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칼럼] 재외동포언론인이한국정부에드리는글
[발행인칼럼] 재외동포언론인이한국정부에드리는글
흔히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가 애국자가 된다고들 한다. 현지
에서 터 박고 사는 재외 언론인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더 깊고, 더 강한 열정으로 국가의 이익에 봉사해야만 하는 숙
명 같은 것을 안고 살아간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재외 언론은 두 문화권 속에 살고 있는 750만 명의 재외 동포들 에게 한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통문화를 계승케 하여 우리 민
족의 정체성 유지에 앞장서 왔다. 최근 맹위를 떨치고 있는 케 이 컬처(k-culture) 파워도 이 같은 노력이 근간이 되어 이뤄진 것이란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재외 언론은 주류 사회에서 동포들이 차별이나 부당 대우 등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재외 동포 참정권, 이중 국적 문제, 동포청 설 립 등과 같은 정책적 이슈가 있을 때, 모국의 재난을 돕거나 코 로나 팬데믹과 같은 지구적 재난에 대처하는 데에도 의제 설정 을 주도해 왔다.
지난 1992년 LA 폭동 당시 지역 한인 방송과 신문 등 재외 언 론이 긴급 재난 네트워크의 역할을 한 것은 실로 눈부셨다. 한 인 언론 매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후일담을 전한 이민자 가 한 둘이 아니다. 재외 언론은 주류 사회 정착에도 크게 기여해 왔다. 이질적인 타 문화권에 새 구성원들이 들어왔을 때 겪게 될 문화적 충격과 괴리감을 없애 무리 없이 안착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네 트워크를 구성해 왔다. 이민 1세들의 안정화를 기반으로 주류 사회에서 1.5세나 2세들의 정치력 신장에 발 벗고 나선 것도 재 외 언론의 몫이었다.
재외 언론이 이처럼 기본적으로 해온 역할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국내·외에서 인정도 받지 못한 채 당연한 것
으로만 여겨져 왔다.
‘제외’된 재외 언론
그간 재외 언론의 더욱 중요한 역할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재외 언론이 해온 ‘시대적 역할’이다. 우선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가진 재외 언론이 일제 강점기에 해온 역할을 보면
눈물겨울 정도다. 모두가 하나같이 민족정신 고취, 국권 회복
운동, 구국 운동, 항일 독립의 기치를 내걸고 “부엌에서 등사
판으로 밀어낸” 민족지들이었다.
김명곤 <세계한인> 편집 위원 편집위원 김명곤, 김인구, 김종민, 김구정, 최윤주, 정선, 이석수, 황덕준, 김민식, 이상연, 안미향, 김수진, 정인솔, 이덕일, 손정호, 이유성, 김대순, 양칠선, 배순신, 박창진, 이미진,
디자인/ 일러스트 이덕일, 김민지, 허민주 출판 지원 김구정 협회소개 세계한인언론인협회는 180여 개의
해외
[ 감사 ] 감사(정): 이덕일 감사(부): 박창진
[ 업무실행팀TF ] 행사TF: 여익환/안치복/이석수/김명곤/최윤주 소통TF: 안미향 대외협력TF: 이상연 언론인연수TF: 황덕준/고직순/손정호 회원관리TF: 김민식/김명곤
<세계한인> 편집TF: 김인구/김구정/이덕일/이석수/ 최윤주/김종민/정선/정인솔 홈페이지 편집TF: 이석수/김명곤/신성철/이상연 출판-미디어 지원TF: 김구정/변정원/김희정 ※ 각 TF멤버는 추후 구성되며, 팀장과 멤버는 상황에 따 라 바뀔 수 있습니다. [ 고문 ] 전용창(상임), 김소영, 정락석, 이윤낙, 이건기(이상 전 직회장), 김동렬(대외협력), 윤선옥(대외협력), 이상기( 편집), 김영근(한인네트워크), 김홍수(상임/대외협력, 우 리방송, 미주 시사저널, 미주 CBS TV 회장), 김형태(상 임/대외협력, 국민의힘 전 의원), 최종원(상임/대외협력, 민주당 전 의원)
(가나다순)
]
전 세계 한인언론사 현황. 지난 2019년 기준으로 해외에는 366개의 한인 언론 사가 있고, 그 가운데 180개사가 세계한인 언론인협회에 소속되 어 있다.
대표적인 신문들의 면면을 나라별로 하나씩 꼽아보면 1908년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조신문>, 19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 신한민보>, 1914년 일본의 <학지광>, 1931년 북간도 용정의 < 조선독립신문> 등이 있다. 막상 민족지 운운하며 기세좋게 출 발한 본토의 주류 언론이 곡필로 타락했을 때도 재외 언론은 정 론으로 살아있었다. 우리 조국이 엄혹한 독재체제 아래 있을 때 미국, 캐나다 등 북 미 지역은 물론이고 일본, 독일 등에서 고국의 실상을 알리며 민주화 운동에 불씨를 되살린 재외 언론들도 있다. 딱히 언론 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마분지 같은 종이에 고국과 이민 사 회에 민주화 운동 소식을 전파한 ‘지하 언론’도 있었다. 일제강
점기, 해방 정국, 군사독재를 거치며 명맥을 유지해 온 재외 언 론에 필요한 것은 기술(記述)이나 미문(美文)이 아니라 ‘시대정 신’이었다. 특히 일부 재외 언론에 의해 보도된 광주항쟁의 참상과 그 후 민 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이 더욱 확대·전개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재외 언론 매체는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남북화해와 분단 극 복을 기치로 발간된 ‘통일언론’은 일제강점기 ‘독립언론’ 만큼이 나 재외 언론의 시대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이민 언론 이 궁극적으로 향해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가리키고 있다. 본국 매체는 수억 구가, 재외 언론은 수백에 ‘쩔쩔’
이런 정도라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온갖 격려를 받는 것이 마 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재외언론은 본국의 주 류 언론사들이 정부로부터 1년에 수억씩 챙기는데 반해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9일 국감에서 김의겸 의원이 언론진흥재단으로 부터 제출받아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20년 한 해에만 언론진흥기금으로 49억여 원을 지원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주요 언론사에 지급한 지원금 은 각각 조선일보 41억 3844만 원, 동아일보 40억 35만 7000 원, 중앙일보 37억 2158만 8000천 원, 한겨레신문 22억 2406
만 1000원, 경향신문 18억 9486만 7000원, 매일경제 20억 1081만 5000원 등이었다. 이들 6개사가 연평균 받아간 지원금 은 최소 2억에서 최대 4억1천만에 이르는 셈이다. 현재 360개가 넘는 해외 언론사들이 속해 있는 3개 재외 언론 인 단체 몫으로 한국 정부가 배정한 1년 예산은 2억 원이다. 한 국언론진흥재단이 집행하는 이 예산은 공익광고 게재를 조건 으로 재외 언론인단체들에 주어진다. 그나마 입시 치르듯 일 회성 심사를 거쳐 선별된 언론인 단체가 전체 재외 언론사들 을 대상으로 응모를 받아 다시 선별적으로 배정하는데, 개별 언 론사가 받는 액수는 200만 원에서 50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애처로운 것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 같은 액수를 놓 고 매년 ‘시험’을 치러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국 언론사나 언론인 단체들도 같은 과정을 거치는지는 모르겠으나 민망하 기 짝이 없는 일이다. 현재 대부분의 재외 언론사는 어느 때보다도 사정이 좋지 않다. 지난 2018년 언론진흥재단의 의뢰로 시장조사기관인 메가리 서치가 전 세계 193개 재외 언론사(인쇄매체)를 대상으로 조사 한 바에 따르면 재외 언론 수입원의 87%가 광고비였다. 재외 언론이 주로 지역 한인 업소들과 한인 단체들의 광고에 목을 매 고 살아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시 기준으로 재외동포 언론사 가운데 향후 3년간 경영 상황 이 나빠질 것이라고 부정적인 예측을 한 언론사는 31.9%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실시한 것임을 감안하면 2022년 11월 현재 부정적 전망의 비율은 훨씬 높아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외 언론사의 40% 이상이 몰려있는 미국의 경우 지난 3년여 간 잠정 휴간하거나 일간을 격주간이나 주간으로 발행하는 언 론사들이 많다. 필자가 운영하는 한인매체만 하더라도 10년 전 까지 40면, 7년 전 36면, 5년 전 32면, 현재는 28면을 발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24면으로 줄일 계획이다. 그나마 각종 사업체에 긴급 팬데믹 지원금을 뿌린 미국은 사정 이 나은 편이다. 유럽과 남미 등은 물론이고 오세아니아, 동남 아, 중국 등에서 활동중인 재외 언론사 운영자들의 전언에 따 르면 팬데믹 기간에 인쇄소가 문을 닫은 곳이 많아 아예 종이 신문을 발간할 수 없는 언론사가 부지기수다. 이들 가운데 상 당수는 인터넷 신문이나 웹신문으로 전환하여 겨우 명맥을 유 지하고 있다.
소규모 한인 업소들을 기웃거리다 못해 사주의 호주머니를 털 어 운영해야 하는 재외 언론의 현주소는 참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대체 한국 정부는 언제까지 재외 언론을 ‘제외’할 심산인가. 정 부의 재외 언론진흥재단 설립을 촉구한다. O
‘형형색색’
질 때만이 인간 세상이다. ‘나의 나’ 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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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언협 제3대 회장으로 당선된 김명곤 회장 (미국 플로리다 코리아위클리 대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재외언론이 국가와 민족 을 위해 해온 일, 하는 일, 하려고 하는 일이 많은데 너무나 자원이 부족합니다. 본국 정 부가 한글학교나 해외 문화단체 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똑 같 은 국가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재외언론은 왜 외면합니까? [세계한인언론인협회] 신임회장 인터뷰 IPhoto: 이석수/ 세계한인언론인협회
지난 6월 29일, 세언협 제3대 회장으로 당선된 김명곤 회장(미 국 플로리다 코리아위클리 대표)은 요즘 최고의 강행군을 하고 있다. 협회가 매년 개최하는 가을 심포지엄이 이제 10여일 밖에 남지 않은 터라 성공적인 대회 준비를 위해, 서울 사무처와 긴 밀히 연락을 취해가며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실 회장 당선과 함께, 3개월여 만에 가을대회를 치른다는 것
이 당초 무리였다. 준비 기간도 짧은데다, 협회가 장기간 활동 을 하지 않아 재정도 바닥난 상태. 기대했던 기관의 지원도 끊 기고 후원처를 찾기도 쉽지 않아, 과연 이번 대회를 제대로 치 룰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불도저 같은 뚝심과 추진력만큼은 그를 당할 자가 없 을 정도다. 어려움 속에서도 심포지엄 주제와 강연자, 초청자, 후원자들을 확보해 나갔고, 3박 4일간의 지방투어 일정도 확
정지었다. 이번 대회는 코로나 팬데믹의 오랜 어려움을 극복하고, 3년 여 만에 다시 만나는 회원들의 힐링과 재충전 시간을 갖겠다는 마 음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가을대회 마무리 준비에 여념이 없는 김명곤 회장을 만나 본다.
- 늦었지만, 세언협 회장에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회원 들께 인사 한 말씀...
-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저는 1974년 이후로 저널리즘을 노래하며 살아왔습니다. 80년
대 후반 미국땅에 와서 다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 뒤늦게 역사
에 철이 들어 뜻을 두고 미국 땅에 주저 앉았습니다.
저는 ‘섭리’를 믿는 사람으로 늘 실존적 질문을 하며 살았습니
다. ‘내가 왜 여기 미국땅에 와 있나’, ‘내가 왜 신문일을 하고 있
나’, 심지어는 ‘하고 많은 나라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한국 땅에, 그것도 20세기에 태어났나’ 라는 따위의 질문을 하며 살았습니
다. ‘소명의식’으로 살려고 몸부림을 해 온 것입니다. - 회장 당선 이후 첫 대회로 치르게 되는데, 이번 가을대회에 임 하는 자세나 각오는?
회원들 모두가 2년 반 동안 영어 아닌 영어 생활을 하고 살았습
니다. 만나지 못하면 몸도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아시
다시피 1년에 한 두 차례, 어떤 분은 2, 3년에 한 번 만나게 되 는데요, 이 때문에 연대와 결속력이 약해 깨어지기 쉬운 질그
릇 같은 존재가 재외언론인 단체입니다. 바둑용어어 ‘아생연후
에 살타’란 말이 있는데요, ‘아’가 먼저 살고 나서야 ‘타’를 잡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번 대회가 개인도, 협회도 재충전하고 힐링하는 기회가 되었
으면 좋겠습니다. 아시는대로 세언협을 둘러싼 환경이 썩 좋지 않습니다. 어느분이 말하기를 “이러다가 세언협이 쑥대밭이 되 는 거 아니냐”라고 하셨는데요. 글쎄요, 쑥을 잘 키워서 수출할
수고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 남북통일보다 더 어려워 보이던
통합도 이뤄냈고, 이제껏 잘 헤쳐 나왔잖나요?
- 이번 대회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힐링입니다. 뭐 병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은 힐링도 필요 없겠죠.
‘재외동포언론, 팬데믹 언론의 길을 묻다’란 주제도 이번 대회
를 이끄는 중요한 축입니다. 밥상에 질 좋은 먹거리를 차리려
고 나름 고심했습니다. 2시간 반의 심포지엄이지만, 모두에게
자극요인이 되어 많이 배우고 느끼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
다. 추후 ‘ 열공’을 위한 심호흡이라고나 할까요?
- 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려움은?
7월 초 임기 시작 3개월 만에 행사를 치른다는 것이 당초 무리 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행사와 행사 사이에 5개월의 짬이 있었 습니다. 준비 기간이 짧다보니 재정 마련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인 듯합니다. 장기간 행사을 갖지 못해 쌓인 재정이 바닥난 상태입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협조해 주고 있어 다행스럽 게 생각합니다.
- 협회의 재정립과 회원 단합, 결속이 시급한데 이에 대한 대 안 또는 각오는?
현재 어느 재외언론단체를 보니 세를 불리기 위해 ‘앞으로 언론 일 할 사람도 우리에게 와라’ 이러던 데요. 참 가슴이 쓰렸습니 다. ‘재외언론의 발전’이란 큰 틀에서 정말 그래선 안 되겠죠. 우 리는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회원 모두가 ‘일이 되게하자’는 생각으로 협조적이고 능동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 관계 든 협회 일이든 조급히 판단하고 마구 쏟아놓기만 하고 쉽게 ‘ 철수’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습니다.
제가 지난 선거에서 소통회복, 재정난 타개, 정체성 확보, 공부 하는 언론인, 회원 정비 등을 공약했습니다. 하나같이 단기간 에, 혼자서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일들입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 고 손을 잡아야 할 일들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해결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당장 보다는 먼 미래 를 보고 함께 걸어야 겠죠.
- 국내 언론환경이 급변하고, 신뢰도가 급락하는 안타까운 현실 인데, 재외언론인으로서 바라보는 시각은
제가 공사석에서, 그리고 지난 총회 선거과정에서 언급했듯 현 재 한국언론은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상과 자기인식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진실은 고사하고 사실조차도 언론의 관심 밖인 지가 오래 됐습니다. 언론인이 돈이나 권력의 맛을 보기 시작 하면 타락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이전에는 글쓰기의 기본이 안 된 언론, 공부하지 않는 언론을 탓하며 수습 기간을 늘리느 니 유학을 보내느니 했는데요, 지금 중요한 것은 ‘언론인 정신의 회복’이라고 봅니다. 재외 언론인들도 촌지를 받는다거나 무슨
쉬운 질그릇 같은 존재가 재외언론인 단체입니다. 바둑 용어에 ‘아생연후에 살타’란 말이 있는데요, ‘아’가 먼저 살고 나 서 야 ‘타’를 잡을 수 있겠죠?
이번 대회가 개인도, 협회도 재충전하고 힐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리를 탐한다든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관행은 굳어지 면 깨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 재외언론인으로서 이를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요?
사회가 바로 서려면 반드시 건강해야 하는 계층이 있는데요, 바 로 선생, 성직자, 언론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정치가 썩어 들어가도 이들 계층만 바로 서면 언제든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요즘 재외언론인들 중 돈과 기사를 맞바꾸는 사람 들도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말이 됩니까? 지금이라도 ‘내 가 어디서부터 떨어졌나’하고 되돌아 봐야 합니다. 어떤 영화 대사에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그러던데요, 기자 는 돈 받으면 가오가 팍 떨어집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 다. 백-투-베이직!
- 재외언론 발전을 위해 협회가 힘을 쏟아야할 부분은 무엇이 라 생각하시는지?
힘을 키워야 합니다. 힘을 어떻게 키우느냐. 공부 열심히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본국 언론사들이 1, 2년씩 기자 연수를 해도 잘 해낼까 말까인데요. 재외언론인이 전혀 기초도 쌓지 않고 재충전도 하지 않고, 5년도 가고 10년, 20년이 가면… 나중에 는 뭐가 얼마나 부족하고 어떻게 잘 못 가고 있는지도 모르게 됩 니다. 우리는 돈을 모으거나 사업을 도모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글로 말해야 하는 단체입니다. 요즘 성경 한 권 제대로 읽지 않 고 목사 하는 사람도 있다는 데요, 언론학 개론 한권도 읽지 않 고 기자 하겠다면 안 되겠죠? 협회의 심포지엄 등을 통해서도 꾸준히 질적인 성장을 해야 합니다. - 국가나 관련 기관에 요청사항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재외언론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해 온 일, 하는 일, 하려고 하는 일이 많은데 너무나 자원이 부족합 니다. 본국 정부가 한글학교나 해외 문화단체 등에 막대한 예산 을 투입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똑 같은 국가 이익을 위해 봉 사하는 재외언론은 왜 외면합니까? 조만간 750만 재외동포를 위한 동포청이 생길 것으로 보이는데요, 재외언론진흥재단(가 칭) 설립도 시급합니다. - 재외 언론인으로서 가장 좋았거나 아쉬운 부분은?
재외언론인은 본국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는 입장이기 에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나 행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습 니다. 이 공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재외언론인에게 큰 축복이고 선물입니다. 외신기사를 다룰 때 종종 재외언론인이 느끼는 유쾌함이 남다 를 때가 있습니다. 본국의 언론들이 본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맞는, 심지어는 특 정 정권, 특정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외신을 주로 전하는데 비 해, 재외언론은 살고 있는 문화권의 시각에서, 더 나아가 우주 적 관점에서 기사를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외언론은 밥도 먹고 인쇄비, 인건비 등도 직접 조달해 야만 합니다. 역사적으로 언론이 독립성을 유지하고 양질의 기 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뒷받침이 있어야만 합니다. 대 부분의 재외언론들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기사도 제대로 써내 지 못할 정도로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 니 돈의 유혹에 빠져 들 수밖에 없습니다. - 본인의 좌우명이나 삶의 지표가 있다면... ‘될수 있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하라’는 성경말씀이 있는 데요, 저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이를 실천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고 문익환 목사님이 “큰 뜻이 아니라 큰 마음이 통일에 이바지 할 수 있다. 뜻은 큰 만큼 분쟁을 일으키 나, 큰 마음은 모든 다른 것을 안을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을 슬 픈만큼 크다”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슬프게 살려고 노력중입니 다. 빳빳한 글도 슬픈 마음으로 쓰면, 읽는 사람도 느끼게 됩니 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민족이나 성급히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태도보다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 안타까워 하는 마음, 역지사지 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은퇴 후, 노후에 추구하는 삶은? 개미 쳇바퀴 돌 듯 일주일 단위로 살다보니 읽고 싶은 책들 못 읽고, 쓰고 싶은 글들 쓰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3, 4년 후 쯤 억지로라도 여유를 만들려고 합니다. 언론인은 죽을 때까지 언 론인입니다. 소외되고 제외된 땅에 들어가서 어린 시절부터 듣 고 배웠던 동화나 율동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면서 살고 싶은 데요, 이게 언제나 가능할지. O
[이참에] ‘재외동포청’ 간판이 필요한 게 아니다
김재현
여보시오! 해외동포 750만이 보이시오?
기자/시사저널 미주판 편집국장 IPhoto: pixabay.com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국가보훈처는 부로 승격하 며, 재외동포청을 새로 만든다. 최근 한국 행정안전 부가 발표한 ‘정부조직법 개편안’의 주요 내용이다. 이 개편안에 따르면 재외동포청은 외교부 소속의 차 관급 기관으로 외교부의 재외동포 정책 기능과 각 부처에 분산된 재외동포 관련 업무 기능, 재외동포 재단의 지원 기능을 통합해 재외동포와 관련된 일 을 총괄한다.
이를 두고 한국 언론에선 재외동포의 숙원이 이뤄지 게 되었다는 기사를 많이 올렸다. 오랜 동포사회의 바람이 실현단계에 들어섰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 지만, ‘숙원’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숙원’ 이 이루어졌다고 하기에도 너무 이르다.
앞으로 한국 정부는 재외동포청을 통해 재외동포
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과 지원을 강화하고, 관계부 처 협업을 통해 영사·법무·병무·세무 등 민원 처리를 간결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그야말로 재외 동포를 위한 원스톱 서비스다. 그런데 외교부의 영사업무야 그렇다 쳐도, 재외동 포의 민원이 가장 많은 법무·병무·세무 등은 어 떻게 관계부처와 협업을 하고, 뭐가 달라질 것인지 궁금하다. 잘 되기를 바라지만, 과연 재외동포 사 회가 바라는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재외동포
의 수는 약 732만 명이다. 이 가운데 미국에 263만
명, 중국에 235만 명 등 두 나라에 전체 재외동포
의 68%가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별 비중을 고
려한 재외동포청의 관심과 지원 배분이 가능할까?
