울이 끝남을 알리는 공식적인 날이기에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한국과의 시차도 서머타임이 끝나는 10월까지 다시 7시간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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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길 따라가면 37


본의 시내 중심 시청사를 왼쪽에 두고 시작되는 ‘알트슈타트Altstadt(구시가)’의 벚 꽃 길은 처음 만났던 11년 전에도 아름답다고 생각은 했었는데요. 몇 년 전부터 갑자 기 국내 및 해외 블로거들의 극찬을 받으며 폭풍 사진질이 시작되더니, 이제 벚꽃 시 즌만 되면 원근 각지에서 벚꽃놀이를 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미어터지는 본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어느 사이트에서는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 중 하나라며 오 버 30000%의 글을 써놨더군요.

뭐 아름답긴 합니다만, 죽기 전에 못 본다고 그렇게 크게 억울할 것까지는 없을 듯합 니다.

암튼 말씀드렸듯 한국 여행 블로그에도 심심찮게 올라가는지 이곳에 가면 한국 분들 도 많이 오시는 것 같습니다. 한국어가 자주 들려요. 문제는 이 벚꽃이 이렇게 활짝 피

는 시기가 매우 짧을뿐더러 일조량과 비가 자주 오는 이곳 날씨로 언제 갑자기 확 피 우고 지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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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저한테 미리 물어 보시면 됩니다!!!

벚꽃 길 따라가면 39


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아름다운 꽃과 어우러지는 주변 건물들, 봄의 정취, 마음의 안정, 무엇보다 나이 들며 꺼져만 가는, 삭막해지는 감수성의 회복, 매년 보지만 올해 또 보고 싶어지는 애잔한 항수.

이런 것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 단지 이곳에 제 단골 이발소가 있어서 온 것뿐이라는 것이지요. 자, 길을 쭉 훑으며 올라오다 이런 이발소가 보입니다. 제가 십여 년을 다니는 이발소!

이름도 없어요. 그냥 ‘이발소’입니다.

우연히 이라크, 시리아 친구들을 알게 되고 같이 미국을 욕하다가 친해지고, 이 친구 들이 운영한다는 이 이발소에 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IS를 욕하고, 대한민국이 미국 의 영원한 우방이라 말하며 친해진 미국 친구도 있습니다.)

제 마지막 한국의 봄은 2003년인데요, (뉴스로 보면 미세먼지다 황사다 그래서 걱정 도 많이 되지만, 한국의 봄도 세계 최고의 클래스라고 생각합니다. 오늘같이 봄기운 이 느껴지는 날엔 아름다웠던 한국의 봄과 알록달록했던 산과 들이 많이 그리워지네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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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길 따라가면 41


42 여행 매거진 BRICKS - 봄의 미술관


본 벚꽃 길

본 시청사 오른편으로 펼쳐진 약 3-400미터정도의 작은 길.

본 중앙역에서 도보 15분. 트람 62번 66번 각각 5분 이내 Stadthaus 하차.

길가에 몇몇 커피숍과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가 하나 있음. 아랍식 구레나룻을 만들어주는 ‘이발소’가 있음.

이 벚꽃을 가장 아름답게 보려면 하늘이 그날을 허락해야 하지만, 필자는 알 수 있음. (그러나 관대하진 않음.)

죽기 전까지 꼭 볼 필요는 없으나 봐서 나쁠 것도 없음.

글쓴이 프리드리히 융은 2003년 독일유학 중 우연히 독일 회사에 취직하여 현재까지 구 서독 의 수도(현재 독일의 행정수도)인 본에 거주중인 해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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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사진가로 산다는 것 글 카이 브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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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사진가로 산다는 것 45


홍콩에는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거위-목 다리(goose-neck bridge, 鵝頸橋)이라 불리는 고가도로가 있다. 2015년, 나는 그 주변의 아파트에서 6개월 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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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나는 어마어마한 보증금에 6개월 치 월세를 한 번에 선납해야

했다. 홍콩의 주택 임대 계약은 보통 1년 거주에 2년째는 선택 사항인데, 집주인은 계 약 기간이 6개월의 짧은 기간이라는 이유로 내게 비싸게 협상하기를 강요했다. 입주

전 아파트가 깨끗하고 보수를 해놓았다고 했던 건 과장된 표현이었다. 청소부는 바닥 에 침을 뱉었으며, 집을 수리하러 온 사람은 전구 몇 개를 교체했을 뿐이고, 부엌의 창 은 떨어질 우려가 있으니 절대로 열지 말라고 했다.

