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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호 목 차

⊙ 만화로 보는 시사 고사성어

4~5p

⊙ 연재강연 _ 한국 노동운동사 제4회

6~11p

⊙ 서울시당 / 지역위원회 활동사진 코너

12~22p

⊙ 한방상식 코너 _ ‘한의학의 진단법’ ⊙ 금주의 기사 - 검찰은 흘리고 언론은 받아먹고… 언론 맞나

23p

24~27p

⊙ 만화 ‘참식이’ & 이 달의 추천도서

28~29p

⊙ 당원교양시리즈 No.6 - 보수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30~39P

⊙ 사람을 찾습니다

40P


만화로 공부하는 시사 고사성어

본 만화는 성북의 주권당원이싞 김부일(반골66)님께서 열과 성으로 서울시당 당원님들을 위해 만들어 주싞 연재 고사성어 만화입니다. 즐겁게 보아주세요~


반골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_


연재강연 코너 본 사설은 노항래 주권당원님께서 연재해 주실 „우리나라 노동운동사‟ 시리즈 중 다섯 번째 강연입니다. 총6회의 강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미있게 보아주세요~

- 서울시에서 살피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사 5노항래(참여정책연구원 부원장, 구로지역위원회 준비위원장)

‘거리에서!’ 각 시대에 새로운 몇 집회 장면들

다시 광화문에서 (글.곡 : 이광석 / 편곡, 노래 : 우리나라) 기억해요 우리를 광화문네거리 하얗게 밝히던 우리 기억해요 우리를 수많은 밤들에 피어나던 노래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우리 촛불의 바다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오늘의 함성 뜨거운 노래 영원히 간직해요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3년 전 광화문을 밝히던 촛불 시위 장면과 그 촛불의 바다를 되새기며 ‘다시 광화 문에서 만나기를’ 소망하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걷는 거리는 고 김광석의 노래가사 <거리에서>가 담고 있는 감상과 같은 처연하고 실존적인 공간이면서, 생활의 현장이고, 때로 시대의 함성을 간직한 곳입 니다. 시민들의 요구는 때로 ‘거리에서’ 분출하고, 응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걷는 거리는 우리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걷던 그 길이고,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집 단이 모이고 몰려나가며 함성과 구호를 외쳤던 현장이기도 합니다. 저 광화문 촛불시위를 노동운동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만, 실은 저 사진을 채우는 주인공들의 대다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동자입니다. 사무직, 생산직, 전문직, 서 비스직... 대기업, 중소기업, 영세자영업 부문에 고용된 이들.. 그들이 우리가 사는 도시를 구성하고 저와 같은 사회적인 세력이 되어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자신의 요구를 분출합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 서울의 시민들은 특히 저와 같은 사진을 수도 없이 연출 해냅니다. 특히 노동자들의 집단적 시위공간으로서의 서울거리 몇 장면 살펴보면서, 우리가 걷는 거리에 내장된 묵중한 시대정신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첫 번 째, 50년대의 한 장면.

1956. 3월 12일 대한노총의 서울 종로통 시위 장면. 위는 동화백화점 직원들이고, 아래는 ‘이승만 3선 출마를 촉구’ 하는 우마차노조의 시위 장면


1956년 3월 어느날. 당시 유일한 노동조직인 대한노총의 운수노조에서 우마차 300여대를 종로통에 모아서 ‘우마차시위’를 벌였습니다. 요구는 ‘이승만 대통 령 3선 출마 촉구’였습니다. 일종의 관제데모입니다. 그런데 그 관제데모의 주역 이 노동조합인 셈입니다. ‚그 당시에 제일 심한 어용단체 중에 하나가 대한노총이에요. 특히 경선전기 노조 위원장이 대통령 당선시키는 데, 민의 발동하는 데 앞장섰어요. 그런데 우마차조합에서 한 수 더 뜨는 기발한 발상을 했어요. 사람만 민의를 발동 하면 안 되겠다. 짐승도 발동하자는 거였어요. 소나 말도 민의가 있으니까 대통령 나오시라고 해라 이거예요.‛ (서중석 저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인용) 이 시위 후 이승만 대통령은 못이기는 척 ‘3선 출마’를 선언합니다. 그러한 정략 에 노동조직이 ‘재미있는’ 이벤트를 조직한 셈입니다. ‚이승만이 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돌연 불출마 선언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각 종 민의가 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 중에 대한노총 산하 운수업 종사자들의 민의 동원이 걸작이었다. 우마차부(牛馬車夫)들은 우마차 800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하 였는데 소와 말을 서울 거리에 풀어놓은 것이다. 소와 말이 하루 종일 거리를 점령 하고 이승만의 대통령 출마를 요구하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서울은 이 소와 말의 분뇨로 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한다. 결국 이승만은 소와 말까지 나서서 자신 의 출마를 요구하자 불출마 선언 19일 후에야 어쩔 수 없이 출마를 수락한다. 그렇 게 권력을 잡고 싶어했으면서도 모양을 추구했던 것이다. 하야할 때도 ‚국민들이 원한다면~‛이라고 모양에 신경을 썼던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승만은 진 정 폼에 살고 품에 죽었던 진정한 폼생폼사였다. 이것이 50년대 ‘사사오입’과 함께 유행했던 ‘우의마의(牛意馬意)’라는 용어의 배경이다.‛ 해방 후 이념과 사상이 날 것 그대로, 가장 저열한 형태로 집단화한 사람들의 행위 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종로통, 용산, 그리고 서울운동장이 있던 효창공원(지금의 백범기념관 자리) 등은 ‘새 나라’를 열망하는 수 천, 수 만 명 ‘인민들’의 구 호가 모이고 발길이 끊이지 않던 조선의 중심이었고, 당시 노동자들의 집결지였습 니다. 당시 노동자, 노동조합, 노동운동을 주창하던 이들은 대부분 진보파, 또는 좌 익진영에 가까운 이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해방정국 5년과 전쟁 3년을 거친 후 휴 전선 이남, 자유민주국가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은 ‘반공을 국시로 하는 병영국가’가 되었습니다. 노동운동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집단으로서, ‘노동자’라는 말을 쓰는 이들이 없어졌습니다. ‘입 바른 소리, 말 깨나 하는 놈들’은 다 죽고, 고개 숙이고 권력 에 머리를 조아리는 삶만 강요되던 시절에 저렇게 노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권력 에 봉사하는 이들이 판을 쳤습니다.