최근 한국에서는 100만 명에 이르는 한국 내 재외
동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재외동포청이 많은 관
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동포로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이들이나 지역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하지만 그만큼 파이가 줄어든다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흩어져 있던 예산을 모으다 보면 중 복된 부분도 나올 텐데, 잘 돌려쓰면 모를까, 예산 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서 중복 예산을 감액할 수도 있다. 사실 이것은 재외동포청 신설의 이유이 기도 하다. 한국 정부에서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재외동포 사 회의 현안들이 있다. 선천적 복수국적제도 폐지, 이중 국적 허용 연령 하향, 차세대 한국(어) 교육 지 원 강화, 온라인 투표 실시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해결하거나 적어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으려면 차 관급 청보다는 격이 더 높은 장관급 처나 대통령 직속위원회 정도는 되어야 했다. 그래야 병역 같은 무거운 이슈에 총대를 메고 선천적 복수국적제도 의 해결에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을 텐데, 결 국 재외동포 사회의 현안을 해결할 몫은 그대로 재 외동포 사회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편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이다. 모든 대선 후보가 공약한 재외동포청 신설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가족부 폐지에 여야가 심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원’ 운 운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재외동포청 신 설안이 나온 배경에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인구 절벽’ 문제가 있다. 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는 재외 동포를 한민족의 자산으로 보도록 한국 내 시각을 바꿔놓았다. 그렇다고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이 같아진 것은 아니다.
이제 재외동포 사회는 단순히 머릿수가 아니라 스 스로 가치를 높여야 한다. 이것을 입증하는데 투표 만 한 것이 없다.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재외동포 의 의미 있는 영향력을 보여준다면 재외동포청 간 판이 아니어도 현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O
(사)세계한인언론인협회(회장
세계 재외동포 한인 언론을 대 표하는 세계한 인언론인협회( 회장 김명곤. 이 하 세언협)가 10월 11일(화) 개막식 을 시작으로 4박 5일간의 국제심포
지엄을 열었다.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 2층 다이아 몬드홀에서 10월 11일 열린 개막식
은 재외 한인 언론 네트워크의 중요 성과 동포 언론인들의 단합을 공고 히 하는 자리였다. 이번 대회는 전세 계 20개국 32개 도시에서 40여명의 한인 언론인들이 참석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세계한인총연합회 김덕룡 이사장, 연합뉴스 성기홍 사 장,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의원, 정무 위원회 양정숙 의원, 정영수 CJ글로 벌경영고문, 세계한인네트워크 김 영근 회장,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
대 대표 등 국내외 주요 인사들이 대 거 참석, 전 세계 한인 언론을 대표하 는 언론인들의 심포지엄 개최를 축 하했다.
세계한인언론인협회 김명곤 회장은 대회사에서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시간 정보들
이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사상 초유
의 정보 왜곡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언론계는 잘못된 정보와 허위정보 등 ‘가짜 뉴스 팬데 믹’을 맞아 일대 혼란을 겪고 있다”라 며 “재외 언론은 지구촌에서 코로나 팬데믹 상항과 정보 왜곡 사태를 가 장 생생하게 목격해온 장본인이다. 세계한인언론인협회는 이번 심포지 엄을 통해 코로나 정보 왜곡 사태를 적시하고 정리하는 것은 물론, 자기 성찰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라 고 대회의 취지를 밝혔다. 성기홍 연합뉴스 사장은 축사를 통 해 “750만 재외동포의 삶을 소개하 고 고국의 소식을 전달하는 것은 애 국심과 함께 굳건한 사명감이 없으 면 하기 힘든 일로, 그러한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저마다 역할에 충실한 여러분 덕분에 모국인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는 사실 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 다”라며 “연합뉴스는 앞으로도 동포 사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 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동포 언론 과 파트너로서 언제나 함께 할 것임 을 굳게 약속한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재외동포 위원장 임종 성 의원은 “이 자리에 계신 언론인들 께서 재외동포들의 알권리를 위해 해외에서 열심히 펜으로서 싸우고 있는 분들이며, 그 덕분에 대한민국
이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생 각된다”라며 “저 역시도 펜은 칼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하는만큼 재외동포 언론인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무위원회 국회의원 양정숙 의원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가 탈세 계화가 되고 보호무역주의 등 블록 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750만 해외 동포와 모국을 연결해주는 세계한 인언론인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라며 “우리나라의 중 차대한 문제가 경제양극화인데, 그 보다 중요한 문제는 정치의식의 양 극화이다. 급변하는 시대에는 정론 직필이 중요한만큼 이번 대회가 시 대가 요구하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 되돌아 보는 중요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세계한인총연합회 김덕룡 이사장은 “코로나 위기를 넘는 과정에 재외동 포가 있는 193개 국가 중 16번째로 많이 거주하는 아르헨티나에 하나밖 에 없던 한인 언론이 최근 문을 닫았 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는데, 해 외 한인 언론인들의 역할과 기여에 걸맞게 우리 국민과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며 정책적 지원대책이 뒤따르 기를 바란다”라고 요구해 재외언론 인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위드코로나 이후 본격적인 대면 행
이어갈 예정이다.
이어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을
방문해 문화유적과 지역축제를 취
재하며,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전 세계 재외동포 한인 언론을 대표하는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회장 김명곤. 이하 세언협)가 10월 11일(화) 개막식을 시작으 로 4박 5일간의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 2층 다이아몬드홀에서 10월 11일 열 린 개막식은 재외 한인 언론 네트워크의 중요성과 동포 언론인
단합을 공고히 하는 자리였다. 이번 대회는 전세계 20개
고국의 맛과 멋을 두루 경험하고 지자 체와 세계 한인 언론매체와의 공동 사 업과 홍보에 대한 논의도 이뤄진다.
이번 심포지엄은 문체부, 외교부, 연합뉴스, 재외동포재단, 한국언 론학회,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재외동포포럼,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유엔피스코, 글로벌장보고재 단,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 세
계한인체육회총연합회 등이 후원 한다.
한편 세계한인언론인협회는 세계 40여 개국 180여 개 동포 매체가 회원사로 가입한 문화체육관광부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는 최근에서야 갑작스럽게 등장한 낯선 침입자가 아니라 로마 시대의 프로 파간다부터 소셜 미디어 시대에 이르기까지, 올 드 미디어와 뉴미디어를 막론하고 정보 생태계 (information ecosystem)의 오랜 주민이었다. 거짓과 허위정보는 대중의 관심을 이끌고 분노 감정을 유도하기 위한 사실의 날조, 사실의 맥락 을 미묘하게 왜곡하는 전언(傳言), 증오심 부풀 리기, 적군과 아군을 나누는 선동의 요소였다. 가짜뉴스의 실체는 뉴스 정보를 수용한 이후에 맥락을 재해석하거나 덧붙여서 부정확한 소문 을 퍼뜨리는 우리 자신이기도 했다.
인쇄술, 라디오, 무선 전신, 웹브라우저, 포털 사 이트 중심의 디지털 뉴스 전달,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인터넷 접속의 폭발적 증가 등 기술 발전 에 힘입어 미디어의 힘이 강력해지는 동안 허위 정보의 전파 방식도 그림자처럼 진화를 거듭했 다. 따라서 미디어의 역사는 허위정보 전파의 역 사라고 볼 수 있다. 16세기 팸플릿의 시대부터 1930년대 라디오의 전성기, 1960년대 TV 뉴스 방송에서도 오보와 허위정보는 흘러나왔다. 완
역사가 허위 정보의 역사가 된 이유 최은창| <가짜뉴스의 고고학> 저자/ MIT테크놀로지리뷰 한국판 편집인 [최은창
미디어의
전한 사실만이 뉴스로 전달되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극단적 불신, 이성의 마비, 혐오감, 집단 행동, 폭력의 합리화는 허위정보가 의도한 반응 이었다. 진실이 밝혀지기 까지는 언제나 많은 시 간이 걸렸는데 그것은 허위정보가 사람들을 혼 란 속에 빠뜨리거나 불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이 크게 늘어난 원인으 로는 트래픽을 유도하여 광고 수익을 얻으려는 영리 목적, 돈을 받고 정치적 여론을 형성하는 트롤링 공장(troll farm), 가짜뉴스 소스를 제공 하는 웹사이트, 소셜미디어를 통한 프로파간다, 대량으로 포스팅을 유포하는 트위터 봇(bots), 가짜 계정을 통한 메시지의 증폭 등을 들 수 있 다. 외국 정부기관과 연결된 익명의 여론 조작 세력, 자동화된 프로파간다 기술로 무장한 상 업적 홍보회사도 허위정보를 동원한 정보전쟁 에 뛰어들고 있다. 오늘날 허위정보를 동원한 정 치 프로파간다의 특징은 대중을 설득하여 그 정 치적 입장을 바꾸는 것이라기보다는 반대 진영 을 불신하게 만들고 그들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 리는 데 있다. 이런 배경에서 가짜뉴스의 범람은 선거에서 투명하게 결정해야 하는 유권자의 의
사를 왜곡하여 민주주의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다.
허위정보전에 뛰어드는 수많은 얼굴 없는 행위 자들은 대중의 인식을 왜곡하거나 여론을 조작 하려는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있다. 그 이익이 극 대화되는 시기는 정치권력이 걸려 있는 선거철
이다. 트롤링 공장이 돈을 받고 정치적 쟁점이나
후보자에 대한 호감도를 바꾸기 위해 대량으로
가짜뉴스를 뿌린다면 유권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감정이나 반감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허위정보전은 ‘정치적 도덕성을 결여한
흔히들 ‘가짜뉴스(fake news)’라는 말을 사용한 다. 정학히는 오도성 정보(misinformation), 허 위정보(disinformation)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보통명사화 되어 널리 쓰이는 이유는 우리의 인지 구조가 단순한 것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있는 용이한 구조이기 때문라 할 수 있다. 오늘 강의의 주안점은 언론인들이 겪는 고민과 대응 방식이 아니고 정책적 차원에서 국가나 기 업들이 책무를 다하기 위해 대응하고 있는 방식 에 대한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인 가짜뉴스의 정의는 여 기 계신 분들의 수 만큼 다를 수가 있다. 저널리 즘에서 흔히 말하는 객관성, 신뢰성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절대적으로 달성될 수 있는 진리이냐 는데 동의하는 연구자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객 관성’은 ‘주관화 된 객관성’인데, 그 주관화 된 객
관성이 그나마도 인정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 까지는 다가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는 저널리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짜뉴스라는 말을 하는 이 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가짜뉴
녹취: 김민지 /밴쿠버 코리안 뉴스 기자
정리: 김명곤/ 플로리다 코리아위클리 기자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 미디어 리터러시 기르기 김광재교수 | 한양사이버대 광고미디어학과 [김광재 교수 강의] 정책 당국, 언론계, 수용자 공동 노력해야
스A와 B의 사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가짜뉴스 A는 중국 네티즌이 김연아 깎아내리
기를 했다고 해서 크게 화제가 된 것으로, 당연 히 가짜니까 소스도 출처도 없는 얘기들이다. 처 음 이 가짜 뉴스를 게재한 것은 네이버의 메인 뉴스 섹션이었다. 이후 계속 재확산이 되면서 많 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논쟁거리 가 되었다. 처음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가짜뉴스
가 네이버 포탈에 게재되어 많은 광고 수익을 챙
길 수 있는 클릭이 나오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네이버 포탈에서조차도 이런것 들을 걸러내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전 국민이 다 보는 핵심 뉴스가 되는 해프닝이 발생한 것이 다. 이때만 해도 ‘경제적 이익’이 가짜뉴스 발원 의 주 요인이었다. 2017년에 가짜뉴스B가 발생한 상황은 좀 다르 다. 2016년은 박근혜 정부 시절로 탄핵 정국이 한창일 때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 몰려 나 와 탄핵을 요구하고 있을 때였다. 탄핵에 반대하 는 일부 사람들이 여러 형태의 가짜뉴스를 만들 었다. 이 과정에서 영국과 일본의 유명 정치학자라는 아르토리아 팬드래건과 히키가야 하치만의 코 멘트가 나오는데, 한사람은 게임속 캐릭터이고 다른 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였다. 유명 전문가 들의 주장이라는 글들이 널리 확산이 되었는데, 모두가 가상인물을 이용한 가짜뉴스였다. 2017년부터는 조금 다르다. 단순히 토크쇼를
통해서만이 아니고 우리 전국민의 SNS라고 할
수 있는 카카오톡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된 가짜뉴스였다. 그런데 가짜뉴스였음에도 상
당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어쨌든 두 가지의 가짜뉴스가 이제 어느정도 자
리를 잡고 또 여기서 변형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
이다. 해결 방안은 뭘까. 우선 두가지 접근이 존 재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국가가 주도하는 정책 중심의 접근 방식 이다. 정책 중심의 방안은 법과 제도를 명료화 해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장 의 자율적 기능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그 두가지 다 일장 일단이 있을 수 있는데, 거기에 따른 시 작점을 놓고 우리나라의 현재의 상황을 한번 같 이 검토해 보겠다.
자율성에 맡기는 미국, 정책에 집중하는 유럽
우선 미국의 사례를 보기로 하자. 미국은 누가 뭐라 해도 시장 중심의 접근을 하는 나라다. 그 런데 미국은 단순히 가짜 뉴스에 관련해서만 시 장 중심의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게 아니고, 사실 상 모든 정책적 방식에서 시장 중심의 접근이 주 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시장 중심의 방식에서 보이는 행태는 우리나라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오보성 정보(misinformation)와 허위정보(disinformation)가 유통되는 과정의 핵심적인 역 할은 소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 랫폼 사업자들이다. 그런데 이 플랫폼 사업자들은 본인을 미디어계 열이라고 결코 내세우지 않는다. 미디어계열이 라고 내세워 미디어 회사가 되는 순간 본인들이 져야 될 사회적 책무가 너무 많아지게 된다. 그 래서 끝까지 기술 중심의 기업이라 강조하고 거 기에서 유통되는 컨텐츠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없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정도가 심해지다 보니 ‘더 이상은 책임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만 있을수 없다는 목소리들 이 커지게 되었고, 이제 미디어 기반 기업으로의 이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흐름이 형성 되면서 자체적으로 적절한 알고리즘을 구축하 여 필터링을 하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손절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결국 ‘페이스북’을 ‘페이크북’이라고 조롱하는 말
이 생겨날 정도의 상황이 되다보니 1단계 2단계 3단계에 걸쳐서 지금은 ‘메타’로 이름을 바꾼 페 이스북이 취한 조치들이 나왔다. 이어서 포인터 (Poynter)재단이 생겼고, 페이크 체킹 시스템이 발족됐다. 이 재단에 속한 메이저 미디어 기업들 이 페이크 체킹에 필요한 소스가 있다는 제보가 올라오면 경쟁적으로 페이크 체킹을 해서 그 내 용을 게시하면 SNS 기업들이 바꾸어가는 것으 로까지 발전했다. 독일과 영국은 정보를 중심으로 한 법제도 방식 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가장 앞서 나가고 있 는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여론의 왜곡 현상에 의해 국가 전체의 의식이 한 번 뒤집어지는 경험 을 해봤기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도 거론이 되고 있는 법이 있었다. 2016년 독일 법무부가 직접 발의를 한 내용으 로 ‘네트워크 인포스먼트 로우(Network Enforcement Law)’ 라는 법이다. 네트워크 인포 스먼트 로우를 직역하면 <망 강화법> 정도가 되 는데,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 화제가 됐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오보성 정보(misinformation)나 허위정보(disinformation)에 해당하는 정보를 네트워크 사업자가 인지한 순간, 1주일 내에 즉시 조취를 취해야 한다. 방기했을 경우 에는 징벌적 배상인 패널티를 부과하는데, 최 소 60억원에서 많게는 600억원 이상을 물리겠 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런 식의 잘못을 저지 르면 기업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는 내용의 발의 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 번역된 그 당시의 독일 미디어 기업들이
내놓는 칼럼들을 살펴 정리해 보니 네가지 정도 였다. 우선은 ‘적용범위’ 문제다. 즉 미디어 기업 이 ‘이것이 확실하게 사회에 이익을 침해하는 정 도의 수준의 컨텐츠다’라는 판단할 수 있는 범위 를 어느 선으로 정하냐는 것이다. 그 다음 ‘플렛폼 사업자의 의무’라는 라는 것인
미국은 시장 중심의 접근을 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게 단순하게 페이크 뉴스에 관련된 것만 시장 중심의 접근
이 아니다. 사실상 모든 정책적 방식에서 시장 중심의 접 근은 다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사진 위 왼쪽)
독일과 영국은 정보를 중심으로 한 법제도 방식이 중심
을 이루고 있다. 독일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에 하나가 소위 여론의 왜곡 현상에 의해서 국가 전체의 의식이 한 번 뒤집어지는 경험을 해봤다는 것. 그래서 상당히 민감 하게 반응한다. (사진 위 오른쪽)
데, 법이 관여하는 정도가 지나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생긴다. 엄연히 독일의 사법체계가 있어
서 검찰이 기소해야 하는데, 그 기소권을 민간기 업에게 넘겨서 마치 사법적 행위를 취하도록 하
는 것까지 인식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가라는 질
문이 나온다. 세번째는 독일에는 방송 미디어 법들이 갖고 있 고, 그 법들이 상당부분 규제 중심으로 구성 되 어있는데 이중 처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런데 독일 내에서 논란과 이견이 많아 통과가 어 려울 것으로 전망된 이 법안은 일부 수정을 거 쳐 통과됐다. 2019년부터 이 네트워크 인포스먼트 로우가 적 용 되고 있고 다만 적용 대상을 모든 SNS사업자 가 아닌 가입자 200만명 이상 수준의 사업자로 규정을 했다. 이 때문에 정작 독일 내에서 자생 한 SNS사업자는 거의 포함이 안되고 글로벌 미 디어 기업들인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이 적용대상이 됐다. ‘패쇄형 플랫폼’ 카카오 폐혜 큰 한국
우리나라는 어떤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과연 가
짜뉴스가 적은가. 절대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
다. 그런데 가짜뉴스의 속성이 조금 다르다. 우
리나라는 전국민 SNS가 지금 카카오이다.
문제는 카카오의 특징이 개방형이 아닌 폐쇄형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휴대폰에 담겨져있는 지 인들에게만 적극적인 메세지를 보낼 수가 있는 구조이지 누구나 다 지나가다가 한 번 볼 수 있는
메세지들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공동체 구조 자 체가 굉장히 고밀도 상황에 폐쇄적 SNS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의도적인 메시지를 담아서 보내기 가 아주 용이하다. 앞서 소개한 서구 사회의 SNS 글로벌 미디어 기 업이 제공하는 SNS는 개방형이다 보니주로 경 제적 유입 요인이 강하게 작동하고 정치적 지향 적인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 sns는 경제적 유입도 강하지만 정치적 지 향을 통해서 지인을 나의 카테고리 안으로 끌어 들여 신념을 강화시키기 위한 컨텐츠들이 훨씬 더 많이유통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메 시지 유통은 폐혜가 클 수 밖에 없다. 신념이 강화되면 행동으로 나타나고, 행동이 강 화되면 일탈로 번진다. 그 과정에서 첫번째 단추 는 그 신념과 가치를 형성하는데 주어진 소스들 이다. 그런데 그 소스들이 정확하지 않다면, 의 도되고 왜곡된 소스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공동 노록해야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결론적으로 말하면 가짜 뉴스를 타파하고 노력 은 언론인들만 하는 것도 또는 정책당국자들이 법대로 하는것도 아니다. 하나의 캠페인성으로 수용자들 스스로 역량을 키우도록 함께 노략해 야 할 부분이다. 여기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 요성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송 통신 위원회 시청자 미디 어 재단 등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여 미디어 리 터러시 사업을 정책적으로 적극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 미디어 리터러시가 아직까지 매우 미 약한 수준이어서 단순히 학교 현장에서 또는 사 회 미디어 교육을 통해 그것을 추진하기에는 한 계들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디어기업도 이 리터러시를 함양하기 위해 뭔가 적극적인 움 직임을 펼쳐야 하는데, ‘리스판서블 미디어(re-
Illustration: 이덕일 / 세계한인언론인협회 (2)
리스폰서블 미디어포롬 (Responsible Media Forum) 이발행하는 보고서. 유 럽 지역에 있는 메이저 미디어 기업 약 30개 정도가 모여 사회에 책임있는 미 디어로서의 역할이무엇인가를 찾아나 서고 있다 그들, 리스판서블 미디어 포 럼이 내건 슬로건은 미러스 or 무버 스(Mirrors of Movers)인데 사회 현 실을 그냥 단순히 비춰주는 거울에 만 족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운반체 역 할을 미디어 기업에게 요구 할 것인지 를 스스로 답하면서 가자 라는 다짐을
미디어사가 ‘미디어 기업으 로서의 책임(CRL Corporate Responsibility)에 관하여 무슨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가?’ 와 같은 조사를 이 포럼에서 다 룬다. 2011년도 조사와 비교하 면 2018년 조사결과는 컨텐츠, 즉 기사 내용에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함을 인지하고 있는 변화를 나타낸다. (사진왼쪽) 가짜뉴스 팩트 체크 단계(사진 오른쪽)
미디어사가 ‘미디어 기업
으로서의 책임(CRL Corporate Responsibility)에
관하여무슨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가?’ 와 같은
조사를 이포럼에서 다룬 다.(왼쪽)
또한, 조사를 통해 사실을 보도하는데 예를들면, 환 경저해요소인 이산화탄소 배출을가장많이하는요인
을 조사한다. 오일회사들 사이에서도차이가 많이난 다 (사진맨왼쪽)
우리나라는 가짜뉴스의 속성이 조금 다르다. 해외 의 한인 언론사 상황 또한 비슷하다. 많은 국민 SNS가 카카오인데 이는 폐쇄형 SNS플랫폼이다. 즉, 적극적인 메세지를 보낼 수 있는 구조이다. 결국, 공공체 구조 자체가 굉장히 고밀도 상황에 폐쇄 적 SNS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의도적인 메세지를 담아서 보내기가 아주 용이하다. (사진 오른쪽)
sponsible media)’라는 개념을 적극 고려할 때 가 되었다. 언론인들이 미디어 리스판서빌리티 를 단순히 자신들의 취재활동을 통해서 사회에 뭔가를 기여하고 있다는 정도로 여기는 것은 얕 은 생각이다. 영국이나 북 유럽 여러나라들이 미디어 기업의
적극적인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면서 만든 것이 ‘
리스판서블 미디어 포럼’이다. 거기에서 리스판
서블 미디어라는 개념이 나왔고, 그 때가 2010 년대 중반 쯤이다. 포럼에서는 BBGC 등 유럽 지
역의 주요 미디어 기업 약 30개 정도가 모여서
자기들이 리스판서빌리티를 구현하기 위해 어
떤 적극적인 활동을 했는지 경험을 공유하고 내 용들을 발표한다. 특히 그 리스판서블 미디어 포럼이 내건 슬로
건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매년 바뀌지 않는 이 슬로건은 ‘미디어 기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미러스 혹은 무버스 (Mirrors or Movers)”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 사 회 현실을 그냥 단순히 비춰주는 거울에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 로 이동시키는 운반체 역할을 할 것인지를 스스 로 답하면서 가자’라는 다짐이다. O
‘토론’
좋아하는 독일인들, 질서 잘 지켜 코로나 극복
2019년 12월 어느 날 정체 모를 위험한 호흡기
계통의 병이 중국에서 나돌고 있다던 코로나19.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체가 발견되었고, 호흡기 를 통해 감염된다면서 감기와 같은 증상을 일으 키는 ‘별것 아닌 병’이란 풍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별것 아니라던 발표와는 달리 순식간에
아시아 전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모든 매체들이 무시무시한 여러 설명들을 붙여 아시아 상황을 경쟁하듯 보도했다.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마스
크 쓰기, 간격 두기, 손 씻기, 거리 소독 등 공포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분위기의 보도들이 일상 생활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선 마치 스릴 영화를 보듯, 우리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태연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2020년 1월 30일 세계 보건기구(WHO)가 코로 나19는 팬데믹(유행병)이라는 발표와 함께 프랑 스에서 2건의 감염자가 나타나자 유럽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지만 아쉽게 도 한발짝 늦었다. 이어 대책본부에서 내 놓은 코로나 방어의 가장 기본인 마스크 쓰기가 실현되지 못했다. 그 흔한
마스크 한 장이 독일 전역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비상사태에 잘 대처하는 사람들이 한국인
이라는 평가를 받듯, 한인사회는 손수 만든 마스
크를 가족과 다니는 독일 교회들에 나누어 주기
도 했다.
