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2019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구호개발단체 기아대책 30년 이야기
HISTORY
1991.
034 기아대책 30년사 1 2
4
~1999 HISTORY 1989. 10. 24 ◉ 한국 최초의 해외구호개발단체를 설립하다 1990~ ◉ 세계 굶주림의 실상을 대한민국에 알리다
3
1989
05~ ◉ 최초의 나눔 축제, 한톨자선달리기를 시작하다
◉ 동전 한 닢의 기적, ‘사랑의밥그릇저금통’ 운동을 펼치다
1992. 02~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시편 146:7)
6 7 8 9 10 5
1992. 10~
◉
최초의 해외 파송, 구호활동과
개발사업을
시작하다
1993. 02~
전문인 선교사 양성 훈련, 기아봉사단 훈련을
시작하다
1994. 09~ ◉ 민간단체 최초 북한지원사업을 시작하다
1995. 03~ ◉
해외 아동개발사업을 시작하다
1998. 08~ ◉
국내사업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기아대책을
설립하다
1999. 09
나눔의 가치를 전파하다
사회적기업 행복한나눔 설립
035 HISTORY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제1장.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
◉
한국 최초의
해외구호개발단체를 설립하다
036 기아대책 30년사
1 1989. 10. 24
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 한다’는 말이 있 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에서는 가난한 이들
을 구제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왔다. 조선시절, 중앙에
서는 국가기관인 의창과 상평창을 두어 춘궁기에 곡식
을 대여했다가 추수 후에 이를 환수하는 환곡 제도를 운영했고, 지방에서는 여러 가지 재난에 대비하기 위 해 향약·사창·동약 등의 향촌 규약을 제정했다. 그러
나 일반 대중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일제강
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굶주림과 가난은
극한 상황에 이르렀다. 우방과 서방교회가 내민 사랑
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한국이 오늘날 비교적 빠른 시
기에 놀라운 산업발전을 이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굶주림의 역사, 그리고 외국의 원조로 일어섰
던 경험은 수혜국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발전하
는 원동력이 됐다. 그 시작에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
구가 있었고, 그 탄생에는 국제기아대책기구라는 모
델이 있었다.
국제기아대책기구(Food for the Hungry International, FHI)는 ‘세계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식량과 사랑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1971년 미국
인 래리 워드(Larry Ward) 박사에 의해 설립됐다.
지구촌 곳곳의 기아현황을 알리고 이들의 생존과 자
립을 돕는 국제적인 선교, 구호단체로서 유엔 경제사
회이사회(UNECOSOC)에 협의지위 자격으로 등록 된 NGO(Non-Government Organization; 비정부 기구)이다.
한국은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
차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로잔회의)에 윤남중 목사
(제3대 회장)가 참가하면서 창립의 계기를 마련했다.
윤남중 목사는 평소 친분이 있던 일본국제기아대책
기구(JIFH) 회장 아키라 호리우치(Akira Horiuchi)
목사의 소개로 당시 국제기아대책기구 총재인 테츠
나오 야마모리(Tetsunao Yamamori)를 만나 진중
한 대화 끝에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발족을 맞았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Korea Food for the Hungry International, KFHI/이하 기아대책)는
1989년 10월 24일 국내 최초 해외를 돕는 NGO로 창
립됐다.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창립 이사회를 갖고 의
장에 최태섭 회장으로, 서기에 한재호 목사, 국제이
사에 윤남중 목사를 선출했다. 이사에는 최태섭 회
장(제1대 회장)을 비롯해 강성모, 김상원, 김일환, 김
장환, 김준곤, 나석호, 림인식, 박종순, 원경선, 유상
근, 윤남중, 이만신, 이진우, 이호문, 전산초, 전용태, 정영관, 정정섭, 조성열, 최순영, 한제호, 홍정길 등
23명과 감사 김인득, 두상달 2명을 합한 총 25명이
위촉됐다.
037 HISTORY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가
기본 조직으로는 사무국장과 간사 1인씩을 두
기로 했다. 첫 사무국장으로 양형모(양우 인터내셔널
대표)를 선임하고, 1989년 12월 그의 개인 사무실 한
편에 책상 2개와 전화기, 팩스기 각각 1대를 두고 업
무를 시작했다. 그 후 6개월이 지난 1990년 6월 1일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28-1 동산빌딩 605호로 이전해
독립된 사무실 갖추고 정식으로 사무국을 개설했다.
그러나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가 정식으로
법인을 설립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1990년 초 법인 설립을 위해 보사부(현 보건복지부)
를 방문했으나 보사부에서는 기아를 다루는 것이라
면 식량 문제이니 주무관청인 농수산부로 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농수산부 관계자는 이 일은 해외의 굶
주린 사람들을 돕는 일이므로 외무부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외무부에서는 복지 분야이므로 보사
부로 다시 책임을 넘겼다. 결국 총무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했으며, 그 결과 보사부의 업무로 간주돼 기구
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다.
주무관청을 찾는 문제뿐만 아니라 해외원조
에 대한 사회 인식도 법인 설립의 어려움에 한몫을 했 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해
외에 있는 사람들까지 도와야 하는가?’라는 인식을
가진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우여곡절 끝에 1990년 7월 18일 마침내 비영 리 사단법인 설립 허가(보사부 제142호)를 취득했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는 우리보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를 돕는 기구로는 국내 1호로 등록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민간 차원의 해
1989년 10월 기구 창립에 큰 역할을 했던 당시의 인물들.
왼쪽부터 정정섭 회장, 최태섭 회장, 테츠나오 야마모리 박사
기구 최초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이성민, 안향선 간사
038 기아대책 30년사
외원조를 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창립 이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한국국제
기아대책기구는 우선 세계의 기아 현황을 전국 각지
교회에 알리기로 했다. 비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는 세상의 영적, 육체적 굶주림이 종식
되는 때까지 그 부르심에 응답했다”에 부응하기 위
해 설립 취지와 사업을 알리는 안내문을 1990년 2월
26일, 3월 26일 2회에 걸쳐 사역의 동반자가 될 수 있
는 전국 9,093곳의 교회에 발송했다.
그러자 전국 각처의 교회에서 큰 관심을 보이
며 후원의 손길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사역 내용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간사들이 모두 발이 닳도
록 뛴 결과 기아 현황이 담긴 사진과 긴급한 사연들
이 곳곳에 전해지면서 후원자들의 가입이 줄을 이으
며, 교회와 개인들의 후원금이 답지했다. 특히 사무
실 운영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교회, 선교단체 및
개인들의 자원봉사가 큰 힘이 됐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는 1990년 비영리 사
단법인으로 설립허가를 받은 후 그해 12월 아시아와
아프리카 7개국에서 해외선교·구호활동을 시작한 데
이어 다음 해에는 국내에서 선교와 구호활동에 나섰
다. 1992년 제1호 기아봉사단을 우간다로 파송한 이 래 수백 명의 기아봉사단이 해외 현장에서 결식아동
지원, 교육사업 지원, 구호품 전달, 의료 구호팀 파견, 무료 급식소 운영, 복지시설 지원, 병원 지원, 난민 돕 기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1998년 국내 활동을 전담하는 사회복 지법인을 설립했다. 아동결연·결식학생·무의탁노인·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실직노숙자 및 복지시설을 지원하고 있으며, 전국에 서 지역아동센터인 ‘행복한홈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1999년에는 상설 바자사업인 ‘3S 생명창고’를 개설했 다. 이후 ‘행복한나눔’으로 이름을 바꾸고 재활용 숍, 착한상품 개발, 공정무역 등의 활동을 꾸준히 펼쳤 다. 행복한나눔은 2008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해 고용 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2000년 전문적인 기아봉사단 파송 및 교육을 위해 재단법인 ‘국제개발원’을 세웠다. 또 1994년 민 간단체 최초로 평양 제3병원에 의료장비를 지원했으
며, 사업 전문성 강화를 위해 2008년 북한사업을 전
담하는 재단법인 ‘섬김’을 설립했다. 재단법인 국제개
발원은 2015년, 섬김은 2016년에 사단법인 한국국제
기아대책기구로 통합됐다. 2017년에는 유엔경제사회
이사회에 특별협의 지위를 획득했다.
이처럼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는 한국 최초
의 해외 구호 NGO로 출발해 30년 동안 지구촌 육
적·영적 굶주림을 세상에 알리고, 떡과 복음의 정신
으로 굶주린 이들에게 식량과 사랑을 전하며 그들의
생존과 자립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 2019년 12월 기
준 전국에 12개 지역캠퍼스와 76개 국내 운영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 51개국에서 다양한 구호개발
사업을 펼치고 있다.
039 HISTORY
굶주림의
040 기아대책 30년사
알리다 2 1990~
세계
실상을 대한민국에
국국제기아대책기구가 한국 최초의 해외를 돕는 NGO인 만큼 제3세계의 기아현황을 알
리고, 새로운 선교전략인 ‘떡과 복음’ 사역을 함께 나
누기 위한 다각도의 홍보활동이 필요했다. 해외구호
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아
대책의 사역을 알리는 홍보활동은 필수적이었다.
첫 번째 홍보활동은 간행물 발간이었다. 1990
년 5월 첫 회보인 격월간지 <생명의 양식>을 발간했 다. 몇 가지 소식과 안내문, 영수증, 기아에 관한 통계
자료를 주로 실었다. 1992년 8월 월간지로 변경해 약
1만 부를 제작, 배포했다. 9월 23일 문화공보부에 유
가지로 정식 등록하면서 제호명을 월간 <기아대책>
으로 변경(등록번호 25-5736)했다. 기존 제호명 <생
명의 양식>이 시중에 나와 있는 전문 QT잡지와 동
일하다는 이유였다. 발행부수도 9만 부 이상으로 대
폭 늘어났다. 1998년 12월 다시 제호명을 월간 <섬기
는 사람들>로 변경해 좀 더 친근하고 세련된 모습으
로 변화를 기하면서 회보 제작 구성원의 역량 강화 에 힘썼다. 이후 2007년 4월 <기아대책>으로 다시 제 호명을 바꿔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기아대책의 사역정신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고
자 단행본도 출판했다. 기아대책은 하나님의 대변자로
서 온 세상에 ‘떡과 복음’ 사역을 알린다는 취지로 시
작했는데, 그에 부합하는 첫 출판이 1995년 7월 30일
대로우 밀러(Darrow Miller)의 <섬김의 도>였다. 남
을 섬기는 자가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알
리는 성경공부 교재였다. 1999년 7월에도 대로우 밀러
의 세미나용 교재 <Worldview and Development>
의 한국판 <모래에서 팬티엄칩까지>를 출간했다.
언론, 방송 등을 통한 홍보와 다양한 대중 이
벤트는 국내에 전 세계 기아 실상을 알리는 데 큰 역 할을 했다.
월간 <기아대책> 1993년 5월호와 월간 <섬기는 사람들> 1998년 12월호
041 HISTORY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한
1994년 ‘한 톨의 사랑되어’ 음반 출시
1991년 3월 1일부터 1년 동안 극동방송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오 12시 55분에 5분씩 ‘떡
과 복음 5분 메시지’를 방송했다. 이는 매스컴을 통
한 최초의 홍보활동이었다. 지구촌의 굶주림 현황
과 성경적 구제사역을 홍보하는 데 윤남중 목사, 정 정섭, 두상달, 나석호 장로 등이 앞장섰고, 한국유리 (주), 대한생명(주), 린나이코리아 등이 후원했다.
보다 생동감 있게 사역현장을 알리기 위해 국 민일보와 공동으로 해외 기아현장을 방문하기도 했
다. 1991년 3월 14일부터 4월 17일까지 약 1개월간 케
냐, 우간다, 모잠비크, 에티오피아 4개국을 방문 취
재했다. 이후 한국유리(주)의 협찬을 받아 ‘기아현장
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주 1~2회씩 국민일보에 연재
했는데, 기아대책의 사역을 널리 알리고 후원의 손길
이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1990년 10월 27일에는 최초의 이벤트인 뮤지
컬 ‘타오르게 하소서’를 국민일보와 함께 개최했다.
연예인과 예능교회 성도인 출연자들이 ‘떡과 복음’
사역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한 데 힘입어 2회 공연 에 6,400여 명의 관중이 참석했다.
1993년 극동방송, 아세아방송과 공동 주최한
특별 모금 생방송은 기아대책의 홍보와 모금발전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1회는 1993년 12월 10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 동안 ‘지구촌 굶주린 이
웃에게 떡과 복음을-사랑의 손길모아’라는 주제로, 그리고 2회는 1995년 12월 1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 시까지 10시간 동안 ‘떡과 복음으로 한 생명을’이란 주제로 진행했다. 전국의 언론과 정·재계, 교계, 학계 등 각계각층에서 후원의 손길이 넘쳐 났으며 각지의
현장 접수처를 통한 활기찬 후원개발이 줄을 잇는 등 두 차례의 생방송으로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
다각화된 모금방식의 일환으로 1995년 8월
국민카드와 제휴해 ‘기아대책 국민카드’를 발행했다.
이는 일반 신용카드와 똑같이 사용할 수 있으면서
국민카드에서 수수료 중 일부를 기금으로 적립하는
방식이었다. 1996년 8월에는 한일은행(현 우리은행)
과 제휴해 ‘기아대책통장’을 개설했다. ‘기아대책통
장’은 원금과 이자에는 아무런 영향 없이 각 결산 이
자의 10%를 은행에서 기금으로 조성했다.
1996년 1만 원씩의 후원금을 송금하는 ‘기쁨
나누기 캠페인’은 개인이나 단체의 기념·행사일 등 나 만의 기쁨을 지구촌 굶주린 이웃과 함께 나누자는 취지였다. 기쁜 사연과 함께 많은 후원자들의 참여가 쇄도했다.
자선음악회와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굶주린 이
042 기아대책 30년사
043 HISTORY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1994년 ‘한 톨의 사랑되어’ 음반에 참여한 음악인들
1999년 4월 20일 정태우 홍보대사 위촉식
웃을 돕기 위한 백화점 나눔바자회를 개최해 기아대
책의 ‘떡과 복음’ 사역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홍보대사
가수들의 다양한 콘서트, 윤항기 목사의 찬양집회, 러
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초청 공연
등 많은 자선음악회를 진행했다. 특히 상트페테르부
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안드레이 페트로
프(Andrei Petrov)는 지구촌 굶주린 이웃들을 위해
서곡(곡명: #overture)을 작곡해 헌정하기도 했다.
지구촌 굶주린 이웃을 돕기 위한 음반도 출
시했다. 1994년 4월 12일 20여 명의 음악인들이 모여
1992년부터 준비해온 ‘한 톨의 사랑되어’ 음반을 출
시했다. ‘한 톨의 사랑되어’는 이해인 수녀의 시 제목
인데, 음반의 타이틀로 특별 기고해 헌정한 것이었다.
음반 제작에는 테너 박인수, 가수 이문세, 하덕규, 박
학기, 신형원, 한동준, 송정미, 김광석, 조하문, 장필순, 여행스케치, 최인혁, 다윗과요나단 등이 참여했으며, 1994년 7월부터 8월까지 2개월간 캐나다 토론토를 시
작으로 미국 LA, 멕시코, 브라질 등의 투어에 나섰다.
‘한 톨의 사랑되어’ 자선 대공연의 수익금 전액은 굶
주린 이웃들을 돕는 데 쓰였다. 이후에도 1998년부터
시작한 가수 홍순관의 결식아동돕기 100회 순회콘서
트 ‘소년의 밥상’, ‘참존성악앙상블’과 협력해 전 세계
굶주린 이웃들을 위한 자선순회공연을 이어갔다.
기아대책의 다양한 활동은 홍보대사들이 함
께해 더욱 빛났다. 기아대책 1호 홍보대사는 1993년
위촉한 가수 윤항기였다. 1994년에는 기아대책의 동
역자로 역할해 온 배우 임동진을 홍보이사에 위촉했
으며, 1999년 5월 임동진의 소개로 KBS 사극 ‘왕과
1999년 한톨자선달리기 행사에 참여한 홍보대사.
왼쪽부터 배우 정태우, 김민정, 황영조 선수
비’에 출연한 배우 정태우와 김민정을 청소년 대사로
위촉했다. 두 청소년 대사는 기아를 알리는 일에 적
극 나서 각 학교에서 설명회를 갖는 등 또래 청소년
들에게 세계 기아의 심각성과 국내 결식학생들의 어
려움을 호소했다. 한톨자선달리기 등의 행사에도 참
가해 사랑 나눔 운동 동참을 유도했다. 1999년 6월
2일에는 가수 패티김의 홍보대사 위촉식이 있었다.
이 밖에도 스포츠 선수로는 황영조, 최경주
가 자선 달리기, 자선 골프대회 등의 행사를 돕는 등 홍보대사로서 큰 역할을 했고, 가수로는 장나라, BMK, 정윤호, 씨엔블루, 박지헌, 배다해, 양준모, 정 광태 등이 홍보대사로 이름을 올렸다. 성우 배한성, 배우 김자옥, 김혜은, 조민기, 김정화, 임지규, 권오중, 박신혜, 윤시윤, 이하늬, 전인화, 김동균, 지수원, 개그
맨 이혁재, 방송인 김예분은 다양한 행사에 함께하
면서 대중에 기아대책의 사역을 알렸다.
특히 기아대책의 떡과 복음 사역을 알리는 데
하덕규, 김명식, 소울, 소울싱어즈, 김브라이언, 라스
트, 김민석, 강찬, 유은성, 라보엠, 송미애, 프라이드
밴드 등 대한민국 대표 CCM 가수들이 동역했다. 김
주하, 이선영 아나운서는 각종 기아대책 행사에서 진
행을 도맡았다. 이 외에도 작가 고도원, 이지성, 예술
인 유현아, 소마트리오, 필그림앙상블, 최화진, 강형
규 등이 함께했으며, 캐릭터 홍보대사인 뽀로로, 아 이쿠, 짜나프렌즈, 코코몽 등도 아동들을 대상으로
활동했다.
044 기아대책 30년사
최초의 나눔 축제, 한톨자선달리기를 시작하다
045 HISTORY
3 1991. 05~
기아대책은
한 사람이 달릴 때 한 생명이 살아
난다는 취지로 1991년 5월 21일 제1회 자선달
리기를 서울 올림픽경기장에서 개최했다. 이는 대한
민국 최초의 자선달리기 행사였다. ‘한톨자선달리기’
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행사는 이해인 수녀가 헌정한
가사 ‘한톨의 사랑되어’에서 따왔다.
처음 개최된 서울 달리기행사에는 개인, 가족, 교회, 직장 단위로 약 3,000명이 참여했다. 코스는
올림픽경기장에서 올림픽공원까지 3.7km였고, 가슴
에 KFHI를 새긴 참가자들의 티셔츠가 물결을 이뤘 다. 올림픽공원에서의 2부 행사에서는 인기 연예인들 의 다채로운 콘서트와 아프리카 기행 및 풍물 사진 전을 함께 진행했다. 수익금 전액은 쿠르드 난민 돕 기에 쓰였다.
한톨자선달리기는 해를 거듭하며 부산, 대전
등 전국으로 확산돼 지구촌 기아 현황을 알리는 기
아대책의 대표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해를 더해 가면
서 취지와 목적을 분명히 해 지구촌 굶주린 이웃은
물론 북한, 국내 결식아동 등을 돕기 위한 후원금 마
련과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장이 됐다. 무엇보다 중·
고등학생을 비롯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기아의 현
황을 배우고 달리는 교육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17년을 달려온 한톨자선달리기 행사는 2008
년부터 ‘한톨나눔축제’로 이름을 바꿔 청소년 자원
봉사축제로 개최됐다. 수혜국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
고, 현장에 참여한 학생들이 실제적인 봉사활동을
하도록 도우며, 교육을 통해 헝거 서포터즈(Hunger
Supporters; 기아의 대변자)로 양성한다는 데 목적
이 있었다. 한톨나눔축제는 2015년까지 매해 2만 명
• 한톨자선달리기(1991~2007년, 17회)
• 한톨나눔축제(2008년~ )
• 2008년 JUMP for HOPE
• 2009년 HOPE in HANDS
• 2010년 PLAY for HOPE
• 2011년 HOPE for the Children
• 2012년 DESIGN for HOPE
• 2013년 HOPE GENERATION
• 2014년 ACTION for HOPE
• 2015년 PROMISE for HOPE
이상의 중·고등학생이 참가하면서 대한민국 청소년
들의 손으로 지구촌의 가난하고 굶주린 이웃에게 희 망의 선물을 직접 제작해 보내는 기아대책 대표 자 원봉사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아대책은 한톨나눔축제의 연장선상에서
2013년 8월 24일 한톨청소년봉사단(한청봉)을 창단 했다. 단 하루의 일시적인 나눔과 봉사가 아닌 지속
적인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대한민국
의 미래 주역인 청소년들, 나눔과 봉사에 열정을 지
닌 청소년들을 국가와 인종의 경계를 넘어 지구촌
이웃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된 글로벌 리더로 양성
하는 데 초점을 뒀다.
한청봉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중학교 1학년부
터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100여
명을 선발해 활동했다. 참가 단원들은 9월부터 이듬
해 5월까지 약 9개월 동안 국내봉사, 해외봉사, 비전 특강, 나눔프로젝트로 구성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은 크게 명사 특강,
046 기아대책 30년사
1992년 제2회 한톨자선달리기 2004년 10월 안산에서 개최한 한톨자선달리기
국내외 봉사활동
한톨나눔축제 회별 주제 메시지
2008년 시작된 한톨나눔축제
께 베이커리, 바리스타, 미용 등의 다양한 직업체험
활동을 전개했다. 또 조를 이뤄 대중을 상대로 한 모 금 캠페인을 기획하는 등 나눔문화 확산 방법을 고 민할 기회도 가졌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해외 기아대책 사역 현장에서도 봉사와 나눔을 펼 쳤다. 현지 아동들을 만나 교육봉사를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우정을 나누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학교 보수 작업, 벽화 봉사, 예체
능 수업 등 방문 국가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직 접 기획하고 실행했다.
으로 이뤄졌다. 기아대책의 국내외 복지·개발 현장 경 험 활동을 통해 참가자들은 ‘섬김의 리더십’을 배웠다.
또 월 1회 사회 각층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인 ‘비전멘토’의 특강을 통해 삶에서 이웃을 향 한 비전을 키우고, 명사들의 리더십을 배웠다.
특강으로 배운 내용은 국내 복지 현장에서 실
천할 수 있었다. 독거노인 방문 봉사, 장애인들과 함
기아대책은 한톨자선달리기에서 한톨청소년
봉사단으로 이어지는 활동을 통해 국내 청소년들이
세계 기아 문제를 인식하고, 나눔 문화를 배우도록 노력했다.
047 HISTORY
2015년 1월 2기 한톨청소년봉사단 해외봉사 출국
동전 한 닢의 기적, ‘사랑의밥그릇저금통’ 운동을 펼치다
048 기아대책 30년사
4 1992. 02~
내외 굶주리고 소외된 이웃들의 영적, 육체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후원금이 절대적으
로 필요했다. 1992년 2월 6일, 기아대책은 새로운 방
식의 모금활동을 전개했다. 바로 ‘사랑의밥그릇저금
통’ 운동(이하 사랑의밥그릇 운동)이었다.
사랑의밥그릇 운동은 한 톨의 밀알이 썩어서
백배, 천배의 결실을 맺듯이 작은 사랑의 동전이 모
여 굶주리는 수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
에서 출발했다.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과
도 통한다. 처음에는 굶주린 이웃에 대한 관심을 고
취시키기 위해 손쉬운 소액기부 참여 캠페인과 함께
‘생명의 양식’이라는 이름을 단 밥그릇 모양의 일회용
소형 저금통을 배포했다.
저금통을 통한 사랑나눔은 개인, 교회, 학교, 단체, 기업 등 전국 각계각층으로 번져 그리스도인뿐
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는 범국민적인 운동
으로 확산돼 갔다. 1994년에는 약 300만 개, 1996년에
는 400만 개를 배포했다. 1995년에는 영구적으로 사
용할 수 있는 대형 저금통을 제작했다. 소형 저금통이
개인들에게 배포됐다면 대형 저금통은 교회, 음식점, 카페 등 기관이나 업소에 비치돼 모금성과를 높였다.
당시 저금통 운동을 통해 조성된 모금은 연
사랑의밥그릇저금통으로 작지만 큰 이웃 돕기를 실천하는 어린이
평균 4억 6,000만 원 정도였다. 은행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해 1995년 제일은행에 뒤이어 1996년에는 국민
은행에서 저금통 운동의 전 국민적 확산을 도왔다.
저금통 운동을 통해 쓰지 않고 잠자고 있는 동전들
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게 되면서 관심과 호응도 고조됐다.
국민일보 종교부 김규원 기자는 1994년 10월 21일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사랑의밥그릇 운동의 효 과를 기록했다.
취재를 위해 서울 신사동 신구빌딩 2층에 있는 한국국제기아대 책기구 사무실을 들를 때마다 창고가 없어 복도에 가득 쌓아 놓
049 HISTORY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국
은 ‘사랑의밥그릇’ 저금통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화장실 출입까
지 불편하게 만드는 저금통이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마음에 이
상야릇한 전율이 느껴진다. 때로는 빵이나 옥수수로 보이기도
하고 멀건 피죽으로 어른거리기도 한다. 자그마한 저금통이지
만 그곳에 동전이 가득 채워지면 소말리아와 르완다의 경우 한
가족 한 달간의 식량이 된다니 기아대책기구를 방문할 때마다 의 착시를 일으킬 만도 하다.
사랑의밥그릇 운동은 이웃을 돕는다는 것이 작은 손길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작은 물 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결국엔 바위에 구멍 이 뚫리듯이, 사랑의밥그릇은 한 푼으로는 큰 힘이
되지 못하는 동전이지만 계속 쌓이고 모이게 되면 큰
사랑이 돼 어려운 현실의 이웃들에게 보내지는 역사
를 만들어냈다. 사랑의밥그릇에 모아진 후원금은 르
완다, 소말리아 등 해외 사역지와 북한 및 국내 결식
자 등에게 구호금으로 전달돼 곳곳에서 수많은 생명
을 살리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낳았다. 사
랑의밥그릇 저금통 하나, 하나에 담긴 정성이 가난과
죽음의 땅 아프리카, 아시아의 수많은 배고픈 어린이 들에게 식량과 의료혜택 및 경제 원조를 제공, 그들 의 생존과 자립을 도왔다. 따뜻한 사랑의 밥 한 그릇 이 죽음의 땅에 생명의 씨앗을 뿌린 것이었다.
사랑의밥그릇 운동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 고, 부담 없이 소액을 모을 수 있는 모금문화로 자리 매김했다. 무엇보다 아동들에 대한 교육적 효과가 컸 다. 사랑의밥그릇이 차면 생명의 밥그릇이 되는데, 사랑의밥그릇 저금통 하나를 꽉 채우면 한 가족이
050 기아대책 30년사
초기의 저금통과 현재의 저금통
각 처에서 모인 사랑의밥그릇저금통
051 HISTORY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난 사랑의밥그릇저금통 운동
특수학교 어린이들이 우즈베키스탄 친구들을 위해 모은 사랑의 밥그릇 저금통
한 달 동안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아이들에
게 나눔을 가르칠 수 있었다. 특히 아이들이 어린 시
절부터 한푼 두푼 나눔을 배워갈 때, 아이들의 미래
도 더욱 따뜻해진다는 기대도 있었다.
성남지회에서는 지역학교와 유치원을 대상으
로 ‘금요일은 군것질 없는 날’이라는 주제 하에 1997
년 9월부터 10월 동안 사랑의밥그릇 운동 펼쳤다. 충
청남도 당진시 석문중학교에서는 학교 학생들에게
이웃사랑의 마음을 심어주고자 각 반에 소형 저금
통을 하나씩 배치했다. 이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학교에서 사랑의밥그릇으로 아이들에게 나눔을 체
험하게 하고 있다.
기아대책은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시대적 흐
름에 맞춰 2016년 12월 카드로 기부하는 ‘스마트 저
금통 기대함’을 만들었다. ‘기대함’을 통해 사랑의밥
그릇운동의 정신을 잇고, 후불교통카드로 편리하고
재미있게 기부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랑의밥그릇과 같은 맥락에서 1993년 4월
‘사랑의111금식운동’을 시작했다. 한(1) 사람이 한(1)
주에 한(1) 끼씩 금식해 지구촌 굶주린 이웃들을 돕
자는 캠페인으로, 고난주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가난과 굶주림으로 절규하고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취지 였다. 아래와 같은 홍보문구로 ‘사랑의 111운동’에 등 장할 것을 호소했다.