당시의 노동조합은 사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한 것이기 보다, 정권이 노동자들 을 통제하기 위해서, 또는 노동자들을 동원하기 위해서 조직해 준 조직이 대다수였 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의 폐허 위에 허겁지겁 운영되던 제1공화국 이승만 정권 치 하에 제대로 된 노동자 집단이 없었고, 노동자 집단이 스스로를 조직한 노동조합, 노동운동 조직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 부나방 같은 권력지향의 풍운아들 이 기숙하는 이름뿐인 노동운동, 그 운동의 앞잡이들이 ‘대통령 각하의 뜻을 받들 어’ 우마차 시위를 벌인 것입니다.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은 넌지시 ‘노동자의 날(메이데이) 5월 1일’을 ‘공산당 의 날’이라며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듬해부터 노동자의 날은 정권에 협조 적이었던 노동조직 대한노총의 창립일인 3월 10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명칭 역시 노동절에서 ‘근로자의 날’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우마차 시위와 같 은 헤프닝이 있게 된 것이지요. 두 번 째 기억할 장면은 70년대와 80년대에 종로 5가 기독교회관, 영등포 당산동 산업선교회 등에서 있었던 노동운동을 위한 기도회, 보고회 등과 노동조합원들의 농성, 정권의 금지를 뚫고 이루어진 거리시위 등입니다.

1977년 광화문 통. 100억 불 수출기념 현수막이 새롭다.


1980년의 서울 어느거리. 노동탄압을 규탄하고, 민주운동 열사를 기리는 행진 등이 많았다.

70년대 말 김수환 추기경이 명동성당에서 농성중 이던 동일방직 노조원들의 면담 요청에 응하고있다.

지난 호에 살펴본 청계시장 전태일의 분신, 김경숙의 죽음, 원풍모방 노조 탄압 등 의 상황이 있을 때마다 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인사들이 모여 집회를 열게 됩니다. 때로는 십자가를 들기도 하고, 때로는 촛불을 들기도 합니다. 그 들 중에는 고 김대 중 대통령, 이희호 여사, 고 문익환 목사, 그리고 먼저 간, 오늘 우리와 함께 하는 여 러 인사들이 함께 했습니다. ‘재야인사’, 대학생 등이 모이고, 역시 때로는 자신 들이 처한 상황을 사회에 알리고, 그와 같은 탄압에 맞선 투쟁을 다짐하고 더 큰 지 지를 호소하는 노동자들 자신이 모였습니다. 종로 5가, 명동 입구(YWCA 강당이 있는 곳), 당산동 산업선교회 옆 등, 그리고 광화문 광장을 지나칠 때, 그들이 남겨 놓은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애초의 취지대로 매우 종교적인 공간으 로 되돌아온 명동성당 역시 그런 공간입니다. 세 번 째 장면입니다.


1988년 11월의 어느 날입니다. 80년대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은 눈에 읽은, 연 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있었던 집회 장면입니다.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노동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라고 현수막이 걸려 있고, 수 천 명의 노동자, 운동가들이 모 여서 집회를 하는 장면입니다. (아마 저 사진의 앞 연단 어느 곳에 김영대 비서실장 이 저 집회를 주최한 조직 지도부의 일원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87년 6월항쟁은 우리 사회의 한 획을 그은 대 사건이었습니다. 각성된, 의지로 뭉 친 시민의 힘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 시민항쟁이 집권세력의 ‘직선제 수 용’ 6.29 선언과 7월 초 기어이 최루탄 피격으로 사망한 당시 연세대학교 학생 이 한열 씨의 장례를 치루고서 소강상태를 보이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진출이 있게 됩니다. 울산에서, 사북에서, 구로에서, 자기가 몸 담은 사업장의 민주화-요구조건 은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 노동조합 결성으로 집중-를 위해 집중된 노동자 투쟁 이 진행되었습니다. ‘7~8월 노동자 대투쟁’입니다. 구로공단과 서울 변두리 지 역 공장지대에서 제조업체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과 근로조건 개선 활동, 서울 한 복 판 사무직-전문직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 활동 등이 집중되었고, 이 활동은 해를 넘 겨 계속됩니다. (그 와중에 87년 12월 대선과 88년 4월 총선이 있었습니다만, 두 정치상황 때문에 노동운동의 확산이 중단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져갔습니다. 서울 뿐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87~88년 노동운동의 활성화가 확 연했습니다. 물론 아직 권위주의 통치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87년 12월 대선을 통 해 5공 정권은 6공 노태우 정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권위주의통치와 민주화 시대가 공존하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시대 변화의 상징 중 하나가 가두에서의 집회, 그리고 조직대오의 거리행진입 니다. 노동운동이 거리로 나선 것입니다. 저 사진에 이어지는 거리행진은 노동법 개 정을 요구하면서 국회까지 행진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서, 수 십 년 만 에 거리에 나선 노동자들, 조직된 노동자들의 대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 세대-서강대 앞-공덕동로터리-마포대교로 이어지는 행진은 노동자들이 거리에 서 자신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조직하고, 집단의 요구를 표출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 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저 사진은 그 출발지점의 한 장면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노동자들이 자신을 주장 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로부터 거리는 자주, 때때로 노동자들의 함성, 구호, 그리고 한숨과 비명소리에 젖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그 길입니다.