독일이나 유럽 사람들은 별의별 이유로 데모를
자주한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소수의 의견
도 의견으로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이런 비상사
태에도 경찰의 보호 아래 데모하는 사람들을 보 니 복장이 터졌다.
‘마스크 쓰기’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라면서 반대 데모까지 일어 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 다. 결국 백신접종 반대, 봉쇄 반대 등 ‘반대 데모 대들’ 소식까지 언론매체들이 대서특필하여 혼 란을 더 키웠다.
독일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 중 하나는 ‘토론’ 이다. 평소에도 TV프로그램 중 토론이 빠질 때 가 없다. 판데믹과 관련한 전문인들의 토론은 그 야말로 넘쳐났고 언론들은 쉼 없이 보도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 누구도 예측 못했던 살인마 코로나19는 그야 말로 죽음과 연결된 살인마였다. 이런 공포의 살 인마에 대하여 정확하지 않거나 걸러진 정보가 아닌 것들까지도 보도하여 혼동을 가져오는 경 우도 있었지만 언론매체들은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슬프고 혹독했던 것은 이태 리의 베어가모(Bergamo) 사태다. 죽는 사람들 이 너무 많아 관까지 모자라 관에 넣지 못하고 커다란 트럭에 실려 매장지로 가던 수많은 트럭 들의 행진... 이 광경이야말로 코로나가 남긴 잊 혀지지 않는 지구촌의 아픔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독일의 비상대책은 매우 긍정 적이라고 평가한다. 어느 나라 보다 잘 대처하 지 않았나 생각한다. 48년이란 오랜 정착 생활 을 통해 경험한 독일인들은 고지식할 정도로 정 직하고 질서를 잘 지킨다.
고직순 기자| 한호일보 편집인
정부 차원에서 가짜뉴스 다루는 호주 정부
[심포지엄
가짜뉴스에 대한 지금까지 호주 정부의 대응은 2018년 6월 의회를 통과한 ‘외국간섭법(foreign interference laws)’을 통해 호주 선거의 신뢰성 위협에 대처하는 태스크포스를 신설한 것 등이다.
이 태스크포스는 사이버 간섭과 관련한 선거제 도에 대한 공격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됐는 데, 선관위, 예산부, 내무부, 호주사이버안보센 터(Australian Cyber Security Centre) 관계자 등으로 구성됐다.
2018년 제정된 ‘국가안보법개정법(스파이 및 외 국 간섭) 2018년’에 새로운 외국간섭 범법행위 를 처벌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외국 정부를 대리해 호주 연방 및 주/준주의 정 치, 선거 또는 행정 절차에서 위법 행위를 하는 사람으로 처벌 대상을 확대했다.
호주선관위(Australian Electoral Commission: AEC)는 2019년 연방 총선과 관련해 ‘소 셜미디어 이해 켐페인(social media literacy campaign)’을 전개했다.
소비자 공정거래 감독기관인 ACCC(Australian Competition and Consumer Commission: 호주 경쟁 및 소비자위원회)는 2017년 12 월 이후 디지털 플랫폼의 전통적인 미디어에 대 한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이에는 양질의 뉴스 와 저널리즘에 대한 영향, 뉴스 신뢰도 등이 포 함됐다.
ACCC는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가짜뉴스 관련 이슈(사이버 조작, 소셜미디어 봇, 외국간섭 사
례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2016년 총선에 서 사이버 조작 증거는 없었지만 ACCC는 대 응책으로 호주통신 및 미디어감독원(Australian Communication and Media Authority: ACMA) 신설을 제안했다.
호주 선거에서 ‘가짜뉴스 논란’은 군소 정당 중 하나였던 UAP(United Austraila Party: 연합 호주당)의 선거 광고와 관련됐다.
정치적으로 강경 보수 성향인 UAP는 2019년 4 천만 달러, 2022년 6천만 달러 이상 광고비 지 출했다. 광고 내용 중 여당이나 야당을 공격한 내용이 일부 과장 또는 가짜뉴스라는 비난을 받 았다. 선관위의 경고를 받은 내용도 있는 것으 로 알려졌는데, 구체적안 위반 사항은 공개된 바 없다.
UAP는 호주 10대 부호인 광산 재벌 클라이브 파머(Clive Parlmer)가 창당한 군소 정당이다. 현재 상원(총 76석)에서 단 1명이 UAP 소속이 다. 극우성향으로 인종차별적 과격발언, 코로나 규 제 반대 음모론 등 의회에서 자주 논란을 일으 킨 장본인 중 한 명이었는데, 자유국민당을 탈당
하고 극우성향 군소정단인 폴린 핸슨의 원내이
션 상원 후보로 2022년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 선했다.
코로나 록다운, 백신 접종 등 보건 규제에 반대
하는 극우단체에서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유포
한 음모론이 대표적인 가짜뉴스 사례로 지적된 다. 특히 조지 크리스튼센 전 자유국민당 연방
하원의원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기후변화의 위험성 주장이 가짜 뉴스라고 공격하며 석탄산업의 확대를 강력 촉 구했다. 총선, 기후변화, 선거 외에 가짜뉴스가 종종 유 포된 대상은 이민자/난민 관련으로 극우단체에 서 주장한 인종차별적 비방이 대부분이었다. 호주에서는 ‘가짜뉴스 사태’가 상대적으로 심각 하지 않거나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지 못했다 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점에서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 대응에서도 초기 단계에 있다. 그러나 호주도 소셜미디어 기업의 콘텐트 공유 책임 범위, 이런 책임을 강제하는 적절한 메커니 즘, 사용자의 공유 책임 등과 관련해 해외 사례 를 참조하며 향후 보다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 해야 할 것이다. O
미국 팬데믹 언론의 현실… 가짜뉴스 속 나침반 같은 매체 돼야
기자| 애틀랜타 K뉴스 대표 [심포지엄 토론] 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한 정보 제공이 관건 가짜뉴스의 전염병 같은 유행 현상을 인포데믹(Infodemic)이라고 부른다. 인포데 믹 현상은 미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고, 심지어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목숨 을 잃는 사례까지 발생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미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디어가 존재한 다. 특히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레딧 등 전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모두 미국
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 당
시 가장 많은 가짜뉴스가 유통된 곳이 바로 미 국이다. 이 같은 가짜뉴스의 전염병 같은 유행 현상을 인 포데믹(Infodemic)이라고 부른다. 인포데믹 현 상은 미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고, 심 지어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례까 지 발생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가장 위험한 예는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클로락 스(표백제)가 코로나를 치료한다’는 등의 잘못된 의학정보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사회도 이같은 가짜뉴스 의 직접적인 피해를 겪고 있다. 팬데믹이 한창이 던 당시 “대형 한인 마트 직원들이 집단으로 코 로나에 감염됐다”라는 식의 루머가 소셜미디어
와 일부 한인언론을 통해 유포되면서 비즈니스
에 피해를 준 것은 물론 해당 마트를 방문한 한인 고객들을 공포에 빠뜨리기도 했다. 여기에 잘못 된 치료정보, 코로나 유포를 둘러싼 음모론 등이 난무하면서 한인사회가 몸살을 앓았다.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하게 한인들을 괴롭힌 것은
바로 ‘차이나 신드롬’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 국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미국에 유입됐다
는 정보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중국계 와 외모가 비슷한 한인들까지 집단적인 괴롭힘 에 노출됐다. 팬데믹 기간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 계에 대한 인종 혐오범죄가 2.5배 이상 증가했 고, 일부 한인들은 신체적인 위협을 당하고 어 린 차세대까지 차별적인 행위에 시달렸다. ‘ Go back to your country ’, 즉 ‘ 네 나라로 돌 아가라’ 는 말을 미국시민이 된 한인들이 들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곡된 정보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통된다. 소 셜미디어가 가장 큰 통로이긴 하지만, 아예 일부 극우 미디어는 이러한 정보를 사실인양 보도하 기 때문에 더욱 극심한 혼란을 야기한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같은 가짜뉴 스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거짓이 진실을 가리는 상황이 여전히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한인 미디어로서 새로운 역할을 찾기도 한다. 토론자가 운영하는 <애틀랜타 K>의 경우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3월부터 접속자와 페이지뷰가 갑자기 10배 이 상 증가했다. 대다수 독자들은 잘못된 정보가 너 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침반 같은 매체를 찾 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객관적이고 검증가능 한 정보를 선별하고 가공해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가짜뉴스의 시대에서 오히려 미디어 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 망을 본다. O
| 경남대 명예교수
다양한 ‘가짜뉴스’, 팩트체크는 언론 내부에서 직접 챙겨야
[심포지엄
2018년, 이완수 교수는 “가짜뉴스(fake news) 란 무엇인가? - 가짜뉴스 개념과 범위에 대한 다차원적 논의”라는 제목으로 가짜뉴스의 개념 과 범위를 한국 정치사회 환경과 관련지어 정의 하고 법률적, 저널리즘적, 기술적, 정치사회적 관점에서 가짜뉴스의 의미와 타당성을 통합적 으로 논의하였다. 그의 연구결과는 다음의 5가 지로 요약된다. ,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 가짜뉴스가 성립되기 위한 개념적 조건은 정 보의 허위성, 의도성, 형식성이다. , 가짜뉴스 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권 차원에서 최소화되어 야 한다. , 가짜뉴스는 정파적 갈등과, 이념적 대립이라는 정치사회적 토양위에서 작동하는 ‘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현상’이다. ,가짜뉴스는 확증 편향성, 부정적 편향성, 그리고 동조화 폭 포현상과 같은 심리적 기제를 통해 집단 극단화 되는 양상을 보인다. 유네스코는 2018년에 “저널리즘, ‘가짜뉴스’와 허 위 정보: 저널리즘 교육 및 훈련 핸드북”을 발간 하였다. 유네스코가 발간한 이 자료는 디지털 시 대에 저널리즘에 종사하거나 저널리즘을 가르 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기적절한 자료이자 교 범이다. 유네스코는 정보(뉴스)를 3가지로 분류한다. 그 기준은 의도적인가에 따라 다음의 3가지로 분류 하고 있다. 허위정보(disinformation), 오보성 정보(misinformation), 악의적 정보(malinformation) 유네스코는 이러한 가짜뉴스에 대응하 기 위한 지침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우선 ‘뉴스 미디어는 직업 기준과 윤리를 중시하 는가?’하는 물음이다. 이어지는 질문은 확인되
지 않은 정보의 생산을 피할 수 있고, 일부 사람 들의 관심을 끌기는 하지만 공중의 이익과 관련 없는 정보와 거리를 둘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디어는 공중이 관심을 갖는 사안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와 교양 있는 논평을 제공하는 전문적
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 지향이 어느 쪽 에 있든 상관없이 모든 뉴스 조직과 저널리스트 는 허위정보와 잘못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혹 은 부주의한 방식으로 유포해서는 안 된다. 취재원의 의심스러운 주장을 검증하는 저널리 스트의 업무를 외부의 팩트 체크 전문 조직에 넘 겨주어서는 안 된다. 조직 내부에서 팩트를 체크 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가? 이 일을 간과하면 나중에 사과하거나 책임을 지거나 망신당할 일 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뉴스 조직과 저널리스트는 허위정보와 잘못된 정보를 유포 하였다면 이를 즉각 정정하여야 한다. 미디어가 소셜 메신저나 이메일을 통해 수면 밑 에서 유포되는 허위정보를 폭로해 보도하려 할 경우 ‘클라우드 소싱’은 매우 중요하다. 진실, 사 실의 검증과 판단이 가능한가? 출처나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검증 없이 보도하는 것은 주요 언론이 할 일이 아니다. 보도의 신속성 보 도는 정확성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끝으로 ‘악
의적인 SNS는 어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최근에 논란이 있었던 한 보도(바이든, 날리면)에 대해 생각해 볼 점을 제시하였다. 구체적인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이 보도로 제공된 정보의 정확성(사실여부)을 다 음의 관점에서 짚어보는 것이 좋겠다. , 발생(일시 장소) , 당사자와 관계자 , 워 딩에 대한 자막의 사실여부 , 미디어 내부에서
팩트 체크 여부 , 정보의 허위성, 의도성, 형
식성은?
그 밖에 생각해 볼 문제로 , 대통령이 공인, 사 인일 때 , 대통령의 비속어 표현 , 이 보도가 국익과는 어떤 관계인가? 또 악의적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과 논거는 무엇인가 등이다. 가짜뉴스는 개인, 사회 집단, 조직 또는 국가에 해를 끼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허위로 생성된 정 보이다. 오보는 거짓이지만 피해를 줄 의도로 생 성되지 않은 뉴스를 말한다. 악의적인 보도는 사 실에 근거하여 개인, 사회단체, 조직, 국가에 위 해를 가하는 정보이다. 사실 가짜뉴스로 넘쳐나 고 있지만 단속이나 처벌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 가능한 사정이다. 그러나 주요언론사는 스스로 명예를 지켜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독자와 시 청자는 스스로 분별력을 키워나가야겠지만 쉬 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감시기구의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한다. O
약 3만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작은 군(郡)이지만 연간 1천 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대한민국 ‘내륙관광 1번지’다. 주요 관광지로는 잘 알려진 단양팔경을 비롯 만천하스카이워
크(짚와이어, 알파인코스터, 만천하슬라이드), 단양강 잔도, 수 양개선사유물전시관, 수양개빛터널, 온달관광지, 구인사, 이 끼터널, 장미터널, 고수동굴 등이 있다. 패러글라이딩과 래프 팅 등도 즐길 수 있어 연중 많은 외지인들이 단양군을 방문하 고 있다. 12, 13일 경북 영주시에서 2박을 하며 영주세계풍기인삼축제 를 참관하고 부석사, 소수서원 등을 방문한 세언협 회원들은 14 일 오전 영주시와 인접한 단양군에 도착했다.
[2022 세언협가을대회팸투어]
볼거리 풍성한 ‘선비의 고장’ 영주를 찾다 글: 이석수 기자/ 한국(단양)=세언협공동취재단 사진: 이석수 기자
소백산 수려한 풍광, 곳곳에 선비의 여유로움 서려- 2022 세계한인언론인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30여명의 회원들은 서울에서 심포지엄을 마치고 13일부터 지방 팸투어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달려간 곳은 선비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경상북도 영 주시다. 때마침 영주시에서는 2022 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가 열리 고 있었다. ‘인삼, 세계를 품고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지난달 30일 개막해 오는 23일까지 24일간 영주 풍기인삼문화팝업공 원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 영주의 자랑 풍기인삼과 영 주의 다양한 향토문화를 엿볼 수 있다. 박남서 영주 시장은 12일 저녁, 영주 시내 한식당에서 가진 환 영 만찬에서 “대한민국 전체를 볼 수 있는 영주에 오신 세계한 인언론인들을 환영한다”라고 인사말을 전하고 “영주 안동 봉화 를 중심으로 몇백년에 걸친 유교문화권인 이곳에는 우리 선조 들의 얼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라고 영주시를 소개했다. 박 시장은 “명산 소백산의 정기를 가득 품은 영주는 풍수가 빼 어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풍기인삼을 비롯, 농 산물들이 잘 자라나는 곳”이라며 “때마침
”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다음 날인 13일 세계한인 언론인들은 ’2022 영주세계풍기인삼 엑스포’가 한창인 영주시 풍기인삼문화팝업공원을 시작으로
무섬공원과 선비세상, 부석사와 소수서원, 선비촌 등을 둘러보 고 영주시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었다. 느리게 걷는 도시 영주, 선비의 고장
선비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경상북도 영주시는 중앙선·경북 선·영동선 철도가 통과하는 소백권과 태백권 교통의 중심지 다. 단양, 안동, 예천, 영월 등과 접해있어서 다른 도시와 묶어 여행하기도 좋지만, 하루 종일 영주시를 느리게 걸으며 둘러보 는 것도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도시다. 경상북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영주시는 해발 약 200m로 남북 이 길고 동서로는 협소하며, 토질은 대부분이 사질양토로 각종 농산물이 잘 자란다. 특히 북부 산악지대는 사양토이기 때문에 배수가 잘되어 인삼, 사과 등의 생육에 적절한 곳이다. 화엄종의 근본 도량인 부석사와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금성대군의 충절이 서려있는 금성대군 신단, 삼국시대를 읽을 수 있는 순흥벽화고분, 물 위에 뜬 연꽃모양의 무섬마을 등 많 은 전통문화 유적과 얼이 깃든 곳으로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선 비정신을 새길 수 있는 고장이다.
여기에 성리학의 비조이자 선비정신의 원류인 회헌 안향선생 이 말씀하신 여섯가지 실천덕목인 안자육훈(安子六訓)을 토대 로 현대적인 선비정신 실천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선비정신의 중심지이다.
항일의병, 독립운동 등으로 국가위난의 시기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의(義)를 실천한 고장이다. 또한 문과 급제자 수 전국 4위, 지역규모로 따지면 전국 최고 수준으로, 지역민들 의 자긍심이 대단하다. O
■ 무섬마을
영주 팸투어 일정중 처음으로 들린 곳은 외나무다리로 유명한 무섬마을이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 리’의 우리말 이름이다. 삼면을 휘감아 도는 내성천을 따라서 은백색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주변의 얕은 산의 풍경과 전통가 옥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여유롭게 걷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곳곳에 피어있는 꽃과 강을 보면서 천천히 걷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실제로 마을 주민들이 살고 있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고택 을 둘러보기 좋았고, 체험관에서는 각종 전통문화도 체험할 수 있고 마을 모든 고택에서 숙박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 이다.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면, 인근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 전거를 빌려서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무섬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외나무다리다. 30년 전에 육지 와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 이 외나무 다리가 마 을과 외부와의 유일한 통로였다. 마을에는 두 외나무 다리가 있 는데, S자로 뻗어있는 외나무 다리가 운치있고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중심을 잡으며 다리를 건너는 모 습이 정겹기만 하다. ■ 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 다음으로 달려간 곳은 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 현장이었다. “인삼, 세계를 품고,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2022년 9월 30 일부터 10월 23일까지 24일간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인삼문화 팝업공원 일원에서 2022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가 열리고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은 고려인삼의 최초 재배지로 알려져 있으며, 태백산 및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 고원지역에 위치하 고 있다. 이 때문에 일교차가 크고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과 대 륙성 한랭기후, 배수가 잘되는 사질양토에서
거리, 먹을거리 그리고 여러가지 문화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사진 왼쪽) 물 위에 뜬 연꽃 모양을 한 무섬마 을, 반남 박씨, 선성 김씨의 집성촌 인 이곳은 영주 일대에서 알아주 는 반촌으로삼면을 휘감아 도는 내
성천을 따라 은백색 백사장과 얕
은 산의아름다운 자연과 고색창연
한 50여 고가가 어우러져 고즈넉
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어 번잡한 도 심을 벗어나 느긋하고 한가로운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사진
영주는 예로부터 학문과 예( )를 숭상했던 선비문화의 중심지이 며, 선비촌이 조성되어 있는 순흥 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였 던 회헌 안향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선비촌은 오늘날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선비의 정신과 태도를 새롭게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하고자 영주시 순흥
면 청구리 일대에 건립되었다. 선 비촌은 영주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공 간을 그대로 복원하였으며 그들 의 정신을 담은 수신제가(修身薺 家), 입신양명(立身揚名), 거무구안(居無求安), 우도불우 빈(憂道不憂貧)의 4가지 구역 으로 조성되었다. 전체적으로 마을 공동체 형태로 구성하여 옛 영주 선비들의 생활 모습을 입체 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였으며 각 가옥별로 거주했던사람들의 신 분에 맞는 가옥 규모에 여러 가구 와생활도구를 전시하였고, 선비 의 일생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직·간접체험 공간을 제공한다. (사진 왼쪽 위)
십승지란 천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에 좋은 10군데를 말한다. 그래서 예부터 비결을 쫓는 사람들이 전국 각처 에서 모여들었다. 또 이 길 주변은 인삼시파지로 유 명합니다. 조선 중종조 주세붕은 인삼재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이곳을 지목하고, 채취한 산삼종 자로 인삼을 처음 재배하였다 한 다. 소백산이 어머니의 치맛자락 처럼 감싸주는 사람이 살기에 가장 편안한 자락길이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이 길 은 봄에는 사과 꽃이, 여름에는 인삼딸이(열매), 가을에는 빨간 사과가 온누리를 색칠하는 예 쁜 길이다. (사진 왼쪽 )
이번 엑스포에서는 전시, 교역, 컨퍼런스, 이벤트, 체험, 관광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다채롭게 꾸며지고 있다.
전시관은 주제관, 생활과학관, 인삼미래관 등 6개관을 운영하 고 포럼, 학술회의, 토크콘서트와 각종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한국무역인협회 회장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희범 경북 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진두지휘하고 있다.