• 고난 기간 중 한 끼를 선택해 금식을 합니다.
• 금식하는 동안 지구촌의 굶주린 이웃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 한 끼 금식으로 모아진 3,000원을 은행지로로 송금, 4인 가족이 참여하는 경우 굶주린 이웃 한 가족 8명이
한 달간 생명을 보장받게 됩니다.
052 기아대책 30년사
최초의 해외 파송, 구호활동과 개발사업을 시작하다
053 HISTORY
5 1992. 10~
1990년 12월
제구호개발 NGO를 표방한 기아대책은 1990
년 12월 해외구호 활동에 나섰다. 방글라데
시, 케냐, 페루 등 7개국에 1억 8,500만 원을 지원하
는 사업이었다. 시작은 국제 기아대책 조직의 사업
후원금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점차 한국기아대책의
자체적인 사업으로 발전해 나갔다.
기아대책은 지진, 홍수, 허리케인 등의 자연재
해와 내전 등의 갑작스런 재난으로 당장 도움의 손
길이 필요한 곳에 긴급구호활동을 펼쳤다. 르완다 내
전, 코소보 분쟁, 터키 지진 등의 사태가 발생할 때마
다 긴급구호 팀 파견과 함께 현지 단체와 협력해 식
량, 의약품, 생활용품, 옷 등을 보냈다.
중장기 전략 아래 지역의 자립을 위한 해외개
발사업도 추진했다. 지역 주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소득 증대, 기초적인 보건의료 인프라 확보를 위한
수자원 및 의료·보건 사업, 교육 사업 등을 진행했다.
기아대책은 전 세계에 파송한 기아봉사단을 통
해 지역 상황에 필요한 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대다수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이들의 생계 수단인 농업의 효율
화를 통해 주민들이 소득을 늘리고, 경제적으로 자립
할 수 있도록 농업개발사업에 집중했다. 농업개발사업
은 농촌 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낙후된 영농방식을 개
선해 지역주민들의 생활 여건 개선 및 소득증대를 목
표로 했다. 황무지를 개간하고 선진기술과 농기구를 보
급해 주민들 스스로 자립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보건의료 영역 중 가장 시급한 것은 수자원 문 제였다. 수인성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일이 흔하
기에 현재까지도 수자원 개발은 중요한 영역이다. 더
1992년
러운 물을 그대로 식수로 사용해 구토, 복통, 설사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위해 우물을 파고 펌
프를 설치해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하고, 관개수로를 건 설해 농업용수를 쓸 수 있도록 도왔다. 이 밖에 단기
의료팀 파견, 병원 지원 등을 통해 진료를 실시하고
기초보건 지식을 가르쳐 주민들의 질병 발병률을 줄 이는 등 보건의료 영역의 개발을 지속해 나갔다.
자립을 위해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미래 세대 를 길러내는 일이었다. 기아봉사단들은 가난의 굴레 를 깨고 미래의 소망을 심어주기 위해 교사 파견, 교 육 프로그램 개발, 학교 설립, 학교 시설 및 학습 기 자재 지원 등 교육사업 수행을 통해 교육환경과 교육 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특히 1990년대 초, 기아대책은 아동개발사업 ( Child Development Program, CDP)을 시작했다.
제3세계의 아동과 국내 후원자 간의 일대일 결연을 통
해 아동에게 필요한 식량, 옷, 교육 등을 지원하며 아
동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마을 전체를 변화시
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1995년 후원자와의 결연을 최
초로 시작한 국가는 필리핀, 몽골, 우간다, 모잠비크, 볼리비아였다. 5개 국가의 350명 아동을 시작으로,
1996년에는 3년 만에 결연아동의 수가 2배로 늘었다.
기아대책은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인
력으로 1992년부터 기아봉사단(Hunger Corps)을 선발, 파송했다. 기아봉사단은 기아대책에서 파송
한 전문인 선교사다. 전 세계의 굶주리고 가난한 이
054 기아대책 30년사 국
해외 구호활동 시작
들을 위해서는 떡과 복음을 함께 전해야 한다는 기 아대책의 사역원리에 부합한 파송으로, 다른 국제구 제1호 기아봉사단으로 우간다에 파송된 류형열·이민자 기대봉사단
1996년 캄보디아로
호단체들과 차별되는 기아대책만의 방식이었다. 기
아봉사단은 한 지역에서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계획을 두고 사역했다. 자신의
재능과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세계 곳곳에서 가난
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섬기며 ‘떡과 복음’으로 그리
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다.
1992년 10월 22일 기아대책 1호 기아봉사단으
로 류형열, 이민자 기아봉사단이 파송된 우간다는 해
외개발사업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였다. 류형열, 이 민자 기아봉사단은 우간다 음바라라 지역에 파송돼 농업개발사업으로 1기 사역을 시작했다. 이곳 사업의
가장 큰 목적은 지역주민들에게 농사를 짓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 련하는 데 있었다. 유목민족이라 농기구조차 없는 이 들에게 농기구 보급과 함께 직접 농사 시범을 보이고, 농수 확보를 위해 땅을 파서 빗물을 고이게 한 후 저 수지를 만든 것이 그들에게 큰 동기와 힘이 됐다.
그 결과 총 530세대 중 400세대가 자신들의
농지를 갖고 자립하게 됐다. 9개의 저수지를 축조하
는 데 공사비의 70%를 주민들이 부담할 수 있었다.
3개 학교와 2개 교회는 수입을 마련할 수 있는 농지
를 소유하게 됐고, 350세대는 농사와 함께 소를 기
르게 됐다. 200세대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립기반을 갖게 됐다. 이 일은 우간다
정부에도 알려져 대통령이 음바라라 지역을 두 번이
나 방문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류형열, 이민자 기아봉사단 부부는 우간다 음
바라라에서 쿠미 지역으로 사역지를 옮겨 변화를 이
끌어갈 지역사회 리더 양성을 목표로 사역했다. 이
지역은 두 기아봉사단과 뒤이어 사역에 동참한 선교
사들의 노력으로 2015년 자립했다. 1999년 우간다
쿠미 시에 세운 쿠미대학교에는 지역개발학, 경영학, 사회복지학, 교육학, 컴퓨터학 등 학사과정과 전문대
과정이 개설됐다. 이곳에서 배출된 인재들은 영성과
지성을 두루 갖춘 지역사회 리더로 성장해 지역사회
를 변화시키고 있다.
055 HISTORY
파송된 이성민 기대봉사단
전문인 선교사 양성 훈련, 기아봉사단 훈련을 시작하다
056 기아대책 30년사
6 1993. 02~
아대책의 사역에서 해외현장에 파견되어 활동 하는 기아봉사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기
아봉사단은 현장에서 구호개발사역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기아대책 사역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공동
체가 복음으로 회복되도록 하는 일을 감당하는 사역
자들이다.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기아봉사단원들이
영적・ 육체적으로 굶주린 이웃들에게 떡과 함께 복
음을 전하는 것은 지극히 성서적인 방법이며 21세기의
필요에 부응하는 선교전략이었다. 특히 고유의 종교
와 문화, 관습 등으로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어려
운 지역에 기아봉사단이 파견돼 활발하게 떡과 복음
을 전하는 것은 효과적인 선교 전략으로도 여겨졌다.
기아봉사단은 1992년부터 아프리카, 중앙아
시아,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세계 곳곳의 사역지에
서
교육, 보건의료, 생계지원, 아동개발, 지역개발, 긴
급구호 등을 펼치며 현지인 사역자들과 함께 지역
주민들과 공동체가 자립하도록 돕고 있다. 이를 위해
기아봉사단원은 공동체 개발사역에 대한 전문 지식
과 실행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예수님이 이 땅 에서 보여주셨던 섬김의 본을 보이며 사역할 수 있는 성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국제기아대책은 기아봉사단원들이 해외에 나 가서 사역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도록 1, 2단계 훈련
1993년 제1기 기아봉사단 훈련
1993년 7월 제2기 기아봉사단 훈련
057 HISTORY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기
2009년 2단계 기아봉사단 훈련
과정을 진행했다. 이후 한국기아대책의 사역이 확장
됨에 따라 국내에도 훈련과정을 신설할 필요성이 제
기돼 마침내 1993년 2월 한국에서 1단계 기아봉사단
훈련을 갖고 1기 훈련생들을 배출했다. 첫 국내 훈
련에는 대로우 밀러(국제기아대책기구 부총재), 게리
워멜스도프(국제기아대책 기아봉사단 디렉터), 스티
브 코벳(국제기아대책 기아봉사단) 등 국제기아대책
강사들이 참여했으며, 토론식 수업방식을 통해 훈련
생들에게 많은 생각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육체적 굶주림과 영적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제3세계의 우리
이웃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그 사랑을 직접 전해줄 수 있습니다.
신학, 농업, 축산, 행정 등 기술들을 가지고 굶주린 이웃들을 섬
기기를 소망하는 기독교인들은 지금 곧 제3기 기아봉사단 훈련
에 신청하십시오.”
1994년 제3기 기아봉사단훈련 모집 문구인데, 이후의 모집 문구도 대체로 이 범위에 있었다. 사역기
간은 3년으로 하고, 자격조건은 나이와 성별에 제한
없이 해외구호개발사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이 있고, 선교에 뜻이 있는 기독교인으로 규정했다. 이밖에 현
지 언어와 문화에 잘 적응하는 섬기는 리더로서의 좋
은 자질을 갖춘 사람을 기아봉사단으로 선발했다. 초
창기 훈련생들은 신학생, 교회 사역자뿐 아니라 대학
생, 교수, 직장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었다. 초
기 기아봉사단 훈련은 연 2회였으며, 점차적으로 증가
해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훈련을 실시했다.
국내에서의 1단계 기아봉사단 훈련과정을 마 치고 기아봉사단원으로 지원하면, 인사위원회의 면 접을 거쳐 각 사역지의 책임자(Country Director)
와 연락을 취한 후 사역지와 사역 분야를 결정했다.
그 후 미국에서 실시하는 4주간의 2단계 기아봉사 단 훈련을 통해 보다 더 실제적인 사역의 내용과 타
058 기아대책 30년사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활동 중인 청년기대봉사단
문화 극복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2단계 훈련내용
은 성서적 선교관, 세계 기아문제에 대한 현황과 대
책, 섬기는 삶에 대한 성경적 연구, 지상명령과 세계
선교, 개발사업의 개념과 체계에 대한 고찰, 기아봉
사단의 생활과 사역, 개발 윤리와 공생적 사역, 해외
사역지 소개 및 개인상담 등이었다.
특히 2단계 훈련에서는 개인의 변화를 바탕으
로 한 공동체 성장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기간에는 훈련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훈련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이 어떻게 활용되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습득했다. 끝으로 지속적으로 사역을 감당
하기 위해 후원회 회장과 총무를 세우고 후원회원을
발굴해 개인 생활비를 모금한 후 파송했다.
기아봉사단 훈련과 파송을 통해 기아대책은
더욱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고, 진정 ‘떡과 복
음’이 굶주린 이웃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공생사역임
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기아대책의 핵심 일꾼인 기아봉사단, 그들이
가는 곳에는 생명이 되살아나고 있다. 기아봉사단은
‘기대봉사단’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굶주린 이웃들
의 생존과 자립을 위해 헌신하며 그들의 공동체가
성장해 다른 공동체를 돕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비전
을 심어주고 있다.
2012년 기아봉사단 모집 포스터
059 HISTORY
민간단체 최초 북한지원사업을 시작하다
060 기아대책 30년사
7 1994. 09~
아대책은 인도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북한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북한지원사업의 바탕에는
정치적 이념을 넘어, 우리의 동족을 마음으로 품고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시작은 1994
년 북한에 3년간 이어진 ‘고난의 행군’이었다. 이 시
기에 북한 당국은 국제사회에 긴급구호를 호소했다.
당시만 해도 정부 간의 교류나 협력이 크게 확장돼
있지 않았을 때라 종교계, 민간단체에서 연합해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기아대책은 첫 사업으로 1994년 평양 제3병
원에 의료장비를 지원했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의 잇
단 수해와 가뭄으로 식량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자 씨감자, 밀가루, 분유 등 식량과 의류, 젖염소 등을
긴급구호 형태로 지원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수해
피해 지역에 의류 및 의약품을 지원했고, 1996년에
생명의 빵 보내기
100원이면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 빵 1개 제공(1일)
1,000원이면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 빵 10개 지원(10일)
3,000원이면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 빵 30개 지원(1개월)
분유보내기
10,000원이면 400g 분유지원-북한 영아 1명이
1주일 먹을 수 있습니다.
20,000원이면 800g 분유지원-북한 영아 1명이
15일 먹을 수 있습니다.
는 밀가루 120톤의 긴급 식량 지원이 있었으며 이후
로도 매년 지원이 이뤄졌다.
북한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굶주
리는 우리 동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있었다. 기아
대책은 표와 같은 ‘북한돕기캠페인’의 홍보문구로 대
중의 관심을 유도했다.
북한의 농토는 지력이 심각하게 저하돼 만성
적인 흉작이 매년 반복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해
를 거듭하면서 식량난이
061 HISTORY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기
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 1997년 8월 20일 대북 양곡 지원 전달. 수수가 실린 화차 앞에서 윤남중 당시 이사와
정정섭 부회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아대책은 유기질 비료를 지 원함으로써 농업생산력을 증가시키고 장기적으로
지력을 회복시켜 식량난 해소를 도모했다. 기초적인
농기구들과 콩, 옥수수 등의 곡물 종자들을 지원함
으로써 농업 자립을 돕기도 했다.
1995년 7월부터는 광복 50주년 북한 돕기로, ‘통일염원! 북한 동포들에게 식량보내기 운동’을 진행 했다. ‘한 끼는 밥, 한 끼는 죽, 한 끼는 굶는다’는 표 어로 북한의 현실을 그대로 전하며 영양실조로 질 병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식량 보내기 운동
은 ‘한 사람이 한 말의 성금 보내기’를 목표로 ‘통일
미 한 말은 3,300원, 북한가정(4인)의 5일 양식, 밀가
루 10kg(2,500원)은 7일간의 양식’이라며 후원을 독
려했다. 모인 성금은 열악한 경제사정과 흉년으로 하
루 한 끼 식사조차도 해결하기 힘든 북한 동포들에
게 식량을 보내는 데 사용했다.
1995년 유례없는 폭우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북한 동포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한국 교회와
기독교계 선교구호단체는 창구를 단일화하는 등 모
금활동에 힘을 모았다. 국제기아대책기구에서 식량, 의류, 의료기 등으로 북한의 수재민을 지원했고, 세 계교회협의회에서도 조선기독교도연맹의 지원요청 에 따라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도록 지원했다.
1997년에는 북한 동포에게 생명의 양식 보내 기 운동에 5,000만 원을 지원했다. 그해 4월 북한의
식량난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북한
062 기아대책 30년사
동포들을 굶주림 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비용이 2,000억 원으로 추 산될 정도였다. 기아대책에서는 ‘우리가 버리는 음식
1999년 북한 아동 지원 보육시설 1998년 10월 16일 조선기독교도연맹에 X-RAY 검진차 후원
찌꺼기는 10조 원에 달한다’며 ‘북한 동포를 구할 수
있는 돈의 50배를 우리는 남는 음식으로 버리고 있으 니, 굶주림으로 시달리는 2,300만 명은 마땅히 도와
야 할 우리의 동포’임을 강조하며 후원을 이끌었다.
“우리의 반쪽, 그들의 고통을 사랑으로 나눕시다. 한 사람이 6,000원의 성금을 보내주십시오. 6,000원이면 북한 동포 두
사람이 한 달간 살 수 있습니다. 가정, 교회, 기업체가 함께 동참 해주십시오.”
기아대책은 북한동포돕기 모금활동으로
1997년 북한에 20만 달러 상당의 수수 1,428톤을 지 원했다. 한국기독교북한동포후원연합회와 협력한 대 북 지원 내용은 표와 같다.
1993년, 1994년부터 전개해 오던 국내와 북한
지원 사업을 보다 전문적으로 담당할 기관과 인력의 필요성이 대두하자 기아대책은 2008년 2월 대북지원
전담(통일부 등록) 재단법인 ‘섬김’을 설립했다. 대북
지원사업 15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21세기 통일한국
준비를 위해 사업 영역을 확대, 발전시키고 기능별로
전문화기 위함이었다.
기아대책은 △ 인도적 지원 △ 자립의지 고취
△ 투명성 확보 △ 후원금 전액을 물품으로 지원 △
도움이 절실한 함경도 지역을 집중 지원 등의 5대 원
칙을 바탕으로 사업을 수행해 나갔다. 이에 따라 아
동과 부녀자들의 생활보건, 급식사업을 중심으로 북
한동포를 지원하고 있다.
• 1997년 4월 3일 봄무·봄배추 종자, 감자 지원(5,000만 원)
• 1997년 6월 23일 라면 지원(5,000만 원)
• 1997년 8월 26일 밀가루, 분유 지원(2,000만 원)
• 1998년 4월 15일 밀가루, 쌀 지원(2,000만 원)
• 1998년 10월 29일 밀가루, 분유, X-ray 검진 지원(2,000만 원)
063 HISTORY
북한으로 이동하는 식량긴급구호 차량
시작하다
064 기아대책 30년사 해외 아동개발사업을
8 1995. 03~
쟁과 기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다. 1990
년대만 해도 지구촌에서는 5초에 2명, 1분에
24명, 하루에 3만 5,000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중 3분의 2는 어린이들이었다. 어린이들은
필요로 하는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면 신체기능이
저하돼 간단한 질병만으로도 목숨을 쉽게 잃기 때
문이다. 그뿐 아니라 당시 2억 5,000만 명의 어린이들
이 위험하고 착취적인 노동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교
육도 받지 못한 채 빈곤의 굴레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건강, 그리고 삶마저도 위협당했다. 어린이의
기아와 노동 종식을 위해서는 지구 한편의 굶주린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나눠야만 했다.
기아대책은 1994년 제3세계 어린이들의 내일
에 밝은 희망을 주기 위해 어린이 후원 사업을 시작 했다. “월 2만 원이면 한 어린이가 굶주림과 노동에
서 벗어나 학교에 다닐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후 원을 독려했다.
1995년 3월부터는 필리핀, 몽골, 우간다, 모잠 비크, 볼리비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아동개발사업 을 시작했다. 아동개발사업은 후원 어린이와 가족, 그 리고 공동체가 하나 돼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다운 삶
을 살아갈 수 있도록 어린이의 교육적, 신체적, 사회정 서적, 영적 영역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데 목적을 뒀
다. 도움이 필요한 아동과 국내 후원자를 일대일로 결
연하고 전인적 성장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
했다. 그와 더불어 아동이 속한 마을의 각종 지역개
발을 전개하여 자립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스스로의
힘으로 마을의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도록 도왔다.
기아대책은 아동개발사업이 지역 공동체의
개발을 촉진해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를 지닌 청 년이 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다른 해외개발사업과 함 께 진행했다.
기아대책 아동개발사업의 강점은 자비량 기
아봉사단을 파송해 장기간의 안정적인 자립계획 추 진이 가능하고, 교회・학교와의 협력으로 지역 주민
1994년 3월호 기아대책 회보에 소개된 해외아동결연
065 HISTORY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전
066 기아대책 30년사
초기 해외아동개발사업에 참가한 결연 아동들의 활동 모습
과의 관계성을 쌓으며 아동들을 길러낸다는 점이었 다. 또한 전인적 성장 추구, 후원자 방문 프로그램 운 영, 총체적 지역개발에 주력 등도 강점이었다. 이 같 은 강점을 바탕으로 기아대책은 다섯가지 영역에서
의 성장을 목표로 아동개발사업을 진행한다.
첫째 영역은 교육이다. 제3세계 아동들은 열 악한 주거환경, 부족한 학교시설, 가족의 생계를 위 한 노동 등으로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 다. 기아대책에서는 후원 아동에게 교과서, 교복, 학 비, 학용품 등을 지원하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 영으로 아동들의 학업을 도왔다. 또한 마을의 어머니 들로 구성된 자원봉사 팀이 정기적으로 가정을 방문 해 출석과 진급을 점검하게 하고, 부모들이 자녀교육
에 관심을 갖도록 격려했다. 계속되는 가난의 굴레에
서 벗어나도록 부모와 아이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일 깨워줬다. 학교 선생님들의 재교육을 통해 실력을 갖
춘 교사를 양성하는 것도 사업의 일환이었다.
둘째, 아동의 신체적 성장을 도왔다. 영양부
족과 열악한 위생환경으로 대부분의 아동들이 간
염, 장티푸스, 말라리아, 결핵 등 여러 질병 감염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기아대책에서는 후원 어린이
를 대상으로 정기검진을 실시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역사회 보건의료 인프라를 연결했다. 질병
예방을 위해 영양, 위생, 보건교육을 실시했으며, 단
기적으로는 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부모들의
참여를 통해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급식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해외아동개발사업 후원자들에게 보냈던 성장보고서
셋째, 사회・정서적 영역에서의 성장을 목표로
했다. 예체능 관련 활동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정서
적으로도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지역 상황
과 여건에 따라 태권도 수업, 음악 수업 등을 운영했
으며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넷째, 영적 영역의 성장에 주안점을 뒀다. 헌
신된 선교사인 기아봉사단은 아동개발사업을 통해
아이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자라날 수 있 도록 조력했다. 성경공부를 통해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점을 인식시키고, 부모들에게는
자녀양육의 중요성과 아동들의 존엄성을 가르쳤다. 또한 예배, 주일학교, 성경지원 등을 통해 떡과 복음
을 함께 전했다.
다섯째, 다양한 지역개발프로그램을 지원했
다. 아동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부모들의 경제교육, 소
득증대 등을 병행했다.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
적으로 자립해 자신의 자녀를 스스로 길러낼 수 있
도록 돕는 방식이었다. 아동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
도록 수자원 시설, 도로 정비 등 마을의 기초적인 인
프라 구축에도 힘썼다.
기아대책에서는 아동개발사업뿐 아니라 대학
생을 대상으로 인성과 리더십을 훈련하는 청소년개발 사업(Youth Development Program, YDP)도 펼쳤다.
기아대책은 아동개발사업을 통해 2019년 12
월 기준, 130개 지역에서 4만 3,747명의 결연아동을
양육했으며, 아동들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이 지으
신 바대로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도왔다.
067 HISTORY
국내사업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068 기아대책 30년사
9 1998. 08~
기아대책을 설립하다
아대책이 국내사업을 시작한 1990년대는 지 방자치제의 전면 실시로 지역의 필요와 상황
에 맞게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사회복지시스템을 갖
춰나가는 시기였다. 그 일환으로 사회보험제도가 정
비되고, 사회복지관을 비롯한 민간 사회복지조직이 급증했다.
공공 사회복지의 효율화와 체계화를 위해 민
간 부문의 사회복지에 대한 요구가 증대하는 데 부 응해 기아대책은 전문 인력과 시스템을 활용한 국
내복지사업에 발을 내디뎠다. 상대적 빈곤과 양극화 로 힘든 국내 저소득 결손가정, 노인과 실직자, 장애 인들을 위한 전문적인 복지 서비스에 나섰다. 국내사
업의 시작은 1993년 7월 서울 지역 노숙자, 결식노인, 가출 청소년 등에 대한 무료급식 지원이었다. 국내 구호활동 첫 해인 1993년에 1억 3,000여만 원을 지 원했으며, 규모를 계속 확대해나가 1996년에는 3억 8,000여만 원을 지원했다.
초기 사업은 소외 이웃들의 기초적인 필요를 채우는 위주로 진행됐다. 독거노인, 생활보호 대상 자, 저소득 가정의 아동, 소년소녀가장 등 의식주라 는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다
1998년 8월 사회복지법인 기아대책 설립
식을 시작했고, 학교를 중심으로 저소득 청소년들의
식사권을 보장해 나갔다. 1994년 상반기에 63개교
의 322명을 지원했고, 하반기에도 62개교의 314명을
지원했다.
이 외에도 국내사역은 아동 및 미자립 복지시
설 지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깊이를 더해갔다. 은혜
의집을 비롯해 고아원, 장애인시설, 결핵요양시설, 출
소자시설 등 각기 다른 형태의 시설을 지원함으로써
소외된 사람들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주고 재활의 기
회를 제공했다.
1996년 3월에는 지역사회 복지사업의 일환으
로 성남시에 ‘서로사랑의집’이라는 다목적 복지회관
069 HISTORY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기
양한 방법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년에는 독거노인, 생활보호 대상자 등을 위한 무료급
1994
을 개관했다. 서로사랑의집은 성남시가 건립한 복지
회관으로 기아대책이 위탁받아 운영했다. 노인을 위
한
무료식당과 독거노인 반찬배달 프로그램, 청소년
공부방, 상담 서비스 및 서로사랑 옷은행(헌옷 교환
소) 등의 사업을 전개했다.
그 밖에도 기아대책은 활발한 모금활동과 국
내사역의 보다 효과적인 파급을 위해 1995년 12월
대구와 대전지회, 1996년 1월 성남지회, 12월 부산지
회 사무실을 연달아 개설했다. 이어 1997년 2월 광
주지회, 1998년 경주지회, 제주지회 등을 개설하면서
기아대책 사역을 전국 단위로 발전시켜 나갔다.
나아가 1998년 8월 국내사업의 전문화를 위
해 사회복지법인(보건복지부 제822호)을 설립했다.
설립 당시 ‘섬기는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각 지역
의 소외당한 사람들을 돕는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
사회 및 지역회 활동을 전개하면서 1999년 11월에는 국내아동결연사업을 시작했다.
저소득 가정 아동을 위한 국내아동결연사업
을 서울, 성남, 대전, 광주, 대구, 부산, 경주 등 7개 지
역에서 시작했고, 같은 해 12월 MBC 방송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통해 모인 후원금 500만 원을 아동들에게 개별적으로 지원해 국내 저소득 가정 아 동들에 대한 관심 촉구를 이뤄내기도 했다.
1990년대는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기틀을 마련한 시기였으나 여전히 사회에는 편견과 차별적 인 시선으로 소외된 장애인이 많았다. 기아대책은 섬 기는사람들의 사업 일환으로 장애아동 결연 후원, 장애복지시설 지원을 진행함으로써 장애인들이 개 인의 권리를 지키며 사회 참여 기회를 보장받고, 기 본적인 생존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왔다.
1999년에는 섬기는사람들, 예수사랑선교회
공동으로 수해복구 작업과 긴급구호활동에 나섰다.
하루 750여 명에게 무료급식을 지원하고 독거노인의
무너진 집을 복구했다.
기아대책은 국내사업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자
다양한 형태로 복지사업을 확대했다. 저소득 가정 아 동을 위한 국내 아동개발사업, 위기가정지원, 행복한
홈스쿨 운영 사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노인복지관, 종 합사회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등 각종 복지시설을 통 해 우리나라 사회복지 분야 최전방에서 일하고 있다.
070 기아대책 30년사
1994년 3월 서대문 사랑의집에서 무료급식 진행
나눔의 가치를 전파하다
071 HISTORY
사회적기업 행복한나눔 설립 10 1999. 09~
아대책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서울특별시 강
남구 청담동 111번지에 독립된 회관 건물을
마련했다. 사옥 이전 후 가장 먼저 1999년 9월 10일
‘3S 생명창고’ 사업을 시작했다. 한 생명 살리기 상설
바자사업으로 나누고(Share), 섬기고(Serve), 살린
다(Save)는 취지였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나눔가
게로서 2008년 2월 창립된 재단법인 ‘행복한나눔’의
전신이다.
국내 모금활동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시작한 상설바자는 새로운 희망이 됐다. 생명창고는
영국의 극빈자 자선기관인 ‘옥스팜’을 모델로 설립했
는데, 각종 재활용품과 제3세계 특산품을 기증받아
상설 전시, 판매했다. 2003년에 영화인 고은아, 2008
년에 방송인 박미선, 2015년부터 배우 김혜은이 대
표로 위촉돼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2009년 9월에
는 해외 말레이시아의 1개점을 포함해 전국에 54개
매장을 운영했다. 특히 말레이시아 행복한나눔의 수
익금으로 말레이시아 수상 가옥촌에 세워진 ‘눔빡소
망학교’를 지원해 개발사업의 좋은 모델을 마련했다.