<끝>


지난 2주간의 활동사진 코너 – 1. 서울시당 활동사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예정 되었던 도시락 간담회 시간에만 비가 뚝 그쳐 참 신기하다 했 던 날이었습니다. 산업현장에서 조장과 공장장에서 수년 간 성희롱을 당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 피해보상 하 라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현대자동차 어느 하청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는 해고를 당했습 니다. 그러고 나서 그 하청업체는 폐업 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아산 공장에서 1인 시위도 해 보고, 서울 양재동 현대 본사에서 시위도 계획했으 나, 어떻게 정보를 입수 했는지 알바로 추정되는 20여명을 고용해서 날마다 현대 본사 앞에 집 회 신고를 냈다더군요. 더 이상 호소할 곳이 없어 청계광장앞 여성가족부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적절한 응대조차 해 주지 않는다더군요. 서울시당 당원분들의 각별한 관심 부탁 드립니다. 점심 한끼도 매우 소중하다고 하더군요! 청계광장 여성가족부 앞에 가시면 쉽게 찾으실 수 있으니 그 주변에 직장이 있으시거나 주말에 나들이 할 때라도 들려 격려와 한끼 정도의 식사 부탁드립니다!


<위> 자주통일대회 원래 8.15 자주통일대회는 청계광장에서 열리 예정 이었지만 청계광잔에선 열리지 못했습니다. 이 날 청계광장에서 시작 된 인파는 롯데백화점 쪽으로 돌아 시청쪽으로 가두 행렬을 했지만 시청 광장앞의 시위진압차량에 막혀 그 앞에서 행사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물대포를 뿌리겠다 는 경고가 1시간 30분여, 그 사이 행사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됐습니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참 석해 주신 당원 여러분들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아래> 반값등록금 집회 이 날 오전부터 진행 된 8.15 자주통일대회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오후 4시부터 청계광장 인근에서 반값 등록금 쟁취 집회가 있었습니다. 오전에 자주통일대회에 참석해 주신 상당수가 남아서 집회에 참석해 주셨고요, 박 무 최고위원님께서 국민참여당을 대표해서 격려 발언을 해 주셨습니다


8/20(토) 서울 시청광장 에서 개최 된 희망시국대회에 많은 서울시당 식구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성북의 엄윤상님!

우리 여성 당원님들! 열심이십니다-

성북의 조이풀(조덕섭)님과 강북의 이동운(노란잠수함) 님!

송파 위원장이신 이상무(어바우처)님! 해맑게 웃으 시네요 *^^*

종로에서도 오셨습니다. 서울시당헌당기위원장 박윤철 님께서도 오셨네요!


은평에서도 오셨습니다. 산유화님 여전히 아름다우십 니다!

중앙당의 오기환국장도 참석해 주었습니다-

각 당의 대표들의 모습입니다.

유시민 대표와 홍용표 서울시장 위원장도 늦은 시간 까지 열심입니다.

늦은 시간까지도 노란 물결이 펄럭입니다-

서울시당의 노란 깃발은 늦은 시간까지도 높이 휘날리 고 있습니다-


지난 2주간의 활동사진 코너 – 2. 서울시당 동호회활동사진

0828_ 남양주 / 강동 / 참여축구단 친선경기

남양주 가운고등학교에 도착, 현수막을 설치 하고 계시네요.

창단 후 첫 경기를 치르시는 강동지역위원회 축구단_ 파이팅 하세요!

참여축구단은 지금 작전회의중..

경기 전 파이팅을 외치시네요!

경기 중 한 컷_

경기가 끝나고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습니다_


지난 2주간의 활동사진 코너 – 3. 지역위원회 활동사진

01_강서지역위원회

강서 교육청 앞에서 미도리남편님께서 1인시위 중입니다. 더운데 애 많이 쓰셨어요-

강서지역위 당원분들께서 똘똘뭉쳐 나쁜투표 거부 펼침막을 직접 게시중입니다.

총 10군데 펼침막을 게시 하셨다죠?

펼침막 게시를 마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바로 시청앞으로_

정말 열심이신 강서지역위원회 당원분들 입니다.

8.30일 강서지역위원회는 민노당, 진보 신당과 함께 주민참여예산모임을 가졌습니다.


02_강동지역위원회

8.28일에 있었던 친선축구경기 단체사진입니다.