■ 부석사
다시 차로 2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영주의 대표 관광지인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왕명 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매표소를 지나 20분 가까이 걸어서 올라가면 천왕문이 나오고 그 문을 지나면 부석사가 보인다. 불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 데, 이 바위는 아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 돌’이라고 한 데서 부석사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부석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무량수전이다. 무량수전은 간결하면서도 웅장하여 우리나라 목조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천 년의 세월
이 살아 숨 쉬는 것과 같다는 무량수전은 우아한 자태를 자랑한
다. 특히 무량수전 앞에 서면 소백산맥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 는 절경이 펼쳐진다.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산책하기 좋게 길이 나있는데, 그 중에 서도 특히 삼성각으로 내려가는 돌길이 아름다워 사진 찍기에
도 좋았다.
무량수전 외에도 부석사에 많은 문화재들이 존재한다. 2018 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 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 선비세상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선비의 고장에 걸맞게 최근 개장한 선비 세상 한류체험관이다.
전세계적으로 K-문화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영주시는 7 년간에 걸쳐 선비세상이라는 한류문화 체험관을 최근 개장했 다. K-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으며, 우리 옛 선조들에 대한 흔 적을 고루 경험하도록 만들었다.
조선의 선비처럼 자고, 입고, 먹고, 익히고, 즐기며 선비정신을 함양하고 K문화를 널리 알리는 목적으로 조성된 선비세상은 6 개의 K문화(한옥, 한복, 한식, 한글, 한지, 한음악)란 주요 테마 로 구성돼 있다.
영주의 선비정신과 삶을 폭넓게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K-문화 테마파크인 셈이다. 이곳은 단순한 한옥마을처럼 보 이지만 각 촌마다 테마에 맞는 체험과 관람 공간이 배치돼 있 고, 콘텐츠는 첨단매체를 통해 상호작용을 하도록 한 것이 특 징이다.
선비가 그렸던 구구소한도와 난을 터치스크린으로 그릴수 있 고 풍속화속에 나의 모습을 담아 이메일로 받아볼 수도 있다. 영주 도령이 선비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18m 길이의 전통인 형극도 관람할 수 있다. 개장 초기라 아직은 평가하기 어렵지만, 너무 반듯이 조성된 콘크리트 길은 우리 옛 고을의 풍류를 느끼기에는 다소 아쉬 움이 있었다.
■ 소수서원 . 선비촌
다음으로 향한 곳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소수서원이다. 소 수서원은 선비촌과 이어져 있다.
중종 38년(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워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 소수서원은 수많은 유생들을 길러내었 고 소중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원래 이름은 백운동 서원이었지만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 로 재임하면서 건의하여 왕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공인된 사립 고등교육기관이 되었다. 한국 최초의 사립대 학교인 셈이다. ‘소수’라는 말은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닦게 하였 음’이란 뜻으로, 학문 부흥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문인 지도문으로 들어서면 유생들이 강의를 들었던 강학당, 숙박을 했던 직방재 등을 볼 수 있다.
조용한 분위기의 서원에서 공부하는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며 걸을 수 있었다. 영정각에는 소수서원을 나온 주요 인물들 의 영정이 보관되어있으며 소수서원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모 아놓은 사료관이 있어서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소수서원을 다 구경하고 나오면 잔디공원이 나오는데, 다리 하나를 건너면 바로 선비촌과 이어진다.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둘러싸고 낙동강의 원류인 죽계천이 흐 르고 있어 꽃과 어우러진 경치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선비촌은 우리 민족의 생활철학이 담긴 선비정신을 거양하고 전통문화를 재조명하기 위해 재현해낸 마을이다. 떡메치기, 전 통혼례 시연, 천연 염색, 국궁체험 등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 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고택에서 숙박체험도 가능하다. 조선시 대 마을을 그대로 복원해 ‘추노’, ‘공주의 남자’, ‘해를 품은 달’ 등 다양한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소수서원&선비촌을 마지막으로 하루 동안 영주시를 돌아보았
다. 명산 소백산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유서 깊은 사찰과 서
원들, 걷기 좋은 무섬마을까지!
‘힐링 중심, 행복 영주’라는 영주시의 슬로건처럼 지친 마음을
제대로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쁜 일상에 지쳤다면, 주말 하루쯤은 어느 곳에서든 힐링이 가능한 영주에서 느리게 걷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O
영주 팸투어 일정중 처 음으로 들린 곳은 외나 무다리로 유명한 무섬마 을이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 는 ‘수도리’의 우리말 이 름이다. (사진맨 왼쪽)
부석사에서 가장 유명 한 곳은 바로 무량수전 이다. 무량수전은 간결 하면서도 웅장하여 우리 나라 목조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 다. 부석사에 많은 문화 재들이 존재한다. 2018 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 원’이라는 명칭으로 유 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사 진 왼쪽)
[영주 감상기] 부석사 무량수전과 소수서원 추체험(追體驗)
‘호흡할 수 있는 모든 걸 사랑해야지. 만나는 이 모두를 포옹하 고, 마주치는 눈빛들에 따스함으로 인사해야지’
코로나 팬데믹이 극성을 부려 숨막히는 세월이 계속되면서 수 없이 되뇌이던 속말이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2년도 훨씬 더 지
난 뒤 고국을 방문하고서야 이뤄졌다.
광화문에서 조우한 그리운 얼굴들과 함께 3시간 여를 달린 끝 에 목매 보고 싶었던 영주를 흐르는 산안개 속에서 만났다.
언젠가는 기어코 만나 말을 걸고 싶었다. 우연히 오다가다 이뤄 지는 만남이 아니라, 먼저 찾아가서 눈 맞추고 손 맞잡고 싶었 다. 교과서 속 사진과 리듬으로만 체험해온 영주 ‘부석사/무량 수전’을 오체(五體)로 느끼며 그 의미를 곰씹는 추체험(追體驗) 을 하고 싶었다. 까마득한 초등생 시절부터 우리는 ‘부석사/무량수전’을 리듬으 로 간직하며 살았던 터였다. 반공교육 시절, 토끼와 발맞추며 살던 촌놈에게 ‘북진/ 통일’ ‘개나리/진달래’ 외에 ‘부석사/무량수
전’만큼 짝을 이뤄 리듬으로 기억된 단어는 결코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30분여를 올라가 만난 부석사 무량수전은 화려
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난하지만 고결한 선비의 아내처럼 수
수하고
조금씩 가늘게 한 배흘림 기둥으로 시각적 안정감을 주고, 처 마를 넓게 하여 웅장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라고 한다. 하지만 편안함은 부석사 무량수전 스스로가 갖춘 전통적 조형 미나 건축양식에서만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부석사는 해남 대 흥사나 김제 금산사 만큼이나 뒷배경과 산세가 고즈넉하지만, 이 역시 편안함의 전부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답은 소백산에 있었다. 양지바른 명당에 터잡아 있을 지라도 저 멀리 소백산맥이 겹구름 병풍을 쳐 주지 않았다면 부석사 무량 수전은 그저 수수함으로만 남아있지 않았을까. 부석사 무량수전이 일찌기(1962) 국보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르게 것은 ‘나홀로’ 된 것이 아니었다. 인간 관계에서 ‘나의 나됨’이 나만으로 되지 않듯, 자연도 마찬가지. 어울림이야 말로 부석사 무량수전의 가치를 한층 높였을 터였 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인근에서 촬영했다는데, 소백산은 천년 고찰을 품은 명산이다. 영주에는 부석사 무량수전과는 사뭇 결이 다른 ‘선비세상’이 있다.
무려 1600억원을 들여 최근 개장한 선비세상은 한옥, 한복, 한 지, 한글, 고전음악 등의 테마로 엮어진 우리문화 전시 체험장 으로 지나치게 꾸민 흔적이 많아 막 부석사를 거친 사람에겐 인
지부조화(認知不協和)를 안겨주기 십상이다. 거리나 주택 안쪽 마당, 심지어 전통적안 한옥의 특징인 토방(土房)조차 시멘트 로 처리해서 선비가 살았음직한 마을로 보기 힘들 지경이다. 너무 깔끔을 떨면 사람이나 자연이나 불편함을 안겨주기 마련 이다. 영주 고적들이 빛이 나는 이유 하지만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영주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소수서원일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산맥과 조화를 이룬 영 주의 보고(寶庫)라면, 순흥면 소백리의 소수서원은 산 아래 수 목 지대와 어울린 보고라 할 수 있다.
소수서원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고 2019년 ‘한국의 서원 (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날잡아 천천히 돌아보아야 할 소수서원은 곳곳에 깔린 고적 이름만으로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행단(杏壇]), 취한대(翠寒臺), 백운동(白雲洞), 소혼대(消魂 臺), 성생단(省牲壇), 홍전문(紅箭門), 강학당(講學堂), 직방 재(直房齋), 학구재(學求齋), 제월루(霽月樓), 탁영대(濯纓臺), 장서각(藏書閣), 전사청(典祀廳), 영정각(影幀閣), 석간천(石 間泉), 세연지(洗硯池), 활인심방(活人心方) 등.
소수서원은 1541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다음해 이곳 출신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祠廟, 왕이 제사를 드 리는 사당)를 설립하였고, 1542년 유생 교육을 겸비한 백운동 서원을 설립한 것이 효시를 이룬다. 특히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 에 널리 알리기 위해 조정에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賜額, 임 금이 사당, 서원, 누문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 는 것)과 국가 지원을 요청했다. 1550년에는 ‘소수서원(紹修書 院)’이라 사액되었고, 따라서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소수서원은 공인된 교육기관으로 이후 다른 서원들의 설립과 운영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는 서원이 단순한 향사 와 교육 기능 수행만이 아닌, 지방 사림들의 정치.사회 활동에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름들을 들먹이며 고적에만 눈을 돌리고 수첩 을 꺼내 드는 것은 소수서원에 크게 실례를 범하는 것이다. 소 수서원 곳곳에서 훈장 냄세만 맡는 것은 저 멀리에 소백산맥을 보지 않고 부석사를 보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실제 소 수서원은 연조 쌓인 숲으로 둘러싸인 곳이니, 제맛을 느끼려면 숲과 함께 고적을 보아야 한다. 애당초 우리 조상들은 뭔가를 축조하기 전에 터를 잡는데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았다. ‘풍수지리’를 그저 음양오행에 따 른 미신적 구복(求福) 전통으로 여긴 것은 생각이 짧은 후손들 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련히 알아서 사찰과 서원들을 축조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국 곳곳의 역사 유적지들을 인문학적 생태를 기초로 소개하는 것은 크게 실수하는 것이다. 문화 해설사의 열 성을 설풋 무시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 루를 심은 선조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자는 것이다. 주변에 기묘한 형태로 군집을 이룬 소나무와 은행나무 숲을 거 닐자니 일찍이 소수서원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린 유네스 코 탐사자들의 자연생태적 안목이 뛰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부 석사든, 소수서원이든 자연과의 어울림이 없었다면 삭막한 절 간이나 공맹 소리만 들려오는 공부방에 불과했을 터. 선조들의 자연생태에 대한 천년 안목과 지혜에 경탄을 표한다. 부석사와 소수서원에서 즐기는 생태관광은 미국의 그랜드 캐 년이나 예로우스톤 관광과는 단연코 차원이 다르다. 일차원과 이차원의 차이라고나 할까. 천년의 정신과 가치를 담은 고찰 과 서원이 자연과 어우러졌을 때 나오는 그 질박함을 어디에 비할손가. 부석사와 서수서원을 오르내리며 뭔가 한마디 해야겠는데, 대 체 말도 안나오고 머릿속도 운무로 가득차고 말았다. 태백산맥 한 자락을 묘사하기 위해 세 페이지나 할애한 소설가 조정래는 얼마나 걸출한 인물인가.
섣부른 묘사는 진실을 왜곡하고 오도하기 싶상이려니. 그저 예 를 갖추어 ‘산은 산이고 물이로다’ 선문답을 되뇌이다 짐짓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아이고, 여그서 팍 주저앉아 살았으면 좋것네!”O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 자 사학(私學)기관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 珦)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 38년(1543)에 유 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하였다. 명종 5년(1550)에 는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에 의해 ‘소수서원’이라 사액을 받고 나 라의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중종 39년(1544)에 안축(安 軸)과 안보(安輔)를 제사지냈고, 인조 11년(1633)에는 주세붕 을 더하여 제사지냈다. 서원의 건물은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었는데 일반적인 서원 의 배치가 완성되기 이전인 초기의 서원이기 때문인 듯하다. 정 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 하는 일신재와 직방재가 연속으로 있다. 서원의 일반 배치가 강 당 좌우에 대칭으로 동·서재를 두는 것인데 비해, 소수서원은 현판의 이름으로서 구분하였다. 사당은 명륜당의 서북쪽에 따로 쌓은 담장 안에 있다. 서원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의 절인 숙수사가 있었는데, 그 유적으로 당간지주와 초석 등이 남아있다.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후기에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지금도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서원은 조선 사회에 성리학이 정착하면서 사림 세력이 지방에 설립한 사립 고등교육기관이 다. 서원은 성리학을 연구하며 인재를 교 육하는 강당이 있는 강학 공간, 존경하 는 스승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 는 사당이 있는 제향 공간, 그리고 유 생들이 시를 짓고 토론도 벌이며 휴 식하고 교류하는 유식 공간으로 구성 되었다.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인격을 갈고닦는 인 성교육에 중심을 두었다.
유네스코 지정 소수서원 분포(지도참조): 소수서원(영주), 남계서원(함양), 옥산서원( 경주), 도산서원(안동), 필암서원(장성), 도동 서원(달성), 병산서원(안동), 무성서원(정읍), 돈암서원(논산). 영주 소수서원(사진위 왼쪽, 선비세상(사진 위)
시대
도산서 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의 9개 서원이 2019년 7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 국의 서원’이란
산이 감싸고 물이 보듬은 단양은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입니다. 그중에서 최고로 꼽는 것이 바로 단양팔경이지요. 단양이 품고 있는 여덟 개의 보물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마음 흔들어 놓는 비경입니다.
만천하가 봉의 하늘길에 오르면 단양의 참모습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옥빛 물길과 사방으로 둘러친 명산 어디 하나 덧대거나 뺄 게 없습니다.
2022 세언협 가을대회에 참가한 회원들은 14일 팸투어 탐방지인 충북 단양군(김문근 군수)을 방문해 단양팔 경 등 천혜의 관광 환경을 눈으로 확인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동포 언론인들을 환영한 김대열 단양문 화원 원장은 “단양은 연간 1천만 명이 방문하는 대한민국 내륙 관광 1번지”라고 소개하고 해외 동포사회에 단양을 적극 홍보 해줄 것을 당부했다.
언론인들은 단양의 명승지인 도담삼봉(島潭三峰) 일대를 둘러 보며 단양팔경 관광을 시작했다. 남한강 가운데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주변과 아울리면 서 빼어난 절경을 보여주는 도담상봉은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곳으로, 단양 군수를 지낸 이황을 비롯하여 김정희, 김 홍도 등이 많은 시와 그림을 남긴 곳이다. 조선시대 개국공신 인 정도전이 자호를 삼봉으로 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고 전 해진다. 이어 한국 최대 규모의 강물 어류 자원을 자랑하는 다누리 아
쿠아리움을 관람했다. 이 수족관은 관람객들에게 한국에서 가
장 많은 종류의 다양한 민물 생선을 보여주면서 수자원 환경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언협 언론인들은 단양강 잔도(棧道)를 걸은 뒤 만천하스카이
워크에 올라갔다. 잔도는 바위 절벽 옆에 붙어있는 길을 트래킹
코스로 만든 것이다. 한국의 1호 잔도인 단양강 잔도는 만학천
봉 절벽에 세운 1.12km 데크길로 강 위를 걷는 듯한 스릴을 느
낄 수
광객 뿐 아니라 지역 주민 산책로로 활용되고 있다. 만천하스카이워크는 만학천봉 아래 단양 전체를 조망할 수 있 는 스릴 넘치는 전망대로 많은 인파가 몰리는 관광 명승지가 됐 다. 평일인 14일에도 관광객과 학생 등 많은 사람들이 마치 줄 을 잇듯 전망대에 올라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관람했다.
스카이워크 외에 짚와이어 알파인 코스터, 만천하슬라이드 등 레저시설까지 갖춘 체험형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언론인들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 지역이 된 구 단양(현재 단양 군 단성면)을 지나 단양 장회나루 선착장에서 충주호 유람선에 탑승했다. 단양군, 충주시, 제천시에 걸쳐 있는 인공 호수인 충 주호(청풍호)는 소양강댐이 있는 소양호(29억톤) 다음으로 담 수량이 두 번째로 큰 호수(약 27억톤)다. 이 선착장에서 유람 선 외에 도선(여객선)이 장회, 청풍, 월악, 충주 선착장 등을 운 항한다.
이어 유람선을 타고 선착장을 떠나 1시간동안 제비봉, 노들평 지, 신성봉, 두향이 묘, 강선대, 구담봉, 흔들바위, 삿갓바위, 옥 순봉 순으로 돌아봤다. 구담봉과 옥순봉은 단양팔경에 속한다. 마늘로 유명한 단양은 마늘정식, 쏘가리매운탕 등 먹거리도 풍 부하다. 주변에 석회암 산이 많아 한국의 시멘트 생산의 절반을 단양에서 공급하고 있다. O
143km에 이른다. 이중 단양 구간은 3~7자락으로, 소백산자락길의 절반가량 에 해당하는 70여 km에 걸 쳐 조성되어 있다.
이순간그녀의나이는몇일까? 10대?
세상을 이제 막 안듯한 표정에 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공동취 재단인 그녀는 대회기간내내 기사를 쓰고 영상편집을 해야 한다. 이순간 그녀는 그런 압박 감에서 완잔히 벗어났을 것이다
아마 여행이 우리 인간에게 필 요한 이유는 여행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이런 순간들 때문 이리라 생각된다. 평생을 가는 단 3초의 순간들을 말이다. Photo:
펜데믹 긴 터널 끝
다시하나되게한 ‘‘우리의노래’
글: 안미향 기자/ TexasN & YTN 월드
코로나 펜데믹 2년 동안 시계는 멈췄 다. 세계한인언론인협회도 멈춰진 시 계에 갇혔고 온라인을 통한 만남이 전 부였다. 매년 두차례 씩 전세계 회원사 들이 모여 심포지엄과 세미나 등 언론 인으로서 갖춰야할 소양도 기르고 다 양한 정보를 교환해왔지만 그럴 수 없 는 멈춰진 시간. 긴 터널을 통과한 회원 들이 다시 만난 2022년 10월, 세언협 회원들이 대면으로 만나는 국제심포지 엄을 개최했다. ‘펜데믹 언론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여러 강의와 토론 및 한국 지방정부와 의 네트워크 구축 등 숨가쁜 4박 5일의 일정을 소화했다. 김명곤 신임회장은 “오랜만에 대면 행 사이니 만큼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이벤트”를 통해 “회원들의 친밀 도 향상, 소통강화”를 희망했다. 숨가쁜 일정속에 육체적 피로도가 높 았던 만큼 피로는 줄이면서 모두가 하 나될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했고 우리 는 ‘노래대회’를 결정했다. 그렇게 세언협 회원들은 노래방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 노래 대회이니 (60쪽으로)
취임한 회장에게 상금 2천원이라 니... 다신 출연 안할 생각이닷! 내 돈 내놓아! 넘버를 잘못 눌러 두 곡을 연달 아 부른 것에 대한 보복성 채점으 로, 분통이 터져 수일 동안 잠못 이루 고, 그 후유증(PTSD, 외상성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여전히 고생중 ㅎㅎ. 호루라기를 준비해 갈 정도로 친교 프로그램도 중요하다 고 생각했습니 다. 고적과 풍광을 감상하는 것은 혼자 만 즐기는 인트라퍼스널커뮤니케이션 (intrapersonal communication)이라 할 수 있지만, 함께 어울리는 것은 인 터퍼스널커뮤니케이션(interpersonal communication)으로, 힐링의 기초라
할 수 있습니다. 눈과 눈을 마주치고 몸 과 몸을 부딪치며 어울리다 보면 개인 간 정도 깊어지고 집단의 결속력도 강 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분들 의 교언영색의 말이나 글보다는 몸짓 이나 눈빛을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거 기에 진실이 상당부분 담겨있다고 보 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회 가장 뭉클하고 머무르고 싶 었던 순간.
골뱅이 모양으로 빙 돌아 오르는 전망 대 건물 저 아래서 세계 각국에서 온 아줌마 아저씨들이 “하나, 둘, 셋! 명곤
아!”라고 불러주신 순간입니다.
제가 개회사에서 ‘동지’라는 용어를 앞 뒤에서 사용하며 약간의 가책을 느꼈 던 터였습니다. ‘동지’란 용어를 쓸만큼 회원들과 협회를 사랑하는가...
그런데 여러분들이 “명곤아!”라고 불러 서 동지임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어 렸을 적 산야에서 함께 딩굴던 고향동 무들의 얼굴이 떠오른 순간이기도 했 습니다.
누구 아이디어였건 이심전심으로 제 이름을 그렇게나 크게 애타게 애처롭 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불러주신 만큼 저도 대답 잘하기 위해 노력하겠 습니다. O
만큼 노래방 기계의 객관적 점수의 힘 을 빌려야 했다. 그리고 심사위원이었 던 소통위원장은 막강한 절대권력(?) 으로 점수를 매기고 상금을 정했다.
참여도가 얼마나 높은가, 다른 팀이 노 래할 때 얼만큼 호응하는가, 관중의 박 수와 함성 등 분야별 점수표를 만들었 다. 그리고 노래방 기계가 주는 점수. 김명곤 현 회장이 이끄는 팀과 김소영 전 회장이 이끈 팀의 경쟁은 시간이 지 날수록 치열해졌고 노래대회 열기도 동반 상승했다. 우승팀과 준우승팀, 가창상, 인기상, 참 여상 등 모든 참여자가 모두 상금을 받 을 수 있도록 했다. 상금으로 지불된 돈 은 협회 회원들의 기부금으로 총 65만 원 정도였다. 최고 상금은 100유로였으며 최저 상금 은 2,000원이었다. 참가상 정도 느낌 이지만 ‘Better than Nothing’이라 는 것이 심사위원의 판단이었고 모두
에게 큰 웃음을 안긴 상금이라는 점에 의미를 둔 것이라고 우겼다. 세언협은 수년 전 명랑운동회를 진행 한 바 있다. 당시 참여한 모든 회원사들 이 즐거워하는 우리만의 시간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었고 모두가 즐거워했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만의 시 간이 필요하다는 점에 올해 10월 노래 대회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상 금을 노리는 경합이지만 승패에 상관 없이 모두가 크게 웃었다. 상금은 다시 하나로 모여 노래대회 참여한 회원도 함께 하지 못한 회원들도, 우리 모두의 입을 즐겁게 하는 간식으로 돌아왔다 행사 후반부에 진행한 노래대회는 서 울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회자되며 회 원들을 미소짓게 했다.
