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Francisco Journal (샌프란시스코 저널) 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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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쉼터

수필가 에스터 최

요즘 들어 가게 매상이 더 형편없어졌습니다. 지난 달을 겨우 버티어

그러나 일 년도 채 못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유명 메이커인 S 커피

냈는데 이번 달에도 조마조마합니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점과 P 커피 전문점이 앞다투어 문을 열었습니다.

청구서를 이리저리 짜 맞추다 보니 긴 한숨만 나옵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창가로 다가갔습니다. 비라도 오려는지 하늘이 잔뜩 찌푸려

손님들의 대 이동이 시작되었고 제 마음은 재처럼 까맣게 타

있습니다. 날씨에 좌우되는 매상이지만 차라리 한바탕 소낙비라도

들어갔습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묘책을 고심하던 중 이곳 대학가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거리에 맞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로커피숍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여려 대의 컴퓨터를 설치하고 지역 신문은 물론 유명 잡지들과

복잡한 생각을 털고자 바삐 움직이고 있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나파벨리 그림 및 자유게시판을 설치했습니다. 명문대학의 이미지와

집중합니다. 가죽 잠바에 로마 병정 머리를 한 젊은 청년과 하이힐을

히피 문화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는데 주력하자 점차 교수들과 학생들,

신은 야한 복장의 아가씨가 깔깔대며 걸어갑니다. 뭐가 그리 좋을까

여행객들이 붐비면서 다시 나의 커피 하우스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 내 기분이 밝아집니다. 그 옆으로 코가 땅에 닿을 듯

그러나 정작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은 커피 맛을 압도시키고 있는 것은

세상 고민 다 짊어진 것 같은 한 남자가 타박타박 걷고 있고 운동복을

피아노 연주였습니다. 그라지 세일에서 사 들여 한 쪽 구석에 밀려 나

입은 여인이 유모차를 밀며 뛰어가고 있습니다.

있던 피아노의 주인공은 바로 ‘잔’이란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카페

문득 유모차에 실린 아기가 궁금해져 움츠려둔 목을 빼려는 순간

입구에서 경쾌하게 ‘굿 모닝’으로 인사를 건네던 홈리스인 그에게 나는

갑자가 건물 한 모퉁이로부터 응급차의 요란함이 귀청을 때렸습니다.

금방 내린 커피 한 잔과 따끈한 빵을 건네주곤 했었습니다. 그러던

나는 정신이 확 깨었습니다.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의 활발함처럼 내

어느 날 그가 성큼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오더니 피아노 앞에 앉아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코너 한 켠에

쇼팽의 피아노곡 녹턴(야상곡, Op.9 No.2)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들어 있는 화초가 눈에 띄었고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창틀도

그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나자 가게 안의 모든

발견했습니다. 입구 도어의 손잡이도 나사가 헐거워 단단히 조여야

손님들은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뒤 잔의 뛰어난 연주는

했고 테이블 밑의 껌 딱지들도 일일이 떼어내야 했습니다. 나는 정말

매번 손님들의 기다림이 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커피를 뽑아 내기에

오랜만에 팔을 걷어 부치고 땀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빴습니다.

어느새 손이 닿는 곳마다 놀라울 정도로 반짝거리자 가게 안이

어느 날 하루의 일을 마감하고 후미진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환해졌습니다.

말로만 듣던 괴한을 만났습니다. 그가 내 옆구리에 착 달라붙어 차가운 연장을 들이대자 나는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하이, 에스더 그렇게 열심히 닦지 않아도 돼요. 당신이 만들어 내는

어디선가 비호처럼 날렵하게 날아온 잔이 눈깜짝할 사이에 그 괴한을

커피만으로도 여긴 충분히 아름다운 커피숍 인걸요” 컴퓨터의

땅바닥에 때려 눕혀버린 것이 아닙니까! 아! 영화 ‘조로’에서 나온 ‘

키보드를 누르고 있던 탐이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습니다. “동감이요,

안토니오 반드레스’가 이 보다 더 멋졌을까.

여기에 오면 언제나 고향집에 온 것처럼 편안해서 좋아요” 건너편에

평화의 사신처럼 나타났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그를 만난 이후

앉아 에스프레소를 음미하고 있던 마이클도 탐의 말을 거들었습니다.

나는 인생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습니다. 때로는 무조건 달리는 것보다

그러자 책을 읽고 있던 쥴리가 지그시 눈을 감고 말합니다.

더 필요한 것이 멈춤이듯이 경쟁에서 잠시 물러나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이곳엔 여전히 감미로운 그 연주의 흐름이 느껴져 행복해집니다”

감사한 일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침체는 바르게 다시

진심 어린 그들의 말이 너무 고맙고 감사해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일어설 수 있는 고독한 침묵임에 감사합니다. 나는 언제까지든 맛있는 커피와 금방 구워낸 빵으로 이곳을 찾는 모든 이에게 기쁨을 전하는

지난 날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애간장을 태우던 일들이 영상을 보듯 스쳐

사랑의 에이전트가 되고 싶습니다.

지나갑니다. 그러니까 직장 생활만 하던 내가 평소 그토록 열망하던 커피 하우스를 차린 것은 꼭 삼 년 반 전의 일입니다. 늘 마음에 담아

ZORRO! 당신은 알고 있나요? 당신 손이 춤추고 있던 건반 위에는

두었던 그림대로 특별한 커피 맛과 편안함에 승부를 걸고 오픈한

지금도 여전히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콘체르토가 흘러 넘치고

커피숍은 말 그대로 ‘대박’이었습니다.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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