2008년 2월 기부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행정
자치부로부터 재단법인 설립 인가를 받아 행복한나
눔을 출범시켰다. 같은 해 4월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제2008-005호(최초인증일 2008.04.18.)]을
받아 사업 활성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행복한나눔은
주요 사업으로 개인이나 기업 등으로부터 물품을 기
증받아 저렴하게 판매하고, 수익금으로 국내외 어려
운 이웃을 돕는 나눔가게사업을 비롯해 공정무역사
업, 착한상품, 물품지원사업을 전개했다.
072 기아대책 30년사 기
1999년 3S 생명창고 오픈식
현재의 나눔가게 슬로건
초창기 행복한나눔은 교회와 지역주민들의
교류 통로의 역할을 했다. 교회 공간을 매장으로 활
용하고, 성도 등 지역주민들이 자원봉사, 물품기증으
로 함께하며, 수익금으로 교회가 지역에 필요한 구제
사역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이에 기반해 각 지점들은 주간노인보호센터, 지역아
동센터 운영 등의 지역개발사업을 지원했다.
2010년대 이후로는 싱글맘, 중중장애인 등 고
용 취약 계층을 직접 고용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사업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했다.
2018년부터는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행 사로 ‘행복한상자 나눔’을 진행했다. ‘행복한상자 나
눔’은 각 지점 인근 사회적 취약계층 가구에 생필품
과 식품 등을 전달하는 행사로서 주민센터, 자원봉 사자, 교회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협력했 다. 또한 지역주민들과 지역 내 소상공인들이 참여하
는 플리마켓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공동체성을 확대 하고 지역의 이슈를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나눔바자회’는 지역과 함께하는 사업의 일환
으로 기업, 기관, 교회 등 나눔을 원하는 어느 곳에 든지 찾아가서 개최했다. 나눔바자회는 후원기업과
함께하는 바자회, 지역사회에서 기관과 주민이 자원
봉사자로 참여하는 바자회 등 행사 성격에 맞춰 진행
되면서도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행복한 축제로 만들
어 갔다. 나눔바자회는 매년 20~25회 가량 개최됐으
며, 수익금은 국내 미혼모 가정 지원, 독거노인 지원
등 소외된 사회계층을 섬기는 일에 사용했다.
2014년 여성일자리 지원 프로젝트로 시작된
‘행나맘’ 사업은 미혼모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복귀
를 돕기 위해 교육과 일자리 기회를 제공했다. ‘행나
맘’은 ‘행복한나눔과 함께하는 육아맘’의 줄임말로
행복한나눔을 통해 나눔실천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지역사회를 섬기는 여성 가장
을 뜻했다. 주요 사업은 수공예 상품 제작 및 판매, 수공예 상품 체험 강좌(원데이클래스) 등이며, 미혼
모가 처한 상황과 개별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비즈니
스 모델을 발굴해 지속가능한 다양한 사업영역으로
확장됐다.
073 HISTORY
2013년 제11회 SK행복나눔바자회
기아대책 BM(Business Ministry)사업
은 해외 선교구호 사업지역의 생산품을 들여와 국
내에서 판매함으로써 현지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자립기반을 마련해 기아대책의 VOC(Vision of Community)를 성취하고 떡과 복음을 전하는 이
상적인 선교개발사업이다. 국내에도 공정무역을 통
해 정당한 생산의 대가를 지불한, 의미 있고 품질 좋
은 상품을 유통시킴으로써 후원자들이 일상적인 소
비를 통해서도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윤리적이고 착
한 소비문화를 확산시키고자 했다.
브랜드 ‘행복한장바구니’는 내 가족을 위한
먹거리를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선교지를 지원할 수
있다는 의미로서 북한산 된장, 조선간장, 에티오피아
커피,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 인도네시아 자바 커피, 빅스마일 라이스칩,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초콜릿
등을 판매해 왔다. 각 기업이나 기관에서는 고객선 물, 사은품 등으로 행복한장바구니 제품을 사용해 사회공헌 이미지를 강화했고, 각 교회나 단체는 선
교비나 구제비 마련을 위한 바자회 등으로 동참했다.
2004년 7월 시작한 북한 ‘다리돌콩된장’ 사업
은 함경북도 라진지역의 시범농장에 유기질 비료를
지원해 생산된 콩을 원료로 전통 된장을 만들어 판
매했다. 현지의 경제적 자립기반을 마련하면서 판매
수익금은 북한에 빵공장 설립 및 운영지원을 하는
등 다양한 구호사업에 사용했다. 또한 생산자 직거
래를 통한 유통단계 축소의 이익을 공유하고, 공정
무역 공동체 발전기금을 조성해 지속가능한 마을 공
동체를 구축하는 효과가 있었다.
북한산 된장인 ‘다리돌콩된장’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
074 기아대책 30년사
에티오피아 ‘따뜻한 향기 커피’는 2005년 9월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원회와 협력해 에 티오피아 커피를 국내에 판매하고, 수익금은 에티오
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한국전참전용사 빈 민촌(Korea Village) 지원사업에 사용했다.
행복한나눔은 2008년 멕시코 치아파스주 야
할론 농가를 돕기 위해 공정무역사업에 나섰다. 농가
로부터 제값을 주고 커피 생두를 직접 구매하여 야
할론 농가의 자립을 돕자는 취지였다. 공정무역은 생
산자와 소비자가 상호 존중과 신뢰의 관계 속에서
공정한 가격으로 물품을 거래하고, 저개발국 농부
와 생산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빈곤에서 벗어나도
록 돕는 ‘행복한’ 무역이다. 지역 농가들은 환경 친화
적인 방식으로 커피를 재배하고, 길러낸 커피는 최저
가격 보장제를 통해 정당한 가격에 판다. 아이들까지
도 커피재배에 참여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농 가들은 공정무역으로 수입이 늘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됐다.
소비 행위가 곧 나눔이 되는 순환공간을 마
련하기 위해 행복한나눔은 2011년 7월 공정무역카페
‘비마이프랜드(Be My Friend)’ 1호점을 오픈했다. 카
페를 방문하는 모두에게 지구촌의 소외된 어려운 이
웃을 알리고,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도 나눔이 이뤄
지는 카페를 설계했다. 무엇보다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에도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착한소비’ 문화를
확산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비마이프랜드
는 기아대책 공정무역 커피의 브랜드이자 카페 이름
으로, 소외된 이웃의 친구가 돼달라는 의미가 있었다.
즉 소비자들이 일상의 소비생활을 통해 가난한 현지
농민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행복한나눔은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를 이롭
게 함을 지향하고 있다. 나눔가게사업 및 공정무역
커피를 통해 사회의 각 영역에서 다양한 가치를 창
출함으로써 국내외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의 자
075 HISTORY
2008년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 농가 방문
076 기아대책 30년사 행복한나눔 김혜은 대표
행복한나눔 Core Value
• 사회 가치
다양한 일자리 창출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든다.
• 문화 가치
나눔바자회, 캠페인 활동을 통해 나눔의 문화를 확산한다.
• 나눔 가치
수익 나눔을 통해 지역사회를 돕는다.
• 경제 가치
나눔가게 매장, 공정무역 커피사업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추구한다.
• 환경 가치
재사용물품 사용을 통해 환경을 지킨다.
립을 도왔다. 행복한나눔은 나눔가게와 공정무역커
피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의 각 영역에서 다양한 가치
를 창출함으로써 국내외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
의 자립을 도와 오면서, 2018년 재단법인 설립 10주
년을 맞아 지속가능성보고서 ‘공동체를 살리는 비즈
니스’를 출간했고, 설립 후 10년간 창출한 가치를 표
와 같이 다섯가지 가치로 정의했다.
1999년 기아대책 사업부서로 시작해 2008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행복한
나눔은 우리 사회에 나눔문화를 전파하고, 비즈니
스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경제・사회적으로 혜택
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비즈니스를
통해 공동체를 세우고 공동체 자립을 실현해 나가는 행복한나눔이 될 것이다.
077 HISTORY ◉ 제1장 | 굶주림 없는 세계를 위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10년 2009년 문을 연 행복한나눔 서울극장점
078 기아대책 30년사 2000~ ◉ 국내 복지사업을 확대하다 2000~ ◉ 기업사회공헌의 가치를 더하다 2000~ ◉ 북한사업의 확대, 의료지원 및 어린이개발사업 2000~ ◉ 도움이 가장 간절한 곳에 보내는 사랑, 긴급구호사업
2000 ~ 2009
11 12 13 14
HISTORY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 6:8)
2002~ ◉
동행, 한국교회와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다
2003~2013
◉
한국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깨우다 섬기는 한국교회
운동
2003~ ◉
따뜻한 겨울, 희망을 켜다
기아대책 희망온
캠페인
2003~ ◉
섬김의 리더, 미래 세대를 양육하다
글로벌시민교육
2004. 5~ ◉
소외된 아이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행복한홈스쿨
2009. 10 ◉
떡과 복음의
확장을 위해, 사람을 보내는
기아대책
◉ 제2장 | 사람을 보내는 기아대책, 하나님의 역사 20년 079 HISTORY
보내는 기아대책, 하나님의 역사 20년 16 17 18 19 20 15
제2장. 사람을
국내 복지사업을
080 기아대책 30년사
11 2000~
확대하다
아대책은 2000년대 초반 들어 국내 사업을 점
차 확대해 나갔다. 아동개발사업, 지역사회복
지사업, 위기가정지원사업 등으로 사업의 분야를 구
체화해 현장 전문성을 살린 복지사업을 다각적으로
이어나갔다.
국내아동개발사업은 만 2~18세이면서 저소득
층인 조손, 한부모, 소년소녀, 다문화 등의 가정 아동 과 후원자가 일대일 혹은 일대 다수로 결연을 맺어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필요한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
주고 전인적인 성장을 돕는 사업이다. 저소득 소외가
정 아동을 대상으로 생계주거, 교육, 문화정서, 보건
의료 등 아동의 성장을 위한 기초적인 서비스와 함
께 가족기능 회복을 지원했다.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
가정 아동의 학습 정서 발달을 돕고 가족 생계를 지
원해 결연아동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도록
하는 등 열악한 경제 상황, 가족 해체 등으로 힘들어
하는 아동들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돼 주었다.
이 밖의 아동 대상 사업으로는 위기가정지원
과 기아대책의 지역아동센터인 ‘행복한홈스쿨’ 운영 사업을 진행했다. 긴급지원을 통해 일시적인 경제적, 환경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지역아동센
터인 ‘행복한홈스쿨’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아동 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2005년 9월 GS홈쇼핑과 함께하는 강서행복한홈스쿨 개소
◉ 제2장 | 사람을 보내는 기아대책, 하나님의 역사 20년 081 HISTORY 기
국내 결연아동
기아대책은 다양한 사회복지시설과 협력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및
지역공동체 성장을 위한 전문 복지사업을 수행했다.
복지시설을 통한 지역주민의 자립, 지역통합 개발, 지
역사회 네트워크 구축 등을 목표로 지역사회 역량강
화사업, 사회복지시설 수탁운영사업, 물품지원사업
등 지역 수요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중 사회
복지시설 수탁운영사업은 전문적인 지역복지사업으
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 초반, 사회보장 수준이 여전히 낮
은 가운데서도 복지관 중심의 사회복지 서비스가 급
속히 발전했다. 또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
복지에 관한 인식과 필요성이 더욱 확대됐다. 기아대
책도 이에 발맞춰 ‘행복한 실버요양센터’를 운영하는
등 노년층의 다양한 복지수요에 따라 운영 시설을
늘려 나갔다. 지역사회 어르신들의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심신기능 유지 및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노인복지관
으로는 1호 수탁기관인 서초노인종합복지관을 비롯
해 기장군노인복지회관, 강남구노인복지관, 군포시노
인복지관, 분당노인종합복지관, 고성군노인복지회관, 하계실버센터, 우리마포노인복지관 등이 있다.
노인 빈곤율 해소와 자립을 위한 노인일자리
사업 전담기관도 확대했다. 양산시니어클럽, 분당시
니어클럽, 우리마포시니어클럽, 고성시니어클럽을 설
립해 노인의 사회참여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영유아를 위한 보편적 보
육 서비스 제공을 위해 국공립 어린이집을 수탁운영 했다. 어린이집 수탁운영 제1호는 2001년 2월 개소
한 ‘섬기는어린이집’이었다. 이후 전국에 행당어린이
집, 단비어린이집, 영이어린이집, 대전광역시립어린이
집, 군포시립푸른어린이집, 태양어린이집(장애인전 담), 해가람어린이집, 정관어린이집, 신정어린이집 등 을 수탁운영했다.
이 밖에 양산시종합사회복지관, 중앙동복지 회관, 강동종합사회복지관, 신정종합사회복지관, 대
방종합사회복지관, 평화종합사회복지관 등 종합복지
관을 통해 다양한 복지 수요를 충족하고, 지역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장애인 복지시설은 2007년 12월 인천광역시
중구장애인종합사회복지관을 시작으로, 경산시장애
2009년부터 기아대책이 수탁운영하고 있는 노원구립
평화종합사회복지관
인종합복지관, 평화정신장애인복귀시설, 경산시보금
자리장애인주간보호센터 등을 수탁운영했다. 장애
인들에게 상담, 의료, 교육 및 직업재활, 사회재활 등
의 통합적 재활 서비스를 제공해 장애인의 회복과
잠재능력 개발 및 자립을 지원했다. 또한 대중을 대
상으로 한 장애인식 개선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 밖에도 노숙인재활시설(군산 신애원) 운영
을 통해 노숙인들의 사회적응 및 복귀 지원을 이뤄
나갔으며, 대전이주여성쉼터에서는 이주 여성의 보
호 및 자립지원을 위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했다.
기아대책의 지역사회복지사업은 사회복지 실
천, 현장 중심의 감동경영, 지역사회 내 공동체의 비
전 실현, 다양한 모금매칭을 통한 지역사회 복지의 필
요 충족이라는 점에서 다른 기관과 차별성이 있다.
2019년 12월 기준으로 국내 결연아동 3,966명, 행복
한홈스쿨 39개소, 영유아 보육시설을 포함한 복지시
설 37개소를 운영해 국내 이웃들에게 희망을 전했다.
082 기아대책 30년사
기업사회공헌의 가치를 더하다
083 HISTORY
12 2000~
KB국민은행과 함께하는 희망상자 POSCO와 함께하는 사랑의집짓기 포스코 스틸하우스 지원
아대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과 지속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고, 기업이 장기적 변화의 관
점에서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지속가능한 경영과 기
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협력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기업의 사회공헌
의무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자리잡기 전이었
다.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 부서가 부재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가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기
아대책은 물품과 후원금 전달 위주의 소규모 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후원기업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등
20여 개의 기업과 파트너십을 만들어 갔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기업의 사회공헌 전
담 부서가 신설되고, CSR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확
산됐다. 기아대책 역시 이런 흐름에 발맞춰 기업의
업력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을 제안하
고, 1개년도 단회성 사업이 아닌 사업의 지속성을 강
조하며 다년도 사업을 이어갔다. 이 시기 기아대책은
100여 개의 후원기업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내부에
서도 기업사회공헌 전문가를 양성했다.
2010년대에 들어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
념이 사회적 가치 창출(CSV) 개념으로 발전했다. 사
회공헌을 위한 기업의 지출규모가 증가하고, 사회적
기업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기아대책은 누적된
사회공헌 협력 사업 이력을 바탕으로 활동의 임팩트
를 평가하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적인 파트너
십을 탄탄히 구축해 나가고 있다. 또한 지구촌 곳곳
에 희망의 길을 열기 위해 동행해준 기업에 투명한
운영과 결과보고, 헌신적인 사업으로 NGO의 새로 운 모범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기아대책은 기업별 해당 기업의 특성에 맞는 사회공헌활동을 제안해 현재까지 다양한 기업들과
장기간 파트너십을 이어왔다. 기업후원 참여 방법은
크게 5가지다. 기업의 사회공헌기금 및 임직원 후원 등의 기금후원, 국내 및 해외 사업 후원, 임직원 및 기업 봉사단의 해외봉사활동 참여, 국내·해외의 도 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기업물품 지원, 기업의 특
정 상품을 통해 판매 수익금 및 매출금의 전체 또는 일부를 기부하는 공익연계마케팅(Cause Related Marketing), 공정무역 커피 구매 및 사회적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는 착한 소비 등이다.
KB국민은행은 2011년부터 ‘희망상자’ 사업과
‘전통시장 사랑나눔’ 행사를 전개해 왔다. 희망상자
는 국내 저소득 가정 아동을 대상으로 생필품이 담
긴 박스를 전달하는 사업이며, 전통시장 사랑나눔은
매년 설과 추석에 전국 KB국민은행 지역영업소가
있는 지역의 전통시장에서 명절 선물을 구입해 관내
이웃을 돕는 행사다. 전통시장을 살리고, 이웃들의
따뜻한 명절을 지원한다는 목표를 담았다.
포스코는 2009년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화 재피해가정에 포스코의 기술을 녹여낸 ‘스틸하우스’
주택을 지원했다. 임직원 및 대학생 봉사단의 참여로 2019년까지 총 50채를 지었다. 재해재난 발생 지역에 긴급구호 키트 1만 4,000개를 지원하기도 했다. GS홈쇼핑은 아동과 청소년의 정서지원을 목표로 기아대책과 다양한 문화사업을 진행했다.
084 기아대책 30년사 기
기아자동차와 함께하는 그린라이트프로젝트
적인 사회 인프라가 없는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의료지원과 교육적 혜택을 제공하는 GLP보건센터, GLP스쿨, 모빌리티 사업 등을 운영했다. 이 밖에도 연 2회 임직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아자동차
주니어 글로벌 봉사단’을 운영해 라오스에서 교육 인
프라 지원을 진행했다.
LG화학은 과학문화 확산과 글로벌 시민 소양
교육을 위한 미래과학인재 육성에 나섰다. 2005년부
LG화학과 함께 진행하는 ‘재미있는 화학놀이터’ 사업
2005년부터 시작한 ‘무지개상자’ 사업은 지역아동센 터 아동을 대상으로 악기를 비롯한 음악교육을 지원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밖에도 장학금 및 교복 지원, 대학생 봉사단 운영 등을 함께했다.
기아자동차는 2012년부터 전 세계 소외된 이 웃들에게 성장과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표 사 회공헌 활동인 ‘그린라이트 프로젝트’(Green Light Project, GLP)를 기아대책의 말라위, 우간다 사업장 에 지원했다. 기아대책은 말라위와 우간다에서 기본
터 초등학생 대상으로 실시한 ‘화학놀이터’와 2015
년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화학캠프’를 진행해
현재까지 약 1만 2,000여 명의 초·중학생들이 과학기
술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롯데쇼핑은 2017년부터 여성우울증의 예방, 치
료 및 인식 개선을 지원하는 대표 사회공헌활동인 ‘리
조이스(Rejoice)’ 캠페인을 시작했다. 복지관 지원 공
모사업, 대국민 홍보 및 ‘행복한나눔’의 미혼모 자립
지원 사업인 ‘행나맘’과 연계해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기아대책은 각 기업의 특성을 살린 사업 기획
과 실행으로 2018~2019년에만 약 300억 원 가치의
기업 사회공헌사업을 진행했다.
085 HISTORY
기아대책 후원기업
COSMOCOS
DB김준기문화재단
DB하이텍
EXR
FNC엔터테인먼트
G마켓
GE 코리아
GS건설
GS칼텍스
GS홈쇼핑
IBK기업은행
KB국민은행
KB증권
KC산업
KEB하나은행
KIM & CHANG
KRX국민행복재단
KT
KT Skylife
LG전자
LG화학
LH한국토지주택공사
MBC나눔
MetLife Foundation
PVH KOREA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서울교통공사
서울디지털대학교
서울에너지공사
서일석유
성분표읽어주는여자
세림복지재단
세우산전
세움전기
소망글로벌
소망글로벌 주식회사
솔라플렉스
슈어소프트테크
시그나사회공헌재단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톰보이
신애요양원
신한계기
신한은행
신한카드
씨엔에이
아가방앤컴퍼니
아디다스코리아
아모레퍼시픽
S-OIL
SK
SK 머티리얼즈 주식회사
SK 사회공헌위원회
SK 주식회사 C&C
SK 플래닛
SK가스
SK건설
SK네트웍스
SK네트웍스(주)워커힐
SK매직
SK브로드밴드
SK스토아
SK씨
SK이노베이션
SK이엔에스
SK케미칼
SK텔레시스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UPS Korea
086 기아대책 30년사 고도이엔지 고려시스템즈 고려은단 교보증권 국토건설 그랑플레이스 그린F5 글락소스미스클라인 글로컴 금강주택 금융감독원 기부앤기분 기아자동차 네오미오 네오위즈 노보노디스크제약 노아농산 다양산업 다온기업 다이드디자인인테리어 다인산업기계 대봉금속 대상 대성엔지니어링 대신적산 엔지니어링 대신적산엔지니어링 대양상선 대웅제약 대원푸드 대현푸드빌 델리팜 동강석유 동산어패럴 동성제약 동수원예치과 두리화장품 두산인프라코어 디쉐어 디쉐어미션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라임나무치과 로보프린트 로사퍼시픽 롯데쇼핑 루시헤어 루카스앤에스 리바이스트라우스 코리아 리박스 컨설팅 린텍 만상F&S 매센수학영어 매일유업 맥이에이 메이페이퍼 모든커뮤니케이션 무림 미네랄바이오 미래에셋대우 미래엔 미리디 밀알농장 바로고 박희봉 외과 반석 반석기공 베어베터 벧엘한의원 본사랑 부바 뷰티화장품 비전 H&T 뽕뜨락 피자 삼광글라스 삼성꿈장학재단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생명보험 삼성에스디에스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전자 삼성증권 삼성화재해상보험 삼성SDI 삼신테크 삼양사 삼양수지 삼조생명과학 상록운수
아모텍 아산나눔재단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이소이 아이티버팀목원격평생교육원 안상규벌꿀 알이티 앙블랑 애니라인 에스피씨테크놀로지 엘지생활건강 엘테크놀로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 오병 올리브스튜디오 우리금융그룹 우리은행 우진고분 자 웅진식품 웅진씽크빅 윈스테크 유니클로 유사나헬스사이언스코리아 유진그룹 유진에스앤티 유환아이텍 윤성하우징 이&장 주식회사 이랜드복지재단 이베이코리아 이브자리 이지스엔터프라이즈 인비트윈 인진 일동제약 일진레이텍 장수열처리공업 재운환경산업 재유스틸 전북개발공사 정오개발 제로투세븐 제이솔루션 제일기획 제일자동차정비 제일하이텍 조선내화 조양기업 조은세상 주식회사
주식회사 폭스코리아 주품디자인 지엠파트너 지엠한마음재단코리아 참사랑치과의원 참식품 주식회사 창영기업 카이넥스엠 카카오 컴투스 코오롱그룹 코타파 태광그룹 일주학술문화재단 태형기업 토브구문정독어학원 티알엔 파인트리 패션그룹형지 팬코 포스메이트 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포스코1%나눔재단 포스코강판 포스코건설 포스코엠텍 포스코 O&M 포스코외주파트너사협회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케미칼 포스코플랜텍 포커스투어 푸른환경산업 풀무원 풍원티엔에이치 프라임에셋 플러스자산운용 피버트에프앤씨 피엔풍년 하나금융그룹 하나금융나눔재단 하나카드 하나투어 하이이글넷 한국가스공사 한국거래소 한국공항공사 한국동서발전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야쿠르트 한국오츠카제약 한국인삼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한독화장품 한비테크 한솔교육 한솔제지 한양풍동실험연구소 한중 한화그룹 한화생명보험 한화케미칼 해피빈 행복한에코폰 행운종합물류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제철 호국 호서푸드시스템 호텔신라 효성 훼스토원 휴먼플러스 AJ BC카드
CJ나눔재단
초이락컨텐츠팩토리
BNK금융지주
북한사업의 확대, 의료지원 및 어린이개발사업
087 HISTORY
13 2000~
북한 정성수액약품공장 내부
아대책은 1994년 국내 최초의 평양 제3병원
의료장비 지원을 시작으로 대북지원사업을 전
개해 왔다. 2003년부터는 대북사업의 중점 방향을
긴급구호에서 개발사업으로 전환해 북한 주민에게
자립기반을 마련해 주는 데 역점을 뒀다.
첫 사업은 평양정성제약에 수액제(링거) 생산 공장 건설이었다. 당시 북한에는 수액제를 비롯한 의
약품을 생산·공급하는 현대적 생산시설이 없어 소
독한 일반 음료수 병에 증류액을 담아 환자에게 주
사하는 실정이었다. 기아대책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
동의 일환으로 통일부와 함께 17억 원을 들여 연간
500만 병 생산 능력의 정성제약 수액제 공장을 건립 했다. 공장에서 생산한 수액제는 황해북도와 평안남 도 지역에 공급됐다.
기아대책은 또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추진 했던 지하수개발사업의 경험을 살려 2004년부터 북 한 내에 수자원개발 및 정수소독사업을 진행했다.
이는 북한의 건강·보건 분야에 필수적인 식수개선사
업으로 이어졌다. 기아대책은 지하수 탐사 전문가를
북한에 보내 평양적십자병원과 황해북도 봉산군 은
정리 젖염소 농장 등 3곳의 지하수 탐사작업을 도왔
다. 수술실과 소아과 병동에는 정수기도 설치했다.
2007년에는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북한동포를
위해 락랑섬김병원 건립사업에 착수했다. 북한 병원
은 의료장비 부족과 의료기술 낙후뿐 아니라 신분이
나 계급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 구분돼 있어
의료접근성에 문제가 있었다. 특히 경제난 이후 일반
주민들의 병원 이용은 더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이에
락랑섬김병원 건립사업 당시 북한 방문
따라 일반주민이 실제 이용 가능한 구역병원과 북한
현실에 부합하는 외과, 정형외과, 치과, 소아과, 산부 인과, 내과 등의 진료과목 편성 및 시설 구성에 중점 을 두고 병원건설과 운영사업을 전개했다. 북한 동포
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면서 지속적인 공동 운영의 단계까지 격상된 남북의료협력의 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08년에는 북한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환
경이 더 열악한 함경북도 라선시 신해동, 비파동 지역
의 진료소에 기초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의약품, 의료 소모품, 의료장비 지원을 시작했다.
어린이 구호사업인 생명의 빵 지원사업은 함
경북도 라진지역의 소학교, 유치원, 탁아소 아동 2만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북한 어린이들은
남한 어린이들에 비해 키가 현저히 작고 영양실조 및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이 장기
간 지속됨에 따라 북한 어린이들의 정상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기아대책은 가장 현
실적인 대안으로 함경북도 라선에서 빵공장을 운영, 하루 5,000명의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는 빵을 생산
해 아동에게 직접 공급했다.
5세 이하의 북한 어린이 45.2%가 만성적인 영
양실조에 시달린다는 유니세프(UNICEF)의 자료에 의거해 분유지원사업도 진행했다. 시범농장에서 재
배한 콩으로 된장을 생산해 남한에 판매한 후 수익 금을 다시 북한 주민 자립사업에 사용하기도 했다.
대북지원사업은 2008년 2월 1일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한 대북지원 전담 재단법인 ‘섬김’이 발족한
이후 2010년 통일부 대북지원단체로 지정되면서 보
088 기아대책 30년사 기
북한 소학교 급식지원
다 전문적으로 발전했다.
대북사업의 경우 남북관계에 영향을 받게 되
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는 사업도 더디게 진
행될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 원조가 북한 내부의 정
치적 상황과 시류에 따라 변하다 보니 지역 아동들 의 굶주림과 만성적인 영양실조 문제는 해결하기 어
려웠다. 기아대책은 대북사업의 방향을 아동에 집중
해 2010년 1월 북한어린이개발사업을 시작했다.
산골 소학교를 중심으로 아동들을 후원자와
결연했으며, 이를 통해 학교환경 개선, 지역사회의 자
립 역량 강화 등을 진행함으로써 아동들이 건강하
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후원 대상은
3세에서 16세까지의 영유아, 소학교·중학교 아동이 었다. 다만 현지의 특수한 상황으로 아동의 신상 정
보들을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연하는 아동의 학
교 정보 중심으로 소식을 발송했다.
