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시간–한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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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시간

한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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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덕 할머니는 ‘월미도민간인 폭격사건대책협의회’에서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44년 출생했고 6살 때 월남하여 7살때 1·4후퇴 당시 파주로 피난하셨다. 결혼을 계기로 인천으로 이주하였으며, 시어머니와 남편이 월미도 민간인폭격의 직접적인 피해자이다. 구술을 시작할 때의 의도는 한인덕 선생님의 생애사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했지만 구술은 결국 월미도 폭격 이야기로 흘렀다. 한인덕 할머니를 만나러 농성장에 찾아간 날 유청시 할아버지께서 보초 당번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분의 이야기를 담게 되었다.

고경표(이하 표) : 어떻게 해서 오셨나······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그냥 편하게 말씀 해주시면 되요. 부담 갖지 마시구요. 한인덕(이하 한) : 7살 되던 해에 1·4 후퇴 난거 같아. 유청시(이하 유) : 1·4후퇴 때 얘기가 아니고······ 1·4후퇴 때 왔어요? 한 : 예, 1·4후퇴 때 넘어왔어요. 임진각 나루터 건너서. 그래가지고 파주에서 살았지. 여기는 얼음 공장에 살았다 그랬죠? 유 : 아니죠. 한 : 아니, 피난 와서 얼음공장에 있었다 그랬잖아요. 유 : 예에 피난. 한 : 우리는 방앗간 있었어, 방앗간. 방앗간 큰~게 있는데······. 유 : 얼음공장 앞에서 저기 있다가. 얼음 공장 앞에서 있다가 얼음 공장을 거기에서 못 저기하게 되서 나와 가지고, 어디에 가 있었냐면은 거~저 대한제분 앞에. 한 : 아니 그러니까 처음에 여기 나가지고(나와 가지고) 못 들어가니까 얼음공장에 있다가. 유 : 거긴 다 찼어 얼음공장엔 다 찼고 바깥에 있어. 한 : 아니, 그러니까 아저씨는 그런 경우지만 딴 사람들은 얼음공장에서 살았대자너. 그래가지고 나중에 그거 나가라니까 쫓겨나서 판자촌 치루고 샀다는 거고. 아저씨 개인은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얼음 공장에 들어가서 살았대잖아요. 대개가. 유 : 얼음공장이 그래 꽉 찼고. 거기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은 많아, 많이 있는데. 그 사람들 외에 또 저기하는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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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못 들어간 사람은 인제 딴 데 가서 살았겠지. 유 : 고 앞인데 딴 데가 아니라. 한 : 아니 긍게(그러니까) 내 얘기에요. 이거는 내 얘기. 유 : 그 앞인데. 한 : 아니 아저씨 이거 내 얘기라니깐(역정을 내심) 내 얘기에요 월미도 얘기가 아니라(웃음). 표 : 나중에 아저씨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한 : 아저씨는 나중에 얘기해야 돼. 그래서 인제 넘어와 가지고 파주 경찰서가 있어. 그니까 피난민이 오면은 파주 경찰서에다가 수용을 시키는 거야. 표 : 수용, 그 가뒀다구요? 한 : 아니 가둔 게 아니라 올게 갈 데 없으니까 거기다가 주먹밥 주고 며칠을 아마 거기서 있다가 내보내서 딴 데를 어디가 살어라, 그래가지고 방앗간에 피난민들이 다 갈 데가 없으니까. 다 같이 여기 월미도 사람들은 얼음 공장에 갔듯이 우리는 방앗간, 방앗간이면 지금 요런 방앗간이 아니고 굉~장히 크더라고. 표 : 공장 같이 그렇게. 한 : 으응. 유 : 옛날에 방앗간은 개인적으로 있는 방앗간이 없었어. 한 : 응, 그랬었나봐. 유 : 이게 나라에서 그 방앗간을 저기를 해가지고. 한 : 운영을 한 모양이야. 유 : 그 저기 해서 공출해 들이고 뭐 그러한 걸 그거를 거기서 한 군데서 찧어서 해서 이렇게 다 나오고. 한 : 그거는 나는 모르지. 유 : 옛날에는 방앗간이 없어. 그렇지 않으면, 자기 개인 방앗간이 없고, 그렇지 않으면 저 소로 다가 연자 맷돌 돌려가지고 저기 해서 그렇게 해서 개인 그런 거 있어도. 한 : 그러니까 이 방앗간은 우리 내가 지금 보는 이런 방앗간이 아니고 어마 어마하게 큰 거야 아주 그냥 굉장히 커. 높이도 그렇고 굉장히 커요 그 저기에도 몇 백 평 되. 거기 안에서 피난민들이 갈 데 올 데 없이 임시로 살았지 바닥에서 잠자고 그냥 간이로 음식 해먹고. 인제 이런 깡통은 아니고(옆에 있는 캔 음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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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키며) 왜 이렇게 있죠. 지금 말하자면 식용유통 같은 거 그거 구녕(구멍) 뚫어서 거기다(깡통을 들고 설명해 주시면서) 이렇게 이걸 인제 이렇게 네모나잖아. 이게 똥그랗거나. 여기다 솥단지 걸고 여기 구멍 내서 여기다가 불 떼서 해먹은 거지, 응? 유 : 거 저기 지금, 저 저 저 저거 저기 있잖아 지금(구석에 업소용 고추장 양철통 놓여있는걸 가리키면서). 한 : 저거 저거. 저거면 인제 요 밑에다가 아궁지(아궁이) 모냥 구녕(구멍)을 내. 유 : 뒤에 또 구녕 쪼끄맣게 내. 한 : 굴뚝 구녕 쪼금 내고. 그러면 거기서 불을 떼서 밥을 끓여 먹는 거야. 그 당시 때는 쌀도 읍었어. 우리는 그랬어. 첨에는 쌀이 어딨어. 내가, 나는 어렸지만은 쌀은 금이 되서 못 먹고 보리밥은 은이 되서 못 먹고 그 말까지 했어. 그 정도로 쌀 보리밥이 피난민한테는 없는 거야. 그렇잖아. 여기서 본토박이들은 농사짓고 뭐하고 삶의 터전이 있으니까, 있는데. 우리네는 피난민이 뭐 맨 몸땡이······ 그래도 월미도 사람들 보다는 나아 옷은 입고 왔으니까. 월미도 사람은 맨발 벗고 뛰어 나왔대잖아. 우리는 옷은 입고 신발은 신고 나왔지. 유 : 아니 이렇게 단속곳 바람으로 여자들이 뛰어나왔어. 한 : 그러니까, 인제. 유 : 옛날 단속곳 입다 만은 사리바다가 없었어(웃음). 안에 빤스가 없다는 얘기지 단속곳. 앉으면 오줌 누코. 여기에 유방 털러덕 털러덕 털러덕 하면서(웃음). 한 : 털러덕은, 여기 이렇게 인제 초맸지(잡아 맺지) 옛날에도 이렇게 초맸어. 유 : 아니 단속곳 입은 사람은 못 초맸지(웃음). 한 : 옛날 살아온 거는 다 그럴거여. 그런데 나는 그때 우리 부모는 그르케 했지만은 우리 시대 때는 또 그르케 해서 거기서. 유 : 속치마 입은 사람이 초매지지 단속곳 입은 사람은 못 초매(웃음). 한 : 아니요 고거만 따로 요렇게 초맸어요. 그건 남자니까 모르시지 우린 처녀 땐 데도 그 브라자가 없자나. 브라자가 없으니까 요렇게 초매는 거 요기매만 이렇게 끈으로. 표 : 네 이렇게 약간 이렇게 밴드같이. 한 : 끈으로만 묶어서. 응 응 응 맨들었어, 요기메만 요렇게(가슴 부분을 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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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르는 시늉) 그게 있어. 표 : 옛날 그림에도 조선시대 그림에도. 한 : 응 그게 있어, 그게 이제 브라자야. 표 : 선생님은 몇 살 때 내려오신 거 에요? 한 : 그러니까 내가 6살 때 나와 가지고, 7살 때 1·4후퇴에 나와 가지고 나온 것 같애. 어떻게 된 건가 나도 모르겠네······ 근데 유치원은 다녔거든? 표 : 북한에, 북쪽 고향에서요? 한 : 응응, 고향에서 지금은 이북도 아니고 이남도 아니고 인제 경계선 안에 이렇게 들어가 있는 거지. 그래서 인제 저기 했는데 거기서 인제 초등학교 다니고. 중학교도 다니다 중퇴하고. 왜냐면은 인제 아버지가 안 계시고 우리 어머니가 인제 바느질, 양복점에서 바느질을 하셨는데 그 피난통에 못 잡숴서 그러는지 미싱을 하면은 막 도망가는 거야. 미싱이 도망가서 일을 못해. 그러니까 인제 이게 요렇게 보여야지 바느질을 할 거 아냐. 표 : 바로 이렇게 할 텐데. 한 : 근데 이게 막 미싱이 도망가는 거래. 표 : 잡을 힘이 약했나 봐요. 한 : 힘이 없는 게 아니라 잡아가는 게 아니라, 떠는 게 아니라 미싱 자체가 어지러운 거 모냥(마냥) 이게 내 앞에 이렇게 확실히 보이는 게 아니라 자꾸 도망가는 거 같이 보인다 이거야 이게. 그래서 한 3년을 앓으셨어. 그래 가지고 내가 학교를 다니다가 그냥 말아 버렸어. 그래서 돈 안내도, 파주여상. 돈 안내도 좋으니까 나오라 나오라는데 그 어린 마음에 양심에 가책이 되서 안 나갔지. 그래서 파주여상 1기생이야 말하자면. 표 : 전쟁 끝나고 인제. 한 : 응 전쟁 나고, 끝나고 나서. 그러고 나선 인제 거기서 살다가 우리 영감을 만났지. 그래서 만나가지고 파주에서 살다가 인천으로 이사 왔지. 표 : 아 남편 분 같이 따라서. 한 : 응 남편도 거기 문산에 있었는데 문산에서 인제 우리 어머니가 그 집에 가게를 얻었어. 인제 바느질을 하느라고 가게를 얻었는데, 거기서 인제 우리 영감이 “아줌마 딸 있어요?” 그러니까 딸 있다고, 그러니까 몇 살이에요?몇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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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니까 그러면 그 딸 나 달라고 그러면서 장모님, 장모님 하고 날 보지도 않고오~ 표 : 왜요, 다짜고짜(웃음). 한 : 보지도 않고 그르케(그렇게) 한 거야. 어느 날 내가 간장하고 고추장하고 인제 가져간 거야. 난 금촌 이고 거기는 문산 이니까. 그래서 갔더니 문구멍을 뚫고 봤대. 나는 몰라. 나는 몰르지 이렇게 가게를 들어올려면, 이 가게 문을 들어와야 이 문을 들어오는 거야(대문, 작은 문이 있는 구조 설명). 근데 우리 엄마는 이 가게를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 집은 대문은 저기 있는데, 절루 안 들어오고, 행길(대로) 앞 이니까 인제 일루(작은 문) 쏙 들어오는 거야. 근데 옛날에는 창호지 문 아니여. 그걸 인제 침 발르고 뚫고 봤대 나를. 나는 못 봤지. 그래가지고 인제 우리 어머니가 자꾸만 막내아들이고 그러니까 그 집안이 착하다. 여자들을 애낀다. 그래가지고서는, 나는 첨에는 싫었어 진짜 인상이 싫었는데, 자~꾸 우리 집에 오는 거야. 와가지고 뭐 옛날에는 꽁치도 동태 같은 것도 세 꾸래미(꾸러미)로 대가리 이렇게 묶어가지고 팔잖아요. 그렇게 해가지고 우리 형님이 여기 인천에 여기 하 인천 대한제분 앞에. 그러니까 인제 피난 와서 대한제군 앞에 사시는 거야 월미도 주민들은. 월미도 주민들은 대한제분 앞에서 살고 거기서 살고 그런 거야. 그러니까 우리 큰집에는 대한제분 앞에 사는 거야. 그러니까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거기 사시니까 큰 동서가 거기 가니까 밥해줄 사람이 없다고 우리 엄마 보고 밥해달라고 갖고 오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겨란이(계란이) 겨란판이 이렇게 해서 30개 잖아요. 