다음 대회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회원 들을 하나로 묶고 서로를 격려하게 될 지 기대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내년 봄 대회를 향해 있다. O
춤, 노래, 연기, 모델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재능을 떨치고 있는 캄보디아 ‘국민 여동생’ 노로돔 제나 (Jenna Norodom) 공주가 캄보디아에 기반을 둔 한국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케이브 엔터테 인먼트(CAVE Entertainment, 대표 나윤정)와 손을 잡고 첫 공식 활동을 시작한다. 제나 공주 는 지난 3년 여간 캄보디아 연예계서 활발한 활 동을 펼치며 많은 인기를 끌어왔다. 제나 공주는 2012년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인 아버지와 캄보디아 노로돔 보파리 공주 사 이에서 태어났다. 캄보디아어, 영어, 프랑스 등 5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제나 공주는 시하모 니 국왕의 종손녀이며, 시하누크 전국왕의 조카 의 손녀이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어린 시절 부터 뛰어난 재능을 떨치며 캄보디아 대형 이동 통신사 셀카드, 마리 리갈, 알앤에프 프로퍼티즈 (R&F Properties), 캄보디아 댄스스포츠연맹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으며 TV 드라마와 각종 CF 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제나 공주는 페이스북 팔로워 215만명, 유튜브 구독자 79.2 만명을 보유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대표적 인플 루언서(influncer, 영향력 있는 사람)이기도 하 다. 공식 유튜브에 캄보디아 전통 가요를 커버한
영상은 1900만뷰를 기록하며 국민 여동생으로
서의 단단한 입지를 증명하고 있다.
노로돔 제나의 케이팝 사랑은 유명하다. 케이브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인 OMG와 노로돔 제나가 커버한 걸그룹 에스파의 곡 프리티 새비 지(Pretty Savage)와 넥스트 레벨(Next Level)
댄스 커버 영상 조회수는 43만뷰, ‘좋아요’ 1
만개를 훌쩍 넘겼다. 지난 6월 한국-캄보디아
친선국제교류음악회에서 케이팝 창작곡 더 퍼
스트 데이 위드 아웃 유(The First Day Without You)를 열창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핫한 국민 여동생 제나 공주
가 이번 활동에 손을 잡은 케이브 엔터테인먼트
나윤정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3년 전 노로돔 제나 공주가 연예계에 막 발을 디
딜 시절에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나윤정 대표는
제나 공주가 다재다능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이에 비해 성실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떠올 리며 제나 공주가 공식 활동에 나선 배경을 설 명했다. “캄보디아 전통 문화 관련 현지 최고 전문가의 지 원을 받기 때문에 사실 저희 회사의 도움이 필요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케이팝이 전 세 계 현대 음악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요즘, 케 이팝에 특화된 저희 회사만이 지원할 수 있는 부 분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올해 초부터 본 격적으로 활동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이제 공 식적으로 활동에 나서게 됐어요” 케이브 엔터테인먼트는 케이팝 스타일의 가수 를 육성하고 비, 씨엘의 캄보디아 대형 공연, 캄 보디아 프놈펜에서 개최하는 연례 케이팝 페스 티벌 캄보디아 예선전, 한국 안산에서 개최하는 연례 한캄 문화 축제 콘서트 등을 주관하며 양 국의 문화 교류에 큰 통로 역할을 해왔다. 이번 에 제나 공주가 라인업에 합류함으로써 캄보디 아 왕실과 한국 정부 교류 또한 활발해질 것으 로 기대 된다. “문화적으로 상업적으로 양국이 교류할 수 있
는 업무는 무궁무진해요. 노로돔 제나 공주와의 활동은 이러한 교류의 장을 더 넓힐 수 있는 계기 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11월 4일 공개한 보보(BOBO)와 제나 공주의 듀
엣 곡 제목은 ‘유 대 원(You Da One)’으로, 두 사 람의 보컬과 하모니가 돋보이는 신나는 댄스 장 르 곡이다. 전체적으로 발랄한 분위기의 곡에 젊 은 남녀의 만남과 설렘을 담았다. 보보와 제나 공주의 미성이 트렌디한(첨단 유행의) 멜로디와 잘 어우러지는 감성 댄스곡이다. ‘유 대 원’ 이후 추가로 듀엣곡을 발표한 예정이다.
이어 12월에 케이브 간판 스타 미나(MINA)의 신곡을 발매할 예정이다. 이미 녹음과 뮤직비 디오(M/V) 촬영을 마쳤다. 미나는 핫 뎀(Hot Damn), 바운스(Bounce), 러브 투나잇(Love Tonight) 등 다수 히트곡을 보유한 여자 솔로 가 수이자 영화배우, 모델 활동을 겸하고 있는 만 능 엔터테이너다. 걸댄스팀 포에버(4ever)는 5 인 체제로 재정비해 내년에 가수 데뷔를 준비하 고 있다. 보이댄스팀 원타임(Onetime)도 내년 초 데뷔 싱글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케이브 엔터테인먼트는 미나(MINA), 보보(BOBO), 오 엠지(OMG), 원타임(Onetime), 포에버(4ever) 에 제나 공주까지 더해져 다채로운 라인업 구축 을 완료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케 이브는 그동안 현지에서 튼튼히 자리잡기 위해 100% 현지 시장 공략에 집중했다. 아티스트 육 성 뿐만 아니라 홍보물 제작, 영상 광고물, 이벤 트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험을 쌓아왔다.
나윤정 대표의 당부를 들어본다.
“2016년도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캄보디아의 문 화 교류를 위해 열심히 달려왔어요. 앞으로는 교 민 사회를 위해서 할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려 고 해요. 교민 여러분들께서도 케이브 엔터테인 먼트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시길 부탁드 려요” 케이브 엔터테인먼트는 한해를 마무리 하며 12 월 18일 2022 연말 한류 콘서트(End Year Hallyu Concert)를 개최한다. 이번 콘서트에는 케 이브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의 화려한 공연, 캄보디아 태권도 국가대표팀 공연과 더불 어 장기자랑, 경품추첨, 한국 음식 부스 운영 등 다양한 즐길 거리를 선사할 계획이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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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성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유동성을 발전시켜온 작가 민정연이다. 민정연의 작품은 양자물리학과 동양 전통 철학이 공존하는 세 계다. 공허함과 충만함, 암흑물질, 힘, 시간성 그리고 감정에 대 해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경험은 보편성에 개입한다. 대립적 성격의 요소 간의 갈등, 그리고 감정들의 갈등과 같이 ‘갈등’은 작가에겐 끊임없이 회귀하는 주제이다. 민정연은 지난 2012년 생테티엔 현대미술관에서 수여하 는 파트너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 (2017), 타이중 국립대만미술관(2010), 파리 국립기메동양박 물관(2019-2020), 모스크바 미술관(2021), 쇼몽쉬르루아르성 ‘Saison des arts 2021’에 참여했다. 현재 생테티엔 현대미
술관과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첫 개인전 ‘Hibernation’(2009)과 전시 ‘Demander le chemin à mes chaussure’ s’ (2012) 도록이 프랑스에서 발간되었으며, 프 랑스 유력 미술 잡지 Beaux-arts Magazine 특별 호(2019)에 그의 작품을 수록하기도 하였다. - 간단하게 본인을 소개한다면? 저는 79년에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고아원을 운영하신 아버지와 서예를 하시는 어머니 아래에서 고아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남들과는 좀 다른 엄청나게 많은 형제 자매가 있었던 셈이죠. 광주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7년 홍익대학 교 회화과에서 수학했습니다. - 프랑스엔 언제, 어떤 계기로 오셨나요? 대학을 다닐 때 한국이란 곳의 사회전반의 사고체계가 답답하 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아닌 다른 사회를 경험하며 암묵적인
저에게 제가 속해있는
공간의 시간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공
간의 역사가 빈곤하면
그만큼 그 공간에 확장
된 표현 형태인 문화가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부재한 장소엔
창작의 기본 재료인 다
양한 사고와 경험을 가
질 수 없겠죠. 게다가 프
랑스는 유럽의 통로역
할을 했던 터라 인종의
뒤엉킴이 다른 나라들
보다 훨씬 두드러지죠.
그만큼 다양성을 품고
있는 나라이고 자유로
운 사고를 할 수 있는 곳
이라고 생각해 프랑스
에 오게 됐습니다.
사회의 고립된 사고에서 벗어나 방랑자같은 이방인으로 살고
싶어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특별히 프랑스를 선택한 건 파리라는 도시가 과거와 현재가 동
시에 공존하는 동시성이 가장 두드러진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제가 속해있는 공간의 시간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 다. 공간의 역사가 빈곤하면 그만큼 그 공간에 확장된 표현 형 태인 문화가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부재한 장소엔 창작 의 기본 재료인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가질 수 없겠죠. 게다가 프랑스는 유럽의 통로역할을 했던 터라 인종의 뒤엉킴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두드러지죠. 그만큼 다양성을 품고 있는 나라 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프랑스에 오 게 됐습니다. - 프랑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제3의 섹스, 동성애, 20년 전 한국을 떠나올 당시는 이런 주제 를 금기시하는 분위기였어요. 지금은 좀 완화된 느낌이지만. 프랑스인들이 인식하는 동성애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자연 스럽고 그 주체자도 다양성의 일부라고 받아들여져 금기라는 단어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
국에서 프랑스에 막 도착했던 저로서는 처음으로 느낀 문화적 사고의 충격이었습니다. - 도불 초기에 겪은 에피소드가 있을 법한데… 처음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는 현대미술이 아닌 복원미술을 공 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티스트의 꿈을 접고 복원미술학교 에 입학하려 불어 공부만 1년정도 했습니다. 그 사이에 저를 지 켜보던 친구가 이런말을 했어요. “넌 무의식적으로 계속 낙서 를 하는데, 난 그게 멋진 작품처럼 느껴진다. 니가 왜 복원미술 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그것에 정말 관심이 있어 흥미를 가지고 읽어본 책이 있나?” 제 대답은 없었어요. 1년동안 불어 공부만 집중했지 정작 제가 하려고 하는 공부 분야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거죠. 방향을 잃 어버린 제가 친구의 권유로 파리보자르 편입시험을 보게되었 는데 합격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 오랜 시간이 지나 그때를 되돌아보면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저에게 그런 질문을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 프랑스에서 체재하는 동안 가장 좋았거나 혹은 아쉬운 부분 이라면 추천하는 본인만의 핫플레이스가 있다면.
8년 전부터 파리에서 이주해서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인 툴롱 에 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이프러스 나무를 아주 좋아합 니다. 우선 툴롱엔 사이프러스 나무가 정말 많고 파라솔 소나 무라 불리는 멋진 소나무가 자생하는 곳입니다. 지중해 답게 해 안선을 따라, 작고 아기자기한, 관광객이 잘 모르는 숨어 있는 해변이 아름답습니다.
단지 조수 간만의 차가 없어 뻘이 없는 모래사장이라 바다냄새 가 없어서 아쉬워요. 수영을 하기엔 최고의 조건이죠. 잔잔하 고 거대한 수영장 같거든요. 지중해와 여름바다를 떠올리는 사 람들이 대부분인데. 겨울에 툴롱의 야자나무 가로수 크리스마 스 트리는 라스베이거스를 연상케 하는 유치하지만 낮설은 매 력이 있어요. - 프랑스에 사는 나만의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전 이곳에서 이방인으로 사는게 좋습니다. 나의 모든 일상의 행 동과 말들이 그냥 이방인이 가진 다양성의 일부라 받아들여지 기 때문입니다.
속해있는 사회의 정치적 요소에 책임감을 느껴야하는 무거운
부담도 없고, 어떤 특정된 사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되
어 편견이 섞여있는 평가를 받지 않아 정신과 행동이 여유로
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으로서 온전히 나 자신으로의 삶
이 자유롭습니다.
- 이번 전시회의 주제와 출품작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11월 29일부터 3월 11일까지 문화원 1층 공간에서 “désert plein - soif, sommeil, silence (갈증, 졸음, 고요로 가득찬 사막)”이란 제목으로 개인전을 갖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막은 아무것도 없고 삭막한 곳 인데, 저의 사막은 새로운 곳으로 가기 위한 열망이 가득찬 곳 입니다. 기존 가치의 진부함이나 쓸데없이 덧붙여진 관습의 군 더더기를 비워내고 다시 저 고요하고 광활한 사막에 들어서 과
장되지 않은 날것의 나를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에겐 잔잔한 대서양의 물위도, 얼음으로 뒤덮인 극지방도, 텅 빈 우주 공간도, 기존가치의 간섭을 받지않는 사회적 정신적 시 스템도 모두 하나의 사막이 됩니다.
이곳에 홀로서서 자유로움을 갈구하고, 새로운 샘을 찾고, 두 려움에 익숙해지고, 정서적 피곤함을 받아들이며, 낮설음의 미 학을 재구성합니다.
10년전 한국에서 했던 제 개인전의 제목이 “사막엔 목동이 없 지” 였습니다. 제 삶에 또 제 작품에 큰 전환점이 필요했던 이 시기에 10년이 란 세월을 보내고 전 또다른 사막에 다시 서있습니다. 저의 자 화상은 빈공간에 덩그러니 떠있는 바윗덩어리와도 같습니다. 오랜시간 바람과 물에 깎여 형상은 변할지라도 기본적인 구성 물질은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 문입니다. 3개의 전시 공간엔 드로잉과 페인팅으로 사막을 주제로한 작품 들을 구성하였고 마지막 4번째 공간엔 2019년 ‘MUSÉE NATIONAL D’ART ASIATIQUE GUIMET /기메미술관’에서 선보였던 드로잉 설치 작품을 공간에 맞게 재구성하여 담았습 니다. “TISSAGE/직조”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한 공간 안에 평 면과 거울 그리고 관객이라는 서로다른 소재의 것들이 어우러 져 하나의 작품을 형성합니다. 거대한 드로잉 속의 숲은 유령의 숲처럼 최소한의 색을 사용하여 저의 기억 속 어린시절의 숲을 대변합니다. 꺼내서 생각할 때마다 덧붙여지는 서사들로 더럽
혀진 기억을 인지하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허물어버
리고자 하였습니다.
이 숲 속엔 너무커서 전체를 볼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새의 깃 털들로 가득합니다. 도교 철학의 장자가 “바다에 큰물고기가 어
느날 하늘을 날고 싶어 오랜시간을 공들여 비늘 하나하나를 깃
털로 바꾸고 새로 변하여 날기를 원했는데 몸집이 너무 커 스스 로 날 수 없어 태풍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는데, 그 새가 나 자 신과 같아, 제 기억의 숲에 숲이 새를 품은듯 아니면 새가 숲을 품은듯 존재하게 하였습니다. 거울을 통하여 제 기억 밖의 관객 들또한 저의 기억의 숲으로 담고 싶었습니다. 관객의 부재 혹 은 존재에 따라 작품 또한 변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위 치와 시각에 따라 작품은 그 형상을 달리합니다. 파편처럼 조 각난 우리의 기억이 꺼내 볼 때마다 외부적 요인이 사슬이 되 어 그것들의 조각을 재구성하며 서사를 덧붙이듯이. 이렇듯 이 번 전시의 모든 공간엔 형상을 달리하며 존재하는 저의 자화상 이 있습니다. - 최근엔 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예전의 제 작업은 오랜시간 계획되고 짜여져서 모든 걸 스스로 컨트롤 하려고 했었어요. 오랜시간 다듬으면서 불안감을 그림 속에 쏟아내며 애써 그렇지 않은듯 두려움을 시간으로 극복하 려 꾸며나갔던 것 같습니다.
2011년 아이를 임신했을 때 화학재료를 쓰지 않으려 페인팅 보 다는 드로잉을 많이 했습니다. 드로잉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보면서 여백의 여유를 즐기고 계획되지 않은 수채화의 흘러내 림과 번짐의 우연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학생 때 읽었던 책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는 기분처럼요. 모든걸 컨트롤하려던 습관에서 멀어지면서 공간이 확장되고 열리는 걸 느꼈습니다. 계획되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이 저를 다른 곳으로 이끌기 시작 했고 재료적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 다. 2차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재료들은 ‘어떻게’를 위한 것 보다는 ‘무엇을 말하기 위한’ 도구로 전환되 기 시작하였습니다. 덕분에 매번 작업을 새로 시작 할 때마다 중요한 짐만 싸들고 이사하는 사람처럼 사색의 집을 옮겨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3년 남프랑스의 툴롱(Toulon)으로 이사를 한 뒤 처음으로 정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원 가꾸기에 엄청나게 몰입을 했 던 탓에 꿈에서도 정원을 가꾸고 결국은 계속 정원에 있고싶어 정원과 집의 벽을 허물어 경계를 없애 버렸습니다. 대학시절 ‘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빠져 사이버 카페에서 살다시피하며 보 낼 때도 꿈에서까지 게임 속에서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이유로 2013년부터는 안과 밖, 차원의 경계를 허무는 작 업에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엔 양자역학의 양자점프, 열역학의 엔트로피, 다중우주속 의 차원의 중첩, 시간이 흘러간다는 인간의 뇌가 만든 착각, 공 간의 기억, 블랙홀 주변의 사건의 지평선, 기억의 파편과 인위 적인 사슬, 고고학적 사고, 노자와 장자 등등에 관심을 갖고 그 것들을 주제나 소재삼아 제 주변의 이치와 저의 경험을 연결지 어 사물이나 현상, 사고의 본질과 가까이 가보는 데에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개인전 ‘Hibernation’(2009)과 전시
‘Demander le chemin mes chaussure’s (2012) 도록이 프랑스 에서 발간되었으며, 프 랑스 유력 미술 잡지
Beaux-arts Magazine 특별 호(2019)에 그
의 작품을 수록하기도 하였다.
민정연의 작품은 양자물리학과 동양 전통 철학이 공존하는 세계다. 공허함과 충만함, 암흑물질, 힘, 시간성 그 리고 감정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경험은 보편성에 개입한다. 대립적 성격의 요소 간의 갈등, 그리고 감정들의 갈등과 같이 ‘갈등’은 작가에겐 끊임없이 회귀하는 주제이다.
요즘엔 내년 5월 깐느 아트센터(Espace suquet des artistes à Canne)에서 있을 개인전을 준비중입니다. ‘고고 학적 사고’ , 인위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오염된 기억이나 이 야기들의 겹을 걷어내면서 본질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주제로 한 설치, 드로잉, 페인팅, 디지털 드로잉과 음향작업 등을 펼쳐 보일 예정입니다. - 작가의 길이 쉽지 않은데, 본인만의 철학이라면 뭐가 있을 까요. 정신을 게으르게하는 익숙한 것에서 도망하는것 입니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잃지 않고 문제를 인식하며 내 스스로 온 힘을 다해 몰입할 수 있을 때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공존한다고 생 각합니다. -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이유는? 아티스트는 좋은 작가들이 너무 많아서 특별히 콕 찝어 말할 사 람이 없습니다. 글쓰는 작가로는 버지니아 울프입니다.
- 본인의 좌우명이나 삶의 지표가 있다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튀는 공처럼 살아보자’입니다. 어차피 삶 은 계획한대로 모두 다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또한 순간순
간 생각이 바뀌고 계획이 바뀌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때그때 의 새로운 긴장감을 즐기고 싶습니다. 현재에 충실한 튀는 공 이 되고자 합니다.
- 요즘 즐기는 취미는?
몇 년 전부터 첼로를 배우고 있습니다. 10살된 아들이 트럼펫 연주를 합니다. 트럼펫 솔리스트가 꿈인 아들을 위해 첼로 반주 를 맞춰주면서 둘만의 특별한 시간을 보냅니다.
- 앞으로의 목표나 과제가 있다면?
현재의 제 목표가 앞으로의 목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과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 끝으로 소나무 작가협회 또는 재불 예술인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올해 처음으로 소나무 회원이 되었습니다. 철새가 고향으로 돌 아가는 회귀본능 같은게 있었던것 같습니다. 편안하게 품어주 셔서 감사드립니다.
또한 재불 예술인 동료들과는 많은 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 고 싶습니다 . O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프랑
스 땅에서 영면에 들었던 홍재하 지 사의 유해가 마침내 국내로 봉환되 었다.
국가보훈처는 15일 오후 인천국제공 항 제1터미널 서측 행사용 주차장에 서 이한호 지사와 홍재하 지사의 유 해봉환식을 거행했다. ‘자나깨나 내 가슴 속, 나의 사랑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열린 봉환식에는 유족(17명), 광복회원, 학생, 박민식 보훈처장, 주 한스위스대사, 주한프랑스대사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봉환식은 추모편지 낭독, 영현 운 구, 묵념, 헌화 및 분향, 건국훈장 헌 정, 봉환사, 추모 공연, 영현 봉송 등 으로 진행됐다. 이어 박민식 보훈처 장이 2019년 추서된 건국훈장 애족 장을 두 지사의 유해가 담긴 소관에 헌정했다.
스위스에서 이송돼온 이한호 지사 (1895∼1960)도 홍 지사와 함께했 다. 16일 오전 10시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관에서 유해 안장식이 엄수된 후, 두 지사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
원 독립유공자 제7묘역에 안장됐다.
홍 지사의 유해 봉환은 국가보훈처
의 ‘국외거주 독립유공자’ 본국
봉환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
며, 프랑스대사관과 프랑스한인회
가 지난 3월부터 국가보훈처(예우정
책과)와 계속해서 유해 본국 봉환에
대해 논의해 왔고 8개월여 만에 결실
을 맺게됐다.
홍 지사는 러시아(무르만스크)와 영
국(에딘버러)을 거쳐 1919년 프랑스
쉬이프(Suippes, 파리 동쪽 차량 2시 간 30분 거리)에 정착하여 제1차 세 계대전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했다.