기아대책은 2017년 북한 지역 주민들과 척박
한 땅의 회복을 도와 부흥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
아래 북한 지원 사업을 개편하고 ‘생명나무 프로젝
트’, ‘꿈나무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생명나무 프로젝트’는 척박한 산야에 유실수
를 심어 황무지가 된 우리 땅을 회복하고, 생산된 작
물로 주민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평안북도
2008년 2월 대북지원 전담 재단법인 섬김 발족
089 HISTORY
32개 지역을 중심으로 밤나무, 개암나무, 단나무(아 로니아) 등의 묘목을 지원했다. 북한 주민들은 스스
로 동기 부여를 하며 국토 회복을 통해 자립의 희망
을 찾아 나갔다. ‘꿈나무 프로젝트’는 고아, 영유아 및 산모 등
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들이 기본적인
건강, 교육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지원을 하는 사업이다. 통일세대가 될 북한 어린이, 특히 취약계층인 고아들과 산골학교 학생들에게 영
양, 교육, 보건, 문화정서 분야를 지원했다.
현재 북한은 유례없이 이어진 국제적인 대북
꿈나무 프로젝트 지원 내용
• 영양지원사업
북한 전역의 고아원 및 산골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영양지원.
밀가루, 옥수수가루, 통옥수수 물품지원
• 문화정서지원사업
방한복, 체육용품 등 물품 지원
• 모자보건사업
산부인과 필요 의료기기, 의료 소모품, 출산용품, 의약품 등
지원
• 긴급구호사업
가을 추수 전 극심한 식량 위기에 대응해 긴급구호 진행
• 어린이시설 지원사업
육아원, 유치원, 탁아소에 빵과 분유 및 영양식, 학용품, 의류
등 지원
북한 동포 돕기 사업 중 하나였던 ‘기적을 낳는 닭알’ 포스터
제재로 자체 자원이 고갈돼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시
작된다는 두려움 앞에 놓여 있다. 대북관계의 온도
차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 속에서
도 기아대책은 매해 3만 명의 북한아동을 지원하는
등 대북사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090 기아대책 30년사
2018년 생명나무 사업 일환인 유실수 지원
도움이 가장 간절한 곳에
보내는 사랑, 긴급구호사업
091 HISTORY
14 2000~
아대책은 전쟁과 홍수, 지진, 가뭄 등 천재지
변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식량과 물품을 지원하고, 의료팀을 파견해 그들을
위로하고 돕는 긴급구호사업을 진행해 왔다. 재난공
동체에 피해를 최소화하고, 공동체가 일상생활로 빠
르게 복귀할 수 있도록 긴급구호 시 ‘초기대응–조기
복구–장기재건’으로 구호활동을 진행했다.
긴급구호 초기대응 단계에서는 재난이 닥
쳤을 때 신속히 대처할 수 있도록 초동대응 시스템
을 구축해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했다. 재난 발생 이
후에는 빠른 시일 내에 피해주민들이 기거할 수 있
는 지속가능한 주거공간 제공을 위해 조기복구에
힘썼다. 긴급구호를 진행하는 전 과정에서는 이재
민 보호원칙을 준수했다. 기아대책 사역의 핵심인
VOC(Vision of Community)를 중심으로 지역주
민들의 참여를 통한 지역개발 및 회복이 이뤄지도록
긴급구호를 진행한다.
1차적인 긴급구호 지원 후에는 피해지역 주민
들의 자립과 2차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피해 복구 후
그들이 일상생활로 되돌아가 자립기반을 갖추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공동체를 돕는 수준까지 성장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재난 때 최단 시일에 최대 효
율의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해 주민들을 생존 위협
으로부터 구하는 한편, 지역 공동체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지역, 민족도 섬기 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기아대책은 재난이 발생하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갔다. 해외구호활동은 창립 다음 해인 1990년 12 월에 시작됐다. 방글라데시, 케냐, 페루 등 7개국에 1
억 8,500만 원을 지원했다. 1994년에는 르완다 난민 사태에 따른 난민구호에 나섰고, 1995년 일본 고베지 진 지역에는 긴급 복구팀을 파견했다. 1999년 5월 코
소보 난민돕기에는 기아대책 의료구호팀을 파견했다. 2000년대에는 매해 대형 재난이 발생해 전 세
092 기아대책 30년사
기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 긴급구호
2003년 12월 이란 지진 긴급구호
2008년 미얀마 사이클론 긴급구호
2000년 이후 해외 긴급구호 활동
• 2001년 2월 인도 지진 긴급구호(총 6회)
• 2003년 4월 이라크 긴급구호팀 파견(총 9회)
이라크 바그다드 라드쉬 지역을 중심으로 식량·교육기
자재·생필품 등 지원 및 의료구호활동 진행 ‘알모하나드’학교를 평화학교로 세워 전쟁으로 상처
입은 어린이들에게 평화교육 실시 이라크 내 활동 중인 NGO 중 최우수 NGO상 수상
• 2004년 8월 방글라데시 수해 긴급구호
11월 수단 다르프 지역 긴급구호
12월 동남아시아지역 쓰나미 긴급구호팀 파견(총 14회)
• 2005년 2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긴급구호
9월 미국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카트리나 긴급구호팀 파견 및 기금지원(3만 달러)
9월 대통령 단체 표창: 남아시아 지진해일피해지원 관련
10월 파키스탄 지진 긴급구호팀 파견, 대규모 급식소 설치
• 2006년 1월 파키스탄 대지진 이재민에게 방한품 지원
3월 필리핀 레이테섬 산사태 긴급구호팀 파견, 급식지원 및 비전센터 건립
5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지진 긴급구호팀 파견
• 2007년 6월 인도 치군야 감염지역 생필품 지원
8월 페루 지진으로 긴급구호
8월 산사태 피해 필리핀 세인트버나드 지역
마마누이족 거주지 재건
11월 방글라데시 사이클론 긴급구호 지원
• 2008년 5월 미얀마 나르기스 사이클론 사태에 2억 1,000만 원 지원 및 의료구호팀(경찰대학), 방역팀, 식량구호 등
4차례 긴급구호 활동
5월 중국 쓰촨성 지진사태에 2억 1,000만 원 지원 (긴급구호키트)
9월 인도 오릿사주 홍수피해 긴급구호 지원
9월, 12월 인도 오릿사 지역 종교탄압 기독교인 피해지원
12월 아이티 태풍피해 수해민 지원
• 2009년 1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난민 지원
6월 이스라엘 가자지구 전쟁구호활동
(1만 4,200여 달러)
8월 대만 태풍 ‘모라꼿’ 긴급구호활동
(긴급구호키트 500세트 지원)
9월 필리핀 태풍 피해 지원
9월 인도네시아 지진 피해 지원
•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 긴급구호
•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긴급구호
3월 레바논 시리아 내전 난민 긴급구호
• 2013년 10월 필리핀 태풍 하이옌 긴급구호
12월 요르단 시리아 내전 난민 긴급구호
• 2014년 8월 요르단 시리아 난민 캠프 정서지원사업
• 2015년 2월 마다가스카르 무룬다바 홍수피해 이재민 식량 지원 4월 네팔 등 대형 지진에 긴급구호팀 파견
• 2016년 9월 허리케인 메튜 긴급구호
• 2017년 1월 남수단 내전 및 기근 대응
2월 필리핀 톤도 파롤라 화재 긴급구호
3월 페루홍수 피해 지원
9월 몽골 동계 한파 게르 지원 및 담요지원사업
11월 멕시코 멕시코시티 지진 복구 지원
• 2018년 1월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의료 보건 지원
6월 과테말라 화산 폭발 관련 이재민 지원
• 2019년 3월 모잠비크 홍수 긴급구호
5월 사이클론 이다이 교육시설 조기복구 지원
9월 네팔 극서부 돌풍피해 복구 지원
093 HISTORY
094 기아대책 30년사
2015년 4월 네팔 지진 긴급구호
국내 긴급구호 활동
•1999년: 1월 파주시 수해 긴급구호.
독거노인 집수리, 수해아동 긴급집세지원
•2002년: 9월 태풍 루사 긴급구호.
충북 영동군 황간면, 강원·강릉·동해·삼척.
현금과 물품지원 무료급식, 기업후원
•2003년: 9월 태풍 매미 경남 마산, 강원 삼척 긴급구호
•2005년: 4월 양양 화재 긴급구호
9월 제주 태풍 긴급구호
12월 전북 고창 지역 폭설 긴급구호
•2006년: 7월 강원도 수해 긴급구호
•2007년: 9월 태풍으로 제주 지역에 긴급구호
•2009년: 7월 부산, 전남 신안 수해 긴급구호
국내 수해지역 긴급구호
계인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2001년 2월 인도 지진
긴급구호에 이어 6월 페루 지진사태에 긴급구호팀을
파견하고 구호기금 1만 달러를 전달했다. 9월에는 아
프가니스탄 난민돕기로 긴급구호팀을 파견했다. 이
란(2003년), 파키스탄(2005년), 중국(2008년) 등지에
는 대형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아프가니스탄
(2001년)과 이라크(2003년)에서는 전쟁난민을 돌보
는 사역과 긴급의료팀사역이 필요했다. 2004년에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동남아시아 해일지진으로 인
한 피해현장에서 활동했다.
2015년 4월, 강도 7.8의 대지진이 발생한 네팔
에서의 구호활동은 높이 평가됐다. 기아대책의 기아
봉사단(현 기대봉사단)이 현지상황을 본부에 빠르게
전했기 때문에 구호활동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었
북한 긴급구호 활동
•1995~2004년: 약 26억 원 상당의 구호물자 지원
•2004년: 4월 북한 용천지역 열차폭발 사고 현장 파견(총 2회)
•2006년: 3월 농업지원 위한 못자리 비닐 박막 지원
8월 북한 수해 돕기 식량지원
•2007년: 3월 식량지원(밀가루)
4월 농업지원 위한 못자리 비닐 박막 지원
8월북한 수해돕기지원(밀가루, 의류, 긴급구호키트지원)
8월 민족화해협의회 통해 북한수해복구지원
(7억 1,000만 원)
•2008년: 7월 분유 5,600캔 지원, 옥수수 지원(50톤)
8월 구충제 지원(5억 원 상당)
•2009년: 8월 구충제 50만 정 지원
다. 기아봉사단은 빠른 대응은 물론 긴급구호에 있
어 인도적 원칙도 철저하게 준수했다.
기아대책은 2010년대에 들어 긴급구호활동을
인도적 지원사업으로 확대해 나갔다. 다양한 형태의
재난 상황에서 이에 맞는 구호개발사업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사업을 다각화, 전문화 했다.
특히 전쟁, 종교분쟁 등을 이유로 고국을 떠
나는 난민들을 위한 사업을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난민), 방글라데시(로힝야 난민), 요르단(시리아 난민)
에서 이어나갔다. 만성화된 재난 상황에서 이들이 난
민캠프에서도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난민 아동들
이 건강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기후환경 변화로 해마다 반복적으로 발
생하는 재난상황에 놓인 이들을 위한 재난위험경감 (Disaster Risk Reduction)사업을 수행한다. 주민들이
재난 상황에 대비하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훈련
하고, 지역 인프라를 갖추는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095 HISTORY
동행, 한국교회와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다
096 기아대책 30년사
15 2002~
아대책은 한국 교회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 세상의 영적, 육체적 굶주림 종식을 위한
거룩한 도전과 변화를 함께 이뤄가고 있다. 지구촌
의 굶주린 이웃들에게 떡과 복음을 전하는 기아대
책의 사역은 한국 교회의 동행 없이는 불가능했다.
기아대책 사역을 알리고 힘을 실어주기 위한
핵심적인 모임은 기아대책 후원이사회다. 목회자를
비롯한 지역사회 리더들이 전국 시군구 지역 단위의
후원이사회를 조직하고 참여해, 기아대책의 떡과 복
음 사역을 알리면서 후원으로 힘을 보탰다. 2019년
12월 현재 전국 146개 지역에 후원이사회가 조직돼
있으며, 2,5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기아대책 역시 한국 교회의 진정한 선교 파트
너로서
NGO와 함께하는 전문성 있는 선교의 방향
성을 제시하는 한편, 성도들에게 나눔과 선교 참여
를 독려하기 위한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사순절과
부활절, 성탄절 등 절기마다 캠페인을 기획해 한국
교회에 소개함으로써 교회와 성도가 기쁨의 소식을 굶주리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나누도록 도왔다. 한 끼를 금식하고 이웃을 품는 ‘사랑의111금식운동’, 전 성도가 사순절 기간 중 성경필사에 참여하고 예 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나의사랑하는책’ 등의 절 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기아대책은 교회와 함께하는 다양한 협력 프
로그램도 운영했다. 과거 ‘CDP DAY’라는 이름으로
이어오던 선교예배를 ‘기대선교주일’로 개편해 기아
대책과 교회가 함께하는 나눔과 선교 축제로 자리매
김시켰다. 교회의 모든 부서가 기아대책과 함께하는
선교 예배를 진행하면서 예배 중에는 설교와 특강을
통해 전 세계의 영적, 육체적 굶주림 문제를 고민하
고, 예배 후에는 일대일 결연 후원을 통해 성도들이
한 아동을 영적으로 입양할 수 있도록 했다.
교회 내 다음 세대를 위한 인형극, 다양한 체험
교육도 풍성하게 마련했다. 성도들은 한 아동을 마음
에 품고 지속적인 후원을 하며 나눔의 경험을 교류하
고, 교회는 선교적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이다.
2008년부터 열어 온 ‘행복한만찬콘서트’는 현
재 ‘기대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지역 교회 및 성도들
과 함께하고 있다. 찬양사역자인 기아대책의 CCM
홍보대사들을 초청해 찬양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 나눔에 동참하는 이벤트다.
결연아동을 직접 만나거나, 후원하고 있는 지
역을 직접 찾아가 기아대책의 사역 현장을 확인하
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현장 주민 및 아동들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단기선교 프로그램인 ‘비전트립’
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 제2장 | 사람을 보내는 기아대책, 하나님의 역사 20년 097 HISTORY 기
한국교회, CCM 홍보대사들과 함께한 ‘행복한만찬콘서트’
기아대책은 나눔에 앞장서는 한국 교회를 대 상으로 2019년 ‘에클레시아클럽(ECCLESIA CLUB)’
을 발족했다. 에클레시아클럽은 해외, 국내, 북한의
도움이 필요한 아동과 공동체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
력하는 교회로 구성된 기아대책 후원교회 클럽이다.
이들은 기아대책과 함께하는 특별예배를 통해 국내 외 선교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또 직접 사업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사역지 방문 ‘필드드립’과 봉사활동, 클럽 데이 등 연간 정기 행사에도 참여한다.
이 밖에도 기아대책은 후원이사회를 대상으 로 ‘비전콘퍼런스’, ‘글로벌리더십세미나’ 등의 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기아대책의 리더십, 홍보대사 등을 연 사로 세워 사역의 방향성을 소개하고, 교회가 지역 사회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섬길 수 있는 방법을 논의 하는 자리다. 또한 2002년부터 해마다 ‘전국후원이 사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전국 단위로 조직된 후원 이사회가 한자리에 모여 비전과 선교의 의지를 다지 는 자리로 소속감을 다지며 떡과 복음 사역의 비전 을 공유한다.
098 기아대책 30년사
2019년 에클레시아클럽 발대식
2008년 베트남 비전트립
한국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깨우다
운동
099 HISTORY
섬기는 한국교회
16 2003~2013
국교회의 현주소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대부 분의 비기독교인들이 한국교회가 사회적 책
임을 다 하지 못한다고 응답할 정도로 교회의 활동
과 위상은 축소되어왔다. 이에 기아대책은 교회가 사
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각성운동인
‘섬기는한국교회운동(Samaritan Strategy Korea Movement, SSK운동)’을 2005년 시작했다. 이를 통
해 지역사회가 살아나고, 교회는 더욱 성장하며, 우
리 사회는 섬김과 나눔으로 풍요로워지는 변화를 목
표로 했다.
섬기는한국교회운동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하고, 지역교회가 주체가 돼 전인적인 섬김과 나눔
의 사역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를 이루 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 교회문열기운동, 겨자씨운동, 사랑의111운동 등 세 가지 활동을 중점적으로 펼쳤다.
교회문열기운동
교회문열기운동은 한국의 6만 교회가 주일 이외의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6일 동안에도 교회 시설을
개방하여 지역사회의 필요를 채우는 운동이다. 주중
에는 활용빈도가 적은 교회 공간을 이용해 지역 주
민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
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와 교류하며 사람들의 수요
와 필요를 확인하고, 이를 채워주며 섬기는 교회로
나아가고자 펼친 운동이다.
그 일환으로 세상을 섬기는 일인 목회의 본질
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한국교회와 함께 지역사회 개
발에 관한 세미나와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모범 교회
를 발굴하고, 각종 실천 사례를 알림으로써 교회들
이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역교회가 공간을 내주어 아동을 비롯해 지
역사회의 가장 연약한 이들을 품자는 취지로 교회
내에 지역아동센터 ‘행복한홈스쿨’, ‘행복한실버요양
센터’ 등을 교회와의 협력을 통해 세워나갔다. 또한
교회 내에 ‘행복한나눔’의 나눔가게를 열어 자원을
재활용하고, 판매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
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또한, 교회 내에 서점이나 카
페 등 주민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으며, 예배당을 예식장으로 개방하는 등 지역민들이 편의
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기아대책은 교회가 지역민들을 향해 문을 활짝 열도록 도움으로써 교인들만을 위한 교회
가 아닌,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로 발전해 나갈 수 있
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겨자씨운동 겨자씨운동은 1,200만 성도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섬기고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운동이다. 이름
처럼 작은 섬김의 실천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그
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자는 것이다. 교회가 단순히
예배하는 장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도행전에
서 언급되는 교회처럼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키는
누룩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했다. 교회가 지역을 섬길 때 자연스럽게 지역 사람 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100 기아대책 30년사 한
확장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교회와 그리스도인
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작은
일부터 계획하도록 실천하는 운동이자, 성경적 가치
관을 바탕으로한 섬김을 통해 지역사회와 열방 가운
데 빛을 발하는 교회로의 본질회복 운동이 바로 겨 자씨운동이다.
겨자씨운동의 4대 원리는 “죽어야 산다, 작은
섬김으로 시작한다, 균형 있게 섬긴다, 예수님의 본
을 따른다”이다. 겨자씨운동은 행복한111운동이라
고도 하는데, 한(1) 사람이 한(1) 달에 한(1) 가지 이
상 작은 섬김을 통해 교회가 앞장서서 지역사회의 작
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겨자씨운동은 DNA(Discipling Nations Alliance)운동과도 연결 지을 수 있다. 지구촌 곳곳
에서 후원자들과 여러 동역자, 현지 교회들과 함께
떡과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역할
을 감당해 온 기아대책은 2003년 한국 DNA협의회
와 함께 DNA운동을 시작했다. 멀리 있는 선교지뿐
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교회, 기독교 기관들과 연합
해 떡과 복음 사역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켜 건강
한 교회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취지였다. 기아대책은
DNA운동의 지역교회 실천전략으로서 겨자씨운동
을 전개했으며, 교회는 지역 속에서 작은 섬김을 실
천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갔다.
사랑의 111운동
사랑의111운동은 세계의 굶주린 이웃들을 위해 한
(1) 사람이 한(1) 달에 1구좌(1천 원) 이상을 후원하
겨자씨운동 설명회
겨자씨운동의 실천방향
• 하나님의 마음과 능력을 받기 위해 전체과정을 기도로 진행한다.
• 박애주의적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동기부여 한다.
• 실천하기 전에 심사숙고해서 계획한다.
• 단기간에 실천 가능한 간단한 프로젝트를 완수한다.
•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 물질과 재능을 사용한다.
• 지역사회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혜택을 나눈다.
• 수혜자들도 진행에 참여토록 동기를 부여한다.
• 하나님 나라의 가치기준에 의해 평가한다.
• 결과를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운동이다.
◉ 제2장 | 사람을 보내는 기아대책, 하나님의 역사 20년 101 HISTORY
는
지구촌의 가난한 이웃과
생명을 살리 는 운동이며, ‘주는 자가 복되다’고 하신 대로 가정과 교회와 대한민국을 복되게 하는 운동이라는 정신에 서 시작했다. 즉 세계의 굶주린 이웃들을 위한 오병
사랑의 111운동
이어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기아대책은 1993년 고난주간에 시작된 ‘사 랑의111금식운동’을 2005년, 전 국민 기부운동으 로 확대해 ‘사랑의111운동’으로 발전시켰다. ‘사랑의
111DAY’는 주일 하루를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후원에 동참하는 날이다. 기아대책
의 사옥이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11번지라서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교회와 함께하는 행복한홈스쿨 개소
기아대책이 펼친 교회문열기운동, 겨자씨운 동, 사랑의111운동 등 섬기는 한국교회운동은 교회
가 지역사회와 가까워지고, 지역 내에서도 떡과 복
음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지금도 이 정신은 이어 지고 있다. 기아대책이 한국교회와 함께한 나눔문화
와 복음의 확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02 기아대책 30년사
따뜻한 겨울, 희망을 켜다
103 HISTORY
17 2003~
기아대책 희망온 캠페인
울철 난방비 지원 캠페인 ‘21℃ 사랑느낌’의
홍보 문구이다.
여러분의 사랑으로 올 겨울 사랑온도를 1℃ 높여주세요.
• 6천 원이면 바람막이 문풍지
• 1만 원이면 15일치 연탄
• 2만 원이면 일주일치 기름
• 5만 원이면 전기장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기아대책은 2003년 11월부터 저소득층 가정
에 난방비를 지원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해 국내 난
방비 빈곤아동을 지속적으로 도왔다. 2007년부터
는 캠페인 이름을 ‘희망온’으로 정하고, 현재까지 난
방용품(등유, LPG, 도시가스, 이불, 연탄)을 국내 저
소득아동가정에 꾸준히 지원해 오고 있다. ‘희망온’
의 ‘온’은 희망의 스위치를 켠다는 의미의 ‘ON’과 따
뜻할 ‘溫’의 의미가 함께 포함돼 있다. 후원이라는 희
망의 스위치를 켜면 저소득층 가정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생계주거지원사업의 일환인 ‘희망온’은 겨울
철 난방비를 비롯해 생계비 지원, 주거개보수가 시급
한 가정 및 복지시설 지원 등 겨울철에 정부지원금만
으로는 생계와 난방을 해결하기 어려운 저소득 결손
가정에 난방비 일부를 지원해 가족의 기초생계를 보
장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기아대책은 매해 겨울 ‘희망온’ 캠페인을 진행
하면서 겨울 추위로 고생하는 저소득층 아동의 사
희망온 포스터
연을 싣고 따뜻한 후원을 독려했다. 기아대책이 조선
일보와 ‘희망온’ 캠페인을 진행했던 2013년, 조선일보
12월 4일자 기사에 지체장애 2급 장애인 아버지와
살고 있는 소녀가장 선정이의 사연이 실려 보는 이들
을 안타깝게 했다.
선정이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는 여느 때보다 춥다는 이번 겨울
을 나는 일이다. 겨울마다 장작을 패 집 난방을 해주던 아빠가
허리 수술로 눕게 되자 당장 문제가 생겼다. 군청에서 연탄을 보 내주고 있지만 영하 25도까지 떨어지는 화천군의 혹한을 버텨 내기엔 역부족이다. 선정이는 “안 그래도 ‘온몸이 시리다’며 겨 울을 힘들어하시는 아빠인데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날지 모르겠 다”고 했다. 선정이네 집에는 기름보일러가 있지만 기름 값 부담 때문에 올해는 단 한 번도 보일러를 틀지 못했다.
104 기아대책 30년사 겨
2017년 서울 신촌에서 진행한 희망온 거리모금
‘희망온’ 캠페인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
도록 해마다 새로운 콘셉트로 진행됐다. 2011년에는 희
망의 메시지 쓰기로 관심을 이끌었고, 2016~2017년에
는 ‘희망은 연탄을 싣고’,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희망
은 따뜻함을 입고’ 등의 문구로 거리 캠페인에 나섰다.
2018년에는 설치미술가 이효열 작가와의 협업 으로 ‘뜨거울 때 꽃이 핀다’라는 작품을 통해 희망온 캠페인을 벌였다. 연탄재에 장미꽃이 한 송이 꽂혀 있는 설치미술 작품은 ‘많은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 이웃의 삶에 희망이 피어난다’는 메시지를 대중
에게 전했다. 2019년에는 같은 작품을 모티프로 ‘100
인의 따뜻한 사람들’을 섭외해 이웃의 따뜻한 겨울
을 응원하는 후원릴레이를 유도했다.
기아대책은 2018~2019년에 걸쳐 희망온을 통 해 국내 소외계층 2,500여 가정과 140여 개의 복지
시설에 따뜻한 겨울나기를 지원했다. 앞으로도 모든
지원 가정 및 시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관리할 예정이다.
105 HISTORY
캠페인
섬김의 리더, 미래 세대를 양육하다
106 기아대책 30년사
글로벌시민교육 18 2003~
아대책 글로벌시민교육은 지구촌 이웃을
섬기는 겸손하고 책임감 있는 섬김의 리더 (Servant Leader)를 양성하기 위한 실천중심의 교 육과정이다. 지리적 경계를 넘어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이 열려 있는 세계화 시대에 유아, 아동, 청 소년, 대학생, 시니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구성
원들이 타 문화에 대한 바른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지구촌 이웃을 품으며 이해하는 건강한 글로벌 시민 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2003년 시작됐다. 무엇
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남을 위하는 나눔의 마 음이 강조됐다.
기아대책은 기아, 식량, 교육, 난민, 아동노동, 기후변화, 에너지, 도시빈민, 보건, 에이즈 등 글로벌
이슈를 쉽게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대상별 수준
에 맞는 콘텐츠를 직접 개발하고 교육해 왔다.
유아의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시작한 인형극
교육은 재난안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세계의 가난
한 친구들을 이해하고 나눔에 눈을 뜨도록 도왔다.
영유아의 눈높이에서 건강・안전나눔 손인형극, 건강 나눔 뮤지컬, 건강나눔 그림대회를 진행했다. 각 활동
의 세부 주제로는 깨끗한생활, 건강한식생활, 약물 오
남용 예방, 재난안전, 성폭력 예방 등 다양한 교육 프
로그램을 준비해 아이들의 균형적인 성장을 도왔다.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강의로 진행한 한톨청소년봉사단 비전특강
초등학생 프로그램은 아동이 건강한 자존감
을 가지고 나눔을 실천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
식을 함양하는 데 초점을 뒀다. 초등나눔교육, 초등
인성교육,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인성나눔 뮤지컬 프
로그램을 통해 아동 스스로가 지구촌 이슈에 공감
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아프리카 물
긷기 체험, 구호식량 체험 등 다양한 체험과 활동을
통해 나눔 실천에 가까이 다가서도록 했다.
중・고등학생 프로그램은 다양한 지구촌 문제
에 관심을 가지고,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작은 것
부터 적극적으로 실천하도록 체험형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 데 초점을 뒀다. 그중 한톨청소년봉사단은
◉ 제2장 | 사람을 보내는 기아대책, 하나님의 역사 20년 107 HISTORY 기
한톨청소년봉사단 비전특강을 경청하는 학생들
비전특강, 국내복지관봉사, 해외개발사업현장봉사, 나눔 프로젝트 등의 활동을 통해 청소년의 창의인 성, 사회봉사, 진로탐색 등에 집중하는 통합 교육 프 로그램으로 9개월 동안 운영된다. 연중 전국 중・고 등학교에서 진행되는 중・고등나눔교육은 다양한 지 구촌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방법들을 모색하며 실천 을 돕는 활동이다. 훈련된 전문 교육활동가들이 직 접 학교 교육현장을 방문해 한톨나눔캠페인과 평화
그림엽서대회 공모전을 실시함으로써 학생들의 세계
시민의식 제고와 참여를 도왔다.
2017년에는 기아대책이 지원하는 요르단 자
타리 난민캠프 태권도학교 아동들에게 희망의 메시
지를 평화그림엽서로 전하고, 국제사회에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서명활동을 진행했다. 기아대책은 교육기부 활성화와 문화 확산
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에 이어 2017년 제 6회 대한민국 교육기부대상에서 교육부장관상을 수 상했다.