그때는 10개씩 지푸라기로 이렇게 했어, 이렇게 해 가지고 지푸라기로 묶어가지고 이렇게 열개. 유 : 판(계란판)이 없었지. 한 : 그게 한 줄이야 한줄, 인제 옛날 얘기 나오네. 어 그렇게 해가지고 어쨋든 그래서 만났어요, 만나가지고 우리 아저씨가 여기 사는데 영장이 자꾸 나오니까 문산에 있는데 빠꾸 사람이 없으니까 빠구 당하고 빠꾸 당하고 그래가지고 24살 때 지원했어. 표 : 어어. 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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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응 지원해서 공군으로 들어가서, 저 저기 수원 14단?인가 뭐 거기 있다가 거기서 제대했지 표 : 그때 결혼 하셨을 때 선생님 나이가. 한 : 그때는 결혼 안했지. 표 : 아 그냥 연애하고 있을 때였어요? 한 : 그렇지. 군인 갔을 때는, 그냥 알기만 하고 간 거지. 갔다 와서 제대하고 왔더라고. 그래서 인제 왔다 갔다 하다가 결혼을 했지. 결혼을 했는데. 표 : 그게 나이가 몇 살이에요 몇 살 때라고 그러셨어요? 한 : 그러니까 내가 25살에 큰 아들을 낳았어. 표 : 그러면은 24살, 적어도······. 한 : 그렇지 그러니까 아마 스물······ 제대하고 났을 때 아마 23살인가?그렇게 됐을 거야 아마. 표 : 옛날엔 결혼을 다 빨리 했으니까. 한 : 으응, 응 첫 애는 25살에 낳고. 났는데 인제 그 애를 내가 잊어 버렸어. 표 : 애기를요? 한 : 2009년도에, 그 큰애를. 표 : 어디서. 한 : 아니 인제 잊어버린 게 아니라. 인제 죽었다 이거지. 그래서 어쨌든 내가 이 일을 하면서 그러면서부터 그냥 살았지. 남들같이 평범하게 내가 살아왔었지. 살아왔었는데 내가 월미도에 살잖아. 월미도에 살다 보니까, 그 원주민들이 여기 살았대는 거는 내가 알지. 어르신네들이 얘기하구. 처음에 시댁에 오니까 우리 고향은 월미도 저긴데 군인이 있어서 못 들어간다. 군인이 나가야 우리는 고향을 찾을 거다. 그 소리는 내가 들었지. 그런데 인제 명절 때나 그럴 때 어르신네들이 만나고 그러면 저기 군부대가 나가면 뭐 분양을 헐 거다. 그러면 우리가 1순위다 이런 소리를 들었었어. 그랬었는데 여기 와서 살다 보니까 그 군부대가 나간다 그러더라고?그래서 나간다 그러니까 우리 지 아버지 친구들 이렇게 명절 때는 만나잖아. 그래서 여기 군부대 나간댄다고 몇 년도에 나간덴데 그러니까 그러면은 이거를 한 번 다시 나가면 우리가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니냐?그래서 시작이 된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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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 그 전에는 하셨어요? 한 : 그 전에는 했지. 전에는 52년도에. 인제 여기 폭격을 했다 그랬잖아요. 근데 폭격이, 내가 우리를 딴 사람들하고 똑같이 본다는 것이 나는 억울 하대는 거야. 왜 억울하냐면은 내가 이거를 처음에는 몰랐었어요. 어떻게 된 얘긴지. 그냥 살았다는 얘기만 알았지, 아무 것도 몰랐었어. 근데 내가 회장이 2005년도에 위원장이 된 거야. 그때서부터 자료를 찾으러 다녔어요. 월미도의 모든 자료를 찾으러 국립도서관, 국가기록원 이런 델 다 돌아다니다 보니깐 이 역사에 대해서 알고 또 이 어르신네들이 이렇게 됐다는 얘기를 하고. 그래서 내가 알게 됐는데. 52년도에 여기, 52년도에 여기 자료가 있어. 그 뭐야 넣다는 거. 민원을. 인천 시장한테. 이게 동네고. 표 : 옛날 사진이에요? 한 : 이게 옛날 이게 지금 여기 잖아요, 우리가 지금 요기야. 현 위치가 1 여기가 하 인천이야. 하인천역이 여기여. 그러면 여기가 인제 소금창고가, 소금창고가 아니라 소금공장이 있다는 거야 여기가 그러면 우리는 이게 동네고, 이게 동네고. 표 : 이게 마을이고. 한 : 이게 미군부대고. 근데 여기가 여기야. 요고가 요고거든. 표 : 아, 예에. 한 : 그찮아 이렇게. 표 : 딱 맞아 떨어지네. 한 : 딱 맞아 들어가잖아. 이렇게 된 건데. 이 폭격을, 6·25때 피난을 가라고 그래서 갔대요. 피난을 가라 그래서 갔는데, 그 여기 남아있는 사람이 있었대. 우리 시댁도 보면은 우리 시어머니하고 인제 젖 떨어진 애들만 데리고 갔지. 나머지는 다 여기 살았어. 시누서껀 다. 시아버지서껀 할머니서껀 다 여기 사셨어. 근데 젖맥이는 사람은 왜 친정으로 갔냐면은, 이 열 식구나 되는 거를 남의 집에 가서 우리가 살 수 없잖아. 그러니까 인제 위험한 사람만 인제 간 거야. 갔는데 또 올게 갈 데 없는 집은 안 가고 그냥 여기 살고.

1. 이야기를 나눈 장소는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 위원회 농성장이었다. 이곳은 월미 공원 정문을 마주보고 오른편 끝 쪽에 지어진 가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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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 그쵸, 그럴 수 밖 에 없죠. 한 : 그치. 그러고 피난 갔다가도 남의 집에 가서 친척집에 있다가도 며칠 상간이지 오래 묵을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도로들 왔대. 도로 와서 여기서 살았대. 그랬는데 그 여기 산에 이북 사람은 여기 이 산 꼭대기 지금 저 꼭대기 지금 여기 산이 안보이잖아. 여기 꼭대기 아니야. 이렇게 산 있으면은 여기가 꼭대기인데 여길 먼저 때렸으면은 이 사람들이 도망갔지. 근데 여기부터 때린 거야. 표 : 마을부터? 한 : 마을부터. 10일 날. 10일날 마을부터 때리니까 이 사람들이 바로 요 앞엘 때렸대. 그러니까 요 앞에 있는 사람은 욜로 지금 이 뻘로, 뻘이여 이게. 물이 차면은 여기까지 찰랑찰랑하고 물이 빠지면 이건 뻘이여 개흙, 그니께 여기 깊잖아 퍼렇게. 근데 여기는 저장한데라 물이 안 빠져나갔대. 그래서 일루 도망가서 뻘을 묻히고, 또 이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산으로 올라가고 그래가지고 여기를 세 차례를 했다나바?아침, 점심, 저녁으로 때렸다 그러더라고. 그래가지고 여기 완전히 그냥 초토화 시킨 거야. 10일 날만. 유 : 사람들 다 죽일려고. 한 : 그러니까는 근데 요 미군 부대가 요거 미군 부대는 터끌(티끌)도 안 건드렸어. 그래가지고 요기 집 가까운 집은 안탔어. 이거 때리면 이게 타잖아. 그니까 요기만 그렇게 한 거야. 그래서 11일 날은 그러고 도망가는 놈은 또 기관총을 쏴서 죽였대. 유 : 그게 왜냐하면 월미도 사람 전체를 다 사살해버려야 월미도를 차지하고 자기네들이 영원히 자기 땅으로다가 할려구 그랬다는 얘기야. 한 : 그러니까. 유 : 그 민간인들 다 사살 한 거야. 한 : 그래가지고 인제 그날 도망 나온 게 마지막이야. 지금까지 못 들어가잖아. 그러고 11일 날은 날씨가 흐려가지고 폭격을 안 하고 12, 13, 14(날짜). 95발이라나 97발이라나 네이팜탄을 터트린거야, 이 산을 몽땅. 표 : 산에다가, 또. 한 : 그렇지. 그래서 완전히 초토화 되가지고 풀 한포기 안 남은 거고 1m 50이 줄었다더라, 이 월미산이. 그 정도로 퍼부어 댄 거야. 이거 지금 군인이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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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함포 사격으로다, 저 팔미도 있는데서 함포로다가 쏜 것만 해도 저 3일을 내리 쏴가지고 초토화 시킬려고, 함포로다가. 한 : 그니까 이제 비행기로 네이팜탄은 그렇게 때리고. 15일 날 들어올 때는 함포 사격 하면서 들어왔는데 15일 날은 45분도 안 걸렸다더라고. 그거는 어떻게 아냐면 60주년 기념행사 때 그 백 무슨 장군이더라고. 표 : 백선엽? 한 : 응. 백선엽 장군인가. 그 장군이 그 얘길 하더라고. 그때 사령관이 모였었나봐? 그 양반이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45분도 안 걸려서 들어왔다고. 그러니깐은 벌써 버리고, 완전히 없애 버리고, 고 다음에 12일서부터는 여기다 다 때린 거야 전체를. 전체를 때리니까 이게 52년도에 민원을 낸 거야 이게. 표 : 이걸 어떻게 찾으셨어요? 한 : 이걸 어르신네들이 보관을 했지. 이거 봐 나달나달(너덜너덜)하자나. 표 : 종이가 이게. 한 : 응. 습자지야, 밀양지. 옛날에 제기차고 하던 종이거든. 이렇게 해서 민원을 냈어. 52년도에. 그랬는데 미군이 있으니까 미군 철수하면 들어가게 해준다고 그런 거야. 그러니까 기다릴 수밖에 없자나 노인네들이. 응? 유 : 미군 나가 면은 우리 인제 1대 시장이······. 한 : 집에 가려니 하고 있었어. 그랬는데. 63년인가 그렇게 되니까 그때 귀속재산 처리법이 있었어. 표 : 네에. 한 : 58년도서부터 그래가지고 이거는 일본 사람들이 뭐냐 면은 월미도 원주민들은 건드리지 말라는 거야 이게. 요기. 요거. 그래가지고 왜정시 때도 원주민을 보호해줬어. 일본놈은 우리나라 뺏어 먹을라고 했고, 우리 살던 그 터를, 이 터를 뺏어가지고 저쪽으로 옮겨줬다가 다시 또 이쪽으로 옮겨주고 그랬거든?그래 응 기찻길 이거 다리 놓느라 그렇게 했는데. 유 : 이짝, 여기에서 살았드랬는데. 여기다 살고 이곳을 월미도 산이고 뭐고 다 재보고 다 얼마 되나 그걸 다 쟀그덩?그런데 우리 사는 동네에 들어와 가지고 잴려고 그러니깐은, 응?이 젊은 청년들이 저기가 그렇게 낫 들고 곡괭이 들고 쫓아가서 그냥 막 찍을려고 그러니까는 도망가서 못 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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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 아, 월미도를요? 유 : 아니 그니까 우리 사는 밭하고 집하고 그 거기를 못 쟀어. 표 : 동네를. 유 : 못 재고, 응. 난중에 이 높은 사람들하고 이 저기를 해가지고, 그러면 요 요쪽으로 여기는 자기네가 쓸 테니까 요쩍으로 살라하고, 요쩍에 옮겨 줬지. 한 : 옮겨줬지. 대토2 를 준거야. 유 : 옮겨놓고 여기를 다 잰 거야 어?다 재고 요렇게 저기 했다가, 이거 한번 남겨 놨는데 이것이 그 토 소리 날 거 같으니까, 다시 여기에서 이쪽으로. 이짝에다가 옮겨서 여기 다가 저기······. 한 : 그니까 여기 요쪽에 여기가 원래 터였는데 여기에서 저쪽으로 옮겨주고. 그러고서는 왜냐하면 1904년도에 옮겨줬어요, 옮겨줬는데. 다시 또 거기를 여기를 또 매립을 할래니까 거기 돌산을 파야 되니까 또 내 쫓을라 그러는데 막 난리를 치니까. 유 : 국유지로 다 만들었어. 한 : 또 다시 이 땅으로 옮겨줬어. 옮겨주고 했거든. 유 : 나가라. 한 : 그러니까 일본 정부도 우리를 대토를 주고 내쫓지를 못했다는 얘기야. 근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국민과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해줄 의무가 있다고 그러면서 결국은 월미도 원주민한테는 결국은 보호커녕 생명과 재산을 다 뺏은거나 한 가지래는 거지. 그 당시 때는 쫓겨났으면 나중에라도 차후에 돌아올 수 있게 해줘야 되는데 못 돌아오게 막았잖아. 강제로 내쫓고 강제로 못 들어오게 해고. 그렇게 해고선 그 땅을 국방부가 자기네 땅으로, 일본 사람이 일본 땅으로 다 해 놓은 거야. 그러니깐은 국유지로 되 있잖아. 그러니까 해방되기, 해방 되서 이승만 박사가 50년도에 그 6·25 나기 바로 직전에 귀속재산 처리법 있어가지고.