시합 전 상대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계시네요

작전회의도 하고요. *^^*

잠시 쉬는 시간~ 다들 힘드시죠? 파이팅 하세요!

두 분의 설정사진이 참 재미있네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시네요!


03_마포지역위원회

마포지역위원회 당원님들꼐서 나쁜투표 거부 피켓시위에 참여하시고 계신 모습 입니다.

홍대앞 유세 행사 중 팸플릿을 주민들께 나눠주고 계신 당원님 입니다.

8.27~28일 마포지역위원회는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모시고 양평으로 MT를 다녀왔어요.

홍대앞에서 있었던 나쁜투표 거부 운동 본부의 유세준비 하진입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_ 뒷풀이도 빠질 수 없겠죠? ^^

세 분의 모습이 참 다정해 보이죠? *^^*


04_노원 / 동작지역위원회

8.13일 노원지역위원회는 나쁜투표 거부 펼침 막을 지역 곳곳에 게시했습니다.

이것도요~ 더운 날씨에도 너무 애쓰셨 습니다. 고맙습니다.

동작지역위원회는 나쁜투표 거부를 위해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인시위 중입니다.

게시된 펼침막 사진입니다-

석계역 앞 횡단보도에도 설치했습니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러 당원분들께서 고생하시네요! 고맙습니다.


05_서대문 / 성북 / 영등포지역위원회

나쁜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 서대문지역 본부 출범식입니다.

나쁜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 성북지역 본부 발족식 현장입니다.

투표 당일 아침에 있었던 지하철역 출구 동시다발 1인시위에 참여하신 당원들분의 인증샷이네요! 너무 애 쓰셨습니다-

영등포 지역위원회는 정말 많은 분들께서 여러 번이나 피켓시위에 참여해 주셨어요. 고맙습니다!

두 분 당원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애 많이 쓰셨어요!


06_송파지역위원회

나쁜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 송파지역 유세 시 피켓시위 사진입니다.

유세를 마치고 참여하신 분들의 단체 사진 한 컷_

희망집회도 참여하신 지역위원장님_

지하철 출입구 계단에서 열심히 홍보물을 나눠주고 계시는 지역위원장님 고맙습니다

희망집회에 참석하신 송파 당원님들!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유세현장_


한방상식 코너

본 페이지는 노원의 주권당원이싞 한상협(언제나아침)님께서 기고해 주실 „한방상식‟코너 입니다. 여러분들의 생활 속에 많은 참고와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금주의 기사 코너

- 금주의 기사 (오마이뉴스 2011. 8. 30일자)

경찰은 흘리고 언론은 그냥 받고… 언론 맞나 우선 글을 시작하면서 짚을 것이 있다. 만일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와 후 보단일화를 하는 과정에서 금품수수에 대한 모종의 합의를 했고, 이번에 박 교 수 쪽에 건네졌다고 알려진 2억이 후보단일화에 대한 '대가성'이었다면 곽 교육 감은 응분의 법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한다. 그리고 곽노현을 후보로 옹립했고, 함께 선거운동을 했던 모든 세력과 사람들 역 시 함께 책임져야한다. 필자 역시 곽노혁 교육감 선거대책본부장 중 한사람이었 고, 곽 교육감이 교육감 선거에서 승리한 뒤 인수위를 만들었을 때 행정분과 위 원장을 맡아 곽노현 교육감을 도왔으므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사람 중 하나임을 밝혀둔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입각해 엄정히 수사해야 하며 곽노현 교육감과 그 주변은 수사에 성실히 임해야한다. 수사의 진행과 별개로 최근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다루는 언론들의 태도를 살펴 보고자 한다. 다음은 오늘자 (8월 30일자)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들이다. <국민일보> '진보후보 단일화 과정 검, 수사 전방위 확대' <동아일보> '"곽노현, 나머지 5억 연말에 주기로 했다"' <서울신문> '검, 곽노현 2억 대가성 확인' <세계일보> '"곽, 박에 직접 사퇴 종용"' <조선일보> '곽 ․박측, 단일화 직전 사당동 비밀회동' <중앙일보> '"당신 사퇴 안하면 진보진영서 매장" 곽노현 종용했다' <한국일보> '곽노현 "나는 당당" 사퇴 거부 검찰,녹취록 등 대가성 확인' <한겨레> '청와대 김두우 수석 박태규와 수십번 통화' <경향신문> '로비스트 박태규 귀국, 정치권 긴장‘

