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진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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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호 목 차

⊙ 만화로 보는 시사 고사성어

4~5p

⊙ 연재강연 _ 한국 노동운동사 제3회

6~11p

⊙ 서울시당 / 지역위원회 활동사진 코너

12~16p

⊙ 만화 참식이 & 이 달의 추천도서

17p

⊙ 한방상식 코너 _ ‘적당한 운동’

18p

⊙ 금주의 사설

19p

⊙ 당원교양시리즈 No.3 - 진보정치가 가야 할 방법은

20~29P

⊙ 서울시당 알림

30P

⊙ 사람을 찾습니다

31P



만화로 공부하는 시사 고사성어

본 만화는 성북의 주권당원이싞 김부일(반골66)님께서 열과 성으로 서울시당 당원님들을 위해 만들어 주싞 연재 고사성어 만화입니다. 즐겁게 보아주세요~


반골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_


연재강연 코너 본 사설은 노항래 주권당원님께서 연재해 주실 „우리나라 노동운동사‟ 시리즈 중 세 번째 강연입니다. 약 5회 분량의 강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미있게 보아주세요~

- 서울시에서 살피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사 3노항래(참여정책연구원 부원장, 구로지역위원회 준비위원장)

마포 공덕동로터리를 지날 때면, 23살 꽃띠 김경숙 님을 기억하세요.

1979. 8 당시 야당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중인 YH노조 조합원들

위 사진. 옛 신문에서 찾을 수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농성사진입니다. 여의도에서 마포대교를 건너 공덕동 로터리로 가면서 마포역 근처에서 왼편을 향하면 그저 그만한 크지 않은 흰색 병원 건물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30년 전 구 신민당 당사입니다. 바로 위 사진의 무대입니다. ‘동교동 재야인사’로 불리던 김대중 씨는 가택연금 상태이고, 그의 격려를 받는 김영삼 씨가 당 총재로 제 1야당을 이끌던 시절의 당사입니다. 이 건물의 역사적 주인공, 그가 그 당의 사람이 아니라, 단 이틀 그 당사에 농성하느라 머물렀던 YH 무역의 여성노동자들, 그리고 그 당사에서 삶을 마친 고 김경숙 님입니다.


지난 호에 전태일 님에 대해 썼습니다. 70년대를 연 상징이고, 인간을 돌보지 않는 산업화의 현실을 고발하며, ‘내 죽음을 헛되이 말고, 기억하라’고 절규했던 전태일 사건이 그 시대의 개막이었다면, 오늘 살펴볼 김경숙 님의 죽음은 그 시대 의 한 종막일 수도 있겠습니다. 32년 전 있었던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에 대해서는 그 사건 관련 자들(민주노동당 최순영 전 의원 등)이 적지 않게 살아있고, 그 사건의 영향이 미친 사회적, 정치적 파장이 워낙 컸던지라, 여러 자료를 지금도 찾아볼 수 있습니 다. 그 중 인터넷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종합적인 사건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1979년은 유신체제 철폐투쟁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던 때이다. 경제는 제2차 석유위기와 극심한 불황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경제 성장률은 6.4%로 1978년 11.6%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하였다. 체불임금은 예년의 5~6배에 이르렀고 경 기침체를 빌미로 한 조업단축과 휴·폐업이 잇달아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았다. 1966년에 종업원 10명으로 시작한 YH무역은 1970년에 수출실적 100만불, 종업 원 4000명으로 국내 최대 가발업체가 되었으며 수출순위 15위를 차지하는 기업 이 되었다. 하지만 사장은 상당량의 외화를 해외로 도피시키는 동시에 자사 제품의 외상구매에 대한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었다. 70년대 후반에 접어들자 회사는 이익금을 미국으로 빼돌린 데다 가발경기의 쇠퇴로 인해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은행 빚을 끌어들여 계열사를 늘리는데 열을 올렸다. 회 사의 재무구조는 갈수록 악화되었고, 회사는 경영압박을 노동자 인원감축과 하청, 위장휴업, 공장이전 등으로 극복하려 하였다. 노동조합은 1978년 5월 9일 대의원 대회에서 회사정상화와 하청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인 끝에 회사 측의 동의를 받아냈다. 그러나 1979년 3월에 당시 지부장이던 최순영이 크리스챤 아카데미사 건으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자 회사는 폐업공작을 가속화 하였으며, 1979년 3월 30일에 폐업공고를 내기에 이르렀다. 노조는 긴급 대의원대회를 열고 폐업철회를 요구하고 이후 4월 13일에 긴급 조합 원총회를 개최하고, 은행과 회사 측의 확실한 해결안이 나올 때까지 농성에 돌입하 였다. 노조 지도부는 농성장소에 대한 강제진압을 예상하고 제2의 농성장소를 검 토하였고 신민당사를 그 장소로 선택했다. 그에 따라 여성 노동자 200여명은 1979년 8월 9일 새벽 6시경 공장폐쇄를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다가 회사의 기숙 사를 나와 신민당사로 몰려가 농성을 시작했다. 당시 신민당은 공화당 정권에 대해 서 활발하게 투쟁을 전개하던 상태였기에 이들 노동자들의 농성사건은 정부에게 태풍의 눈처럼 보였다. 따라서 경찰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8 월 11일 새벽 2시경 이른바 ‘101호 작전’을 개시하여 신민당사 정문을 부수거 나 사다리로 창문에 올라가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습격하였다.