한편 기아대책은 지구촌 곳곳에 살고 있는 결
108 기아대책 30년사
2018년
함께 완성한 그림엽서
미얀마에서 한톨청소년봉사단과 어린이들이
연아동을 2년마다 한국으로 초청해 어려운 환경 속
에서도 축구라는 도전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
하고 다양한 경험으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
는 나눔 프로젝트 HOPE CUP을 진행했다. 2018년
에는 HOPE CUP에 참가한 10개국 120여 명의 아동
들을 위해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평화그림엽서 전
시회를 가졌다. 2019년에는 아동노동으로 배움의 기 회를 갖지 못하는 파키스탄의 벽돌공장이 밀집한 라 이윈드 지역 아동들을 위한 평화그림엽서로 알파벳
북을 제작해 현장에 직접 전달하고 국내 중고등학생
들과 학부모의 후원으로 학교건축 및 학습기자재를 후원했다.
기아대책의 기관방문 프로그램은 대중을 상
대로 국제구호개발단체에 대한 이해와 진로탐색을 도왔다. 기관방문은 글로벌시민교육과 주제별 강의
동영상 시청, 현장 경험이 있는 사업담당 직원이 들
려주는 해외 결연아동이야기, 해외 수자원 및 보건 의료 사업 소개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기아대책은 국제 이슈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
2019년 한톨나눔캠페인에 참가해 파키스탄에 학교를 건축한
독수리기독학교 학생들
영유아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뮤지컬 교육 고 알리는 옹호 활동을 ‘기대서포터즈’를 통해 진행했 다. 기대서포터즈는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행동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구촌 굶주린 이웃들을 위한 스피커 역할을 담당했다. 기아 대책의 글로벌시민교육 강사단인 ‘기대쌤’은 영유아, 초·중·고등학생들을 지도하는 전문 교육기부 강사이 다. 각 교육현장에 파견돼 1년 동안 인형극, 초등인성 교육, 초·중·고 글로벌시민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기아대책은 배움을 통해 알고(Know), 관
심을 통해 깨닫고(Realize), 실천을 통해 참여하는
(Participate) 원칙을 바탕으로 지구촌 이웃들의 기
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지구촌 가족으로서 나눔
을 실천하려는 글로벌시민교육을 통해 오늘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현재 지구촌이 처한 여러 문제들
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느끼고 책임 있게 행동하도
록 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109 HISTORY
110 기아대책 30년사
행복을! 행복한홈스쿨 19 2004. 5~
소외된 아이들에게 사랑과
19
84년 서울 지역에서 시작돼 전국적으로 확 산돼 오던 민간 공부방이 2004년 아동복지
법 개정에 따라 지역아동센터로 변경되고 제도화됐
다. 지역아동센터는 지역사회 아동의 보호·교육, 건전
한 놀이와 오락의 제공, 보호자와 지역사회의 연계
등 아동의 건전 육성을 위해 종합적인 아동복지 서
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아동복지시설이다.
기아대책은 교회, 기업과 협력해 2004년부터
아동복지시설 지역아동센터인 ‘행복한홈스쿨’을 운
영해 왔다. 돌봄이 필요한 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보호, 교육, 문화, 정서 지원, 지역사회 연계 등 종합
적 복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방임 위기에 놓인
많은 아동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왔다. 아동의 권
리를 보호하고 인성교육 및 다양한 체험활동, 교육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에 주안점을 두었
으며, 행복한 아동을 넘어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만
들어 가고자 노력했다.
기아대책의 ‘행복한홈스쿨’ 지역아동센터는
2004년을 시작으로 2019년 현재 전국에 총 39개소
에 이르며, 1,362명의 아동을 보호하고 있다. 이용
아동은 만 7~18세이며 소득 기준, 가구특성 기준에
따라 돌봄취약아동(80% 이상), 일반아동(20% 이 내)으로 구성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우선보호 아동
행복한홈스쿨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으로 중위소득 100% 이하 지역사회 내 방과 후 돌
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18세 이하의 빈곤・학대・
방임가정, 한부모·조손 맞벌이·이혼, 다문화가정 아
동이다. 소득기준에 부합되지 않으나 가정해체 등 불
가피하게 돌봄이 필요한 아동도 보호 대상이 된다. 행복한홈스쿨에서 아이들은 1차적으로 가정
에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공급받고 있으며 아동 성
장발달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채워나가고 있다.
기아대책은 다음과 같은 행복한홈스쿨 지원 프로그
램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 가정 아동이 건강
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행복한홈스쿨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주5일, 일
◉ 제2장 | 사람을 보내는 기아대책, 하나님의 역사 20년 111 HISTORY
112 기아대책 30년사
8시간 이상 상시 운영하고 있으며 필수 운영시간은
학기 중 14~19시, 방학 중 12~17시, 야간운영 19~21
시 이후이다. 토요일 운영은 센터별로 상이하다.
행복한홈스쿨 및 이용 아동들을 대상으로 이
뤄진 기아대책만의 특별한 복지사업 중 ‘기대꿈꾸는
방’은 저소득 가정의 공부방 지원을 통해 아동들이
꿈꿀 수 있는 주거환경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8
년 신규 기획 사업으로 행복한홈스쿨 아동 가정 중
지원이 시급한 가정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아이들이
새로운 꿈을 가지고 학습에 더욱 흥미를 느끼며 공
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S.O.S 복지지원사업’은 생계위기를 맞은 아동 가정에게 보호·교육·의료·정서 영역의 필요에 맞게 지원 해 아동 가정의 긴급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업이다.
‘별빛학교’는 보호자 부재 등의 상황으로 방
임 위기에 놓인 아동들을 위해 늦은 저녁시간까지
센터를 운영해 아동들을 돌보는 야간보호사업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5 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호자의 생계유지, 부재로 인해 전국 초등
학생의 3명 중 1명에 해당하는 37%는 방과 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부모
가정의 자녀들은 63%가 ‘나 홀로 아동’으로 방과 후
최대 4시간 이상 돌봄 공백에 놓이는 것으로 분석됐
다. 기아대책은 ‘나홀로 아동’들을 돌보는 야간보호
프로그램 ‘별빛학교’를 통해 아동들을 범죄 및 방임
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더불어 학습, 예체 능, 문화체험, 멘토링 등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으로
아동들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며 오랜 시간 외롭고
행복한홈스쿨 기본 프로그램
• 보호: 지역사회 안에서 아동의 기초적인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보호하며 아동생활 지도, 건강지원사업, 야간보호 프로그램, 계절별 생계유지에 필요한 생필품지원 등 아동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기초생활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 교육: 아동의 학습능력을 위해 기초학습 및 숙제지도를 진 행하고 있으며 학교생활부적응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교 육프로그램을 연계한다. 1:1 학습지도, 한자, 영어, 과학 등 교과목 특별수업, 미술교육, 악기교육, 음악활동 등 기초학 습뿐만 아니라 특기적성도 지원하고 있다.
• 문화: 문화체험기회가 적은 아동에게 다양한 문화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공연, 영화, 박물관 관람, 미술, 음악 등 특별 체험활동, 야외 체육활동 등을 통해 아동에게 폭 넓은 경험 을 제공하며 나아가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 는다.
• 정서지원: 아동의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아동상담과 사례 관리 등 정서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아동 뿐 아니 라 가족기능회복을 위해 부모상담 및 교육을 진행해 행복한 아동과 가정이 되도록 돕는다.
• 지역사회 연계: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홍보와 자원개 발을 하고 있으며 자원봉사활동, 병원연계 등 지역사회 내 적절한 복지서비스가 연계되도록 돕는다.
◉ 제2장 | 사람을 보내는 기아대책, 하나님의 역사 20년 113 HISTORY
행복한홈스쿨에서 진행하는 실종·유괴 예방·방지교육
행복한홈스쿨에서 진행하는 아동권리교육
불안했을 아이들의 심리·정서적 안정을 도모했다.
기아대책은 신한은행의 후원으로 문화공연
나눔사업인 ‘꿈같은 하루’도 전개했다. 행복한홈스쿨
아동들이 다양한 문화체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방 학 중 문화예술, 체험지원사업을 펼쳤다.
이처럼 기아대책은 행복한홈스쿨을 통해 소
외된 아이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했다. 2017년 발
간된 ‘기아대책 행복한홈스쿨 운영실태 및 이용 아동
야간보호프로그램 ‘별빛학교’
의 발달특성 조사연구’에 따르면, 학교생활 적응 부
분에서 전반적으로 행복한홈스쿨 이용 일반 아동과
비교해 높은 점수를 보였다. 지적 발달과 공동체의식
수준도 일반 아동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2018년 7월 18일, 신한은행과 함께하는 마술공연 & 미술체험 ‘문화공연나눔, 꿈같은 하루’
114 기아대책 30년사
떡과 복음의 확장을 위해, 사람을 보내는 기아대책
115 HISTORY
20 2009. 10
2008년 진행된 기아봉사단 훈련
아대책의 2000년대 캐치프레이즈는 ‘사람을
보내는 기아대책’이었다. 그 중심에는 전 세계
영적·육체적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지역에서 자신의
재능과 기술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기아대책
파송 선교사인 기아봉사단(Hunger Corps)이 있었
다. 기아봉사단은 전 세계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
람들이 있는 곳에서 구호개발사역으로 그들의 전인
적인 필요를 채우고, 총체적인 삶의 변화를 이루며, 나아가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로 성장하기까지 돕는 역학을 감당했다.
초창기 기아봉사단은 국제기아대책에서 운영
하는 사업 현장에서 함께 일해야 했기에 영어로 소
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였다. 또한 기
독교 세계관을 갖추고 전인적 사역, 팀 사역을 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춰야 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의 1단
계 훈련을 거쳐 미국에서 2단계 기아봉사단 훈련을
받음으로써 선교 현장에 맞는 역량을 강화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선교계의 성장과 모금 저변의 확대로 한국 기아대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
면서 기아봉사단 훈련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미국에서 실시했던 2단계 기아봉사단 훈련을 한국
에서도 실시하게 된 것이었다. 2000년 기아봉사단의
훈련 및 파견을 전담하는 재단법인 국제개발원이 설
립돼 인력개발과 파견을 효율적으로 진행했다.
이후 떡과 복음 사역에 대한 관심과 기아대책
의 사역 확대로 기아봉사단 훈련에 대한 관심이 높 아져 훈련실시 횟수와 파송 기아봉사단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08년에는 현장에서 일하는 현지인 스태프들을 위해 해외에서 기아봉사단 훈련 을 시작했다.
창립 20년 만인 2009년 10월, 70개국에 759명
의 기아봉사단을 파송한 배경에는 도움이 필요한 곳 에, 아픔과 슬픔이 있는 곳에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 의 본을 따르기로 헌신한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있었
116 기아대책 30년사 기
태국에서 활동 중인 청년기대봉사단
다. 힘든 성장의 역사 속에서 전세계에서 보내온 사랑 에 빚진 우리나라가 이를 돌려주기 위해 해외 어려운 지역에서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었다.
2016년에는 기아봉사단이라는 명칭을 기대 봉사단으로 변경했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기아대책 이 함께하는 현장의 수혜자들을 ‘기아’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바라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취지였다. 또한
기대봉사단의 ‘기대’는 기아대책의 줄임말이자 하나
님, 수혜자, 후원자 모두에게 기대가 되는 사람,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2016년
부터는 청년 기대봉사단을 모집, 파견했다. 청년 기
대봉사단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이 선임 기대봉사
단들을 도와 기아대책의 총체적 지역개발사역을 경
험하고 장기 기대봉사단으로의 비전을 품도록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기아대책은 이제 양적 성장보다 선교사 역량
강화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대륙별로 전체 기대봉
사단이 모여 당면한 선교적 과제를 공유하고, 해결 방 안을 모색하는 ‘기아봉사단대회’를 다년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기아봉사단들은 성공사례를 나누고, 협
력을 통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2019년 12월 기준, 259가정의 기대봉사단들
이 파견돼 사역 중에 있다. 새로운 30년, 많은 상황과
환경의 변화 가운데서도 기아대책은 사람을 보내
현장의 변화를 이루는 사역을 지속할 것이다. 기대봉
사단이든 현지 사역자들이든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의 사명을 가진 이들과 함께할 때, 예수님의 역사들
을 지금 이 순간에도 이루어갈 수 있음을 확신한다.
◉ 제2장 | 사람을 보내는 기아대책, 하나님의 역사 20년 117 HISTORY
118 기아대책 30년사 2010~ ◉ 가장 연약한 존재를 지키다 생명지기 사업 2011~ ◉ 굶주림 없는 세상을 위해 기아대책 STOP HUNGER 캠페인 2014~ ◉ 고액 후원 분야를 개척하다 2016~ ◉ 결연아동들의 꿈의 무대, 기아대책 HOPE CUP
~ 2019 HISTORY
21 22 23 24 2010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30년 26 27 28 29 30 25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19 HISTORY 2018~ ◉ 아동개발사업, 그 열매를 확인하다 해외아동개발사업 성과보고서 2001~2019 ◉ 소외당하는 난민을
기아대책 인도적지원사업
◉
역사와
◉ 기아대책
더
◉ 미션
정체성을 알리다 1999~ 2019 ◉ 후원자와 함께 만들어 가는 기적 제3장.
품다
1989~2019
국제기아대책기구의
현황 1989~2019
30년, 섬김
낮은 곳으로 1991~
NGO로서의
역사
가장 연약한
존재를 지키다 생명지기 사업
120 기아대책 30년사
21 2010~
아대책은 2010년 국적 불문, 나이 불문하고
질병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담당하고
자 생명지기(Saving Life)사업을 개시했다. 보건·의
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 사고·재해로 인해 신속
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고위험 환자를 위한 건강
권 확충사업으로서 특별히 긴급 수술을 받거나 통
합 재활치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원을 개발, 조정
해 환자와 가정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 원했다. 즉, 가난으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사업이었다.
구체적으로는 긴급의료지원사업, 정책개발시범사업, 보건의료CSR사업을 전개했다.
긴급의료지원사업은 고위험환자(High Risk
Patient) 및 취약계층의 건강권을 확충하고, 해
외 환아의 치료를 지원하며, 장애 아동의 비급여
치료비 지원과 중도장애인의 사회복귀 등을 목표
로 했다. 특히 기아대책의 긴급의료지원사업은 국
내 유일의 ‘빈곤과 질병문제’에 통합체계를 구축
한 전문 의료사회복지(Medical Social Work) 부
문이기도 했다. 치료기관과의 통합사례관리(Case Management)를 통해 사회적 문제와 수혜자의 복
합적인 욕구를 반영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내외 고위험 긴급 환자의 의료비 지원사업,
2015년 안면기형으로 한국에서 치료를
장애 및 희귀질환 아동의 통합재활치료비 공모사업, 중도장애인 사회복귀를 위한 지원사업 등을 중점사
업으로 추진했다. 선천성 안면기형, 척추성근위축증
등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빈곤 및 취약계층에 긴급
의료비를 지원했으며, 질환의 정밀진단 검사비 등 비
급여 외래 진료비가 필요한 빈곤 및 취약계층을 위해
소액 의료비를 지원했다. 또한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재활치료(교정, 작업재활)와 치료비를 지원했다.
기아대책은 다년간 이어온 국내 긴급환자 지
원으로 많은 이들의 생명을 지켰다. 우간다 소년 벤 (17세)은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기아대책의 생
명지기사업으로 건강을 지켰다. 약해진 심장으로 학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21 HISTORY 기
받고 돌아간 잠비아 소녀 멜리사
업을 이어가지 못해 고등학교에 진학할 나이에 초등
학교 5학년에 머물러 있었지만 기아대책과 후원자들
의 도움과 관심으로 2016년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다시 건강한 심장을 얻었다. 소년은 이제 많은 사람
들을 살리는 의사를 꿈꾸고 있다.
우간다의 소년 벤처럼 열악한 의료 인프라 때
문에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환아들은 기대봉사단
을 통해 한국에 초청돼 수술을 받고 건강해져서 돌
아갔다. 2011년 5개국 5명을 시작으로 2012년 7개국
9명, 2013년 5개국 7명, 2014년 7개국 9명 등 2019년
까지 총 60명의 긴급의료지원 수혜자들이 기아대책
의 도움으로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긴급의료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은 이들 중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동공암, 결핵성 수막염, 심실중격결
손, 생식세포암, 뇌종양과 수술로 마음의 병까지 치유
할 수 있는 재건성형 관련 질환자가 가장 많았다. 이
외에도 척추측만증, 거대결장증, 원추각막증 등 다양
한 질환자의 치료를 지원했다. 비교적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열악한 인프라와 경제적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외 및 국내 아동들에게 후원기관과 치료
기관을 연계해 치료 여건을 제공하기도 했다.
기아대책의 생명지기사업에는 수많은 국내 의
료기관들이 함께했다. 국립재활원, 이화의료원목동
병원, 강동경희대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신촌세브란
스병원, 아산병원, 한양대학병원, 건국대학교병원, 서 울삼성병원, 한강성심병원, 자생한방병원, 가천길병 원, 충남대학교병원, 명지병원, 인하대병원, 한강수병 원, 실로암안과병원, 부민병원, 보바스어린이의원, 푸
르메재활센터, 101성형외과, 라임나무치과병원 등의 의료기관들이 협력해 사회에 많은 사랑을 전했다.
정책개발시범사업은 이른둥이(1,500g 이하 출생) 양육환경 개선, 지역사회 양육가족지지 체계
구축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기아대책은 2011년부터 이른둥이 지원사업을 전개했는데, 본격적으로 의료기관과 협력해 이른둥 이 통합서비스센터를 연 것은 국내에서 기아대책이 처음이었다. 한화생명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는 후원 파트너로서 기아대책 사업에 힘을 보탰다. 이를 발전시켜 NICU(신생아집중치료실)를 퇴원한 아기들 과 엄마들의 통합 지원을 위한 병원 연계 센터 건립
도담도담지원센터 안내 리플릿
122 기아대책 30년사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23 HISTORY 2013년 이화도담도담지원센터 개소식
을 추진,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과 손잡고 2013년 ‘이
화도담도담지원센터’를 처음으로 개소했다. 2017년에 는 강동경희대병원과 협력해 도담도담지원센터 2호점
을 열었다.
도담도담지원센터(Bring Up Center)는
1,500g 이하 출생(극소저체중출생아) 이른둥이(미숙
아)의 성장 따라잡기와 잠재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
한 통합적인 발달 재활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른둥이
아이의 교정 나이가 두 살이 될 때까지의 발달 검사, 재활치료, 부모 양육 지원 및 상담 등을 제공하며 도
움을 주었다. 도담도담지원센터가 문을 연 이후 현재
까지(2013~2019.12) 176가정 196명의 이른둥이가 도
담도담지원센터의 혜택을 받았고, 98명의 ‘도담이’들
이 센터를 졸업했다.
기아대책은 이른둥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
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사업을 전개하
는 한편으로 이른둥이 양육과 성장에 대한 국가적인
논의를 확대하기 위해 모자보건법 개정안 발의를 위
한 활동을 병행해 나가고 있다.
보건의료 CSR사업은 생존과 직결된 보건 분
야에 기업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고 전문분야 임직
원의 연계를 통해 공동선(Common Good)을 실현
하는 사업이다. 참여 기업 임직원의 학습과 성장, 이
해관계자의 상생, 제3세계 질병퇴치를 위한 의료 비
전트립 확대, 저개발 국가의 의료 환경 개선 및 의료
기술 전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보건환경 취약지역의
모자보건 검진과 의료 환경 개선활동, 의료장비 및
의료인 교육 사업, 제3세계 보건의료 협력체결에 중
점을 뒀다.
보건의료 CSR사업의 일환으로 생명보험사회
공헌위원회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휠체어 및 전
동보장구 지원사업을 전국적으로 진행해 4,516명이
수혜를 받을 수 있었다. 정책개발시범사업인 도담도
담지원센터 운영은 한화생명의 지원으로 지속적으
로 이뤄져 왔다. 기아대책이 효성, 협력의료기관과 함
께 진행하고 있는 해외의료봉사인 ‘미소원정대’를 통
해서도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2만여 명 (2019년 12월 기준)의 베트남 현지주민과 아이들이
혜택을 받았다.
이 밖에도 NH농협투자증권 및 BMS제약과
함께한 중도장애인 주거복귀사업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사회공헌활동이 활발히 이뤄졌다. 풀무원건강
생활은 20여 명의 재활치료지원을 통해 아이들이 재
활의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네이버 해피 빈은 긴급의료지원이 필요할 때마다 사연을 함께 나
눠 많은 이들이 후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왔
다. KB국민은행과 SK건설, 수출입은행 등도 임직원
들의 봉사활동과 ‘급여 우수리 나눔’ 등 다양한 형태
로 생명을 지키고, 온정을 나누는 데 동참했다.
향후에도 기아대책은 생명을 살리는 사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수혜자로 선정된 환자들을 위한
모금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의료기관, 의약
품 또는 전문 인력의 재능을 기부하는 기관, 정기 또
는 일반후원자를 비롯한 교회 등의 후원자가 유기적
으로 협력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124 기아대책 30년사
굶주림 없는 세상을 위해
기아대책 STOP HUNGER 캠페인
125 HISTORY 2011~
22
아대책은 UN이 2015년까지 진행하는 8가지 새천년개발목표(MDGs) 중 첫 번째 과제인
‘절대빈곤과 기아퇴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톱헝
거(STOP HUNGER)’ 캠페인을 시작했다. 2011년을
기점으로 새천년개발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D-5개년
계획을 수립해 지구촌 절대빈곤 인구를 1% 낮추고
자 했다.
기아대책 D-5개년(2011~2015년) 계획은 UN
발표 기준 약 10억 명의 기아 및 영양실조 상태의 사
람들 중 1%(약 1,000만 명)를 지원, 절대빈곤 퇴치를
위한 100개 국 식량지원, 절대빈곤 극복을 위한 지속
사업 기금 1,000억 원 조성 및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스톱헝거 캠페인은 굶주린 이웃
들과 함께해온 기아대책의 정체성과도 통하는 캠페
인이었다. 절대빈곤과 기아 퇴치를 우리 모두의 역할
과 책임으로 인식하도록 나눔콘서트, 구호키트제작, 거리이벤트, 나눔저금통운동 등 다양한 형태로 스톱
헝거 캠페인을 진행했다.
특히 2011년에 집중적으로 진행한 거리이벤트
는 명동거리에서 대중에게 굶주림에 대한 경각심과
기아 퇴치에 대한 의미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방송, 신문을 통한 홍보활동은 물론 청소년과 일반인
을 위한 자원봉사축제와 홍보대사, 연예인의 국내외
필드방문, 많은 학교와 교회, 기업의 협력으로 굶주림
종식이라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절대빈곤과 기아 퇴치는 단순히 식량이나 물자
를 지원하는 수준으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보다 지속
적이고 장기적이며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스톱헝 거는 세 가지 주요 전략 아래 장기적으로 진행됐다.
첫 번째, 빈곤 극복을 위한 지원사업으로 아
동들을 위한 무료급식사업,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지 역을 위한 식량배분, 주민들의 자립을 위한 농업교육
사업을 진행했다.
두 번째는 인식개선사업이었다. 기아, 절대 빈 곤문제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중·장기 사업의 필요
126 기아대책 30년사 기
2011년 세계 식량의 날, 기아대책 나눔콘서트
2012년 G마켓 나눔페스티벌 with STOP HUNGER 식량기금 후원
성을 제시했다. 나눔 행사, 방송, 언론보도, 자원봉사 활동, 기획프로모션사업 등을 펼쳤다.
세 번째는 연구 및 기금조성사업이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기금 조성으로 사업 콘퍼런스, 실태보고서 발간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2011년 열린 제8회 전국후원이사세미나에서
는 지구촌에서 식량문제로 인해 여전히 배고픔과 굶
주림을 호소하고 있는 14억 인구에 대해 알리고, 이들 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전 세계적인 나눔 운
동을 펼칠 것을 천명했다. 이에 동의한 후원 교회들은 추수감사절 기념헌금을 전 세계 굶주림 종식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하고, 교회별로 저금통을 모으거나 지
구촌 굶주린 이웃을 위한 나눔, 헌신예배를 드렸다.
일반 대중은 온라인 후원신청을 통해 1만 원
의 정기·일시 후원으로 기빙백을 지원했으며, 세계 식
량의 날 행사에 식량키트 제작 및 나눔콘서트에 참
가하는 것으로 지구촌 절대빈곤 인구 1% 낮추기에
동참했다.
2017년에는 사상 최악의 기근에 처한 동아프
리카를 돕기 위해 ‘2017 동아프리카 식량지원 캠페
인: STOP HUNGER’를 온라인상에서 진행했다. 기
아대책은 1년 넘게 이어진 가뭄으로 인해 식량을 구
하지 못해 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동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식량키트를 지원했다.
127 HISTORY
2009년 부르키나파소 급식지원
기아대책은 스톱헝거를 주체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인적자원으로 헝거서포터즈와 헝거세이버를
운영했다. 헝거서포터즈란 전 세계 굶주린 이웃들의
현황을 알리고 모금행사를 진행하는 대학생 모금전
문 자원봉사단이었다. 헝거세이버는 굶주림으로 고
통 받는 생명을 구하는 기아대책 운동의 핵심 주체 다. 이들은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세계 곳곳의 기아
현실을 정확하게 알리고 굶주린 이웃을 도울 또 한
사람의 후원자를 추천한다. 기아대책은 이들을 세계
시민교육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전문성과 사명감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갔다.
기아대책은 또 헝거세이버 운동을 통해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20억 명 이상이 매일 밤 굶주린 배
를 움켜쥔 채 잠드는 비참한 현실을 세상에 널리 알
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작은 나눔의 씨앗이 움트도
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여름에는 한톨나
눔축제로, 가을에는 스톱헝거 캠페인으로 나눔을 독려했다.
기아대책은 스톱헝거 캠페인을 통해 지구촌
에 육적·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을 실제적으로 도우
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과 함께 해왔다. UN의
스톱헝거 캠페인 홍보 리플릿 ‘극심한 빈곤과 기아 퇴치’, ‘모든 곳에서 모든 형태
의 빈곤종식’
128 기아대책 30년사
선언과 맥을 같이해 세계적 구호의 흐 름에 발맞춰 전 세계의 절대빈곤 인구가 영적 육체적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날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떡과 복음 사역에 매진할 것이다.
고액 후원 분야를 개척하다
129 HISTORY
23 2014~
아대책은 2014년 1억 원 이상의 고액 후원 자 모임인 ‘필란트로피클럽(Philanthropy Club)’과 유산기부자 모임인 ‘헤리티지클럽 (Heritage Club)’을 발족하면서 국내 NGO 중 선제
적으로 고액 후원 분야를 개척했다.
2014년 창단된 필란트로피클럽은 후
원자를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기부활동가 (Philanthrophist)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기부플랫폼
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넘어서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가치를 실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 사람
의 전인적 성장과 변화를 이뤄가는 기아대책 후원자
리딩그룹으로서 1억 원 이상을 후원하거나, 후원하기
로 약정한 후원자로 구성됐다.
빌게이츠나 워렌 버핏처럼 개인적인 기부 활
동을 넘어 기부문화 확산에 영향을 끼치는 이들을
필란트로피스트라고 한다. 기아대책 필란트로피스
트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을 위해 본인의 시간, 재능, 재원을 나누는 사람, 다 른 사람이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사람 을 말한다. 기아대책 필란트로피클럽 1호인 ‘우물할
머니’ 노국자 후원자는 ‘1년에 1우물 파기’를 실천해
1,500여 명의 후원자를 나눔에 동참시킨 대표적인
필란트로피스트다.
기아대책 사역 가치에 동의한 후원자들의 탄
탄한 지지와 기아대책의 전문성에 힘입어 필란트로
피클럽은 꾸준히 성장했다. 기아대책은 기부 투명성
과 후원자들의 신뢰도를 쌓기 위해 전문적인 후원
프로세스를 갖췄다. 필란트로피클럽 담당자와 상담
2017년
을 하고, 나눔서약서를 작성하면 필란트로피클럽에 위촉된다. 위촉식을 통해 가족, 지인들과 함께 필란 트로피클럽 가입을 축하하는 기념식을 진행한다. 후
원자에 대한 감사와 기념식 제공, 인증패와 클럽 조 끼를 증정하고, 온라인, 오프라인 명예의 전당에 후 원자의 이름을 등재한다. 이후 원하는 후원 분야에
대한 개별 상담 및 후원 사업 진행이 이뤄지고, 후원
사업 완료 후 개별 피드백을 제공한다.