◀ 8월 30일자 <동아일보> 1면.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을 제외한 모든 신문이 곽노현 교육감과 관련해 검 찰이 흘리고 있는 피의사실을 기정사실화하는 기사를 1면에 내보냈다. <한겨 레>의 경우 1면 머리기사가 박태규로비 건이지만 그 옆에 곽노현 교육감 사진을 길게 싣고 사설까지 실었다. 이미 한겨레와 경향은 어제(8월 29일) 사설을 통해 곽감의 사퇴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위 기사들을 물론 다른 관련 기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 다. 대표적으로 29일자 <동아닷컴> 기사 '곽노현, 뒷돈 7억원 약속하며 한 말은 …'은 아무리 자세히 읽어봐도 제목에서 언급된 '7억원을 약속했다'는 주장에 대 한 근거가 없다. 그리고 기사내용 중에 '합의' 혹은 '결렬'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 주체가 곽노현 교육감이라는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도대체 '누가' 7억을 주기로 합의했고 '누가' 결렬시켰다는 것인가. 30일자 <조선일보> 톱기사 '...사당동 비밀회동' 관련기사 또한 마찬가지다. 사당동이 만남장소였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단일화 관련 만남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마치 사당동 만남에서 엄청난 비리가 모의 된 듯 제목을 잡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이날 교육감 선거 단일화 를 위해 애썼던 이해학 목사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밝 힌 내용에 따르면 곽노현 교육감은 단일화와 사퇴후보 선거비용 보전 문제에 관 해 매우 단호한 반대입장을 취했다. 곽노현 교육감은 "그런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느냐? 나는 그런 모임에는 나가지 않겠다"며 화를 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언론의 '아니고말고식' 선정보도의 끝은 어디일까 언론은 29일부터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건넨 2억 원의 출처에 관해 집중 보도하기 시작했다. 검찰, 박교수에 준 2억 '진보 공동자금' 배제 안해(국민일보 | 08.29 18:51) 검찰 "2억 출처, 개인 돈·판공비·제3자 세갈래 수사"(조선일보 | 08.30 03:08) 현금2억 출처 의문 '제3의 제공자' 가능성 초점(서울신문 | 08.30 05:03) 검찰, 곽노현 2억원 중 '공금 의심자금' 추적 (연합뉴스 | 08.30 15:13 ) 이미 제목에서 이들은 "진보공동자금" "...판공비, 제 3자..." "공금 의심자금" 등 등의 단어를 끌어들여 곽 교육감이 진보단체 쪽에서 돈을 받았거나, 판공비나 공 금을 횡령한 것처럼 몰고 가고 있다. 만일 이도저도 아니면 검찰과 언론은 어떻 게 책임일 것인가.


<동아일보> 사설 '곽노현의 僞善이 진보의 본질인가(동아 2011.8.30 사설)와 <동아일보> 기사 (與 "문제 많은 단일화, 법으로 제한" 野와 충돌 예고)(동아일 보 | 08.30 03:21) 등을 보면 수구보수언론의 곽노현 때리기 의도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언론 뿐만이 아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가장 먼저 트 위터을 통해 곽노현 교육감 사퇴를 언급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29일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이런 상황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인지 깊이 있고 심각하게 성찰하고 책임있게 처신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29일 오전 "서울시 교육감이 또다시 부패교육감이 되는 그런 사례가 됐다"며 "부패에 연루됐다는 그 자체만으로 곽 교육감은 즉시 사퇴 해야 한다"고 말해 곽노현 교육감을 '부패교육감'으로 낙인찍었다. 일부 시민사회단체 및 학계 관계자들도 질세라 곽노현 교육감 때리기 대열에 가 세했다.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정치권주변과 시민사회단체, 학계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을 먼저 확인하기 보다는 검찰이 흘린 피의사실과 언론보도를 보고 곽노현 교육감 압박분위기에 동조하고 있다.

◀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지 난 28일 오후 서울시 교육청에 서 긴급회견을 열어 공식 입장 을 발표하고 있다. 곽 교육감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의 돈을 지원한 사실은 인정 하면서도,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교육감 후보단일화 과정에 서의 대가성은 부인했다. ⓒ 남소연

곽노현 교육감 사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대응을 보며 서거한 노무현대통령 사 건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것일까. 2년 전 봄 노무현 대통령 사태 때도 그랬다. 검 찰이 피의사실을 흘리고, 수구보수언론이 사실확인 없이 검찰이 흘린 사실을 받 아썼다. 수구보수언론은 한술 더떠 검찰이 흘린 피의사실을 소재로 '소설'을 써 대기 바빴다. 검찰과 수구보수언론이 만든 틀에서 우리 모두 자유롭지 않았다. 지금 곽노현 교육감 사태를 앞에 놓고 똑같은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아 닐까.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가장 먼저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과연 곽노현 교육감은 박명기 교수에게 후보사퇴를 전제로 7억을 주기로 한 일 이 있는가?" "과연 곽노현 교육감은 박명기 교수를 단일화를 위해 협박한 일이 있는가?" "곽노현 교육감이 건넨 2억 원은 대가성인가, 아닌가." "곽노현 교육감은 박 교수에게 건냈다는 2억을 어떻게 마련했는가."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사실들은 대부분 미확인된 것들이다. 검찰 주변에서 흘 러나오고있는 이야기들일 뿐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시인한 것은 "2억을 건넸다 는 것" 뿐이다. "박명기 후보가 금전적인 문제로 고통을 호소하여 돈을 준 것 뿐" 이라고 곽노현 교육감은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이 흘리고 언론이 받아쓴 보도 중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이미 많은 보도 내용들은 서로서로 충돌해 거짓임이 밝혀지고 있기도하다. 곽노현 교육감 사태를 놓고 지금 우리사회는 또다른 '이념갈등'에 빠져들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사회에서 '이념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놓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언론이 취재경쟁에 밀 릴까 앞다투어 관련사실을 보도하는 것도 언론생리상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그 러나 이 모든 행위에 최소한의 원칙은 있어야한다. 그 최소한의 원칙은 '사실'에 기초해 기사를 쓰며 정치권이 논평하는 것이다. 우리는 '2의 노무현'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진보-보수 모두가 절대로 해 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래서 진보-보수 모두 함께 검찰에 한 목소리로 요구해야 한다. 검찰은 '피의사실' 공포를 통한 인권유린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언 론들도 곽노현 교육감과 관련한 아니고말고식 보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만화 참식이