2. 代土; 토지를 수용당한 사람이 수용토지 반경 20킬로미터 등 인근 허가구역 안에서 같은 종류의 토지를 구입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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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 예예. 한 : 우리 그거를 하라고 그랬어. 하라고 그랬는데 그 당시 때는 이 건축이 가옥대장이 없잖아. 이 가옥 번호는 있되, 세금은 받아먹을 라고 그거는 있는데, 건축과가 없잖아. 우리나라가. 동사무소하고 인천 부 밖에 없기 때문에 다 무허가 집이래. 그르기 때문에 가옥에 대한 그 건축 대장도 없고, 고거에 대한 것도 없고 그러니까 땅이 한 필지면 그 필지대로 등기를 내라 그랬데. 그러고 임야나 밭이나 그런 거. 그랬는데 여기는 그냥 이렇게 일곱 줄로 해서 짓고 살라고 일본사람이 그렇게 해 줬대요. 해서 일곱 줄로 짓고 살았는데, 그거를 귀속재산처리부에서 할래니까, 그때도 있는 사람이 있고 돈이 없는 사람이 있자나. 그러니까는 한필지로만 하려니까 세 번 회의를 하다가 바로 6·25가 터진 거야. 그래서 못했어. 그래서. 표 : 그 상황에서. 한 : 응, 그래서 못한 거야. 그러고 나서 63년도 되니까 귀속재산 처리법이 있었어. 귀속처리재산법이 또 있었는데(원주민들의 기억으로 재구성한 마을 지도를 꺼내 보여주신다.) 그때 이게 월미산이여. 그때 인제 이게 하인천이고. 귀속재산처리법이 또 있었는데, 그 때는 미군이 들어가 있으니까, 우리가 못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법을 찾지를 못한 거야. 그래서 억울한 거야. 그러고서는 미군이 철수 하자마자 군인이 들어왔잖아. 군인이 들어오면서 자기 땅으로 해놓은 거야. 그래서 여기를 보면은 뭐라고 썼냐면은, 저거가 쓰여 있어. 관제부에서 떼어온 거 보면은 응······ 제 2연대 부에서 따왔거든? 이기 뭐라고 썼냐면은. 여기 분명히 국방부에서 미군으로부터 인수 받은 여기에 보면은 ‘관청에 불명의 재산을 보전등기 필요하고 재산관리를 잘해라’ 그랬다구. 그러면 이거 떼어보면 다 보존등기로 되 있어. 보존등기로. 근데 보존등기 있으면 자기 네가 맡아서 보관한대는 거 아냐?보존이 뭐야?그렇게 허고 있다가 인천시에다 팔아먹은 거야, 2001년도에. 그러니까 우리 재산을 말하자면 뺏긴 거여. 유 : 저기 어디 어디 살았대는 거, 이렇게 그려놓은 거 있어. 한 : 거기 없어. 여기있어. 여기는 월미도. 이거 대토가 뭐냐 면은. 맨 처음에는 여기였었고 여기는 지금 이거 아니야 이거. 여기는 인제 그 당시 때 쪼금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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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를 이쪽으로 옮겨줬어. 표 : 아. 아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한 : 응 요쪽에 있던 걸 일로 옮겨줬어. 그래서 본적 주소 보면 다 이 주소로 되어있어. 이게 1904년도에 옮겨준 거야. 그랬다가 여기매서 이쪽으로 옮긴 게 42년도에 옮겨졌어. 표 : 다시 옮겼어요? 한 : 응 다시. 그러고 나서 3년 있다가 해방됐으니까. 그러고 다시 찾았는데 해방이 3년 있다 해방된 거야. 여기 와서 얼마 못 살았지. 해방 되고 6·25까지는 한 7년 살았나. 50년도에 6·25 났으니까 8년 살았네. 그렇게 된 거여. 그런데 이게 월미도 지도야. 유 : 그리고 미군들이 8·15 해방 이후에 월미도에서 살았어. 표 : 아예? 유 : 응, 월미도에 있었어. 한 : 해방 되고 나서 45년도에 해방되고 나서. 경비대가 들어와서 살았어. 유 : 월미도에 살았드랬어. 표 : 월미도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겠네요? 유 : 그렇지. 거기에 있던 병사가 이 6·25 때. 한 : 같이 들어온거야. 맥아더랑. 유 : 여기 들어 와가지고 다 보고를 한 거야. 맥아다 장군한테 보고를 한 건데. 한 : 이게 집 이름이야. 유 : 맥아더 장군한테 보고를 했는데 맥아더 장군이 인제 처음에는. 한 : 지금 이 길이 옛날 길하고 틀린 게 없어 하나도, 똑같에. 유 : 그렇게 되. 우리 집이 여기 위에 있잖어. 한 : 여잖아 여기. 여기가 해군 경비대잖아. 경비대면 이게이게 나오잖아 사진이. 여 봐. 동네다고 해군 경비대 그림은 안 그렸지만, 이게 나오잖아 이게 동네고 이거. 요거 가까이 있는 집은 안탔다는 거야. 유 : 우리 집 위에가 그 해방 이후에 미군 장교 식당이 있었어. 미군 장교 식당 있었드래가지고, 고 밑에는 먼저 저기 군인들 살았, 있던데 있잖아. 거기에 인제 쫄병들은 거기에 있고 장교 식당은 우리 집 위에가 있었어. 산 중턱에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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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가지고 그 거기에서 저기 헌 거지. 그러니까 그 첩보대로 들어온 저기가 8·15 때 거기에 들어왔던 사람이 첩보를 하고, 저 산 중턱, 동쪽 저 중턱 쪽으로는 중턱 위로, 응?위쪽으로는 인민군이 약 400명이 있고 동네에는 민간인이 약 600명이 있다. 표 : 그러니까 인민군이 같이 있었어요? 유 : 인민군은 그렇지. 한 : 아니, 6·25 나서. 표 : 6·25 나고? 유 : 응 저 낙동강에서 1·4후퇴 때 내리왔다 올라갔다 그랬을 적에. 그래가지고 인민군은 약, 왜 약 400명이 있느냐 면은, 낙동강에서 패 해가지고 올라오다가 딴 데로 저기 한강다리 끊고 거기에 딴 데로 갈 데가 없으니까 인천으로 내려왔는데, 인천엘 와서 약 400명이 있을려니까는 산이고 어디고 나무가 없고 뻘거숭이니까 비행기 지나가면 다 보이게 된다는 얘기야. 그러니까 가만히 보니까 월미도가 그냥 아주 무상하고 나무가 빽빽하고 이렇게 모로 지나 댕겼어, 그 전에는. 표 : 나무가 너무 많아서요? 유 : 응 너무 많아서. 그 숲이 있고. 그래가지고 거기 들어오면 몰르거덩. 그러니까 낙동강에서 배에서 올라온 그 인민군들이 약 400명이 거기에 들어온 거야. 그래가지고 그 전에 뭐야 저 장교 식당에 있는 식당. 그 그것이 이제 반인가?그렇게 헐렸거덩?헐리고 조금 남았어. 거기에서 임시 있다가 난중에는 우리 집을 뺏었데잖아. 우리 집을 뺏어 가지고 우리 집에서 식당을 했데. 우리는 쫓겨나가지고 저기하고. 한 : 아저씨 수영장이요. 유 : 예. 한 : 수영장이, 풀장이 이쪽에 있었어요?저쪽 있었어요? 유 : 넘어서 저쪽. 한 : 풀장이요? 유 : 예. 한 : 그러면 또 모래사장 수영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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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모래사장 수영장이 없고. 그 저 넘어가서. 모래사장은 그 아예. 한 : 이거 아니에요 이거?지금 배있는데?여기 배있는데(사진 가르키며). 유 : 배 있는 데가 아니에요. 요 쪽으로 요쪽으로 돌아와서 거기에 모래사장이 있고. 그리고 여 배 있는 데서 쪼끔 요쪽으로 돌아가서. 돌아가서 거기에 풀장이 있었어. 한 : 풀장이에요? 유 : 그래가지고 저 뭐에요. 물 끓이고 저기 뭐 할 때(조탕을 말씀하시는 듯 하다). 한 : 그럴 때 이 풀장이 이쪽이에요 저쪽이에요?저쪽이에요? 유 : 이쪽이에요. 한 : 이쪽 방향인 거 에요? 유 : 예. 이렇게 보지 않고. 그러니까 저 등대 있잖아 요 등대. 한 : 이게 지금 있잖아 요. 지금 이게 이게. 유 : 등대요 등대. 한 : 여기가 어디에요 여기가. 표 : 여긴 해수욕장? 유 : 그러네 맞네. 이게 해수욕장이네. 한 : 그게 이쪽 방향이냐, 저쪽 방향이냐 이거 묻는 거 에요 나는. 유 : 그러게 등대 있잖아요. 영종에서 이렇게 월미도 쪽으로 그전에 등대가. 한 : 등대가 여기 없죠, 저쪽에 산꼭대기 에 있지. 유 : 아니, 꼭대기 있는 거 말고 그 바다에 있는 등대 있죠. 한 : 저기 앞 바다에 등대 있는 거요? 유 : 예. 한 : 지금 현재 저 바닷가에 있는 거? 유 : 예 그거 하고 이렇게 거반 맞보게 되 있어요. 한 : 뭐가요. 유 : 풀장이. 한 : 풀장이. 그러면 풀장은 저쪽에 있는거네. 저 문화의 거리 있는 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네. 유 : 예예. 한 : 그러면 이제 모래수영장은 이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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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더 돌아가서. 쪼꼼. 한 : 그러니까 이쪽 방향은 아니에요? 유 : 예. 한 : 그냥 다 그쪽이구만. 풀장이든 모래 저기든. 표 : 월미도가 살긴 되게 좋아 보여요, 좋았죠. 한 : 응. 유 : 우리나라에서 거기가 공원지야. 유원지. 증말 지금 말은. 그 전에 공원이라 그러고. 한 : 이거, 이거 기찻길 놓기 때문에. 유 : 부산서도 거기 놀러왔어. 한 : 원주민을 저 쪽으로 옮겨 준거야. 저 쪽으로. 그랬다가 다실 또 여길 매립한다고 거기 돌산 팬다고 다시 이쪽으로 또 옮긴 거여. 이게 철로여 철로. 군사 물길 뭐 한다고. 이거. 이게, 이게 철로여. 이게 인제 나중에 돌 이거 길이 된 거지. 표 : 이거를. 유 : 이게 지금 길이!길 난거, 저쪽으로 그게 다리야 월미 다리(웃음). 한 : 그렇게 얘기하면 지금 길인데 그게 전에는 이거였다는 거야. 이게. 표 : 아, 철교. 한 : 응, 철교. 유 : 그건 이조 때, 이조 때 이렇게 된 거고. 이조 때 징검다리야. 징검다리로 됐고. 한 : 그러고 고 다음에는 이렇게 된 거야. 그래서 이걸 하느라고 옮겨 준거고. 유 : 일본 저기가 들어 와 가지고 다리를 놓은 거야. 다리를 놔가지고. 차가 트럭이 이렇게 두개가 왔다, 갔다 하고. 고거 넓이로 인도로가 있고 옆에는 물에 빠지지 말라고 이렇게 난간을, 저기를 했지. 돌로다가 이렇게 해서 모냥(모양) 내서 구멍 뚫어가지고 쇠사슬 있잖아 요러케. 고걸로 요로케 두 줄로 이렇게 해서 빠지지 말라고. 표 : 다 기억이 나세요 할아버지? 유 : 그럼. 한 : 나이가 나보다 더 잡쉈으니까. 유 : 내가 뭐야 10살 때 6·25 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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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그러니까 잘 아시지. 유 : 숙현 학교 3 3학년. 표 : 숙현 학교? 유 : 숙현 학교 그 전에 저기에 있었잖아. 표 : 그럼 할아버지 폭격 때. 유 : 인중 학교 바로 밑에. 표 : 폭격 때 계셨어요? 유 : 폭격 때 있지. 한 : 지금 이 할아버지들은 다 돌아가셨지, 지금. 표 : 아이고. 한 : 다 돌아가셨어. 이 분들이 다. 농성하면서 다 돌아가셨어. 표 : 정정 하시네요 할아버지는. 유 : 그래도 내가 나이가 제일 적은데(웃음). 표 : 그래요? 한 : 그 때 당시에는 제일 적지. 이분만 한 분만 살아 80살. 이 분도 돌아가고 작년에, 이분도 작년에 돌아가고. 이분은 그끄러께 4 돌아가고. 표 : 그저께요? 유 : 그끄러께. 한 : 아냐 작년 그르께 그끄러께야 그러니까는. 유 : 3년 됐네. 그러면. 한 : 지금 2013년 이죠. 작년 12년도에 석자 아저씨 돌아갔지. 11년도 12년?11년도 12년도?3년은 됐나봐. 2009년에 돌아 갔나봐. 다 돌아갔어. 우리 아저씨도 여기 무슨 농성장 지키고 있다가 지금은 기저귀 차 있잖아. 표 : 아프세요? 한 : 기저귀 차고 있어. 지금 기저귀. 유 : (한숨)