필란트로피클럽은 국내외 봉사활동, 강연, 정
기적인 사업보고를 통해 활발한 나눔 문화 확산에 앞장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멤버들 간 지 속적인 교류를 통해 나눔문화 확산의 시너지가 만들 어졌다. 가입자들은 연간 주요 활동으로 연 1~2차례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하는 ‘필드트립’과 국내 봉사활동, 멤버들의 교제 시간과 특강이 마련된 ‘필 란트로피 데이’, 후원자 각자의 활동 경험을 나누고
130 기아대책 30년사
기
11월 필란트로피 나이트
자선경매를 진행하는 ‘필란트로피 나이트’ 등에 참여
할 수 있다.
필란트로피클럽 멤버들은 공공 이익을 위해 기
부 또는 자원봉사 등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후원활동
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친다. 기아대책
을 통해 개인적인 후원뿐 아니라 후원자 상호 간에 후
원의 동기, 방법, 결과 등을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긍정
적인 시너지를 준다. 기아대책은 후원자가 나눔 활동
가로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함으로 성숙
한 나눔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 2019년 12월 기준 177
명이 필란트로피클럽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헤리티지클럽은 2015년 창단된 유산기부 후 원자 모임이다. 유산기부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재 산 중 일부를 공익을 위해 기부하기로 유언을 남기 는 것으로, 이를 통해 사후에도 귀중한 나눔을 이어 갈 수 있다. 무엇보다 유산기부는 자녀들에게 성실,
131 HISTORY
2015년
1호로 유산 기부한 故 설순희 여사 2009년 잠바브웨를 방문한 필란트로피클럽 1호 회원 노국자 후원자
7월 헤리티지클럽
132 기아대책 30년사
2017년 말라위 필드트립
2017년 말라위 기아대책 복음센터 개소
겸손, 나눔 등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줄 수 있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최고의 투자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산 기부는 아직 미미한 수준
이지만 기부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노년층
의 주요 기부방식이 된 지 오래다. 노년기에 마지막까
지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이들에게 좋은 방
법이 될 수 있다.
기아대책은 2014년부터 유산기부 프로그램
도입을 위해 자문을 받아왔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와 협약을 맺고 법률적 기반도 마련했다. 유산기부
는 현금, 부동산, 상장증권 등 다양한 형태로 기부할
수 있으며, 기아대책에서 진행하는 사업영역 안에서
후원자가 희망하는 사업을 선택해 집행된다. 특별히
일정금액 이상의 후원금은 영구기금(Endowment fund)으로 운용해 수익금으로 사업을 집행할 계획
도 가지고 있다. 이 경우 후원자의 이름을 기금의 명
칭으로 하게 된다.
헤리티지클럽 진행절차는 담당자상담 → 전
문자문위원 상담 → 기부서약서 작성 → 유산기부
약정식 → 헤리티지클럽 등록 → 유언집행 순으로 이
뤄지고 있다.
기아대책의 헤리티지클럽은 유산기부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국내 기부문화를 확산해 가
면서 의미 있는 후원자 모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33 HISTORY 헤리티지클럽 2호 주선용 후원자
결연아동들의 꿈의 무대, 기아대책
134 기아대책 30년사
HOPE
24 2016~
CUP
2016년 제1회 기아대책 희망월드컵 (HOPE CUP) 트로피
기아대책은 결연아동이 마음껏 잠재력을 펼치
고, 긍정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기 위해 2년 단위로 ‘HOPE CUP’을 개최하고 있
다. 축구를 통해 잠재력을 펼치고, 실패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열정
그리고 높은 자존감을 획득하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기획한 프로젝트다.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으로
시작된 행사 명칭을 2회 대회부터 ‘기아대책 HOPE CUP’으로 변경했다.
모든 아동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
다.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은 더 큰 도전과 경험
을 통해 결연아동이 잠재력을 발견하고, 아동과 지
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리더로 성장하도록 지
원하기 위해 시작했다.
‘매치 포 드림(Match for Dream)’을 주제로
2016년 9월 1일부터 약 2주 동안 열린 1회 대회에는
10개국 기아대책 결연아동 110명이 참가했다. 경기
(Match)를 통해 꿈에 더 다가가고, 후원자와의 결연
을 통해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는 주제를 담았다. 매
치의 또 다른 의미는 전 세계 아동들이 서로 만나고
친구가 되는 일이었다. 말라위 시골에 살던 아이가
브라질 도시에서 온 아이를 만나 우정을 나누고, 편 지로만 소통하고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던 후원자를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35 HISTORY
만나 ‘사랑한다’라는 말을 나눌 수 있었다.
2016년 1회 대회는 접전 끝에 말라위가 케냐
를 제치고 3:0으로 우승컵을 차지했다. 2주간 한국
에 머문 페루, 우간다, 베트남, 네팔, 말라위, 브라질, 케냐, 인도, 필리핀 그리고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제
주 여행, 한국문화 체험, 방송국, 병원, 기업 견학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2회 대회는 2018년 9월에 열렸다. ‘처음 만나
는 희망, Hello Hope’라는 주제로 볼리비아, 멕시코, 코트디부아르, 마다가스카르, 카메룬, 키르기스스
탄, 캄보디아, 태국, 몽골, 대한민국의 기아대책 결연
아동들이 선수로 참가했다. 2회 대회에서는 볼리비
아가 우승컵을 안았다. 참가 아동들은 약 3주의 기
간 동안 대한민국 전역을 다니며 후원자들을 만나
고, 서로 우정을 나눴다.
1회 대회부터 참가 아동과 그들의 마을에는
놀라운 변화가 이어졌다. 대회에 참여했던 우간다의
결연아동은 대회 참가를 준비하며 깨어진 가정이 회
복되는 변화를 겪었다. 집을 나갔던 부모가 돌아오
고, 가정 문제로 의기소침했던 아이도 밝은 모습으
로 대회에 참가했다. 2회 대회에 참가했던 카메룬의
아동은 한국에서 수많은 후원자들이 자신을 응원하
고, 사랑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느꼈다
고 고백했다.
기아대책 HOPE CUP은 해외아동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기대봉사단들의 노력으로 이뤄진 프로젝
트였다. 수년간 동고동락하며 지내온 기대봉사단들
과 지역사회의 신뢰가 있었기에, 부모들은 기아대책
을 믿고 아이들을 한국에 보낼 수 있었다.
기본적인 출생신고조차 돼있지 않은 아이들
이 기대봉사단의 노력과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한국에 오는 일 자체만으로도 아이 들의 세계는 넓어졌다. 기아대책은
3회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2020년 9월 열릴
136 기아대책 30년사
2016년 제1회 HOPE CUP 축구경기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37 HISTORY 2018년 제2회 HOPE CUP 개막전
아동개발사업, 그 열매를 확인하다
138 기아대책 30년사
해외아동개발사업 성과보고서 25 2018~
아대책은 지난 30년간 가장 취약한 지역에서
아동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성
장(Children are Developing as God intends)’하
는 것을 목표로 아동개발사업을 이어왔다. 교육, 보
건영양, 영성, 사회정서 영역에서 아동들의 삶을 증진
시키며, 공동체의 역량을 강화시켜 아동 복지를 위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정, 교회, 지도자와
협력하여 활동하고 있다.
기아대책은 아동개발사업에서의 성과를 확인
하고, 향후 더욱 효과적인 개발 활동을 위한 시사점 을 도출하기 위해 2018년 해외아동개발사업 성과연 구를 진행했다. 교육, 보건영양, 사회정서, 영성 영역 에서 다양한 지표를 통해 그 결과를 측정했으며, 이
를 위해 총 24개국 2,772명의 결연아동과 2,269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총 40개국 3만 3,101명의 결연아동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기아대책 해외 아동개발사업을 통 해 아동의 삶이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 다. 특히 아동의 문해력 및 교육 이수율이 향상되고, 영양 개선과 의료서비스 접근성 또한 향상되어 미래 자립기반이 되는 건강과 교육에서 큰 성과가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39 HISTORY 기
있었다. 이와 관련해 가정에서 부모가 아동의 학업을 적극적 으로 지원하고, 영양과 보건 부분에서 행동이 변화 2018년 발행한 기아대책 해외아동개발사업 성과보고서
되는 등 자녀양육이 개선된 것 또한 지속가능성 확
보를 위한 의미 있는 성과였다. 아동과 부모 모두 기
독교 세계관이 함양됐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 영역에서는 아동 문해율, 초등교육 수료
율, 아동 교육 태도변화 등을 지표로 두고 성과를 측
정했다. 기초적인 읽기를 할 수 있는 아동의 비율은
94%로 나타나, 기아대책의 해외 아동개발사업 교육
활동의 영향으로 아동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
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기아대책 아동의 초등
교육 수료율은 세계 평균보다 19%가 높다. 아동의
학업태도도 개선됐다. 학교 출석률이 높아지고, 상
급학교 진학에 대한 의지도 향상됐다.
또한 기아대책은 교육을 통해 여아의 삶을 바
꾸는 데 일조했다. 매년 1,500만 명의 여아가 만 18
세 미만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교육을 받지 못
한
여아는 중등교육을 받은 여아에 비해 조혼할 확
률이 6배나 높다. 이런 현실 속에 기아대책은 여아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나아가 아동과 부모의 인식이
변화하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기아대책 아동개발센
터 여아의 문해율은 95%로 세계 평균에 비해 약 5% 가 높고, 여아 초등학교 수료율은 세계 평균에 비해
약 16%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타지키스탄 리갈 아동개발센터에서는 마을
도서관을 운영해 지역 아동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장소와 건전한 여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파키스
탄 카수르 지역의 라왈윈드 마을은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고 벽돌공장 노동자인 부모들을 돕고 있었
는데, 2011년 문맹퇴치학교를 시작해 2018년에는 지
역에 3개의 문맹퇴치학교가 세워져 약 3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며 꿈을 키우게 됐다.
보건영양 부분에서의 성과 측정을 위해서는
영양상태 개선율, 의료서비스 접근성 개선도, 식수
이용률, 위생습관 개선도 등의 지표를 측정했다. 기
아대책은 해외 아동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급식, 식량
지원과 식품영양 교육으로 아동의 영양 상태개선과
더불어, 수자원·위생시설 개발과 기초보건 진료 제
공, 의료비 지원, 질병 예방 및 관리 교육 등 아동의
질병 예방에 힘썼다.
140 기아대책 30년사
체육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부르키나파소 아동들
2016년 체질량지수(BMI)를 측정한 결과, 표
준체중 아동의 비율은 75%였고, 2014년 저체중에서
2017년 표준체중이 된 아동의 비율은 52%로 나타 났다. 저체중, 과체중인 아동의 비율은 감소했고 표
준체중 아동의 비율은 증가해, 아동의 영양상태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아
플 때 치료를 받게 된 아동의 비율은 70%로 나타나, 기아대책 아동개발센터에서 지원하는 의료서비스를 통해 아동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개선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아대책 아동의 가정 중 91%가
왕복 30분 내에 깨끗한 식수를 이용할 수 있게 됐고, 많은 아동이 비누로 손 씻기를 실천했다.
영성 영역에서는 아동의 기독교 세계관 함양
을 목표로 주일학교, 성경공부 등을 진행하면서 지역
교회의 운영이 활성화되도록 주일학교 교사 양성, 목 회자 훈련 등을 실시했다. 이러한 기아대책 해외 아동
개발사업 영성활동으로 아동의 기독교 세계관이 함
양되고, 아동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이 개발되는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63%의 아동이 성경을 읽
게 됐고, 69%의 아동이 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사회정서 영역에서는 가정 내에서 아동이 안
정적으로 양육 받고 있는지와 아동이 건강한 정서를 함양했는지를 아동 및 부모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 했다. ‘꿈을 갖게 됐는가?’라는 질문에 아동의 86% 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결연아동의 평균 자아존
중감은 4.1점(5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경우 94%가 ‘아동을 더 책임감 있게 양육하게 됐다’고 응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아동의 학업지원, 아동의 영
양지원과 필요물품 지원 등이 개선됐다고 응답해, 가정에서 아동 양육이 개선되는 성과가 있었다.
기아대책 해외 아동개발사업을 통해 2019년
12월 현재 130개 아동개발센터에서 4만 3,747명의
결연아동이 성장하고 있다. 기아대책은 아동이 공동
체 안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바대로 자라나도록 지역
의 가정, 교회와 지도자가 아동을 스스로 돌볼수 있
게 지속적으로 도울 것이다.
141 HISTORY
학교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마다가스카르 아동들
국제기아대책기구의 역사와 현황
142 기아대책 30년사
26 1989~2019
제기아대책기구(Food for the Hungry International, FHI)는 1971년 “억눌린 사
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
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
게 자유를 주시는도다”라는 시편 146편 7절을 토대
로
래리 워드 박사에 의해 설립됐다. 처음 10년 동안
에는 지구촌 이웃들에게 식량과 의약품 그리고 그리
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긴급구호사업에 역점을 뒀다.
대표적으로 1971년 방글라데시 홍수, 1973년 니카
라과 지진, 1975년 베트남 ‘보트 피플’, 1976년 과테
말라와 루마니아 지진, 1980년 소말리아 기근 그리
고 전쟁 난민을 위한 긴급구호 활동을 펼쳤다.
국제기아대책기구는 1980년 국가 간 협력
을 통해 단일화된 긴급구호 및 개발사업을 이루고
자 스위스 제네바에 법인으로 등록함으로써 본격적
인 국제 NGO사역을 시작했다. 1984년 래리 워드 박
사가 은퇴하고 야마모리 박사가 뒤를 이으면서, 영 적·육체적 필요를 채우는 ‘공생적 사역(Symbiotic Ministry)’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국제기아대책 사역 의 신학적 기초를 마련했다.
1980년대 초 긴급구호 중심의 사역에서 벗어 나 지속가능한 개발사업으로 사역 방향을 전환했 다. 긴급구호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서는 꼭 필요한 활동이지만,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을
돕는 것은 자칫 불필요한 의존심을 키울 수 있기 때
문이었다. 사역 방향을 바꾼 결과 모금은 늘어났고, 이 기간 동안 볼리비아, 케냐, 에티오피아, 방글라데
시에서는 장기 개발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이 시기에 일본, 캐나다, 스위스 기아대책이 창립되
는 등 점차 국제 NGO로서의 시스템과 위상을 갖춰
갔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KFHI)는 1989년 창립 이후 국제기아대책기구와 긴밀한 협력을 이뤄왔다.
1993년 야마모리 박사는 각국 리더들과 함께
기도하며 국제기아대책의 비전과 미래에 대해 토론 했다. 비약적인 사역의 성장과 함께 파트너 국가들
사이에 유대감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그 결
과 오늘날의 기구강령과 공동체의 비전(Vision of Community, VOC) 선언문이 탄생하면서 성경에 바
탕을 둔 사역에 새로운 방향성을 부여했다. 이로써
국제기아대책기구는 단순한 긴급구호와 국제개발사
업이 아닌 비전이 이끄는 사역을 하는 글로벌 NGO
로 나아갔다.
2001년 3월 국제기아대책기구 제3대 총재로
선출된 랜달 호그 박사는 이전의 래리 워드 박사와
야마모리 박사가 남긴 유업을 바탕으로 차세대 사역 을 이어갔다. 그는 공동체의 비전(VOC)의 핵심은 ‘국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43 HISTORY 국
제기아대책기구 사역을 통해 우리가 섬기는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으로 보았다.
2003년 국제기아대책기구는 태국 방콕으로
본부를 옮기면서 새로운 사역의 전환기를 맞았다. △
예수 그리스도와 그 나라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 △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가치 보존 △인간생명 신성불
가침 △죄가 모든 문제의 원인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을 믿음 △전인적 사역 실천 △교회를 지역사회
리더로 △가난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실천 △
말씀이 가진 진리의 힘을 믿고 적용 등 성경적 세계
관에 근거한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21세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균형 잡힌 국제기관으로 성장하
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편 2006년에는 국제기아대책기구가 국
제연대(FHI Federation)와 국제기아대책(FH Association)으로 분리되었다. 두 조직으로의 분리
는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 선교적 사명과 국제개발
전문성에 대한 상호 이해 차이, 사업운영 방식에 대
한 의견 불일치 등이 원인이었다. 미국은 정부지원
기금을 급격하게 늘려가기를 원했지만 일본을 비롯
한 한국, 아시아 국가는 정부 기금이 많아지면 그만
큼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서구권 회원국은 전문적 개발사업에 집중했고, 아시 아권은 선교에 집중했다. 당시 아시아 국가들은 연대 체제 활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희망했다.
기아대책 국제연대는 FHI 국제조직의 한 형 태로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창립됐다. 직접 현장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한 점에서 국제본부에 기반을 둔 타 단체에서는 볼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따라 FHIF는 VOC 성취를 통한 하나님
의 나라 확장을 위해 효율적인 운영 시스템 고안과 필드 직접운영으로 행정비 비율을 줄이고, 직접 사업 비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자유와 책임, 팀 리더십, 해 외 기아대책 설립, 동등성, 청지기적 섬김,
144 기아대책 30년사
한국 기아대책
테츠나오
직접 관계 성, 주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운영원리를 내세웠다. 1984년 기아대책 창립자 래리워드 박사와
설립을 도운
야마모리 박사
두 개의 조직으로 각각 사역의 전문성을 키우
고 사업을 진행하던 중, 2015년부터 미국기아대책과 한국기아대책은 새로운 리더십 선출을 계기로 관계
의 회복을 꾀했다. 한국기아대책의 유원식 회장은 취
임과 동시에 미국 기아대책의 게리 에드먼즈(Gary Edmonds) 회장의 한국 방문을 맞이해 새로운 파트
너십의 전기를 마련했다. 미국기아대책은 전 세계의
사업현장을 ‘아동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변혁(Child Focused Community Transformation, CFCT)’
의 원칙에 따라 통합적인 지역개발사업의 모델을 구 축하고, 정비했다. 한국기아대책의 아동결연사업은
CFCT의 사업 모델을 적용하면서 총체적 지역개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한국기아대책과 국제기아대책(FH Association)의 이사회 및 임원진은 2018년 9월 14일 서울
에서 만나 각 기관의 사역을 공유하고 관계를 강화 했다. 당시 이사 교류는 지난 10년간 분리됐던 두 기 관이 처음으로 함께 향후 협력을 논의하고 파트너십
을 세워나갔다. 양 기관은 모든 형태의 빈곤을 퇴치
하고 인류 고통에 대응하며, 공동체가 극심한 빈곤
으로부터 졸업하고 전 세계 사람들의 영적, 육체적
굶주림을 종식시키는 사역을 수행하는 데 두 기관
간의 협력이 중요함을 공유했다.
145 HISTORY
전 세계 기아대책 리더들
미션 NGO로서의 정체성을 알리다
146 기아대책 30년사
27 1991~
기
아대책은 1989년 설립 이후 미디어 파트너들과
함께해 왔다. 미션 NGO로 지구촌의 굶주린 이
웃의 상황을 알리고, ‘떡과 복음’ 사역을 널리 전파하
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선교를 함께하는 NGO라는 특수성이 있어 기독교 매
체 파트너와 함께 전략적인 홍보를 이어왔다. 1988년 설립된 국민일보는 미션을 공유한 든 든한 파트너였다. 1991년 기아대책과 ‘아프리카 기아 현장을 가다’를 기획해 가난과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의 처참한 현실을 알렸다. 아프리카의 에티
오피아, 차드, 우간다, 케냐, 모잠비크 등 5개국의 기
아현장을 생생하게 취재, 보도함으로써 한국 교회와
온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기아대책이 최초
로 현장을 방문해 펼친 홍보활동이었다. 그 후에도
세계 곳곳의 기아 현장마다 국민일보의 기자들이 동
행 취재해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전했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와 결식아동들을 위한 자선달리기를 비롯 해 음악회와 바자회 등도 상세히 보도했다. 2012년에
는 기아대책, 한국장로교총연합회, 국민일보가 ‘한국
교회섬김회복운동’ 캠페인 협약식을 가졌으며, 2013 년에는 ‘따뜻한 겨울을 선물하세요’ 공동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국내외 소외이웃 돕기에 팔을 걷었다.
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국민일보를 통해 선교현
장과 한국교회의 동반성장, 회복을 목표로 하는 ‘회
복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밖에도 2019년에는 대한
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의 신문 ‘기독신문’, 합동교단
의 ‘한국기독공보’와 함께 선교지를 찾아 보도하는
공동 캠페인을 전개했다.
2007년, 기아대책은 KNN, 조선일보와 공동
으로 ‘아워 아시아(Our Asia)’ 방송을 기획해 큰 반
향을 불러 일으켰다. 취재팀은 2007년 1월부터 10월
까지 기아대책의 사역지이기도 한 아시아와 아프리
카 지역을 여행하며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네팔과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미얀마, 캄보디아,
등 아시아에서 시작된 여정은 두 개의 대양을 건너 아프리카의 케냐와 우간다까지 10개월간 이어
147 HISTORY
필리핀
2009년 MBC특집방송 김정화 홍보대사와 우간다 방문
148 기아대책 30년사
CBS 더미션, 우간다 편
CBS 더미션, 필리핀 편
졌다. 지구촌의 고통받는 아이들을 만나 그들의 삶
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여덟 살의 나이에 하루 종일 돌 깨는 일을 하는 네팔의 소녀 ‘루빠’의 이야기
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후원으로도 이어졌다.
CBS와는 매해 선교사 후원 프로젝트 방송 ‘더미션(The Mission)’을 진행했다. 선교현장의 아픔
과 눈물, 그리고 선교지의 지역사회와 아이들을 후
원하기 위해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 떡과 복음
이 필요한 지역에 직접 파송돼 지구촌 굶주린 이웃
들을 돕는 기아대책 파송 선교사, 기대봉사단의 사 역을 조명했다.
더미션은 2012년에 6개월 동안 우간다, 말리, 네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5개국을 차례로 방문, 취재해 2013년 첫 방송됐다. 이후 2019년 현재까지
매해 다양한 국가를 방문해 헌신적으로 사역하는 기대봉사단의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했다.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인구 20억 명, 가난과 질병・기근 때문에 죽어가는 인구 하루 1,700명인 이 세상에서 굶주린 영과 육을 위해 떡과 복음을 들고
척박한 땅에서 행하는 선교사들의 사역을 담았다.
방송을 보고 시청자들의 후원 참여도 이어졌
국민일보에 보도된 회복캠페인
다. 하나님께서 귀한 곳에 후원하기를 바라실 것 같
아 그동안 모아둔 돈을 후원금으로 보낸다는 후원
자, 노령연금 9만 원에서 매월 3만 원을 떼어 후원하
겠다는 분도 있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후원신청을
하기도 하고, 굶주린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달라고
울먹이며 전화를 해온 이도 있었다. 후원 전화를 받
은 간사들도 함께 울었던 시간이었다.
기아대책 홍보대사인 배우 임동진, 김혜은, 정
태우, 김정화, 성우 배한성, 기아대책 후원자인 배우
윤유선, 그리고 가수 이현우, 아나운서 왕종근, 성우
설영범까지 많은 연예인들이 MC 혹은 내레이션 목
소리 기부로 함께했다.
이어지는 후원으로 2013년 방송에 소개된 우
간다에서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한 급식 및 교육
환경 개선사업이 진행됐고, 말리에서는 어린이도서관
과 컴퓨터실이 생겼다. 네팔과 필리핀에서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보살핌을 받는 아동개발센터의 증축과 신
축이 이뤄졌다. 인도네시아 기독종합대학 학생들에게
는 장학금을 지원했고, 오지 숨바섬에 교회를 세웠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과 참여로 현지에서
사역하는 기대봉사단들이 큰 위로와 힘을 얻었다.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49 HISTORY
후원자와 함께
만들어 가는
150 기아대책 30년사
기적 28 1999~ 2019
아대책에는 ‘나눔’이라는 아름다운 습관을 오 랜 기간 함께 지켜나가고 있는 소중한 후원자
들이 있다. 그중 2019년 들어 후원 20주년을 맞이한
후원자는 총 378명이었다. 이들 후원자의 나눔 20년
은 기아대책과 생명을 살리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도
움이 절실한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이 후원이라 생각했고, 적은 금액이라도 도움이 되
길 바라며 계속 후원했다. 기아대책에는 많은 후원
자가 있는만큼 나름의 사연도 다양하다.
빈민촌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피부를 맞대며 사랑을 전했다는 이 권사는 필드트립 이후 자카르타 빈민아동 3명을 추가로 후 원하기 시작했다. 3개월 뒤엔 남편과 함께 캄보디아로 단기선
교를 떠나 ‘떡과 복음’을 나눴다. 하지만 이 권사의 나눔선교 여
정은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해 8월 갑작스레 신장암 진단을 받
고 투병생활을 시작했고 10개월여 만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됐 다. (중략) 장례 절차를 마무리한 유가족은 부의금으로 들어온 1,000만 원을 인도네시아 소외아동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아대 책에 기부했다. 어머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필드트립으로 남 겨진 곳에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자는 딸 유호 씨의 제안에 가족들이 뜻을 모았다.
필드트립에 참가한 후 유산기부를 한 故 이화자 후원자
후원자들의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는 방글라데시 아동들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51 HISTORY 기
152 기아대책 30년사
기대해 이제 만나러 갑니다 북한 현장 이야기편
기대Go 필리핀 해외봉사활동
국민일보 2019년 9월 5일자 기사 중 일부로, 기아대책을 통해 10년째 후원해 온 故 이화자 후원 자의 사연이다. 이런 사연처럼 애정으로 30년을 함께 해 온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기아대책의 현재가 있다.
기아대책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후원자 예
우에 힘쓰고 있다. 기아대책의 후원자가 되면, 연 4
회 기아대책 소식지와 연 1회 연차보고서 및 사업 피
드백을 제공받아 후원 소식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와 해외 아동 결연 후원자는 결연 완료
시 문자와 우편, 이메일로 결연아동의 사진과 정보를 받는다. 이와 함께 기아대책은 국내 아동의 신년카드
와 해외 아동의 크리스마스카드를 결연 후원자에게
매년 발송하며, 연 1회 아동성장보고서를 제공한다.
기아대책은 2019년 기준 다음과 같은 후원자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기아대책은 다양한 후원 예우 프로그램에 앞
서 신뢰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기 위해 ‘투명성’을 핵 심가치로 후원금 사용 정보 및 운영 방침을 공개한 다. 그 결과 사회복지법인 기아대책은 2018년 한국가
이드스타가 진행한 비영리단체 평가에서 2015년부
터 3년 연속 재무안전성과 효율성, 투명성 부문에서
만점을 받았다. 기아대책은 앞으로도 신뢰받을 수 있는 단체
가 되기위해 후원자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의견 을 경청하며 후원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활동을 이 어나갈 것이다.
기대팅에서 기대다짐서를 쓰고 있는 후원자
기대팅
기아대책 신규 후원자모임이다. 기아대책과 처음 인연을 맺은
후원자와 함께 기아대책 소개, 사업 Q&A, 나눔활동 등 기아 대책을 좀 더 알아가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
기대해
기아대책 사업을 소개하고, 후원이야기를 나누는 후원자 소모 임이다. 기대봉사단 이야기, 긴급구호이야기, 해외교육사업이 야기 등 기아대책의 다양한 주제로 후원자 소모임을 진행한다.
기대GO
기아대책 해외사업장을 방문해 봉사활동 및 결연아동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사업장 방문으로 나의 후원이 현지에서 어떤 변 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문화가 있는 기대하루
연극, 뮤지컬,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에 기아대책 후원자 들을 초청한다.
국내봉사활동 기아대책 후원자들이 모여 함께 국내봉사활동에 참여한다. 복
지관 배식 봉사, 연탄 나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함께 봉 사하며 나눔의 깊이를 더해간다.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53 HISTORY
소외당하는 난민을 품다
154 기아대책 30년사
기아대책 인도적지원사업 29 2001~2019
전세계적으로
해마다 난민이 늘어나면서 난민 문
제는 우리 모두가 간과할 수 없는 사회 문제가
됐다.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
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로 인해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해 국적국의 보호를 받
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1951년 난민의 지위
에 관한 국제 협약에서 규정한 바 있다.
