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ton Life Story -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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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상작

생일, 마늘밭에서 최정우(앤도버)

​ 당초 시어머님이 내 생일을 기 애 억해 주시리라 기대하진 않았 다. 하지만 ‘내일은 마늘을 뽑으 러 가야 한다’는 시어머님의 말 에 남편이 냉큼 ‘그럼 저희도 같 이 가죠’라고 대꾸하자 나는 망 연해졌다. 옆자리에 앉아 간장 게장을 발라먹던 딸아이가 곁눈 질로 힐끔 내 얼굴을 살폈다. 눈 치 코치 없는 아들 놈은 한국 음 식이 입에 맞지 않는지 젓가락으 로 열무 김치를 깨작거리고 있었 다. 딸내미의 반응에 남편은 아 차하는 얼굴로 날 바라보았지만 이미 그는 주워담을 수 없는 말 을 내뱉은 뒤였다. 우리 가족은 내일, 나의 마흔 두번째 생일날 에 땡볕 아래서 마늘을 캐게 될 판이었다. 아버님의 기대와 어머 님의 정성을 듬뿍 받고 자란 충 청도 6쪽 마늘을. ​ 다음 날, 우리 가족은 귀와 목덜 미를 내리덮는 가리개가 달린 챙

넓은 모자, 팔꿈치까지 오는 팔 토시, 그리고 고무 장화로 단단 히 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어머 님의 셔츠와 통넓은 바지까지 빌 려 입은 내 모습은 나무랄데없는 영농 후계자로 보였다. ​ 6월의 볕은 벌써 뜨거워지기 시 작해서 허투로 낭비할 짬이 없었 다. 아버님은 바다건너 온 실속 없는 일꾼들을 재촉해 차에 실었 다. ​ 마늘밭은 시댁에서 차를 타고 5 분쯤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 다. 남편 말로는 거기가 시댁이 원래 살던 곳이라고 했다. 그 마 을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시댁은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 이다. 그래봤자 애들 걸음으로도 30분도 채 안 걸릴 거리였다. 그 런데도 남편은 마치 시골에서 서 울로 상경이라도 한 기억처럼 떠 들썩하게 그 때 일을 말했다. 별

일이군,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콧방귀를 끼며 대꾸했다. 이래저 래 뒤틀린 심사를 그렇게라도 내 보여야 속이 좀 풀릴 듯하였다. 5년만의 한국 여행이었다. 그 동 안 딸아이는 이마에 여드름이 송 송 맺힌 사춘기 소녀가 되었고, 응석받이 아들은 그럭저럭 소년 이 되어가고 있었다. 본인은 한 사코 부정하지만 남편의 이마는 그저 ‘넓다’라고 형용사로는 감당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리 고 이제 나는 그 무엇으로도 세 월을 지울 수 없는 중년의 아줌 마가 되었다. 아이들은 자라갔고, 우리는 늙어갔다. 그렇게 세월은 도무지 공평치가 않았다. 깊이 패인 주름살마저 밭고랑을 닮아가는 아버님과 ㄱ 자로 꺽인 허리를 곧추세울 때마다 느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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