홍콩에서 사진가로 산다는 것 47


시작은 불길하였으나, 다들 제 할 일을 했고, 서로 성가시게 굴지 않았다. 그들의 생 활방식은 보통 삶이 흐르게 내버려 두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삶에 관심 없는

것이었다. 이전에 홍콩에 수년간 거주할 때 나의 광둥어는 중국 선생님에게 부지불

식간에 두통을 안기면서 유창해졌었다. 홍콩 사람들은 내가 그저 스쳐 가는 외국인 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광둥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꽤 친절하

고 수다스러워졌다. 홍콩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자기 친한 사람들끼리 뭉쳐 다니느라 바빴고, 나도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내게 그다지 관심을 보 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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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사진가로 산다는 것 49


그 아파트에 사는 동안 나는 소설 출간을 위한 작업을 했고, 사진 전시회를 열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중 몇몇은 성공을 거두었는데, 서점도 별로 없고 책이라고 해야 편의 점에서 파는 연예 잡지, 사주팔자 풀이집 뿐인 홍콩의 출판업계에 내 소설을 출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진 전시회는 끝내 열지 못했다. 갤러리 주인들은 작품의 내용이

나 퀄리티와는 상관없이 유명세에만 관심 있어 보였다. 오직 거물들만이 관심을 끌 뿐이었다. 홍콩의 주택은 벽 자체가 넓지 않은데다, 벽에 거는 작품도 서예를 선호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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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사진가로 산다는 것 51


홍콩 주택의 벽이 매우 좁으니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사진 작가들은 고객들이 두어

장의 높은 퀄리티의 사진을 의뢰할 것이라 예상할 테지만 - 사실 나도 그런 입장이었 지만 -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였다. 일반적으로 양과 가격이 우선 고려 사항이었

고 사진의 퀄리티는 거의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그 결과 홍콩에는 그저 그런 수준의 사진들이 떠돌아다녔다 (사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언제나 옳으신 고객에 게 시시한 사진으로 가득 찬 CD 하나를 챙겨가는 것보다 소량이더라도 몇 개의 멋진 사진이 훨씬 낫다고 설득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야만 했다.

홍콩에서 일하는 것은 때로는 좌절스럽기도 했다. 홍콩을 떠날 때가 가까워지고, 보 증금이 떼일까봐 불안했던 마음과는 달리 보증금은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곧바로 내 계좌로 환불 되었다.

52 여행 매거진 BRICKS - 봄의 미술관


글쓴이 카이 브룩스Kie Brooks는 Imperial College London에서 A.I. 전공으로 박사학위 를 받았고, 홍콩에서 스튜디오를 열고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현재 서울에서 프리랜서 사진작가 이자, 소설가로 살고 있다.

홍콩에서 사진가로 산다는 것 53


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 화이트 템플 글 베르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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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 화이트 템플 55


치앙마이에서 치앙라이 주를 거쳐 태국 국경 마을인 치앙콩까지 가면, 라오스가 코앞 이었다. 동남아시아 여행의 백미는 십 수 시간씩 버스나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데 있다. 이때 좌석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오롯이 에어컨의 유무다. 야간열차의 일등석

은 호텔급의 침대를 제공해서가 아니라 에어컨이 달려있기 때문에 일등석이다. VIP 버스는 정말 VIP들만 타는 게 아니라 에어컨을 쐬면서 좌석을 조금이나마 뒤로 젖혀 잠들 수 있기 때문에 VIP 버스다. 여행을 하다 보면 돈 씀씀이의 기준이 지역 평균에