이어 경찰들은 당시 안에 있던 국회의원, 신민당원, 취재기자와 여공들을 가리지 않고 난타하며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100여명이 부상당하고, 김경숙 이 사망하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신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유신독재정권의 폭력적 노동탄압과 야 당파괴 공작을 격렬히 비난하고 김경숙의 죽음이 결코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서 무기한 농성이 돌입하였다. 한편 신민당 내부에서는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일고 총재단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가처분신청 을 받아들였고 김영삼 총재는 졸지에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에 신민당 의원들은 총사퇴를 결정하였다. 이어 10월 17일 부마시민항쟁이 터지면서 유신체 제는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였고 10월 26일 대통령 피살로 종말을 고하기에 이르 렀다.‛ [참고자료: 이원보,《한국노동운동사제5권(경제개발기의노동운동/1961~1987)》 고려대노동문제연구호,2004] 위 기록을 보면, 사건의 전후 경과와 의미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 적인 사건의 주역이었던 김경숙, 그는 가장 평범한 우리의 누이였습니다. 어쩌면 동년배 연예인인 설운도의 노래 <누이>의 주인공과 똑 같은!

70년대 시골에서 상경한 우리의 누이들은 당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을 담당한 섬유, 전자, 화학산업의 여공이 되었습니다. 구로공단이 가장 큰 유입원이었고, 서울의 변두리 곳곳에 산재한 산업단지의 주역이었습니다. 납땜, 단순조립, 재봉, 재단 등이 일이었고 ‘가발공장, 신발공장, 성냥공장...’이 비아냥과 함께 언급되 던 작업장이었습니다. 김경숙은 그런 작업장 중 하나인 YH무역에 76년 입사했습니다. 전남 광산에서 71 년에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서 여러 작업장을 거쳐 번듯한 대규모 생산공장 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는 작업장에서는 일 잘하는 노동자였고, 노조 활동에 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성 조합원이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그가 노조활동 중 시골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 저희 회사는 외국 수출품으로 인해 대통령상까지 받게 된, 돈 많은 회사인데 사장들은 자기들만 잘살겠다고 저희 근로자들을 버리고 도망갔어요. .... 그렇지만 저희 힘이 약한 근로자들은 힘을 합하여 단결하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 어머니, 이곳에서 사직하고 다른데 취직하려고 하여도 계속적인 물가상승으 로 인해서 옷들이 팔리지 않아 실업자들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어요. 직장을 구할 수도 없는 실정이에요. 또한 이 곳에서 일하는 나이어린 근로자들을 위하여 끝까지 단결하여 저희들은 꼭 승리하고 말겁니다....