기아대책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한국 최초로 긴급구호 의료팀을 파송해 의료 및 구호
사업을 펼치면서 난민을 위한 실질적인 활동에 나섰
다. 2002년 ‘기아난민 돕기 자선 달리기’에 이어 2003
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칼밧에 학교를 건축했다. 국내 에서는 기아난민 돕기 자선 음악회, 사진전, 뮤지컬 등 이 이어졌다. 2009년에는 베들레헴 PLO자치구를 방 문, 베들레헴과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 민들에게 약 2만 달러 상당의 구호물품을 지원했다.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은 여전히 진행 중
이며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난
민을 만들어내고 있다. 2017년 말 기준 530만 명이
국경을 넘어 주변국인 터키, 요르단, 레바논으로 이
동해 난민이 됐다. 시리아 내 이재민은 610만 명에 육
박하고 있으며, 내전 발생 이후 요르단 북쪽 자타리
지역에 생긴 난민캠프는 2013년 20만 명이 넘는 난
민을 수용하다가 2017년 현재 약 8만 명의 시리아 난
민만을 수용하고 있다.
기아대책은 2013년 한국 NGO로서는 처음
으로 UNHCR(세계난민기구)의 자타리 난민캠프에
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곳의 어린이들은 그동안 정상
적인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아동들은 캠
프 내 학교에서 짧은 2시간여의 수업을 마치고 귀가
하면 별도의 프로그램이 없어 그저 텐트 안에서 시
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아대책은 어린이의 교육, 정서
적, 신체적 영역을 다각적으로 지원해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을 기본적인 사업 원리로 삼고, 시리아
난민 아동 대상 정서지원사업으로 태권도 아카데미
를 시작했다.
내전을 겪은 아이들은 태권도 아카데미를 통
해 건강하게 경쟁하는 방법과 타인에 대한 예의, 그
리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배울 수 있었다.
실제로 태권도 교육을 시행하면서 아이들의 자신감
이 향상됐다. 한국 국기원에서 발행하는 공식 단증
(품증)을 받는 시스템은 아이들 스스로 성취감을 느
끼도록 했으며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많은 아이들이 태권도를 통해
◉ 제3장 | 떡과 복음의 기아대책, 섬김의 역사 30년 155 HISTORY
2012년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력을 인
정받아 태권도 아카데미는 UN의 정식 프로그램이
됐다. 해를 거듭하면서 부지를 확보하고 교실을 건축
해 나감으로써 사업은 더욱 견고해졌다. 2017년에는
강당을 건축해 난민 아동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
에서 태권도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아대책은 태권도 프로그램 외에도 미술, 음
악 등 추가적인 정서 교육과 컴퓨터, 영어 등의 수업
을 진행했다. 2014년에는 주 요르단 한국대사관과
기아대책이 제1회 주 요르단 한국대사 배 자타리 캠
프 축구대회를 열었다.
로힝야 난민들에게는 2018년 8월부터 한국국
제협력단(KOICA)의 지원을 받아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미얀마 라카인 주에 사는 소수 민족 로힝
야족은 미얀마 정부가 시민으로서 인정을 거부해 만 성적인 빈곤, 사회적 소외와 폭력을 당해왔다. 급기야
2017년 8월 25일 이후 소수 민족 폭력 사태로 74만 명
이 넘는 로힝야 사람들은 방글라데시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매년 밀려오는 난민들로 꾸뚜빨롱 지역의 난
민촌 규모는 점점 커졌다. 로힝야 난민들은 안전하지
못한 식수와 위생 환경에 노출됐고, 전염병의 위험성 도 높았다. 보건 시스템이 매우 취약해 전염성 질병이 발생하거나 돌발적인 집단 발병이 나타날 경우에는
캠프 전체를 위협하게 되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 다. 이에 따라 기아대책은 기초적인 의료 인프라에 대 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은 난민들을 위해 보건자원활
동가(Community Health Worker)를 조직하고 운 영했다. 보건자원활동가는 월 1회 정기적으로 사업 지역 내 가구 등을 직접 방문해 각 가구의 질병 발생
유무를 확인하고 위생교육을 하며 필요 시 보건소 방 문을 안내하고 권유했다.
기아대책 난민 구호 활동은 르완다, 아프가
156 기아대책 30년사
난민촌에서 만난 시리아 난민 아동
요르단 시리아 난민 어린이 태권도 교실
니스탄, 시리아, 로힝야 난민을 거쳐 에리트레아 난
민에게로 향했다. 에티오피아에 거주하는 에리트레
아 난민은 2019년 현재 17만 3,879명이다. 경제적, 사
회적, 정서적으로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기 힘든 난
민들은 2차 이주를 감행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2차
이주 도중에 인신 매매, 장기적출 등을 경험하거나
사망하고 있어 전 세계적인 관심과 지원이 촉구되
고 있었다. 18세 미 만의 징집 예비 대상자 비율은
42.7%(UNHCR, 2019)에 달했고, 생활시설 및 교육
인프라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기아대책은 2019년 현재 에리트레아 난민캠
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
었지만, 난민들이 처한 환경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
다는 판단 때문이다. 난민캠프 내에서 진행중인 모
든 프로그램은 에리트레아 난민 뿐 아니라 난민캠프
가 위치한 에티오피아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독
려했다. 국적, 나이, 성별 등에 따른 차별 없는 지원
으로 주민과 난민은 삶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 갔다.
기아대책이 진행하는 태권도 수업에 참여하며
아이들은 꿈을 가지게 됐다. 아이들은 태권도를 통해
단순 신체활동을 하는 것 이상으로 정서적 치유, 리더
십 함양 등을 경험한다. 박해의 트라우마 속에 삶과
가족을 잃어버린 에리트레아 난민들에게 기아대책은
회복과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했다.
기아대책은 난민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때까지 아이들
에게 눈을 맞추고, 아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꽃 피
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그들의 앞에 놓인 장애
물을 제거할 것이다. 이는 기아대책 사업의 근간인
VOC(Vision of Community)의 실현이며, 후원자
들의 관심과 사랑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157 HISTORY
기아대책 30년, 섬김 더
국의 래리 워드 박사는 캘리포니아의 고속도
로를 달리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
람들을 떠올렸다. 그는 차를 세우고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기도했다. 1971년, 굶주림으
로 수많은 이들이 하루에 한 명씩 죽어간다면 한 번
에 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기도는 시편 146편 7절
의 말씀에서 나온 ‘굶주린 자에게 식량을’ 이라는 이름의 국제기아대책기구(Food for the Hungry International, FHI)를 탄생시켰다.
래리 워드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1989년 대
한민국 최초로 해외를 돕는 NGO로 설립된 한국기아
대책은 2019년 30돌을 맞았다. 기아대책은 ‘섬김, 더 낮
은 곳으로’를 한 해 표어로 정하고, 사역의 목표와 기
관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며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한
예수님처럼 가장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겠다는 사
명을 다졌다. 그 일환으로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다
양한 행사를 개최해 기아대책의 사역 정신을 알렸다.
2019년 10월 16일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강당에서 ‘2019 국제NGO 선교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는 기아대책의 중심 사역 원리인 ‘공생적 선교 사역 원리’의 주창자인 테츠나오 야마모리 박사, 손 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신국원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159 HISTORY
미
등 국내외 NGO 선교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했다. 연 2019년 12월 새로운 CI 선포 기아대책 설립 30주년 기념 엠블럼 ‘섬김, 더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30 1989~2019
2019년
사들은 변화하는 선교환경 속에서 NGO 선교의 바
람직한 방향과 미래를 제시했다.
이보다 앞서 7월에는 전 세계에서 사역하는
기대봉사단을 모두 초청해 경북 포항 한동대학교에
서 ‘창립 30주년 기대봉사단대회’를 개최했다. 전 대
륙과 국가의 기대봉사단을 한자리에 초청한 행사는
창립 이래 처음이었다.
7월 15~20일 6일간 개최된 행사에서 지난 30년
의 사역을 돌아보며 기대봉사단원들의 노고를 격려하
고, 향후 30년 사역의 비전을 확인하며 교제와 회복
의 장을 만들었다. 향후 30년의 사역 비전으로는 ‘예수
님의 주권 아래’,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로’, ‘낮은 곳에
서 섬기는 리더로’라는 세 가지 방향을 정했다. 시대가
변해도 성경적 진리가 변화하지 않듯, 창립 30년이 지
났지만 기아대책이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은 ‘떡과 복
음’ 그리고 ‘더 낮은 곳으로’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기아대책은 전 세계의 굶주린 이웃에게 ‘떡과
복음’을 전하는 기독 NGO임을 표방함에도 불구하 고 “NGO라면 개발사업만 해야지, 복음을 전하면 됩 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떡과 복음의 중요성’, 정 정섭, 한국기독공보 2012. 6. 18) 개발사업을 통해 굶 주림을 해결하고 소득이 증대하더라도 삶의 질은 변
하지 않았다. 결국 의식이 전환돼야 영적·육체적 기
아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데, 이는 결국 복
음을 통해 가능했다. 기아대책의 사역은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고 태도가 변화되는 데까지 나아가게
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아대책의 미션은 ‘떡과 복음’ 사
역을 통해 실현된다. 영적, 육체적으로 불균형 상태인
세상 가운데 전 세계에 파견된 500여 명의 기대봉사
단을 통해 ‘떡과 복음’, 두 가치가 불균형이나 소외 없
이 전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는 이 땅의 영적 육체적 굶주림이 종식
되는 때까지 그 부르심에 응답했다’는 기아대책의 비
160 기아대책 30년사
기아대책 임직원과 함께한 30주년 기념식
창립 30주년 기대봉사단 대회 창립 30주년 기념 2019 국제 NGO 선교포럼
전은 단순한 국제구호개발을 넘어 ‘떡과 복음’을 함께
전해온 기아대책의 30년 역사이기도 하다.
이제 기아대책의 새로운 30년은 더 낮은 곳 에서 함께하는 친구로서의 사역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희망친구 기아대책’이라는 새로운 CI(Corporate Identity)를 도입했다. 새천년개발목표 (MDGs), 지속가능 개발 목표(SDGs)를 거치며 절대 빈곤으로 인한 ‘기아’에 대한 화두는 줄어들었고, 변 화가 요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아대책은 ‘희망친구 기아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후원자와 수혜자 모두에 게 더욱 친근하고 주도적인 모습으로 다가갈 것이다.
‘희망친구’는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담아냈다. ‘희망’이라는 단어에는
마가복음 9장 23절에 드러난 예수님의 무한한 능력
의 가능성, ‘친구’라는 단어에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진정한 이웃사랑의
모습을 함축했다. ‘희망친구’라는 새 이름은 굶주림을
겪는 모든 아이들과 가정, 공동체가 회복되도록 희망
을 전하는 친구가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CI는 변화했지만 ‘오병이어’를 상징하는 물고
기와 보리 모티브는 변하지 않았다. 새로운 모습으로
혁신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는 이 땅의 영적·육체적 굶주림이 종식될 때까지
그 부르심에 응답했다”는 미션은 변함이 없을 것이
다. 떡과 복음을 들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희망
친구’로, 기아대책은 새로운 30년을 시작한다.
되고자 CI를 변경했습니다. 떡과 복음이라는 기아대책의 가치를 이어가면서 보다 선명하고 명확한 이미지의 CI가 됐습니다.
161 HISTORY 기아대책
CI는
친구가
1989년 2003년 2020년 선포
CI History
기관을 대변하는 얼굴로 기관의 변화와 함께 진화합니다. 국내최초 국제구호개발 NGO인 기아대책은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는
기아대책 사업현황
우리는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건강하게 자랄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척박한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기아대책은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해마다 더 많은 곳으로 향하고
더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도 굶주림을 겪는 아동과 가정, 공동체를 찾아가는
기아대책의 사업을 소개합니다.
162 기아대책 30년사
섬김으로 희망을 나누다
163 MISSION
국제사업 국내사업 북한사업 생명지기 행복한나눔 필란트로피클럽 | 헤리티지클럽
필란트로피클럽 | 헤리티지클럽
필란트로피클럽은 후원을 넘어 가치를 실현하는 기아대책 후원자 리딩그룹입니다.
1억 원 이상을 기부 또는 약정한 개인 후원자로서 여러가지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시간, 재능, 재원을 나누고 더불어 많은 이들이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활동합니다.
헤리티지클럽은 유산기부로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재산 중 일부를 공익을 위해 기부하기로 유언을 남기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성실, 겸손, 나눔 등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는 아름다운 후원활동입니다.
필란트로피클럽 회원 : 184명
헤리티지클럽 회원 : 18명
06
필란트로피클럽 | Philanthropy Club
헤리티지클럽 | Heritage Club
기아대책 후원자 리딩그룹으로서 1억 원 이상을 기부 또는
약정한 개인 후원자로 구성됩니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재산 중 일부를 공익을 위해 기부하기로
유언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후에도 귀중한 나눔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유산기부는 자녀들에게 성실, 겸손, 나눔 등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는 활동입니다.
또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최고의 투자입니다.
필란트로피
여러가지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후원자가 가지고
있는 시간, 재능, 재원을 나누는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활동
필란트로피스트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본인의 시간, 재능, 재원을 나누는 사람
다른 사람이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사람
필란트로피 멤버십
국내외 봉사활동, 강연, 정기적인 사업 보고 등을 통해
활발한 나눔 문화 확산에 앞장설 수 있는 기회 제공
현황
누적 회원 수 184명
헤리티지클럽 진행 절차
담당자 상담 – 전문자문위원 상담(김앤장법률사무소) –
기부서약서 작성 공증 – 유산기부 약정식 – 헤리티지클럽
등록 – 유언집행
헤리티지클럽 기부 종류
현금, 부동산, 주식(상장)
현황
누적 회원 수 18명
177 MISSION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마음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작이 될 수는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기아대책의 기적과 같은 활동은
현장마다 변화를 일으켜온 사람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병들고 죽어가는 이웃을 위해 나의 삶을 바치는 마음.
누군가의 미래가 달라지길 소망하며 자신의 재능과 재원을 나누는 마음.
그 마음 덕분에 기아대책은 30년 간
전 세계를 누비며 떡과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기아대책과 마음을 나눴던 많은 사람들. 그중 9명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78 기아대책 30년사
기아대책과 사람들
Randall Hoag 기아대책국제연대 회장
이성민 기대봉사단(캄보디아)
정하희 기대봉사단(우간다)
남충일 자원봉사자(서신번역 활동)
김영걸 후원자(카이스트 교수)
강석창 후원자(소망글로벌(주) 대표이사)
최원석 후원아동
윤호종 군포시노인복지관 관장
정태우 홍보대사(연예인)
179 PEOPLE
기아대책과 마음을 나눈 사람들
30년의 우정, 변함없는 비전
Randall Hoag 기아대책국제연대 회장
존
재만으로도 역사가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2019 년 현재 기아대책국제연대(FHIF) 회장인 랜달 호그 (Randhall Hoag) 박사다. 1983년 미국기아대책의 기대봉사
단으로 볼리비아에 파송된 것을 시작으로, 볼리비아 지부장, 중남미지역 본부장, 국제기아대책기구 회장 등 국제기아대책
에서 36년을 사역한 산증인이다.
랜달 호그 회장은 관계자들에게 ‘미스터 VOC(Vision of Community)’로 통한다. 현장과 본부 사역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가 자립해 또 다른 공동체를 돕는 데까지 이르는’ 기
아대책의 비전과 가치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며, 이 가치에 공
감하는 사역자를 길러내고 있다.
누군가는 선교가 너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경험한 선교현장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 슬픔, 재미가 모두 공존하는 곳이다. 때문에 선교사 파
송 교육을 할 때마다 자신 있게 말한다. 선교사로 사는 것은
결코 지루한 일이 아니라고. 덧붙여 ‘절대 포기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180 기아대책 30년사
INTERVIEW 1
“다른 것은 잊어도 좋지만 하나는 잊지 마세요. 너무 힘들어 서 그만 두고 싶다면 제게 연락하세요. 여러분이, 혹은 제가 세 상 어디에 있든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실제로 절박한 상황에 놓인 기대봉사단들은 경험에서 우러나
온 그의 진심어린 조언과 위로를 통해 사역을 이어갔을 뿐 아니 라 그가 경험한 세상 최고의 기쁨을 현장에서 누릴 수 있었다.
국제기아대책은 물론 한국기아대책의 역사와 함께해 온 랜
달 호그 회장, 그가 한국과의 인연을 말할 때 꼭 들려주는 에피 소드가 있다. 1990년대 케냐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故 정정 섭 전 회장을 처음 만나, “한국 사람들은 정말 아침 5시에 일 어나느냐?”라고 물었다. 한국 크리스천들이 새벽예배를 드린
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정 전 회장은 “맞습니다. 저도 5시
에 일어납니다.”라고 답했다. 너무도 확고한 대답에 그는 호기 심이 생겼다. “내일 아침에 저도 함께 해도 되겠습니까?” 다음 날 아침부터 서로의 방을 오가며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했 다. 정 전 회장은 ‘좋으신 하나님’ 찬양을 잘 불렀다. 이후 다른 모임에서 정 전 회장을 만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같이 새벽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이어갔다.
그가 한국기아대책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또 있다. 한국은
가장 극빈한 나라에서 부강한 나라가 된 기적 같은 역사가 있
고, 한국 기대봉사단들의 헌신과 열정적인 신앙관이 있기 때문
이다. 어떤 위험한 지역도 가리지 않는 용기와 도전적인 자세, 무엇보다 긍휼이 많아 선교지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어내는
한국인 특유의 열정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한국기아대책 창립 30주년 기념사에서도 그의 애정 어린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한국기아대책이 없었다면 전 세계 기아대책의 역사에 큰
구멍이 있었을 것이다. 땀 흘리며 수고하는 기대봉사단들과 함
께 새로운 30년을 더 은혜롭게 이끌어가길 기대한다. 한국기
아대책의 간사들을 만나고 여러 노력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앞으로의 성장이 더 기대된다.”
이제 그는 한국기아대책이 새로운 사역의 방향과 미래를 준
비하는 데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고 있다. 지난 2년간 수차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역의 노하우와 VOC의 가치를 알리는
데 매진하면서 한국기아대책의 사역이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
화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소통해왔다. 미국기아대책과
한국기아대책이 더욱 긴밀하게 사역현장에서 공조할 수 있었
던 것도 그의 노력 덕분이다.
볼리비아에서 눈빛을 빛내며 사역해오던 청년 선교사는 이 제 중년이 됐다. 과거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여전히 뜨거운 열정으로 미래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진정한 사역자.
그의 따뜻한 마음과 지성, 그의 가르침을 받은 수많은 기대봉사 단과 스태프들이 있기에 기아대책은 안주하지 않고 혁신하며, ‘떡과 복음’이라는 핵심적인 가치를 함께 지켜나갈 것이다.
181 PEOPLE
여러 자리에 있었지만
나의 정체성은
언제나 사역자 기
이성민 기대봉사단(캄보디아)
아대책 1호 간사, 기대봉사단, 제5대 기아대책 회장. 이
성민 기대봉사단은 기아대책의 시작과 현재를 함께하 고 있다. 창립 초기, 제대로 된 사무실도, 컴퓨터 한 대도 없었 지만 ‘한국 최초로 해외를 돕는 단체’라는 자부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1호 간사로서 현장과 수혜자를 잇는 역할을 하다 보니 자연 스레 현장이 궁금해졌다. ‘떡과 복음’의 가치가 어떻게 사역현 장에 녹아드는지 직접 보고, 경험하고 싶었다. 1995년 캄보디
*사진 : 국민일보 제공
아로 떠나면서 대학 시절 품은 선교사로서의 꿈을 12년 만에 이뤘다. 그러나 직접 경험한 선교현장은 녹록치 않았다. 기아 봉사단(현 기대봉사단)으로 사역하는 동안 뎅기열을 다섯 차
례나 앓았다. 아내와 아들 둘도 열병을 앓으며 힘든 시간을 보 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역은 계속돼야만 했다. 19년간 아이 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다.
2014년 제5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잠시 현장을 떠났다. 기
아대책 역사 중 가장 혼란한 시기, 기아대책을 가장 잘 아는 그 였기에 맡을 수 있는 자리였다. 회장직을 맡기 전 마음으로 결 심했다. ‘1년이면 되겠지 그 뒤에는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리
182 기아대책 30년사 INTERVIEW 2
라.’ 쉴 틈 없이 조직을 추스르고, 마음 상한 직원들과 터놓고
대화했다. 그리고 약속한 1년 2개월만에 다시 캄보디아로 떠 났다.
그가 사랑하는 나라, 25년째 사역을 펼치고 있는 캄보디아
는 여전히 떡과 복음이 필요한 나라다. 기대봉사단으로 사역을
시작했던 1995년, 캄보디아는 외무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입
국할 수 있었던 국가 중 하나였다. 이웃 나라로부터 끊임없이 침 략을 받고, 이념으로 인한 내부 분쟁으로 ‘킬링필드’라는 가슴
아픈 학살의 역사를 지닌 나라. 깊은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지도층의 부패로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화됐다.
그렇기에 그가 할 일은 아직도 많다.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
을 거둬 주민들이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떡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캄보디아
사역 초기 100개가 넘는 마을을 다니며 복음으로 씨앗을 뿌 렸고, 지금은 그 씨앗들이 잘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지 역 리더들과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다.
복음을 전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교회에 나오겠다고 약속하 던 주민들이 주일 예배에 나오지 않을 땐 야속하기도 했다. 그
랬던 이들이 잘 성장해 지금은 감사인사를 전한다. 얼마 전 생
일에는 23년간 양육해 온 제자가 마음을 담아 선물을 해왔다.
타인을 믿지 못해 표현에 서툰 이들이기에 그 마음이 더 귀하
고 값졌다.
지난 사역을 돌아보며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이 떠올랐
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가 생각하는 사역의 원리 역시 이 말
씀에 있다. 전략과 이론이 아닌 현장에서 일하는 사역자가 얼
마나 낙심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지가 중요하다. 지치지 않고
떡과 복음의 사역을 이어나가야 하는 사람. 때로는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을지라도 견뎌야 하는 사람. 포기와 인내 사이를
오가는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잠복근무하는 수색대원. 그러
면서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전문가. 이런 역할을 해내는 게 기대 봉사단이다.
기아대책 30년의 모든 역사와 함께 해오며 아버지 같은 마
음으로 온전히 기아대책을 돌보고 섬긴 이성민 기대봉사단. 기
아대책이 한국 최초의 해외를 돕는 NGO로서 떡과 복음을 전
하는 사역을 시작한 이후 해외를 돕는 수많은 NGO들이 등장
했다. 그 시작에 기아대책이 있었다는 점이 무척 자랑스럽다. 그렇기에 서른 살 청년이 된 기아대책에 더욱 조언과 질책을
아끼지 않았다. 초심을 잃지 말 것, 아무리 나눔 문화가 위축 돼 모금 현장이 어렵더라도 현장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 30 년의 역사를 자랑하기보단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할 것. 이성민 기대봉사단이 항상 강조하는 이야기들이다.
시작을 함께했듯 그와 함께 써 나갈 기아대책의 역사는 아 직 많이 남았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정도(正道)를 알리는 그가 있기에 기아대책의 앞날도 곧게 나아갈 것이다.
183 PEOPLE
사랑으로 아이들을 섬기는 ‘마마 한나’
정하희 기대봉사단(우간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에이즈 아동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
고 있는 정하희 기대봉사단은 ‘마마 한나’라고 불린다.
우간다 내 에이즈 감염률 1위인 아무리아에서 에이즈 아이들
의 엄마가 돼 아이들이 아프지 않기를 매일 기도한다.
처음 우간다를 갔을 때의 나이는 54세. YWCA에서 32년간
일하던 그가 훌쩍 우간다로 떠난 이유는 청년시절에 ‘나이 50
이 넘으면 보다 직접적인 하나님의 일을하겠다’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할 수 있겠니?” 하나님의 메시지에 붙들려 기대봉사단의 길을 걸 은 지 벌써 13년째다.
우간다 사람들은 오랜 내전의 영향과 성교육의 부재로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에 노출돼 있다. 그중 상당수의 어린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에이즈에 수직 감염된다. 에이즈에 감염될 줄 알면
서도 굶주린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수많은
아이들을 에이즈 환자로 만들었다. 이 아이들은 영양부족으로
면역이 약해져 다른 병으로 죽었다. 에이즈에 감염되면 영양공 급이 더 시급한 이유다. 에이즈가 불치병이지만 충분한 영양공
184 기아대책 30년사 INTERVIEW 3
급과 2차 감염 예방약 복용, 철저한 위생관리만 해주면 건강하 게 살아갈 수 있기에 꾸준한 관심과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 다.
정하희 기대봉사단의 첫 사역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굶주 리고 있는 에이즈 아동을 한 명씩 찾아가며 끼니를 챙기는 일 이었다. 대부분 심각한 영양부족과 각종 질환으로 건강상태가 무척 좋지 않았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 많은 날들
을 울었다. 잘 돌보라고 맡겨준 아이를 꼭 자신의 잘못으로 잃
은 것 같아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다행히 기아대책을 통해 국내후원자와 일대일 결연을 맺어 정기적으로 영양식을 제공해주고 건강상태를 관리해주자 아 이들의 상태도 차츰 나아졌다. 그렇게 2년여간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영양공급뿐만 아니라 약물지원과 교육을 통한 자 립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했다.
2011년, 아이들에게 나눠 줄 영양식을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차가 뒤집혀 팔과 어깨가 부러지고 척추도 어긋나는 사고를 당했다.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극한의 고통 속
에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았다. 의사들은 더 이상 우간다
에 가선 안 된다고 했지만, 몸의 고통보다 두고 온 아이들을 향
한 애달픈 마음이 더 괴로웠다.
보내신 이도 하나님이시니 아픈 몸도 하나님께서 회복시
켜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척추수술을 받고 8개월 뒤, 회복되
지 않은 몸으로 우간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 이후 놀라운 일
들이 생겨났다. 몸은 사역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됐고, 사역은
기도했던 것 이상으로 해낼 수 있었다. 아무리아 지역 내 유일
의 에이즈 아동센터가 건립됐고 함께 운영되는 유치원과 직업
학교에선 이 지역을 변화시킬 아이들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무
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마음으로 자활농장 운영도 도왔다.
정하희 기대봉사단은 의지할 곳 없는 이 아이들과 늘 함께한
다. 아이들이 건강을 유지하며 학업을 계속해 18세 이후에는
자립하고,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삶, 예수님 제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마마 한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기아대책이 CBS와 함께한 선교사 후원 프로젝트 ‘더미션’
에 그의 사역이 소개된 후로는 은혜가 더해졌다. 아이들이 마
음껏 뛰놀며 체력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
도했는데, 모든 것이 이뤄졌다. 방송을 보고 자신의 사역에 힘
을 보탠,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기도의 동역자들. 홀로 우간다 시골에서 사역하지만 그들의 기도와 후원이 있기에 언제나 든
든하고 감사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떤 희생 치르더라도 자신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은 절대로 쓰러지지 않으리라(시 15:1-5)
는 성경구절처럼 그는 강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
신 약속들을 이루시는 것을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지켜봤다.
그 역시 하나님께서 원한 것들을 지켜낼 것이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품고, 사랑으로 세우고, 우간다를 다시 세울 지도자 로 길러내는 일. 아이들의 ‘마마’이기에 아무리 지쳐도 놓을 수 없는 하나님과의 약속이다.
185 PEOPLE
내 나이 86세, 봉사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모닝!”
반듯한 재킷 차림으로 손을 들어 간사들에게 인사
를 건네는 노신사. 그의 모습이 보이면 직원들은 수요일임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2003년 청담동 사옥 시절부터 수요일이
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인사를 건네는 남충일 봉사자가 있다.
올해 86세인 남충일 봉사자는 16년 동안 기아대책에서 서
신번역 자원봉사를 해온 최장·최고령 자원봉사자다. 기업인으
로 사회생활을 은퇴한 후 사회에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자원봉
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흔의 나이에 영어 서신 번역 봉사
를 자원한 그를 보고 많은 이들이 의아해 했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은 그 나이에 무슨 봉사냐며 만류하기도 했지만, 이제
는 실력과 꾸준함을 겸비한 최고의 자원봉사자이자 웬만한 직
원들보다 경력이 더 오래 된 전문가이다.
그가 하는 업무는 ‘사랑의 오작교’ 역할이다. 해외 아동개발
사업의 후원 아동들이 국내 후원자들에게 보내오는 편지와 국
내 후원자가 후원 어린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번역한다. 사진으
로만 겨우 얼굴을 본 두 사람의 국경을 초월한 만남에 다리를
186 기아대책 30년사 INTERVIEW 4
남충일 자원봉사자(서신번역 활동)
“굿
놓는 일이다. ‘사랑해요’, ‘보고싶어요’, ‘예수님 열심히 믿거라’ 등의 간단 한 내용이지만 마음을 담은 편지이기에 허투루 다룰 수 없다.