맞춰지기 마련인데, 그래서 VIP 버스를 선택하는 일조차 망설여지고는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떴더니 기분이 몹시 나쁘다는 이유로 택시 를 타고 출근하는 비용보다 이곳의 기차 일등석이나 VIP 버스 좌석 한 칸을 차지하는

비용이 훨씬 저렴했다. 게다가 라오스에서는 한국에서 폐차 위기에 몰린 버스를 수입 해 현역으로 돌리는 걸 보고는 했는데, 앞 유리에 금이 간 정도에 그치는 VIP 버스가 그나마 안전해 보였다. 이곳에서 “VIP”란 말은 “Very Insecure Person(매우 불안 정한 사람)”으로 새롭게 정의되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건 뱃길이었다. 치앙마이의 여행사들이 주력(?)으로 파는 2박 3 일의 태국-라오스 간 이동 프로그램은 메콩 강을 따라 라오스 북쪽 국경에서 루앙프

라방으로 내려가는 ‘슬로우 보트’가 메인이었다. 우리 팀은 나를 포함해 모두 10명이 었다. 나중에 슬로우 보트를 딸 때가 되면 그렇게 모인 팀이 수배로 늘어나 거의 120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배에 오른다. (가이드북에서 말하는 안전 탑승 인원은 80명이 다.) 그런 상황을 모르던 나는 2박 3일의 첫날, 순진하게 희희낙락하며 태국 북부를 달리고 있었다.

56 여행 매거진 BRICKS - 봄의 미술관


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 화이트 템플 57


단체 여행이 흔히 그러듯,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때 중간에 뭐 볼 만한 게 있으면 한

번 보고 간다는 보너스가 우리 프로그램에도 있었다. 땡볕이 내리쬐는 치앙라이 주 한복판. 미니버스가 거대한 휴게소 같은 곳에 멈췄다. 밥이라도 먹는 건가 싶어서 주 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저만치 앞에 새하얗게 빛나는 사원을 보았다. 별명도 화이트 템 플White Temple인 그 사원은, 도무지 현실에 발을 디딜 줄 모르는 정신 나간 영혼 들이 이 세상에 세워놓은 하나의 기념비였다.

왓 롱쿤Wat Rong Khun(롱쿤 사원)이라는 버젓한 이름이 있음에도 ‘하얀 사원’이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말 그대로 건물 전체가 흰색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왔을 뿐이지 나는 이곳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나중에 야 치앙라이를 여행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정도였다. 땡볕

아래 하얗게 솟은 사원은 괴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거대한 회반죽 덩어리가 반사 하는 눈 부신 빛이 부담스러워서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망설여 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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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 화이트 템플 59


가까이 다가갈수록 화이트 템플이 상징하는 바가 명확해졌다. 지옥, 또는 지옥 같은 사바세계를 벗어나 극락이나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려면 작은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 이편은 지옥이고 다

리 저편은 극락이었다. 그 둘 사이에 놓인 이 다리는 ‘윤회의 다리’라 불리는데, 윤회 의 고리를 끊고 열반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불교의 교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 다.

그러나 새하얀 외관만 독특한 건 아니었다. 다리를 건너기 전 지나야 하는 ‘지옥’을 구경할 때였다.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고, 고통에 차 구부러진 마디마디가 사실적으

로 조각된 수많은 손이 땅에서 솟아있었다. 악취미라며 몸서리를 치는 와중, 뭔가 이

상한 게 보였다. 영화「프레데터」에 등장하는 잔혹한 우주 사냥꾼 프레데터의 팔이 하나 튀어나와 있었다! 난 좋아하지도 않았던 그 영화를 떠올리며, 내가 잘못 본 거겠

지, 사원에다 할 만한 장난질은 아닌데,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영화 주인공의 손은 그 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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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 화이트 템플 61


그제야 주변에 있는 조각상 대부분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경전 또는 전설 속

에 등장하는 아귀나 수라 대신 러브크래프트식 상상력이 가미된 악마나 괴물의 형상 들로 지옥을 구현해 놓은 것이다. 이걸 그대로 옮겨다가 ‘20세기 공포 영화 전시전’ 같은 곳에 가져다 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면 그런 전시가 끝나고 쓸 모없어진 전시품을 사원 측에서 헐값에 사들였던가.