사장이나 미국에 있는 장용호처럼 돈많은 사장들은 자기만 잘 살면 돈 없는 자들은 마음대로 하나 보지요. 그렇지만 돈 없는 자들은 착한 마음을 지니고서 우리들의 처지를 기억하여 성실하고 정의롭게 삽니다....‛ 이런 성실하고 정의로운 생활인 김경숙은 조합원들과 함께, 그 노조의 상무집행위 원이라는 책임감을 다하며 앞장서서 조합원들의 투쟁을 이끌다가, 문제해결의 실 마리를 풀고자 그 해 8월 9일 운명의 신민당사 농성에 돌입합니다. 그 농성 중의 장면을 맨 앞의 보도사진과 다음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채 이틀이 다가기 전, 전격적인 권력의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1979년 8월 11일 새벽 2시, 서울 마포 신민당사 주위로 자동차 클랙슨 소리 가 길게 세 번 울렸다. 이른바 ‘101호 작전’의 개시를 알리는 신호였다. 조명 용 소방차 2대에서 쏟아진 불빛이 당사를 비추자, 당사를 에워싸고 있던 1,000 여명의 정·사복 경찰관들이 일부는 정문을 통해, 일부는 당사 뒤쪽에서 2대의 고가 사다리차를 타고 밀어닥쳤다. 현관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고함과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고, 건물 내 부는 연막 가스탄으로 뒤덮였다.‛ ‘제 1야당’의 중앙당 당사인지라 유신권력의 총수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하 고 재가를 받은 작전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진압에 소요된 시간은 23분. 김영삼 총재는 총재실에 감금한 채 야당 사무총장, 기자 등을 경찰서장, 진압경찰


이 군화발로 정강이를 까고, 항의하는 국회의원의 따귀를 치고 짓밟으며 진주한 무 법천지였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노동자, 신민당 의원 및 당직자, 취재기자 등 100여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YH노조원 김경숙 씨가 당사 뒤편 마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1979. 8 신민당 당사에서 끌려나오는 YH노조 조합원들

당시 경찰은 ‚김경숙 씨가 새벽 01 : 30 경 왼쪽손목 동맥을 끊고 신민당사 뒤편 계단 쪽 창문 아래로 투신자살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참여정부 당시 진실화해위원회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기록 재검, 목격자 면담 등을 통해 조사한 결과, 김경숙 씨는 ‘진압작전 개시 이후’ 추락했고, ‘왼 쪽 손목 동맥을 끊고 자해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추락장소도 ‘건물 뒤편 창문 아래 지하실입구’라는 경찰 발표와 달리 ‘창문이 없는 건물 왼편 비상계단 아래’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권력은 노동자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구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한 몸부림에 폭력으로, 살해로 답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폭거는 그 폭거를 덮기 위한 더 큰 폭거로 이어집니다. 사건 후 야당 과 재야운동세력의 항의가 있자, 신민당 김영삼 총재에 대한 국회의원 제명 결정 등 야당에 대한 노골적 정치탄압과 고은, 문동환, 이문영, 서경석, 인명진 등 5명의 재야인사 구속으로 답합니다. 그야말로 막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정국대치는 비상 해집니다.


그리고 2개월 후, 그 정권의 처연한 몰락의 장면들, ‘부마항쟁과 10.26 사태’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정국을 되새기며 김경숙 님의 묘비에 고은 시인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 지독한 유신 파쇼를 끝장낸 바 한떨기 백합꽃 김경숙 아가씨 조국의 아픔 가운데 그대의 아픔 함께 있었으니 이른바 고도성장의 그늘이 얼마나 거짓으로 가득찼던가.... 그렇게 전태일 사건과 함께 열린 한 시대는 김경숙 님의 죽음과 함께 격하게 막을 내립니다. 당시 그녀 김경숙 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박근혜 의원은, 그 시절을 잊었는 지 당시를 ‘복지를 꿈꾼 아버지’의 시대로 이상하게 기억하지만, 그 시절 은 자신의 몸을 사르는 청년이 있고, 진주하는 공권력이 ‘한떨기 백합꽃’을 짓밟던 시대였습니다. 소수의 사람이 보살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회가 아니라, 대다수의 시민과 노동자가 권력에 주눅 들고, 공격당하고 짓밟히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의 아픔을 딛고, 그래도 좌절할 수 없었던 질긴 삶들의 도전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부산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 그리고 사경을 헤메는 이소선 어머님의 소식이 겹쳐지는 30년 전의 사건입니다. 마포에 가면 고개를 들어 그 건물, 그 역사현장을 살펴보십시오.