이 달의 추천도서

이 달의 추천 도서

책 소개 저자 : 마커스 주삭 | 출판사 : 문학동네

사람들은 나를 책도둑이라고 부른다! 죽음의 신이 들려주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핚 도둑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젂 당시 독일을 배경으로 젂쟁의 비극과 공포 속에서도 말(言)과 책에 대핚 사 랑으로 삶을 버텨나갈 수 있었던 핚 소녀의 이야기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필치로 철학적이고 사색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젂 2권으로 구성된 이 작품집은 죽음의 신이 들려주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 핚 도둑 이야기이다. 작가는 도처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던 제2차 세계대젂 을 배경으로 글을 쓰면서 이러핚 시대에 가장 적합핚 화자가 바로 '죽음의 신'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의 신'이라는 독특핚 화자를 등장시켜 동젂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삶 과 죽음, 그리고 젂쟁의 비극과 생의 아름다움을 그린 이 소설은 젂쟁이라 는 거대핚 사건, 그 안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숨 가쁘게 뒤바뀌는 운명 속에서도 보석처럼 빛나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냈던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해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당원교양시리즈 No.6 – 보수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참진에서는 당원들의 정치적 교양을 위해서 매 호마다 한 편의 읽을거리를 연재합니다. 주권당원인 „스나이퍼‟님의 글 중에서 “노무현이 꿈꾼 나라(2010. 동녘)”를 요악 발제 해 놓은 글을 소개합니다.


[박동천의 답변] 시간과 공간의 변화 앞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진보와 보수란 무엇인가? 영어 표기로는 각각 progreesived와 conservative 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libera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미래를 말하다>의 원제목은 The conscience of a Liberal인데 <어느 진보주의자의 양심>으로 번역된다. 중요한 것은 그 개념이 무엇이냐이다. 어떤 확정적이거나 절대적인 뜻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이다. 한국에서는 ‘리얼 진보’니 ‘사이비 진보’ 니 하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절대적인 개념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여섯 번째 답변자로 나선 박동천 교수는 여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한국의 지성계는 선험주의적 사고방식이 검토 없이 횡행하는 풍조 때문에 어떤 단어에 한 가지 정해진 뜻이 있어야 하는 듯이 생각하는 경향이 짙은데, 다른 영역의 언어들은 접어 두더라도 적어도 정치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말들 은 맥락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고 봐야 한다.‛ - <노무현이 꿈꾼 나 라> 101쪽 더구나 진보와 보수라는 언어가 상대방을 모욕을 주거나 나쁜 사람들임을 상 징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도 지적한다. ‚‘진보’라는 단어든 ‘보수’라는 단어든 이처럼 상대에게 낙인을 찍기 위 해 사용될 때에는 가치나 지향성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 위의 책 102쪽 상대성 그래서 박 교수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에도 상대성을 접목시킨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폭을 무한정으로 허용하더라도 변함없이 유지되어야 하는 본질적인 의미 같은 것은 진보에도 보수에도 있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고 ‘선언’한다.‛ - 위의 책 103쪽 이 말의 의미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도 시간과 공간이 변화함에 따라 계속 변화 한다는 의미다.


즉 고정되어 있는 어떤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 성이론을 연상하면 될 것 같다. 실제로 그렇다. 19세기 전후의 각국에서 벌어진 혁명은 ‘자유주의 사상’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 당시에는 급진적인 사상이었다. 절대왕정체제 속에서 시민들에게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누가 봐도 진보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등장하면서 자유주의 사상은 보 수적인 사상으로 취급당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사상은 진보적인가? 적어도 인류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다. 소비에트체제는 스탈린에 이르러 지독한 보수사상이 되었다. 중국의 사회주의 사상은 진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제국주의가 발호하던 18세기와 19세기의 경우 민족주의가 발흥했다. 그 당시 민족주의는 식민지로 전락한 국가에게 진보적 사상이었다. 그러나 독일에서의 민족주의는 국가주의 형태로 진화하여 대학살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유럽 각국에 등장하고 있는 민족주의는 극우로 분류하고 있다. 결국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절대적 개념을 부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 는 사람들이 처한 환경, 사회적 분위기 등에 따라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유해야 할 개념이지 ‚이것이 진보다‛라고 감히 외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뭉뚱그려 묶어 볼 수는 있다. 개 념으로 규정할 수는 없어도 ‘경향성 혹은 지향성’으로 분류할 수는 있다. 이 부분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와 보수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참조해보자. 진보의 가치는 뭐냐? 연대, 함께 살자. 이거는 엄밀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교리 하고도 맞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입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따지면 공존의 지혜이고, 종교적 교리로 따진다면 그건 하늘과 신의 뜻이다. ‘더불어 서로 사랑하고’ 이게 연대의 정신이잖아요. 그리고 다 같이 하느님의 자식들로 평 등하게 태어나서 서로를 존중해라,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자유 평등 평화 박애 행복 이게 고스란히 진보의 가치 속에 있는 것이거든요.‛ - <진보 의 미래> 213쪽


그런데 이런 의문은 남는다.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자유, 평등, 평화, 박애, 행복이라는 가치를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따뜻한 보수’를 말하 고 ‘자선’을 말한다. ‘성장주의’를 무조건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 왜냐 하면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대한 생각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 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기부도 많이 하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하지 못한 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열심히 피땀을 흘리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가의 시혜적인 복지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복지지출에서 낭비되는 예산도 많고, 부정한 방법으로 복지비 를 빼내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스펜서의 적자생존이론을 인간의 삶에 투영 하는 사람들도 꽤 많을지도 모른다. 특히 한국에는 분단상황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존재한다. 국가의 역할, 즉 정책 부문에 있어서는 복지증대 등에 찬성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우호정책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이 경우 보수라고 해야 하는가? 진보라고 해야 하는가? 진보 는 무조건 대북정책에 있어서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가?