3.현재 인천 숙현초등학교, 1919. 3. 15. 인천 공립 심상소학교 설립인가 개교. 4.그끄러께; 그러께의 바로 전 해. 올해로부터 3년 전의 해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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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지금 이 양반도 다 옛날 사람 됐으니 어떡하면 좋아. 그래서 어쨌든 난 고생한 건 말도 못하고 이거 한다고 돌아다니고 집안일도 안 보고, 대충 밥이나 해먹고 먼지가 뿌옇구, 그냥 화장은 해야 나가잖아. 그러고 돌아다녔어. 표 : 2005년 부터? 한 : 2005년 부터. 아주 그냥 날마다 그냥 출근하다시피 한 거야. 누구라도 붙들고 사람만 보면 이 사람 붙들고 얘기하면 될까. 이 사람 붙들고 얘기하면 될까. 그냥 뭐, 뭐. 유 : 고생 많았어. 한 : 그냥 시의원이고 구의원이고. 유 : 지금 현재까지 계속 그랬지. 한 : 그냥 뭐 그냥 사람 붙들고 그냥 좀 도와달라고 그냥. 첨에는 인제 저기다가 걸었지. 철거민에다가. 철거민에다가 전화를 해서 우릴 안 들어주니까. 그랬더니 어떻게 된 거냐 6·25때 이렇게, 이렇게 됐다. 이렇게 해서 못 들어갔다. 표 : 선생님, 그러면 2005년부터 인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신 거 에요? 한 : 그러니까 인제 98년도서부터 우리 지 아버지 친구 세분이 이제 이거를 하기 시작 한거야. 다시 시작을. 63년 도에도 이거 봐봐. 동회장이 직인을 찍어줬어요 이렇게. 표 : 52년 도부터 계속 민원을 넣고 했으면은. 한 : 그럼 으응. 그랬는데 미군이 철수하면 해준다는 거였지. 그런데 인제 미군이 철수를 않고 철수를 하고 나니까 국방부가 들어온 거 아냐? 국방부가 들어와서 이 공원이 나간다 그러니까 98년도에 귀향대책위원회를 맨든거지. 그래가지고 우리 제 아버지 친구들이랑 한 거지. 하다 보니까 하나는 장암 수술을 하고 한 사람은 직장을 다니게 됐어. 그러니까 할 사람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인제 회의를 했어. 이거를 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 어떻하믄 좋으냐 그랬더니 63년 도에, 아니 저기, 저기 2003년도에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어떤 분이 그래도 끝까지 해야지 여기 까지 오던 거 하다 마냐, 해야지. 그래 가지고 어떤 분을 회장을 시키고 부회장을 시키고 나는 인제 총무를 시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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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보니까 그 회장 시킨 그 양반이 민원으로 국방부에다가 넣고 뭐 인천시에 넣구, 어디다 넣구, 그거를 또 하는 거야. 근데 먼저 98년 도에 그거 다 했는데 또 그거를 또 하니까. 표 : 또 반복을 하니까. 한 : 또 반복을 하니까. 그래서 인제 인천연대가 아주 들어가라 여기매를. 2004년도에들어 가라니까 안 들어간대 이제 자기는 안한대 이거 사표 낸대. 사표 낸다고 못한다고 그러니까 2004년도에 2005년도에 회의를, 2004년도에 1년 그 사람이 했어. 그랬다가 2005년도에 회의를 열었어. 그래가지고 인제 내가 회장이 된 거야. 이사람 저 사람 시켰는데 다 안한대. 안한다고 그러니깐 인제 내가 된 거지. 그래가지고. 표 : 며느리셨는데도. 유 : 누가 할 사람이 있냐고 내가 그랬지. 그때(웃음). 한 : 그래가지고 하기 시작을 해가지고 내가 그때는 자료를 다 찾으러 다닌거야. 이 자료를 안 찾고는 근거가 없잖아. 그래서 자료 찾으러 다니느라고 한 2005년도는 그것 때문에 돌아다녔고. 2006년도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제 시청 다니고 그러니까 특별법이 되야 된다 이거는. 그래가지고 인제 국회의원 만나가지고 특별법 해달라 그러구. 표 : 처음부터는 국회의원 만나지는 못하셨어요? 한 : 응, 2006년도에 인제······. 표 : 진짜 맨땅에 헤딩하시는 그런 식으로 하셨을 거 같아요. 한 : 응. 그러니까 맨 처음에는 인제 자료를 찾고 그 시민 단체한테 얘기를 해서 억울하다 이거 이랬더니, 그러냐 그래가지고 여기 2004년도에 농성을 하고 신문에도 내기 시작을 하고 이제 그때서부터 조금씩 이제 알아지기 시작했지. 유 : 이게 원칙은 첨에 시작된 것이 내가 진짜 젊었을 적에 시작이 된 거야. 큰 형 서껀 그 저기를 한 것은 그 옛날에 한 거지. 한 : 경원이 아저씨도 했다고 그러더라고 개인적으로도. 유 : 저기 하 인천, 하 인천 그 저 진 누구야 그······. 한 : 진순옥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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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응 거기가 서무 보구 그때 누가 저기를 했는지 그렇게 해가지고 했는데. 큰 형이 그 전에는 다녔드랬다고요. 큰 형이 다니고. 한 : 이름이 뭐에요? 유 : 에? 한 : 이름이 뭐야? 유 : 유흥수. 한 : 그러면은 저기메 나와있어요? 유 : 뭐요? 한 : 여기에 나와 있어야지. 다녔으면은. 여기 진정서에. 유 : 그 전에 옛날에. 한 : 이게 옛날이에요. 52년 도에. 유 : 거기에 아마 있을 거에요. 한 : 그러면 여기에 들어가 있어야 되. 유 : 그래 가지고. 한 : 누구야 김태석이 저기 영숙이 아부지 이름은 여기 들어가 있드라고. 우리는 시아버지하고 작은 집하고 들어가 있고. 이게 52년도 꺼 거든. 유 : 아까 그 낡은. 한 : 응 아까 꺼. 그러면 여기. 유 : 큰 형이 다니다가. 한 : 이게 유 누구야 유승호야 누구야 이건 누구야. 정?(1952년 진정서 서명한 목록을 확인하심). 유 : 아닌데. 한 : 아니, 이건 차동근 이, 우리 시아버지 이름이야. 유 : 이건 처음 쓴······. 한 : 차동근이. 차동관이. 큰 집, 작은 집. 유 : 없는데. 없어. 한 : 없어. 이게 첨서부터 한 사람들이야 이게. 이게 유씬데. 유 : 종이야 유야 이게 나는 안 보이네. 한 : 이게 용자 아니야?용근이?정용근?정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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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 정용구 맞는 것 같은데요. 얘는 잘 못 알아보겠어요. 한 : 얘는 정씨 같애. 유 : 그때 당시에 봐가지고 저기를 했더랬고. 그래서 인제 학적부를 우리 저기 할 때 학적부 가져오라고 그러지 않았어요?그래 신흥학교 가니 깐은 신흥학교에 인제 내 저기에는 불타서 없고 숙현 학교는. 누님이 다니는 이제 신흥학교에 가니 깐은 학적부가 있드라고. 학적부가 있는데, 아주 쥐가 저기 했는지 그냥 저 좀 먹고 그냥 똥 싸고 뭐 그래가지고 아주 드럽더라고. 그래 그거를 폐기를 시켰어. 난중에 폐기를 폐기를 시키고 두 번째 떼러 가니 깐은 누가 그런 줄 알았어?그거를 갖다가 저기 해서 복사해서 딴 데 놨으면은 괜찮은데. 표 : 없다구 폐기했으니까. 유 : 또 가져오라고 그러는데 인제 갖다가 저기해서 다 저기 했다고. 또 가져오라고 그러는데 가니깐 폐기시켰다고 그러잖아. 그러니까 어디 가있어야지. 인제 나도 없고 우리 저 숙현 학교는 불타 가지고 없고. 그래 가지고 헐 수 없이 이 말로만 그렇게 저기 하다가. 난중에 진순옥씨 뭐 하는데 거기 와서 이렇게 뒤지니까 작은 형 학적부가 나오더라고(웃음). 뭐야 저. 한 : 이게 그동안 내가 활동한 저거고 그 다음에 또. 유 : 그래 작은형 학적부가 나오는 데 그거이 큰 형이 갔다 낸 거라고(웃음). 그래가지고 그 학적부 그걸 인제 복사를 했지. 복사를 해놓고 또 그럴까봐. (웃음) 또 저기 할까봐 복사를 해놨지. 표 : 여기는 맨날 나와 계시는 거 에요? 유 : 아니지. 인제 돌아가면서. 어떻게 이거 혼자 해. 돌아가면서 하구. 표 : 되게 몇 번에······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나오세요? 유 : 여기 이십······ 지금 현재는 다 저기하고 지금 22명이니까. 아픈 사람도 있구······ 지금 처음에는 뭐야. 32명 36명인가 38명인가 있다가. 점점 더 줄어들어가지고 이제 (웃음) 또 그리구 포기하는 사람도 있구. 포기하는 사람들은 올 수 있어?그 사람보고 하라고. 지금 그 전에 이 저기를 해가지고 거 중구청에 가가지고 그 저기를 띠어 봤그덩? 표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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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근데 지금은 안 띠(떼)어져. 거 어따가 감췄는지 감췄어. 그 처음에. 표 : 이 뭔가 서류 같은 거를, 그 살았던 흔적을 안 띠어 준다는 거 에요? 한 : 안 띠어줘. 유 : 인제 안 떼줘. 한 : 없어 못 띠어. 유 : 싹 감춰 버렸어. 한 : 없다 그러고 안 줘. 표 : 그게 그러면 안 되는데. 한 : 근데 왜냐면은 법원에서 이번에도 그래. 법원에서 재판관이 그거를 띠어주셔 이렇게 하면은 띠어줄 텐데 우리보고 해 와라 그러니까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해 달라 그러니까 없다고 그러고 안줘. 유 : 있는 걸 어떻게 알았냐 하면은, 처음에 이거 할 적에 저기 땅 문서 있는 사람 땅 문서래던가 거기가 있으면 있는 뭐 근거 저 서류를 가져와라. 그러니까 내가 저 수원에 갔었다구. 수원에 가가지고 수원에 그 전에 거기에 저기가 있었거든? 거기 가서 이걸 다 뒤져가지고 저기를 하다가 어떻게 하다가 인제 하나를 찾아가지고 고걸 복사해가지고 왔었지. 그래 복사해가지고 와가지고 그걸 저기 하니깐 이거 가지고 안된다. 그래가지고 중구청에 들어가 가지고 중구청 그 저기 보고 우리 월미도 그 전에 살았던 그 저기를 좀 보려고 그런다고 좀 어떻게 열람할 수 있냐고 그러니깐은 컴퓨터로 이렇게, 이렇게 하더니. 표 : 옛날에는 그게. 유 : 컴퓨터로 그러더니 컴퓨터에서 딱 보여주더라고. 그 저기하는데 컴퓨터에 우리 집 요로케 있고 그 집 있는 자리 있고, 내 이름이 써 있고 이렇게 요렇게 누구 내 집 누구. 한 : 아이고 아저씬 거짓말이야. 아저씨 이름이 거기 왜 들어가 있어!옛날에 애기인데. 유 : 아 저 그러니까, 제 아버지 이름이. 한 : 그럼~ 유 : 그렇게 해가지고 쭉 있더라고. 컴퓨터에 그렇게 있어가지고 저기를 했는데 보니깐은 집은 거기 있다고. 그걸 그 당시에 하나를 떼어달라고, 복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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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달라고 그랬으면 좋은 건데. 복사 해달란 소리를 안 하고 보기만 하고 저기 했는데 고 다음에 가서 아 복사 해오라고 그래서 가서 복사 할려고 가서 얘기했는데 없대. 아니 먼 저번에 뵈주지 않았냐 하니깐 모른데. 이렇게 벌써 말이 나와. 한 : 왜냐면 월미도 주민들이 자기 살던 그거를 떼어 와라 그랬거든. 그랬더니 다 가서 등본 떼고 달라고 그러니까 없다고 다들. 짤라 버리는 거야. 유 : 내가 거기에 그 봤다 그러니깐은 다 간 거야. 표 : 2005년부터 시작하셔가지고 계속. 한 : 지금까지 계속 하는 거야 아직까지. 8년째 표 : 지루하고 힘드셨을 텐데. 한 : 힘들죠. 힘든데 내가 내 개인일 같으면 안하겠어. 