<끝>


지난 2주간의 활동사진 코너 – 1. 서울시당 활동사진

지난 7월 11일 서울시당 정책위원장(민건동)은 오세훈 주민투표 강행, 불법사례 발표 및 규탄 기자회견장에 참석했습니다. 아래는 이날 기자회견과 관련한 2011. 7. 11일자 노컷뉴스에 실린 기사 전문입니다.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오세훈 심판! 무(상급식실현)·서(울한강)·운(하반대) 시민행동 준비위원회'(이하 무서운 시민행동 준비위)는 11일 기자회견을 갖고 불법과 탈법이 자행된 무상급 식 반대 주민투표 저지를 위해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무서운 시민행동 준비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각 정당,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검증단이 주민투표 청구인 서명부 75%를 열람한 결과 동일필체로 작성됐거나 타인의 명의를 도용한 서명부 등 불법 사례가 14만여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특히 "명의를 도용당한 사람들 중에는 민주당 출신의 현직 구의회 의장과 구의원 일가족, 10년 넘 게 지역 급식운동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있었다"면서 "청구인 서명과정에 조직적인 불 법과 탈법, 편법이 동원된만큼 청구인 서명부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정권력에 대한 견제 수단인 주민투표를 행정권력인 서울시가 기획하고 주도하고 있는 것 자체 가 불법"이라면서 "오세훈 시장은 불법 주민투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정치적 책임을져야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불법대리투표, 명의도용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청구인 대표자들을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하는 동시에, 주민투표 정당성에 대한 행정소송과 함께 주민투표 발의시 주민투표 중단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단군이래 최대규모의 주민등록 도용사건의 책임을 물어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현행 주민등록법 37조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주민번호를 도용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내지는 1천 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아울러 주민투표 정당성에 대한 행정소송과 함께 주민투표 발의시 주민투표 중단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시작전 부산한 모습입니다~ *^^*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신 당원분들 감사합니다 ^^

사회를 봐주신 강호중 서울시당 교육연수위원장님 입니다.

진보자유주의와 진보정당에 관해 강연을 맡아주신 윤석양 중앙당헌당기 위원님 고맙습니다 ^^

홍용표 서울시당 위원장님의 한 말씀중 찰칵 ~ *^^*

즐겁게 브이 ~~!!


지난 2주간의 활동사진 코너 – 2. 서울시당 동호회 활동사진

0702_참여축구단 (동국대학교 학생들과 친선경기에서)

참여축구단은 지난 7.2(토)일 한강 잠원축구장 에서 동궁대학교 법과대학, 토목공학과 축구 동아리 학생들과 친선경기를 했답니다_

동국대학교 학생들과 인사 중입니다_

36번 곽봉현 선수~ 4경기 연속 득점이라죠!

경기 시작 전, 화이팅~

38번 최명석 선수~

64번 김우성 선수입니다 *^^*


지난 2주간의 활동사진 코너 – 3. 지역위원회 활동사진

01_ 0716 강남 지역위원회

지난 7월 16일 토요일 강남지역위원회에서 지난 화재로 전소가 된 포이동 266번지 판자촌 주민들에게 작은 희망을 전달하기 위하여 당원들과 함께 방문 하였습니다. 한순간에 삶의 터전과 살림살이를 빼앗긴 주민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자, 생수와 휴지, 그리고 세제를 전달 하였습니다. 함께 하신 당원님들과 도움을 주신 루크편님, 시학님, 김점숙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02_ 0716 동대문 지역위원회

지난 7월 16일 토요일 동대문지역위원회에서 ‘이명박 정부 오점’ 피켓을 전시 했습니다 ~ ^^ 중간에 비가 왔지만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웠다고 하네요 !!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애써주신 자랑스러운 동대문 지역위원회 입니다 ^^


참식이 형 & 이 달의 추천도서 코너

이 달의 추천 도서

책 소개 저자 : 조정래 | 출판사 : 문학의문학 <태백산맥> <핚강> <아리랑> 등 우리 귺현대사 를 대하소설로 실어내어 핚국 소설의 대백두를 쌓아 올린 소설가 조정래의 장편소설.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 비리와 천민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파헤친 작품으로, 성장의 빛과 그늘, 자본과 분배의 문제를 현란핚 필치 로 이야기핚다. 이번 작품은 그동안 핚국의 귺현대사, 분단과 이념의 문제, 비전향 장기수와 역사 밖으로 밀 려났던 포로들의 인권 문제를 다뤄왔던 작가의 전작들과는 달리, 처음으로 현대로 넘어와 작 금의 현실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가진 자 들의 파렴치핚 행태를 정면에서 공략하고 있는 야심작이다.