하지만 이 정도는 속세인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종단의 새로운 시도라고 봐줄 만했다. 정말 놀라운 건 본당 안에 있었다. 한쪽 벽면에 그려진 불화佛畵 속에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캐릭터들이 숨어있었다. 터미네이터, 해리 포터, 스파이더맨, 앵그리 버드,

쿵푸 팬더에 심지어 9.11 테러로 무너진 월드트레이드센터까지. 아무리 태국에 사원 이 많다고 하지만, 일면 불경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속세의 이미지가 차용된 곳이 존 재한다는 사실을 당장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들었다.

화이트 템들도 원래 이런 곳은 아니었다. 그저 허허벌판에 놓인 다 쓰러져 가던 사원

에 불과했었다. 그것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재건축한 주인공은 치앙라이 출신의 비 주얼 아티스트 찰럼차이 꼬싯삐빳Chalermchai Kositpipat이었다. 그는 태국 불

교 예술과 현대적 이미지를 뒤섞은 작업으로 유명세를 얻었는데, 처음에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태국 정부와 불교계는 물론 다른 예술가로부터도 지탄 을 받았다고 한다. 하기야 이 사원에 차용된 소재만 하더라도 종교와 예술 그 어느 쪽

에도 속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세월이 흐르며 그

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이들이 늘어나 종교와 예술, 대중문화가 접점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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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 화이트 템플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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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건 훌륭한 사업 수완일 수도 있었다. 태국 북부를 여행하는 여행자 대부분

은 서양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러하듯, 그들 역시 동양을 향한 막연한 환상을 안 고 이 땅에 온다. 그런데 그곳에서 딱 그네들의 고향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니, 지나가는 길에라도 한 번은 들러보겠다는 호기심이 생길 것이었다. 그렇다, 화이트 템플은 사원보단 관광지라고 할 수 있었다.

예술과 키치 사이, 치앙라이 화이트 템플 65


일행을 모두 태운 미니버스가 다시 엔진을 가동했다. 서로 국적도 다르고 안면도 없

는 여행자끼리 방금 본 사원에 관해 몇 마디 말을 나눴다. 태국인도 아니고 불교 신자

도 아닌 내가 방금 본 사원은 좀 과하지 않았느냐고 볼멘소리를 낸 이유는, 어쩌면 나 와 이 사원의 설립을 백안시한 이들이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동양의 정신을 공유하

는 데 있는지도 몰랐다. 이것이 우리의 종교이고 우리의 예술이던가요? 아니면, 나 또 한 형식에 급급한 꼰대에 불과한 걸까요?

그러다가 문득 본당 한가운데에서 좌선을 하던 승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밀랍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무수한 관광객들 앞에서도 지워지지

않았던 경건한 분위기를 나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 화이트 템플이 종교 예술이 라면 으레 경전에 충실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틀을 완벽하게 깨부쉈다는 사실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쨌든 재미있으니까. 해리 포터나 쿵푸 팬더와 함께 해탈하자는 게 아니라 그

들이 곧 속세의 번뇌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또한, 예술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게 내릴지 몰라도 그 표현에 한계는 없음을, 이름도 쓰기 어려운 아티스트는 보

여주고 싶었는지 모르니까. 방금 무엇을 보았던 건가, 나는 되물었다. 그러나 원래대 로 돌아온 창밖의 풍경 - 나지막한 산등성이와 넓은 논밭의 연속 - 은 아무 일도 없었 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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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베르고트는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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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잊혀진 왕국에서 온 여인 글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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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입구에 스쿠터를 세우고 그녀는 저만치 서 있는 반얀나무 둥치에 매달린 향로 앞으로 다가갔다. 스쿠터는 그녀가 스물여덟 되던 해, 당분간 결혼을 단념하며 그간

모아 온 돈을 몽땅 털어 산 빨간색 베스파다. 향에 불을 붙이고 고개를 숙인다. 무엇을 빌었나, 요사이는 별 걱정이 없었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더위를 견디느라 걱정할 겨 를도 없어진다. 남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는 게 마음에 걸

린다. ‘그건 우리 집만의 문제는 아니니깐.’ 일자리 문제는 호치민 아저씨가 다시 살아 온다 해도 어쩔 수 없을 거다.