내 개인일 같으면 안하겠는데 나를 바라보고 많은 회원들이 그거를 노인네들이 그냥 마지막에 소원으로 알고 그렇게 지금까지 회비내고 이렇게 농성하고 이뤄온 그거를 생각하면은 내가 힘들어도 이거 끝까지 싸워서 이분들에게 그 한을 좀 풀어줘야 되겠다, 그런 마음 없이는 이걸 할 수가 없어. 표 : 선생님이 맡게 된 게 할 사람이 없어가지고, 당사자도 아니고 친 자식도 아니고 며느리가 어떻게 이렇게 된 거잖아요. 근데 이게 지금은 인제 중심이 되신 거잖아요. 그리고 사명감을 갖고 내가 이렇게 내가 안 하면은 할 사람도 없고.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냐. 그리고 어르신들의 한을 풀어줘야지 이게 되게 삶이라는 게. 되게 참(웃음). 한 : (웃음) 그래. 왜냐면 또 회원들이 어르신들이 연세가 많아서 따라주지도 못해. 내가 “어디 좀 같이 가십 시다” 그러면, “못가. 혼자 갔다 와”, 이래. 그러니까 그게 더 속상한 거야 나는. 응. 더 힘든 거야. 유 : 걸음도 제대로 못 걸어. 한 : 어디 좀 같이 좀 갈만한 사람한테 전화를 하는 거지 좀. 그러면은 이 아저씨도 지금 벌어 먹어야 되잖아. 그러고 또 병 걸려 있고. 이러니까 어디 좀 국회에 좀 같이 갑시다. 시청에 좀 같이 갑시다. 그러면 다~ 못 간대. 다~ 못 간대. 그러니까 내가 아주 거기에 내가 힘든 거야 내가 이게. 왜 이걸 맡아가지고 이 고생을 하나. 알아주지도 못하는 거를 응?이렇게 하는 거를 갖다가 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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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나······. 표 : 근데 지금 8년 째 하고 계시니까. 한 : 으응 그러니까 내가 그냥 우리 자식들허고 밥 한 끼도 못 먹고. 내가 어린이날 어버이 날 우리 아들이 밥 먹자는 것도 내가 “야 바쁘니까 못 먹고 다음에 먹자” 그러는데, 그 달 열흘 있다가 죽었잖아. 표 : 어디가 아프셔서? 한 : 아니 사고로. 표 : 교통사고로요? 한 : 교통사고로. 그래서 내가 다큐멘터리 나왔어, OBS에. 내가 월미도 어느 할머니의 소원인가. 나왔나. 그렇게 나왔어. 그거 보면은 내가 그거를 씨디로, 이렇게 해서 보는데 그거를 갖고 왔길래. 다시 이렇게 재방송으로 봤어. 이렇게 보는 데 이렇게 우는 게 아니라 내가 그거를 보는 데 나도 몰르게 이렇게 눈물이 흘리고 있더라고 내가 보면서. 그냥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니까 내가. 그러니까 우리 큰동서애도 그거 보면서 울었어. 그러니까 그거 보고. 그러면서 내가 월미도 그······ 노점상을 해 내가. 장사를 해. 표 : 어디서. 한 : 저기 바이킹 앞에서. 그 날도 9월 15일. 그거 끝나고 나서 바로 또 장사 나갔어. 그러면서 그런 장사 하는 거 까지 다 찍었어. 그래가지고 이렇게 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리더라고. 내가 보니까 우리 아들하고 밥 한 끼도 못 먹고. 애들이라고 만나서 얘기도 못하고. 내가 힘든 얘기 애들한테 한 마디도 안했어. 이런 얘기도. 그런데 하여간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회원들이 때로는 내 마음을 몰라. 유 : 일 안 할 때는 나도 쫓아 당겼는데. 이게 일 하고 나니깐은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사느라고······. 한 : 맨 처음에는 또 쫓아도 다니시고 그랬지. 근데 지금은 점점 연세들이 더 깊잖아. 그러구 그러니까 지금 이 아저씨가 그래도 젤 나신거지. 그러니까 일 다니지. 딴 사람들은 일도 못 다녀. 표 : 근데 선생님도 나이를 드시잖아요. 한 : 나도 나이 많지. 칠십이야. 근데 내가 그때 육십인데 우리 그 위원장이 했던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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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5살 이라 늙어서 못한다 이거. 뭐 생각을 하려고 해도 생각했다가도 금새 할래면 말을 못 하겠다 이랬거덩?그랬는데 그 아저씨는 고대로 하나도 안 늙었어. ○○이 아저씨요. 근데 나는 그 아저씨보다 더 늙었어. 이거 하면서. 유 : 아, 인제는 잊어버려(웃음). 한 : 이거 하면서 내가 더 늙었어 아주 그냥. 왜냐면은 이제 바깥일도 힘들고. 집안일도 힘들고 또 회원들도 협조를 안 해주고······ 해주고 싶어도 못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냥 죽으나 사나 나 혼자 뛰어야 되는 거야. 총무하고 둘인데, 총무도 며느리야. 총무도 며느린데 이거 며느리 없으면 이거 힘들어 못해. 그러니까. 그러고 이 어르신내들이 다 착해 빠져가지고 어디 가서 큰 소리도 못해. 유 : 남한테 나쁜 소리는 안하고 살아 왔으니까. 한 : 그러고 이게 왜 힘들고 어려우냐 면은 이 동네 살던 사람이 몽땅 여기 와서 살 면은 이게 일이 되. 그런데 저기 와서 몽땅 살았는데. 저기서 또 이 해양 이거 뭐 한다고 철거시켜가지고 다 인천 시내로 뿔뿔이 헤졌어(헤어졌어). 유 : 인천시내만? ? 한 : 그러니까 이 덩어리가 없는 거야 지역구에. 유 : 전라도, 전라도. 제주도 뭐(웃음). 표 : 근데 사람들이 옮겨갔는데 고거를 자기네들이 뭐 한다고 해서 나라에서 이거 할꺼니까 여길로 가. 해서 여길로 갔다가 이거 할 거니까 또 여길로 가. 이래서 또 간 거 잖아요. 한 : 응 그러고 6·25가 났지. 표 : 근데 났다가 나중에, 또. 한 : 여기서 살았지. 표 : 또 여기서 인제 또 사람들 뭐 할 거라고 해서 또 나간 거 에요? 한 : 또 쫓겨났어. 그러니까 개개인으로 쫓겨 난거야 그거는. 그거는 인제 얼음공장에서 살아서 판자촌으로 살았더랬자나 근데 인제 여기 입구 들어오는 커브 돌잖아요. 표 : 네네. 한 : 거기매서 판자촌 치루고 살았어. 그런데 지금 철조망 치고 지금 이거, 이거 해양 뭐 하잖아요. 그러니까 또 쫓겨난 거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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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얼음공장 있잖아요 얼음공장에. 그 개인 누가 저기하는 사람이 그걸 가지고 있었어. 표 : 얼음 공장 주인이 있었어요? 유 : 어. 그랬다가 그 사람이 들어와서 그걸 차지하면서 다 내쫓을 거 아니야? 표 : 또 나가라. 유 : 응. 그래서 얼음 공장에 나가래서 나왔어 사람들이. 한 : 나가가지고 고기서 판자촌 치루고 살은 거야. 유 : 그러니까 판자촌을 만든 거야. 그 폭격해서 인제 집 부스러지고 그런데 가서 인제. 한 : 여기서 판자촌을 치루고 살았어. 유 : 판떼기 그런 거를 이제 서까래 뭐 그런 거를 다 뽑아다 갔다가. 한 : 근데 이게 공터잖아. 유 : 판자집을 만들은 거야. 판자집을 쭈~욱 만들었는데, 딴 데로 피난 가있다가 또 거기에 저기 하니깐 집이 들어 갈려고 여길로 와 본거야. 와보니까 고기서 판자집으로 다 짓고 살거덩?그러니까 난중에 온 사람은 다 판때기고 뭐고 다 갖다가 저기 했으니깐은 없잖아?근데 서까래만 몇 개 저길 뽑아다가 응? 뽑아다가 인제. 한 : 아니 그 얘기는 산 얘기고. 여기에 살았는데 이게 지금 이 바다잖아요. 여기에 지금 저거가 들어온 거 아니야 이거. 응?이거 지금. 공장 들어왔잖아. 표 : 네네. 유 : 아니 그걸 지금 딴 거를 얘기한 거고. 한 : 그러니까 여기 사람들을 내 쫓은 거야. 내쫓으니까는 80년도까지 여기서 살았어. 살았는데. 표 : 그 이후에. 한 : 그 이후에 또 여기는 인제 뭐 한다고 그래서 내 쫓은 거야. 뿔뿔히 헤졌어(헤어졌어). 유 : 저기에······. 한 : 내 얘기는요, 잠깐만요. 유 : 무시로 조각. 가만있어 봐요 가만있어봐. 무시로 조각을 갔다가 해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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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으로다가 해가지고 무시로 조각. 이렇게 하면은 들썩 하고 기어 들어가서 거기서 살고 그렇게 살았 드랬거든? 그러니깐은 미군들이 그 길로 이렇게 지나니깐은 길 옆으로 그냥 쭈~욱 있으니깐은 영 그지떼(거지떼) 보기가 싫거든?그러니깐은 시에 들어가 가지고 다 철수시키라고 말이야. 저 더러운 저기는 다 철수시키라고. 집 지은 거는 내버려두는데 그 저기는 철수 시키라고 그러니깐은. 아 이 저 장골, 아주 그냥 등치들만 보내가지고 쇠스랑 가지고 와서 찍어서 흔들어서 이렇게 하는 거야, 다. 그때 그래가지고 거기에 무시로 속에서 살던 그 저기가 다 그때 나와가꼬 각각 헤진거야. 그때 쬐께(쫓겨) 난거야. 그리고 판자로 살던 사람들은 거기서 14년간을 더 살았어. 14년간을 살다가 이 시에서 그거를 뭐 쓴다고 그래. 거기를 저기 허고선, 저기 어디야 송현동. 고 산꼭대기 저기 그 쪽으로 다가 거기다가 땅을 줘가지고 집 지어서 살았어요, 그 사람들은. 땅을 줘서. 근데 그냥 쫓겨난 사람들은 그런 거조차도 없어. 그냥 뿔뿔히 다 헤어졌어. 그렇게 됐어. 한 : 판자촌을 치루고 살았는데 이 아저씨는 판자촌을 짓고 못 살았나봐 쫓겨났었나봐. 유 : 쫓겨났어. 한 : 여기 판자촌 치루고 사는 사람은 요기 동부건설 이런 거 다 생겼잖아요. 여기매가 저것도 있어서. 어촌계. 저기 연암부지에 고거 뭐지?어시장 여기 어시장도 있었다구. 유 : 많았어. 한 : 근데 인제 다 내쫓았어. 그러니까 왜 내가 일이 안 되는 거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거는 그거하고는 상관없는 거에요. 동네가 한 부락이 몇 십 명 이라던지, 한때 부락으로 있으면 지역구 국회의원이든, 지역구 구청장이든, 시장이든 한 군데 있으면 이 사건을 가지고 일을 하는데 이 사람들이 다 뿔뿔이 헤어졌단 말이야. 남구에도 살고 뭐 중구에도 살구 남동구에도 살고 연수구에도 살고 뿔뿔이 헤어지니깐 지역구 국회의원이 나서지를 않아. 자기 표밭이 없잖아. 단체장 구청장이고 안 나서는 거야. 응? 내가 그래서 그게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데, 인제 아저씨는 살아온 얘기를 하는데. 왜냐면은 여기 매에도 몇 십 명이 한 떼가 몰려서 살아서 몰려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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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을 당한다 그러고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하면은 문제가 해결이 되기 쉬운데, 뿔뿔히 헤어져서 각자로 있으니까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안 나서. 표 : 그래도 여기 이 ○○○. 한 : ○○○ 의원님이 내가 너무 고맙고 착한 건 그 날 얘기 들었죠?이 분은 여기매 농성장에 아무도 안 와봐. 이 양반은 몇 번 오구. 그 저기 지금 위령제도 지금 몇 년째 오시는 거야. 몇 년째 오시고 이 양반은 진짜 됨됨이가 있어. 유 : 국회에도 한 번. 한 : 내가 이거 발의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18대는 국회의원이 안 됐었자나. 그때 시 당위원장이었어 민주당. 근데 전화를 하면요 꼭 받아요. 만약에 못 받잖아?그러면 문자 메세지 회의 중으로 예약 해 놨나봐. 금새 회의 중이 되서 못 받는다고 문자를 와. 그러면 어떤 때 이렇게 문자가 안 오더라도 몇 시간 이따가라도 꼭 전화를 해줘. 