핚방상식 코너 본 페이지는 노원의 주권당원이싞 한상협(언제나아침)님께서 기고해 주실 „한방상식‟코너 입니다. 여러분들의 생활 속에 많은 참고와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금주의 사설 코너

- 금주의 사설 (한겨레신문 2011. 7. 10일자)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와 나눔, 희망버스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의 버스’에 참가한 7000여 명이 9~10일 이틀 동안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았다. 1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무더기로 소환장을 발부한 경찰의 위협을 아랑곳하지 않고 1차 때 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것이다. 경찰버스 차벽과 최루액, 무자비한 강제진압에 막혀 서로 얼굴을 마주하진 못했어도, 타워크레인에서 186일째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하나가 됐다. 희망버스에 타진 못했지만 인터넷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가슴 졸이며 밤새 현장을 지켜봤던 국민들도 모두 하나였다. 희망버스는 연대와 나눔, 희망의 생생한 증거다. 지난 1일 경기도 평택시를 출발 해 천리 길을 쉼 없이 걸어온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폭우를 뚫고 울산에서 자전거로 합류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들,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 한 대학생들, 장애인 차별 철폐를 호소한 휠체어 장애인들, 아이들 손을 잡고 온 40~50대 등이 한자리에서 어깨를 결었다.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의 고 통을 지켜만 보기가 미안하고, 피도 눈물도 없이 미쳐가는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행동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마음은 이제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해고자를 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과 불공정을 함께 해결해가는 운동으로 발전하 고 있다.

공권력은 이들과 김진숙을 격리시켰다고 안도할지 모르나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 은 생각이다. 희망버스는 더욱 거대한 태풍으로 진화할 것이고, 경찰의 물리력은 그 앞에서 조그만 등불의 신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등에게까지 최루액을 뿌리고 50여명을 연행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즉각 연 행자들을 석방해야 한다. 희망버스는 한편으로 평창 겨울올림픽을 떠올리게 한다. 온 나라가 겨울올림픽 유치의 흥분 속에서 국격 상승을 외치는 동안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길에선 최루 액과 방패가 난무했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냉엄한 현주소다. 조양호(한진그룹 회장)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형제라는 사실은 그 저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국격은 겨울올림픽 개최와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이 함 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높아질 수 있다. 그러려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부터 이뤄져야 한다.


당원교양시리즈 No.4 – 진보정치가 가야 핛 방법은

참진에서는 당원들의 정치적 교양을 위해서 매 호마다 핚 편의 읽을거리를 연재합니다. 주권당원인 „스나이퍼‟님의 글 중에서 “노무현이 꿈꾼 나라(2010. 동녘)”를 요악 발제 해 놓은 글을 소개합니다.





[조희연의 답변] 노무현이 좌절하면서 굴복하지 않았던 벽을 넘어서자 사실 <진보의 미래> 1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일종 의 옴니버스다. 그러다 보니 39편의 글이 전체적인 일관성을 갖기는 매우 힘 들다. 오히려 그 하나하나가 일종의 토론 발제문처럼 되었다고 보는 게 좋을 듯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노무현이 꿈꾼 나라>는 좋은 발제문의 모음이 다. 각 부분 전문가들이 정성 들여 썼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그 내용에 관한 평가는 별개임을 밝혀두는 게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의 네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답변을 했 다. 조 교수는 진보적인 성향의 학자다. 이른바 ‘리얼 진보’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조교수의 답변은 ‘리얼 진보’가 입에 달고 다니는 ‘신자유주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 교수의 답변을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한다. 정권교체의 이유 조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반독재 민주정부>로 규정한다. 그 리고 이명박 정권은 <신보수 정권>으로 부른다. 2008년에 이루어진 정권교체 의 이유에 대해 조 교수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로 87년 6월 항쟁 당시 합의했던 개혁 의제들이 종결되었다는 점이다. 즉 이 당시의 개혁 의제는 민주화였고, 이는 민주정부에 의해 종결되었다는 것이 다. 특히 ‘어렵게 진행된’ 개혁도 (쉽게)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서 정치적 기반이 균열되어 갔다고 분석한다. 둘째로는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신자유주의의 바람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 해 민주개혁의 성과조차 퇴색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최장집 교수와 그 제자 들, 특히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정치적으로는 민 주주의를 성취했는지 모르겠지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소홀히 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박정희의 ‘성장주의’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신성장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어떤 한 두 가지의 이유로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는 곧 이유 아닌 것이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 교수가 지적한 위의 두 가지 이유는 나름대로 일리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한국 정치세력의 지형