그녀가 향을 피우는 건 반얀나무 안에 마을 신령이 산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생김

새가 너무 무서워서다. 기가 약한 사람들은 다들 나무 멀찌감치 돌아가거나 마주쳐야 할 땐 어쩔 수 없이 향불을 올린다. 아오자이를 입고 향을 피우는 모습이라니, 이렇게 나 사진 찍기 좋은 베트남 여인도 없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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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다시는 아오자이를 입을 날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 의 바람대로 학교 선생님이 되면서 다시 아오자이를 입고 말았다. 요즘에는 멋을 부

리고 싶은 젊은이들이 명절에 아오자이를 입고 나와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아오자이 는 보통 여고생들의 교복이다. 다 큰 여자가 아오자이를 입고 있으면 다들 은행원이 나 선생님이겠거니 한다.

그녀는 인민 위원회 뒤편 쌀국수 집을 나와 한강변을 달려 학교로 돌아가는 중이었 다. 점심으로 분 차 카bún chá cá라는 어묵 국수를 사 먹었다. 사이공이나 호치민에 서는 주로 면이 얇으면서 가는 퍼phở를 먹지만 다낭에서는 국수가 둥근 분bún을 먹 는다. 다낭은 해안지방이라 소고기 육수보다 생선이나 어묵으로 육수를 낸다는 것도 다르다. 국수가 나오고 고추와 고수, 숙주를 잔뜩 넣은 다음 생선 소스인 느억 맘으로 간을 한다. 젓가락을 들자 그제야 배가 고팠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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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 반도에서 말레이 인종들이 배를 타고 다낭과 호이

안으로 건너와 참파 왕국을 세웠어요. 인도의 문화를 받아들인 그들은 북쪽의 대월과 천년 동안 전쟁을 치렀지요. 참파 왕 자야 싱하바르만 3세는 싸움을 쉬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월 왕에게 ‘꽝남Quảng Nam, 꽝치Quang Tri, 훼Hue 땅을 넘겨줄 테니

자신에게 여동생을 달라고 했지요. 여러분 중에서도 다낭에서 훼Hue로 넘어가는 해 발 500m 구름고개 하이번海雲 패스를 넘어 본 학생들이 많을 거예요. 대월의 공주 는 눈물로 그 고개를 넘으며 참파왕의 둘째 부인이 되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얼 마 안 돼 갑작스럽게 남편이 죽고 말았어요. 더 큰 문제는 참파에는 남편이 죽으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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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을 함께 묵는 풍습이 있었던 거지요. 대월 왕은 급히 사람을 보내 여동생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조카를 탈출시켰어요. 참파왕국은 군사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자존심도 그렇지만 영토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지요. 구름고개에서 치열한 전투 가 벌어졌고, 참파는 대월에게 패배해 신하국이 되고 말았어요. 많은 참파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오래전 조상들이 살았던 말레이 반도로 떠나갔고, 나머지는 최하층민으로 살아가게 됐어요. 이제 다낭에서 이곳에 참파 왕국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건 거리 곳곳에 핀 참파 나무 꽃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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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국수 값 2만동(1,000원)을 내고 도로 가득 줄지어 선 오토바이 대열에 합류했

다. 큰 교차로가 아니면 신호등이 없다. 도로는 어지럽게 엉켜 있지만 사고는 나지 않 는다. 한적한 도로에서도 시속 80km를 넘을 수가 없고, 시내에선 빨리 달려봤자 시 속 30km다. 그녀는 강변길을 달려 새로 개통한 드래곤브릿지 앞 교차로에 멈춰 선

다. 오래 전 코뿔소 뿔과 바다거북, 침향을 싣고 중국과 일본, 멀리 지중해로 떠나가 는 배들이 저 강에 정박해 있었다.