소위 ‘운동권’에 횡행했던 상명하복식 전체주의적인 문화는 진보인가? 보 수인가? 또 그 안에 존재했던 성폭력 문제는 어떤가? 권위주의 문화는 또 어떤 가? 입으로 내세우는 구호가 진보라고해서 그사람이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쯤 되면 온통 뒤죽박죽이다. 그러나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소위 진보진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과연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나온다. 이제 뒤죽박죽을 정리해보자. 결국 진보와 보수라는 관점은 상대적이다. 그리 고 광범위하게 진보냐 보수냐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진보와 보수는 어 떤 경향성이나 성향으로 분류할 수는 있겠지만, 딱 부러지게 집단으로 묶어내 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그래서 박 교수도 이렇게 중간 결론을 내린다.


‚진보/보수의 구분은 기본적으로 주어진 역사적 맥락이라는 배경 위에서 실 제로 불거진 어떤 쟁점을 둘러싸고 갈라진 진영의 균열을 쉽게 지칭하기 위해 서 사용되는 상대적 명칭이라는 의미가 짙다.‛ - 위의 책 107쪽 그렇다. 상대적 위치다. 그래서 경향성이나 성향으로 집단으로 묶어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교육 등 온갖 현실문제에 부닥치 면 그 성향이라는 것도 산산이 부서진다. 진보적 성향이라고 해서, 혹은 보수 적 성향이라고 해서 각각의 문제에 동일한 성향을 나타내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리버럴과 진보

이렇게 되면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이런 결론은 이 세상을 진보와 보수로 명확하게 갈라치는 것 못지않게 관념적이기도 하다. 가치상대주의는 가치가 없다는 허무한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향이나 성향, 지향성을 바탕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실 사구시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과 그 나머지 당은 차이가 있 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박 교수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리버(liberal)’ 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리버럴은 ‘자유주의’로 표현한다. 그런데 한국 에서 자유주의는 흔히 보수주의로 몰린다. ‘진보적 자유주의’를 주창한 유 시민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 가운데 하나는 ‘진보와 자유’라는 ‘모순개념’ 을 뒤섞어놓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담겨 있는 의미는 ‘자유주의는 진보가 아 니다’라는 것이다. 이 같은 해석에는 ‘자유주의’를 ‘경제적 자유주의’로 국한하는 오류가 있 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등의 보수세력이 말하는 자유주의는 오직 ‘시장의 자유’, 즉 ‘경제적 자유’를 의미하는 경 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리얼 진보’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자유주의를 보수 주의 사상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노무현도, 유시민도 ‘가짜 진보’ 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 외에도 ‘정치적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문화적 자유주의’ 등도 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를 보수다, 진보다, 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래서 박 교수는 ‘리버럴’이 진보 세력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버럴이라는 단어는 영어에서 여전히 진보 세력의 자산이다. 그 이유는 물 론 18세기와 19세기에 영국 자유당이 당시로써 진보의 축을 형성했기 때문인 데, 동시에 리버럴이라는 형용사에 ‘개방적’이며 ‘너그럽다’는 의미가 들 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모든 종류의 교조주의, 획일성, 엄숙한 조 직적 기강 등과 대척되는 의미가 리버럴이라는 단어에 함유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계몽주의 이래 진보 정치의 이념에서 중요한 위상을 확보해 온 요소인 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 점이 충분히 음미 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 위의 책 113쪽 그리고 이를 토대로 박 교수는 두 가지 관점에서 진보와 보수를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먼저 그림을 보자.

▲ 출처 : 위의 책 114쪽

먼저 <그림 1>은 경제적 이익의 분배 방식을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한 것이다. 보통 좌파와 우파라고 구분하는 그것과 동일하다. 반면 <그림 2>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이다. 박 교수 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본다.