조 교수는 이 같은 결과 반독재 민주세력의 정치적 헤게모니가 약화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반독재 민주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관련 있는 정치세력 모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 교수는 한국 정치세력을 <구 독재적 보수세력>과 <반독재 자유주의>, <진 보세력>으로 나누고 있다. 이는 이름만 다를 뿐 세 번째 답변자로 나선 정해구 교수의 분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교수는 <반공성장주의>, <개혁적 자유주 의>, <분배평등주의>로 분류했다. 개인적으로는 정 교수의 용어 표기와 분류 가 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보다는 지향하는 정 책을 중심으로 분류했기 때문이고, 북한에 대한 입장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는 한국정치의 고정변수로 인정해야 한다. 어떻든 세 개의 정치세력 간에는 두 개의 전선이 존재한다. 이것은 굳이 전문 가가 아니더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하나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 력과 전체 진보개혁세력> 간의 경쟁이고, 또 하나는 진보진영 내부의 <자유주 의 개혁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경쟁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표현이 점점 쓰기 싫어지지만, 전달의 편의상 어쩔 수 없이 쓴다.) 결국 관건은 진보진영 내부의 경쟁과 협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조 교수의 진 단이 너무 비약적이다.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조 교수는 반독재 자유 주의 정당(아마 민주당과 참여당 등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에는 김대중 대 통령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개혁적 변신을 하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진보 정치 세력(민노당과 진보신당을 말하는 것이다)이 반독재 자유주의 정 당의 헤게모니 균열의 틈새를 비집고 대약진하는 경우이다. 진보 정치 세력의 핵심적인 정책 지향이자 정체성이 ‘반신자유주의’인데 이는 반독재 중도자 유주의 세력이 ‘좌절’한 바로 그 지점을 돌파하는 불가격한 지향이자 정체 성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노무현 이 꿈꾼 나라> 71쪽 ‚반독재 자유주의 세력이 국민정치적 공간에서 매파적인 헤게모니를 행사하 지 못하게 된 현재의 상황은 진보 정치의 확장이라는 점에서는 새로운 ‘열린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 위의 책 75쪽 글쎄? 그럴까? 조 교수가 가진 지식과 이론, 그리고 논리로 ‘추론’하면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조 교수의 머릿속에 있는 대중은 ‘현실의 대중’이 아니라 ‘관념 속 대중’이 아닌가 싶다. 동의하지 않지만, 만약 신자유주의를 기준으로 분석한다면, 직설적으로 말해 서 지난 대선에서 대중들은 신자유주의를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것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이 부분에서는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 정확하 게 표현했다고 보여진다. 김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국민들은 솔직히 왼쪽 주머니에는 노무현의 가치를 담고, 오른쪽 주머니에 는 이명박의 가치를 담고 싶어 한다.‛ - <노무현 이후 - 새 시대의 플랫폼은 무엇인가> 13쪽 이게 현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분석이 아닐까? 한국의 진보를 추구한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중은 늘 선하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와 이타, 탐욕과 절제, 경쟁과 협동이 동시에 내재된 존재 아닌가? 주어진 상황과 조건이 어느 쪽으로 작용하는가에 따라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한 게 인간이 아닐까? 나는 대중들이 신자유주의에 얼마나 반대하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대중들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할 것이라고 추론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뚜렷한 증거는 없다. 추론일 뿐이다. 유일한 증거가 있다면 2007년 대선에서 명백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내세운 이명박이 당선됐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 떻게 대중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추론할 수 있을까? 그러니 조 교수의 머릿속에 있는 논리로 볼 때는 진보세력이 자유주의세력을 대체할 가능성이 많다는 결론으로 가게 된다.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역시 현실 이 빠졌다. 정당 지지율을 봐도 그렇다. 특히 ‘리얼 진보’와 ‘반신자유주의’ 를 입에 달고 사는 진보신당의 1%대 지지율을 보면 조 교수의 논리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그나마 민노당의 경우엔 교조주의적 인 태도를 버리고 유연한 자세로 돌아섰기 때문에 지지율이 조금 올라간 것이 다. 그것도 이정희라는 좋은 정치인이 끌어낸 효과도 크다. 실사구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사실 속에서 진리를 찾아가는 자 세를 말한다. 조교수의 분석은 실사구시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진보세력이 ‘대약진’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해결과 제가 있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진보세력은 ‘리얼 진보’라고 주장하는 진보 신당과 민노당 등을 말한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약자 집단들의 대중 투쟁과 결 합하면서 (급진) 진보세력의 대중적 기반 자체를 확장해 내는 것이다. 다른 하 나는 ‘유연한 헤게모니 형성 전략’을 통하여, 이명박 정부로부터 이반하는 대중들, 그러나 반독재 자유주의 정당을 신뢰할 수 없는 대중들을 획득하여 진 보 정당의 지지자로 전환시켜 내는 것이다‛ - 위의 책 71쪽 조교수가 제시한 해법은 바람직하다. 진보세력은 조 교수가 제시한 해결과제 를 풀어내면 폭넓은 대중정당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미 첫 번 째 과제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진보신당에 많은 시 민들이 가입했지만, 그들의 완고한 사상적 교조주의와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적대감으로 인해 원위치하고 말았다.