지사는 당시 복구사업에 참여한 한 인들과 함께 임금의 일부를 모아(총 6,000프랑)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 위원부(서기장 황기환)에 전달하였 으며, 1920년에는 유럽지역 한인 약 50여 명과 함께 3·1운동 1주년 기 념식을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홍 지사의 유족(차남)인 장 자 크 홍푸안 씨가 보관하고 있던 홍재 하 지사의 각종 사진 및 서신 자료를 지역 동포들이 정리하여 2018년 국 사편찬위원회에 전달하였는데, 이 자료 중에는 당시 파리위원부 서기 장이었던 황기환 지사가 홍재하 지 사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전달해 주
어 감사하다’는 서한이 발견되기도
했다.
홍 지사는 1919년 프랑스 최초이자
유럽 최초 한인단체인 재법한국민
회(在法韓國民會)를 조직하는데 참
여하여 제2대 회장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홍 지사는 해방만 되면 가족 모두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부푼
희망을 갖고 살아왔고, 해방 후에는
달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홍 지 사는 1960년 콜롱브(Colombes) 자 택에서 평생 그리던 고국의 땅을 밟 지 못하고 타계하였으며 머나 먼 프 랑스 땅에 묻혔다.
한편, 이한호 지사는 1919년 중국 간 도지역에 설립된 학생 중심의 항일 운동 단체 맹호단에서 활동했다. 광 복 후에도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선수단장 및 1954년 초 대 서독 총영사로서 대한민국 발전 에 헌신했다.
이 지사가 한성 기독교청년회 (YMCA) 재임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 으로부터 영어를 배운 인연으로, 이 전 대통령이 1933년 스위스를 찾았 을 때 외교적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첫 정착지 프랑스 쉬이프(Suippes)
서 전후 복구사업
홍 지사의 첫 정착지 쉬이프시는 세 계 제1차 대전 최대 격전지인 베르덩
인근 지역으로, 그 당시 이주 한인 다
수가 1차 대전 전후(戰後) 복구사업
을 위해 전사자 수습 및 복구 작업 등
을 실시한 곳이다.
1919년 10월~1920년 2월까지 총 8 차례에 걸쳐 약 35명의 한인들이 쉬
이프시에 정착하여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하였으며, 1919년 11월 홍 지사 를 포함하여 근로자 35명이 샬롱쉬르-마른(Châlons-sur-Marne) 데파트망에 도착하여 쉬이프시의 폐 허 지역 복구 작업에 투입되었다.
마른느(Marne) 데파트망 고문서관 에 소장된 ‘1920년 외국인 명부’는 당 시 프랑스 경찰청이 발급한 체류증 을 교부하면서 작성된 것이다.
이 명부에는 당시 복구사업에 투입된 한인 43명의 이름, 생년월일, 출생지 와 거주지, 프랑스 도착일자, 체류증 발급날짜 등의 인적사항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이들의 국적을 한국인 (Coréen)이라고 표기하였다. 이 명
부에 있는 ‘인 지용 푸앙(In Chiyon Fuan)’이 바로 홍재하 지사다.
한인 노동자들은 쉬이프 시에서 1~2
년간 일한 후 프랑스 각지로 흩어져
삶의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이는
데, 1921년 3월 프랑스 인구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쉬이프 시 거주 한국
인은 11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럽 최초 한인회 ‘재법 한국민회’ 결 성… 임정에 독립운동 자금 전달
홍재하 지사는 황기환(대한민국임 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 및 허정 (許政,1896~1988)과 함께 1919년 11월 재법 한국민회(在法 韓國民會) 를 결성하였으며, 2대 회장을 역임 하였다. (※ 1919년 3월부터 대한민 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 활동이 시작 됨.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제1대 프 랑스한인회장은 ‘허정’이었다는 주 장도 있음.)
재법한국민회(在法 韓國民會, ‘法법’ 은 프랑스의 중국식 표현)는 프랑 스 한인회의 시조(始組)로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최초의 한인 단 체이자 최초의 한인 이민자로 구성 되었다. 홍 지사는 1919년 12월 첫 급료를 받 을 때부터 한인 노동자들과 함께 모 금을 시작하여 6개월 동안 6천 프랑 의 독립자금을 대한민국임시정부 파 리위원부에 전달하였다. 당시 전후 복구작업을 하던 한인 약 30여 명이 매월 1,000프랑 정도를 모
은 것으로, 1인당 매월 35프랑에 해 당하는 금액이다.
당시 파리위원부 서기장이었던 황 기환 지사가 홍재하 지사 앞으로 보 낸 감사편지에 따르면 재법 한국민 회가 1919년 11월 19일 결성된 직후 부터 1920년 5월 18일까지 6개월간 총 6,000프랑을 전달한 것으로 나와 있다.
또한, 재법 한국민회는 1920년 3월 1일 유럽각지의 한인들을 초청하여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거행한 바 있다.
당시 신문인 <신한민보>에 따르면, 기념식에는 한인노동자 및 프랑스 유학생 10여 명, 영국 런던에서 온 일 가족 10여 명,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 리위원부 인사 등 총 50여 명이 참석 하였다.
이러한 사유로 쉬이프시는 한국인들 의 독립운동 정신이 깃든 역사적인 장소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프랑스 한인회는 매년 11월 11일 쉬이프시 에서 주관하는 1차대전 종전기념행 사에 참석하고 있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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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JA 칼럼] 하루에 사설 하나쯤 정독하면
글: 김재현 기자/ 시사저널 미주판 편집국장
잡지 편집 일을 맡고 나서 생긴 직업병이 있다. 글을 보면 내용 보다 먼저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맞춤법에 어긋난 곳이
있기라도 하면 눈에 거슬려 습관처럼 빨간펜을 들곤 한다. 문장 의 순서를 다시 배열하고, 조금만 맞춤법에 더 신경을 쓰면 좋 은 글이 될텐데 하면서 그렇지 않은 글을 보면 왜 그렇게 아쉬움 이 남는지, 시간이 지나도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다.
벌써 5년이 지났다. 처음 잡지 편집을 맡고는 미주 한인 사회 를 대표하는 언론인이라도 된 양, 혹시 흠이라도 잡힐까봐 기
사며 칼럼이며 열심히 문장을 다듬었다. 시사저널 본사에서 최 종 교열을 마친 후에 서울에서 인쇄하는 시사저널 미주판의 시
스템이 은근히 부담되었다. 그래도 공을 많이 들인 탓인지 기 사와 칼럼에선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생각지도 않 은 곳에 있었다. 창간호를 마감할 때의 일이다.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일종의 컴 플레인이 들어왔다. 미주 광고에 띄어쓰기가 잘못된 문장이 너 무 많다며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LA 시간으로 새벽 1시 정도였 으니 광고주의 허락 없이 광고를 임의로 수정할 수 없는 상황에 서 수정은 불가였다. 결국 그대로 인쇄하고, 다음 호부터는 광 고 내 문구까지 맞춤법 검열(?)에 들어갔다. 모든 글이 명문장일 수는 없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이러나
저러나 사실과 생각을 전하는 소통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냥
통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여기엔 전제가 있다. 깨떡같이 써도 꿀떡같이 알아듣는 독자가 있어야 한다.
최근 한국에서 한글 이해력 논란이 있었다. 바로 ‘심심한 사과’
논란이다. 한 업체가 SNS에 “심심 한 사과를 드린다”라고 사과
문을 올렸다. 사과문에 늘 들어가는 표현인데 일부 네티즌이
심심한(甚 深한)을 ‘지루한’이나 ‘한가한’ 정도로 잘못 이해하고
사과문을 올린 업체를 질타했다.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해.” 그냥 웃자고 한 것으로 생각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진지했다. 제 법 사례도 많았던 모양이다. 이 일은 젊은 세대의 낮은 한글 이 해력 문제로 번져 결국 국어 교육과정을 개편해 문해력을 강화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이 교육의 문제일까? 혹시 스마트폰의 문제는 아닐까?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연간 지출 가계동향조사에 따르 면 월평균 가계통신비가 서적 구입비의 10배를 넘는다고 한다.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 문해력 의 문제이나 그 원인은 영상 콘텐츠에 있다는 의견이 많다. 스 마트 기기가 대중화된 이후 사람들은 글을 읽는 것보다 이미지 와 영상을 보는 것에 더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이미지 콘텐츠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점점 글을 읽지 않는데, 어떻게 어휘력을 기 르고, 문해력을 높일 수 있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유튜브 대신 책을 가까이 하라 고 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책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하고 싶 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사설과 칼럼 하나라도 꾸준히 읽는다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이보다 나을까? 미주 한인들의 독서 행 태에 대한 조사자료가 없으니 근거 있는 설명을 할 수 없지만, 이민 이후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으로 짐작한 다. 이민자의 삶이 팍팍하다는 것이 이유일 수 있다. 사실 책을 접하는 것도 한국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독서까지는 아니어도 제대로 된 교열 과정을 거친 신문이나 잡지의 사설을 하루에 하나 정도 꾸준히 읽는 것은 작은 결심으로도 할 수 있 는 일이다. 이런 습관이라면 어떤 글이라도 곡해하지 않을 것이 고, 좋은 글도 쓸 수 있을 것이다. O
[OKJA 스페셜리포트-캐나다]김치가 진정한 우리 음식문화 유산이 되기를
글: 표영태 기자/ 밴쿠버 중앙일보
11월 22일 ‘김치의 날’을 맞아 밴쿠버에서도 김치를 체험하고 나 누기 위한 축제의 자리를 마련했다.
밴쿠버여성회, 민주평통밴쿠버협의회, BC 한인회가 주관하 고, 밴쿠버총영사관, 재외동포재단, 밴쿠버장학재단, K-김치 밴쿠버축제위원회가 후원한 ‘2022년 밴쿠버김치나눔축제’
가 지난 19일 한인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는 밴쿠버여성회 회원들과 평통 회원들이 전날
부터 준비한 절인 배추와 김치 속들로 김치를 만들었다.
이외에도 김치 만들기 체험을 위해 한인들과 타민족 신청자
들이 참석해 전문가의 시연을 따라 직접 김치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본 행사에 앞서 민주평통 밴쿠버협의회의 정기봉 회장은 개회
사를 통해 “지난해부터 K김치세계연대는 동포재단의 후원하 에 세계 주요도시에서 김치축제 행사를 통하여 전통행사로 자 리매김하여 올해는 세계 22개 대도시에서 동시에 김치축제를 개최하고 있다”며 “캐나다에서는 민주평통밴쿠버협의회 주관 하에 밴쿠버, 캘거리, 에드먼튼 3곳에서 동시에 개최하고 있다” 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또 “우리가 해외에 나와서 살고 있지만 한민족이라 는 정체성은 항상 마음 속에 지니고 살아 나아가야 한다”라며, “ 우리 언어인 한글과 더불어 전통 음식인 김치를 후대에도 전하 고 세계에도 널리 알리기를 바라며 세상은 변해도 변하지 않 는 우리들의 진정한 음식 문화유산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라고 말했다. 미셀 김 밴쿠버여성회 회장은 “김치를 준비하고, 만들고, 맛있 는 점심을 준비하는 역할을 했다”라며 “체험을 통해 김치가 이 런 많은 재료가 들어가고 많은 정성이 필요한 음식이고, 건강하 고 세계 대표적인 음식이라는 것을 알고 자긍심을 갖는
김치 축제 본 행사에 앞서서 밴쿠버 한국전통예술원(원장 한창 현)의 길놀이와 밴쿠버 중앙무용단(원장 김영주)의 한국 전통 무용 공연이 펼쳐졌다.
이날 밴쿠버여성회 회원들이 만든 김치는 불우이웃 돕기를 위 한 현장 판매가 됐으며, 일부 김치는 6.25참전 유공자회 등 한 인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메트로밴쿠버 20개 고등학교서 한국 김치 우수성 알리기 한편 밴쿠버한인회의 제2기 청소년 한국문화사절단(청소년 한국문화사절단, Korean Culture Youth Ambassador, 이하 KCYA)의 회원들도 22일 각자의 학교에서 다양하게 김치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KCYA 회원들은 한국문화 홍보를 위해 지난 9월부터 각자의 학교에 케이 컬쳐 클럽(K-culture club)을 만들어 왔는데, 이 번에 20개 학교에서 21일과 22일 양일간 세계 김치의 날 행사 를 추진했다.
난다”라며 “김치가 우리 고유문화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요즘 주변 국가들이 김치가 자기네 문화라고 하 는데, 캐나다 뿐 아니라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김치문화를) 알 리는 게 우리의 공공문화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행사를 추진한 대표적인 세컨더리 학교들은 그랜드뷰 하이츠, 버나비사우스, 포트 무디, 헤리티지 마운틴, R.E. 마운틴, 월넛 그로브, 그리고 클레이톤 하이츠 세컨더리 등이다.
한인 학생들은 행사를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이자, 세계 건 강식으로 알려진 김치를 나눠주기 행사를 가졌다. O
[OKJA 스페셜리포트-미국] 미주한인여성소사이어티 주최,
재외동포재단
Photo: 등 후원
페스티벌(I Love Kimchi Festival)
이 열렸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린 행사다. 이 행사 는 미주한인여성소사이어티(KAWS)가 주최하고, 재외동포재 단과 LA흥사단, KITA, LA AT센터 등이 후원했다. 11월 22일은 ‘세계 김치의 날’이다. 11월이 김장철이기도 하고, 특별히 김치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 하나 하나(11)와 몸에 좋 은 김치의 22가지 효능을 의미한다고 한다. 처음 김치의 날이 제정된 것은 2020년 한국에서였다.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해 8월 캘리포니아주 하원에서 최석호 의원의 주도로 데이브 민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과 샤론 실바 하원의원이 함께 발의
하여 김치의 날이 제정되었다.
제정을 발의한 상태다. 김치의 날 행사를 하면서 전세계 재외동 포들이 함께하는 세계김치연대도 결성해 약 25개 국가에서 김 치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김치의 날을 제정했지만 마땅한 행사가 없으면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다.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최 의원과 김남희 보좌관은 OC지역 여성단체인 KAWS 코리안 아메리칸 위민스 소사이어 티에 아이디어를 전달했고, 청소년에게 김치의 날을 알려서 정 체성을 심어주고 뿌리 교육을 하자는 취지로 행사를 시작했다. 가급적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김치 담그기 체험 등을 프 로그램에 포함했다.
이번에 “아이러브 김치” 페스티벌을 주최 한 미주한인여성소사 이어티는 캘리포니아 남가주 지역 커뮤니티의 여성 리더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로, 여러 지역 단체와 협력을 통해 미 주류 사회에 우수한 한국 문화를 알리고, 차세대의 정체성 확립
[OKJA 기고] ‘Hankook Kimchi(한국김치)’ 밴쿠버에서 어떻게 인기식품 되었나
글: 이재관 부장/ 식품 제조부, T-Brothers
코스코(Costco), Save On Foods(세이브 온 푸드), 리얼 캐나디 안 슈퍼 스토어(Real Canadian Superstore)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Hankook Kimchi(한국 김치)’의시작은 1991년 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밴쿠버에 한국식 김치를 생산 판매하는 회사가 있긴 했으 나, 대부분 한인동포들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뤄졌기에 지금과 같이 캐나다 주요 리테일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그런 상황 은 아니었습니다.
T-Brothers(티 브라더스)에서는 애초 김치 소비의 주요 고객 을 한인교민으로 국한 하지 않았기에 레이블도 중국어, 일본 어, 영어를 병행 표기해서 현지 리테일점들의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한인동포들에게 널리 판매하던 김치 규격 이 4L였는데, 김치를 먹고는 싶으나 너무 큰 포장에 고민하던 외국인 고객을 위해 500ML 소포장도 당시 처음 도입하게 되 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리테일 매대에 제품을 올린다는 것은 쉬운 일 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진열 후 판매 제품에 대해서만 청구하 는 방식으로 일부 리테일점과 거래를 시작했지만, 당시 김치가 익숙하지 않은 식품이었기에 김치를 야채 섹션에 둬야할 지 델 리 섹션에 둬야할 지에 대한 고민부터 발효제품 특성 상 매대에 서도 지속적으로 익어간다는 것을 이해시키기는데까지 엄청난 고민과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지금이야 포장기술도 온도관리기술도 많이 개선되어 그런 일
이 없지만, 초기에는 김치통에 김치가 흘러넘쳤다는 클레임을 접수하면 바로 매장을 방문해서 매대를 닦고 제품을 교체하며 혹시나 매대에서 빠질까 걱정하며 일을 하곤 했습니다. 조금씩 Hankook Kimchi를 찾는 고객들이 늘어나 후지야 (Fujiya), 티앤티(T&T), 베트남 가게 등에서 판매가 늘고 있을
즈음, 매출을 크게 높일 기회가 찾아옵니다.
미국을 물론 멕시코까지 배추 수확량이 급감해 배추 수급을 위
해 하와이에서 배추 한박스에 당시 99달러나 지불하고 가져와
야하는 배추파동이 발생합니다. 이미 주요 고객들과 가격을 셋
팅해 뒀던 상황이라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자
는 신념으로 기존 가격을 그대로 유지했고, 이러한 신념에 보답
하듯 대형 한인마트에서도 납품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안 정적 판로가 생겼기에 이에 본격적인 대량생산의 기초가 만들
어진 것이지요. 이 기회를 발판으로 Save-On-Foods Metrotown점에 입점이 됐고, 연이어 코스코, 슈퍼스토어 등에도 납품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Hankook Kimchi와 관련해서 1995년에 캐나다 방송 VTV에서 김치 제조실을 방문해서 김치에 대해 캐나다 현지인 들에게 소개하는 영상을 촬영하는 일이 있었고, 덕분에 김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수준이 한층 높아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더욱이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개선됨에 따라 먹어본적 은 없더라도 이미 김치에 대한 사전적 지식이 쌓여가며, Hankook Kimchi는 캐나다 현지고객들에게 조금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분들이 김치의 맛을 바꿔보는 것은 어떠냐라는 얘기를 하 시는데, Hankook Kimchi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전통 김치를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고집스러울 정도로 멸치젓국과 새우젓을 넣은 한국 전통 김치의 맛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밴쿠버가 속한 BC주를 넘어 멀리 뉴펀더랜드 앤드 래 브라도주까지 판매망이 확대되었으며, Hankook Kimchi 의 책임도 커지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김치를 담고 있습니다. O
[OKJA 스페셜리포트-인도네시아] 러다이트운동 떠올리는 인도네시아 ‘고젝’
글: 신성철 기자/ 데일리 인도네시아
18세기 후반기부터 19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된 1차 산업혁명 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사람이 손으로 만들던 면직물을 방직 기계가 만들도록 했다. 이로 인해 수공업으로 만든 것과 비교되 지 않을 만큼 생산량이 폭발하면서 산업, 경제 및 사회가 혁명 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급변한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자본주 의와 자본가가 등장한다. 1811년 당시 영국에서는 직물공장을 대상으로 한 연쇄방화 테러사건이 일어났는데, 용의자로 ‘네드
러드’(Ned Ludd)’를 지목했다. 연쇄테러사건의 주동자 네드러드는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파괴하는 습성을 지닌 신비로운 인물이라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1811년~1817년에 일어난 기계 파괴 사태를 네드러드의 이름을 따서 ‘러다이트운 동(Luddite Movement)’이라고 부른다. 그로부터 200여년 후 미국에서 자율자동차가 나타나자 일부 시민들이 자율자동차를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첫 번째 기 록은 2018년 1월 2일 한 남성 보행자는 길을 건너기 위해 교통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자율주행 중인 쉐보레 볼트 차량을 공 격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고젝, 인니 사회 뒤바꾸다 국민앱을 넘어 슈퍼앱으로 성장한 고젝(Go-Jek). 인도네시아 인들에게 고젝이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속 에 깊이 침투해 있다. 하지만 고젝에게도 러다이트운동과 같 은 시련이 있었다. 고젝이 혜성처럼 등장해 택시승객이 급감하 자, 위기를 체감한 택시기사들이 고젝이 자신들의 고객을 빼앗 는다고 거리 곳곳에서 승차공유서비스인 오토바이택시 고라이 드(Go-Ride)와 고카(Go-Car) 기사들을 공격했고, 고젝을 타 고가는 승객을 위협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2016년 전국적으로 폭력사태가 확산하는 혼란에 빠졌다. 조코 위 대통령은 발빠르게 진화에 나섰고, 인도네시아 미래 성장 동 력으로 디지털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갈등의 해결사로 나 섰다. 이 사태 이후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블루버드 택시는 고젝과 협력해 사업이 더 확대된 반면, 경쟁업체인 익스프레 스택시(Taksi Express)는 경영난을 겪다가 코로나19 사태 초 기인 2020년에 파산했다. 이밖에도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앙꼿 (angkot)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춘 자리에 녹색 헬멧을 쓴 고젝 과 경쟁업체 그랩(Grab)의 라이더들이 거리를 채웠다.