난 이 사람 전화 잘 받고, 못 받으면 이래서 못 받았다고 문자 메세지 하고, 그 이후에는 꼭 전화를 해줘. 나 이 그것처럼 고마운 게 없는 거야. 대개는 전화해서 안 받으면 고만이고 전화연락 안주잖아?친구들도. 근데 이 사람은 그게 아니더라고. 내가 우리 동창도 여기 왔는데, 이래서 가버렸어. 다섯 명이 왔는데, 세 명은 가버렸어. 여기에 관계, 유족에 관계없는 사람은 여기에 인제 식사하면 안 된다고 이러니까 세 명이 가버렸어. 표 : 전화 안하고요? 한 : 응. 그리고 두 명은 여기 있었구. 끝까지 참석을 하고. 그래서 내가 전화를 했어 미안하다고. 내가 미안할 건 없지만은 그래도 어쨌건 왔다가 밥도 못 먹고 그냥 갔잖아. 그래서 미안하다고. 안 받어. 또 안 받어. 그럼 안 받을 수도 있어. 그러면은 전화가 와야 될 거 아냐. 전화가 없어. 그러니까 내가 미안 한 게 아니라, 괘씸한 거야. 이게 사람의 본이 그게 예의가 아니지. 차라리 내가 그래서 미안해 끝까지 참석 못하고 와서 미안하다 던지, 해야 됐는데 이게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 그랬는데 전화도 없어. 틀려먹었어. 근데 이 내 문병호 위원님은 딴 거는 안 봤어. 그거에 대해서, 전화에 대해서 하면은 꼭 받고 못 받으면 연락주고 왜 저기 전화 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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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 저두 그러거든요 무슨 일 있으면 시청이나 이런데 전화해서 물어보면 뭐 알아보고 다시 전화 준다고 했는데 다 먹고 감감무소식이 되게 많잖아요. 사람들이 근데 그런 게 되게. 한 : 속상해. 표 : 속상하고 되게 기분 나쁘잖아요 그런데 나는 시민이고 그런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인데 저도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일들을 너무 많이 겪으셨을 거 같아요. 한 : 그렇지. 소외 당한 거 같고 겉으로는 좋은 척 하면서, 뒤로는 말하자면 구찮아하고 싫어하는 거 역력히 보이지 그러니까 이거 남자들은 못해. 한번 갔다가 (웃음) 안가는 거지. 표 : (웃음) 아이 거기 싫어해. 이러면서. 한 : 그렇지 안가는 거지. 드럽고 치사한 놈들. 안가. 근데 나는 그게 아니고. 이거를 성과를 이루어야 되잖아 이거를. 그러니까 안 되고 또 가고 또 가고 또 가고 계속 가니까 그냥. 앉았다 얘기하면 계속 얘기하고 몇 시간도 얘기하니까. 그러니까 녹지과 아주 몇 년을 발이 닿도록 다녔어. 근데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안 되는 거야 이게 아주. 표 : 원래 마지막까지 오면 그렇잖아요. 어떤 거든지 성과를 낼 때. 작게는 대학입시나 이런 거부터. 될 거 같은데 될 거 같은데. 한 : 안 되는 거지. 표 : 근데 그러다 되 잖아요. 한 : 응, 그래서 내가 이거 정부하고 싸운 다는 거는 인내야. 유 : 이거는 국가에서 원칙적으로는 국가에서 이기 책임 있는 거야. 한 : 인내심이 없으면은 이거 못해. 유 : 왜냐 하면은 이 저기가 미군이 와가지고 그 저 맥아더 장군한테 보고를 할 때, 민간인은 약 600명 처음에?인민군은 약 400명이 어디 지점에 있다, 이렇게 처음에 저기 했는데 두 번째는 민간인이고 뭐고 필요 없이 약 천명 있다, 할 적에는 어디서 해라하고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에 그렇게 보고를 한 거야. 우리, 우리 생각에?이게 뭐냐 하면은 이승만 대통령한테 벌써 승낙을 받았기 때문에 그 약 천명이 있다 하고 때려라! 한 : 아니 이런 소리는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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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그런 저기가 있는 거지. 한 : 미군이 이렇게 백성하고 공산군하고 섞여져 있는데 이걸 가려서 할 수가 없다. 인제에?그러니까 그러면 그냥 다 죽여라······. 유 : 그래. 때려서 다 죽여라. 한 : 그런 거래. 유 : 약 천명이 있다. 그렇게. 한 : 왜냐하면 공산군인지 국민인지 어떻게 알어. 그니까 이걸 못 하것다. 그러면 그냥 다 죽여라 이랬대. 이래가지고 그렇지 그걸 어떻게 하긋어. 유 : 그러니까 이것이 그 이승만 대통령이 그 저기가 나간 거 같애, 허락이. 한 : 허락하지 않으면 못 쏴요. 그러고 여기다가 삐라를 던지던지. 삐라를 보내던지. 몇 월 며칠 날. 그때 일본에는 히로시마에 폭격할 때 몇 월 며칠 날 이거 터트리니깐 도망가라고 그랬데잖아. 그러니까 도망간 사람은 살고 안 도망간 사람은 죽었데잖아. 여기도 말하자면은 여기 이렇게 할 테니까 민간인은 피신해라 이랬으면 아마 도망갔을 거야. 유 : 새벽에 그냥 그렇게. 한 : 근데 이제 자는 놈을 갔다가 디리 때렸으니 그냥,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라는 게 그게 날벼락이야. 그렇게 된 거고. 이게 인제 맨 처음에 녹지과에서 뭐라 그러느냐면 거기메 이게, 왜냐하면은 이게 공유 사업을 할 때에는 나라 땅이다 할지라도 이게 있대요. 그 건물 값하고 이사 비용은 준대. 표 : 예예. 한 : 근데 우리는 그 당시 때 폭격해 버리니 건물이 어딨어?그러니까 사진 있냐 이거야. 사진이 어딨어, 빨가벗고 나온 사람이 어딨냐?그랬는데 이게 사진이 나온 거야 이게(모아두신 사진 자료를 보여주시면서). 이거를 그냥 춘화원이야. 요정이야. 요릿집이야. 그니까 이거는 어디가나 다 있어 이게. 있는 거고 또 인제 아까 내가 그 동네 마을 있잖아. 표 : 네네. 한 : 인제 이게 미국에서 상륙하기 직전에 찍어놓은 거. 응?아까 내가 보여줬잖아. 그거가 나온 거야. 그러면 이거 값이라도 주겠다 인제 집값이라도. 그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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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당시 때 그러면 하꼬방 5 집을, 오막살이 집값을 주면 60년 동안 못 들어가 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줘야 될 거 아니야. 유 : 이게 다리 난간이야. 여기 있네 월미도 다리 난간. 표 : 아 아까 말씀하신. 유 : 응(웃음) 이건 축대고, 여긴 물이고. 한 : 그러니까 여기가 인제. 유 : 이 짝 너머로는 뭐냐 면은 차가 다녀. 이 차. 한 : 미군이고 여기니까 여기여 이렇게 되 있었어. 유 : 뻘이야. 뻘. 갯벌이야. 여기는 물이 항상 안 마르고. 한 : 그니까 여기는. 유 : 이짝에는 물이 말랐다가. 한 : 여기는 이만큼 뻘 이라고 그랬잖아 내가. 유 : 물이 말랐다가 인제 물이 들어오고. 한 : 여기는 고요했고. 여기가 요기여. 여기가 이 뻘이여. 표 : 아 이쪽이? 한 : 응. 집이 이렇게 있으니까. 유 : 저쪽이 여기고. 한 : 집이 이렇게 있는 거였거든 우리가 지금 이 집이야. 그러면 요쪽이 요쪽이고, 이쪽이 저쪽이야 저쪽, 이렇게. 이게 하 인천이니까. 하 인천이니까. 이게 뻘이고 이 쪽이 물 있는데구. 유 : 여기는 물이 항상 있는 데고. 한 : 여기는 인제 물이 항상 있는데 구. 유 : 이게 뻘, 갯벌 난간이야. 여기는 이게 갯벌 난거야. 이게 여기서 이거 갯벌나구······. 한 : 그래서 지금 요기를 매립해서 공장을 차린 거야 지금 이쪽에. 유 : 아니 이거는 저쪽 영종 쪽이야. 한 : 네?

5.하꼬방; 판잣집을 속되게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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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이거이 영종 쪽이에요. 한 : 아니에요 여기 지금 들어온 데잖아요, 하인천에서 들어오는 데잖아요. 유 : 아니 그러게 이거 물 아니에요 물. 한 : 네. 유 : 배가 여기 떠 있구 이건 갯벌이에요. 지금 요거 갯벌. 한 : 갯벌이에요. 유 : 이건 영종 쪽이구. 한 : 영종이 아니라 여기 지금 공장이라니까 공장. 유 : 아니 지금 다리 영종 쪽으로 다리 너머. 한 : 다리 너머? 유 : 이게 다리라니까. 다리 너메(너머) 갯벌난거 하구 다리 저쪽 너머. 한 : 그래요 이게 갯벌인데 지금 대한제분이구 뭐하고 이쪽에 다 있는 거 에요 지금. 유 : 예 그래요 지금. 한 : 이기 지금 이쪽이라니깐요. 유 : 맞아요 사료 공장서부터. 한 : 예, 다 있는 거 에요 이게. 영종 얘길 하시니까 내가 얘길 하는 거야. 유 : 영종 쪽이 인제 그 물이 난다, 그런거지. 한 : 이게 지금 저기 대한제분이 여깄고 한양 목제 무슨 한진회사가 다 여기 들어와 있는거여. 유 : 하얀 건 물이고. 표 : 선생님, 시집오신 다음에는 그 쪽에서 사신 거 에요?그 공장 많은 그 앞쪽? 한 : 아니 나는 인제 파주에서 우리 영감하고 살다가 일로 이사 왔지 인천으로. 맨 처음에 독쟁이로 이사 왔다가 또 여기 하인천 공원 밑에 고기서 살다가, 또 만석동에도 살다가 또 용현동에도 살다가 그랬다가 또 하인천 욜로 왔다가 또 그르구 다시 또 일루 왔지. 유 : 옛날에 셋방 되게 해서 아이들 많으면 내 쫓고 그랬어. 표 : 아 그 얘기 들었어요. 한 : 몇 식구냐고 그래 가지고 몇 식구라 그러면 뻔히 알잖아?두 내외다가 다섯 식구라 그러면 애 셋이니까 뻔하지. 방 안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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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내쫓았어. 아니 들어와 살라고 그러니까 애가 시끄럽게 울고 그러는 집이 있거든?그러면 내 쫓아(웃음). 한 : 지금도 공무원들이······ 말은 해줘야 되는데, 법이 없어 못해준데. 표 : 그건 무슨 소리에요? 한 : 이게 해줘라 하는 법이 있어야 되는데 법이 없어 못해준다 이거야. 근데 국회에 가면 보좌관들이 뭐라 그러냐면 이거는 해줄 맘이 없으니까 서로 미는 거지, 해줄 맘이 있으면. 표 : 진작에 해줬을? 한 : 예. 진작 해주고 국회에 올 필요도 없는 거래 이거는. 유 : 원칙은 나라에서 해줘야 되는 거지. 내 아까 얘기했지만은. 한 : 그러면 원칙은 인제 나라에서 해줘야 되는 거는, 인명피해는 나라에서 해주지만. 유 : 그 때려라 하는 그 저기가 승낙이 났으니까 약 천명이다 이렇게 나온 거야. 한 : 아니요 사람 죽은 거는 나라에서 해 준다 그러지만, 쫓겨나고 못 들어간거는 국방부고 인천시허고 되있는 거라고 이게. 국방부가 있다가 자기 땅으로 맨들어가지고 인천시에 다 팔았잖어. 그러면 국방부하고 인천시하고 합의해서 해줘야 돼. 미군이 사람은 죽였지만은 저기 저 땅은 안가지고 갔잖아요. 여기다 두고 갔잖아. 표 : 갖고 갈수가 없죠. 한 : 갖고 갈 수가 없잖어. 그걸 어다 뒀는데 그걸 국방부가 지네들이 갖고 있다가 지네 걸로 해놓고 팔아먹은 거 아냐. 인천시에다가 그러니까. 유 : 원칙은 우리한테 반납하고 가야 하는 건데. 한 : 그러니까 인천시하고 국방부하고 합의하에 이걸 해결을 해줘야 되는 건데. 유 : 20년이 넘었다. 자기 땅이다. 한 : 서로 미는 거야. 국방부는 인천시에다가 미루고. 인천시는 국방부에다 밀고. 우리가 산거라고. 샀는데 뭘 죄가 있냐. 근데 단체장이 해줘야 돼. 단체장이. 유 : 말이 그렇게 나온 거야. 자기네 땅으로 저기를 해가지고 세금을 자기가 그때 저기하면 법에 그렇게 나가는 거야. 한 : 근데 이게 한군데서 잘못 했으면은 그게 서로 떠밀지를 않는데, 이게 세 군데 아냐. 