오히려 지방선거 과정에서 조 교수가 제시한 두 번째 해법과는 반대의 길을 걷 고 더욱 세력이 축소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민노당의 경우엔 조교수의 해법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고 보여진다. 결론적으로 조 교수의 진단과 해법은 ‘관념적 사변’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 다. ‘논리적’으로는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는 수학문제를 풀듯이 추론 이 논리적으로 맞다고 하여, 현실이 그 논리에 맞춰지지는 않는다. 인간의 삶 은 수학이나 과학의 공식풀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사회경제적민주주의로… 최장집 교수와 그 사단이 참여정부를 끊임없이 공격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키워드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공격하는 ‘리얼 진 보’의 공통된 주장이기도 하다. 사회경제적민주주의는 참 좋은 말이다. 방향성도 옳고,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도 바람직하다. 결국 복지를 확충하는 방향이고, 기본적인 생존권을 국가가 보 장해주는 지향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동의하고 있는가? 여론은 동의하고 있는 가? 추동할만한 정치세력은 있는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강화는 필연적으 로 증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도 재원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국가에서 화폐를 마구 찍어내기라도 해야 할까? 아니면 미래세대의 몫을 지금 당장 끌어다 쓰고 빚을 넘겨줘도 되는 것일까? 재벌들이 양보를 하면 재원확 보가 되는 것일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참여정부 5년은 관념과 의식의 과잉이 어떤 현상을 빚어내는 지 극명하게 보여준 시기라고 본다. 의식과 관념의 진보성이 어떻게 사회발전 의 추동력을 잃게 만드는지도 보았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개혁은 곧 양극화와 빈곤을 해소하는 것이다. 맞다. 해소 해야 한다.


그러나 해법은 갖고 있는가? 문제제기만 했지 해법을 제시한 전문가는 거의 없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우리나라 진보주의 학자들이 빈부 격차에 대해서 원인 분석이나 대책이 별 로 없어요. 그냥 개방에 대해 공격하고 민영화에 대해 공격하고 노동의 유연화 에 대해 공격하고. 공격하는 것이 이제 그런 것이죠.‛ - <진보의 미래 1권> 249쪽 정리해야겠다. 조 교수는 좀 더 현실을 살아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리얼 진보’를 외치는 지식인들과 그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관념적 진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몇 개의 이데올로기로 이 세상을 재단하고, 분 석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사구시 하는 자세가 필요하 다. 인간 세상은 실험실이 아니다. 수학 공식을 푸는 곳도 아니고, 물리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도 아니다. 단순한 가설 몇 개와 변수를 대입한 경제모형으 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조 교수의 결론을 인용한다. ‚보수에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이 존재하고 있다면, 진보에게는 노무 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산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유산들이 진보적으로 재해석되면서, 대중의 신뢰를 재획득하는 과정이 이명박 정부하에 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노무현이 꿈꾼 나라> 79쪽 문구 자체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앞선 내용에서 조 교수가 제시한 원인분석과 해법으로는 성장주의 세력을 넘어서기 힘들 것 같다. 오늘도 삶을 살아가는 구 체적인 인간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관념 속에 존재하는 대중이라는 허상은 그 만 잊는 게 좋겠다. 그리고 노무현의 유산을 재해석하는 것이 ‘리얼 진보’류 의 주장이라면 대중들과는 더욱 멀어질 것은 자명하다. 그러면 이명박류의 신 성장주의를 넘어 서기는 더욱 요원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논리적인 추론이라 면 추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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