고젝이 등장하기 전까지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자카르타에 서는 오젝(Ojek)이라는 오토바이택시가 널리 이용됐다. 하지 만 요금 시비와 바가지 요금은 물론 여성에 대한 성폭력 등 사
회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고심하던 인도네시아 청 년 나딤 마카림은 2010년 콜센터와 20대의 오젝을 가지고 사 업을 시작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출신인 마카림 은 인도네시아에 모바일 스타트업 붐이 불기 시작한 2015년부 터 오젝을 호출하고 탈 수 있는 고젝 앱을 출시한다. 편리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 오젝 시장 을 단시간 내에 평정했다. 고젝은 사업을 다각화하며 진화한다. 음식배달서비스인 고푸 드(Go-Food)와 장보기 서비스 고마트(Go-Mart), 택배 서비 스 고센드(Go-Send), 용달차 서비스 고박스(Go-Box), 처방된 약을 배달하는 고메드(Go-Med) 등 20여 종류의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확장하고 있다. 이어 전자지갑 고페이(Go-Pay)를 출시했다. 신용카드 보급률 4%와 은행계좌 보유율이 40% 미만인 금융 환경에서 현금거래 로 인한 부작용을 깔끔하게 해결한 고페이를 도입해 스마트폰 으로 결제가 가능하게 해 고젝 이용자들의 지불은 물론 일반 슈 퍼마켓, 백화점,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며 심지어 공과금도 낼 수 있게 됐다. 오토바이 공유 서비스에서 출발한 고젝은 인도네시아 최대의 핀테크 기업으로 진화하며 아세안 시장으로 뻗어 나갔다. 고젝의 사업 방향은 무현금사회와 디지털경제를 추구하는 인 도네시아 정부의 정책과도 일치한다. 정부는 세수입 확보와 재 정·조세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화폐 이용을 장 려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한 직접 보조금을 현금으로 지급했으나 이제는 전자화폐로 지급하면서 많은 거 래에서 투명성이 제고됐다. 고젝은 자사의 이런 데이터를 활용 해 소액대출사업을 펼치고 보험 등 디지털 금융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이 회사와 협력하는 라이더는 약 100만 명이고, 식당 등 협력업소는 12만 5천개이다. 또 고페이를 통해 월간 1억 건 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고젝은 아세안 시장은 물론 인도네시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 이고 있는 그랩(Grab)을 비롯한 슈퍼앱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2021년 이커머스 유니콘인 토코페이아(Tokopedia)와 대규모 기업인수합병(M&A)을 했다. 2009년 영업을 시작한 토 코페디아는 최근 쇼피(Shopee)에 밀려 2위로 밀려났다. 그랩 과 경쟁하는 고젝과 쇼피와 싸워야하는 토코페디아가 합병함 으로써 고토그룹(GoTo)이 탄생했다. 고토는 금융과 커머스, 모 빌리티와 생활밀착형 서비스가 모두 합쳐진 아세안의 공룡으 로 몸집을 키웠다. 동남아시아 스타트업 혁신의 상징으로 꼽히는 그랩과 고젝 등
기자/ 세계한인언론인협회(4)
글: 김충식 기자/ 애틀랜타 잡 코리아뉴스 [OKJA 스페셜리포트] 미국 조지아 ‘김치의 날’ 포토뉴스
슈퍼앱들이 올해 들어 실적 악화로 악전고투하고 있다. 10년 넘 게 황금기를 누렸던 이들 빅테크기업은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 와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의 여파 등으로 창사 이래 가장 큰 위 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은 아직 인터넷 이용자 비율이 30%에 미만인 만큼 디지털 경제는 무서운 속도로 확장 하고 있다. 또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소비력이 왕성 한 젊은층의 인구 비중이 매우 높은 아세안은 성장 잠재력이 크 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다. 기술이 가져온 삶의 변화, ‘대응’이 숙명인 인간 고젝 등 빅테크기업의 등장은 인도네시아의 산업 지형을 바꾸 고 빠르게 디지털 경제로 이행시켰다. 물론 ‘플랫폼 노동’의 확 산은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긱노동자(Gig Worker)를 대량 으로 양산했다. 긱노동자의 증가에 따른 임금 하락, 고용조건 악화, 중산층 몰락은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가 시급히 해 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아울러 테크기업의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사업 축소도 잇따르고 있다. 그
[OKJA 통신-호주] 호주 코로나 최대 희생자는 저소득층, 이민자, 태평양 도서민 글: 김지환 기자/ 호주 한국신문 ‘오미크론’ 바이러스 동안의 출신국별 사망률(2022년 1월-9월) 출신국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연령 표준화 사망 비율
IPhoto: Source: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COVID-19 mortality by wave, November 16, 2022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사태기 시작된 이후 가장 큰 피해를 입
은 이들은 누구였을까. 최근 공개된 새로운 분석에 따르면 이민 자와 저소득 계층은 호주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할 가능성이 다 른 이들에 비해 훨씬 높았다. 호주통계청(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ABS)은 팬데믹 이 시작된 직후인 2020년 3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이 질병과 관련된 1만2500명 이상의 사망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계층에서 사망 비율이 크게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2021년 심각성이 컸던 델타(Delta) 변이 발병 기간 동안 최빈 곤층 호주인(하위 20%)은 가장 유리한 호주인(상위 20%)들에 비해 이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약 5배나 높았다. ABS 연구는 또한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코로나19가 고령자 및 기저 질환이 있는 이들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것도 다시금 확인했다. 코로나 19에 의한 사망의 약 84%는 80세 이상 고령층이었다. 타 국가 출신 이민자, 사망률 4배 높아
이번 대유행 기간 동안 코로나19 사망자는 또한 특정 이민자 커뮤니티에 집중되었음을 말해준다. 상당 비율의 사람들이 코 로나19 백신접종을 받기 이전 발생한 치명적인 ‘델타 파동’
동안 발생한 사망자의 70% 이상은 해외에서 출생한 이민자들 이었다. ABS의 로렌 모란 보건 부문 담당 국장은 “전반적으로 해외에서
유입된 이민자의 경우 호주 태생들보다 델타 변이로 사망할 확
률이 거의 4배 높다”라고 말했다. 말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 비 율은 중동 지역 출신이지만,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인 해외 출 신 이민자는 통가와 사모아에서 출생한 이들이었다. 통가 출신 이민자는 호주에서 태어난 이들에 비해 사망 확률이 약 80배 높 았으며, 사모아 출신자의 사망 비율은 약 50배에 달했다. 모란 국장은 “이 같은 격차는 오미크론 파동 기간 동안 감소하기 시 작했으며, 올해 7월 이후 집계를 보면 호주에서 태어난 이들의 코로나19 관련 사망률이 더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이민자 그룹은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더 취약하다. 코로나19는 문화적 요인, 기존 건강문제를 갖고 있는 이들의 높 은 비율로 일부 태평양 지역 도서민 커뮤니티에 더 큰 위험을 초 래했다. 지난해 태평양 지역 커뮤니티 그룹은 이 지역 도서민들 의 백신접종률 및 코로나 질병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교육 캠 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 사망 부른 가장 큰 기저질환은 심장 문제
ABS의 이번 조사 분석은 또한 코로나19를 악화시킨 근본적인 조건, 이로 인한 급성 질병을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19 사망과 관련된 기존 질환 가운데 관상동맥(coronary artery) 및 심근 증(cardiomyopathy)과 같은 만성 심장 문제가 가장 흔했다. 그 다음이 치매로, 델타 발병 동안 5명 중 1명, 오미크론 기간 중 3명 중 1명 꼴로 사망했으며, 이어 당뇨가 코로나 사망과 관련 된 건강 문제로 꼽혔다. 코로나19에 의해 사망한 이들 중 폐렴 (pneumonia)은 가장 흔한 급성 결과였으며, 호흡기 질환(respiratory)이 뒤를 이었다. O
Photo: 이상연 애틀랜타K
[이참에]이태원 참사, 그 많은 한국 언론은 다 어디에 있었을까
글: 이상연 기자/ 애틀랜타 K
[칼럼] 희생자 흔적 기록 의무 방기한 한국 언론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10.29 참사와 관련해 한국 언론들 이 쏟아내는 보도를 미국에서 접하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코로나19 규제가 풀리면서 그렇게 많은 사 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예고가 있었는데, 언론은 과연 어디 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 TV방송을 아무리 지켜봐도 참사 관련 화면은 모두 CCTV 영상이거나 시민들이 제보한 것 뿐이었다. 인터넷 방송 BJ들도 현장에 나가 핼러윈 현장 생중계를 했는데, 방송 기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경찰과 안전 당국이 사고가 우려되는 행사에 대해 미리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비난하기 앞서 ‘제4 의 권력’이라는 언론부터 거울을 봐야 할 듯하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한국 언 론만의 특징이다. 희생자 이름을 모두 익명 처리하는 이유를 정 확히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가족들의 동의가 있으면 보도해도 되지 않을까? 이름을 알릴 수 없다는 핑계로 이같은 참사가 전 해주는 충격을 가장 확실하게 기록할 수 있는 희생자 스토리를 아예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지난 6월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초등학교 총기난사 참사가 발생 하자 <뉴욕타임스>는 초등학생 19명과 교사 2명 등 희생자 21 명의 이름과 사진,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했다. 사회에 충격을 준 비극적인 사건으로 숨진 사람들의 흔적을 남 기는 것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언론의 의무라
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 사 당시만 해도 한국 신문들은 희생자 500여명의 이름을 모두 지면에 기록했다. 그나마 미국인 희생자의 신원과 이야기가 이곳 언론을 통해 전 해졌고 <뉴스버스>도 희생자인 애틀랜타 대학생의 아버지와
인터뷰를 통해 숨진 스티븐 블레시씨의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미국 현지 기사마저도 자의적으로 해석해 오히려
유가족을 욕보이는 결과를 만들었다. <뉴스버스>에 소개됐던 아버지 블레시씨의 현지 지역언론 <AJC> 인터뷰 내용 가운데 “한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라는 부 분을 한국의 한 신문이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해 “블레시씨 유 가족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라고 보도한 것이다. 아버지 블레시씨로서는 한국 정부가 아니 라 이 신문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만 한 기사다. 물론 추후 블레시씨 가족이 실제 소송에 나설 수도 있겠지만, <뉴스버스>와 인터뷰에서도 확인됐듯 당시 아버지는 그런 의 도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이 신문은 “한미 양국의 법률에 따 라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이 어렵겠지만 예외가 인정 될 수 있다”라는 자체 해석까지 달았다. 취재 없이 추측으로 쓴 소설이었다. 이러한 외신 해석은 미국 중간선거 이후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 향배에 대한 보도에서도 두드러졌다. 공화당이 다수당 이 되면 현대차가 피해를 보는 전기차 보조금 조항을 바꿔주기 위해 IRA를 수정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공화당은 막 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IRA 자체를 반대해왔기 때문에 법안 자 체를 폐지하거나 무력화하겠다는 입장이지, 한국에 혜택을 주 기 위해 법안을 수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희망 사항’을 들려주기 위해 일부러 왜곡을
공통된 현상이다. 종이신문의 몰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공중파 방송도 보도 부문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지역 방 송은 오히려 로컬 뉴스를 늘리고 있고, 온라인 전환에 성공한 신문들은 기자 채용을 확대하고 전문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한 국 레거시 언론도 전문적인 저널리스트 양성에 실패한다면 ‘비 판을 위한 비판’만 양산하는 퇴물로 전락할 수 있다. O
[OKJA 통신-미국] 미국서 본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
글: 이상연 기자/ 애틀랜타 K
[스페셜 리포트] 미국, 범죄 피해자·참사 희생자 ‘유족 동의’ 없이 실명 공개
지난 1990년 미국 아이오와주의 유력지인 <디모인 레지스터>
는 그동안 미국 언론이 지켜왔던 금기를 충격적으로 허물었다.
성폭행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는 특별 시리즈 기사를 통해 피해
자들의 실명을 모두 공개한 것이다.
대부분 피해자들의 동의가 있었지만, 그 동안 성폭행 피해자 와 미성년 피해자들의 실명은 보도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
기 때문에 미국사회에도 큰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이같은 결정 을 내린 편집국장 제네바 오버홀저는 이 문제에 대해 “피해자 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그들에게 낙인을 찍고 비난하려는 것 이 아니다. 오히려 이름을 감추는 것이 사회에 해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엄청난 비난이 신문사에 쏟아져 들어왔지만 이 보도는 미국 최 고권위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퓰리처 재단은 선정 이유를 “그 동안 논의조차 되지 못했던 표현의 자유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 심을 일으켰다”라고 밝혔다. 실제 이 보도 이후 성폭행 피해를 감추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추후 ‘미투’ 운동 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언론은 범죄 피해자나 사고 희생자 뿐만 아니라 유죄가 확 정되기 전의 용의자 실명도 미성년자가 아닌 경우 거의 제한없 이 공개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유권해석을 통해 “형사 사법 제도의 구성원들과 언론은 범죄 용의자의 이름을 밝힐 재량권 을 갖고 있다”면서 심지어 “언론은 용의자가 무죄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후속 보도할 의무가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시골 주유소에 가보면 <머그샷 매거진(Mugshot Magazine)>이라는 잡지가 비치돼 있다. 1주일 단위로 음주 운전이 나 폭행 등으로 동네 구치소에 수감된 같은 마을 주민들의 얼굴 과 실명을 모두 실은 것이다. 머그샷은 경찰서 유치장이나 구치 소에 수감하는 과정에서 이름표 등을 들고 찍는 얼굴 사진을 말 한다. 한국 같으면 “한 동네 사람끼리 창피하게”라는 반응이 나 오겠지만, 이런 출판까지도 자유로운 나라가 미국이다. 지난해 3월 애틀랜타에서 한인 여성 4명이 숨진 총격사건이 발 생한 뒤 경찰은 용의자 애런 롱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고, 언 론은 이를 속보로 보도했다. 심지어 용의자의 부모 실명과 거주
지역, 다니는 교회까지 낱낱이 공개돼 한인들 사이에서도 “너무 한 것 아니냐”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총격 사건의 희생자인 한인 여성 4명의 실명도 곧바로 공개됐
다. 또한 수사 당국이 희생자의 이름을 공개하는데 ‘유족의 동 의’라는 개념도 필요하지 않다. 희생자들이 마사지 스파라는 민 감한 업종에 종사했지만, 기자가 취재한 어떤 유족도 실명 공개 와 관련해 당국으로부터 동의 요청을 받지 않았다. “공적 영역에 들어오면 공개 의무”…언론사에 재량권 부여
미국 언론이 범죄 피해자나 희생자, 용의자들의 실명을 거의 마 음대로 공개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미국 법률 전문가들과 언론 학자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사당국의 조서나 기소장, 법원 소송문서 등 ‘공적인 기록 (public record)’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모두 공개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단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 적인 영역에서 남겨지는 기록은 국민 모두에게 알려져야 한다 는 것이다.
비영리 언론기관인 ONA(Online News Asscociation)는 실명 공개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통해 “법원과 경찰 등 공적 시스템의 기록(실명을 포함한)이 완전히 공개되지 않는다면 어 떻게 공중(public)이 이 시스템을 감시하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하며 실명 공개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언론도 이러한 무제한 실명 공개에 부작용이 있다 는 사실을 인식하고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몇 차례 예외가 있지만 성폭행 피해자의 실명은 여전히 비공개가 원칙이며 미 성년자에 대한 보호 역시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특히 AP통신은 지난해 6월 “경범죄(minor crimes)에 대해서는 용의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겠다”라는 내용의 보도 규칙을 발 표했다. 주로 지역 사회에서만 관심을 갖는 소규모 범죄의 용의 자 실명은 전국적인 뉴스가치(newsworthy)가 없고, 온라인 상 에 영구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지역내 취업이나 생활에 지장 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AP통신>은 “보통 이런 사건들에 대해서는 유죄 선고 여부를 후속 취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죄를 받은 사람도 범죄자로 오인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용의자 실명 보도를 하지 않
는 것은 경범죄 뿐이며 우리는 앞으로도 살인 등 중요한 범죄
에 대해서는 체포 단계부터 용의자의 실명을 공개할 것이다”
라고 밝혔다. O
전시회와 토크쇼 등 여러 행사 를 가졌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발달장애인인 정 작가는 화 가인 어머니 장차현실씨와 영화감독인 아버지 서동일씨와 함
방영한 화제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에 ‘영희’ 역으로 출연해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직관적
이고 선이 돋보이는 ‘캐리커쳐 작가’로 지금까지 4천여명의 얼
굴을 그렸다.
정 작가에게 그림은 사회와의 소통 방법, 하나의 든든한 매개 체이다. 최근에는 자신의 성장 다큐멘터리 영화 ‘니 얼굴’을 개 봉했고 첫번째 그림 에세이 ‘은혜씨의 포옹’과 ‘니 얼굴’을 출간 했다.
<한호일보> 기자와 만난 정 작가는 10시간 비행에도 지친 표
정 없이 “저는 인터뷰하는 거 익숙해요. 워낙 많이 해봐서...”라 며 웃는 모습으로 말문을 열었다. 호주 초청 전시회에 대한 소 감에 대해 묻자 “기분이 좋고 또 내가 작가라는게 실감이 난다” 라고 말했다.
이 날 행사 순서 중 하나로 ‘니얼굴 그리기대회’에는 총 118점의 작품이 출품되어 행사장에 전시됐다. 행사장에 걸려있는 그림 들에 대해 정 작가는 “다들 타고난 그림 실력이 좋죠. 안예쁜 얼 굴은 없죠. 다 예쁘죠. 참 따뜻하다”라고 말했다. 정 작가와의 간단한 인터뷰 후 어머니 장차현실씨와 보다 구 체적인 이야기를 이어갔다. 동양화가 겸 만화가인 장차현실씨 는 장애인부모연대 활동을 하면서 장애인 가족들에게 사회의 시선과 제도 변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권고를 하고 있다. - 정은혜 작가는 현재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 이후 개인 전시회와 책 출간, 각 종 인터뷰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주도에서 특별전 을 계속 진행 중이고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시구 스케줄을 마지
막으로 소화하고 호주로 온 가족이 왔다”
- 호주 전시회를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지난 몇년간 은혜씨를 통해서 발달장애인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부부가 경험했고 가족들이 변화하는 것을 느 꼈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발달장애인, 그저 연금만 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창작 활동도 할 수 있고, 그 활동을 통해서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 을 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호주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도 크고작은 투쟁을 통해서 조금씩 변화하 고 있지만, 호주의 선진화된 모습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고 싶 었다. 또 저희들을 정말 잘 배려해주셔서 편하게 비즈니스석 을 타고 왔다. 비행기를 타고 이렇게 먼 나라로 온 가족이 온 건 처음이다”
-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한인 모델 ‘송예나’씨와의 만남은 어땠나? “행사전에 두 사람이 먼저 만났는데,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서 눈물이 났다. ‘저 가능성의 아이콘, 가능성의 존재들’. 혼자보 다 둘이 있으니깐 더 힘이났다. 오늘 행사에도 발달장애인 저스 틴과 예나가 댄스공연을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세 사람을 보는 내 마음이 환해지는 걸 느꼈다.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자신 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 알면 좋겠고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눈 이 달라지기를 간절히 더욱 바라게 된다” -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 이후 지난 몇 달동안 많은 변화를 느 끼는지.. “예전에는 은혜가 길을 걸으면 아이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 곤 했다. 요즘은 두 손을 배꼽에 얹고 90도로 인사를 한다. 어딜 가나 환영받는 사람이 됐다. 은혜의 얼굴이 바뀐것도 아니고, 언어적 표현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은혜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 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정 작가는 사는게 즐거운 사람 이 됐다. 이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가족의 변화도 상당하다. 성인이 되었지만 할 일이 없어 자기 방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정 작가를 바라볼 때 가족들을 엄 청난 우울감에 시달리고 희망이 없었다. 그런데 몇 달간의 변화 를 통해서 우리 가족도 변화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를 가진 본인들이 달라진게 아니고 세상이 변해서 이제서야 자신 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불행한 장애인이 아닌 그림을 잘 그리고, 멋진 삶을 사는 정은혜로 말이다” - 발달장애 자녀가 있는 부모들에게 나누고싶은 말이 있다면 “발달장애인의 행.불행은 주변의 사람들이 ‘시선’에 달려있다. 그들의 삶을 불행으로 보느냐 그대로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 이느냐. 내 자녀의 ‘장애’만 들여다보지 말고 자녀의 가능성과 그들이 가지고 태어난 삶의 모습을 존엄하게 끌어안아주면서 주변을 바꿀 수 있는 활동에 많이 참여해야한다. 슬픔 마음으로 집에서 웅크리고 있지 말길 바란다. 자녀와 함께 세상으로 나오 고, 연대하며 힘을 얻자. 이 일은 결코 혼자는 해결할 수 없으니
[OKJA 스페셜리포트-미국] 허리케인 재난에 똘똘 뭉친 미주 한인사회
글: 김명곤 기자/ 코리아위클리
미주총연, 허리케인 이언 피해 위로금 수일 만에 3만여 달러 모금
오랫동안 자조섞인 목소리로 스스로를 폄하하며 민족성까지
들먹여 왔던 터다. 일제가 만들어놓은 통치 프레임이라며 반발
하는 흐름들이 존재했지만, 분단에 길들여진 탓인지 가르고, 갈 라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겨온 듯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이 같은 인식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한 민족의 ‘못난이 자화상’이 상당부분 허구였음을 보여준 사건은
1992년 LA폭동이 발생했을 때였다. 남녀 노소 자경단을 조직 해 지역 한인업소들과 거주지를 지키겠다고 나섰고, 한인회와 한인 매체들도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이를 적극 돕고 나선 일은 아직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이번에는 플로리다 한인사회가 허리케인 이언으로 사상 최대 의 피해를 입자 미주 전역의 한인회들이 그야말로 ‘들고’ 일어섰 다. 모금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나이든 한인회장의 서툰 ‘카 톡질’로 시작한 모금운동은 많은 동포사회 지도자들을 불러냈 고, ‘뭉치면 산다’는 오랜 경구를 소환해 냈다. 지난 9월 28일 플로리다에 상륙한 4등급 허리케인 이언은 수 려한 해변 풍광과 자연환경으로 미국최고의 은퇴지로 꼽히는 플로리다 남서부(한반도 전라 남북도 위치)를 휩쓸었다. 풍속 131마일~155마일(210km~249km)에 이르는 이언은 이 지역 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때마침 발생한 해일로 해변이 뭉개지며 수 천 채의 주택이 파 괴되었고, 30여 가구의 한인들도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적게 는 수만 달러로부터 수십 만 달러에 이르는 가옥 및 업소가 파 손 피해를 입었다.
입힌 허리케인 앤드류가 44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50억 달러 의 재산 피해를 입힌 것을 견주면 역대급 피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 사람은 플 로리다 한인회연합회를 이끄는 박석임 회장(83세)이다. 숨을 돌린 박 회장은 미주 전체 한인회연합회인 미주한인회총연합 회(공동회장 국승구, 김병직, 이하 미주총연)에 도움을 청했고, 미주총연 사무처가 즉시 행동을 개시했다. 박경덕 사무총장은 총연 카톡방에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의 에스오에스(SOS)를 올리고 즉시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이후로 모금운동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먼저 박 사무총장이 300 달러 기부금을 내놓자,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300달러씩 기부 해 2만3450달러가 모금되었다. 이후로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가 2900달러, 민주평통마이애 미협회도 900달러를 보탰고, 피해지역인 남서부플로리다한인 회도 5670달러를 자체 모금해, 총 금액은 3만여 달러에 이르렀 다. 모금 시작 열흘이 채 되지 않아 80여 명이 참여한 결과다.