미국, 국방부, 인천시, 세 군데니까 서로 밀어 제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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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 선생님 미국도 갔다 와보셨어요? 한 : 아니 미국은 안 갔는데. 이거 재판을 하다 보니까 미국은 여기 지역 사람 아니니까 빼버려라. 그래서 뺐어. 그리고 또 인명 피해를 우리가 안 넣었다구. 표 : 인명피해를 넣으셔야지 더. 한 : 왜냐면 인명피해를 넣으니까 미국이 죽였으니까 미국 법가서 해달래 래. 이게 말이나 돼. 그건 국제 사업이래. 유 : 안 되는 거야. 표 : 그거는. 한 : 그러고 밀어 제껴. 유 : 그거 때문에 대한민국이 편안히 살았다는 얘기야. 표 : 그거는 그럴 수밖에는 없을 거 에요. 그거를 우리가 인정을 하면은 그 사람들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걸 인정하는 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아마 한: 무슨 이유가 있어. 왜냐면 미군이 죽였다고 해 주면은 이 미군 폭격으로 죽은 사람이 많잖아. 표 : 예예. 한: 문제는 뭐냐 하면 미군 폭격이나 사람 죽은 건 똑같애. 그치만 우리는 작전으로 해서 고의적으로 살인한 거잖아. 응. 고의적으로 살인한 거고. 또 그냥 미군 폭격에 죽은 거는 그냥 우발적인 사건 속에서 죽은 거고. 같은 사람 생명 이런 거 하고 미군 폭격은 똑같애. 그렇지만 우발적이냐 계획적인 거냐 이게 달(다)르다는 거야 우리 사건은 그게 분리 된 거고. 유 : 왜냐면 허락받고 계획적으로 헌거고. 한 : 또 인제 뭐냐면 이 일을 하다 보니까 할머니들 있잖아. 그 저기 있잖아 무슨 할머니야. 표 : 위안부? 한 : 위안부 할머니들. 나는 너무 속상해. 왜 속상하냐 면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군인이나 군인 모냥 뽑혀서 나간거야. 총칼은 안 들었어두. 그렇잖아?착출 해서 나간 거 아냐 위안부로. 그러면 군인은 총칼 들었다고 해서 유공자라 그러고. 이 할머니들은 몸 그렇게 한거 아냐. 그러면은 우리나라에서 책임 있다는 거야 나는. 왜 책임이 있냐. 우리나라가, 우리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우리 백성을 지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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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서 희생시킨 거잖아. 그거를 우리나라가 책임지지 일본 놈이 그랬다고 일본 놈보고 하라 그러면 지금 그 노인네들이 살아온 것도 챙피스러운 판국에 그거를 밝히라 그러고 밝히라 그러고 지금 몇 년이나 살어. 다 돌아가고 없데며 우리 마냥? 표 : 네, 몇 분 안 남으셨다구 한 : 그럼 그 할머니들은 그 돈 받아가지구 뭘 하겠어. 표 : 그렇죠. 한 : 괜히 정치적 싸움만 하는 거지. 응?그러고 우리 문제도 내가 그래서 속상하다는 거야. 미군이 죽였든 누가 했던 간에 응?상륙을 해서 우리나라를 건지기 위해서 한 거 라면은 미군이 죽였다 미군보고 그럴 게 아니라 우리국가에서 해 줘야지 유 : 국가에서 해야지. 한 : 왜 미군 타령을 하고 미국 가서 하래. 어느 국회의원은 죽인데 가서 해달래 래. 그래서 내가 화가 나서 그랬어. 아니 연평도는 이북이 죽였는데, 그 이북에서 해 달라 그러지 왜 여야가 힘을 합쳐서 특별법을 내서 해줬냐아!그러니까 아무 소리도 안하고 쏙 들어가더라고. 표 : 선생님한테 그렇게 얘기했어요? 한 : 어. 그러고 나보고 또 구청장보고 해 달래라. 또 이 사람보고 해 달래라. 시장보고 해달래라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 “의원님 내가 여기 온 것은 의원님 만나러 온 거지 이 사람들이 할 일 이라면 내가 여길 왜 왔겠습니까?내가 국회의원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가 여기 온 거 아니에요.” 그랬더니 또 쏙 들어가버려. 아주 진짜 내가 이거 다니면서 진짜 속상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런 적이 너무 너무 많은 거야, 내가 억울한 게. 그리구 또 인천상륙작전 60년 기념행사를 해서 13억씩 들여 가지고 이거를 했어. 그럼 3년이면 40억이야. 올해도 또 했더 구만. 행사를 크~게. 나는 그런 게 속상한 거야. 내가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냐. 자랑, 승리를 했으니까 축하해 줄 문제지. 그렇지만 그 사건 속에서 피해당한 국민이 있잖아. 울고 있잖아. 그럼 이것도 안고 가야 되는 거 아니냐 이거여. 근데 이거에 대해서는 미군이 죽였다고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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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하라 그러고. 그거에 대해서는 예산은 국회에서 따서 그거 행사는 들였다 하면서 우리는 만나주지도 않고 거기 가서 하라 그러고. 뭐 하라 그러고 이러고 여기 공원을 만든다, 뭐를 한다, 700억을 들여서 뭘 한다, 뭘 한다 하면서 우리는 특별법을 해달래도 안 만들어 주고. 이사람 만나서 해 달래라, 시장보고 해 달래라, 중구청보고 해 달래라 이딴 소리 하는데 내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응? 나는 그거야. 이 사건도 축하했으니까 꽃다발을 줘야 되지. 그러면 이 사람이 성공했으면 여기에 우는 사람 있으면 이 사람도 안고 가야 되는 거 아니여? 예산을 딸 때 이거 예산을 딸 때 이거만 예산을 할 게 아니라 여기 아픈 사람도 있으니 이 사람도 안고 가야 됩니다 하고 같이 묶어가야 되는 거 아니냐구. 내가 국회의원이라면 그래. 표 : 맞죠 . 한 : 응?이거 상륙작전 기념행사를 크게 해야 되는데 이걸 하다보면 이 사건 속에서 아픈 사람 있는데 이 사람을 배척하고 이거 하기에는 내가 좀 안됐으니 이 사람들도 좀 어떻게 하게끔 해서 같이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국회의원이라면 난 그렇게 하겠어. 근데 그거 안하고, 우리는 완전 무시하고 이거만!이렇게 하는 거에 대해서 나는 진짜 속상해. 표 : 당연히 속상할 거 같아요. 한 : 응. 그리고 여기도 공원에 올라갈 때 우리도 내 쫓고 공원지역이라 안 된다 그러고. 국방부에서는 뭐라 그러냐면은 인천시민이니까 당신네가 땅 사가지고 시민 줘~ 이랬거든?국방부에서. 근데 이거 땅 사가지고 자기네 장사하는 거야. 내가 어저께 갤러리 뭐 인터넷에 났다고 우리 회원이 문자 메세지가 왔어. 거기 가보라고 사진전 뭐 과거하고 현재하고 사진 한 다구. 갔어, 갔더니. 내가 오늘 이거 왜 갖고 나왔냐?내가 공원 사람들, 공원 소장도 이쪽이 우리 동네 래는 거야 저쪽이 우리 동넨데. 그래서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랬더니 나보고 고집 세다는 거야. 이 쪽인데 그쪽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아까 이거 집이 그거는 관광지기 때문에 있는 건물이거든 집이 아니거든. 근데 잘못본 거야. 근데 올라가보니까 그 커피숍이 있더라구 전망대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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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있어요. 있더라고. 한 : 3층인가. 전망대에 커피숍을 만들어 놓구 맨 꼭대기에 또 공원매점을 시켜놨더라고. 크게 해놨더라고. 그러면 한 달에 그거 일 년에 몇 백 만원을 내는지 그르나봐. 여기 매점도 그렇고 매점도 그렇고. 그러면 이게 뭐야. 원주민들 다 내쫓아놓고. 그런거 다 돈 받아먹는 거 아냐. 나 어저께 부아가 나고 속상하더라고. 그런 거를 볼 때. 우리 꺼는 해결을 안 해주면서 그렇게 하니까 속상해. 소송을 해 놓으래놓고 백 만 원만 걸면 된대. 우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속인거야. 백 만 원만 걸면 소송할 수 있으니까 그걸 하라는 거야, 인천시 검사가. 그래서 우리는 못한다. 왜 못하냐. 토지대장이 없어서 못한다. 변호사가 안 받아 주니까, 그래도 해래는 거야. 그래서 인제 ○○○ 의원 사무실에 저기 보고 해 달라 그랬어. 그러니까 저기 과거사 정리에서 결정문 나왔으니까 해줬어. 하나마나 토지대장이 없으니까 지는 거야 이거는. 근데 신문에 뭐라고 났냐?백만 원을 인지대를 내니까 1인당 삼백만원씩 달라고 헌거래 그거는. 표 : 백 만원을 달라고 했다면서요? 한 : 아니 백만 원 인지대가 집집마다. 삼백 만원 피해보상, 삼백 만원 달라고 헌거래. 인지대 백만 원이. 그게 이게 뭔 말이야?이거 속인 거 잖어?그래서 다시, 그럼 어떻게 되냐, 일억을 할 라면 어떻게 되냐?하니까 오십 만원을 내야 된다는 거야. 그래서 오십 만원을 내려다 보니까, 노인네니까 돈이 어딨어 없지. 그러니까 마흔 네 명에서 서른 일곱 명이 되니까 일곱 명인가 여덟 명인가 떨어져 나갔어, 떨어져 나가고. 이 사람들이 인제 한 2년인가 3년 째 기달리다 보니까 패소 됐잖아. 패소 됐는데, 우리가 항소를 안 하면 포기한 걸로 된대. 그래서 국가에서 소송 한 거는 이기든 지든 대법원까지 가야 된다느마. 그러니까 또 소송을 하쟤니까 누가 해? 또 이거는 이게 50%면 거기메 50%를 또 내야 된대. 고등 지방 법원에 오십 만원이잖아. 인지대가?고등법원에는 인지대가 50%를 더 내야 된대. 표 : 2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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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백만 원. 한 : 응 백만 원. 그러니깐은 70만원을 내야 되는 거야. 70을 내야 된다니까 안한대, 다들 안한대. 그럼 안하면 우리는 그냥 포기하는 걸로 되서 안 된다 해야지. 그래가지고 서른 일곱 명에서 스물 두 명이 된 거야. 그럼 열다섯 명이 떨어져 나갔잖아?그러면 인제 지금 고등법원에서 하다가 만약에 패소가 되면 대법원까지 갈라면 거기서 인제 또 인지 대가 또 몇 프로가 붙을 거야 아마 돈 백만 원을 내야 되든지. 칠십 만원의 반이니까는, 백만 원 내야 되겠구만. 그러고 누가 내갔어?스물 두 명 중에서 없을 거야. 그래도 나는 해야 돼. 백만 원을 버리더라도 해야 돼. 나는 끝까지. 포기를 안해야 되니까. 그럼 인천시에서 소송하라고 해놓고서 이게 뭐야 도와주지는 못하나마 피해만 주는거 아니야 이게. 나 이거 시장 면담 요청해야 돼. 표 : 시장 만나 보신 적 있으세요? 한 : 안 만나줘. 나 생각난 김에 얘기해야 되갔어 이거(시청에 전화거심). 유 : 이것이 그전에 저 됐지만두, 아까 얘기한 이승만이한테 승낙을 받고 쳤다는 얘기지. 그리고 지금 얘기가 이거를 일으켜가지고 저기하면은 미군도, 미국에도 책임이 있고 우리 나라도 책임이 있고 이 국가 책임이 있단 말이야. 이게 원칙에 일어나면은 세 군대가 연관이 된 거야 그렇지 않아?그러니까 쉬쉬하고 온거야 그래서 그것이 이제까지 끌고 온거야 서로 쉬쉬······ 그래서 이제까지 그게 성사가 안된다는 얘기야. 표 : 여기 계시면 너무 시끄럽고 막 그러시겠어요 여름엔 덥구 이렇게 고생을 하시는데. 유 : 하여간 그래 미군이 못 들어가기 위해서 쉬쉬······ 국가에서는 지시를 내렸으니까 이걸 그런데 국방부에서도 자기네가 그 책임이 있을꺼야. 그렇지 않으면 미군이 나갔을 적에 우릴 들어가게 해서 살게 해야 되는데 책임이 있는거야. 