‚<그림 2>는 사고의 배타성 대 개방성을 수직축에 표시했다. 배타적 사고방 식은 경직성을 불러오기 쉬운 반면에 개방적인 사고방식은 차이에 대한 관인 (寬忍)과 아량과 통하기 쉽다. 이 차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성을 일반적으로 불 신하느냐 아니면 신뢰하느냐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 위의 책 114쪽 박 교수는 리버럴의 핵심을 개방성으로 들면서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라고 말한다. ‚진보의 이념은 이와 같은 인간성에 대한 일반적인 신뢰가 없다면 자가당착 에 지나지 않게 된다……. (중략)…… 사회의 질적인 개선을 명분으로 삼더라 도 폭력이라는 수단은 가능한 배격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공론이 결국 은 옳은 방향을 찾아가리라는 믿음 아래 자신의 소신을 이웃에게 말로 전하는 기풍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 위의 책 115쪽 공론의 영역과 권력의 영역 여기서 잠깐 <공론의 영역>과 <권력의 영역>에 대해 살펴보자. 박 교수는 한 국의 진보진영에서 리버럴의 개념을 적극 수용해야 함을 이야기하기 전에 공 론의 영역과 권력의 영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는 근대과학이 싹트고 번성하던 시기였다. 그 결과 마르크스 의 자본론으로 상징되듯, 사회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데에도 과학이론이 동원 되었다. 그 결정판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임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유물론 역 시 과학지식으로 인간세상을 내다본 결과물이다. 물리법칙이 인간세상에도 적 용된다고 여겼다. 인간이 사는 세상을 과학적인 설계를 바탕으로 인간의 필요에 맞게 변경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소비에트연방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바로 데이비드 흄과 에드먼드 버크다. 이들은 인간 사회는 설계의 결과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관습으로 조성된 조형 물임을 강조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또한 미국을 여행한 후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토크빌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약육강식을 위주로 하던 사회생활의 형태가 약자를 배려하는 형태로 바뀌는 일은 권력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거쳐 공론의 형식과 내용이 속속들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버크는 생각했다.‛ - 위 의 책 110쪽 사실 이 내용은 바로 앞의 글, 즉 노무현의 다섯 번째 질문과 연관된다. 즉 ‚민주주의와 진보의 미래는 시민들이 생각만큼 간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즉 국가권력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공론의 영역>과 <권력의 영역>을 구분하고 <공론의 영역> 차원에서 추구해야 할 일은 <권력 의 영역>에서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20세기에 등장했던 전체주의 체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소 비에트연방과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홍위병을 동원해 중 국을 암흑기에 빠트렸던 문화대혁명이 그렇다. 국가권력이 시민영역을 설계하 고 진두지휘한 결과는 참담했다. 중국의 경우 모택동의 문화대혁명 후유증에 벗어난 것은 1978년 등소평이 ‚우리의 사고방식에 위대한 해방을 일으켜야 합니다‛라고 선언한 이후다. 우리나라의 ‘리얼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남미의 차베스 등 좌파정권에 은근히 기대를 품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리얼 진 보’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향해 비판했던 논리들이 대부분 국가권력으로 모든 걸 해치울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니 ‘리얼 진보’ 에게 ‘리버럴’은 ‘가짜 진보’로 치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리얼 진보’와 ‘가짜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은 리버럴의 우려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들은(버크, 흄, 밀 등의 리버럴) 모두 마르크스-엥겔스-레닌 류의 국가 사회주의에 비하면 보수인 것처럼 비칠 수 있다. 반면에 이들의 시각에서 보면 공론의 변화에 맡겨야 할 일을 권력으로 해치우겠다는 발상이 철부지들의 섣 부른 불장난으로 보였다. 인간 사회의 실재를 오해하여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 고 설쳐대다가는, 사회를 해치고 자기를 해치는 결과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 위의 책 111쪽


정치현실의 전체 구조와 모습을 함께 고려해야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리얼 진보’와 ‘가짜 진보’ 이야기는 지겹도 록 들었다. 그래서 박 교수는 이렇게 조언한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에 관해서 정책 지향이라고 하는 평면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정치 현실의 전체적인 구조와 모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바 람 또는 규범적 주장을 이 글은 담고 있다……. (중략)…… 한 정치인, 한 정당, 한 정권을 진보로 봐야 할지 보수로 봐야 할지를 한두 가지 사안만 가지고 판 정하다가는 체계적인 정치의식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매개되지 못한 개인감정 에 휩쓸리기 쉽다.‛ - 위의 책 116쪽 그리고 이 같은 관점에서 박 교수는, 한국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목표치를 제 시한다. 이 목표치 역시 가변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오늘을 바탕으로 한 목 표치일 뿐일 것이다. 박 교수가 전개한 논리로 볼 때 그렇다. 시간과 공간은 계 속 변할 테니까. ‚길어야 5년 주기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현실에서는 사회적 자유주의(소셜 리버럴)의 정도의 목표가 가능한 진보의 최대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적어도 사법적인 권리에서는 기득권 보유자들과 동등한 항변권을 가 지고, 나아가 누진세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서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 이 보장되는 정도의 목표이다.‛ - 위의 책 118쪽 참 소박하다. 하지만 한국 현실에서는 이마저도 성취하기가 쉽지 않다. 참여정 부 5년 동안 추진했던 것이 바로 박 교수의 소망과 비슷했다. 시민들이 자유권 을 충분히 누리는 사회, 그리고 국가가 최소한 생존권은 보장해주는 사회가 소 셜리버럴의 소박한 목표다. 유시민의 ‘진보적 자유주의’역시 같은 맥락이다. 결론이다. 진보가 무엇이냐? 보수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에 박 교수는 절대적인 개념 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대성의 개념으로 파악하며, 어떤 성향으로 분류하지만 사람을 대하 는 태도에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즉 지향하는 가치나 정책이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폐쇄적이라면 보수적 성향이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진보진영에서는 보수주의로 치부하고 있는 자유주의, 즉 리버럴을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으며, 오늘의 한국을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도달할 수 있는 진보의 최대치는 사회적 자유주의(진보적 자유주의 혹은 소셜 리버럴)이라고 결론짓는다. 결국 이것이 진보다, 저것이 보수다, 라고 규정짓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이 변 하면서 그 개념이 변한다는 박 교수의 전제에 의하면 당연한 결론이다. 개인적 으로 박 교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참진 제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