최초로 도움을 호소한 박석임 플로리다연합회장은 예상치 못 한 호응을 보고는 “그동안 자리다툼이나 하는 줄로만 여겼던 한 인사회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라고 했다. “꿈도 꾸지 못한 일입니다. 글쎄 머리 터지게 싸움만 하는 줄로 여져왔죠. 이번 일을 보고 ‘회개’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실제 위 기가 닥치니 너도나도 한마음이 되는 걸 보고 감격했습니다. 뭉 치면 뭐든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숨을 내쉬었으나, 속속 들어오는 남서부 피해 소식에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10월 초순 허리케인 이언은 사상초유의 사망자와 피해를 남기
고 플로리다 반도를 빠져나갔다. 인명 피해 119명 가운데 플
로리다에서만 109명이 사망했다. 재산피해도 750억 달러(1천
조원 이상)에 이른다. 1990년 이후 플로리다에 가장 큰 상처를
박 회장은 모금에 한인사회 지도자들이 일사불란하게 단 시간 에 반응을 보인 것은 순전히 ‘통합’ 덕분이었다고 보았다. 미 전역의 150여개 한인회의 전.현직 회장들의 집합체인 미주 한인회총연합회(이하 미주총연)는 10여년 동안 둘, 셋으로 쪼 개져 저마다 정통성을 주장하며 딴살림을 차려 오던 터였다. 걸 핏하면 법정싸움이 벌어진 적도 여러 차례 였다. 이 때문에 재 외동포재단이 매년 주최하는 세계한인회장 대회 등 정부행사 에 미주총연을 초청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미주총연은 우여곡절 끝에 올해 2월 하나로 통합, 현재 국승
플로리다는 미국에서 허리케인 빈도수가 가장 많고 피해액이 가장 큰 곳이다. 미국해양대기국 (NOAA)에 보관된 자료에 따르면 1851년 이래 지금까지 총 303차례 이상의 허리케인 피해가 있 었고, 이 중에서 플로리다에서만 122차례의 피해 가 있었다. 텍사스, 루이지에나, 노스 케롤라이나 가 각각 57개로 뒤를 잇고 있다. 무려 40%의 허 리케인이 플로리다에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허리케인은 1900년도에 텍사스 갈베스톤을 내려친 것으로, 이때 무려 8천명이 희생되었다. 두번째로는 1928 년 플로리다 늪지대인 오키초비를 휩쓴 허리케인 으로 1836명이 사망했다. 세번째는 1919년과 1938년 플로리다 남부 마이애미에서 100마일 가 량 섬들로 이어지는 플로리다 키즈(Florida Keys)
와 뉴잉글랜드 주에 불어닥친 허리케인으로, 각각
600명이 사망한 기록이 있다. 허리케인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1950년 이후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허리케인으로는 1957년 루이지애나와 텍사스를 친 ‘오드리’이며, 이 허리케 인으로 390명이 사망했다.
허리케인은 통상 가장 약한 1등급(category1)에 서 가장 강한 5등급(category5)으로 나뉘어
진다.
1등급은 풍속 74마일~95마일(118km~152km)
로, 지반이 약한 곳에 세워져 있는 이동식(mobile home) 주택과 어른 팔뚝 두께의 관엽수, 간판 등 을 파괴한다.
2등급은 풍속 96마일~110마(153km~177km).
이는 튼튼한 이동식 주택에 심한 피해를 입히고 지
반이 약한 곳에 심겨진 아름드리 나무를 넘어뜨리 며, 일반 주택의 지붕과 유리 창문을 날릴 정도의 허리케인이다.
3등급은 풍속 111마일~130마(178km~209km) 의 허리케인으로, 웬만한 이동식 주택과 직경 50cm 이상의 두께의 나무를 넘어뜨리고, 빌 딩에 금이 가게 하는 등의 피해를 입힌다. 4등급은 풍속 131마일~155마일 (210km~249km)에 이르는 것으로, 어지간한 일 반 주택을 심하게 파괴하거나 무너뜨리고, 직경 1m 이상의 나무를 뿌리째 뽑아 날려버린다. 이번 에 플로리다 남서부를 친 이언은 4등급이다. 5등급은 156(250km)마일 이상의 초강력 허리케 인. 지상에 서 있는 나무란 나무는 모두 쓰러뜨리 고, 일반 주택과 작은 빌딩을 뒤엎고, 강을 잇는 다 리까지도 쓰러뜨린다. O
플로리다를거처간 허리케인의자취 ( 1851 -1899) 플 로리다에 전체 허
리케인 30%가 상 륙한다. (사진위가 운데)
플로리다한인회연 합회는 지난 18일 탬파 스시닌자 식당 에서 국중구 총연회 장으로부터 모금액 전액을 전달받았다. (사진위 맨왼쪽)
구-김병직 공동회장 체제로 새출발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 은 화합분위기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한인사회의
회원들이 참여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좋은 선례 가 될 것”이라며 총연의 역량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에 큰 의미
를 부여했다. 다만 모금 과정만큼이나 집행이 투명하게 이뤄지
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허리케인 피해자 돕기 모금운동 과정에 얽힌 고무적인 선례들
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 30여 남서부 한인 피해 가정들 가운데는 20여 가정은 ‘피해가 더 큰 가정들에게 양보하겠다’며 위로금을 사양해 박 회장과 장 익군 이사장을 감동시켰다.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는 12월3일 오후 올랜도에서 10여개 피 해 가정을 대상으로 모금액 배분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 합회는 이 과정에서 또하나의 선례를 남길 듯하다. 연방재난청 (FEMA)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상봉 전 남서부 플로리다 한인회장이 제시한 ‘분배계산법(Money Distribution Calculations)’을 기준으로 피해자의 연령, 경제력, 피해 정도, 보 험 커버 여부 등에 따라 차등 배분한다는 계획이다. 연합회는 이에 앞서 지난 18일 탬파 스시닌자 식당에서 국중구 총연회장으로부터 모금액 전액을 전달받았다. O
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어느날 아들 이 던진 말에 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지금 뭐라고 했니?“ “김치와 김밥 장사를 한다고 했어요.“ 평소에 농담을 잘 하던 아들이었기에 잘못 들었거나 농담이겠지 하며 갸우뚱거리는 나를 향해 “엄마! 제가 한 말 진짜예요“라고 했다. 먼저, 1983년생인 아들의 경력을 잠깐 소개 하기로 한다. 함부르크에서 김나지움(Gymnasium, 대학진학 을 목표로 하는 일반계 고등학교)을 마친 뒤 중부 에어 랑엔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디풀롬(석사학위) 엔지니어다. 졸 업하자마자 함부르크에 있는 ‘에어버스(Airbus)’ 항공사에서 근 무를 시작했다.
아들은 에어버스 근무 중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으로 출장
을 다니면서 매우 즐거워 했다. 남편은 아이들이 어렸을 땐 다
섯 개 언어도 소화해 낼 능력이 있다면서 한국말로 대화를
생 때 한국에서 7개월 간 실습했고, 의사인 딸 역시 연세대 세 브란스 병원에서 실습까지 했을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 팬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아들은 3년 반 동안 부산에서 근무하고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3년 근무하다 2021년에 귀국하여 우리 집 가까 이서 산다. 손녀 손자 모두 합해 10명으로 불어난 우리 가족은 한국인의 정서가 더 많아 오히려 남편이 이방인처럼 느껴질 정도다.
어느 날, 아들은 김밥과 김치를 선보인다며 우 리 부부를 초대하겠다고 했다. 좋은 자리를 마 다 하고 김치와 김밥을 만들겠다는 아들과 말 다툼이 잦아지던 터였다.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으나 딸애가 “기도( 아들 이름)가 하고 싶다면 이해하고 도와 줘야지!” 라면서 핀잔을 줘 그러기로 했지만 100% 받아 드리기 는 힘들었다.
그러나 초대 받은 자리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와우! 멋지게 장식까지 하여 예쁜 그릇에 담아 놓은 아들의 김밥을 보고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김밥 속에 들어있는 속살도 색상을 맞췄는지 알록달록 꽃처럼 예쁘기까지 했다. 불고기 김밥, 김치 김밥, 버섯 김밥, 계란 김 밥과 소스! 모양만 예쁜 것이 아니고 맛도 예상외 수준이었다. 아들과 며느리를 꼭 껴안아 주었다.
엄마의 김치가 가장 맛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아들과 며느리는
여러번의 레슨을 받은 후, 손수 만들어 나의 조언을 듣는 등 참
으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백김치도 담고 파김치도 담고 낯선 재료들을 조리고 볶고 찌는 등 열심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아들은 이젠 어떻게 마케팅을 할 것인가로 고심하고 있다. 디자인 공부를 한 며느리가 김밥과 김치를 소 개한 인터넷 사이트를 보는 순간, 가느다란 비명이 나올 정도 였다. 공부를 끝내자마자 아들 따라 한국과 캐나다에 간 며느리는 두 이이를 출산해 아쉽게도 자신이 공부한 분야를 실험해 보지 못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전공분야를 보여줄 때가 된 것처럼 놀 라운 디자인 실력으로 마케팅을 시작했다. 부산 해운대에서 살 때 한국 음식 만들기와 한글까지 배우더 니 한글과 독일어를 적당하게 배합하여 만든 상표가 내 맘에 꼭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부부는 두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갔다. 여행도 겸했지만 사업 시작 전 한국에 가서 새 아이디어를 모 으기 위해서란다.
한 달여를 머물면서 식당을 하는 친구를 만나 조언을 듣기도 하
며 여러 시장을 돌면서 아이디어를 모았다. 돌아 와서는 독일
슈퍼마켓과 공장들을 돌면서 김밥과 김치를 소개 하는 등 정
열을 쏟고 있다.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로서 애잔한 마음으 로 잘 되기를 빌었다. 드디어 아들은 ‘고우 한류 지엠비에이치(Go Hanryu Gmbh)‘ 라는 이름으로 정식 등록을 하고, 시내에 작은 장소를 빌려 가
게를 시작한다고 알려왔다.
장식을 마친 가게에 들어선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고 말 았다. 벽면이 온통 ‘김밥, 맛있다, 먹자’ 등등 한글과 독일어로 장식되어 있었다!
며느리는 부산에 살 때 딸 아이 서류에 출생지가 부산이 되기를 원한다며 친정에서 출산하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었다. 아들 은 올 8월에 딸아이가 7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꼭 출생지 해운대를 꼭 보여 주고 싶다며 딸을 데리고 갔고, 엄 마의 고향 공주 산성공원에 가서 “엄마 고향에 왔어요!”라고 소 식을 전해 왔었다. 아들 부부는 이미 한국에 미쳐있었다. 아들은 한국에서 살 때 김밥이 간편하고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 식이라며 맥도날드 버거처럼 판매한다면 좋겠다고 했고, 김치 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맛있는 음식이라고도 했다. 그러던 아들이 이제 김치를 독일 슈퍼에 공급하고 싶다는 포부 를 갖고 첫 발을 내디뎠다. ‘빨리 김밥(bballi kimbap)’이라고 이름을 붙인 김밥과 김치 를 소개 하는 날 몇몇 한국 분들이 오셨는데 아들이 뜬금없이 한마디 던진 말이 가슴을 후빈다. “엄마, 이걸 판다고 아직도 창피해 하세요?” 한국인 엄마로서 엄마나라의 음식을 알리겠다는 열정은 좋지 만, 길고 험한 저 길을 가겠다는 아들 부부에게 그저 성공하기 를 빌 뿐이다. O
[OKJA 통신-미국] 의외로 선전한 민주당, 플로리다에선 안 통했다
글: 최정희 기자/ 코리아위클리
주지사-연방 상원의원 선거, 공화당에 완패
20년 전만 해도 플로리다주는 미국 선거의 격전지였다. 2000
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는 미국 전체 득표수에서는 엘 고어 민주당 후보에게 졌으나, 플로리다에서 불과 537표 차이로 선거인단을 독식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주지사 선거로 보면, 공화당 후보는 2010, 2014 2018년 연속 매우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그러나 주 공화당은 근래 십수년 간 연방 상하원, 주지사 및 주의원 등 주요 선출직을 잠식해왔 다. 올해 중간선거에서는 론 디샌티스 주지사가 민주당의 찰리 크리스트보다 무려 19%의 득표율 격차를 벌이며 손쉽게 자리 를 지켰다. 또 마르코 루비오 연방상원의원에 도전한 민주당의 발 데밍스 역시 16%차이로 졌다. 민주당의 열세는 올해 더욱 심화된 양상을 보였다. 대승을 거둔 디샌티스는 마이애미 데이드와 팜 비치 같은 민주당이 선전해 왔던 카운티들도 뒤집었다.
전국적인 선거 결과를 보면 민주당은 예상외로 선전했다. 중간 선거는 전통적으로 집권 여당에 불리한 데다, 경제난과 고물가 등 악재로 인해 공화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측을 깼다. 민주당 은 연방상원에서 다수당 위치를 고수했고, 연방하원 의석은 줄 어 다수당 위치를 상실했지만, 본래 예상만큼 격차가 크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경합주인 펜실베니아와 미시건과 같은 주의 민주당원들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플로리다에서 민주당이 예전보다 더 힘을 잃은 까닭 은 무엇일까. 앞으로 패배 원인에 대한 여러 원인 분석들이 나 오겠지만, 선거 전문가들은 우선 양당 유권자들의 투표 열성도, 선거자금 등을 들고 있다. 선거일 전날 저녁, 크리스트 후보는 자신의 패배를 점친 여론조 사를 일축하고 “우리가 투표할 때, 우리는 승리한다”라는 민주 당의 인기있는 속담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크리스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 최근 <탬파베이타임스> 분석에 따르면, 지역 내 힐스버러, 피넬 라스 등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승리한 카운티에서는 공화당
투표율이 민주당 투표율보다 높았다. 주 전체에서 공화당 유권
자의 거의 3분의 2가 투표장에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 유권자
의 절반만이 투표에 참여했다.
이같은 결과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쪽으로 기운 젊은 유권자와
유색인종 유권자의 낮은 투표율이 한 원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플로리다 대학 정치학과의 대니얼 스미스 교수는 유권자 등록
숫자만 놓고 보면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플로리다 주는 경쟁적인 주가 돼야 하지만, 투표율은 그렇지 않 다고 지적했다.
스미스는 민주당의 나이든 백인 유권자들은 꾸준히 투표하지 만 젊은 유권자들과 유색인종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유 권자 대다수가 30세 이하인 사우스플로리다대학(USF) 주변 선거구들의 전체 투표율은 힐스버러 카운티의 나머지 지역들 보다 약 15%가 낮았다. 오렌지 카운티의 센트럴플로리다대학 (UCF)과 리온 카운티의 플로리다주립대(FSU) 인근의 젊은층 선거구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스미스는 히스패닉이 많은 마이애미 데이드와 중앙플로리다와 같은 지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세가 강하지만, 민주당은 이러 한 곳에서도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고 지적했다. 오렌지 카운티에서는 민주당 유권자의 43%가 투표한 가운데, 다수 히스패닉 선거구에서 투표한 유권자는 3명 중 1명도 채 되 지 않았다. 힐즈버러에서는 히스패닉 선거구의 투표율이 41% 로 카운티 전체의 투표율보다 12% 낮았다. 마이애미 데이드 지역의 다수 히스패닉 선거구는 높은 투표율 을 보였지만, 공화당에 등록한 히스패닉 유권자는 민주당원보 다 8만1000명 이상 더 많았다. 흑인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역시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흑인 유 권자 비율이 가장 높은 10개 피넬라스 선거구의 투표율은 카운 티 전체의 61%보다 훨씬 낮은 40%였다. 이는 민주당원들의 카 운티 내 득표율 부진에 기여했을 수 있다. 선거자금도 민주당의 형편없는 결과에 한 몫했다는 분석이 나 왔다. 플로리다의 민주당 자문위원인 조슈아 카프는 플로리다 공화당의 대승이 단순히 민주당의 승리를 향한 메시지가 부족 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며 “그들은 또한 메시지를 전달할 돈이 없 다”라고 전했다.
2018년 8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플로리다 공화당은 약 4700만 달러를 모았다. 반면 민주당이 모은 자금은 약 1200만 달러로, 공화당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조슈아 스 카코는 플로리다주 민주당이 보통 주 밖의 도움에 의존해 왔 으나, 공화당은 지역 사회 내에서 조직의 활성화에 주목했다 고 말했다. O
[OKJA 통신-프랑스] 프랑스의 한국 문화 열풍…이젠 ‘함께 향유하는 시대’로
글: 이석수 기자/ 프랑스 한위클리
한국과 프랑스 각계 인
사들의 영상 축사에 이
어 한국 최고 K-팝 아
이돌의 축하 메시지가
스크린에 상영되자 한
층 광장의 열기가 고조
됐고, 배추를 반으로 가
르는 퍼포먼스와 함께
김장 품앗이 축제가 시
작됐다.
주최측에서 SNS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올해도 1시간이 채 안되 어 마감이 되어버릴 정
도로 뜨거웠다. 치열한 경합 끝에 프랑스 지방 에서, 심지어는 국외에 서 까지 날아올 정도로 ‘ 김치 페스티벌’에 대한
열기는 해가 갈수록 뜨 거워지고 있다.
전세계적인 한류열풍과 함께 유럽 어느 곳보다 한국 문화의 열 기가 뜨거운 프랑스에서는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함께 누리며 향유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해도 한국에서 초청된 공연팀을 호기심어 린 눈으로 지켜보기만했던 프랑스인들이 이제 직접 체험하는 단계를 지나 함께 누리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2018년부터 15구청 광장에서 펼쳐온 ‘코리안 김치 페스티벌 in paris ’ 는 매년 1만 여명의 관람객이 찾는 행사로서, 참가자 들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김장’을 직접 시연하며 한국의 전통문화 품앗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김치의 맛에 푹 빠져 직접 김치를 만들어 먹는 프랑스인들이 점 차 늘어 나고 있고, 파리에 있는 식품점이나 김치 제조사에서는 김치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기도 하다. 파리에만 200여개로 늘 어난 한국 음식점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장 품앗이와 함께 개막한 코리안엑스포 지난 10월 1일, 2일 양일간 대형 태극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파 리 15구청 광장에서는 흥겨운 한국문화 축제 ‘코리안엑스포’가 열렸다. AMA협회(대표 정주희)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1만 5천명 이상 의 파리 시민들이 찾아와 다양한 한국 문화 공연과 함께 10여 개의 한국 먹거리 부스에서 한국음식을 즐기며 한국문화에 흠 뻑 빠져들었다.
행사장에는 한국식 먹거리 부스 뿐만 아니라 K-뷰티, K-팝 및 K-드라마 관련 상품 코너, 한국 대표 식품기업 전시 및 시 식 부스, <2030 부산세계박람회> 홍보 부스, 한국전통문화 전 시관 등이 설치되어 우수한 K-브랜드 제품 프로모션 등을 통 해 다양한 한국문화를 소개했다. 오후 1시 50분, 한국에서 날아온 Rok Dream(퓨전국악팀)의 흥겨운 오프닝 공연과 함께 코리안 엑스포의 막이 올랐다. 한국과 프랑스 각계 인사들의 영상 축사에 이어 한국 최고 K팝 아이돌의 축하 메시지가 스크린에 상영되자 한층 광장의 열 기가 고조됐고, 배추를 반으로 가르는 퍼포먼스와 함께 김장 품 앗이 축제가 시작됐다. 주최측에서 SNS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올해도 1시간 이 채 안되어 마감이 되어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치열한 경합 끝에 프랑스 지방에서, 심지어는 국외에서 까지 날아올 정도로 ‘김치 페스티벌’에 대한 열기는 해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손장갑도 끼고 주최측에서 준비한 절인 배추 와 김장 재료를 받아들고 참가자들은 흥겹게 김치를 버무렸다. 파리15구청 광장에서 펼쳐진 김장 품앗이는 장관을 연출했다. 겉절이 내음이 광장에 가득했고, 참가자들은 멋진 품앗이를 경 험하며 한국의 김치 맛에 더욱 빠져들었다. 김장 담그기 행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한국문화 축제가 이어 졌다.
앞치마를 두르고 손장 갑도 끼고 주최측에서 준비한 절인 배추와 김
장 재료를 받아들고 참 가자들은 흥겹게 김치 를 버무렸다.
Photo:
프랑스의 유명 K-팝 커버댄스팀들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관객 들은 열광하며 춤을 추고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김도현 전통춤 흐노이에 이어 한동엽 무용가의 신시나위 공연이 펼쳐지자 그
의 수려한 몸짓에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한국문화 축제에 한국 유명 가수들 출연
이어 한국 유명 프로그램인 보이스 킹에 출연했던 김도현 가수
가 트로트 ‘항구의 남자’를 부르며 손가락 하트를 날리자 광장
은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행복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 며, 생전 처음 듣는 흥겨운 트로트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 는 모습이 연출되며 음악으로 누구나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 여줬다. 이날 한국 트로트가 프랑스에서 첫 선을 보인 셈인데, 예상 외 로 뜨거운 반응을 보여 트롯트의 세계화 가능성도 엿볼 수 있 게 했다. 이어 남성 5인조 그룹 유엔젤보이스가 나와 완벽한 화음, 절도 있는 율동, 그리고 훤칠한 외모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이들이 한국의
국악팀)의 흥겨운 오프닝 공연과 함께 둘째날 행사의 막이 올랐다. 특히 이날은 광장에 태권도 아뜰리가 마련되어 큰 주목을 받 았다.
프랑스 청소년 대표팀을 이끄는 정우민 감독이 이미 사전 등록 한 100여명의 참가자들에게 힘찬 기합과 구령에 따라 절도있 는 태권도의 품새를 가르쳤고, 발차기, 가로막기 등의 시범을 따라하며 한국의 국기 태권도를 통한 강한 무예정신을 배웠다.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한국무용가 안재현 씨는 한국 전통 무용 가들이 이끈 탈춤 아뜰리에 아뜰리에를 선보였는데, 이 역시 수 십명의 신청자들이 흥겨운 탈춤 동작을 따라하며 한국 춤의 흥 겨운 몸짓에 매료되었다.
또한 공진원에서 주최하는 한국 전통문화 주제의 미디어 아트 전시가 ‘색의 향연’이라는 주제로 코리안엑스포 행사장 내 실내 전시실에서 펼쳐져 연일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끝나고 한국전통 아뜰리에와 함께 첫째날
은 그렇게 아쉬운 막을 내렸다.
태권도, 탈춤, 아트 전시회 등 한국문화에 매료
다음 날인 10월 2일(일) 오후 12시 30분, Rok Dream(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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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3
2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