엄마는 처녀 시절 시장에 가면 참파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집 없이 떠도

는 참파 사람들이 문 닫은 가게 앞에서 잠을 자다 아침이면 쫓겨나곤 했다. 가끔씩 여 긴 원래 우리 땅이었다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판랑 지역에 가면 아직 참파 사람들이 남아 있고 매년 참파 축제도 열리지만, 다낭에선 참파 사람들을 보기 어렵 게 되었다. 엄마가 기억하는 참파의 여인들은 다들 인물이 좋았다. 까무잡잡한 피부 에 깊은 눈, 오뚝한 코, 곱슬머리가 작은 귀고리와 매우 잘 어울렸다. 그녀가 서 있는

교차로 건너편 참파 조각 박물관이 이 도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잊혀진 왕국의 흔 적이다. 학교에서 베트남 역사를 가르치면서도 그녀는 어지간해선 그 박물관에 들어 가질 않는다. 너무나 크고 울창한 반얀나무가 뒷마당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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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베트남 마지막 왕조가 프랑스에 주권을 내주는 부분을 가르쳐야 한다. 응우 옌元이라는 자신들의 성을 딴 왕조를 스스로 아시아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프랑스로 망명해 편한 여생을 살다간 마지막 왕이 남긴 유산에 대해, 그 유산으로 베트남이 받

아야 했던 프랑스와 일본의 지배, 미국과의 전쟁에 대해. 결론은 어떻게 내야 할까. 여 러분의 삶을 직접 지배하는 것은 지금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아니라 여러분보다 한 세대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 생각했던 방식이에요. 우리가 밤마다 보는 별빛이 이 미 사라진 별에서 보내온 빛인 것처럼, 한 왕조의 선택이 왕조가 사라진 100년 이후 의 역사까지 결정짓고 말았던 거지요. 이런 건 어떨까.

하지만 어쩐지 확신이 안 선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서구의 손을 잡는 도이머이 정책 까지 불과 15년. 길에서 장기를 두던 세대가 카드놀이 세대로 변하기까지 10년. 이

제 그녀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즐거움은 오직 와이파이를 통해서만 온다. 그리고 참 파 왕국. 나라가 사라지고 200년간 줄곧 가난하고 불행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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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가 넘는 한낮에도 한강 주변엔 항상 선선한 바람이 분다. 그녀 앞으로 커다란 배 낭을 맨 한 이국의 남성이 길을 건너고 있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속도를 줄 인다. 그가 손에 든 지도를 펼친다. 참파조각박물관이 여기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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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손으로 입구 쪽을 가리킨다. 일본인인가요? 아니요, 한국인이에요. 인사할 때 허리를 많이 숙여서 일본인인 줄 알았어요. 한국인은 보통 고개만 숙이는 줄 알았거 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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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이라는 이름은 참파 말로 큰 강을 뜻하는 다낙에서 왔다고 한다. 다낭에서 쓰는

말은 베트남 표준어인 하노이 말하고도 다르고, 경제 중심지 호치민의 말과도 다르 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게 참파 말의 영향 때문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다

낭 사람들은 다들 참파의 후손일지도 모른다고. 이국에서 온 남성은 반얀나무 그늘에 앉아 정수리까지 가득 차 오른 열기를 식히고 있다. 그녀가 반얀나무에 향불을 올린

다. 나야 말로 잊혀진 왕국에서 온 여인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녀는 스쿠터에 올라 마 스크를 쓰고 헬멧을 쓴다. 장갑을 끼고 아오자이 자락이 펄럭이지 않게 매무새를 잡 은 뒤 시동을 건다. 강변의 한적한 그늘을 따라,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는 달리 꽤 오랫 동안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82 여행 매거진 BRICKS - 봄의 미술관


글쓴이 이주호 브릭스 편집장은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최근에 <도쿄적 일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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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여행 매거진 BRICKS - 취중유람 醉中遊覽


여행 매거진 BRICKS - 봄의 미술관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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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동구 서울숲4길 20 201호 이수진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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