기아대책의 도움을 받은 아이들은 성장해 18세가 되면 지역
아동센터를 떠나게 된다. 그렇게 졸업을 하는 아이들이 그동안
의 도움으로 공부도 잘하고 성장해서 떠나게 됐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편지도 많다. 그럴 땐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전해오는 편지들의 사연을 보면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고작 열 살 안팎의 아이들이 에이즈 같은 병마 에 시달린다는 소식, 가족의 경제활동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후원자와의 소중한 인연이 끊기는 일들. 익 숙해질 만도 하건만 짧은 편지들에 담긴 머나먼 나라의 아이 들이 전하는 신산한 삶의 이야기에 여전히 마음이 쓰인다.
아이들과 후원자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편지를 읽으며 자연
스레 기아대책 사역의 가치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훌륭하게
성장한 아이의 이야기 속에서는 그 아이를 위해 기도와 수고
로 노력한 기대봉사단의 모습이 보인다. 십수 년째 후원을 이어
가고 있는 후원자들의 이야기에는 최선을 다해 후원자를 섬겨
온 간사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종교가 없는 그이지만 기
아대책의 미션이 얼마나 숭고하고, 현장에서의 헌신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기아대책 직원들이 후원금을 알뜰하게, 소중하게 쓰는 모습
에 감명을 받아 그 역시 후원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힘이 닿
는 한 열심히 하겠노라고 마음을 다진다. 다달이 후원금을 내
는 이들이 돈이 많아서 후원하는 게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
다. 매달 꾸준히 금전을, 마음을 조건 없이 주는 일은 결코 쉬
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기아대책의 수많은 후원자들이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처음 자원봉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사회에 빚을 갚는다는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봉사 자체가 그에게 행복을 가
져다줬다. 어떤 자원봉사는 아내 몰래 숨어서 하기도 했다. 지
금은 봉사를 나가는 날이 아내에게 특별 대우를 받는 날이어
서, 소소하게 거드는 집안일까지도 면제다. 그만큼 자원봉사가
그의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는 일임을 가까운 가족이 먼저 알 고 있다. 남충일 봉사자는 기아대책을 포함해 1주일에 3일을 자원봉
사에 나선다. 여전히 주변에서는 효도를 받으며 편히 지낼 나 이에 봉사하느냐며 이제 그만두라는 이들도 많다. 그 역시 모 르는 바는 아니다. 예전에는 수십 통을 번역해도 거뜬했는데, 지금은 한 통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 든다. 그럼에도 건 강이 허락한다면 90세, 아니 죽는 날까지 자원봉사를 하고 싶 다는 게 남충일 봉사자의 작은 바람이다.
187 PEOPLE
김영걸 후원자(카이스트 교수)
위대한 유산, 나눔의 가문을 이루다 ‘천
사’들의 매력에 빠져 15년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
는 이 가 있다.
2004년, 쿰쿰한 냄새가 나는 기아대책 지하 강당에서 김영
걸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빔프로젝터는
낡을 대로 낡아 있었고, 의자며 책상이며 무엇 하나 새것이 없 었다. 항상 모든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에서만 강의를 했던 그 에게 기아대책의 첫인상은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그에게 충격
을 준 두 번째 인상은 강당을 채운 간사들의 눈빛이었다. 착한 열정으로 빛나는 눈빛.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천사,’ 같 았던 간사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IT, CRM(고객관계관리) 전문가인 그는 자신의 노하우와 생 각을 아낌없이 나눠줬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기아대책을 찾 아 자문모임을 연다. 김 교수에게 조언을 얻고 싶은 간사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늘 강조하는 것은 ‘새로움’과 ‘즐거움’ 이다. 그의 도움으로 기아대책 후원자 관리 시스템이 혁신적으 로 개선됐고, 문제에 봉착했던 다양한 후원 캠페인에 새로운
188 기아대책 30년사 INTERVIEW 5
길이 열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모금 관련 캠페인은 2011년 개최했던 ‘슈 팅 포 아프리카(Shooting for Africa)’ 행사였다. 행사의 아이
디어를 제안한 것도 김 교수였다. 모두에게 즐거운 행사를 만
들자는 게 그의 취지였다. 자유투를 던져 골이 들어간 수만큼 약정한 후원금을 기부하면서 세계 가난한 이웃들의 실상을 알 렸다. 골을 넣는 아이들도, 그 아이들의 부모도, 자원봉사하는
대학생들도, 그리고 간사들까지 모두 즐거워했다.
즐거움을 강조하는 그는 전문 MC 뺨치는 입담으로 매회 고 액후원자 자선모임 ‘필란트로피 나이트’에서 경매를 진행해왔
다. 딱딱한 고액후원자 모임행사에 경매라는 이벤트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차던 비닐 축구공, 네팔 아동 이 쓰던 돌 깨는 도구 등 언뜻 보기에는 가치 없는 물건이 그의 경매 진행으로 고가에 낙찰됐다.
그는 재능기부로만 동참하는 게 아니라 나눔에 있어서도 솔 선수범한다. 고액후원자 모임인 ‘필란트로피클럽’ 2호 후원자, ‘헤리티지클럽’ 4호 후원자, 2016 희망월드컵 우간다 구단주,
한톨청소년봉사단 단장 등 그의 앞에 붙는 수식어도 여러 개
다. 기부뿐만 아니라 기부문화조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대학에
서는 카이스트발전재단 상임이사를 맡아 학교 발전을 위해 펀
드레이징을 하고 있다.
기부의 기쁨을 알기에 거침없이 나눔을 권유한다. ‘나눔 권
유’는 상대가 거절하더라도 아쉬울 게 없다. 숨은 맛집을 친한
친구에게 추천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진정한 기
쁨이 그곳에 있기에 권유하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에
게도 같은 기쁨을 나누자고 권했다. 그의 어머니는 ‘헤리티지
클럽’ 1호 후원자가 됐다. 그는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어머
니께 유산 기부를 권해 드린 일’이라고 말한다.
헤리티지클럽 가입 1년 여 만에 어머니 故 설순희 여사는 소
천했다. 헤리티지클럽 1호인 故 설순희 여사의 유산은 카메룬
에 ‘행복학교’를 짓는 데 사용됐다. 장례식장 입구에 걸린 ‘설
순희 여사님 기아대책 유산 기부’라 쓰인 배너를 보고 빈소를
방문한 많은 조문객들이 감동을 받았다. 헤리티지클럽 2호 후
원자도 고액 후원자 모임에서 그의 어머니의 사례를 듣고 기부
를 결심했다. 김 교수 역시 어머니 기일에 유산기부를 약정했
다. 정체된 유산기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직접 마중물을 부
은 것이다. 그의 후원은 유산기부가 누구나, 젊은 나이에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김 교수는 함께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기아대책에 늘 애
정 어린 조언을 던진다. 30주년을 맞은 기아대책이 당면한 과
제는 ‘파트너’를 만드는 일이다. 단순히 주기만 하는 ‘후원자’가
아닌 파트너라는 인식을 가져야 오래가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고 말한다. 과수원의 농부가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 과실나무
가 잘 자라도록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듯 기아대책도 후원자들
에게 많은 기쁨을 줘야 한다. 기업들이 고객관리를 못 하는 것
은 매출만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듯 기아대책도 먼저 기쁨
을 주지 않고 사랑만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또 처음이나 지금이나 기아대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간
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명을 가슴에 새기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있기에 좋은 조직문화, 좋은 후원 자들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다만 ‘천사’들이 지치지 않고 늘 즐겁게 일할 수 있길 바란다. 간사들이 즐겁게, 새롭게 성장 해야 또 다른 30년 후에도 여전히 훌륭한 NGO로 성장할 것이 라고 믿는다.
189 PEOPLE
하나님 나라를 넓히는 기부
강석창 후원자(소망글로벌(주) 대표이사)
석창 대표는 기부의 ‘마력’을 아는 사람이다. 강 대표에
게 기부란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 것, 세상 모든 다른 즐거움보다 더 즐거운 것이다. 최종 목표는 1,000억 원을 벌어
990억 원을 기부하는 일이다. 기부하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
이 바로 그다.
누군가는 ‘많이 버니까 할 수 있는 얘기’라고 말할지도 모른 다. 강석창 대표는 ‘중졸’ 학력의 사원 시절부터 그야말로 쥐꼬 리만 한 월급을 쪼개 기부했다. 극심한 알러지와 통증으로 학 업을 마치지 못하고 사회로 나온 영업사원인 그가 벌 수 있는 월급은 빤했다. 영업을 다니다 사고로 차가 파손되자 회사 사 장님이 차를 사라고 개인적으로 준 돈에 자신의 돈을 보태 ‘홀 라당’ 기부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렇게 기쁠 때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강 대표는 차라리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건 강이 좋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은 너무 많은 것을 주시진 않더
라’고 삶을 돌아보며 고백한다. 건강 문제로 겨우 중학교를 졸
업한 그가 일군 것들을 생각하면 그저 선하게, 많이 나누라는
하나님의 뜻이 틀림없다.
190 기아대책 30년사 INTERVIEW 6
강
때문에 사업이란 기부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라고 생
각한다. 그 덕에 그의 손을 거쳐 간 사업들은 성공가도를 달렸
다. 화장품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1992년 소망화
장품을 설립해 운영했다. 획기적인 마케팅과 제품력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시점인 2011년 KT&G에 매각하고, 2016년 미 네랄바이오(미바·MIBA)를 인수해 다시 화장품업계로 돌아왔 다. 사회로부터 받은 이익이니 사회로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는 생각으로 여전히 이익의 30%를 기부한다. 물론 최종 목표 는 1,000억 원을 벌어 990억 원을 기부하는 일이다.
그는 가장 어려운 곳, 자신의 기부가 필요한 곳만 골라서 기 부한다. 1987년 언론탄압으로 광고 하나 없을 정도로 힘들었 던 기독교방송(현 CBS)에 직접 찾아가서 기부로 응원했다. 기 아대책과의 인연도 오래됐다. 1991년 기아대책이 국민일보와 함께 기획했던 ‘아프리카 기아 현장을 가다’라는 기사를 보고 기아대책 신사동 사무실로 찾아가 기부했다.
강 대표는 지금까지 100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기부해 개인 후원 금액으로는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기아대책의 ‘떡과 복 음’의 가치가 소중함을 믿고 이에 동의하기에 동반자로 함께 걷
고 있다. 그의 노력과 꾸준함에 힘입어 기아대책 역시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그에게 기부란 그저 ‘잠시 맡았다가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다.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하게 번 돈을 하나님 나라를 넓히는 일에 선하게 쓰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돈을 가장 잘 쓰는 방법’이다. 소망화장품을
운영할 때도 “우리 회사의 사장님은 예수님이십니다. 저는 관
리자일 뿐입니다.”라는 말을 줄곧 했었고, 지금 미바 역시 하나
님이 운영하는 회사라고 믿는다.
그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넓혀지는 것을 보기를 희
망한다.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여기기에 자신의 영달은 원치 않는다. 그 초심을 끝까지 실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기업철학은 ‘적은 소득
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하는 것보다 낫다(잠언 16:8)’이다. 기부는 가진 것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많
은 이들이 작지만 쪼개서 기부하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191 PEOPLE
최원석
후원아동
내게 와준 새로운 가족 어린
나이이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앞날이 막막하고
낙이 없었을 때 플루트가 꿈처럼 그에게 왔다. 우울하고
위축돼 있던 소년은 이제 성인이 됐다. 자신을 지켜주던 울타
리를 벗어나 스스로 자기의 길을 개척하는 당찬 청년. 기아대
책에서 10년 넘게 후원을 받고 이제 플루트 전공으로 한국예
술종합학교에 입학한 최원석 군의 이야기다.
어린 원석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10년, 기아대책이 GS 홈쇼핑의 후원으로 국내 아동들의 문화정서적 지원을 위해 악 기와 레슨비를 지원하는 ‘무지개음악상자’ 사업을 통해 플루트 와 만났다. 횡성행복한홈스쿨 센터장 선생님은 어린 원석이의
눈높이에서 리코더를 옆으로 부는 악기가 플루트라고 말해줬다.
플루트는 태어나 처음으로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일이었다. 매주 월요일에 하는 플루트 그룹 레슨 시간을 1주일 내내 기다렸다. 단체 레슨이기에 선생님의 레슨을 집중해서 받 는 건 고작 10분 정도였다. 그래서 레슨 시간이 더 간절했다. 간혹 월요일이 공휴일인 날은 너무 슬펐다.
이제 20년 남짓한 원석이의 삶은 또래의 아이들과 조금 달 랐다. 엄마는 부재중인 상황이었고, 아버지는 술에 의존했다.
192 기아대책 30년사 INTERVIEW 7
아들에게 관심을 주는 날보다 술과 함께하는 날이 더 많았던
아버지는 원석이가 중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그에게 가족이 돼준 것은 행복한홈스쿨이었다. 센터장님과
선생님들은 그간의 결핍과 못 받은 사랑을 채워줬고, 비뚤어지
지 않고 건강히 성장할 수 있게 살아가는 동안 버팀목이 됐다.
늘 부족하지 않게 채워줬던 이들이 있었기에 너무도 당차게
“한 번도 제가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도요”
라고 말한다.
이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원석이의 플루트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무엇인가를 ‘잘 한다’라는 칭찬을 들어본 일도, 열심히 매진한 일도 모두 플루트를 만난 후였다. 고가의 레슨
을 받지 않고도 예고에 합격했고, 수많은 콩쿠르에서 입상했 다. 그리고 모든 예술인들이 꿈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당 당히 입학했다.
최원석 군은 “이제 그동안 받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말 한다. 가족이 채워주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결핍을 하나님이 채워 주셨다고 자신한다. 예고 원서 접수 2주 전 급작스레 떠 나버린 아버지, 원망할 법도 하지만 그의 눈엔 아빠를 향한 어
떤 미움도 없다. 그저 ‘이해한다’라는 성숙한 말로 자신의 마음
을 고백하는 청년이다.
그가 플루트 연주를 하면서 꼭 빠뜨리지 않고 연주하는 곡
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곡으로 가장 좋아하는 찬양이다.
악기로 예수님을 알리고 싶어 ‘클래식과 함께하는 하나님’이라
는 뜻의 ‘클래식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의 음악선교단체를 세우
리라는 비전을 두고 기도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최원석 군. 항
상 나보다 타인의 위로를 앞세우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에 미래
가 더 기대되는 청년이다.
193 PEOPLE
동행, 모두가 행복한
지역사회를 꿈꾸다
윤호종 군포시노인복지관 관장
사회복지분야
외길 20여 년의 윤호종 관장은 ‘지경을 넓
히는 사람’이다. 맡은 지역마다, 복지관마다 선한 청지
기의 마음으로 맡겨진 일 이상을 해냈다. 실력 면에서나 이력
면에서나 복지법인 기아대책의 ‘원톱’이다.
윤호종 관장이 처음부터 사회복지사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
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지역을 살리는 일을 해 보고 싶어
당시로선 늦은 나이인 서른네 살에 다시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
지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젊은 시절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다 고 고백한다. 이런 경험은 사회복지 전문가적 지식을 만나 복 지관이 속한 지역을 살리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근무했던 복지관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사업의 꽃을 피웠다. 특히 관심이 있는 분야는 청소년이었다. 복지관의 주 이용자층이 아닌 사업에는 자원도, 관심도 부족한 게 현실이 다. 때문에 그는 반대로 종합복지관에서도, 노인복지관에서도 지역사회의 청소년들을 품었다. 노인, 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은 많지만, 청소년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설은 많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특히 군포시노인복지관에서 2년 10개월을 근무하면서 사
회복지의 새 지평을 열었다. 부임하고 맨 처음 한 일은 ‘희망이 음걷기한마당’이었다. 모금을 통해 지역의 어려운 청소년을 돕
194 기아대책 30년사 INTERVIEW 8
겠다고 했더니 직원들은 의문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고, 공 무원들은 ‘노인복지관이니 노인을 위한 일이나 하지?’라고 했 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군포시에는 총 여섯 곳의
복지관이 있었는데, 이중 다섯 곳이 비교적 인구가 집중된 산 본 쪽에 있었다. ‘구도심의 이혼, 실직, 사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의 청소년들은 누가 보호를 해줄 것인가?’ 그가 품은 의문이었다.
윤호종 관장은 군포시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지역을 확 장해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펼쳤다. 지역사회
유관기관과 기업, 지역주민이 착한이웃이 돼 신체적·경제적· 정서적·사회적 어려움 및 위기에 처한 주민을 찾고 알리고 돌 보는 지역돌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착한이웃사업’이었다.
이 밖에도 윤 관장은 가는 곳마다 생명을 살린다는 일념으 로, 맡겨진 일 이상의 것을 해내는 욕심으로 복지관과 지역을 살려냈다. 기장군노인복지관에서는 벽화사업을 펼쳤는데, 한
어르신이 ‘사업에 참여한 후 우울증 약을 끊었다’고 전해왔다.
이웃과 소통하며 외로움이 치유된 것이었다. 양재노인종합복
지관에서는 전국에서 드물게 재가복지사례 관리대상자로 구
성된 자원봉사단을 발족하는 등 기존과는 다른 발상으로 사업
을 진행해왔다.
노인 소외 문제가 심각해진 시대다. 노인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이 사라져 가는 것도 문제지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노
인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군포시노
인복지관에서는 ‘노년생활 실습실’을 통해 키오스크(무인 주
문기계)를 다루는 등 4차 산업에서 어르신들이 소외되지 않도
록 돕고 있다. 노인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전자통신
연구원, 수원과학대학교과 공동협력으로 어르신들의 말벗 친
구가 될 로봇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윤 관장은 앞으로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가치는 기아대책의
VOC(Vision of Community)와 기독교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특히 ‘교회문열기운동’ 등의 섬기는한국교회운동이 여전히 유
효하며, 더 많은 교회가 문을 열고 지역사회를 위해 쓰임 받는
다면 모두에게 ‘윈윈’이라고 여기고 있다. 기아대책이 운영하
는 복지관들도 이러한 기치 아래 운영되고 있기에 지금의 입지
를 다지고 있다고 믿는다. 투명성·도덕성·전문성 등을 가진 리
더십과 현장을 중요시하는 현장 실천 전문가들이 있어 지금의
기아대책이 존재하고, 자신 역시 기아대책에서 더 많이 쓰임받
기를 원한다.
195 PEOPLE
196 기아대책 30년사 INTERVIEW 9
정태우 홍보대사(연예인) 방향을 보며 함께 한다는 것
같은
기아대책의
얼굴이며 상징이 되는 홍보대사를 20년간 한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한 자기관리도 필요했 으리라. 정태우 홍보대사는 기아대책 창립 후 세 번째로 위촉 된 홍보대사이다.
1999년 5월 KBS 사극 ‘왕과 비’에 출연한 배우 김민정과 함께 청소년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드라마에 함께 출연했던 임 동진 목사의 “너희가 사랑받는 만큼 베풀어라”라는 말에 흔쾌
히 받아들였다. 임동진 목사는 그에게 멘토이며 아버지 같은 분이다. 옳은 것을 권했으리라 여기니 망설일 것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NGO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아프리카의 굶
어죽는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마음에 홍보대
사로 나섰다. 그리고 20년 동안 홍보대사로서, 기아대책의 명
실상부한 얼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어릴 적 혼자 신앙생활을 했다. 기독교 신자였지만 불
교인 시댁 때문에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어머니는 장남을
교회에 보내면 집안이 변할 것이라는 기대로 그를 교회에 보냈 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 몰래 혼자서 교회를 다녀야했던 그는
외로웠다. 더구나 할머니는 교회에 가지 못하게 했고, 생일만
되면 건강하고 훌륭하게 된다는 미신의 산물인 부적탕을 먹였
다. 혼자 교회를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서 어른이 되면 빨리 결
혼하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내 가족이 생기면 함께 교회
를 다닐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었다.
정태우 홍보대사는 기아대책에서 신앙적인 성장을 하게 됐
다고 말한다. 처음엔 단순히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돕는
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함께하면서 신앙의 비전을 볼 수
있었다. 기아대책의 떡과 복음 사역에 동참하면서 참된 이웃
사랑을 깨달았으며 하나님과 관계도 깊어지게 됐다.
그런 점에서 2006년 모잠비크 비전트립은 특별했다. 그곳
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뜻 깊었
지만, 무엇보다 함께 간 동생의 변화가 크게 다가왔다. 혼자 외
롭게 교회를 다니며 포기하고 싶었을 때 여동생들이 교회에 나
왔다. 그렇게 바라던 기도의 동역자들이 세워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이목이 집중되는 삶이었지만, 가족들의
변화를 보며 그래도 연예인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렇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인연의 시작인 임동진 목사님도 만나
지 못했을 것이고, 기아대책과의 인연도 없었을 터였다.
함께 교회를 다닐 가족을 만들겠다던 어린 아이는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첫째 하준이는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엄마 아빠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편지를 써서 부모님의 코끝
을 찡하게 만든다.
그의 가족은 신앙생활뿐 아니라 기아대책 활동도 기회가 될
때마다 함께하고 있다. 하준이는 일곱 살 때 아프리카 토고의
기아대책 사업현장을 함께 찾았다. 물이 없어 고생하는 현지 아이들의 친구가 돼 준 경험은 하준이에게 여전히 특별한 기
억으로 남아있다. 둘째 하린이는 두 돌도 되기 전에 기아대책
국내사업 홍보를 위해 엄마, 아빠, 형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기
도 했다.
20년 세월을 함께하는 동안 정태우 홍보대사와 기아대책은
가족이 됐다. 좋든 싫든 언제까지고 함께 갈 사이이기에 언제
든 자신을 필요할 때마다 찾아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같
은 꿈을 꾸며 같은 방향으로 걷는 아름다운 동행’이 이어지기
를 정태우 홍보대사와 기아대책은 함께 소망한다.
197 PEOPLE
198 기아대책 30년사 부록
연혁 이사회 조직도 국내 지역본부 및 사업기관 현황 해외 지원 국가 임직원 현황 자료로 보는 기아대책 30년
1989
1989 10 국내 최초의 해외를 돕는 NGO 창립 이사회 개최(초대회장 故 최태섭 장로 취임)
1990
1990 02 교회를 통한 최초의 모금활동 시작
05 첫 회보 <생명의 양식> 발간
07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 허가(보사부 제142호)
12 해외 구호활동 시작(방글라데시, 케냐, 페루 등 7개국)
1991 05 제1회 자선달리기 개최(서울)
10 극동방송 공동 모금방송
1992 02 ‘사랑의밥그릇저금통’ 운동 시작
10 1호 기아봉사단 파송-우간다(류형열, 이민자)
1993 02 제1기 1단계 기아봉사단 훈련 시작
07 국내 구호활동 시작-노숙자, 결식아동 무료급식
1994 01 2대 강성모 회장 취임
04 음반 <한톨의 사랑되어> 출시
09 르완다 긴급 의료 구호팀 파견
대북사업 시작
1995 01 일본 고베지진 긴급 구호팀 파견
03 해외어린이 결연사업 시작(필리핀, 몽골 등 5개국)
07 1차 비전 트립팀 파견
첫 출판물 <섬김의 도> 출간 12 국내지회 개설(대구, 대전, 성남)
1996 03 성남 중동 제2복지관 개관 종합사회복지관 수탁운영(1호/성남 중동 제2복지관)
1997 02 인도 지진 긴급구호 활동
03 북한 분유 보내기 캠페인
10 제3대 윤남중 회장 취임
1998 03 기아대책 홈페이지 개설
08 사회복지법인 ‘섬기는사람들’ 설립 (보건복지부 제822호)
1999 05 기아대책 회관 입주, 코소보 의료 구호팀 파견
09 1호 행복한나눔 개점
10 기구 창립 10주년 모금만찬 행사 ‘굶주림 없는 세상을 위한 기아대책의 밤’
11 국내아동결연사업 시작
2000 02 2단계 기아봉사단 훈련 시작
05 재단법인 국제개발원 설립(외교통상부 제370호)
08 해외결연 후원자 방문팀 파견(필리핀)
12 노인복지관 수탁운영(1호/서초노인복지관)
2001 02 인도 지진 긴급구호 활동
어린이집 수탁운영(1호/섬기는어린이집)
03 북한 분유 보내기 캠페인
09 아프가니스탄 긴급구호팀 파견
2002 04 학교·단체·교단들과 협약 시작(1호/GMS)
09 국내 수해지역 긴급구호팀 파송(황간, 강릉)
2003 03 이라크 긴급구호팀 파견
08 기구 CI 변경
09 국내 태풍피해지역 긴급구호팀 파송 (경남, 마산, 삼척 등)
12 이란 지진 긴급구호
2004 04 북한 용천 열차사고 동포 돕기 MBC 모금 생방송
05 행복한홈스쿨(지역아동센터) 1호 개소
06 북한 용천 폭발사고 긴급구호
11 전국 이사 세미나 개최(1회/수안보)
12 인도네시아 쓰나미 긴급구호
200 기아대책 30년사
2000 연혁
2005 03 제4대 정정섭 회장 취임
미국 카트리나 허리케인 긴급구호 10 파키스탄 지진 긴급구호
국내 호남 폭설 긴급구호
2006 02 필리핀 레이테 산사태 긴급구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지진 긴급구호
강원도 및 북한 수해 긴급구호
기아대책국제연대(FHI Federation) 출범 창립총회
10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상(사회봉사상) 수여
12 아프리카 수단 보마지역 수자원 개발 준공식
2007 01 비전2030 선포식 04 파라과이 대통령 영부인 기아대책 방문
08 북한 수해 복구 지원
09 제주도 태풍피해 긴급구호
12 태안 기름유출 사고 긴급구호 장애인복지관 수탁운영(1호/인천중구장애인복지관)
정기회원 15만 명 돌파
2008 02 기아대책 대북전담 재단법인 ‘섬김’ 창립
재단법인 행복한나눔 창립
이사장 고은아(서울극장 대표), 대표 박미선(방송인)
04 기아대책 국제연대회의 및 총회
05 미얀마 싸이클론, 중국 쯔촨성 지진 피해지역 긴급구호
06
1회 한톨나눔축제 개최
1회 해외기아봉사단 훈련(태국)
11 코트디부아르 기아대책(CIFHI Cote DIvoire) 창립, 필리핀 기아대책 iHELP 창립
2009 02
5개 법인 이사장 취임
05 기아대책 20주년 회고록 <복떡방이야기> 출간
06 정기회원 20만 명 돌파
이스라엘 가자지구 긴급구호
07 부산, 전남 신안 수해 긴급구호
09 일가재단 일가상(사회공익부문),
사회복지의 날 대통령표창 수여
행복한나눔 10주년 기념콘서트 ‘행복을 노래하다’개최
10 기아대책 20주년 기념 모금만찬
2010
2010 01 아이티 지진 긴급구호 03 칠레 지진 긴급구호 04 중국 칭하이성 지진 긴급구호
07 미국 애틀랜타 기아대책 창립
08 인도네시아 긴급구호센터 개설
중국·파키스탄 홍수 긴급구호
영·호남 수해 긴급구호
<복떡방 이야기> 영문판
<The Amazing Story of Bread and Gospel> 출간, 09 생명지기 사업 시작
10 조선일보, MBC플러스미디어와 ‘세계 식량의 날
자원봉사대축제’ 개최
기아봉사단 1,000명 돌파
과테말라 기아대책 창립
12 회원 30만 명 돌파
2011 01 한톨나눔축제 및 식량지원캠페인 브랜드화 추진
03 일본 대지진 긴급구호 04 아이티 소년 디마시의 한국방문치료를 위한
의료지원캠페인
05 행복한만찬 앨범 출시
06 북한 영유아지원사업 재개
07 행복한만찬 앨범 출시 기념 콘서트
제1회 슈팅포아프리카 개최
공정무역카페 Be My Friend 1호점 오픈
10 기구 회관 이전
태국 대홍수 긴급구호
수혜국과 함께하는 STOP HUNGER 캠페인 주최
12 Web Award Korea 사회공헌분야 최우수상 수상
2012 01 <동아일보> 또 다른 ‘울지마 톤즈’ 빈민촌의 코리안 특집
02 무지개상자 오케스트라 제1회 정기공연
05 대만 기아대책 창립
06 제1회 아프리카 8개국 기아봉사단 콘퍼런스
07 필리핀 긴급구호
외교통상부와 ‘인도적 지원분야 민관협력 사업
수행에 대한 업무협조약정’ 체결
201 APPENDIX
09
12
07
05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