그러니까 서로간에 쉬쉬 하는거야. 그 이유가 있잖아. 미군이 나갔으면은 인천시장이 미군 나가면은 들어가서 살게 하갔다 이렇게 했거든? 그거를 문서로 다가 받았으면은 되는데······ 그러니까 배우질 못해서. 말로다가 받은 거야. 그렇지 않아?문서를 받으면은 그걸 내놓고 당장에 저기를 할텐데. 말로 받았어. 그래 받으나 마나야 말로 받으나. 그러니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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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방부는 왜 왜. 그러면 자기네가 들어와서 고거를 자기네 땅으로다가 다 저기해서 하고 세금을 냈다 이거야. 이십년 간. 세금을 냈다. 세금을 이십년간 내면은 법으로 그 사람의 땅으로 되는 거야. 그래서 국방부가 쉬쉬 한 거야 그리구 판 거야. 표 : 세금 냈으니까? 유 : 응 그러니까는 쉬쉬하는 거야. 국방부에서. 그래서 자기네 땅이라고. 그렇게 된거야. 근데 국방부도 쉬쉬하고. 세금을 내서 다 쉬쉬가 되는 거야. 그니까 이게 안 이뤄지는 거야. 그렇게 서로 미루고 쉬쉬 하니깐. 표 : 사람들은 당시에 어디로 피난을 갔어요? 유 : 어? 유 : 피난 그 저 아래 내려가 아래로 내려가다가. 영종으로 들어왔지. 표 : 그게 아니라 폭탄 떨어트렸을 때. 유 : 어어. 폭탄 떨어트렸을 때는 산. 표 : 할아버지 산으로 도망 가셨어요? 유 : 산으로 올라갔다가 저녁에 내려왔지. 저녁 밤에 내려왔단 말야. 밤에 왔단 말이야. 그래가지고 내려와서. 밥 먹고. 표 : 밥을 먹었어요, 또? 유 : 찬밥 이런거 뭐 그렇잖어, 먹고 그러고서 밤에 인제 내려왔는데, 아까 그 저 다리 있잖아, 다리. 다리 막 들어가서 내가 영종 쪽으로 하고, 이렇게 영종 쪽으로 물 있어. 그랬는데. 거길로 내려와서 뻘로 내려가는 데가 있있어. 그러니 골로 요렇게 욜로 요렇게 된 다리를 건너 가니깐은 쌕쌕이 편대가 내리꽂아가지고 드르륵~ 그래 다 죽여, 다 죽여. 표 : 부시장이 만나게 해 주신데요? 한 : 응, 누구라 그랬어? 표 : 김○○ 요 이거 뜯어드릴께요. 한 : 팀장이(면담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내 일은 아주 제껴놓는거야. 여다 아주 인제 목숨 거는 거야 이제. 내가 애로사항을 얘기 한다는 거야 인천시 한테. 도와주지는 못하나마 이렇게 해서 피해를 주고 응?이거를. 어떡할꺼 하냐 이거야 인천시에서 해결을 해줘야지, 지금 돈이 없으면 나중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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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더라도 인천시에서 나서서 해야지 이거를 어떡할꺼냐고 이거 나 이 자료 다 가지고 가서 보여줄 거야 지금. 유 : 다 책임들 있지. 다 쉬쉬한다고 한 : 그 “소송을 왜 하랬을까” 이러잖아!아니 거기 공무원들이 그냥 자기네 몸 빠져 나갈라고 소송을 한 거야 이거는······. 유 : 그런 사연이 있기 때문에······ 그때 배운 사람들만 있었으면은 그 1대 시장한테 이런 저기도 없었어 그거 내놓고 시장한테 이런 걸 받았으니까는 우리 들어가야 되것다 라면 누가 얘기 할 거야······. 한 : 그래서 어떡해 얘기를······. 표 : 아니에요 오늘 놀라운 얘기 많이 들어서 걱정하지 마세요······. 그 27일 날 결과 나온다고 했으니까······. 한 : 결과는 아니고 변론인이야······ 내가 여기 또 전화 해봐야 돼. 그때도 변론일이라고 해서 갔더니 교대에서 내려야 되니까 그쯤 가서 몇 번 출구로 나가야 되냐고 물으니까 “아, 오늘 오지 마세요” 이러는 거야 “아 여기 강남 다 왔어요” 이랬더니 연장 시켰다는 거야 그것도, 전화로 미리 얘길 해 줘야죠······. 표 : 전화로 미리 얘길 해 줘야지······ 지금 젊은 사람 이 이걸 도와줄 사람이 없는 거죠? 한 : 없어······ 없어 젊은 사람 나오지도 않아. 자기 아버지 돌아가서 그 밑에 거 위령제 하니까 와라 사람이 없다 우리, 네 알았어요 그러고 안와. 일요일인데도 안와 일요일 인데도. 그러니까 내가 너무 속상한 거야······ 위령제 하면은 다 와야 될 꺼 아니야. 표 : 아빠가 돌아가셨는데도 안와요? 한 : 안와······ 안와······ 참 희안해······ 회비는 내면서 안나와. 표 : 그냥 회비 냈으니까 됐지 뭐 이런건가봐요······. 한 : 그러니까 게을른 건지 뭐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유 : 젊은 사람은 나오는 걸 못 봤어(웃음). 표 : 보상을 해 달라고 요구를 했잖아요 우리 측에서, 그럼 그게 1인당 1억씩 밖에 책정을 안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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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아니지, 원칙은 집을 한 저기씩 다······ 집 들어오면 못해도 2억을 갈꺼 아니야······ 그런데 이 재판을 할 때 인지대에 따라 배상금이 달라져 근데 돈이 없으니까 그렇게 못했다고. 유 : 그러니까 삼천팔백 얼만가 돼, 대토. 한 : 대토요?그 공사지 할 때 쓰는? 유 : 아니면 대토를 딴 데 다가 주던가. 그렇지 않으면 여기 한 쪽에다가 아파트를 지어져. 한 채씩 주던가(웃음). 한 : 아니 특별법보다 차라리 그렇게 하면 분양 안 되는 집들을 주던지. 표 : 많을 텐데. 한 : 많지. 원가로 주면 쌀 거 아니야. 표 : 엄청 싸겠죠. 한 : 응?원가로 주고 인천시에서 그걸 몇 채 좀 줘라 그러면은 에이. 모르겠다 나는 표 : 오늘은 여기 계시는 거에요 선생님? 한 : 아니, 이제 가야지, 이제. 표 : 어디로 가세요. 한 : 집으로. 유 : 응, 우리가 이거를 저기하면은 다들 없으니까 지금 거기에다가 지금 말하면 백만 원씩 한 집에서 백만 원씩 던져서 저기 하면은 2억 정도씩이 들어온다는 얘기야. 그런데 지금 그렇게 돈이 되는 거야 50만원씩 이렇게 저기 하면 1억밖에 못 차지한다는 얘기지. 한 : 1억이라도 우리 집안에 떨어지잖아?우리 형제들이 있잖아?노나 가지면 얼마나 안 들어가. 천만 원, 이천 만원이나 들어갈려나. 그렇게 돼. 그러니까 형제들이 없는 사람들이나 그렇지만 오형제 사형제 라바. 그게 몇 푼되나. 유 : 돈을 걸고 재판을 하는 걸 돈을 얼마 거느냐, 이거에 또 달렸어. 돈을 많이 걸어야 많이 받을 텐데, 많이 걸 돈이 있어야지. 그것도 못 저기해서 안달안달 해가지고 간신히 저걸 한 건데. 표 : 아휴 선생님 그러면 27일날 다녀오신 다음에 제가 그 이후에 한번 또 전화 드릴게요. 한 :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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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 예, 그때 또 찾아 뵐게요, 선생님. 한 : 선생님이라 그러지 말아 할머니라 그래(웃음). 유 : 좌우지간 내가 얘기한 것이 그거야. 1대 시장이 그렇게 저기 얘기했는데 우리가 그때 배운 사람이 있었으면, 자필로 다가 그 문서로 만들어서 딱 보관해 놨으면은 그 미군 나간 년에 그거 딱 내놓고선 얘기 했으면은 들어갔다는 얘기야. 근데 배운 사람이 말로 다가 하니까 언제 그 얘길 했느냐 하면 그걸로 끝난 거 아니야. 표 : 근데 여기 52년에 민원 넣은 것도 있었잖아요. 한 : 있지!63년에도 넣구, 그 저기에도 넣었어. 유 : 그러니까 시장이 그 문서로다가 아 그렇게 해서 주면은 그게 근거가 되니깐은 다음 시장이건 뭐건 안 된다 이거지. 그 공문이 있으니까. 이 꼭 들어가서 살게끔 되있으니까. 근데 그걸 못 받았다는 얘기야. 그러니까. 그렇게 되는 거지. 그거이 억울하다는 얘기지. 그리고 아까 얘기루 얘기하면 서로 쉬쉬하고 미는 거야. 미군이나 저 국방부나, 인천시나, 응?이 저기가 서로 미는 거야. 표 : 책임을 져야 되니까. 유 : 미군이 승리 그렇게 해가지고 승리 했다는 얘기지. 그러면은 누가 그걸 만들었느냐. 그럴 꺼 아니야? 표 : 여기 이 농성장이라고 해야 되나요? 유 : 응. 농성장. 표 : 여기는 계속 해결 날 때까지 계속. 한 : 있어야지. 계속. 표 : 누가 막 와가지고 위협하거나 그런 건 없죠? 한 : 구청에서는 비기(보기) 싫다고 이제 없애라고 그러는데, 이게 우리는 집회 신고를 하고 하는 거거든. 유 : 자기네들이 보기 싫어도 할 수 없는 거지. 한 : 벌써 몇 년이야. 2004년도서부터 한 건데 벌써 얼마야. 십년이 다 되가네. 횟수로는 십 년이야. 유 : 이거 허물기만 하면, 허무는 그거 인천시에서 허물면은 다들 가서 시에 가서 다 드러눕갔다고 그랬지. 그러면 구청에서 허물면은 구청에 가서 다 드러눕겠다고 하는데 어떻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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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드러누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 그게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그게 무서워서 못하는게 아니라 1, 2년 된 것도 아니고, 10년이 다 된 거 지금에 와서 건드릴 수도 없구, 해결되기만 바라고 있는 거지. 표 : 매일 매일 어르신들 나와서 이렇게 지키구요?몇 시까지 있으세요? 유 : 교대루, 교대루. 한 : 원칙은 아침 8시서 부터 네, 다섯 시 여자가 있으면 고 담에 네, 다섯 시서부터 남자가 여기서 잤어요. 그런데 인제 지금은 그렇게 안하고 아침 10시에 왔다가 인제 저녁에는 가구 그렇지. 유 : 남자들은 여기서 잠 많이 잤어(웃음). 한 : 몇 년 잤지. 지금 우리 아저씨 기저귀 차면서부터 안자는 거에요. 표 : 어디가 아프신 거 에요? 한 : 몰라, 못 걸어. 표 : 그냥 이유 없이?병원······? 한 : 넘어지고서부터 못 걸어. 근데 자기가 안 걸을 려고 그래. 유 : 중풍이 온 거야. 한 : 아냐. 중풍 아냐. 표 : 어디 신경이 잘못된 건가? 한 : 몰라. 그런 거 같아. 표 : 그런 거 같은데. 말이나 이런 건. 한 : 말도 우둔해. 표 : 어디서 어떻게 넘어지신 거 에요? 한 : 몰라. 치매도 있다고 그러고 파킨슨 같은 종류라고도 그러고. 그러니까 모르겠어. 표 : 얼마나 됐어요? 한 : 지금 2009년도에 약간 고런 끼가 왔었는데, 2011년서부터, 11년도 11월 달에 넘어지구서부터 안 일어나는 거야. 그러니까 계속 이제 드러누워만 있고 활동을 안 하니까 누구하고 말을 시켜 뭐해 난 이렇게 돌아다니고 혼자 내삐려 두니까. 자고 깨고 그러니까 말도 안하고 그러니까 말이 점점 더 우둔해지지. 이제 머리도 이게 안돌아가지. 유 : 중풍이 쓰러지면 말도 못하고 저기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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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중풍은요 이렇게 해가지고 팔도 못쓰고 다리도 못 쓰죠 이건 그렇지 않에요. 유 : 근데요 약간 온 거에요. 한 : 안 왔어요, 중풍은 아니야 터진데도 없고 막힌대도 없데요 뇌가 노화된 거야 노화.

(이후 유청시 할아버지께서 월미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폭격 전의 마을 모습, 건물 자신이 살던 집의 위치 같은 것을 상세하게 설명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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